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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칠레서 유년 보낸 두 예술가의 전시회

    이란·칠레서 유년 보낸 두 예술가의 전시회

    소녀가 경험했던 아랍의 이란과 소년이 경험했던 남미의 칠레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성인 예술가로 성장한 소녀와 소년은 남성 위주 사회가 지닌 억압과 군부 독재의 아픈 역사를 여태껏 기억에서 게워 내지 못하고 있다. 애써 억압의 색깔을 작품에서 지우려 하지만 그들의 잠재의식은 ‘취조실’ 같은 궂은 기억을 되새김질하곤 한다. 최근 한국을 찾은 작가들을 만나봤다. ■ 풍자된 중년의 욕망 이란 출신 탈라 마다니 “중년 남성은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존재예요. 인간의 부조리를 가장 잘 드러낸 갈등의 시기라고 할까요.”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작품들은 뭔가 사연을 담은 듯하다. 기존 미술의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이란 출신의 여류 작가 탈라 마다니(33)는 요즘 영국 화단에서 ‘뜨는’ 젊은 화가다. 육체적 요소에 블랙 유머를 적절히 섞어 사회의 관습과 모순을 꼬집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작품에는 끊임없이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이들의 욕망은 어둠 속 프로젝터를 통해 화면에 투사되는 감각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어린 소녀는 치마를 들추며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이를 바라보는 중년 남성들의 눈빛은 반짝인다. 아예 넋을 놓고 있다. 다른 그림에선 한 중년 남성이 기저귀 차림의 자신이 기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본다. 마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본능에 충실한 남성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립대와 예일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져 왔는데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 대한 비판 의식이 돋보인다. 작가는 15세 때 이란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런 성장 배경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작품 속 중년 남성은 모두 아랍인이죠. 이들은 뭔가 욕망을 표출하려 해요. 어린 시절 이란에서 성장했던 경험이 무의식 중에 투영된 겁니다.” 오는 5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PKM갤러리에서 이어지는 전시에는 마다니의 약혼자인 영국 출신의 나다니엘 멜로스(40)도 함께 참여한다. 둘 다 한국 나들이는 처음이다. 영상, 퍼포먼스 작업에 천착해 온 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굴 비유’를 담은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한 현대인이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동굴벽화를 그린 원시인을 인터뷰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또 보라색과 주황색으로 범벅이 된 셰익스피어의 뇌에 빨대를 꽂은 조각도 내놨다. 이성이 지배하는 현생 인류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얼마 전 결혼을 약속한 두 작가가 함께 전시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과도한 표현 때문에 영국에서 전시가 취소됐던 작품도 포함됐다. 두 작가는 “예술 작품은 본능과 욕망을 억누르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며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데 저항하는 건 예술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빛이 된 독재의 기억 칠레 출신 이반 나바로 “어떤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취조실’을 떠올린다고 하죠. 하지만 전 딱히 억압적인 이미지를 담으려고 의도하진 않았습니다.” 와인으로 유명한 칠레는 군부 독재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칠레 출신의 네온아트 작가인 이반 나바로(42)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이듬해인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직에 오른다. 이후 17년간 잔인한 철권통치가 이어졌다. 어린 시절 숱한 통행금지와 정전을 겪으며 쌓인 어두운 기억은 역설적으로 나바로를 빛의 예술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 “돈이나 벌어 보자”며 떠난 미국 뉴욕에서 그는 욕망의 분출구를 찾았다. “2003년 우연히 차이나타운을 지나다 벽에 걸린 별 모양 램프를 봤어요. 별이 끝없이 멀어지는 듯한 환영에 빠져들었죠.” 이후 작가는 다양한 종류의 거울로 실험해 왔다. 지금은 ‘네온아트의 떠오르는 별’로 불린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칠레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 뉴욕 매디슨스퀘어에 이민자의 지친 삶을 달래기 위한 네온 작품을 매달아 화제를 모았다. 작가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회를 이어 간다. 빛의 속도를 뜻하는 ‘299 792 458 ㎧’가 전시 제목이다. 설치작품 14점을 선보이는 작가는 마법에 가까운 눈속임을 부린다. 불과 20㎝ 두께의 작품들은 볼수록 끝없이 이어지는 환상을 불러온다. 바닥에 설치된 ‘우물’ 작품은 나락으로 빠질 듯한 아찔함을 드러내 관람객을 뒷걸음치게 만든다. ‘스파이 미러’를 통해 유리 속 거울을 반사하도록 해 무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식이다. 작가는 2011년부터 유명 고층 건물의 도면을 네온 조각 작품으로 선보이며 미국 시카고 시어스타워 등을 소재로 활용했다. 이번 전시에선 건축 중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이미지를 담은 ‘짐’(Burden)이란 작품이 포함됐다. 전시장 지하에는 ‘현대 울타리’란 작품도 있다. 100여개가 넘는 백색 형광등으로 만들어진 울타리는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색깔을 지양하고자 작품 제목을 ‘남과 북’으로 하지 않았어요. 강요된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지요.” 백색 형광등은 거울에 반사되면 초록빛으로 변한다. 보통 초록은 신선하고 상쾌하지만 그의 초록은 시리고 아픈 느낌이다. 흰색으로 눈속임하지만 가슴에 새겨진 아픈 기억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0년간 백두산 찍은 산악 사진가 안승일

