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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포도주등 576개 관세 즉시철폐

    밀·포도주등 576개 관세 즉시철폐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농업협상에서 미국산 밀과 포도주, 건포도, 옥수수 가루, 오이, 냉동 오렌지주스 농축액 등 576개 품목은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한·미 FTA 협상단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한 576개 품목은 전체 1531개 품목의 37%이며 수입금액으로는 16억 2732만달러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농산물 29억 8331만달러의 54%에 이른다. 상당수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거나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들이다. 관세철폐 기간이 10년 이상 장기간인 민감품목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오렌지·감귤·송이버섯·사과·복숭아·밤·궐련(담배) 등 520개이다. 전체의 34%다. 금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29.3%인 8억 7083만달러이다. 이 가운데 15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은 167개이다. 품목수로는 10.6%이고 수입금액 기준으로는 24.8%인 7억 3810만달러이다. 이 가운데 쇠고기·오렌지·포도·사과·배·대두·감자·분유·치즈·천연꿀·보리·맥아 등 111개 품목에는 세이프가드가 함께 적용된다. 감귤·송이버섯·표고버섯·밤·조제저장 딸기·궐련·필터담배 등 51개 품목은 관세만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어진다. 양국이 합의한 농산물 양허안에서 2년 이내 관세철폐 대상 종목은 아보카도 레몬 자두 해바라기씨 등 6개이며,3년내 관세철폐는 해조류 등 33개이다. 5년내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은 완두콩, 냉동감자, 냉동딸기, 초콜릿, 말린 버섯, 자몽, 알파파 등 동물용 사료 등 310여개(20.7%)이며 수입금액으로는 3억 6000만달러에 이른다. 식용대두와 감자, 분유, 천연꿀은 현행 관세를 유지하되 무관세 쿼터를 제공키고 했다. 무관세 쿼터량은 식용대두가 첫해 2만 5000t, 식용 감자 3000t, 분유 5000t, 천연꿀 200t이며 해마다 3%씩 늘려 나간다. 고추·마늘·양파는 15년내 관세가 철폐되지만 세이프가드는 이보다 3년 긴 18년간 적용된다. 인삼도 18년에 걸쳐 관세가 점진적으로 없어지며 세이프가드는 20년간 적용된다. 사과 중에서 후지사과는 20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되며 세이프가드는 23년간 적용된다. 나머지 사과 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이 10년이다. 배 중 아시아 품종은 관세철폐 기간이 20년이며, 나머지는 10년이 적용된다. 이처럼 관세철폐 이후에도 세이프가드가 유지되는 품목은 34개이다. 세이프가드는 쇠고기·돼지고기·사과·고추·마늘·양파·인삼 등 73개 품목에 대해 도입되며 발동기준과 추가관세율 등은 부속서에 넣기로 합의했다. 김균미 이영표기자 kmkim@seoul.co.kr
  • [인사]

    ■ 공무원연금관리공단 ◇1급 승진 △정보지원실장 石仁聲◇2급 승진△대전지부 연금급여팀장 鄭知道◇2급 전보△경영정보팀장 金成宇△혁신인사부장 李相周△고객만족경영팀장 홍승동■ 농협CA투신운용 △대표이사 회장 송진환△대표이사 사장 니콜라 소바쥬■ 동부생명 ◇상무 선임△마케팅지원실장 尹春成△AM사업부장 具本喆■ 대한화재 △임원(이사대우) 선임 安永九 金東優 任秀鎭 潘錫奎■ 한국인삼공사 ◇국장급 승진△기획조정실장 직무대리 尹汝康△원료국장 직무대행 安相玟◇부장급 승진△전남 지점장 李在根△중부원료 사업소장 金浩奎◇국장급 전보△마케팅국장 李生宰△경영관리국장 吳銖泳◇부장급 전보△인사부장 金萬會△영업1부장 金成玉△경영조정부장 張敬燮△해외기획부장 安重喆△해외영업부장 尹三容△서울동부 지점장 姜海聲△인천 지점장 金相培△대구 지점장 劉昌鎬△남부원료 사업소장 金時東■ 대신증권 ◇이사대우 승진△준법감시인 남시준△신탁연금본부 배활△명동지점 장철원△반포지점 이병주△대치동지점 하창용△목동지점 남해붕△영업부 이준우△부천지점 강성호△분당지점 김정식△울산남지점 한양현△광양지점 이관철◇부서장 승진△감사실 김성태 △인사부 이득원△차세대시스템부 최명재△기업분석부 문정업△채권부 안경환△법인영업부 박천원△WM기획부 정재중△Retail기획부 권용범△리서치지원부 함성식△주식부 김상익△PI부 박형규◇지점장 승진△남대문 이장희△신촌 조용현△상계동 김원군△역삼동 박현철△일산 이병민△염창동 정기동△주엽 김완수△평촌 조우진△북인천 김태현△진주 서용만△동래 위호열△여천 김영수△청담 강동근△논현역 양은희◇부부장 승진△법인영업부 손귀연△기업연금부 이영철◇부서장 전근△Business기획부 이창화△전산시스템부 양창현△전산업무부 서동수△국제부 조주연△M&A금융부 김홍남△SF부 유광조△파생상품영업부 배영훈△자금부 김주녕△파생상품운용부 전성대△법인자산영업부 민영기△수도권법인사업부 박찬일△Wholesale기획부 오홍진△기업연금부 윤원철△신탁부 윤옥엽△WM지원부 노승범△고객지원부 한태욱△동부법인사업부 정칠근△서부법인사업부 김경근◇지점장 전근△서대문 박형근△중앙청 김창욱△전자랜드 우희락△마포 이홍만△창동 신병준△하계동 육철한△홍제동 박성희△장안동 안연희△구리 김상조△영동 이지열△무역센터 신인식△영등포 신경우△방배동 신경식△시흥동 이현식△보라매 방연주△관악 박진규△송탄 이상봉△인천 류광일△원주 박병화△오산 김창빈△안산 이홍윤△부전동 유석종△창원 안순정△남천동 이정화△광주 고중석◇사무소장 전근△동경사무소 이현수■ 대신투자신탁운용 ◇이사대우 승진△해외사업본부 노요섭△투자전략본부 나민호◇부서장 승진△마케팅부 육헌수◇과장 승진△마케팅부 정영락■ 대신경제연구소 ◇과장 승진△기획관리부 박혜신■ 한국금융지주 ◇상무보 승진△경영지원실 丁世英■ 한국투자증권 ◇승진(상무)△신사업추진본부장 尹聖一△중부지역본부장 吳泰均△영남지역본부장 金鎭泰△부동산금융담당 金成換◇상무보△기업연금담당 金東建△목동지점 金炳喆△광주지점 朴源玉△업무지원부 徐光烈△eBusiness기획부 申熙撤△청주지점 梁承鎬△국제투자부(홍콩현지법인) 吳敬熙 △인사부 李炳喆◇전보◇전무△경영기획본부장 李康行△RM·Compliance본부장 吳宇澤△개발금융·연금본부장 李鍾建◇상무△영업추진본부장 鄭鉉喆△국제〃 李愿宰△자산운용〃 孫碩佑△경영지원〃 吳尙勳△강서지역〃 沈承鎭△강북지역〃 崔鍾三△강남지역〃 朴德夏△영업부장 文晨好◇상무보△개발금융담당 陰智鉉■ 한국투자신탁운용 ◇전보△총괄부사장 鄭燦亨◇승진△마케팅1본부 상무보 李成敎
  • [한·미 FTA 연장협상] 7만 2000∼14만 3000명 구조조정 불가피

