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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실대생 교수평가 책내 화제

    ‘기절초풍 대학 강의 실태-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가 대학가에 화제다. 숭실대생들이 최근 3년간 교수·강사들의 강의에 대해 무기명으로 적어낸 의견을 정리한 책이다. 강의에 대한 비판과 칭찬 등 학생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있다. 교수사회에도 성과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교수들이 강의준비에 진땀을 흘리고 있어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이 대학 노경식 홍보팀장은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평가를 토대로 교수들이 강의를 더 알차게 준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면서 “내부 교직원들에게 600부를 배포했는데 외부에서 요청이 있어 추가인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계획서 따로, 수업 따로 “처음에 계획서 볼 때 유익한 강의가 많아 기대가 컸는데 강의 계획은 무시되고 교수 편한 대로 강의가 이뤄지는 듯해 많이 실망했다.”, “정상적인 수업진도보다 지나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다 학기말에 와서는 2주 분량을 단 하루만에 나가기도 했다.”는 등 제멋대로 수업에 대한 불만들이 많았다. 학교측은 이런 경우 처음부터 강의계획서를 성실하게 작성하든지, 바꿀 경우 수정본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닫힌 연구실 문, 열린 연구실 문 “이메일로 과제냈는데, 안 냈다고 한다. 수신확인 인쇄해서 보여 드렸더니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한다. 제대로 성적은 나올까?”,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시는 교수님,학생보다 빠르다.” 이른바 닫힌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지적이다. 물론 “수업뿐만 아니라 상담도 해주시고 학생 한 명 한 명 신경써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는 칭찬도 있었다. 학교측은 진로나 전공 취업 등에 대해 자상하게 대화해 주는 교수들을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교수연구실 문을 반쯤 열어두거나 ▲학기 중 한 번 이상은 반드시 교수를 방문해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교수님,오늘도 지각입니다.” “모범이 되어야 하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15분 늦는 건 예사로 알고…완전 실망했습니다.”, “수업을 항상 2~3분 늦게 끝내주셔서, 다음 시간 수업강의가 먼 곳에서 있으면 시간 안에 가기 빠듯합니다.” 학교는 이에 대해 학생들은 시작시간 못지않게 종료시간에도 민감한 만큼 ‘일일 연속극’처럼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이 정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伊 볼로냐 아동도서전 한국 주빈국으로 참여

    伊 볼로냐 아동도서전 한국 주빈국으로 참여

    “이탈리아의 작고 오래된 도시 볼로냐가 시끌시끌할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9년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조직위원회 임요병 행정분과위원장은 3일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도서전이 볼로냐 중심가인 시청 근처에서 열리는 데다 주빈국관 운영의 부대행사로 전시·음악·무용 등 ‘한국 문화행사의 향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매년 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아동도서전은 70여개국 5000여명의 출판인과 일러스트레이터, 아동·교육 관련 단체 관계자가 참석하는 세계 최대의 아동도서 전문 도서전. 또한 저작권을 상담·거래하는 비즈니스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주빈국 행사의 표어는 ‘둥글게 둥글게’(Round and Round in a Circle). 현지시간으로 23일 오전 11시 주빈국관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국과 관련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일러스트레이터스 카페(Illustrators Cafe)에 설치되는 300㎡ 규모의 주빈국관에는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31명의 원화 64편과 관련 그림책 200여종이 전시된다.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98명의 작품 300여점을 담은 카탈로그도 판매된다. 출협은 부대행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임요병 행정분과위원장은 “유럽 사람들이 소니가 일본 제품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삼성의 휴대전화나 현대차의 출산지가 한국이라는 점을 잘 모르고, 특히 한국이 중국·일본과 다른 문화와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도 잘 알지 못한다.”면서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도 이번 행사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볼로냐 시청사에서 열리는 ‘한국의 문자, 한글전’, 살라보르사 도서관의 한국 우수 그림책 260여권 전시, 유럽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대학과의 ‘한국 예술에 대한 세미나’, 중세박물관의 도자기·초상화·금속활자와 목판활자 인쇄본 전시 등은 그래서 중요하다. 또한 아레나 델 솔레 극장에서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을 소개하고,태권도 시범도 열린다. 볼로냐에서는 일종의 한국 페스티벌이 열리는 셈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SPECIAL 편지]우체부 아저씨가 그립다

    [SPECIAL 편지]우체부 아저씨가 그립다

    여백만으로 꽉 찬 종이를 앞에 놓고 누군가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 한 자 한 자 써가는 편지에는 그 편지를 쓰는 사람의 향기와 정성과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대화하고, 컴퓨터로 전송하는 이메일로 소통하는 시대에 웬 뜬금없는 편지 얘기냐고 의문을 갖는다면, 당신은 편리와 즉흥에 길들여진 문명인이 분명합니다. 인간적인 그리움을 모르고, 기다림의 미학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였는지.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아본 건 또 언제였는지. 만화 작가 김동화님은 《빨간 자전거》에서 우리들의 기억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고 있는 우편배달부와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 줍니다. 이 만화의 작가 서문을 읽으면 가슴이 아립니다. 아련한 그리움이며 슬픔 같은 것이 마음 저 밑바닥에서 실연기처럼 피어오릅니다. 책의 서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편의 시라 해야 옳을 겁니다.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이로부터 엽서 한 장을 받았습니다. /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라며 꽃잎 한 장 넣은 봉함엽서. / 하얀 봉투엔 미루나무를 스친 바람 냄새가 가득합니다. / 임하면 야화리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 《빨간 자전거》의 무대가 된 임화면 야화리는 지도엔 없는 마을입니다. / 풀 냄새 나는 사람들. / 밭두렁보다 깊은 주름에 들꽃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들. / 아궁이 앞에 앉아 밤새 군불을 때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 / 이렇게 그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각보처럼 / 한 땀 한 땀 이어 그린 도화지 속의 마을. // 그 마을엔 아직도 빨간 자전거를 타고 편지를 배달하는 / 우편배달부의 휘파람 소리가 있습니다.” 밤새워 혼자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작업실은 자신의 집 1층에 있습니다. 쟁반만한 탁자 위에 커피 잔과 재떨이를 놓고 마주 앉아서,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이기도 한 작가의 편지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철학을 듣습니다. 우편배달부의 이야기 난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참 좋아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집 가까이에 우체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체국에 가서 어떤 이에게 편지를 부치고 나올 때면 정말 행복해요. 내가 어렸던 시절의 우편배달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 받고 존경 받는 직업이 아니었을까 해요. 외부로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어 주었던 존재잖아요. 창문을 통해 집 밖을 기웃거리며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일은 더없는 행복이었지요. 지금도 우편배달부를 만나면 무작정 반가워요. 편지가 아닌 납부고지서 같은 걸 받더라도 말이에요. 만화 《빨간 자전거》를 그리게 된 계기는 좀 특이했어요. 2002년에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린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였는데, 시간을 내어 파리에 있는 서점의 만화 코너를 둘러보던 중이었어요. 70대는 되어 보이는 노인 부부가 만화 코너를 돌며 만화책들을 뽑아내어 바구니에 담는 거예요. 프랑스에선 노인들도 만화를 보는구나! 감탄하면서 퍼뜩 든 생각이, 우리나라의 어른들이 만화를 안 보는 이유는 어른용 만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였어요. 어른용 만화를 그려보자는 각오를 했지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구상해 낸 게 《빨간 자전거》였어요. 부모와 자식, 그리고 고향을 주제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런 요소들을 우편배달부를 통해 그리움의 끈으로 이어주며 소통하게 하려 했지요. 그리고 어른들이 보아야 할 만화니까 발표 지면은 신문이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이 만화를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이유에요.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 신문사 사람이 6개월만 연재할 수 있으면 성공이라 했는데, 3년을 넘겼으니 독자들의 반응이 어땠겠어요? 격려 편지와 전화를 많이도 받았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 받은 편지만 해도 700여 통에 이르렀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어른들이 만화를 안 본 이유가 볼 만화가 없어서 못 봤다는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됐죠. 편지라는 게 그렇잖아요? 메일로 쓰면 메일로 답장을 받는 거고, 편지로 쓰면 편지로 받게 되는 거죠. 그림 편지를 보내면 그림 편지로 답장을 받고. 편지는 전화나 메일하고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소통수단이에요. 편지 쓸 종이를 고르는 일부터 필기구를 선택하는 거, 그리고 글씨와 내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게 자신만의 것인 게 바로 편지가 아닌가요? 이런 편지를 보내고 난 다음에 답장을 기다리는 그 맛은 또 얼마나 기막힙니까? 이 기다림을 그리움이라 바꿔 불러도 무방하겠네요. 아무튼 속도만을 중요시하는 문명의 시대가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아울러 갖추고 나갔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좀 다른 얘기가 되겠는데, 편지 말고도 하루에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순간들은 우리에게 무수히 많아요. 내 집에서도 그런 감동을 많이 느끼며 살지요. 집이 거대도시 한가운데 있지만 봄이 되면 어디선가 나비들이 좁은 뜨락을 찾아오는 겁니다. 작년 봄에는 큰 목단나무 아래에서 1미터가 넘는 제비꽃 줄기가 나와 그 끝에 꽃을 매달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아, 생명이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충격을 받았었어요. 제비꽃이라는 게 본래는 한 뼘도 채 안 되는 앉은뱅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어떤 연고로 목단나무 그늘 아래서 싹을 틔우다 보니 햇빛을 찾아 그렇게 목이 길어지게 된 거에요. 난 우리의 삶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감동을 찾아내어 이걸 소재로 따듯하고 아름다운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가제가 《소년과 병사》이고 프랑스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만화 시장이 열악한 상태인데, 나는 극복 과제를 세 가지로 보고 있어요. 그 하나가 만화의 고급화입니다. 최고급의 종이를 쓰고, 인쇄와 장정도 고급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책이 아니라, 서가에 꽂아두고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야죠. 물론 더 중요한 건 내용도 그에 걸맞게 높은 수준이 되어야 하는 거겠죠. 그리고 또 하나가 독자의 다변화입니다. 어른들이 안 보니까 아이들마저도 못 보게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게 내가 어른 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우선 국내 시장이 확대되어야지요. 그런 연후에 한국 만화의 세계화가 이루어져야죠. 궁극적 과제인 셈인데, 미약하지만 한국 만화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해온 걸 과분하게 인정받아 작년 12월 22일에 국무총리 상을 받았어요. 격려와 채찍이죠. 우편배달부 이야기인 《빨간 자전거》도 2003년부터 프랑스에서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입니다. 용기를 갖게 해준 작품이라서 애착도 가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우체국과 서점은 예나 지금이나 내게 변함없이 소중한 공간입니다. 우체국은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부칠 수가 있어서 그렇고, 서점은 나를 반성하고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책들이 있어서 그렇지요. 난 편지를 쓰고 만화 그리는 일을 할 수가 있어서 행복하고, 그런 것에 행복해 하는 나를 사랑하며 삽니다. 에필로그 네 권에다 일일이 서명해 건네주신 한국판 《빨간 자전거》를 받아 가방에 넣어 메고서 작가의 작업실을 나섭니다. 자신만의 펜으로 수없이 쓰고 또 고쳤을 작가의 편지가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이 너무 무겁습니다. 대문 앞까지 나와 환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작가에게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서 오는 따스한 긍정의 힘이 넘치는 듯합니다. 바로 이게 작가의 유일한 자산이자 궁극의 힘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생각하니, 작가는 부자이기도 합니다. 작업실 장식장들에 몇 백 대의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비록 모형이지만 부자는 물질이 아닌, 편지를 쓸 때와 같은 정성스런 마음이 만드는 거라는 걸 배웠으니. 이 글은 이러한 가르침을 주신 《빨간 자전거》의 작가에게 쓰는 감사의 편지에 다름 아닙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빨간 자전거》 1권을 꺼내 읽습니다. “소리 없이 피어나 이 땅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들꽃처럼 고향 이야기는 우리를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수취인 불명’ 이게 바로 더 이상 답장을 기다리지 말라는 뜻이지 뭔가…. 내게 편지 보내줄 마지막 친구였는데…. 죽었으니까 편지 받을 사람이 없었던 거겠지. 이젠 앞으로 내게 편지 보낼 사람은 없겠군. 나도 더 이상 편지 기다릴 일 없을 테고….” “언젠가부터 텅 빈 우체통. 빈 우체통을 열 때마다 우편배달부의 가슴 속엔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열차 기관사는 몸을 실어 나르고, 우편배달부는 마음을 실어 나르고…” 작가의 말들이 가슴에 정거장 하나씩을 만들며 덜컹덜컹 지나갑니다. 자, 어떤가요? 당신도 오늘 그리운 누군가에게 한 장의 편지를 쓰지 않겠어요? 그리고 빨간 자전거를 타고 답장을 전해 줄 우편배달부를 한 사나흘 마음 설레며 기다려 보지 않겠어요? 글 최준 기획위원
  • 139년 전 美 최초 야구카드 이베이 경매 주목