    [김문이 만난사람] 20년간 백두산 찍은 산악 사진가 안승일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라도령은 꽃향기에 잔뜩 취했다. 저절로 백두의 문이 열렸다. 금잔 한 잔에 시름 한 술 놓았다. 흰 구름과 함께 백두낭자가 나타났다. 낭자는 팔을 벌려 한라도령을 감싸 안았다. 고운 자태와 온화한 숨결로 그를 따뜻하게 포옹했다. 도령은 낭자의 아름다운 치마폭에 푹 빠졌다.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었다.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낭자는 어느새 백두의 여신으로 변했다. 도령은 얼마 후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설레는 20년을 백두산에서 살았다. 나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백두산에 묻었다. 백두산은 나의 스승이요 사랑이다. 20년 전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자연을 복제해내는 단순한 인간 복사기로, 사람질 제대로 못해 보고 머저리 사진장이의 삶을 살고 말았을 것이다.’ 산악사진가 안승일(68)씨는 ‘괴짜’로 통한다. 20년 동안 사시사철 백두산에 살다시피 하며 백두산 속살만 수십만 컷을 찍었다. 단순히 카메라 셔터만 누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나만큼 진하게 백두산의 영혼과 동고동락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정도로 백두산에 미쳐 지냈다. 천지를 보는 순간 백두의 신을 만나 넙죽 큰절을 올리면서 단박에 시작된 백두산 인생이었기에 ‘괴짜, 백두산의 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로지 사진 한 장을 담기 위해 백운봉에서 장군봉으로 솟는 해를 기다리며 영하 50도를 견뎌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아예 천막집을 두 채나 짓고 살았다. 계속되는 눈보라에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천막집 안에서 김치전과 만두를 빚고 눈 녹인 물로 북어 대가리와 멸치 육수를 만들어 칼국수만 먹다 보니 복부비만에 고지혈증 환자가 됐다. 제대로 된 일출 하나 건지려고 서백두 청석봉에서는 눈구덩이를 파고 지낸 일이 수백 번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한 컷 한 컷에 대한 기대감으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즐겁게 지냈다. 백두산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하나 사서 작업실을 꾸렸다. 백두산을 마주 보는 식탁에서 밥을 먹고 뒹굴뒹굴 책이나 보다가 미풍을 타고 살살 들어오는 구름이 산과 어울리는 낌새가 보이면 후다닥 집 근처 오름으로 달려갔다. 운 좋은 날이면 창밖으로 펼쳐진 웅장한 장백산맥의 새벽을 담았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살았다. 최근 안씨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불멸 또는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백두산의 20년 사진전을 열어 ‘역시 괴짜 안승일’이라는 낙관을 또 한번 찍었다. 백두산에서 지낸 세월이 궁금해 지난 18일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소 사무실에서 안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아직도 갈 수 없는 산’과 ‘우리 동네 꽃 동네’라는 두 권의 사진집을 최근에 찍어냈다. 백두산 20년의 흔적이 담긴 것들이다. 사진집을 들추던 그에게 어떻게 해서 백두산과 인연을 맺었는지 먼저 물었다. “1994년 4월이었지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산악인 글쟁이 박인식씨가 백두산에 가자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통일이 된 후에나 백두산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4, 5년 뒤면 통일이 될 줄 알았지요. 인천항에서 박씨를 만났는데 다른 일행 열댓 명과 같이 왔습니다. 이들은 중국 여러 곳의 여행코스 중 백두산에 들르는 일정을 잡고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백두산 코스에서 숙명처럼 혼자 남게 되면서 20년 동안 그곳에 파묻히게 됐습니다. 필름 현상을 위해 한국에 와야 할 때 말고는 줄곧 백두산에서 지냈지요.”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산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쉽지가 않았다. 기상이변이 워낙 심해 ‘진경의 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눈 덮인 산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찾는 것처럼 마땅한 터를 잡고 앉아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가끔 중국 병사와 맞닥뜨려 ‘수상한 자’로 내몰리기도 했다. “하루는 중무장한 중국 군인 셋이 제 방에 들어와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얼른 찍고 갈 것이지 왜 오랫동안 살고 있느냐, 국경 부근에 어슬렁거리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 카메라와 렌즈들은 무슨 용도에 쓰이는 것이냐고 다그쳤습니다. 결국 저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나중에는 친한 사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두산에서 1년을 지낸 뒤 ‘백두산’이라는 사진집을 냈다. 장기체류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찍은 생생한 장면들이 모였다. 백두산이라는 하나의 피사체에 4m에서 16m에 이르기까지 마치 백두산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만한 사진들이었다. 이어 안씨는 북한 쪽에서 백두산을 찍은 일본 사진작가 이와하시의 사진 ‘장백산’과 자신의 사진 ‘백두산’을 합해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이때 ‘백두산’ 사진집 표지 안쪽 날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눈길을 끌었었다. ‘정일이 형님, 백두산 금강산 사진이 필요하시면 일본 사람 부르지 마시고 내가 좀 찍게 해주시오. 나는 평생 산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오. 사진은 재주나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혼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민족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내 조국 산하를 왜 일인들에게 빼앗겨야 합니까.’ 2001년 6월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남북공동사진전이 열릴 때에도 난생처음 넥타이를 매고 ‘정일이 형님’을 향해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백두산 사진작업을 통일을 위한 민족화합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작했다. 그래서 백두산 사진은 대부분 ‘남과 북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혹자는 감상적 통일론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백두산에 있다 보니 참으로 이상한 산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면서 “애국자도 아닌 사람에게 나라를 걱정하게 하고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에게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1998년 부산에서 열린 북한의 사진가 김용남의 사진과 함께 2인전을 통해서도 이 같은 ‘백두산의 혼’을 알리기도 했다. 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해서 맺게 됐을까. 어릴 적부터 시끄러운 세상살이가 싫어 자꾸 산으로 갔다. 중학교 때였다. 그해 처음 뜨는 해를 본다고 삼각산으로 갔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텐트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심취했다. 나중에 한적한 시골에서 살 생각에 건국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시간만 나면 산으로 가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2학년 때 대학을 중퇴한 그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서라벌예술대 사진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 많은 자신한테 반말로 하대하는 후배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꼴사나웠다. 다시 등산 장비를 챙기고 산으로 올라갔다. 간첩으로 오인받아 여러 차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럴 무렵 서라벌예대 산악회 선배들한테 결혼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968년 당시에는 신랑 신부가 결혼 예복을 입고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붐이 일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에 따라 결혼하는 선배들이 그를 불렀던 것이다. 나중에는 결혼하는 친구들도 그를 찾았다. 이래저래 돈이 모였다. 1979년 충무로에 스튜디오를 내고 광고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달동네에서 어렵게 사는 아버지한테 500만원을 건네면서 집을 늘려 구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에게 사진집을 만들 것을 권유하면서 사진가로 대성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첫 사진집 ‘산’을 시작으로 ‘삼각산’ ‘한라산’ 등이 연이어 나왔다. 도봉산 인근에 작업실을 위한 땅을 장만할 만큼 돈을 모았다. 충무로 생활 10년쯤 지날 무렵 그는 백두산에 ‘필’이 꽂히면서 모든 것을 접고 백두산으로 훌쩍 떠나게 된다. 벌어놓은 돈까지 몽땅 백두산 사진에 투입했다. “경제적으로는 다시 어려워졌지만 제게는 영원한 스승이자 연인과 같은 백두산이 곁에 남아 있습니다. 항상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지금 와서 효자 노릇까지 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사진을 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크게 인화해주곤 합니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 있거든요(웃음).” 백두산 사진은 몇 장 정도 가지고 있을까. 웃으면서 “그런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8을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를 나타내는 수학기호가 된다. 그만큼 정말 지독하게 찍었다”면서 “하지만 고르고 골라 엄선해서 내놓을 만한 사진은 100여장이다. 찍은 사진 컷 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과연 몇 장의 사진을 건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나마 20년 동안 운 좋게도 100장 정도 건졌다고 생각한다”며 웃는다. 다시 물었다. 백두산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할까. “저는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석을 백두산에서 보냈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가야 할 산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산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작업이 민족화합의 그날을 한시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저의 사진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통일이라도 한 발 앞당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제 16세 때 맨 처음 카메라 매고 올랐던 삼각산부터 다시 오를 예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산악사진 인생 2막을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안승일은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세 때부터 카메라를 매고 산에 올랐다. 서라벌예술대 사진과를 중퇴했다. 1979년 서울 충무로에 그린스튜디오를 설립해 광고사진을 찍었다. 1994년부터 20년 동안 백두산 사진에만 몰두했다. 주요 사진전으로는 ‘한국의 산’(1970·1975년), ‘백두산-일본 사진가 이와하시와 2인전’(1996년), ‘백두산-북한 사진가 김용남과 2인전’(1998년), ‘남북공동사진전-평양’(2001·2004년), ‘산의 영과 기-서예가 권창륜과 2인전’(2011년), ‘백두산 사진전-불멸 또는 황홀’(2014년) 등이 있다. 또한 사진집으로는 ‘산’(1982년), ‘삼각산’(1990년), ‘한라산’(1993년), ‘백두산’(1995년), ‘굴피집’(1997년), ‘아리랑’(1999년), ‘고산화원’(2007년), ‘천상지천하화’(2010년), ‘백산백화’(2013년), ‘아직도 갈 수 없는 산’(2014년), ‘우리 동네 꽃 동네’(2014년) 등 10여권을 발간했다.
  • 서울시 소방안전지도 운용키로