    [한·미 FTA 연장협상] 7만 2000∼14만 3000명 구조조정 불가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산업은 농업이다. 농업생산 감소액이 8조 2000억원에서 1조원 정도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농림부는 농업생산액이 1조 1500억∼2조 28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농업에서 고용인구가 7만 2000∼14만 3000명 줄어들 전망이다. 문제는 현재 농업노동력의 40%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이다. 이들이 농업부문에서 방출될 경우 다른 산업에서 재취업이 사실상 어렵다. 이농으로 인한 다른 사회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축산·과수 농가 피해 집중 미국 쇠고기는 수입이 금지되기 전에는 한해 1억달러가 수입돼 전체 축산물 수입액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했다. 쇠고기 수입이 자유화되고 현재 40% 관세율도 철폐되면 최대 2400억원어치의 생산이 줄어들 전망이다. 돼지고기의 관세율 25%가 철폐되면 생산이 1460억원어치 줄어든다고 농촌경제연구원은 보고 있다. 돼지와 달리 소는 대규모 전업농이 적고 농사를 지으면서 1∼2마리를 짓는 소규모 영농이 대부분이다. 피해액도 문제지만 피해 농가가 대규모로 나타나게 된다. 민감품목 중 하나인 오렌지의 관세가 철폐되면 감귤 생산액은 55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에 농산물을 수출한다. 수출 규모가 1000만달러가 넘는 품목은 라면, 필터담배, 배, 기타조제식품(인삼 등) 4가지에 불과하다. 현재 배, 난초, 인삼이 무관세이고 김치에 대한 관세가 6.4%로 FTA로 우리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2001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미 FTA가 농업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바 있다. 이 위원회는 쌀을 포함한 전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8조 8000억원의 피해를 예상했다. ●농업관련 2차산업도 피해 쌀 피해액이 3000억원, 축산물이 240억원, 과일·채소 1369억원, 낙농제품 1370억원이다. 신선 농산물의 피해액은 6000억원에 그치고 나머지 8조 2000억원이 가공식품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미국은 과일 가공품에 대한 수출을 많이 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농업 관련 2차 산업의 피해도 발생할 전망이다. 민감품목인 마늘과 고추도 안심할 처지가 못된다. 미국은 2004년 고추를 1500만달러, 마늘을 800만달러 수출하는 등 전체 농산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다. 권오복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상황이 좋아지고 미국 농업의 잠재력으로 볼 때 다른 품목에서 고추, 마늘로 생산을 전환해 얼마든지 생산을 늘릴 수 있다.”며 경계감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8) 경북 상주시 임곡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8) 경북 상주시 임곡리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는 십승지(十勝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 안에서 피란(避亂)하기 좋다고 전하는 열 군데의 지방이란 뜻이다. 예언자 격암 남사고(南師古)는 십승지를 ‘지세가 깊숙하여 병란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대대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 하였다. 십승지는 산세가 험한 경북 지역에 주로 몰려 있다. 한수 이북에는 한 군데도 없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오랫동안 북방민족들의 침략에 시달려 왔던 까닭이다. 한반도 이남의 네 귀퉁이를 ×자로 연결해 보자. 두 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경북 상주. 거기서도 숨겨진 장소라고 불리는 임곡리가 바로 십승지의 으뜸으로 지목된 곳이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상주까지는 2시간 남짓. 화령을 지나 보은 방면으로 30여분 산길을 가면 임곡리라는 입간판이 나온다. 구병산을 병풍으로 하여 시루봉을 앞에 두고 음양오행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산과 들로 둘러싸인 곳. 봄을 따라가는 계곡 언저리에는 화사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느낌을 주는 들꽃이 만개해 있다. 산지의 양지 바른 풀밭에는 나물들이 다소곳이 숨어 새록새록 솟아오르는 봄기운을 갈무리하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는 소달구지가 길게 행렬을 이루며 번성했던 마을. 집터로 사용되던 곳들은 모두 밭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표고버섯과 율무 재배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간간이 충남 금산 사람들이 땅을 빌려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15년째 버섯을 재배하는 김용덕(60)씨. “이곳에 숱한 도인들이 들어와 수도를 했지만 워낙 지기(地氣)가 강해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갔어요.” 그래도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은 나름대로 ‘수행의 길’을 찾아 정착한 사람들이란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겨울철 은하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대기가 맑다. 구병산 천문대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가 초대 천문대장이었다. 자연경관은 빼어나지만 세상과는 동떨어진 접경 마을이다.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도랑의 좌측은 행정구역상 충북 보은군 마로면 임곡리이며 우측은 경북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다. 주민들은 행정구역과 사투리는 달라도 한지붕 두집 살림을 한다. 임곡리는 동학교도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동학군 지도자로 활약했던 강선희의 묘가 있다. 동학인이었던 선조가 100년 전 이곳으로 피신해온 이후 지금까지 터를 잡아 산다는 전해웅(70)씨 .“6·25무렵에는 외지인의 유입이 거의 없어 윗마을 장씨와 아랫마을 강씨네가 겹사돈을 맺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현재 인동 장씨와 진주 강씨 집성촌이 있다. 그래도 “마을이 길지(吉地)라서 이 마을 출신들은 6·25 때나 월남전에서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자랑한다. 속세를 떠난 심신수행으로 외부와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 하늘이 숨겨놓은 명당이라 하여 천장지지(天藏之地)로 불렸던 임곡리. 그러나 최근에는 채석장이 생겨나서 십승지가 자리잡은 명산들이 마구 훼손되고 있다. 천혜의 신비(神秘)와 명산이 빚어놓은 명당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진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사설] 보상비 부풀리기 주민 탓만 할텐가

    신도시 개발이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대규모 공공개발 사업과정에서 보상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각종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보상 단가가 급증하고 있다. 건설 예정지 주변에 인삼이나 배나무 등 값비싼 유실수를 심는가 하면, 무허가 공장이나 창고가 들어서는 것은 다반사다. 특정 마을에서는 어업권 보상금을 노린 위장등록 해녀가 급증하고,1명이던 남자해녀가 갑자기 66명으로 불어났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개발논리에 밀려 삶의 터전과 생계수단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고 싶은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위장, 편법을 동원해 과도하게 영업권과 경작권 보상비를 올려 받겠다는 것은 선량한 시민들이 낸 세금을 도둑질하겠다는 심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이 수십년째 반복되면서 정도가 더 심각해지도록 정부는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 보상비 부풀리기가 명백한데도 주민들의 집단 반발을 우려해 적당히 타협해 온 안일한 태도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보상비가 늘어나는 것은 각종 개발사업이 입안단계에서 사업계획 발표, 실시계획 확정, 철거·보상까지 걸리는 시간이 5∼6년으로 지나치게 길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계획부터 보상까지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상비를 짧은 기간에 집중 투입해 보상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아울러 계획 입안단계부터 예정지에 대한 항공촬영 등 기록을 확보해 보상비 부풀리기를 원천적으로 막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 [Local] 영남대 한우농민사관과정 개설

