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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 다문화가정에 동화책

    성북구가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지역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보급한다. 성북구에 따르면 지난달 5일 구와 협력 도시 협약을 맺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구에 전달하기로 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국내 이주노동자 자녀나 국제결혼가정 어린이들이 한국 사회와 국어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다문화 아동을 위한 동화책을 제작·배포해 오고 있다. 이번에 전할 동화책은 ‘심심해서 그랬어’(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로 총 300권이다. 이 책은 3개 언어로 인쇄돼 있는데 국어와 영어를 기본으로 캄보디아어나 베트남어 또는 중국어가 추가돼 있다. 구는 동화책을 이번 주부터 관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동주민센터를 통해 다문화가정에 배포하고 많은 주민이 읽을 수 있도록 관내 도서관과 복지관에도 비치할 예정이다. 구는 올 3월 동화책 ‘강아지똥’ 300권도 유니세프한국위원회로부터 전달받아 다문화 아동들에게 보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동화는 강아지똥도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남을 키워내는 귀중하고 살아 있는 영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보훈처서 허위 공문서 발급받아 정부와 845억 인쇄물 수의계약

    국가보훈처 공무원으로부터 받아낸 허위 공문서를 이용, 국가·공공기관과 수백억원대의 수의계약을 맺은 인쇄업자와 공무원 13명이 경찰에 무더기 적발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8일 인쇄업자 심모(51)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인 류모(37)씨 등 인쇄업자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심씨에게 허위 공문서를 발급해 준 이모(56) 서기관 등 보훈처 공무원 5명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인쇄업자들과 공무원 사이에 금품이 오갔는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심씨가 보훈처를 포함, 9개 기관 직원 18명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씨 등은 지난 2000년 1월부터 지난 4월 20일까지 12년 동안 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이 가능한 국가 유공자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쇄조합의 명의를 빌린 뒤 보훈처 공무원으로부터 허위공문서를 발부받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 45개 국가기관을 상대로 6100여건, 845억원 상당의 인쇄물 납품계약을 체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175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이씨는 경찰에서 “허위 증명서를 발부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가성은 전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영준·명희진기자 apple@seoul.co.kr
  • 헤어지잔 말에 격분… 흉기 휘둘러 병원 응급실까지 쫓아와 남편 살해

    20대 여성이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사실혼 관계에 있던 40대 남성을 흉기로 찔러 다치게 한 뒤 병원응급실까지 쫓아가 살해했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두모(41·인쇄업)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안모(29)씨에 대해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안씨는 7일 오후 11시 30분쯤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한 공원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두씨의 목을 찌르고, 두씨가 200여m 떨어진 병원 응급실로 달아나자 뒤를 쫓아가 가슴 등을 3차례 더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살해 당시 두씨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안씨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응급실로 들어와 두씨를 살해할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살해 당시 공원과 병원 응급실에는 5살 된 딸과 정신지체장애자인 안씨의 남동생이 있었으나, 살해 장면은 목격하지 못했다. 안씨와 두씨는 2006년 처음 만나 아이를 출산했으나 일주일에 1~2차례만 만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안씨가 헤어지자는 남자의 말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 이외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목민심서 유배 초기부터 썼다”

    “목민심서 유배 초기부터 썼다”

    다산 정약용(1762~1836) 탄생 250주년을 맞아 한국한문학회와 한국실학학회·실학박물관이 공동 개최하는 ‘다산 연구의 새로운 모색’ 학술세미나가 9일 서울 안암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 올해 열리는 다산 관련 학술 대회 중 가장 큰 규모로 박철상 고문헌연구가와 이헌창 고려대 교수, 김용흠 연세대 교수, 이영호 성균관대 교수, 박종천 한국국학진흥연구원 등 23명이 발표에 나선다. ●박철상 고문헌연구가 “미경당, 다산의 다른 호” 세미나에서 박철상 고문헌연구가는 새로운 자료 ‘선암총서’(船菴叢書)를 발굴해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저술시기를 정정하고 저술과정을 검토하는 소논문을 발표한다. 선암총서는 2권 1책 46장의 필사본으로 누가 편찬한 책인지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여기에 목민심서 일부(작은 사진)가 수록돼 있어 주목받았다. 특히 이 필사본 속의 목민심서는 1902년 근대적 인쇄로 제작·보급된 목민심서 목차나 글의 배열 등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박 고문헌연구가는 5일 “선암총서의 선암은 다산의 강진읍 제자 중 선암(船菴) 손병조가 엮은 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선암총서의 표지에는 선암 외에 미경당(味經堂)도 병기 돼 있는데 박 고문헌연구가는 “다산의 또 다른 호가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강진읍 제자들은 이후 다산초당의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현전하는 목민심서는 181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1818년 완성되고, 3년 뒤인 1821년 봄 서문을 붙여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1801~2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선암총서의 존재 덕분에 다산이 목민심서를 유배 초기부터 준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고문헌연구가는 “목민심서의 초기 형태로 추정된다.”면서 “목민심서가 유배지에서 단기간에 기획하고 만든 책이 아니라, 다산이 지방관 시절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저작으로 20년 이상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역작이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심서’는 백성을 다스릴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써놓았다.”면서 “다시 말해 더이상 백성을 다스릴 수 없게 된 시점, 즉 유배 직후에 목민심서의 저술이 시작됐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목민심서에 대한 해석을 “단순한 지방행정의 실무교본이 아니라, 문사철(文史哲)이 융합된 다산 사상의 결정체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헌창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국가제도론에 대한 일고찰’에서 “다산이 붕당의 폐해를 절감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부국강병을 유효하게 추진하는 국가 건설을 우선 과제로 제시했고, 또한 과학·기술·제도 등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제시한 점에서 조선시대 지력을 한 차원 높게 성장시켰다.”면서 “다산의 사상이 유학적 사유를 벗어나는 근대지향적 요소를 담기도 했지만, 동시기 유럽의 근대사상과의 격차가 가볍지 않았고, 전통 유학사상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단순 행정교본 아닌 사상의 결정체” 김용흠 연세대 강진다산실학연구원 교수는 ‘다산의 국가 구상과 정조 탕평책’이란 논문에서 “‘조선후기 실학’을 정치에서 소외된 재야 지식인의 사상으로 규정하는 통설은 편견”이라며 “실학과 탕평책 사이의 합당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정조 탕평책의 관건이었던 사도세자의 복권과 추숭 과정에서 정약용 등이 정조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쟁이 무의미한 권력투쟁으로 일관한 것이 아니라, 양난기 이래 국가의 대내외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으로 치열하게 시도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당색을 불문하고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시켜 계급 모순을 해소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려고 구상했던 점을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체비례·미터법… 측정, 역사를 창조하다

