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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도시 광진구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건강도시 광진구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가 다음달 1일 광진구청 대강당에서 ‘명사초청 건강특강’을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화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건강한 노년생활을 보내도록 돕는다. 특강은 다음달 1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두 시간 동안 이어진다. 강의와 질의응답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회차별로 30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 이번 특강에는 노인 건강에 대한 학술활동과 강연으로 널리 알려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를 초청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는 주제로 낙상, 요실금, 보행장애, 근감소증, 허약 등의 노년 증후근을 예방하고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운동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강의는 ▲노화를 이기는 몸-이동성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무기-마음건강 ▲건강과 질병 ▲지혜롭게 나이들기 기술 등 건강하고 활력있는 노후를 위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수강신청 후 참여가 가능하며, 신청기간은 오는 27일까지다. 1회만 신청할 수 있다. 광진구 누리집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방문 또는 유선 접수도 가능하다. 궁금한 사항은 광진구 보건소로 문의하면 된다. 김경호 광진구청장은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 노년 건강관리에 대한 특별강좌를 마련하였으니 구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란다” 며 “앞으로도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단순히 오래사는 것보다 활력있는 인생을 즐기는 건강도시를 조성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고3 수험생에 수능 격려 편지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고3 수험생에 수능 격려 편지

    이정선 교육감이 2024학년도 수능을 20여 일을 앞둔 지난 23일 관내 68개교 1만2980명의 고3 학생들에게 응원 메시지 카드를 보내 격려했다. 25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이 교육감은 수능 응원 메시지 카드를 통해 “수능이 인생에 있어서 그저 하나의 과정일지라도, 이제 움트는 열아홉 인생에서 그동안 겪었던 그 어떤 과정들보다 더 걱정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며 “수능 시험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모든 정성을 다해 기도하겠다”고 수험생을 격려했다. 또 “학교라는 공간에서 꿈꾸며, 수능 때까지 참고 버티며 공부해 온 시간이 인생에 곱디고운 꽃을 피우는데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한 만큼 수능이라는 경험이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 수험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주시교육청은 민선4기 이정선 교육감 취임 후 진로진학과를 신설하고, 365 스터디룸을 고등학교에 설치하는 등 학생들의 실력향상에 힘쓰고 있다.
  • 에버랜드 가을 단풍 7선… “이번 주말 절정”

    에버랜드 가을 단풍 7선… “이번 주말 절정”

    선선한 바람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이 수도권 근교에서 당일치기로 즐길 수 있는 에버랜드 가을 단풍 명소 7선을 소개했다. 현재 ‘해피 땡스기빙’ 가을 축제가 펼쳐지는 에버랜드는 단풍, 은행, 느티 등 10여종 수만 그루의 나무들과 메리골드, 코키아 등 꽃들이 오색 빛깔로 물들어 가면서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특히 산책로, 어트랙션, 드라이브 등 3개 테마별로 마련된 에버랜드 단풍 명소들은 이번 주말경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색 가을 단풍놀이를 경험하려는 나들이객들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다. 먼저 알록달록 대자연 속에서 가을을 제대로 느껴 보고 싶다면 크고 작은 나무와 꽃들 사이를 여유롭게 걸어보며 힐링하는 단풍 산책로 코스를 추천한다. 콜럼버스 대탐험 부근에 있는 ‘하늘정원길’은 단풍길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가을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에버랜드의 대표적인 걷고 싶은 길로 꼽힌다. 약 1km에 이르는 하늘정원길 산책로에는 매화나무, 화살나무 등 수목 1만여 그루와 가을꽃들이 형형색색 물들고 있으며, 다른 식물보다 일찍 단풍이 드는 코키아도 절정을 맞아 인생사진 명소로 추천된다. 또한 가을 테마정원으로 변신한 ‘포시즌스가든’에는 메리골드, 천일홍, 억새 등 약 1000만 송이의 가을꽃들이 만개했다. 가을 하늘 아래에서 감성 충만한 음악을 들려주는 폴인 가든 콘서트가 다음달 4일까지 매주 주말 펼쳐진다. 장미원 둘레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은행나무길’에서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로 황금빛 단풍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짜릿한 놀이기구와 함께 가을 단풍을 경험할 수 있는 단풍 어트랙션 코스도 있다. 슈퍼 래프팅 어트랙션 ‘썬더폴스’는 사방이 모두 울창한 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급류타기 보트에 탑승한 채 형형색색 물든 단풍을 구경하고 20m 높이 급강하까지 체험할 수 있다. 단풍이 수려하게 펼쳐진 산 중턱에 있는 ‘티익스프레스’는 지상 56m 최정상 지점에서 에버랜드 가을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고 극강의 짜릿함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어 젊은 층에 최고의 이색 단풍 명소로 꼽힌다. 곱게 물든 가을길을 차를 타고 달리며 여유롭게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는 단풍 드라이브 코스도 있다. 영동고속도로 마성 톨게이트부터 에버랜드 서문을 지나 정문까지 이어지는 ‘약 5km 드라이브길’은 도로가 산허리를 끼고 있기 때문에 상하좌우로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단풍길을 다양한 각도에서 즐길 수 있다. 에버랜드 주변 ‘호암호수’는 호수에 비치는 단풍 그림이 잘 알려져 있는데, 호암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단풍이 수면에 비쳐 일대 장관을 이룬다.
  • 황현산 생전 마지막 불꽃…‘악의 꽃’ 완역판으로 부활

