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양
    2026-02-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56
  • 인간복제 이뤄질까

    ◎과학자 시드 “병원 곧 설립” 발언에 미 사회 들썩/백악관 “연구비 중단”속 의회서도 “부적절” 비난 【워싱턴·시카고 AP AFP 연합】 미국의 한 과학자가 인간복제에 대한 사회적 반대에도 불구,인간복제 강행 계획을 밝히면서 의회는 물론 백악관까지 나서 이를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등 인간복제 문제가 다시 미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시카고에서 인공수정을 연구해 온 물리학자 리처드 시드는 지난 6일 향후 3개월내 시카고에 복제 어린이를 만들 수 있는 인간복제 병원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인간복제에 참여하려는 뜻을 가진 4쌍의 부부를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복제를 통해 불임 부부를 도울 계획이라면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도 이를 중단시킬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이클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은 이에 대해 “우리는 인간복제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분명히 해왔다”면서 미식품의약국(FDA)이 시드의 무책임한 인간복제 계획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작년에 스코틀랜드 과학자들이 성인양 돌리의 복제사실을 발표하면서 인간복제 문제가 쟁점화되자 인간복제 연구에 대한 연방기금 사용을 금지하고 의회에 향후 5년간 인간복제에 관한 실험금지를 입법화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의회내에서 인간복제 금지 입법화를 주도해 온 버논 엘허스 하원의원도 성명을 통해 “인간복제처럼 실험실에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엘허스 의원의 보좌관은 의회가 인간복제금지법안 심의에 즉각 착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으나 매커리 대변인은 클린턴 대통령이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의회에서 법안이 표결처리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해 시드의 인간복제 계획발표로 이에 대한 대응이 더 빨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때문에 시드는 이달 27일 의회가 소집돼 인간복제금지법안을 심의,입법화하기 이전에 인간복제에 착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경기민요 이춘희(이세기의 인물탐구:157)

    ◎맑고 고운 목소리 타고난 명창/어느 대목 불러도 막힘없는 소리 절창 경지/스승 안비취명창 뒤이어 인간문화재 올라 ‘유상앵비는 천천금이요/화간접무는 분분설이라(버들위를 나르는 꾀꼬리는 조각조각 금과 같고 꽃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는 펄펄 날리는 눈과 같다)’ 경기민요에는 12잡가가 있고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씨가 4곡씩을 나누어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받았으나 2년전 안비취명창 작고후 유산가 제비가(연자가) 소춘향가 십장가는 경기민요 준문화재이던 이춘희가 뒤를 이어 인간문화재로 새로 등극했다. ◎산간석경의 계율처럼 이춘희의 경기소리는 슬픈 소리는 한없이 구슬프지만 경쾌하고 화려한 가락은 마음속에 드리운 검은 시름을 일시에 씻어내린다.그의 미성의 특징은 푸르른 수목을 넘나드는 원앙인양,마른 대지위에 내리는 차가운 빗줄기인양,어느 대목을 불러도 막힘이 없이 산간석경 계류처럼 청청하다. 또 자진모리 장단에 맞춘 불투명한듯한 유절(마루)형식과 방울목을 울릴때 애간장을 녹이는 애원성은 ‘가히 절륜’이라는 말을 듣는다.이보형 문화재위원에 의하면 ‘경기민요의 보석이자 큰별’로서 손색이 없는 존재다.특히 경박하게 날릴 수 있는 경기민요의 가풍에 깊고 그윽한 기품을 주기위해 판소리 독공과 같은 맹훈련을 펼쳐온 것으로 유명하다.거의 30년이 가깝게 강원도 회령산 보령계곡에 올라 혼신으로 소리공부에 매달렸고 자신의 소리에 부족함을 느낄때마다 장대한 폭포수 앞에 의연하게 마주 선다.그러한 과정에서 경기민요의 대중성을 극복하고 격조를 높이는데 일조한 ‘박수를 치고싶은 명창’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가 태어난 한남동은 50년대만 해도 한적한 시골동네로 집에서는 채소농사를 짓고 있었다.5남매중 아무도 특출난 재주를 타고나지 않았으나 ‘별쭝나게도’ 그만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란 노래는 한번에 따라부르고 특히 황금심에 반해서 ‘왠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러나 부친 작고후 어머니(안명옥씨) 혼자서 광주리장사로 어린자녀를 돌보는 상황에서는 그가 ‘가수’가 된다는 것은 꿈도 꿀수없는 언어도단이자 불효막심이었다. 이를 감히 입밖에 꺼내지못하는 노심초사가 마침내 마음의 병이 되었으나 어머니에게 매를 맞아가면서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그렇게 찾아간 곳이 선소리 산타령의 인간문화재 이창배 선생이었고 그때부터 어두운 골방구석에서 장구장단 하나만으로 긴밤을 낮삼아 ‘창부타령’이며 ‘베틀가’,경기 12잡가를 섭렵해나갔다. 스승은 그의 ‘타고난 맑고도 고운 목소리’를 소중히 여겨 ‘반드시 큰 재목’될 것을 믿어주었고 상중하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을때까지 철두철미 모든 것을 가르쳤다. 과연 그의 목소리는 아무리 오랜시간 노래를 불러도 목이 쉬거나 변한 음성을 내지않는다.단지 혼자서는 어느 대목을 불러도 유창하게 넘어가지만 무대에 서면 ‘온몸이 떨려’ 실수를 범하는 일이 많았다.그 한 예로 76년,전주대사습놀이에서 ‘가사와 몸짓이 흔들려 2등’에 머문적이 있고 2등도 과분하여 얼굴을 들고 다니지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후로 극단적인 수줍음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 5시간 이상 한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하는 맹훈련을 거듭한 끝에 능란한 사체발림과 너름새를 구사하는 관록의 무대인이 된 것이다.어렵게 얻어진 결과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그는 대회나 콩쿠르에서 ‘예술성과 실력위주’를 따지는 까다로운 심사위원으로 정평이 나있다.실력이 있으면서도 불이익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설혹 스승이나 선배가 추천을 해도 실력이 딸리는 편에는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그리고 노래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방황하는 학생들을 한남동 자택에 마련한 학원에 데려다가 무료로 양성하는 인정을 베푼다. ○딸도 대이어 국악공부 이창배 스승에게 사사한지 10년만에 제자 대물림으로 안비취문하에 입문하자 이수자,전수조교를 거쳐 89년 경기민요 준보유자가 된것은 골방에 갇힌피나는 훈련과 간단없는 독공에서 얻어진 ‘야멸찬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스승이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후에는 그를 부르고 원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가서 노래를 부르고 94년 연강홀에서 열린 경기국악축제와 ‘묵계월소리인생 60’에도 스승대신으로 나가 일세를 풍미하던 거목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더구나 결혼과 예술 사이에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군과 헤어져 딸하나만을 데리고 만단 파란을 혼자서 감내해왔다.경기민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던 시절이라 고작 환갑잔치나 화수회에 불려 다니면서 판소리를 하는 이들이 수십벌씩 한복을 가지고 화려하게 무대에 설때 단벌로 버스를 타고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삭연한 서름을 겪었다.그 딸(서정화 이대 국악과)이 자라나서 그의 뒤를 잇고 있다. 몇년사이 경기민요는 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국악의 한 장르로 당당히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다.정악(정요)만을 연주하던 국악원 정기공연과 국악의 향연은 물론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고 국악과가 있는 대학에도 출강하게 되었다.그는 자신의 모자라는 부분을 위해 국악관련의 이론서를 찾아 읽고 경기민요의 계보와 유래에 대한 연구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다. ○탁월한 오관청음 빛나 그러나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칠때 이론이 정연한 것을 앞세우기 보다 구전심수의 뼈에 사무치는교습이 그들에게 산교육이 된다는 것을 투철하게 각성시킨다. 예술적 차원의 격조이전에 경기민요는 그 옛날 서민들의 삶의 기록이자 정서자체로써 그들의 삶속에 진하게 파고들었을 때만이 무르익은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신중하고 진지하면서도 정교하고 깊은 이춘희의 ‘옥쟁반에 큰구슬 작은구슬을 떨어뜨리는(대주소주락옥반) 탁월한 오관청음’은 이제 이상과 예술의 신념을 유유로히 성취시키는 절창입신의 경지다. □연보 ▲1947년 서울출생 ▲1964년부터 이창배·정만득 사사 ▲1966년 한성고등공민학교졸업 ▲1969년 KBS라디오민요백일장장원 ▲1987년 제1회 경기12좌창 및 민요발표회,LA국악협회초청 공연 ▲1988년 제2회 민요발표회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준보유자 ▲1994년 경기12좌창 발표회, KBS라디오 ‘우리가락배우기’지도 ▲1995­현재 국립국악원 지도위원, 이화여대·중앙대·추계예술대 출강 ▲1997년 무형문화제 제57호 경기소리 보유자지정, 만정 김소희 선생 추모공연, 중앙일보주최 ‘명인명무전’, 광주비엔날레 축하무대, 문체부주최 동남아순회공연, 무형문화제전수회관 개관 기념공연 등 70여회 경기12좌창 CD(93년) 경기12잡가완창·민요가락 CD(96년) 한라문화재대통령상(86년) KBS국악대상(88년) 한국방송대상 국악부문대상(96년)
  • 일 순시선,독도 영해 침범/우리측 경고 무시…10여분만에 돌아가