    한우 전문 경영인을 양성하는 농민사관학과 학생들이 첫 입교했다.8일 영남대에 따르면 경북도가 위탁한 한우농민사관과정이 이날 개강됨에 따라 한우사육 농민 40명을 상대로 교육에 들어갔다. 교육은 매주 한 차례 강의와 실습을 중심으로 5시간씩 1년 2학기에 16주 동안 실시한다.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졸업 논문제를 도입했으며, 이를 내지 않으면 수료증을 주지 않을 방침이다. 영남대 국제관에서 열린 개강식에는 김관용 도지사와 우동기 총장, 입학생, 농업인단체 회원 및 한우클러스터 참여 농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농민사관학교는 도가 지역농업 미래를 개척하고 이끌 농업전문 경영인 양성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설치한 것으로, 교육은 8개 과정별로 나눠 대구ㆍ경북 8개 대학에 위탁해서 한다. 대학별 위탁 내용을 보면 영남대 한우를 비롯해 ▲경북대 해외연수(사과, 파프리카 분야) ▲대구대 친환경 축산 ▲안동대 양봉 ▲동양대 인삼제품 디자인ㆍ포장 ▲상주대 포도 ▲경북과학대학 농산물 가공 ▲구미1대학 시설원예 등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전북도, 亞최대 식품산업 클러스터 조성키로

    전북도가 아시아·태평양권에서 가장 큰 식품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8일 도에 따르면 오는 2012년까지 8476억원을 투입해 160만평 규모의 세계적인 식품전문단지를 조성하는 ‘식품산업 클러스터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식품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곳은 전주 근교의 완주군, 김제시, 익산시 등 3∼4곳이 검토되고 있다. 도는 이곳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입맛에 맞는 식품을 연구할 미래식품연구소를 세우고 국내외의 각종 식품기술연구소를 집중 유치해 식품산업 연구기반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최대 시장이 될 중국과 일본을 겨냥해 이들 국가와 공동으로 연구·개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대규모 식품전문단지를 조성해 세계 식품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업체와 국내 주요 업체를 대거 유치, 생산 및 유통기반을 구축하기로 했다. 유치 대상 기업은 건강기능식품과 가금육, 친환경농산물, 식품포장재 등 5개 분야에서 시장 지배력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의 CJ그룹, 하림, 삼양, 풀무원, 롯데알루미늄주식회사 등과 해외의 켈로그, 야쿠르트, 다농, 몬산토, 네슬레 등 130여개다. 또 음식문화 체험관을 건립, 도시민들의 체험관광을 유도하고 식품 전문인력 양성기관과 요리교육기관 등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식품단지에 사과와 치즈, 인삼, 복분자 등 양질의 원료를 제공할 농가도 집중 육성된다. 이와 함께 수출 활성화를 위해 단지 내에 수출전담 지원센터를 세우고 해외시장 개척을 돕기로 했다. 도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15년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최대의 식품산업 메카로 발돋움 해 연간 4조 7000억원의 매출과 10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최재용 식품산업계장은 “규모화·집적화된 혁신적 식품클러스터를 구축해 식품 및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전북의 전통적 식품문화와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9)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Ⅰ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명의 지배 아래 있던 여진족은 크게 건주, 해서, 야인의 세 종족으로 구분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했던 종족은 해서여진이었다. 해서여진은 다시 예허부(葉赫部), 하다부(哈達部), 호이파부(輝發部), 울라부(烏拉部) 등 네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졌다. 임진왜란이 벌어지던 무렵까지 가장 강한 부족은 예허부였다. 이렇게 여진족이 서로 갈라져 있던 상황 아래서 명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인 ‘이이제이(以夷制夷)’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고만고만한 여진 부족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듦으로써 패자(覇者)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1583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던 누르하치는 1589년 건주여진을 통일했다. 건주여진 내부에서 누르하치라는 ‘패자’가 등장하자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누르하치와 해서여진의 격돌로 나타났다. ●누르하치, 해서연합군을 물리치다 1593년 6월, 예허부의 지배자였던 부자이(布齊)와 나림불루(納林布祿)는 누르하치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누르하치가 불손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자이는 하다부의 지배자 멩게불루(蒙格布祿), 울라부의 지배자 만타이(萬泰), 호이파부의 지배자 바인다리(拜音達 )를 끌어들였다. 누르하치를 치기 위한 원정군에는 해서여진 뿐 아니라 몽골의 코르친(科爾沁)부족 등도 가담했다. 모두 아홉개 나라, 대략 3만 가까운 병력이 누르하치를 치기 위해 연합군을 구성했다. 누르하치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한창 뻗어 오르고 있었던 그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자카( 喀)라는 험준한 요새에 진을 쳤던 누르하치의 건주군은 지형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연합군을 효과적으로 요리했다. 이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부자이를 비롯하여 연합군 4000여명을 죽이고, 말 3000필, 갑주 1000개를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울라부의 지배자 만타이의 동생 부잔타이(布占泰)를 생포했다. 아홉개 나라의 연합군으로도 누르하치를 제압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던 몽골족 가운데서 누르하치에게 귀부(歸附)하는 종족이 나타났다. 연합군에 가담했던 코르친 부족과 다른 몽골부족 칼카부(喀爾喀部)가 누르하치에게 사신을 보내 복종을 다짐했다. 코르친과 칼카 몽골의 귀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후 몽골과 건주여진의 관계는 비록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건주여진이 더욱 성장하여 후금(後金), 청(淸)으로 변신하고, 중원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몽골과의 제휴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훗날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산하이관(山海關)을 우회하여 베이징의 명나라 황궁(皇宮)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몽골의 협조 덕분이었다. 곧 몽골 부족이 만리장성 외곽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같은 인연 때문에 명을 멸망시킨 이후 청은 이번원(理藩院)을 설치하고, 열하(熱河)에 행궁(行宮)을 두어 몽골족을 우호적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하는데 그 단초는 바로 누르하치 시절에 마련되었던 것이다. ●해서여진, 누르하치에게 손을 내밀다 해서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친 뒤부터 누르하치는 만주 전체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자신감이 넘친 누르하치는 1595년 6월, 군대를 이끌고 호이파부를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포로로 잡은 부잔타이를 주물러 울라부의 내정(內政)에까지 관여했다. 1596년 7월, 울라부에서는 내분이 일어나 만타이와 그의 아들이 피살되었다. 누르하치는 억류하고 있던 부잔타이를 송환했고, 부잔타이는 형의 뒤를 이어 울라국의 국주(國主)로 즉위했다. 누르하치에게 은혜를 입은 부잔타이는 누이 후나이를 건주여진으로 보냈고, 누르하치는 그녀를 동생 스르가치(舒爾哈齊)와 혼인시켰다. 당시 누르하치는 해서와 몽골의 여러 부족들을 공격하는 한편, 그들 부족과 혼인을 맺어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양면적인 전략을 폈다. 실제 누르하치의 첫째 부인인 나라씨(納喇氏)는 예허 출신이다. 누르하치는 16명의 부인들과의 사이에 모두 16남8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부인이 이렇게 많았던 것은 바로 혼인정책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누르하치의 세력이 커지자 해서여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1597년 예허, 울라, 하다, 호이파부는 일제히 누르하치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들이 부도했음을 사과한 뒤 우호를 다시 맺자고 요청했다. 누르하치는 느긋하게 이들과 화약(和約)을 맺었다. 바야흐로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로 떠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명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다. 명은 개입하여 누르하치를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처지가 못되었다. 바로 이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이었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던 것이다. 잠시 랴오양(遼陽), 광닝(廣寧) 등지로 물러나 있던 명군은 대거 조선으로 들어갔고, 명 조정의 관심은 온통 일본군에게 쏠렸다. 이나바 이와기치가 ‘누르하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떠벌렸던 데는 이런 까닭이 있었다. 해서여진과 화약을 맺어 여유를 얻은 누르하치는 1598년 1월,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몽골의 안출라쿠(安楚拉庫)를 공격하여 1만여에 이르는 인축(人畜)을 획득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인구도 늘고, 재물도 늘었다. 임진왜란 시기 누르하치의 행보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누르하치, 내실을 다지고 정체성을 강조하다 이미 말했듯이 누르하치는 뛰어난 군사지휘관일 뿐 아니라 탁월한 상인이기도 했다. 그는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모피와 인삼의 유통로를 장악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명나라라는 대시장(大市場)과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명 상인들을 통해 소금, 직물 등 생필품이 유입되다가 점차 은(銀)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은은 여진족 내부에서 화폐로 유통되었고, 유통경제에 눈을 떴던 누르하치는 1599년 만주 지역에서 금은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수렵과 채집 위주의 여진족 경제에 변화가 일어났고, 화폐의 확보를 위해서 주변국과의 무역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갔다. 어느 집단이나 국가든 규모가 커지고 힘이 강해지면 자의식도 따라서 커지게 마련이다. 임진왜란 무렵, 누르하치는 자신이 통일한 건주 부족을 만주(滿洲)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만주’의 어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문수(文殊)’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즉 만주는 ‘문수보살의 도(徒)’를 의미한다. 누르하치는 이제 ‘만주’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해서나 야인여진은 물론 명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어했던 것이다. 정체성을 찾고 싶은 열망은 문자(文字)를 만들려는 노력으로도 나타났다.1599년 누르하치는 만주 문자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까지 만주는, 서신을 주고받는 등의 일상생활에서는 몽골 문자를 사용했다. 명이나 조선 등과 주고받는 외교문서에서는 한문을 사용했다. 누르하치는 이같은 현실에서 몽골 문자를 토대로 만주 문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 석촌동에 남아 있는 삼전도비(三田渡碑)에 만주어, 한문, 몽골어 등 3개국 문자가 같이 쓰여져 있는 것은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났다. 일본군이 조선에서 물러나자 명군 역시 철수를 시작했다. 명은 다시 만주로 감시의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르하치로서는 ‘좋은 시절’이 끝난 것을 의미했다. 명의 압력이 누르하치에게 미칠 기미가 보이자 당장 세력판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화약을 맺은 이후 잠시 잠잠했던 하다와 예허가 누르하치에게 다시 싸움을 걸었다. 만주와 하다, 예허, 명 그리고 궁극에는 조선까지 얽힌 격변의 또 다른 막이 올랐던 것이다.
  • [인사]

