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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대위 이끈 정원식위원장 “훈1등”/승리 견인…민자 공조직 활약상

    ◎김윤환의원,대세론 내세워 YS 부각/정호용의원 입당으로 대구지지 모아/「최병렬 기획위」도 선거전략 수립에 큰몫 대통령은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다.김영삼민자당후보가 무수한 고비를 넘기고 제14대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이다.지근거리에 있는 많은 인사들의 음·양의 도움이 있었다. 물론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끈 주역은 김후보 자신이다.3당합당 이래 경선과정을 거쳐 최근 대선대회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고군분투하다시피 했다.당내외에서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전면에 나서 선거전략을 짜고 기획·홍보·선전의 일선에서 뛴 공조직은 대선승리의 견인차였다. 무엇보다도 선대위라는 거대한 조직을 잡음없이 끌고간 정원식위원장의 역할을 먼저 꼽지않을 수 없다.국무총리에서 물러난 직후 뒤늦게 당에 합류했지만 그는 각종 당공식행사는 물론 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않고 뛰어다녔다. 유세전 도중에는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경력을 십분 활용,이른바 「색깔논」을 제기함으로써 민자당을 공세의 위치에올려놓기도 했다. 차세대군으로 지목되고 있는 선대부위장들도 김후보가 당선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김윤환 이한동 이춘구 정호용의원들이 그들인데,지난 경선과정에서부터 「대세론」을 통해 김후보가 대통령후보를 차지하게 한 김의원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김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최대 전략지로 꼽힌 경북지역을 맡아 초반에 다소 배타적이었던 이 지역분위기를 친금후보 쪽으로 돌림으로써 또 다시 김후보 압승의 발판을 마련했다.탈당파동때 가장 먼저 중심을 잡아 당내동요를 최소화했던 이한동의원은 경기지역 책임자로 선거막판에 돌출된 「부산기관장모임」파문의 수도권진입을 차단,경기지역에서 김후보의 우세를 이끌어냈고 이춘구의원도 중부권에서 승세를 굳히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중 가장 늦게 당에 합류한 정의원은 잇단 대구지역 민자당의원의 탈당으로 뒤흔들리던 대구정서를 「민자당입당」카드로 잠재웠음을 물론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이 지역을 누벼 대구지역의 지지세를 모으는데 한몫했다. 선대본부장으로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온 김영구사무총장은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으로 공조직을 무리없이 이끌었다. 선대위산하 기획위원회 멤버들도 선거기간중의 뛰어난 공신들이다.최병렬 위원장을 비롯,박관용 홍보대책위원장,이해구 사무부총장,최창윤 총재비서실장,강용식 선대위원장비서실장겸 정조실장,김영진 상황실장,김영수정세분석위원장,박범진 부대변인 등이 그들이다. 특히 「사령탑」을 맡은 최위원장은 87년때 국책연구부소장으로 활약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전의 흐름을 분석하고 선거전략을 세우는등 당내 「소프트웨어」의 핵심을 이뤘다. 강의원은 87년 때의 경험과 방송지식을 활용,한층 위력이 강화된 김후보의 TV유세를 기획했고 김영수의원은 법조계의 경험을 토대로 각종 정보수집및 분석으로 선거판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냈으며 박부대변인은 기획위원회의 「입」으로 맹활약했다. 이들 기획위원회 멤버들이 만들어낸 대표적 작품중의 하나가 막판 악재였던 「부산기관장모임」을 공작정치로 규정,여론의 흐름을도덕성공세로 뒤바꾼 일이다. 시·도협의회의장 가운데 강원도를 맡았던 정재철상무위의장의 활약도 돋보였다.국민당의 텃밭인 이 지역에 「정주영바람」을 원천봉쇄,득표율 2위를 기록하며 김후보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특히 당의 최고 「입」이었던 박희태대변인은 연일 제기된 각 현안이나 쟁점마다 빼놓지않고 성명을 발표,타당의 기선을 제압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대선수훈갑그룹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선대위에 직접 간여하진 않았지만 당의 「얼굴」인 김종필대표의 역할도 지대했다는 평가이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93년 책의 해」 선정 1위/출간,출판계 올 10대뉴스 발표

    ◎교보 재개검·ISBN제 정착이 각 2·3위 올 출판계의 최대빅뉴스는 「93년 책의 해」선정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언론계·학계·출판관련단체 및 출판계·서점인사등 2백여명을 대상으로한 92년출판계 10대뉴스선정작업결과 조사됐다. 이에따르면 1위는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 대비할 기반마련을 위해 지난8월 문화부가 발표한 「책의 해 선정」이 꼽혔다.2위는 「교보문고재개점및 영풍문고 개장」이었다.교보문고는 1년동안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단일매장으로 세계최대규모인 2천7백평 매장공간에 1백50만권의 책을 구비,지난5월 재개장했으며 영풍문고도 지난7월 개장됐다. 이어 3위와 4위는 ISBN제도정착과 출판인쇄업개방정책 변경이 각각 차지했다.이와함께 마광수교수의 구속과 미야자와 리에누드집파동 등 출판물 외설시비가 8위,「소설동의보감」 「소설토정비결」등 역사소설의 장기베스트셀러화도 10위에 올랐다. 10대뉴스는 다음과 같다 ①93년 책의해 선정 ②교보문고재개점 및 영풍문고 개장 ③ISBN제도 정착 ④출판·인쇄업 개방정책 변경 ⑤도서상품권발매 1백만장 돌파 ⑥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남북통일안 확정 ⑦서울출판유통기공식 ⑧출판물 외설시비 ⑨국립중앙도서관 문헌자료 온라인 서비스 실시 ⑩역사인물 소설붐
  • “번의,또 번의”진통의 김복동행로/「분분한 전언」속 탈당으로 낙착

    ◎노 대통령 입장 고려… 공식발표 늦추는듯/국민당행 확실… 금명 입당기자회견 추진 민자당탈당과 번복을 오락가락하던 김복동의원이 결국 탈당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민자당은 김의원파문의 연장이 당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날 김의원의 탈당계를 전격수리했다. 김의원이 이제 마음을 바꾸더라도 탈당을 번의할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김의원문제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계속된 것은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청와대및 민자·국민당관계자,친·인척,측근들이 전하는 얘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김의원의 매부인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관계자나 금진호의원(민자)등은 지난 18일 김의원을 만난뒤 『민자당에 잔류할 것』이라고 밝혔다.반면 국민당측이나 김의원의 보좌관·비서관및 대구동갑지구당관계자들은 『김의원의 탈당의사는 확고하며 곧 국민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이들 주요 인사들이 접촉내용과 동떨어진 언급을 할리가 없다.때문에 김의원의 마음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게 중론이다.마음이 바뀌지않았더라도 언행이 일치하지않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시간대별로 보면 김의원은 탈당결행→번의→다시 탈당결심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같다. 김의원은 지난 17일 상오 국민당의 정주영대표·김동길최고위원과 만나 국민당 입당을 약속했다.김의원은 지난주 자신이 희망했던 민자당 대구지역 선대협의회장을 못맡게되자 『김영삼총재가 홀대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민자당에 머물고 싶지않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더욱이 사이가 나쁜 것으로 알려진 정호용의원의 민자당입당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김의원을 자극했다고 보여진다. 김의원은 그러나 탈당기자회견을 위해 대구동갑지구당으로 가던중 노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진정 탈당의사가 굳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탈당을 공식화 할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김의원은 이어 18일 새벽 안가에서 청와대의 서동권정치특보·안교덕민정수석·김학준대변인과 매부인 금진호의원,친형인 김익동 경북대총장등과 밤을 새우며 논의한결과 순순히 탈당의사를 번복했다고 금의원이 전했다. 김의원은 노대통령과 조찬자리에서도 이같은 뜻을 밝혔고 금의원과 라마다 르네상스호텔로 자리를 옮겨 민자당잔류성명을 작성,언론사에 배포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의원은 18일 상·하오 강승구보좌관등 측근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등을 통해 거취문제를 논의한뒤 탈당을 결행하기로 다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강보좌관은 국민당사로 와 김의원이 대구동갑지구당에 제출한 탈당계를 언론에 공개했다.19일 상오에는 일부 언론사에 자필서명이 있는 탈당성명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민자당도 19일 김의원의 탈당을 수용,사태를 조기수습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김의원의 탈당을 청와대가 가족관계 때문에 만류하려다 일만 커졌다』는게 민자당측의 생각이다. 청와대수석비서관들도 『김의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며 노대통령도 상당히 분개하고 있다』고 전하며 더이상의 설득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김의원의 민자당 탈당은 기정사실화됐으며 국민당입당도 확실해 보인다.다만 국민당측은 김의원 탈당여파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금명 김의원이 입당기자회견을 갖도록 추진하고 있다. 김의원이 입당할 경우 공동대표나 최고위원추대등 충분한 예우를 할 준비도 갖추고 있다. 반면 김의원측은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노대통령의 입장을 감안,며칠 여유를 가진뒤 국민당입당을 선언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의원 파동으로 정부의 중립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민자당이 다소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대구에서 민자·국민 양당의 지역구의원 수도 5대5 동수를 이루게 됐으며 김의원을 따르던 P·A의원의 동요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민자당에 대한 「호의」가 확인됐고 무소속의 정호용의원이 민자당에 들어온다면 대구에서의 세도 만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대차대조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기는 어렵다.
  • “중립성의문”제기…쟁점화 공세/민주 국민/김복동의원 소동 정가반응

