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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산 두번 바뀐 귀환운동 강탈당했던 우리 피붙이 “어서오세요 대~한민국”

    강산 두번 바뀐 귀환운동 강탈당했던 우리 피붙이 “어서오세요 대~한민국”

    20년은 강산이 두번 바뀌는 햇수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운동은 1991년 10월에 규장각 도서를 일괄 소장 관리하고 있던 서울대학교가 우리 외교부에 반환 요청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곡절 속에 강산이 두번 바뀌면서 드디어 귀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반환을 처음 제기하여 줄곧 관계당국의 자문에 응해온 나로서는 두팔이 절로 벌려진다. 145년 전 늦가을 찬 날씨 속에 이국 군인들의 거친 손길로 낯선 증기선에 실려 수만리 바다를 건너 돌집 어두침침한 서고에 갇혀 지내다 조국의 열띤 구명운동으로 돌아오는 외규장각 의궤 도서. 조국은 그새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항공회사가 둘이나 생겨 서로 모시겠다고 다투었다고 한다. 그들이 내려진 곳은 강제로 실려 떠났던 강화도에서 지척지간인 영종도. 무슨 힘이 한 세기 반 만에 세계 제일의 허브 공항을 만들고 그 먼 곳에 잡혀 갔던 귀중 도서들이 돌아와 내리는 곳으로 만들었던가. 사람이 하는 일에도 신비라는 단어가 동원될 수 있는 것인가. 외규장각 의궤도서의 귀환을 환영하는 온 국민의 힘찬 외침, “대~한민국 차차차차~.”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 지휘관 로즈 제독이 강화도에서 철수하면서 본국 해군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 한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편지가 쓰여진 뒤 내가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124년이 걸렸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의 고(故) 최석우 신부가 1950년대 프랑스로 유학하여 병인양요 연구를 위해 모은 자료 속에 묻혀 들어와 연구소가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은 것이 1986년이었다. 12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반출 경위를 알게 된 것이다. 그 편지는 놀랍게도 ‘강화도의 한 건물에 책이 가득한 데 그중에 우리 국립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e)에 소장할 만한 300여 책은 배에 싣고 나머지는 모두 건물과 함께 불태우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찾아낸 박병선 박사도 이 방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국제법 전공의 백충현 서울대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는 “이것은 명백한 문화재 전시 약탈행위로서 책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반환 요청을 해놓고 봐야 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외규장각 도서 귀환에 걸린 20년은 결코 짧지 않지만 헛되지는 않았다. 이 반환운동으로 우리 국민들의 문화재, 특히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이제 규장각을 모르는 국민도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반환운동이 시작될 즈음, 서울대학교에 견학 온 초등학생 몇이 규장각이라고 쓰인 건물 안내판을 보고 이거 중국집 아니냐고 까르르 웃던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전화번호부를 펼쳐 보았더니 실제로 영등포에 규장각이란 중국집이 있었다. 이제는 TV 사극 드라마에도 규장각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규장각은 온 국민이 문화의 보고로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귀환 외규장각 도서는 외롭지 않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가운데 사람의 일도 많이 바뀌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1권을 돌려받은 뒤 우리 대통령은 네번, 프랑스 대통령은 세번 바뀌었다. 그분들 중 세분은 고인이 되었다. 나와 함께 반환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충현 교수도 4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 그는 외규장각 의궤도서처럼 한 나라의 왕실이 국가적 목적으로 생산한 책들은 소유권이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랑스 측은 자기네 국립도서관에 등록하여 국가재산이 되었으므로 돌려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등록 자체가 법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반환문제가 난항에 부닥쳤을 때 의논차 아침 일찍 걸려오던 백 교수의 전화 음성이 오늘 아침에 들린다. “이 선생, 우리 정말 큰 거 한건 했어요!” ■이태진 위원장은 1988년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맡은 뒤 외규장각 도서가 불법으로 반출된 사실을 알고 환수 운동을 벌여왔다. 한일합병 불성립론을 주장, 지난해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1977년부터 2009년 2월까지 모교인 서울대 국사학과 강단에 섰다. 현재 차관급인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다.
  • “외규장각 도서는 국보급…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