    황현산 생전 마지막 불꽃…‘악의 꽃’ 완역판으로 부활

    문학의 경계를 넘어 많은 독자와 교유하며 사유의 길을 열어 준 황현산(1945~2018) 선생.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산문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젊은 시인들의 든든한 후원가였던 그가 타계 직전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번역 작업이 책으로 펴 나왔다. 세계문학사에서 현대시의 문을 연 시집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난다) 완역판이다. 선생은 생전에 이 책을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그는 “보들레르는 문학에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을 통해 현대문학 전체의 질과 방향을 바꿔 놨다”며 “‘악의 꽃’과 ‘산문시집’에 의해 문학 또는 예술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의미를 짚은 바 있다. 책이 선생이 떠난 지 5년 만에 나오게 된 것은 아들인 황일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년 전 고인의 컴퓨터를 정리하다 번역 원고를 발견하면서다. 원고의 최종 수정 시간은 2018년 7월 1일로, 그는 한 달여 뒤인 8월 8일 담도암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황 교수는 역자의 말을 대신해 쓴 글에서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여름을 지현리 작업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어머니에 따르면 어느 날 아버지가 ‘악의 꽃 번역을 끝냈다’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원고를 보며 몹시 치열했을 당신의 그해 여름을 떠올려 본다”고 회고했다.번역은 완성됐지만 주석이 달려 있지 않은 원고를 두고 고민하던 가족들은 ‘아버지가 바라던 바는 원텍스트를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종 확인을 해 줄 번역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과거 홍성사 편집자로 일했던 선생의 아내 강혜숙씨가 최종 교정을 보며 출간에 힘을 보탰다. 출간을 이끈 출판사 난다 대표 김민정 시인은 “‘악의 꽃’을 완역판으로 펴내는 게 선생님의 숙제였고, 가족들에게나 트위터 등에 번역을 완료하고 주석본 작업만 남았다고 밝히신 바 있는데 원고가 뒤늦게 발견된 것”이라며 “원문에 대한 세심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려하고 적확하게 우리말로 옮겨진 시어들로 ‘악의 꽃’의 전모를 다시 감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석 없는 원고를 그대로 펴내기로 한 데는 독자를 믿었던 선생의 번역 철학이 있었다. 권현승 편집자는 “늘 ‘더 나은 번역’을 위해 분투했던 선생이 생전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독자들의 통찰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어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면 용납할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 내는 시구들이 가끔 있다. (중략) 그 용납할 수 없는 구멍이 메워지는 것은 내 번역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언어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의 발전과 독자들의 드높아질 통찰력에 의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 美고교생 10%만 받는 진학 상담… 돈 걱정 없이 AI로 맞춤형 설계

    美고교생 10%만 받는 진학 상담… 돈 걱정 없이 AI로 맞춤형 설계

    교내 진학 상담교사 턱없이 부족정보 홍수 속 ‘핵심’ 찾기 어려워진로 탐색 로드맵 ‘더 폰드’ 구축美 대학 6800곳 입학 정보 표준화학생마다 관심사·재능 정밀 분석직업별 공부법 제공… 학교 추천학생들이 스스로 길 찾도록 지원한국 의대 쏠림 현상 등 완화 기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군 복무도 없는 미국 대학생들이 4년 만에 졸업하는 비율은 30%대다. 6년 만에 졸업하는 비율이 70%대에 이른다는 미 국립교육통계센터(NCES) 자료도 있다. 전공이 맞지 않아 휴학이나 전과를 하기 때문이다. 창업한 이유는 이런 학생들의 좌절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어서다.” ●금수저 고액 카운슬링 75만 달러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이용해 학생 성향에 맞게 미국 대학 진학과 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티튜의 이다훈 대표는 대학 시절 자신이 방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했다. 2021년 3월 ‘에듀테크’ 스타트업 레티튜를 설립한 그는 캐나다에서 약 10년 동안 쓰디쓴 대학 생활을 보냈다. “나도 그랬지만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요즘도 여전히 정보의 홍수 속에 자신이 필요한 핵심 사항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 진학 상담교사인 학교 카운슬러가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만 교내 카운슬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결과 정보에 목마른 일부 학생은 사설 카운슬러를 찾는다. 하지만 AI를 이용해 더 명확한 정보를 ‘맞춤’ 제공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찾는다면 한국 내 ‘의대 쏠림’과 같은 교육관은 다소 완화될 수도 있겠다. 지난달 하순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레티튜를 찾은 기자에게 이 대표는 조근조근하게, 그러나 숨 쉴 틈도 없이 설명했다. “미국에는 6800여개 대학이 있다. 미국 고교생은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1560만명이고, 이 중에서 66% 정도가 진학한다. 매년 대략 250만명이 대학에 들어간다. 그런데 90% 이상은 자신의 성향도 모른 채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보고 진학했다가 유급돼 자퇴하거나 전공을 바꾼다.” 미국 고교생의 10% 정도가 진학·진로 전문가와 상담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다. 사설 카운슬러와 상담하는 데는 시간당 200~300달러가 든다. 프로그램당 평균 8000~1만 달러에 이른다. ‘금수저’ 카운슬링은 무려 75만 달러에 달한다. 고액 카운슬러는 주로 아이비리그 입학사정관 출신이 차린 컨설팅 회사들이다. “고액의 카운슬러들은 학생 성향 분석, 전공과 대학 선택, 대학 수학능력평가시험(SAT) 지도도 한다. 상류층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카운슬러의 도움을 받는다. 결국 교육에서 돈에 의한 정보 비대칭이 심화된다는 의미다.” 학교에는 진학 상담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대학이 발급한 진학 상담 자격증을 갖춘 교내 카운슬러 한 명이 고교생 455명을 맡는다는 통계도 있다.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학생 수의 두 배 수준이다. 미국 학교카운슬러협회(ASCA)에 따르면 고교 4년 동안 학생과 카운슬러의 상담 시간은 20분에 불과하다. 학생은 자신의 진로와 하고 싶은 일을 깊이 있게 털어놓지 못해 불만이고, 카운슬러 역시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올바로 지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데이터 기반 교육과정 플랫폼 설계 이런 상황에서 레티튜는 학생 스스로 자신을 파악해 진학과 진로 탐색 로드맵을 구축할 수 있는 서비스인 ‘더 폰드’(The Pond)를 내놓았다.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한마디로 압축하면 AI와 데이터 기반의 교육과정 설계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세 단계로 구성됐다. 먼저 학생의 관심사와 재능을 분석한다. “카운슬링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장래 직업을 통해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수익을 어떻게 만드는지 무척 궁금해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략적으로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알려 주고 대학들을 추천해 주는 게 2단계다.” 더 폰드에는 미국 6800여 대학의 입학 관련 정보가 모두 표준화돼 담겨 있다. “대학들도 자기 학교의 장점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도구로서 우리 서비스를 이용한다. 2024학년도부터 미국 대학 입학원서도 더 폰드를 통해 서비스할 예정이다.” 미국 학생들은 직업과 진로에 민감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고교생은 한국 대학생처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찾아 수업을 듣는다. 자신의 성향과 기호, 장래 희망과 진로 계획에 따라 고교 저학년 때부터 차곡차곡 교과목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라는 형태로 미국 고교와 유사한 제도가 도입된다. 또 레티튜가 학생들의 성향과 장래 희망을 파악하는 데 활용하는 도구는 미국 교육청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조사 자료다. 지난 9월 말 현재 더 폰드 이용자는 12만여명이며 85%가 미국 학생이다. 나머지 15%는 주로 미국 유학을 꿈꾸는 러시아, 영국, 동남아 학생들이다. 9월부터 월 14.99달러로 유료화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용하는 구독 시스템도 있지만 학교나 교사가 이용하는 B2B 모델도 있다. 학교에 공급하는 B2B 모델은 우리가 가진 미국 대학 데이터뿐만 아니라 학내 데이터까지 다 구축해 준다. 현재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 7개 학교와의 계약이 마무리 단계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학생들은 대학 정보를 찾아 유학원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 1982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어릴 적 시인이 되고 싶었단다. 요즘도 틈틈이 시를 쓰며 시집도 냈다. 서울에서 고교를 마치고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로 유학, 국제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2005년 9월 입학해 2015년 5월 졸업했으니 대학생 시절이 무려 9년 6개월이다. “가족의 강권으로 공과대에 진학했다. 적성에 너무 맞지 않아 유급과 휴학을 반복하다 가족과의 절충으로 경영학과를 거쳐 결국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여섯 번 휴학했다. 그리곤 한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대학원에 다니며 국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아이들 꿈꾸게 하는 게 진짜 교육” 그는 레티튜를 설립, 운영하면서 사재 10억여원을 투입했다. “전 재산을 여기에 다 투자했다. 지금까지 유치한 시드 머니는 16억 5000만원으로 경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작년 9월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소셜벤처기업으로 인증받았고 지난 5월엔 창구 프로그램에 선정돼 구글로부터 1억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4명으로 출발했던 직원은 앱과 웹 개발, 데이터 처리와 구성, 알고리즘 등을 만드는 인력이 보강되면서 10명으로 늘어났다. “운영과 알고리즘 심화 등을 위해 내년 3월부터 시리즈A에 대한 80억원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 이상인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겐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재학생과의 간단한 인터뷰, 또는 영상 대화를 주선해 준다. 학교 생활과 유급률, 실패 사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입학생 부족에 직면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에선 한국 대학의 인기가 높다. 내년 하반기엔 이들 지역 학생들의 한국 대학 진학도 서비스에 얹어 보려고 한다. 한국 대학 입학 시스템이 미국과는 많이 달라 표준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본사를 서울에 둔 것은 스타트업으로 미국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동남아 사업을 원활히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6월엔 델라웨어주 루이스에 미국 지사를 열었다. “교육을 단순히 테크로 바라보거나 수익 사업으로 바라보면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레티튜가 충분히 성공하면 대안학교나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싶다. 아이들이 꿈꾸게 하고 그 꿈을 향해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 지키는 사람 따로? 이스라엘 총리 아들은 미국에…36만 예비군 부글