    서울시는 20일 화재 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현장에 알려줄 수 있는 ‘소방안전지도’를 개발, 운용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인사동 방화 사건 때 신속한 대응능력이 미흡했다는 반성에 따라 추진된 사업이다. 안전지도는 A건물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A건물의 이력과 현황, 그 건물 주변의 지형,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도로 확인, 가장 가까운 소화용수의 위치 등 관련 정보를 한데 모아 화재진압팀의 지휘관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해주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1년간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473개 지역, 전통시장이나 쪽방촌 등 화재에 취약한 시설 1676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또 68만개 건축물 대장 정보, 1262명의 장애인 거주 정보, 142곳의 유해화학물업소, 43곳의 국가주요시설 정보 등도 모았다. 국토지리원의 도로정보, 기상청의 날씨정보, 포털사이트 다음의 교통정보와 위성사진도 활용했다. 화재신고 접수 뒤 출동하면서 소방 지휘관은 전용 단말기를 통해 이런 정보들을 한데 다 받아볼 수 있다. 출동 최단 경로를 알려주고, 소방차 동선도 5초 단위로 표시한 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소화용수 위치를 알려준다. 1초를 다투는 순간 출동시간을 줄이고 진입 순서에 따른 소방차 배치와 업무분담을 바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목조건물 밀집지역에서는 풍향, 풍속 관련 정보도 제공한다. 시는 LTE망을 통해 소방안전지도를 인용할 수 있는 태블릿PC 단말기 30대를 23개 소방서 지휘자에게 나눠줬다. 다음 달에는 소방서 구조대에도 24대 지급한다. 현장 소방관에 대한 위치추적 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권순경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은 “소방안전지도를 통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뿐 아니라 소방관들의 안전도 함께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이번 주말 종로는 ‘한복 패션위크’

    이번 주말 종로는 ‘한복 패션위크’

    “올해 처음 열리는 한복 축제 패션쇼에 우리 부부가 함께 참가하게 돼 기쁩니다. 한복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려야죠.” 부인과 한솥밥 공무원인 종로구 김영신 여성가족과장은 19일 이같이 말하며 한복을 예찬하기에 바빴다. 김 과장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행사에 아내인 김미자 재무과 지출팀장과 모델로 나선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매월 첫째 화요일을 전통 한복 입는 날로 지정해 전 직원이 한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며 “한 달에 한 번이지만 1년째 하다 보니 이제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오는 22일 ‘2014 인사동 한복 축제’를 연다.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한복의 멋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복 입기 생활화를 확산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오후 2시 전통의상 퍼레이드로 행사 시작을 알린다. 북인사마당~남인사마당 690m 구간에서 성인 대취타를 선두로 궁중의상·서민의상, 어린이 대취타, 한복동호회, 태평무, 부채춤, 국악기 연주, 풍물놀이패 등 행렬이 뒤따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민, 공무원이 참가하는 한복 패션쇼다. 오후 2시 30분부터 남인사마당 야외무대에서 펼쳐진다. 평소 한복 대중화를 강조하는 김영종 구청장이 모델을 자처했다.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은 5명을 포함한 직원 10명도 무대에 선다. 17개 동 가운데 15곳 주민들도 맵시를 뽐낸다. 가족, 친구, 연인 등으로 구성된 주민 16개 팀이 쇼를 꾸린다. 국악 소녀 송소희, 조주선 명창의 공연, 마술 등 다채로운 행사가 기다린다. 또 북인사관광안내소는 지난해 4월부터 실시한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이날 준공식을 한다. 김 구청장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한복을 주제로 축제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한복, 한옥, 한식, 한글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술맛·입맛 돋우는 석쇠구이 안주, 어디가 맛있을까?