    이런 얘기가 있다. 머나먼 외딴 바닷가 마을에 수백년 동안 낮 12시 정각마다 울리는 대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포성 덕분에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어느 날 한 소년이 산에 올라가 포수에게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포(午砲)를 울리는지 비결을 물었다. 포수가 말하길 “부대장님의 명령에 따라 포를 쏜단다. 정확한 시간을 재는 건 부대장님의 중요한 임무지.” 소년은 부대장을 찾았다. “읍내 시계방에서 내 시계를 정확히 맞추면 된다.” 소년은 또 시계방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의 답은, “오포 소리에 맞추면 틀림없지.” 삶의 모든 것은 측정에서 비롯됐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이 측정이 어떻게 나왔고 어떻게 생활에 녹아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다. 꼭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니지만, 혹여 재미있게 알고 싶다면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 철학과 교수이자 물리학자인 로버트 P 크리스가 정리한 ‘측정의 역사’(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를 들춰봐도 좋겠다. 마치 머나먼 외딴 바닷가 마을 소년처럼, 저자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현대까지, 임시방편 척도부터 빛의 길이와 질량의 무게를 재는 절대 측정의 체계까지, 차근차근 찾아가면서 설명한다. 가장 유명한 척도라면 균형 잡힌 인체다. 기원전 1세기 전 ‘건축십서’에 보면 “안면은 턱에서 이마 위 머리카락까지 전체 키의 10분의1, 발 길이는 키의 6분의1, 팔 길이와 가슴 폭은 4분의1 등 각기 자신의 조화로운 비례를 갖는다.”고 돼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체 치수는 최근에도 활용되는 보편적인 척도다. 이를테면 허리둘레는 목둘레의 두 배, 목둘레는 손목둘레의 두 배라는 식이다. 이런 인체비례뿐 아니라 음계로서 고유 문화와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던 중국 왕조, ‘금분동’이라는 저울추를 이용해 독창적인 측정을 한 서아프리카의 아칸족, 도량형으로 착취와 억압을 당한 중세 유럽 농민들까지 두루 아우르다가 프랑스에서 한동안 머무른다. 18세기 중반부터 도량형 개혁을 논의하고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측정 체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겪은 프랑스가 전 세계 도량형을 통일한 미터법을 보급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측정 원정대 구성, 과도한 10진법 적용, 혁명세력의 도량형 보급 등을 지나 ‘인쇄술 이후 인간의 창의력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미터법이 보편적인 측정 체계로 정착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이야기한다. 미터법에 대한 비판론과 조롱, 앞서 이야기에서 본 순환논리의 오류 등도 덧대면서 ‘측정’이라는 도구로 인류 문명사와 사회상, 정치 역학관계, 예술을 풀어내는 것이 꽤 흥미진진하다. 1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경제프리즘] 종이없는 업무·반소매 출근… 금융권 ‘구두쇠경영’

    한 대형 카드사 홍보팀의 A과장은 요즘 회사에서 눈치 보기에 바쁘다. 업무 성과가 나빠서, 상사가 깐깐해서가 아니다. 종이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이 카드사는 인쇄용지를 많이 쓴 직원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어 게시하고 있다. 직원들의 자원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A과장은 “업무 특성상 프린터나 복사기를 쓸 일이 많아서 매달 1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며 머쓱해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드사 및 은행들은 구두쇠 캠페인에 한창이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를 앞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비용 절감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은행들은 하이닉스, 현대건설 매각 등 일시적인 이익 잔치가 끝나고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로 은행이 버는 돈) 감소로 올해 수익성 둔화가 예상되고 있다. BC카드는 최근 페이퍼리스 제도를 도입했다. 신용카드 결제 영수증을 원하는 고객에게만 발급해주는 시스템이다. 우선 주요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등에서 시행하고 대상을 점점 넓힐 계획이다. 페이퍼리스 제도가 전 카드사로 확대되면 한해 수천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다. BC카드에 따르면 영수증 발급으로 지난해 국내 전 카드사가 지출한 돈이 약 2700억원에 이른다. 하나금융지주는 이달 초부터 연말까지 ‘건강한 하나 해피투게더’라는 이름의 절약 캠페인을 실시한다. 직원식당의 음식물쓰레기 10% 줄이기, 전등 및 컴퓨터 끄기 생활화, 종이컵 등 1회 용품 안 쓰기 등을 실천한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지난 3월 취임하면서 자원 절약을 통해 비용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하자며 제안한 아이디어이다. 국민·우리·신한·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은 2주 전부터 반소매 여름 근무복을 입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빨리 더위가 시작되면서 냉방비와 전기 사용을 줄이려는 조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들 인건비 외에 들어가는 각종 운영 비용을 아끼면 수익 감소분을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에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심정으로 자원 절약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美 경찰, 33년전 유괴·살해범 잡았다