    ◎“경위 알아보려 불러… 중립관무관”/청와대/겉으론 태연… 선거악재될까 우려/민자당 민자당 김복동의원파문에 대해 민자당은 이를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나 민주·국민 양당은 이번사건을 정치쟁점화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민자당은 노태우대통령이 김의원을 만나기위해 부른것은 집안내부의 문제이며 정치적 중립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민주·국민당등은 노대통령의 중립의지를 의심케하는 중대사태라며 이를 대선쟁점으로 부각시킬 태세다. ▷정부◁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김의원이 대구에서 18일 상오1시쯤 서울에 도착해 노대통령을 바로 만나지 못했고 형인 김익동경북대총장,매부인 금진호의원등 가족들과 자신의 거취문제를 심각하게 협의했다고 설명. 이와관련,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다른 사람도 아닌 처남인 김의원으로부터 직접 경위를 들어보려 했다』고 말하고 이로 인한 정치권의 시비우려에 대해 『김의원은 대통령과 친인척이라는 특수한 관계이므로 대통령의 중립성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단언. ▷민자당◁ 김의원 사태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초선의원 한사람의 해프닝정도로 치부하며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하고 있으나 이 사건이 「중립파동」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영삼총재는 이번 일에 대해 초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청와대가 「가족문제」일을 내세워 공연히 차를 되돌아오게 해 긁어 부스럼만 만든것이 아니냐』는 반응. 민자당은 현재 김의원이 탈당하려 했던 배경을 전적으로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이번 「김복동소동」이 사적인 이유에서 경찰등 공적기구가 개입됐다는 점을 중시,국회에서 선거내각의 중립성,진상을 철저히 가려낸다는 방침이다. 특히 『국회의원의 신상문제에 그동안 중립을 표방해온 청와대 경찰등 공적기구가 모두 나선 것은 결정적인 중립성훼손』이라고 단정,예산안의 동의에 앞서 대정부질문을 추진하고 유세내용을 재점검키로 하는등 파상공세를 취할 전망이다. ▷국민당◁ 국민당은 김의원이 민자당탈당의사를 번복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명백한 외압의 결과이며 김의원은 이미 우리 당의 당원』이라고 주장하며 『이제 중립내각구성이 완전한 허구임이 밝혀졌다』고 총공세. 정주영대표는 이날 『현역 국회의원이 백주에 경찰관도 있는 현장에서 납치된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면서 ▲자체진상조사착수 ▲국회차원의 진상규명활동 ▲대정부항의단편성 ▲검찰수사촉구등을 지시. ▷경위◁ 김의원의 운전기사 이상교씨(34)에 따르면 17일 하오4시20분쯤 김의원과 승용차편으로 서울을 출발,7시40분쯤 동대구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사복차림의 20∼30명 인사들이 차를 에워싼뒤 김의원에게 다가와 『회장님을 모시겠으니 내려달라』면서 김의원을 검은색 그랜저승용차에 태우고 다시 상경했다는 것. 김의원은 이날 하오9시쯤 대구동갑지구당 이령락사무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형님과 함께 탈당문제등 거취를 논의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당원들을 돌려보내라』고 밝혔다는 것. 김의원은 이어 18일 상오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둘째형인 김익동 경북대총장,매부인 금진호의원등 친·인척과 조찬을 함께하며 거취문제를 논의한 끝에 『요즈음 정치인들의 빈번한 당적변경이 국민들에게 좋지않게 보이는데 저의 처신 역시 그렇게 보일 것이라는 가족들의 충정어린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민자당 잔류의사를 밝히는 보도자료를 배포.
  • “당기금 2천억” 합당 접착제로/국민­새한국당 통합 언저리

    ◎“사당성격 탈피 기반 마련” 신당인사들 호감/공동대표 “이종찬의원­채문식씨” 양론 팽팽 국민당과 가칭 새한국당의 통합이 성사단계에 들어섰다. 양측 통합의 최대 걸림돌은 대선후보문제와 통합신당의 공당화를 위한 당기금조성문제였다. 대선후보의 경우 정주영국민당대표를 추대한다는데 대세가 모아졌으나 새한국당 대선후보내정자인 이종찬의원이 독자출마의지를 굽히지않아 진통을 겪었다.하지만 이의원은 13·14일 자신이 주도하는 새정치연합 측근들과 잇단 회동을 갖고 공당화 등의 조건만 충족되면 후보는 정대표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정대표도 이에 호응,14일 상오 『당운영기금으로 2천억원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당이 정주영대표의 개인적 자금조달에 의해 움직이는 사당적성격에서 벗어나 영속성을 지닐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된다는 사실은 새한국당인사들에게 상당한 유인요소가 된다. 따라서 후보및 당기금이라는 핵심쟁점이 일거에 해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국민당과 새한국당의 통합실무협상대표들은 후보와 당기금규모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적 합의를 이루어 놓았다. 그 골자는 ▲당대당 통합 ▲내각제개헌 ▲중·대선거구제 ▲선거공영제등이었다. 특히 내각제개헌의 대선공약제시는 「반양금세력의 총결집」추구라는 목표와 관련,중요한 대목이라 생각된다. 국민당과 새한국당 인사들은 정주영후보가 당선될 경우 임기2년이내에 내각제개헌을 완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이어 15대 국회의원총선은 내각제를 전제로 치른다는 것이다. 14대 대통령임기는 5년을 보장하되 내각제개헌후에는 군통수권만 갖는 명목상의 대통령으로 남게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양측은 통합신당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최고위원은 동수로 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현재 국민당최고위원이 4명이므로 새한국당측도 4명의 최고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쌍방이 몇명의 최고위원을 추가임명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공동대표의 경우 국민당측에서 정주영대표가 그대로 맡는다는데 이론이 없으나 새한국당의 사정은 복잡하다. 국민당의 다수 인사와새한국당의 이종찬의원측은 정대표의 「고령」이라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를 내세운 이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아야한다는데 견해를 같이 한다. 반면 「김우중파동」때 이종찬의원과 틈이 벌어진 김용환의원 등은 채문식창당준비위원장을 공동대표로 추대해야한다는 입장이다.국민당 일각에서는 채준비위원장을 공동대표로 한뒤 박태준 전민자당최고위원이 영입된다면 박전위원이 대표를 맡는 방안도 일부 거론되고 있다. 새한국당측은 공동대표와 함께 최고위원 인선에서도 진통을 겪으리라 예상되지만 이종찬의원의 공동대표선임이 보다 유력시된다. 당직배분과 함께 새한국당에서 이미 지구당위원장을 맡은 인사들을 어떻게 배려하느냐도 난제라 할 수 있다. 국민당과 새한국당이 통합하는 것이 대선구도에 얼마나 변화를 가져올지 현재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최근 언론기관 등에서 발표한 각종 여론조사를 산술적으로 더해보더라도 국민당과 새한국당의 단순결합은 김영삼 민자당후보를 능가할 수는 없다.더구나 두 당의 통합은 「당대당」이라는 구호를 걸었으나 실제는 국민당에 의한 신당의 흡수통합으로 보아야한다. 하지만 국민당과 새한국당 인사들은 양측의 결합이 「반양금」및 「내각제추진」세력을 극적으로 결합시키는 기폭제가 될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박태준의원이외에도 박찬종 신정당후보,무소속의 정호용의원의 추가합류와 함께 단순통합이상의 부동표를 흡인하는 「플러스 알파」바람을 희망하고 있다.
  • 신당,성격과 입지 분명히 하라(사설)