    지키는 사람 따로? 이스라엘 총리 아들은 미국에…36만 예비군 부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을 공식 선언하고 전 세계 예비군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조국의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 청년들은 앞다퉈 공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장남은 해외에 체류하며 귀국하지 않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네타냐후 총리의 장남 야이르 네타냐후가 미국에 계속 머물면서 예비군 사이에선 조국을 버렸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짚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하마스와 전쟁 선포 이후 총 36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했다. 첫 30만명 동원은 48시간 만에 완료됐고, IDF는 10일 6만명을 추가 소집했다. 미국 CNN 방송은 “이스라엘 인구가 약 970만명에 불과한 데도 미국 등과 비슷한 규모의 예비군 동원”이라며 “일부 예외가 있지만 18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국민은 예비군으로 복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아테네에서부터 뉴욕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수백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참전을 위해 현지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로 떠난 네타냐후 총리의 장남 야이르 네타냐후는 아직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32세로, 예비군 복무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한 이스라엘 군인은 “내가 최전방에 있는 동안 야이르는 마이애미 비치에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교전이 격화하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 전선의 한 예비군은 야이르가 참전하지 않은 것이 사병들 사이에서 불신과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고국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일터와 가족과 아이들을 떠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아니라 우리”라면서 “우리의 형제와 아버지, 아들들은 모두 최전방으로 가고 있는데 야이르는 아직 여기 없다. 이는 이 나라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이르는 전투병으로 복무한 적은 없고, 이스라엘군(IDF) 대변인실에서 일하며 군 의무 복무를 마쳤다. 야이르는 최근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수십만명이 참여한 격렬한 시위와 야권의 반발을 불러온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 정국에서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논란이 된 뒤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면서 미국이 이같은 사태에 자금을 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더타임스는 복무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 모두가 최전선으로 가는 것은 아니며, 예비군들과 마찬가지로 다수가 IDF나 비정부기구 활동을 자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이르는 현재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쟁 피해자와 12만명의 이스라엘 피란민 지원을 위한 비정부기구의 활동을 알리고 있다. 하마스와 대치하는 이스라엘 남부 전선으로 배치될 예정인 또 다른 한 예비군은 “나는 내 일과 삶,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면서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그곳에 머무르면서 내 조국과 우리나라 사람들을 버려서는 안 된다. 총리의 아들은 어디 있는가? 그는 왜 이스라엘에 없는가?”라고 반문했다.
  • 박은빈, 꼬질꼬질 모습에 ‘깜짝’… 역대급 생활력

