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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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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당의 안보인식(사설)

    북한의 핵게임이 긴장을 몰아오고 있는 가운데 야권인사의 조문재론에 이어 민주당이 대통령의 대북경고에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은 안보를 저해하는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자세다.선거를 앞둔 야당의 무분별한 안보의 정쟁화는 지양되어야 함을 우리는 강조한다. 지난 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KAL기폭파사건을 떠올릴 것 없이 북한이 우리의 선거철을 도발책동이나 위장평화공세의 호기로 삼아온 지난 50년 가까운 경험은 냉전종식속에서도 계속되는 대결상황에서는 경계되어야 한다.국론분산과 기강해이를 동반하는 정치대전인 선거는 그만큼 구조적인 안보취약기가 된다.따라서 만반의 대비테세를 갖추는 일은 안보의 기본명제이며 북핵합의이행의 현안이 겹친 최근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때문에 대통령이 대북 합의이행촉구및 경고발언을 한 것은 헌법상 안전보장책무를 다하려는 「당연하고도 필요한」 국정수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것이 북한을 자극하여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할 우려가 있고 지방선거의 득표전략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난했다.이대로라면 우리정부는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지 선거때는 참는 것 이외에 가만히 있을 도리밖에 없게 된다.더구나 최근의 긴장조성은 안기부폭파를 선동하고 전쟁발발을 공언하는 등의 자극적 발언을 한 북한측에 따질 일이지 우리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민감한 시기에 야당이 왜,누구 때문에 대통령의 대북경고에 물을 타서 북한에 이로울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대북경고가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야당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그렇지 않고 조문파동의 재론이나 대북자극불가론이 표가 된다는 판단을 야당은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경우든 정부의 안보수행을 방해하고 국민여론에 혼선을 일으켜 안보허점을 만들게 될 「안보의 당략적 이용」은 북한에 오판구실을 주어 결과적으로 국민불안과 긴장을 자초하는 자해행위가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 “민선 서울시장감 찾습니다”/민자지도부 속앓이

    ◎최병렬 현시장 후보경선 사양/제3인물 영입작업도 어려움 서울시장 후보감을 둘러싼 민자당의 고민이 좀체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희망자 아직 없어 당에서 마련한 원안은 최병렬 시장과 이명박 의원을 경선에 붙이는 것.그러나 최시장은 아직도 사양하고 있다.이춘구 대표가 몇번 전화 등을 통해 의사를 타진했지만 무위에 그친 것으로 알려진다.여기에다 최시장은 최근 한남동 풍치지구 파동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명박 의원은 후보 경선에 나설 의사가 분명하지만 당지도부의 판단은 「약하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꾸준히 진행해 온 제3의 인물 영입작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정원식 전 국무총리,고건 전 서울시장 등도 모두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눈치다.또 이들을 내세우더라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민자당의 고민. 한때 김우중 대우그룹회장,배순훈 대우전자회장 등 전문 경영인을 서울시장후보로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했다.하지만 본인들도 별로 뜻이 없는데다 당 안에서도 이론이 많아 일단 보류됐다. 일각에서는 이홍구 국무총리,나웅배 통일부총리를 전격적으로 추대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박찬종 의원의 영입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검토대상에 오른 인사가 이회창 전 총리와 조순 전 부총리.이들은 여야가 모두 영입을 추진하다 실패한 인사들이다. 특히 김덕룡 사무총장쪽은 이전총리에게 관심이 높다.김총장의 한 측근은 『삼고초려의 생각으로 이전총리의 영입을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김총장은 이전총리와 이미 접촉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전총리도 26일 『서울시장선거에 안 나가겠다고 몇번이나 밝혔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이 전총리에 미련 이제 민자당은 선택의 마지막 기로에 들어섰다.출마자의 공직사퇴시한은 29일.이번 주초에는 최시장을 사퇴시켜 출마하게 하느냐,아니면 시간을 더 갖고 영입작업을 계속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김총장을 중심으로 한 당의 상당수 인사들은 「최병렬카드」를 포기하고 지구전으로 들어가자는 쪽이다. 이에비해 청와대나 이춘구 대표 등 핵심들은 28일쯤 최시장을 일단 사퇴시킨 뒤 야당의 후보결정에 대응해 그를 출마시키거나 제3의 인물을 영입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최시장을 계속 「대상자의 하나」로 남겨두길 원하고 있다.최시장을 사퇴시키기 위해서는 청와대 혹은 이대표가 직접 나서야 한다.
  • 대전환기­문민정부의 신항로/박관용 정치특보 「신문로 포럼」조찬연설

    ◎행정구조 개편 선거 관계없이 꼭 실현돼야/기득권층 반개혁 구태 「국민 심판」 받아 마땅 박관용 대통령정치특보는 24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대전환기­문민정부의 신항로」를 주제로 열린 「신문로포럼」 주최 월례조찬회에서 개혁과 세계화 지방화에 대한 견해를 발표했다.발표내용을 요약해 본다. 냉전종식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지방자치제 실시등은 우리가 당면한 전환기적 「도전」이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의 손으로 선택된 김영삼정부가 변화를 주도해 나간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개혁은 방법에서부터 새로워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김영삼정부는 이를 「윗물맑기 운동」에서부터 실천해왔다. 새 정권에 돈을 바치고 보호를 구매하는데 길들여진 기업들은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믿기는 커녕 불안해 하기까지 했다.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만나 기업의 경쟁력 육성을 약속하고 부패의 근원인 행정규제의 완화를 약속하고 나서야 의심이 풀리기 시작했다. 규제완화는 이제 공무원들이 아닌 민간 주도로 새롭게추진돼야 하며 김대통령 임기내내 추진될 것이다. 지난해말 단행한 정부조직 개편도 같은 맥락에 서 있으며 행정계층축소등 행정구조개편도 선거와 관계 없이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이를 선거연기음모로 비약하는 사람들을 본다.개혁은 혁명처럼 무력을 쓸 수도 없고 합법성과 국민에 대한 설득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고 있다. 개혁총론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80∼90%에 이를 정도로 충분하다.그러나 각론에 가서는 조그만 불편에 부딪혀도 즉각 불평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정통성 도덕성에 대해 의심받지 않는 정부가 총론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 줘야 개혁이 밑으로 확산된다. 시행착오나 정책 인사의 혼선에 대한 비판은 수용하겠지만 비판속의 협조는 유지돼야 한다. 반미를 통치수단으로 삼는 북한은 북­미수교가 이루어질 때까지 남북대화를 거부하려 할 것이다.따라서 동서독의 전례처럼 인내를 갖고 접촉,대화를 유도해야 한다. 최근 김일성 조문 파동과 연관지어 정부의 북한정책을 비판하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그 때의 상황을 무시한 적절하지 못한 비판이다. 지방자치제는 중앙정치의 인질이나 모조품이 돼서는 안된다.인력·자원의 재생력을 갖는 경쟁단위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의 외자유치를 위한 법령·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며칠전 광역단체장 출마희망자를 만나보니 「봉건영주」를 꿈꾸고 있었다.전문경영인을 「모셔」 일어선 일본 이즈모시를 모범삼아 지방자치제에 대한 인식전환에 지식인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이합집산을 통해 지난 시절의 향수에 집착하는 기득권 집단이 있다.그들은 진정한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도 없다.새정부 초기의 침묵에서 벗어나 뭔가 틈새를 찾으려 하고 언젠가는 정부에 맞서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사회는 권력과 어떤 집단이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며 공권력의 동원은 탄압으로 불리기 쉽다.문민정부는 합리적 설득과 여론및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그들의 구태가 정도를 벗어나면 용서할 수 없겠지만 문민정부는 정당한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 DJ「조문」발언/여야 비난·옹호전 가열

    ◎민자/“은퇴했으면 선거 앞두고 처신 투명해야/민주/“정계원로로서 필요한 얘기 할수 있는것”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22일 김일성 조문파동 등과 연관지어 정부의 북한정책을 비판한 데 대해 민자당은 23일에도 이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 이사장을 적극적으로 옹호,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민자당◁ ○…이미 여론의 여과과정을 거쳐 매듭지어진 김일성 조문 논란을 6개월이 지나 새삼스레 끄집어 낸 김 이사장의 「저의」를 부각시키며 지방자치선거를 계기로 김 이사장이 정계복귀를 시도하려는 사전포석으로 해석. 김덕룡 사무총장은 이날 『남북문제가 민감한 시기에 사견을 자꾸 얘기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김 이사장이 말하는 정부의 적절한 조치라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 고위당직자회의에서 현경대 원내총무는 『김이사장의 얘기는 결국 조문을 하라는 얘기이며 「적절한 조치」란 사과를 하라는 소리 같다』고 말한 뒤 『임동원 전통일원차관을 아태재단에 끌어들이더니여권인사 여러명과 접촉하면서 이름만이라도 참여시키느라 분주하다는 얘기가 있다』고 김 이사장의 「정치적」 움직임을 겨냥. 회의가 끝난 뒤 박범진 대변인은 『남북관계가 미묘한 시기에 그런 발언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는데 목소리가 일치했다』고 전하고 『특히 지난번 선거법 개정 때도 명동성당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데 이어 경수로 타결시한이 한달도 남지 않은 시기에 조문논란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북한의 입지만 넓혀줄 우려가 있다』고 비난. 박 대변인은 『김 이사장은 조문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여론이라고 하지만 국민여론은 정반대』라고 일축. 김영일 정세분석위원장도 『정계를 은퇴한다고 선언을 했으면 선거를 앞둔 시기에 처신을 투명하게 해야 정치개혁이라는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라고 공격. ▷민주당◁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또다시 김 이사장의 사상과 정계복귀를 문제삼고 있다고 판단,그 의도를 경계하면서 선거에 미칠 파장을 막기 위해 안간힘. 이를 반영하듯 박지원 대변인은 전날 김 이사장의동교동 자택에 들러 민자당 공세에 대한 의견조율을 거친 데 이어 23일 6개항에 걸친 장문의 성명을 발표.박 대변인은 우선 『국가보안법과 북한형법의 개폐문제는 지난 92년 발표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들어있는 조항으로 당시 우리 정부가 제의했었다』고 전제하고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김 이사장이 말하면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냐』라고 「용공음해」의 재판이라고 주장.또 『김 이사장은 6·25전범인 김일성에 대한 조문을 주장하지 않았다』면서 『단지 북한을 매도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등 적절하지 못한 대처를 지적했을 뿐』이라고 해명. 박 대변인은 김 이사장의 정계복귀에 대해서도 『지방선거가 끝나도 김 이사장은 정계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김 이사장도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전언. 그러나 박 대변인은 『김 이사장이 정계복귀를 않겠다는 것은 정당대표나 공직선거의 후보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지 정계원로로서 필요한 얘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여운.
  • 이춘구­김덕용룡제 열흘/민자호/계파의식 희석­당직자 융화 “진전”