    가칭 새한국당이 창당준비에 심각한 진통을 겪는 가운데 「일단」예정대로 창당작업에 주력한다는 원칙을 정한것으로 전해졌다.신당 참여인사들은 일찍이 정치에 뜻을 두었거나 이미 기성정치권에 몸담아온 정치인들이다.또 그들 나름의 의지와 결의아래 새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선만큼 우리는 국외자로서 이를 구태여 용훼코자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 신당이 지난날 한동안 이른바 국민후보추대문제를 놓고 우리 정치권에 적잖은 혼선을 빚게했고 국민들을 크게 헷갈리게한 요인들을 제공했다는 데서 우리는 이에대한 그들의 입장과 책임이 어떤 것인가를 묻고싶은 것이다. 무릇 정당이 정치적 동조세력을 규합하여 우세집단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집권을 겨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때문에 국민을 대상으로한 정당은 색깔을 분명히 하고 그 정당인들은 공통의 이념과 정치적 기조는 물론 정강정책의 기틀을 사전에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아울러 그들이 지향하는바 목표와 방향에 소신이 있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명백히 지적컨대 신당인사들은 이점에 실패하고 있다.창당이전 외부인사 후보영입이라는 비정상적 행보에서부터 이 실패는 예정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현재로서 신당은 정치적 색채와 이념 그리고 정강정책에 관한 최소한도의 가능성 또한 결여하고 있음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김우중씨를 위요한 이른바 출마파동도 이제와서 그 전후사정을 면밀히 살펴볼 때 경제인 김씨 개인의 고뇌와 방황은 신당참여 일부인사들의 개인 이해관계 또는 집단이기주의 성향에 연유했음을 우리는 알게된다.김씨 자신의 깊은 사려끝에 결국 불출마로 끝나자 신당 준비작업 자체가 크게 동요했음이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지적했듯이 창당이전 외부인사 후보영입이라는 무정견한 입지선정은 신당주도인사들의 정치적신조와 정책부재를 드러냈을 뿐이다.더나아가 이합집산하는 우리정치의 구태마저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고 할수밖에 없다. 정당 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바다.그러나 우리 정치의 개혁및 발전과 관련하여 신당에대해 우리는 이렇게 고언코자한다.즉 그들이 나라와 정치의 앞날을 걱정하기전에 자신들의 정치적 소신과 입지를 분명히 해야겠다는 것이다.창당은 그 이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또 재벌당이냐” 당내외 여론에「하마」/김우중씨,왜 출마 포기했나

    ◎JC반대로 정치적 입지확보 어려움/불투명한 승리·대우앞날 고려한 결단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29일 「대선출마포기」를 최종 선언한 것은 여론의 질책과 신당내 복잡한 사정때문에 내린 불가피한 결정으로 보여진다. 최근 김회장을 만난 인사들은 한결같이 그의 정치참여 욕구가 강했다고 전한다.김회장은 신당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후보및 지도체제 문제까지 논의하는 등 신당참여를 강력히 시사하는 행동을 해왔다. 그러나 김회장의 대선출마의사가 노골화되면서 여론은 따가운 비판을 가했다.정주영국민당대표에 이어 또다시 재벌이 정치에 뛰어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지적이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신당 분위기도 복잡하게 전개됐다.조직·자금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다수 인사가 김회장의 영입을 바랐지만 중심세력인 이종찬의원 진영이 「제2의 재벌당」은 안된다며 김회장 후보추대에 부정적이었다. 이종찬의원과의 차차기를 겨냥한 후보·당권분리 신경전도 심각했다. 김회장은 정치참여 의사를 피력하면서 이번 대선에서의 승리는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결국 12월 대선보다는 다음 대통령선거를 겨냥,정치권에서의 입지확보를 노렸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회장은 지난 28일 이자헌·박철언의원등 신당 인사들로부터 후보추대를 권유받고 후보와 당권을 모두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이는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에도 자신이 당전면에 나서 정계개편을 시도하는 한편 15대 선거에 재도전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간파한 이종찬의원은 김회장 추대의 전제조건으로 「중도불포기보장」과 함께 「후보·당권분리」를 요구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12월 대선에 신당을 업고 출마하더라도 승리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해온 김회장으로서는 불출마결정이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대우그룹측에서도 김회장의 불출마결정이 정치참여조건을 둘러싼 신당과의 「협상결렬」에 주된 원인이 있다고 밝힌다.최근의 출마설 파동으로 정치지도자로서의 잠재력을 과시했고 재벌총수의 정치참여라는 사회적 비난도 어느 정도 걸러지게 돼 신당참여이상의 정치 입문기반을 다졌다고 대우관계자들은 분석한다. 한편으로는 김회장의 출마포기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적으로 「상황조건」탓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김회장은 28일 상오 이종찬의원을 만났을때 정치참여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이의원이 전했다.이어 이자헌·박철언의원의 방문을 받고 『시간을 좀 달라.이종찬의원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했으나 신당불참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김회장 측근들은 『이종찬의원이 한때 김회장의 출마를 권유해놓고 이제 김회장후보추대를 반대해 김회장이 당황해했다』고 말해 이종찬의원과의 불화도 한 요인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종찬의원에 대한 약간의 섭섭함이 하루만에 김회장의 태도를 돌변하게 한 이유라고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더구나 이종찬의원은 이날밤 이자헌의원과 만나 김회장추대와 관련,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뤄놓은 시점이었다. 김회장과 이종찬의원의 마지막 담판이 29일 상오9시30분 있었으나 김회장은 이미 28일 하오에서 29일새벽사이에 걸쳐 불출마를 결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따라서 이종찬의원진영에서는 음모설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김회장이 출마를 결심하면서 지난 21일 김영삼민자당총재,23일 노태우대통령을 차례로 만난 것은 결국 김총재를 돕기위해 출마얘기를 꺼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는 대우그룹의 기업들에 도움을 주고 김총재가 당선되면 다음 정권에서 특혜를 받기위한 원모가 깔려있을수 있다는 주장이다.김회장이 불출마기자회견에서 『양금구도 청산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불출마선언을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의원측은 지적한다. 이번 대선에서 양금이 표대결로 마지막 결판을 냄으로써 양금구도를 청산해야한다는 논리는 신현확씨,김윤환의원등 친YS성 구여권 인사들의 논리이다. 외압설에 대해서는 김회장 자신이 부정하고 있고 다른 뚜렷한 증거도 없다. 그러나 노태우대통령이 어려운 경제환경속에서 부실기업인의 정치참여에 대해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일,김영삼총재가 강도높게 재벌의 정치참여를 비난한것등이 김회장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 김회장의 불출마선언으로 대선정국은 한결 정돈됐다. 「양금일정」의 3자대결로 압축되면서 김영삼총재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신당의 경우 창당전 붕괴위기에 몰린 것으로 보여진다.이종찬의원을 중심으로한 소수세력이 대선에 참여하느냐,혹은 뿔뿔이 흩어지느냐만이 남은 상황같다.
  • “올것 왔다”긴급임원회의 등 어수선/김우중씨 출마설…대우그룹 주변

    ◎사장단 해외출장 취소… “전원 대기”/타그룹서도 촉각… 사실확인 분주 「김우중회장 대통령출마」설이 나온 24일 대우그룹의 계열사 임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회장의 출마여부를 확인하고 대책을 의논하느라 어수선했다. 재계와 증권시장에도 「김우중파동」이 하루종일 악재로 작용,다른 그룹들도 신경을 쓰는가 하면 대우그룹의 상장 8개사 주가는 일제히 하한가를 기록했다. 정국안정으로 회복세를 보였던 주가도 느닷없는 찬물로 13포인트가 내렸다. ○일손 놓고 전전긍긍 ○…대우그룹은 이날 아침 일찍 서형석기조실장 주재로 긴급 기조실임원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으나 김회장의 「진의」를 파악치 못해 「우리로서는 아는바 없다」는 하나마나한 공식입장만 정리했다. 대선출마설에 그룹 임직원들은 그간의 끈질긴 소문으로 미루어 「올것이 왔다」는 반응과 함께 그룹의 장래를 심각히 우려하는 모습들이었다.임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화장실과 복도·사무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김회장의 향후진로와 그룹의 장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계열사사장단은 예정됐던 해외출장도 전원 취소한채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대우그룹 계열사의 전화는 출마설의 진위를 묻는 외부전화로 거의 통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증권투자자들은 주식폭락사태의 책임을 물어 항의했고 『이 나라가 재벌공화국이냐』는 전화도 많았다.전화중에는 『대우그룹임원들이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지인 2천명씩을 이미 김회장 앞에 써냈다는데 사실이냐』는 내용도 있었다. ○…김회장 자신은 이날 상오 출장중인 부산에서 기조실 관계자의 전화를 받고 『정치권으로부터 제의 받은것 없다』는 대답만 한채 전화를 끊어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 ○그룹차원서 준비 김회장은 이날 하오 승용차편으로 상경,사무실에 들르지 않은 채 「개인약속」을 처리한다며 「잠행」해 정치권인사들과 만난 것이 아닌가 추정케 했다. 김회장의 일부 핵심측근들은 김회장이 간부회의 등에서 현실정치불참을 여러차례 밝힌 것과 관련,『대통령후보로 출마할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그러나 또다른 관계자들은 현대와 달리 대우는 혼자 굴러가기 어려운상태임을 들어 김회장이 「무모한 새사업」에 뛰어들리 없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그러나 어느 임원도 김회장의 출마설을 강력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김회장이 그룹차원에서 출마를 준비한 흔적은 여러군데서 나타나고 있다.비서실과 주요사장들로 올 1월초 구성된 「한국정치연구회」는 김회장의 정치참여에 대한 그룹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정계·학계인사들을 접촉해 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최근에는 이 연구회가 부장급이상 수백명규모로 급팽창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김회장이 일부 계열사를 정리하고 상장회사의 소유주식을 매각,정치참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설이 계속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삼성,럭키김성,선경그룹등 재계도 이날 김회장의 출마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재계는 김회장이 정계에 진출했을때의 이해관계를 저울질 하는 한편 정주영 전현대그룹명예회장의 정계 진출때와 마찬가지로 또 한차례 재계가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을 것으로 걱정했다. ○국민들 반응에 신경한 그룹의 관계자는 『그동안 정치인들이 제대로 정치를 하지못해 경제인들이 정치에 뛰어드는게 아니냐』면서 『재벌총수의 정계입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다른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대표의 정계진출로 국민들로부터 「정경일치」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김회장까지 정치를 하게될 경우 국민들이 재벌을 보는 시각은 더욱 부정적으로 될것』이라고 우려했다. ○증권사 객장 침통 ○…이날 증권사의 관계자들은 김회장출마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위해 아침부터 분주,관계자들은 김회장의 출마가 사실일 경우 지난17일부터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는 증시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하며 종합주가지수 5백선도 위협을 받을 것으로 걱정했다. 증권관계자들은 연초부터 정주영 전현대그룹명예회장의 정치인 변신이라는 정치적 악재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증시가 이종찬·박태준의원의 탈당에 이어 김회장의 출마설까지 겹치자 침통한 모습.
  • “TJ소용돌이”… 정계 지각변동 예고

