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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식품, 강원 양양에 ‘카누 비치카페’ 오픈

    동서식품, 강원 양양에 ‘카누 비치카페’ 오픈

    동서식품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피서객들을 위해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에 팝업카페 ‘카누 비치카페’를 열었다고 밝혔다. 오는 8월 18일까지 운영되는 카누 비치카페는 ▲카누 아이스를 무료로 맛볼 수 있는 ‘커피 바’(Coffee bar) ▲선베드와 해먹, 빈백 등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스테이존’(Stay Zone) ▲탁 트인 바다 전경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Photo Zone) 등 방문객 누구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카누 패스를 가지고 방문하면 비치카페의 선베드와 해먹, 빈백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카누 비치카페 로고가 새겨진 비치타월, 드라이백, 방수백, 카누 제품 등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숨 막힌 검열의 시대가 낳은 ‘별들의 고향’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숨 막힌 검열의 시대가 낳은 ‘별들의 고향’

    1970년대는 한국영화가 침체와 불황의 긴 터널로 진입하는 시기였다. 1971년 202편의 제작편수를 유지했던 한국영화는 1972년 122편으로 급감했고, 이후 한국영화는 텔레비전과 대작 외국영화 사이에 끼어 호스티스 멜로와 무협 액션 같은 저예산 장르로 연명하게 된다. 1970년대가 극심한 암흑의 시대였다고 해서 청년들의 에너지와 희망마저 꺾을 수는 없었고, 영화계는 이를 포착해 작은 위안들을 발신했다. 서구영화의 뉴웨이브 정신과 교감하는 청년 감독들이 새로운 감수성과 신선한 영상감각을 앞세운 영화들로 젊은 관객들과 만났다. 그 포문은 이장호가 열었다. 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은 46만 관객이라는 초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산업적 활로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영화’라는 새로운 방향까지 제시했다.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이 그 뒤를 이었고, 이들을 포함한 젊은 감독들은 청년영화집단 ‘영상시대’를 결성해 한국의 뉴시네마운동을 선포한다. 이번 연재는 1970년대 한국영화가 쇠퇴하게 된 배경 그리고 ‘별들의 고향’이라는 기념비적인 데뷔작을 선보인 이장호 감독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국책영화 만들어 외화 쿼터 따낼 방법에 골몰 1972년 10월 유신정권이 들어섰고 영화계 역시 더욱 경직되어 갔다. 그리고 1973년 2월 유신 체제를 반영한 영화법 4차 개정이 있었다. 영화 제작을 하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제작업과 수입업이 다시 통합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1973년 시점 20개였던 제작사는 12개로 줄었고, 허가받은 12개사에 제작권을 부여해 연간 제작편수를 130편으로 묶었다. 50편 내외였던 외국영화 수입권도 12개 제작사만 나눠 가졌다. 국산영화 3편을 제작하면 외화 쿼터 1편을 받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영화는 외국영화 수입 쿼터를 받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작자들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보다 저예산으로 빨리 만들 수 있으면서 관객들의 호기심과 볼거리를 채울 수 있는 영화들로 눈을 돌렸다. 특히 대중적 신파 감성에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호스티스 영화, 깡패, 스파이, 무협 등으로 분화한 액션영화가 유행했던 이유다. 물론 외화 쿼터를 더 따낼 방법 역시 존재했다. 정부가 제시하는 ‘국책영화’, ‘우수영화’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성웅 이순신’(이규웅, 1971)을 위시로 박정희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획된 ‘성웅사업’ 영화들, 문학을 영상으로 옮긴 ‘무녀도’(최하원, 1972) 같은 문예영화들, ‘진짜진짜 잊지 마’(문여송, 1976)로 시작한 ‘진짜진짜’ 시리즈, ‘고교얄개’(석래명, 1976)가 대표하는 ‘얄개’ 시리즈 등 하이틴영화들이 그 대상이 됐다. ●깡패·스파이·호스티스 영화 붐으로 이어져 4차 영화법 개정으로 설립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역시 국책영화 제작을 주도했다. 국가가 직접 나서 ‘증언’(임권택, 1973) 등의 전쟁영화, ‘아내들의 행진’(임권택, 1974) 같은 새마을영화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들이 실질적인 국책 전파에 기능했는지는 의문이다. 1960년대부터 이어온 국가 주도의 영화 정책은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것이었고, 1970년대는 그 폐해가 더 커져 갔다. 흑백이긴 했지만 텔레비전 보급률이 급증하면서, 반대로 전국의 영화관수와 관객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외화 한편을 수입하기 위해 졸속으로 제작된 영화들과 상업성이 없어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리고 마는 우수영화들에 흥미를 잃어 갔다. 이러한 침체 일로의 영화계에 일순간 활력을 불어넣은 작품이 바로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이었다. 1945년 5월 서울에서 출생한 이장호는 영화 검열관이었던 부친 덕에 어릴 때부터 영화와 가깝게 지냈다. 아버지가 일하던 검열실에 따라가 채플린 영화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보기도 했고, 집에서는 아버지가 가져온 필름을 만지고 놀았다. 그의 영화적 원경험이었던 셈이다. 학창 시절 문학에 탐닉했던 그는 홍익대 건축미술학과에 입학했지만 제도권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부친은 방황하던 그를 ‘신필림’으로 데려간다. 애초 배우를 희망했지만 신상옥 감독 앞에서 자존심이 상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1968)를 비롯해 신필림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으나, 적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도에 연출부를 그만두기도 했고, 극단 일도 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모색하는 쪽이었다.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1973년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소설 ‘별들의 고향’ 판권을 치열한 노력 끝에 확보한 것이다. 사실 소설가 최인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역시 감독 데뷔도 하지 않은 친구에게 덜컥 판권을 내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장호는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최인호의 집에 던져놓고 오는 막무가내식 고집을 부리며 결국 승낙을 받아낸다. 하지만 이후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도제 시스템이 확고하던 시절, 신필림에서 연출권을 확보하기 힘들 것을 직감한 그는 도망치듯 떠나 하길종 감독이 소개한 화천공사로 옮긴다. 연출부 제2 조수 출신의 영화청년이 일순간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여하튼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이 46만 관객을 동원하는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이장호는 일약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1000만 영화’ 시대인 지금으로 치면 대단치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영화 개봉이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로 세 달 내내 이 영화만 상영했던 결과인 것이다. 개봉관은 바로 을지로 4가의 국도극장이었다. 이후 그는 ‘어제 내린 비’(1975)로 흥행을 이었고, 1975년 8월 동료 감독 하길종, 김호선, 홍파, 이원세 그리고 영화평론가 변인식과 함께 ‘영상시대’를 결성한다. 1975년도 한국영화 흥행 1위부터 3위까지 작품이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36만),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5만), 이장호의 ‘어제 내린 비’(14만)가 랭크된 것에서 영상시대 동인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작품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1976)으로 이장호의 1970년대 연출 활동은 갑자기 끝나버렸다. 1976년 연예인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활동 정지를 당한 것이다. 촉망받는 젊은 감독에서 순식간에 낭인으로 전락했던 4년간, 그는 말 그대로 각성의 시기를 보낸다. 특히 염무웅의 평론집 ‘민중 시대의 문학’은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 12월 유신정권 종식으로 감독 자격을 회복한 그는 그간의 고민을 담아 연출한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작가주의적 인장이 새겨진 ‘바보선언’(1983), ‘과부춤’(1983)의 흥행 실패로 위기감을 느꼈지만, 보란 듯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을 히트시키며 뛰어난 상업적 감각을 입증하기도 했다. ●김홍준, ‘바람불어 좋은 날’ 보고 ‘감독의 길’로 이장호는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인력들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배창호, 장선우, 김동원 등은 그의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고, 신승수, 정지영, 장길수 등은 ‘영상시대’가 개최한 오디션을 통해 영화계로 진입한 바 있다. 또 김홍준, 강우석, 임상수 같은 감독들이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바로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나서라는 것도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1980년대 한국의 ‘뉴웨이브’ 영화, 더 나아가 현대 한국영화의 기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장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자. 김홍준 교수가 기록한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작가, 2013)에서, 이장호 감독이 직접 ‘별들의 고향’의 기록적인 흥행에 관해 언급한 대목이다. “관객이 10만명 들었을 때 이 소설의 인기를 진짜 실감했어요. ‘어떻게 이 소설이 인기가 있어서 관객을 이렇게 끌어왔나.’ 10만을 넘어서 20만 되는 동안엔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면 ‘이장희 영화음악도 참 효과를 탔구나.’ 사람들이 음악 얘기를 많이 하니까. 근데 30만이 드니까 그제야 비로소 내 잃어버렸던 자존감 ‘영화도 잘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디어 싹트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30만이 넘어서 40만이 드니까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슬퍼져요, 뭔가 배신당한 느낌. 이 영화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구나, 혼자 달려가는 말 같구나, 주인 없는 말처럼 달려가는구나.”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기성 감독 누군가가 영화화를 맡았다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별들의 고향’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당시 충무로의 수많은 선배 감독들이 판권을 탐내고 있는 상황에서, ‘초짜 감독’ 이장호는 어떻게 한국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거칠고 투박하지만 신선하고 감각적인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그의 타고난 직관력과 돌파력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카메라를 직접 잡는 신상옥 감독 특유의 촬영 현장에서 게다가 제2 조감독에 머물렀기 때문에 연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구영화를 섭렵했던 영화 청년으로서의 세월이 그의 연출 방향을 직관적으로 알려주었다. 사실 ‘별들의 고향’은 이전의 한국영화처럼 이야기를 촘촘하게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광나루에서 한 첫 촬영부터 즉흥적으로 연출하며 장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촬영해 놓은 필름을 돌려본 편집실에서 비로소 구성을 시작했다는 이장호의 증언처럼, 그는 편집 감각을 통해 아마추어리즘을 참신함으로 바꿔놓았다. 영화는 플래시백 구조의 리듬도 균일하지 않고 차라리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지만, 이는 도리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영화 속으로 몰입시킨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이장희 음악도 큰 몫… “아마추어리즘의 승리”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도 큰 몫을 했다. 이전의 한국영화들은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 영화음악의 대가들이 녹음실에 오케스트라를 불러 잠깐 맞춰본 뒤 일사천리로 즉흥적인 음악을 녹음하는 식이었다. 이장호는 고교 후배인 가수 이장희에게 음악을 맡겼고, 아예 레코드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무려 40여일을 투자했다. 물론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혹은 잘 몰라서, 신선하게 음악을 배치한 것이 주효했다. 이장희가 부르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소녀가 울고 있네’가 흐르는 장면들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일 것이다. 이장호가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라고 규정한 것처럼, ‘별들의 고향’이라는 흥행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새로운 세대들이 그들의 느낌대로 과감히 밀고 나간 덕분이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별들의 고향’은 이후 두 가지 경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선취한 도시 속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김호선, 1977)로 이어지며 흥행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켰다. 하지만 이 작품들의 성공은 1970년대 후반, 순수한 여주인공이 호스티스로 전락하는 과정을 관음증적 볼거리로 전시하는 것에만 주력하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낳았다. 한편 새로운 감수성과 영상 감각은 ‘청년영화’의 선명한 줄기를 만들어냈다. 다음 연재를 통해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과 영상시대 활동을 살펴보기로 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경단녀·청년 구직자도 실패 없는 창업 꿈꾼다

