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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빛·바람

    산·빛·바람

    중국의 황산을 주제로 한 ‘山, 빛과 바람’전이 오는 1일부터 6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트라운지 디방에서 열린다. 최규철(67)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을 비롯해 한국화가 이정신(67)의 제자 17명이 지난 4월 황산에 오른 감흥을 그린 수묵산수화를 모았다. 전통 수묵산수의 현대적 변용을 추구해온 이정신의 제자들인 만큼 전통적인 산수화뿐 아니라 다소 파격적인 작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 운영위원장이기도 한 최 이사장은 “장송(長松)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아 온 각자의 궤적을 흔들어 깨워 화폭에 담았다.”면서 “전시 주제는 산, 빛, 바람이지만 실은 (이 땅에 살아 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02)379-308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제주 세계7대경관 선정 기원 한·중서화전

    제주 세계7대경관 선정 기원 한·중서화전

    제주 출신의 서예가 ‘창봉’ 박동규 화백이 중국의 주상림 화백과 함께 새달 1~7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기원 한·중서화 양인전’을 연다. 박 화백은 호방함을 자랑하는 산수 대작과 한국적 필획이 돋보이는 서예를, 주 화백은 간소하고도 절제된 먹과 채색으로 표현한 장엄한 산수화를 내놓았다. 대한민국서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초대작가 출신으로 국제서예가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 화백은 중국 난징예술학원에서 ‘완당 김정희 서법예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보행자 안전용 CCTV 파손땐 징역형, 차량 인도 무단 진입 10만원 과태료

    앞으로 보행자 안전용 폐쇄회로(CC)TV나 보안등을 파손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또 보행자 전용 길에 무단 진입한 차량의 운전자에게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행정안전부는 24일 이 같은 내용의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제정안에 따르면 보행 안전법에는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인 ‘보행권’이 신설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또 모든 국민이 장애나 경제적 사정 등에 따라 보행과 관련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각 지자체는 안전시설 설치와 보행자 우선 문화 정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행환경개선 기본 계획과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골목길 등 우범지역에는 CCTV나 보안등을 설치하고 보행자 길에서 공사할 때는 우회 통로와 안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또 인사동길과 홍대거리와 같이 전통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명품거리를 조성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고,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과 같은 보행자 전용길을 조성하는 기준도 마련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미술 플러스]

    박진모 ‘입체와 평면의 만남’展 꿈과 구름을 모티프로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여 온 박진모 작가가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스페이스이노에서 ‘입체와 평면의 만남’전을 연다. 캔버스를 입체화하는 작업을 해 온 박 작가는 이번에도 나무, 돌, 콘크리트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꿈속에서 바라본 세상을 표현해 냈다. 미인도로 유명한 배정례 작가의 장남이자 동양화가 이당 김은호의 계보를 잇고 있다. (02)730-6763. 새달 10일까지 허미자 개인전 서양화가로는 특이하게 먹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를 표현해 온 허미자 작가가 6월 10일까지 서울 역삼동 갤러리 이마주에서 개인전을 연다. 디테일한 묘사 없이 여러 번 덧칠을 해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잎, 갈대 같은 소재를 몽환적으로 묘사한 20여 개의 작품이 내걸린다. 이를 통해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일정 부분 드러낸다. (02)557-1950. 이은주 ‘순간의 역사성’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진 기법을 우리 전통 회화에 접목한 이은주(45) 작가의 ‘순간의 역사성’전이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정선의 박연폭포 같은 고전을 현대적 풍경 속으로 옮겨 두되 먹 대신 아크릴과 사진을 썼다. 현대 풍경 사진을 합성한 뒤 그 위에다 형태와 윤곽을 흐리게 세필로 작업했다. (02)734-7555.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박정희 ‘행복한 동행’전 2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서호갤러리. 봄을 맞아 꽃과 정원을 도심 풍경 속에 녹여 낸 작품들을 전시한다. (02)723-1864. ●신작전 회원전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구상회화 발전을 위해 대형 그림을 주로 그리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작전’ 모임의 정기 전시회다. (02)580-1300. ●배정하 ‘길을 묻다’전 24일까지 인사동 줌갤러리. 동양적인 무위자연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한지에 선염 효과를 이용해 우산, 소나무, 꽃, 탑 같은 사물들을 그려 낸다. (02)323-3829.
  • [김문이 만난사람] 경북 청도에 ‘코미디 철가방 극장’ 여는 개그맨 전유성 씨