    “외규장각 도서는 국보급…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죠. 이것조차 20년 동안 각계의 노력이 있어서 겨우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지속적이고 더욱 끈질기게 반환 요구를 펼쳐야 합니다.” 지난 2월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난 이건무(64) 용인대 문화재대학원장은 오는 14일 한국에 들어오는 외규장각 도서를 ‘절반의 성공’으로 규정했다. 불과 두달 전까지 외규장각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그다. 미진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 앞으로 해야 할 과제 등이 더욱 크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11일 서울 상도동 한 찻집에서 만난 이 원장은 “독도 문제에서 흔히 쓰이는 개념인 ‘실효적 지배’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것이 명백하며, 병인양요 시기의 약탈품이라는 사실이 국제적으로도 분명한 만큼 우리가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문화재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학술 자료로만 접근한다면 우리가 국민적 열망 속에 이를 지켜 낼 수 있는 힘도 그만큼 약해집니다. 전문적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무궁무진한 가치를 알리고 전시도 늘려야 합니다.” 이 원장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둘러싼 ‘쟁점’ 10가지를 짚어 봤다. ① Q. 외규장각 도서 가치는. A. 국보급 요즘으로 치자면 정부 영상기록물이나 마찬가지다. 세밀한 그림이 있고, 그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담아 놓았다. 조선 왕조의 우수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 자료다. 예컨대 당시의 복식이나 왕릉 조성 과정·공법 등을 알 수 있다. 역사 속 어느 나라, 어떤 왕조에서도 볼 수 없는 소중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학문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그 자체가 이미 국보급 문화재이다. ② Q. 국보 지정은 가능한가. A. 어려울 듯 소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보로 지정하는 것은 내부적으로도 법적 논란이 일 수 있다. 프랑스와 외교적 논란도 예상된다. ③ Q. 그렇다면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A. 가능 개인적으로는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미 2007년 조선왕실의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지 않았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④ Q. 임대 조건은. A. 5년마다 갱신 우리 정부는 조건 없는 반환을 원했으나 아쉽게도 좌절됐다. 5년마다 임대 계약을 갱신하는 형식의 영구 임대다. 반환이 아닌 임대, 그것도 5년마다 프랑스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지라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중요한 문화재를 일단 확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각도로 반환 요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⑤ Q. 대여를 반환으로 바꿀 가능성은. A. 끈질긴 노력 필요 독도의 영토 분쟁을 시도하는 일본에 맞서는 것은 1회적인 이벤트나, 또 다른 독도 개발 같은 것이 아니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높이는 방법은 다른 나라 국민들, 세계 지성에 독도의 역사, 현재 등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외규장각 도서도 마찬가지다. 외규장각 도서가 어떻게 프랑스로 가게 됐는지,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문화재인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반환을 염원하는지 등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속적이고 아주 끈질기게…. ⑥ Q.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A. 좀 더 많은 국민이 볼 수 있게 이미 서울대 규장각 수장고에 조선왕실의궤가 많이 있다. 조선 왕실의 풍속, 행정, 건축, 미술 등 풍부한 학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는 더욱 많은 국민들이 직접 누리고, 감동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활용이다. 이번에 돌아오는 외규장각 도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7월부터 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특별전이 열리는데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전시해야 한다. ⑦ Q. 다른 문화재 ‘볼모론’ 진실은. A. 어불성설 2015년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규장각 대신 우리의 다른 문화재가 볼모로 잡힌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외규장각과 비슷한 가치의 다른 문화재와 바꾼다는 등가 교환설도 낭설이다. 2015~2016년 상징적으로 외규장각 도서 일부가 프랑스로 건너가 전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와전된 것 같다. ⑧ Q. 문화재 해외 유출 실태는. A. 주먹구구식 파악 약 12만점 정도가 해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솔직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실태 파악이다. 외국 박물관 수장고를 낱낱이 들여다보기 어려우니…. 유출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난관이었다. 약탈 문화재인지, 합법적 거래를 통해 나간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혔다. 예전에는 개인들이 선물로도 많이 줬으니까…. 변명하자면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⑨ Q. 앞으로 대응 전략은. A. 투 트랙으로 다음 달 문화재청에 해외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부서가 신설될 예정이다. 내가 있을 때 예산 등을 확보했다. 그동안 기존 국제교류과 1.5명 정도가 담당하던 일을 전담 부서가 생김으로 해서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진행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해외 문화재 환수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10 Q. 외국은 유출 문화재 어떻게 다루나. A. 佛·伊는 돌려받아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빼앗긴 문화재를 모두 돌려받았다. 당시 1870년 보·불 전쟁 때 프러시아가 약탈한 것까지 소급해 반환받았다. 이율배반적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이 보유한 문화재를 해당 박물관에 ‘장기 대여’ 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해 1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미국 각지의 박물관으로부터 총 96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다. 국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측면도 있지만 당장은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절실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온 국민이 힘 모아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온 국민이 힘 모아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너무 기쁘지요. 이런 일이 마침내 일어나는구나 싶어요. 다만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죠. 온 국민이 힘을 모아서요.” 프랑스 파리 근교 자택에 머물고 있는 박병선(83) 박사. 11일 국제전화로 만난 박 박사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지켜보는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 파묻혀 있던 외규장각 도서 존재를 처음 확인한 이가 바로 그다. 첫 확인 뒤 발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어휴, 그 과정을 어떻게 일일이 말로 다 설명해요. 발견한 뒤 10여년 동안 찾아가서 보고 또 보고 했지요. 외규장각 도서 한쪽한쪽마다 내 손때가 안 묻은 곳이 없어요. 볼 때마다 새롭고, 신통방통해서….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박 박사는 “(내 분신 같은) 그게 정말 한국에 간다니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며 감개무량해했다. 박 박사는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며 이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반환이 아니라 대여잖아요. 대여라면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는 건데…. 게다가 영구 대여도 아니고 5년 단위로 갱신하는 형태라서…. 5년이면 정권도 바뀌고 담당하는 사람들도 바뀌고 할 텐데, 서류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그때 가서 갱신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요? 되돌려 줘야 하나요? 물론 우리 정부는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하긴 하지만…. 그러니 온 국민이 힘을 모아서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해요.” 프랑스 현지 반응은 어떤가 물어 보았다. “공개적으로 말하긴 곤란하지만 여하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박 박사는 외규장각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괘씸죄’에 걸려 한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냉대받는 등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다. 박 박사는 1866년 병인양요에 대한 정리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1권은 냈고, 2권은 준비 중이에요. 당시 프랑스 자료들을 보면 함대장이 프랑스 장관에게 1일 보고 형식으로 쓴 편지글도 있고, 병사들이 남긴 기록도 있어요. 그런데 병사들 기록이 참 재밌어요. 프랑스는 조선을 야만인 취급했거든요. 막상 약탈하러 가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에도 수준 높은 책이 있더라, 조선은 문명국가 같다는 얘기가 나와요. 또 의사가 쓴 기록을 보면 프랑스에서 앓던 병사들이 강화도에 왔더니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더라, 강화도는 천국이다 이런 내용도 나와요. 아마도 당시 조선에 대해 다방면으로 기록해 둔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자료를 찾고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 중인데, 연구비를 지원해 준 문화재청을 비롯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꼭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지금도 도시락 싸들고 주불 한국대사관이 마련해 준 사무실로 출퇴근한다는 박 박사. 건강 문제가 제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머물면서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치료를 계속 중이다. 건강을 묻자 전화기 너머로 팔을 휘휘 내젓는 소리가 또렷히 들릴 정도다. “아유, 그렇게 수술받고도 더 살 수 있다는 건 인생을 덤으로 받은 거지요. 할 일이 있으니 조금 더 살아라 하신 게 아닐까요. 그래서 기쁘게 일하고 있어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천안함 인양작업 총지휘한 한국해양기술 이청관 전무