    미국에서 139년 전 제작된 최초의 ‘야구카드’가 발견돼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고있다.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레즈) 선수단 사진이 담긴 1869년 야구카드가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지역에서 발견됐다고 야후스포츠가 지난 7일 보도했다. 카드를 발견한 주인공은 야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72세 할머니 버니스 갈레고. 그는 지난 여름 오래된 상자에서 흐릿한 사진이 인쇄된 이 카드를 우연히 발견했다. 야구에 관심이 없던 할머니는 당시 발견한 카드가 무엇인지는 모르고 큰 기대 없이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올렸다. 처음 경매 시작가격은 겨우 10달러였다. 그러나 흐릿한 카드를 자세히 살펴 본 할머니는 곧 그것이 특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즉시 경매등록을 취소했다. 할머니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 오래된 카드는 139년 전 최초의 야구카드 중 하나였던 것.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카드는 유명 갑부들의 재산목록으로 인정될 만큼 현지에서 인기있는 수집품 중 하나다. 카드의 가치를 알게된 할머니는 이베이에 경매 시작 최고가인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로 다시 등록했다. 할머니는 카드가 처음 들어있던 상자를 어디서 구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때때로 남편과 함께 캘리포니아 인근 지역에서 수집품들을 구입했는데, 그 중 섞여있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한편 카드를 직접 확인한 캘리포니아 지역지 ‘프레즈노비’의 마이크 오제게다 기자는 “카드는 역사 그 자체였다. 이 발견은 마치 모나리자나 피카소의 작품 발굴과 비슷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역사교과서 수정금지 가처분 8일 결정

    새 학기부터 고교생들이 배울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를 두고 정부와 교과서 저자 사이의 분쟁이 8일 결론난다. 7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금성출판사가 발행하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저자들이 낸 저작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을 8일 오전 결론낼 방침이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 등 저자 5명은 지난달 15일 “저작인격권을 가진 자신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교과서를 수정하지 못하게 해달라.”면서 금성출판사를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사건을 담당한 민사합의50부(부장 이동명)는 역사교과서가 3월부터 시작되는 새 학기에 학생들에게 배포되려면 1월부터 인쇄가 시작돼야 하는 점을 고려해 집중심리 방침을 세우고 법리검토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사건이 접수된 지 20일 만에 교과서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인지와 교육과학기술부의 권고에 따른 수정으로 저작인격권상의 동일성 유지권이 침해됐는지 등의 문제를 검토했다. 저작인격권이란 저자가 비록 원고료를 받고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겼더라도 자신의 창작물과 관련해 명예를 훼손하는 왜곡, 삭제 등 행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한편, 교과부는 지난해 12월17일 좌편향 논란을 일으켰던 금성출판사 등 근·현대사 교과서 6종, 206곳을 고쳐 새 학기부터 반영하기로 결정했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모닝 브리핑] 5개 군부대 책임운영제 출범… 무늬만 개방 지적

    국방부가 공개 채용한 기관장에게 기관 운영의 자율권을 주는 ‘책임운영기관제도’를 2일부터 시작했으나 선발된 기관장 전원이 군 출신이어서 당초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개방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일 국방부에 따르면 국군수도병원,육군인쇄창,육군2보급창,해군보급창,공군40보급창 등 5개 부대의 책임운영기관제도가 공식 출범했다.민간인을 포함한 공채 형식으로 기관장을 선발하는 형식을 갖췄지만 실제 선발자 전원은 예비 장성 등 군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이에 대해 김윤석 국방부 아웃소싱추진 태스크포스(TF) 팀장은 “민간인 지원자가 단 한 명뿐이어서 예비역 위주로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신성장 동력을 찾아라] 입체디자인분야 독보적 기술 경기 광주 미래로코리아 르포

    [신성장 동력을 찾아라] 입체디자인분야 독보적 기술 경기 광주 미래로코리아 르포

    겨울 추위가 다시 찾아온 지난 22일 경기 광주시 태전동 미래로코리아 공장 1층.거대한 인쇄기 사이로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두어로 쓰여진 광고판이 하나하나 인쇄되고 있었다.세계적인 담배 회사인 필립모리스가 미래로코리아에 맡긴 물량이다. 이후 직원들 손에서 깔끔한 플라스틱 패널로 되살아난 광고판.붉은색과 흰 바탕의 담뱃갑 뒤로 광고 문구가 30㎝는 족히 뒤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기존 입체 화면과 달리 화면이 선명하면서도 공간감이 살아 있다.미래로코리아는 최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 위기를 입체디자인표면소재 기술을 무기로 헤쳐나가는 ‘강소’(强小) 기업이다. 입체디자인표면소재 기술은 플라스틱 평면 위에서 공간감을 느끼도록 하는 공법을 말한다. 입체디자인표면소재 기술의 어머니는 책받침 등 학용품이나 입체 영화 등에 사용되는 렌티큘러(lenticular) 공법이다.그러나 렌티큘러 공법의 가장 큰 단점은 상이 흐릿하게 나타나면서 현기증 등을 유발한다는 점.입체디자인표면소재 기술은 어느 쪽에서 보든 공간감이 뚜렷한 하나의 상이 보여지는 평면을 구현,출현한 지 100년이 되도록 여전하던 렌티큘러 공법의 한계를 극복했다. ●국내외 특허 10여개… 美로펌서 출자 미래로코리아가 입체디자인표면소재 기술 특허를 획득한 것은 지난 2006년 9월.국내는 물론 미국 특허도 취득하면서 미국 굴지의 로펌 자회사로부터 250만달러의 출자도 받았다. 이때부터 스카이 휴대전화 박스와 삼성 휴대전화 키패드,배터리팩 등에도 미래로코리아의 제품이 사용됐다.내년에는 현대자동차 신차종의 계기판에도 쓰이는 것은 물론 중동 쪽에는 건축 디자인 자재로도 납품된다.최근에는 지식경제부에서 지정하는 세계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기술은 시장에서 금세 돈이 됐다.2004년 50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올해 64억원으로 4년 만에 120배가 됐다.순익률은 20%가 넘는다.전 세계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내년에도 70억원 정도의 수출을 포함해 14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미래로코리아 정현인 대표는 “높은 기술력과 상품성을 지닌 10여개의 국내외 특허가 회사의 유일한 경쟁력”이라면서 “경기 침체가 지속되더라도 효율이 높은 기술에 대해서는 투자가 쏠리는 덕분에 다른 기업에 비해 불경기에 대한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사회 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했다.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92년 당시 금성사(현 LG전자) 디자인종합연구소 기획 파트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94년부터 즉석 포토숍 사업을 시작했다.어렸을 때부터 대기업 총수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키워왔던 기업 경영의 꿈 앞에서는 대기업 사원의 안정적인 생활도 소용 없었다. 여기에 정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룬 데다 기획력까지 갖춘 덕분에 성공은 눈앞에 놓여 있는 듯했다.95년에는 손수 개발한 웨딩사진 합성 필름 사업으로 전국 수요의 90% 이상을 휩쓸 정도로 ‘대박’을 쳤다.원가의 50배를 받고 팔아도 불티나게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98년 시장에 내놓은 1회용 합성 카메라와 필름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아이템은 좋았지만 시장에서는 ‘공짜 상품’이라는 인식이 큰 데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도래하면서 2001년 말 자진 폐업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당시 살던 집 등을 정리해서 10억여원의 부채를 갚았지만 빚만 2억원이 넘었지요.같이 사업을 하던 친동생에게는 ‘내가 다 책임지고 감옥에 가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완전히 ‘거지’가 된 상황 자체가 처참했죠.하지만 사업으로 망했으니 사업으로 ‘마지막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 대표의 10년간 사업 경력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었다.몸을 추스른 뒤 석 달 동안 책과 인터넷을 뒤진 끝에 입체디자인표면소재 사업이 ‘블루 오션’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필름 사업 등에서 지금까지 쌓았던 기술력도 ‘종잣돈’이 됐다.정 대표는 “입체화 기술은 가전,건축 등뿐 아니라 실생활 어디에서든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매킨토시 프로그램,아이맥 등에 사용한 투명 플라스틱 등과 같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가전·건축 등 실생활 활용 무한대 자금력과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지금과 같은 극심한 불황을 뚫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정 대표는 중소기업진흥원이나 중소기업청 등 국가기관에서 기술 지도를 받고 행정 지원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정 대표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국가기관의 지원을 ‘우리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여기지만 관공서로부터 정보를 계속 접하고 도움을 받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관들을 계속 찾으면서 순서를 기다리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기업의 기회도 떠난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모 리터니즈/진보경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모 리터니즈/진보경