    ◎광양담판 이후의 정국향방/민자 대선구도에 파란… 큰 홍역 겪을듯/동반행동 범위·연대대상 등 관측 만발 노태우대통령의 「9·18선언」이후 「대사삭」을 계속해왔던 민자당의 박태준최고위원이 10일 민자당과 결별하는 것이 공식확인됐다.김영삼총재는 이날 상오 모든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광양으로 내려가 박위원과 3시간45분간 단독요담을 가졌으나 박위원의 탈당결심을 돌리는 데에 실패했다.박위원은 그동안 민정계관리자로서 민정계의 향후 입지를 위한 내각제공약및 당내민주화를 요구했으나 김총재가 내각제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민자당은 이날 하오 김총재 주재로 긴급 고위당직자 회의를 열어 당내 동요 진정작업에 착수했다.박위원은 탈당절차를 밟는 한편 광양에 며칠 더 머무르며 향후 거취문제를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이 창당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박태준위원이 10일 김영삼총재와의 「광양 담판」에서 제시한 내각제공약 요구는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김총재로서는 3당합당 당시의 내각제합의각서가 공개되자 「마산파동」을 일으켰기에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각제가 좋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었다. 이같은 측면이외에도 내각제를 받아들일 경우 대통령선거에서 민주·국민당으로부터 장기집권음모라며 집중포화를 당할 것이 거의 확실시돼 수락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김총재는 이날 대통령선거가 끝난뒤 내각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박위원은 내각제의 공론화는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박위원측이 김총재와 결별하기 위한 수순으로 김총재가 받아들이지 못할 내각제공약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른바 탈당 또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이후 민자당은 엄청난 소용돌이와 홍역을 겪게 됨은 물론 대통령선거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그동안의 행보에 비추어 볼때 박위원이 정치를 그만둘 의사가 거의 없어보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설혹 박위원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김총재측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당내 민정계인사들이 박위원을 조용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위원은 포철회장직 사임등 거취문제를 정리하기 직전인 지난 3일 하오 이자헌 박철언 김용환 장경우 유수호의원등과 극비리에 회동한 것으로 알려져 그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박철언·이자헌·장경우의원과 안병령·이진우·최명헌·이동진전의원등 15명정도의 지구당위원장이 곧 1차로 동반탈당할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박위원측에 합세할 주요인사로는 이밖에도 대선후보경선당시 이종찬의원진영에 가담했던 최재욱 강우혁 김용환 유수호 박범진 박명환 강재섭 김한규의원과 이상하 김현욱 조기상전의원 등이 꼽힌다. 이외에도 윤길중·채문식고문,민정계의원·위원장들과 민주당의 S·P·K의원과 국민당의 K·J전의원등이 계속 가세해 모두 30∼40명의 의원과 지구당위원장이 박위원의 깃발아래모일 것으로 박위원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와함께 정치권에서는 박위원이 최근 정주영대표 이종찬·정호용의원과 김우중대우그룹회장등과 잇따라 접촉한 사실등을 들어 이의원은 물론 국민당의 정대표와도 적극적으로 연대를 모색,두김씨에 반대하는 신당을 창당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대표등과 만난 것은 신당창당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정호용의원은 지난달말 박위원과 만나 이른바 「국민후보」문제를 깊숙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종찬의원이 최근 신당창당일자를 연기한 것도 박위원의 거취가 심상치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장세동전안기부장과 허문도전통일원장관등 5공인사들도 신당창당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장전안기부장은 최근 정주영대표를 두차례 만난데 이어 신당추진세력과도 물밑 접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당창당은 대통령선거가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점을 감안,이달말이나 늦어도 내달초까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박위원의 신당창당을 기정사실화하고 대선이 너무 임박해 있는만큼 선거일자를 내년 1월로 연기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는 풍문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박위원이 직접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것인지의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위원은 강영훈전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으나 강전총리는 고사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전문이다. 어쨌거나 박위원이 적극적으로 신당창당에 나설 경우 이종찬의원의 경우와는 달리 엄청난 폭발력을 지닐 것으로 전망된다. 민정계 사무처요원들은 『전쟁통에 큰아버지(노대통령)가 떠나더니 작은 아버지(박위원)마저 떠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크게 동요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위원이 신당창당을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대통령선거에서 파란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특히 포항을 중심으로한 경북지역과 「반YS」정서가 적지 않은 대구에서 김총재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떨어져 김총재는 민주당의 김대중대표와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는 김총재의 표밭으로 간주돼 왔다는 점에서 김총재 측으로서는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김총재측은 이에따라 선거대책기구등의 발족보다는 당내 결속,특히 박위원이 신당창당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여겨진다. 김총재의 한측근은 이날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라며 위기감을 나타냈다. 김총재가 이날 긴급 당직자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박위원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큰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신당참여는 절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같은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김총재로서는 특히 노태우대통령을 통해 박위원을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나서더라도 박위원이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 총재·박태준씨 담판안팎/잇단 특사설득 실패… 김 총재 직접 나서/최후의 오찬 2시간… “정치입문이 잘못” ○20여분 기다려 영접 ○…민자당 김영삼총재는 당초 예정했던 「신라금씨 12대왕」추모제 참석일정을 모두포기한 채 박태준위원의 당무복귀를 설득키 위해 10일 상오 광양을 급거 방문. 김총재가 박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인 최재욱의원의 안내로 상오10시쯤 광양제철소 본부 건물에 도착하자 박위원은 20여분간 현관에서 기다리다 김총재를 영접. 박위원은 김총재가 도착하자 『어서 오십시오』라고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인사. 김총재와 박위원은 악수를 교환하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한뒤 곧바로 본관 2층 포철회장실옆 임원응접실에 마련된 회담장으로 직행. 본부회장응접실로 자리를 옮긴 김총재와 박최고위원은 김영구사무총장·정석모·최재욱의원,최명헌·이동진전의원등이 배석한 가운데 잠시 환담. 이 자리에서 박위원은 취재중인 기자들에게 『이왕 내려온 김에 제철소를 한바퀴 둘러보라』고 권하면서 『정치만 알아서는 안돼…』라고 뼈있는 한마디. 두사람은 곧이어 10시10분쯤부터 배석자들을 모두 물리친채 약 2시간10분동안 대좌했으나 의견접근에 실패. 김총재의 한 측근은 박위원에 대한 설득방안과 관련,『박최고위원이 내각제개헌을대선공약으로 내거는 것을 선대위원장 수락 조건으로 제시했다면 김총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 김총재측은 그 대신에 대선 이후에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제개헌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비공식적인 언질을 박위원측에 제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박위원의 탈당의사가 워낙 굳어 이를 포기. ○…두사람은 회장응접실에서 2시간10분동안의 단독회동에 이어 낮12시30분쯤부터 광양제철내 영빈관인 백운대로 장소를 옮겨 오찬을 겸한 협의를 계속. 김총재와 박위원은 영빈관 귀빈식당에서도 일체의 배석자없이 최종절충에 들어갔는데 특히 김총재는 시종 어두운 표정을 지어 담판결과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 ○과거보다 협조강화 ○…김총재와 박위원은 오찬회동이 끝난뒤 서로 굳은 악수를 나누며 밖으로 나와 보도진에게 회동내용을 간략히 설명. 이때 김총재는 계속 굳은 표정을 지은 반면 박위원은 간간이 미소를 띠기도 해 대조.김총재와 박위원은 이때 보도진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일문일답을 가졌다. ­회담내용을 설명해 달라. ▲김영삼총재=장시간 점심을 함께 하면서까지 많은 얘기를 했다.박최고위원과는 20대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다.박최고위원은 한마디로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이라는 신화를 이룩한 분이다.그러나 정치를 하면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평생을 바쳐 철강산업을 위해 희생해왔고 제일 중요한 우리나라의 경제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박최고위원의 탈당계 및 최고위원직 사퇴서를 수리할 생각인가. ▲김총재=그런 것은 나에게 묻지말라.오늘 수많은 얘기를 나눴으나 그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다.인간적으로 마음아프게 생각한다.인간적으로 과거보다 몇배 가깝게 서로 의논하고 협조할 생각이다. ­박위원께서 회동내용을 설명해달라. ▲박위원=총재께서 할 얘기를 다하셨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오늘 회동결과가 정계은퇴를 뜻하는가. ▲박위원=곧 명확해질 것이다. ­탈당계를 제출했는가. ▲박위원=과정에 있다.당사무처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상경시기는 언제인가. ▲박위원=여기서 며칠 더 있게 될 것이다. ○…김·박회동이끝난뒤 박위원의 최비서실장은 이날 회동에서 오고간 얘기를 짧게 브리핑. 최실장은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하겠다』고 서두를 꺼낸뒤 『최고위원사퇴서와 탈당계를 어제(9일) 김영구사무총장에게 제출했다』고 설명. 최실장은 이어 『오늘 회동에서 박위원은 주로 최고위원직사퇴서및 탈당계제출의 배경을 설명했다』며 『박최고위원은 특히 김총재가 앞으로 정치를 주도해나갈때 지금의 제도(대통령중심제를 지칭하는 듯)가 더이상 가서는 나라의 경제사정과 지역감정등의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만큼 이를 시정하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평소지론인 내각제개헌 희망을 피력했다』고 전언. 최실장은 박위원의 국회의원직사퇴와 관련,『국회에 제출하지도 않았으며 작성하지도 않았다』고 말해 당분간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 ○…김총재는 박위원과의 광양회동을 마친뒤 곧바로 상경,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고위당직자회의를 소집하고 3시간여에 걸친 이날 회동결과를 설명. 김총재는 이 자리에서 『박최고위원의 결심은 확고해 이미돌이킬수 없는 상태였다.박최고위원은 정치를 한것이 잘못이었으며 정치에 대한 회의가 너무 커 앞으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소개. 또 김총재는 내각제문제와 관련,『박최고위원이 선대위원장직을 맡아주면 나를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내각제 문제등 모든 일을 논의할 수 있지 않느냐고 얘기했다』고 설명. 김총재는 이어 『박최고위원은 앞으로 나를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절대 비방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더욱 돕겠다고 했으며 이에 나도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박최고위원을 비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소개. 김총재는 이와함께 『박최고위원은 정주영씨와의 회동·정호용씨와 만난 사실은 있으나 이종찬씨와는 만난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언급. ○의원직 유지 시사 ○…박위원은 이날하오 기자들과 만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신당참여 가능성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데 끼지 않겠으며 그럴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탈당결단의 순수성을 강조. 박위원은 『정치는 원론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며 경험과 경륜이 필요한데 지금내나이에 언제 경험을 쌓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번 탈당은 정치경륜이 짧은 나한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되풀이,김총재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인상. 박위원은 그러나 『한일관계는 지금과 같이 나쁜상황에서 더욱 중요하며 한일의원연맹의 역할도 긴요하다』고 말해 당분간 한일의원 연맹 회장직과 의원직을 계속 유지할 뜻임을 간접 시사. 박위원은 광양에 이틀 더 머무른뒤 오는 12일하오 상경할 예정인데 일요일인 11일에는 측근인 최재욱의원·이동진전의원과 함께 운동을 하며 그동안 피곤했던 심신을 달랠 계획. 박위원은 또 몇몇 민정계의원들이 향후 진로모색을 위해 광양에 내려오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쉬고싶다』며 이를 만류했다고 한 측근이 전언. 한편 박위원은 지난9일 평소 친분이 두터운 다케시타(죽하)한일의원연맹 일본측회장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의 탈당을 알렸다는 후문.
  • 「내각제의 대선공약화」 이견갈등/박태준파동의 시와 말