    ◎「출신」 불문 대표실 찾는 인사 크게 늘어 지난 14일 저녁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당직자를 위해 베푼 청와대 만찬장.김 대통령은 『이춘구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하라』는 당부를 다섯 차례나 거듭했다. 민자당의 이 대표­김덕룡 사무총장 체제가 출범한지 17일로 열흘이 된다.이 대표­김 총장 체제는 새로운 민자당의 앞날을 가름짓는 시험무대이다. 때문에 김대통령은 「이대표 중심」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이대표가 제대로 못한다는 평가를 받으면 김대통령에게도 누가 될 것이다. 이대표가 취임한 뒤 민자당이 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계파의식이 다소라도 옅어지고 있다. 우선 대표실을 찾는 면면이 다양해지고 숫자도 많아졌다. 김종필 의원이 대표로 있을 때는 주로 공화계 의원들이 대표실 주변을 맴돌았다.이 대표 취임 뒤에는 계파를 불문하고 의원들이 부담 없이 대표실을 방문하고 있다.민정계 의원들의 발길이 잦은 점도 눈길을 끈다. 15·16일 이틀동안 오세응·정필근·오장섭·김영진 의원등 그동안 당에서 소외당한 듯한 인사들 다수가 대표실을 방문했다.최형우 의원도 다녀갔다. 특히 당직거부 파동이나 「JP(김종필 의원 애칭)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거론되던 의원들도 이대표를 찾아 처신을 협의했다.번형식의원은 부총무직을 고사한 것이 당명을 거역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조용직·김동근의원은 신당에 가지 않고 당에 남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이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당직자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이대표는 모두가 「관리자」라고 여긴다.대권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따라서 민정계건,민주계건 그에게는 비교적 솔직하게 자기 처지를 털어 놓을 수 있다. 김덕룡 총장,현경대 총무,이승윤 정책위의장등 어느 당직자도 이대표에게는 숨길게 없다.「이런 얘기를 하면 저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라고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대표와 김 총장은 성향이 다르다.보수와 개혁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핵심 당직에 나란히 앉았다는 것은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날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두사람 모두는 밖으로 불협화음이 나오게 할 정도로 우둔하지도,거칠지도 않다.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민감한 사안이 터졌어도 당직자 사이에 갈등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대표의 노련함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표­김 총장 체제가 출발부터 순탄한 것은 물론 아니다.김종필의원의 탈당과 고전이 예상되는 지방선거등 난제를 안고 시작했다.일부의 당직거부 파문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어떤 자리를 맡겨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대표와 김 총무가 이번에도 성공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새 지도자 육성에 최선 다할것”

    ◎민자 새대표 이춘구는 누구인가/청렴·성실성 돋보이는 「원칙론자」/공사구분 엄정… 확실한 일솜씨/성격 다른 3개정권 이어가며 중용 “진기록” 민자당의 이춘구 신임대표는 과묵하다.지난 89년 「5공청산작업」이 한창이던 때 기자가 취재를 위해 그의 자택을 찾았다.이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이어 집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며 『이제 가 봐』라고 말했다.단 두마디뿐이었다. 그러나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니다.그의 말은 그대로 옮겨 적으면 신문기사가 되었다.논리정연하기가 이를데 없다. 이대표가 지나가면 찬바람이 돈다.워낙 원칙에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만나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든다. 민정당 사무총장 시절,달리던 차를 세우고 비서관을 내리게 한 일은 유명하다.비서관이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자 남산 순환도로에서 내려 걸어가게 했다. 그의 차가운 인상은 외모에서부터 나온다.「동상」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굳은 얼굴이다.깡마른 체구,푸른 빛이 도는 얼굴과 눈빛.함부로 친해지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대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의 「따뜻한 가슴」을 느낀다.누구에게도 잘해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어느 자리에 가든 부하직원들이 처음에는 무서워한다.그런 직원들도 그가 떠날때면 모두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민정당 총장 시절.사무처 요원들은 그를 「노랭이」라고 비난했다.당경비 지출을 결재받기가 보통 힘든게 아니었다.어느날 상당한 예산이 책정된 사업이 고위층의 지시로 중단되었다.직원들은 남은 예산을 반납하려 했지만 이대표는 『그 부서 예산이니 알아서 다른 곳에 쓰라』고 했다.배포가 크다고 평가가 바뀌었다. 새정부 들어 「6공」인사들이 대거 수난을 겪었다.모두 멈칫거리고 면회도 못갈때 그는 달랐다.의리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대표는 충북 제천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계에 들어오기 전의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군시절 포병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여전히 달동네에 살았다는 정도가 알려진다. 80년대초 그가 「5공」정부의 핵심으로 등장한 것도 다른 군출신과는 다르다.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과 군시절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청렴하고 성실한 군출신을 구하다 보니 육사 14기의 대표주자로 선발되었다. 15년동안 정부·여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맡긴 일은 틀림없이 한다」는 평가가 그를 따라다녔다.전·노 두 전대통령은 물론 김영삼대통령까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를 찾곤 했다.군출신이라는 핸디캡은 능력과 성실성,청렴함 앞에 빛을 잃곤 했다. 「5공」에서 사무총장,「6공」때는 정권창출의 1등 공신으로 내무부장관에 이어 사무총장을 두번 지냈다.새정권에서도 국회부의장을 역임하다 드디어 당대표에까지 올랐다.그는 성격이 다른 3개의 정권을 이어가며 중용되는 진기록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공」을 앞세우면서도 근본의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국회부의장으로 「예산안 변칙처리파동」을 겪긴 했지만 그것도 조직의 이해를 우선한 탓이라는 너그러운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그가 살아온 곧은 길,그의 독특한 인간성 때문이다. ◎이춘구 새대표 인터뷰/세계화 민자당/“당내대화 활성화… 선진정책 제시/국민신뢰바탕 지방선거 꼭 승리” 『당의 민주화를 위해,또 앞으로 당과 국민을 위해 선진화된 정책을 항상 앞서 제시하는데 역점을 두겠다』 어느 때보다 무성했던 언론의 하마평에서 비켜서 있다 6일 밤 급부상,7일 전당대회장에서 마침내 당의 얼굴로 등장한 민자당의 신임 이춘구대표는 『이제 제도가 갖추어진 만큼 국민의 뜻이 수렴될 수 있도록 당내에서 많은 토론과 대화를 가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대표는 이날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표직을 통보받은 시기를 묻는 질문에 『언제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면서도 『충분히 시일의 여유를 두고 받았다』고 말해 최소한 2∼3일 전 청와대로부터 언질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대표 지명 배경에 대해서는 『당의 단합이라는 차원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제선거가 오는 6월로 다가왔다.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복안이 있는가. ▲특별한 복안은 없다.그러나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당이 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남은 기간 국민들의 지지가 우리 당에모아질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가겠다. ­지난 2년 동안 민자당을 바라본 느낌은. ▲3당합당 이야기를 또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그러나 그동안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화학적 결합이 잘 되지않아 당내에 마치 무언가 갈등이 있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불안을 준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총재와 새 대표가 8일 새 당직을 발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당직을 어떻게 짤 것인가. ▲불과 20분 전에 대표가 됐다.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 생각을 해 보겠다.당직인선은 당의 안정을 위한 결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갈 것인가. ▲어차피 국희부의장은 당직을 겸하지 못한다.지금 이시간에 사퇴서를 내지 않을 수 없다.앞으로 당 대표로서 잘 해나갈 것이다. ­전임 대표인 김종필의원의 탈당과 신당 창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유감스럽다.피차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김대통령은 이대표를 「차세대를 기르는데 모든 것을 바칠 분」이라고 했다.본인이 차세대의 주역이 될 생각은 없는가. ▲나는 지금까지언제나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왔다.앞으로도 성실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대표가 세계화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는데. ▲세계화에 적합한지 아닌지가 나이를 기준으로 하나,사고를 기준으로 하나.나는 이 자리를 명예롭게 생각한다.나는 지금까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민주/내외연 세불리기 재시동/KT견제·8월전대 겨냥 의원영입 분주

    민주당의 동교동계 중심 의원모임인 내외문제연구회(내외연)가 다시 「몸 불리기」에 나섰다.전당대회문제를 둘러싼 내홍을 가까스로 봉합,한숨을 돌리고 나자 곧바로 세력확장에 돌입한 것이다.소속의원이 58명에 이르러 이미 단일계보로서는 한계체중을 넘어선 모습이지만 아랑곳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내외연」의 언저리에서 거명되고 있는 인사는 대략 6명가량이다.정대철 고문계로 분류되는 조윤형·조순승·김종완·조홍규의원의 가입은 기정사실화된 듯하다.정고문은 『그들은 이미 행동을 통일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가입시기만 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동교동계의 수장 권노갑 최고위원도 이들의 가입을 확인하고 있다. 이들 말고 이해찬의원과 이철의원도 거론되고 있다.두사람 모두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발 빼고는 있다.그러나 『못들어갈 이유도 없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다만 이해찬의원은 얼마전 「개혁모임」을 탈퇴한 터라 당장 움직이는 게 마뜩찮은 눈치다.이철의원은 가입에 앞서 서울시장후보에 대한 언질을 받았으면 하고바라는 것 같다.이와 관련,이의원은 지난 3일 정고문을 장시간 만나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향은 다르지만 동교동계가 독자적으로 중량급 외부인사의 영입에 분주한 것도 세력확장의 하나로 볼 수 있다.성사여부는 불투명하나 조순전부총리를 비롯해 전직장관 L씨등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동교동계가 이처럼 세확대에 허기(하기)들린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선 오는 24일 전당대회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당헌개정으로 권한이 강화될 「이기택총재」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수적 우위를 보다 확실히 해두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행보는 보다 멀리,오는 8월전당대회를 목표로 잡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예사롭지 않다.「포스트 KT(이기택대표의 애칭)」,즉 이대표를 배제했을 때의 대안을 찾는 일과 맥락이 이어지는 것이다.지난달 전당대회 파동때 동교동계는 지역적 특장을 내세운 이대표의 「탈당협박」에 곤욕을 치렀다.때문에 대안부재의 아쉬움이 어느 때보다 간절해진 상태다.당권도전을 선언한 정대철고문의 측근들이 대거 「내외연」에 가세하는 것은 바로 향후 당권구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그의 당권도전에 대해 동교동계는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심 견제카드로서 그의 존재가 예뻐보일 지도 모른다.
  • “사람 오가자” 대북교류 적극공세/정부의 교류제의에 담긴뜻

