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쇄 시작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1만포인트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상임대표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강원지역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 홈페이지
    2026-06-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41
  • 儒林(30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계단을 올라 주차장의 공터에 이르자 숨이 가빠졌다. 자판기에서 인스턴트 커피라도 한 잔 뽑아들고 벤치에 앉아 숨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동전이 없었다. 지갑을 뒤져 무심코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려다 말고 나는 문득 1000원짜리 겉면에 그려져 있는 낯익은 인물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1000원짜리 화폐 오른쪽에는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른 노인의 영정이 새겨져 있었다.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1000원 위쪽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 있었다. ‘퇴계 이황(1501-1570)’ 가장 흔한 지폐 중의 하나인 1000원짜리 돈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함부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화폐 위에 새겨진 이퇴계의 초상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자 나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나는 화폐를 뒤집어보았다. 역시 붉은 물감으로 채색된 화폐의 뒤쪽은 정갈한 한옥집의 군락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명기되어 있었다. ‘도산서원’ 이퇴계가 나이 60세에 비로소 완성하였던 도산서원. 이퇴계는 죽을 때까지 10여년간 이 도산서원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심코 자판기 속에 1000원짜리 지폐를 밀어넣으려다 잠시 멈칫거렸다. 이처럼 퇴계의 초상과 서원의 모습이 새겨진 지폐를 항상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퇴계를 직시한 적이 있었던가.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 한 알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의 지갑 속에 들어 있는 가장 흔한 화폐에서 과연 이퇴계의 진면(眞面)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퇴계의 초상이 새겨진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구 속에 밀어넣었다. 자판기는 순식간에 화폐를 집어삼켰다. 자판기의 붉은 불이 반짝이며 켜졌다. 밀크 커피의 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고 컵 하나가 떨어지더니 커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종이컵을 빼들고 거스름돈을 반환하는 키를 비틀었다. 그러자 짤그랑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동전이 굴러떨어졌다. 숫자가 맞나 확인해 본 후 주머니 속에 동전을 흘려 보내고 나는 천천히 빈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마시는 일에 나는 너무 바쁘구나. 나는 맵고, 쓰고, 달콤하고 강렬한 통속적인 커피를 마시면서 혼자서 씁쓸하게 웃었다.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나는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구나. 이퇴계가 누구인가를 직시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고,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구나. 이퇴계의 초상보다 돈에 집착하는 나야말로 기계로구나. 동전을 집어넣으면 한 잔의 커피가 흘러나오는 로봇이로구나. 자판기로구나. 로보캅이로구나. 영혼이 없는 깡통이로구나. 밀짚의 심장을 가진 허수아비로구나. ―이퇴계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혼잣말로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어떤 생애를 보냈으며 그의 사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음인가. 조광조에서 출발하여 공자를 거쳐 마침내 이퇴계에 이른 유림의 계주는 이렇게 해서 또다시 스타트라인에 서게 되었다.
  • 이동통신사 ‘2차 광고대전’

    이동통신사들의 인쇄 광고 경쟁이 뜨겁다. 올해 초 번호이동성제가 이통 3사에 전면 시행되면서 벌어진 1차 광고전에 이은 두 번째 접전이다. 유선전화 회사인 KT가 판매하는 휴대전화인 원폰 ‘듀’광고까지 더해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2월 이통 3사중 전체 순증가입자 중 59%를 차지한 KTF는 꽃미남 모델을 총동원해 추가 영역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모델인 안성기와 강동원에 더해 장동건과 권상우까지 가세했다. KTF의 길안내 서비스인 ‘K-ways’광고에는 강동원이 운전대를 잡고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쉿!이젠 길 묻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또 자사 가입자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영화 투자펀드인 ‘시네마파티’광고에는 권상우가 나온다. 휴대전화 모양의 골든 트로피를 들고 ‘KTF와 함께 영화투자가가 되세요’라는 카피와 함께 고객을 유혹하듯 손짓하는 사진이 실려 있다. 장동건은 KTF의 ‘비즈니스맨 이월요금제’를 광고한다. 세련된 정장을 입고 통화를 하는 모습 위로 ‘한달 60시간 맘껏 통화, 남으면 다음 달에!’라며 제품의 장점을 강조한다. 이밖에 이들이 총출동한 휴대전화 이용 에티켓 캠페인 ‘모티켓’편, 쓰나미 피해복구 모바일 성금 모금 캠페인 ‘희망보다 높은 파도는 없다’편, 우뚝선 독도를 배경으로 ‘독도에서도 터지는 KTF’편 등 의미심장한 기업 이미지 지면 광고도 많다. KTF의 모회사 KT는 최근 원폰 ‘듀’ 인쇄 광고를 집행중이다. 원폰이란 KT 집전화와 KTF 휴대전화를 동시에 사용하는 가입자에 대해 휴대전화기로 집 안에서 사용하는 부분은 집전화 요금을, 집 밖에서 사용하는 부분은 휴대전화 요금을 적용해주는 서비스. 단순히 KTF폰 재판매에 그치지 않고 자사의 서비스도 들어있는 휴대전화 ‘듀’가 나온 만큼 광고도 내놓은 것.KTF가 유치한 순증가입자(2월 기준)중 80%는 KT가 모집해온 것이다. 반쪽은 잠옷, 반쪽은 와이셔츠를 입은 상반신을 배경으로 휴대전화가 보인다. 하단엔 삼성과 LG에서 출시된 ‘듀’ 전용 휴대전화도 소개했다. 하반신이 배경인 컷도 있다. SK텔레콤은 ‘이제 SK텔레콤을 쓸 때’를 모토로 1등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명품으로 보이는 각종 장신구들과 함께 메이드 인 코리아라 표기된 SK텔레콤 서비스가 되는 휴대전화가 모델의 손에 쥐어진 사진을 통해 SK텔레콤이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특히 각기 다른 이웃돕기 활동을 담은 사진들 밑에 나눔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는 분의 사연을 추천해달라며 사회공헌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기업 광고도 진행중이다. 한편 LG텔레콤은 MP3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모델을 배경으로 ‘그냥 가지세요. 원하는 MP3 모두다’라고 쓰인 광고가 있다.LG텔레콤은 자사 음악사이트인 뮤직온을 통해 오는 6월까지 공짜로 음악을 다운로드 받도록 하는 서비스를 진행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미리 들여다 본 서울대 기록관