    나는 빈 칸에 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다.‘해당 정보와 일치하는 아이디는 다음과 같습니다.jeonghyuns**’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끝 두 자리는 별표로 표시한다는 설명이 붙지만 나머지 철자는 뻔하다.정현수.그러니까 숨겨진 두 글자는 알파벳 ‘oo’인 셈이다.화면 상단의 비밀번호 찾기로 들어간다.아이디와 이름,주민등록번호,휴대전화 인증번호를 차례로 채운다.마지막으로 새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정현수의 보안장치는 너무 허술했다.현실과 가상으로 나누어진 그의 공간.탐사 삼 일째,잠입은 성공적이다. 첫째 날은 집 안을 둘러보고 청소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불청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냄새였다.숙성이라고 해야 할까,부패라고 해야 할까.여러 소(素)들이 섞여 오랜 시간 묵은 냄새.증발된 삶의 흔적들이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음식 냄새,담배 냄새,가구 냄새,하수구 냄새…….그리고 그의 체취.좀 더 강한 냄새부터 잔향까지.모두가 뒤섞여 도무지 구분되지 않는,냄새들의 저장소.금세 두통이 도졌다.발코니로 다가가 창을 열었다.앞 동은 층고가 낮고 뒤쪽은 야트막한 산이 배경인 아파트의 21층.벌거벗고 집안을 활보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높이에 그는 살고 있었다.발밑으로 솜뭉치 같은 먼지들이 풀풀거렸다.청소기를 돌리고 썩은 음식들을 내다 버렸다.자정이 넘은 시각,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남자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 날은 늦잠을 잤다.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그의 침구 속에서,나는 배가 고파 눈을 떴다.냉장고 안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생수 두 통뿐이었다.주방 수납장에서 라면 몇 봉지를 발견했다.계란도 단무지도 김치도 없이,끓인 라면을 뚜껑에 덜어 두 끼를 때웠다.정현수의 휴대전화를 충전해 전원을 켰다.다행히 잠금 설정은 되어있지 않았다.전화번호 저장함은 텅 비어 있었다.통화목록도 모두 지워져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신함에 읽지 않은 메일 수백여 통이 쌓여 있다.나는 잠깐 망설인다.메일들을 클릭하는 순간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스팸메일이야 그렇다 쳐도,수신 확인은 그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겠는가.어쩌면 나에겐 그것이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른다.우선 광고메일들을 체크해 휴지통으로 보낸다.발신자가 백화점이나 은행,식당,웹사이트 등의 상호로 표시되거나 제목에 ‘대출’,‘오빠’,‘신제품’ 같은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으면 무조건 삭제한다.그러고 나니 순수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듯한 메일 여섯 통이 남는다.지난달에 수신된 두 통은 결혼식과 돌잔치 안내가 제목으로 올라와 있고,한 통은 ‘형 잘 지내요?’로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다.네 번째 메일의 제목은 ‘수정 관련사항입니다’,발신인은 ‘한강병원’이다.언뜻 봐선 그의 사적인 일에 관한 내용인 듯싶다.정현수는 유부남이었을까.내용을 살펴본다.안녕하세요.한강병원 원무과 김 대리입니다.제작해 주신 홈페이지에 오류가 발생하여 문의 드립니다.추가로 수정을 원하는 부분도 상세하게 적어두었으니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비용 관련 협의는 전화로 했으면 합니다.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신인이 ‘리쉬케쉬’인 메일 두 통을 놓고 고민한다.리쉬케쉬는 실명일까,닉네임일까.‘제목 없음’이 제목인 이 메일은 광고일까,아닐까.얼핏 대부업체 상호 같은 느낌도 든다.인터넷 새 창을 열어 검색어를 입력한다. 요가와 명상의 도시 리쉬케쉬.갠지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히말라야의 관문이다.힌두교인의 성지이므로 이곳에서 푸자를 하고 꽃접시를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요가의 본고장이라 수많은 아쉬람과 요가선생들이 있고,비틀스가 구루(guru) ‘마하리쉬 마헤쉬’를 찾아와 머무르면서 더욱 유명해진 도시.장기간 요가와 명상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게 최적의 장소이며 금주와 채식의 고장.술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고 100% 채식을 하므로 이곳에서는 달걀조차 먹을 수 없다……. 수행자의 도시에서 온 메일.역시 판단하기가 어렵다.어쩌면 그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의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가입한 카페 목록을 열어본다.삼십대 중반의 남자라면 대부분 가입했음직한 성격의 카페들이 주르륵,여섯 개가 뜬다.등산,음악,사진,재테크,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CEO클럽.정현수의 직함은 대표이사였다.회사명은 ‘펨토테크놀로지’.첫째 날,그의 명함에 찍힌 회사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결번이었다.명함 우측 상단엔 ‘네트워크 솔루션’이라는 단어가 인쇄돼 있었다.회사 도메인을 주소창에 입력했다.웹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닫게 된 그 회사의 CEO가 정현수였다.한강병원에서 발주를 받은 건 회사를 폐업하기 전이었을까,아니면 이후일까.그가 되기 위해선 그를 완벽히 알아내야 한다.나는 리쉬케쉬에서 온 메일을 열어보기로 결심한다. 수신날짜가 8월 5일인 첫 번째 메일은 사진 한 장과 두 줄의 메시지가 전부였다. 내가 지금 이곳에 머무는 이유에 대해 잊으려고 노력 중이야.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어.요즘 사귄 새 친구를 소개할게. 허름한 골목길,얼룩소 한 마리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사진.소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물인지 침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메일은 내용 없이 인물 사진만 첨부돼 있다.통통한 체형에 단발머리인 여자는 무표정하다.그렇지만 딱딱하게 굳지 않은,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아마도 발신인의 사진 같다.두 통의 메일로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가 없다.그녀는 정현수와 어떤 관계일까.수신된 날짜는 10월 17일.내가 그를 발견하기 하루 전에 도착한 것이다. 마른 낙엽을 수북이 덮고 그는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평일 오후의 등산로는 한산했다.매표소 앞 매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사먹고 네 시쯤 오르기 시작한 산행이었다.중년부부 두 쌍과 젊은 여자 한 명,대학생으로 보이는 일행 대여섯 명 정도가 그날 마주친 사람 전부였다.어디서 넘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모두 하산 길이었다.조용한 산길에서 서로 말없이 길을 터주며 걸음을 재촉했다.깔딱고개를 지날 땐 평소보다 심하게 헉헉거렸다.지난밤 과도하게 마신 술과 담배 때문이었다.계곡을 치고 올라온 지 한 시간이 지났다.정상이 눈앞에 보였다.숨이 턱까지 차올랐다.마지막에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담금질하는 건 산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산속의 어둠은 모든 것을 까마득하게 지워버린다.주변은 물론,시야에서 사라진 길 위에 서있는 내 모습 까지도.검은 하늘과 더 짙은 능선의 경계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야간산행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당혹감을 넘어 두려움으로 온몸을 굳게 만드는 어둠.나는 산속의 어둠쯤 두렵지 않았다.거의 매일 오르내린 덕분에 눈 감고도 헤칠 수 있는 길이었다.호흡은 가빠도 마음은 더없이 고요했다.등산객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 산.그곳에 있을 때 나는 가장 자유롭고 평등했다. 물든 단풍은 정상 근처에서만 볼 수 있었다.발밑에선 낙엽들이 사각,소리를 내며 부서졌다.가을은 아직 오지 않고 가뭄이 세상을 바짝바짝 말리고 있었다.나는 용변 볼 장소를 찾아 길을 등졌다.널찍한 바위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보았다.굽이진 길 위로 하산하는 일행이 보였다.소변이야 대충 돌아서서 금방 끝낼 수 있지만 엉덩이를 까고 앉아야 하는 일은 더 은밀한 장소여야 했다.아래쪽은 급경사였다.다른 길을 찾아볼 여유는 없었다.나는 내리막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듯 뛰었다.이 정도면 됐다 싶은 곳에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어느새 파리들이 다가와 윙윙거렸다. 발끝으로 낙엽을 모아 용변을 덮었다.역시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냄새가 심했다.시큼하고 들큼하고 구렸다.손가락으로 코를 싸쥐고 발로 계속 낙엽을 찼다.사위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대충 정리를 끝내고 비탈길을 오르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누가 불러 세운 것 같기도,알 수 없는 신호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내가 앉아있던 주변을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내려다봤다.불룩하게 솟은 무언가가 보였다.바위도 아니고 흙도 아니었다.나는 슬금슬금 내려가 다시 그 자리에 섰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수북한 낙엽 사이로 푸른 옷자락이 보였다.손바닥으로 낙엽을 헤쳤다.역한 냄새가 훅 끼쳤다.푸른 상의에 검은 바지 차림의 누군가가 엎드려 있었다.그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차가웠다.이봐요.나는 푸른 옷의 오른팔을 들춰보았다.표피가 터질듯 부풀어 오른 파리 유충들과 딱정벌레 무리가 굼실거리고 있었다. 요동치는 마음과 달리 나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불현듯 오한이 들고 온몸이 떨려왔다.나는 망설였다.그냥 모른 척 되돌아가고 싶었다.후들거리는 발이 붙박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휴대전화를 꺼내 ‘119’를 눌렀다.깊은 계곡 안이라 통화불능이었다.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 통화를 시도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조금만 기다려요.그 말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천천히 몸을 움직여 일을 진행했다.구조대원들이 발견하기 쉽도록 그를 덮은 흙과 나뭇가지,낙엽들을 옆으로 치웠다.벌레들이 놀란 듯 꼬물거렸다.파리들이 머리 위를 맴돌았다.냄새 때문에라도 더는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현장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또다시 무언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그의 바지 뒷주머니 위로 반쯤 삐어져 나온 지갑. 나는 침착하게 등산장갑을 손에 꼈다. 어차피 이 사람에겐 소용없는 물건 아닌가.발견한 구조대원이 유족들을 수소문해 돌려줄 수도 있겠지.하지만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것을 먼저 발견한다면…….장갑 낀 손으로 지갑을 빼냈다.몇 장의 카드와 신분증,현금은 십만 원도 채 안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내 의도와 상관없이 유예된 삶에서 벗어날 방도를 궁리 중이었다.좀 더 잘살기 위해 선택한 길인데 어쩌다 보니 한가운데 갇혀버린 채 덜컥 문이 닫혔다.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그랬다.서른 살 넘은 무직자인 나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어릴 적 친구들뿐.누구도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나는 이제껏 그 흔한 연애조차 못 해봤다.더 나은 모습으로 더 좋은 상대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없었고 그런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집단이나 장소 역시 없었다.하지만 그건 명백히 내 잘못이 아니다.나는 열심히 노력해 왔다.단 한 번도 샛길로 빠져보지 않은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그렇다 해도 나를 그럴듯하게 돋보일 수식어가 없는 한,내 삶은 유예 중인 거였다.이제 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전면적인 궤도 수정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집마련을 목전에 두고 있는 또래들을 보면 더욱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다.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오던 길 계속 가는 것도 불안하고 새 길을 찾아내는 것 역시 자신 없다.나는 내 인생의 판을 새로 짜고 싶었다.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갑에서 현금 대신 신분증을 꺼냈다.아이 손바닥만 한 작은 플라스틱 판 안에 그의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이름은 정현수.나와 동성(同性)이고 나보다 한 살이 많다.뿔테 안경에 회색 스웨터 차림의 증명사진 속 그는 나이보다 조금 더 늙어 보였다.주소지는 서울의 남쪽 신도시에 위치한 아파트…….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이제껏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생각이,그야말로 섬광처럼 떠올랐다.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아니다.그것은 전부를 버려야 가능해지는 일이다.지금까지의 나,나의 생활,인간관계,과거 행적까지 모두. 그럴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순식간에 처리됐다.‘그럴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결단은 내리지 못한 채였다.나는 내 지갑의 신분증을 꺼내 그의 것과 맞바꿨다.신용카드 한 장과 그의 명함도 몇 장 챙겼다.현금은 건드리지 않았다.주머니에 지갑을 원래대로 꽂아두었다.오른쪽 앞주머니를 더듬어 휴대전화와 열쇠꾸러미까지 갈취했다.딱딱한 그의 골격이 손가락에 닿았다.헤친 낙엽과 흙을 다시 그의 몸 위에 덮었다.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깜깜한 그곳을 어떻게 등지고 하산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가을밤,산중의 바람은 차가웠다.땀에 젖은 바지가 다리에 자꾸 휘감겼다.어지러워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주저앉았다.멀리서 매점 불빛이 반짝였다.내 삶을 최초로 이탈하는 순간이었다. 두 통의 메일로 봐선 정현수와의 관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현재 인도에 머물고 있는 여자는 두 달 간격으로 소식을 전해왔다.그것도 너무나 간략하게.여자의 이전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싶어 메일 보관함을 뒤졌다.정현수가 따로 보관 중인 메일은 없었다.휴지통마저 텅 비어 있었다.그는 관리가 철저하고 주변정리가 깔끔한 사람이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들은 폴더 별로 분리되어 탐사하기가 수월했다.‘사진방’ 폴더를 클릭한다.날짜 및 장소별로 지정된 폴더 안에 인물 사진은 그의 독사진 몇 장뿐이다.나머지는 모두 풍경사진.내친김에 앨범을 찾아보기로 한다.서랍과 책꽂이,장식장,심지어 다용도실까지 뒤졌지만 그 흔한 졸업앨범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그는 누구일까.나는 갑자기 불안해진다.그를 빌리기로 결심한 이후 가장 걱정되는 점이 그의 인간관계였다.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과 통화목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용기를 내지 않았던가.그러니 오히려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그래도 설마 했지만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최소한의 관계인 가족조차도.모든 인연에 무관한 그의 삶이 어쩌면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닐까,궁금해진다. 사흘간의 탐사 끝에 비로소 나는 그가 되어 사는 일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파트 정문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상가 식당에서 백반을 사먹었다.식사 후엔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나는 정현수 대신,아니 정현수가 되어 거리를 쏘다녔다.그의 옷은 내게 헐렁했다.살을 좀 찌워야 하지 않을까,나는 잠시 고민했다.키는 더 늘일 수 없으니 소매와 바짓단을 줄여야 할 것이다.거대한 체구와는 다르게 정현수는 심플한 취향을 가졌다.살림살이 역시 단출했다.옷장,침대,컴퓨터 책상,주방가구.거실엔 한쪽 벽을 책장으로 채웠을 뿐 마땅히 갖춰야 할 티브이와 소파가 없다.드문드문 꽂혀 있는 책들은 대부분 IT와 경영관련 서적이고 간간이 ‘줄리아나의 리더쉽’,‘협상의 원포인트 레슨’ 같은 처세 관련 책들이 눈에 띈다.옷장 서랍 밑바닥에 통장 대여섯 개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모든 공과금은 정해진 날짜에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다.그는 통장마다 맨 앞 장 귀퉁이에 연필로 비밀번호 네 자리를 적어두었다.잔고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관계없음’으로 인한 정현수의 삶은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익숙한 내게는 무척 다행한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던 때 엄마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명심해라.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걸.아버지와 결혼할 당시 엄마는 항공사 승무원 시험 최종합격을 앞두고 있었다.사랑에 빠져있던 엄마는 결혼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어긋난 거라고.그때 내가 승무원의 길을 택했더라면…….평생을 잊지 못할 아쉬운 선택에 엄마는 탄식했다.그건 모르는 일이죠.그 길에서 또 어떤 일이 엄마를 어긋나게 했을지.어쩌면 지금보다 더 참혹했을 수도 있어요.나는 혼자 중얼거렸다.알밤을 맞을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의 고귀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믿는 일이,원래 주어진 참혹한 삶을 인정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였다. 졸업 후 여기저기서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금융권의 계약직 사원으로 취직한 동기들이 앞다퉈 나를 데려가려고 나섰다.나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이년째 낙방 중이었다.마음만 먹으면 중소기업 정규직 자리도 널려 있었다.서른이 넘도록 용돈을 타 쓰는 일이 괴로웠던 나는 솔깃했다.하지만 엄마가 고집을 부렸다.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네 인생이 달라지는 법이야.지금 그렇게 아무 곳에나 들어가면 너는 평생 그 좁은 바닥에서 푸드덕거리다 끝날 게다.어려워도 더 넓고 깊은 물에 뛰어들어야 해.