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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이정희 연하장 발송 “행복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박근혜 이정희 연하장 발송 “행복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연하장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 당직자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희 전 대표에게 보낸 연하장이 오늘 오후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연하장에서 “2015년 희망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을미년 새해에는 국가 혁신과 경제 재도약의 성과를 체험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덕담을 전했다. 표지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수놓은 자수 그림을 인쇄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 연하장이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부쳐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연하장을 부친 다음날인 20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연하장 “직접 수놓은 자수 넣어”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에 왜?

    박근혜 대통령 연하장 “직접 수놓은 자수 넣어”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에 왜?

    박근혜 대통령 연하장 박근혜 대통령 연하장 “직접 수놓은 자수 넣어”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에 왜?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연하장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 당직자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희 전 대표에게 보낸 연하장이 오늘 오후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연하장에서 “2015년 희망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을미년 새해에는 국가 혁신과 경제 재도약의 성과를 체험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덕담을 전했다. 표지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수놓은 자수 그림을 인쇄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 연하장이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부쳐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연하장을 부친 다음날인 20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원전 해킹 여부 국가방위 차원서 대응하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보유하고 있는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의 부품 설계도와 주요기기 계통도 등이 대거 유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Who Am I’라는 아이디를 사용한 인터넷 블로그에 고리·월성 원전의 설계도, 계통도, 제어프로그램 해설서 등 원전 구조 및 가동과 직결된 핵심 자료들이 무더기로 게재된 것이다. 블로그에 실린 자료에는 이들 기밀 말고도 전·현직 한수원 직원 1만 799명의 이름과 사번·직급·입사날짜·퇴직날짜·이메일 주소·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도 다량으로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원전은 일말의 부주의한 사고로도 대규모 재앙을 낳을 수 있는 고위험 기간시설이다.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하혁명조직 ‘RO’가 비밀회동에서 공격대상으로 거론한 데서 보듯 북한을 위시한 반국가세력의 최우선 공격목표가 돼 있는 게 현실이다. 2010년 이후 국내 원전에 대한 해킹 시도가 무려 1840여회에 이른다는 국정감사 자료도 공개된 바 있다. 지난달 초 한빛·고리 원전에 대한 정부의 보안감사에서는 원전 관제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한수원 직원 19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유출되고, 폐기물 업체 직원들이 멋대로 원전을 들락거린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을 아연실색게 한 바도 있다. 한수원 측은 고리·월성 원전 유출 자료가 신입사원 교육용으로, 누군가가 인쇄된 교육용 자료를 들고 나가 인터넷에 띄운 듯하다고 밝혔다. 정부 합동조사에서도 아직 해킹에 의한 유출 가능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기밀 유출의 파괴력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원전 전산망이 외부와 단절된 별도 내부 통신망으로 작동된다지만 한수원 직원 1만 여명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유출된 만큼 언제든 한수원 서버를 통해 해당 원전 시스템에 침투, 테러를 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문건을 인터넷에 올린 세력은 다음에는 원전 제어시스템을 파괴하겠다고 2차 공격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국가 방위 차원의 대응이 요구된다. 수사당국과 정보당국은 무엇보다 신속하게 자료 유출 세력을 색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이들 자료가 더 확산되는 일부터 막아야 한다. 해당 원전을 비롯해 한수원의 사이버 보안 체계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아울러 ‘원전 마피아’에 대한 대규모 수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범죄 가능성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 현대홈쇼핑 완판 제품 ‘따사룸 단열시트’, 올해 첫 판매 시작

    현대홈쇼핑 완판 제품 ‘따사룸 단열시트’, 올해 첫 판매 시작

    주부들 사이에서 겨울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친환경 단열시트 ‘따사룸’이 홈쇼핑을 통해 올 겨울 첫 판매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 현대홈쇼핑을 통해 첫 선을 보인 따사룸은 론칭 시작과 함께 완판이라는 기록을 달성,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총 5회에 걸친 방송에서 모두 매진이 됐다. 이에 주부들의 실내환경 고민을 해결해주며 급증하는 난방비의 부담을 줄여주어 호평을 받았다. 따사룸은 인쇄층/알루미늄 필름층/발포 단열층/알루미늄 필름층/수용성 점착층의 다섯 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 튼튼한 구조로 외풍 유입 및 결로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 물기와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해 쾌적한 실내환경에서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이번 2014ver.의 따사룸은 단열효과를 더욱 높인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따사룸 단열시트 시공 전후의 표면온도를 측정한 결과, 16.5도에서 21.1도로 표면온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화상 촬영 결과 일반 콘크리트 벽면은 10도, 단열시트를 부착한 벽면은 18.2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수용성 점착제를 사용해 안전하며,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주부를 비롯한 초보자도 손쉽게 시트 부착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따사룸 관계자는 “기상청에서 포근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연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며 한파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며 “따사룸 단열벽지로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단열시트 따사룸은 오는 22일 오후 2시 40분부터 현대홈쇼핑에서 올해 첫 판매를 시작한다. 제품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ddasaroom.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삼국유사 최치원 고장을 소개합니다

    삼국유사 최치원 고장을 소개합니다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군이 삼국유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각종 사업을 활발히 펼쳐 눈길을 끈다. 고려 후기에 일연(1206~1289)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한국 고대사의 양대 문헌으로 평가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군위군은 오는 21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국악방송과 함께 ‘천년의 소리, 향가’ 음악회를 마련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찬기파랑가, 헌화가, 안민가 등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져 오는 향가 14수를 국악으로 만들어 소개한다. 류형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 김승근 서울대 교수 등 국악계 중진 작곡가 10명이 참여했으며 최숙희, 황숙경, 한창화 등이 부른다. 앞서 군은 지난 5~6월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국악방송과 함께 ‘삼국유사 특별강좌’를 6주간 운영했다. 10회 강좌와 삼국유사 현장 답사 기행 2회, 삼국유사 문화 콘텐츠 세미나 등으로 구성됐다. 삼국유사를 홍보하고 교육용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다. 군은 또 올해부터 2016년까지 국비 등 총 18억원을 투입해 ‘삼국유사 목판 복각사업’을 추진한다. 군은 이를 위해 지난 10월 31일 군위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에서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학술대회를 열었다. 군은 우선 국보 306-1호로 지정된 송은본 등 현존하는 인쇄본 중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을 선정해 이를 219판의 목판으로 만들 계획이다. 삼국유사의 목판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군은 이와 함께 2009년부터 매년 전국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삼국유사 골든벨’ 행사를 개최한다. 청소년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삼국유사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올해까지 모두 6회 행사에 3700여명이 참가하는 등 갈수록 인기다. 이 밖에 군은 매년 일연 선사와 삼국유사를 기념하는 문화축제인 ‘삼국유사 문화의 밤’ 행사를 연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삼국유사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 정읍 지역에서는 최근 ‘최치원 관광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됐던 고운 최치원(857~?) 초상화가 47년 만에 정읍 무성서원에 장기 임대 형식으로 돌아온 게 계기가 됐다. 지역에서는 최치원 관련 설화 등을 관광자원화하면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시는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 전역에 이름을 떨친 최치원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불·선 통합을 주창한 최치원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정읍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담배 사재기 막으려면 포장·모양부터 바꿔라”

    “담배 사재기 막으려면 포장·모양부터 바꿔라”

    “2015년산 담배는 포장을 바꿔서 4500원에 팔고, 2014년산은 계속 2500원에 팔아야 한다.” 담배 사재기의 원천 봉쇄를 위해 담뱃갑 포장이나 모양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담뱃값 2000원 인상에 따른 시장 혼란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정부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 정부가 ‘사재기 사태’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17일 포털 사이트에는 담배 사재기를 방지할 수 있다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내년 1월 1일 이후 출시되는 담배에 4500원이라는 가격을 표시하거나,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소비자가 손쉽게 ‘헌 담배’와 ‘새 담배’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년 이전에 출시된 ‘재고 담배’는 담뱃값이 오르더라도 4500원을 받기 어렵다. 담배에 제조일자를 명확히 표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지금도 담뱃갑에는 제조일자가 나와 있다. 예를 들어 ‘40918’이라고 찍혀 있으면 2014년 9월 18일에 만들어진 담배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숫자가 작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제조일자를 도드라지게 표기해 일각의 사재기가 헛수고가 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정부와 담배제조사들은 이런 ‘묘안’에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담뱃갑 디자인을 바꾸려면 인쇄 동판 등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면서 “게다가 디자인 수정은 정부가 담배업체에 강요할 수도 없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KT&G 측은 “제품이 그대로인데 가격이 올랐다고 디자인을 바꾸기는 어렵다”면서 “담뱃값이 인상됐던 과거에도 디자인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설사 디자인을 바꾼다고 해도 재고 물량을 먼저 출고해야 하는 만큼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선보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제조일자 표기 확대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고개를 젓는다. 기재부 관계자는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은 공장에서 제품이 나오는 출고일자를 기준으로 매겨진다”면서 “올해 만들어진 담배도 내년에 출고되면 인상된 세금이 붙어서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제조일자로 담뱃값을 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담뱃값이 몇 백원 올랐던 과거와 2000원이나 오른 지금을 동일시,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로도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담뱃값 인상이 ‘급작스럽게’ 결정된 것도 아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올해 7월 각각 담뱃값 인상 방침을 밝혔다. 한 네티즌은 “담뱃값을 2000원이나 올리면서 (정부가) 마치 이런 상황이 일어날 줄 몰랐다는 듯이 말하니 어이가 없다”면서 “결국 피해는 흡연자와 선량한 도·소매업자만 보고 있다”고 성토했다. 국회도 혼란을 방치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야가 ‘흡연 폐해 경고 그림’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교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3D 프린터로 제작된 의족으로 새 삶 얻은 견공 ‘더비’

    3D 프린터로 제작된 의족으로 새 삶 얻은 견공 ‘더비’