    미리 들여다 본 서울대 기록관

    서울대 기록관이 전시시설을 갖추고 올해 말 정식으로 문을 연다. 기록관은 지난 10년 동안 서울대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모아왔다. 서울대의 역사는 이 대학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기록관의 출범은 의미있다.‘기록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서울대 기록관으로 들어가 본다. “금번에 동 대학 사학과에서 화물자동차를 이용하여 여주 신륵사에 지방고적답사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1957년, 사학과 이병도 교수는 답사를 앞두고 동숭동에 있던 문리대의 관할서인 동대문경찰서에 허가를 요청했다.‘서울대문리대학교’의 요청에 ‘허가’를 뜻하는 동대문경찰서장의 직인이 찍힌 이 답사 허가서는 2003년 3월 정양모(71) 전 국립박물관장이 서울대 기록관에 기증했다. 기록관장인 송기호 국사학과 교수는 “당시 유적답사를 트럭을 타고 다녀왔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데다, 연구활동의 일환인 학생들의 단체이동마저 경찰의 통제 속에 이루어졌던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며 웃었다. ●40평 서고 속의 시간여행 초대 기록관장을 역임한 김기석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훌륭했던 기록의 전통을 잃어버렸다.”면서 “불행한 기록이라도 남겨두면 훗날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좋은 기록도 체계적으로 보관하지 않으면 5년 안에 잊혀진다.”고 기록관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같은 안팎의 인식 속에 서울대 기록관이 설립된 것이 2001년이다. 송 교수는 “기록관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요즘은 구성원들이 자료를 기록관으로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자료 수집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4년 남짓한 시간 동안의 변화를 설명했다. 기록관 소장품은 학교 당국에서 보관하고 있던 자료도 있지만 기증받은 것이 많다. 지난달 28일 정년퇴임한 김명렬(65) 명예교수는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학생 등록카드 7점 등을 기탁했다. 누렇게 변색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카드의 뒷면은 성적표다. 한 학기 동안 수강한 과목 이름과 학점이 펜글씨로 정성스레 씌어 있다. 과목 이름이든 학점이든 모두 인쇄되어 나오는 요즘의 성적표와는 다르게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함께 기증한 학생증에는 서기가 아닌 단기로 표시되어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진균 사회학과 교수의 자료는 5t 트럭 한 대 분량이다. 강의노트와 계획서, 민주화교수협의회 활동 자료부터 연하장과 메모 쪽지까지 그득하다. ●역사 되살리는 문서의 힘 학생과 창고에 잠자고 있던 기록들도 기록관으로 넘어왔다. 인적사항 등이 적시된 기록이 많아 공개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목록만 살펴보아도 과거 ‘학생 사찰’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목록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흔하던 ‘상황’이라는 파일 이름이 1990년대 초에는 사라진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상황’이라는 이름의 보고서에는 학생회를 비롯해 학회와 학생 조직에 대한 동태보고 등이 담겨 있다.”고 귀띔했다. ‘학생 동향보고서’도 있다. 총학생회와 학회 동향이 열거된 1964년 자료의 말미에는 “3·24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주동한 김중태 등의 복교문제를 학교 당국과 절충 중이며 학생운동이 전개되면 제2과에서 자문역할을….”이라는 전망이 곁들여져 있다. 앞서 학생회가 만들고 학생과에서 수집한 유인물에는 ‘激(격)’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한·일굴욕회담에 반대하며 단식을 한다.’는 선언 다음에 열거된 단식참여자 명단에는 김지하 시인의 이름도 보인다. 학생과에서 근무하던 임선웅씨는 1997년 9월에 80년대 학생운동 자료 600여건을 기증했다.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단과대 건물 옥상에서 뿌린 전단과 화장실 곳곳에 붙였던 격문도 포함돼 있다. 김명진 기록관 전문위원은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됐던 기록이 한 사람의 관심 덕에 살아 남았다.”면서 “임씨의 기증품은 ‘임선웅 컬렉션’이라는 주제로 전시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문서로 남은 학생운동 학생회와 대학신문사가 갖고 있던 자료도 넘어왔다. 학생운동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김기석 교수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자료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기록관이 기록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자 기탁했다.”고 밝혔다. 김 전문위원은 “1960년대에는 판에 철심으로 글을 쓰고 등사를 했지만,1980년대부터 타자기 글씨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유인물의 변천사’를 설명했다. 1960년대 중반, 학생회 기록에는 요즘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등록금 투쟁 관련문서도 남아 있다.“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이며 특히 후진(後進) 한국의 근대화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라는 구호로 시작된 건의서는 수혜자 부담원칙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기록은 발전의 동력 김기석 교수는 “기록관은 역사기록소가 아니라 학교 발전의 동력이 되는 엔진”이라면서 “예를 들어 황우석 교수의 논문은 도서관에서 보관하면 되지만, 그가 논문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어디에서 찾겠느냐.”고 반문한다. 서울대는 앞으로 행정·학생·교수자료를 기록관에서 일원화하여 관리하는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연구·봉사에 헌신한 교수들의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연구와 시행착오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또 정운찬 총장도 임기가 끝나면 재임기간의 일정표를 비롯한 모든 기록을 기록관에 기증하는 등 기록 보존을 서울대의 새로운 전통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서울대 기록관은 서울대 기록관은 행정·교수·학생 기록을 포함하여 대학과 관련된 모든 기록물을 생산·수집·발굴하는 일을 한다.2001년 설립 이후 행정기록물 3000건, 학교 역사 관련 자료 4020건, 학생운동 기록 4330건 등 모두 1만 건이 넘는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대는 개교 50주년을 맞은 1996년 ‘서울대 50년사’를 편찬하며 체계적인 자료수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10년에 한 차례씩 학교의 역사를 책으로 만들었지만, 관련자료는 출간 이후 폐기되거나 소실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50년사를 만들며 남아 있는 기록이 워낙 부실해 미국 공문서보관소(NARA)와 미네소타대학의 자료를 참고해야 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초대 기록관장 김기석 교육학과 교수는 “60년사·70년사를 편찬할 때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기록관에 앞서 1997년 대학사료실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산하에 만들어진 대학사료실은 1998년 기획실의 대학기록관실,2001년 대학기록관으로 바뀌었다. 소속과 이름이 바뀌면서 자료수집에 치중하던 업무 영역도 보존 영역까지 확대됐다.2003년에는 전문위원 2명을 채용하고 항온·항습 시설이 갖추어진 보존 서고도 마련할 수 있었다. 2002년부터는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대학창설 및 국대안 기록, 미군정청 기록, 학생운동 기록 등은 작업이 마무리됐다. 이 자료들은 서울대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서울대는 2006년 개교 60주년을 앞두고 올해 안에 전시실을 개관한다는 계획이다. 전시실은 추모실, 업적실, 역사실로 이루어진 상설 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꾸며지게 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서울대 기록관 소장품 현황 ▲행정기록 약 3000건 -회의 및 행사, 교수요원채용, 수업편성, 농촌봉사, 학생단체, 대학문화 육성 등 ▲대학 역사 자료 4020건 -대학 창설 관련 기록 587건 -미군정청 기록 2543건 -50주년 기념행사 수집자료 654건 -교수기증 기록 975건 -인문대 기증기록 975건 -학생처장 기증기록 756건 ▲학생운동 기록 4330건 538철 -학생과 기록 538철 -박물관에서 넘겨받은 기록 882건 -학생자치도서관에서 넘겨받은 기록 2512건 -교수 기증기록 254건 -학생과 직원 기증기록 682건 ▲계 1만 1330건 538철
  • We랑 코코펀이랑 할인쿠폰 [클릭]

    We랑 코코펀이랑 할인쿠폰 [클릭]

    ‘반갑다. 친구들아!’ 아직 날씨가 쌀쌀해도 봄은 봄인가 봅니다. 새학기를 맞은 캠퍼스에는 벌써 청춘의 봄내음으로 가득합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지 않아도 젊음이 봄을 재촉합니다. 봄을 맞은 캠퍼스에는 방학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보는 설렘과 새내기 후배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봄내음과 함께 시작한 새학기. 개강 준비도 해야겠지만 그래도 방학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요. 그래서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와 쿠폰 전문업체인 코코펀(www.cocofun.co.kr)이 대학생들을 위해 저렴하고 멋진 대학가 회식 장소 할인 쿠폰을 준비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잔.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 밤새워 우정과 사랑을 나누세요. 그렇다고 과음은 금물. 신문에 게재된 쿠폰은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에서 인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문의는 코코펀(080-567-4232)
  • [박기철의 플레이볼] ‘기록경기’ 야구의 기원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는 상세한 기록이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유럽의 인기 스포츠와 구별된다. 미식축구나 농구는 물론이고 아이스하키도 자세한 기록이 항상 보도된다. 특히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인 야구는 기록경기라고 불릴 정도로 방대하고 자세한 기록이 따라다닌다. 야구 기록의 역사는 야구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됐다. 그러나 야구를 최초로 만든 사람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이런 이설이 생긴 이유는 야구의 기원이 영국의 크리켓이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미국의 한 스포츠 재벌 때문이다. 당시 야구계에서 공과 글러브 장사로 떼돈을 벌었던 앨버트 스폴딩은 야구를 누가 만들었는지를 조사하는 특별위원회를 만든다. 상원의원이 두 명이나 포함된 이 밀스위원회는 강력한 후원자인 스폴딩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보고서를 제출했다.‘야구는 1839년 애브너 더블데이 장군이 뉴욕주 북부에 있는 고향 쿠퍼스타운에서 처음 고안해 경기를 했다.’ 메이저리그는 1939년을 야구 탄생 100주년으로 삼아 야구 탄생 성지인 쿠퍼스타운에 명예의 전당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브루스 카트라이트라는 하와이의 시골뜨기가 할아버지의 유품을 증거로 더블데이가 만들었다는 것은 순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또 더블데이가 야구를 만들었다는 1839년은 그가 육군사관학교 2학년이었고 방학도 없었는데 귀신이 가서 야구를 만들었다는 말이냐는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내셔널리그 전 회장인 조사위원회 위원장 밀스는 나머지 위원들에게는 상의 한마디 없이 혼자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가 증거로 제시한 것은 더블데이의 어릴 때 친구라는 애브너 노인의 증언뿐이었다. 다른 증거자료는 위원회 건물의 화재 때 모두 불타버렸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더블데이 장군의 고향에 만들어진 야구 명예의 전당에 정작 더블데이는 헌액되지 못하는 코미디가 연출됐다. 야구의 창시자를 찾는 일은 조작극으로 끝났지만 현대 야구와 가장 근접한 규칙을 만들고 경기를 한 사람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였다. 정사각형의 내야, 주자를 맞혀서 아웃을 시키는 게 아니라 공을 잡고 주자를 태그하거나 베이스를 밟아서 아웃시키는 규정, 한 이닝을 3아웃으로 만든 것 등이다. 뉴욕에서 잘나가는 문구점을 하던 그는 변호사, 은행가 등의 친구들과 니커보커 클럽이란 야구팀을 만들고 경기를 했다. 뉴욕시에서 증기선으로 허드슨 강을 건너야 하는 뉴저지주의 호보켄에 있는 엘리지안 필드가 주경기장이었다.1845년부터는 기록 용지를 인쇄해 경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 때부터 자세한 기록을 가진 야구지만 한국에 들어온 초기의 경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행히 도입 100주년을 맞아 야구박물관과 명예의 전당 설립이 추진돼 과거의 기록을 찾는 일이 시작된다. 하나하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우리 야구 역사도 풍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이경민 지음