    박은빈, 꼬질꼬질 모습에 ‘깜짝’… 역대급 생활력

    tvN 새 토일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 적응력 최고 레벨 박은빈과 방어력 제로 김효진의 일상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오는 28일 첫 방송 될 tvN 새 토일드라마 ‘무인도의 디바’는 15년 만의 무인도에서 구조된 가수 지망생 서목하(박은빈 분)의 도전기를 그리는 드라마다. 공개된 사진 속 서목하는 아무것도 없는 외딴섬에서 파도에 쓸려온 생활 쓰레기를 생필품으로 활용하며 생존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도, 불도, 식량도 자급자족해야 하는 무인도에서 긴 세월 버텨온 덕의 시련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맷집을 갖고 있다. 반면 윤란주(김효주)는 자존감 충만했던 과거와 달리 인기가 사그라든 지금은 팬의 집에 빌붙어 살 정도로 유약해진 상태다. 사진 속에서도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극명한 대비를 확인할 수 있다. 각자의 섬에 갇힌 채 긴 시간 고립돼 온 서목하와 윤란주는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인생 역주행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가슴 찡한 여자 간 우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 황현산 선생의 인생 책 ‘악의 꽃’…그의 마지막 번역으로 다시 본다

    황현산 선생의 인생 책 ‘악의 꽃’…그의 마지막 번역으로 다시 본다

    문학의 경계를 넘어 많은 독자들과 교유하며 사유의 길을 열어준 고 황현산(1945~2018) 선생.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산문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젊은 시인들의 든든한 후원가였던 그가 타계 직전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번역 작업이 책으로 펴나왔다. 세계문학사에서 현대시의 문을 연 시집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난다) 완역판이다. 선생은 생전에 이 책을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그는 “보들레르는 문학에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을 통해 현대 문학 전체의 질과 방향을 바꾸어 놨다”며 “‘악의 꽃’과 ‘산문시집’에 의해 문학 또는 예술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의미를 짚은 바 있다. 책이 선생이 떠난지 5년 만에 나오게 된 것은 아들인 황일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년 전 고인의 컴퓨터를 정리하다 번역 원고를 발견하면서다. 원고의 최종 수정 시간은 2018년 7월 1일로, 그는 이후 한 달여 뒤인 8월 8일 담도암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황 교수는 역자의 말을 대신해 쓴 글에서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여름을 지현리 작업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어머니에 따르면 어느날 아버지가 ‘악의 꽃 번역을 끝냈다’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원고를 보며 몹시 치열했을 당신의 그해 여름을 떠올려본다”고 회고했다. 번역은 완성됐지만 주석이 달려 있지 않은 원고를 두고 고민하던 가족들은 ‘아버지가 바라던 바는 원 텍스트를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종 확인을 해줄 번역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과거 홍성사 편집자로 일했던 고인의 아내 강혜숙씨가 최종 교정을 보며 출간에 힘을 보탰다. 출간을 이끈 출판사 난다 대표 김민정 시인은 “‘악의 꽃’을 완역판으로 펴내는 게 선생님의 숙제였고, 가족들에게나 트위터 등에 번역을 완료하고 주석본 작업만 남았다고 밝히신 바 있는데 원고가 뒤늦게 발견된 것”이라며 “원문에 대한 세심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려하고 적확하게 우리말로 옮겨진 시어들로 ‘악의 꽃’의 전모를 다시 감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주석 없는 원고를 그대로 펴내기로 한 데는 독자를 믿었던 선생의 번역 철학이 있었다. 권현승 편집자는 “늘 ‘더 나은 번역’을 위해 분투했던 선생이 생전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독자들의 통찰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어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다보면 용납할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내는 시구들이 가끔 있다. (중략) 그 용납할 수 없는 구멍이 메워지는 것은 내 번역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언어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의 발전과 독자들의 드높아질 통찰력에 의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 함익병 93평 집 공개 …“1년에 집 한 채씩 살만큼 벌어”

    함익병 93평 집 공개 …“1년에 집 한 채씩 살만큼 벌어”

    함익병이 피부과 의사로 성공한 인생을 보여줬다. 지난 23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서는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공개된 함익병의 집은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각방을 쓰고 있다는 함익병은 “4~5년 된 거 같다”고 말했고 아내는 “독립적으로 옷방, 화장실도 따로 있으니까 살기 좋다. 멀어서 카톡도 한다”고 만족해했다. 함익병은 피부과로 성공한 과정도 공개했다. 함익병은 “성형외과, 안과가 돈을 많이 벌고 피부과가 돈을 많이 못 벌 때였다. 레지던트 2~3년 차 교육을 미국으로 보내줬다”며 “미국에서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더라. 레이저 클리닉이었다. 개업하려면 저걸 해야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함익병은 “1년에 집 한 채씩 살 수 있을 정도로 벌었다”며 “내가 37살에 부자가 됐다. 게를 찌개로 안 끓여 먹고 쪄서 바로 먹을 때 ‘이 정도면 부자가 됐다’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큰 돈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하는 사치가 있다며 “넓은 집을 산다. 이 집은 93평”이라고 밝혔다.
  • 포기를 포기했지… 골 넣을 자격 있지