    천안함 인양작업 총지휘한 한국해양기술 이청관 전무

    천안함 폭침 사건의 수습 과정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함체 인양이었다. 실종된 장병들이 함체 어디선가 숨을 쉬고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기에 국민은 인양작업을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두동강 난 함체 중에서도 특히 함미에 관심이 집중됐다. 실종 장병 대부분이 함미에 있을 것으로 여겨진 데다,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도 함미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압박감으로 민간 인양팀은 시간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함미 인양 작업을 총지휘한 ㈜한국해양기술의 이청관(69) 전무는 “실종 장병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속이 타들어 갔다.”고 회고했다. 당시 인양에 소요되는 시일은 ‘한달 이상’이 통설이었는데 이 전무는 ‘7∼10일’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이 예상은 맞아떨어져 함미는 10일 만에 인양됐다. →함수가 더 빨리 인양될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함미가 먼저 인양됐는데. -함미가 함수보다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데다 조류도 더 빨라 함미가 먼저 인양될 것이라고 말한 전문가는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정신력이다. 함미 인양팀은 선박에 설치된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해 가면서 새로운 기술로 작업을 진행했다. 함수 인양팀이 19일 만에 인양한 것도 상당한 성과다. →실제 수중 작업 시간은 많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데, 함미 인양을 위해 바닷속에서 작업한 것은 10시간 11분에 불과하다. 선체 인양은 어렵게 보면 어렵지만 쉽게 보면 쉬울 수도 있는 작업이다. 날짜보다 시간이 중요하다. 충분한 작업 시간만 확보되면 이틀 만에 인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양팀이 일찍 투입됐더라도 생존자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 천안함 격실에도 물이 즉시 들어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군 당국이 왜 인양이 한달 이상 걸릴 것으로 판단했는지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물때(사리와 조금)가 작업 진척을 좌우할 것처럼 여겨졌는데.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조류가 빨라지는 사리 때에도 정조 시간을 이용하면 20∼30분 작업할 수 있다. 사리는 하루 4차례 오니까 최대한 활용하면 1시간 30분가량 작업할 수 있다. 실제로 함미에 마지막 체인을 연결한 것은 사리 기간이었다. 중요한 요인은 파도다. 파고가 2m 이상이면 작업을 할 수 없다. 높은 파도로 인해 인양팀이 4차례나 피항했고, 그때마다 작업이 1∼2일씩 전면 중단되지 않았는가. →체인 연결 작업 막바지에 군이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해 잠수부들이 반발하기도 했는데. -군이 인양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군은 기상상태를 들어 무리한 작업을 자제시킨 반면에 잠수부들은 내친 김에 일을 끝내려고 한 것이다. 군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다만 경직된 사고체제를 갖고 있기에 인양팀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法·檢 로비 심해 vs 국민 공감해야