    ◎노 대통령의 당적이탈 선언후 대사색/9일 측근 통해 김 총장에 탈당계 제출 박태준최고위원으로부터 비롯된 민자당의 동요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그 전말을 엮어 본다. ▷발단◁ 박위원은 9월18일 노태우대통령의 당적이탈선언후 일체의 직접언급은 삼갔으나 간간이 번민의 일단을 드러냈다.박위원은 21일 당무회의석상에서 심경을 피력해달라는 한 당무위원의 요구에 대해 『정말 잔인하다.말하라면 하고 가만 있으라면 있었는데 어떻게 대책을 얘기할 수 있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박위원은 또 『대통령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내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박위원은 당무나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간접화법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며 거취문제에 대한 숙고를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김 총재­박 위원 1차회동◁ 두사람은 9월21일 하오 시내 모 호텔에서 17분동안 밀담을 나누었다.회동후 22일 박위원은 『내가 엄청난 일을 생각하고 있는줄 아는 모양이지』라고 반문하며 『나는 당에 충성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될 것이라는 추측이 오갔다.그러나 이틀뒤 최재욱비서실장은 『박위원이 대사삭에 들어갔다』고 언급해 박위원이 거취문제를 숙고하고 있음을 밝혔다.당내에서는 김총재와 박위원의 단독회동을 다시 추진했으나 양측의 일정때문에 취소됐다. ▷외부인사 접촉◁ 박위원은 9월27일 경제인들의 광양제철소 제4기 준공 축하모임에서 국민당의 정주영대표와 만났다.그후 10월2일과 5일에도 정대표와 회동했다.그로부터 박위원이 향후거취와 관련해 외부인사를 활발히 접촉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박위원은 지난 28일에는 무소속의 정호용의원과도 장시간 만났다.이후 박위원은 김총재를 대신해 당무회의도 주재했으나 30일 포철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허화평의원이 입당하자 상당히 섭섭한 감정을 표현했다.김총재가 허의원 입당문제에 대해 자신과 한번도 상의가 없었다는 것이다.박위원은 이날 하오 중국에서 귀국하는 노태우대통령환영행사에도 광양제철소 행사준비를 이유로 불참했다. ▷노 대통령­박위원 회동◁ 노대통령은 10월2일 광양제철소 제4기준공식이 끝난후 박위원과 20분간 단독회동을 가졌다.이자리서 노대통령은 자신의 당적이탈 배경을 설명하고 박위원의 이해를 구했다.대통령의 「9·18선언」이후 첫회동에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주변에서는 전했다. 3일 상경한 박위원은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고박정희대통령묘소에서 『각하의 혼령이 있다면 이 박태준이가 흔들리지 않고 25년전의 마음으로 돌아가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달라』고 인사했다.박위원은 이날 대우그룹의 김우중회장과도 만난것으로 전해졌다.박위원은 포철회장직 사임에 대한 결심도 이미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포철 회장직 사임◁ 10월5일 박위원은 긴급소집된 포철이사회에 회장직사표를 제출했으며 이사회는 이를 반려하고 박위원이 사퇴한다면 이사 전원도 동반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박위원의 포항행◁ 6일 하오부터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는 박위원의 회장직 사퇴를 반대하는 직원들의 농성이 시작됐다.포철직원 70여명은 7일상오 상경,북아현동의 박위원 자택을 방문해 사퇴의사 번의를 촉구했다. 박위원은 7일하오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참석일정을 취소하고 포항으로 내려갔다.포항제철소에는 농성직원과 가족 1만여명이 박위원의 사퇴번의를 촉구하며 눈물로 호소했고 박위원은 자신이 물러나는 이유를 들며 이들을 설득했다.박위원이 8일 명예회장직을 수락함으로써 회사소요는 진정됐다.박위원이 포항에 머무르는 동안 민자당은 박위원의 위로와 당무복귀를 위한 설득사절 파견을 결정하고 8일 김영구총장·황인성정책위의장을 포항으로 보내 박위원을 설득했다. 이춘구·이한동·박준병의원등 당내 중진의원들도 뒤따라 내려가 박위원과 저녁을 함께하며 향후문제를 논의했고 이자리서 박위원은 민정계의 와해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고 전해졌다. ▷광양행◁ 3일간을 포항에서 머문 박위원은 9일 헬기편으로 광양에 도착했다.광양제철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박위원은 곧바로 숙소로 직행,보도진과의 접촉을 피했다.이날 박위원과 30여분간 독대한 최비서실장은 하오6시30분 상경해 김영구총장과 만나 박위원의 최종 입장을 통고했다. ▷사퇴의사표명◁ 포항과 광양에서 거취문제에 대한 결심을 굳힌 박위원은 9일상오 조용경보좌역을 서울로 보내 김영구총장에게 사퇴서를 전달했다.이어 이날 하오 최재욱비서실장도 서울에 도착,김총장과 비밀리에 만나 박위원의 최종입장을 전달했다.김총장은 저녁9시30분쯤 상도동 김총재 자택을 방문,최실장과의 접촉사항을 보고했고 이자리에서 김총재는 전격 광양행을 결정했다.
  • 장기욱/보사(14대 국회상위장 프로필)