나중에 후회 없으려면 엄마 말 잘 들어라.그렇게 삼 년이 더 흘렀다.취업문은 좁아졌고 동기들은 제 밥줄 잡고 있기도 힘겨워했다.엄마는 내가 큰 물에 몸을 던지는 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나는 지금 첫 단추를 새것으로 갈아치웠다. 받은 편지에 대한 답신을 보낸다.기쁜 날 참석 못해 미안하다.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당분간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할 것 같다.안부를 물어온 정현수의 후배에게도 마찬가지 내용이다.리쉬케쉬의 여자에게는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마지막으로 한강병원 김 대리에게 짧은 메시지를 적는다.보내주신 수정안 잘 받았습니다.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마감이 겹쳐 당장은 진행이 어렵습니다.조금만 말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며칠 후에 전화 드릴게요. H은행 통장정리기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다.입출금 명세를 기록하는 기계음이 찌익 찍,지루하게 이어진다.다른 은행에 비해 시간이 길다.인쇄되는 내용이 많은 걸로 보아 이곳이 정현수의 주거래은행인 모양이다.답신을 보낸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다.정현수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받아야 하나,말아야 하나.벨소리는 길게 이어졌고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잠시 후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한강병원 김 대리입니다.유지보수비 외에 수정비용을 따로 지불해드려야 할까요.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응답을 하지 않으면 또 전화가 걸려올지도 몰랐다.나는 간단히 답신을 보냈다.그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투입구에서 빠져나온 통장을 받아 살핀다.한강병원으로부터 매달 일정금액이 입금되고 있었다.김 대리가 말한 유지보수비,프로그램에 대한 사후관리비쯤 되는 것인가.그러잖아도 잔고가 떨어져 걱정하던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린다.발신번호를 확인하고 수신버튼을 누른다.네,정현수입니다.나는 또박또박,이름을 밝혔다.웹마스터 P가 인사말도 없이 웅얼거린다. “요청하신 작업은 사흘이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아,예.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결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갑에서 정현수의 신용카드를 꺼내 일련번호 열여섯 자리를 불러준다. 홈페이지 수정작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정현수의 실력까지 덮어쓸 순 없었으니까.김 대리에게 답신을 보낸 후 컴퓨터에서 ‘한강병원’ 폴더를 찾아냈다.나로서는 알 수 없는 파일들만 수두룩했다.집에서 가까운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찾아가 기존 프로그램의 수정과 보완이 가능한지를 물었다.담당자는 원본 파일들을 가져오라고 했다.집으로 돌아와 저장장치에 파일을 복사했다.그리고 어제 그것들을 P에게 건네주고 왔다. 지하철 역 입구에 서서 잠시 고민한다.오늘 저녁으론 무얼 먹을까.내가 살던 집 근처엔 할머니 혼자 삼십 년 넘게 꾸려온 순댓국집이 있다.좁은 공간에 테이블 여섯 개가 전부여도 끼니때가 되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맛 소문이 났다.요즘 자꾸 그 맛이 당긴다.정현수의 집으로 가는 길과 순댓국집으로 가는 길은 서로 반대 방향이다.어떻게 할까.주변을 무심히 둘러본다.길 건너 환한 불빛,‘병천○○순대’ 체인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횡단보도 쪽으로 몸을 돌려 걷는다.어쩌면 할머니 순대를 다시 먹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내 안에 축적된 기호와 습성들을 완전히 지울 방법은 없을까.나는,정현수니까. 온라인 원격교육 사이트에 로그인한다.첨삭해야 할 리포트가 다섯 개 올라와 있다.통신교육업체의 수강생들이 문제지를 풀어 올리면 그것을 채점하는 일이 나의 몫이다.각 과정별로 교재는 무료로 제공된다.나는 그 교재를 읽고 함께 제공된 답안지를 참고삼아 점수를 매긴다.의뢰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완료하면 되는 일이다.딱히 어렵거나 촉박하지도 않다.외부활동 없이 집에서 책을 읽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된다.대신 보수는 적다.리포트 한 건당 삼천 원.그럭저럭 웬만큼만 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며칠 동안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돌며 일을 찾았다.남은 잔고와 한강병원에서 입금되는 유지보수비로는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도 빠듯했기 때문이다.앞으로 생존에 관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정현수의 떡고물을 축내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까.결과물을 보고 김 대리는 아주 만족해했다.이번에는 그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윗선에서 따로 비용지불은 어렵다고 합니다.대신 제가 술 한 잔 사도록 하죠. 수강생의 이름을 클릭하고 점수 칸을 채운다.참고가 될 만한 사항은 교재에서 발췌해 따로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에 꼼꼼히 답을 단 사람들에게서 성실한 삶의 태도가 느껴진다.대부분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교재 내용은 직장 내 소통과 개인적인 성공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회사 내에서 상사가 지켜야 할 점,동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설득과 대화의 심리학…….틈틈이 다른 일자리를 더 알아봐야겠다.언제까지나 방구석에 처박혀 지낼 수만은 없다.정현수의 전공과 이력이라면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겠지.새로운 영역을 배우는 일,마음이 설렌다.그리고 상황이 된다면,아니 무엇보다 먼저,연애를 하고 싶다. “선배님,오랜만입니다.” 몸집이 작고 다부진 체구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나는 한강병원 로비의 회전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김 대리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해놓고 전전긍긍했다.지난번 빚진 거 갚아야죠.정 선배님 얼굴도 보고 싶고,한 잔 사겠습니다.처음엔 핑계를 대며 몇 번 거절했다.서슴없이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그가 정현수의 어느 시절 후배인지,그저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일 뿐인지,알아낼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무작정 미루고 있는 것도 불안했다.세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한 거였다.나는 최대한 정현수처럼 보이도록 치장했다.사진 속 그의 것과 비슷한 뿔테안경을 구입했다.옷장에서 가장 낡은 옷을 골랐다.낡은 것은 오래 묵었다는 증거 외에 그만큼 애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두툼한 회색 니트를 꺼내 입었다.키높이 구두를 신었더니 바짓단을 접지 않아도 되었다. “작년 봄 제작 회의 때 뵙고 이번이 두 번째네요.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제가 기억하는 선배님 첫 인상은 꽤나 듬직한 체격이었는데요.허허.” 당혹스런 속내와 달리,나는 머쓱하게 웃었다.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간다.김 대리가 잔을 든다. “과묵한 건 여전하시네요.” 선후배 사이긴 해도 두 번째 만남이라고 하니 저쪽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취기가 오르면서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티브이에서 저녁뉴스가 방영되고 있지만 취객들의 소음에 뒤섞여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다.화면과 자막을 흘끔거린다.불콰해진 김 대리는 말이 많아졌다.이 나라 국민치고 내일이 불안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침체의 늪에 이제 막 첫발이 빠졌을 뿐인데요,자신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요.저희 병원도 감원의 칼바람이 언제 휘몰아칠지 몰라 매일 살얼음판입니다.나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동조와 연민이 담긴 눈길을 보냈다.따끈한 온돌 방바닥에 엉덩이를 지지며 우리는 조금씩 노곤해졌다. “그런데,신 선배는 아직 연락 없어요?” 우물거리던 입놀림을 멈추고 그를 건너다본다.기어이 우려하고 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는 정현수와 사적인 관계였다.둘의 공통분모,신 선배라니. “아직…….” “참,세상 일 알 수 없고 믿을 놈 아무리 없다 해도 어떻게 신 선배가 그럴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이쯤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야 할까.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곤란한데. “정 선배님이야,회사 일로 알게 됐지만 신 선배하고 저는 수업도 같이 듣고 꽤 가까웠거든요.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그가 고기와 술을 추가로 주문하고 담배연기를 후,뱉으며 말을 잇는다. “선배님 많이 드세요.형수님 소식도 들었습니다.지난여름 동문 모임에서요.어딘가로 떠나셨다면서요…….혼자서 얼마나 힘드세요.” 나는 점점 궁금해진다.신 선배라는 사람은 정현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정현수의 아내는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그에게서 떠난 걸까.혹시 리쉬케쉬의 여자일까.이대로 묵묵히 김 대리의 말을 듣고 있어도 괜찮으리라.아마 정현수였더라도,지금의 분위기에선 그랬을 것이다.그의 몸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린다. “이게 다 신 선배 때문 아닌가요?그 사람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동업자이기 전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들었습니다.자기 혼자 잘살자고 그런 짓을 하다니요.결국 경쟁사만 좋은 일 시키고,회사 문 닫고,자기는 도망쳐버리고,친구도 잃고,이게 뭐예요.어떻게 정 선배한테 그럴 수 있냐고요…….” 풀썩,김 대리가 옆으로 쓰러진다.불판 위에선 까맣게 눌어붙은 고기조각이 오그라들고 있다. 김 대리의 말을 정리해 보면 신 아무개와 정현수는 절친한 친구이며 동업자였다.그런데 신씨가 정현수를 배신하고 회사를 닫게 만들었다.이후 정현수의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났다. 만취해 그대로 잠이 든 그를 힘겹게 깨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선배님 잘살아요.김 대리가 눈을 꿈뻑이며 중얼거렸다.나는 그의 등을 두어 번 다독이고 택시를 잡았다. 메일함을 연다.리쉬케쉬에서 메일이 도착했다.‘회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삶의 의미를,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 떠나온 지 벌써 이 년이 지났어.나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이 내가 찾아낸 정답이라면 당신은 아마 웃을 테지?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살아야겠어.다시 나로 돌아가 내 삶을 찾는 것이 방법일 거야.이곳에서의 삶도 그곳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사람 사는 모습은 엇비슷하고 어디에 머물든,어떻게 살든,나는 그저 나일 뿐이더라고…….당신 많이 보고 싶다. 여자의 도착 예정일은 11월 28일이라고 했다.앞으로 일주일 후면 그녀는 정현수를 찾아 이곳에 올 것이다.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나는 그녀를 맞이해야 할까,피해야 할까.그렇게 되면 나의 일생일대 프로젝트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삶을 원했던 이유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나는 무능한 사회부적응자였으니까.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기가 어려웠다.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모두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 나는 너무 많이 와버렸기 때문에.한 번만 더,이번엔 되겠지.미련을 쉽게 접을 수 없었다.모든 것을 내 손으로 허물어야 하는 일이 아직은 자신 없다.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내가 된다면 똑같은 고민과 패배감에 휩싸여 매일 산에 오르는 일만 반복할지 모른다.나는,나로 사는 것이 두렵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멍하니 바라본다.우측 선반 맨 위,낯익은 제목이 시야에 들어온다.만년수험생으로 타 분야 서적을 읽을 시간이 없던 내게 친구 녀석이 선물해줬던 책.‘잠깐 머문 곳도 내게는 고향’이라는 인상적인 구절이 떠오른다.의자를 놓고 올라가 그것을 꺼내든다.툭.발밑으로 무언가 떨어져 내린다.누런 서류봉투가 반으로 접혀 있다.도톰하다.책을 내려놓고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낸다. 모두 같은 장소에서 찍힌 수십 장의 사진이다.리쉬케쉬의 여자와 정현수.새하얀 예복을 입은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그와 그녀가 공유했던 삶의 윤곽…….봉투와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 쫓기듯 도망치듯 나는 밖으로 뛰쳐나온다.정현수 당신,고작 이런 거였어?그를 빌리기로 작정했던 순간 내가 바라던 상황은 이런 게 아니었다.적어도 나보다 나은 인생일 거라 믿었는데…….이런 삶을 나더러 어떻게 살아내라고.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뒷산을 오르고,다시 내려와 걷는다.인도를 따라 무작정 뛰고 헉헉대며 걷다가 호흡이 잦아들면 다시 뛴다.어느 방향이든 상관없다.지극히 외롭고 무거운 그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정현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그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였을까.어쨌든 그는 실족하지 말았어야 했다.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삶을 내가 이어 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이것은 무늬만 다른 삶 외에 어떤 뜻이 있는가.지금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미래가 되고 어느 지점쯤에 다다르면 나는 또 새 판을 짜고 싶어질까. 리쉬케쉬의 여자처럼 나도,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옷장 안 깊숙이 넣어두었던 등산복을 꺼내 입는다.두꺼워진 허리에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다.허리띠 버클을 조정해 간신히 채운다.배낭을 메고 그의 신분증과 휴대전화,신용카드와 명함,열쇠꾸러미를 주머니에 넣는다.현금카드,통장,그동안 사용하던 물품들은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마지막으로 현관에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돌아온 그의 여자가 낯선 흔적을 발견할 수 없길 바라며. 어둑해진 산길을 천천히 오른다.사각거리던 낙엽들이 어느덧 수북이 쌓여 발목을 푹신하게 감싼다.오랜만의 산행이라서일까,무거워진 몸 때문일까.걸음이 쉽지 않다.리쉬케쉬의 편지 내용이 떠오른다.다시 나로 돌아가 내 삶을 찾는 것이 방법일 거야.나는 그저 나일 뿐이더라고.새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남의 인생을 덮어쓰는 일,그것은 결국 누구의 삶도 아니었다.과거를 버려둔 채 현재의 나를 바꿀 수는 없는 거였다.그런데 길이 낯설다.그날 내려왔던 그대로 마른 계곡을 따라 길을 잡았는데 이쯤 나타나야 할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하산 길 이정표를 지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는데. 이정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부쩍 떨어진 기온에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그를 다시 만나야 하는 일이 내키진 않지만 내 자리로 돌아가려면 이곳을 꼭 거쳐야 한다.빌린 물건을 돌려주고 맡긴 내 물건도 되찾아야 하니까.이제 회계사 시험공부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다시 나로 돌아가 모든 것을 엎고 새 삶을 시작할 것이다.조만간 납골당의 엄마에게 인사드리러 가야겠다.발걸음이 빨라진다.계곡 깊이 내려앉은 어둠에 더 이상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다.랜턴을 켠다.십여 미터 전방에 그날의 바위가 보인다.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친다. 바위 뒤를 돌아 내려선다.낙엽더미에 무릎이 푹,빠진다.벌레도 냄새도 거의 사라졌다.춥고 건조한 초겨울의 바람 덕분이리라.발견 당시 유충들의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던 정현수.죽음 이후의 삶은 이곳에서 더 의미 있고 유용했을지 모르겠다.장갑을 끼고 낙엽을 헤집는다.정확한 지점이 어딘지 헷갈린다.앉아 있던 자리 주변을 몇 군데 파헤친다.다시 몇 걸음 옮겨본다.일어서서 발로 바닥을 굴러본다.어느 지점쯤,돌출된 나무뿌리를 밟은 듯 딱딱한 느낌.자리에 앉는다.장갑 낀 손으로 그곳을 더듬어 굴곡을 살핀다.머리끝까지 소름이 돋는다.잘 있었어요…….나도 모르게 울컥,감정이 솟는다. 수분이 빠져나간 그의 둔부는 아래로 쑥 꺼져 있다.지갑이 꽂힌 자리만 조금 도드라질 뿐.나는 챙겨온 정현수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낸다.먼저 휴대전화와 열쇠꾸러미를 그의 바지 앞주머니에 밀어 넣는다.어쩐지 이전보다 헐렁해진 느낌이다.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낸다.휴대전화의 감촉이 손끝에 와 닿는다.채우고 흐르던 내용물이 사라지고 지지대만 남은 그의 몸.갑자기 누군가 머리칼을 잡아챈 듯 정수리에 극심한 통증이 인다.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펼쳐 신분증을 교환한다.꽂혀있던 내 것을 꺼내고 가져온 그의 것을 쑤셔 넣는다.그리고 재빨리 지갑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둔다. 모든 것은 끝났다.이제 나는 돌아가 내 삶의 새 판을 짤 것이다.그럼,잘 있어요.인사를 마치고 신분증을 내 지갑에 꽂는다.그런데 뭔가 이상하다.손끝에서 느껴지는 낯선 이물감.신분증을 다시 꺼낸다.바닥에 두었던 랜턴을 집어 그것을 비추어 본다.경련으로 요동치는 내 손바닥 위의 이것은……,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의 주머니에 있던,내가 꺼낸 신분증에 기록된 낯선 사진과 정보.이름 한재우.주민등록번호 690125……. 무릎이 꺾인 듯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그의 지갑에 넣어두었던 내 신분증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정현수가 보관하고 있어야 마땅할 내 물건.대체 누가 나와 똑같은 짓거리를 한 걸까.여기 이렇게 얌전히 엎드려 있는 이 사람은……,누구인가!나는 거칠게 그를 뒤집어 가슴팍을 움켜 일으킨다. 손에 들린 파란 등산복 밑으로 우수수,무언가 떨어져 내린다.
  • [아름다운 간판 2008] “간판도 문화상품… 지역적 특성·환경 반영해야”