    ‘기생’이 언제부터인가 문화적 ‘양념’을 넘어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는가 하면, 번듯한 전시를 빌려 생생한 사진과 평소 쓰던 잡동사니까지 내보이며 내밀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보는 사진과 문학, 영화속 기생들은 과연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을까?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글 이경민, 사진 중앙대DCRC, 사진아카이브연구소 펴냄)는 이런 의문을 배경으로 사진속 기생들의 실체를 찾고, 이를 통해 일제에 의해 강제된 ‘근대의 실험’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은 기생의 표상일 뿐 기생 그 자체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기생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창출된 개념이라고 정의하고,‘기생만들기’에 참여한 여러 담론들을 추적한다. 그 담론들은 다름 아닌 성담론, 위생담론, 민속(풍속)학, 인종학, 우생학, 오리엔탈리즘이며, 결국 식민주의라는 거대담론으로 결합된다. 식민주의 담론의 주체는 물론 일제다. 책에 의하면 일제는 조선을 강제병합한 후 철저한 식민주의 준거틀 속에서 정치·경제·문화·예술 등에 대한 다양한 조사사업을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의 이미지가 탄생한다. 예외없이 일제가 의도한 이미지로 창출되는 것이다. 사진엽서나 신문, 잡지, 사진첩, 포스터 등에 ‘박제’된 기생들은 기품 있는 예기(藝妓)나 새로운 근대여성의 모습이 아닌 반강제적으로 연출된 억압적 포즈속에서 잠재적인 매춘의 조짐을 보여줄 뿐이다. 책은 다양한 인쇄 도구속에 수록된 기생사진들을 생산 맥락에 따라 정리하면서 기생의 이미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핀다. 또 기생이 근대적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근대적 매춘제도와 연계돼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되었는지 고찰한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관공서 거래 ‘척척’ ‘e 좋은 세상’

    관공서 거래 ‘척척’ ‘e 좋은 세상’

    40대 출판업자 이모씨는 월초에 송파구의 홍보물 인쇄를 맡았다. 입찰부터 계약, 대가청구 등 모든 절차를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해결했다. 이씨는 구청을 찾는 발품을 던 것은 물론, 관공서를 직접 오가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송파구가 2월부터 도입한 인터넷 전자계약제도 덕분이다. ●인력·물류비 절감… 비리소지 근절 인터넷 전자계약제도는 각종 계약업무를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G2B)을 이용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G2B는 ‘Goverment to Business’의 약자이다. 관공서가 인터넷을 통해 민간 업자와 거래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관공서와 민간 업자와의 거래는 업자가 입찰 및 계약 등을 위해 일일이 관공서를 방문해야 했다. 그러나 인력 및 물류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되고 업무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었다. 정작 문제는 공무원과 사업자가 얼굴을 맞대고 계약을 하다 보니 비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투명성 확보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마포·송파구 전자계약한도 확대 추진 마포구와 송파구에서 도입한 인터넷 전자계약제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다. 입찰부터 공사와 용역, 물품구매 계약, 대금 청구까지 인터넷으로 처리한다. 이를이용할 경우 행정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 시민의 만족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마포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 2003년 시범 운영하다가 지난해부터 공사 1000만원 이하, 용역·물품 등 500만원 이하의 계약까지 확대했다. 지난해 217건에 4억 8000여만원의 계약이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마포구는 전면 확대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송파구는 이번 달부터 인쇄물에 한정해 운영하기 시작했다.12일 현재까지 4건 800여만원의 계약이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으로 이뤄졌다. 올해 하반기에는 추정가격 500만원 이하 공사와 300만원 이하 용역·물품의 수의계약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규모가 큰 공사 부문을 포함해 내년부터는 모든 계약으로 확대 실시된다. 이렇게 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100억여원 규모에 1500여건의 계약이 인터넷으로 이뤄지게 된다. ●보안성 확보가 관건 서울시도 공사와 건축 설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입찰은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각종 납품 계약도 인터넷으로 하고 있다.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보안 문제다. 거액이 들어가는 공사 계약의 경우 온라인으로만 처리했다가 사기라도 당한다면 뒷감당을 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해킹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한 뒤 대상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인터넷 보안 등을 보강한다면 전자정부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한국 불교의 정수 알릴것”

    27년째 사경 외길을 걷고 있는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44) 회장이 2월 4일부터 11일까지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전통사경 초대전을 갖는다. 사경(寫經)이란 마음을 집중해 정갈한 종이에 부처의 경전을 한 자 한 자 베껴 쓰는 것을 일컫는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시작된 유서깊은 불교 수행법이다. 전통사경은 장정 형태에 따라 권자본, 절첩본, 선장본 등으로 나뉘며 자색지와 감지, 순지 등에 먹물과 금니, 은니, 경면주사, 명반, 녹교, 호본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한다. 김씨가 뉴욕 초대전에서 선보일 작품은 전통사경 10점, 불교미술을 사경과 연계시킨 보살도, 비천상, 만다라, 불족도, 상원사종 비천상, 보현인탑,10바라밀 등 응용사경 30점이다. 이미 20여 차례의 전시로 사경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온 그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및 직지심체요절 등 우리의 찬란한 인쇄문화를 촉발시킨 사경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400살 된 돈키호테

    |파리 함혜리특파원|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제1 권이 발간된 지 16일로 400년이 됐다. 스페인을 비롯해 유럽과 남미 등 각국에서는 전시회와 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 서구 현대문학의 분수령이 된 명작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다. 스페인은 국가 차원의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문화부 및 소설 무대인 카스티야 라 만차 지방정부가 함께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했다. 올 한해 이어지는 각종 이벤트만도 2000여 개. 작품 및 작가와 관련된 그림 전시회, 토론회, 콘서트, 연극 공연, 시청각 전시 등이 국내외 관광객을 맞이하게 된다. 스페인 문화부는 자국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호기를 맞아 자체 행사에만 모두 3000만유로를 쏟아 부을 계획이다. 다양한 독자층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1유로짜리 포켓판부터 고급 양장본, 어린이 독자를 겨냥한 그림책도 선보인다. 스페인 바깥에서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와 멕시코시티, 파리, 브뤼셀, 알제리 등에서 작품과 작가를 다룬 토론회, 전시회, 음악회와 영화 상영이 이어진다. 주인공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하고 도전하는 풍차에 관한 여러 학술대회도 예정돼 있다.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1547∼1616년)가 쓴 ‘돈키호테’는 1604년 12월20일 마드리드 출판업자에 의해 ‘라 만차의 재기 발랄한 기사 돈키호테’란 이름으로 첫 인쇄됐다. 이 소설은 4주 뒤인 1605년 1월16일 마드리드의 프란시스코 데 로블레스 도서관에서 판매에 들어가 1200부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어 유럽 대륙과 미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해 스코틀랜드 고지의 게일어와 티베트어에 이르기까지 4세기 동안 60개 이상 언어로 번역돼 나왔다.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소설, 유럽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평가받는 작품이 돈키호테다. 이 소설이 시간을 초월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관한 영원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무모하지만 용기있게 나아가는 돈키호테형은 우유부단한 햄릿형과 함께 인간 성향을 대별하기도 한다. 카르멘 칼보 스페인 문화장관은 ‘돈키호테’ 발간 4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이어지겠지만 이 책에 보내는 가장 중요한 찬사는 돈키호테를 ‘읽는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일독을 권했다. lotus@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유명작가 TV드라마 평정