    일본 순시선 1척이 7일 동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선박을 인양한다는 이유로 우리 해군 경비정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도 주변 영해를 침범했다. 외무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PL­103호(1천360t급)가 이날 하오 4시30분쯤 독도 북방 10.5마일 해상에서 인근 공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선박을 견인하겠다며 한국 영해 통과를 요청했다.우리 해군경비정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 순시선은 이를 무시하고 독도 주변 우리 영해를 1.5마일이나 넘어섰다. 해군 경비정은 일본 순시선에 경고를 계속했고,순시선은 수차례 더 영해를 침범한뒤 10여분만에 공해상으로 빠져 나갔다. 표류중인 선박은 10∼20t 가량의 소형 폐선으로,절반 정도 침수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는 해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순시선이 영해를 침범한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외교경로를 통해 강력 항의할 방침이다.
  • 무서워하며 신성시한 ‘산중영물’/호랑이해 호랑이 이야기

    ◎소신으로 섬기며 호환의 두려움 달래/죽림맹호 경제난 쫓는 ‘벽사의 몫’ 기대/호랑이 살상 민족성정 안맞아 사냥 엽사들 중국옷 판 올해 1998년은 호랑이 해 무인년이다. 동물을 상징으로 한 열두 개의 지지에 따라 호랑이 해는 12년만에 한 차례씩 돌아온다. 그러나 열개의 천간을 하나씩 떼어 그 해의 지지에 앞세워 붙이기 때문에 무인년은 60년만에 맞는 호랑이 해다. 이를 갑년이나 회갑,또는 주갑이라 한다. 그 호랑이는 한민족 마음속에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단군설화에 곰과 함께 호랑이가 등장하니까 꽤나 오래되었다. 곰과 호랑이는 모두 인간으로 변신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야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뛰쳐나와 결국 맹수로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단군설화에 나온다. 렇듯 인간과 쉽게 동화할 수 없었던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곰과 함께 단군설화 등장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동이전에도 호랑이가 기록되었다. 동이는 중국쪽에서 본 우리 한민족이다. 그 사서는 산천을 떠받드는 우리민족의 풍속을 소개하면서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고 또 신으로 섬긴다는 대목을 적어놓았다. 호랑이가 그만큼 두려워 제사로 달래준 옛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885년 2월에 호랑이가 궁궐마당으로 뛰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호환이 분명하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백과사전식으로 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호랑이를 진군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그 진군은 무당이 진산에서 올리는 도당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능은 급기야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그래서 산신은 호랑이로 상징되었거니와 그 별칭도 산군 말고도 산군자,산령,산신령,산중영웅등 숱하게 많다. ○호랑이 신앙의 이중성 한민족은 호랑이를 신성시했고,때로는 무서운 가해동물로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이를 학문적으로 말하면 호랑이 신앙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신성시하면서도 무서운 가해동물로 여긴 한민족의호랑이 신앙은 매우 지혜로운 민족의 성정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지극히 인위적인 생태보존운동을 버금하는 지혜인 것이다. ‘후한서’동이전의 기록처럼 산천(자연)을 떠받들었던 민족의 심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환경친화의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민족의 자연관은 호랑이 번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다른 동물에 비해 번식력이 그리 왕성하지 못한 동물이 호랑이다. 그 호랑이가 민족의 마음속에 신성하고도 무서운 영물로 자리잡은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 우리 마음이기도 하고,호랑이를 마구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웬만한 심산에는 호랑이가 서식했던 모양이다. ○백두대간 심산에 서식 한국의 호랑이는 유명했다. 1953년 1월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요시다(길전)일본 수상의 대화속에도 호랑이가 화제로 떠올랐던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요시다수상이 “한국에는 지금도 호랑이가 많은 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일본인들이 다 잡아서 없소”라는 대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냥한 호랑이를 마치 전리품인양 내놓고 찍은 일본인들의 옛 사진첩이 지금도 돌아다닌다. 그 호랑이가 1946년 북한땅인 평북 초산에서 한 마리가 잡혔다는 풍문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민족에게도 호랑이 사냥이 물론 있기는 했다. 고려 공민왕이 그렸다는 이른바 전공민왕필 ‘음산대렵도를 보면 호쾌한 호랑이 사냥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사냥에 나선 엽사들의 입성은 모두 호복차림의 변복이다. 호랑이를 잡는 일이 민족의 성정이나 생활습관에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엽사들 옷 차림새를 중국옷으로 바꾸어 그렸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왕정의 중요행사였던 정렵만을 보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았을 뿐 더러 기껏해야 매사냥 정도였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적혀있다.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벽화 ‘수렵도’에도 박진감 넘치는 호랑이사냥이 나온다. 말을 탄 기사가 힘껏 시위를 당기는 참인데,호랑이 꽁무니를 명중할 수 있는 위치다. 시위에서 손을 떼기만 하면 화살이 호랑이 꽁무니를 꿰뚫을 찰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살을 들여다 보면 살상용이 아니다. 호랑이를 겁주어 기절을 시킬 요량으로 살상용 화살촉대신 명적을 썼다. 석류모양을 한 명적은 그저 소리만 요란하여 맞는다 해도 호랑이가 기절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산신탱화에 의레 등장 그 호랑이는 살상을 금하는 불교와도 연결되었다. 우리 고유의 산신신앙을 받아드린 불교의 산신탱화에는 의례히 호랑이가 들어있다. 탱화에 나오는 신선은 호랑이가 모습을 달리한 변화신이다. 그리고 탱화의 산신 곁에는 실제 호랑이가 늘상 자리를 같이하여 따라붙는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 소장 산신탱화의 호랑이는 평퍼짐한 자세로 앉아있는 산신을 감싸았다. 호랑이 꼬리를 S자로 그리며 하늘을 향했다. 그러니까 호랑이는 여러 모습으로 민족 앞에 다가왔다. 호랑이는 그림의 소재로도 자주 응용되었다. 정초 세화나 부적에 호랑이를 그렸다. 그리고까지 호랑이에는 까치와 함께 호랑이가 등장했다. 대나무숲속의 호랑이 죽림맹호같은 호랑이 그림도 있다. 그런데 대나무숲의 호랑이 그림은 요사스러운 잡귀를 물리친다는 벽사의 뜻을 담았다. ‘담문록’이라는 책에 대나무를 잘라 불속에 던져 큰 소리로귀신을 쫓아버렸다는 내용과 상응하는 그림이다. 올 오랑이 해 무인년에도 호랑이가 벽사의 큰 몫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경제위기를 물리쳐주는 그런 벽사를 호랑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 러 무기수출 더이상 경제수단 안돼(해외사설)