    ■ 국방부 ◇서기관 승진 △총무팀 趙敬子△군수관리관실 장비팀 柳在正△감사관실 직무감찰팀 朴均泰△군사시설기획관실 시설기획팀 李圭弘△혁신기획본부 혁신기획팀 姜東柱■ 해양수산부 ◇과장 전보 △어업자원국 양식개발과 崔完鉉△대통령비서실 姜仁求■ 우정사업본부 ◇4급 전보 △부산체신청 정보통신국장 許圓錫△우정사업본부 전입 朴台熙 閔載晳■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지원부장 손충호△진흥사업〃 최경애△혁신기획〃 신숙희△심의지원부 도서만화팀장 김성만△〃 정기간행물〃 김학수△〃 외국간행물〃 장택환△진흥사업부 독서진흥〃 박용덕△〃 전략사업〃 이선구△혁신기획부 홍보기획〃 최남율△〃 경영지원〃 김진형△독서아카데미운영반장 배진석■ 국제교육진흥원 ◇승진 △서기관 박석진■ KT&G ◇전무급 전보 △마케팅부문장 이광열△생산〃 민영진△전략〃 이영태◇상무급 전보△R&D부문장 이동욱△생산부문 제조본부장 이태형△지원〃 김일종△마케팅부문 마케팅〃 함기두△〃 글로벌〃 허승오△생산부문 원료〃 유제복△영주제조창장 박강제 ◇상무보급 전보△지원본부 인재개발원장 강용탁△재무실장 김산겸△전략부문 홍보실장 이철수△남서울본부장 강희룡△북서울〃 김해성△부산〃 방형봉△대구〃 김대성△인천〃 강주원△경기〃 이상기△신탄진제조창장 김광준△인쇄〃 이재헌△김천원료공장장 정준하 ◇임원대우 전보△감사실장 이수영△전략부문 전략실장 허업△〃 CR〃 최정원△마케팅부문 마케팅본부 마케팅〃 김준기△〃 〃 브랜드〃 김창렬△〃 글로벌본부 해외사업〃 최상철△생산부문 제조본부 생산관리〃 이광훈△〃 〃 품질관리〃 유영동△〃 원료본부 원료관리〃 장재식△〃 원료본부 구매〃 민병한△R&D부문 제품개발〃 최윤주△〃 기술개발〃 박재민△〃 중앙연구원 연구기획〃 김영회△〃 〃 담배과학연구소장 이문수△〃 〃 인삼〃 도재호△〃 〃 생물자원〃 유연현△〃 〃 분석과학〃 민영근△성장사업본부 자산개발실장 최성관△〃 신사업〃 백철만△지원본부 인사〃 권봉순△〃 정보〃 이갑수△〃 스포츠〃 최규형△전남본부장 홍문봉△충남〃 최정일△원주제조창장 정태풍△광주〃 염동배△남원원료공장장 박성훈◇1급 전보△지원본부 비상계획실장 우용하△전북본부장 전준영△남서울본부 강동지사장 강만형△북서울본부 종로〃 이하형△북서울본부 북부〃 전장호△부산본부 부산진〃 류도근△인천본부 안산〃 이권성△신탄진제조창 MAC실장 이수호△원주제조창 생산〃 이용건△〃 지원〃 서석록△광주제조창 생산〃 나강윤△〃 지원〃 전충열△영주제조창 생산〃 정헌영△인쇄창 인쇄〃 전은철△전북본부 유영구△생산부문 원료본부 원료생산실 김진원△마케팅부문 글로벌본부 해외투자실장 이진희△생산부문 원료본부 원료생산〃 노선호△지원본부 인재개발원 연수〃 방광혁△신탄진제조창 생산〃 임무수△〃 지원〃 신현록△영주제조창 지원〃 윤여대△제주본부장 민병환△남서울본부 강남지사장 김현진△신탄진제조창 생산〃 임무수△전략부문 CR실(KT&G복지재단 파견) 윤영승■ 경향신문사 ◇승격 (국장)△미디어전략연구소장 조성환(부국장대우)△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이승철(차장)△편집국 정치부 이기수△〃전국부 박용근 윤희일△전략기획실 기획인사팀 심우진△제작국 제작1팀 김광만 정석모△윤전1팀 김대환 안태준△〃윤전2팀 장순택△광고마케팅국 마케팅 4팀장 박재구△스포츠칸본부 스포츠칸편집국 종합뉴스부 류원근(차장대우)△편집국 경제부 박성휴△〃산업〃 최우구 김석△〃전국〃 최인진△〃문화1〃 한윤정△〃사진부 박민규 김정근 박재찬△〃 편집1〃 김연수△경영지원실 시설관리팀 류창환△〃 업무지원팀 김태준△제작국 전산운영팀 김선중△〃제작2팀 홍성민 양영만△〃윤전1팀 서호정 정병석△〃 윤전2팀 오세동△판매국 호남팀 이광천△〃중부팀 박상열△광고마케팅국 마케팅2팀 박인수△출판본부 출판관리팀 박홍만△〃레이디경향광고팀 정인섭△〃뉴스메이커광고팀 조영수◇보직변경△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유병선△편집국 선임기자 유인화 설원태△〃국제부장 양권모△〃전국부장 박래용△〃여론독자부장 최병태△〃산업부 차장 안치용△〃문화2부 차장 최병준△출판본부 레이디경향 부장 유인경△스포츠칸본부 스포츠칸편집국 사진부장 권호욱■ 아산의료원 △정읍아산병원장 최영균△보령〃 정종기△홍천〃 박학천△보성〃 김중열△금강〃 안영락△영덕〃 김연수■ 한성디지털대 △총장 김창국△대외협력 부총장 선형기△기획처장 서승기△교무처장 장대갑△학생처장 육효창△홍보처장 조경훈
  • [업계소식-새상품·서적] 고객맞춤형 탈모관리 프로그램