    ‘박경리 효과’? 유명 소설가 원작 드라마들이 방송계와 출판계 양쪽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작가 박경리(79)의 원작 작품들은 ‘박경리 효과’로까지 불리며 세를 주도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방송계,“그래도 유명작가들” SBS에서 방영중인 주말드라마 ‘토지’는 작가 박경리의 동명 대하소설을 드라마화했다. 벌써 3번째지만 평균 시청률 25% 내외로 동시간대 수위를 기록하며 최근 대작들의 연달은 침체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SBS에 ‘단비’가 돼주고 있다. 이는 같은 방영시간대 경쟁 프로가 타방송사 9시 메인뉴스와 KBS2 인기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빛나는 성과. 만화같은 상황설정과 영상, 이미지에 전념하는 트렌디 드라마들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탄탄한 구성과 내러티브, 인물 창조 등 ‘기본’에 충실한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간 덕. 지난해부터 공을 들여 준비해 수려한 영상과 속도감 있는 초반부 전개도 한몫했다. KBS에는 작가 박경리와 더불어 한국 방송사들이 가장 즐겨찾는 작가인 최인호가 있다. 사극으로서는 이례적인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KBS2 ‘해신’이 바로 그것. 대규모 세트 촬영과 탤런트 최수종 등의 열연 등 호조건에 힘입은 바 크지만, 역시 최인호 작가의 탄탄한 원작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작가 최인호는 지난 1987년 MBC에서 방송된 한국 최초의 미니시리즈인 ‘불새’ 원작자이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미 드라마·영화화됐다. 지난해 방송한 히트작 ‘상도’(MBC) 역시 최 작가 작품이다.KBS는 이외에도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 등을 원작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도 인기리에 방송하고 있다. 한편 MBC도 최근 작가 박경리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아침드라마 ‘김약국의 딸들’을 지난 10일부터 긴급 편성했다.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원작으로 한 동명 전작이 생각외로 부진했던 탓. MBC 정인 책임프로듀서 등 제작진은 “박경리 원작은 기본적으로 높은 신뢰도가 있다.”면서 “완성도가 높은 명품 드라마를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부터 시작한 ‘김약국의‘는 아침드라마의 전형적인 소재인 불륜 소재에서 벗어나 총 150회 예정으로 1960년대 경상남도 통영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집안의 네딸의 삶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출판계,“우리도 덕 좀 보자.” 한편 오랜 장기 불황에 시달리던 출판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일단 드라마가 ‘뜨면’ 원작이 된 책 판매량도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 실제로 전21권에 달하는 ‘토지’ 판매량도 SBS 드라마 ‘토지’ 방영이 시작한 한달새 급증했다.‘토지’를 펴낸 나남출판사 방순영 편집장은 “SBS 관련드라마가 지난해 11월27일 첫 방영한 1개월 동안에 (책 ‘토지’가)무려 10만부 판매됐다.”면서 “올해 들어서도 주문량이 급증해 10만부 추가인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국내 문학작품 가운데 1만부 이상 판매량을 기록하는 책이 거의 없다는 현황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적이다. 더구나 드라마 ‘토지’ 방영은 앞으로도 반년 정도 계속되는지라, 출판사의 기대는 더욱 크다. 나남출판사는 최근 MBC에서 드라마화된 같은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도 예의 주시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 등 다른 드라마 원작들도 마찬가지. 더구나 최근에는 한류 덕에 ‘겨울연가’ 원작소설이 일본에서 120만부가 팔리는 등 해외수출에도 좋은 영향을 줘 출판계는 요즘 한창 ‘방송 덕 보기’에 열중이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나눔세상] 길거리 내몰린 ‘쪽방 혜선이’…세밑을 울렸다

    [나눔세상] 길거리 내몰린 ‘쪽방 혜선이’…세밑을 울렸다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내몰린 용산 재개발지역 쪽방촌 남매의 사연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는 곧 남매가 자라나면서 세상을 원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으로 바뀌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진 30일 남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남매는 이날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19 재개발 철거촌에서 살던 쪽방이 29일 법원의 명도집행으로 모두 헐린 세호(10)와 혜선(8·여)이 남매는 지난밤을 할머니 김옥순(66)씨가 몸져누운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외과병원 306호에서 보냈다. 좁은 보조침대에 모로 누웠지만 남매는 억울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꼭 껴안고 울기만 했다. 겨울방학을 맞은 남매는 또래 친구들이 스키장이다, 놀이공원이다 놀 궁리에 골몰할 때 당장 오늘 몸 누일 곳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보도가 나간 뒤 생전 처음보는 어른들이 하나둘씩 병원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중구 을지로4가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최철진(33)씨는 “서울신문에서 본 혜선이의 모습이 네살짜리 딸아이와 비슷해 안타까운 마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최씨는 병상에 누워 있는 김씨에게 남매가 입을 내복과 함께 성금 10만원을 손에 꼭 쥐어줬다. 회사원 진철승(37)씨도 병원을 찾아 쌀 20㎏과 성금 10만원을 전달했다. 인터넷에서도 도움을 주자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인터넷 서울신문에는 이날 오후 10시 현재 100여개의 대글이 달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같은 시간 2500여개의 대글이 몰려들었다. 청와대 게시판과 쪽방촌 관할 용산구청에도 글이 올라 강제집행을 비난하고 남매를 도울 길을 찾자고 입을 모았다. 평소 은행 갈 일이 없어 통장도 하나 없었던 김 할머니는 이날 네티즌의 아우성에 급하게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 오후 10시 현재 김 할머니의 계좌에는 600여명의 시민이 모두 1740만 368원의 성금을 보내왔다. ID ‘희망천사’는 “저도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라 그냥 넘길 수 없어 겨우 한 끼 밥값 정도밖에 보탤 수 없는 형편이지만 도움을 전했다.”고 말했다.‘훌쩍’은 “연말에 술 한잔 안 하는 셈치고 송금했다.”면서 “아이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이제까지 베푼 것 하나없이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이런 도움의 손길을 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매도 이날 오후만큼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편 쪽방촌 주민 3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용산구청 앞에 천막을 치고 “갈 곳 없는 주민들을 위한 가수용시설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오후 4시30분쯤 경찰과 구청 직원 100여명이 들이닥쳐 천막을 모두 철거했다. 세호와 혜선이 남매의 후원계좌는 우리은행 1002-280-510211(예금주 김옥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결혼이야기]함우영(31·IK스틸 대리) 정혜준(29·돌마초등학교 교사)

    [결혼이야기]함우영(31·IK스틸 대리) 정혜준(29·돌마초등학교 교사)

    1999년 겨울.2월이 다 끝나가도록 추위는 마지막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와 제 친구들은 졸업사진 한번 예쁘게 찍어보자는 욕심에 추위도 잊은 채 교정을 누비고 다녔죠. 하루종일 사진을 찍고 추위에 지친 우리들은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친구와 친분이 있던 그가 우연히 합석을 하게 되었고 그 날이 바로 우리 인연의 시작이 됐죠.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려서였을까요. 우리는 한 시간이 멀다하고 전화통화를 했고 단 하루도 얼굴 안보는 날이 없는, 너무도 죽이 잘 맞는 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항상 함께 였고 무엇을 해도 찰싹 달라 붙어 있었습니다. 그와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점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이라 미래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었지만 우리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난 지 2년째 되는 어느 날. 서로에게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게 된 그즈음 그는 도서관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갑자기 귓속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같이 살자!” 이것이 첫 번째 기습청혼이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저는 “뭐 이런 고백이 다 있느냐.”고,“꽃은 어디 있고 이벤트는 언제 하는 거냐.”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론 이미 결혼을 한다면 이 남자뿐이라는 사실을 굳게 다짐하고 있었죠. 하고 싶은 말을 어찌할 바 모를 정도로 부끄럽게 속삭이면서 다소곳이 저를 쳐다 보는 이 귀여운 남자를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었겠어요. 제 투정이 신경쓰였는지 그는 어느 날 빨간 장미꽃을 들고 나타나 정식으로 청혼을 했지만 제게는 그래도 그 싱거웠던 먼저의 폭탄선언이 더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2004년 12월 28일 이후 우리가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일을 갖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의 사랑은 굳건했고, 그 결실을 보았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도 합니다.6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많은 장애물과 싸우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켜 왔습니다. 때론 우리 자신이 우리의 장애물이 되기도 했었죠. 많이 싸우고 많이 화해하고 많이 사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무뚝뚝한 제가 오빠에게 항상 인색했던 말, 결혼하면 더 이상 인색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그 말을 이 자리에 ‘인쇄’하면서 말이죠.“오빠, 사랑해∼.”
  • 아름다운 멜로디는 희망의 메시지로

