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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청와대회동 무엇을 논의하나

    ◎“「총체적 난국」 타결”… 공동대처 협의/당내분 정리ㆍ노사문제등에 강력 대응/경제등 난제산적,처방엔 어려움 많아 7일하오 청와대에서 열리는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ㆍ박태준최고위원대행 등 민자당수뇌 4인회동은 전당대회준비및 당결속다짐등 당무논의를 넘어서 정부ㆍ여당이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한 현 시국수습방안을 폭넓게 협의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의 정치ㆍ경제ㆍ노사ㆍ방송 등 국정 모든 분야가 처한 어려움을 고려할때 이날 청와대회동에서 난국을 한꺼번에 풀 수 있는 묘책이 제시되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최근 국정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큰 요인중의 하나가 민자당의 내분과 정치력부재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고 보면 집권여당의 수뇌 4인이 난국해결에 발벗고 나서겠다는 공통인식을 내외에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호전의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ㆍ여당은 올초 3당통합을 이룩하면서 이같은 정계개편이야말로 경제를 비롯해 우리가 처한 위기국면을 해소하는 길이었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통합이후 민자당내부는 「되는 것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삐거덕거렸다. 기존 여당의 순응적 체질에 불만을 품은 민주계는 끊임없이 「도전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당내 갈등양상이 첨예하게 표출됐다. 이에 따라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그 어느 때에 비해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는가 하면 야당이나 재야에서는 「거국내각구성」 「정권퇴진」등 극한요구를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아래 정부ㆍ여당의 수뇌부는 KBS사태등 방송문제,현대중공업파업등 노동문제,물가ㆍ증시ㆍ토지투기 등 경제ㆍ사회 전반의제문제에 대한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했으며 청와대 4자회동이 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 이라는 관측이다. 청와대 4자회동에서 시국수습을 위한 공통인식이 도출되고 포괄적으로나마 난국극복대책이 제시된다면 일반국민의 정권에 대한 신뢰도가 회복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ㆍ여당의 위기관리능력이 의심받게돼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미상태로 빠져들 우려마저 없지 않다. 이번 청와대 4자회동의 성패의 관건은 김영삼최고위원의 태도에 달렸다고 보여진다. 김최고위원은 그동안 민자당내 민정ㆍ공화계,그리고 청와대와는 국정운영방법에 있어 상당한 시각차를 나타냈다. 내부적으로 탈당의사까지 내비췄던 것으로 알려진 지난번 박철언파동때보다는 김최고위원의 심기가 최근 많이 누그러지긴 했으나 아직도 앙금이 완전히 가신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지난 2일 노재봉비서실장을 상도동 김최고위원자택에 파견,KBS사태등을 둘러싼 김최고위원의 자제와 이해를 당부했으며 이때 김최고위원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청와대측에 요청하고 있는 사항은 ▲재벌의 부동산 투기근절 ▲KBS사태에 대한 정부입장 재검토 ▲안기부장ㆍ내무부장관 등의 경질,그리고 전당대회이후 민심수습을 위한 대규모 당직개편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측은 이중 부동산투기에 대해서는 김최고위원의 의견을 대폭 수용,정부가 앞장서 재벌들의 토지투기를 막기 위한 고단위 처방을 강구중에 있으며 청와대회동에서도 이를 재확인하게 되리라 전망된다. 그러나 KBS사태와 현대중공업분규등 노사문제에 대해서는 김최고위원이 정부측 입장에 동조토록 「설득」 당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ㆍ여당의 불법분규에 대한 강경대처의지가 천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측은 특히 김최고위원이 안기부장ㆍ내무부장관의 경질등 대통령의 통치권을 훼손할 수 있는 요구에 대한 목소리를 자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청와대회동시 당직개편을 포함한 인사문제는 9일로 예정된 창당전당대회이후 논의하자는 선에서 마무리짓겠다는 생각이다.
  • 발설진원과 각계파의 대응 움직임

    ◎민자 당권파동의 새불씨 「합의각서설」/당권장악 음모ㆍ통치권도전 간주 민정계/노골적 불쾌감… 전면전확산 막르려 자제 공화계/비서진들,“전혀 모른다”못마땅한 반응 청와대/겉으론 부인… 당헌반영 추진채비 민주계 민자당내 민주계가 제기한 청와대 「합의각서설」을 둘러싸고 각계파간에 의견이 엇갈려 파문이 일고있다. 3당합당당시 「92년이후 김영삼총재」로 합의한 문서가 3부로 작성돼 노태우대통령,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에게 보관돼 있다는 것이 「합의각서설」의 내용이다. 각서의 유무를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당헌개정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서 터져나온 각서문제는 민정계가 즉각 거부반응을 보이며 해명을 요구하고 나서 파장이 확산될 전망이다. ○…3당합당이 공표된 직후부터 정가에는 당권문제는 물론 향후 대권구도에 관한 어떤 종류의 「밀약」이 있을것으로 점쳐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최고위층간의 밀약은 이름그대로 비밀이 새나오기 어려워 높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야기다. ○김동영총무가 공개 최근 각서설을 처음 공개한 것은 민주계의 김동영총무. 김총무는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현안이 되고있는 대표최고위원과 다른 최고위원과의 관계에 대해 『협의든 합의든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총무는 이어 『합당당시 청와대 회담때 세분이 이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규정해 만든 문서를 1통씩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처음으로 청와대 합의각서설을 발설했다. 민주계는 이날밤 「이 각서에 92년 14대총선이후 김영삼최고위원이 총재가 되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고 이는 사실상 대권후보를 약속한 뜻」이라는 해석까지 흘렸다. 