    [업계소식-새상품·서적] 고객맞춤형 탈모관리 프로그램

    탈모관리전문업체 지토(zittozone.com)는 고객맞춤 선택형 탈모관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탈모 관리의 시간과 비용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담 컨설턴트와 상담을 통해 치료시간과 재정일정을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탈모 관리에 사용하는 제품은 하수오, 당귀, 꿀, 인삼, 구기자, 측백잎, 녹용 등 한방재료에서 추출한 천연성분이며 인체에 해가 없다고 회사측은 설명. (02) 547-1144.
  • 진통제값 6년새 두배↑

    진통제값 6년새 두배↑

    약값 담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약국에서 많이 찾는 진통제와 위궤양치료제 가격이 의약분업 이후 6년새 두 배 가까이 뛴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소염진통제와 우황청심원 값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의약분업 사태 당시 2000년을 100으로 했을 때 조사대상 16개 품목의 의약품 가격 지수는 112.04로 나타났다. 연평균 2% 이상씩 값이 올랐다. 그러나 품목별로 보면 특정 품목의 가격이 두드러지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통약이나 생리통약 등이 포함된 진통제 가격은 2000년 이후 무려 92.26%나 상승,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해마다 15.37%꼴로 상승한 셈이다. 소화성위궤양약(위궤양치료제) 가격도 같은 기간 84.96%나 뛰었다. 이어 소화제 41.92%, 인삼 38.97%가 각각 올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진통제 가격은 의약분업 실시 전 6년 동안 1.07% 하락했었다. 소화성궤양약도 11.8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정장제(유산균제재)는 2000년 이후 23.28%, 피로회복제는 22.93%, 혼합비타민제는 21.21%, 감기약은 16.32% 올라 의약품 전체의 가격 상승 평균치를 웃돌았다. 이 밖에 피부질환제는 7.16%가 올랐다. 반면 소염진통제는 13.49%, 우황청심원은 0.46%가 각각 하락해 대조를 보였다. 이 밖에 2005년부터 조사 대상에 포함된 조제약과 진해거담제는 각각 가격 상승률이 0.9%와 1.8%로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한방약과 건강기능식품도 가격이 그대로다. 통계청 관계자는 “진통제와 위궤양치료제의 경우 의사의 처방전과 상관 없이 약국에서 판매되고, 묶음 단위로 소비되는 점이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면서 “생활 패턴 변화에 따른 관련 질병의 증가도 약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이후 전체 소비자물가는 20.43% 올랐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 충남(忠南) 금산(錦山)군의 어떤 외딴집에서 일어났다. 17살짜리 형수와 19살짜리 시동생이 28살의 친형을 죽여놓고 그 시체옆에서 또 한번 불륜의 정을 통했다. 형수아가씨는 결혼1개월도 못되어 시동생과 패륜에 빠지고 넉달만에 남편을 공모살인 한 뒤 보따리를 싸들고 줄행랑을 쳤다가 드디어는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난한 신혼에 짜증내자 그때마다 시동생이 위로 형수 김정임여인(가명·17)은 전북 정읍(井邑)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밑에서 자랐다. 3년전부터 전주, 광주 등지에서 식모살이를 해오다가 서모도 세상을 떠나자 식모살이를 그만두고 지난 1월20일쯤 서외삼촌 되는 전복남씨(가명·38·충남 금산군)집에 들른 것이 사연의 실마리였다. 전씨는 2월초순 같은 마을에 사는 박윤직씨(가명·28)와 생질녀 김여인과의 혼담을 진행시켜 『두 집이 가난하니 서로 결혼시켜 알뜰히 살도록 해주자』고 지난 2월24일 약혼식, 이틀 뒤인 26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신랑 박씨는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젊은 신부에 마음이 온통 쏠려 3만원의 이잣돈과 장리쌀 2가마를 누이인 박정숙 여인(가명·32)을 통해 얻어다가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축복을 보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이들 부부는 신랑집인 이 마을 맨끝 산마루집 흙담 2간의 아랫방에 신방을 차리고 첫날밤을 즐겼다. 『내 비록 국민학교 조차도 못다니고 가난하지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 젊은 몸뚱이니까 밥은 안 굶겨. 당신만은 꼭 행복하게 해줄께…』 귀엣말로 속삭이는 남편에게 김여인은 『한번 재미있게 살아보더라고 잉! 이몸도 식모살이 하다가 시집온게 참 재밌구만!』하고 신아나서 좋아했다. 그런데 17살짜리 마누라는 싫증을 너무 빨리 느꼈다. 이유는 남편이 촌스럽다는 것. 재산이라고는 겨우 인삼밭 3간(약50평) 밖에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하고 있는 박씨의 가정에 대해 도시에서 잘 사는 집 식모살이라도 해 본 김여인은 촌스럽게 생긴 남편 박씨와의 시집살림에 며칠이 안가 싫증을 느꼈다. TV도 없고 전화도 없다. 설멋이나마 눈에 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10일이 지날 무렵부터는 남편에게 『촌사람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게 됐다. 이 때마다 친시동생인 박성직군(가명·19)이 17살짜리 형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곤 했다. 패륜은 우연히 시작되고 현장들키자 살해를 공모 결혼한지 만1개월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지난 3월25일 아침에도 사소한 일로 김여인과 박씨는 언쟁을 한 뒤 박씨는 집을 나가 마을로 갔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 홍여인(51)과 13살 된 시누이는 인삼밭에 가고없는 낮 4시쯤. 이날따라 봄 기운은 고사하고 매섭게 추운 날씨였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박씨를 비롯한 5식구중 3식구가 집을 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형수인 김여인과 시동생인 박군 둘이만-. 형이 결혼한 뒤부터 박군은 거의 매일 저녁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간 흙담집 얄팍한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형내외의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 나올때마다 박군은 못견디게 몸부림쳤었다. 이 날 낮에도 아랫목 이불속에서 간 밤의 야릇한 숨소리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형수인 김여인이 부엌일을 끝내고 박군이 누워있는 이불속으로 몸을 녹이려 파고든 것이 불륜의 시초. 박군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형수인 김여인을 부둥켜안았고, 김여인도 그만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는데다 시동생 박군이 항상 자기 편에서 두둔을 해주곤 했기에 호감이 가던중 연령으로도 10여살 위인 남편보다 홀가분한 시동생의 품에 손쉽게 파고들고 말았다. 이들의 불륜은 거의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식구들이 일하러 가거나 마을을 간 틈을 타 벼락같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인삼밭이 띄엄띄엄 있는 뒷산으로까지 장소를 옮겨 가면서 육체의 향락을 즐겼다. 그러던 지난 6월5일 새벽 4시쯤. 논물을 보러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시동생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가 그만 돌아온 남편에게 2개월10일간이나 비밀리에 지속해 온 부정의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이 날부터 가정불화는 더욱 심해졌고, 겨우 빚까지 얻어 맞아들인 아내를 쫓아버리자니 가난한 살림에 새로 장가를 갈 수도 없는 박씨는 부인과 함께 딴 집으로 이사를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정이 남편에게 탄로난 김여인은 그날부터 남편을 죽일 결심을 하고 그 방법을 곰곰 생각하게 됐으며, 시동생인 박군과도 의논이 됐다. 박군을 시켜 금산장날인 6월12일 읍내 모농약점에서 15원을 주고 극약 한알을 샀다. 나흘뒤인 15일 남의 집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 두어잔을 먹고 울적해진 박씨는 같은 마을에 있는 누이 박정숙여인 집을 찾아가 『내일 방을 얻어 이사를 갈테니 독 2개와 잔그릇 몇개만 장만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16일 상오 0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지 약 30분뒤 아내 김여인이 갖다주는 극약이 든 냉수를 아무 의심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날밤 시어머니 홍여인은 13살된 시누이와 인삼밭을 지키러 나가고 없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박씨를 동생인 박군이 준비했던 막대기로 이마를 내리쳤다. 머리가 깨진 박씨는 약물중독에 겹쳐 그 자리에 쓰러져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채 숨지고 말았다. 죽여놓고 자연사를 위장 장례 치르고 도망쳤으나 박윤직씨를 죽이는데 성공한 이들은 자연사를 가장하기 위해 숨진 박씨를 마당으로 굴러뜨려 얼굴에 상처를 입게 하고 다시 방으로 끌어들여 잔인한 살인연극을 끝냈다. 박군은 이 날 새벽4시30분쯤 동이 트자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누이집으로 달려가 『형이 소변보러 간다고 밖에 나가다가 넘어져 죽었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여인이 허겁지겁 뛰어 갔으나 이미 빳빳이 굳은 시체. 일단 자연사로 넘겨 날이 밝자 약 5백m 떨어진 마을뒤 밭에다 시체를 매장해버렸다. 이것으로 일단 사건은 끝났으나 매장을 한 다음날인 17일낮 11시쯤 김여인과 박군은 『남편과 형이 죽은 집에서는 살기 싫다』는 구실로 옷가지를 싸들고 중매를 선 전씨집에 들러 『집을 나간다』고 전한 뒤 자취를 감추자 약간의 의심을 품었던 전씨는 박윤직씨의 사인에 부쩍 의심이 짙어졌다. 박씨 어머니 홍여인으로부터 이와같은 사실을 들은 박씨의 6촌형 박모씨는 홍여인과 함께 경찰의 문을 두드려 박씨의 사인이 이상하다고 신고, 금산 경찰은 연고지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하여 김연인과 박군을 긴급수배했다. 박군과 김여인은 금산읍 모하숙에서 이틀동안 단꿈(?)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자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박의 고종사촌 형인 황모씨(45)집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이들은 경찰앞에서 박씨가 숨지고 난 다음 시체옆에서 『성교를 했다』고 진술하고 『약간 겁은 났지만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산=김앙섭(金昴燮)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영농현장 ‘특화사업 도우미’ 떴다