    술맛·입맛 돋우는 석쇠구이 안주, 어디가 맛있을까?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육류를 구워 먹었기 때문에 고기를 굽는 도구 또한 일찍부터 발달됐다. 철사나 구리를 가로와 세로로 그물처럼 얽어 만든 석쇠 또한 고기를 장작이나, 숯불, 연탄불 위에 직화로 구워 먹을 때 쓰는 조리 도구로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튀기거나 볶는 것에 비해 석쇠에 구운 요리들은 기름기가 빠진 대신 육즙이 살아있고 불에 직접 구워 고소한 맛과 담백한 식감이 뛰어나 지금 같은 환절기에 입맛과 기운을 돋우기에도 좋다.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 나른한 봄날에 훌륭한 밥 반찬이자 술 안주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 온 석쇠구이를 제대로 구울 줄 아는 맛집에서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숯불요리와 국수까지 맛볼 수 있는 ‘인사동 석쇠구이’=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인사동 입구에서 화장품 가게를 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맛있는 냄새가 가득 번져 나오는 곳이 있다. ‘맛을 모르면 찾기 어려운 집’이란 글귀를 간판에 달고 있는 ‘인사동 석쇠구이’가 바로 그 맛있는 냄새의 근원지다. ‘인사동 석쇠구이’는 돼지간장 석쇠구이, 돼지고추장 석쇠구이, 닭고추장 석쇠구이가 골고루 인기 있는 곳으로 눈에 잘 뛰지 않는 자리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 소문을 타고 석쇠구이 맛집으로 제법 알려진 곳이다. 석쇠구이를 주문하면 제공되는 멸치국수와 비빔국수 또한 일품이라 찾는 이들의 만족도가 높다. △연탄불과 향긋한 파의 궁합 ‘왕십리 한량석쇠집’=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왕십리 한량석쇠집도 맛집 블로거들의 칭찬이 자자한 곳으로 저녁 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석쇠구이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이 집 메뉴들은 연탄불에 초벌된 삼겹살과 고추장 불고기, 매운 불족발 위에 파를 올려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은은한 숯향이 배인 고기와 향긋한 파, 이 집에서 만든 간장소스의 절묘한 궁합이 살얼음을 얼려서 나온 소주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옛 생각에 절로 잠기는 ‘석쇠구이 전문점 구(舊)노(路)포차’=’골목길의 이슬 같이 마음을 달래주는 행복한 가게’란 의미를 담고 있는 구(舊)노(路)포차는 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 콘셉트의 포차로 잘 알려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음직한 그 시절의 모습이 잘 구현된 실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지만 석쇠구이 전문점답게 닭발, 불고기, 제육구이, 오돌뼈구이, 꼼장어구이, 삼치구이, 고등어구이 등 육해공을 아우르는 다양한 석쇠구이를 맛볼 수 있다. 석쇠에 올려져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져 나오는 석쇠구이의 고소한 맛과 더불어 미치겠닭, 도마 계란말이, 야족발, 골뱅이홍합탕도 푸짐한 양과 맛을 자랑하며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집의 인기메뉴다. △보양식의 대명사 장어구이집 ‘풍천민물장어 도소매 직판장’=신도림역 인근의 풍천민물장어 직판장은 셀프장어구이 전문점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직판장에서 막 잡은 100% 국내 장어를 즉석에서 직접 굽는 전문점이라 신선도를 유지하는 담백한 장어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숯불에 셀프로 구워먹는 장어구이란 것도 독특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무한 리필이 된다는 점도 이곳을 찾은 이들이 맛집으로 적극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기운이 빠지고 나른해지는 봄날, 은은하게 코끝으로 스미는 숯불향이 맛의 풍미를 더하고 느끼한 기름기는 빠져 담백함이 가득한 석쇠구이로 술맛과 입맛을 돋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인사동 고층호텔 허용 추진… 주민들 반발