    포기를 포기했지… 골 넣을 자격 있지

    “너는 골을 넣을 자격이 있다.” 프로축구 K리그1 FC서울 공격수 지동원(32)은 지난 22일 강원FC와의 홈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같은 팀 공격수 일류첸코(33·독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골을 넣을 수 있었다”는 일류첸코의 그 한마디가 “너무 고마웠다”는 지동원은 경기 후 “그 말이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0년 K리그 데뷔 후 이듬해 잉글랜드(선덜랜드)와 독일(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 등) 프로축구 무대에서 뛴 지동원은 2021년 7월 다시 K리그로 복귀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진출을 이끌고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지동원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컸지만 서울 유니폼을 입은 첫해 지동원은 1골을 넣는 데 그쳤다. 2021년 8월 광주FC전 득점이 유일했다.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린 지동원은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지난 시즌 세 차례 출전에 그친 지동원은 지난 8월 대구FC와의 홈경기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올 시즌 7경기 출전 만에 몸을 던지는 헤더골로 득점을 기록했다. 2년 2개월 만에 터진 득점포에 지동원은 두 손을 모으고 경기장을 찾은 1만 1648명의 관중 앞에서 미안함을 전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골 가뭄에 시달렸던 지동원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선수들에게도 “골 넣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지동원이 이 기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동료들의 믿음 덕분이었다. “다치지만 말라, 안 다치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몸 관리에 신경 써 달라”는 주변의 조언이 지동원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자신을 믿어 준 김진규 감독대행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김 감독대행 부임 이후 지동원은 32라운드 수원FC전을 제외하고 모두 출전 기회를 얻었다. 김 감독대행은 “부상 때문에 강원전에 투입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며 지동원을 교체 투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교체 출전 6분 만에 결승골을 넣은 지동원에 대해 김 감독대행은 “끝까지 하려는 모습은 후배들도 배워야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감을 되찾은 지동원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골”이라며 “이 골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이 안 좋은 상황인데도 많은 팬이 응원을 해 줘 힘이 된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재밌게 축구를 하고 싶다”며 선수 생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지동원의 결승골…“너는 골 넣을 자격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지동원의 결승골…“너는 골 넣을 자격 있다”

    “너는 골을 넣을 자격이 있다.” 프로축구 K리그1 FC서울 공격수 지동원(32)은 지난 22일 강원FC와 홈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같은 팀 공격수 일류첸코(33·독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골을 넣을 수 있었다”는 일류첸코의 그 한마디가 “너무 고마웠다”는 지동원은 경기 후 “그 말이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0년 K리그 데뷔 후 이듬해 잉글랜드(선덜랜드)와 독일(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 등) 프로축구 무대에서 뛴 지동원은 2021년 7월 다시 K리그로 복귀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진출을 이끌고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지동원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컸지만 서울 유니폼을 입은 첫해 지동원은 1골을 넣는데 그쳤다. 2021년 8월 광주FC전 득점이 유일했다.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린 지동원은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지난 시즌 세 차례 출전에 그친 지동원은 지난 8월 대구FC와 홈 경기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올 시즌 7경기 출전 만에 몸을 던지는 헤더골로 득점을 기록했다. 2년 2개월 만에 터진 득점포에 지동원은 두 손을 모으고 경기장을 찾은 1만 1648명의 관중 앞에서 미안함을 전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골 가뭄에 시달렸던 지동원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선수들에게도 “골 넣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했다.지동원 극찬한 김진규 “후배들이 배워야”지동원 “많은 팬들이 응원해줘 힘이 난다” 지동원이 이 기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동료들의 믿음 덕분이었다. “다치지만 말라, 안 다치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몸 관리에 신경써달라”는 주변의 조언이 지동원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자신을 믿어준 김진규 감독대행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김 감독대행 부임 이후 지동원은 32라운드 수원FC전을 제외하고 모두 출전 기회를 얻었다. 김 감독대행은 “부상 때문에 강원전에 투입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면서 지동원을 교체 투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교체 출전 6분 만에 결승골을 넣은 지동원에 대해 김 감독대행은 “끝까지 하려는 모습은 후배들도 배워야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감을 되찾은 지동원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골”이라며 “이 골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이 안 좋은 상황인데도 많은 팬들이 응원을 해줘 힘이 된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재밌게 축구를 하고 싶다”며 선수 생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 ‘이효리♥’ 이상순, 엄정화 만날 뻔했다…소개팅 뒷이야기

    ‘이효리♥’ 이상순, 엄정화 만날 뻔했다…소개팅 뒷이야기

    가수 이효리가 남편인 기타리스트 이상순과의 연애 시절을 떠올렸다. 22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에서 이효리는 가수 정재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정재형은 “너네 10년 됐더라. 소개팅 내가 해줬다”며 이효리와 이상순의 결혼 10주년을 언급했다. 이에 이효리는 “소개팅까지 하면 14년 됐다”고 답했다. 이효리는 “(이상순과) 소개팅하고 1~2년 있다가 만났다. 오빠(이상순)도 다른 사람 만나고 나도 다른 사람 만났다”며 “다시 만난 게 (정재형) 오빠 공연 쫑파티였다”고 말했다. 이어 “상순 오빠 다시 만났는데 그때는 괜찮아 보이더라. 근데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며 “그래서 술 먹다가 집에 갔는데 상순 오빠한테 문자가 왔다. ‘효리씨 가셨어요?’ 이래서 ‘내일 일찍 촬영 있어서 먼저 왔어요’라고 했더니 ‘효리씨 가니깐 술맛이 없네요’라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이효리는 당시 남자친구가 있어 이어서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이상순이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연락했고, 프로젝트 음악을 만들면서 인연을 쌓게 됐다. 정재형이 “내가 소개해준 거 후회 안 하냐”고 묻자 이효리는 “너무 안 한다”며 “오빠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답했다.정재형은 “상순이 원래 엄정화 소개해 주려고 했어”라고 고백해 이효리를 놀라게 했다. 한편 이효리와 이상순은 2013년 결혼한 후 제주도에서 거주 중이다.
  • 황정음 “인생 가장 큰 후회는 결혼”…두 아들 최초 공개