    “농업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드립니다.”농촌진흥청이 운영하고 있는 특화사업 연구관들이 영농 현장 애로사항의 새로운 해결사로 등장하고 있다. 19일 농진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농촌진흥기관 공무원, 대학 교수, 유통업체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화사업연구관들은 지역 특화품목을 개발하고 가공에서 유통 과정까지 참여하면서 지난해까지 1100억원의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지난해에도 품목별 40개 사업단,550명이 3792개 농가를 대상으로 농업기술 자문활동을 전개해 농업인의 호응을 얻었다. 재배 전문가과 육종 전문가, 화훼 디자인 전문가, 유통전문가 등 13명으로 구성된 선인장 특화사업단은 선인장 재배용기를 개발, 인건비를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선인장유통보급협회를 설립해 통신판매로 유통비용을 대폭 절감, 지난해에만 내수시장을 30억원 이상 확대시켰다. 인삼 특화사업단은 미생물 농약에 의한 인삼 병 방제와 토양소독을 통한 연작 문제를 해결했고 녹차 사업단은 녹차의 피부미용, 다이어트 효능을 상품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농업인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농진청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함께하는 농업기술박람회’를 21일 개최, 모든 농업인들에게 특화사업단의 활동과 이용 방법을 전파할 예정이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쌀대신 고구마”