    ◎평양의 현실성없는 선전공세에 쐐기/수용가능성 희박… 「핑퐁 제의」우려도 정부가 발표한 대북 제의는 각종 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덕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이날 대북 제의의 3가지 골자는 겉보기에는 새로운 내용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의의 시점이나 강도를 고려한다면 전례없이 유연하면서도 공세적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언론인 상호취재 허용에서부터 우리 기업인의 판문점 왕래허용 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제의내용은 기존의 정부 방침의 테두리에 있는 희망사항들이다.이들 현안들은 지금까지 북한이 소극적 또는 부정적 자세로 인해 벽에 부딪힌 숙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산가족 교류나 언론인의 방북취재 제의는 우리로선 유연한 제스처일지 모르나 북한의 입장에선 「양날의 칼」로 받아들일 소지도 있다.북한당국이 대외 이미지 개선과 외화벌이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4월 평양축전을 무대로 이 두가지 문제를 제기한 탓이다. 우리 기업인들이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 왕래할 수 있는 길을 트라는 제안도 우리로서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취할 수 있는 「꽃놀이패」다.하지만 남북경협시 당국의 개입을 거부하며 제3국에서 우리측 개별기업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경쟁을 유도해온 북한으로선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공세적 제의일 수도 있다. 더욱이 이산가족들간의 생필품 교환추진을 제기한 것은 북한의 입장에선 「압박카드」로 비쳐질 수도 있다.북한이 체제동요를 우려해 이산가족의 서신교환 등 최소한의 인도적 교류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강도 높은 처방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꺼리는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이 선회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요컨대 북한의 반응과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 유도에 도움이 된다면 과감하게 밀고나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관계개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과거 서독 브란트정권시절 베너 전내독성장관이 추진한 「작은 발걸음」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그러나 한걸음씩 남북관계 개선을 향해 나아간다는 우리의 입장에 북측이 호응해 올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한마디로 이번 제의가 4월 축전에 북측이 남쪽 인사들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관측에 기초하고 있으나 실현가능성은 엷다는 얘기다.북측이 우리측 이산가족의 축전참관 무조건 허용발표를 할 가능성도,이 문제를 논의할 당국간 회담에 응할 소지도 모두 적은 것이다. 오히려 선별초청 등을 통해 우리 내부분열을 노리는 역공세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이 경우 이번 제의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8·15 공동경축행사와 「대민족회의」제의 이후 불붙기 시작한 남북대화를 둘러싼 「핑퐁식」공방전으로 의미가 희석될 우려가 있다. ◎김총리의 일문일답 내용/「당국자회담」 북·미합의 이행과 연계/이산가족 북 원하면 얼마든 보낸다 다음은 김덕 통일부총리와의 일문일답. ­이번 고위당국자 회담제의는 지난달 25일 차관급 회담제의를 다시 수정해 제의한 것인가. ▲차관급회담제의는 제의대로그대로 유효하며 이번 고위당국자 회담을 새로 제의한 것이다. ­이번에도 차관급회담에 이어 당국자 회담을 제의했는데. ▲모든 문제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당국자간 회담이 필요하다. ­북측이 「대민족회의」제의에 이어 정당회담을 제의한데 대한 정부측 입장은. ▲북측이 정당·사회단체를 상대로 편지를 보내는 것은 「대민족회의」를 전제로한 것으로 이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관계개선이나 진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북측에 남쪽에 있는 이산가족들을 초청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냐.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의 실현을 촉구한 것이다. ­이번에 제의한 고위당국자회담이 열리면 북·미간 핵합의에 따라 필요로 하는 남북대화가 재개된 것으로 볼수 있나. ▲고위당국자 회담이 열릴 경우 미·북간 제네바합의의 이행을 비롯,모든 현안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대북제의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나. ▲남과 북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를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계기로 삼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번 제의는 결코 무리없는 제의로 실현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이 남북대화재개를 위해 국가보안법과 조문파동 사과등을 전제로 내걸고 있는데 이번 제의가 자칫 이산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 아닌가. ▲성사가 안된다고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또한 당국간 회담을 포기하는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위배된다.기본합의서는 사문화된 흔적이 없으며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이 계속 이들 전제조건을 내걸면. ▲우리의 기본입장은 (북측 자세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다.불필요한 선행조건 철회를 우리는 강조한 바 있다. ­이산가족들을 잠정적으로 어느 정도 선까지 보낼 수 있다고 보나. ▲북측이 받아들일수 있는 정도는 보낸다는 방침이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본다.
  • 비OPEC국 산유량 증가/국제유가 안정세(현장 세계경제)

    ◎기술 발달로 심해 9백m까지 시추/새 유전 잇달아 개발… 하루 4천만배럴 생산 비회원 산유국들의 석유생산량이 뜻밖에 증가세로 반전,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가격 카르텔이 환층 약화되면서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추세가 보두 확실해질 전망이다. 매일 세계 각지의 유전에서 퍼올려지는 총 산유량은 6천3백여만 배럴로 이중 OPEC 12개국의 점유율은 과반에 못미치는 405미만이나 카르텔 울타리를 만들어 가격과 산출량을 자기들에게 유리한대로 조정하고 있다. 물론 지난 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을 일으키며 세계경제를 호령했던 OPEC는 현재 고질적인 조직내 불화에다 장기적인 저유가 및 수입국들의 에너지세 부과 등이 겹쳐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OPEC의 힘은 아직도 살아있다. 산출 총량에선 OPEC를 압도하는 다수파를 형성하나 OPEC같은 단합이나 담합의 기구를 결성하지 못한 비OPEC 산유국들은 산출량마저 93년까지 5년내 하향곡선을 그어왔는데 이 감소 그래프가 지난해 갑자기 플러스러 방향을 틀었다. 비OPEC 산유국들의 1일산유량은 지난 88년 4천1백만배럴을 정점으로한 뒤 93년 3천8백50만배럴가지 줄곧 감소하였다가 지난해 60만배럴이 늘어 3천9백10만배럴에 달했. 이와 달리 OPEC의 산유량은 2천1백만배럴(88년)에서 2천4백50만배럴(94년)로 증가일변도였지만 OPEC 고위인사의 말처럼 「라이벌」 비OPEC의 생산증가로 「게임의 룰」이 변할 조짐을 비치고 있다. ○OPEC “쇠락의 길” 똑같은 산유량증가라 할지라도 그 의미는 OPEC와 비OPEC 사이에 큰 차이가 난다. 아랍산유국들이 핵을 이룬 OPEC는 산출량에선 뒤지지만 매장량에선 비OPEC를 간단히 압도한다. 지구의 총석유매장량(잠재매장량 포함) 1조7천억배럴 가운데 OPEC 국가들이 70%이상을 점하고 있다. 한다미로 말해 OPEC의 1일산유량은 훨씬 더많은 양을 퍼받기 위해 회원국끼리 산출쿼터를 담합,사전조정한 것인데 비해 비OPEC의 산유량은 가감없는 최대생산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OPEC의 생산증가는 OPEC의 그것과는 달리 누구 마음대로 할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몇년 전만 해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 신기술,경영효율 증진,매장가능 지역 대거개방 등이 이루어낸 생산증가는 다음세기 초까지 이어질 장기적 추세이기도 하다. 2000년엔 4천1백만배럴 생산을 회복할 전망인데 이는 93년에 비해 6.5%가 규모이다. 알래스카의 북사면 유전지대는 새 유정 개발과 기존 장소에서 더많은 양을 뿜어내는 현대기술 등장으로 산유량이 주정부예상치보다 3분의2 가까이 증가한 상태다. 중국·베트남·러시아 등 오랫동안 해외투자가 금지되었던 곳이 속속 개발되면서 서방의 석유탐사와 생산진들이 곳곳에 몰려들고 있다. 또 북해 유전은 개발된지 25년이 지나면서 고갈이 점쳐졌으나 생산경비 절감과 새장소 발견에 힘입어 산유량이 93년보다 오히려 20%나 늘었다. ○북해유전 20% 증산 지난해 국제 경기회복으로 석유수용가 급증하고 가격인상을 노린 OPEC의 생산쿼터 담합이 모처럼 단단했지마 유가는 하향안정세를 유지했는데 여기서는 이같은 비OPEC의 생산증가가 큰 보탬이 됐다. 석유소비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예상되는 하루 1백10만배럴의 석유수용증가분 중 반이상을 비OPEC가 자신있게 충당해 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90년 석유산업 경영자들과 전문가들은 당시 1배럴(1백59ℓ)당 20달러이던 유가각 95년엔 30달러에 이르리라고 장담했다.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생산증가각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신흥공업국들이 활발히 움직여 예측대로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예상치 않던 산유능력의 향상이 이루어졌다. 그결과로 국제유가는 현재 17달러 서너인데 이는 지난 81년 시세 36달러의 반에도 못미치는 저가다. ○상승커버 지속 전망 더구나 OPEC의 94년도 평균유가는 비OPEC의 서부텍사스 중질유나 북해산 브렌트유 보다 3∼2달러 싼 15.53달러에 그쳤을 뿐 아니라 93년 보다 80센트가 떨어졌다. OPEC가 책정한 약2천5백만배럴의 생산쿼터는 5년전 스스로 예측한 양보다 4백만배럴이 적은 것이다. 지하 8천피트를 시추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12년전엔 18일간이었지만 지금은 5일이면 족하고 지상이 아닌 심해시추 한게 깊이가 6년새 1천3백51피트에서 배가 넘는 2천8백60피트로 확대되는 등 석유채굴의 신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풍부한 잠재매장량의 새 유전지대에 대한 탐사도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비OPEC 산유국의 산출량은 상승 커버를 그릴 것이다.
  • JP 진퇴문제 “여전히 안개속”/“민자 세계화” 연두회견의 함축