「92년이후 김영삼총재」로 합의한 문서가 실제로 있다면 이는 단순히 당권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90년대 한국정치 전체에 심대한 파장을 미칠 중대 사안임에 틀림없다. 내각제 개헌에 대한 언급없이 민자당의 총재를 김영삼최고위원으로 못박았다면 내각제 실현여부에 상관없이 노대통령의 통치권 누수현상은 불가피해지고 권력의 중심이 김영삼최고위원에게 옮아가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민정계나 정가소식통들은 정치생명을 건 합당을 하는 마당에 어떤 형태의 약속은 있었을 것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민주계의 주장처럼 개헌문제에 대한 언급없이 총재를 누가 맡는다는 식의 합의각서가 교환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들이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다음 총선후에 김영삼최고위원이 총재를 맡도록 하라는 덕담수준의 「언질」을 민주계가 확대해석했거나 ▲내각제 개헌 등 전제들이 포함된 내용의 회의록 형태의 문서가 보관돼 있고 이중에서 「총재」부분만 빼서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 민주계 인사들은 『92년 이후의 약속을 받아내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합의각서의 실체에 대해서는 공언하지 못하고 있다. ○의총ㆍ당무회의 요구 이런 상태에서 합의각서설을 유포한 것은 어차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당을 깰 생각을 하기 전에는 뒷이야기를 명백히 밝히기 어려운 만큼 민주계가 선수를 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합의 각서설」이 유포되면서 민정계의원들은이를 민주계가 김영삼최고위원의 차기대권 장악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음모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대통령 통치권훼손」차원에서 공동대응하려는 움직임. 이에따라 이종찬ㆍ이한동ㆍ심명보ㆍ이춘구ㆍ김영구ㆍ이치호의원등 민정계 의원 6인은 24일 상하오에 걸쳐 비공식접촉을 갖고 민정계차원의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각서설」의 진위를 규명하기 위한 의총이나 당무회의의 소집을 요구. 이같은 비주류중진모임과는 별도로 오한구ㆍ김용태ㆍ이치호ㆍ이진우의원등 TK(대구ㆍ경북)중진의원등도 25일 낮 모임을 갖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 오의원은 『노태우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아있는 이 시점에 차기대권을 운운하는 민주계의 작태는 통치권에 대한 정면도전행위로 규정할 수 밖에 없다』면서 『국익이나 당의 장래보다 계파의 이해를 앞세우는 이같은 행위는 「해당ㆍ반국가적」행위로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 한편 최근의 박철언 전정무장관의 발언파문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모임을 구성,당지도부의 당운영자세를비판하고 나섰던 민정계의 김중위ㆍ최재욱의원등 초ㆍ재선의원 30여명도 25일 상오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이번 사태의 진상규명 촉구와 함께 차기대권주자선정방법등 당운영방안에 대해 건의안을 결의,당지도부에 제출할 예정. ○…민주계는 표면적으로는 언급을 삼가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이같은 밀약의 가능성을 부인치 않으면서 향후파문과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는 모습. ○계산된 수순일수도 김영삼최고위원은 『모른다』고 한마디로 일축했으나 김덕용의원은 『각서까지야 썼겠느냐』면서도 『합의각서형식은 아니지만 노태우대통령이 물러나면 김영삼최고위원이 당권을 맡는다는 내용은 세분최고위원 사이에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같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듯한 인상. 한편 지난 23일 각서설을 처음 흘렸던 김동영총무는 『각서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부인하는 반면 『각서가 있다면 마땅히 당헌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같은 합의각서내용유포가 민주계의 전략상혼선이 아니면 교묘한 언론플레이가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 민주계는 그러나 밀약설을 당헌에 반영해야한다는 주장을 펴면서도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반영해야 하느냐에는 함구하고 있는 상태. ○조직적인 대응 삼가 ○…공화계 역시 민주계의 합의각서 운운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으나 지난 「박철언파동」에 이어 2라운드 민정ㆍ민주계파간 싸움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입장 등을 고려해 조직적인 대응은 자제. 김종필최고위원은 합의각서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런게 어디 있느냐. 있다고 한 사람에게 보여달라고 해야지 나한테 보여달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별소리 다 물어 봐도 나는 노코멘트다』며 짜증스런 표정. 김최고위원은 이어 『이제 나를 취재대상으로 삼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며 『나는 당사나 잘 지키고 할일만 할 것이다』라며 공화계의 독자적 모임 등은 자제할 것임을 시사. ○…청와대측은 「밀약설」이 나오자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한결같이 부인하면서 매우 못마땅한 반응. 3당합당 당시 청와대 정치특보였던 노재봉비서실장은 『당시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며 『그같은 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일축. 최창윤 정무수석비서관도 『전혀 모른다』며 『추측도 할 수 없다』고 부언. 최수석은 노대통령에게 「밀약설」보도를 보고했느냐는 물음에 『보고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하고 『대통령이 오늘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이에 관한 얘기가 한마디도 없었다』고 설명. 청와대의 관계비서관들은 『당시 통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얘기가 오갈 수 있으나 그같은 문제를 명문화할 수 있는 사안인가』라고 반문하며 의아해하는 표정들. 다른 관계자는 『한쪽에서 자꾸 지도체제문제를 흘리는 모양인데 어떤 저의가 있는게 아니냐』며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수파가 세불리를 의식해 분위기를 흔들려는 것은 야당식 발상』이라고 성토.