    美 경찰, 33년전 유괴·살해범 잡았다

    1979년 5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6세 어린이 이탄 패츠 실종사건<서울신문 4월 21일 자>의 범인이 24일(현지시간) 붙잡혔다. 당시 대통령이 패츠의 실종일을 ‘전국 실종 어린이의 날’로 지정하고 패츠의 얼굴 사진이 우유곽에 인쇄되는 등 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린이 실종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이 실종 33주년을 정확히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해결되자 미국 사회는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레이먼드 켈리 뉴욕 경찰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33년 전 맨해튼의 소호 거리에서 아침 등굣길에 실종됐던 패츠를 유괴·살해한 범인으로 뉴저지주 메이플 셰이드에 사는 페드로 허난데스(52)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33년 전 19세로 패츠의 집 근처 식료품 가게 점원이었던 허난데스는 아침에 근처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패츠에게 음료수를 주겠다고 꾀어 가게 지하로 데려간 뒤 목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허난데스는 이어 패츠의 시신을 비닐 봉투에 담아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다고 켈리 국장은 밝혔다. 무려 33년 만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포기하지 않는 미국 경찰의 사명 의식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19일 뉴욕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패츠의 유해 탐지 작업에 나섰다는 뉴스를 본 허난데스의 지인이 며칠 뒤 경찰에 제보를 했다. 이 지인에 따르면 허난데스가 1981년 “뉴욕에서 나쁜 짓을 한 적이 있다. 아이를 죽였다.”고 토로했다는 것이다. 현재 부인, 대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는 허난데스는 지난 세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고 밝히면서 경찰 신문에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허난데스는 왜 패츠를 살해했는지 범행 동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어 일말의 의구심은 남아 있다. 그의 자백을 뒷받침할 패츠의 유해를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찾아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범행 장소로 이용된 건물 지하실에서 패츠의 DNA가 채취되길 기대하는 정도다. 33년 전 사건 직후 스쿨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일했던 허난데스가 당시 나이가 어려서인지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지난 33년간 근처 건물에서 목수일을 하던 오스닐 밀러라는 중년 남성과 패츠 유모의 남자 친구였던 호세 라모스 등 엉뚱한 사람들이 용의자로 몰려 오랜 세월 곤욕을 치렀다. 켈리 국장은 이날 “늦었지만 이번 범인 검거가 패츠의 부모에게 위안과 평화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살아 있었다면 39세가 됐을 아들의 실종 관련 제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33년간 이사를 가지도, 전화번호를 바꾸지도 않고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패츠의 부모는 범인 검거 소식에 매우 놀랐다고 경찰은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도시 빈민층의 삶 담은 ‘사당동 더하기 25’ 펴낸 사회학자 조은

    [저자와 차 한잔] 도시 빈민층의 삶 담은 ‘사당동 더하기 25’ 펴낸 사회학자 조은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지기 전, 질문만 받던 학자가 기자에게 물었다. “왜 이 책을 골랐어요.” “일단 시간적 공(功)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책이고, 가난의 대물림이 해소됐을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까요.” 다시 물었는데,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말을 이었다. “사실 인기를 끌 만한 요소는 없잖아요.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가난이란 것을 다른 나라 이야기로 보니까요.” 학자가 궁금했던 것은 자신의 책이 인기가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비루한 삶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는 의문이었고, 이것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학자의 바람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사회학은 현장이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고 동국대를 정년퇴임한 조은(66) 교수에게 ‘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 펴냄)는 사회학자로서 그의 삶을 관통하는 분신이나 다름없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난 조 교수는 이 책의 시작에 대해 “한번 따라가 보자는 궁금증이었다.”고 설명했다. 때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대 사회학과 3년차 교수였던 그와 인류학자, 남녀 대학원생 등 4명이 철거를 앞둔 불량 주거지역을 찾았다. 철거·재개발이 지역 주민에 미친 영향 연구를 위해서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3년밖에 안 된 그는 서울 사당동 철거 재개발 예정지에서 적잖이 당황했다. 지저분하고 칙칙한 ‘미국 슬럼’을 떠올렸는데, 좁고 가파른 골목에 화분이 놓여 있고 땅 한 뼘이라도 있으면 채소가 심어져 있었다. 골목에서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에게서는 생동감이 넘쳤고, 주민들 옷차림은 깨끗했다. “당황했던 순간은 이후에도 수도 없이 많았다.”는 조 교수는 “한나절 현장연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마치 두 세계를 경험하는 듯했다.”고 떠올렸다. 길가에 있는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고, 두세 평짜리 방 한 칸에 서너 명 이상 살았다. 밀착연구를 하러 방을 얻어 혼자 살던 조교는 졸지에 ‘부자’ 소리를 들었다. ‘교수 티’ 나지 않게 입는다는 게 스키점퍼를 꺼내 입어 민망했고, 함께 조사 다니던 남녀 조교는 ‘부부 위장 간첩’으로 신고당하기도 했다. 이런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현장연구를 했다. 아들과 손자 세 명까지 3대가 함께 살던 금선(1922~2007) 할머니 가족을 비롯해 22가구가 대상이었다. 집을 만들고 얻는 방법, 전기를 끌어쓰는 방식이나 친밀감 형성 과정 등을 생생하게 바라봤다. 2년 6개월간 연구를 끝내고 보고서를 인쇄소에 넘긴 날, 이 지역은 ‘재개발 철거반의 주민 폭행’으로 일부 신문에 보도됐다. 과연 이런 식으로 재개발이 되고 주거가 안정되면 빈곤이 해소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조사 대상 중 유일하게 1991년 상계동 임대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금선 할머니 가족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게 25년이 됐다. 그 사이 서울 사당동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급변했다. 재개발을 하면서 1990년에는 10평짜리 집이 1억원을 호가하고, 2·4호선 환승역이 생기고 경기도 수원·과천과 서울을 잇는 교통 요지가 됐다. 금선 할머니 가족의 형편은 나아졌을까. “빈곤의 재생산은 정말 지독한 악순환”이라는 그는 “그들이 옮겨간 곳이 다시 불량 주거지로 낙인찍히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은 다른 종족, 다른 부족이라는 생각은 더 짙어졌고, 최근에는 중산층까지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금선 할머니네는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겪었다. 아들 수일씨는 다문화가정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에 옌볜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이혼당했다. 큰 손자 영주씨는 필리핀 여성과 결혼했고, 건설 노동일을 하고 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손녀 은주씨는 아이 셋을 낳았고 재봉일로 벌이를 한다. 막내 덕주씨는 그나마 잘 풀려 임대 아파트 근처에서 작은 헬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고 학력자가 일제 강점기에 고녀(고등 여학교)를 나온 금선 할머니일 정도로 학력, 직업 등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문제는 이것이 금선 할머니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임대 아파트 이웃도 관찰을 했는데 비슷한 상황을 보였다.”는 그는 “빈곤의 재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확인을 했는데, 이를 풀어낼 해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 안타까움을 비쳤다. 사당동을 중심으로 한 도시 빈민층의 삶과 공간을 세세하게 기록한 이 책에서, 그는 다른 의미를 찾는다. “오늘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 겪고 있을 가난의 현실을 알 수 있도록, 관심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보지 않게 되면 그때는 정말 어떤 해법도 찾을 수 없게 되거든요.” 가능하다면 계속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 ‘사당동 더하기 33’을 내고 싶다는 게 조 교수의 바람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 ‘사당동 더하기 22’(2009)이기 때문이란다. 더 나아진 이들의 삶을 확인하고 싶은 희망이기도 하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청주의 유명한 길