    최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소위가 마련한 사법개혁안을 놓고 한나라당 지도부가 설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법조계 로비가 극심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은 16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사법개혁안이 나오니 법원·검찰에서 반발이 나오고 로비도 심하다.”면서 “검찰이 기본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로비할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실제 사법개혁안이 발표된 지난 11일 이후 법무부·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국회 의원회관 등을 찾아 의원들과 개별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최고위원은 또 “이 정부 들어 엉터리 수사가 많지 않았느냐.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시작할 때는 의기양양하게 하다가 흐지부지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면서 “모든 국민이 배후가 누구인지 아는 사건을 가지고 검찰만 모르는 사건도 한두건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검사 출신인 홍준표 최고위원은 “사법개혁은 국민적 공감을 갖고 해야 한다.”면서 “당 최고위원회나 의원총회에 보고도 하지 않고 몇 명이 모여 국회 의사인양 발표한 것은 옳지 않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홍 최고위원은 “판·검사만을 수사하는 특별수사청을 설치하면 수백, 수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텐데 1년에 한두건 있을까 말까 한 사건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데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면서 “전관예우 금지 조항도 다음달 변호사법만 개정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중진의원들도 입장차를 드러냈다. 판사 출신인 김영선 의원은 “사법개혁의 방향은 판·검사의 증거 채택과 사실 확인의 내부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에 있다.”고 밝혔다. 남경필 의원은 “사법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나, 국민의 뜻을 모으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제주 추락헬기 시신 1구 발견

    제주해양경찰서는 11일 오후 7시 10분쯤 제주 한림읍 서쪽 104㎞ 지점의 수심 76m 해저에서 인양한 AW139 헬기 동체에서 실종됐던 남해해경청 제주항공대 소속 양춘석(40·정비사) 경사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부여·청양, 부여보 명칭 줄다리기

    “청양부여보로 하자.” “아니다. 백제보로 해야 한다.” 충남 부여군과 청양군이 4대강살리기 금강사업지구 ‘부여보’ 이름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17일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따르면 자치단체를 상대로 보 명칭을 공모 중인 가운데 청양군이 최근 부여보를 ‘청양부여보’로 바꿔 줄 것을 요청했다. 청양군 관계자는 “부여보가 청양군 청남면 인양리~부여군 부여읍 자왕리에 걸쳐 있는 만큼 KTX 천안·아산역처럼 두 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이름이 더 합당하다.”고 명칭 변경 요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부여군은 ‘백제보’를 주장하고 있다. 부여군 관계자는 “부여와 청양이 옛 백제역사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긴 이름보다 간단히 부를 수 있는 ‘백제보’로 결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금강지구의 다른 보들도 명칭을 놓고 적잖은 논란을 빚고 있다. 세종시 건설예정지 인근 ‘금남보’도 마찬가지다. 연기군은 ‘금남보’나 ‘세종보’ 모두 좋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금남보는 주민들에게 잘 인식돼 있어서, 세종보는 세종시에 설치되기 때문에 아무 이름이나 상관없다.”면서도 “금남보로 결정이 된다고 해도 내년 7월 출범하는 세종시에서 명칭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주시는 금강보를 ‘공주보’로 변경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시 관계자는 “보가 있는 곳을 알기 쉽도록 지역명을 따는 게 좋다. 금강보는 너무 광범위한 명칭이어서 사람들이 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안정환 대전국토관리청 홍보팀장은 “보들이 오는 6월 완공되기 때문에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보 명칭을 확정해 국토해양부에 통보할 방침”이라면서 “보 명칭을 놓고 지자체 간 갈등이 커지면 충남도 지명위원회에 결론을 내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외규장각 도서를 강화도로”

    “외규장각 도서를 강화도로”