    3D로 프린터 된 의족으로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게 된 개가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 뉴햄프셔주 힐스버그의 ‘더비’(Derby). 더비는 태어날 당시 앞쪽 양발에 ‘해표지증’(phocomelia: 양쪽 팔 또는 다리가 없거나 있어도 불완전한 형태를 띠는 선천성 기형. 해표지증이라는 용어는 사지의 모양이 바다표범의 다리 모양이 된다는 뜻에서 유래)으로 알려진 선천성 기형을 가졌다. 앞다리가 없이 태어난 더비는 원주인의 버림을 받고 지난 4월 유기견 보호 비영리단체인 ‘피스 앤 포스’(Peace and Paws)에 의탁된다. 하지만 점점 자랄수록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는 ‘더비’는 모든 생활이 불가능해져 안락사 될 위기에 처한다. 그런 ‘더비’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더비’의 소식을 안타깝게 여긴 메사추세츠주의 3D 인쇄 전문 회사인 CJP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사의 대표 ‘타라 앤더슨’(Tara Anderson)이 3D 프린터로 의족을 제작해 주기로 한 것. 더비의 상태를 살펴본 앤더슨은 더비의 사진을 수천 장 찍어 CAT 프로그램을 이용해 3D 형상으로 만들어낸 후, 곧바로 의족 제작에 들어갔다. 완성된 의족이 나오기 전까지 ‘더비’에게는 임시 다리 역할을 할 바퀴달린 보조기구가 제공됐으며 마침내 지난 8월 ‘더비’의 3D 의족이 완성됐다. ‘더비’에게 의족을 선물한 앤더슨은 “‘더비’ 같이 기형으로 태어난 강아지나 사고로 불구가 된 강아지를 돕는데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8월 ‘더비’는 새로운 주인 포타노바(Portanova) 부부를 만나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사진·영상= 3D Systems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정병석의 경제산책] 지식정보 독점의 폐해

    [정병석의 경제산책] 지식정보 독점의 폐해

    인쇄술은 지식을 보급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서 종교개혁, 과학혁명, 산업혁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피지에 필사해 책을 만들던 사회에서 책은 값비싼 귀중품이었으며 부피도 커서 웬만한 사람은 소장하기가 불가능했다. 비싼 양피지 책을 소유할 수 있는 지배계층이 자연스럽게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데 금속활자로 종이에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다는 것은 책값을 낮추고 누구나 책을 구매해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의 독점이 깨지고 대중화가 시작된 혁명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서 고려에서 발명됐다.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를 주조해 ‘상정예문’(1232~1241)을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133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며 이를 유네스코가 2001년에 이미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5’에서 한국의 정보기술(IT) 발전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한 뒤 얻어온 기술’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된 것이라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연구할 때 교황의 사절단을 만났는데 조선을 방문하고 여러 가지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친구가 있어 배웠다고 전했다. 이렇게 앞섰던 고려와 조선의 인쇄술이 왜 빛을 못 보고 1000년간 최고의 기술혁신, 최고의 발명가라는 명예를 독일의 구텐베르크와 그의 금속활자에 빼앗겼을까? 조선의 인쇄술은 애초부터 대량 인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금속활자 하면 대량 인쇄를 생각하기 쉬운데 조선에서는 대량 인쇄가 아니라 다양한 책을 소량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금속활자는 하나의 인쇄판으로 대개 30~40장을 인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리활자를 고정시키는 밀랍으로 만드는 활판이 고정되지 못하고 움직이게 돼 몇십 장 인쇄 후에는 판을 새로 짜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종 임금은 “‘좌전’은 학자들이 마땅히 읽어야 할 서적이다. 금속활자로 인쇄한다면 널리 반포되지 못할 것이니 목판에 새겨 간행하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조선시대의 책값은 매우 비싸 유학자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대학이나 중용의 책값이 논 2~3마지기의 소출에 해당했다고 한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고 지배 관료층이나 지주들만이 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책값이 비싼 이유는 주된 원료인 종이값이 매우 비싸고 활자제조, 인쇄에 소요되는 비용이 매우 큰 데다 대량 인쇄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종이가 그렇게 비쌌던 이유는 종이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이다. 관영 조지서라는 기관에서 중앙정부 소요를 충당했으나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크게 부족해 민간에서 종이를 공물로 차출해야 했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의 공급도 현저히 제한돼 있었다. 조선에서는 민간의 서적 유통을 위한 서점을 개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조정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의하고도 200년이 넘도록 공식적으로는 허가하지 못했다. 베이징에 가는 사신들이 서적 구입을 위해 필수적으로 찾는 곳이 서점 여러 곳이 몰려 있는 ‘유리창 거리’라는 것인데 조선에 이런 서점을 개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존 체제를 수호하려는 지식 독점적인 관료들이 집요하게 반대해 끝까지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사학자는 지배 관료층이 서점 설립을 끝까지 반대했던 이유를 ‘지식을 독점하려던 지배층이 책이 널리 보급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식의 독점은 이렇게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 사이언스紙 편집장 “노벨상이 중요한 게 아냐…한국 변화 인상적”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 사이언스紙 편집장 “노벨상이 중요한 게 아냐…한국 변화 인상적”

    ”한국 과학교육 국제화·다양성 아쉬워” 리처드 스톤(Richard Stone) 미국 사이언스紙 국제뉴스 편집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계 저널리스트인 동시에 ‘아시아 전문가’, ‘한국 전문가’로 통한다. 그만큼 아시아와 한국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그가 내년 6월 서울에서 열리는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 프로그램 자문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했다. 세계과학기자대회가 동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이 동아시아 첫 대회 개최국이 됐다. 내년 대회 프로그램 구성을 논의하는 핵심기구인 자문위원회 회의는 12~14일 3일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12일 오후 경기 과천 미래창조과학부 인사와 만남을 가진 뒤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 도착한 스톤 위원장은 촉박한 일정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과학기관장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기자와 만난 그는 환한 미소를 띄며 ‘한국 기초과학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스톤 위원장은 “세계과학기자대회는 한국의 과학계를 홍보할 수 있는 장”이라면서 “여러 이슈를 공유하면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각 대륙에 한국의 과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년 세계과학기자대회 프로그램 자문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의하나. 이번 주말에는 특별히 내년에 열리는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 심포지엄 프로그램을 선정하기 위해 왔다. 제안서를 많이 받았는데 어떤 것이 가장 흥미로운지 우선 순위를 정하고 과학기자들이 어떤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질 지 논의하려고 한다. 이번 세계과학기자대회는 사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것이다. 중요한 대회이고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 뜻깊다고 생각한다. 과학 기자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어떤 주제나 이슈에 중점을 두고 있나. 각 트랙별로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데이터’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특별히 이런 데이터로 어떤 좋은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지 들여다 보고 있다. 아시아에서 저널리스트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한국은 잘 개방된 민주주의 저널리즘 사회이지만 상황이 다른 나라도 있다. 한국을 모범 삼아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시안 바이러스 헌터’(asian virus hunter)와 관련된 과학 분야 트랙도 있다. 아시아에만 있는 새로운 바이러스는 어떤 것이 있는 지 과학자 패널들이 논의한다. 중국, 인도, 일본 같은 나라의 공조 프로그램도 있고 북한의 과학 커뮤니티를 어떻게 외부와 연계시킬 수 있을 지도 토론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토론에 관심이 많다. →이번 대회 캐치 프레이즈는 ‘익스팬딩 아워 호라이즌’(Expanding Our Horizons: 시야를 넓히다)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대회의 한국 개최는 매우 뜻 깊다고 생각된다. 이 캐치프레이즈를 구체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특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회 조직위에서 정한 캐치프레이즈라서 아마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 조직위원장님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웃음). 과학기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널리즘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인쇄물은 줄어들고 점점 열악한 상황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자들도 자신을 재창조시켜야 한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하고 스스로 뉴스를 마케팅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학기자들이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지, 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영역을 개척하고 과학자와 대중을 잘 연결시켜 줄 수 있을 지 돕는 것이 이번 대회의 역할이다. →세계과학기자대회가 갖는 일반적인 의미는 무엇이며, 이 대회가 지금의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학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열정’이 없으면 맡기 힘든 분야다. 경력 면에서도 그리 매력적인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 열정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다음 세대 기자들에게 열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생겨나 많은 베테랑 기자들이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이것을 통해 현장에서 더 나은 스토리로 보도할 수 있게 되고 일반 대중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한국의 과학계를 홍보하는 장이기도 하다. 세계의 많은 과학기자들이 연구시설이나 컨퍼런스 워크샵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그런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해외에서 많은 기자들이 와서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어떻게 하면 잘 알릴 지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무엇으로 유명한 지 과학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삼성·엘지·현대라는 얘기 밖에 안한다. 한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암흑물질’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뛰어난 연구시설이나 기초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에 대해서도 세계 과학기자들이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도 중이온가속기를 개발하고 있어 과학계 전반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기초연구가 많이 홍보됐으면 좋겠다. 삼성 같은 회사도 TV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기초 연구 쪽과도 연계를 할 수 있는 지 여부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기초·응용과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제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연구개발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홍보할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가 그런 부분에서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내년 대회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과학 및 기술적 성과와 과학저널리즘에 대한 서구의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위원장의 견해는 무엇인가. 당연히 이해가 깊어질 것이라고 본다. 나는 2004년부터 한국과 북한 과학자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정말 좋았다. 여러 연구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동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해가 증진되고 여러가지 이슈를 공유하면서 한국이 아시아 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에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즉각적인 효과를 본다기 보다는 씨앗을 심어주고 확실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기업활동이 왕성한 곳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대한 기업들의 이해는 기대보다 높지 않아 보인다. 왜 그렇다고 보며,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내가 보기엔 우리 탓도 있는데 홍보를 잘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좀더 의중을 잘 전달한다면 앞으로 투자가 더 많아질 것이다. 사실 기업 경영 환경은 점점 더 제한적으로 변하고 어려움이 많겠지만 한국의 과학을 세계로 잘 알릴 수 있다고 하면 투자가 뒤따를 것이다. 한 회사가 시작하면 더 많은 회사가 후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강조해왔는데 창조경제라는 것이 신기술을 통한 변화 아닌가. 기자들은 변화를 좋아한다. 한국의 변화를 어필할 수 있으면 기자들도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한국은 권위적인 정부 구조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변모했고, 제조나 수출 위주의 빠른 경제 성장 이후에 완전히 방식이 바뀐 신소재 개발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환기에 있다. 이런 부분을 기자들이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위원장은 비교적 한국을 잘 아는 인사로 불린다. 위원장의 관점에서 한국 과학의 문제와 가능성을 짚어줄 수 있나. 한국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이라고 거창하게 얘기할 수는 없다(웃음). 한가지 말씀드리면 몇 년 전에는 정말 한국 과학이 위기상황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국제 커뮤니티에서 입지를 재구축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더 이상 소외된 나라가 아니다. 과학 인재가 있고 투자도 하고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중국도 한국처럼 과학분야에서 언제 노벨상을 타냐 목매 달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노벨상이 아니다. 한국은 위대한 발견을 위한 환경 조성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큰 변화이고 위대한 변화인 것 같다.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말 대단한 변화인 것이다. 과학계에서 봤을 때 몇년이 지나서 보면 그때가 전환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한국은 내가 봤을 때 특정 연구 분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었지만 또 어떤 부분은 그렇지가 못해서 일관성이 없다. 일본이나 중국, 한국 모두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굳이 유럽이나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자면 이런 나라는 해외 학생들이 많다. 멜팅팟(Melting Pot· 인종의 융광로)이라고 하지 않나. 놀라운 아이디어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 국제적으로 학생을 유치하는데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나는 코넬대에서 생물물리학을 전공했는데 나만 미국인이었고 다른 학생들은 전부 유럽이나 대만, 한국,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한국은 이제 점점 그런 부분에서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외부의 학생들이 오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어떤 수준을 뛰어넘기를 바란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을 국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新국토기행] 강원 원주시