    서울시가 전통문화 업종 외 입점이 제한된 종로구 인사동 ‘주가로변’ 일부 구역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은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의 정체성이 실추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16일 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28일 열린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에 인사동 업종제한 구간을 축소하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민간위원인 윤용철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이 “호텔 등 대형 상업 건물 허가에 대해서는 주민의견을 수렴한 뒤 재논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해 주가로변 구역 범위 조정 안건은 보류됐다. 이 안건은 인사동길 20-3, 20-5, 22-6 등 인사동 문화지구 내 24개 필지를 인사동 문화지구의 주가로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사동 사거리 북쪽 안국역 일대(인사·관훈·낙원동)는 2002년부터 인사동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높이가 최대 4층으로 제한돼 있다. 인사동 사거리 남쪽 종로 방면은 공평도시환경구역으로 지정돼 높이 60m 이내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 특히 인사동길과 태화관길의 주가로변은 높이 24m로 묶여 있으며 고미술품점, 골동품점, 표구사, 필방 등 전통문화 업종만 입점할 수 있다. 변경안대로 일부 지역이 주가로변에서 제외되면 업종제한이 풀려 그동안 금지된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호텔 예상부지로 알려진 곳은 인사동 커피빈 매장 건너편 인사동길 12, 20, 22 일대다. 최대 높이 60m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어 약 19층 높이가 가능하다. 이미 강남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일부 건물주와 가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윤 회장은 “부동산 개발업체가 주가로변 일부 부지에 호텔을 짓기 위한 건물주의 동의서를 받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면서 “시와 구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 등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인사동 거리는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70~80%가 들르는 곳”이라며 “문화지구의 범위를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대형 상업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는 최근 문화지구변경안을 재논의하자는 내용을 구에 통보했다. 시 관계자는 “호텔 건설이 아직 승인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보류된 안건에 대해서는 향후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씨줄날줄] 인사동의 고층호텔/서동철 논설위원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에 호텔을 비롯한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가 일부 구역이기는 하지만 4층 이하 건물에 전통문화업종만 들어설 수 있도록 한 기존 규제를 푸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19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은 이미 지난달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한 차례 거쳤다고 한다.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은 2002년이다. 전통문화 보호와 육성을 위한 업종 규제와 용도 제한, 건축 및 개발 제한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해 공평 도시환경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문화지구 일부를 정비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탑골공원 서쪽의 남인사마당에서 덕원갤러리가 있는 인사동 네거리에 이르는 문화지구 남동쪽 구간이다. 사실 인사동 문화지구는 지정부터가 전통문화 거리의 급격한 해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다는 고육지책이었다. 인사동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막상 보여줄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추세는 이미 1990년대부터 본격화하고 있었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에도 정체성은 끊임없이 훼손되어 인사동의 상징이었던 골동품 가게와 표구점, 서화용품점은 이미 오래전에 뒷골목이나 2층, 3층으로 내몰렸다. 대신 그 자리는 옷 가게, 화장품 가게와 다국적 브랜드 커피 전문점이 차지했고, 이런 현상은 이번에 정비대상으로 지목된 곳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든 문화의 거리가 명성을 얻으면 부동산 값이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인사동은 물론 연극의 메카 대학로와 인디 문화의 본거지 홍대앞도 같은 길을 걸었다. 상업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주민’은 갈 곳을 잃는다. 하지만 특정 문화에 대한 집착만 아니라면 인사동, 대학로, 홍대앞은 여전히 문화의 거리다. 실제로 문화지구가 휴식을 겸비한 관광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오히려 일정한 상업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우리와 달리 문화와 소비, 오락 기능을 한데 묶어 문화지구를 지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인사동의 쇠퇴를 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 인사동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통문화 거리가 태어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사동 주변에는 전통문화 거리의 기능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인사동과 국악의 거리를 문화적으로 이어 거대한 전통문화 중심지로 가꾸어 가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도한 곳에 필요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공세적 문화지구 정책을 기대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구수한 입담으로 살아나는 서울의 추억

    구수한 입담으로 살아나는 서울의 추억

    우리 할아버지는 북촌 뻥쟁이/강성은 지음/김소희 그림/웃는돌고래/112쪽/1만원 “에이, 거짓말!”, “그거 다 뻥이야.” 민지와 아빠가 늘 할아버지에게 퉁을 주는 말이다. 열 살짜리 민지에게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어릴 적 인왕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는 얘기도 믿을까 말까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호랑이가 할아버지를 태워 집에 데려다 줬다느니, 손에 묻은 호랑이털로 붓을 만들었다느니 하며 한 술 더 뜨신다. 그럴 때마다 제동을 거는 건 민지 아빠다. 중학교 역사 교사인 아빠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던 건 100년도 더 된 얘기라며 재미를 뚝 떨어뜨린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전기수(조선 후기 전문 이야기꾼)였던 증조할아버지를 닮은 할아버지의 구수한 입담은 민지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북촌 토박이인 할아버지는 인왕산, 남대문, 광화문, 창경궁 등 서울 곳곳을 누비며 골목과 거리마다 깃든 다정한 추억, 아픈 역사를 손녀에게 풀어놓는다. 할아버지와의 동네 산책이 끝날 때쯤엔 아빠가 동네에 얽힌 역사를 살뜰히 설명해 준다.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서면 동네는 1900년대 초로 돌아가고, 아빠와 산책을 나서면 동네가 역사 유적지로 변하는 셈이다. 작가는 버스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깊은 눈빛에서 쉼없이 변하는 도시의 옛이야기를 캐올리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인사동 고서점,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옷감을 날랐던 남대문, 코끼리와 기린이 살았던 창경궁을 함께 돌아보다 보면 어느새 아파트 공화국, 빌딩숲 서울이 아니라 수백년간의 스토리텔링을 품은 역사 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초등 저학년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들이 그리면 완판… ‘아트테이너’ 전성시대