    ◎18세 고시 양과 합격한 천재 경기고 1학년 재학중 대입검정고시를 치러 서울법대에 입학,만18세에 고시 사법·행정양과에 합격한 수재형. 검사시절부터 번뜩이는 기지에 보통사람이 예상키 힘든 기행으로 눈길을 끌기도 한다.동료나 하위당직자 등 주변인사들에게는 인심이 후하다는 평. 12대국회예산안 파동시 재떨이로 국회문을 부쉈다 기소된 것은 유명한 일화. ▲충남서산(49) ▲서울대법대 ▲민주당당기위원장
  • 뉴DJ 이미지 손상우려 “안절부절”/김 대표비서 구속… 민주 표정

    ◎「개인차원 단순사건」… 파문축소 급급/대선서 재야결집 실패 은근히 걱정 민주당은 29일 국가안전기획부가 김대중대표의 개인비서인 이근희씨를 국가보안법및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구속한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파문축소」에 부심하고 있다.더욱이 대선을 두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그동안 공들여 온 김대표의 새이미지구축 성과가 이번 사건으로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며 크게 우려하는 눈치이다. 민주당은 일단 이번 사건을 「개인차원의 실수 또는 단순사건」으로 규정,사건의 진위파악에 주력하고 있지만 가급적 「맞대응」은 자제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전국지구당위원장·국회의원합동회의에서 이비서사건에 대해 언급,『아직 본인을 접견하지 못했고 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더 알아봐야 할 것』이라면서 『진실이 어떻든지 간에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조승형비서실장도 서둘러 발표한 「사과문」을 통해 김대표와 같은 의견을 전했고 기자들에게『이비서가 연행되던 지난26일 당국자로부터 대강의 혐의를 전해 듣고 해임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사과표명에 앞서 민주당은 안기부로부터 이씨연행사실을 통보받고 대책을 논의,『진실이 확인되고 있지 않은만큼 맞대응을 삼가고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언론에 있어서도 민주당은 「숨김없이」이씨의 프로필을 자세히 소개,『이씨가 구국학생연맹사건으로 징역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90년 5월 13대 의원이었던 이상수씨의 비서로 근무하다 91년 9월부터 김대표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이같은 유연한 대응은 정치권으로 이 문제가 확산될 경우 대선에의 위험부담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즉 이비서사건을 사전에 차단,그동안 쌓아온 김대표의 「온건이미지」훼손을 막고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극소화시키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은 예기되는 공안회오리의 전초전』이라고 주장하며 초기단계에서 진화하지 못하면 정부와 민자당의대선전략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이 또 한가지 걱정하는 것은 장기표씨등의 구속을 포함한 이번 사건으로 당초 대선전략의 하나로 계획하던 「범민주·민족세력연합」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즉 「공안파동」으로 재야세력의 결집이 실패로 돌아가면 현재의 「대연합」구도속에 단일후보추대 움직임이 무산되고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곤란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일단 유연한 대응으로 사태추이를 지켜보는 쪽으로 갈 것 같다. 강창성의원이 은밀하게 안기부장·차장등을 만나 진의파악에 나서고 있고 김대표가 당 소속 변호사를 이비서에게 보내 진상을 알아 보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구속된 이씨는 현재 김대표 진영의 30여명 비서진가운데 「막내」로 주로 김대표의 상임위원회활동과 관련,자료수집과 정리업무를 맡아왔다는게 민주당측의 설명이다. 김대표 비서진영은 수행·공보·정책비서진등으로 나뉘어 활동중인데 20∼30대의 학생운동권 출신이 상당수 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재야인사와의 「통로」역할도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영삼 민자당총재 특별회견/대담 강수웅정치부장

    ◎국민 지지받는 정부탄생이 목표/지금같은 과도기 앞으론 없어야/외풍없는 튼튼한 공직사회 꼭 이룩/중립내각은 비정치인사 바람직… 개인적으로 「사색하는 정치인」 추구 노태우대통령이 당적이탈 및 중립선거내각구성을 선언함에 따라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적지않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서울신문은 이에 따라 향후 정국의 주역인 김영삼민자당총재를 비롯,김대중민주,정주영국민당대표와의 회견을 강수웅정치부장을 통해 갖고 앞으로 전개될 정국변화의 내용을 가늠해 본다. 『사색할 시간이 없습니다.사람을 많이 만나고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때는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틈을 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의외로 들려야 할 총재의 첫 말은 비서실장실에서 4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했다.상오10시40분 당사 집무실에서 약속된 민자당 김영삼총재와의 회견은 11시20분에야 이루어졌다.줄을 잇는 방문객들은 김총재가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대통령후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날 아침나절에 김총재가 만난 외부인사만도 고토 도시오(후등리웅)일본대사,학계인사및 내방객 등 30여명이 넘는다. 이런 일정을 쪼개 서울신문과의 특별회견과 대통령선거홍보물 촬영도 했다. 김총재는 줄곧 이렇게 바쁜 시간을 살아왔다.앞으로는 더욱 바쁠 것이다. 이날도 김총재는 30여년간 몸에 밴 습관대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상도동자택 인근 야산에 올라 4㎞의 새벽조깅을 끝낸후 어김없이 마산에 계시는 부친 김홍조옹에게 전화로 문안인사를 했다. 김총재는 대통령후보가 된 이후 준비중이던 미국·중국·일본방문계획도 취소했다. 정치적 고비마다 사색의 장소로 즐겨찾던 산행도 「시간이 없어서」못한다고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견에 응하는 김총재는 여전히 화색이 도는 동안이었다. ­강수웅정치부장=앞으로의 대통령도 당적을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김영삼총재=대통령이 당적을 갖는 것은 정당정치의 기본입니다.책임있는 정치를 구현하려면 대통령은 강력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다만 지금은 과도기입니다.노태우대통령의 임기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정통성있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를 탄생시켜야 합니다.그런 면에서 노대통령의 당적이탈은 또하나의 개혁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강부장=정치사적으로 볼때 지금의 한국정치상황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다고 규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김총재=전체적으로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모든 것이 정리가 안된 국면입니다.그러나 연말 대통령선거를 통해 정리가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결국 노대통령의 탈당으로 약간 혼미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선거후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입니다.국민들은 희망에 부푼 새시대를 맞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시작부터 잘못되면 안됩니다.지난번은 4당체제로 출발했기 때문에 잘못된 과도기적 상황이었습니다.이제 민자당은 국가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반수의석을 갖고 있습니다.이것이 마지막 과도기여야 합니다. ­강부장=국가기간조직인 공직사회는 동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공직사회가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장치에 대한 구상은 무엇입니까. ▲김총재=공무원의 신분은 절대보장되어야 합니다.외람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다면 공무원들의 기강확립과 동시에 흔들림없는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강부장=구체적인 복안이 있습니까. ▲김총재=「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인사가 잘되면 모든 것이 잘됩니다.공무원의 처우개선과 함께 인사위원회를 설치해 공명정대한 인사를 하겠습니다.지역·계층 등 모든 분야에서 치우치는 인사는 절대 안됩니다. ­강부장=김총재에게는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습니다.여론조사 결과도 항상 리드상태에 있지요.따라서 이미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대단히 경계해야할 풍조가 없지 않습니다.이런 시점에서 김총재의 대선전략은 무엇입니까. ▲김총재=제일 금물로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해 주셨군요.선거는 마지막 개표까지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의 상대는 야당이 아니라 내부에 있습니다.방심과 교만·자만심은 절대 경계해야 합니다.안정되고도 강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최우선 목표는 절대안정다수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강부장=일부에서는 정국을 대선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선거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라고 보십니까. ▲김총재=대선을 목전에 둔 3개월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미국같은 경우의 선거분위기만 보아도 그렇고….아무튼 내달초에는 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 정식으로 선거태세에 돌입할 것입니다. ­강부장=중립내각구성에 대한 복안은 무엇입니까. ▲김총재=중립내각의 구성을 위해서는 먼저 정치권의 협의를 거쳐 노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중립내각은 정치권의 인사보다는 정치와 초연하게 대통령의 공명선거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사로 구성되는 것이 좋습니다.최고통치자인 노대통령의 임명권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강부장=개각의 폭은 어떠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총재=너무 많은 개각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선거와 관련되는 필요한 부서만 개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부장=노대통령은 역사의식이 투철한 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김총재께서는 역사에 어떻게 평가받는 인물이 되길 원하시는지요. ▲김총재=단순히 역사에 대통령을 했다고 기록되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정말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부장=향후 당정관계의 정립방향과 공무원사회의 동요방지대책은 무엇입니까. ▲김총재=당정협의라는 형식적 협조체제는 없어질 것이지만 민자당은 정부의 정책적 기조를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노대통령의 당적이탈은 정부의 선거중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통치권과 정책기조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은 아닙니다.개각의 폭을 선거관련부처에 한정지어 가능한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계획이며 중립내각의 구성에 따른 공무원의 인사파동이 재현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강부장=대선에 임하는 민자당과 김총재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김총재=노대통령의 당적이탈은 또하나의 개혁의지를 과시한것입니다.이는 국민이우리당에 지지를 보낼수 있는 하나의 변화라고 할수 있을 것이지요.우리당은 이번조치를 계기로 당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해나가고 앞으로 개혁정당으로 탈바꿈해 나가는데 배전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국민들도 변화의 시대를 주도해갈 우리당의 능력과 경험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부장=선거대책기구구성과 당직개편등에 대한 구상을 말씀해주시지요. ▲김총재=선거대책기구의 인선은 당지도부의 협의와 당내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결정하겠습니다.당직개편 역시 편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필요성이 전제되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당직개편은 아직까지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이에 덧붙여 당공식기구의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근간으로 당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사조직은 자발적인 모임으로 유도하고 사조직으로부터 파생되는 잡음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강부장=노대통령과의 차별화란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진원지가 어디입니까. ▲김총재=노대통령이 비록 당을 떠났지만 이는공명선거를 위한 특단의 조치이지 정치적신뢰와 협력관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노대통령과 저는 민자당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하나인 셈입니다.다른 것이 있다면 시대적소명과 임무가 다르고 개인적인 성격과 정치스타일의 차이일 것입니다. 김총재와의 회견은 짧은 시간만에 끝났다.사색할 시간마저 빼앗겨버린 숨가쁜 대통령후보와의 회견이었다.
  • 공무원중립·신분 보장/인사위설치 등 제도적 장치마련