    [김문이 만난사람] 경북 청도에 ‘코미디 철가방 극장’ 여는 개그맨 전유성 씨

    웃음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웃음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묘약이다. 하여 ‘웃음거리’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기발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린다.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심야극장과 심야볼링장을 창안했다. 마구 헝클어진 복잡한 문제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쾌도난마(快刀麻)처럼 단박에 해결한다. ‘듣도 보도 못한 콘서트’ ‘개나 소나 콘서트’ 등을 연출, 눈길을 끌었고 ‘구라 삼국지’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 웃음을 자아내는 책만 하더라도 20권 가까이 펴냈다. ‘득도의 삐딱선’을 타고 좌충우돌 달려 ‘괴짜, 기인’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전유성(62)씨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그는 최근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해 연거푸 기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후배 개그맨 김학래, 이봉원, 김대범, 안상태 등과 얘기를 나누던 도중 딸 전제비씨와 전화 연결을 통해 나눈 대화 내용은 네티즌들 사이에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때 딸은 “내가 머리를 새로 하거나 화장을 하면 아빠는 못 알아보신다.”고 말해 아연실색하게 했다. 딸은 또 “결혼 전, 예비신랑이 집에 왔더니 아빠가 신랑에게 ‘내가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냐’고 딱 하나 물었다. 신랑이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그런데 뭐하러 물어보러 왔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조영남과 선약이 있다면서 사라지셨다.”고 폭로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개그맨’ 용어 처음 사용 전씨는 이렇게 가는 곳마다 다소 엉뚱하지만 웃음과 화제를 몰고 다닌다. 그가 또 하나 일을 저질렀다. 20일 오전 11시 경북 청도에서 국내 최초의 코미디전용극장인 ‘코미디 철가방 극장’(코철)을 개관한다. ‘바로 코앞에서 엎어지고 자빠지고~정말 웃깁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는 것. 코미디협회장인 엄용수씨를 비롯해 주병진 김미화 김신영 등 후배들도 참석해 처음 생기는 코미디 전용극장의 의미를 빛낸다. 코미디 퍼포먼스팀 ‘옹알스’와 김정우의 마술, 서도소리 명창 이은관 선생의 수제자 박정욱씨의 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 행사도 동시에 진행된다. 지난 16일 방송 출연을 위해 잠시 서울에 온 전씨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청바지를 입었고 검은 모자를 썼다. 인사를 하자 “(홍보를 위해) 요즘은 완전히 저자세입니다.”라면서 웃는다. 항상 모자를 쓰는 이유를 묻자 “햇빛이 강렬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청도 풍각면에 ‘코철’을 세운 까닭을 물었다. (인터뷰 내내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0.1초 이내였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그냥 오다가다 청도에 들렀습니다. 그게 인연이 됐지요. 원래 방송을 그만두면 시골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낡은 교회당이 눈에 보였고 야외음악당이 근사했습니다. 교회당 건물을 개조해 ‘니가 쏘다쩨’라는 카페를 만들고, 음악당에서 ‘얌모얌모 콘서트’를 열었고, 나중에 ‘개나 소나 콘서트’로 이어지면서 청도에 발을 딱 붙이게 됐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가 4년째입니다. 앞으로는 ‘코미디 시키신 분’을 위해 코미디 철가방을 들고 배달에 나설 작정입니다. 관람료도 자장면 값(4000원)에 맞췄지요.” 그가 기획한 ‘개나 소나 콘서트’는 청도의 소와 애완견을 위한 콘서트로 출발해 매년 관람객이 늘어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매년 말복에 열리며 ‘멍멍멍, 음매~’로 콘서트를 시작한다. 그동안 69인조와 72인조 오케스트라가 참여했으며 청도지역 수의사들이 대부분 자원봉사를 할 정도다. 내년에는 구제역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소와 돼지를 위한 위령제’를 열 계획이다. ●특수장치 다양한 ‘코철’ 직접 설계 그렇다면 시골에 코미디 극장을 세우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TV에서만 봤다고 그래요. 도시 사람들이야 공연장에서 본 적이 있겠지만 시골에선 그런 기회가 거의 없지요. 좀 더 양질의 코미디를 직접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 개관하는 ‘코철’ 극장은 그의 성품대로 직접 팔을 걷어붙여 설계했다. 외벽은 중국집 철가방의 모습이다. 극장 입구에는 철가방이 반쯤 열려 있고 그 속에는 간자장과 짬뽕이 쏟아져 내린다. 또 젓가락과 고춧가루통, 식초통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또 높이 5.2m의 대형 소주병이 반쯤 기울어진 채 붙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철가방이 반쯤 열려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그는 이 대목에 이르러 “공연 전에 관람객들에게 ‘소맥’ 한 잔씩 돌리겠다.”며 웃는다. 얼른 ‘소맥’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소칠맥팔이 가장 간이 맞는다.”고 했다. 소주잔에 7부, 맥주잔에 8부를 따른 뒤 섞어 마신다는 뜻이다. 전씨가 자랑하는 부분은 극장 건물 내부의 특수장치. 무대 뒤 벽이 커튼처럼 돼 있어 공연할 때면 그것이 열리면서 800m 뒤에 있는 당산나무까지 무대가 확장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가 펼쳐진단다. “어설프게 보시면 안 됩니다. 코철은 4D 극장입니다. 배우가 재채기를 하거나 침을 튀기면 객석에서 얼굴로 바로 느낄 수 있지요. 객석 의자에 특수 구멍을 설치해 비가 내리는 상황이면 구멍을 통해서 물이 뿜어져 나오게 돼 있습니다. 폭포가 떨어지는 장치도 해놨고 바닥에서 분수도 올라오도록 해 놨습니다. 또 무대 뒤가 열리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호수에 떨어지도록 했지요.” 그런데 객석은 겨우 40석이다. 왜 그럴까. “도시에서도 100석을 다 채우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100석 공간에 40명밖에 안 차면 배우들도 공연하기가 싫어질 겁니다. 객석을 작게 만들어서 크게 채우자는 발상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40석의 의자 가운데는 후배 이성미, 박미선, 이홍렬 등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있다. 평생 관람료를 미리 지불해서 그렇단다. 그렇다고 이들이 의자를 독점한 것은 아니다. 관객들은 이 의자에 얼마든지 앉을 수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협찬과 익명을 요구하는 독지가들의 참여도 있어 극장을 개관하게 됐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전씨는 그동안 ‘코철’ 극장 개관을 준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코미디시장’을 운영해 왔다. ‘코미디시장’은 꿈과 열정이 있는 개그 지망생들을 위한 ‘개그 사관학교’다. 현재 개그 스타로 활약하는 신봉선, 박휘순,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등이 1기생 출신이고 2기생 20여명이 얼마 전 수료했다. 이들에 대해 그는 “지금 2기생들 가운데 4, 5명은 새로운 스타로 명성을 날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번 ‘코철’이 성공 사례가 되면 다음에는 코미디박물관을 만들 것입니다. 또 전국에 ‘코철’ 극장이 생겨나서 다들 눈앞에서 엎어지고 자빠지고 정말 웃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난 청도 삐끼… 오시면 손해 안봐요” 앞을 향한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연인 2명만 들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연장, 목만 집어넣고 보는 인형극장, 취미와 연령에 따라 골라서 볼 수 있는 뷔페식 극장 등등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청도에 와서 코미디를 보는 관람객들을 위한 보너스로 뭔가 해줄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풍경 좋은 ‘걷는 길’을 발견했다. 올레길, 둘레길은 있고 그래서 제목을 ‘몰래길’이라고 했단다. 그럴듯한 전설도 만들었다. ‘옛날 호랑이가 고스톱치고 원숭이가 광팔던 시절! 비슬산 자락에 화전민 동팔이가 살았다. 동팔이는 척박한 비탈 땅을 갈아 감자 심고 텃밭 가꿔 겨우겨우 풀칠하고 살았다. 동팔이는 매년 벌어지는 소 싸움장에 나가 소여물 끓이기, 소 이빨 닦아주기, 소 발톱깎기 등 닥치는 대로 뒤치다꺼리를 하며 몇 푼 벌면 생필품을 구해 지금의 몰래길을 넘어 오곤 했다.(후략)’ 그는 “이쯤 되면 먼길 청도에 오셔도 손해는 절대 안 볼 것이며 단체나 가족, 연인들도 한번쯤 오시면 잊지 못할 추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미 ‘청도 삐끼’이며 청도역장에게 ‘청도 코미디 열차’를 하나 만들자고 부탁해 놓은 상태라고 귀띔했다. “문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설렘입니다. 앞으로 저희 극장에서는 장편 코미디로 가려고 합니다. 또 이영자나 신봉선처럼 미래의 스타들을 미리 만나 볼 수 있는 즐거움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개그맨 전유성은 ‘개콘’ 최초 기획으로 공개코미디 붐 주도… 저서 15권 넘어 194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희극배우이자 공연 기획자로 유명하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탤런트 시험에 낙방해 1969년 MBC 개그 콘서트로 데뷔했다. 진로그룹 이사를 역임했으며 한때 서울 인사동에서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는 복고풍 카페를 운영했다. 개그 콘서트를 최초로 기획해서 공개 코미디붐을 일으켰다. 1993년 불교방송 백팔가요를 시작으로 MBC 전유성·박미선 특급작전(1997), MBC 지금은 라디오시대(2003) 등의 진행을 했다. 2000년 올해의 인터넷 연예인상, 2004년 MBC연기대상 라디오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개그 사관학교인 ‘전유성의 코미디시장’을 창단했다. 4년 전부터 청도에서 지내고 있으며 매년 말복날 ‘개나소나 콘서트’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유성의 구라삼국지’ 등 15권이 넘는다.
  • 거리 좁혀가는 孫 - 친노