    아름다운 멜로디는 희망의 메시지로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행당1동 성동문화회관 3층 대강당에서 ‘성동구립 여성합창단 정기공연’이 열렸다. 시민기자로서 자연스럽게 취재 욕심이 발동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을 즐기려 노력했다. 올들어 4번째 경험하는 공연이지만 ‘취재’라는 일로써 접하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공연시작전 간단하게 인쇄된 안내 팸플릿은 공연 모습을 한눈에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준비한 사람들의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무대 뒤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찬 객석은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가득찼다. 막이 올려지고 깔끔한 음악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여성합창단원들의 목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에델바이스, 가고파, 겨울아이 등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는 관객들을 ‘주민’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전거 탄풍경’,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등으로 잘 알려진 남성 3인조 그룹과 성악과 지휘를 전공한 서울시 각 자치구의 지휘자로 구성된 6인조 남성 중창단, 무지개 악단 등도 특별출연해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주민들이 대부분인 관객들은 2시간여 동안 아름다운 목소리와 황홀한 연주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해동안 준비해온 합창단원들의 진지함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운 멜로디는 관객들의 가슴가슴마다 희망의 메시지로 아로새겨지는 듯했다. 더욱이 이날 공연은 자칫 들뜨기 쉬운 연말을 맞아 가족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김이숙 시민기자 cleverkis@hanmail.net
  • [월드이슈-위기의 신문시장] 위기 세계 신문시장…생존 몸부림