    [新국토기행] 강원 원주시

    ■ 볼거리 치악산 아래 역사와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강원 원주는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고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강원감영에서부터 문학의 향이 듬뿍 묻어 있는 박경리문학공원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남아 있는 곳이다. 한지 등을 테마로 한 체험관도 있어 교육의 고장임을 실감 나게 한다. [강원감영]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머물며 직무를 보던 관청으로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된다. 1395년 조선 건국과 함께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권과 원주를 중심으로 한 영서권을 합해 강원도가 만들어졌고 이곳 강원도의 행정, 군사, 경제 등을 맡아 보는 관청으로 원주에 감영이 세워졌다. 이후 1895년 춘천으로 도청 소재지가 옮겨 갈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강원감영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포정루와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등 주요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국내 관아 건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구룡사] 치악산 기슭에 자리한 구룡사는 688년 의상대사가 아홉 마리 용을 물리치고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다. 도선국사, 무학대사, 사명대사 등 여러 고승이 수도하며 명성을 날렸다. 사찰 안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보광루와 대웅전 등 대부분의 건물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매표소에서 구룡사로 오르는 1㎞ 길은 명품 소나무 숲길로 유명한 산책로다. 길 양쪽으로 아름드리 금강송과 투명한 계곡물이 어우러져 숲의 그윽한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박경리문학공원] 박경리 선생은 ‘토지’ 3부를 마친 뒤 1980년 원주 단구동으로 거취를 옮겼다. 이후 1997년 토지문학관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며 4부와 5부를 집필했다. 선생의 옛집에는 실제로 사용하던 주방과 집필 공간 등이 원형대로 남아 있고 손수 가꾸던 텃밭과 나무 등도 있어 생전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주변 공원은 소설에 등장하는 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 등으로 꾸몄고 공원 내에 북카페를 둬 각종 서적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치했다. 2층에는 토지의 주요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특별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한지테마파크] 지금도 원주 호저면과 부론면 일대에서는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원주 한지는 700년 동안 보관이 가능할 만큼 품질이 뛰어나 ‘직지심경’과 ‘왕오천축국전’ 같은 중요 책자에 사용돼 왔다. 강원도를 500년 동안 관할하던 강원감영 관청에 한지를 공급하면서 한지문화와 한지인쇄문화도 자연스레 발전했다. 이렇듯 높은 원주 한지의 명성을 지키면서 전통 한지의 우수성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주한지테마파크가 조성됐다. 이곳에서는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하게 듣고 한지로 만든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은 1000원이다. [한솔뮤지엄] 자연 속에 조성된 오솔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문화,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뮤지엄이다. 외부에는 강원도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잘 살리면서 특별한 주제로 장식한 세계의 정원이 있다. 이름도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스톤가든으로 붙여 놓았다. 그 속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아름다운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전시관에는 국보, 보물급의 문화재를 포함한 페이퍼 갤러리와 판화공방이 있고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쾌대, 백남준을 비롯한 국내 근현대 작가의 회화와 조각품이 다수 전시돼 있다. [고판화 박물관] 신림면 황둔리에 있는, 국내 하나밖에 없는 옛 판화를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인도, 네팔 등의 세계 고판화와 함께 한국의 궁중판화, 사찰판화, 문중판화 등 희귀 판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총 25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뿐 아니라 뮤지엄 스테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목판화를 직접 새겨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간현관광지] 원주천과 삼산천이 합류하는 간현협곡에 자리 잡은 원주 대표 유원지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소개될 만큼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조선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희수가 주변 산세의 아름다움에 반해 잠시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장관이고 수심이 얕은 맑은 강을 따라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가족 단위로 편안한 휴가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인근에 소금강과 함께 간현봉, 구룡산 같은 명산이 있어 산행도 즐길 수 있다.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야영장, 화장실, 급수대, 샤워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원주에는 이 밖에 1000여종의 식물들이 자라는 허브팜, 일제강점기 벌목 운송을 위해 만들었다 지금은 갤러리로 탈바꿈한 반곡역, 근현대에 이르는 희귀 책자 1500여권을 전시하는 옛책고을박물관, 옻칠기와 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옻칠기·한지공예관이 있으며 숲 체험, 황둔찐빵 만들기 체험이 가능한 치악산관광농원(황둔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이만희 부시장은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의 질주 속에서도 손때 묻은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고장이 원주”라면서 “예부터 배타적이지 않은 원주 특유의 포용력 덕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원주를 찾으면 고금을 넘나들며 즐길거리, 볼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먹거리 청정 자연에서 나는 뽕잎을 따 만든 ‘뽕잎황태밥’과 비타민이 풍부한 복숭아즙으로 재운 ‘치악산 복숭아불고기’ 등이 원주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원주가 깊숙한 내륙 지역이다 보니 요리 재료가 귀했던 탓에 그동안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울 음식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웰빙 바람을 타고 이런 음식들이 인기를 끌며 자연스레 지역 특산 먹을거리로 뜨고 있다. [뽕잎 황태밥] 자연 속에서 자란 뽕잎과 강원 지역 특산품인 황태로 지은 뽕잎황태밥은 미네랄과 아미노산,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구수한 감칠맛이 일품인 건강 나물밥이다. 2200여년 전 중국 후한 시대부터 약재로 쓰기 시작한 뽕잎은 각기병과 몸이 붓는 증세, 식은땀, 풍 등에 좋다고 알려졌다. 해열, 진해, 이뇨 등의 효능은 물론 변비와 중금속 배출에도 좋다고 전해진다. 여기에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동의보감 등에 암과 난치병에 좋다고 기록된 황태까지 더해 만든 웰빙식품으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운채와 청정고을명가, 미향, 장수숯불갈비, 섬강한우촌, 우리소 등이 유명하다. 김은주 우리소 종업원은 “양념간장과 된장을 곁들여 먹는 뽕잎황태밥은 은은한 뽕잎 향과 부드러운 황태살이 밥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고 말했다. [치악산 복숭아 불고기] 우리나라 전통 고기구이는 중국 동북부 지방에 살던 맥족(고구려)이 먹던 숯불구이 고기 맥적에서 유래됐다. 맥적은 소고기를 썬 뒤 두드려 연하게 하고 대꼬챙이에 끼워 소금과 양념해 직화로 숯불에 구웠다. 석쇠가 나온 뒤에는 꼬챙이에 끼울 필요가 없어져 지금의 불고기가 됐다고 한다. 치악산 복숭아불고기는 치악산에서 나는 복숭아즙으로 한우를 재우고 참숯에 구워 기존 불고기와는 차별화된 색다른 맛으로 인기를 끈다. 복숭아는 비타민이 풍부하고 피로해소, 피부 미백,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장군화로구이, 장수숯불갈비, 돈벌수다, 섬강한우촌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원주 추어탕] 쌀쌀해진 겨울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추어탕이다. 사계절 보양식으로도 인기지만 겨울로 접어들 때 추어탕 한 그릇 뚝딱 비우면 추위는 저만치 물러난다. 추어탕은 장어 못지않게 영양가가 높은 반면 가격은 저렴해 서민 보양식으로 인기 있다. 강장, 해독 작용이 뛰어나고 빈혈, 당뇨병 개선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조는 개운동 골목 원주의료원 뒤에서 2대째 운영 중인 ‘추어탕’을 꼽는다. 20대 중반부터 추어탕을 끊인 주인 이복순(75) 할머니는 재료 선별부터 상차림에까지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 지금도 자연산이 나는 시기에는 양식을 들여놓지 않는다. 고유한 맛을 내기 위해 된장을 직접 담가 4년을 묵혔다 쓴다. 그래야 비린내가 없다고 한다. 원주 지역 추어탕은 된장을 풀어서 쓰는 경상도, 전라도와 달리 고추장을 사용한다. 지금도 음식을 직접 끓이는 이 할머니는 10년 먹을 고추장을 확보해 놨다. 치악산 자락의 집 옥상에는 고추장독이 150여개에 이른다. 장맛 때문에 추어탕에 마늘, 고추 외에 다른 조미료나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제맛이 난다. ‘음식 맛은 장맛’이란 옛말대로다. 인원수에 맞게 얇은 쇠솥뚝배기에다 추어탕을 바글바글 끓인 뒤 손님상에 낸다. 먹는 동안 식지 않아 좋고, 훈훈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미꾸라지숙회와 미꾸라지튀김도 있다. 이 할머니는 “집에서 해 먹던 맛 그대로 40년 넘게 추어탕을 끓여 내니 서울 손님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남과 다른 선택…“꿈을 위하여” 아름다운 도전] 방과 후 2년 실무 수업… 디자이너 취업

    [남과 다른 선택…“꿈을 위하여” 아름다운 도전] 방과 후 2년 실무 수업… 디자이너 취업

    대졸자도 바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디자인 회사에 졸업을 앞둔 여고생들이 대거 취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화여대 병설 미디어고 3학년 13명이 디자인 분야 취업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취업 비결은 2년 넘게 진행된 방과 후 취업 프로그램이었다. 학교는 2012년 2학기 고졸 디자이너 취업 프로그램인 ‘디자인 여전사’를 개설, 주 5일간 정규수업이 끝나는 매일 오후 4시 40분부터 편집디자인, 웹디자인, 디자인기획, 영상그래픽, 3D디자인 등 5개 분야에 대한 전공 교사의 취업실무 강좌를 열었다. 나아가 대입 수험생들의 자율학습을 본떠 오후 10시까지 자율실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학생들은 외부 전문가의 특강까지 듣는 등 2년 넘게 수험생과 같은 생활을 하며 역량을 길렀다. 이들은 교실에만 머물지 않고 경기 파주출판단지 디자인 및 인쇄 체험, 포트폴리오 전시회 등을 통해 현장 감각과 전공 취업 마인드를 키웠다. 월말과 연말에는 디자인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학생들이 제작한 프레젠테이션을 평가받기도 했다. 웹디자이너로 취업한 김정연(18)양은 “디자인 여전사에서 디자인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지켜야 할 예의 같은 것들도 배울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개설한 임경묵 부장 교사는 “디자인 역량과 엑셀, 파워포인트를 포함한 사무 처리 등 중소기업 취업에 필요한 능력도 함께 키우는 틈새 전략으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해외여행 | 예술을 입은 홍콩