    강화 주민들이 오는 5월 프랑스에서 우리나라로 반환되는 ‘외규장각 도서’를 강화도에서 보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프랑스 해군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에서 도서를 약탈해간 만큼 반환되는 물품은 원래 보관되던 강화도에 유치하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다.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되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전시할 예정이다. 16일 강화군에 따르면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가 1782년 왕실 서적들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5월에 반환되는 도서는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실의궤 191종을 포함한 297권이다. 강화군은 외규장각 도서가 국내에 들어오면 지난해 10월 하점면에 문을 연 강화역사박물관에 보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주민들과 사회단체들도 이를 계기로 잃어버린 역사와 강화도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광덕 강화문화원장은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으면 원래 있던 곳에 되돌려 주는 것이 당연한 처사인데 서울에 전시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반환 도서의 일부라도 강화로 가져와 외규장각의 상징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덕수 강화군수는 조만간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 외규장각 도서 강화 보존을 공식 요청할 방침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이 아니라 한국 정부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들어오는 데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일정 등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규장각 도서를 가장 적절하게 보존할 수 있는 시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적당하다는 문화체육부의 의견에 따라 국립박물관 유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기록문화의 위기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기록문화의 위기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얼마 전 청주를 다녀왔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둘러봤다. 관람객들이 집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말투에 힘이 있는 노신사. 직지활자와 직지 제작과정 모형 그리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목판본, 금속활자본, 목활자본 등 전시물에 대해 정성껏 설명하고 있었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고인쇄물에 대해 설명하는 자원봉사자 일을 5년째 하고 있단다. 귀경길에 낭보를 접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도서 297권이 5월 반환된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가 약탈해 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의 친정’을 막 다녀온 여행에 기쁜 소식이 겹치면서 여러 감회가 교차됐다. 연구실에 돌아와 외규장각도서의 반환 협상 자료를 찾아봤다. 이 도서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은 1975년이다. 이 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씨가 파손도서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모리스 쿠랑이 ‘조선서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문화재는 국제법상 프랑스 소유를 인정받고 있다. 그 실존을 확인한 것만도 당시엔 대단한 성과였다. 우리 정부가 무려 17년이 지난 1992년 처음으로 약탈도서 반환을 요구했다. 이듬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테제베 매각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 이 문서의 반환을 약속했지만 곧 반환협상은 무산됐다. 프랑스가 등가등량교환을 조건으로 세운 탓이다. 약탈문화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똑같은 가치의 문화재를 자신에게 주고 고도서를 찾아가라고 ‘생떼’를 쓴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정부는 이에 합의했다. 국민여론이 폭발했다. 합의 자체가 없던 일이 됐다. 5년이 지난 뒤인 1998년 민간 차원의 형식으로 외규장각도서 반환협상이 재개됐다. 그 이후 민간은 물론 정부의 갖은 노력 끝에 영속 귀속을 의미하는 장기 대여의 쾌거를 얻어낸 것이다. 문화재 반환을 둘러싸고 ‘생떼’를 쓰던 18년 전과 지금의 프랑스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형식적 소유권을 끝까지 고집하는 프랑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우리 국민의 요구대로 무상반환을 한다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세계 3대박물관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인 루브르박물관은 텅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 노신사의 목소리가 이명 현상처럼 계속 달라붙는 느낌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문명국만이 할 수 있는 대역사다. 그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고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다. 기록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의 기록역사문화는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문화유산이 직지, 훈민정음, 팔만대장경, 동의보감 등 7개나 된다. 우리보다 역사가 깊은 중국도 5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청나라 왕조에 국한된 것이다. 일본은 하나도 없다.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세계 역사와 문화발전에 기여, 또는 세계사의 중요한 변화를 반영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등재가 불가능하다. 이같이 우리 기록문화를 인정받을 수 있음도 우리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가치를 설파하던 노신사의 열정, 그에게 열중하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아마도 이날, 아니 어느 날이든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다녀간 청소년과 어린이는 자발적으로 관람감상문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기록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록의 필요성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본 사람들만큼 기록을 소중하게 여길까.’라고 되물어 본다. 왠지 답답하다. 외규장각도서가 발견된 이후 반환 요구를 요청하는 국민의 소리를 17년 동안 외면했던 정부, 등가등량교환에 합의했던 과거 정부의 모습에서 현재 정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 대포폰, 하드디스크 파기, 아랍에미리트연합 파병 등에서 왜곡된 기록문화를 보게 된다. 현재 우리는 기록을 지키고 빼앗긴 기록물을 찾아오는 문제가 아니라 기록하는 자체의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록문화의 위기다.
  • 울산 앞바다 벌크선 침몰한 듯

    9일 오전 울산 앞바다에서 선박간의 충돌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 캄보디아 선적의 벌크선이 침몰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 10여명이 실종돼, 해경이 수색작업을 펴고 있지만 생존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울산해양경찰서는 이날 낮 12시 16분쯤 울산 울기등대 동쪽 19마일 해상에서 동해가스전 감시선박 코롤1호가 바다에 표류하고 있던 구명보트 2기를 발견해 해경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보트 중 한 대에서 러시아 선원 1명을 구조했고, 인근 해역에서 외국인 선원으로 추정되는 시체 2구를 인양했다. 해경측은 “구명보트를 실었던 선박은 캄보디아 선적 1500t급 알렉산드라호로 확인됐다.”면서 “당초 이 선박에는 10여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해경은 현재 포항항공대 소속 헬기 1대와 울산해경 소속 선박 7척을 동원해 나머지 실종 선원에 대한 수색작업을 펴고 있다.  해경은 배가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구명보트는 선박이 갑자기 침몰할 대 수압에 의해 자동으로 수면으로 튀어오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주변 해역이 잔잔했던 점을 감안하면, 선박간의 충돌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수사중이다.  해경은 레이더를 역추적해 이 배의 출항지와 입항지,사고지점,충돌 선박 등을 확인하고 있다.   서울신문 인터넷뉴스 event@seoul.co.kr
  • 천안함 훼손기록물 복원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로 훼손됐던 장병 복무카드, 편지, 국기와 천안함기 등 해군이 수거한 기록물 92점이 복원됐다. 이 기록물들은 해군이 천안함에서 수거한 약 2.5t 분량의 기록물 중 일부로 천안함 잔해 인양 당시 바닷물과 펄, 천안함에서 유출된 기름 등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31일 이를 복원해 해군에 넘겼다. 해군은 이 기록물들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에 건립 중인 ‘안보 전시관’에 전시,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물 가운데 복무카드 27장은 모두 순직한 장병들 것으로, 개인 사진과 출생지, 입대 및 임관일시, 근무경력, 입대 전 경력 및 가족사항 등 개인 신상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희생장병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귀중한 역사기록물이라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편지는 2009년 9월 당시 해군 2함대 사령관이었던 김동식 소장이 천안함 승조원 고(故) 최정환 상사의 가족에게 보낸 것으로 “조국해양 수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2함대 장병들은 가족의 곁에서 떠나 바다에서, 섬에서 맡은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군 가족 여러분 또한 불철주야 경계근무에 임하는 2함대 장병들의 안녕을 기도하며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등의 격려와 위로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경옥 국가기록원장은 “복원된 기록물들이 천안함 사태의 역사적 교훈과 희생장병의 숭고한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는 상징적 역사기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브라질 ‘물바다’… 361명 사망