    거리 좁혀가는 孫 - 친노

    2007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경선에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사람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 보따리 장수같이 정치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보따리 장수’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가리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당시 손 전 지사는 “정치평론은 그만하고 민생에만 전념해 주길 바란다. 무능한 진보는 바로 노 대통령”이라고 맞받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친노 진영의 구원은 이처럼 켜켜이 쌓인 지층과 같았다. 그러나 4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두 정치 세력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 가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와 4·27 재·보선을 넘으면서다. 손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호남의 전략적 지지를 받은 것, 재·보선 분당 출마로 부자와 서민의 대결 구도에 정면도전한 것을 ‘노무현 정신’으로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호남당을 탈피해 전국 정당을 모색하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 12일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 사진전이 열린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손 대표는 한 장의 사진 앞에 섰다. 시장통에서 장기를 두는 한 중년 남성 곁에 앉아 노 전 대통령이 훈수를 두는 사진이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전시회를 통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었던 정치인 노무현의 꿈과 가치를 돌아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손 대표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노무현의 가치”라고 화답했다. 2008년 1월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과 통합민주당 대표로 어색하게 만난 이후 오랜만에 온기를 나눈 자리였다. 최근 친노 진영은 ‘친노를 넘어서’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다. 지도자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국한하면 “지도자를 잃은 마당에 다음 지도자는 노무현 정신을 이어 가는 사람이면 된다.”는 입장이다. 친노 측이 비판적 학자그룹과 함께 ‘노무현 정신’의 계승점과 보완점을 정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친노 핵심 관계자는 “손 대표가 정책적으로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을 이어 가고, 통합과 연대 과정에서 기꺼이 내던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길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선데이 시리즈]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 시절 그 노래①