  • 김영삼­김종필위원 4시간30분 대좌 안팎

    ◎내분진화엔 일치…방법엔 이견/냉각기간 갖게 당인면담 자제 YS/김종필위원,박장관 퇴진요구 동참엔 난색/각파 주장조정 뒤 청와대 갈듯 JP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이 12일 당내분 진정의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선 김종필최고위원과 4시간30분여에 걸친 마라톤회동을 가졌으나 구체적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이날 회동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은 박철언정무1장관 사퇴 및 당지도체제문제 등에 있어 김종필최고위원이 자신의 입장에 동조해 주도록 끈질기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종필최고위원은 박장관 사퇴요구동참등에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영삼최고위원은 우선 대외적으로나마 내분진정의 모습을 보이자는 김종필최고위원의 간곡한 호소를 받아들여 당인면담을 자제하는등 냉각기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또 김종필최고위원은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 다른 인사들과 연쇄접촉을 갖고 중재노력을 계속할 예정이어서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이날 마라톤회동을 끝낸 두 최고위원은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으나 『특별하게 할 얘기가 없다』며 말문을 꺼내 이날 장시간 요담에도 불구,주요사안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차가 노출되었음을 시사했다. 김영삼최고위원과 김종필최고위원은 『기자 여러분들이 왔으니 사진이나 찍자』며 포즈를 취한 뒤 김영삼최고위원은 『내가 먼저 갈테니 김종필최고위원에게 얘기를 들어보라』며 먼저 자리를 떴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언제 청와대로 들어갈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분간 당간부들이나 당원들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 언급을 회피,공식적인 회동등이 다소 늦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김종필최고위원은 『기자들을 따돌리려 했던 것은 앞으로 하는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그랬던 것』이라며 『앉아서 할만한 얘기는 없고 몇마디만 하겠다』면서 거듭 중요현안에 대한 합의내용 등이 없었음을 암시했다. 김최고위원은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기탄없이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듣고 싶은 얘기 다 들었다』고 지적하고 『좋은 당을 만들어 제대로 일해 나가는 당을 만들자는 데는 인식이 일치했으나 현실적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만 설명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오늘 몇사람 만났고 또 계속 대화를 통해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해결토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일들을 한 연후에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우리 레벨에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한 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도리』라고 거듭 강조하고 『박태준대행과도 금명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최고위원은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어떻게 얘기됐냐』고 묻자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방법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었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두 김최고위원간에 박장관문제를 놓고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최고위원은 김영삼최고위원이 당분간 아무도 안만난다고 말한 부분과 관련,『자꾸 만나고 같은 계파끼리 모이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의도적으로 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당내분의 진정시기와 관련,『가급적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이날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을 통해 표출된 계파간의 이견등을 자신이 중간에서 적극 나서 조정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최고위원은 회동장소를 떠나면서 『내가 한 얘기대로만 써달라』고 주문하고 『어제 아침 기자들을 만났을 때 「어떤 정권이든 김영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 없고 국민들을 잠시 혹일 수는 있지만 속일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일부 달리 표현됐더라』고 말해 민정계에 대한 불만이 삭여지지 않았음을 거듭 나타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을 마친 뒤 박태준대행과 시내 롯데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됐으나 박대행측으로부터 『언론기관이 이미 저녁회동 사실을 알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 박대행과의 회동일시를 추후 결정키로 한 뒤 측근인 김용환정책위의장등과 향후 대책을 숙의. 김최고위원은 이날 밤 청구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 성과에 대해 『매우 어려웠다』며 양자간 견해차가 컸음을 거듭 지적하고 『주말까지 당내분이 진정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저어 당내분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눈치. 김최고위원은 이어 『김영삼최고위원과는 함께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전제,『서로 조금씩 참고 온당하게 수습됐으면 좋겠다』며 YS의 반발 양보를 기대. 김최고위원은 이날 회동 결과에 대해서는 발표를 자신이 맡은 이유에 대해 『김영삼최고위원은 될 수 있는 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인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자신의 계보사람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더냐』고 부연. 한편 김영삼최고위원은 김종필최고위원과 헤어진 뒤 신라호텔에 들러 이발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하오 7시쯤 호텔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과 만나 『어떤 정권도 잠시 나와 국민을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해 통합 과정에서 무엇인가 민정계에게 「속았다」고 느끼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김최고위원은 이어 시내 모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밤 11시40분쯤 귀가했다. ◎민자 내분수습 각파동향/타계파와 막후접촉…내부결속 병행 민정계/의총소집 결의등 반격수위 높여 민주계 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으로 증폭된 민자당의 내부갈등은 12일 민주계 소장파의원들이 박장관의 공직사퇴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나옴에 따라 갈수록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이 사태수습을 위해 전격 회동한데다 민정계 중진의원들이 적극 진화작업에 나섬으로써 극적으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윤환ㆍ이종찬ㆍ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은 이날 상오부터 각자의 「연줄」을 동원,민주ㆍ공화계의 중진의원들과 만나 당내분규의 조기수습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각 지역별로 영향력이 있는 민정계 의원들과도 만나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민정계 내부결속을 강조하는등 분주한 움직임. 