    이방인에게 청주의 첫 인상은 가로수 터널로 각인된다. 푸근하게 감싸 안아주듯 양쪽에 늘어선 1500여 그루의 플라타나스 나무 아래를 지나야만 청주시로 들어설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청주나들목을 나와 가경천 죽천교까지 이어지는 6㎞에 걸친 가로수로다. 처음 온 이라면 한 번쯤 와야 할 곳을 이제서야 왔는가 싶은 이색적인 풍경이고, 대처에 나갔다 기신기신 돌아온 이들에게는 비로소 어미 품에 안기듯 고향에 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길이다. 청주는 세계적인 출판인쇄문화의 요람을 자처한다. 직지(直指·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책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나온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이다. 지금은 절터만 남은 흥덕사지에 고인쇄 박물관(직지대로 713번)이 세워져 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를 창안하여 발전시킨 문화 민족임을 널리 알리는 한편, 정보통신기술을 접목시켜 직지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오는 9월 18일부터 일주일 동안 직지 축제가 열린다. ‘1377 창조의 빛’을 주제로 한국의 금속활자 특별전, 도서프리마켓, 북페어, 오감발달놀이, 거리음악회, 뮤지컬 ‘주자소의 하루’ 등 다양한 공연과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전시, 동서양활자주조와 근현대인쇄문화체험 등 학습과 체험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직지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청주시 예술의 전당(흥덕로 69번)과 고인쇄 박물관 등에서 주로 열린다. 서울로 치면 명동쯤 되는 곳이 성안로다. 지금이야 신도시 지역으로 상권을 많이 빼앗겼지만, 여전히 청원군청(상당로 69번길 38)과 충북도청(상당로 82) 등을 좌우에 거느리고서 패션, 문화예술, 역사, 행정의 중심부를 자부한다. 한가운데 있는 철당간이 성안로의 명물이다. 잦은 홍수 피해의 액막이를 위해 만들어 놓았다. 청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숨 막혀…” 화장실 창문에 끼어 질식한 도둑

    도벽이 있는 목수가 빈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화장실 창문에 끼어 사망했다. 남자는 사망한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남자는 작은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려다 몸이 끼어 꼼짝달싹하지 못해 발버둥치다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황당한 사건은 아르헨티나 북부지방 미시오네스의 캄포비에라라는 곳에서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발생했지만 뒤늦게 14일 언론에 보도됐다. 도둑은 루벤이라는 이름의 31세 청년이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살다 알코올중독에 빠진 그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5년 전 고향으로 내려갔다. 도시에서 익힌 목공 일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도벽이 문제였다. 그는 5년 동안 절도 등의 혐의로 20번이나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그랬던 그가 돌연 종적을 감춘 건 지난달 30일이다. 함께 사는 노모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루벤은 5일 만인 이달 5일 한 농장 내 허름한 집에서 발견됐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돌아보던 농장 관리인이 화장실 창문에 끼어 있는 그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실종신고를 받고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까지 만들어 그를 찾던 경찰은 곧바로 신원을 확인했다. 부검 결과 루벤은 질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도벽이 도진 그가 빈집을 털려고 화장실에 나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억지로 들어가려다 몸이 끼여 꼼짝 못하다 결국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2012 여수세계박람회] 환경보호 2% 부족한 환경축제