    [선데이 시리즈]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 시절 그 노래①

     작사자(作詞者)도 작곡자(作曲者)도 모른채 설움 싣고  나라 뺏긴 슬픔 노래하던 창가(唱歌)의 시절  가수도 없었다. 노래를 전파시킬「레코드」도「라디오」도 나오기 전, 그래도 유행가는 있었다. 누가 가사를 만들고 누가 작곡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파됐다. 대중 가요의 요람기로 꼽는 1910년대-.    [學徒歌 전후]  ①청산 속에 묻힌 옥도/갈아야만 빛이 나네/낙락장송 큰나무도/깎아야만 동량되네  ②공부하는 청년들아/너의 직분 잊지 마라/새벽 달은 넘어가도/동천조일 비쳐온다  ③유신문화 벽두초에/선도자의 책임 중코/사회진보 깃대 앞에/개량자된 임무로다  ④농상공업 왕성하면/국태민안 여기있네/가급인족 하고보니/국가부영 이 아닌가    최초의 대중 가요로 꼽는「학도가(學徒歌)」가사다.  요즘 말로 대중가요지 그때는 특정한 지칭이 없었다. 창가(唱歌)라고도 하고 신민요(新民謠)라고도 했다.「창가」는 1904년에 처음으로 소학교 교과 과정에 끼였다.  1910년에 처음으로 소학교 교과서로서「보통교육 창가집 제1집(普通敎育 唱歌集 第一輯)」이 발간된 것을 미루어 보아 10년대를 전후해서 신식노래인「창가」가 생겨난 것 같다.  신민요는 우리 고유 민요와 구분해서 붙인 명칭이다.  「유행가(流行歌)」는 훨씬 뒤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민요가 기생들 사회에서 주로 불려졌다면 창가는 학생층에서 불려졌다.  이때 창가집에는 군가, 양악, 지금의 대중 가요조 노래가 뚜렷한 구별없이 수록되었다. 나중에야 대중 가요조의 노래는 창가(唱歌)에 新자 하나를 더 붙인 신창가집(新唱歌集)에 구분해 실었다.  『학도가』는 신창가집(新唱歌集)에 수록되었다고 한다(형석기·刑奭基씨 말). 최초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인「창가집(唱歌集)」에도 수록됐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 책자는 그 행방을 감춰 확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작사, 작곡자도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평양 숭실(崇實)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김인식(金仁湜)씨가 작곡했다는 설이 있고 그때 일본 사람들의『철도가(鐵道歌)』(철도개통 기념가) 곡을 따온 것이란 설이 있다.  소위 신식 노래라고 하는 것을 한국인 자신이 작곡하여 부른 것은 극히 적고 대개가 외국 곡조에다가 가사를 붙여 불렀다는 점에서 볼때「철도가」쪽의 가능성이 크다.(황문평·黃文平씨 말)  가사는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이 평양에 대성(大成)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말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윤치호(尹致昊)씨가 만들었다는 주장. 윤치호(尹致昊)씨는 그때 개성 송도(松都)중학교 교장이었다.  이 노래가 처음 개성쪽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김수린·金壽麟씨 말)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어쨌든 이 교훈적인 노래는 학생 층에서 시작하여 전 국민에게 굉장한 전파력으로 유행했다.  당시 동경(東京)유학생들이 방학을 끝내고 일본(日本)땅으로 건너갈때 동대문(南大門)역(지금 서울역)「플래트 폼」에서 곧잘 이 노래를 합창했다 한다. 엄격히 따져서 요즘 말하는 대중가요와는 퍽 다른 점이 있지만 대중들 사이에 널리 유행한 신식 노래임은 틀림없다.  이『학도가』는 나중에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 채규엽(蔡奎燁)이「레코드」에 취입했다. 따라서 채규엽(蔡奎燁)은 한국 최초의「레코드」가수다. 그는『오너라 동무야, 강산에 다시 되돌아 꽃은 피고, 새는 이 봄을 노래하자, 강산에 동무들아 모두 다 모여라, 춤을 추며 노래 부르자』하는『봄노래』와『희망가(希望歌)』를 불러「레코드」시대의 여명기를 장식했다.  『희망가(希望歌)』의 가사는『이 풍진 세상을 만나면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1절)라는 것으로『희망』이기보다 자포자기적인 내용이다.  나라를 빼앗긴 젊은이들이 암담한 장래를 생각하며 화풀이도 제대로 못하는 울분을 가락에 실은 것이라 할까? 이 노래 역시『학도가』와 비슷한 시기인 1910년대 전후해서 유행한 것으로 작사,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중가요가 지나치게 비탄 절망적인 내용이라는 비판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직업가수가 생기기 이전의 구전(口傳) 노래부터 이 비탄조는 한국 대중가요의 속성이요 운명이었다.  교훈적인『학도가』『권농가』와 종교 계통의『불어라 봄바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물, 탄식, 향수를 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유랑(流浪)의 노래들이다.『피 식은 젊은이 눈물에 젖어, 낭만과 설움에 병든 몸으로 북국한설「오로라」로 끝없이 가는, 애달픈 이 가슴 누가 알거냐』(『유랑자(放浪者)의 노래』, 작사·작곡자 미상),『흘러가는 이 신세 물에 뜬 버들잎,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나, 정든 고향집이 차마 그리워 해 다 지고 저문 길 눈물이 아득하네』(『유랑인(流浪人)의 노래』, 김서정(金曙汀) 작사·작곡), 나라를 잃은 젊은이들이 낯선 만주땅, 산해관(山海關), 연해주(沿海州)로 정처없이 떠나는 모습들이 담겼다. 그야말로 희망도 장래도 없는「피 식은 젊은이」들의 넋두리다.  우리나라 처음의 무대가수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노래가 연극 공연의 중간에 불려져 막간가수란 말이 전해 온다.  1922년에 최초의 연극단체인「토월회(土月會)」가 조직되었는데 이 토월회(土月會)가 연극 공연 막간에 노래를 불렀다. 토월회(土月會)는 당시 동경(東京)에 유학, 신교육을 받은 박승희(朴勝喜)가 조직한 학술평론회였다. 여기의 멤버는 김기진(金基鎭), 이서구(李瑞求), 김을한(金乙漢), 김복진(金復鎭), 김기창(金基昶), 안석주(安碩柱), 이백수(李白水), 복혜숙(卜惠淑), 이승만(李承萬), 이정숙(李貞淑), 윤수선(尹水仙), 연학연(延鶴年), 이덕경(李悳卿) 등 이었다. 24년 7월에 조선극장(서울 인사동에 있었음)에서 신극을 공연하면서 막간에『아리랑』을 불렀다는 것. <계속>  <趙 觀 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1월1일 제6권 1호 통권 제22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 ‘깜짝’ 인사동 나들이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 ‘깜짝’ 인사동 나들이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의 깜짝 인사동 나들이에 팬들이 깜짝 놀랐다.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에이브릴 라빈이 인사동에 나타났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찍지 못하고) 옆모습이라도’라는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공개된 사진에서 에이브릴 라빈은 선글라스와 검은색 모자를 쓰고 검은색 스키니 바지와 하늘색 셔츠를 입어 다소 소탈하고 편안한 차림새로 눈길을 끌었다. 한편 에이브릴 라빈은 중국공연을 마치고 3일 한국에 입국했으며 5일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종로구 ‘윤동주 문화제’…30일부터 시화전 등 행사

    종로구는 시인 윤동주(1917~1945)를 기리고 그의 문학세계를 알리기 위해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윤동주 문화제’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문화제는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 종로구문화관광협의회와 함께 개최한다.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대표작을 누상동 하숙집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종로구가 넋을 기리게 됐다. 20세기 한국을 빛낸 시인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다. 축제 첫날인 30일에는 구립어린이집 원아와 학부모 100여명이 참석하는 시화전이 열린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시인이 남긴 동시를 부모가 읽어 주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동시를 써넣어 완성된 작품으로 꾸민다. 5월 1일엔 인사동에서 자하문 근처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문학둘레길 걷기 대회가 진행된다. 남인사마당~만해당(한용운 가옥~이상 생가(통의동)~세종대왕 탄생 터(통의동)~윤동주 하숙집 터~정철 생가 터(청운초등학교)를 잇는 코스다. 7일에는 제6회 윤동주 상 시상식도 열린다. 시인의 언덕을 다녀간 뒤 개인 블로그에 가장 인상 깊은 글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윤동주 블로그상’도 신설됐다. 올해 안에 청운가압장을 임시로 활용하고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전시공간과 문학인들의 쉼터로 새롭게 단장키로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회화적 느낌 밴 장신구 한자리에