    이들이 그리면 완판… ‘아트테이너’ 전성시대

    앞이 보이지 않는 미술계의 불황에도 연예인 화가들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앞다퉈 ‘○○○이 화가로 데뷔한다’, ‘실력이 범상치 않다’, ‘작품이 수천만 원에 팔렸다’는 등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빼어난 미감(美感)을 과시하는 경우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풀 죽은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스타들의 활약은 눈길을 끈다. 그러나 볼멘소리도 들린다. 방송 활동에 얽매인 이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쏟아내고 이를 높은 가격에 ‘완판’까지 하는 현실에 전업작가들은 씁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재 널리 알려진 연예계의 미술작가로는 조영남, 심은하, 김혜수 등이 있다. 이 밖에 배우 조재현, 하정우, 유준상, 구혜선과 가수 나얼과 솔비, 개그맨 임혁필 등이 그림을 그리며 가끔씩 미술시장으로 ‘외도’하고 있다. 배우 하정우는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서울 시내 두 곳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 60여점의 출품작 대부분을 팔아치웠다. 2003년부터 그림을 그린 그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선 주로 하와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선보여 독특한 색감과 드로잉, 터치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 가격도 150호 한 점에 최고 1800만원대를 호가했다. 작품을 판매한 표갤러리 측은 “구매자의 90%가량이 배우 하정우의 팬이 아닌 일반 컬렉터였다”며 “그들의 경우는 향후 소장가치를 따져 구매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연예인 화가의 원조 격인 가수 조영남은 울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는 40여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40여 차례나 개인·단체전을 이어 왔다. 이달 30일까지 울산 갤러리H에서 열리는 전시에선 동양적 색감이 물씬 풍기는 작품 4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형 팝아트’ 작가로 불리는 그는 화투나 바둑과 같은 전통놀이 문화를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입체적 구성을 시도하는 발전의 추이가 돋보인다”고 평할 정도다. 작품 가격은 호당 40만원대로, 한 점에 수천만원짜리도 있다. 최근 인지도가 가장 많이 치솟는 연예인 화가로는 배우 구혜선이 꼽힌다. 2009년 첫 개인전을 연 뒤 인사동과 예술의전당 등에서 개인전을 이어 왔다. 지난해에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국제 아트페어 홍콩 컨템포러리에 초청 작가로 참여했다. 자유분방한 기질의 드로잉과 공예가 특징으로, 의자·조명 등 공예품이 점당 수백만원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강렬한 색감의 추상화를 주로 그리는 배우 김혜수와 수년 전 수준급 수묵화를 선보인 심은하도 세간의 관심을 꾸준히 모으고 있다. 이들 연예인이 적극적으로 미술 활동에 뛰어든 이유는 다양하다. 미술 전공자가 많은 데다 종합예술인을 원하는 세태도 반영됐다. ‘만능엔터테이너’란 조어가 말해 주듯 만능이 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연예계 풍토 때문이다. 반면 최근 한 케이블채널에 자신의 화실을 공개한 배우 려원처럼 개인전을 열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미술에 천착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연예인의 미술 활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갤러리 운영자들은 “복잡한 현대미술에 흥미를 못 느끼던 일반인들도 스타의 작품에는 호기심을 갖는다”면서 “미술시장 저변 확대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반면 기성 화단에선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연예인 화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오랜 세월 예술 작업에 매달려 온 기성 작가들을 상대적으로 소외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한 30대 신진 화가는 “연예인들이 취미로 그린 그림의 작품성이 과대평가되고 작가 호칭이 쉽게 주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처지가)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작품 수준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최근 유명 화랑까지 연예인들의 미술작품 판매에 뛰어든 것을 보면서 미술계가 여전히 불황이란 생각을 했다”며 “연예인 화가 대다수는 조형요소를 파악한 미대생 수준은 되지만 마티스, 피카소 등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미술시장의 전체 파이가 한정된 상황에서 연예인이란 이름값으로 부풀려진 스타마케팅이 과연 미술시장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야생화 사진 北어린이 풍진 예방에 쓰여 기뻐”

    “야생화 사진 北어린이 풍진 예방에 쓰여 기뻐”

    “사진을 파는 전시회가 아닙니다. 기부를 통해 마음을 모으고 저는 답례로 꽃이 담긴 사진을 나누는 것이지요.”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 북한 개발협력사업을 담당하는 사단법인 봄이 전시회를 주최하지만 갤러리 벽면을 채울 59점의 꽃 사진은 박병원(62) 전국은행연합회장이 전국을 돌며 직접 찍은 작품이다. 10일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만난 박 회장은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필름을 아껴 가며 꽃과 나무를 찍은 것이 10만여장의 사진으로 남았다”면서 “전문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내 사진이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매개로 사용돼 기쁘다”고 말했다. ‘꽃이 사랑이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박 회장이 2011년부터 사단법인 봄, 독일의 자선단체 카리타스재단과 함께해 온 북한 어린이를 위한 예방 백신 보내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찍은 야생화를 전시한 수익금으로 330여만명 분의 B형 간염 백신을 북한에 보낸 뒤 지난해에는 일본뇌염 예방 백신을 지원했다. 이번 전시회를 찾는 손님들의 기부금과 사진 판매 금액 역시 북한 어린이 500만여명에게 맞힐 풍진 백신을 구입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재정경제부 차관 시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장을 지낼 당시 평양과 인근 마을을 다섯 번에 걸쳐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박 회장은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도 애들이나 어른이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얼굴색이 나쁘고 체구도 왜소했다”면서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것의 기초가 북한 사람들의 정신적, 신체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을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소의 제약으로 갤러리에 걸리지 못한 사진 5000여장은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겨 갤러리를 찾는 손님들에게 건네질 예정이다. 박 회장은 “나는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의사는 없다”면서 “USB에 담긴 꽃 사진을 마음껏 보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인화하거나 복사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기부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오는 25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디스크 참으며 붓 잡은 민화 화가·연구원 박차고 그릇 잡은 도예가, 그 손으로 한국의 美 함께 만든다

    디스크 참으며 붓 잡은 민화 화가·연구원 박차고 그릇 잡은 도예가, 그 손으로 한국의 美 함께 만든다

    “이명박 정권 초기 (김윤옥) 여사께서 사람을 보내 한복치마에 민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러시아 순방을 앞둔 시기였죠.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는데, 중간에 다리를 놨던 분이 ‘돈 받고 하시겠어요, 아님 끌려가서 그냥 하시겠어요’라고 (농담조로) 말해 바로 그렸습니다.” 전통 민화의 현대적 변화를 꾀하는 작가 서공임(왼쪽·54)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크게 웃었다. 지금도 하루 12~16시간씩 작업한다는 작가는 심한 목 디스크에 시달리면서도 우두커니 앉아 그림을 그린다. 이런 작가에게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1996년 인사동을 방문한 스페인 국왕 부부는 커피 냄새에 이끌려 카페인 줄 알고 제 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던 소피아 왕비는 ‘일월오악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기념으로 호랑이 그림을 가져갔죠.” 작가의 작업실은 서울 북촌 효자동의 한옥에 자리한다. 홀로 온종일 화폭과 씨름하며 기껏해야 하루 1시간 남짓 인근 둘레길을 걷는 것이 유일한 삶의 위안이다. “‘과거와 똑같은 민화를 그리는 사람이야’란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는 작가는 전통 민화를 재해석해 주목받고 있다. 작품 제목도 이채롭다. 부부를 뜻하는 매화와 대나무에 까치가 등장하는 그림에 ‘죽매쌍희’ 대신 ‘결혼 축하드려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이름을 다는 식이다. 전 세계를 돌며 전시를 연 작가는 “몸 망가지며 그린 그림이 외국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서 역시 민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작가는 지구촌 아동을 돕는 유니세프 카드에 작품이 실릴 만큼 유명해졌다.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도예가 이기영(오른쪽·59)씨도 입을 열었다. “조선 후기 시골 장터의 환쟁이가 연명을 위해 그린 조잡한 그림이란 인식이 강해 지금도 민화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요.” 이씨는 프랑스에서 발전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고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다 도자기에 빠져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민화를 현대적인 그릇에 담아내겠다며 직접 그릇 제작소를 열기도 했다. “도자기를 굽던 중 그릇에 새겨 넣을 그림을 고민했는데 민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민화의 매력은 상상력과 자유분방함입니다.” 그는 두드러짐의 미학을 첫손에 꼽았다. “지배계층의 핍박을 받던 서민들이 마음껏 키우고 줄이거나 생락하면서 자유롭게 숨을 쉬었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민화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민화에 홀리다’(효형출판)를 펴냈다. 책에는 서 작가가 그린 작품이 실렸고, 이를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그룹 2NE1 씨엘의 외삼촌인 그는 작가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순수후원단체인 aba그룹 대표도 맡고 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민화에 홀리다’전은 오는 23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이어진다. (02)726-4456.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먹는 것 보는 것 하나부터 수련·치유가 시작됩니다”