    ◎“「통합의 정치」로 당운영 계파 초월” 시사/“세계화는 21세기·차세대와 직결” 강조 김영삼대통령은 6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민자당 김종필대표의 거취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다만 세계화를 지향하는 민자당의 변신에 대해 몇마디 말을 했다.『민자당이 세계화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방안을 당에서 충분히 연구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당이 세계화에 걸맞고 국민이 바라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것』이라고도 했다.체제개편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당에 일임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보였다.당이 결론을 내리면 수용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답변 가운데는 의미심장한 말도 들어 있다.『세계화는 21세기와 차세대를 얘기하는 것』이라는 대목이다.말 그대로 해석하더라도 「차세대」는 「세대교체」를 의미한다.일반론적인 언급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를 김대표의 거취문제와 연결하면 다분히 상징적이다.여기에다 『국민이 바라는 방향』이라는 대목을 덧붙이면 윤곽은 어렴풋이 잡힌다. 김대통령이 이날 회견에서 지역과 계층,세대와 정파를 초월한 「통합의 정치」를 강조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이는 계파를 초월해 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며 결국 「3당합당」의 지분을 더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대표의 거취문제는 퇴진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이미 민자당 핵심부 일각에서는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대표의 퇴진을 전제로 체제개편 작업을 추진해 왔다.최종결론은 김대통령과 김대표의 몫이라고 「공란」으로 남겨두었을 뿐이다.그러나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벌써 마음을 굳힌 상태』라고 전했다. 민자당의 일부 핵심 인사들은 김대표가 물러나지 않으면 세계화도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무엇보다 6월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이기려면 당의 면모를 쇄신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김대표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다만 김대표를 어떻게 모양 좋게 물러나게 하느냐가 문제라는 견해를 피력해 왔다.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선거에 이기려면 오히려 김대표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당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보수성향의 지지계층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도 김대표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른바 「대안부재론」의 연속선 위에 논지를 둔다.김대표의 퇴진에 따른 정국의 혼미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김대표의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과 뒤따라 일어날 연쇄작용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김대표는 집무실에서 TV로 연두회견을 본 뒤 별다른 내색 없이 예정대로 당무에 임했다.측근들은 『김대표가 결코 자진사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아직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라고 역설했다.김대통령과 김대표 사이에는 신뢰를 전제로 한 「두사람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지난해 말 「사퇴파동」 때 청와대회동을 통해 상황이 반전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론은 다음주 김대통령과 김대표의 청와대회동에서 내려질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그 결과에 따라 정국은 일대 분수령을 맞게 될 전망이다. ◎여야 반응/“국가적 비전 분명히 제시”/민자/“알맹이 없고 야 무시” 비판/민주 민자당은 6일 김영삼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 대해 『과거 어느 때보다 국가적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고 평가한 반면 민주당은 김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시각을 비난하면서 『회견 내용에 알맹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자당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김종필대표의 거취문제에 대해 우회적으로 언급한 대목을 처지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해석하는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민자당 문정수사무총장은 『정부조직등 국가 모든 부문이 세계화로 매진하고 있는 때에 정당도 낡은 틀로는 국정운영을 보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면서 『따라서 민자당도 창당의 각오로 체제 인적구성 사고등 모든 면의 세계화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다짐. 문총장은 김대표의 거취문제에 대해 『전당대회에 대비한 실무차원의 준비작업은 당의 민주화,조직·기능 정비등 내실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총재·대표 사이의 문제등 인사관계는 우리 손을넘어서는 것』이라고 구체적 언급을 회피. 강삼재기조실장은 『앞으로 총재와 대표가 만나 해결할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만 언급. 김대표는 이날 대표실에서 박준병의원과 조부영·조용직·김영광·구자춘의원,최재구고문,김용채·이상회전의원등 공화계 인사들과 함께 TV로 회견을 묵묵히 지켜보았으나 김대통령이 『언론에서 물가가 자꾸 오른다,오른다 하면 정말 올라버린다』는 대목에서는 최근의 대표퇴진론 기사들을 의식한 듯 『그건 그래』라고 동감을 표시. 김대표는 회견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대통령말씀 그대로 알아들었으면 됐지 나한테 묻긴 뭘 물어』라고 다소 짜증스런 반응. 한편 이한동원내총무는 『대통령은 원론차원에서만 언급했으니 당에서 각론화하는데 많은 머리를 쥐어짜내야 할 것』이라면서 『구체화 작업은 실무팀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중진들도 각자 의견을 조용히 전달,함께 책임지고 논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최근 중구난방식으로 나오는 당개혁안의 폐쇄성을 겨냥. 민주당 여야관계에 대한 김대통령의 언급이 야당을 철저히 멸시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분노와 우려를 표명. 이기택대표는 이날 상오8시쯤 청와대에서 보낸 기자회견문을 검토한 뒤 『아무 것도 없군.세계화와 미래만이 전부』라고 언급했다고 박지원대변인이 전언. 박대변인은 『기자회견문에 대한 실망감에도 불구,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 기대를 걸었으나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라면서 『어떻게 그런 내용이 연두기자회견인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라고 비판한 뒤 주제별로 조목조목 논평. 박대변인은 또 『정부조직 및 지방행정조직개편을 강조하면서도 시기적으로 어렵고 미묘한 문제라는 말로 얼버무려 앞으로 일선 행정기관 및 지방행정조직 공무원들의 동요가 시작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예측가능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도 이에 대한 견해를 하루 빨리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 그는 『오랜 야당생활을 했다면서 야당을 이처럼 무시하는 발언을 해도 되는 것이냐』고 흥분한 뒤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야당관에 대해 우리는 계속 투쟁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으름장. 그러나 『한·미 두나라 사이의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다변화된 외교와 국력에 알맞는 외교정책을 펴겠다』는 등의 다짐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광복 50/청산되지 않은 양국관계 6가지 과제