    회화적 느낌 밴 장신구 한자리에

    “금속 공예는 색깔에서 한계가 있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보석명장 김찬씨에게 수정을 부탁했고, 옻칠장인 윤상희, 김동주씨에게 옷칠 삼베를 부탁했어요. 그걸 합쳐두니 다양한 색의 느낌이 한결 더 살아나더군요.” 금속공예가 김승희(61) 작가가 이번엔 ‘특별한 만남’을 주제로 브로치와 목걸이 작품들을 들고 나왔다. 김 작가의 작품은 이미 몇년 전부터 ‘사모님’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엔 옻칠로 여러 겹 붙인 삼베에다 색을 입히고, 미묘한 색감을 품고 있는 보석과 금속 혹은 나무 소재를 붙여 장신구로 만들었다. 원래 작가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소재는 마노. 도장을 파고 난 찌꺼기 같은 것이다. 어찌 보면 쓰레기에 불과한 것인데 이를 뭉쳐 써서 독특한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이 재료를 쓰는 데 따른 이점은 한 가지 더 있다. 가볍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신구의 전체적인 크기가 커졌다. 잘게 다듬어 예쁘게 쌓아 올려둔 깍두기라기보다 한 입 우두둑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벌건 국물을 잔뜩 묻혀 통째로 던져둔 총각무 같다. 장신구라 덩치는 작지만 아기자기하다기보다 재료의 질감 자체가 뿜어내는 역동적인 느낌이 진하게 묻어난다. “브로치나 목걸이는 기본적으로 장신구이지만, 장신구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회화적인 느낌이 묻어나도록 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때문에 이번엔 개별 작품을 액자에 넣어서 전시한다. 13~16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 (02)734-045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이현정 개인전 ‘페이스’ 12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가이아. 양모를 이용한 스크래치 기법을 통해 사람의 얼굴이 가진 질감을 살려낸 작품들을 내놓았다. (02)733-3373. ●이정재 개인전 ‘독도 다큐멘터리+이즘’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 독도에 집중해 온 작가가 선보이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독도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다. (02)732-3314.
  • [나와 통일] (5) 하임숙 한동대 4학년

    [나와 통일] (5) 하임숙 한동대 4학년

    나와 친구들은 지난달 서울 인사동의 가나 아트스페이스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 전시회에는 12일 동안 무려 2만 5000여명이나 다녀갔다. 예상치 못했던 뜨거운 반응이었다. 지난해 교내에서 열었던 전시회가 반응이 좋아 ‘서울에서도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정말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전시를 기획한 나조차도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 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없었던 것이었다. 관람객들 가운데는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잔인한 내용인데도 거부감 없이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끔찍한 수용소의 실상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전시장을 나갈 때에는 북한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두세번씩 들른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는 연인 한쌍이 전시장을 다시 찾아왔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방명록을 쓰고 있는데, 그 전에 함께 들렀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너희도 다시 왔구나. 그럴 줄 알았어.”라면서 공감이 확산되는 것을 여러 차례 목도했다. 시기적으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 같다. 통일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나는 통일 문제는, 경제적 이득이나 기회비용을 떠나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따라 흘러간다고 본다. 같은 민족, 가족, 형제로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 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양의 특권층 3000명은 잘먹고 잘살지만, 북한 주민들의 삶은 정말 처참하다. 탈북에 한 차례 실패해 북송 집결소에 있었던 언니 또래 여인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내 또래 20대 가운데에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통일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이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를 위해 인생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했을 수 있고 서로에 대한 상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위 세대들이 이뤄 놓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세대다. 북한과 정치적으로 엮이지 않고, 아픔도 없기 때문에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세대다. 당연히 의견은 진보, 보수가 나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가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통일이 바로 그런 문제라고 생각한다. 통일 이후의 정책을 세우는 데에는 가치관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통일을 이루기까지는 우리 세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려운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가치가 아닌가. 나는 남한이 주도해 통일을 이뤄 나갔으면 한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성공과 실패는 너무나 분명하게 나뉘었다. 남한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공을 이뤘다. 서독이 동독과 통일을 할 때 자신감이 있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통일을 이뤘으면 한다. 남한은 이제 보편적인 행복은 퍼져 있는 사회다. 그런 행복을 북한 사회와 나눴으면 좋겠다. 북한 인권을 얘기할 때 미국의 노예 해방을 많이 얘기한다. 노예 해방 문제는 남북전쟁을 일으킬 만큼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러나 노예 해방이 이뤄진 후에는 평등, 자유가 보편적 가치가 됐다. 통일도 그렇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약력 ▲24세 ▲한동대 산업정보디자인 학부 4학년·국제기업가정신 전공 ▲한동대 북한인권학회 ‘세이지’ 학회장
  • “수련 100만송이… 그림이 막 터져나와”

    “수련 100만송이… 그림이 막 터져나와”