    [2012 여수세계박람회] 환경보호 2% 부족한 환경축제

    개장 이틀째를 맞은 여수엑스포가 성공하려면 ‘옥에 티’ 같은 문제점들을 하루빨리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빈약한 프로그램이다. 상당수 국가관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갖추기보다 단순한 영상이나 사진, 인쇄물 등에 의지하고 있다. 이 전시관들은 영상물 상영, 기념물 전시, 기념품·토속음식 판매로 이어지는 단순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페루전시관은 전체 공간이 전통술과 음식을 판매하는 ‘바’처럼 구성됐고, 일부 아시아권 국가들은 전시관 내에서 진주·호박 등의 보석류를 판매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적극적인 기념품 판매는 선진국 전시관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전시관 출구 바로 앞에 마련된 기념품 판매점에선 점원들의 노골적인 호객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여수엑스포 조직위가 참가국 유치를 위해 일부 국가 전시관에 시설비 등을 지원한 상황에서 지나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관람객들의 환경에 대한 낮은 인식도 문제다. 이번 엑스포의 주제는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 에너지관리공단이 이런 주제에 걸맞게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시범적으로 설치한 행사장 내 캔·페트병 재활용 회수기들은 여태껏 장식품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루 입장객이 4만명에 육박하지만 전체 회수기에 모이는 재활용 병은 400개 안팎. 입장객 100명 중 1명꼴로 이용하는 셈이다. 개장 첫날에도 기계 1개당 재활용 병이 40개 안팎 모여 25만㎡의 박람회장 내 이산화탄소 감소량은 20㎏에도 못 미쳤다. 전체 박람회장이 금연구역이지만 담배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기도 한다. 흡연자를 위해 예외적으로 흡연구역을 설치해서다. 주부 송아연(33)씨는 “박람회장 내 해변을 거닐다 담배연기에 질겁했다.”고 말했다. 조직위가 친환경 신기술 차량의 경연장이라며 내세운 바이모달트램 등은 좀처럼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이모달트램 정류장은 늘 비어 있다. 박람회장 외곽의 공터에선 클린디젤이나 수소 연료 전지 버스 등이 운행되지 않은 채 멈춰선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운행되는 친환경 버스들조차 승객이 몰리는 구간보다는 박람회장 내 기업관 인근을 오가며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상황이다. 여수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좌파들 애국가 못 부를 이유 있나”- 조지 오웰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내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번역 등을 통해 영국 정치 경제사에 대한 수준 높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두 사람을 더 다루고 싶다 했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지만 영국 노동당의 핵심 이론가인 리처드 토니(1880~1962)다. 케인스가 현대 세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명의 삶은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 펴냄)가 먼저 나왔다. 타이밍도 기막히다. 진보 논쟁이 한창이라서다. 오웰은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동물농장’의 인세가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마지막 소설인 ‘1984’가 거둘 놀라울 성공을 미처 누리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숨졌다. 외롭고 가난한 것보다 오웰을 더 괴롭힌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물농장’을 반공 우화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슬퍼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을 비판한 것은 맞다. 2차대전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스탈린의 패악에 눈감고 심지어 아첨까지 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못 견뎌 했다. “거짓을 말하고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 정치적 대의를 진전시키는 길이라는 사고”와 “독재 방식, 비밀경찰, 역사의 체계적 조작을, 자기 편인 한 수용할 태세를 완벽히 갖춘 상태”가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유럽 위기의 뿌리라 봤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웠다면 스탈린은 책을 다시 썼다.”는 엄연한 진실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오웰이 보기에 “좌파 지식인이 스탈린을 숭앙”하는 꼴은 “글래스고 빈민가 아이들이 알 카포네를 숭배”하는 것과 똑같다. 1943년 11월부터 영국 노동당 내 좌파그룹 기관지 ‘트리뷴’에 소련 공산당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가 하면 소련에 아첨한 지식인들에게 아예 대놓고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1949년에는 소련 공산당의 선전 공세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영국 외무부의 정보조사처(IRD)에다 영국 내 공산당 비밀 당원과 동조자들 35명의 명단을 넘기기도 했다. 이런 전력들 때문에 오웰은 좌파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노동계급을 동경했으나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배반할 수 없어 결국 중간계층으로 되돌아갔고 그 뒤 비뚤어진 선입관으로 사회주의를 비난한 배신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받쳐주지 않을 때면 그의 글과 책은 늘 인쇄가 미뤄지거나 거부당했다. 후대 좌파에게도 비판 대상이었다. 문화 연구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오웰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웰이 ‘비판자들의 상상 이상으로 더 뿌리 깊은 신념을 지닌 사회주의자’였다고 본다. 실제 오웰은 평생 사회주의 혁명을 염원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반(反)파쇼’를 위해 트로츠키 민병대원으로 스페인내전(1936~1939)에 참가, 목에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전간기와 2차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 믿었다. 이를 위해 오웰은 영국 노동자들이 식민지 보유로 인한 이득을 포기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하락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 산업국가의 모든 좌파 정당은 실제로는 가짜”라는 질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서구 좌파들에게 ‘노동자 국제 연대 운운하면서 잘난 척 그만하고 식민지부터 먼저 포기해 보시지.’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가 오웰을 두고 “사회주의를 국제적 맥락에서 보려 했던, 제국주의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마지막 사회주의자”라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직한 우파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라면 오웰의 내부 고발 행위에 함부로 박수를 쳐댈 수 없을 것”이라 평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영국 전통에 뿌리 박은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들이다. 오웰은 거창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남을 깔보는 중간 계급적 우월감이라는 최악의 흔적”을 지닌 좌파 엘리트 지식인들을 경멸했기에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윤리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좌파 애국주의’로 이어진다. 애국주의, 하면 벌써 좌파들은 눈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단어는 극우 맹동 세력, 반동분자나 쓰는 말 아니던가. 해서 애국가를 그토록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웰은 “애국주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점유되는 것이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그가 답답해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해서 문 앞에까지 온 지지자들을 되돌려 보내는 좌파의 멍청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정서도 이해 못 하는 계몽된 좌파 지식인”보다는 “유니언 잭을 보고 가슴 뛰는 보통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6장 ‘좌파 애국주의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늙은 보수주의자의 뼈 위에 사회주의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란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한 묵직한 표현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붙이자면, 1949년 영국 정부에 공산당 동조자 35명의 명단을 넘긴 사건은 ‘세작질’이 아니다. 오웰은 명단만 넘긴 게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선전 선동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정부에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전후 영국에서 미국과 같은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닥치지 않은 것은 오웰의 그런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는 평가는 거기서 나온다. 이 평을 누가 했을까. 바로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다. 추악한 독재자들과 거래했다며 마더 테레사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여기저기서 희화화되곤 하는 바로 그 다혈질 좌파 히친스 말이다. 2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경기도청 압수수색… 김문수지사 대선 홍보 문건 수사 관련