    ◎역사왜곡… 망언… 한·일 「감정의 골」 깊기만/재일교포 법적차별·냉대 곳곳 상존/사할린한인 영주귀국협상 작년에야 시작/정신대보상 대신 “위로금” 어물쩍 광복후 5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채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일제의 상처들이 많다.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정신대의 한이 여전히 시퍼렇고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염원 또한 채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재일교포에 대한 일본의 차별대우 역시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그 2∼3세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일본의 뿌리 깊은 역사왜곡은 지금도 일본 각급학교 교과서에 남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며 수백만점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우리 문화재 반환 전망은 어둡다.한국과 일본 두나라가 일제의 망령을 떨치고 진정한 선린우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정신대 보상,사할린동포 귀환,원폭피해자 치료,재일교포 법적지위,문화재 반환,역사왜곡 문제의 현황을 살펴 본다. ▷침략사 왜곡◁ 일본의 한국사 왜곡은 뿌리깊다.19세기 중반 일본에서 「정한론」이 등장한 뒤 일본의 관계·학계는 한국침략의 당위성을 강조하느라 「임나일본부 설」따위를 조작해 퍼뜨리는등 왜곡된 한국사를 만들어 나갔다.「황국사관」이라는 이 군국주의적 역사관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일본의 각급학교 교과서에 남아 있다. 광복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정부에 역사왜곡을 고치라고 꾸준하게 요구해 왔으나 흐지부지되다 82년 7월 「마쓰노망언」이 터졌다.당시 일본 국토청장관 마쓰노 유키야스(송야행태)는 『한국이 일본 교과서 내용을 시비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에 이어 『한일합방은 침략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이때 우리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교과서 16종을 검토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모두 24개 항목,1백67곳의 서술 잘못을 가려냈다. 「마쓰노 망언」파동은 일본정부가 넉달만에 「왜곡 시정」담화를 내는 것으로 일단 가라앉았지만 그 뒤로도 매년 일본이 교과서 검정을 하는 시기가 되면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시비」가 연례행사처럼 불거져 나온다.왜곡의정도가 점차 줄어들긴 하지만 그 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이 교과서를 미리 검열하는 「검정제도」를 통해 역사서술을 조목조목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 왜곡이 사라지지 않는 책임은 분명히 일본 정부에 있다.지난해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마쓰노식 망언은 계속됐다. 국민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일제침략 행위를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계속 있는한 일본의 역사왜곡은 한일간의 현안문제로 계속 남을 것이다. ▷정신대 보상◁ 「인류역사의 치부」로 불릴 만큼 비인도적인 범죄로 낙인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우리민족의 역사에 남겨진 크나 큰 상처다. 90년 발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대표 이효재·윤정옥·김희원)등 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 50년간 묻혀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모가 상당부분 밝혀진 상태.그동안 씻지못할 고통속에 살다 많은 피해자들이 죽어갔고 현재 신고된 피해자 1백70명이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일본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총리가 강제성을 시인한 이후 가해당사자인 일본 정부의 입장은 개인보상은 해주되 국가책임차원이 아닌 민간주도의 보상인 「민간기금」을 마련,위로금 명목으로 보상비를 지급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미야자와 전총리의 발표후 우리 정부는 더 이상의 외교적 사안으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이 국제법상의 국가책임에 근거해 피해자 개인 보상및 정확한 전모공개,진실된 사죄를 해야 한다고 정대협등 민간단체와 재야법조계 등은 주장한다.이는 대체적인 국민정서이기도 하고 국제법조인회(ICJ)와 국제노동기구(ILO)유엔인권소위 등 국제 인권단체들이 일본에 대해 요구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효재 정대협대표등은 『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은 전후 두나라의 금전적 이해관계를 처리하기 의한 보상청구권협정으로,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인도적 전쟁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한­일협정으로 모든 과거가 씻어졌다는 일본 주장을 반박하고 현재 일본이 희망하고 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입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또 명실상부한 양국의 동반자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일본국가차원의 피해자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폭자 보상◁ 광복 50년이 되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의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폭 투하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 가운데 귀국한 사람은 2만3천여명.이 가운데 2천4백여명만이 생존해 있고 이들이 낳은 2세가 6천여명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의 평균 생활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일본에서 한푼도 받지 못하고 귀국한데다 귀국 후에도 후유증으로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생계조차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또 즉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피해자들도 언제 각종 암이라든가 백혈병이 발병할 지 모를 일이었다. 이들은 현재 상병의 정도에 따라 10만원 안팎의 진료 보조비를 받고 있다.이는 지난 93년 일본 정부가 위로금 명목으로 건넨 40억엔 가운데 일부에서 지급되는 것이다.또 이 돈으로 현재 경남 합천에 8백평 규모의 원폭 피해자를 위한 복지관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정부가 일본 거주 원폭 피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예컨대 일본의 피해자들은 건강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적게는 3만∼4만엔에서부터 많게는 13만∼14만엔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또 일본 거주 피해자들의 병원비는 완전 무료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도 의료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은 무료 진료의 혜택을 받고 있다.그러나 컴퓨터 단층 촬영 등을 비롯,의료 보험 급여에서 제외되는 항목은 원폭 피해자들이 스스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원폭 피해자는 『조금 형편이 나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2세와 3세의 혼사를 위해서도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대부분의 원폭 피해자 1세들은 물론 2세,3세들까지 빈곤의 질곡에 빠져 정신적·신체적으로 고달프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현주소를 전했다. ▷재일교포 차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법적 지위는 한일 두 나라간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어려운 외교 현안이다.재일한국인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정책으로 인식되어오던 지문날인제도가 지난 93년 가족사항등록으로 바뀌었지만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가 적절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개최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와 처우개선에 대한 한일 아주국장회의」에서 『가족사항등록이 외국인등록법 이외의 목적으로 남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를 일본측에 표명했다.또 외국인등록증을 상시휴대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형사처벌도 행정처벌로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이에 대해 일본측은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보니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위반자의 적발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면서 『앞으로도 상식적으로 유연히 운영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공무원과 국·공립 교원채용,원호법상의 국적조항 철폐도 재일한국인에게는 중요한 현안이다.우리정부는 재일한국인의 지위개선을 위한 포괄적 조치로서 국적과 관계없이 지방공무원과 정규교사에 임용될 수 있도록 일본 중앙부처가 지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특히 「전쟁피해 보상은 일본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94년 7월의 구일본 상이군속 석성기씨등에 대한 재판결과를 들어 재일한국인 전상자에 대한 원호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이에 대해 일본측은 여전히 「노력」과 「검토」라는 표현으로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밖에 민족학급의 설치,무연금 장애자·고령자의 구제,지방자치 참정권등이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처우개선과 관련,한일간에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억류자 송환◁ 지난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일본 정부의 송환거부와 일방적 국적박탈로 사할린에 잔류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 3만6천명에 달한다.종전 당시 소련측에서도 노동자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억류했기 때문에 이들은 귀국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사할린 동포들의 귀환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후한 시기이다.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돼 지금까지 6천8백여명의 사할린 한인이 모국을 방문했으며 2백46명이 영주 귀국했다.현재 사할린 한인사회에서는 원인제공자인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고 희망자 전원에 대해 영주귀국을 실현시키고,사할린 잔류자에 대해서는 1인당 1천만엔씩을 보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당사국인 일본과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사할린 한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일본과는 지난 93년 9월 외무장관 회담에서 사할린 한인문제의 포괄적이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양국간 실무협의를 개최하기로 합의 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7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일본이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아파트형 집단주택과 요양원 건설등 사할린 거주 한인 1세의 귀국과 정착을 위한 시범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정부는 사할린 잔류자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모국방문 기회부여등 영주귀국자와 유사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일본측에 요청했으며 러시아 정부와는 사할린 한인의 신분확인,영주귀국자의 출국과 국적처리 문제,재산반출,계속적인 연금수혜등을 협의하고 있다.러시아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문화재 반환◁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6만4천7백28점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집계하고 있다.이 가운데 일본에 있는 것으로 확인 된 것은 2만9천6백37점이다.그러나 이 숫자가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문화재는 일제 36년 동안 일본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약탈과 민간 수장가나 골동품 중개상에 의해 끊임없이 반출됐다.따라서 현재 일본에 나가있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은 수십만점도 아닌 수백만 단위에 이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우리 정부의 집계는 일본의 몇몇 박물관이 공개한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지난 65년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른 1천3백26점 등 지금까지 불과 2천7백50점만을 반환하고는 『더 이상 돌려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국제교류재단은 지난 91∼93년 실시한 조사 결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일회담 당시 일본이 제시한 우리 문화재목록에 들어있지 않은 1천여점을 추가로 확인하기도 했다.공공박물관도 우리 문화재에 관한 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숫자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약탈문화재」로 분류해 놓고 있는 것은 7백46점에 불과하다.이처럼 강제로 반출된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원소유국에 돌려주도록 한 유네스코의 협약이 있기는 하다.그러나 일본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우리 문화재 반환은 순전히 일본의 「선의」에 맡겨진 상태다.
  • 계파 중재­「정치설계사」역 주목/관심끄는 김윤환정무1의 행보

    ◎대야관계 좋아 집권후반기 새역할 기대 김윤환 정무장관의 기용을 놓고 『정무장관만이 아니라 민자당의 4역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쪽의 해석이다.단순히 여야를 잇는 가교역할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국무총리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김장관은 그래서 그자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덧붙인다.『예술적 차원에서 소임을 다하겠다』는 김장관의 포부도 청와대쪽 해석과 맞물려 주목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짐작되듯 그의 기용은 앞으로 여야및 여권내부 관계에서 두가지 방향으로 그전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한다.첫째는 민자당의 「화합」과 여야의 「조화」란 측면이다.먼저 제14대 대통령후보 경선 때 김영삼대통령쪽에 섰던 그는 민자당의 역학구도에서 한축이 되고 있다.따라서 민정계이면서도 신민주계로 분류되는 그가 민주계와 민정계의 중간지대나 통로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쉽게 나온다. 민자당은 민주계로부터 나온 「김종필대표 교체론」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이를 계기로 「JP(김대표의 애칭)체제」가 일단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풀이되면서 김장관의 기용은 파동의 진원지인 민주계로서도 위로받을 수 있는 대목이 된다.새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계와 JP 사이의 묘한 갈등을 비켜갈 수 있게 됐다고 내다보는 것이다. 김장관은 야당인사들로부터도 높은 평점을 받고 있어 여야 사이를 잘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민주당을 앞뒤에서 움직이는 이기택대표나 김대중아시아·태평양재단이사장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어서 그렇다.서청원전장관이 젊고 실무형으로 한몫을 해냈다면 그는 노련한 거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그가 민자당의 「변화카드」로 작용할 것이냐 하는 대목이다.그는 「5·6공」사람이면서 정치에 큰 변화가 생길 때면 주로 그 핵심에 있었다.청와대정무수석 때 노태우후보의 「6·29선언」이 나왔고 민정당 원내총무 때 「5공청산」과 「3당통합」의 기획을 맡았다.또한 문민정부의 김대통령을 탄생시킨 주역의 하나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가 집권 후반기를 맞은 김대통령의 「정치설계사」로서의 임무를 맡게 될 것이냐 하는 의문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그는 우선 여야의 수장들과 동시에 교감을 이뤄낼 수 있는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이다.다음 대권다툼의 구도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탓으로 정계개편설이나 내각제론등이 부침을 반복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주목되기도 한다. 민자당의 세대교체 측면으로 본다면 그동안 「JP퇴진론」을 주장해온 민주계와의 공동전선 구축이라는 해석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민주계 스스로가 김대표에게 「직격탄」을 쏘아서는 그 저항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차례 입증됐다.여기서 김장관을 앞세우면 당내의 저항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정계의 지원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는 추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민심 어수선하다는 것 알고 있다”/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 회견