김의원은 이날 상오 김동영총무와 접촉,『당헌과 당규에 규정된대로 최고위원의 역할과 권한만 정상화된다면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정무장관의 「월권」행위는 자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특히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일임해 달라』고 촉구. 그러나 김총무는 박장관의 김영삼최고위원에 대한 「하극상식」발언을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박장관을 「공작정치」의 배후인물로 지목,장관직과 의원직 등 모든 공직에서의 퇴진을 요구함에 따라 의견조정에 실패. 이날 김총무는 3당합당이후 김최고위원에게 들어 오던 정치자금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져 김최고위원이 주장하는 공작정치가 결국 정치자금과 연관된 것임을 시사. 김위원은 이밖에 의원회관에서 민주계의 서청원ㆍ김동주의원과 접촉한 데 이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민주계의 박용만ㆍ신상우의원과 공화계의 김용채의원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사태수습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고 민정계의 김종호ㆍ권해옥ㆍ서정화의원 등에게도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며 당내결속을 당부. 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은 전화접촉 등을 통해 민주계 설득에 나섰으며 종친회관계로 이날 상오 경주에 내려갔던 이종찬의원도 하오에 상경해 설득작업에 합류. ○…민자당내 민주계는 12일 중진및 소장파의원들이 잇단 모임을 갖고 박철언정무1장관의 사퇴를 관철시키기 위한 대책논의에 부심.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상도동자택에서 김동영원내총무를 비롯,김우석비서실장,박종률ㆍ김덕용ㆍ박용만ㆍ황병태의원 등 측근들과 잇따라 만나 박장관 퇴진문제를 포함한 당내분 수습방안을 숙의. 김총무는 김최고위원과의 면담이 끝난 뒤 『모든 문제를 일으킨 박장관이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하는 것만이 수습의 길』이라고 박장관의 의원직사퇴까지 요구,민주계의 대박장관 공세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 느낌. 김총무는 『각료직의 사퇴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하지만 정국과 당을 수습하려면 박장관 스스로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며 박장관의 자진사퇴를 촉구. 서청원의원을 비롯한 민주계 소장파의원 10명도 이날 상오 서울 가든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박장관의 공직사퇴와 이번 사태를 논의키 위한 의총소집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서의원을 비롯,강삼재ㆍ박태권ㆍ정정훈ㆍ김동주ㆍ신하철ㆍ김운항ㆍ최이호ㆍ이인제ㆍ조만후의원 등은 이날 발표문에서 박장관의 최근 일련의 언동은 해당행위차원을 넘어 국론분열은 물론,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반국가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박장관의 사퇴를 강력 요구. ○…청와대측은 두 김최고위원의 회동결과에 촉각을 세우면서 박장관의 공직사퇴등 민주계의 요구에 일단 부정적 시각. 노재봉비서실장은 12일 박장관의 거취문제와 관련,『대통령중심제를 하고 있는 나라치고 당이나 국회에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하는 대통령측근이 없을 수 없다』며 『박장관이 물러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해 당내타협을 통해 조용히 수습되기를 기대. 최창윤정무수석도 『당내부에서 활발한 수습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두고 보자』면서 『정치적 경륜을 가진 최고위원들이 사태를 원만히 풀어 나갈 것』이라고 말해 박장관의 퇴진등 「극단조치」없이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는 눈치.
  • 민자수뇌 내분수습 연쇄절충

    ◎김종필위원,어제 김영삼위원과 회동/오늘은 박대행과/「박정무 처리문제」이견 못좁혀/본인 해명­사과ㆍ당무배제 중재안 나와 민자당의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은 12일낮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 별장빌라 2603호실에서 비밀리에 회동,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파동으로 확산된 민자당 내분수습문제 및 당운영문제에 관해 폭넓게 논의했다. 이날 낮 12시35분부터 4시간30분 동안 계속된 회동에서 두 김최고위원은 민자당이 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으나 구체적인 내분수습방법에서는 다소간의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발언파동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박철언정무1장관의 처리문제에 대해 두 최고위원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필최고위원은 회동을 끝낸 뒤 박장관 퇴진문제와 관련 두 최고위원간의 의견일치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좋은 당을 만들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제대로 일할 당을 만드는데는 조금의 의견차이도 없었으나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서는약간의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말해 이 문제와 관련된 의견조정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노태우대통령과의 면담시기에 대해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통해 합리적 해결노력을 계속한 뒤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라며 박태준최고위원대행,박장관 등과 우선 대화를 가질 방침임을 밝힌 뒤 『가급적 모든 것을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회동을 마치고 『김종필최고위원과 충분히 얘기했다』라고만 말하고 회동내용에 대해 일체 언급을 회피했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얘기는 김종필최고위원이 할 것』이라며 김종필최고위원이 회동결과를 일부 설명키로 합의했음을 암시하고 『당분간 내가 우리당의 간부나 당원과 밥 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사태수습에 나선 민정계측과 접촉을 거부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은 박장관의 퇴진만이 사태수습의 지름길이라고 말한 데 대해 김종필최고위원은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임면권자인 노대통령의 소관사항이라는원칙론을 강조하고 박장관의 해명,사과 및 당무배제의 중재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김최고위원의 이날 회동에서는 사태수습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데다 김종필최고위원이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을 비롯한 다각적인 절충활동을 펼 생각을 밝힘에 따라 주말쯤으로 예상되던 노대통령과 두 김최고위원간의 청와대 회동이 다음주로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13일중으로 박대행과 만나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결과를 설명하고 민정계측이 사태수습을 위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제시할 예정이다. 박대행은 김종필최고위원과의 회동이 이루어지면 이를 토대로 수습안을 마련,노대통령에게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김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10시 호텔신라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보도진을 의식한듯 이를 취소,정오 워커힐 빌라에서 전격적으로 회동했다. 박장관의 문책과 관련,당3역 및 민정ㆍ민주계 중진의원간에 막후절충이 이뤄지고 있으나 민정계는 대통령에게 일임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민주계는 장관ㆍ의원직 등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계의 김동영원내총무는 김윤환의원등 민정계 중진인사들과의 이날 상오 접촉에서 박장관이 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박장관문제는 대통령권한에 속하는 일이지만 당수습을 위해 박장관이 스스로 어떤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계 소장의원들도 이날 아침 가든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박장관이 정무장관직과 당무위원직에서 물러날 것과 의원총회소집을 요구키로 했다. 이에 대해 민정계는 『장관직 사퇴여부는 인사권자에게 속한 문제일 뿐아니라 퇴직한다고 사태가 수습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노대통령은 11일 밤 민자당의 박준병사무총장과 이종찬ㆍ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당내분의 조기수습을 위해 중진들이 적극 나서 주도록 당부했다. 만찬을 겸해 긴급 소집된 이날 모임에서 노대통령은 3당 통합이후 민정계 중진들이 당의 일에 소극적인 점을 지적하면서 『여러분이 앞장서 사태수습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 「단일체제」 카드로 불협화 일단락/민자내분 조기수습 국면의 배경