    경기도청에서 발견된 ‘김문수 지사 대선 홍보문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공안부(부장 김영규)는 11일 경기도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그러나 김 지사에 대한 소환조사는 계획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달 24일과 29일 잇따라 유출된 김 지사의 대선 홍보문건에 대해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선거법 위반 여부 수사를 의뢰해 이뤄졌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 15분 수사관 5~6명으로 구성된 압수수색팀을 대변인실과 보좌관실에 파견, 각종 서류와 함께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압수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 도 대변인실과 보좌관실에서 잇따라 ‘김문수-박근혜 비교, 선거전략’ 등이 담긴 2건의 문건이 발견돼 관권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김 지사 대선 홍보 문건은 실국장회의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이면지에 인쇄된 것이 유출됐다. 검찰 관계자는 “김 지사에 대한 소환조사는 예정돼 있지 않고, 자료 검토 후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홈쇼핑 보험 판매 3만원 초과경품 금지

    다음 달부터 홈쇼핑, 케이블 방송 등에서 보험을 판매할 때 3만원이 넘는 경품 제공이 금지된다. 높고 큰 목소리로 보험상품 내용을 강조하여 설명하는 행위도 제한된다. 보험금 지급 제한사유 등 보험판매자에게 불리한 사항도 보장내용과 같은 속도로 충분히 안내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보험 판매방송 개선을 통한 보험소비자 보호 강화 방안을 마련, 6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2003년 허용된 홈쇼핑 보험 시장은 현재 20개 보험사가 5개 홈쇼핑사를 통해 지난해 145만건의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성장했다. 세계에서 홈쇼핑을 통해 보험을 판매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상품설명이 미비하거나 서명동의 또는 자필서명이 없어 불완전 판매로 처리되는 비율은 지난해 생명보험 1.86%, 손해보험 1.25%였다. 설계사를 통한 불완전 판매비율(생보 1.28%, 손보 0.27%)보다 훨씬 높다. 3만원이 넘는 고가 경품은 추첨이나 선착순으로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경품 안내 시간은 본 상품 방송 시간의 10% 이내, 횟수는 3회 이하로 제한된다. 케이블방송의 보험 안내광고도 제약을 받게 된다. 연예인처럼 모집종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상품 추천만 가능하고, 보장내용이나 보험료 등 상품 설명은 할 수 없다. 연금보험과 같은 금리연동형 상품은 해지환급금을 최저보증이율 기준으로 반드시 작은 글씨가 아닌 음성으로 안내해야 한다. 인쇄 보험광고는 ‘준법감시인 확인필’이란 도장이 꼭 있어야만 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충북 ‘6900여 언어 박물관’ 건립 추진

    충북도가 세계의 다양한 언어를 한 곳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국립 세계언어문화박물관’ 건립 사업을 추진한다. 국가 차원에서 소중한 언어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취지다. 도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한 세계언어문화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 용역이 끝나는 대로 문화체육관광부에 박물관 건립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국격 상승과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문화수준 향상 등을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세계언어문화박물관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개발해 정부가 박물관 건립을 추진토록 한 뒤 이를 충북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도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청주에서 인쇄됐고, 세종대왕이 눈병 치료를 위해 약수로 유명한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를 방문해 한글 창제에 몰두하는 등 언어, 문자와 인연이 깊은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충북 지역 건립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다. 도가 구상하는 박물관 규모와 사업비는 총면적 8000㎡에 420억원이다. 완공 시점은 내년에 기본 설계를 시작하면 2015년쯤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국비를 들여 박물관 건립을 추진할 경우 도는 100억원 상당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도 권영주 문화산업팀장은 “인류의 언어문화 유산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세계언어문화박물관을 지을 경우 국제사회 기여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언어는 6900여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살아있는 책’과 대화 나눠보세요