    [아름다운 간판 2008] “간판도 문화상품… 지역적 특성·환경 반영해야”

    지난 1년 동안 서울신문은 행정안전부와 함께 ‘아름다운 간판 2008’ 공동 기획을 통해 우리나라 간판을 비롯한 공공디자인의 현주소를 되짚어보았다.또 국내외 우수 사례를 발굴·소개하는 등 나아갈 방향도 모색해 봤다.한 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순서로 박경배 행정안전부 지역발전정책국장,권영걸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류화선 경기 파주시장,김성훈 한국옥외광고학회장(세명대 교수),최범 간판문화연구소장 등 5명의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간판 문화를 끌어올리기 위한 성과와 한계,개선 방안 등을 들어봤다. →선진국을 100점으로 할 때 우리나라 간판 등 공공디자인 분야의 점수는. ●최 소장 30점이다.최소한의 심미성이나 사회적 기능성을 찾기가 어렵다. ●김 회장 60점이다.성숙된 문화를 키워나가기 위한 시작 단계라는 의미다. ●권 본부장 70점이다.역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현대·삼성·LG 등 산업디자인의 경우 한국은 디자인 강국이다.고속 성장을 거치면서 공동선을 위한 조화·협력의 윤리를 익히지 못한 탓이다.이제 디자인 역량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류 시장 간판은 상업적 가치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됐다.디자인 역량은 사적인 소비영역에 집중됐고,공적인 문화영역에는 관심이 적었다.때문에 점수화하기도 힘들다. ●박 국장 점수화하기 어렵다.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가진 선진국과 비교하기는 아직 이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추진한 간판정비사업 등 공공디자인 분야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김 회장 올해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옥외광고물 관리법’ 등을 현실적으로 개편한 점이다.체계적 관리를 위한 골격을 만들었고,지자체장들의 관심도 높아져 공무원들이 일할 토양도 마련됐다. ●박 국장 2007년에 옥외광고물 정책의 기틀을 만들었다면,올 한 해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지자체에 디자인 전담부서가 신설되고,공공디자인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는 등 성과가 나타났다.또 옥외광고센터 신설로 체계적 발전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고,옥외광고물 실명제 및 광고물 면적총량제 도입 등 규제 위주의 법체계도 개선했다. ●권 본부장 지난해 5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발족한 이래 도시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공공디자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지난 3월에는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거리에 산재한 1만 5000개의 행정현수막과 280개의 선전탑도 철거했다.옥외광고물 데이터베이스(DB)구축사업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세계 디자인 수도’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류 시장 과거 파주의 길거리 간판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심지어 어느 개인병원은 건물에 무려 9개의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불법 광고물을 정비하고,현수막이나 전봇대 등에 붙여 놓은 인쇄광고물을 떼어냈다.도심에서는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시범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추진한 간판정비사업 등 공공디자인 분야가 갖고 있는 한계는. ●박 국장 아직까지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체계화된 정책이 미흡하고,공공디자인이란 개념이 국민들의 정서에 파고들지 못했다. ●권 본부장 간판을 획일화·표준화·규격화한 한계도 있었다.또 점포주의 인식 부족으로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고,예산이 적어 디자인을 적극 살리지 못했다.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시범사업 성격이지만,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 방안이 다각도로 논의돼야 한다. ●류 시장 공공디자인은 삶의 공간을 바꿔나가는 일인 만큼,시민 의식을 전환하는 사회·문화운동이 돼야 한다.하지만 아직은 시민 참여가 부족하다.일본의 경우 주민자율협의체도 구성돼 있다. ●김 회장 선진국은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화로 정착했고,우리는 짧은 기간 관 주도로 이뤄져 시민들이 따라가는 형태다.또 지자체들이 장기적인 계획 아래 개선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단체장의 홍보용이나 일회성 사업이 많았다. ●최 소장 사업 목표와 방법 등 여러 면에서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다.특히 주민 참여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앞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지나치게 획일적인 정책이나 제도가 간판 문제의 원인으로도 꼽힌다. ●권 본부장 많은 지자체들이 간판개선사업을 획일적인 틀에 의해 추진하는 경향을 보인다.전체주의적 사고는 저항을 부른다.간판은 도시환경적인 맥락에도 부합돼야 하지만,간판주에게도 만족스러워야 한다.간판의 정답은 ‘다양성 속 통일성’‘통일성 속 다양성’이다. ●류 시장 옥외광고물 관리법 등은 지역의 특성과 정체성을 살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시·도의 조례 등에는 여전히 획일적 규제도 남아 있다.이는 관·공무원 편의주의로,시민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 간판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다 보니,획일화 현상이 발생한다.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면,앞으로는 정부의 지원 아래 지자체나 민간단체가 지역적 특성과 환경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박 국장 지나친 규제는 다양성과 창조성을 배제한 획일화와 경직화를 낳을 수 있다.지자체에서 자율적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법체계를 개편하고,관련 공무원 등에 대한 교육도 꾸준히 실시할 계획이다. →간판 등 공공디자인은 도시경쟁력도 결정한다.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는. ●최 소장 공공디자인은 한 사회가 어떠한 미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공급이 된다.공공디자인에 대한 접근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돼야 한다.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선결 과제다. ●권 본부장 공공디자인 선진국은 생태적으로 건강하고,도시간 격차가 적으며,고른 문화향수 기회 등이 보장된 나라다.창의적 공간,쾌적한 도시,정체성 있는 국가는 그 자체로 브랜드이자 경쟁력이다.공공디자인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자 방법이다. ●김 회장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인식돼야 한다.문화로 자리잡는 데는 정부 위주의 규제보다는 시민 스스로의 자율 규제가 훨씬 효율적이다.지금은 소비자인 시민들이 무관심하다.시민들이 이해하고,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류 시장 세계적 보편성 위에 지역 특성을 담아야 한다.예컨대 파주시의 공공디자인 연구는 시민에 대한 연구와 파주라는 도시의 물리적인 조건에 대한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그래야 구성원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촉진시킬 수 있다. ●박 국장 선진국의 유명 도시처럼 도시경쟁력을 갖추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수히 많다.좋은 정책도 엉뚱한 방향으로 실시되면 무용지물인 만큼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또 민·관 협력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앞으로 간판 등 공공디자인 분야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나 사업은. ●박 국장 아직까지는 선진국을 모방하는 수준이다.범정부 차원의 실행계획과 국민의식 전환 등을 위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부처별로 추진하는 정책을 통합 운영할 수 있는 법안 마련과 기구 신설이 필요하다.또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업계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원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권 본부장 간판은 도시 경관의 한 요소다.거리는 간판을 비롯,90여종의 가로시설물에 대한 통합디자인,보도 평탄화 등 보행성 개선,가로수 수종·수형 연구,친수 공간 마련,보도·차도간 경계 연구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서울시가 ‘디자인서울거리’ 사업을 토털디자인 방식으로 추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 회장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육이다.시민의식 전환을 위한 사회 교육,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관리하기 위한 공무원·업계 교육,학문 체계 없이는 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전문가 양성교육 등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류 시장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은 체격이나 신체 능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과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공공디자인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 ●최 소장 공공디자인은 환경 개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를 지닌다.따라서 공공디자인을 시혜적·과시적 수단으로 삼아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삶의 질이 높아지면 경쟁력은 저절로 높아진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민간단체,주민 등의 역할 분담도 중요한 문제다. ●최 소장 중앙정부가 정책을 주도하되,지방정부의 자율성도 보장해 줘야 한다.또 시민의식이 낮은 상태에서는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활용도 중요하다.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거버넌스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 국장 시민단체와 주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시민단체의 주된 관심도 기존 정치·경제 문제에서 문화·환경 문제로 옮겨가야 하고,주민들도 실천가이자 감시자로 활동해야 한다. ●권 본부장 주민이 주체가 되고,민간단체가 보조하며,관은 선별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물론 중앙정부는 국가 공공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고,지자체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정부와 지자체의 할 일도 많지만,공공디자인은 시민들이 스스로 규율할 때 완성된다. ●류 시장 ‘디자인 게임’이라는 용어가 있다.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마을의 환경을 새롭게 가꿔나가는 것을 뜻한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공무원과 자원봉사자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바로 가장 바람직한 공공디자인의 방향이다. 정리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방 예산절감 우수사례] 새는 예산잡는 ‘자린고비’ 지자체 29곳 선발