    “먹는 것 보는 것 하나부터 수련·치유가 시작됩니다”

    지난해 12월 초 중앙승가대 동기생 스님들의 ‘밤샘 음주’ 사건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충남 공주 태화산 한국문화연수원. 조계종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연수원이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날 전망이다. 그 변화를 이끌 주역은 ‘음주사건’ 직후 한국문화연수원장에 전격 임명된 구과(九果·57) 스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해맑은 얼굴을 가진 스님은 6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를 만나 야무진 포부를 또렷하게 밝혔다. “한국 전통문화가 일반인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연수원이 앞장서겠습니다.” 구과 스님은 조계종단 사상 비구니로는 처음으로 기관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그 입장을 의식한 듯 기자에게 전한 각오가 예사롭지 않다. “어찌 보면 비구 스님들에게는 부족할 수 있는 측면을 잘 살려 연수원 살림과 수행 프로그램을 야무지게 꾸려 낼 것입니다.” 조금은 특이한 법명에 얽힌 사연을 묻자 웃음을 섞어 이런 답을 돌려 준다. “성철 스님에게 받은 법명입니다. 같이 간 스님들과 함께 삼천배를 한뒤 성철 스님이 바닥에 던진 종이 12장 가운데 하나를 골라 얻은 이름이지요.” 구과라면 수행 과정의 여러 단계를 뜻한다는 불교 용어. 스님은 그 법명 그대로 한국문화연수원의 살림살이도 큰 수행의 방편으로 삼겠단다. 그리고 수행의 첫 단추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참선 프로그램의 상설 운영이다. “화두선은 조계종의 대표 수행이면서도 일반인들이 어렵게 느끼고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것을 대중화해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보급하는 전진기지로 연수원을 만들어 내야지요.” 그래서 우선 참선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마음을 평화롭고 지혜롭게 하도록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조계종 원로 의원인 고우 스님, 원택 스님 등 선원장급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셔 법문·문답을 하고 조계사 선림원에서 3년간 참선을 지도해 온 박희승 위촉 교수가 참선 이론을 강의한다. 다음 달부터 입문 과정과 심화 과정 3박4일씩의 참선 프로그램을 당장 진행한다. 참선 프로그램 말고도 스님이 구상하는 일들은 다양하게 뻗쳐 있다. 그중 인근 세종시에 근무하는 중앙공무원들의 명실상부한 힐링센터로 이끌어 간다는 게 중점 사업 중 하나다. 스님이 특히 강조한 점은 음식이다. “프로그램으로만 힐링을 한다면 한계가 있을 수 있죠. 먹는 것, 보는 것 하나하나에서부터 수련과 치유가 시작됩니다.” 대학 재학 중 대표적 비구니 선원이 있는 울산 석남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음식에 관심이 많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음식을 스님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석남사다. 그곳에서 절 살림살이를 도맡은 ‘원주’등 여러 소임을 두루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요리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 연수원에 취임한 뒤 음식이 엉망이었음을 새삼 느꼈다”는 스님은 그래서 방문객들이 식사에서부터 힐링할 수 있도록 스스로 사찰 음식을 가르쳐 온 공양주들을 불러와 밥상부터 크게 바꿨다고 한다. 한국문화연수원은 하루 3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고 연간 3만명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태화산·마곡사의 수려한 풍경과 사찰 음식, 그리고 대중적인 수행 프로그램으로 몸·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겠다고 거듭 강조한 구과 스님. 스님은 만남의 끝자락에 이런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단순히 스트레스의 해소를 넘어 매스미디어와 컴퓨터,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미디어 다이어트’의 공간도 생각 중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미술·전시] 젊은작가 3인의 사유, 그 흔적 ‘몽중인… ’

    [미술·전시] 젊은작가 3인의 사유, 그 흔적 ‘몽중인… ’

    김영재·문희원·전혜지 등 올해 미술대를 졸업한 젊은 작가 3명이 뭉쳐 오는 7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삼청갤러리에서 ‘몽중인-꿈속의 사람’전을 연다. 작가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는 사유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사유를 각각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작업은 묘한 여운과 공감을 끌어낸다. 수면 상태에서 마주하는 꿈의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 가장 사적이면서도 미묘한 소통을 풀어간다. 문희원 작가는 “우연히 지나친 사람도, 금방 지워진 기억도 결국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아닐까”란 질문을 던진다. 문 작가는 ‘인사동2’, ‘모나리자’ 등의 작품을 전시한다. (02)720-5758.
  • [최동호 새벽을 열며] 국민화가 박수근, 그 아름다움의 비밀