    경단녀·청년 구직자도 실패 없는 창업 꿈꾼다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한 참살이실습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송파만의 특화된 일자리 사업입니다. 3개월에 걸친 고된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 이 자리에 서신 분들의 인생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길 기원하겠습니다.” 박성수 서울 송파구청장은 지난 24일 구청에서 열린 ‘2019년 1기 참살이실습터 교육생 수료식’에서 “참가자 전원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실패 없는 창업’이 목표”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바리스타 과정 30명, 플로리스트 과정 20명, 창의력코딩메이커 과정 20명 등 모두 70명의 수료생들이 부푼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박 구청장은 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직접 수료증과 꽃을 전달하고 악수를 했다. 졸업생 자격으로 축사한 김효진(36·여) 코드쉐어 대표는 “패션디자이너로 10년 일했지만 2016년 출산과 함께 권고사직 통보를 받고 좌절하다 우연히 참살이실습터를 알게 됐다”고 운을 뗐다. 김 대표가 “지난해 7월 창의력코딩메이커 과정을 수료하고 가락동 송파ICT청년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해 지금은 영유아를 위한 코딩놀이 전문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사연을 털어놓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살이실습터는 송파구가 2011년부터 진행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각 분야의 전문강사가 기술력과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주민의 취·창업을 지원한다. 단순히 관련 교육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턴십프로그램, 현장체험학습, 취·창업 동아리활동, 주민체험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현장 대응능력과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정규 과정이 끝난 뒤에도 기술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을 제공한다. 또 바리스타 과정의 경우 마천동 참살이창업체험센터를 통해 4개월 동안 카페를 직접 운영해 볼 기회도 마련된다. 지난해에만 프로그램 수료생 중 모두 13명이 창업에 성공했다. 주민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청년계층과 경력단절자, 취업 취약계층 등이 우선 선발 대상이다.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2회씩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다음달 2일까지 하반기 교육생을 모집한다. 플로리스트 과정을 수강한 민현정(21·여)씨는 “구청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전문성 있는 강의와 함께 다양한 실전 경험을 해볼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면서 “플로리스트로 취업해 경력을 쌓은 뒤 내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영미 일자리정책팀장은 “기존에 송파동에 있던 참살이실습터가 다음달 풍납동 도란도란백제쉼터 건물로 이전한다”면서 “교육 프로그램에 적합하게 리모델링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취·창업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88회 임시회 폐회 중 현장방문 실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88회 임시회 폐회 중 현장방문 실시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김혜련)는 제288회 임시회 폐회 중인 26일 보건환경연구원(원장 신용승)과 마포구 공덕동 서울복지타운에 소재한 서울시복지재단(대표이사 홍영준), 50플러스재단(대표이사 김영대)을 방문했다. 이날 현장방문에는 김혜련 위원장(더불어민주당·서초1), 오현정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광진2), 이병도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평2), 김소양위원(자유한국당·비례), 이영실위원(더불어민주당·중랑1), 서윤기위원(더불어민주당·관악2), 김화숙위원(더불어민주당·비례), 김용연위원(더불어민주당·강서4)이 함께했다. 이날 오전은 서울특별시 보건환경연구원을 방문해 연구와 검사실을 살펴보고 보건환경연구원 업무보고 및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현장방문에서는 미세먼지, 방사능 등과 관련한 검사실과 실험실을 방문했고 BL3(생물안전3등급)의 보안구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업무보고를 통해서는 보건환경연구원이 현재 인력이 부족하여 충분한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앞으로 연구기획을 하여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는 신용승 원장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업무보고자리에서 “우리 위원회는 서울시 식품정책에 관한 사항을 소관하고 있는 위원회로서 특히 식품안전에 관하여 위원들의 관심이 높다”고 전하며 “최근 급식식재료의 잔류농약 검출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이 매우 큰 상황으로 단 1%의 의구심도 남지 않도록 보건환경연구원이 유통식품의 잔류농약 검사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라고 보건환경연구원의 업무성과 향상을 요청했다. 오후에는 서울복지타운을 방문해 50플러스 중부캠퍼스를 살펴보고 서울시복지재단과 50플러스재단의 업무보고 및 현안사안을 청취했다. 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라운딩은 50+서재를 시작으로 B1층~4층으로 이어진 공방작업실, 동아리실, 50+상담센터, 음악실순으로 진행됐다. 50플러스캠퍼스는 50플러스 세대(50세~64세)의 인생후반기를 새롭게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 일자리 지원, 상담과 정보제공, 문화와 커뮤니티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이어서 서울시복지재단, 50플러스재단의 현안사항 보고와 질의 응답 시간을 갖고 향후 업무 추진에 대한 보건복지위원들의 격려와 당부의 말이 이어졌다. 김혜련 위원장(더불어민주당·서초1)은 “서울시 복지재단은 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돌봄SOS, 찾동2.0 등의 사업이 다른 사업들과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커뮤니티케어의 근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50플러스 재단은 그간 추진 사업들의 성과 및 문제점 등을 분석해 사업의 내실 있는 안착을 준비해주길 바란다”며 각각 당부의 말을 전했다. 오현정 의원(더불어민주당·광진2)은 보람일자리 신규사업인 장애아동학습지원단의 사업 확대 검토 요청을, 이병도 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2)은 기 추진 된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 성과 및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 마련을 통한 찾동 2.0의 내실있는 추진, 김소양 의원(자유한국당·비례)은 끊임없는 현장과의 소통을 통한 현장감 있는 사업 추진을 요청하였으며, 이영실 의원(더불어민주당·중랑1)은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교육프로그램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예산 반영을, 서윤기 의원(더불어민주당·관악2)은 유관기관들과의 소통을 통하여 재단의 중장기사업계획을 수립하도록 당부했다. 김혜련 위원장은 앞으로도 현장 방문을 통해 기관들의 현안과 애로사항 등을 청취하고 시민에 눈높이에 맞는 보건복지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의 정책을 견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세요 행복 동화가 펼쳐질 거예요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세요 행복 동화가 펼쳐질 거예요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며 복합적으로 사고하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가 생깁니다. 그림책을 본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세요.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그런 의사소통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한국에서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면 꼭 그의 책이 있다는 작가, 1983년 그림책 ‘고릴라’와 1992년 ‘동물원’으로 영국 최고 권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두 차례 받고, 2000년에는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림책 거장. 영국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73)의 수식어는 화려하면서 대중적이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지난 24일 전시장을 방문했다. 자신의 그림을 하나하나 둘러본 브라운은 아이들을 향한 애정과 그림책 작업에 대한 여전한 열정을 뿜어내며 ‘21세기 안데르센’다운 면모를 보였다. “40여년 전 첫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이런 대형 전시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굉장히 기쁘다”면서 한국을 찾은 소감을 밝혔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전시를 했지만 이번 건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의 작가 인생을 총망라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그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이자 자신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행복’에 대한 생각을 펼쳤다. “내 작품에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이 책의 결말을 통해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갖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결말은 행복감이 들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브라운은 작품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덩치 큰 고릴라로, 또 자신은 겁 많고 호기심도 많은 침팬지로 표현한다. ‘왜 아버지를 무서운 고릴라로 표현하느냐’는 말은 그가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이다. “아버지는 권투선수 출신으로 덩치가 크고 전쟁에도 참전한 매우 강하고 남성적인 분이셨다. 형과 나에게도 미식축구나 복싱 같은 운동을 가르쳐 주셨다”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함께 시를 쓴다거나 같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따뜻하고 자상한 면도 있으셨다”며 “겉으론 힘세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동물이지만 예민하고 가족을 잘 보살피는 게 고릴라”라고 설명했다. 세계 어린이와 부모들의 사랑을 받는 그도 청년 시절에는 먹고사는 문제로 꿈을 한동안 미뤄야 했다. 17세 때 영국 리즈예술대학에 입학했지만, 원했던 순수미술이 아닌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했다. 그래픽 디자인이 순수미술보다는 돈을 벌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영국 맨체스터 왕립병원 소속으로 시신 해부도나 장기 등을 그렸고, 문구회사에 취직해 연하장 등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 갔다. 그는 그런 모든 경험이 지금 그림책 작가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45년 동안 꾸준히 그림책을 그리며 아이들과 소통하고 행복을 심어 준 그의 꿈은 여전히 그림책 작가다. 자신의 책을 읽은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해할 때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요즘 꿈은 ‘장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진실한 작가, 그리고 장수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그는 “‘사람’ 앤서니 브라운으로도, 또 ‘작가’ 앤서니 브라운으로도 오래 살고 싶다”며 미소를 보였다. 자신과 같은 길을 꿈꾸는 아이들에게는 용기와 자신감을 강조했다. “우선 눈으로 많이 보고 모든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많은 그림을 보고 또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써 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스스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떠오르는 게 있다면 그것 자체로 매우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신작을 포함해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 그림들을 모은 ‘행복극장’ 전은 9월 8일까지 열린다.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 포레에서는 그의 작품으로 구성된 뮤지컬 ‘비바 프랜드’를 10월 20일까지 선보인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미래 불안에 우울한 ‘대2병’… 시간이 약? 치열하게 극복 노력해요