    “와~ 그게, 그냥, 정말, 얼마나 사람 죽여주는지 알아요? 거기에 수련이 100만 송이가 있어요. 그 풍경에 며칠 푹 잠겨 있다가 그리기 시작하면, 막 미친 듯이 그리는 거예요. 그림이 그냥 막 터져나오는 거예요.” 10여년 동안 촌구석에 숨어 살았던 게 어지간히 적적했던 모양이다. 그림 터져나오는 것보다 걸걸한 목소리가 더 크게 터져나온다.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조부수 개인전. 조부수(67) 작가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을 넘나들며 활동했던 인기 작가였다. 그런데 1999년 말 파리아트페어에 참가한 뒤 갑자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다. “내 그림은 흥타령이라 신이 나야 하는데, 갑자기 지랄을 할 수가 없게 된 거야. 너무 답답한 거야.” 미리 약속했던 2002년 벨기에 브뤼셀 개인전을 끝으로 충남 부여 석성면 산동네에 잠적해 버렸다. 들리는 거라곤 바람소리, 보이는 거라곤 숲밖에 없는 곳이었다. 처음엔 힘들었다. “마누라하고 자식들한테 내 속이 뻥 뚫리는 그림을 그리기 전까진 안 돌아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돌아가. 무조건 버텼지.” 1~2년 지나고 나니 그때부터 그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번 전시 작품은 추상화풍인 그의 전작들과 완전히 다르다. 대형 캔버스 위에다 원색을 듬뿍 묻혀 수련과 꽃으로 가득한 풍경들을 그려냈다. 재밌는 작품은 2004년작 ‘꽃과 물고기’. 여전히 추상화적인 구도분할을 쓰고 있는 그림인데, 조부수의 새로운 작품세계가 장전됐을 때쯤 박혀든 ‘멈치못’처럼 보인다. (02)734-045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자청화운룡문호’ 17억 ‘와유첩’ 넘나

    ‘백자청화운룡문호’ 17억 ‘와유첩’ 넘나

    미술계가 경매 열기로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옥션을 시작으로 아이옥션(15일), K옥션(16일), 마이아트옥션(17일), AT옥션(4월 21일) 등 이름 있는 경매회사들이 주관하는 장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나오는 작품만도 오귀스트 르누아르, 로버트 라우센버그,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 1000여점에 이른다. 추정가 총액은 200억원대. 시장 상황이 아직 나아지지 않은 터라 등락 폭이 큰 현대미술보다 안정적인 고미술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장터는 오는 17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 2층에서 열리는 마이아트옥션 경매. 고미술품에 방점을 찍으면서 출범한 첫 경매다. 왕실 도자기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추정가 20억~30억원, 이하 추정가 기준), 이징의 흰 매 그림 ‘백응박압도’(2억~3억원), 미국에서 들여온 2폭 자수 병풍 ‘십장생문자수2곡병’(1억~1억 3000만원) 등이 출품된다. ●11점 남은 희귀품… 17일 고미술 낙찰 최고가 경신 주목 ‘백자청화운룡문호’는 조선 시대 제작돼 현재 11점 정도만 남아 있는 희귀 작품이다. 중국의 ‘견제’ 때문에 용 문양이 들어간 조선 백자 자체가 희귀한 데다, 백자는 크게 만들수록 찌그러질 위험이 커지는데 상대적으로 달항아리 같은 모양새를 잘 유지하고 있어 1등급으로 꼽힐 만 하다는 게 고미술계의 설명이다. 추정가 이상으로 낙찰되면 역대 고미술품 낙찰 최고가를 경신하게 된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지난해 경매로 팔린 ‘와유첩’(臥遊帖). 17억원이다. AT옥션도 내달 21일 제2회 경매에 중저가 도자기 고서화 200여점을 내놓아 고미술 경매 열기를 이어간다. 이에 앞서 이달 15일 오후 5시 서울 경운동에서 열리는 아이옥션 경매는 일반인들도 도전해볼 만하다. 총 245점이 나오는데 추정가 1000만원 미만의 작품이 95%(230점)를 차지한다. 물론 청자상감 ‘운학당초문주전자’(7000만~1억원), 청자 ‘퇴화문정병’(5000만~1억원) 등 고가 작품도 있다. 윤보선·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 15명이 쓴 친필 편지 15점도 나온다. ●해외 수집가 한국경매 참여 늘고 낙찰률 상승세 16일 오후 5시 서울 신사동에서 열리는 K옥션 경매에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1890년 무렵 작품 ‘기대 누운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소녀’(15억~18억원)가 선보인다. 최근 해외 수집가(컬렉터)가 한국 경매시장에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3월에는 르누아르 작품 ‘붉은 모자를 쓴 젊은 여인’이 6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데미안 허스트, 프랭크 스텔라, 구사마 야요이, 줄리앙 오피 작품 등 총 183점이 출품된다. 박수근의 ‘마을’(8억~12억원), 천경자의 ‘새’(1억 5000만~2억원)를 비롯해 조선시대 정선의 ‘해주허정도’(2억 7000만~3억 5000만원)와 김명국의 ‘한산도’(2억 2000만~2억 7000만원)도 만날 수 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10일 실시한 경매 낙찰률이 74.4%로 지난해 평균보다 5%포인트 높아졌다.”면서 “1억원 이상에 낙찰된 작품의 수(11건)와 범위도 커졌다는 점에서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선후기 회화 한자리…15일부터 인사동 동산방화랑

    조선후기 회화 한자리…15일부터 인사동 동산방화랑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가 1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조선 후기 회화전-옛 그림에의 향수’전이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심혈’이 들어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 이유는 1983년 조선 후기 회화전 이래 20여년 만에 열리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난리가 나면 도자기는 땅에 묻으면 되지만 그림은 불타거나 물에 젖어 찢겨버려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수량에서 한계가 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 있어요. ”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젊은 연구자나 후속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이들조차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며 박 대표는 탄식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탄은 이정(1541~1622)에서부터 운미 민영익(1860~1914)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망라된 데다 최초 공개작도 두루 섞여 있어서다. 박 대표는 “창업주인 아버지(박주환)의 덕을 많이 봤다.”면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생각한 소장가 분들이 전시의 뜻을 믿고 작품들을 맡겨주셨다.”고 밝혔다. 우선 이정의 ‘니금세죽’(泥細竹)에 시선이 간다.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손자의 손자)이었으나 왕위 세습에서 제외돼 묵죽화를 주로 남겼던 화가다. 박 대표는 “먹이 아니라 이금(아교를 섞어 갠 금가루)이라서 농담(濃淡)이나 필치의 맛이 색다르다.”면서 “격식과 운치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새 정자를 지은 백사 이항복에게 이금으로 써서 건네준 축시 ‘니금시고’(泥詩稿)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를 도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조선 후기 서화라 하면 겸재 정선부터 시작하는데 이번 전시는 탄은 작품까지 모셨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라면서 “왕족이라 그런지 굳세면서도 능숙한 필치에서 기품도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명작이라 요즘 중국 현대작가들하고 맞짱을 떠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조선의 3원 3재’라 불리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의 그림도 빼곡하다. 특히 김홍도의 게 그림은 일제 강점기 때 경매에서 한 차례 선보인 뒤 80여년 만에 다시 나왔다. 스스럼없는 필치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게의 모양새가 재밌다. (02)733-58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사진작가 민병헌…은은한 맛이 동양화 보는 듯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사진작가 민병헌…은은한 맛이 동양화 보는 듯