    ◎민정계,“「중대결심」선언하면 자해” 설득/민주계요구 수용… 회동은 모양갖추기/민주게,당내소외 벗고 야당기질 발휘 잦을듯 김영삼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내분양상을 보였던 민자당내의 계파간 갈등은 민정계의 신속한 수습안제시에 따라 「단발성」으로 마무리될 조짐이다. 8일 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상도동 김최고위원의 자택을 방문,김최고위원과 단독면담을 가진끝에 노태우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동을 갖기로 한 것은 민정계의 민주계에 대한 설득작업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정ㆍ민주 양계파의 수뇌부급인사들은 7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 회의 불참이후 다양한 막후접촉을 갖고 전당대회후 당의 지도체제를 형식상으로는 집단지도체제이나 대표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줌으로써 사실상의 단일지도체제로 정비키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사태해결의 결정적 고비가 지나간뒤 이뤄진 노실장의 상도동방문 및 11일 하오,또는 12일 있을 예정인 노ㆍ김청와대회동은문제매듭의 마지막 수순이며 내분표면화로 야기됐던 당내외의 파문을 다분히 의식한 의전절차라고 할 수 있다. 조기수습이 가능케 된 가장 큰 원인은 당지도체제문제등과 관련한 민주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발성으로 끝날 전망 ○…민정계가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은 우선 김최고위원이 10일 부산으로 출발하며 11일에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11일까지 김최고위원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그로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한 결심」의 일단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럴 경우 민자당내분은 보다 심각하고 해결이 어려워지는 국면에 접어들어 갈 가능성이 컸다. 이와함께 통상적으로 사회불안이 1년중 가장 고조되는 봄 정국을 앞두고 당외에서 가해질 각종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당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거시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민자당내분이 최근 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계파를 초월해 당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준다는 것도 당헌의 관계조항을 「대표최고위원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바꾸는 것일 뿐 이로인해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의 세가 삭감되거나 민주계가 당운영을 주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음직하다. 김최고위원이 당운영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개혁에 대해서는 공화계가 민정계를 능가하는 생리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회의 위원구성비율에서 민정계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점때문에 그의 「전횡」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정계는 당헌개정소위의 절충과정에서 총재인 노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에게 중요당무에 관한 협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등 그외의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장관 위세 꺾일 듯 ○…김최고위원의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이라는 강수처방으로 그동안 당운영에서 소외되고 김최고위원의 방소활동에서 보여진 박철언정무1장관의 「일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민주계는 상황이 급전되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7일 김최고위원의 대리역인 고위측근과 민정계최고위층과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직후 면담을 통해 「상황호전」의 청색신호를 감지한 민주계는 8일부터는 김최고위원의 당무집행거부가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계측은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후 민정계와 청와대측의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대책회의에서 일부의 「강력한 대응」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한 당사자인 박장관등의 중재로 자신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청와대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계측은 이번 파동으로 인해 통합후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계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동시에 김최고위원의 「정치력」을 당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계소식통에 의하면 김최고위원이 말했던 「중요한 결심」의 구체적 내용은 노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되는 모종의 행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사태가 악화됐을 경우 노대통령은 야당총재로서의 김영삼씨보다 현재의 김최고위원을 대하기가 더욱 거북스럽게 됐을 확률이 높았다』고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도 이같은 「제2탄」을 터뜨릴 경우 민자당전체가 입게되는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고 자신들도 아무런 득이 없는 일종의 자해행위밖에 안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기수습을 내심 강력히 희망해 왔다. 민주계가 민정계에서 제시한 수습안이 단지 환부의 거죽만을 덮어주는,즉 선언적 의미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민정계 못지않게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민주계는 이번 파동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이 당내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가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고 야당기질을 적극 발휘해 가며 각종현안문제 해결에 대처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계가 막후접촉등을 통해 제시했던 불만의 내용은 ▲민자당의 개혁의지 부족 ▲박철언장관의 독주 ▲당운영에서의 민주계 소외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같은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주계가 지도체제에서의 「양보」로 만족하는 것은 개혁의지 부족이나 당운영에서의 소외 등은 지도체제문제 해소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무장관에 대한 견제도 비록 2선으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세를 꺾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불만에 대한 한가지 양보만으로 수습의 길이 보이는 보다 큰 배경은 불만표출이 여러가지 표면적인 것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래입지에 대한 불안이 주요인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정계도 안도의 한숨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사태에 대해 원인제공자인 박철언정무장관과 김최고위원 모두를 비난했던 민정계는 최고위층의 조속한 단안으로 사태가 수습국면을 맞은 것에 대해 안도하는 표정이다. 