    바로 1년전 러시아 국영 무기수출회사인 ‘로스보오루제니예’는 무기수출실적을 자랑했다.러시아는 머지않아 최대 무기수출국인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장담했다.로스보오루제니예의 말을 인용,미국 의회보고서도 러시아가 미국을 따라잡으면서 96년 실제 거래협정 기준으로 90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판 세계 최대 무기수출국이라고 밝혔다.러시아 공식통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95년 30억달러,96년 35억달러의 이익을 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들은 옐친 대통령에 부풀려 보고하기 위한 ‘보고용’으로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익명을 요구한 무기거래담당 한 관리는 96년 실제이익은 약21억달러라고 밝힌다.또 무기수출액 가운데 8억달러어치는 대외채무변제용이나 독립국가연합에 무상으로 수출한 것이며 3억5천만달러어치는 구상무역으로 수출한 것이라고 한다.국방산업관계자들은 구상무역이나 대외채무변제용으로 수출된 경우 무려 실제가격의 50%밖에 계상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기를 많이 파는 것이 자랑거리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잘못된 일인양하는 여기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러시아 무기 최대수입국은 인도와 중국이라고 한다.모두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무기와 관련 기술을 사들이는 나라들이다.그러나 실제로 중국과 대만관계가 긴장상태로 계속되거나 인도주변 지역분쟁상황이 악화될 경우에 한해서 무기판매액이 증가하고 있는데 유의해야한다.말하자면 무기수출은 국지적인 분쟁상태가 계속돼 ‘불안한 지구촌’하에서만 늘어난다는 얘기다.인도와 중국 주변이 안정상태로 지속되면 러시아의 무기수출은 기껏해야 20억달러 수준에 머믈거라는 것이 무기전문가들의 전망이다.이 수치는 세계무기거래액의 10% 수준이며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이어 러시아가 4위의 무기거래국가임을 말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무기수출액은 더 이상 한 나라경제의 성장변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또 무기수출을 한 나라의 힘의 과시나 자랑거리로 삼아서도 안될 일이다.무기수출은 오히려 분쟁을 악화시키며 세계평화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한 나라 경제발전에 무기수출을 더 이상 이용해서도 안될 일이라는 국제적인 합의가 필요한 때다.
  • ‘달러 평가절상’이라니…/이규억 산업연구원장(서울광장)

    공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듯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도 우리는 퍽 무관심한 편이다.매스미디어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오염된 언어가 홍수를 이루고 잘못된 말과 외국어를 모방한 국적불명의 말들이 무분별하게 통용되고 있다. 우리의 언어습관은 어떠하며 오늘의 언어오염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정보화시대에 걸맞는 문화창달을 위해 언어순화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민족정서가 담긴 순수한 우리말을 보존 발전시키려는 의지는 또 어떠한가.우리 것을 찾아 일구자는 움직임이 사회의 곳곳에서 일고 있지만 우리말의 계승발전을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는 느낌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국적불명 말 무분별 사용 한글전용문제만 해도 그렇다.아름다운 우리말의 보존개발이 당초의 취지였을 터인데 현재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에 치중하여 오히려 단어의의미만 증발해버린 예가 많다.거리를 달리는 화물자동차의 짐칸마다 ‘전착도장적재함’이라는 표기가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한자를 제대로 모르니 신문에서조차 ‘일체’를 ‘일절’로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오늘날 사회전반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한자어를 모두 중국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거꾸로 한자어의 한글표기를 고집한다고 중국문화의 연원적 영향이 제거될 수 있는가.극단적인 예일지 모르나 독일은 게르만문자 대신 로마문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자존심을 버렸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영국도 인도숫자(속칭 아라비아숫자)를 쓰지만 인도에 열등감같은 건 느끼지 않을 것이다.맹목적 한글전용은 지나친 자아의식의 발로일 것이다.우리말의 단어중 명사는 특히 한자어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것을 한글로만 표기하면 그원래의 의미가 제대로 살지 못하거나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또한 우리 고유의 한자어는 사라져가는 마당에 일본식 한자어가 마치 우리말인양 버젓이 행세하고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이중에는 헌법,사회,철학 등과 같이 완전히 우리말화된 것도 있지만 특히 전문분야에서 어설픈 일본단어들이 남용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예컨대 ‘절상’은 계산에서 끝자리 수를 버리고 올린다는 말인데무슨 까닭인지 달러화의 가치상승을 평가절상이라고들 한다.경쟁도 원래일본식 한자어이지만 이미 국어화된지 오래인데 최근들어 부쩍 경쟁 대신 ‘경합’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일본말을 국어로 착각하고 있는듯 음식점에서 접시를 뜻하는 ‘사라’라는 말이 예사로 쓰여진다.또한 우리나라의 식당에서는 닭을 맵게 요리한 것을 흔히 닭도리탕이라고 하는데 ‘도리’는 일본어로 새를 뜻하는 것이니 결국 닭이라는 말은 두번 쓰는 꼴이다. ○맹목적 한글전용도 문제 부지불식간에 일본식 어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잘못된 경우로 ‘경제를 보다 튼튼하게’ 운운하는 것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는데 우리말에서 ‘보다’는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비교조사이므로 ‘더욱’이라는 말이 적절한 것이다.그럼에도 정부 공식성명에까지 흔히 등장하니 어안이 벙벙하다.일본인 특유의 외교적 어법인 ‘전향적으로 검토하다’는 말도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은채 우리의 정책당국자들에 의하여 마구 쓰여지기도 한다. ○우리 말 올바르게 가꿀때 요즘 인사말로 “수고하십시오”라든가 “식사하셨습니까”라고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손아랫 사람에게나 쓸 법한 말을 윗사람에게 잘못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이다.진지라는 멋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식사라는 천박한 한자어를 쓰면서 한글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겸손이 지나쳐서인지 우리나라 대신 저희 나라라고 하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요즘의 젊은이들은 남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일컬음에 있어 흔히 아버님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지칭할때 써야 하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경제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문화선진국의 면모가 실종되고 있다.지금이야말로 교육 및 언론기능의 강화를 통해 우리말을 올바르게 가꾸어서 문화선진국을 지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냉소 거두고 “다시 일어서기” 운동을/김기옥(공직자의 소리)