    농업 침체로 영농교육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지자체가 늘고 있는 가운데 강화군이 최근 실시한 영농교육에 농업인들이 폭주해 눈길을 끌고 있다. 14일 강화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지난 1일 실시된 ‘속노랑고구마반’ 영농교육에는 계획인원 90명에 250여명이 참가했다.이러한 예상 밖의 인원초과로 교육장을 대강당으로 변경하고 교육자재를 이동하는 등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또 2일 열린 ‘친환경농업’ 과정은 계획인원 80명에 180여명이,8일 ‘포도반’ 교육에는 80명 계획에 180여명이,9일 ‘인삼반’ 교육에는 80명 계획에 190여명이 참석하는 등 대성황을 이루었다. 날이 갈수록 영농교육 참가자들이 줄고 있는 타 시·군의 일반적인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같은 현상은 강화군이 전통적인 특산품인 쌀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삼·포도·순무·고구마 등 특화작목 개발과 교육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모(43·강화읍 갑곶리)씨는 “농업인들의 교육 열기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특화된 농업이면 농업시장이 개방돼도 승부를 걸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2일 마감된 강화농업대학과 대학원 신입생 원서접수 결과 농업대학은 원예과 등 120명 모집에 209명이, 대학원은 벤처농업과 등 40명 모집에 70명이 각각 지원해 예년보다 높은 1.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올해 2회 신입생을 선발하는 강화농업대학원은 지난 7일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에 대응해 지역농업의 나갈 방향 등에 대한 논술시험을 실시했다. 논술시험을 거쳐 교육생을 선발하는 곳은 전국에서 강화군이 유일하다. 강화군농업대학 학장인 안덕수 군수는 “지역농업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농업시장 개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역량을 동원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강화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CEO칼럼] 이변의 2007 세계경제포럼/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CEO칼럼] 이변의 2007 세계경제포럼/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매년 1월말 눈 속에 파묻힌 스위스의 산간마을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 회의)은 내게 세계적 메가트렌드 파악과 지식 재충전을 위한 최고의 ‘윈터 스쿨(winter school)’이다. 흰 눈에 덮인 산봉우리마다 눈사태를 막기 위한 검정색 방책들이 마치 인삼밭 장막처럼 줄줄이 늘어서 있고, 수십m씩 곧바르게 자란 나무 숲 사이로 긴 슬로프의 스키장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다보스의 풍경은 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올해 다보스의 모습은 달랐다. 첫날 다보스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100년만의 이상 난동현상이 스위스의 심산유곡인 다보스에서마저 큰 이변을 낳은 것이었다. 둘째날이 되어서야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예전의 다보스는 아니었다. 올해 대 주제는 ‘힘의 이동’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에서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으로 급히 이동하는 힘, 세계화에 따른 고용불안 및 소득 불균형에 대해 불만이 누적되는 중산층들의 힘, 지정학적으로는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자원 보유국들의 힘, 종합적 정보보유 집단의 힘, 경영측면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 제조업의 힘을 능가하는 유통 고객들의 힘 등 12가지 힘의 이동 현상과 대처 방안을 논의하려는 것이 본래 주최측의 의도였다. 그런데 12개 중요과제의 중요성을 매기는 전자투표 과정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기후변화 방지에 대한 대책 등을 과거에 늘 다뤄왔더라도,2007년 주요 과제에서 빠진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사전 모임에 참석한 700여명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경제인과 교수, 정부 인사가 75% 이상을 차지하는 모임에서 환경이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원래 준비됐던 12개 분야를 10개로 통합·재편하고, 기후 변화를 11번째 중요한 힘의 이동 과제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게 마지막 이변은 아니었다.11개 과제 중 어느 것에 우리 지구촌 지도자들이 하루바삐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느냐를 놓고 전자투표에 부친 결과, 기후변화방지가 55%로 1위였다. 소득불균형 극복은 12%로 2위가 됐다. 환경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경제적 관심을 압도한 것이었다. 개막식날 기조연설은 정부개혁 및 일자리 창출의 영웅이 되어 돌아온 독일의 여성 총리 엥겔라 메르켈이 했다. 메르켈 총리가 기후변화방지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할 때 지난 10년동안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세계적 노력에 냉담했던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양원 합동연설을 통해 앞으로 10년 내에 에너지 사용을 20% 감축할 것을 선언했다. 세계는 이제 하나의 방향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멕시코·남아공·베트남·동유럽 신흥공업국 등은 연 8∼10%대의 초고속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세계적 변화의 한 가운데 다보스에서 한국은 보이지 않았다.200개가 넘는 공식 세션(session)이나 50개가 넘은 비공식 세션에서조차 한국은 잊혀져 가는 듯 보였다. 2008년 세계경제포럼의 아시아 지역 경제인 정상회의는 서울에서 열릴 수 있게 됐다. 우리 경제가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사회친화적이 되고, 우리 한국보다 50배나 큰 세계 시장에 우리 한국의 기업들과 젊은이들이 더 많이 진출해 우리 경제가 질적인 참 성장을 해나가고 규모도 두 배, 세 배 커지기를 기원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 [특허정책 2題] ‘명품 특산물’ 옷 입는다

    ‘춘천 막국수, 주문진 오징어, 원주 한지….’지역 특산품들이 등록상표로 되면 ‘지리적 표시 상표’라고 부른다. 지리적 표시 상표제는 2005년 7월 도입됐다.1년 반이 지난 현재 등록된 상표는 ‘장흥표고버섯’이 유일하다. 그래서 특허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특산물의 명품화 전략에 손을 잡았다. 지리적 표시 상표제는 생산자와 가공자 단체만 등록 가능하다. 물론 1개 지역에 1개 단체표장만 등록할 수 있다. 때문에 대표성 논란도 제기된다. 특허청은 올해 지자체로부터 올해 신청된 21개 지역 특산품 중 17개 품목을 권리화 지원대상으로 선정했다. 상표로 등록할 수 있도록 디자인 개발과 홍보 마케팅도 지원한다. 지자체는 등록상표의 주체가 될 단체 설립과 판로 지원 등에 나선다. 봉평 메밀, 태백산 한우, 당진초락도 약쑥, 서산 생강, 증편 인삼, 부산 대저토마토, 안동 사과, 함양 옻, 창원 단감, 제주 당근, 제주 녹차 등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국내 첫 담배소송 ‘흡연자 패소’] 담배소송 진행일지

    ●1999.9.6 폐암환자 김모씨 및 가족 등 5명,KT&G(옛 담배인삼공사)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 제기●12.12 폐암환자 6명 및 가족 등 31명 손배 소송 ●2000.3.31 원고 이모씨 폐암으로 첫 사망●2003.5.9 피고측에서 원고측 정보공개처분 받아들이지 않아 중단됐던 담배소송 재판 2년만에 재개●2004.4.18 법원,KT&G 중앙연구원 현장 검증●11.5 서울대병원 법원에 “담배로 인한 폐암 추정되나 단정 못한다.”는 감정서 제출●11.11 원고측 “서울대병원 감정서를 피고측에만 유리하게 요약해 보도자료 냈다.”며 법관기피신청●12.6 담당 재판부 요청에 따라 재판부 변경●2005.4.26 원고측 재판부에 조정신청●5.10 폐암으로 숨진 박모씨 유가족 KT&G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6.27 원고·피고 조정 결렬●2006.12.21 변론 종결●2007.1.25 서울중앙지법, 원고패소 판결
  • 담배‘무죄’

    담배‘무죄’

    만 7년 이상 끌어온 국내 첫 ‘담배소송’에서 재판부가 피고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측이 담배와 폐암간의 상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원고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하겠다고 밝혀 항소심 공방이 예상된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감안하면 이번 민사소송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조경란)는 25일 폐암 환자와 가족 등 31명이 “흡연으로 인한 폐암 발병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김모씨 등 5명이 같은 취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담배소송 2건에 대해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역학적 인과관계’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여 다른 요인들이 모두 같다는 가정 아래 추출한 특정 요인과 질병 사이의 통계적 관련성이므로, 이를 특정 개인의 구체적 질병 발생의 원인을 규명하는 개별적 인과관계에 직접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사안의 경우 제조물 책임이나 공해 소송처럼 원고측의 입증책임이 완화되는 특별한 사례에 해당한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 “담배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돼 생산된 제품이라는 점 등의 이유로 제조물책임 법리를 적용할 제품이 아니며, 이 소송은 공해소송처럼 모두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안이 아니다.”며 일반 손배소와 같이 원고측이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담배소송은 폐암 환자 김모씨와 가족 등 31명이 1999년 12월 “30년 이상의 흡연으로 폐암이 유발됐으며 KT&G는 불충분한 경고 등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3억 700만원의 배상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 여진족과 만주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 여진족과 만주Ⅱ