민정계는 김최고위원의 「무례」가 겨냥하고 있는 장단기목표의 괴리로 인해 처방전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 왔다. 특히 김최고위원의 반발이 지극히 공개적인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태우대통령의 처방전 마련에 대한 운신폭이 지극히 좁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김최고위원의 불참사태를 놓고 민정계는 두가지의 대책을 비교ㆍ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타깃이 된 박정무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막후절충을 통해 인사조치없이 김최고위원측을 무마한다는 쪽이었다. 박정무장관의 독주는 민정계를 사분오열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민정계 평의원들의 인식은 박정무장관을 차제에 2선으로 후퇴시키면서 김최고위원의 「야당성행위」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공법의 사용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편이다. 그러나 박정무장관의 2선퇴진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노대통령이 굴복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통치권손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과 ▲박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존과 신임이 워낙 두터운 점 등이 고려돼 막후절충을 통해 지도체제문제를 양보하는 방안이 수습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막후접촉을통한 수습에도 불구하고 박정무장관의 활동영역은 그 이전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민정계의원들이 이번 사태로 민정계의 결속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과 결속을 위한 전단계조치로 박정무장관의 2선후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청와대회의 불참의 여진이 없어지는 전당대회 전후를 맞취 2선후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박정무장관은 지금까지 ▲당무에 있어서의 노대통령대리인 ▲북방정책에 관한 정부책임자 ▲정부정책입안ㆍ집행에 있어서의 노대통령 핵심측근이라는 3∼4가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사태로 박정무장관은 노대통령대리인으로서 당무에 간여했던 역할을 일단 자제하거나 노대통령으로부터 자제를 요구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방소에서 돌아와 노대통령에게 박정무장관과의 불편을 호소한 이후 박장관은 이미 민정계조직강화특위위원에서 물러났고 또한 본인 스스로도 7일 밤 사석에서『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정계는 결과적이지만 김최고위원이 이번 청와대 불참을 통해 자신의 정치스타일의 일면을 내보여 민정계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민정계의 단결을 결과적으로 촉구한 셈이며 단결의 장애물이었던 박장관의 위세를 꺾어준 것도 민정계에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은 민자당내 각계파들이 내부결속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당무가 대권경쟁의 연장선상에서 협상되고 처리될 가능성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창당전당대회도 하기전 계파간 밀월관계를 끝내고 공개ㆍ비공개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된 셈이다. 민정계는 보선패배로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적어진 데 이어 이번 사태로 계파간 경쟁이 공개화됨으로써 당장 「차기준비」에 착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김영만ㆍ김교준기자〉
  • 여선 “일과성” 간주… 야선 “쟁점화” 기도

    ◎정호용씨 사퇴… 여야의 입장/「불법」 규명 어려워 야측 공세엔 한계/“여권 지도부 도덕성에 흠집” 관측도 정호용씨가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평민당은 정씨의 사퇴가 강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후보사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를 즉각 소집토록 요구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까지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가칭)도 정씨 사퇴과정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행위가 불법적이었다고 주장하며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낸 당사자로서 관계당국에 이를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야권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정씨사퇴에 따른 여진이 정국의 흐름자체를 뒤바꿀 정도로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하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임시국회 소집요구의 경우 의석이 개의정족수(재적 4분의 1)에 미달하고 있는 평민당은 민주당에 함께 임시국회를 소집토록 요청했으나 민주당은 보궐선거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평민ㆍ민주당 의석을 모두 합해도 발의(재적 3분의 1이상)조차 할 수 없어 단순 「엄포」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씨사퇴를 둘러싸고 여권 수뇌부의 불법행위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앞으로 선관위의 유권해석,또 고발이 됐을때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보아야겠지만 이 또한 정치공방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측은 정씨 사퇴과정에서 여권이 국회의원선거법 1백54조(후보매수및 이해유도죄)및 1백59조(선거자유방해죄)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원선거법 1백54조는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할 목적으로 금전ㆍ물품ㆍ거마ㆍ향응 기타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 또는 제공을 약속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만원이상 2백5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백59조는 후보자ㆍ당선인 등 선거관계자를 폭행ㆍ협박ㆍ유인하거나 불법나포 또는 감금하면 1백54조와 같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씨를 사퇴시키기 위해서 여권이 노대통령이하 모든 가용채널을 동원,설득에 나섰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또 정씨 사퇴이후 다른 방법으로의 명예회복을 위해 공직기용 약속 등이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씨에 대한 설득이 「협박」에 가까웠는지를 입증할 구체적 증거를 확보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정씨가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한 금품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키로 약속하는등의 「매수」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키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동해재선거 후보매수사건으로 구속된 구민주당 서석재사무총장의 경우 당시 매수당한 이홍섭후보가 매수사실을 시인했고 매수금전까지 명확히 확보되었던 케이스로 이번 정씨 파동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 한다 하겠다. 