    황정음 “인생 가장 큰 후회는 결혼”…두 아들 최초 공개

    ‘미우새’에서 황정음이 똑 닮은 두 아들을 공개, 재혼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답했다. 황정음은 22일 방송된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했다. 어느덧 결혼 8년차가 된 황정음은 연애 10개월만에 남편과 결혼에 골인했다고 말했다. 황정음은 “요즘은 잘 생겨보일 때가 없다. 남편한테 심쿵할 때도 없다”며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는 결혼, 인생을 살다보니 (마음이)바뀌었다”고 해 웃음을 안겼다. 부모님에게 ‘미우새’였던 시절은 이혼한다는 얘기 했을 때라는 황정음은 “가족들 단톡에 미리 ‘내일 이혼기사 소식에 놀라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나보다 오빠(남편)를 걱정하셨다”며 떠올렸다. 하지만 결국 이혼을 극복하고 재결합을 하게 된 황정음은 “예전에 싫어했던 행동을 남편이 조심해주고 달라졌다. 나도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 (결국) 합친 것 같다”며 솔직하게 말했고 모벤져스들은 “잘했다”며 호응했다. 황정음은 왕식이와 강식, 두 아들을 공개했고 신동엽은 “어릴 때 저렇게 잘생기기 쉽지 않다. 떡잎부터 다르다”며 놀라기도 했다.
  • ‘강등권’ 11위 강원·12위 수원 나란히 패배… 잔류 경쟁 더 ‘치열’

    ‘강등권’ 11위 강원·12위 수원 나란히 패배… 잔류 경쟁 더 ‘치열’

    승리가 절실한 프로축구 K리그1 강원FC(11위·승점 26)와 수원 삼성(12위·승점 25)이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에서 승점을 따내지 못하며 강등 위기에 몰렸다. 제주 유나이티드(9위·승점 38)는 22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2023 파이널B(7~12위) 34라운드 홈경기에서 김건웅과 유리 조나탄의 득점을 묶어 2-0으로 수원을 제압했다. 리그 8경기 만에 거둔 승리로 강등 위험에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제주는 전반 3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건웅의 선제골로 앞서 나간 뒤 전반 25분 조나탄의 헤더골까지 터지면서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았다. “개인 기록보다 팀이 승리하는 게 좋다”며 경기 전 각오를 단단히 밝힌 제주 주장 최영준은 승리와 함께 K리그 통산 300경기 출전 기록도 세웠다. 이미 잔류가 확정된 FC서울(7위·승점 50)은 같은 시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과의 홈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최근 3경기째 승리를 챙기지 못한 강원은 이날 강등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격적 축구로 선발 진용을 꾸렸다. 선제골은 서울에서 나왔다. 후반 7분 나상호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때린 슈팅이 상대 선수를 맞고 굴절되면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반 31분 강원 공격수 가브리엘이 동점골을 넣으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지만 교체 투입된 지동원이 3분 뒤에 몸을 날리는 헤더골을 넣으며 경기를 다시 뒤집었다.오랜만에 득점포를 가동하며 자신감을 되찾은 지동원은 경기 후 “이번 골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골”이라고 말했다. 반면 강원 윤정환 감독은 “선수들의 동기부여는 확실하다”며 “부족한 점을 자주 보였는데 잘 새겨 다시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대전 하나시티즌(8위·승점 46)은 이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FC(10위·승점 32)와의 홈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잔류를 확정 지었다. 수원 공격수 김현이 전반 32분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후반 16분 대전 티아고가 동점 골을 넣으면서 다시 균형을 맞췄다. 티아고는 주민규(울산)와 함께 득점 공동 1위(15골)에 올랐다. 최하위 12위 팀은 자동 강등돼 2024시즌 K리그2에서 경기를 치른다. 10위와 11위도 승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K리그2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서울에 이어 대전이 잔류를 확정하면서 강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머지 네 팀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K발레 개척자… “이젠 후배들 멘토, 한일 문화교류 다리 역할 할래요” [임형주의 임의 동행]

    K발레 개척자… “이젠 후배들 멘토, 한일 문화교류 다리 역할 할래요” [임형주의 임의 동행]