    해외여행 | 예술을 입은 홍콩

    홍콩에서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 길을 걷다 수없이 마주치는 갤러리, 낡은 건물에서 만난 아티스트의 모습, 우연히 발견한 전시회. 어느 것 하나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홍콩 여행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Site 아티스트를 만나러 가는 길 홍콩은 여전했다.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것인지 횡단보도를 뛰듯이 건너는 사람들의 보폭에 맞추자니 마음이 급해진다. 버스도 택시도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질주했고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빨랐다. 어쩌면 내가 처음 홍콩을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힘찬 활기 때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자문자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여유롭고 싶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번잡한 도심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이동했을 뿐인데 여기 이곳, 확실히 조용하다. 낡은 건물 자키 클럽 아트센터JCCAC·Jockey Club Creative Arts Centre에 들어서자 마음은 더욱 차분해졌다. 몇몇 방문객들만이 작은 광장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977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과거 인쇄소와 플라스틱 제조업체들이 모여 있던 공장이었다. 1990년대 관련 산업들이 쇠퇴하면서 공장 소유자들이 중국으로 대거 이동했고 2001년 5월 이후부터 건물은 텅 빈 채 낙후되어 갔다. 그 후 2008년 홍콩 정부에 의해 예술 창작 센터 JCCAC가 문을 열었다. 낡은 공장이, 넓은 스펙트럼의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ㅁ’자 형태의 건물을 따라 찬찬히 1층을 둘러보니 이곳은 예술가들의 숨어 있는 아틀리에다. 가죽 공예부터 한 땀 한 땀 뜨개질로 스카프를 만드는 작가의 숍,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갤러리, 사진 스튜디오,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공간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문을 열고 있었다. “Welcome to my atelier!내 작업실에 온 걸 환영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업에 열중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내 시선이 좀 뜨거웠나 보다. 좀 구경해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묻자 어두운 작업실의 불을 환하게 켜 준다. 아주 작은 나무와 집, 가로등과 같은 것들이 그의 섬세한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는 작은 금속을 두드리고 컷팅해서 만든 펜던트를 보여 주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이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잠시 들른 것뿐인데 유일무이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만나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길, 그래서 텅 비어 있거나 문을 굳게 닫은 아틀리에들이 생기를 되찾길 간절히 바랐다. JCCAC 30 Pak tin street, Shek kip mei, Hong Kong 프론트데스크 10:00~19:30, 입주한 아틀리에마다 상이 852-2353-1311 www.jccac.org.hk ●Street 예술의 힘이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페더빌딩Pedder Building이 어디에 있죠?” 지도상 페더빌딩은 센트럴역 D1 출구 가까이 위치해 있었는데 한참을 헤맸다.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뱅글뱅글 돌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나를 쇼핑몰로 안내했고 또 어떤 이는 페더빌딩이라며 정체 모를 회사 빌딩을 가리켰다. 가만히 있어도 후끈 달아 오르는 열기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웠던 빌딩 숲 사이에서 주저앉아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페더 스트리트Pedder St.에서 기다란 직사각형의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리 더운 날씨에도 페더빌딩을 찾아 헤맸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한마디로 족하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갤러리들이 빌딩 하나에 모여 있으니까. 가고시안Gagosian, 사이먼 리Simon Lee, 하너트Hanart T Z 갤러리 등 현재 총 6개의 갤러리가 페더빌딩에 층층이 자리해 있다. 2009년,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서양 현대 미술의 트렌드를 보여 주는 벤 브라운 파인 아트Ben Brown Fine Arts 갤러리가 아시아 마켓으로의 영역 확장 차원에서 홍콩 페더빌딩에 입주했고 반대로 홍콩에서 중국을 비롯해 동양의 현대 미술을 알리는 펄렘PearlLam 갤러리도 매력 넘치는 작품들로 빌딩을 채웠다. 북적이지 않는 갤러리는 참으로 반가웠다. 그곳에서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하게 산책을 하면서 오로지 작품 감상에 몰두할 수 있었다. 건물을 나오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더들 스트리트Duddell St.에 있는 스타벅스 콘셉트 스토어에 들러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나오던 길에 르 캐드리Le Cadre 가구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굳게 잠긴 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신원을 밝히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982년 가구를 비롯해 도자기, 인테리어 소품을 전시한 갤러리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대로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갤러리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가구와 동양의 담백한 소품들로 예술과 인테리어의 간단명료함을 추구한다고. 돌아보니 이곳을 찾는 고객과 디자이너, 그 밖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독려하는 공간으로서 사진과 벽화, 조명까지도 세심하게 챙겼음이 갤러리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갤러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느낌과 철학이 어찌나 강한지 그들은 오히려 알려지는 것이 별로 반갑지 않다고 했다. 갤러리 홈페이지를 폐쇄한 이유도, 사진 촬영을 딱 두 장으로 제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르 캐드리 갤러리의 스타일을 모방한 갤러리들이 끊임없이 생겨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고. 약속대로 사진은 딱 두 장만 찍었고 멋진 공간을 친절하게 설명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 밖에 소호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도 돌아봤다.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 타르트를 손에 쥐고 할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 서쪽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도 가 보고, 주얼리를 전시하는 aME 갤러리도 들렀다. 그 길의 끝에는 홍콩의 신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 PMQ도 있었다. 발이 퉁퉁 붓도록 걸었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마주하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말은 옳은가 보다. Pedder Building 12 Pedder St., Central, Hong Kong 입점 갤러리 | 가고시안Gagosian, 펄렘Pearl Lam, 사이먼 리Simon Lee, 하너트Hanart T Z, 리만 머핀Lehmann Maupin, 벤 브라운 파인 아트Ben Brown Fine Arts ●Exhibition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전시회에서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예술작품들을 쇼핑몰 곳곳에 전시한 K11 아트 쇼핑몰에서 그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날은 설치미술, 공예, 제품,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3명의 한국 아티스트들이 쇼핑몰 지하 1층 갤러리에서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전을 선보이는 첫날이었다. 오프닝 행사가 한창이던 복잡한 전시장에서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 의미는 완전히 다르지만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공통된 점이 있다면 모든 작품이 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바느질로 총과 칼, 방패의 형태를 만든 허보리 작가의 작품은 ‘허세무기’. 자세히 보면 그 조각보는 색색의 넥타이들로 이어져 있다. 정장을 입은 남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녀. 마치 정장이라는 전투복을 입고 넥타이라는 무기로 장전한 모습이 수렵시대에 사냥을 나서는 남성들처럼 느껴졌다고. 그녀의 작품에는 명품 넥타이들의 상표가 유난히 눈에 띈다. 사람을 상대하며 비즈니스 경제 활동을 하는 현시대에 상표에 의해 자신감을 얻을 수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남성들의 양면을 표현했다. 실용적 이유로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무기가 바로 넥타이라는 것이다. 둥글고 하얀 백자 도자기 위에 그래피티 아트 느낌의 자유분방한 그림과 함께 메시지가 적혀 있다. ‘I pray for you’. 작은 꽃이 꽂혀 있는 단아한 모습의 화병에는 ‘LOVE’라는 단어가 수줍어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작품일까 살짝 궁금증을 가져 봤지만, 아니다. 강준영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과거가 반영되어 있다.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을 늘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반대로 외국 생활을 그리워했다고. 그리고 그 그리움을 도자기를 캔버스 삼아 그려내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 기도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것은 바로 가족 때문이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할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졌던 그는 작품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이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랑의 형태는 굉장히 다양한데 저는 그 사랑의 출발점이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기도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도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한 것이죠. 세상의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저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두 작가는 일상에서 얻은 작은 생각들과 심도 있는 깨달음을 작품으로 표현했고 많은 이들이 그에 공감하길 바랐다. 어쩌면 하나의 예술 작품이 세상을 평화롭게, 풍요롭게 만드는 커다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전시장을 떠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예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K11 18 Hanoi Rd., Tsim Sha Tsui 10:00~22:00 852-3118-8070 www.k11concepts.com/en ●Interview 홍콩익스프레스 앤드류 코웬Andrew Cowen 부사장 완벽한 도시에 예술을 입혀 미각을 깨우는 다양한 음식과 지갑을 열게 만드는 수많은 쇼핑몰, 섹시한 클럽과 감동적인 야경. 아기자기한 골목과 유럽풍의 거리가 조화를 이루는 해변가 스탠리Stanley와 아이들의 천국 디즈니랜드. 여행지로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홍콩은 미술애호가들의 눈도 충족시켜 줄 만한 예술적 면모까지 갖췄다. 홍콩의 로컬 항공사 홍콩익스프레스도 이러한 멀티 컬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홍콩익스프레스 앤드류 코웬Andrew Cowen 부사장을 만나 항공사가 예술 산업에 일조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홍콩의 갤러리들을 주말마다 방문하거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홍콩섬 엘리 웨이Alley Way라는 작은 골목길이나 스타의 거리와 같은 곳에서 감상하는 스트리트 아트를 더 선호한다. 스트리트 아트가 그에게 특별한 것은 우연히 만난 화가들,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아가씨, 오래된 도자기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홍콩 현지 느낌이 물씬 묻어 있는 작품들을 얻을 수 있는데 영국에서 온 그로서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작품들이 신선하고 인상적이라고. 그는 예술과 여행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여행을 통해 지금껏 경험하지 않은 색다른 컬러와 디자인,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전을 지원하는 것은 항공사가 단순히 한국과 홍콩을 잇는 물리적인 역할을 넘어 예술가들의 작품에 좀더 도움이 될 만한 기회를 마련해 주는 작은 격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양국의 문화 교류와 관계를 독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로컬 항공사로서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와 이벤트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행지로서 다양한 매력을 가진 홍콩이지만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죠. 예를 들어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남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한 도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다양한 문화와 이벤트를 통해 더 많은 여행객을 유치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 또한 항공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지리적 위치가 아니더라도 홍콩에서는 예술 산업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비롯한 외국 경매회사들과 갤러리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고 미술품 거래에도 면세 혜택을 주고 있으며 해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예술 축제들을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응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홍콩익스프레스 www.hkexpress.com 홍콩 디자인센터 한국사무소(파이카) 070-8128-9735 ▶travel info Hong Kong Airline 홍콩익스프레스는 홍콩의 유일한 LCC 항공사로 인천-홍콩 노선을 매일 2회 운항하고 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정기편은 07:25UO618과 12:55UO619가 있으며 귀국편은 04:20UO615, 21:50UO614에 홍콩을 출발하는 스케줄이다. 소요시간은 약 4시간. 지난 8월부터는 부산-홍콩 노선이 주 6회(월·화·수·목·토·일요일) 새롭게 추가됐다.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Art Place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뉴욕에 기반을 둔 비영리교육기관으로 홍콩센터에서는 미국과 아시아의 경제·정치·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위한 공연과 전시, 각종 세미나 등이 열리고 있다. 