    ◎인사·정책혼선 국민지적 겸허히 수용/개혁 실종이라니?… 소리없이 지속될것/외교안보팀 윤리대결… 「갈등」으로 보는건 곤란/불평하는 노재봉의원등 포용해야지요/부산시장 출마 전혀 불고려… “우전서울시장 천거” 언론보도는 무책임 □대담=이중호정치부장 청와대의 박관용 비서실장은 김영삼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고 있는 사람이다.김대통령의 그림자와 같이 늘 곁에서 김대통령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따라 움직인다.서울신문은 창간 49주년을 맞아 김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을 통한 신한국 건설의 성과와 현위치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전망등을 들어보기 위해 박실장을 만났다.대통령비서실장이 된 뒤 그는 한차례도 정식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고 했다.그런 박실장이 서울신문의 창간기념일(11월22일)을 축하하는 뜻에서 처음으로 이중호 정치부장을 청와대 집무실에서 만나 한시간남짓 개혁문제를 중심으로 김대통령 주변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통령께서 안 계실 때의 느낌은. ▲신경이 훨씬 더 쓰이고 무거운 책임감이느껴집니다.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있게 되고 위보다 아래에 신경을 쓰게 되지요. ­새정부 개혁의 성과와 미흡한 점은 무엇이라 봅니까. ○“개혁에도 리듬”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우리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엄청난 부분을 개혁했습니다.특히 깨끗한 정치를 위한 선거법 개정,군의 사조직정비,금융실명제 등은 굉장한 개혁입니다.김영삼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개혁은 우리 정권의 기반이요,철학입니다.개혁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개혁실종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개혁에도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비리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개혁이 아닙니다.생활개혁도 있고 경제개혁도 있어요. ­그래도 개혁실종이라는 일부의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개혁을 주도하는 처지에서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대외적으로 드러내놓고 하는 개혁,즉 비리관련자를 처벌한다거나 실명제등은 소리나는 개혁입니다.의식개혁,기초질서확립,중소기업대책등은 소리 안나는 개혁입니다.개혁의 실종은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최근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국정전반이지요.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뀔 뿐입니다.요즘은 성수대교 붕괴사고후 각분야의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에 신경을 많이 쓰십니다.60년대 개발붐을 타고 공사를 많이 했는데 기술부족과 자재부족으로 시공부실이 많아 안전사고가 많을 수 있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흐트러진 민심과 국가기강을 바로잡는게 주요 관심사지요. ­시중여론이나 대통령의 인기도를 자주 보고하십니까. ○인기 연연 않을것 ▲인기는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초기에 너무 인기 높았던 것이 비정상적이랄 수 있지요.구체적 통계는 없으나 성수대교 이후 떨어졌을 것으로 봅니다.인기도 중요하나 너무 연연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민심수습대책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성수대교붕괴라는 대형참사를 당하니까 국민 전체가 받는 충격이 큽니다.민심이 어수선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전반적 관리를 잘못한데 대해 책임을 공감합니다.민심을 일거에 수습하는 묘책은 없습니다.끊임 없는 개혁을 통해 하나하나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그 이유는 국민들이 현 정부를 정통성이 없다든지 도덕성이 없다,정경유착했다고 비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정책혼선 혹은 인사잘못,능력 없다든지의 비난은 시정할 수 있습니다.성실히 하고 국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한일은행장 경질로 제2의 사정이 시작된게 아니냐 하는 관측도 있는데. ▲언론에서는 뭘 만들어 내려고 하는데 우리는 일반론적으로 사심없이 엄정하게 하겠다는 것일 뿐입니다.은행장 그 사람 어떤 일로 나갔는지 모르나 한사람 일로 제2사정 운운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실장께서 청와대 비서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비서실 장악문제에 대해 어떤 얘기가 있는지 모르나 나는 비서실장 자리에 임명받았을 때 과거처럼 청와대는 권부가 아니니 실장의 권한 이하도 이상도 아닌 적절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과거에는 명령 하나에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물리적 힘이 가해졌습니다.그것은 안기부로 대표되겠지요.비서실장에게는 대통령과 수석 사이의 가교역할이 맡겨져 있을 뿐입니다.대통령의 보좌기능은 수석 각자가 하는 겁니다.매일 수석회의를 주재하는데 일사불란하다고 생각합니다.내부적으로는 비서실 운영에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일반 국민은 물론 언론까지 30년 넘게 군사정권에 부지불식간에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됩니다.지휘봉 하나로 움직이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일반의 시각이 이처럼 흐르는 것은 군사문화의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가는 과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봅니다.청와대 비서실이 문제 있다면 구체적 사안을 제시해 보세요.다만 내가 어느 계보출신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행정부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중심제여서 행정부와의 갈등은 없습니다. ­이회창 전총리시절에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것은 특정인의성격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외교안보팀 안의 갈등은 여러군데서 지적되는데. ▲갈등이라는 용어는 절대 부적절합니다.통일원장관 외무장관 외교안보수석 모두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나 집행에는 이견이 없지 않습니까.과정에서 다를 뿐입니다.회의도 한번 안한 상황에서 개인 생각을 물으면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아요.통일안보조정회의라든지 한번 모이면 통일됩니다.특히 학자출신이 많아 회의에서 논리대결이 많은데 좋아 보입니다.그것을 갈등이라고 몰아붙이면 언론기피증이 생깁니다.장관이 언론을 기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때로는 혼선으로 비쳐져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 믿으면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국민들의 걱정은 알고 있지만 인식부족 측면이 있어요. ­최근 노재봉의원 발언 등 여권 내부가 삐거덕거리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 당이 걸어온 길을 국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민자당은 3당 합당을 한 정당입니다.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당내에서 불평을 했다 해서 항명 혹은 파동이라며 쫓아내면 문민정부가 아니라고 봅니다.큰 걸음으로 포용해야 겠지요. ­민주계가 행정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내각에 민주계 장관은 3명 밖에 없어요.청와대수석은 2명이고 비서실장까지 3명입니다.개별적으로 능력이 있다 없다고 얘기할 수는 있어도 그 정도 인원이 국정의 문제점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지요. ­숫자는 적더라도 실세 아닙니까. ▲모두 잘한다고는 생각 않습니다.그러나 민주계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차지한 자리가 별로 없어요.너무 민주계만 타켓이 되고 있는 측면도 있어요. ­공직자의 복지부동을 타파할 특별한 대책은 없는 겁니까. ▲무사안일에 대한 지적은 지난해 개혁과정에서부터 나왔습니다.그러나 다수 공무원은 열심히 합니다.감사원 감사등 상당히 체크해 보았습니다.일부 공무원에게는 무사안일이 발견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사정활동이 있으면 공무원이 위축되는게 사실입니다.그래서 미래지향적 사정을 할 예정입니다.과거에는 돈주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했습니다.요즘은 돈을 안받으니 불가능한 것은안되는 것입니다.그에 대한 불만도 있고 실제 복지부동도 있겠지요.정말 복지부동이 있다면 그들을 엄벌하는게 과제입니다.그밖에도 발탁인사를 하려 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시험 없이 승진시키는 방안,복수직급제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등 공무원 사기진작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공무원 사기진작이 복지부동을 없애는 길이라고 봅니다.처우개선도 노력하고 있으나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내년 지방자치제선거를 앞두고 지방행정 조직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것 때문에 실제로 무사안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누가 시장 군수 되느냐 하고 눈치보고 따라다니느라고 업무를 등한히 하는 것 같습니다.그러한 선거의 과도기적 혼란은 다 있는 것입니다.그것을 최소화해야 합니다.후보자를 놓고 눈치보면 가차없이 엄단해야 합니다. ­통일전문가로서 통일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 ○통일 절박한 문제 ▲과거 국회 통일특위위원장,남북국회대표 등을 맡았을 때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습니다.이 자리에 오니 나의 얘기가 마치 대통령의 뜻인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어 자제하고 있습니다.통일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절박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노태우 전대통령,김대중씨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가 정치를 하거나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통령 아들이라고 정치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얼마나 자질이 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입니다.그러나 구체적인 면면은 잘 알지 못합니다. ­대통령께서 돌아오신 뒤 특별한 예정이 있습니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총회를 통해 느끼신 세계화에의 철학을 구체화시켜야 되겠고 또 국회문제나 이완돼 있는 민심수습책에도 골몰하실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야권과 서로 이해부족인 것 같고 그래서 국회가 파행으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은 야당사람들과 정치를 했던 분입니다.누구보다 그들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야당과의 대화도 마다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야당이 자기들 안에서 일어난 복잡한 상관관계로 생긴 일을 가지고 여당 혹은 국회 전략으로 표출할 때는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황낙주 국회의장이 여야 영수회담의 주선을 공언했는데. ▲사전교감은 없었으나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를 피한 적이 없습니다.그러나 여건은 조성되어야겠지요. ­민주당은 「12·12」 관련자 기소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담판자리」 안될말 ▲그게 조건이 될 수 있습니까.이 기회에 말 한마디 하겠습니다.두분의 만남은 국정심의 과정에서 각자 생각을 개진하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무엇을 담판하는 것이나 쟁취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조건을 붙이고 선물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 대표자 면담이 아닙니다.여야 대표자 면담이 흥정거리가 돼서는 안됩니다.무엇 하나를 얻고 안 얻고,쟁취한다 않는다 라는 고식적인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국회의 정상화 전망은. ▲여러 현안들을 법정기일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강하면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겠습니까.국회문제는 두 교섭단체가 있으니까 잘 되어갈 것이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상화될 것으로 믿습니다. ­부산시장 출마설이 있던데요.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이자리에 올 때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밝히고 왔습니다.다만 대통령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우명규 전서울시장을 천거했다는 소문은. ▲언론에서도 이미 파악했겠지만 무책임한 보도입니다.경상도 말로 「택도 아닌 기사」를 써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해명을 하자니 구구하고 가만 있자니 답답하고….우씨 자신이 8개월짜리 서울시장을 내심 흔쾌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사생활에 불편은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그러나 이자리에 올때 사생활을 사실상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아침마다 수영하고 일요일 상오 북한산에 2시간가량 등산하는 것으로 피로도 풀고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제 사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 내분 신민호/「세가족 동주」 “당분간 표류”

    ◎「박찬종 대표등록」 각하뒤의 항로/김 대표 “화해” 표명속에 양최고는 “법적 대응”/박 대표 「이미지 복구」에 골몰… 「3자 새구도」 모색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석수)의 「중앙당 변경 등록 신청」 각하 결정으로 신민당의 내분은 주류쪽 김동길대표와 비주류쪽 박찬종대표,양순직최고위원이 다시 화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이들 세사람이 보인 태도는 제각각이다.김동길대표는 4일 아침 기자회견을 갖고 『순수한 뜻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잘못해 당의 분란을 일으킨 인사들은 언제든지 화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이제라도 박대표와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그러나 조건을 달았다.내분을 일으킨데 대해 사과하고 이를 최고회의나 당무회의에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또 『불순한 의도로 당을 어지럽힌 인사는 정치판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해 이번 내분에 앞장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임춘원의원은 제명할 뜻임을 비쳤다. 이에 대해 양순직최고위원쪽은 선관위의 결정과 관계 없이 법적대응을 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특히 각서파동과 관련,김대표를 상대로 검찰에 낸 명예훼손 고소는 절대 취하하지 않겠다고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나아가 『관계요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미 김대표가 써준 각서가 진본임이 검찰조사에서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검찰조사결과가 공식발표되면 김대표는 스스로의 공언대로 정계를 은퇴해야 할 것』이라고 몰아 세우고 있다.김대표를 상대로 대표 직무 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한 측근은 『김대표의 부도덕성을 절대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 양최고위원의 생각』이라고 말해 선관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김대표와 화해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전날 선관위의 결정에 승복할 뜻을 밝힌 박대표는 다시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누구와 손을 잡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앞으로의 정치인생을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에 더 골몰하고 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당권 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그동안 형편 없이 훼손된 이미지를 복구하는 방안을 궁리하고있다는 것이다.김대표와의 화해에 대해서는 『사과부터 하라는 김대표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 부정적임을 시사했다.그러나 절대 탈당은 않겠다는 생각이다.다만 대표직 사퇴를 통해 김대표나 양최고위원과 등거리 관계를 형성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이같은 흐름으로 볼 때 「김:박+양」의 대립 양상이던 신민당의 역학구도는 당분간 「김:박:양」의 3자 대치 구도가 될 전망이다.그리고 김대표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검찰의 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여권인재 풀가동… 국정운용 보강/최병렬씨 서울시장 임명의 배경