    활자 인쇄된 종이 책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책을 직접 만나 보는 색다른 경험은 어떨까. 서울 관악구는 오는 12일 관악문화관·도서관 입구에서 ‘살아있는 책과의 만남, 리빙 라이브러리’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관악구에서 지난해 처음 시행한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 이벤트다. 주민들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 자리에서는 종이 책이 아니라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책’으로 나와 주민들과 소통의 장을 가진다. 이번 리빙 라이브러리는 ‘제21회 관악산 철쭉제’의 단위 행사로 개최된다. 권투선수 이나래씨, 시각장애 교수 이재서씨, 실버그린밴드단장 이수철씨 등이 살아있는 책으로 나와 자신들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유종필 구청장은 “활자로 된 책 대신에 살아있는 책을 대화로 읽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며, 대화가 갖는 따뜻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를 원하는 주민은 10일까지 관악구청 도서관과로 신청하면 된다. 한편 올해 관악산철쭉제는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관악산 광장 및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다. 특히 이 행사는 기존의 관 주도 형식을 탈피해 주민들이 기획·연출하는 주민 주도 축제로 꾸며진다. 학계, 문화전문가, 시민단체, 향토예술인 등 25명으로 구성된 관악구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진행한다. 각종 전시회, 공연, 먹을거리 관련 70여개 부스가 설치되며, 총 27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美, 빈라덴 은신처 문건 1년만에 공개 “통제력 약화되자 오바마 암살 계획”

    1년 전 사살된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이라크와 예멘 등의 신생 테러 그룹에 대한 통제력 약화로 실수가 늘어나면서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요인 암살을 의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대테러센터는 지난해 5월 2일 빈라덴 사살 작전 때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입수한 문건의 일부를 3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은 17건으로 빈라덴이 직접 쓴 일기와 2006년 9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다른 알카에다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포함돼 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빈라덴은 무슬림이 지하드(성전)의 이념 때문에 불신을 사고 있는 현상을 염려했다. 그는 이슬람 세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공격에 반대하면서 미국에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했다. 빈라덴은 2011년 4월에 쓴 편지에서 ‘아랍의 봄’ 현상에 대해 이슬람 역사에서 “가공할 만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테러 전문가 피터 베르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건들에서 드러난 빈라덴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꼼꼼한 성격의 인물인 동시에 그의 조직이 이슬람 국가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분석했다. 한편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수거한 문건은 총 60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일 작전에서 입수한 테러리스트 관련 자료로는 최대 규모다. 5개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이들 문건은 수십개의 하드 드라이브와 100여개의 이동 저장장치에 분산돼있었으며 오디오와 비디오파일, 인쇄물 등 다양한 형태로 보관돼 있었다고 당국은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급전 50만원 빌렸는데… 일주일만에 80만원 독촉

    지난 2월 회사원 계모(28)씨는 대부업자 박모(32)씨에게서 급전 50만원을 빌렸다. 불과 일주일 뒤 “80만원을 갚으라.”며 박씨의 독촉이 시작됐다. 원금에 이자 30만원을 보탠 금액이었다. 박씨는 심지어 ‘사기꾼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계씨의 사진이 실린 인쇄물을 계씨 집 근처 여기저기에 붙이기까지 했다. 이어 전화를 걸어 “가족을 쓸어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1일 연 3000%가 넘는 높은 이자를 받아 챙기고 채무자 가족을 협박한 대부업자 박씨를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박씨는 지난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채무자 120명에게서 연 39%인 법정이자율을 초과한 최대 3476%의 이자를 매겨 1억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채무자들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통장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뒤 이를 대포통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씨의 사무실에서 압수한 장부에 기재된 피해자들이 박씨의 보복을 두려워해 경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여죄를 찾고 있다. 이영준·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4대강에 이야기 입혀주세요” 국토부 새달 1일까지 공모전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는 다음달 1일까지 한 달간 온 국민이 참여하는 ‘4대강 크리에이티브&스토리텔링’ 대회를 연다고 1일 밝혔다. 공모분야는 홍보영상 부문에 ▲홍보영상물(UCC) ▲방송광고(30초 분량), 인쇄광고 및 웹툰 부문에 ▲신문광고 ▲웹툰, 이야기 부문에 ▲수기 ▲이용 개선 아이디어로 나뉜다. 접수가 마감된 뒤 내부 심사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39개 수상팀이 확정된다. 다음달 13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심사결과가 공지될 예정이다. 공모전과 관련된 사항은 4대강살리기 포털사이트(www.4rivers.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2) 1950~60년대 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2) 1950~60년대 만화를 말하다