    [지방 예산절감 우수사례] 새는 예산잡는 ‘자린고비’ 지자체 29곳 선발

    지방 행정가에서 내로라하는 ‘자린고비’ 자치단체들이 처음으로 선발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일 정부중앙청사 국제회의장에서 올해 처음 도입한 ‘지방예산절감 우수사례 발표대회’를 갖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한 29개 지자체에 대통령상 등을 시상했다.전국 151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참여해 치열한 예선 경쟁을 벌였다. 전북도와 경남 양산시는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서울 영등포구 등 4개 지자체는 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아 7억원과 5억원의 포상금을 각각 받았다.또 서울 강동구 등 지자체는 행안부 장관상과 서울신문사 사장상(이상 장려상)을 수상해 3억~2억원씩의 포상금을 받았다. 원세훈 행안부 장관은 치사를 통해 “이 행사의 취지는 불필요한 일을 과감히 버리고 예산 사용에서 낭비 요인을 찾아 없애려는 것”이라면서 “모범 사례는 지자체간에 벤치마킹을 하고 제도화해 확산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우수상을 받은 2개 지자체와 우수상을 받은 4개 지자체의 절약 사례를 소개한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대통령상 전북도 ‘통신망 회선 통합’ 통신비 등 1000억원 줄이고 품질도 업그레이드 전북도(도지사 김완주)의 행정통신망 회선 통합은 통신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통신망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동안 전북도청↔시·군청↔읍·면·동사무소↔사업소간에는 인터넷·전화·소방망 등 여러 회선으로 나눠져 있었다.회선별 중복 투자는 물론 상용망이 아닌 전용망을 사용함으로써 통신요금이 많이 나왔고,대역폭 또한 작아 읍·면·동에서 동시에 회선을 많이 사용하면 속도가 느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도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군의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댔고,다른 지자체의 비슷한 사례도 벤치마킹해 실정에 맞는 표준화 방안을 마련했다.이에 따라 ‘회선사용료 방식’을 버리고 기관간에 연결된 회선을 빌려 사용하는 ‘회선임대 방식’을 선택,계약된 요금 범위 안에서 기관이 원하는 만큼 회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소방용,경보용 등 각기 다른 회선을 ‘이중화 링(Ring)형’이란 통합망으로 만들어 돌발 장애가 발생해도 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도입 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도 나왔다.그동안 자체 통합망 방식을 구축했던 7개 시·군이 강하게 반대했고,기존 회선료 범위에서 사업을 추진하자 회선 대역폭을 많이 확보해 놓았던 시·군과 그렇지 못한 곳의 의견이 엇갈려 어려움을 겪었다. 전북도 관계자는 “현재의 통신망 운영의 문제점은 회선 사업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면서 기존 방식을 매년 답습해 발생했다.”면서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도 입장에선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고 시·군 담당자와의 협업 체계도 제대로 갖춰지게 됐다.”고 자랑했다.전북도는 이 시스템 도입으로 향후 3년간 133억원의 직접 절감 효과와 1000억원의 간접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대통령상 양산시 ‘낡은관’정비 효율화 상·하수도 동시 공사…비용·기간 절반으로 경남 양산시(시장 오근식)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상수도관과 하수도관 정비공사를 동시에 시행함으로써 178억원의 예산을 절감하고,특히 주민 불편을 줄인 점이 돋보인다. 지난해 중앙동,삼성동 등 구도심의 하수관 정비공사를 위해 땅을 파면서 낡아 교체가 필요한 상수도관도 동시에 바꾸었다.별도 공사를 했다면 공사비가 더 들게 뻔하기 때문이다. 양산시는 하수관 정비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했다.공사 현장은 상수도관이 설치된 지 평균 16년이 넘은 곳이다.이 때문에 곳곳의 상수관이 파손돼 누수와 민원이 잦은 지역이었다. 상·하수관 정비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교통을 차단하고 도로 굴착과 복구 작업을 해야 한다.공사 비용과 기간이 두 배로 들지만,되풀이되는 교통 정체와 주민 불편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두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지만,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동일한 공사 현장에서 두 개 이상의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함에 따라 업체간의 책임 구분,작업상 혼란 등 우려 때문에 상·하수관 정비공사를 동시에 시행한 사례가 국내에 없었다. 양산시 직원들은 연일 토론과 검토 끝에 구간별 하수관 정비사업자에게 상수관 정비의 시공과 책임감리까지 맡김으로써 동시에 공사를 시행하는 방법을 찾았다. 올해부터 45.5㎞ 구간의 상·하수도관을 정비하는 공사를 시작해 2010년에 완공할 예정이다.양산시는 별도로 공사를 했다면 324억원이 소요될 상·하수도 정비공사를 동시에 시행·시공함으로써 총공사비 146억원으로 거뜬하게 해결,총 55%의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오시장은 “절감한 예산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에 적극 재투자하고 내년에도 예산절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장관상 부산시 중복 생계보조비로 차상위층 도와 부산시(시장 허남식)는 지난해까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에게 분기별로 18만~36만원씩 지원하던 생계보조비를 올해부터 폐지했다.생계보조비가 이중으로 지원되는 허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생계지원을 위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675억원을 지원했다.그러나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면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게 정부가 일괄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시에서 모·부자가구 생계보조비 등을 중복해 지원한 것이다. 또 예산 절감을 통해 올해 22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다.이 가운데 3억원을 광역자활센터의 설치,광역자활공동체 사업단의 운영에 사용했다.2012년까지 매년 20억원씩 총 100억원의 기금을 추가로 조성,차상위계층의 자활을 돕기로 했다.허시장은 “기초생활수급자뿐만 아니라 차상위계층도 사회적 빈곤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이고 다양한 시책을 마련,적극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장관상 경남도 ‘토너 농도 조절’…年1억이상 아껴 경남도(도지사 김태호)의 ‘프린터 토너 절감시스템’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경남도는 정보화담당관실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 따라 소프트웨어 개발 중소업체와 손잡고 문서를 출력할 때 들어가는 프린터 토너량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 개발에 나서 지난해 5월 토너의 농도를 조절해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경남도와 산하기관에서는 지난해 1105대의 프린터에 6억 2600만원의 토너비용이 들었다.이번에 토너절감 시스템을 설치해 운영한 결과 연간 1억 2500만원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행정기관에서 사용하는 10만여대의 프린터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연간 12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토너 절감 시스템은 민간기업에서도 설치해 사용할 수 있기에 기대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특히 탄소의 일종인 프린터 토너의 절감은 ‘저탄소 녹색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장관상 서울 영등포구 국세 환급금 압류… 체납세금 징수 서울 영등포구(구청장 김형수)의 지방체납금 징수 방식인 ‘국세 환급금 압류’는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았다. 한 세무 직원이 신문에 보도된 ‘국세청은 고액지방세 체납자 6971명에게 국세 2226억원을 환급해 주었다.’는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내놓았다.지방세 체납정보와 국세 환급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기에 국세청 국세환급 전산자료에서 지방세 체납자를 조사해 국세 환급금을 압류하면 체납 지방세를 받을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서울시 세무공무원 직무 연찬회’에서 연구과제로 발표됐지만 실현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사장되는 듯했다.여기서 직원들의 오기가 발동됐다.이후 행정안전부로부터 부가가치세 환급자료를 받아 2억 7600만원(617건)을 압류 징수했고,두 번에 걸쳐 이 방법으로 국세환급금을 압류해 3억 1200만원을 징수해 가능성을 입증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장관상 대구 중구 관용차 줄여 年1억5000만원 절감 윤순영(56) 대구 중구청장은 지난 6월 관용자동차를 반납하고 도보 출·퇴근을 선언했다.중구 대봉동의 윤 구청장 자택에서 중구청사까지 30여분 거리이지만 6개월째 걸어서 통근하고 있다. 구청장의 전용차인 ‘그랜저XG(2500㏄)’를 의전·행사 전용으로 돌리고,업무 수행 때에는 소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부구청장과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윤 구청장은 “관용차는 사용 연한이 끝나는 내년 2월에 매각 처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방예산절감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대구 중구는 우선 에너지 절약으로 예산절감을 실천하기로 했다.실·과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승용·승합차량 3대를 매각하고 부서별로 1대씩 총 48대의 업무용 자전거를 보급했다.가까운 출장은 물론 출·퇴근 때에도 직원들이 이용하도록 했다.덕분에 중구는 차량구입비와 유지관리비,인건비 등 연간 1억 5000만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사라져가는 활판인쇄 전통잇는 ‘활판공방’

    ”과거가 있어야 현재와 미래가 있다.” 남들이 모두 앞만 보고 달릴 때 사라져 가는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에 대가 따위는 생각도 안하고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 70 년대 말 이후 맥이 끊겼던 활판인쇄를 되살린 ‘출판도시 활판공방’ 식구들이 그렇다. 활판공방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납 활자로 책을 찍어내는 인쇄소 겸 출판사다. 시월 출판사의 박한수 대표와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박건한 시인 등이 힘을 합쳐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이들은 디지털 인쇄술의 등장으로 맥이 끊긴 활판인쇄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전국을 돌며 고철이 되어버린 인쇄기계를 찾아냈다. 뿔뿔이 흩어져있던 문선공과 주조공들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활판인쇄를 복원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김찬중씨를 비롯한 문선·주조공들이다. “활판인쇄를 되살려보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이미 사라져버린 것을 왜 하겠다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간 손에서 놓았던 일이기 때문에 머뭇거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해보겠다는 열정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활판을 만드는 곳도, 이런 방식으로 책을 찍어내는 곳도 여기뿐이다.” 어렵사리 활판인쇄를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50년간 문선공으로 일했다는 정흥택(69)씨는 “가장 큰 문제는 후계자도 없을 뿐 아니라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 만약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활판 인쇄를 하는 곳도 많아야 하지만 현재는 이 곳 뿐이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곳 문선·주조공들이 60~70대가 대부분인 만큼 전통을 계승할 젊은 층의 육성이 시급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기술의 발달과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이제는 ‘과거’이자 ‘전통’이 되어버린 활판인쇄. 사라져가는 것을 되살리려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박건한 편집주간은 “발전하려면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 미래도 있는 것”이라며 “고생스럽겠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기는 쉽다. 간편하고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마솥은 다르다. 밥 짓는 내내 불을 때며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만큼 힘이 든다. 그렇지만 가마솥 밥에는 그만큼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져 있다. 밥을 지을 때 마다 밥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활판인쇄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장인들과 낡은 기계들이 만들어 내는 활판인쇄 책은 그야말로 ‘명품’이다. 주조(鑄造·납으로 자모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쇄, 접지, 제본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질 뿐 아니라 납 인쇄의 특성상 단 1000부 만 인쇄가 가능하기 때문에 희소가치도 높다. 책마다 고유 번호와 각기 다른 머리말이 찍혀 있다는 점도 ‘명품’으로 불리게 하는 이유다. “보통 책은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날아가 글씨가 흐려진다. 하지만 활판인쇄는 고급한지에 잉크를 스며들게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500년은 거뜬히 보존할 수 있다.” 제본을 맡고 있는 이청일씨의 말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좋은 질의 책을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활판공방은 백발성성한 장인들의 땀방울로 가득하다. 이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 ‘말(馬) 신발’ 신기는 ‘장제사’를 아시나요? 글 /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加 바이애슬론 女대표, 훈련비용 위해 누드

    加 바이애슬론 女대표, 훈련비용 위해 누드

    캐나다 바이애슬론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훈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누드 달력 판매에 나섰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캐나다 바이애슬론(biathlonㆍ스키에 사격을 겸한 복합경기) 여자 선수들이 훈련 비용을 마련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 옷을 벗었다. 지나 코커, 샌드라 키이스, 로산나 크로포드, 미건 아임리, 미건 탠디 선수는 짧은 반바지, 탱크 탑, 출전표 등만 살짝 걸친 채 찍은 사진들을 담은 달력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대담하고 아름다운 바이애슬론’(Bold Beautiful Biathlon)이라는 주제를 붙인 이 달력에서 노출된 다리에 ‘힘(Power)’, ‘조준(aim)’, ‘대담한(bold)’, ‘집중(focus)’이라는 글자를 인쇄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22일 캘거리 다운타운에서 자신들의 달력 판매 촉진을 위한 행사를 열었다. 가격은 25달러로 모두 5만부가 인쇄됐다. 이들은 모두 8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올림픽을 대비한 훈련 비용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선수들은 달력에서 힘과 균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격하는 모습도 촬영했다. 동계 스포츠 강국인 캐나다에서도 바이애슬론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종목으로 스폰서가 없으며 정부 지원도 충분하지 않아 선수들이 직접 자금 충당에 나선 것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starlee07@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지숙의 미술산책] 장애인 배려 아쉬운 헤이리 갤러리들

    주말 아침, 대개는 밀린 잠을 자거나 빈둥거리게 되는 이른 시간에 헤이리로 가는 임대버스에 몸을 실었다. 장애인을 위한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과 아르코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진행하고 있는 (장애청소년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화책이 제작되는 인쇄소와 어린이청소년 책 전문서점, 갤러리 등을 직접 가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9월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3명의 장애 청소년들이 12주 동안 글쓰기와 그리기, 만들기 등의 워크숍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주 월요일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이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발달장애 등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가장 멀리는 광주에서부터 하나둘 씩 대학로로 모여든다. 몇 회 워크숍을 거치면서 서로 이름도 익숙해지고 워크숍 과정이 슬슬 지루해지기도 할 무렵, 바람도 쐴 겸 같이 소풍을 떠난 셈이다. 날씨도 좋았고 일정에 차질도 없었고 섭외된 기관들도 대부분 협조적이었으니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나들이였을 법한데도, 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참여한 학생들은 장애의 종류도 다르고 각자 처한 상황도 차이가 있어서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가족, 친지들이 함께 움직이게 된다. 당연히 이동의 속도도 느리고 간혹 수화통역 때문에 산만해지기도 하고 여러 명이 동시에 서로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부산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했던 현장의 조건은 이런 차이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준비되어 있거나 혹은 순발력이 있는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렵사리 마련한 이 체험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많은 부분 그냥 흘려보내는 것 같아서 영 아쉬웠던 것이다. 특히 이런 자책의 마음은 헤이리의 갤러리들을 방문하면서 배가되었다. 예의 현대미술이 종용하는 “만지지 마시오”란 우리 일행과는 상극인 관람방식이 아니던가. 전시를 같이 관람하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전시된 작품이 다칠세라, 다른 한편으로는 참가자들 마음이 다칠세라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모든 시설에서 장애인전용 엘리베이터나 점자안내도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설사 그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완비된다고 해서 저절로 문제가 해소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장애인복지 차원의 문제일 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문화적 인식이나 태도의 전향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장애인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최소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접근성의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최고의 경험을 급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저마다 접속할 수 있는 까다롭고도 복합적이며 유기적인 문화적 인테페이스가 개발될 때 비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질은 저절로 동반 상승되기 마련이다. 반면,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활동은 그 기회상 특별한 우대가 필요하지만 평가의 단계에서는 보다 냉엄해질 이유도 있다. 예술의 경우 장애가 그저 한계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실험성에 대한 제고 그리고 정상성에 대한 재고는 이미 미술사를 통해서밝혀진 대로 장애를 통해 더 깊이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까지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르코미술관장
  • ‘환율 공포’에 떠는 수입상가·수출공단 르포