해방이후 우리 정치사를 볼때도 여권이 야당이나 재야인사를 불법 탄압할 때는 법적ㆍ정치적 시비거리가 되었지만 같은 여권인사에 대한 행위는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선관위 유권해석이나 법원의 최종결정을 지켜봐야 되겠으나 법적 하자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정씨 사퇴과정과 관련해 여권지도부가 어느정도도덕적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인 듯 싶다. 6공출범이후 특히 금년초 3당통합이후 민주나 개혁을 향한 「신사고」를 주창해온 여권으로서는 정씨 사퇴를 끌어내기 위해 기관의 개입이나 강압적 설득이 있었다는 인상을 일반에게 준 것이라든지 40여명의 소속의원을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시키면서까지 대구보궐선거를 과열시킨 것 등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 때문에 3당통합이후 침체에 빠졌던 야권에 정계개편의 당위성 시비와 함께 또 하나의 정치공세거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평민당은 다음달 1일 부천대중집회를 통해 정씨 문제와 관련한 현 정권의 부도덕성을 규탄할 계획이며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대구보궐선거에서 자당 공천자인 백승홍후보의 득표전략에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권은 자신들이 광주사태의 「가해자」라고 낙인찍은 정씨를 정권으로부터 핍박받는 「민주투사」로 부각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씨 사퇴를 둘러싼 정국의 파문은 4월3일 보궐선거 실시로 일단락되리라는 전망이다. ◎정호용씨 일문일답/「권유」 받았을뿐 압력에 의한 사퇴 아니다/선거과열ㆍ대구사회 심한 분열도 큰 작용 ­앞으로의 거취는. 『조용히 살겠다』 ­대구에서 살 것인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후보를 사퇴하면서 14대 공천이나 다른 보장은 받았는가. 『전혀 받지 않았다. 다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보장만 받았다』 ­사퇴의 최종결심은 언제했는가. 『며칠전에 선거가 너무 과열되고 이러다간 대구 사회전체가 분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들었고 또 친구지간에 반목이 심화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과 지적이 있어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 대통령과의 면담이전에 이미 마음을 굳히고 서울로 올라갔다』 ­후보사퇴를 정계 은퇴선언으로 봐도 되는가. 『현재 심정으로서는 정치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이번에 사퇴하게 된 것은 평소에 존경하는 군선배나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사퇴한 것이다』 ­여권의 사퇴압력은 없었는가. 『그것은 권유이지 압력은 아니다. 다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뿐이다』
  • 안정기조속 성장 추구/당정 경제팀 첫 회동 안팎

    ◎“경제개혁 지속적 추진”의견 접근/기본정책 「표류위기」서 방향잡아 안정과 성장 사이에서 방황해온 당ㆍ정간의 경제정책 논쟁은 「안정기조 위에 성장」을 추구한다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12일의 경제당정협의회 결과는 「안정과 성장의 조화」와 「경제개혁의 차질없는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과 성장이라는 상호 대립적인 정책목표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이날의 합의사항처럼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날 회의 결과를 발표했던 조순부총리와 이승윤의원은 이구동성으로 안정과 성장을 양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합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안정과 성장 사이의 정책논쟁을 덮어 두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당정이 모두 절감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더이상 당정이 마찰을 계속할 경우 「안정ㆍ개혁론자」인 조부총리가 이끄는 정부의 경제팀과 이승윤ㆍ김용환의원 등 「성장론자」가 중심이 된 당의 경제팀간에 공존이 불가능해져 어느 한쪽이 물러나야 하는 사태로 갈 수밖에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정의 기조위에서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조부총리의 지론인 「안정적 성장론」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안정기조 정책에 당이 동의해 준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이는 그동안 당이 정부쪽에 요구해온 성장위주 정책으로의 전환요구를 일단 후퇴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순부총리의 입각이후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는 1인당 GNP의 증대라는 총량지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산업평화 정착에 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기업과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각 경제주체의 체질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기초공사가 부실한 상태에서는 기껏해봐야,2,3층 건물을 올리는 데 그치지만 50층 정도의 고층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기획원측은 이를 「성장잠재력 배양정책」이라고 표현해 왔다. 과거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심화됐던 경제적 불균형과 불형평을 시정하지 않고는 성장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없다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이다. 정부의 「성장잠재력 배양정책」은 따라서 근로자ㆍ농민ㆍ도시빈민 등 소외계층에 대해 보다 많은 자원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민자당쪽은 정부의 「성장잠재력 배양정책」이 비생산적인 분야에 자원 배분을 집중시키고 정부재정의 이전적 지출을 팽창시킴으로써 기업등 생산적인 부문에 대한 자금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을 가해 왔다. 민자당은 이같은 비판을 토대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같은 정책전환에 강력히 반대해 장애물로 인식돼온 조부총리등 경제팀의 조기개각을 청와대쪽에 진언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조부총리의 사의표명 파문은 민자당 일각에서 나온 「금융실명제 연기발언」등과 맞물려 민자당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에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조부총리의 사의표명 파동을 전후해서 민자당의 성장위주 정책노선은 「안정과 성장의 조화」라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지난 9일 민자당의 통합추진위 전체회의는 『신당의 경제정책방향이 성장일변도라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면서 『안정없이는 성장도 있을 수 없다는 기조하에 경제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당의 기본입장』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12일의 경제당정회의가 「성장과 안정의 조화」라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에 관한 인식을 접근시킴으로써 일단 당정간의 불협화음은 일단락됐다. 