과거 영국군의 탄약고였던 건물의 모습이 구석구석 남아 있어 전시가 열리지 않아도 조용히 산책하며 둘러보기에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9 Justice Dr., Admiralty, Hong Kong 09:00~21:00(연중무휴) 852-2103-9511 www.asiasociety.org aME Gallery 홍콩섬 소호에 위치한 주얼리 갤러리로 세계 각국의 보석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aME’는 라틴어로 사랑과 영혼을 뜻하는데 정교하고 섬세한 보석과 인간의 감정을 조화롭게 만든다는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잘 들어맞는다. 재료는 금속부터 유리, 원석, 금 등 다양하며 때때로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상설 전시 중인 액세서리는 구입도 가능하다. 12/F Tin On Shing Commercial Bd., 41-43 Graham St., Central, Hong Kong 화~토요일 12:00~19:00 852-3564-8066 www.ame-gallery.com PMQ 지난 8월 오픈한 PMQ의 역사는 훨씬 깊다. 1889년 최초의 공립학교 센트럴스쿨이었던 이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후 경찰들의 숙소로 모습을 바꿨다. 그러나 2000년부터 사용이 중지되었다가 얼마 전 홍콩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으로 또 다른 변화를 이뤘다. 110여 개의 부티크숍, 갤러리, 디자인 스토어와 아틀리에까지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No. 35 Aberdeen St., Central, Hong Kong 07:00~23:00 852-2870-2335 www.pmq.org.hk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 한국의 공예적 특성이 묻어나면서도 개성 있는 디자이너 13명이 홍콩에 모였다. ‘In Art We Live’를 슬로건으로 쇼핑몰 곳곳을 미술과 디자인으로 장식하고 있는 아트 쇼핑몰 K11의 창립 5주년을 맞아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전을 준비한 것. 설치미술, 공예, 제품,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생각이 자유로운 좋은 물건’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홍콩 디자인센터 한국사무소에서 처음으로 홍콩에서의 한국 작품을 전시 기획한 것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K11 아트 쇼핑몰 지하1층 갤러리 홍콩디자인센터 한국사무소 070-8128-9735 전시기간 2014년 10월12일까지, 10:00~22: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정강정 前 한국교육평가원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정강정 前 한국교육평가원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단순한 입시제도이면서도 그 파문이 엄청난 사회제도인 측면이 강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물수능’, ‘불수능’ 논란이 이를 반증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입시에서도 복수정답이 인정되면서 교육부는 아예 수능체제 개편을 검토 중이다. 수능을 출제하고 관리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4년간 원장으로 일한 바 있는 정강정(70)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으로부터 수능 등 교육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했다. 박현갑 편집국 부국장 eagleduo@seoul.co.kr →2015 입시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성태제 원장 시절에 이어 올해에도 수능 출제 등에 문제점이 드러나 김성훈 원장이 사퇴를 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그 사람들 잘 압니다. 다 평가전문가들이죠. 교육평가를 전공한 학자들입니다. 지난번 세계지리 오류가 문제이지 이번에는 정답 확정 전의 일인데 김 원장 사퇴는 안타깝습니다. →소송까지 간 작년은 문제가 확실히 있었네요? -뭐랄까. “우물이 깊어지면 하늘이 좁아진다”고 하죠. 전문가가 국민 정서, 아이들 정서를 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1차 소송에서 이겼으나 정부가 이긴 게 아니죠. 그런데 이번에 복수정답을 인정한 것은 이의신청 기간에 이뤄진 것으로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수능이 워낙 민감해서 가 정답을 가지고 이의신청을 받아서 출제위원들, 학회에서 심사해서 정답을 확정합니다. 그 과정인데 원장의 사표를 받더군요. 그러면 안 됩니다. 김 원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도 경제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창의적 인재를 찾는 것 아닙니까? 실수를 용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분위기가 창의 인재를 키우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수정답은 해마다 한 두건 있습니다. →복수정답 시비로 과거에도 정부에서 소송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나요? -제가 있을 때도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7년 수시 1차 합격자 발표까지 다 끝난 이후 교수의 문제제기로 당시 교육부에서 소송하려고 했으나 제가 만류해 안 했습니다. →물리 2 문제였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수시 1차 전형 합격자 발표도 다 끝난 이후인 12월 24일 서울대의 한 교수가 고교 물리교육 범위 안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학문적으로 보자면 복수정답이 있는 문제라고 방송을 불러놓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논란이 붙었죠. 그 교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수시 1차 합격한 것을 무효로 하고 다시 성적을 산정해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때도 평가원에서는 우리가 소송 가면 반드시 이긴다고 했죠. 그런데 대법원까지 갈 경우, 결론이 나는 데 2년이 걸립니다. 이쯤 되면 입시 끝나고 승자 없이 다 패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부가 학생들 상대로 소송하는 게 국민 정서에 안 맞습니다. 당시 문제제기로 복수정답이 인정되면 1000여명이 점수를 받게 되는데, 만약 인정을 하지 않으면 해당 학생들이 두고두고 정부를 원망하고 선생을 원망하고, 평가원을 원망하지 않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이 결심이 우리 내부만으로 안되더군요. 최종적으로 청와대까지 동원했죠. →청와대까지 설득했다는 뜻이네요 -청와대에다 세 가지 원칙을 얘기했습니다. 학생들 구제가 제일 원칙이다. 학생들 상대로 소송은 안 된다. 내가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이었죠. 제가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날 오후 5시에 90도로 기자들에게 고개 숙이고 발표했습니다. 복수정답으로 인정하고 성적을 재산정한다고요. 그러자 그날 저녁 7시에 서울대에서도 입학사정을 다시 하겠다고 했고 다른 대학들이 다 따라왔습니다. 합격자 발표까지 다 하고 바꾼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성적 재산정을 했으나 학생들 등급이나 합격자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회적 파문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현 수능을 어떻게 평가하며 개선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현 수능은 너무 날까로운 제도입니다. 5지 선택형으로 어떻게 실력을 평가해요? 찍어도 20%는 맞히는 것 아닙니까. 선택형이면 창의 인재를 못 키웁니다. 선택형은 요령 아닙니까. 시험은 어려운 게 원칙이죠. 서답형 문제로 바꿔 나가자는 게 제가 원장으로 있을 때부터 과제였습니다. 연구도 많이 해왔는데 워낙 민감한 문제니 겁이 나서 바꾸지 못하는 것이죠. 김성훈 원장도 목표가 그것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수능은 자격고사화로 가야 합니다. 시스템을 바꾼다면 말이죠. 이에 앞서 서답형 출제 비중 확대, 문제은행식으로 가는 것도 필요하고요. →수능을 전형자료로 쓰지 말고 학업성취도 평가 연장 선상에서 패스 여부로만 활용하자는 자격고사화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대학이 받아들이기 어렵겠죠. 대학이 수능에 너무 의존합니다. 원래 취지는 수능을 참조해서 대학이 심층면접, 논술, 학생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발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대학들이 귀찮아서 그런지 잘 안 하면서 수능에 의존했죠. 대학입장에서 보자면 수능 이외에 고교 성적을 많이 반영해야 하는데 고교가 전국에 천차만별이다 보니 쉽지 않겠죠. 그래서 자격고사화가 원칙이지만 이상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은행식, 서답식 출제는 기술적인 문제로 평가원에 맡겨 놓으면 되고요. 관련 자료가 엄청 축적돼 있습니다. 100% 서답형은 어려우나 대부분은 서답형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시, 행시 다 논술식 출제로 하지 않습니까. →서답형으로 가면 이의제기 등 혼란이 적지않을까요? -이의신청이 많겠죠. 서답형으로 출제하되 이의신청 검토기간을 늘려 심도있게 논의하면 된다고 봅니다. 학생들 중에는 돌출형 답을 적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창의력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가 수능 체계 개편에서 평가원은 배제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평가원에 150~160명의 박사가 있는데 미국에서 데려오려나(웃음). 미국에도 우리 수능과 비슷한 SAT가 있으나 우리만큼 날카롭지 않습니다. 내 취임 일성이 “수능 어렵게 하면 안 된다. 고교 내신 많이 반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맞습니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형을 활용해야 하는데 전국 고교가 천차만별이다 보니 수능으로 다시 왔죠. →현행 합숙식 출제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35~36일 감금 출제하죠. 나중에 출제위원을 했다고 자랑도 못 합니다. 그러니 섭외가 어렵습니다. 출제위원 사정사정해서 모셔오는 실정입니다. 출제위원이 제가 원장으로 있을 때 400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더 많겠죠. 종전처럼 교장이나 총장이 반대하면 내년에는 모시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은행으로 간다면 감금출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보안은 평가원에서 책임지고요. 15일은 출제, 15일은 인쇄 교정하는 식이다 보니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교수가 출제하고 교사가 검토하는 현 시스템도 반대로 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변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육정책은 한국교육과정개발원(KEDI)에 맡겨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워낙 국민들 관심이 많다 보니 대통령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셈이죠. →원장으로 일하시던 노무현 정부 시절 일화가 있다면? -당시 청와대에서도 교육개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04년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아래 안병영 부총리, 정운찬 서울대 총장, 교육혁신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혁신 대책회의를 2시간여 정도 연 적이 있는데 제가 모두 반대했습니다. →어떤 정책이었나요?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수능 9등급을 6등급으로, 학교시험을 교과목 중심 출제를 교사 중심 출제로 바꾸고, 학생부를 교육이력철로 바꾸고 시행을 2007학년도부터 하자는 것 등을 안건으로 올렸죠. 그런데 제가 사표 쓸 각오를 하고 반대했습니다. 수능 등급을 9등급에서 6등급으로 하면 60만명이 보는 시험인데 한 등급에 10만명이 될 것인데 백분위, 표준점수 없애고 어떻게 전형자료로 쓸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죠. 교과목 중심 출제를 가르치는 교사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은 원칙은 맞으나 대입전형자료로서의 고교내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몇 년 더 기다렸다가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반대했고요. 교육이력철은 학생중심이 아니라고 반대했죠. 그러자 교육이력철은 교육혁신의 상징이라며 반론이 나왔는데 제가 그러면 명칭을 공모하자고 했죠. 저는 교육 혁신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임기와 교육혁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통령이 묵묵히 듣고 계시다가 “그러면 관두자”고 하시더군요. →청와대에서 기분 나빠했을 것 같네요. -그렇죠. 예전 같으면 안기부에 끌려가 혼날 일이었죠. 그런데 고마운 게 그 뒤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교육방송(EBS) 70% 연계 방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노무현 정부 시절 사교육비 경감이 현안이었죠. 고건 총리께서 사교육비 경감 필요성에 대해 운을 뗐고 교육부에서는 수능은 쉽게 내고 교육방송만 들어도 수능성적이 나올 수 있게 하도록 한다고 했죠. 당시 안병영 교육 부총리의 취임 일성이 “(어려운) 수능이 원죄다. 고교내신 많이 반영하자” 뭐 이런 식이었을 정도였죠. 부총리가 교육방송으로 가실 때 저를 데리고 가면서 EBS만 보면 학원 가지 않아도 되도록 하자고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변별력은 30%로 가리자는 취지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이것 또한 오래되다 보니 학교가 EBS 학원이 되는 문제가 생기고 있고요. →교육감 직선제 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제입니다. 이념잣대로 교육을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 종사자가 똘똘 뭉쳐도 힘든데 4년 임기 내 교육을 바꾸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악을 짓는 일입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즈음 아이들이 딱합니다. 취직이 안 되어 취업재수하는 실정이잖아요. 그런데 눈을 세계로 돌리면 일자리가 많이 있습니다. 발전속도가 다 다르지 않습니까. 자주적 생활능력을 길러야죠. 교육도 그런 식으로 가야 합니다. 한 줄로 세우면 안 됩니다. ■ 정강정 前 평가원장은 누구 7년 교직→9급 공무원→행시 합격… 2003~2007년 평가원장 첫 연임 경북 경주출신으로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룬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대구사범을 나와 방송통신대를 거쳐 영남대 학사, 서울대 석사를 거쳐 고려대 박사학위를 땄다. 평가원은 2003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3, 4대 원장으로 일했다.8명의 원장 중 재임은 정 원장이 처음이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7년간 일하다 28세 때 현 9급시험인 5급 을류에 합격하면서 대구체신청 산하 전화국에서 행정서기보로 근무한다. 그때 처음으로 ‘계급사회’를 접한다. 젊은 서무과장이 전화국으로 왔는데 기세가 너무나 대단해 주변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행정고시출신인데 당신은 평생 일해도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핀잔을 들었단다. 하지만 그는 “나도 한번 해 보자”며 노력한 결과, 1년 6개월 만인 1975년 시행한 5급 고시에 합격한다. 영남대 행정학과 4년생 시절이다. 당시 동기들은 시·군으로 수습사무관 교육을 받아야 했으나 공직경험이 있어 바로 경제과학심의원회에 발령받는다. 이 무렵 서울신문과도 인연을 맺는다. 심의위의 각종 심의보고서 인쇄를 서울신문에서 했는데 교정일을 맡았다고 한다. 한 번은 심의보고서의 ‘보’자가 빠져 부랴부랴 집어넣은 적이 있단다. 이후 1977년 경제기획원 예산실, 1982년 신설부처인 체육부(문체부 전신)에서 총무과장으로 일했다.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운영단장을 거쳐 총리실에서 일한다. 정 전 원장은 요즈음 그간의 공직생활을 되돌아보는 참회록 작성을 준비 중이다. 1963년 불국사초등학교 교사에서부터 2013년 10월 세계문화 엑스포 사무총장 및 특별보좌관 자리를 끝으로 50년 공직생활을 정리한 내용이라는 그의 참회록 내용이 주목된다. eagleduo@seoul.co.kr
  •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언론·출판의 자유