    ◎책임정치·강력한 정부구현/차기대통령 당적보유 바람직/민자 김영삼총재 본지 특별회견 민자당의 김영삼총재는 23일 10월초로 예상되는 선거중립내각구성과 관련,『개각의 폭은 클 필요가 없으며 선거관련부처에 한정지어 가능한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이날 상오 당사집무실에서 서울신문과의 특별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중립내각 구성에 따른 일체의 공무원 인사파동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노태우대통령이 비록 당을 떠났지만 노대통령과의 정치적 신뢰와 협력관계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중립내각의 인선문제는 야당과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차기대통령의 당적보유문제와 관련,『노대통령이 당적을 떠난 것은 과도기상황에서 공명선거를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지적,『책임있는 정치와 강력한 정부가 출범하려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의 뒷받침이 있어야한다』고 말해 차기대통령은 당적을 보유해야 할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총재는 공직사회안정문제에 대해 『직업공무원의 정치적중립과 신분보장을 위해 인사위원회 설치및 지역·계층에 치우치지않는 인사원칙확립등 제도적 장치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총재는 당체제정비와 관련,『내달초쯤에는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돌입하겠다』고 말했으나 당직개편에 대해선 『당직개편은 편의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필요성이 전제돼야 하며 아직까지는 고려하고 있지않다』고 말했다.
  • 「근대법원 1백년사」 나온다/대법원,95년 발간 목표로 준비

    ◎1895년 한성재판소 설치이후/사법·재판제도 변천 시대별로 점검/「사법부파동」 유발한 판결문등도 수록 우리나라 법원의 근대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엮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1일 법원사편찬실무자회의(간사 윤재윤 서울고법판사)를 열고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사법제도가 도입된 1895년이후의 법원 역사를 총괄한 「법원 백년사」(가제)를 오는 95년에 발간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이를 위해 다음주 안으로 대법원규칙을 새로 마련,김성일 법원행정처차장을 위원장으로 학계·법조계인사를 초빙해 「법원사편찬위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인 편찬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백년사」에서는 구한말인 1895년 을미개혁으로 공포된 재판소구성법에 따라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재판기관인 한성재판소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사법제도와 재판제도의 변천과정을 시대별로 총정리하게 된다. 「백년사」는 특히 시대사 뿐만아니라 각급 법원의 연혁과 「사법부 파동」「법관 서명사건」「박인수사건」등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각종 자료 및 명판결문등도 수록해 사서로서만 아니라 법원자료집으로서도 활용할 수 있게 엮어진다. 대법원이 「백년사」발간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그동안 각급법원별로 변천사등을 정리한 책자등이 몇차례 발간되기는 했으나 우리의 사법제도를 포함한 전반적인 법원사를 정리한 책이 없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이에따라 지난89년부터 각급 법원에 실무자를 지정,기초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대학등에 자문을 구하는 등 준비작업을 계속해 왔다. 처음에는 각급 법원의 연혁과 해방이후의 법원역사만을 실으려 했으나 오는 95년이면 우리나라에 근대적 사법제도가 도입된지 꼭 1백년이 되는 점을 감안,일제치하의 36년이 아무리 질곡과 암흑에 짓눌렸었다 하더라도 그 또한 우리 역사라는 인식아래 이를 모두 포함시켜 「백년사」를 꾸미기로 뜻을 모았다. 대법원은 「편찬위원회」가 발족되는대로 그동안 수집한 각종 자료등을 정리한 뒤 집필위원을 선정,「백년사」의 집필을 위촉할 예정이다. 법원 관계자는 『백년사의 발간은 그동안 한번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근대이후 우리 법원의 역사를 완비한다는데 의미가 이다』고 밝히고 『특히 단순한 홍보책자가 되지 않기 위해 원고의 집필을 가급적 법원인사가 아닌 학자등 외부인사에게 의뢰,엄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감없이 정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혼미의 태정국 수습 실마리/아난 과도내각 출범의 의미

    ◎「5월 유혈사태」 원만처리 기대/집권 군부세력 향배가 변수로 지난 5월의 유혈시위사태이후 짙은안개에 싸였던 태국정국은 10일 문민정치를 지향하는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중립적인사가 위기관리정부의 수반으로 임명됨에 따라 일단 수습의 실마리를 찾게됐다. 선거내각을 구성하게될 아난 판야라춘 신임총리는 지난 91년 2월의 군사쿠데타후 수친다가 친군부정당들에 의해 총리로 지명될때까지 1년간 과도내각을 이끌어온데 이어 또다시 새로운 민선정부구성이라는 중책을 맡게됐다.위기관리의 해결사 아난전총리를 총리로 재기용한데 대해서는 그간 태국정계를 실질적으로 장악해온 군부측이나 민주세력 어느 쪽에서도 아직은 불만의 소리가 나오지않고 있다. 이는 유혈진압,야당과 시위주동자 체포등 모든 강경책을 동원했음에도 사태장악에 실패한 군부나 압도적 물리력에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희생을 치른 야권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태국국민들의 관심은 아난내각이 앞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두 열차」의 요구를 어떤 방향으로 수렴하고 수친다전총리의 사임과 개헌파동을 야기한 5월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고 정통성있는 새정부를 출범시키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정은 아직 잡혀있지 않으나 국회해산과 총선등 아난총리가 맞닥뜨릴 난제들은 쉽게 해결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번 시위사태로 인한 수친다총리의 퇴진은 「정치의 장」에서 군부의 위상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현군부집권세력이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수친다사임이후 후임총리 선출과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문제를 놓고 친군부 5개여당과 군부가 기득권 고수에 집착한 나머지 솜분 라홍(전공군사령관)차트 타이당 당수를 총리후보로 내세워 기존체제 유지에 총력을 기울인데서도 이를 엿볼수있다. 반면 4개야당을 비롯한 민주세력이 시위대에 대한 발포 책임자들의 재판회부를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군부측과 쉽사리 타협을 볼수없는 향후 태국정국의 최대변수가 되고있다. 그러나 태국정정을 불안케하는 많은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10일 국회에서 의결된 개정헌법에 명시됐듯이 군이 직접권력을 장악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5월사태는 이 나라의 점진적인 민주화를 향한 예고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태국 현대사에서 처음 맞게될 민선정부는 왕실을 정점으로 이 나라를 이끄는 군·관료·불교라는 대표적인 3대 세력에 중산층이 신진세력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0년대들어 연간 10%의 꾸준한 경제성장으로 수도 방콕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산층이 「민중의 힘」에 가세,태국군 역사상 최고의 단결력을 과시하던 군부의 기세를 꺾고 민주화를 향해 강한 목소리를 낼수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군도 군복을 입은채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앞으로 특정정당과 연계해 그들의 대표를 정당에 투입,정치에 관여하는 새로운 정치개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태국의 민주화는 이번 중립 과도내각의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출발선상에 들어선 것으로 볼수있겠다.
  • 체코연방 총리지명자 클라우스/프라하 출신… 열렬한 시장경제 지지자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으로부터 차기 체코슬로바키아연방 연립정부 구성을 요청받은 바츨라프 클라우스 재무장관은 체코지역 출신의 열렬한 자유시장경제 지지자. 그는 지난 89년 연방재무장관직에 오른 이래 국가통제경제의 신속한 민영화를 추진해왔으며 아울러 대부분의 대형 국영기업체들을 민간에 매각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도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지난 41년 프라하에서 출생한 그는 63년 프라하 소재 경제대학교를 졸업한 뒤 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일했으며 66년과 69년에는 이탈리아및 미국의 코넬대학에 유학. 그는 69년 8월 바르샤바조약군의 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는 개혁물결이 분쇄되고 뒤이어 몰아닥친 반체제인사 숙청파동으로 진보적 공산당원 및 지식인들이 고위직에서 추방될 당시인 70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해임됐다. 이어 71∼86년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립은행의 하급직을 거쳐 87년 집권 공산당이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프라하예측연구소내 개혁성향 경제학자그룹의 일원이 됐다.
  • 「YS체제」구축 행보(대선정국:3)