    고도성장으로 선진국의 문턱을 엿보던 우리경제가 무정책·무정견·무소신 탓으로 염려했던 위기가 현실로 표출되고 있다.서민은 시장물가를 걱정하고,관료는 현실타개를,언론은 위기극복을 외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처방전이 나오지 않는다. 눈앞의 상황은 ‘공동책임·공동타개’에 방향과 각도를 맞추어야 할 현안임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냉소적인 자세를 버리고 ‘다시 일어서기’운동을 전개해 나가자.다행히 서울신문이 제창하는 ‘경제위기 극복-우리모두 나서자’운동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이 분위기를 남은 달러저축,해외여행 억제,향토물품애용 등 국민가계 긴축에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별 조직적·체계적 운동으로 정립해 나갈 것을 제의한다. 첫째,국가는 당면한 외환위기만을 지나치게 의식해 IMF(국제통화기금) 긴급금융지원만 경제재건의 열쇠인양 홍보할 것이 아니라 경제체질개선을 위한 금융조정을 제도적으로 추진하고,내년도 예산의 실행예산을 시급히 편성함으로써 긴축예산을 집행해 나가는 것과 병행해 하반기 발주사업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해 실업공포를 소산시켜 나가야 한다. 둘째,기업들은 경제위기가 정책부재에서 비롯됐다고 탓하기 앞서 그 원인이 방만한 사업운영,원숭이식 제품생산,과도한 부동산투기 등에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아울러 그간의 특혜를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인식아래 족벌체계운영의 탈피,제품의 질 높이기,원가절감,해외시장개척 등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셋째,가계도 긴축이 단순한 소비억제가 아니고,생산수단의 첩경임을 인식해야 한다.우선 교육소비부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무턱대고 나가고 보는 해외어학연수의 자제,과외교육비의 제로화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을 과감히 개선하는데 모든 가계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경상비지출의 억제,투자사업비 확대,조직의 감축,세외수입 확충 등 개선의 여지는 한두가지가 아님을 직시하고 그 실천에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운동은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유일한 대안이다.
  • 불지의 오만한 한국왜곡/김병헌 파리 특파원(오늘의 눈)

    한국도 불어권 국가(?).세종대왕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나 웃을일이다.그러나 프랑스 일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이곳 유력 경제지인 라 트리뷴은 지난 15일자에 프랑스의 주도로 베트남에서 열린 불어권국가 정상회의와 관련,아시아권에서 첫번째 불어권 국가인 한국이 여기에 불참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첫번째 불어권 국가라는 이유는 현재 불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아시아국가중에서는 가장 많은 34만 2천여명에 이른다는데서 찾았다.고교생을 포함해서다.물론 사실이다.이 정도선에서만 그쳤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프랑스가 불어권 국가 정상회담을 주도하고있는 이유가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영어권 국가들에 대적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하는 만큼 우리에 대한 짝사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세계 10대 무역대국인 한국이 프랑스를 거든다면 그들의 발언권 또한 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단순한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이 신문은 대우의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 무산과 TGV와 관련된 양국간의 불협화음 등을 이유로 한국이 토라져서 불참한 양 보도했다.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문제로 한국의 대통령이 ‘프랑스는 못믿을 국가’라고 말했지만 몇달후 프랑스 미스트랄 미사일을 구입했다고 말하고 있다.마치 우리가 프랑스에 투정을 부리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식이다. 한국이 미국에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논리까지 전개하고 있다.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앞에서는 마치 동반관계인양 떠들면서도 돌아서면 그렇지 않은 그들의 오만함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이 신문은 지난번 TGV 문제가 불거졌을때 한국을 ‘부패공화국’이라고 까지 매도를 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보다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신문이 크리스티앙 디오르,루이 뷔통 등 최고급 브랜드 상품으로 한국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프랑스 LVHM그룹 주계열사라는 사실이다.이 정도라면 우리 주프랑스 대사관에서도 한번 쯤은 항의라도 해야할 사안임에 틀림없다.그런데 중요하고도 바쁜 일들이 많아서인지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는 것 같다.우리 국민들이라도 나서 이 그룹의 상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이라도 벌여 국내에서라도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 눈치보기·밥그릇싸움 경제 멍든다/금융개혁법안 불발 위기 원인은…

    ◎정치권­대선 앞두고 부담될 일 회피하기/재경원­감독기관 통합 형식논리 매달려/한은 등­관치금융 비난속 집단이익 챙겨 국회가 금융개혁법안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회와 재정경제원,한국은행 등 3개의 관련집단 모두에게 비난이 가해지고 있다.나라와 국민경제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처신과 밥그릇 싸움으로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회 재경위 법률심사 소위원회는 13개 금융개혁법률안중 11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하는 금융감독기구 설치등에 관한 법률과 한은법 개정법률안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표결로 5대 3으로 처리했다.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12일 기아자동차의 소하리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금융개혁법안을 표결로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해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표결로 하는 것에는 합의했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약속은 했으되 지키지 않았다.적극 찬성했던 신한국당도 뒤로 물러서면서 결국 금융개혁법안 처리는 물건너가고 있다.현재 경제가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다음달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부담될 일을 피하겠다는게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의 생각이다.특히 재경위원들은 신설될 금융감독위원회는 재경원 산하에 둬야 한다면서 당초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려했던 재경원의 안을 뒤집었다.금감위가 국무총리실로 가면 국회 행정위 소속으로 돼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들 것만 생각했다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자신들의 몫 챙기기에만 열심이었다. 정치권만 욕 먹을 일도 아니다.재경원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벗어나려면 금융개혁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면서 마치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이 통합되지 않아 경제위기가 생기고 대기업의 부도가 잇따르고 있었던 것처럼 내세웠다.금융개혁법안이 통과돼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 있어야 금융불안을 근본적으로 없앨수 있다는게 재경원의 논리였다.감독기관의 통합만이 ‘만병통치약’인양 한게 재경원이다. 한은과 증감원 보감원 직원들은 통합이 되면 관치금융이 된다면서 반대했지만 실제는 자신들의밥그릇 때문에 단체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김영삼 대통령이 연초 금융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한은법을 비롯한 금융개혁법안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무리수가 됐다.대선을 앞둔 정권말기에 이해가 대립된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국회와 재경원 한은의 쓸모없는 대립으로 허송세월해 금융위기만 부풀어져 국민경제와 국민들만 점점 멍들어가고 있다.
  • 불 루브르박물관서 한국작가 3인전