    판례의 재구성 20회에서는 음란 표현물 등도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06헌바109)을 소개한다. 해당 결정을 비롯해 언론·출판의 자유에 해당하는 범위에 대한 헌재 결정의 변화와 이에 대한 해설을 헌법 분야의 권위자인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듣는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면허제나 검열, 형벌 등의 형태로 종종 이를 억압해 왔다.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정을 비롯해 이후 정권에서도 사전검열제 등을 만들어냈다.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고,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언론·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헌법 제21조 제4항)고 명시하면서 제약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윤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음란 표현은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최모씨 등 4명이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음란영상 등을 배포·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형사처벌하도록 정한 옛 정보통신망법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낸 헌법소원사건(2006헌바109)에서 재판관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물을 배포,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규정한 해당 법률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음란 표현도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는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헌재가 1998년 ‘음란 표현은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지 11년 만에 선례를 변경한 것이다. 헌재는 1998년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제청사건(95헌가16)에서 ‘음란이란 인간 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표현의 해악이 처음부터 해소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거나 심대한 해악을 지닌 표현은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음란은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크게 해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09년 헌재는 결정문에서 ‘음란 표현을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해석하면 음란 표현에 대해서는 명확성의 원칙, 검열금지의 원칙 등에 입각한 합헌성 심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며 ‘법률에 의한 제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원칙 등 기본권 제한에 대한 헌법상의 기본원칙도 적용하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보호 영역 밖에 있을 경우 형사처벌이나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한 행위에 대한 합헌성 심사나 법률적 근거에 의한 제한 등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헌재는 이어 ‘음란 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헌법상 보호마저도 부인하게 될 위험성이 높다’며 ‘음란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는 해당하되 다만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김희옥,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헌법 제21조 4항은 언론·출판 자유의 헌법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으므로, 그 한계를 벗어난 표현은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며 선례 변경에 반대하는 별개 의견을 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오피스 상주인구에 초점 맞춘 세종시 상가 ‘세종비즈니스센터’

    오피스 상주인구에 초점 맞춘 세종시 상가 ‘세종비즈니스센터’