    ◎「성수대교 붕괴」 질곡서 조기탈출 겨냥/인사스타일 「의외성」서 「역량 중시」로 변화 김영삼대통령은 여권총동원체제의 카드를 택했다.정권적 위기의식의 확산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이다. 김대통령이 2일 신임 서울시장에 민자당의 중진의원인 최병렬(최병렬) 의원을 임명한 것은 그의 경력을 고려할 때 성수대교 붕괴로 발단된 일련의 국정난맥상을 여권 전체의 인력과 지혜를 모으는 총동원체제로 치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불과 두달 앞으로 다가온 연말의 당정 대개편에서도 구여권과 신여권의 총력가동 메시지는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임명직 서울시장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큰 비중을 갖는 자리는 아니다.그러나 성수대교 붕괴,이원종전시장 해임,우명규시장 임명,11일만의 우시장 전격 사퇴파동을 통해 서울시정은 김영삼정부의 국정관리능력과 인사에서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때문에 김대통령으로서는 신임 서울시장에 총리에 버금갈 정도로 정권의 신뢰도와 국정운영 능력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인물을 기용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었던 셈이다.무엇보다 앞서 그같은 인사를 해야만 성수대교 붕괴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이처럼 상징성이 높은 서울시장으로 최의원을 택했다. 그는 전형적인 「5·6공」 인물이다.언론계출신이지만 「5공」때 민정당의 전국구의원으로 들어가 노태우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던 사람이다.그 기여와 기획력 및 조직장악력등으로 「6공화국」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보처장관·노동부장관을 맡았다. 대단히 정치적이고 정권전위대 성격이 강한 자리들에만 있었던 것이다.이 때문에 그가 김영삼후보의 캠프에서 대통령 당선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그는 「5·6공」,노태우대통령 사람으로 분류돼 왔다. 김대통령의 최의원 발탁은 김대통령의 인사구도가 개혁성·참신성을 강조하던데서 관리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이는 「5공·6공」등 구여권에 몸담았다는 점이 인사의 제척요인이 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동시에 민주계 중심의 인사등용이 더이상 김대통령의 인사기준이아님을 말하는 것이다.소수의 민주계나 개혁적 인물만으로는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는 판단아래 김대통령은 「세 불리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대통령은 이번 인선에서 인사스타일면에서도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김대통령이 취임후 보여준 인사스타일은 의외성과 철저한 보안,독단적 점지가 특징으로 꼽혀왔다.그러나 이번 인선에서 김대통령은 비서실의 제도적 장치를 존중하고,자신의 생각외에 일반적 여론과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인선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공개성을 높이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최시장을 임명하기까지 이틀동안 청와대 비서실은 여러사람을 거론하면서 이를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떠보는 의외의 행태를 보였다.최의원과 김진현 전과기처 장관,이상희 전내무부장관,이재창 전환경처장관등이 여론의 탐색대상에 들었던 후보들이다.이같은 여론 스크린과정을 거쳐 김대통령에게 2명의 명단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사는 국정운영의 밑그림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때문에 김대통령 인사의 변화는국정운영의 변화를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의원의 발탁에 정치적의미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의원의 발탁은 앞으로의 국정운영에서 당의 역할이 현재보다 훨씬 강조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당정협의에서 당의 입김은 보다 강화될 것이며 구여권인사와 정책을 포용하는 노력은 보다 가시화될 것으로 여겨진다.개혁도 중요하지만 관리에 보다 비중이 두어질 것임을 뜻한다. 이번 인사는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개혁위주에서 충실한 관리위주로 들어가는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최병렬 신임 서울시장 일문일답/“책임질일 변명않고 책임지겠다”/“공무원 소신껏 일할 여건 조성 노력” 최병렬 신임서울시장은 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있다가 임명소식을 듣고 기자들에게 이끌려 회견장으로 가면서 최근의 사회상황과 전임 두 시장의 「불행」을 의식한듯 『지금 웃을 심정이 아니다.웃는 사진은 쓰지 말아달라』는 주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소감은. ▲솔직히 역부족이라고 생각돼 두렵다.모두가 느끼듯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며 해야 될 일이 산적해 있다.하지만 명을 받은 이상 최선을 다하겠다. ­시장 내정사실을 언제 알았나. ▲오늘 하오 늦게 본회의장에 있다가 통보를 받았다.이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도움이 될것 같지 않다고 정중히 고사했으나 명에 의해 맡게 됐다. ­가장 역점을 두어 추진할 시정분야는. ▲생각해보지 않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앞으로 공부를 해가면서 파악하겠다.다만 최근 발생한 큰 불행한 사고로 불안해 하는 시민들의 불안해소가 급선무라고 생각한다.다음은 일을 안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우리 공무원들이 나라를 위한 충성스런 마음으로 일할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 ­그동안 서울시정에 대해 가져온 느낌은. ▲「정부속의 정부」로 굉장히 복잡하다고 들었다.덩치가 크고 일도 다양하며 복잡한 모양이다. ­발탁배경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여러분들이 해석할 부분이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게 된데 대한 아쉬움은. ▲물론 개인적으로 있다.그러나 사람은 성경에도 있듯 나갈 때와 들어갈 때가 있는것 아닌가. ­관운이 따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흔히들 하는 얘기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언론계를 떠나 국회의원을 두번 하고 장관도 두번 하는등 과분하게 공직에 오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세로 일해나갈 것인가. ▲공직에서 일하는 동안 자리나 인기,돈에 연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홍구부총리에 이어 과거정권에 몸담았던 민정계인사로서 발탁됐는데 이는 능력있는 과거정권 인사들의 발탁신호탄인가. ▲나에게 그런 판단소재는 없다.인사권자가 판단할 일이다. ­6공정부에서의 일이라 해도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왔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내가 맡은 일은 리저베이션(Reservation) 즉 유보나 변명 없이 책임을 지겠다. ­김영삼대통령과의 관계는. ▲(시장을 맡는 것과)개인적인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시절부터 잘 알았다.
  • “2주새 2명 사퇴”… 서울시 침통/우 시장 사표 파장

    ◎잦은 교체로 업무차질 우려/“관련부서 책임맡아 화근”도 성수대교 사고의 후유증은 실로 컸다.우명규시장이 사퇴한 1일 서울시 청사.2주일도 채 안돼 두명의 시장을 떠나보내야 하는 서울시의 모습은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지난 21일 아침의 참사,이원종 전시장의 퇴임,직원 9명의 무더기구속,우시장의 사퇴로 이어진 지난 10여일은 서울시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가뜩이나 일손을 놓고 있던 직원들은 이날 또 한번 술렁거렸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우시장의 사퇴에 대해 『서울시장 자리가 임명직이라지만 너무한다』는 반응. 한 간부는 『시장이 이렇게 자주 바뀌어서야 어떻게 소신있게 일을 하겠느냐』며 『올해말까지는 사고수습 및 시장보고 등으로 정상적인 업무에 큰 차질을 빚을 것같다』고 볼멘 소리. 또 직원 P씨는 『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도 않은 시점에 시장을 바꾸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성토. ○…서울시 내부에서는 우시장이 임명됐을 때부터 성수대교 사고수습을 위해 적임자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직원 P씨는 『우시장이 기술직 출신으로 유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수대교와 관련이 있는 부서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고 뼈있는 한마디. ○…이날 상오 11시 시청에서의 기자회견에 앞서 서울시의회 임시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우시장으로부터 직접 사퇴의사를 들은 시의원들은 여·야간에 엇갈리는 반응.우시장 해임권고안을 냈던 야당의원들은 『다소 빠른 감이 있지만 성수대교의 문제가 거론될 당시 전임 부시장이었던 만큼 어차피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며 사퇴의 당위론을 주장. 이에 반해 민자당의원들은 해임권고안을 부결시켰던 것을 의식한 듯 『사퇴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너무 빨리 경질된 것같다』는 입장. ○…서울시 공무원들은 차제에 서울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시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시장이 임명되기를 바라는 분위기. ◎청와대 반응/“독자적 결정… 사전조율 없었다”/후임 행정경험 갖춘 거물급 물색 우명규시장의 전격적인 사의표명에 대해 청와대는대통령의 참모들이 인사보좌 잘못의 짐을 진 대신 대통령은 짐을 덜었다는 분위기다.대통령의 인사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명규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나쁠게 없다는 생각이다.사의표명과 함께 바로 수리방침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청와대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우시장의 사의표명이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것이며 사전조율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청와대의 사의표명에 대한 인식에 비추어 보면 어떤 형태로든 사전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청와대는 사퇴파동이 인사자료를 충분히 챙기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때문에 후임자 인선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보다 많은 사람을 여러과정에서 스크린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가 생각하고 있는 인선기준은 행정경험을 갖추었으면서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줄수 있는 이미지와 경력을 갖춘 사람.서울시 출신이냐 아니냐를 따지지는 않을 방침인 듯하다.이른바 거물급 시장을 찾고 있는 셈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인물은 최병렬 민자당의원과 김진현 전과기처장관,이재창 전환경처장관,이상희 전내무부장관등이다.청와대 관계자들은 우시장의 사퇴 불똥이 다른 장관에게까지 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지난번에 이영덕총리가 사표를 제출했을 때도 시기가 맞지 않아 개각을 하지 못했듯 지금도 역시 시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 대마초 충격… 방화붐에 “찬물”/톱스타 박중훈 구속의 파장