    ◎이대원·이종상·고 문신씨 작품… 17일∼새달 10일/동양사상에 바탕둔 독창적 작품 전시 눈길/루브르 카루젤 공간 최초 현대미술전 열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지하에는 ‘샤를르5세홀’이란 중세건축 지하 성벽이 있는 공간 카루젤이 있다.이 샤를르5세홀에서 최초의 현대미술 전시회로 한국작가 3인전이 열리게 돼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외무성의 프랑스예술활동협회와 문화성 국제협력부가 주최,오는 17일부터 12월 10일까지 마련될 이번 전시에는 조각가 고 문신·서양화가 이대원,한국화가 이종상씨 등 한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루브르 카루젤은 지난 90년대초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인 피라미드 공사중 중세 건축물의 지하 부분이 그대로 보존된 채로 발견돼 이 벽을 중심으로 지하에 새 공간을 만들어 지상 광장의 이름인 카루젤을 따 그대로 붙인 것.이 카루젤은 750평 규모의 샤를르5세홀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샤를르5세홀에서는 루브르 전시기획 운영에 대한 중복을 피하기 위해 현대미술전시만은 금지돼 왔다. 루브르 카루젤 첫 현대미술전시인 이번 행사에서 문신의 조각은 마산 문신미술관 소장품중 8m자리 ‘우주를 향하여’를 비롯해 2∼3m크기의 철·브론즈 작품 6점을 내놓아 프랑스인들에게도 친숙한 문신의 작품을 다시 선보일수 있게 됐다. 이와함께 다양하고 생동감 있는 색감과 특이한 선묘의 작품을 구사하는 서양화단의 원로 이대원씨는 300∼500호 크기의 ‘농원’ 연작 7점을 비롯,봄·여름·가을·겨울 등 사계절 연작을 각 100호 크기로 출품하면서 8호크기의 40점을 한 작품으로 처리한 신작을 별도로 설치해 한국적 색깔이 짙은 작품들을 보여준다. 다양한 재료선택과 기법의 실험성을 인정받는 이종상씨도 작가 특유의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중첩시킨 대형 설치벽화를 선보인다.이씨의 작품은 이번 전시작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으로 카루젤 성벽을 오브제로 사용,길이 60m·높이 3∼6m의 성벽에 반추상 수묵으로 한지에 그려 설치하는 대형 벽화.프랑스와 한국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벽화에 담아내면서 병인양요때 함대의 포격을 맞아 무너진 강화성벽이 카루젤 성벽으로 도치되고 강화의 그 성벽너머로 마니산을 보는 듯한 착각을 관람객들에게 일으키게 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담은 흥미있는 대작이다.
  • 김부자 초상 배지/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배지(Badge)는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옷이나 모자 등에 붙이는 표장이다.학생이나 회사원의 옷깃에 붙은 배지를 보면 그가 어느 학교,어떤 회사에 다니는 걸 알 수 있고 ‘국’자가 새겨진 번쩍거리는 금배지는 그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임을 알게 해준다.이처럼 배지는 착용한 사람의 소속이나 신분을 나타내준다.그렇지만 서울시민이라고 해서 서울시 배지를 착용하진 않는다.대한민국 국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태극기나 나라문장 배지를 착용하는 사람도 없다.외국도 마찬가지다.그러니 옷깃에 착용한 배지를 보고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알 도리는 없다.다만 예외적인 곳이 한군데 있다.북한이 그렇다.그들은 왼쪽 가슴께나 옷깃에 대부분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다.그걸 보면 북한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북한인들이 지구상에선 유일하게 그들만의 표지를 달고 다니는 까닭은 무엇일까.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자면 자신들이 ‘김일성 나라’사람임을 밝히고 김일성의 초상을 살아 있는 수령처럼 모신다는 뜻이라고 한다.보통 평균인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정권을 장악했을때 사람들은 북한인들의 옷깃에 붙어있는 배지의 모양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 했었다.예상했던 대로 곧 김일성 대신 김정일의 초상이 새겨진 배지가 등장했다.그렇지만 김정일 배지는 일부 간부들만 착용하고 다녔을 뿐 일반 주민들은 여전히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녔다.그런데 최근들어 왼쪽 가슴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함께 들어 있는 새로운 배지를 착용한 북한 여성이 북경에서 목격됐다.이 배지를 단 여인은 마중나온 벤츠를 타고 사라졌다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미루어 고위층 여자로 보였고 따라서 이 배지는 아직은 상층부에서만 통용되고 있는듯 하다는 분석도 나왔다.어찌됐든 김일성 부자 초상이 나란히 담긴 새 배지는 “김정일에 의해 수령의 위업이 100% 계승되고 있다”는 ‘김일성=김정일’동격화 선전책동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이 배지에 대해 북측은 필시 김정일의 효심에서 비롯된 것인양 선전할 것이다.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아직도 김정일은 아버지의후광없이는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을.새 배지도 김일성의 후광을 염두에 둔 얄팍한 술수에서 비롯된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 “에어로빅 세계챔피언을 향해 신나게 뛰고 신명나게 흔들자”

    ◎“수능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 답답해져요/전공으로 진학하고 세계1인자 될거예요” ‘어서 가자,세계 챔피언이 눈앞에 보인다’ 월드컵 축구나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이야기가 아니다.에어로빅 세계 챔피언을 향해 뛰는 여고 3학년생들의 목표다. 5일 하오 10시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세학빌딩 4층 KAFA 에어로빅센터.밤늦은 시간에도 7명의 고3 여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율동미 넘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수학능력시험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있지만 이들은 에어로빅을 전공으로 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수능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갑자기 답답해져요” 이성희양(18·고척고)은 수험생으로서 입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듯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긴장감을 내비쳤다. 유지인양(18·신경여실)은 “그래도 이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수능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목표를 가질수 있고 대학에도 갈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자랑했다. 고3학년때 에어로빅을 시작해 지난해 대학에 진학한 오수현씨(20·수원여전 무용과 1년)는 “에어로빅의 전망이 밝다”면서 “주부들의 다이어트 차원을 넘어 경기 에어로빅으로 정착된지 오래”라고 말했다.에어로빅이 스포츠로 자리잡아 가면서 사회적인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올해부터 전국 에어로빅 챔피언대회에 고등학생부 경기가 신설됐다.내년에는 중학생부도 추가된다.대부분의 대학에서도 체육과나 사회체육과에서 에어로빅 전공의 신입생을 뽑는다. “당면목표는 물론 대학 진학이지요.하지만 우선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고 대학 문제도 잘 해결될 것 같아요” 이곳에서 강사를 하고 있는 기현성씨(21)는 지난해 세계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명지대 체육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해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박광수(24),백승옥(27·여) 강사도 학생들의 우상이다.이들은 95년부터 각각 남성·여성 싱글부문에서 세계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다. 에어로빅 센터 이정아 원장(31)은 “이들도 박찬호나 선동렬처럼 한분야에 매진해 세계를제패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 정치적으로 이용된 풍경화/마르틴 바른케 저 ‘정치적 풍경’

    ◎군주위세 나타내려 주문한 그림 등 분석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출전한 이브리 전투장면을 그리면서 마치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연출,고대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기병대의 전투는 전쟁사에 이른바 근대적인 쌍방의 전면적 ‘총기 기병전’으로 기록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그러나 루벤스는 전쟁을 지휘자들끼리의 영웅적인 결투양상인양 변형시켜 놓았다.권력을 쥔 주문자의 요구대로 실제 전쟁상황을 은폐하고 신화화한 것이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풍경화에서 이러한 ‘정치적으로 점거된’ 풍경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최근 도서출판 일빛에서 펴낸 ‘정치적 풍경’(마르틴 바른케 지음,노성두 옮김)은 풍경화의 겉 주제아래 얽혀있는 복합적인 의미의 매듭을 풀어낸 인문교양서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근들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적 풍경’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제3제국 곧 나치제국의 선전상이었던괴벨스가 하를란 감독의 영화 ‘콜베르크’를 보고 “이 영화는 정치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브라질 태생의 독일 미술사가인 바른케는 이 ‘정치적 풍경’이란 말 대신 ‘정치화한 풍경’이란 표현을 쓴다.풍경화에 대한 해석법은 자연히 미학적이기기 보다는 문화사·정치사적인 데로 기운다.조그만 경계석에서 거대한 기념비에 이르기까지,바른케는 풍경에 새겨진 조형에서 정치적 신호를 읽어낸다. 15세기 초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시력그림’에는 소박하지만 정치적인 신호가 분명하게 깃들여 있다.초기 풍경화 요람기의 작품인 이 그림은 영주가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주문해 그려진 것이다.첨탑 모양의 성체현시대처럼 서있는 ‘십자로의 실 잣는 아가씨’라는 이름의 도로표석은 군주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또 1435년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성채 풍경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도시는 천국,성채는 지옥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이그림은 성채가 지배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은유이자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징표로 읽힌다.바른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적인 의미때문에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한층 더 명료해질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 윤락 알선한 결혼상담소(사설)