    ◎범여권결속이 대선승리의 최대과제/14대 원안전운용위해 무소속영입 본격화/「33%의 반대표」 끌어안기에도 포용력 발휘 어렵사리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자리를 획득한 김영삼민자당대표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범여권의 결속일수 밖에 없다. 40년 가까이 야당생활을 해온 정치지도자인 그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12월 대선에서의 정권재창출과 직결되는 바로 이같은 절대절명의 과제를 위해 김대표는 후보로 결정된 5·19전당대회직후 최규하·전두환두전직대통령과의 단독회동을 비롯,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김후보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이미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33%에 달하는 반란표 즉,「반YS세」를 껴안지 않고는 대선승리가 어렵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절대적 지지를 못받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야당과의 정권싸움에서 총력전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이종찬의원이 33%의 대의원표를 등에 업고 대중적 이미지의 강점을 살려 끝내 독자출마를 감행할 경우 김대표의 대선승리는 커다란 암초에 부딪칠수 밖에 없다. 따라서 김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당지지로 드러난 반민자당분위기를 어루만지는 작업과 함께 범여권의 두터운 신뢰를 쌓아나가는 벅찬 일을 병행해야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는 셈이다. 우선 김대표는 지난 21일 최전대통령을 사저로 방문,여당대통령후보로서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를 갖춘데 이어 22일에는 전전대통령의 사저를 예방,범여세력의 단합과 응집력을 강조하면서 협조를 요청했다. 김대표와 전전대통령간의 이날 단독대좌는 집권당의 정권재창출문제를 비롯,5·6공화해 등에 관해 폭넓은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특히 전전대통령과의 만남은 5공세력과의 화해에 일단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수 있다.사실 김후보측은 지난연말부터 자신으로의 집권당 대권후보를 상정,연희동캠프와 꾸준한 관계개선 노력을 기울여왔다. 김후보가 끝까지 공천을 고집했던 박희도전육참총장과 고명승전보안사령관이 충실한 가교역할을 떠맡았으며 최근에는 전전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권익현구민정당대표가 김후보추대위의 공동위원장직 제의를 수락,양쪽 진영간의 「밀월」얘기까지도 나돌았다는 것이다. 김후보진영은 따라서 민정계원류의 정신적대부격인 전전대통령측과의 관계개선이 급속도로 진행될 경우 33%의 반란표 대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미 김후보와 지난21일 단독회동을 가진 정호용당선자를 비롯,허화평·김상구당선자 등 무소속 5공인사들의 대거 민자당입당이라는 망외의 소득까지 바라볼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후보는 이처럼 범여세력의 결집에 도움이 될수 있는 인사라면 과거의 성향이나 친소관계를 떠나 어느누구라도 만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비추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 79년 신민당총재제명사건 당시 YS제명에 앞장섰던 유기준의원에게도 공천을 준 김후보의 포용력을 예로 들며 반대파의 마음돌리기에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작업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하는 선결과제는 바로 이의원의 처리문제다. 이의원처리 문제에 따라 김후보의 포용력 크기가 드러날 것이고 이는 범여결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청와대측의 강경노선에 비해 김후보 측은 『전당대회 이전 상황은 불문에 부치겠다』는 유화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전당대회에서 표로 나타난 비주류를 포용해야 한다는 김후보 입장과 이의원이 과연 협력할 수 있을 것인지를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징계방침이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혀 전당대회 직후 조기제명 등 강경분위기가 수그러들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의원이 기어이 독자출마의 수순을 밟을 경우 그의 중징계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며 이 경우에도 이의원 동조탈당인사를 극소수에 국한시켜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복안이다.아울러 이의원 주변인사에 대한 회유와 설득등 「가지치기」도 계속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의원진영이 이날 14대당선자 8명을 비롯,지구당위원장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실상 신당 결성추진을 뜻하는 「새정치모임」발기인대회를 가져 김후보의 주류측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귀추가 주목된다. 이와함께 무소속 당선자중 친여성향을 가진 인사들과의 물밑 맨투맨 접촉을 강화,원내의석 1백60여석 정도를 확보해 집권당의 안정기조를 유지함은 물론 범여세력의 결집에도 한몫을 기대하고 있다. 이승무(점촌·문경)김길홍(안동시)최돈웅(강릉)하순봉(진주)당선자등 4명이 이날까지 입당을 완료했고 정필근(진양)박헌기(영천)성무용(천안시)당선자 등도 다음주중으로 정식입당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무소속 5공인사까지 합치면 무소속영입은 당초 기대치를 뛰어넘는 10명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밖에 김후보는 과거 범여세력의 충실한 받침대였던 관계·재계의 분위기가 지금은 자신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고 판단,동원 가능한 채널을 풀가동해 이들에게 대선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는 계획이다. 결국 여권 체질화를 위한 김후보의 이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물리적 통합에 그쳤던 3당합당을 화학적 통합으로까지 끌어올리고 3공이후의 자신에 대한 거부정서를 순화시켜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를 기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당대회에서의 경선 거부파동은 그에게 닥친 첫번째 시련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범여권 결속을 다지기 위한 하나의 희망적 계기가 되었다고도 해석되는 것이다.
  • 꼬리 못떼는 「재벌당」/국민 대선기획 현대지원 “말썽”

    ◎그룹내 「비밀선거조직」드러나자 당혹감/당핵심 현대맨이 장악… 위원장들과 마찰 국민당은 정주영대표의 「이론무장」지시에 따라 21일 경기도 양평에서 서울시지구 당위원장들을 상대로 대선전략세미나를 여는등 활발한 대선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민자·민주당이 당내 대권후보경선파동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국민당은 소리없이 내실을 다지며 반사이익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국민당의 내부사정 또한 민자·민주당못지 않게 복잡한 처지라는 분석이다. 그중에서도 현대그룹과의 유착관계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문제가 국민당의 선거준비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총선이 끝난지 2개월여가 지났음에도 불구,최근들어 현대그룹내의 국민당비밀선거운동조직의 실체가 새롭게 거론되는 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 「제도개선위원회」란 이름으로 위장한 선거사령탑이 현대전종업원의 86%를 국민당원으로 조직화하는가 하면,1개월만에 2백30만명의 당원을 모집하는등 실질적으로 국민당의 총선을 대행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물론 현재는 이 「제도개선위원회」가 해산됐다지만,대선전이 본격화하면 유사한 기구가 언제든지 재가동될 가능성이 큰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대표의 단절선언에도 불구,『국민당과 현대와의 관계는 뗄래야 뗄수 없는 사이』라는 비판론이 더욱 설득력을 발휘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사실 정대표를 포함한 국민당당직자들은 대선에서 현대의 측면지원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이다.조직이 취약한 국민당으로선 어쩔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당은 이를테면 「사재의 사회환원」같은 충격조치를 통해 정경유착시비를 희석시키는 일방으로 현대와의 내부적 관계는 지속시켜 나간다는 양면전략을 세운 것으로 관측된다. 정대표가 『현대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면서도 『현대직원들이 구국의 신념으로 국민당을 도와주는 것을 적극 권장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이같은 양면전략의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당지도부의 이런 속셈은 최근 현대측으로부터 적지 않은 반발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그룹수뇌부들은 국민당과의 유착이미지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현대뿐이라는 인식하에 가시적인 「단절」조치를 취하는 외에 내부적으로도 정대표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고 들린다. 국민당내에서도 이른바 「정치인」그룹들을 중심으로 현대와의 관계재정립을 요구하는 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한 지구당위원장은 『지난 총선때 「보좌역」이란 이름으로 현대출신 인사들이 파견돼 「시어머니」역할을 했었다』면서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재현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같은 안팎의 비판론에 대해 정대표는 『나라를 구하는 일인만큼 일부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강경태도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대를 통한 우회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여권심층부와 절충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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