    우리 만화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영화 등 다른 대중문화와 비슷하게, 만화도 신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때 국내에 첫발을 들였다.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렸던 이도형의 한 칸짜리 그림을 국내 첫 시사만화이자, 근대만화의 기원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17~18세기 조선시대 풍자화나 풍속화, 또는 그보다도 오래 된 민화(民畵)를 우리 만화의 뿌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 만화는 이미 1926년 첫 ‘원소스 멀티유스’(하나의 소재를 여러 장르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 사례가 나올 정도로 일찌감치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최초 풍자영화로 인정받는 ‘멍텅구리’라는 작품이 개봉했는데 이는 1924년 한 일간지에서 선보였던 노수현의 네 칸짜리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일제시대 만화는 짧은 시사 풍자만화가 주류를 이뤘고, 호흡도 짧았다. 우리 만화가 대중과 본격적으로 호흡하며 역사를 써나간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다. 일제에 의해 폐간됐던 신문과 잡지가 복간되고 새 간행물이 쏟아져 나왔다. 거기에 만화가 실렸다. 첫 단행본과 첫 만화전문 잡지도 등장했다. 특히 만화방을 중심으로 여러 장르의 작품이 쏟아진 1950년대 중후반에서 1960년대 초중반을 첫 황금기로 본다. ●‘코주부’ 김용환·‘고바우’ 김성환 선구자 해방 뒤 우리 만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코주부 캐릭터로 유명한 김용환(1912~1998)이다. 일본에서 그림 유학을 했던 그는 일찌감치 일본 최고 원고료를 받는 톱클래스 삽화가로 활동했다. 해방 직후 출간한 ‘토끼와 거북이’(1946)는 국내 단행본 만화의 효시로 남아있다. 김용환은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전문 잡지 ‘만화행진’ 창간을 주도했다. 협회를 만들어 만화가 권익향상과 후진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히트작 ‘코주부 삼국지’(1952)가 서울신문·한국만화영상진흥원 선정 ‘한국만화 명작 100선’에 포함됐다. 또 다른 거목으로는 시사만화의 대가 김성환(80)이 있다. ‘고바우 영감’(1950)으로 유명한 그는 3권짜리 반공만화 ‘도토리 용사’(1951)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김용환과 김성환은 우리 현대만화의 개척자이자 아버지다. 김용환은 과장법을 사용한 그림에서부터 섬세한 그림까지 만화의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능력을 갖췄다. 김성환은 과장법 위주의 가벼운 그림을 그리는 데 완벽했고, 호흡이 길지 않은 신문과 잡지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뤘다. 이들의 그림을 교과서 삼아 연구하고 따라하며 많은 작가들이 탄생하게 됐다.”(박기준) 이 시기 작품 19편이 한국만화 명작 100선에 포함됐다. 김용환을 비롯해 ‘엄마 찾아 삼만리’(1958)의 김종래, ‘만리종’(1959)의 박기당, ‘조국을 등진 소년’(1964)의 이근철, ‘땡이의 사냥기’(1965)의 임창 등 일본 유학을 했거나 일본에서 나고 자랐던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00선에는 들지 못했지만 국내 순정만화의 어머니 엄희자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만화방(만화가게)은 만화의 유통과 소비를 확산시켜 만화가 대중적인 오락거리로 떠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만화 자체의 질을 떨어뜨려 ‘불량’, ‘저질’ 이미지를 덧씌우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만화방이 등장한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만화 단행본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자, 이를 빌려주는 노점 좌판이 먼저 나타났다. 서점에서 실비를 받고 진열돼 있던 만화책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 뒤 사서 보기 힘들던 힘겨운 경제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만화방, 기폭제이자 부작용 양산도 작가들이 단행본으로 몰려 발행부수가 폭증했으나, 만화방이 생겨나며 판매부수가 줄어들자 서점들은 오히려 만화 취급을 꺼렸다. 만화 소비가 만화방 중심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전국 유통망을 갖춘 총판이 잇따라 등장하며 만화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59년 전국 2000 곳이던 만화방은 1960년대 말에는 9.5배인 1만 9000곳으로 늘었다. 만화방이 성황을 이루자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찾는 수요가 생겨났다. 이에 맞춰 부엉이문고, 제일문고, 크로바문고 등 만화전문 출판사가 등장했다. 이 출판사들은 인기작가를 전속으로 두고 만화책을 펴냈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만화가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저가·저질 만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반 20쪽 안팎의 딱지만화가 유행했지만, 중후반에 두꺼운 고급 양장 단행본이 성공을 거두며 시장을 재편했다. 그러나 만화방용 만화는 고급 양장본과 달리 분량도 50~60쪽 안팎에 그쳤고, 싸구려 느낌이 강했다. 특히 1967년 중소 출판사들이 뭉쳐 ‘합동’이라는 이름으로 만화 출판과 유통을 독점하게 되자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신촌대통령 합동의 등장 이후 더 열악해졌다. 단가를 낮추면 그만큼 이익이니 크기도 줄이고, 종이도 싸구려를 썼다. 인쇄도 조악했다. 인기작이 나오면 대충 베끼기 일쑤였다. 만화 자체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박기준) ●검열의 시작… 20~30년 후퇴기 1961년 5·16 군사 쿠테타는 문화계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가들의 창작력을 옥죄는 사전심의, 즉 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만화도 예외일 수 없었다. 1961년 12월부터 원로 만화가들과 출판사 관계자로 구성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이름만 ‘자율심의’인 검열을 맡았다. 그러나 명목상의 자율도 오래가지 않았다. 1967년 박정희 정부는 밀수, 도벌, 탈세, 폭력, 마약과 함께 만화를 ‘사회 6대 악(惡)’으로 규정했다. 이듬해 8월 한국아동만화자율회 해체 뒤 문화공보부 산하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생겼고 이들은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소재와 내용은 물론 어린이 건강을 보호한다며 종이 종류와 판형, 쪽수, 편수까지 통제하고 강제했다. 이름과 달리 폐휴지나 다름없던 선화지(仙花紙) 대신 갱지(紙)를 사용하게 하고 국판에서 4X6배판으로 책 크기를 키웠다. 권당 최대 130쪽까지 내용을 늘리게 하는 대신 편수는 무제한으로 이어가지 말고 ‘상·중·하’로 끝내게 했다. 아동만화윤리위원회는 1970년 1월 한국도서출판윤리위원회, 한국잡지윤리위원회와 함께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현 간행물윤리위원회)로 통폐합됐다. “남자와 여자가 손만 잡아도 풍기문란이라고 빨간 색연필이 그어졌다. 심지어 가족이라도 남녀가 한방에서 자는 것은 그릴 수 없었다. 전쟁만화를 그리면 북한 장교가 잘생겼다고 트집 잡아 늑대 같이 그리게 했다. 필명을 쓰던 작가들은 사람 이름 같지 않다는 지적에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만화 속 등장인물도 마찬가지였다.”(박기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 기사는 박기준 화백 인터뷰를 바탕으로 최열 ‘한국 만화의 역사’,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박기준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박인하·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를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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