    청나라의 시조 누르하치가 장차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대격변의 첫걸음을 내디딘 해는 1583년이었다. 이 해부터 시작해 1626년 사망할 때까지 누르하치의 일생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전쟁은 처음에는 여진의 여러 부족을 아우르는 단계에서 출발해 나중에는 직접 명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누르하치는 왜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는가? 그리고 명은 왜 누르하치가 댕겼던 불씨에 휘말려 끝내 자신의 온몸을 태우고 말았는가? ●명, 건주·해서·야인 여진을 주무르다 명나라 시절 만주의 여진족은 거주지역에 따라 크게 건주(建州), 해서(海西), 야인(野人) 여진으로 구분되었다. 누르하치를 배출한 건주여진은 주로 요동에 가까운 조선의 압록강 너머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일찍부터 농경에 종사했다. 해서여진은 과거 금을 세웠던 아구다의 직계로서 오늘날 하얼빈 부근과 송화강 유역에 흩어져 살았다. 야인여진은 송화강 북방, 흑룡강 남쪽에 거주했다. 명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데다 주로 수렵에 종사했기 때문에 가장 미개한 종족으로 취급되었다. 여진족 내부에서 아구다와 같은 패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명나라는 정치적 통제 이외에도 경제적 통제 수단을 교묘히 활용했다. 당시까지 여진족들은 곡물을 비롯해 소금, 포목, 철제 농기구 등 생필품을 자급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산물인 말(馬), 모피, 인삼, 진주 등을 주고 명나라 상인들로부터 생필품을 구입했다. 명 조정은 상인들끼리 교역하는 장소를 엄격히 제한했을 뿐 아니라, 명나라 황제 명의의 칙서(勅書:교역허가증)를 소지한 여진족 유력자에 한해서만 교역을 허가했다. 명이 정한 규칙을 위반하거나, 명의 권위에 도전하려 할 경우 칙서는 가차없이 회수되었고 교역은 금지되었다. 생필품 공급이라는 ‘목줄’을 틀어쥠으로써 여진족들을 길들이려는, 명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하지만 여진족의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수단이었다. 그같은 명의 지배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인물이 건주여진 출신의 왕고(王)였다. 누르하치의 외조부로 알려진 왕고는 1574년, 부족의 병력을 이끌고 랴오양과 선양을 공격했다. 명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자신에게 교역을 금지시킨 데 따른 반감을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다. 하지만 3000여명에 불과했던 왕고의 병력은 6만명에 이르는 명의 진압군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왕고는 겨우 탈출해 해서여진의 하다부(哈達部)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하다부는 왕고를 포박하여 명군 사령관 이성량(李成梁)에게 넘겼고, 왕고는 다시 베이징으로 압송돼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값으로 얻은 기반 이성량이 왕고를 진압할 무렵, 누르하치의 조부 교창가(覺昌安)와 부친 타쿠시(塔克世)는 이성량의 편에 서서 명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타쿠시는 장인인 왕고를 진압하는 명군의 작전에 협조했고, 그 대가로 명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받기도 했다. 1583년, 더 참혹한 비극이 일어났다. 자신의 부친을 죽게 만들었던 하다부와 명군에 대해 원한을 품었던 왕고의 아들 아타이(阿台)가 복수에 나섰던 것이다. 아타이는 하다부와 대립했던 해서여진의 예헤부(葉赫部) 등을 끌어들여 하다부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성량이 걸림돌이었다. 이성량은 교창가와 타쿠시, 누르하치까지 이끌고 아타이가 쫓겨 들어간 고륵채(古勒寨)성을 향해 총공격을 감행했다. 성이 거의 함락될 무렵, 교창가와 타쿠시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아타이의 아내가 교창가의 손녀(누르하치의 백부의 딸, 누르하치의 사촌)였기 때문에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아타이에게 항복을 권유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타이는 항복을 거부하다가 부하에게 피살되었고, 성은 결국 함락되었다. 이윽고 명군은 성안에서 대학살을 자행했는데, 교창가 부자도 그 와중에 적으로 오인되어 피살되었다. 눈앞에서 조부와 부친이 피살되는 장면을 목도했던 누르하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명은 이제 그에게 ‘만세불공의 원수’가 되었다. 누르하치가 훗날 명에 선전포고하면서 일곱 가지 원한(七大恨)을 내세웠는데, 그 가운데 명군에 의한 부조(父祖)의 피살을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쨌든 난감해진 것은 이성량과 명 조정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의 피살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누르하치에게 칙서 30통과 말 30필을 배상금으로 주었다. 동시에 그에게 타쿠시가 명으로부터 받았던 도독(都督) 직함을 물려주었다. 이윽고 1583년 5월, 누르하치는 부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 대상은 명이 아니라, 명에게 협조적이었던 주변의 건주여진 부족이었다. 당시 스물다섯의 약관에 불과했던 누르하치에게 명은 아직 상대하기가 몹시 버거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명으로부터 받은 칙서 30통은 군사활동에 필요한 자금줄이 되었다. 칙서를 많이 가진 누르하치에게로 명 상인들과 무역을 원하는 여진의 인삼, 모피, 진주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인삼, 모피, 진주의 유통로를 장악했으며 무역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이제 군사 지휘관인 동시에 확실한 기반을 지닌 거상(巨商)이기도 했다. 1589년, 누르하치는 마침내 건주여진 부족 전체를 통일했다. 누르하치에게서 ‘아구다’의 재림(再臨) 조짐을 간파한 이성량은 경악했다. 그는 명 조정에 건의하여 누르하치에게 용호장군(龍虎將軍)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그를 명의 관직체계 속으로 끌어들여 견제하기 위한 응급수단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채수(債帥)’ 이성량 이성량(1526∼1618)은 임진왜란 때 명군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온 이여송(李如松)의 부친이다. 그의 조상은 본래 조선 출신으로, 명나라 초기에 요동으로 건너가 철령(鐵嶺)에 정착했다. 뒤에 군공을 세워 철령위 지휘첨사(指揮僉使)가 되었고 40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는 1570년부터 1591년까지 만주에서 여진과 몽골 세력을 견제하는 명의 최고 군사책임자를 역임했다. 승패가 무상하고, 그에 따른 상벌이 엄격할 수밖에 없는 무장의 세계에서 무려 22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역사는 이성량을 ‘채수(債帥)’라고 부른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조정의 고관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그들의 비호 아래 자리를 유지하는 장수를 말한다. 이성량은 누르하치와 결탁하여 만주에서 얻은 막대한 양의 모피와 진주를 밑천으로 명 조정의 중신들을 구워삶았다. 그 결과 그의 패전은 ‘없었던 일’이 되고, 시원찮은 승전은 ‘대첩(大捷)’으로 둔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들 이여백(李如柏)은 누르하치 동생의 딸을 첩으로 맞이했다. 요동에서는 ‘오랑캐 추장의 사위가 요동을 지킨다.’는 비아냥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권력과 부를 한손에 거머쥔 이성량이 누르하치를 제대로 견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장기집권’으로 타락하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부패한 명 조정의 중신들이 있었으며, 다시 그 뒤에는 태만하고 무능한 만력(萬曆) 황제가 있었다. 이같은 배경에서 1583년은 역사적인 해가 되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이성량의 군대가 좀더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누르하치의 부조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고, 누르하치가 복수심에 불타 명과의 전쟁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궁극에는 조선도 병자호란과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며, 명·청 교체와 같은 대격변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는 것이지만 누르하치와 이성량의 행보를 보면 문득 ‘나비효과’라는 용어가 떠오른다.‘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한달 후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물리학의 비유 말이다. 사소해 보이는 인간의 행동 하나가 엄청난 파국으로 이어졌던 역사의 거울 앞에서 문득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Local] 홍천 농산물 심벌 도입

    강원도 홍천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에 홍천의 순우리말인 ‘너브내’라는 통일 심벌이 사용된다. 심벌 도형문안은 홍천 9경중 하나인 금학산에서 바라본 태극문양의 홍천강을 모티브로 삼았다. 너브내 심벌은 홍천지역에서 생산되는 홍천강수라쌀, 홍천늘푸름한우, 홍천찰옥수수,6년근인삼, 홍천잣 등 5대명품은 물론 콩, 오이, 호박 등 거의 모든 농산물에 사용될 전망이다. 여기에 연내에 도형상표까지 등록되면 너브내 문자에 그림까지 결들인 지역 농산물을 대변하는 ‘홍천 농산물 심벌’이 독점 사용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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