    “예전에 어떤 신문기자분이 그러시대요. 기사를 쓰고 싶어도 제 작품 사진을 쓸 수가 없어서 난감하다고. 미술 하면 뭔가 화려한 게 있어야 하는데 제 작품은 희끄무레하다 보니 신문에 크게 실어 놓으면 딱 제작 사고처럼 보인다나요.” 희끄무레한 사진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는 당대에 등장한 카메라의 렌즈가 대상을 찍어내는 방식에서 점묘법을 착안했다. 사람의 손으로 그리되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것. 민병헌(56) 작가가 내놓은 ‘폭포’(Waterfall) 시리즈는 정반대다. 대상은 카메라의 손으로 거머쥐는데 바라보는 것은 사람의 눈이다. 쇠라가 사진 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민병헌은 그림 같은 사진을 찍는다. ●‘동양화 같은 사진’ 美·佛서 주문 밀려 작업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화창하지 않은 날, 그러니까 비나 바람이나 안개가 적당히 있는 날에 촬영한다. 여기다 흑백 필름만 고집하고 인화작업도 직접한다. 인화 때도 톤을 최대한 낮춰 뽑아낸다. 흑백만 해도 색채감이 뚝 떨어지는데 톤까지 낮춰버리니 몇몇 작품은 뭔가를 찍었다기보다 뉘앙스를 풍기는 정도에 그친다. 바로 이 뉘앙스를 봐달라는 게 민 작가의 말이다. “저도 처음엔 콘트라스트(명암 대비)가 명확한 사진을 찍었어요. 흑백 사진의 묘미가 거기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명확한 콘트라스트는 그냥 검고 흰 것만 남기고 디테일들을 다 죽여요. 그래서 콘트라스트를 최대한 억제해 보니 모든 디테일들이 다 살아나더라고요. 흰색, 검은색 속에 모든 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높낮이의 회색톤들이 나오는 거죠.” ●“명암 억제하니 디테일이 살아나” 이런 작품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있다. “1990년대에 ‘잡초’ 시리즈를 내놨어요. 큰 회사 사모님이 마음에 드셨나봐요. 양수리 작업실까지 오셔서 사가셨죠. 그런데 다음날 사진을 바꾸재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남편 분이 집안에 웬 잡초를 들이냐고 야단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꿔 간 게 하늘을 찍은 ‘스카이’ 연작이에요. 이 연작은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찍은 거라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하늘이라면 괜찮다고 하셨대요. 더 웃긴 건 나중에 한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고객에게 선전하면서 ‘들풀’ 연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아하, 잡초가 아니라 들풀이라고 했으면 더 잘 팔렸을 텐데 싶더라고요.” 처음부터 환영받은 작업은 아니었다. 1980년대 유행은 ‘마사지’한 사진들이었다. 때문에 있는 그대로 우직하니 찍어 승부를 내는 그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1980년대를 일러 “그때를 생각하면 소외감, 열등감 같은 단어만 떠오른다.”고 할 정도다. ●“필름 인화하는 내내 조바심… 불안함이 좋아” 그의 작품을 먼저 알아본 곳은 해외. 1990년대부터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주문이 밀려들면서 시쳇말로 ‘떴다’. 작품에서 풍겨져 나오는 은은한 맛이 마치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전부 수작업이다 보니 작품은 커 봤자 가로·세로 130㎝를 못 넘긴다. 더욱이 디지털카메라의 유행으로 인화지를 구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재고를 써 보기도 했지만 질이 떨어져 작품을 망친 뒤로는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옛 방식의 수작업이 좋단다. “불안함이 참 좋아요. 디지털 사진기는 찍고 바로 확인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흑백필름은 그게 안 되니까 찍고 나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고 불안하고. 인화하는 내내 괜찮게 나올까 조바심도 나고. 그러다 보면 풍경이나 대상을 사진기가 아니라 내 마음에 품어 올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좋아요.” 그래도 색에 대한 갈망은 없었을까. “한때 컬러를 해 볼까도 했어요. 완전 수작업이라 비용과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나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대신 옷에는 관심이 많아요. 패션 같은 데서 대리만족하고 사나 봐요.” 그러잖아도 작품을 보고 작가를 보면 언뜻 조화가 잘 안 된다. 믹 재거 같다는 얘기에 크하하 웃는다. “작품만 보신 분들은 생활한복 입고 수염 기른, 어디 인사동 같은 데 앉아 있는 사람이 떠오른대요. 그러다 저를 직접 보면 다들 놀라요. 이런 날라리가 없거든요.” 하반기에는 작품집도 나온다. 프랑스 전시도 준비 중이다. 이번엔 누드 시리즈다. 일반인 모델을 썼는데 톤은 기존 시리즈와 비슷하단다. “일반인들은 희미하게 찍히면 싫어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은은한 톤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한다. 오는 5월 10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안개’(Deep Fog), ‘나무’(Tree), ‘스노랜드’(Snowland) 시리즈 등 전작(前作)도 만날 수 있다. 3000~4000원. (02)418-131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내 도자기경매 최고가 깨질까