    ‘환율 공포’에 떠는 수입상가·수출공단 르포

    원화가 미국 달러뿐 아니라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유럽 유로화에 대해서까지 약세를 보이면서 중소기업·자영업자와 일반 서민들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서울신문이 10일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 용산전자상가, 구로 중국동포 마을, 충무로 인쇄골목 등 4곳을 현장 취재한 결과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환율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엔화 환율 등으로 용산전자상가에서는 한국인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외국인 고객들만 북적였다. 구로 디지털단지에서는 임금을 체불하는 업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충무로인쇄골목은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했다. 구로구 중국동포들은 국내에서 같은 월급을 받아 중국에 보내면 절반수준이라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환차익을 보기 위해 중국에서 국내로 역송금하는 사례도 빚어지고 있다. 이경주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특파원 칼럼] 멜라민에 묻힌 사실/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멜라민에 묻힌 사실/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류샹(劉翔)의 발목이 왜 그렇게 약해졌는지 새롭게 밝혀졌다는데 들어봤어?” 국경절 황금연휴가 한창인 주중, 중국인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베이징올림픽에서 발목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중국의 육상 영웅 류샹 얘기가 다시 나왔다.“‘이리(伊利) 분유’를 마셔서 그리 됐다잖아….”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리 유업은 싼루(三鹿), 멍뉴(蒙牛) 등과 함께 ‘멜라민 분유’를 제조한 회사이고, 류샹은 이 회사의 오랜 광고 모델이다. 그러자 누군가 휴대전화를 꺼내들더니 “재미있는 메시지가 있다.”며 읽기 시작한다. 모기가 젖소를 물었는데, 생각했던 맛이 아닌지라 ‘아, 중국에서 언제쯤에나 신선한 우유를 맛보게 될까.’하고 한탄하더라는 내용이다. 이날 멜라민 분유는 화제에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른바 ‘고위층 특별식’도 거론됐다.“특별식 먹는 고위층들은 이런 분유·우유 안 먹어봤을 거 아냐. 결국 돈없고 불쌍한 서민들만 또 당했다.”고 한 친구가 혀를 끌끌 찬다. 누군가 “당국이 얼마전 특별식의 존재를 부인했다.”고 하니,“무슨 소리냐. 담배건, 술이건 모두 ‘특별히 공급한다.’는 ‘특공(特供)’ 글자가 인쇄돼있고 아예 포장 자체가 다른데 특별식이 없다니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친구가 “젖소가 중난하이(中南海)에서 풀을 뜯고 있더라는데, 별도로 기르는 모양이지?”라고 끼어들자 또 다시 웃음이 터져나온다. 중난하이는 국가지도자들의 집무실이 밀집한 베이징 내 별도 구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대화는 시종 풍자로 가득했고, 때로는 ‘위험 수위’도 넘나들었다. 누군가 ‘분위기 파악’에 늦으면 “싼루 먹었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 친구들은 막상 ‘세계적으로도 큰 소동이 났다.’는 말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홍콩, 타이완을 비롯해 동남아 일대와 뉴질랜드에 한국, 일본, 미국, 유럽에까지 파문이 일고 있다는 얘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과자·초콜릿 메이커에까지 불똥이 튀었다.’고 하니 “왜?”라고 묻는다.‘모두들 중국산 원료를 썼기 때문’이라는 답에 그제서야 멍한 표정에 눈을 껌벅거린다. 국영기업 중견 간부에 TV사 관계자, 광고회사 사장 등 잘나가는 30대 화이트칼라인 이들도 미처 모르고 있던 ‘묻힌 사실’이다. 그제서야 타이완 출신인 한 친구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한국도 문제가 심각하냐?”고 나지막이 묻는다. 지금까지는 대륙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타이완은 지금 큰 일이다. 양안 관계 개선을 원하는 마잉주(馬英九) 정권이 중국산 식품에 대한 검사 기준을 대폭 낮추는 바람에 이런 상황을 맞게 됐다는 인식들을 갖고 있다. 마잉주 정권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멜라민 파동은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인가.“몇차례의 올림픽 개최나 우주선 발사로도 만회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민적 불신에서부터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추락까지 잃은 것이 적지 않다. 이를 되찾으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이 시도될 터인데,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일에 대한 세계인과 중국인 사이의 시각차 교정이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은 나라 밖에도 피해자가 있었음을 모르고 있다. 이는 훗날 중국과 세계 간에 소통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예컨대 식품 안전 문제로 마찰이 빚어졌을 때 중국의 일반 국민들은 서방이 또다시 상습적으로 트집을 잡는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중화주의의 결집제로도 작용할 수 있고, 정책 결정과정에서 중국 당국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과도한 상상이길 바라지만, 묻힌 사실은 종종 뒷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곤란한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 시각 이미지, 그 반전의 역사

    시각 이미지, 그 반전의 역사

    일상 곳곳에서 흔히 접하는 스트라이프 무늬. 그 이미지의 역사에는 알고 보면 대단한 ‘개념의 반전’이 숨어 있다. 중세유럽 사회에서 그것은 한마디로 이단이었다. 시각은 오로지 신을 보는 데만 동원돼야 하는 감각이었으므로 눈을 자극하는 무늬는 허용될 수 없었다. 계급과 신분을 구별짓는 사회적 차별로 하층민들은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간 옷을 강제로 입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가치관은 부단히 움직였다. 이미지는 사회변화와 함께 정반대의 의미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경멸의 이미지였던 스트라이프는 16세기 들어 귀족들이 열광하는 무늬로 가치급상했다. 특히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 스트라이프의 유행은 대단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반(反)가톨릭의 의미로 스트라이프를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그 유행은 유럽 상류사회로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결국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에서 혁명을 상징하는 ‘거룩한’ 이미지로까지 변모했다. ●경멸의 무늬가 열광의 이미지로 확산 이처럼 부정의 기호가 긍정의 기호로 반전한 사례들은 이미지의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디자인 전문가 마쓰다 유키마사가 쓴 ‘눈의 황홀’(송태욱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은 정확히 그 지점에 주목했다. 인류의 뇌리에서 이미지는 어떻게 생겨나고 살아왔는지, 시각 이미지의 기원과 변천을 탐색했다. 책의 관심은 전방위로 뻗어 있다. 미술과 건축은 기본. 이밖에 문자, 음악,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장르를 활강하며 일관되게 세상을 채우는 이미지들의 기원을 더듬는다. 눈에 보이는 구상화로만 머물러 있던 풍경은 언제 어떤 계기로 추상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19세기 철도의 발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단언한다. 마차의 속도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철도여행으로 완전히 새로운 지각을 경험했다. 속도와 운동의 과정을 어떻게 정지화면으로 정착시킬까 하는 고민이 비로소 싹트기 시작했다. 차창 밖 풍경의 색이 뒤섞여 흐릿하게 디테일이 뭉개지고, 그 시각의 변화가 미술사에 새로운 회화방식인 ‘추상’을 등장시켰다는 것. 지은이는 “추상의 본질은 속도인 듯 20세기 접어들어 미래파가 등장하고 모더니즘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색채의 혼합´ 거부한 중세 유럽 그렇다면 20세기 미술사의 최대발명이라고 할 수 있는 ‘혼합(섞음)’ 행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스도교 윤리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사회의 미술 가치관은 이것저것 (물감을)섞는 행위를 터부시했다. 렘브란트가 색채 혼합을 거부한 대신 빛을 조절함으로써 화면의 명암을 강조한 것도 그래서였다는 주장을 편다. 당시 색깔을 섞는다는 것은 신이 만든 세계의 순수함을 깨는 악마적 소행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윤리관은 이후로도 꾸준히 힘을 발휘했다. 기독교적 색채 윤리에 사로잡혀 포드사가 오랫동안 검정색 이외의 자동차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도 적시한다. 기독교 중심의 색의 질서가 붕괴된 것은 1666년 뉴턴이 백색광의 색을 분해해 스펙트럼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뉴턴이 이것저것 색을 끌어모으면 빛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후로 공고하던 기독교적 색의 개념은 세를 잃었다. ●인쇄술 발명으로 다양한 색채기법 탄생 책의 사유 반경에는 따로 한계가 없다. 콜라주, 회화와 포스터 혼합 등 20세기 미술사의 ‘섞는 기법’들의 연원을 저자는 멀리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시점에서도 모색한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신문이 등장해 회화와 문자를 섞은 포스터를 실으면서 이후 콜라주, 몽타주, 샘플링 등 다양한 현대 미술기법이 예고됐다는 풀이다. 책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나열하거나 편식하지 않았다. 인간의 상상력과 직관이 사물의 이미지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 왔는지, 인류의 사유방식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다. 세세한 설명이 붙은 480여점의 관련 도판들에서도 저자의 공력을 확인할 수 있다.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CEO칼럼] 왕인 선생의 후예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

    [CEO칼럼] 왕인 선생의 후예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

    베이징올림픽의 화려한 막이 내렸다.4년 동안 기다려온 각국의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환희와 좌절 속에서 연일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드라마는 개막식부터 시작됐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자국이 추구하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유감 없이 토해냈고, 세계 속에서 분연히 일어나겠다는 대국 굴기의 역동성을 보란 듯이 과시했다. 개막식의 백미는 중국이 세계에 전파한 4대 발명품의 하나 하나를 문자로 꾹꾹 눌러 강조하면서 다시 세계의 문명을 이끌겠다는 중화의식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중국인들은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로 세계의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메시지를 세계인들의 눈앞에서 하나하나 써내려 갔다. 세계는 잊고 지냈던 중국의 잠재력을 깨닫고 당황했을 만하지만 중국 문명의 수혜를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명 중국은 과거 최고 문명국 중의 하나였고 세계는 중국 덕분에 진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고대로부터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받아들인 선진 문명을 당시 미개한 일본에 전해줬다.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한자와 선진 문명을 전파함으로써 일본의 고대 국가 형성을 도운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를 고마워하며 왕인 박사를 기린다고 한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왕인, 아직기의 후예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을 맡고 있는 박주봉 감독이 대표적이다.‘셔틀콕의 황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박 감독은 일본 배드민턴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복식 세계 1위의 중국팀을 꺾고 4강에 올라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다. 비록 우리나라 팀에 져서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일본 배드민턴을 단숨에 세계 수준에 올려놓은 것으로 일본 내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왕인, 아직기의 후예는 더 많은 나라로 뻗어나가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 양궁대표팀을 출전시킨 49개의 나라 중 한국인이 감독을 맡고 있는 팀이 13개국이나 된다. 중국의 남녀하키팀 대표감독과 여자핸드볼 대표팀 감독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다. 각국의 태권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감독은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개인의 탁월한 역량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 속에 전파하고 그들이 가르치는 나라들은 대한민국 덕분에 수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 일본이 배드민턴에 대해 우리나라에 감사할 것이고, 양궁이나 태권도에서 메달을 따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국가 브랜드는 이렇게 개인의 탁월한 역량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역량을 세계에 나눠줄 때 우리나라의 브랜드는 톱 클래스가 될 수 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은 4대 발명품이라는 과거의 영화를 불러들여 그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지만, 오히려 지금 세계에 아무것도 나눠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 자격지심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 속에서 우리 국민 개개인의 탁월한 역량을 전파하는 모습이 더욱 역동적으로 보인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회사 역시 외국에 진출하기 전에 그곳의 사업성과 함께 그 나라에 우리가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느냐를 따져 본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왕인과 아직기의 후예가 자랑스럽게 국력을 떨치듯이 기업도 그렇게 해외로 뻗어나가야 한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
  • “고려말~조선조 인쇄문화 한눈에 보세요”

    “고려말~조선조 인쇄문화 한눈에 보세요”

    전직 경찰관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문화재급 유물(고미술품)들이 공개된다. 12일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역사박물관은 경찰 원로인 홍두선(왼쪽 사진·80)옹이 40여년간 수집했던 전적(典籍)류 등 유물 967점(470건)을 13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홍옹은 고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모은 유물을 지난 2월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측은 수개월에 걸쳐 이에 대한 평가, 정리 작업을 마치고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육군사관학교 7기 출신인 홍옹은 중령으로 전역한 뒤 진주경찰서장, 안동경찰서장, 서울 북부경찰서장 등 전국 경찰서에 재직하면서 매달 봉급을 쪼개 문화재를 수집해 왔다. 그는 “초기에는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골동품을 수집하다 진위가 애매하고 상인에게 속는 경우도 생기면서 가짜가 거의 없는 전적류, 그중 활자본 위주로 수집했다.”고 전했다. 어릴 적 조부모에게 한학을 배운 그는 자신이 모은 전적을 박물관 유물카드와 유사한 정리용 카드에 꼼꼼하게 적어 서지학자(書誌學者)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유물에는 고려 말부터 조선조까지 인쇄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자료가 포함돼 있다. 당나라 현각(玄覺)의 수행 지침서인 영가진각대사증도가(오른쪽)는 조선 세조 때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찍은 것으로, 박물관 유물평가위원회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희귀한 점을 들어 보물 지정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송나라의 예묘행이 선(禪)을 닦는 스님들의 명언과 시문 등을 모아 작성한 도서로 1472년 간행된 진실주집(眞實珠集), 추사 김정희와 18세기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 등 조선 후기 명필가들의 친필 유묵 30여점도 포함돼 있다. 박물관측은 “홍옹은 조선 최초의 활자본인 계미자본을 값이 비싸 구입하지 못했다며 여전히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서 “금속활자, 목판본, 목활자본 등 다양한 방식의 고인쇄 문화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기증한 그의 바람처럼 그가 평생 수집한 귀중한 문화재들이 흩어지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2010년 기증유물특별전을 열고 홍두선 컬렉션 도록(圖錄)을 간행하는 등 홍옹의 유물을 전시, 교육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Beijing 2008] ‘찬란한 문명’ 화려한 군무·디지털로 재현