    한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이웃이었다. 동네에서는 늘 수수하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반려견과 산책하던 모습으로 만났다.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발레계를 호령했고 국립발레단을 12년간 이끌면서 한국 발레의 부흥을 이룬 주인공이라는 걸 누가 알까.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평소와 다르게 화사한 바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나 예의 그 화사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세월을 비껴 간 모습에 유지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오늘 사진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신경 좀 썼다”고 했다. 살짝 매서워 보이는 듯한 눈이 반달처럼 바뀔 때는 손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다. “두 딸의 아이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놀아 주는 게 인생 최대의 행복인 할머니”라며 웃어 보였다.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은 1996년 최연소(37세)로 단장과 예술감독을 맡은 이후 연임과 재임용, 또다시 연임을 거치며 12년간 발레단을 이끌었다. 정동극장(현 국립정동극장) 극장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발레협회, 무용협회,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등 다양한 위치에서 예술행정가로서 길을 걸어 온 게 27년이다. 이제는 서울시가 출범한 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포럼의 공동대표로서 여전히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어찌 그토록 에너지 넘치게 활동하는지 물었더니 “아이고, 이제는 ‘노땅’이라 옛날이야기 하는 게 쑥스럽다”며 운을 뗐다. 지금에야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객석이 꽉꽉 들어찰 정도로 사랑받지만 1990년대는 달랐다. “그때는 정말 답답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도 내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은데 그때는 더했죠. 한국말도 잘 못하고 행정 경험도 전혀 없고.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어요. 그래서 더 노력했죠, 잘하려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그래서인지 발레계에선 여전히 최 단장 시절의 발레단을 이야기한다. 필자의 지인들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불꽃 같은 추진력은 누구도 못 따라간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고, 그건 너무 좋게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누구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당시는 국립단체인데도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처우 개선이 너무나 필요했죠. 예를 들어 발레리나는 하루 종일 연습하니까 토슈즈가 금방 너덜너덜해져요. 공연을 앞두고는 2~3일마다 바꾸기도 하는데 이런 지원이 전혀 없는 거죠. 지원 예산을 요청했더니 ‘빨아서 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아와요. 토슈즈는 나무와 종이가 들어가 있거든요. 이런 걸 하나하나 설명해야 해요. 너무 힘들죠. 연말에는 으레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 하나 올리는데도 정부 예산을 따야 하니 쉽게 간 게 하나도 없었죠. 그땐 거의 매일 기획재정부 가서 납작 엎드리는 게 일이었어요.” 추억은 항상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게 마련인가. “그때처럼 술을 많이 마셨던 적도 없는 듯하다”는 그는 “관계도 잘 다져야 하니까 기재부 공무원들과 모임도 많이 했다. 빼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맥주, 소주, 사이다 섞은 ‘폭탄’도 엄청 먹고 다음 날 일어나지도 못했던 적이 몇 번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한국말을 잘 못해서 너무 어려웠는데, 가끔은 그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안 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더라”고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였던 삶에서 180도 바뀐 셈이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책임감이 절 붙잡는다”고 했다. “오빠 둘과 언니 하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아버지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런 아버지가 한국의 국립단체에서 일한다니까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어요. 막내딸이 무섭고 외로울까 봐 매달 한국에 와 주시기도 했고요.” 최 전 단장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다. 대학까지 일본에서 공부했고 1980년대에 프랑스 프랑게티 발레 아카데미와 미국 조프리 발레스쿨을 연이어 수료했다. 일어와 프랑스어, 영어가 한국어보다 먼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랄까. “무엇 하나 쉬운 것 없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서른일곱 살도 춤출 수 있는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지로 프리마돈나의 길을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예술행정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1996년 초~2001년 말과 2008년 초~2013년 말, 그의 임기 동안 국립발레단은 르네상스를 맞았다. 창작 발레와 대작, 현대 발레를 골고루 선보이면서 무용수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관객들이 자연히 몰려들었다. 발레 공연 관객의 비중도 달라졌다. 초대 인사가 대부분이었던 객석에 유료 관객 점유율이 높아지며 그의 퇴임까지 꾸준히 90% 중반을 유지했다. 그는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깊이 배우게 된다.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고 감사히 일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아버지와 함께 떠올리는 분은 임성남(1929~2022) 1대 국립발레단장이다. “일본에서 발레를 할 때 ‘이지메’(따돌림)를 많이 당했어요. 좋은 역할만 하니까 같이 놀아 주질 않더라고요. 탈의실에서 혼자 바나나 먹고, 애들은 옆에서 웃고 있고. 너무 외롭고 속상했지.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도망가고도 싶었고.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 주셨어요. ‘야스에(최 전 단장의 일본 이름이다)짱, 발레의 신이 당신을 사랑하게 돼서 도망갈 수가 없어요.’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어요. 그리고 힘을 얻었죠.” 그런데 또 한 번 벽에 부딪혔다. 일본에서 해외 발레 연수 프로그램에 도전하려고 보니 우선 조건이 ‘일본 국적’이었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으셨어요. 제가 그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비로 프랑스 유학을 택했죠.”프랑스 유학 후에 일본에 돌아와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던 때 당시 일본발레협회장이었던 시마다 히로시(한국명 백성규) 선생이 당시 국립발레단을 맡고 있던 임 전 단장을 이어 줬다. 그렇게 1983년 국립발레단 무용수로 한국 무대에 섰다. 실력이 남다른 그의 몸짓에 평단과 관객은 열광했고, 그렇게 한국의 삶이 시작됐다. 임 전 단장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덧댔다. “학연도 지연도 없던 한국에서 실력으로 인정해 주시고 한국의 정이라는 것,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썽도 많이 부렸는데 끝까지 믿어 주셨어요.” 결혼과 출산으로 발레계를 떠날 생각을 했던 그를 설득하고 손을 내밀었다. 2000년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화했을 때 최 전 단장은 그를 초대 이사장으로 모시며 국립발레단의 변화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했다. 발레단 지도위원으로 있던 그를 3대 단장으로 강력하게 추천한 김혜식 2대 단장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크다. “처음엔 ‘내가?’,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뭐랄까, 운명 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런 운명을 받아들이니 책임감을 갖게 되더라고요.”유료 관객률을 90%까지 끌어올리고 국립발레단 예산도 100억원을 넘기면서 이제는 국립발레단도 잘 유지될 거라 생각하면서 그는 단장직을 기쁘게 내려놓았다. 그러다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이 한국의 유일한 시립발레단을 키워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이제 개인적인 시간을 우리 강아지랑 더 보내야 한다고,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라”며 웃어 보이더니 “그런데 너무나 간곡히 요청해 와서 결국엔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국의 발레 부흥을 이끈 그가 지역 발레단으로 간다는 소식은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실력이든 환경이든 국내 최정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의아해하기도 했다. 결국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광주에서도 발레가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시립발레단이 잘되면 다른 도시들에도 시립단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스스로는 ‘국립발레단과 절대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단원들에게도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충분히 얘기하면서 “우리가 할 일이 이렇게 많다”며 의욕을 북돋웠다. 1983년부터 40년, 한국 발레계를 성장시킨 최 전 단장 덕에 많은 문화계 후배가 문화예술행정가를 꿈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술계에 몸담은 필자의 입장에서도 최 전 단장의 존재와 발자취가 크고 남다르게 다가온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주저 없이 “후배들의 멘토”라는 답이 튀어나왔다.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에요. 요즘 정말 훌륭한 발레계 후배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키워야죠. 그리고 내게 마지막 소망이 하나 있다면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한일문화교류에 이바지하는 거예요. 이제 코로나 팬데믹도 끝났고 활발하게 교류할 때라고 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교과서 문제나 역사 인식 문제 등이 있지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게 문화예술이라고 봅니다. 참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예술로 다리를 놓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 아티스트를 일본에 더 많이 소개하고 일본 예술가들도 많이 초청해야 한다”면서 그는 광주에 있는 아시아문화의전당을 언급했다. “아시아의 문화 허브로 만들겠다고 지었는데 아직 활성화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죠. 이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하던 2시간 내내 그가 풀어 놓은 국내 발레계와 국공립단체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만의 노하우와 경험들, 빛나는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아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청년 못지않게 정열적으로, 크고 둥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우리 문화예술계를 위해 ‘봉사’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커졌다. 그에게 ‘실례’가 되려나, 아니면 필자의 ‘욕심’이려나. 무엇이든 문화예술계에 그는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든다.
  • 강동 ‘여기, 우리 함께’ 공감·소통하는 보육