토지공개념 확대도입이나 금융실명제등도 부작용을 보완하는 선에서 계속 추진키로 의견을 모음으로써 민자당의 출범으로 한때 표류하는 기미를 보였던 정부의 정책기조는 본래의 모습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당정간의 이같은 공감대가 계속 지속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성장과 안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어떻게 정책수단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로 남아 있다. ◎조 부총리ㆍ이승윤 의원,기자와 일문일답/“정부의 경제진단ㆍ처방에 당서 동의했다/기업투자ㆍ수출촉진위해 최대지원 할터” 조순부총리와 민자당 이승윤의원은 당정협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당이 우리경제의 현실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으며 논의내용에 있어서도 만족스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조부총리와 이의원이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의 내용이다. ­오늘 당정간에 합의된 내용이 너무 추상적인 느낌인데. ▲조부총리=상견례를 겸한 자리였던 만큼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경제정책 전반의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 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과 정부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현상과 문제점,그리고 그 처방에 있어서 충분히 논의했고 내용에 있어서도 당이 정부의 인식에 동의했다. ▲이의원=최근 성장ㆍ안정ㆍ복지 등의 문제가 가치선택적인 것인 양 보도돼 유감이다. 경제성장이나 경제안정은 쉽게 양분될 수도,양분돼서도 안되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위기국면에 있다면 국민적 인식을 바탕으로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한도내에서 새로운 사고로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제도 등 「개혁정책」의 실시가 연기되거나 내용이 변경될 가능성은 없는가. ▲조부총리=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 확대도입 실시는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에 대해서는 당도 동의했다. 다만 역기능과 부작용이 초래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해 나가도록 했다. ­수출증진과 첨단산업 육성 등 기업의 투자의욕고취 방안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가 오갔는가. ▲조부총리=우리 경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산업생산기술의 문제다. 정부는 기술개발ㆍ첨단산업육성을 위해 법안까지 제정하는등 상당한 연구와 투자를 하고 있다. 수출과 기업투자촉진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기로 당정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경기부양책에 대한 이견은 없었나. ▲조부총리=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안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당도 동의했다. ­수출ㆍ투자를 늘리기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으로는 어떤 내용이 논의됐나. ▲조부총리=지금 국민의 경제활동이나 기업의 관심이 대체로 비생산적인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크다. 이를 생산쪽으로 돌리는데 경제정책의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생산적 투자를 부추겨 수출촉진의 효과를 가져오도록 선별적 정책대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이의원=신당합당후 정책기조가 정치국면에서 경제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안정적 성장」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마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별설비자금의 확대등 여러가지 단기적인 경제활성화 대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도록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당정이 의견접근을 보았다. ­원화절하ㆍ금리인하및 물가등에 대해서는. ▲이의원=우리 경제에 환율ㆍ통화ㆍ금리 등이 변수가 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것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정부의 운용방안이 옳은 것으로 본다. 이보다는 기업의 투자의욕과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살리기 위한 분위기조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합의내용 가운데 정부가 취하는 정책수단에 있어 심대한 제한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조부총리=과거 정부가 모든 정책수단을 전횡적으로 행사했던 것과 달리 경제부문에 있어서 자율화 추세등으로 민간에 의존해야 될 부분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정부도 과거보다 정책의 선택폭이 줄어들었고 정책효과 역시 감소됐기 때문이다. ◎당정대좌 90여분 이모저모/동의ㆍ합의ㆍ일치 나열 “당정갈등 없다”강조/당,투자촉진등 경기부양책 필요성 개진 ○…12일 하오 서울 대한상의 클럽에서 민자당출범이후 처음 열린 경제관련 당정회의에서는 현재의 우리 경제에 대한 당정간 인식이 「완전히」일치한다는 합의문을 도출해 냄으로써 그동안 안정과 성장을 둘러싸고 일었던 당정간 불협화를 일소. 이날 회의는 당초부터 신당 창당에 즈음한 새 경제정책 기조설정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당정간 갈등이 없음을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과시용」의 성격을 짙게 띤듯 했으며 합의문에도 「동의」「합의」「인식일치」등 화합을 강조하는 용어가 다수 포함. 그러나 발표내용이 안정ㆍ복지ㆍ개혁과 성장ㆍ번영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약간은 「모호한」것이어서 이를 둘러싼 정책논쟁이 1백% 해소됐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 ○…이날 회의는 이승윤의원과조순부총리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김인호경제기획원차관보가 경제현황및 정책기조방향을 보고한 뒤 참석자들이 각자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1시간30여분동안 진행.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모두 『당정간 경제정책에 대한 이견이 없음이 확인됐다』고 밝혔고 그동안 갈등의 주역처럼 비쳤던 조부총리와 이승윤의원 등도 『매우 만족스런 모임』이라고 평가. 이의원은 특히 『최근 성장ㆍ안정,성장ㆍ복지간 가치선택의 필연성이 있는 양 보도되어 유감스러웠다』면서 『성장ㆍ안정은 양분법적으로 논의될 수도 없고 논의된 적도 없다』고 당정갈등을 강력 부인. 이의원은 그러나 『오늘의 한국경제를 위기국면이라고 많은 국민이 생각하며 신당합당이 위기국면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고 전제,『기술발전,단기적 수출및 투자촉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완곡하게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피력. 이에 대해 조부총리는 『일반적 경기부양책 조치는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라고 못박았고 이의원도 『환율ㆍ통화량ㆍ금리 등의 조절은 경기상승뿐 아니라 물가자극의 이중성이 있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동조. ○…민자당측이 다른 참석자들도 다수가 내심 상당 정도의 경기부양책 채택등 성장우위론을 선호하는 눈치이지만 신당 출범 직후부터의 「당정 불협화음」「복지정책 수정」이란 구설수에 휩싸일 것을 꺼려 구체적 언급은 자제. 이승윤ㆍ나웅배ㆍ김동규ㆍ황병태ㆍ김용환ㆍ이희일의원 등 경제대책 특위위원 6명은 모두 『성장과 분배문제를 이분화,이중에서 마치 택일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면서 『따라서 오늘 회의는 당정간의 경제정책에 관한 입장조정이나 정책방향을 둘러싼 이견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고 경제현황에 대한 현실감각을 교환한 자리』라고 설명.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민정ㆍ공화계와 민주계간에 「미묘한」입장차이가 표출되었으며 민정ㆍ공화계 의원들이 「성장을 통한 복지달성」을 강조한 반면 민주계는 「토지공개념ㆍ금융실명제 등 개혁조치의 차질없는 시행」을 각각 주장했다는 후문. 특히 황병태의원(민주)은 「기술혁신」「작은 정부」등을 주장해 합의문에 이들 내용이 삽입.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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