    [월드이슈-위기의 신문시장] 위기 세계 신문시장…생존 몸부림

    신문시장의 최대 위기 봉착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터넷 신문과 무가지 등 새로운 경쟁매체의 대거 등장과 독자 감소, 경기 침체에 따른 광고수입 축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는 일. 각 국의 신문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신문들은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서두르는가 하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도, 자부심도 팽개친 채 대변혁을 서두르고 있다.‘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란 슬로건 아래 읽기 쉬운 타블로이드 판으로 바꾸거나 시각적인 신문으로 편집체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저마다 자구책 마련에 여념이 없는 신문시장의 현실을 짚어본다. |파리 함혜리특파원|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 대부분의 종합일간지들은 위기를 호소한다. 신문업계가 취약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독자층의 감소 ▲새로운 매체의 부상 ▲광고수입 감소를 꼽는다. ●일간지 위기는 세계 공통의 현상 관련 분석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2차대전 이후 규칙적으로 신문을 읽는 습관이 꾸준하게 줄어왔다. 20세를 기준으로 볼 때 1960∼70년대에는 40%가 규칙적으로 신문을 읽었지만 80년대 들어 30%로 줄었고 오늘날의 인터넷 세대는 20%만이 신문을 규칙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무가지와 인터넷 매체의 등장이다.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무가지가 출퇴근길 지하철과 거리에서 유료신문을 밀어내고 있으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24시간 뉴스채널, 인터넷 뉴스서비스가 기존 신문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광고수입도 줄어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광고수입의 감소도 어려운 문제다. 프랑스의 경우 2003년 인쇄매체의 광고수입은 2000년에 비해 38%나 줄었다. 프랑스에서 최고 발행부수(34만부)를 자랑하는 유력지 르몽드는 2003년 그룹 손실액이 2500만유로에 달했다. 급기야 르몽드 경영진은 지난 9월20일 특별이사회에서 경비절감을 위해 기자 35명 포함,90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었다. 르몽드의 주간 문화전문 섹션 ‘아덴’도 오는 12월22일부터 발행이 중단된다. 프랑스의 유일한 석간신문인 르몽드는 배달비용 절감을 위해 조간 전환을 검토 중이다. 1950년대 하루 100만부 이상 팔리던 대중 일간지 ‘프랑스 수아르’는 하루 판매량이 7만부 이하로 떨어지면서 이집트 출신 부호 레몽 라카르에 매각됐다. 그나마 현상유지를 해 온 르피가로는 최근 항공산업 재벌 세르주 다소가 매입했다. 대표적 좌파신문인 리베라시옹은 재정난 타개를 위해 기업가 에두아르 드 로칠드와 경영권 인수협상에 들어갔다. ●독자의 변화에 맞춘 변신 시도 독자들은 예전에 비해 수적으로 현격히 감소하기도 했지만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 또한 크게 바뀌었다. 이같은 독자들의 기호변화에 발맞춰 신문들은 읽을 거리, 볼거리 위주로 내용을 바꾸고 보다 읽기 쉬운 타블로이드판으로 판형을 바꾸려고까지 하고 있다. 영국의 신문시장은 전통적으로 고급지는 대형, 대중지는 타블로이드판으로 구분돼 왔으나 지난해 10월 인디펜던트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도시의 독자들을 겨냥해 타블로이드판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잇따라 대형 판형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스’는 11월1일자부터 기존의 대형 판형을 폐지하고 타블로이드 판형으로만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에서 영자지의 출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곧 현실화될 전망이다. 르몽드가 뉴욕타임스 기사를 발췌,1주일에 한번씩 영자 섹션을 발행해오고 있고, 주인이 바뀐 프랑스 수아르는 프랑스내 외국인과 국내 비즈니스맨을 대상으로 한 영자 신문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독자들의 수요와 기대를 정확하게 파악, 지면 개선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뷔르츠부르크에서 발행되는 마인포스트는 신문 발행 당일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리더스캔’이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리더스캔은 독자가 특정기사를 읽을 때 스캐너 기능을 하는 전자펜으로 시작 부분과 끝낸 부분을 표시하도록 한 뒤 이 자료를 중앙컴퓨터에 전송하는 방식이다. 젊은 층 정기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방뉴스보다는 전국적인 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고, 수준높은 문화기사보다는 전날 저녁 TV뉴스에 나온 화제기사가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사의 도입 문장이 좋을 경우 독자 반응이 좋고, 사진이나 그래픽이 있는 기사가 텍스트만 있는 기사보다 더 관심을 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마인포스트의 미카엘 라인하르트 편집인은 “이처럼 편집을 혁신하자, 종전 7%였던 열독률이 8.5%로 높아졌다.”고 반색했다. lotus@seoul.co.kr ■ 美 “변화만이 살길이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경제대국 미국에서도 신문 산업이 어려운 것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다. 미국 신문의 고전은 ▲독자들의 변화에 둔감한 기자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지나친 정치적 편향성 등 편집상의 요인 ▲뉴미디어 등장에 따른 영향력 축소 ▲수익성 감소로 인한 노동여건 저하 등 경영상의 요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신문이 독자와 유리됐다” 미국 신문의 발행인 및 편집자 모임인 ‘에디터 앤드 퍼블리셔’는 1일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의 신문은 오랜동안 미국인의 신념, 특히 종교적 믿음과 유리돼 신뢰를 잃게 됐다.”는 반성의 글을 올렸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신문은 211개사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 신문 197개사보다 많았다. 이를 부수로 환산하면 2080만부 대 1460만부이다. 특히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의 다수가 케리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부시 대통령의 완승이었다. 언론계에서는 “리버럴한 성향을 가진 기자들이 미국 사회 주류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과 함께 “신문이 지나치게 정치적 색깔을 부각시킨다.”는 반성이 제기됐다. ●뉴미디어의 출현이 독자 잠식 미국의 대표적인 사전 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가 1일 공개한 2004년 10대 키워드 중 1위는 ‘블로그’가 차지했다. 한국의 오마이뉴스, 프레시안과 마찬가지로 블로그는 미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로 성장했다. 또 네티즌의 기호에 맞는 갖가지 다양한 뉴스 사이트가 잇따라 등장하고 지하철을 중심으로 무료신문도 확산돼 신문 독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미국신문협회(NA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초 4820만부에 달하던 평일판 발행부수는 지난달 4770만부로 0.9% 줄었다. 또 전국 50대 시장에서 신문 구독률은 6개월 전의 53.4%에서 52.8%로 감소세를 보였다. 일요판의 구독률도 61.2%로 6개월 전의 62%보다 축소됐다. ●판매부수 부풀리기도 신문의 영향력이 감소되면서 자연히 수익성도 줄어들고 있다. 일부 신문은 광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판매부수 부풀리기’까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의 판매부수는 광고료 산정의 핵심적인 기준이다. 신문사들은 뉴미디어의 등장 등으로 신문 구독자가 줄고 9·11 테러 이후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광고수입이 급감하자 이같은 부당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기구독 부수보다 가판대 판매 부수가 집중적인 부풀리기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시카고 선 타임스의 경우 각 배급소에 미판매분을 반환하지 말도록 지시해 판매부수를 부풀린 것으로 자체감사 결과 밝혀졌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미국의 신문들은 이같은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모색 중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9일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기사를 줄이고 사진과 그래픽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 편집인 레너드 다우니 주니어는 연례 평가회의에서 발행부수가 지난 2년 동안 70만 9500부에서 약 10% 줄었다고 밝혔다. 다우니 편집인은 지난 여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설명한 뒤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기사를 더 짧게 쓰는 것이 요구된다.”면서 “신문의 디자인 담당자와 편집자들은 사진과 그래픽이 들어갈 지면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USA투데이의 창업자인 알 뉴하스는 지난달 28일 칼럼을 통해 “미국 신문은 진보든 보수든 ‘이념의 망치’를 거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신문을 비교하면서 “일본 신문에는 광고보다 뉴스가 많은데 미국 신문은 그 반대일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뉴하스는 미국의 신문 사주와 발행인, 편집자들에게 “더 많은 뉴스를 싣고, 친구와 적에게 똑같이 공정하고 예의를 갖춘다면, 신문 값을 올려도 독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daw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3)‘마산아구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3)‘마산아구찜’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다. 겨울 기운이 느껴진다. 술꾼들은 퇴근길에 소주잔을 걸치면서 화끈한 안주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여기에 아귀찜이 제격이다. 점심식사나 가족 회식에서도 인기다. 시뻘건 아귀찜에 밥을 비벼 먹거나 아삭아삭한 콩나물을 씹으면 없던 입맛도 돌아온다. 이 글의 방향을 짐작했겠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본디 아귀는 ‘비료’ 정도로나 썼던 바닷물고기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흰살 생선, 즉 조기나 명태, 민어 등을 선호했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듯’ 못생긴 해물은 기피했다.‘몬도카네’처럼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것 같지만 한국인들의 수산물관은 보수적이며, 선택과 집중을 선호하는 형식을 보여 왔다. ●못생긴 아귀 처음엔 안먹고 버려 뱀장어도 일본의 ‘우나기’에서 전이됐으며, 예전에는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먹장어(꼼장어) 식용도 근래의 일. 복어도 독이 있어 다루기 까다롭다 하여 그대로 버렸다. 동해안 해장국의 별미인 토속어 ‘삼순이’도 아예 잡으려 들지 않았다. 남해안 어판장에 자주 등장하는 못생긴 물메기도 7∼8년 전까지는 잘 먹지 않다가 미용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갑자기 수요가 폭증했다. 아귀도 못생겼으니 당연히 먹지 않는 어류 반열에 속했다.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먹을 때면 덤으로 내주던 복국이나 아귀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들은 아직도 아귀를 먹지 않아 전량 한국으로 수출한다는 점.‘아직’이란 단서에 유의할 것이, 김치의 매운맛에 길들여진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 서서히 아귀로 젓가락을 옮기는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개불도 징그럽다고 먹지 않다가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음을 보면, 먹지 못하는 모든 해산물에 ‘아직’이란 단서를 붙여야 할 성싶다. 워낙 ‘원조타령’이 심한 사회이므로 아귀찜의 원조 역시 분간하기 어려우나 역시 마산이 아닐까. 마산 아귀찜과 군산 아귀찜이 쌍벽을 이루는 인상이지만 역시 원조는 마산 쪽이 맞는 것 같다. 마산에서는 아귀가 ‘아구’로 불린다.1980년대 초반부터 갑자기 매스컴을 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제한적으로 잡히던 아귀 물량이 딸리자 2∼3미에 18만∼25만원을 호가했다. 그러다 중국 수입산이 쏟아지면서부터 가격이 안정을 찾게 됐다. 예전에는 서민, 정확히 말하면 하층민 음식이었다.1000∼2000원에 한 마리를 사서 무를 넣고 푹 끓여 온 식구가 배불리 먹었다. 겨울의 속풀이거나 빈속을 채워 주는 고기였다. 아귀찜이 마산에서 본격적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에는 한국전쟁이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아귀의 문화사적 배경이라고나 할까. 우선 마산이란 항구도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도시전문가들이 입에 침을 튀기면서 설명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만을 담보한다. 뉴욕대 역사사회학 교수인 리처드 세넷이 ‘육체의 경험으로 풀어본 도시의 역사’란 부제가 달린 ‘살과 돌’(flesh and stone)에서 언급하였듯, 코를 자극한 냄새는 무엇이며,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차려 입는지, 언제 목욕을 했는지, 그러한 ‘도시의 육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항구도시들의 ‘육체’는 무엇일까. 역시나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먹을거리다. 우리는 도시와 음식의 기질론 혹은 풍토론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어디 가면 어느 집의 무엇이 맛이 있다.’라는 식의 음식점 순례기가 우리의 지적 수준이다. ●‘매운 음식’·‘화끈한 기질’ 궁합 맞아 아귀찜도 항구도시의 기질 풍토를 교묘하게 반영하고 있으니, 마산의 살아 있는 육체라고나 할까. 맵고 강력한 아귀찜같이 기질이 강한 음식은 음식궁합으로 볼 때 ‘태양’에 속한다. 마산이란 도시의 육체에서 아귀찜은 궁합이 대단히 잘 맞는다. 마산 자체가 한마디로 ‘화끈’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대적 화끈함에 역사적 화끈함까지 가미돼 아귀찜 같은 먹을거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어느 항구치고 격동의 세월을 겪지 않은 곳이 있을까만 마산항은 변화 정도가 극심했다. 대충 손꼽아 보아도 몽골족이 주축인 원나라의 군사적 요충지, 왜구들의 주요 침입로, 임진왜란의 전투지, 개항장, 일본인 집단거류지, 미군 군수물자 하역항,4·19와 부마항쟁의 진원지, 마산수출자유지역과 창원공단 등 역사적 격변상만도 단숨에 세기 어려울 정도다. 규슈(九州)의 오랜 국제무역항 하카타(博多) 연안에는 장장 20㎞에 걸친 해안 성벽이 있다.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가마쿠라 시대에 쌓았다고 하여 일명 원구방루(元寇防壘)라고 부르니, 그 진원지가 바로 마산이다. 세기의 대격돌이 마산에서 시작된 것이니, 역사적·운명적으로 태생부터 국제적이었다. 고려 충렬왕 때 4만 여원(麗元) 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나섰을 때 오늘의 마산인 합포를 출진기지로 삼았다. 규슈 북부 해안의 하카타만에 이르러 폭풍으로 말미암아 2회의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때부터 합포가 남해를 아우르는 전략 요충지임이 내외에 알려졌다. 마산항의 본류인 마산포는 조용한 어촌만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에 마산창이 설치되면서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시장이 번성하면서 수산물 반입이 활발해져 동해 원산, 서해 강경과 더불어 3대 수산물 집산항으로 손꼽혔다. 만기요람 재용편에 경상도 정기시장으로 오로지 창원 마산장 하나만을 들고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 이후 일제시대를 거치는 동안 남해안의 거제도와 통영·고성 등에서 잡힌 어류는 대개 마산항에 모였다. 구한말에 벌써 이곳에 30여호의 객상이 즐비했으니 그 번창함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3대 수산물 집산항 명성 1899년에 개항하면서 1905년부터 일본집단촌(속칭 지바촌)이 건설된다. 경찰서·재판소·형무소 등이 설치되고, 시가지는 혼마치(本町)·교마치(京町) 등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옛 사진을 보면 게다짝을 끌고 돌아다니는 일본인들이 많이 보인다. 일본식 집이 즐비하다. 미곡 적출항으로서 정미업, 조면업, 인쇄업, 조선, 철공, 제빙, 방적, 기타 제조업이 모두 성했다. 빼어난 자연적 기후조건과 양질의 쌀, 맑은 물이 주류와 장류에 적합해 일찍부터 양조산업이 시작됐으니, 마산의 명물 무학소주나 몽고간장 등이 여기에서 비롯됐다.1개 항구도시에 양조장이 20곳이나 되던 곳은 마산뿐이었다. 해방이 되자 이곳에 거주하던 6000여명의 일본인이 모두 돌아갔고 2만여명의 동포가 귀국했다. 이런 ‘인구교체’ 역시 마산의 독특한 변수가 됐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후방 병참기지였다. 소개령으로 시민들이 떠난 마산의 거리는 온통 카키색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시가지가 온통 미군 일색이었고 마산 제1부두는 전쟁물자의 집산지였다. 한꺼번에 밀려온 피란민들로 전에 없던 특미가 생겨났다. 재래의 마산 특미라면 단연 ‘대구깡다구찜’과 ‘미더덕찜’이었다. 그물에 잡히면 재수없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아귀들이 구마산 선창가에 그대로 버려졌다. 그 아귀를 인근 농부들이 가져다가 비료로 사용했다. 이 천대받던 아귀가 피란민의 공짜 반찬거리로 변하면서 아귀를 말려서 각종 양념을 넣어만든 아귀찜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수입산이 아닌 자연산 아귀는 마산 근해에서 ‘고데구리’로 훑어온다. 해저 밑바닥을 기면서 사는 저서류라 불법 어획도구인 ‘고데구리’가 보편적으로 사용돼 왔고, 어찌 보면 맛있는 아귀를 다량으로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산 시내에는 아예 아귀찜 골목이 따로 있다. 아귀찜은 이곳에서 아귀찜집을 경영하는 김삼연(57)씨의 ‘초가할매집’에서 출발했다. 나이 스물에 시집와 38여년 동안 아귀찜만 만들었다.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기술을 이제 며느리에게 물려주었다. 애초에는 두 집이었다. 과거에는 아귀를 무쳐 조림으로만 팔았다. 말린 아귀가 너무 딱딱해 여기에 콩나물을 푸짐하게 넣고 조선된장을 풀어 담백한 맛을 살려내고 여기에 맵싸한 고춧가루·콩나물이 궁합을 이뤄 오늘의 마산아귀찜이 탄생했다. 마산에서 다량 소비되면서 전국의 아귀가 마산항으로 모여들었다.‘아귀는 무조건 마산에 가야지만 팔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내장을 걷어내고 씻어서 태양볕에 20여일을 꼬득꼬득 말린다. 이때 1년치를 갈무리하는데, 겨울에 말려야지 여름에는 벌레가 생길 뿐더러 냄새가 나서 말리기가 적당하지 않다. 크기도 중간짜리라야 건조도 잘되고 살집이 말랑말랑해 먹기 좋다. 아귀는 탕, 수육, 해물볶음, 불고기전골, 불갈비, 해물찜 등으로 속속 조리법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중심은 아귀찜. ●아귀 뱃속엔 온갖 생선이 가득 마산 어시장의 터줏대감 격인 권철주 보현수산 대표의 말을 빌리면 “아귀는 정말 ‘아귀’처럼 처먹는다.”뱃속을 따보면 온갖 생선이 수북하게 쏟아져 나온다. 이런 ‘속것’이 너무 많아 김삼연씨는 아예 ‘아귀속젓’을 개발하기도 했다. 갈치 전갱이 꽁치 오징어 장어 돔 도다리 등 아귀의 반을 차지하는 이 ‘속것’들을 버리기 아까워 그걸 모아 젓갈을 담근 것. 그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으니 이 젓갈이 바로 동의보감”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마산 아귀찜은 국물이 걸쭉한 서울 것과는 맛도, 모양도 다르다. 잘 말린 아귀 냄새, 비린내를 없애는 조선된장, 통통하지 않게 기른 콩나물에다 태양초를 빻아 쓰되 매운 것과 덜 매운 것을 섞어 쓰며, 여기에 마산명물인 ‘진동 미더덕’을 곁다리로 넣어 마산 아귀의 오미(五味)를 이뤄낸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눈을 맞혀야 제 맛이 든다는 말을 듣자니, 진부령 황태가 여느 북어와 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아귀찜 하나의 문화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도 많은 지면이 필요하니, 우리 해산물 모두를 설명하자면 ‘천일야화’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 [2005 수능] 채점 어떻게하나