    불법 결혼 상담소의 소개로 가정주부들과 여대생,심지어 여고생들까지 윤락행위를 한다는 보도는 너무 충격적이다.우리 사회의 성윤리가 이토록 타락해 있었다니 새삼 놀랍기만 하다.서울 방배경찰서와 인천지검에 적발된 가정주부,여대생,여고생만 250여명에 이르고 있지만 결혼상담소와 각종 이벤트사 간판을 내걸고 이같이 윤락알선을 하는 곳이 서울의 강남과 서초,강동지구에 수없이 많다고 하니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여겨진다. 윤락행위를 하는 이유도 가정주부들은 ‘심심풀이’로,학생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라고 전해지고 있다.이로 인해 파괴될 한 가정의 평화와 나아가 우리 사회의 도덕붕괴를 생각하면 너무 무책임한 이유다.이들을 찾는 남성들의 수는 상담소마다 700명이 넘는다고 한다.제 발로 찾아가 윤락행위를 알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여성들의 행태는 말할 것도 없고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장들이 바로 자신의 아내같기도 하고 딸같기도 한 여성들을 ‘노리개감’으로 찾는 것은 명백한 반윤리 범죄행위다.검찰과 경찰은 기왕에 칼을 빼들었으니 이같은 범죄행위를 조장하는 불법 결혼상담소와 이벤트 회사를 일제히 소탕하기 바란다.아울러 이 곳을 찾는 여성과 남성들의 명단도 공개해 이같은 짓을 계속하면 우리 사회에 발 붙이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마땅하다. 10대 청소년들의 정사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유통시킨 사건이 터졌을때 우리는 청소년들을 무척 걱정했다.절대 다수의 건전한 청소년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마치 모든 청소년들이 그런 것인양 나무랐다.또 그 와중에도 문제의 테이프를 찾는 어른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져할 말을 잊었다.이번에는 어른들이 직접 나쁜 표양을 보이고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당장 청소년 교육이 문제다.범국가적 도덕재무장운동을 펼쳐 올바른 윤리관·가치관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건강한 가정과 사회만이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 반DJ인사들 모임 결성/조연하씨 등 ‘한길연구회’ 출범

    연말 대선을 앞두고 ‘참된 지도자를 찾고 그릇된 지도자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모임이 발족됐다.조연하 전 국회부의장,박영록 전 평민당 부총재 등 6백여명은 7일 하오 서울 당주동 미도파광화문빌딩에서 ‘한길연구회’(대표 김충섭)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 갔다. 모임 발기인에는 손주항·박종태 전 평민당 부총재,전대열 민주당 교육연수원장,김재위·량성우·임춘원·김경인 전 의원,함윤식 전 김대중 총재비서 등 정치인들과 황석하 부산대 교수 등 30여명이 포함돼 있다.정치일선에서 한때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함께 일했던 인사들이 주류다. 특히 김총재와 일하다 반김총재의 성향으로 돌아선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주목된다.이들은 모임 취지문에서도 “비도덕적이며 불투명한 사상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이 민족을 대표하는 양심세력인양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김총재에 대한 검증이 활동의 주요 목표임을 시사했다.모임은 또 “민의를 반영해야할 일부 정당은 개인숭배의 사당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며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및 지방의회의원들의 공천을 볼모로 수억에서 수십억원이 오가는 공천장사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한길연구회 손창식 간사는 “연구회는 앞으로 올 대선에 출마할 여야후보들에 대한 검증활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 DJ 비자금­강 총장이 밝힌 내역

    ◎이형택씨 295억·제3인 375억 관리”/노 전 대통령에 받은 ‘+α’ 최소 6억여원/대선잔금 대우·쌍방울 통해 실명전환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7일 하오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일가 1천억원대 비자금 치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우서 돈받아 DJ에 ▷20억+α의 α◁ 김총재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20억원외에 적어도 6억3천만원을 추가로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노 전 대통령은 90년12월말 당시 경호실 경리과장인 이태진에게 지시,상업은행 효자동지점의 가명 민영애 명의로 돼 있는 자신의 비자금계좌에서 3억원을 인출,91년1월14일 대한투자신탁 청량리지점의 당시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에 입금시켰다.또다른 3억원은 노 전 대통령이 (주)대우로부터 수수했다가 DJ에게 제공한 것으로 91년5월말 대한투자신탁 영업부의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에 입금됐다.나머지 3천만원은 경호실 명의계좌에서 91년9월 초순 인출된 것으로,제일은행 남역삼지점에서 돈세탁후 김총재의 비자금관리인인 처조카 이형택씨(55)가 당시지점장으로 있던 동화은행 남역삼지점에 이의돈(이형택의 서울사대부고동창)등 6명의 차명계좌로 분산 입금됐다. ○이씨 349개 계좌 개설 ▷비자금 관리◁ 동화은행에 수백원대의 김총재 비자금이 유입돼 있다는 제보를 확인한 결과 이씨는 지난 7년간 김총재의 친인척 및 자신의 친지 명의로 개설한 가·차명계좌 349개를 통해 2백95억1천2백75만원의 비자금을 직접 관리해왔음이 밝혀졌다.그중 대표적인 것은 동화은행 여의도중앙지점의 43개 계좌를 통해 95년2월부터 96년4월까지 관리해온 65억1천3백만원,동화은행 서역삼지점의 80개 계좌를 통해 93년11월부터 95년2월까지 관리해온 68억5천5백80만원이다.이씨는 본인의 부친·처·여동생등과 고교동창이나 은행고객,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름까지 이용해 349개 계좌를 개설하고 돈세탁 등 비자금을 관리해왔다.이 계좌는 ‘20억+α’자금을 세탁하는데 이용했고 불법 실명전환에도 이용됐으며 친인척들이 마치 자기돈인양 사용한 계좌로 ‘DJ비자금’의 실체를 밝혀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김총재는 또 이씨외에또다른 사람을 통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김연경’같은 허무인 명의나 심지어는 당사자 모르게 여러 사람의 이름을 도용,3백75억원을 관리해왔다는 사실도 함께 제보됐다. ○CD 등 62억 불법전환 ▷불법 실명전환◁ 김총재는 92년 대선후 쓰고 남은 비자금중 극히 일부인 62억4천만원을 이씨를 통해 불법 실명전환했다.이씨는 먼저 쌍방울건설 유태화 사장에게 CD(양도성예금증서)의 불법실명전환을 부탁,유사장은 금융실명제 유예만기일이 지난 시점인 93년11월 경리과장 주재훈씨에게 지시,5억원의 CD를 주씨의 장인과 친지 등 다섯사람 명의로 시중은행에서 실명전환,현금화해줬다.이씨는 93년1월12일 김총재의 비자금 20억원어치의 무기명 CD를 매입한후 만기일인 93년4월14일에 이자포함 20억4천8백만원을 현금화했다.이 돈으로 같은날 이씨는 동화은행 종로5가지점에서 20억원의 6개월 만기 CD를 재차 매입했으나 실명제 유예만기일인 93년10월11일이 지나자 유사장에게 부탁,20억원의 CD중 5억원을 류사장 명의로 불법 실명전환했다.나머지 15억원의 CD는 명동 사채업자 구규영씨에게 부탁,불법 실명전환했는데 구씨는 기원에서 일하는 김용일씨(35)에게 부탁,93년10월11일과 13일 두차례에 걸쳐 CD 15억원을 동화은행 종로5가지점과 한일은행 동여의도지점에서 불법적으로 현금 인출,이씨에게 건네줬다.(주)쌍방울 상무이사 송동섭씨는 이씨의 부탁을 받고 93년11월2일 동화은행 종로5가지점에서 자신의 명의로 CD 1억8천만원을 실명전환한 다음 상업은행 압구정지점에서 현금으로 인출,이씨에게 돌려줬다.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비자금중 40억원이 대우그룹을 통해 불법전환된 사실이다.노 전 대통령이 한보그룹을 이용한 똑같은 수법을 김총재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주)대우는 실명제 발표 이틀뒤인 93년8월14일 김총재 비자금 계좌에서 나온 40억원을 대우 자금부대리 남상범씨 명의로 중앙투자금융에서 당좌수표로 교환,불법 실명전환해 같은날 제일은행 남산지점의 (주)대우 당좌계좌에 예치했다.40억원의 출처는 92년10월17일 이씨가 관리하는 동화은행 도곡동출장소의 가명 임한섭 명의 비자금 계좌에서 인출된 13억원중 3억원은 14대 대선 홍보회사(한길마케팅서비스)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됐고 나머지 10억원은 김총재측이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실명제 실시 이틀뒤인 93년8월14일에 이 돈과 또다른 자금 29억원 및 김총재의 행정특보인 김재완의 처 황순연 명의의 한국투자신탁 압구정지점에서 인출한 1억원을 합친 40억원을 남상범의 명의로 불법 실명전환한 것이다.
  • 룰 어긴 정치인 준엄한 심판을/어수영 이화여대 교수(시론)