    미래 불안에 우울한 ‘대2병’… 시간이 약? 치열하게 극복 노력해요

    “대학생 때가 가장 속 편하고 좋을 때”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 시대 대학생들에겐 과거보다 더 치열해졌다는 입시 관문을 뚫고 대학에 입학해도 취업이라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거쳐 20세 성인이 된 해방감을 누릴 틈도 없이 1학년을 마치자마자 ‘현타’(현실자각 타임이라는 뜻의 신조어)를 겪으며 ‘대2병’을 호소하는 대학생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공이 자신에게 맞는지, 진로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대학에 와서 더 고민이 심해지는 것이다. 지난 4월 구인·구직 업체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대학생 41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자신이 대2병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4.6%가 ‘그렇다’고 답했다. ‘전공을 다시 정할 수 있다면 현재 전공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38.7%만이 지금 전공을 다시 선택하겠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다른 전공을 선택(39.9%)하거나 잘 모르겠다(21.5%)고 답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대2병을 ‘중2병’이나 사춘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극복되는 것으로 치부한다. 또 노력하지 않는 ‘요즘 것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실제 대2병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대학생들은 대2병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해야 극복할 수 있는 ‘관문’이라고 말한다.대2병은 주변의 평범한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다. 충남대 심리학과 14학번인 홍석찬(24)씨는 2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한 한기를 휴학했다가 입대한 후 2018년 복학 직후 대2병을 겪었다. 4학년이 돼 일찌감치 직장을 구한 몇몇 여자 동기들이나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홍씨는 “군 입대 전까지는 막연하게 대학원에 가서 석사를 받고 싶다는 목표가 있긴 했지만 막상 주변에서 사회에 진출하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바심이 났다”면서 “군 입대 전엔 시험 기간이 아니면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는데 지금은 시험 기간이 아니더라도 매일 도서관에서 한두 시간 이상 공부해야 불안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현재 3학년 2학기를 마친 홍씨는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대2병을 극복해 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홍씨는 “주변에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토기 사진들을 보며 시대별 순서를 외우고, 본인이 지망하는 직무와 관계없어 보이는 컴퓨터 공학 데이터 분석까지 공부한다”면서 “나도 대학원이 아닌 당장 취업을 준비했다면 그렇게 공부해야 했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지금도 많은 대학생들은 대학 생활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스펙’을 쌓고 대2병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화여대 디자인학부에서 벤처경영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김유진(21)씨의 경우 다양한 대외 활동으로 대2병을 극복하고 있다. 17학번인 유진씨는 “디자인 전공은 실기 등의 수업이 많아 2학년이 되면서 전공에 대한 적성 여부가 다른 학과에 비해 더 정확하게 갈리는 편”이라면서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마케팅 분야와 연관이 있는 경영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해 전공 심화에 따른 불안감이 조금 줄었다”고 말했다. 유진씨는 비슷한 시기에 각종 기업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대외 활동을 찾아 적극 참여하면서 그나마 불안감을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물론 토익 점수나 학점 관리,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만들기 등은 여전히 압박이고 스트레스”라면서 “하지만 대외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스스로 자극을 받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적지 않아 대2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건국대 행정학과 3학년인 김하연(23)씨는 대2병을 심하게 앓다가 학교와 학과를 바꿔 편입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앞서 하연씨는 ‘점수에도 맞고 멋져 보이기도 해서’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렇게 2학년이 되니 수업이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주변에서 본격적으로 로스쿨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니 불안감이 커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문제는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까지 누구도 옆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연씨는 “중·고등학교 때에는 ‘너는 할 수 있는 게 아직 없으니 일단 대학부터 가라’는 식으로 압박을 주다가 대학에 오니 ‘자, 이제 너는 어른이니 네 인생은 네가 스스로 선택해’라고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진로 선택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거나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대2병을 치유하는 과정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다는 게 하연씨의 설명이다. 그는 “편입을 하며 스스로 고민할 시간이 있었고 스스로 절박함 속에서 무기력을 이겨 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고 나니 지금은 대2병을 조금 극복한 것 같다”고 웃었다.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대학생들에게 대2병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방국립대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있는 최성민(25·가명)씨는 대2병을 처음 들어봤다면서도 대2병의 증상을 듣자 “저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고 공감했다. 군 제대 후 2학년 2학기에 복학해 현재 3학년까지 마친 최씨는 “솔직히 지금도 내가 선택한 전공이 정말 내 미래에 맞는지 확신이 없다”면서 대2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금까지 제 스스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고민을 하고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서 “입시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온 제 또래 중 정말 자신이 원하고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0%도 안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여름방학을 마친 뒤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지금 전공이 자신에게 정말 맞는 것인지, 또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생각이다.전문가들은 우리 교육이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괴리감이 학생들의 혼란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대2병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미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인데 대학 교육은 이를 받쳐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사회의 변화 속도에 맞는 교육을 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 보니 학생들 스스로 사회 속도에 따라가려다 혼란의 시기를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엽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대학 진학 후 전공을 좀더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적으로 그 고민에 대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교육 정책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봉환 숙명여대 교수는 “2015년 진로교육법이 제정되면서 고등학교에 진로전담 교사가 1명씩 배치되는 등 과거에 비해 진로 지도를 할 수 있는 틀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할 콘텐츠와 노하우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정책을 편다면 대2병을 좀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지방대 나와 지방中企 비정규직… ‘맨 끝 출발선’에 선 청춘들