    강동 ‘여기, 우리 함께’ 공감·소통하는 보육

    서울 강동구가 서울시 보육주간을 맞아 24일부터 26일까지 ‘여기, 우리 함께’라는 주제로 다양한 보육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보육주간은 양육 친화적 환경 조성 및 보육과 양육에 대한 긍정 인식 확산을 위해 서울시에서 매년 10월 넷째주로 지정한 기간이다. 구는 지난해부터 이 기간에 보육과 관계된 행사, 교육, 홍보사업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첫날인 24일에는 강동구어린이회관에서 ‘강동구 보육! 어디가?’라는 주제로 ‘2023 강동 보육포럼’을 연다. 25일 오후 4시 30분부터는 강동구어린이회관에서 지역 내 어린이집 졸업생인 정은혜 작가가 “제 꿈은 다 이뤄졌어요”라는 주제로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26일에는 일자산자연공원 잔디광장에서 강동구 230개의 국공립, 민간, 가정어린이집의 보육 교직원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3 강동구 보육인의 날 기념식’을 진행한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보육주간을 통해 영유아 보호자와 보육 교직원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시간 속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배우 김민희, 트로트 가수로 전향…“음악이 좋다”

    배우 김민희, 트로트 가수로 전향…“음악이 좋다”

    배우 김민희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이유를 고백했다. 22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 겸 트로트 가수 김민희의 인생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날 김민희는 아역 배우 시절을 회상하며 “이때 한 고생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홍역을 앓아서 얼굴이 뒤집어졌다. 장염이 걸렸는데도 화장실에 못 가고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김민희는 “지금도 엄마한테 ‘그건 학대였어’라고 얘기한다. 그 말을 뱉기까지가 힘들었다”며 숨겨진 고충을 토로했다. 또 김민희는 인생 캐릭터 ‘똑순이’에 대한 애증을 털어놨다. 김민희는 “청소년기에는 싫었다. 주변 사람들이 조롱을 섞어서 부르는데 그런 고통이 싫었다”고 전했다.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등을 앓고 38㎏까지 빠졌다는 김민희는 “대사를 외우면 파도같이 밀려온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4줄짜리 대사도 못 외웠다. 민폐였다”고 설명했다. 김민희는 40년 연기 인생에 회한을 느끼면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김민희는 트로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원래 트로트를 좋아했다. 어떤 시절의 감성은 트로트로 연결되어 있다”며 “감정을 노래로 표현할 때가 너무 좋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 60대 방송인 “남친으로 나 어때”…10살 팝스타, 무대 뒤에서 울었다

    60대 방송인 “남친으로 나 어때”…10살 팝스타, 무대 뒤에서 울었다

    “무대를 떠난 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41)의 회고록 ‘더 우먼 인 미’(The Woman in Me) 출간에 앞서 책 내용 일부를 미리 소개했다. NYT에 따르면 스피어스는 이 책에서 어린 나이 연예계에 발을 들이면서 겪었던 시련을 고백했다. 스피어스는 10세 때 ‘스타 서치’라는 연예인 발굴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당시 진행자였던 에드 맥마흔은 스피어스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스피어스가 “없다”고 답하자 맥마흔은 “나는 어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1923년생인 맥마흔의 나이는 당시 68세 전후로 추정된다. 무대를 떠날 때까지 “꾹 참았다”던 스피어스는 무대 뒤에서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이후 스피어스는 1997년 나이 16세에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re time)으로 데뷔해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자신을 성적인 상품으로 대하는 시선과 싸워야 했다. 그는 토크쇼 등에서 남자 가수들과는 다른 질문을 받았다면서 “모두가 내 가슴에 대해 이상한 말을 계속했다. 내가 성형수술을 받았는지 아닌지 알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비정상적 행동 “인정”…공개연애 이야기 화제 스피어스는 20대 후반 삭발과 파파라치 차량 공격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그는 “심한 산후 우울증과 남편(전 남편 케빈 페더라인)에게서 버림받은 것, (양육권 소송으로) 두 아이와 헤어지는 고통, 사랑하는 이모 샌드라의 죽음, 파파라치들의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어떤 면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약엔 관심 없었지만, 몇 시간이나마 덜 우울하기 위해 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 약을 먹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고록 출간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공개 연애 뒷이야기다. 스피어스와 팀버레이크는 1999년 만남을 인정했지만 3년 만인 2002년 결별했다. 스피어스는 교제 당시 임신했지만, 팀버레이크가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 임신 중절을 선택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언젠가 팀버레이크와 가족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며 “인생에서 겪었던 힘든 순간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겨” 친부 비판하기도 13년여간 법적 후견인 역할을 하며 자신의 삶을 지배한 아버지도 비판했다. 스피어스가 약물 중독 등에 시달리며 일으켰던 여러 스캔들이 후견인제 적용의 빌미가 됐다. 스피어스는 2008년 초 친부인 제이미가 법적 후견인으로 지정된 뒤 모든 행동을 감시당했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13년 뒤인 2021년 8월, 스피어스는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박탈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두 아들을 만나거나 몸속 피임기구를 제거할 선택권도 없는 억압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유였다. 제이미는 2021년 11월 스피어스가 소송에서 승소해 자유를 되찾기 전까지 6000만 달러(약 707억원)에 달하는 스피어스의 재산을 통제했고, 의료와 세금 문제 등 대부분을 관리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 대해 “너무 아파서 남자친구는 직접 선택할 수 없지만, 시트콤과 아침 쇼에 출연하고 매주 다른 지역에서 공연할 수 있을 만큼은 건강하다”고 말했다면서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나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피어스는 후견인 제도가 그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며 “내 음악은 내 삶이었고, 후견인제는 치명적이었다. 그것은 내 영혼을 부서뜨렸다”고 반박했다.스피어스는 아버지의 후견인 역할이 끝났을 때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며 “어렸을 때 나를 겁주고 어른이 돼서는 내 자신감을 떨어뜨리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던 그 남자가 더는 내 삶을 통제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피어스는 다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게 됐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NYT는 스피어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끈질긴 긍정으로 고통을 극복해가는 스피어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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