    우리나라 사람들중 2∼3년전에 있었던 정당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정치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이 수도 없이 생성되었다가 없어지곤 한다. 전두환정권 7년동안 새로 결성되었거나 사라진 정당수는 무려 24개이고,노태우정부 5년동안은 22개이며,문민정부 4년반동안은 18개나 된다.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한 정당수는 무려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까? 이러한 현상의 근본원인은 우리나라 정당이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공당이라기보다 개인 보스중심의 (사당)이기 때문이다.특정 보스휘하에 모여있는 추종인물들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이합집산이 가능하다. 과거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모았던 정당들은 당권경쟁에 패하면 자기 휘하 추종자들을 데리고 딴살림을 차린 예가 우리 정당사에 수도 없이 많다.4·19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당권과 정권경쟁으로 민주당과 신민당으로 갈라섰으며,1965년 한일협상 무효화 투쟁과정에서 당권경쟁으로 야당인 민중당은 출범 9개월만에 또 분열되어 신한당을 낳게 되었다.전두환정권 말기 민주화투쟁세력은 또 다시 분열해 김대중의 평민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보스 중심의 사당만 난무 이러한 분파현상은 과거에는 야당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집권여당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집권여당인 민자당에서 김종필씨는 자기 추종세력을 이끌고 자민련이라는 딴 살림을 차렸으며,더욱 최근에는 이인제씨가 여당사상 최초의 자유경선에 불복하고 자기 추종자를 이끌고 또 딴살림을 차리려는 사태가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정당정치의 후진성이며,우리 정치인의 병폐이다.정당정치가 발달된 선진국 영국이나 미국에서 정당의 이름이 과거 수십년동안 바뀐 적이 없으며,하나의 정당아래 여러 정파가 자유경쟁을 하여 정권을 재창출하고 있다.당권경쟁에서 졌다고 딴 살림을 차린 예를 볼 수 없으며,대통령후보지명에 패했다고 뛰쳐나가 딴 살림을 차린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당권경쟁 후보경쟁에서 패배했으면 차기를 기약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너무 관대한 국민과 언론 정당정치가 발달한 사회에서 분당이나 탈당 이합집산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국민들이 무섭기 때문이다.후보경쟁에서 패배한 정치인이 딴 살림을 차리는 경우는 그 정치인은 정치를 할 생각을 그만 두어야 한다.국민들이 준엄하게 심판하여 정치에서 물러나게 하기 때문에 당의 규칙을 지키고,정치인들끼리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국민과 언론이 너무나 관대하다.제도와 관행,약속을 안지켜도 우리 국민이 표로 심판하지 않는다.정치는 항상 그래온 것인양 약속을 안지켜도,법을 어겨도,관행을 파괴해도 표로 심판하지 않는다.전파매체도 이런면에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당위적이고,정론적인 측면에서 이합집산을 다루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도한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더 부추겨서 흥미유발적인 기사로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표로써 보여줄 때 우리 정당의 이합집산이 이처럼 자유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사회가 보수편향적인 이데올로기로 정당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어느 정당이든 반공이데올로기,민주화,경제발전지상주의와 같은 비슷한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누구와 합쳐도 이념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크게 갈등과 모순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있는 곳,당권이 있는 곳을 향하여 헤어졌다,합쳤다 자유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이합집산,딴 살림차리는 현상,정치가끼리 한 약속을 파기하는 행동은 결국 국민이 표로 막을수 밖에 없으며,언론의 큰 역할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 중 최고 사립도서관 천일각의 영파(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9)

    ◎병부우시랑 범흥 400여년전 사재로 건립/인근 계구엔 장개석­경국부자 생가가… 중국 황해 연안으로 몇군데 돌출한 무역항이 있다.대련으로부터 위해·상해를 거쳐 절강성 동단의 영파가 그렇다.영파의 이름은 당나라때는 명주,송대에는 경원로,명나라때에야 영파로 개칭,지금에 이르렀다. 당대부터 중국의 주요한 무역항,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해상 교통이 열려서 장보고의 활동 범주에 들었다.송나라때는 시박사를 두어 무역을 촉진시키다가 아편전쟁의 발발과 함께 중국 5대무역항으로 뛰어 올랐다. ○3강이 합류하는 무역항 중국 해안선의 한복판에다 내륙으로부터 여요강·봉화강·용강 등 세 강이 합류하는 지리적 조건을 살려 조선량이 전국 최다에 도자기 수출량도 최고를 기록했다.그러한 경제 번영을 따라 소위 ‘절동학파’를 형성,학자들이 운집했다.그러한 현상의 집성이 바로 ‘천일각’의 출현이다. 그것은 중국 현존의 최초 민간 도서관으로 1561년,당시 병부우시랑이었던 범흠이 그의 집 동쪽에 커다란 원림을 겸한 장서의 누각을 지은 것이다.지금같으면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니지만 벌써 400여년전,한 개인이 사재를 털어 지방지와 과거록 등의 진귀한 자료를 수장키 위해 안전과 문화창달을 도모한 도서관을 건립했다는 점이다.범흠은 안전을 위해 관내에서 금연을 실시했고,서관 앞에는 소화용 연못을 크게 팠을뿐 아니라 내정에는 커다란 물 항아리를 군데군데 놓아 두었다.비록 여러 차례의 병란과 도란을 겪었지만 아직도 8만여권의 선본을 수장했을뿐 아니라 이 지역의 비석들을 모아 그 권내에 ‘명주비림’을 조성한 것도 빼놓을수 없다.물론 이 지방의 황종희·만사동·전조망·요섭 등의 문인들이 여기서 지식의 샘을 넓히고 문학의 피를 얻었던 것이니,천일각은 이 고장 문인들의 지식 ‘충전소’였다. 천일각은 영파의 복판에 자리한 월호의 서북단에 있다.도서관이라기보다 아늑한 비원이다.서문으로 들면 맨 먼저 창설자 범씨가 살았던 집.그 집 한쪽을 천일각 자료 전시실로 썼다.그 안으로 들면 천일각.6칸 2층 목조.남향에 앞뒤로 창이 촘촘하여 공기 유통을 도모했고,2층 서고의 천장에는 마름풀에 우물의 도안,그러니까 이수제화로 풀이되었다.방화를 위한 대책이 면밀했다. ○아직도 8만여권 장서 보관 물론 영파가 낳은 문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일찍이 송나라때 난해한 사로서 송4대가의 하나였던 ‘몽창사’의 주인 오문영을 비롯해 역시 송대 사론가인 왕응린,그리고 원나라때 청려파 산곡의 영수 장가구 등이 모두 여기 사람이다.이 밖에 비록 여기 사람은 아니지만 영파의 서쪽 사명산 일대를 방랑하여 스스로 ‘사명광객’이라 호칭했던 하지장(659∼744)의 사당이 마침 월호의 남단에 서 있었다.본시 남송때 1144년,이곳 지사로 있던 사람이 하지장의 시를 기리느라 사당을 세웠으니 벌써 850여년 전의 일이다. 중국문학사에서 그 지위는 비록 높지 않았지만 이백·두보 등과 교유가 깊었는데다 그의 초탈한 성격에 호탕한 풍류가 환심을 샀고,많지 않은 그의 작품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명작이 있다.우리나라 서당방에서 글줄이나 읽었던 사람이면 그의 ‘회향우서’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바로 ‘소소이가노대회하니 향음무개빈모쇠라.아동상견불상식하고,소문객종하처래요’(어려서 고향을 떠났다가 늙어서 돌아오니,고향 말씨는 예대로지만 벌써 귀밑머리 세었네.꼬마들은 흘깃흘깃 몰라보면서,“손님이 어디서 오셨냐?”고 묻더군)이다. ○‘고려영사관’ 유적지도 지금 영파시에 남아있는 문학유적은 고작 이것 뿐이다.현지 영파대학 중문과 교수인 대광중씨와 공동 탐사를 벌였음에도 말이다.때마침 필자에겐 비록 문학 밖이었지만 두가지 보상을 얻었다.하나는 월호 동편을 가로지른 진명로 571호에 있는 우리나라(당시 고려) 영사관의 유적이요,또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화민국(대만)의 총통이었던 장개석과 그의 아들이요 총통이었던 장경국 부자의 생가가 있는 계구가 서남쪽 35㎞ 밖에 있다는 것이다. 고려영사관에 대한 사적은 영파박물관에 적혀 있다.그것은 고려청자의 잔편과 몇잎 상평통보와 함께 해설되었다.바로 북송 정화 7년(1117),당시 휘종의 비준으로 고려영사관이 영파에 개설되었다는 조목이다. 무엇보다 필자를 뭉클게 하는 것은 880년 전의 주권을 확인하는긍지때문이었다.그때는 우리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문화교류가 한창일 때였다.송으로부터 아악을 들여왔고,송의 서긍이 ‘고려도경’ 40권을 완성하던 때였다.진명로의 고려사관은 일산 가옥을 방불케 높다란 지붕의 단층 민가.웬일인지 폐가인양 텅비어 있다.발을 곧추세워 실내를 굽어보았다.기둥은 낡았지만 허드레 종이상자만 여기저기 구르고 있다. 그리고 돌아서기 아쉬워 두리번거리고 있을때,그 집 잿빛 시멘트 벽에 ‘고려사관유지’란 팻말이 보였다. ○49칸짜리 중국·서양식 건물 계구로 가는 길은 대평원에 탄탄대로 였다.필자의 대만 유학 시절,까만 망토에 지팡이를 든 장총통의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들리는듯 했다.차가 반시간쯤 달렸을때,이윽고 굽이굽이 강줄기에 아담한 동산이 여기저기 서있다.여기가 계구,사진으로 익히 보아왔던 터라 얼른 이것이 섬계요,저것은 계남산이라 와닿는다.시내를 따라 잠시 걷자 작은 2층집.풍호방이다.이 집은 바로 장개석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옥태염포였다.그러니까 중국 100년 풍우속에 한때는 영웅으로,한때는 바다를 건넌 영도자로 세계사에 발자취를 남긴 장개석 부자의 생가인 것이다.대지 1850㎡에 49칸 중국 전통식에다 약간의 서양식을 배합한 건물.그보다는 그들이 고고의 소리를 질렀던 방은 겨우 3평짜리였다. 필자는 얼른 그 가대는 물론 풍호방의 뒤란 멀리까지 답사했다.멀리 서북으로 설독산과 명산이 병풍 치고,앞으로 섬계가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말하자면 승지란 생각이 스쳤다.
  • 대공문제 놓고 정쟁말라(사설)