    지방대 나와 지방中企 비정규직… ‘맨 끝 출발선’에 선 청춘들

    “돈을 벌기 전에 빚부터 지고 시작하는 거죠.” 25살에 서울에서 경북 구미로 취직해 온 이시언(37)씨는 요즘 자신과 같은 경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12년 전 처음 구미에 왔을 때는 회사에서 기숙사를 제공해 줘 가끔 승용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외엔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다른 지역에서 구미로 일하러 온 후배들은 당장 몸을 누일 공간부터 찾아야 한다. “야근 수당과 주말근무 수당을 다 합쳐도 월급이 200만원이 되지 않는데, 학자금 대출 상환에다 방값까지 내야 하는 후배들이 무슨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겠어요” ●“눈높이 낮추란 말 말고 지방中企 회생 지원을” 한때 전국 최대 공업생산 및 수출기지로 꼽혔던 구미 국가산업단지. 이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1990년대생들은 일자리를 구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틈도 없이 숙소 걱정부터 해야 한다. 구미산단에서 대기업이 빠져나가면서 규모가 큰 협력업체들도 대부분 구미를 떠났다.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2·3차 협력업체(벤더)를 비롯한 중소기업들은 신입 노동자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여력이 없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구미산단의 가동률은 전국 평균(76.9%)보다 크게 낮은 65.9%였다. 구미산단 가동률은 2010년 87.9%였지만 대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협력업체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2017년 70% 밑으로 떨어졌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5월 가동률은 66.6%다. 구미산단의 위축이 도드라지긴 하지만 수도권 이외의 다른 지역 산단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씨는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지방이나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말만 하지 말고 지방 중소기업이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공공기숙사가 지역 산단에도 건설돼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방 90년대생들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이 다양하고 치열해지면서 90년대생들의 출발선은 제각각이다.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을 가진 이들이 제1의 출발선을 차지하면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출발선이 그어진다. 그중에서도 지방대를 나와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출발하는 90년대생들은 출발 신호를 가장 늦게 듣고 뛰어야 하는 청춘들이다.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성공의 길을 해체하지 않는 한 이들이 제1의 출발선을 떠난 이들과 동등해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4년제 지방대를 졸업한 김모(28)씨는 “대기업을 지원했을 때는 서류전형에서 거의 다 탈락했고 겨우 면접에 가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인(in) 서울’이 아니라는 학벌이 발목을 잡는 것을 느꼈다”면서 “지방대 출신의 취업문은 처음부터 아주 좁다”고 말했다. 이씨는 결국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이씨는 “이곳에서도 ‘서울대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아니면 말을 하지 말라’는 무시를 당했다”면서 “그나마 나는 4년제를 나왔으니 망정이지 3년제 지방대를 나온 다른 동료에게는 일 처리가 조금만 미숙해도 ‘역시 전문대는 안 돼’라는 비웃음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의 한 국립대를 나와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는 정모(28)씨는 “국립대를 나왔기 때문에 다른 지방대 출신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안도했다. 정씨는 “지방대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무조건 빨리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학교 전체의 분위기였다”면서 “대기업 본사가 있는 수도권 진입을 향해 입학과 동시에 뛰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잡지 못해 지역으로 떠난 90년대생들에게도 ‘낙오자’ 낙인이 찍힌다. 2년간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던 황모(24)씨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2년 동안 하다 보니 우울증이 왔다”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친구들이 취업 경쟁에 지친 나머지 귀향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고향인 목포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윤모(26)씨는 “고향이라 푸근한 점도 있지만, ‘공부 잘해서 서울 간다고 으스대더니 별 볼일 없네’라는 비아냥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20~29세 비정규직 32.2%… “90년대생 평가들 공허해”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졸 출신 90년대생들의 현실은 더 버겁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캄캄하기만 한 앞날을 바라볼수록 후회가 밀려온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올해 초부터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20)씨는 현장실습을 했던 30인 규모의 자동차부품 관련 업체에 취업한 경험이 있다. 이씨는 “회사에서 기술은 안 가르쳐주고 단순 업무만 시켰다”면서 “필요한 자격증은 사비를 들여 따야 했고 회사에 없는 공구도 사비를 들여 사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영세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계속 이런 곳만 전전한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경력을 쌓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옮기겠다는 꿈은 애초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영세업체의 경력은 아무 곳에도 인정해주지 않아 회사를 수십 번 옮겨도 경력직이 아니라 신입직 대우를 받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특성화고 졸업생 김모(21)씨도 “대학을 포기하고 남들보다 먼저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특성화고를 졸업했지만, 보람보다는 인생에서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다는 후회가 더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기준 부가조사’를 보면 20~29세 임금근로자 347만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235만여명(67.7%)이고 비정규직은 112만여명(32.3%)이다. 20대 비정규직 상당수는 하청업체에서 원청 정규직이 떠넘긴 위험한 일을 떠맡고 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군(당시 19세)과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24세)씨도 90년대생이다. 이들의 가방에는 작업 중 겨우 끼니를 때울 컵라면이 담겨 있었다. 충남 대산의 석유화학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20대 비정규직 이모(24)씨는 “90년대생을 놓고 이런저런 평가가 나오는데, 우리에겐 그 자체가 공허하게 들린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지방대 나와 지방中企 비정규직 ‘맨 끝 출발선’에 선 청춘들

    지방대 나와 지방中企 비정규직 ‘맨 끝 출발선’에 선 청춘들

    “돈을 벌기 전에 빚부터 지고 시작하는 거죠” 25살에 서울에서 경북 구미로 취직해 온 이시언(37)씨는 요즘 자신과 같은 경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12년 전 처음 구미에 왔을 때는 회사에서 기숙사를 제공해 줘 가끔 승용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외엔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다른 지역에서 구미로 일하러 온 후배들은 당장 몸을 누일 공간부터 찾아야 한다. “야근 수당과 주말근무 수당을 다 합쳐도 월급이 200만원이 되지 않는데, 학자금 대출 상환에다 방값까지 내야 하는 후배들이 무슨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겠어요”●“눈높이 낮추란 말만 말고 지방中企 회생 지원 이뤄져야” 한때 전국 최대 공업생산 및 수출기지로 꼽혔던 구미 국가산업단지. 이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1990년대생들은 일자리를 구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틈도 없이 숙소 걱정부터 해야 한다. 구미산단에서 대기업이 빠져나가면서 규모가 큰 협력업체들도 대부분 구미를 떠났다.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2·3차 협력업체(벤더)를 비롯한 중소기업들은 신입 노동자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여력이 없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구미산단의 가동률은 전국 평균(76.9%)보다 크게 낮은 65.9%였다. 구미산단 가동률은 2010년 87.9%였지만 대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협력업체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2017년 70% 밑으로 떨어졌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5월 가동률은 66.6%다. 구미산단의 위축이 도드라지긴 하지만 수도권 이외의 다른 지역 산단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씨는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지방이나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말만 하지 말고 지방 중소기업이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공공기숙사가 지역 산단에도 건설돼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방 90년대생들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이 다양하고 치열해지면서 90년대생들의 출발선은 제각각이다.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을 가진 이들이 제1의 출발선을 차지하면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출발선이 그어진다. 그중에서도 지방대를 나와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출발하는 90년대생들은 출발 신호를 가장 늦게 듣고 뛰어야 하는 청춘들이다.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성공의 길을 해체하지 않는 한 이들이 제1의 출발선을 떠난 이들과 동등해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4년제 지방대를 졸업한 김모(28)씨는 “대기업을 지원했을 때는 서류전형에서 거의 다 탈락했고 겨우 면접에 가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인(in) 서울’이 아니라는 학벌이 발목을 잡는 것을 느꼈다”면서 “지방대 출신의 취업문은 처음부터 아주 좁다”고 말했다. 이씨는 결국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이씨는 “이곳에서도 ‘서울대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아니면 말을 하지 말라’는 무시를 당했다”면서 “그나마 나는 4년제를 나왔으니 망정이지 3년제 지방대를 나온 다른 동료에게는 일 처리가 조금만 미숙해도 ‘역시 전문대는 안돼’라는 비웃음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의 한 국립대를 나와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는 정모(28)씨는 “국립대를 나왔기 때문에 다른 지방대 출신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안도했다. 정씨는 “지방대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무조건 빨리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학교 전체의 분위기였다”면서 “대기업 본사가 있는 수도권 진입을 향해 입학과 동시에 뛰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잡지 못해 지역으로 떠난 90년대생들에게도 ‘낙오자’ 낙인이 찍힌다. 2년간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던 황모(24)씨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2년 동안 하다 보니 우울증이 왔다”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친구들이 취업 경쟁에 지친 나머지 귀향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고향인 목포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윤모(26)씨는 “고향이라 푸근한 점도 있지만, ‘공부 잘해서 서울 간다고 으스대더니 별 볼일 없네’라는 비아냥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20~29세 비정규직 32.2%… “90년대생 평가들 공허해”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졸 출신 90년대생들의 현실은 더 버겁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캄캄하기만 한 앞날을 바라볼수록 후회가 밀려온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올해 초부터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20)씨는 현장실습을 했던 30인 규모의 자동차부품 관련 업체에 취업한 경험이 있다. 이씨는 “회사에서 기술은 안 가르쳐주고 단순 업무만 시켰다”면서 “필요한 자격증은 사비를 들여 따야 했고 회사에 없는 공구도 사비를 들여 사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영세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계속 이런 곳만 전전한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경력을 쌓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옮기겠다는 꿈은 애초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영세업체의 경력은 아무 곳에도 인정해주지 않아 회사를 수십 번 옮겨도 경력직이 아니라 신입직 대우를 받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특성화고 졸업생 김모(21)씨도 “대학을 포기하고 남들보다 먼저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특성화고를 졸업했지만, 보람보다는 인생에서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다는 후회가 더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기준 부가조사’를 보면 20~29세 임금근로자 347만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235만여명(67.7%)이고 비정규직은 112만여명(32.3%)이다. 20대 비정규직 상당수는 하청업체에서 원청 정규직이 떠넘긴 위험한 일을 떠맡고 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군(당시 19세)과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24세)씨도 90년대생이다. 이들의 가방에는 작업 중 겨우 끼니를 때울 컵라면이 담겨 있었다. 충남 대산의 석유화학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20대 비정규직 이모(24)씨는 “90년대생을 놓고 이런저런 평가가 나오는데, 우리에겐 그 자체가 공허하게 들린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국가 폭력에 의한 ‘간첩죄’… 58년 만에 무죄 판결 “기쁘지만 억울”