    수능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240만장이 넘는 답안지를 처리하는 채점작업이 시작된다. 올해에는 7차 교육과정에 따른 선택형 수능시험이 시행돼 원점수를 제공하지 않음에 따라 수능시험 바로 다음날의 표본채점은 실시하지 않는다. ●철통 경비 속 채점에 돌입 17일 저녁 수험생의 답안지가 모두 회수되면 채점본부가 꾸려져 채점이 시작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전산부에 합동경비반의 보안요원 9명이 배치되고 철제문, 폐쇄회로 등 물샐 틈 없는 경계가 펼쳐지는 가운데 진행되는 채점에는 주 전산기 3대와 OMR 판독기 33대, 고속 레이저 프린터 7대 등이 동원된다. 채점 절차는 답안지 인수→봉투 개봉·판독→채점·검증·통계처리→성적통지표 및 자료 인쇄 순으로 진행된다. 문제지 유형을 잘못 기재하거나 수험번호를 틀리게 쓴 답안지, 각종 이물질이 묻은 답안지 등은 채점요원이 수작업을 통해 일일이 대조하면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료처리가 끝나면 답안지는 3대의 주 전산기로 옮겨져 입력된 정답과 대조해 채점된다. 채점이 끝나면 성적표에 표시되는 대로 영역별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 등 대학별 전형에 활용될 각종 방법으로 점수를 내고 전국 수험생 점수 분포표 등을 통계처리하는 데 약 1주일이 걸린다. 이어 수험생당 1장씩 나눠줄 성적통지표를 5일간 출력, 다음 달 13일 각 시·도 교육청에 배포하고 이튿날 성적통지표가 수험생에게 전달된다. ●올해부터 첫 이의신청 기간 설정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복수정답 파문이 생기자 평가원과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부터 정답 이의신청 기간을 두기로 했다. 17일부터 21일까지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은 뒤 심사 과정을 거쳐 29일 평가원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확정, 게재할 예정이다. 따라서 당초 발표한 정답에 변화가 생기면 그 결과가 채점과정에 다시 반영되고 정답이 그대로 확정되면 채점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어떤 경우라도 12월14일 성적표를 수험생이 볼 수 있게 된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선비정신 서린 시·서·화 한곳에