    브라질 남동부 지역에서 연일 폭우가 쏟아지면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브라질 재난당국은 13일(현지시간) 리우 데 자네이루주 인근에 내린 집중호우로 홍수와 산사태가 이어지면서 34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앞서 이번주 초 상파울루 주에서도 폭우로 13명이 숨져 이번 폭우에 따른 사망자는 361명으로 늘었다. 12일 이른 새벽 리우 북부 세라나 지역에 24시간 동안 한 달 강수량에 맞먹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비탈과 강기슭이 무너져 주택들이 파괴되고 자고 있던 사람들이 숨지는 등 피해가 컸다. 또 리우 주 내 빈민촌에서 주요 도로가 침수되면서 교통이 통제되고 있는 가운데 노바 프리부르고 지역에서는 구조작업에 나선 소방대원 가운데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현재 피해 지역별로 구조작업과 함께 시신 인양이 이뤄지고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파울루 시에서는 연일 계속된 폭우로 도로 100여곳이 침수되는 바람에 일부 도시 기능이 부분적으로 마비됐다. 폭우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자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12일 피해가 심한 도시에 7억 8000만 헤알(약 4억 6500만 달러)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브라질 기상당국은 폭우 피해지역에서 뎅기열이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일본 ‘소녀시대 성접대’ 만화에 네티즌 격분

    일본 ‘소녀시대 성접대’ 만화에 네티즌 격분

    국내 걸그룹의 일본 진출 성공과 더불어 일본 내에 소녀시대와 카라를 폄하하는 만화가 등장해 국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팬들의 공분을 산 만화 ‘케이팝 붐 날조설 추적’은 소녀시대나 카라를 연상시키는 소녀그룹이 발가벗고 춤을 추는 장면 등 음란하고 악의적인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만화의 내용은 전직 한국아이돌 출신 호스티스가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한국 가요계의 실상을 전달한다는 설정으로, 검증되지 않은 왜곡과 거짓을 마치 사실인양 묘사한다. 만화는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소녀시대와 카라 멤버들 모두가 성상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한국 연예계에서 노예계약과 성상납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2009년 성상납 사건으로 자살한 故 장자연의 이야기까지 거론됐으며 성접대, 자살, 비리와 로비 등의 단어를 반복하며 부정적인 측면을 심어 놓고 있다. 또 만화 속에서 한국 정부는 소녀시대와 카라를 위해 국책으로 한 해 20조에 달하는 예산을 투자하고 일본 엔터테인먼트사와 협력해 한류를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 내용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지만 만화 후반부에는 “위의 이야기들은 (기자의) 취재를 토대로 각색됐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 자칫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네티즌들은 “이쯤되면 막나가자는 거구만”, “남의 귀한 아이돌 모셔놓고 저딴 말이나 지껄이다니 미쳤나보다”, “혐한도 혐한 나름이지 막나가는 구만” 등 분노를 드러냈다. 사진 = ‘케이팝 붐 날조설 추적’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경비행기 추락 2명 사망

    9일 오전 10시쯤 충남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 경비행장 인근에서 이륙 중이던 2인용 경량 비행기가 인근 금강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 조종사 김모(52)씨와 동승자 강모(54)씨가 물에 빠져 숨졌다. 강씨는 사고 직후 구조됐으나 병원에서 숨졌고, 김씨는 실종된 지 5시간 만에 119구조대가 금강에서 숨진 채 발견해 인양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옥성리 경비행장에서 이륙 중이던 경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금강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장애인AG 양궁 안태성 감독…중학생때 50 m 한국신 ‘신동’

    장애인AG 양궁 안태성 감독…중학생때 50 m 한국신 ‘신동’

    1977년 6월 각 신문에는 ‘촛불 연습 궁도 안태성 50m 한국신’이란 제목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체육면을 장식했다. 한밤에 촛불을 켜놓고 훈련한 중학생 안태성이 남자 개인 싱글 50m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는 것. 궁도(양궁) 1년 반 만에 저지른 이른바 ‘사건’이었다. “5개월 동안 매일 6시간씩 맹훈련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과녁 옆에 촛불을 밝혀 집중력을 키웠다. 모스크바올림픽 출전이 꿈”이라는 인터뷰 내용도 소개했다. 3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중국 광저우에 와 있다. 아오티 양궁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까까머리 중학생이 아니라 연륜이 묻어나는 중년이 됐다. 선수가 아니라 지도자다. 그런데 가르치는 이들은 장애인 선수들. 그 자신도 장애인이다. 장애인아시안게임 양궁대표팀 안태성 감독. 30년 남짓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신기록을 세운 이듬해 안태성은 운동 도중 오른쪽 다리를 다쳐 못쓰게 됐다. 불구가 된 이후에도 활시위를 당겼다. 이를 악물었다. 비장애인들과 악착같이 경쟁했다. 그러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1987년 육사 화랑양궁장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작심했죠. 장애인양궁으로 갈아타기로요.” 이후 20년 넘게 장애인 세계선수권, 장애인올림픽에서 수많은 메달을 쓸어담은 그는 지도자로서 장애·비장애 가릴 것 없이 모든 양궁 선수들의 형이자 오빠였다. 지난해까지 20년 넘게 장애인 선수를, 최근까지 비장애인 국가대표 코치를 ‘겸업’하며 그는 보란 듯이 장애의 벽을 뛰어넘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서향순, 1988년 서울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윤영숙을 동생처럼 가르쳤다. 1993년 터키 안탈리아세계선수권 2관왕 김효정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성공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그 자신도 지난해까지 선수로서 시위를 당겼다.올해는 그의 장애인 대표팀 감독 첫해다. 비장애인 선수로 출발, ‘중도 장애’의 쓰디쓴 경험까지 겪으면서도 끝까지 활을 놓지 않은 안 감독은 “장애인의 앞을 가로막는 건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도전에 필요한 건 사지 멀쩡한 몸뚱이가 아니라 용기”라면서 “비장애인들과 같이 장애인들에게도 도전과 용기는 삶의 동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저우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경남도 문화재로 가지정