    세계적인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베이징올림픽 개회식 문화행사는 황허(黃河)문명으로 시작돼 5000년을 이어온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화려한 영상과 수천명의 군무, 첨단기법으로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오후 7시52분(이하 현지시간)에 시작해 9시7분까지 75분간 이어진 문화공연은 환희와 감동에서 출발해 전 인류의 희망으로 막을 내렸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의상과 형형색색의 폭죽은 중국의 웅장한 역사를 담은 대서사시를 더욱 빛나게 했다. 다양한 색채를 띤 빛의 향연과 사람의 몸짓과 함께 어우러진 대서사시는 관객들과 지구촌 TV시청자들의 눈을 시종일관 사로잡았다. 2008명의 고수들이 베이징의 올림픽 주경기장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에 등장해 중국 전통 타악기인 ‘부(缶)’를 두드리며 힘찬 시작을 알렸다. 흰색, 파란색 빛을 뿜어내는 북소리와 함께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8시 정각이 되자 메인스타디움을 메운 9만 1000여명의 관중은 100년을 참아온 뜨거운 함성을 내질렀고, 수만 발의 불꽃이 베이징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악대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인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를 힘껏 외치며 세계를 향해 환영의 뜻을 드러냈다. 베이징 시내 29곳에서 솟아오른 폭죽은 발걸음을 옮기듯 메인스타디움으로 계속 다가오며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이어 궈자티위창 내에서는 올림픽 오륜기가 입체적으로 세워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224명의 어린이 합창단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들고 나와 단합의 이미지를 과시했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합창했다. ‘아름다운 올림픽’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문화 공연의 1부는 ‘찬란한 문명’이 테마였다. 제지술을 처음으로 발명한 중화 민족의 우수성을 잔잔하게 전하면서 두루마리로 말리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됐다. 곧이어 폭 147m에 달하는 거대한 두루마리가 실제 주경기장 한가운데 펼쳐지기 시작했다. 두루마리가 펴지자 그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인간 붓 역할을 하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두루마리를 스칠 때마다 중국 고유의 수묵화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중국의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활자인쇄술을 담아낸 공연이 이어졌다. 세계 유일의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중국의 한자를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 수많은 활자판 속에 사람이 들어가 역동적이고 규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며 중국의 자랑거리인 한자의 변천 과정을 그려냈다. 특히 ‘화(和)’자의 변천 과정을 통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제창한 ‘허셰(和諧·화합)’ 의지를 드러냈다. 공자의 3000제자로 분장한 공연단이 중국 고대의 책인 ‘죽간(竹簡)’을 들고 나와 ‘공자의 제자는 모두가 하나의 형제’라는 구절을 외치는 퍼포먼스로 올림픽은 세계인이 펼치는 화합의 축제임을 강조했다. 활자판들은 중국의 자랑거리인 만리장성으로 변모하며 갈채를 받았다. 이 공연이 끝나자 13개월 동안 구슬땀을 흘렸던 사람들이 활자판 밖으로 나와 해맑은 웃음을 드러내며 관중과 함께 호흡하기도 했다. 드넓은 바다와 대륙으로 가로지르는 비단길과 중국 전통 명화들이 두루마리 영상에서 펼쳐졌고, 중국 전통 음악인 ‘예악’이 관객들의 귀를 자극했다. 이어진 경극에서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진시황릉에서 1㎞가량 떨어진 유적지인 병마용을 표현해냈다. ‘영광스러운 시대’로 명명된 2부는 중국이 배출한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과 5살 어린이 피아니스트 라무쭈의 협연으로 시작됐다. 정치·종교·인종적 갈등과 차별이 전혀 없는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순서였다. 조선족·장족·위구르족 등 소수민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화합을 강조했다. 베이징의 옛 이름인 ‘연경’을 뜻하는 제비의 모습을 담아내는 군무가 함께 펼쳐졌다. 제비의 모습은 어느새 궈자티위창의 모습으로 바뀌며 탄성을 자아냈다. 이어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권 공연도 잔잔하게 이어졌다.2008명에 달하는 허난성 무술학교 학생들이 등장해 역동성을 불어넣기도 했다. 우주인이 베이징 밤하늘을 유영하며 등장한 뒤 궈자티위창의 바닥이 열리며 무게 16t, 높이 24m에 달하는 거대한 지구 모형이 떠올랐고, 와이어를 이용해 지구를 도는 지구인의 모습을 통해 역대 최장의 성화 봉송 과정을 재현하는 한편, 정치·종교·인종적 갈등과 차별이 전혀 없는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베이징 올림픽특별취재단 jenuesse@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신문산업과 서울신문] ‘열정과 발품’으로 세상과 소통 꿈꾼다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신문산업과 서울신문] ‘열정과 발품’으로 세상과 소통 꿈꾼다

    “기사 하나당 제목 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납활자에서 CTS시스템으로 바뀐 건 언제부터예요?” 지난 1일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신문 편집국에는 예비 언론인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언론재단 예비언론인과정에 재학 중인 김봉규(25), 임원식(27), 김연정(24), 최새론(24)씨가 그 주인공이다. 전날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일일 기자체험을 한 이들은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건져올린 기사들이 어떻게 지면을 장식하는지 함께 지켜봤다. 언론에 대한 열정과 애정, 날선 비판의 칼을 동시에 품고 있는 언론고시생들. 이들이 체험한 서울신문 제작현장을 함께 가 본다. 진행·정리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김연정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끊임없이 던지는 문제제기 기자의 덕목인 것 일깨워 기자의 눈과 기자 아닌 사람의 눈은 달랐다. 지난달 30일 취재에 동행키로 한 사회부 장형우 기자를 서울 혜화경찰서에서 만나 시청으로 함께 이동하는 길. 기자는 지하도를 걸으며 상인들이 서울시의 지하도상가 철거통지에 항의하며 내걸어둔 팻말들을 살피고 있었다. 광화문에 다다라서는 몇날 며칠 전경버스가 저렇게 길 한 편을 차지하고 세워져 있는 건 괜찮은 걸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달리 보고 있었다. 끊임없는 ‘문제의식’의 힘이었다. 기자에게 ‘문제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작부터 뼈저리게 느꼈다. 이날의 취재거리는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농성 중인 시각장애인들. 이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의료법이 합헌임을 주장하기 위해 인권위 앞에 모였다. 기자와 함께 시각장애인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물 옥상과 대한안마사협회 서울지부 회원들 약 200명이 모인 건물 앞을 분주히 오갔다. 문득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기자는 외로운 직업”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 들을지, 어디를 가볼지, 어떤 주제에 초점 맞출지, 기사를 어떻게 구성할지 스스로 알아보고 판단하고 정해야 했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이뤄지는 거의 유일한 직업교육이 ‘이료 과목(안마 관련 커리큘럼)’뿐이라는 점이었다. 고3에 내일모레가 기말고사인데도 시험도 포기하고 부모님 몰래 농성에 참가 중인 이명국(20)군의 얘기는 안마사란 이들의 외침대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4시간 남짓 현장에 머무르면서, 더 취재하고 싶은 내용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지난 1일에는 현장기자들이 취재를 마치고 송고한 기사를 편집-조판-인쇄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방송기자들이 화려한 포즈로 녹음실을 들락거리며 뉴스를 만들어 내는 것과 달리 신문사에서 기사를 생산해 내는 과정은 꼼꼼함과 지난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사진기자가 필름카메라가 아닌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취재기자가 수첩 말고 노트북도 꼭 들고 다녀야 하듯 취재과정은 점점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지만, 편집 이후 과정은 여전히 아날로그식이다. 신문의 하루는 윤전기로 신문을 찍어내고 잉크를 말려 트럭에 싣고 각 지역까지 배달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서울신문 기자들의 쉴 틈 없는 ‘발품’과 ‘사람장사’는 매일 그렇게 새벽의 여명 속에 독자들에게 찾아가고 있었다. ■임원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쉴새없는 전화 벨·자판 소리 마감시간 기자실은 전쟁터 한나라당 당사 ‘기자실’ “뚜드드드…따다다닥…” 쉴 새 없이 두드려대는 키보드 소리에 숨이 막힌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신문 모 기잔데요.”하는 건조한 음성은 긴장과 치열함으로 찌든 이곳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은 듯하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4층 기자실.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을 앞두고 친이계와 친박계의 세력다툼 양상을 다들 기민하게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당사 맞은편 커피숍에 반장을 제외한 기자들이 모였다. 차가운 커피 한 잔에 목을 축이며 대화가 오간다. 주제는 역시 ‘촛불집회’. 최전선에서 뛰는 기자들답게 취재한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게 쏟아져 나온다. 시민들의 무고한 피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민주당 의원들이 폭행당한 얘기로 이어지더니 요즘 청와대 내 분위기와 여당 경선 판도분석으로 귀결된다. 어쩌면 그것이 다른 부서와 정치부의 미묘한 차이인지도 모른다. 개별적 사안도 종국엔 전방위를 아우르는 정치적 사안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치부 기자들의 몫이자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치찌개로 유명한 근처 식당을 찾았다. 식당 안은 인산인해였다. 저만치 서청원 의원과 친박계 의원들도 보였다. 오늘 홍희경 기자의 점심 약속은 한나라당 조윤선 국회의원의 보좌관인 정혜정씨와 잡혀 있었다.“(정치부) 기자들의 남는 시간은 대면 접촉 폭을 넓히기고요. 점심은 가급적 정치인과 약속을 잡아서 기자들과 함께 먹어요.” 전쟁이 시작됐다. 오전 내 취재한 뉴스들을 토대로 기자들은 마감시간을 앞두고 분주하게 기사작성에 돌입했다. 긴장감이 오전의 서너 곱절은 되는 듯하다.“누가 챙겼냐?”“그건 알아봤냐?”“뭐라 그러디?”“전화해 봐.”“하나 써.”반장의 지시는 좀처럼 세 어절을 넘기지 않았다. 이 ‘경제적인’ 화법 지금의 분주한 상황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는 없을 듯하다. 한나라당 내 계파 싸움이 불거지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가 있다. 박근혜 의원. 그에게 세 번째 갈등이 찾아왔다. 당내 지도자 경선 과정에서 친이와 친박의 대결이 그것. 국회헌정기념관은 이미 그의 지지자들만큼이나 많은 언론사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기자들 사이에는 이미 ‘무엇’을 위해 모였으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합의가 이뤄진 지 오래다. 주인공 등장. 조명이 켜지고 플래시가 마구 터졌다. 박 의원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취재경쟁이 시작됐다. 쇠고기 수입과 현 국정운영 실태, 내각 개편, 당내 계파 갈등에 관해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하루체험으로 지켜본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들은 내게 그 모범답안이 되어 주었다. ■김봉규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발로 뛴 취재 현장의 고단함 초판 신문 받아드니 눈 녹듯” 지난 1일 종로경찰서는 50일이 넘게 이어지는 촛불 문화제의 집회신고를 받고 있었다. 경찰서 기자실은 현재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현장 일선에 있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했다. 저마다 노트북을 펴놓고 자판을 두드리거나 낮은 목소리로 통화한다. 사회부 김정은 기자 역시 노트북을 펴고 서울신문 내부 전산망에 접속한다. 편집국에서 온 당일 지면계획과 전달사항을 확인하고 수첩에 꼼꼼히 적는다. 우리가 갈 곳은 이날 새벽 압수수색을 당한 대책회의 사무실. 대책회의는 참여연대 사무실 일부를 빌려 쓰고 있다. 차를 타고 통인동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도 쉴 틈이 없다. 김 기자는 곧장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한참 울리더니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는다.“에이, 수사과장 전화 꺼놨네.” 뒷좌석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정보과에 전화를 걸어 압수수색 물품 내역을 묻지만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압수수색이 종료된 참여연대 사무실은 적막했다. 기자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 인권법률의료지원단 임태훈 팀장에게 곧장 가 바싹 다가앉는다. 압수물품을 물어보자 경찰이 준 압수물품 내역서를 보여준다. 편집국 전달사항에 있었던 내용을 다시 확인한다. 경찰이 어느 정도의 인원으로 어느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는지, 몇 시에 어디를 압수수색했는지, 수색절차를 지켰는지 꼼꼼히 받아적는다. 2일 찾아간 서울신문 편집국은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상상 이상의 인력과 장비가 투입된다. 취재한 내용을 받아 편집해서 지면에 배치하고, 그래픽과 사진을 추가해 최종 결과물을 내보내는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공정이다.1면에 배치된 어제 취재 내용을 살펴본다. 취재한 내용이 한 문단에 간결하게 정리돼 있었다. 하루의 노력이 몇 문장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취재현장에 동행하지 않았다면 ‘예스’라는 대답이 자신있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 제작이라는 거대한 공정에 시동을 걸고 연료를 주입하는 것은 기자다. 현장 최전선에서 창을 열어젖히고 세상과 대면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형상이 적절한 콘텐츠로 재생산돼 한 부의 신문이 된다. 고된 취재의 피곤함은 ‘경외의 대상’인 신문 앞에서 눈녹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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