    국가 폭력에 의한 ‘간첩죄’… 58년 만에 무죄 판결 “기쁘지만 억울”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아버지는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2년간 옥살이 끝에 풀려났다. 아버지가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국민학교 1학년 막내딸의 꿈은 이때부터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는 것’이 됐다.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군사정권이 물러나도 ‘빨갱이’의 굴레는 무거웠다. 여전히 국가를 믿을 수 없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을 품고 세상을 뜬 지 30년이 넘어서야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고 지난 5월 16일, 58년 만에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그렇게 막내딸의 힘으로 명예를 되찾은 아버지는 해방 후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내고 한글로 된 최초의 민법학서를 남긴 진승록 교수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만난 막내딸 진미경(64)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인터뷰 2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다. 재심 준비 과정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힘주어 말했지만, 과거를 돌이킬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그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나니 아버지의 인생이 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뒤늦게 재심을 청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국민학교 1학년 어느 날 새벽에 끌려가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요. 3학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셨죠.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버지가 잠들지 못한 채 홀로 탄식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억울하다. 원통하다’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아버지 한을 풀어 드려야겠다’고 거듭 다짐했지요.”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간첩 누명을 썼던 죽산 조봉암 선생님이 무죄 판결(2011년)을 받아서 따님이 인터뷰한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때 따님 나이가 여든이 넘었어요. ‘저렇게 연세가 많은 분도 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라는 자책감이 들었죠. 2014년 서울대 법대에서 6·25전쟁 관련 세미나를 열었는데, 아버지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거기서 아버지의 서울대 법대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서울대 법대 학장이 빨갱이라는 게 말이 되냐. 재심을 청구하라´고 적극 권유했어요. 그분들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게 됐어요.” 진승록 교수는 6·25전쟁 당시 서울대 법대 학장으로 교정을 지키다 납북됐고, 넉 달 만에 탈출해 고시위원장 등을 지냈지만 1961년 5·16 직후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항소심에서 간첩방조죄만 인정돼 징역 10년으로 감형, 1963년 가석방됐지만 1985년 80세로 작고할 때까지 누명을 벗지 못했다. 진미경 교수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국가를 믿지 않았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도 그런 이유로 아버지 사건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했는데 국가가 다시 심사해서 밝혀 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국가가 진실을 밝혀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심 과정에서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판결문 이외에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어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했던 김윤경 조사팀장이 자료를 찾는 방법을 알려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판결문 외에 재소자 인명부를 챙겼죠. 수사기록을 국가정보원이나 군에 요청했는데 처음에는 수사한 적 없다고 답하더라고요. 아는 국회의원을 통해 정보공개를 요청했더니 그제서야 수사는 했지만 기록이 없다고 말을 바꿨어요. 증언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강원 원주, 전남 순천, 부산 등 안 가 본 곳이 없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살아 있어도 증언을 거부했어요.” 서울고법 형사2부의 재심 판결문에는 “이 사건에 대해 육군고등검찰부, 국가정보원, 국가기록원 등에 기록 송부와 보존 여부 확인을 요청한 결과 그 어디에도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았다”고 명시돼 있다. 진 교수는 아버지에게 사형을 구형한 군검사를 어렵게 만났지만, 아버지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는 나중에야 ‘진 학장의 딸이 나를 찾아올 줄 몰랐다. 상부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음을 인정할 수 있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으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후 임의성 없는 심리 상태가 법정에서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재심 준비 5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기분은 어땠나요. “선고 전부터 법정에 앉아서 남편이랑 계속 울었어요. ‘간첩´이란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요즘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재판장인 차문호 부장판사가 ‘너무 늦게 무죄를 드려서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무죄를 받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어요. 처음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드디어 아버지 한을 풀어드렸구나. 아버지의 법대 제자들이 축하연도 열어 주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더 슬프고 억울한 느낌이 들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서 무죄 판결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 돌아오시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억울한 삶은 되돌릴 수가 없구나´ 이런 생각만 커지네요.” 진승록 교수는 1905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고려대) 교수와 서울대 법대 학장 등을 지냈다. 1947년 ‘민법총칙’을 시작으로 민법총론, 물권법, 담보물권, 채권총론, 채권각론 등 6권의 저서를 남겼다. 1952~1955년 지낸 고시위원장은 당시 정부 서열 4위로, 진 교수는 기술고시를 도입했다. -간첩죄에 휘말린 뒤 아버지는 어떻게 지냈나요. “엄마가 먼저 집에 왔는데, 또렷이 기억나요. 언니와 함께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있었는데 입주 도우미 언니가 달려와서 ‘엄마가 오셨다´고 말했어요. 많이 남은 떡볶이를 그냥 내려놓고 놀라서 뛰어갔어요. 이듬해 여름에 아버지가 오셨어요. 풍채 좋던 아버지가 굉장히 수척해지셨어요. 고문 때문에 수저도 들어 올리지 못하셨어요. 벽에 금을 단계별로 그어 놓고 조금씩 올리면서 나름의 재활운동을 하셨지요.” “학자로서 활동은 전혀 못하셨어요. 한동안은 몸이 안 좋아서 그랬고, 박정희 사후 전두환 군부가 이어지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형사들이 툭하면 찾아왔어요. 잡혀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늘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글조차 쓰지 못하셨죠. 유머가 많은 분이셨는데 성격도 변했고요. 1978년에 사면을 받고 변호사 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법무부가 안 내줬어요. 변호사 등록 업무가 대한변호사협회로 이관된 1983년에야 변호사 재등록이 됐어요.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2년 후 돌아가셨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아버지 제자들은 저보고 효녀라고 하지만,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아버지 간첩 누명 때문에 198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는데 외무부에서 여권을 안 내줬어요. 아버지 제자들이 신원보증을 서서 어렵사리 유학을 떠났죠. 저도 그런 일을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죄송하죠. 아버지가 사면받고 변호사 등록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셨을 때도 도와드리지 못했어요.” “아버지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학술 세미나도 하고요. 아버지 고향인 강릉 옥계면의 이름을 따서 기념사업을 계획 중이에요. 아버지의 민법이론과 고시위원장 당시 하신 일을 재조명할 거예요. 저는 아버지 때문에 정치학 교수가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국가란, 정치란,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다시는 이념 갈등으로 인해, 국가폭력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최고의 한방’ 김수미 “남편, 회사 부도 직전에도 노래”