    경남도는 8일 창원시 마산중앙부두 일원에 있는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를 경남도 문화재(기념물)로 가지정했다고 밝혔다. 문화재로 가지정되면 지정문화재와 똑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경남도는 지방자치단체가 현대사 역사 현장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김 열사 시신 인양지는 1960년 3·15의거에서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사 현장이다. 지역민들이 ‘민주성지’로 자부하는 이곳에 역사 현장 답사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도는 역사 현장의 훼손을 막고 효율적인 보존 관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문화재 가지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한강서 시신 인양 소방관 2명 순직

    한강서 시신 인양 소방관 2명 순직

    서울 한강에서 시체 인양작업을 하던 소방관 2명이 타고있던 구조용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3일 오전 9시 15분쯤 서울 잠실대교 남단 아래 한강에서 광진소방서 수난구조대의 1.98t급 구조용 보트가 뒤집혀 구조대원 장복수(42) 소방장과 권용각(39) 소방교가 숨졌다. 권 소방교는 뒤집힌 채 떠있던 보트 안에 갇혀 있다가 오전 10시 10분쯤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장 소방장은 사고 발생 두 시간여 만인 오전 11시 28분쯤 잠실대교에서 하류의 사고지점 인근 강바닥에서 발견됐다. 장 소방장과 권 소방교의 시신은 서울 화양동 건국대병원에 안치됐다. 사고 보트에는 광진소방서 소속 구조대원 6명이 타고 있었다. 생존한 구조대원 중 한 명은 보트가 뒤집히기 직전 암초에 걸린 선체 상태를 점검하러 빠져나왔고, 나머지 3명은 전복 직후 탈출했다. 항해사 출신의 권 소방교는 선실에서 끝까지 보트의 키를 잡고있다 변을 당했다. 동료대원들은 “권씨가 끝까지 배를 살려 동료대원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은 오전 8시 45분쯤 잠실대교 인근 한강에 시체가 떠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인양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사고 당시 한강경찰대 소속 순찰정 4척과 수난구조대 소속 구조용 보트 5척이 출동한 상태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보트가 암초에 걸려 후진하던 중 거센 물살과 강한 바람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 전복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청천벽력 같은 참변에 유족들과 동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장 소방장은 아내와 초등학생 두 딸을 남겨두고 떠났다. 장 소방장의 아내 최창숙씨는 오후 3시 35분쯤 빈소가 차려진 건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최씨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 애들 어떡하지. 아빠도 못 봤는데….”라며 울음을 멈추지 않아 보는 이들을 안쓰럽게 했다. 각각 1995년과 1998년부터 수난구조대원으로 일한 장 소방장과 권 소방교는 선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베테랑 구조대원이었으며, 가정에서는 모범 가장이었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동료 홍기현(44)씨는 “장 소방장은 평소에 딸 자랑을 엄청했다. 나랑 같이 애들 얘기를 하다가 소방서에 학부모 모임 하나 만들자고 말할 정도로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면서 “평소 술도 잘 안 마시고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는데….”라며 오열했다. 다른 동료는 “권 소방교와 광진소방서 화재진압반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항상 웃으며 일에는 적극적이었다. 어려운 일을 가리지 않고 불평불만 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출동하는 모범을 보였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한편 이들이 인양하려던 변사체는 자살한 40~50대 남성인 것으로 추정되며, 경찰은 변사체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 중이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9시 40분) 파리의 남서쪽, 가론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보르도. 프랑스 제 1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유적들이 역사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어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고성들 사이로 흐르는 와인의 향취를 따라 보르도의 매력에 빠져본다.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오후 10시 25분) 도로의 끝, 계곡 안쪽에 위치했다 하여 ‘안창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곳은 한국 전쟁 당시 화마를 피해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하나 둘 만들어진 곳이다. 60년 세월만큼 굽이진 골목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동네 안창마을에서의 3일을 함께 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1912년 12월 6일. 이집트 나일강변 아마르나에 있는 사막도시에서 독일 고고학팀이 이집트 정부의 허가 하에 유적을 발굴 중이었는데 한 고고학자가 너무도 아름다운 한 조각상을 발굴하게 되고 조각상은 곧 논란의 중심이 됐다. 시를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도 만나본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오후 11시 10분) 지난 7월 29일 낮 충북 영동의 한 낚시터에서 심하게 부패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익사체를 인양한 119 소방대원과 경찰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발견된 신분증. 그는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반 소속의 이OO 형사. 자살인가 타살인가. 끝나지 않은 의문들을 알아본다. ●꿈꾸는 U(OBS 토요일 오후 5시 55분) 저마다 독특한 색깔의 입담을 선보이는 출연자들과 연출자의 100% 리얼 영상수다의 장, ‘꿈꾸는 U’. 제1회 OBS 꿈꾸는 U 영상 페스티벌 심사위원을 맡은 최종일 대표(‘뽀롱뽀롱 뽀로로’ 제작)의 극찬을 받은 애니메이션 우수상 ‘연환’과 여우주연상 수상작 ‘척추측만’이 방송된다. ●최후의 툰드라 4부 샤먼의 땅(SBS 일요일 오후 11시 10분) 영구동토의 땅, 툰드라. 수 만년동안 그 땅에 터를 잡고 살아왔지만, 자연은 늘 인간에게 혹독하고 매서웠다. 극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강력한 리더가 필요했다. 바로 샤먼이었다. 드넓은 대지 위에서 잃어버린 순록을 찾아주고, 병 든 사람을 고쳐주던 샤먼.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그들의 삶을 공개한다. ●영상앨범 산(KBS1 일요일 오전 7시 20분) 제주도는 한라산(1950m)과 380여 개의 오름(기생화산), 180여개의 동굴을 품에 안은 땅이다. 1970년 한라산이 국립공원에 지정된 이후 개방 되지 않았던 비경 사라오름(1324m)과 또 하나의 명소 용눈이 오름(약247m)을 건축가 김원철씨와 제주 두모악을 운영하는 박훈일 사진작가가 오른다.
  • 여의사 가장 뭇여성들 가슴 대놓고 더듬다…