    조선 왕실 도자기 등 고미술품이 대거 경매에 나온다. 신생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은 17일 오후 5시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 4층에서 여는 제1회 메인옥션에서 ‘백자청화운룡문호’ 도자기 등 200여점을 출품한다고 8일 밝혔다.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는 18세기 조선시대 왕실에서만 사용되던 도자기로, 통상 용의 발가락을 4개 그리는 것과 달리 5개를 그려 일명 ‘백자청화오조룡호’라고도 불린다.국내외 통틀어 11점에 불과하며 해외 경매에서는 몇 차례 나온 적 있지만 국내에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번에 나온 작품은 지금까지 나온 같은 형태의 백자 가운데 높이(59.3㎝)도 가장 높아 낙찰 추정가가 20억~30억원에 이른다고 마이아트옥션 측은 전했다. 국내 도자기 경매 사상 최고가는 2006년 2월 서울옥션의 100회 경매에서 16억 2000만원에 팔린 17세기 전반의 도자기 ‘철화백자운룡문호’다. 이번 경매에는 또 미국에서 환수해 온 자수 병풍인 ‘십장생문자수2곡병’과 15세기 전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 조선의 이름난 화원인 허주 이징의 ‘백응박압도’ 등 희귀한 고미술품을 비롯해 장욱진의 ‘자전거와 자동차가 있는 풍경’, 이응노의 ‘문자추상’ 등 현대 작품도 출품된다. 경매에 앞서 10일~17일까지는 공아트스페이스 2~4층에서 프리뷰 행사도 진행된다. 연합뉴스
  • 3·1운동 민족대표 김창준 목사 육필 회고록

    3·1운동 민족대표 김창준 목사 육필 회고록

    3·1 민족운동의 지도자이자 광복 뒤 북한에서 최고인민위원회 부의장을 지낸 김창준(1890~1959) 목사의 육필 회고록이 출간됐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1일 기독교사회주의자인 김 목사의 증언이 담긴 ‘기독교민족사회주의자 김창준 유고’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기독교계 대표로 3·1운동에 참가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명. 김 목사는 3·1운동 당시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평안도 지역에 이를 배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수감된 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김 목사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다 광복을 맞았다. 이후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을 따라 남북협상을 위해 북한으로 건너간 뒤 북한에 남았고,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부의장 등을 역임한 뒤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이 때문에 1919~1921년 수감기간 동안 옥중에서 보낸 29통의 각종 편지에는 독립운동에 대한 신념과 식모살이를 하면서 옥중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아내 김창숙에 대한 미안함 등이 묻어나 있다. 또 3·1운동 기념사를 위해 1946년 2월에 작성한 46장 분량의 원고 ‘기미운동 후 금일까지의 경위’에는 광복 이후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민족대표 33인의 글 가운데 당시를 회고하는 내용을 담은 것은 이 글이 유일하다. 특히 이 원고에는 3·1운동 뒤 연행된 총독부 취조실에서 하루 세 차례씩 고문당하고 물도 없이 하루에 주먹밥 1개만 주는 바람에 10일 만에 18㎏이 빠져 버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3·1운동과 SNS/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

    [열린세상] 3·1운동과 SNS/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

    때는 92년 전 3월 1일, 조선의 민족대표 29인은 늦게 온 4명을 제외하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다. 선언 후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고, 60여명의 일본 경찰들이 태화관으로 몰려와서 우리 대표들을 남산 경무총감부와 현재의 중부경찰서로 연행하였다. 거사 당일 당연히 통신수단의 미비로 민족 대표들끼리의 연락도 쉽지 않았지만, 대표들과 학생 시위대와의 소통도 전혀 원활하지 않았다. 더욱이 시위학생들과의 원래 약속장소는 태화관과 300m 떨어진 탑골공원이어서, 민족대표 33인이 나타나지 않자 당황한 학생대표는 단독으로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 낭독까지 했다. 3·1운동으로 말미암아 상해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고, 전 세계에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결의와 의지를 전파하는 큰 성과가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좀 엉뚱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시계를 반대로 돌려 92년 전 3·1운동 당시 요즘과 같은 정보통신(IT) 기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존재했다면 3·1운동의 시위 양상과 그 결과 역시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도미노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역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92년 전 한반도에는 조직화된 반정부 세력이나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고, 요즘의 튀니지·이집트·리비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 3개 국가에서 시위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여 시위를 주도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시위장면을 생중계하면서 부패 청산, 장기 독재정권 퇴진, 기본권 보장 같은 실질적인 주장을 전파하니 그 효과가 아주 절대적이다. 대학까지 나왔지만 취직이 안 돼 튀니지 인구 4만의 소도시 시드 부지드에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경찰의 단속으로 청과물을 압류당했고, 이를 항의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자 분신을 선택했다. 이러한 불행한 소식이 금방 SNS를 타고 가공할 실업률, 부정부패와 장기독재로 얼룩진 튀니지에서는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발전되고, 곧 23년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에 대한 전국적 정권퇴진 운동으로 발전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인터넷을 차단하고, 비판적 인사들의 이메일과 SNS 계정을 해킹하면서까지 이러한 반정부 시위를 막고자 했지만, 도리어 우회 경로를 통해 페이스북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었고, 결국 시위 2개월 만인 지난 1월 15일 외국으로 야반도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튀니지의 인구가 1000만명 정도인데, 이중 페이스북 가입자가 무려 180만명 정도로, 18%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 역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제안된 반정부 집회에 엄청난 시민들이 호응을 했고, 휴대전화·스마트폰·노트북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들은 집회 장소와 시위 상황 등을 SNS를 통해 생중계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 역시 인터넷 차단과 주요 시위 주도자에 대한 감금으로 대응했지만, 결국 2월 11일 헬기를 타고 휴양지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 고 말았다. 지식정보사회에서 무서운 것은 일반 대중이 총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디지털 카메라·노트북 등으로 무장한 대중이 이러한 정보를 다시 SNS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SNS가 민주화와 개방화에 기여만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왜곡된 정보도 정말 효과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나 권력집단에 의한 정보 왜곡은 정말 두려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정치인들이 요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매달리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사회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미지수다. 물론 정부나 정치인들의 정보 왜곡은 일반 시민들과 미디어의 개방적 네트워크에 의한 지속적 검증으로 막는 방법 외에는 없다. 왜냐하면, SNS의 진정한 위력도 민주화와 개방화를 위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의식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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