    선비정신 서린 시·서·화 한곳에

    ‘문중유물특별전’이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 제2전시실에서 18일부터 내년 2월 20일까지 열린다. 옛 선비들의 내밀한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된 특별전에는 그윽한 묵향을 담고 있는 시ㆍ서ㆍ화 자료 60점이 전시된다. 진흥원은 지난 3년 동안 각 문중과 서원 등에서 기탁받은 14만여점 가운데 이번 특별전 전시작품을 골랐고 일부 작품은 경북대박물관이나 개인의 소장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되는 시에는 제자 금난수(1530~1604)가 ‘고산에서 노닐다.’라고 보낸 시에 화답한 퇴계 이황(1501~1570)의 시를 비롯, 시회(詩會) 풍경을 읊은 학봉 김성일(1538~1593)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시집에 해당하는 시첩(詩帖)으로는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벗에 대한 송별의 정을 담은 시를 모은 조천별장(朝天別章) 등이 선보인다. 서(書)로는 명필로 익히 알려진 석봉 한호(1543~1605),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과 함께,‘원교체(圓嶠體)’라는 자신만의 서체를 남긴 원교 이광사(1705~1777)와 율곡 이이의 동생 이우(1542~1609)의 글 등 비교적 덜 대중적인 작가들의 글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우의 ‘옥산진적(玉山眞蹟)’은 그가 왜 중국의 왕희지와 비교됐는가를 보여주는 힘찬 필체가 잘 드러나 있다. 그림으로는 대나무의 푸르름을 서늘하게 묘사한 강세황(1713~1791)의 묵죽도(墨竹圖),‘최산수’라 불릴 만큼 산수화에 능했던 최북(1712~1786)의 산수화 작품 등이 전시된다. 특별전 개막과 함께 18∼19일 이틀 동안은 목판인쇄분야의 연구와 보존대책 등을 논의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동아시아의 인쇄문화와 목판’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는 류탁일 부산대 명예교수의 기조강연과 각국 연구자 22명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유키요에의 미/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유키요에의 미/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뱃전의 어부들, 이를 지켜보며 태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후지산….18세기 일본 에도 시대에 성행한 회화 장르인 우키요에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라는 그림이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는 이 그림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어 교향곡 ‘바다’를 완성했고, 영국의 소설가 조지 무어는 이 그림에 매료된 나머지 ‘호쿠사이의 그림 한 폭의 가치는 전 일본인의 생명과 대등하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우키요에의 어떤 점이 그토록 세계의 예술가들을 끌어당겼을까. ●우키요에 거장 12인의 생애와 작품 소개 ‘우키요에의 미’(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이세경 옮김, 이다미디어 펴냄)는 우키요에 거장 12인의 생애와 작품을 시대 배경과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 우키요에 입문서다. 일본 최고의 우키요에 권위자인 저자(63·가구슈인대 교수)는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소장하고 있던 작품 100편의 도판을 컬러로 실어 원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도록 했다. 우키요에에 대한 사랑은 서구 미술계에서도 뜨거웠다.‘빛의 화가들’이라 불린 고흐와 모네, 드가, 로트레크 등의 인상파 화가들은 특히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점처리, 빼어난 소묘력, 현대적인 화면구성에 매료됐다. 모네는 방안을 우키요에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렬한 수집광이었으며, 고흐는 우키요에를 거의 표절한 듯한 그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키요에는 처음엔 유럽으로 수출되는 일본 도자기를 포장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우키요에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19세기말 유럽에서 자포니즘(Japonism)이라고 하는 문화적 경향으로까지 확산됐다. 당시 자포니즘에 열광한 유럽인들은 우키요에를 일본 그 자체인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우키요에는 지금도 ‘서양 근대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일등공신’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전세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키요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우키요에는 목판화와 육필화 두 종류가 있다. 괴기물에서 춘화, 인물화, 풍자화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환상을 망라한다. 단색판화에서 시작해 다색 판화로 발전됐으며, 우키요소시(浮世草子, 일본 중세와 근세에 유행한 삽화가 많은 대중소설)나 삽화본 등의 읽을거리가 유행하면서 대중화됐다. ●춘화·인물화·풍자화 등 총망라 책은 ‘서민미술’인 우키요에의 탄생배경도 소상히 다룬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 초기부터 메이지시대 초기까지 약 200년간에 걸쳐 에도라는 특정한 도시에서 우키요(浮世), 곧 ‘이 세상’의 풍속을 소재로 하나의 유파를 형성했던 화가들의 그림을 말한다. 그런 만큼 당세풍(當世風)을 추구하는 ‘우키요’를 그리는 것은 우키요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였다. 당대 풍속을 소재로 한 우키요에는 자연스레 유곽의 모습이나 기녀, 가부키, 스모 등 서민들의 향락적인 문화를 즐겨 표현했다. 신흥 도시 에도의 젊고 활기찬 분위기 또한 수준 높은 서민문화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처럼 일반 대중의 미적 관심을 반영해온 우키요에는 메이지시대 들어 사진이나 제판, 기계인쇄 등이 유입되면서 쇠퇴했다. 그러나 조선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민화와 마찬가지로 우키요에의 전통은 일본 현대미술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은 ‘일본미술의 혼’이기 때문이다.2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낡은모습 확 바꿔… 인심은 여전히 넉넉”

    서울 중구 방산종합시장 등 새단장한 재래시장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이달 중 리모델링을 마치는 재래시장은 모두 7곳이다. 각종 인쇄물, 벽지, 바닥재, 비닐류를 판매하는 대표적인 재래시장중 한곳인 방산시장은 환경개선 사업을 마치고 12일 준공식을 가졌다. 1976년 지어진 방산시장은 최근 상가건물 노후화와 경기불황으로 침체의 길을 걸어왔다. 중구는 지난 6월부터 11억 36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엘리베이터 3대를 새로 설치하거나 화장실 8곳을 개보수하는 등 환경개선 사업을 벌였다. 을지로 6가의 의류판매 전문 통일시장도 냉난방기와 소방설비 등 보수공사를 마치고 15일 개장할 계획이다. 중구 남창동 5번지 일대에 있는 삼익패션타운은 페인트칠과 간판 교체작업 등을 마치고 16일 다시 문을 연다. 이밖에 오는 24일에는 중랑구 중화동에 위치한 동부 골목시장이 특화거리를 조성하고 간판 정비를 새로 해 준공식을 갖는다. 동부 골목시장에는 19억 6000만원이 투입돼 그림이 있는 타일 바닥을 만들고 공중선 지중화 사업도 함께 벌였다. 같은 날 문을 여는 중랑구 중랑교종합상가는 15억 6000만원을 들여 이용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냉난방시설을 설치하고 전기를 증설했다. 순대, 닭발 등 부산물 판매로 유명한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도 15억여원의 사업비로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물기 축축했던 바닥을 정비하는 등 현대화사업을 거쳐 30일 재개장한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2002년 8월 양천구 월정로 골목시장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28개 재래시장에 대해 환경개선사업을 벌였다. 서울에는 모두 160개 재래시장이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발언대] 빚더미 속의 새 출발/박명식 말씀인쇄그래픽스 이사·수필가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자 청춘 남녀의 결혼 시즌이다. 때 맞추어 한 결혼전문정보업체가 5대 도시 신혼부부 294쌍을 조사한 결과 2000년 7845만원이던 결혼비용이 올해는 1억 3500여만원이 들어간 것으로 발표했다. 보통 30세 안팎을 결혼연령으로 볼 때 예비 부부가 그 막대한 비용을 다 마련하여 혼례를 치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 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은행 대출을 통해 결혼비용의 일부를 충당하는 게 현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혼식, 그 설레는 날을 누구보다도 예쁘게 맞고 싶은 것이 신랑·신부 모두의 꿈이고 바람일 게다. 하지만 그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결혼이 빚과 함께 출발한다면 앞날에 적지 않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형편을 넘는 과도한 짐은 자칫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사는 미국의 일반가정에서는 신랑·신부가 애당초 예단 등 혼수품을 준비하지 않으며 200달러 이내의 기념반지 정도만을 교환한다. 혼례식도 성당·교회에서 신부·목사의 축복으로 진행되는 게 대부분이고 하객도 친지 10여명이 참석하여 조촐한 음식을 나누는 게 보통이다. 우리와 다른 게 있다면 화려하지 않은 결혼식이지만 하객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한 축복의 박수를 더 많이 보낸다는 사실이다.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말이 있다.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인데, 풍성해지려면 그만큼 땀과 수고로움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여유가 있어 넉넉하게 시작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완비된 신혼살림이라면 살아가면서 살림을 하나씩 늘려가는 아기자기한 행복은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신혼 때는 부족한 것이 있다 해도 큰 불편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온세상을 녹여 버릴 듯한 둘만의 뜨거운 애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증가와 청년 실업에, 오륙도·사오정·삼팔선·이태백이라는 신조어가 나돌 만큼 고용이 불안정한 이때 검소하게 결혼을 치르고 절약한 돈을 여유로 가지고 있다면 필요에 따라 제 꿈을 펴는 계획에 요긴히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우리 일상에는 근검·절약이라는 단어가 멀어져만 간다. 예비 신랑·신부라면 짧은 환희를 위하여 더욱 긴긴 날이 괴롭게 되는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닌지 한번쯤 결혼 준비 과정을 꼼꼼히 챙겨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는 빌 게이츠가 아니라 빚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박명식 말씀인쇄그래픽스 이사·수필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