    여의사 가장 뭇여성들 가슴 대놓고 더듬다…

    미국의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의사를 사칭해 여성들의 가슴을 만져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아이다호 경찰에게 체포된 크리스티나 로스(37)는 2004년 여성을 지속적으로 폭행해 2년간 남자교도소에 수감됐고, 당시 교도소 문건에는 “여자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전환수술을 받았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여성이자 성형외과 의사라고 속여 무면허 의료행위를 벌여왔다. 자신을 ‘벌린 오시아쇼나 박사’로 거짓 소개한 그녀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시기에 터득한 지식들을 이용해 여성들을 속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혀 안면이 없는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까지 건네며 ‘진짜’인양 행세한 덕에 수많은 여성들이 사기를 당했다.한 여성은 그녀에게 속아 가슴을 더듬는 것을 허락했고 일부 여성들은 알몸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로스의 사기행각은 ‘진짜’ 오시아쇼나 박사가 사칭혐의로 고소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오시아쇼나 박사 측은 진료한 적이 없는 여성들로부터 자주 전화가 걸려와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조사에 나섰다가 트랜스젠더 무면허 의사의 정체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법정에서는 그녀에게 10만 달러의 벌금형을 내렸으며, 재판이 모두 끝난 뒤 유죄로 확정될 경우 10년 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APEC] “문화재 환수 체계적 대응 필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중인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 등 대표적인 해외 반출 문화재가 지난 12일 한·프랑스 정상회담, 14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국내 반환이 최종 확정됐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은 144년 만에, 조선총독부가 1922년 조선왕실도서관인 규장각에 있던 책들을 기증이란 이름으로 일본 궁내청에 넘긴 조선왕실의궤는 88년 만의 귀환이다. ●‘대여’·‘인도’ 형식 수용 한계 외세에 휘둘리고, 나라마저 잃었던 시절 속절없이 빼앗겨야 했던 귀중한 문화재를 뒤늦게나마 되찾아온다는 사실은 감회가 깊다. 문화재청 이경훈 국제교류과장은 “최대 현안으로 논의되던 외규장각 도서와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시민 단체와 정부기관이 힘을 합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대부분 왕이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로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 30책이나 되고, 일본 궁내청 도서도 국내에 없는 것들이 많아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학술적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과 절차 등에서 아쉬움도 적지 않다. 명백한 강탈 문화재임에도 우리 정부가 ‘반환’의 형식을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하고 상대국의 ‘대여’와 ‘인도’ 형식을 수용한 점은 뼈아픈 한계로 지적된다.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1993년 방한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반환을 약속했음에도 단 한 권의 책만 돌려받은 채 17년을 성과없이 흘려보냈다. ●문화재청 “내년 4월 전담부서 발족” 이번 문화재 반환은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문화재 환수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문화재청이 파악한 해외 유출 문화재는 총 11만 여건에 달한다. 지금까지 해외 문화재 환수가 민간단체의 활약에 의존하는 측면이 컸다면 이제는 정부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재청은 내년 4월 문화재 환수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발족해 문화재 반환 요구의 선제조건인 출처조사와 국가별 환수전략, 민간과 정부간 공조 등 전문적인 대처에 나설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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