    인구 80만 명을 목표로 하는 미래도시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거대 신도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시에 첨단기업들의 입주 신청이 봇물을 이루면서 신도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5일 행정도시건설청과 LH공사는 지난달 말 현재 세종시 신도심 지역에 병의원은 모두 51곳으로 지난해 12월 17개에서 3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3일 홈플러스가 대형마트로는 처음으로 세종시 어진동에 문을 열었고, 다음 달 16일에는 이마트가 개점해 주민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때 세종시의 중심상업지구가 주말에만 활기를 띠기 때문에 유동인구에 따른 수익이 안정적이지 못하는 지적이 많았지만, 꾸준한 인구 유입에 따른 부대시설 확충은 새로운 투자처로서 세종시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세종시 최대 규모의 오피스 건물 ‘세종비즈니스센터(SBC)’가 기존 상가의 틀을 벗어난 설계로 주목 받고 있다. 세종시 어진동 1-5생활권 C50BL에 위치한 세종비즈니스센터는 1~3층은 상업시설, 4층부터 6층은 오피스로 구성된다. 상업시설 138실, 업무시설 202실로 구성돼 있다. 세종정부청사와 도보 5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어 정부산하기관과 유관기관들이 주변에 풍부하며 자체 오피스 시설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배후세대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입지조건이다. 상가 입주 업종 역시 주 타깃인 공무원들을 겨냥한 인쇄소, 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방문하게 되는 뷰티샵, 병원, 자동차 전시장 등 다양하다. 여기에 세종비즈니스센터 주변에는 호수공원과 박물관, 정부청사 등이 위치해 유동인구 약 3만 명에 이른다. 이러한 장점은 단순히 오피스 및 공무원에 의존하는 수익이 아닌, 유동인구에 따른 수익 역시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종비즈니스센터 상가는 11월 27일부터 분양을 시작했으며 업무시설 및 상가 관련 문의는 홈페이지(http://세종비즈니스센터.kr)와 전화(1899-1222)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 ‘제비족’과 ‘꽃뱀’의 어제와 오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 ‘제비족’과 ‘꽃뱀’의 어제와 오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 단어 및 문장 표현은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 ‘제비족’과 ‘꽃뱀’의 어제와 오늘 7명에 15억 뜯고 날아간 제비…8년동안 수배중에도 사기 ‘덜미’ 2012년 김모(40·전과 1범)씨는 내연녀 오모(39)씨를 임신시켜 아이까지 출산하게 한 뒤 돈을 불려 주겠다며 8억원을 빼돌려 달아났다. 김씨에게 속은 건 오씨만이 아니었다. 그는 훤칠한 외모와 재력가인 양 꾸민 이미지를 앞세워 여성들에게 환심을 산 뒤 투자 유치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기를 반복했다. 2006년부터 8년 동안 경찰 추적을 따돌려 온 김씨는 지난 7월 경기 광주시의 한 빌라에서 검거될 당시 또 다른 여성과 동거하며 그 여성의 동생이 소유한 BMW 차량을 몰고 다녔다. 그에게는 사기 혐의 등으로 8건의 수배가 내려져 있었고, 피해자 7명이 김씨에게 뜯긴 것으로 확인된 금액만 15억 5000만원에 달했다.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은 김씨를 붙잡은 것은 서울 강남경찰서 악성수배자 전담팀이다. 전담팀장 권영만(49) 경위는 “수배자 검거에는 ‘첨단’과 ‘무식’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담팀은 한 손에는 휴대전화 위치추적단말기를, 다른 한 손에는 자신들의 소변을 받을 빈 페트병을 들고 불 꺼진 아파트 계단이나 골목에서 꼼짝 않고 수배자를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후략) 11월 28일자 서울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요새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신문, 잡지에 ‘제비족’이나 ‘꽃뱀’이 들어간 기사와 제목이 참 많았습니다. 제비족과 꽃뱀은 적당한 ‘재주’를 이용해 순진한 여자와 남자를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유린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과거 선데이서울에서도 다양한 ‘제비족’과 ‘꽃뱀’의 기사들이 다뤄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 [카사노바 “후회는 없다”…한달 사이 6명의 아가씨 울려놓고 여자는 인기인에 약해] -선데이서울 1971년 10월 3일자 유명 아나운서를 사칭하며 한달 동안 6명의 양가집 아가씨들을 떡주무르듯 요리한 한국판 ‘카사노바’가 쇠고랑을 찼다. 주인공은 서울의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 국군 방송국에서 6개월동안 아나운서 생활을 했다는 백모(29·부산)씨. 백씨는 사문서위조 동행사 등 혐의로 부산 중부경찰서에 구속됐다. 백씨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밥벌이를 못해 형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실업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백씨는 부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나운서인 부산 M방송국 송모씨를 사칭하기로 하고 지난 8월 10일 부산 동구 범일동 K인쇄소에서 큼직한 명함 100장을 찍었다. 이틀 후에는 위조된 신분증까지 인쇄했다. 그에게 처음으로 걸려든 미끼는 부산 시내 이름난 양장점의 ‘디자이너’ 김영숙(21·가명)양. 대낮에 하릴없이 남포동 거리를 헤매던 그에게 늘씬한 미녀가 지나쳤다. 미녀가 M양장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여겨본 후 다음날 다시 M양장점 앞에 숨어서 지켜봤다. 그녀가 M양장점 직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작전을 세밀히 세웠다. 다음날 낮 1시쯤 한가한 시간을 틈타 그는 조용한 다방을 선택, M양장점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가 M양장점이죠? 미스 김 좀 바꿔주실까요?” 단순히 이씨보다는 김씨 성(姓)이 더 흔해서 김양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양이라면서 고운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M양장점에는 김양이 3명이나 됐지만 공교롭게도 백씨가 찾던 김양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사기극은 이렇게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 M방송국 아나운서 실장 송XX올시다. 미스 김을 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한가한 시간이니 차라도 한잔 합시다.” 김양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더니 이내 한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송XX 아나운서’가 프러포즈를 하다니….” 이렇게해서 첫날 데이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첫날 벌써 김양은 백씨에게 반해 밤 12시가 되도록 따라다녔다. 그는 그날로 단숨에 그녀를 ‘정복’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여유를 두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다음날은 데이트 장소를 해운대로 옮겼다. 북적대던 한여름이 지난 조용한 해변을 거닐면서 그는 사랑한다고 능청스럽게 김양의 손을 잡은 후 결혼해 달라고 점잖게 프러포즈했다. 그날밤 해운대 고고·클럽에서 밤늦게까지 춤을 춘 후 호텔로 직행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김양에게 자기 신분증과 명함을 내보인 후 “결혼할 몸이니 같이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다”고 얼러 첫시험을 성공리에 끝맺었다. 다음날 행복해하는 김양에게 “늘 아나운서실에서 녹음 중이어서 전화해도 만날 수 없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할테니 방송국에는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일렀다. 백씨는 그후 김양과 세 번 더 만나 즐긴 후 결혼 비용조로 10만원을 우려낸 다음 자취를 감췄다. 다음으로 걸려든 여인은 동구 수정동 김단아(23·가명)양과 박복순(22·가명)양. 둘은 한 동네 사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하루 사이로 백씨의 제물이 됐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들은 지난 9월 2일 시내 충무동 S다방에서 처음으로 백씨를 만났다. 한가하게 음악을 즐기고있는 이들에게 백씨가 나타나 명함을 건네면서 데이트를 신청했다. 처음에는 둘이 같이 만났으나 며칠 후 둘은 서로 질투 끝에 싸운 후 따로 따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백씨는 둘을 차례로 유인한후 정복했다. 4번째 희생자는 부산진구 범천2동 김영순(24·가명)양. 명함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 김양은 그날로 자진해서 몸을 바쳤다. 그녀는 백씨와 하룻밤을 즐긴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며 기분좋게 헤어졌다. ”지금도 눈에 삼삼한 여인은 5번째 여인인 김성희(22·가명)였다”고 백씨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4번째 여인을 거친 다음날 시내 초량동 M식당에서 만나 김양은 백씨가 처음 대한 순수한 숫처녀였다고. 15일동안 무려 5명의 아가씨를 거쳐간 백씨는 이제 부산 아가씨에 물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 지방을 원정갈 계획을 세웠다. 대구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곳. 여섯번째의 박미숙양(22·가명)은 바로 대구행 고속버스 내에서 사로잡혔다. 명함을 들여다보고는 홀딱 달라붙더라고. 그날로 대구에서 같이 하룻밤을 즐긴 후 부산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대구 박양 집에 전화를 걸어 급한 일로 대구에 갈 일이 있다고 마중을 나오게 했다. “바쁜 일정이기 때문에 낮엔 만날 수 없다”고 능청을 떨고는 밤에 만난 박양에게 돈 5만원을 요구했다. 갑자기 회사일로 서울을 다녀와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얼버무렸다. 2일 후에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하고는 박양의 통장에 모아둔 5만원을 빼앗아 부산에 내려왔다. 그의 꼬리는 엽색행각 한달만인 23일 들통났다. 첫번째 여인인 김영숙양이 그동안 너무 소식이 없자 전화하지 말라는 백의 당부를 알면서도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실제 송 아나운서와 통화를 하게 된 것. 실체를 파악한 첫번째 김양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우연히 다음날 백씨가 김양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송 아나운서와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이 다방을 들어서는 백의 덜미를 낚아채 수갑을 채웠다. ▒▒▒▒▒▒▒▒▒▒▒▒▒▒▒▒▒▒▒▒▒▒▒▒▒▒▒▒▒▒ [서울 과부 후려먹은 양주(楊州) 춤솜씨…사업자금 안댄다고 죽도록 매질까지] -선데이서울 1971년 4월 18일자 서울의 춤꾼들과 플레이보이들을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 났다. 경기도 양주군 화두면 하산리의 시골신사가 서울로 진출, 미끈하고 날씬한 춤 솜씨로 내노라하는 30대 미인들을 후려잡아 명성을 드날린 것. 그런데 이 시골 신사의 솜씨는 결국 ‘돈 우려내기’였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8일 김모(36·무직)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의 고소인은 성동구 신당동에서 미장원을 경영하고 있는 강옥초(34·가명)씨. 김씨는 양주군 화두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춤의 명수로 명성이 자자한 백수건달. 경찰 조서에 의하면 김씨는 지난 1월 2일 신당동 소재 D카바레에서 처음으로 강 여인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강 여인은 34살 한창 나이에 수수한 미모의 소유자. 거기다가 돌아다니며 놀기에 적당할 만큼 돈도 벌리고 하여 춤을 배운 소위 ‘유한마담’으로 통하는 처지였다. 1월 2일 밤 신나게 두 사람은 한바탕 돌고나서 바로 이튿날 다시 만나게 됐다. 그만큼 김씨의 춤 솜씨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고, 강 여인은 김씨의 용모와 사나이다운 태도에 마음이 끌렸던 것. 이날 밤의 춤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차 숨가쁜 호흡 소리로 이미 의사를 소통하게 됐다. D카바레의 바로 옆골목에 붙은 E여인숙의 방에 들어가 이들은 제2라운드의 춤을 즐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 여인은 김씨가 홀아비인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돈도 인색하지 않게 썼다. 한번 트인 뱃길은 파도도 없다는 옛말처럼 이들은 거의 매일 밤 만나서 춤추고 여관에 가는 짓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김씨의 내심은 강 여인의 그것처럼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돈깨나 쥔 과부를 우선 춤과 육체교섭으로 녹다운 시킨 뒤 적당한 기회를 봐서 돈을 우려낼 심보였다. 김씨는 고향에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본처는 물론 자그마치 5남매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춤을 밑천으로 돈깨나 있는 여자를 꾀어 ‘즐기고 돈도 버는’ 양수겸장의 사기꾼이었다. 영화 구경, 교외 드라이브 등으로 이들의 뜨거운 관계는 무르익어갔다. 지난 2월 25일쯤. 이들의 분방한 애욕행각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발전했던 것인지 이날은 강 여인의 미장원 안방에서 회포를 풀었다. 정사가 끝난 뒤 드디어 김씨는 마각을 드러냈다. 사업자금이 필요한데 30만원을 빌려주어야 하겠다고 강요를 한 것. 강 여인은 일언지하에 “안된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정사와 사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 비슷하게 타일렀다. 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씨는 벌떡 일어나 팬티 바람으로 가게에 나가 미장원 거울과 창문을 몽땅 때려 부수고 말았다. 이날 피해 추산액이 3000원. 이때부터 그의 정체를 알게된 강 여인은 집요한 김씨의 요구를 거절하며 만나주지도 않았다. 2월 26일 밤 10시쯤 또 다시 미장원을 습격한 김씨는 새로 비치한 거울과 화분을 모조리 깨뜨려 4800원어치의 피해를 입히고 사라졌다. 그러고도 김씨는 끈덕지게 그녀를 따라 다녔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손댄 게 아니냐”는 등 달콤한 사탕발림에 30대 여자의 마음은 너무도 허약했던 것일까? 3월 6일부터 제기동에 전셋방을 얻더 동거생활에 들어가 버렸다. 이후 강 여인은 날이 갈수록 김씨의 화려한 엽색행각의 전모를 알게 됐다. 시골에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 것은 물론 때로 첩이라는 여자를 끌고 들어와 한방에서 거북한 잠자리를 같이 하기 일쑤. 그 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제3의 여자도 있었고, 숱한 유부녀와 춤솜씨를 발휘해서 여전히 교섭 중인 것을 알게 됐다. 3월 15일 저녁. 김씨는 느닷없이 본처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겠으니 그 위자료 150만원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강여인은 이 요구를 묵살하면서 “이젠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이 소리에 미치광이처럼 흥분한 김씨는 부엌의 칼도마를 들고 들어와 강여인의 얼굴을 여지없이 후려갈겼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는 이날 밤으로 전셋집을 탈출, 미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김씨은 미장원까지 뒤쫓아와 “네가 미장원을 해먹나 보자. 모조리 죽이고 만다”고 미쳐 날뛰었다. 이튿날 강 여인은 신당동의 K다방에서 김씨를 만나 8만원을 위자료로 지불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이날 하오 그녀는 8만원이라는 위자료아닌 위자료를 김씨에게 주며 이제 이것으로 우리는 그만이라고 당부했다. “지긋지긋해요. 그 사람이 그렇게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최악의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거예요. 저만이 아니고 10명 이상의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우려서 먹고 살아가는 치사한 사람이에요.” 강 여인이 아직도 치가 떨리는 듯 경찰신문에서 토로한 말이다. 4월 7일 오후 5시. 아주 헤어진 줄 알았던 김씨가 다시 미장원에 나타났다. 무턱대고 사업자금을 내놓으라는 요구. 이를 거절당한 김씨은 미장원의 의자와 기물들을 모조리 두들겨 부쉈다. 종업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결국 쇠고랑을 찼고, 악마적인 엽색행각의 종지부를 찍기에 이르렀다. “춤을 즐기는 것을 말릴 수는 없어요.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선 그게 사회악으로 빠져들어갈 요인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번 강여인의 예가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피해자들이 창피해서 어물어물하기 때문에 결국 드러나지 못하고, 이런 백수건들이 활개질치고 다니는 겁니다” 성동서 형사과장의 말이다. 춤 한번 잘못 추었다가 돈 털리고, 두들겨 맞은 강여인. ‘춤 좋아하다 패가망신 하였네’라고 해아할까?  ▒▒▒▒▒▒▒▒▒▒▒▒▒▒▒▒▒▒▒▒▒▒▒▒▒▒▒▒▒▒ [유혹하곤 트집 잡는 밤길의 여인] -선데이서울 1972년 5월 7일자 1972년 4월 26일 아침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실에 중년여인이 어떤 사나이의 멱살을 잡고 들어와 “이놈이 내 몸도 빼앗고 돈도 훔쳐갔다”고 아우성을 쳤다. 경찰은 남녀를 모두 즉결에 넘겼는데, 여인은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모 스웨터 공장직공 이모(36) 여인이고 남자는 코로나 택시 운전사 김모(30)씨. 사연은 25일 밤 11시 45분쯤 충무로의 한 호텔 앞길에서 이 여인이 김씨의 택시를 탄 데서 비롯된다. 택시가 정릉 쪽으로 달리던 중 중구 오장동에서 고장이 나 두 남녀는 같은 여관에 들었다. 처음에는 여자는 마루에, 남자는 방에 잠자리 채비를 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결국 방에서 동침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뜬 여인은 핸드백 속에 넣어뒀던 현금 800원이 없어졌다며 김씨를 의심했다. 김씨는 자기가 훔친 것은 아니지만 없어졌다고 하니 800원을 여인에게 주고 차고 주소를 알려준 뒤 이 여인과 헤어져 일하러 직장으로 나갔다. 이 여인은 김씨와 헤어진 뒤 곧 경찰에 김씨를 도둑으로 신고, 형사들이 차고로 달려가 김씨를 잡아왔던 것. 이 여인의 주장에 의하면 마루에서 자고 있는데 김씨가 자꾸 방에 들어와 함께 앉아서 밤을 새우자고 하는 바람에 춥기도 하고 해서 방에 들어갔다가 그만 정을 통했다는 것이나 김씨는 이와는 반대로 이 여인이 알몸으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왔다고 주장. 경찰은 이 여인을 밤거리에서 운전사들을 유혹한 후 트집을 잡아 돈을 우려내는 상습범으로 보고 있다. 영등포경찰서에서도 27일 이 여인과 비슷한 케이스로 최모(38) 여인을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최 여인의 혐의 내용은 1월 6일 0시 20분쯤 영등포구 흑석동 연못시장 앞길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택시 운전사 박모(28)씨를 “집도 없는 몸”이라며 여관으로 유인하여 동침, 박씨가 곤히 잠든 사이 박씨의 옷가지, 구두, 시계, 현금 7000원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 이런 일은 피해자들에게도 창피스러운 일인지라 피해자들의 신고가 없어 이런 여인들을 엄격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메이드 인 스페이스!…ISS서 3D프린터로 만든 첫 물건은?