    ‘최고의 한방’ 김수미 “남편, 회사 부도 직전에도 노래”

    ‘최고의 한방’ 김수미가 부도 직전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남편의 이야기를 깜짝 공개한다. 오는 30일에 방송되는 MBN ‘살벌한 인생 수업-최고의 한방(이하 ’최고의 한방‘)’에서는 김수미가 48년을 ‘일부종사;한 이유로 ’남편의 유머 감각‘을 들며, 아직까지 제 짝을 못 만난 탁재훈, 이상민, 장동민에게 희망과 교훈을 전해주는 모습이 그려진다. 앞서 첫회에서 ’엄마‘ 김수미는 ’세 아들‘ 탁재훈, 이상민, 장동민에게 “참한 신붓감을 중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날도 그는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정식 음원 발매에 도전하면서 세 아들과 녹음 작업을 하다가 “너희는 조만간 (내가) 소개팅 하라고 하면, 진짜로 할 수 있냐”고 세 아들을 떠봤다고 한다. 나아가 남편이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음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결혼 생활을 털어놓으며 용기를 줬다. 김수미는 “우리 남편의 유머 감각이 탁재훈 뺨친다. 남편 습관이 매일 샤워하면서 동요를 큰 소리로 부르는 건데, 어느 날은 회사가 부도 위기인데도 씻으며 노래하고 있었다”며 “걱정이 돼 ’자기는 인생이 그렇게 즐거워‘라고 물어보니까, 바로 ’응. 네가 있잖아‘라는 거다. 물론 부도는 났다. 그러고도 다음 날 또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상민은 “저도 부도를 맞아봐서 아는데, 밖에서 아무리 수모를 겪어도 집에서 날 반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행복하고 좋은 거다”라며 맞장구쳤다. 결혼에 있어 돈이나 조건보다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 여유가 중요함을 알려준 김수미의 인생수업이 빛을 발한 것. 제작진은 “김수미가 탁재훈, 이상민, 장동민이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기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 안팎으로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올 수 있을지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최고의 한방‘은 오는 30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비를 잃은 최인훈의 딸이 말한다… “인생의 기본값은 신파”

    아비를 잃은 최인훈의 딸이 말한다… “인생의 기본값은 신파”

    ‘글 쓰는 일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일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마음먹은 대로만은 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광장’과 ‘밀실’을 두고 번민하다 결국 ‘영원한 중립국’으로 떠나는 이명준의 ‘광장’을 쓴 최인훈을 모르는 이는 없다. 지난 23일은 그의 1주기였고, 그의 딸 윤경씨가 쓴 책이 나왔다. ‘회색인의 자장가‘(삼인)다. 책은 짐작 가능하듯 대문호의 소탈한 일상을 담았다. 어린 딸에게 ‘걸스, 비 앰비셔스’라며 야망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모습, 타령조로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짚어가던 엉터리 이야기꾼의 모습, 아픈 아내 대신 딸의 머리를 서툴게 빗기던 모습 등이다. ‘뽀뽀뽀’ 시청을 금지당한 채 어린 나이에도 뉴스만 시청하는 건, 식탁에서도 늘 문학과 예술과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건 전적으로 책 때문이라도 어린 딸은 생각했다. ‘책 때문에 손발이 모두 묶여버린 것 같았던’ 딸은 절대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책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소설을 방법으로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방법으로 소설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는 아비의 딸 답게, ‘최인훈’을 떼놓고 보아도, 짐작 이상으로 좋은 산문집이다. 지난해 이맘 때, 우리는 한국문학의 거장을 잃었지만 윤경씨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 마음을, 그는 이렇게 썼다. “아버지를 보내고 깨달은 것은 ‘인생의 기본값은 신파’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다가 어떤 큰일들을 만난다. 그 어떤 큰일들을 만나면 사람들은 별수없이 신파가 된다. 그 어떤 큰일들이 나의 일이 될 때 사람들은 별수없다. 울고 짠다. (중략) 정말 큰 사람들은 자기의 큰일도 남의 일보듯 의연하지만 그만큼이나 의연해지는 일은 신파보다 더 눈물나게 외롭고 슬픈 일이다.” 윤경씨는 “어렵고 복잡한 얘기는 아빠가 많이 했으니까 윤경이는 나중에 즐겁고 재미있는 글만 쓰는 사람이 되어도 좋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는데, 인생에 이런 말을 해주는 이가 단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은 더 없이 살아볼 만한 것이 될 것 같다. 그것이 내 아버지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미술을 전공하는 손녀 은규씨가 할아버지가 단박에 끊었던 담배, 할아버지가 마셨던 술병 등을 그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호텔 델루나’ 여진구, 시청자 홀린 4色 매력 “섹시에서 연약美까지”

    ‘호텔 델루나’ 여진구, 시청자 홀린 4色 매력 “섹시에서 연약美까지”

    배우 여진구가 출구 없는 다양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다. 여진구는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극본 홍정은·홍미란, 연출 오충환, 제작 스튜디오드래곤·지티스트)에서 또 한 번 완벽 변신에 성공했다. 섹시한데 귀엽고, 설렘 터지는 박력까지 빈틈없는 매력 포텐을 터뜨리며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는 ‘여진구 매직’을 선사하고 있다. # 시크 댄디의 정석! 고급스럽고 절제된 섹시美 장착 여진구는 엘리트 호텔리어답게 시크하고 댄디한 분위기의 각 잡힌 수트 차림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 비주얼을 과시하고 있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올곧은 자세와 진중한 눈빛 속에 구찬성의 반듯한 성품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기에 여진구 특유의 묵직하고 깊이감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고급스러운 섹시미를 한층 끌어올리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 장만월의 취향 저격 ‘연약美’ 귀염 뽀짝 반전 매력!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은 귀신을 너무나도 무서워하는 구찬성의 호텔 델루나 적응기는 연약美를 넘어 ‘귀염 뽀짝’한 반전 매력을 선사하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특히 선글라스 귀신의 무시무시한 비주얼에 혼비백산하며 도망 다니던 모습은 ‘엄마 미소’를 자동 유발할 정도로 ‘큐티’ 그 자체. 또 귀신이 보일 때면 깜짝깜짝 놀라며 장만월(이지은 분)의 뒤에 숨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은 여진구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통해 더욱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표현됐다. #귀신도, 시청자도 힐링시키는 다정美 괴기하게 느끼던 호텔 델루나가 귀신들에게 힐링을 선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구찬성은 그동안 무서워하던 귀신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호텔 지배인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여진구는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미소와 눈빛으로 귀신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특히 ‘선글라스 귀신’을 위해 난처한 일도 자처하고 “거대한 불행과 사소한 기쁨이 있을 때, 작더라도 기쁜 걸 찾아서 담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건넨 칭찬의 말은 앞으로 그가 전해줄 또 다른 힐링과 감동을 기대케 했다. #설렘 유발하는 ‘멜로 눈빛’ 장착! 이지은 향한 박력 직진美 ‘호텔 델루나’는 멜로까지 잘하는 여진구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장만월의 과거 꿈을 꾸며 시작된 구찬성의 직진은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를 증폭시킨다. 어떻게든 호텔 델루나에서 도망치려 애쓰던 그가 마음을 바꿔 전한 “당신도, 이 호텔도 알고 싶어졌습니다”라는 돌직구 고백부터 장만월의 경고에도 “당신 옆에 불어있을 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약한 나를 지켜줘요, 당신이”라며 숨김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까지, 여심을 제대로 저격하며 심장을 떨리게 했다. 그 흔한 ‘밀당’ 하나 없이 장만월을 신경 쓰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과감하게 직진하는 모습은 여진구의 깊은 눈빛과 환한 웃음이 더해져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심장을 간질이는 섬세한 연기는 천년 고목에 싹을 틔우는 달콤함으로 본격 로맨스의 시작을 알렸다. 설명이 필요 없는 독보적 연기력은 물론 완벽 비주얼까지 장착한 여진구는 이번에도 ‘갓진구 매직’을 완성했다. 극의 중심을 탄탄히 잡는 것은 물론, 이지은과의 완벽한 케미스트리는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일등 공신. 여기에 남성미 물씬 풍기는 수트 차림 속 사랑스러운 반전 매력으로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 여진구를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멋있었다가 귀여웠다가 심쿵 유발까지! 여진구 연기가 다 했다!”, “저런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말투라니 귀신까지 홀릴 수밖에”, “역시 갓진구! 이지은과의 로맨스 기대”, “갓진구의 1작품 1인생캐 위엄”, “큐티부터 섹시까지 여진구 찬성~!”, “브레이크 없는 직진 여진구 대찬성!” 등의 호응이 쏟아지고 있다. tvN 수목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매주 토, 일요일 밤 9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베스트셀러] 설민석의 삼국지, 출간하자마자 3위