    ◎「투캅스」·「게임의 법칙」등 출연작마다 빅히트/“관객동원 보증수표 부도” 주연구하기 난감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배우로 꼽히는 박중훈이 「대마초 상습복용」혐의로 7일 전격 구속되자 영화계에 비상이 걸렸다. 소식을 접한 영화계 인사들은 또다시「대마초사건」이 터진데 대해 『박중훈같은 일급배우가 직업윤리를 망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개탄하면서 「대마초 파동」이 영화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중훈이 배우로서 갖는 비중을 감안,한국영화가 한참 활성화하는 시기에 그가 구속됨에 따라 모처럼의 기회가 무산되지 않을까 안타까워 하고 있다. 흥행을 보장하는 인기여배우가 드문 현재의 영화계에서 박중훈은 관객동원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보증수표」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와 안성기가 공동주연한 「투 캅스」는 8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지난해 「서편제」가 점화한 방화 붐을 이어주었다.이어 지난 추석대목에 「태백산맥」과 함께 내걸린 「게임의 법칙」에서도 주연을 맡아 20여일만에서울에서 10만관객의 동원을 눈앞에 둔 놀라운 인기를 과시했다. 「태백산맥」이 원작·화제성·임권택감독의 유명도등 흥행요소를 두루 갖춘데 비해 「게임의 법칙」은 그가 주연이라는 사실말고는 두드러진 점이 없어,흥행성공이 오로지 박중훈 개인의 연기력과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영화계의 분석이었다. 따라서 박중훈·안성기등 몇몇 대형스타의 개인적 인기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영화계로서는 흥행 구조에서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손실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또 「투 캅스」의 강우석감독이 박중훈을 주연삼아 촬영중인 「마누라죽이기」가 제작중단 사태에 놓인 것을 비롯 그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많은 영화가 제작에 차질을 빚게 됐다. 게다가 「인기스타」의 추악한 사생활이 알려지면서 팬들이 한국영화에 등을 돌리지나 않을지 하는 것도 영화인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영화계의 한 인사는 『평소 영화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깊어 TV등 다른 매체에의 출연을 자제하던 박중훈이 다시 스크린에 등장할 수 없게 된 것은개인의 불행에 앞서 한국 영화계의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화계 일부에서는 「지존파사건」으로 폭력·외설 영화에 대한 지탄이 최고조에 달한데다 한국영화를 대표할만한 배우의 「대마초사건」이 터진만큼 영화계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정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나오고 있다. ◎박중훈은 누구/85년 「깜보」로 데뷔… 뉴욕대 연기학 석사 출신 64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중훈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중인 85년 이황림감독의 「깜보」에서 건달제비역으로 데뷔했다.이후 「칠수와 만수」「우묵배미의 사랑」「그들도 우리처럼」 등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를 걸머질 재목으로 성장했다. 터프한 마스크에 개성있는 연기로 한국영화계의 간판스타가 된 그는 91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태 영화제에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영화배우로는 유일하게 지난 92년 뉴욕대 예술대학원에서 연기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귀국 후 강우석감독의 「투캅스」로 화려하게 스크린에 복귀해 이 영화로 올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사건으로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게됐다.그는 지난 6월 재일동포 윤순양과 결혼했다.
  • 발전소건설 4개사 특혜 추궁(국감중계)

    ◎한외무 「원맨쇼 외교」 지양촉구/학원담당 공무원 월내 일제 인사 보고 ▷상공자원위◁ ○…한국전력에 대한 감사에서 안병화전사장의 수뢰사건과 발전소 건설공사를 둘러싼 특혜의혹이 야당의원들에 의해 집중 거론됐다.반면 여당의원들은 안정적인 전력수급대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허경만의원(민주)은 『안전사장 재임동안 대우·동아·현대·삼성등 4개 건설회사의 수주액은 1조6천32억원으로 관행상 이 가운데 8백2억∼1천6백3억원이 리베이트 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안전사장이 이들 업체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진 6억여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광태·김충조·유인학의원(이상 민주)등은 건설공사 입찰과정에서의 사전담합등 입찰비리여부에 의혹을 나타냈다. 유의원은 『81년 이후 한전이 대우·동아·현대·삼성등 4개 건설회사에 입찰경쟁을 통해 발주한 공사는 1백94건으로 이 가운데 1백44건의 낙찰가가 예정가의 95%를 웃돌았다』면서 『이는 예정가가 계속 사전유출 됐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공격. 허삼수·이웅희의원(이상 민자)은 이상고온현상을 보인 올여름의 전력공급위기를 지적하면서 『장기적인 전력수급대책을 밝히라』고 촉구했다.금진호의원(민자)은 『한전이 지난해 자금부족을 이유로 발전소건설계획물량을 축소한 것은 이같은 파동을 예상하지 못한 안이한 생각』이라고 가세했다. 이종훈한전사장은 『예정가 사전유출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건설업체가 정확한 원가계산을 통해 견적을 뽑아 입찰에 나서기 때문에 예정가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 ▷외무통일위◁ ○…6일 상·하오에 걸쳐 워싱턴의 주미대사관 1층 회의실에서 열린 외무통일위 미주국정감사반(반장 나웅배)의 감사는 한승수대사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속에서도 신랄한 질문으로 파상공세. 이종찬(새한)·이부영(민주)·오세응의원(민자)은 차례로 한승주외무부장관의 잦은 워싱턴방문을 지적,『한장관이 거의 달마다 미국에 가 크리스토퍼장관에서부터 각 차관보까지 저인망으로 훑어버리니 주미대사의 할일이 없는 것이 아닌가』며 『원맨 쇼 외교를 지양하고 역할분담을 통해 효과적인 대미외교를 펴야할 것』이라고 질타. 이에 한대사는 『외무장관이 대외적으로 한국의 얼굴이고 북핵문제가 중요하니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면서 『대사는 부장관,차관보들과 수시로 접촉하고 있으며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비칠지 모르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선방. 서정화의원(민자)은 『북한의 핵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북한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주미대사관을 철수시키겠다는 배수진을 치고서라도 미측에 우리의 뜻을 강력히 전달하라』며 『여러분들은 이준열사가 될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 ▷교육위◁ ○…교육위의 7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감사는 강동교육청 공무원과 학원과의 유착사건을 계기로 나타난 불법과외학원 실태,교육청과 학원의 결탁비리 등에 의원들의 질타와 대책요구가 집중. 이준해교육감은 이에 대해 『이달 안으로 인허가 과정,지도감독사항 이행여부등에 대한 일제감사와 함께 학원담당부서 직원에대한 일제 인사를 통해 장기근무 공무원 모두를 보직변경 하겠다』고 답변.이교육감은 『앞으로 취약학원에 대한 수시단속과 담당공무원의 비리에 대한 중징계및 금품수수에 대한 형사고발조치,그리고 현실과 괴리된 법규정의 정비등을 통해 비리의발생 요인을 제거하겠다』고 다짐. 이에 앞서 김중위(민자),박석무(민주)의원은 『지난해 서울시 관내 과외교습소 불법·변태 단속 결과 61%인 5천2백여곳,올해들어 8월까지도 50%인 2천8백여곳을 적발했음에도 교육청은 대부분 경고등 가벼운 조치에 그쳤다』면서 『형식성·면책성감사로 구조적 비리를 양산하고 있는 교육행정에 대수술을 단행하라』고 요구. 김원웅(민주)의원은 『지난 9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교육청 관내 9개 교육청을 대상으로 감사원·교육부·서울시교육청등이 실시한 감사 결과 변칙운영,신고부실등 부당한 운영을 하고 있는 학원을 교육청이 적발하지 못하거나 방치한 것이 2백86곳에 이른다』면서 『학원인가에서 규정위반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데 대한 대책을 밝히라』고 요구.▷농림수산위◁ ○…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농협이 설립의 목적을 외면한 채 돈 장사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김장곤의원(민주)은 『농협이 92년이래 효성물산·빙그레·롯데삼강·고려무역등 18개 농산물 수입업체에 3천2백46억원을 융자,1천만t의 외국 농축산물이 수입되게 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오장섭·박경수(민자),이규택·김인곤의원(민주)은 『지난 8월31일 현재 30대 재벌기업에 대한 농협의 대출금 총액은 1천2백78억원이며 이 가운데 신용대출이 34%에 이른다』면서 『농협이 농민보다는 재벌에 특혜를 주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길재의원(민주)은 『농협이 91년부터 93년까지 법정한도를 무려 54억원이나 초과한 총 1백94억원의 접대비를 지출했다』며 사용내역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원철희농협중앙회장은 『30대 재벌기업에 대한 대출금은 농협의 총대출금 가운데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또 대출금도 대부분 농기계 생산등 농업관련 사업에사용됐으며 순수한 대출액수는 3백14억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신민당 내분 갈수록 악화/10일 전당대회 앞두고 대립

    ◎지구당 93곳 요구… “현실 인정해야”/박대표/“정당한 절차무시”… 일전불사 태세/김 대표 신민당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박찬종공동대표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양순직최고위원과 손을 맞잡자 김동길공동대표는 이들에 정면대응할 뜻을 밝혔다. 박대표는 이날 상오 서울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10일 전당대회를 열어 자신을 단독대표로 추대하기로 한 양최고위원측의 결의를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와 양최고위원 사이에서 불분명한 태도를 취해오던 그동안의 행적에서 벗어나 양최고위원쪽에 설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박대표는 『당원의 총의를 따르는 것이 책임있는 대표로서의 자세일 것』이라는 말로 이같은 행보의 변을 밝혔다. 옛 신정계와 양최고위원측 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견에는 김대표측과의 몸싸움에 대비,건장한 청년 50여명이 완장을 차고 회견장 안팎을 지켜 내홍이 극에 이른 신민당의 분위기를 잘 말해줬다. 박대표는 『1백29개 지구당 가운데 93곳의 위원장들이 김대표의 퇴진과 10일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현실이니 만큼 김대표도 이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각서파동·사퇴파동등으로 김대표는 더이상 당내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그는 이어 「전당대회 대의원들이 단독대표로 추대하면 이를 수락할 것이냐」는 질문에 『93개 지구당위원장들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말로 수락의사를 밝혔다. 한편 김대표측은 같은 시간 여의도 당사에서 당무회의를 열고 『오는 10일 전당대회는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지적하고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김대표는 『몸을 던져서라도…』『죽기 아니면 살기로…』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이들에 대해 강력 대응할 뜻을 밝혔다.박대표에 대한 배신감도 숨김없이 나타냈다. 양측의 이같은 대립은 대체로 세갈래의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우선 양측이 10일 전당대회전에 타협점을 찾는 길이다.김·박대표 모두 만나는 데는 긍정적이므로 대화의 길은 열려있다.그러나 서로가 자기 주장만 펴다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전당대회 강행으로,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그리고 전당대회를 통해 박대표가 단독대표로 추대된다 하더라도 김대표가 당권의 법통을 둘러싸고 법정투쟁을 벌이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어떤 식으로 귀결이 되든 이번 사태로 박대표는 정치적 도덕성에,김대표는 정치적 지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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