    메이드 인 스페이스!…ISS서 3D프린터로 만든 첫 물건은?

    메이드 인 스페이스(Made In Space)! 우주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물건이 나왔다고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이 25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앞으로 우주 원정대의 장기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체류 중인 42차 원정대의 사령관 미국인 우주비행사 배리 윌모어는 17일 3D 프린터를 설치하고 보정을 위한 첫 번째 시험 인쇄를 시행했다. 이 시험 인쇄 결과에 기초해 지상의 관제팀은 해당 프린터와 동조하는 명령어를 전송하고 20일 재보정을 위한 두 번째 시험 인쇄를 진행했다. 이런 시험 인쇄는 프린터의 본격적 가동을 위한 준비가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4일, 관제팀은 이 프린터에 첫 번째 부품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프린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해 ‘메이드 인 스페이스’라고 적힌 부품을 만들어냈다. 이 부품은 ISS에서 사용하는 압출기를 넣어두는 케이싱(일종의 상자)의 덮개이다. 이로써 3D 프린터 스스로 지상 통제 아래 ISS에서 쓸 대체 부품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ISS 3D 프린터 프로젝트를 총괄한 나사 마셜우주비행센터 소속 니키 워키서 박사는 “이 첫 번째 인쇄된 부품은 지구로부터 떨어진 주문형 기계 공장에 능력을 제공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면서 “ISS는 우리가 우주에서 이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실험실”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이 3D 프린터는 비교적 저온인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가열해 지구로부터 전송된 설계 파일에 정의된 부품을 만들어낸다. 25일 오전, 윌모어는 3D 프린터에서 완성된 부품을 떼 접착력 등의 검사를 시행했다. 윌모어는 새로운 인쇄 트레이를 설치하고 지상 팀은 다시 미세 조정을 위한 세 번째 시험 인쇄를 했다. 윌모어가 이 시험 인쇄물을 제거하면 다시 지상 팀이 두 번째 물건을 만들기 위한 명령어를 전송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 팀은 모든 인쇄를 하기 전, 정확한 조정 작업을 거친다. 이는 ISS 속 환경이 지구와 전혀 다르기 때문. 워키서는 “앞으로 더 많은 인쇄로 (ISS 속) 미세 중력을 확인하고 조정 과정을 거쳐 완벽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아하! 우주] 지구서 원격…우주서 3D프린터로 만든 첫 물건

    [아하! 우주] 지구서 원격…우주서 3D프린터로 만든 첫 물건

    메이드 인 스페이스(Made In Space)! 우주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물건이 나왔다고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이 25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앞으로 우주 원정대의 장기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체류 중인 42차 원정대의 사령관 미국인 우주비행사 배리 윌모어는 17일 3D 프린터를 설치하고 보정을 위한 첫 번째 시험 인쇄를 시행했다. 이 시험 인쇄 결과에 기초해 지상의 관제팀은 해당 프린터와 동조하는 명령어를 전송하고 20일 재보정을 위한 두 번째 시험 인쇄를 진행했다. 이런 시험 인쇄는 프린터의 본격적 가동을 위한 준비가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4일, 관제팀은 이 프린터에 첫 번째 부품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프린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해 ‘메이드 인 스페이스’라고 적힌 부품을 만들어냈다. 이 부품은 ISS에서 사용하는 압출기를 넣어두는 케이싱(일종의 상자)의 덮개이다. 이로써 3D 프린터 스스로 지상 통제 아래 ISS에서 쓸 대체 부품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ISS 3D 프린터 프로젝트를 총괄한 나사 마셜우주비행센터 소속 니키 워키서 박사는 “이 첫 번째 인쇄된 부품은 지구로부터 떨어진 주문형 기계 공장에 능력을 제공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면서 “ISS는 우리가 우주에서 이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실험실”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이 3D 프린터는 비교적 저온인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가열해 지구로부터 전송된 설계 파일에 정의된 부품을 만들어낸다. 25일 오전, 윌모어는 3D 프린터에서 완성된 부품을 떼 접착력 등의 검사를 시행했다. 윌모어는 새로운 인쇄 트레이를 설치하고 지상 팀은 다시 미세 조정을 위한 세 번째 시험 인쇄를 했다. 윌모어가 이 시험 인쇄물을 제거하면 다시 지상 팀이 두 번째 물건을 만들기 위한 명령어를 전송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 팀은 모든 인쇄를 하기 전, 정확한 조정 작업을 거친다. 이는 ISS 속 환경이 지구와 전혀 다르기 때문. 워키서는 “앞으로 더 많은 인쇄로 (ISS 속) 미세 중력을 확인하고 조정 과정을 거쳐 완벽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사보(社報)의 퇴장/구본영 논설고문

    기자 초년병 때인 1980년대엔 대기업은 물론 다수 중견기업들도 인쇄판 사보(社報)를 발간했다. 이따끔 아르바이트 삼아 원고 청탁에 응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종이 사보는 시나브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가 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마저 사보를 올해를 끝으로 폐간한다고 한다. 내년부터 웹진 형태의 온라인 사보를 내놓는단다.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시대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인쇄 매체 종사자로서 위기 의식을 느끼는 건 논외로 치자. 다만 종이 사보의 퇴장과 함께 아날로그적 감성마저 함께 실종된다면 퍽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아날로그 세대의 촌스러움(?)을 버리지 못한 탓일까. 필자는 지금도 잘 편집된 사보를 펼치면 컴퓨터 창에서 스크롤바를 움직여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든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담긴 진한 추억 때문일 게다. 노란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 놓는 습관도 낙엽 길을 홀로, 혹은 누군가와 함께 걷던 기억을 반추하려는 몸짓이듯이…. 온라인이 대세라지만 ‘명품 사보’ 몇 가지는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한솔 그룹, 지주회사 체제 전환 추진

    한솔그룹이 주력 회사인 한솔제지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24일 한솔그룹에 따르면 한솔제지는 28일 주주총회를 열어 회사 분할안을 승인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한솔제지는 지난 8월 이사회에서 회사를 0.62대0.38의 비율로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투자회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투자회사(한솔홀딩스)는 브랜드 관리와 투자사업만 맡는 순수 지주회사로 LG그룹의 ㈜LG와 비슷한 성격이다. 지주회사는 2년 내에 상장 계열사 지분 20%, 비상장 계열사 지분 40%를 확보하고 상호출자를 해소하는 등 지주회사로서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현재 한솔그룹은 한솔로지스틱스→한솔제지→한솔EME→한솔로지스틱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를 단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업회사인 한솔제지는 현재의 주력 사업인 인쇄용지·산업용지·특수지 등을 맡는다. 앞서 한솔그룹은 지난해 4월 한솔제지와 한솔CSN(현 한솔로지스틱스)을 각각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끼리 합병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 했지만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한솔CSN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분할안이 승인되면 분할 기일은 내년 1월 1일이며, 한솔홀딩스의 분할 변경 상장과 한솔제지의 재상장은 내년 1월 26일 이뤄진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솔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1965년 새한제지공업 인수, 1991년 삼성그룹 분리에 이어 ‘제3의 창업’을 선언할 계획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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