    [베스트셀러] 설민석의 삼국지, 출간하자마자 3위

    역사 강사 설민석의 신간이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교보문고가 26일 온·오프라인 도서 판매량을 집계해 발표한 7월 셋째 주 종합 베스트 셀러 순위에서 ‘설민석의 삼국지’는 3위를 기록했다. 김영하 소설가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는 14주째 1위, 이어 2위는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1’, 4위는 유튜브 콘텐츠만화 ‘흔한 남매’다. ‘설민석의 삼국지’는 특히 40대 여성 독자의 구매가 35.4%로 가장 높아 눈에 띈다. 40대 독자가 51.5%로 전체 연령대의 반 이상을 차지해 개인 독서 뿐 아니라 방학을 맞아 자녀 교육용으로 함꼐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유튜버 추천 책들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승승 장구다. 인기 유튜버 ‘라이프해커 자청’을 통해서 화제가 된 책 ‘정리하는 뇌’는 종합 14위로 상승했고, 그가 추천사를 쓴 ‘클루지’도 9계단 상승한 34위를 기록했다. 다음은 교보문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 여행의 이유(바캉스 에디션·김영하·문학동네) 2. 유럽 도시 기행. 1(유시민·생각의길) 3. 설민석의 삼국지. 1(설민석·세계사) 4. 흔한남매. 1(흔한남매·아이세움) 5. 죽음. 1(베르나르 베르베르·열린책들) 6. 천년의 질문. 1(조정래·해냄) 7.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샐리 티스데일·비잉) 8.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북캉스에디션·김수현·마음의숲) 9. 해커스 토익 기출 보카(데이비드 조·해커스어학연구소) 10. 아주 작은 습관의 힘(제임스 클리어 비즈니스북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융복합 위해 집단지성 모은다”… LG전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날’ 개최

    “융복합 위해 집단지성 모은다”… LG전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날’ 개최

    LG전자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LG전자는 25일 서울 양재동 서초R&D캠퍼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날 2019’를 개최했다고 26일 밝혔다. 행사에는 LG전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7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에는 로봇, 인공지능(AI), 웹OS를 비롯해 코딩 전문가의 코딩기법 등을 발표하는 12개의 세션이 진행됐다. 특히 CTO(최고기술책임자) 부문 소속 개발자가 지난 5월 공개한 자체 개발 AI칩을 이용해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법 발표가 주목 받았다. 행사에서는 개발자들이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해커톤이 개최됐다. 개발자들은 주어진 시간 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했고, LG전자 개발자 전용 온라인 게시판에도 공유했다.‘이그나이트 LG’ 세션에서는 온 가족의 인생을 바꾼 미국여행기, 나만의 재테크 방법, 파트너와 협업하는 방법 등의 주제를 발표하며 개발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LG전자 CTO 박일평 사장은 “융복합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발자들 간 원활한 교류가 필수적”이라면서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AI 전문가, 소프트웨어 보안 전문가, 소프트웨어 설계 전문가인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코딩 능력이 탁월한 코딩전문가 등의 사내 인증제도를 갖추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달리세요…몰입하면 행복해요

    달리세요…몰입하면 행복해요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외 2인 지음/제효영 옮김/샘터/384쪽/1만 8000원 ‘몰입’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엔가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것’이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다소 다르다. 몰입을 통해 무아지경에 이른 심신은 물론, 그 상태에서 얻는 온갖 유익한 것들을 포괄한다. 이 개념을 체계화한 이 중 하나가 심리학자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클레몬트 대학원 교수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다. 1990년 ‘몰입’이라는 개념을 학계에 던지며 큰 화제를 모은 그는 새 책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에서 ‘몰입’의 연구 영역을 ‘달리기’로 확장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와 2명의 연구자들이 여러 육상선수들의 몰입 경험을 소개하고 실제 응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긍정적인 감정이 더 강렬해지는 몰입 책 제목에는 달리기를 앞세웠지만, 사실 독자들이 목표로 삼아야 할 대상은 ‘몰입’이다. 이를 가장 빈번하게 이뤄내는 유용한 도구가 ‘달리기’라는 것이다. 등반, 사이클, 글쓰기, 연기 등도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몰입을 일으키는 요소나 느낌은 동일”하다. 다만 “달리기를 하면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더 다양한 상황과 기회가 생기고, 몰입의 빈도도 높아”진다. 몰입하면 긍정적인 감정은 더 강렬해지고 좌절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희미해진다. 일상에서 수시로 고개를 드는 스트레스도 잊게 된다. 몰입의 경험이 쌓이면 일상의 다른 영역에서도 몰입 의지가 생긴다. 저자들은 목적에 집중하고, 몰입의 순간을 한껏 늘리려는 자세 등이 “우리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열쇠”라고 말한다. 몰입은 세 가지 선행단계와 여섯 가지 처리 결과(효용) 등 아홉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선행단계는 명확한 목표 설정이다.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 첫 열쇠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몸과 마음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둘째는 성취 가능한 도전 과제를 세우는 것이다. 자신의 체력과 당장 해결해야 하는 기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셋째는 정확한 피드백을 수시로 측정하는 것이다. 목표 지점까지 가기 위해 상황에 맞춰 목표 수준을 재설정하는 피드백 과정을 거쳐야 성과도 긍정적이다.●몰입의 효과… 주의 집중·행동과 인식의 융합 이 선행단계를 거치면 비로소 몰입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몰입이 주는 첫 번째 효과는 주의 집중이다. 집중력이 최대치에 이르고, 어떤 일도 수월하게 해낸다. 둘째는 행동과 인식의 융합이다. 의식의 흐름과 행동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속도를 높여야 겠다는 생각만으로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진다. ‘흐름’을 뜻하는 영어 단어 ‘flow’가 몰입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얻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다. 반면 자의식은 상실한다. 일종의 ‘무아지경’이라 이해하면 될 듯하다. 시간이 빨리 흐른 듯한 ‘시간 개념의 왜곡’,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자기 목적성(내적 동기부여)의 선순환’도 빼놓을 수 없는 효용이다. 몰입의 경험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위대한 달리기 선수라 해도 자신이 원할 때 몰입할 수는 없다. 누구나 매우 흔하게 몰입 실패를 경험하는데, 이의 해결책으로 책의 거의 모든 챕터에서 빠짐없이 제시되는 것이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과거의 실수를 곱씹거나,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고 지금이 유일한 순간이라 생각하고 완전히 몰두하라는 것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송가인, 효도 몰래카메라 이벤트.. 결국 ‘폭풍 오열’

    송가인, 효도 몰래카메라 이벤트.. 결국 ‘폭풍 오열’

    ‘뽕 따러 가세’의 송가인과 붐이 단 한 명의 팬을 위한 ‘눈물의 몰래카메라 대작전’을 펼친다. 25일 방송되는 TV조선 ‘송가인이 간다-뽕 따러 가세’(이하 ‘뽕 따러 가세’) 2회는 지난 방송에 이어 광주광역시에서 세 번째 사연의 주인공을 만나 또 한 번 진한 웃음과 감동을 전달할 예정이다. ‘뽕남매’에게 날아든 세 번째 사연은 송가인의 열혈 팬인 아버지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활력을 안기고 싶다는 세 자매의 코끝 찡한 사연이었다. 이에 송가인과 붐은 깜짝 등장을 위해 몰래카메라 작전을 펼치기로 했고, 유난히 눈치가 빠르다는 아버지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계획을 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카메라 작전에는 몇 번의 위기가 찾아왔고, 송가인은 “미스트롯 무대보다 더 떨린다”며 극도의 긴장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욱이 송가인은 몰래카메라를 성공시키기 위해 인생 최초 ‘냉장고 앞 라이브’라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진기한 풍경을 이끌어낸데 이어, 단 한 명의 팬을 위한 ‘뒷골목 라이브’까지 감행했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CD를 삼킨 듯한 실력으로 ‘한 많은 대동강’을 완창해 현장을 들썩이게 했다. 무엇보다 몰래카메라의 끝에, 송가인은 물론 붐, 세 자매에 이어 제작진까지 푹풍 눈물을 쏟아내는 ‘오열사태’가 벌어졌다고 알려져 궁금증을 높이고 있다. 붐이 기획하고 송가인이 노래한, ‘뽕남매’의 열정이 가득 담긴 깜짝 몰래카메라 작전과 결과가 방송을 통해 공개되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달할 예정이다. 제작진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세 딸의 가슴 절절한 사연에 촬영이 끝나고도 현장에 여운이 길게 남았다”며 “이번 주부터 50분 방송으로 찾아올, 더욱 강력해진 웃음과 깊어진 감동을 몰고 올 2회를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뽕 따러 가세’는 매주 목요일 밤 10시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검찰, 구하라 폭행·협박한 전 연인 최종범에 징역 3년 구형