    우리 정치권은 어떻게 된 셈인지 매사를 저질 비난전과 정쟁으로만 몰고간다.신한국당 이회창 대표 아들의 병역문제를 두고 수십일간 인신공격과 흠집내기에 혈안이더니 이번엔 신중해야할 대공문제를 놓고 이전투구가 치열하다.대선을 앞두고 한창 열기를 뿜어야 할 정책대결이 실종된데 대해서는 좀처럼 부끄러운 태도를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한심한 정치권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오익제씨 월북사건의 초점은 그 동기와 행적을 규명하는 데 있다.특히 그의 월북이 이른바 ‘황장엽리스트’에 대한 내사과정에서 생긴 도피사건이라면 대공수사의 허점을 보완하고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정치권이 그런 건설적인 역할은 외면한채 대선을 의식한 사건의 정략적 이용에만 몰입해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신한국당이 이번 사건을 국민회의에 대한 ‘색깔론’시비를 증폭시키는 빌미로 이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오씨가 국민회의에 관여했다고는 하나 핵심 당직자가 아니었던 이상 의혹을 지나치게 부풀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역대 선거때마다 거론된 김대중 총재의 전력을 새삼 문제삼는 전략도 신선하게 보이질 않는다.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답게 정국을 정도로 이끌어가야 한다. 국민회의가 오씨 월북이 마치 당국의 공작에 의한 밀파인양 주장한 성명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색깔론에서 탈피하는 일이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공당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서야 되겠는가.오씨월북과 ‘황리스트’에 대한 국민회의의 국정조사권 발동주장도 문제다.그건 대공용의자를 모두 청문회에 노출시켜서 도피를 조장하겠다는 말밖에 안된다. 정치권은 오씨사건이건 ‘황리스트’건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차분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정략적 이해때문에 대공수사가 왜곡되어서는 안된다.공안당국도 정치논리에 밀려 수사를 소홀히 하거나 대공혐의자 관리해 허점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 KAL기 사고처리과정서 드러난 한미 문화차이

    ◎슬픔 못이긴 유족몸부림 ‘난동’ 오해/현장조사 치중… 시신 오래방치 원성/신원 확인 유류품보다 지문·치아로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의 현장보존 및 사고수습을 맡은 미 해군측은 사고 4일째인 9일 희생자 유족을 15명씩 현장 100m까지 접근을 허용하면서 특별히 “절대 곡을 하지 말라”는 주문을 달았다.유족들의 감정이 격해져 곡을 하다가 자칫 집단시위로 번지지나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라는게 미해군측의 설명이다. 곡을 구슬프게,길게 할수록 망자에 대한 정성이 깃든 것으로 여기는 우리 문화와는 달리 미국인의 눈에는 유족들의 슬픔에 못이긴 몸부림이 한낱 ‘난동’쯤으로 비춰졌다는 얘기가 된다. 이날 미국언론은 유족접근 한계선에 조화를 놓고 슬픔에 잠긴채 묵념을 한 미국인과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한국 유족들의 모습을 ‘보기드문 정경’인양 대비해 보도했다. 이에 앞서 미 해군은 사고 당일인 하오 1시 “더이상 생존자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뒤 시신수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현장보존에 들어갔다.무덥고 습한 날씨에 시신이나마 온전한 상태로 수습하고자 했던 유족들은 미국측의 이같은 ‘비인도적인’ 처사에 격분해 들끓었다. 또 미국측이 유족들의 염원을 받아들여 현지에서 화장을 치를수 있도록 하자 일부 유족들은 화장한 유골을 항공기 추락현장에 뿌려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을 달래려고 했다.그러나 괌정부측은 ‘유골은 해안선 3마일 밖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을 들어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신확인 절차에서도 이같은 시각차는 마찬가지로 확인됐다.삼풍백화점 붕괴사고때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육안으로 희생자의 신원 구분이 어려우면 사고 당시 소지한 지갑 목걸이 시계 신분증 등으로 신원확인을 대신한다.반면 미국측은 희생자가 당시 지녔던 유류품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이라며 자신들이 직접 찍은 희생자의 사진과 지문·이빨 등으로만 신원을 인정했다.명찰을 부착한 승무원들만 예외로 했을 뿐이다. 정서가 우선인 우리 문화와,과학적인 검증절차를 우선시하는 미국문화가 이번 대한항공기 추락사고때처럼 분명하게 대비된 적은 근래에 보기 드물다.이 때문에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정부 및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만 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