    검찰, 구하라 폭행·협박한 전 연인 최종범에 징역 3년 구형

    검찰이 가수 구하라씨를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 심리로 2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사소한 동기에 의한 범행으로 피해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특히 “범행이 중대하고, 죄질이 불량하고, 2차 피해도 입혔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지난해 9월 연인이었던 구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 등에 타박상을 입히고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또 구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고, 구씨와 당시 구씨의 소속사 대표에게 무릎을 꿇도록 강요한 혐의도 있다. 최씨는 구씨와 다툰 뒤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며 한 언론사에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최씨 측은 혐의의 대부분을 부인해왔다. 이날도 최씨의 변호인은 “수사기관과 언론에서 피고인에게 ‘리벤지 포르노’의 굴레를 씌웠다”며 “그러나 최씨가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인지, 다시 살펴달라”고 주장했다. 또 구씨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에 구씨의 변호인은 “피해자는 자신의 성관계 동영상을 세상 사람들이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며 “이런 지옥으로 몰아넣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오는 8월 29일 최씨의 선고 공판을 연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악마가’ 이설, 불운의 뮤즈 된 사연 ‘누구길래?’

    ‘악마가’ 이설, 불운의 뮤즈 된 사연 ‘누구길래?’

    신예 이설이 유니크한 매력으로 안방을 사로잡는다. 오는 31일 첫 방송되는 tvN 새 수목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이하 ‘악마가(歌)’) 측이 최근 불운의 뮤즈 김이경 역으로 완벽 변신한 이설의 스틸컷을 첫공개했다. ‘악마가’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스타 작곡가 하립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인생을 건 일생일대 게임을 펼치는 영혼 담보 코믹 판타지다. 자신이 누렸던 성공이 한 소녀의 재능과 인생을 빼앗아 얻은 것임을 알게 된 하립이 소녀와 자신, 그리고 주변의 삶을 회복시키며 삶의 정수를 깨닫는 이야기를 그린다. 괴테의 고전 명작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적 설정 위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녹여내며 차원이 다른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한다. 영혼을 사고파는 이색적인 갑을관계로 재회한 ‘레전드 콤비’ 정경호와 박성웅은 물론이고, 신비로운 매력으로 주목받는 신예 이설과 독보적 존재감을 가진 이엘의 조합은 드라마 팬들을 설레게 한다. 공개된 사진 속 이설은 수수한 매력으로 눈길을 끈다. 어디든 금방 달려갈 수 있는 편한 옷차림과 질끈 묶은 머리는 전천후 ‘알바왕’이자 ‘잡무테이너’ 김이경의 트레이드마크. 팍팍한 현실과 거듭되는 불운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사진 속 손에 기타를 쥐자 금세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모습도 흥미를 유발한다. 기타 연주에 푹 빠진 김이경.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녀를 빛나게 한다. 이설은 극 중 하립에게 곡을 빼앗긴 비운의 뮤즈 ‘김이경’을 연기한다. 무명의 싱어송라이터 김이경은 거듭되는 불운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극강의 생활력으로 삶을 이겨내는 긍정 마인드의 소유자다.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스타 작곡가 하립과 영혼 깊은 곳까지 얽혀있다. 과연 하립과 김이경이 어떤 인연으로 묶여있을지 궁금증을 높인다. 특히, 어떤 캐릭터든 자신만의 색으로 풀어낸 이설이 싱어송라이터 김이경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그의 연기 변신에 기대가 쏠린다. ‘악마가’를 위해 기타를 섭렵하는 등 열정을 쏟아온 이설은 “‘김이경’의 삶과 음악은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같은 또래 역할을 맡은 게 처음이라, 좀 더 편안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늘 기다려지는 행복한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배우들 간의 케미가 정말 재밌는 ‘악마가’에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tvN 새 수목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는 SF 미스터리 추적극 ‘써클:이어진 두 세계’를 통해 실험적인 연출로 호평을 이끌어낸 민진기 감독과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영화 ‘싱글즈’, ‘미녀는 괴로워’, ‘남자사용설명서’ 등 휴머니즘이 녹여진 코미디에 일가견 있는 노혜영 작가의 의기투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후속으로 오는 31일 밤 9시 30분에 첫 방송된다. 사진 = tvN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검블유’ 임수정, 종영 소감 “이렇게 멋진 역할 또 있을까”

    ‘검블유’ 임수정, 종영 소감 “이렇게 멋진 역할 또 있을까”

    배우 임수정이 ‘검블유’ 종영소감을 전했다. 소속사 킹콩 by 스타쉽 측은 25일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권영일)에서 바로의 서비스 개혁팀 팀장 ‘배타미’ 역으로 열연을 펼친 임수정의 종영소감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임수정은 당당한 눈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세련된 커리어 우먼룩을 선보이며 워커홀릭 배타미로 완벽 변신한 모습이다. 또한 임수정의 화사한 미소는 보는 이들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 임수정은 소속사를 통해 “안녕하세요. 임수정입니다”라고 인사하며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4개월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촬영하면서 함께 했던 모든 분들과 정도 듬뿍 들었는데요. 최고의 팀과 함께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임수정은 “배타미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참 영광이었고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멋진 캐릭터가 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타미’와의 만남은 저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라며 캐릭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임수정은 “그동안 저희 ‘검블유’를 끝까지 관심 가지고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좋은 작품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라며 종영소감을 마쳤다. 임수정은 ‘검블유’를 통해 당당하고 멋진 여성 캐릭터인 ‘배타미’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인생 캐릭터를 다시 썼다. 그는 배우들과의 케미를 자랑하며 로맨스는 물론 워맨스까지 제대로 그려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임수정은 캐릭터의 다양한 심리 변화를 섬세한 감정 묘사로 표현해 안방극장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리며 호평세례를 받았다. 이에 앞으로 그가 보여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한편 25일 방송되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최종회는 평소보다 5분 앞당겨진 오후 9시25분에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신보라 결혼 소감 “이렇게나 늦은 인사” 남편은 누구?

    신보라 결혼 소감 “이렇게나 늦은 인사” 남편은 누구?

    개그우먼 신보라(33)가 결혼 소감을 전했다. 신보라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뒤늦은 결혼 소감을 전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동갑내기 남편과 서울의 한 교회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신보라는 “인생에 있어서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되었네요”라고 운을 뗐다. 이어 “축복 가득한 눈빛들. 반가운 사람들의 환한 웃음과 축하. 만감이 교차하시는 듯한 부모님들의 표정들. 우리가정의 시작을 자주 돌아보고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또 신보라는 결혼식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 날을 위해 정말 마음 많이 써주시고 수고해주신 강향원 플래너님, 이모님, 제니하우스 청담힐 민지쌤, 종수쌤, 유진쌤, 플로리스트 난주님, 교회 예식위원회 관계자분들, 꿀 바른 목소리 형균오빠, 우리 새언니, 명분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 번, 아니 세 번, 네 번 감사 또 감사해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축복 가득했던 그 날의 한 조각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뭉쳐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 헤리티지 패밀리,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올드 멤버들 사랑해요. 최고”라면서 #바로바로소통하는이시대에이렇게나늦은인사라니 #으이그 #하여간 #신보라 #걸음이느린아이 등 해시태그를 달았다. 앞서 신보라는 남편에 대해 “제 작은 장점은 크게 봐주고 부족한 부분은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사람을 만났다”라며 “언제나 제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동갑내기”라고 소개했다. 정확한 직업 등은 알려진 바 없다. 한편 신보라는 2010년 KBS 25기 공채 개그맨에 합격했다. 이후 KBS2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가스펠 그룹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3기 멤버로도 활동했으며 뮤지컬 ‘젊음의 행진’에 출연,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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