    [최동호 새벽을 열며] 국민화가 박수근, 그 아름다움의 비밀

    봄의 초입을 헐벗은 겨울의 나목이 지키고 있다. 나목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박수근이다. 마침 서울 인사동에서 박수근 탄신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시절부터 박수근의 그림에서 풍겨져 나오는 따뜻한 인간적 정감을 필자는 사랑했다. 이중섭이 화려하고 김환기가 현란하다면 박수근은 서민적이다. 1950년대 한국의 전형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그 속에 서민적 정서를 담은 그의 그림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그러한 풍경이나 인물들이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루빨리 탈피하고 싶은 구시대의 풍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갑작스런 가세의 몰락으로 인해 그는 오로지 독학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립했다. 열두 살 무렵 우연히 그림책에서 밀레의 ‘만종’을 보고 그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한 그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국적 아름다움의 원천을 찾아 나섰다. 초기 그의 성가를 높인 ‘우물가 사람들’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발견한 장소이자 미의식의 출발점이다. 그는 여기서 나아가 한국적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그 결과 그만의 독특한 화풍이 창조되었는데 그것은 물감을 덧칠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굴곡이 생긴 화폭에 대상을 단순 소박하게 그려 넣는 것이었다. 밑그림을 수없이 반복하여 평면적 바탕을 입체적으로 조형한 그의 화풍은 암갈색 화강암의 질감을 통해 등장 인물들에게 마애불과 같은 이미지를 부여했다. 해외 유학파도 아니고 화단의 중심 세력도 아니었던 그는 오직 ‘인간의 선함과 진실’을 그리고자 했는데 이는 평범하지만 확고한 신념이었다. 박수근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것은 외국인들이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박수근의 그림에서 발견했으며 1950년대 한국의 화가 중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먼저 판매된 것은 박수근의 그림이었다. 특히 그의 그림 애호가였던 밀러 부인은 박수근의 그림을 미국에 소개하고 친구 동료들에게 적극 매입을 권유했다.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 밀러 부인에게 보낸 박수근의 편지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박수근의 체취와 호흡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수만 배가 된 그의 그림이 당시는 50달러에서 100달러 내외에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이 편지에서 알 수 있다. 박수근이 한국적 아름다움의 원천을 석탑이나 석조물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 전시에서 필자가 발견한 기쁨이었다. 박수근이 경주를 자주 방문하고 열심히 석조물들의 탁본을 했다는 것은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같지만 박수근 미학의 정신적 뿌리가 멀리 신라로부터 연원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흔히 비평가들은 중국은 전탑(塼塔)의 나라이고 일본은 목탑의 나라이며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한다. 박수근이 화강암의 질감을 구사하여 입체감을 부조시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독자적 세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의 심미적 전통을 누구보다 잘 살린 화가로 평가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박수근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것이다. 그의 그림의 중심인물은 어린 소녀나 아주머니 그리고 시장 사람들이다. 대부분 평범한 서민들이고 주변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1950년대의 저변을 이루는 사람들인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들이야말로 그 시대의 도도한 물줄기를 형성한 인물들이다. 고단한 나날의 삶을 견디면서 침묵하는 사람들의 힘이 역사를 이끌고 오늘의 한국을 이루었으며 그 힘은 왜곡된 정치가나 선동가들의 몫이 아니다. 박수근은 그런 침묵하는 인간 군상들의 내면을 부각시켜 한국인의 깊은 마음속을 움직인 것이다. 가짜와 헛것이 판치는 기술 복제 세상에서 인간의 선함과 진실을 파고들어 한국인의 가슴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깨우쳐 준 박수근에게 우리는 깊은 존경의 헌사를 바쳐야 한다.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은퇴 후 서예 작가로 ‘70~80세 대기만성’ 야망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은퇴 후 서예 작가로 ‘70~80세 대기만성’ 야망

    동암(東庵) 박병희(73)씨는 지난해 한국미술협회의 서예부문 초대작가가 됐다. 문학으로 치면 문단에 등단한 셈이다. 골프를 그만둔 뒤 2002년부터 붓을 잡았으니 11년 만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입선 2회, 특선과 우수상 각각 1회 수상을 했다. 입선은 1점, 특선은 3점, 우수상은 6점, 대상은 9점이 주어지는데 기본 점수인 10점을 채운 것이다. 여기에 9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해 당당히 미협 회원이 됐다. 초대작가가 된 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씩 서울 송파구청의 문화교실에 나가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손에 쥐는 건 별로 없지만 무엇보다 나갈 곳이 생긴 데다 대기업 퇴직 이후 없었던 명함을 다시 갖게 돼 기쁘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는 뜻으로 느지막하게 한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룰 때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 60~70세 인생이던 시절 대기만성은 40세였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는 70~80세에도 일가(一家)를 이루기에 충분하다. 물론 90세, 100세에도 가능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하루 3~4시간씩 1년간 매달리면 1000시간이 조금 넘는다. 이렇게 10년간 노력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60대에 새로운 것을 배워도 이젠 대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박씨 역시 지난 세월 매일 3~4시간씩 서예에 매달렸다. 선생님이 체본을 써 주면 열심히 베껴 쓰고 집에 가서도 붓을 잡았다. 최근에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낮에는 정신이 산만해 글 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 마음을 깨끗이 한 뒤 한획 한획 공을 들이면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든다. 2009년 스카이라이프에서 퇴직한 동원(東園) 김성현(60)씨도 늦깎이 서예가가 되려 한다. 퇴직을 앞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동료들과 골프도 쳐 봤지만 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불현듯 어렸을 때 미술을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다른 길을 가고 말았다. 퇴직한 다음 해인 2010년 서실을 찾았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문득문득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미술이 생각났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차츰 서예에 빠지게 되자 넉넉하던 시간이 모자랐다.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식사하라고 하면 짜증이 날 정도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글이 달라졌다. 재미있고 신기했다. 더 글에 매달리게 됐다. 그는 지난해 서예대전에서 입상했다. 굉장히 빠른 편이다. 입선을 하고 나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성취감, 만족감과 함께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는데 어떻게 서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기만성의 행렬에는 운학(雲鶴) 조강래(77) 연세대 명예교수와 송연(松姸) 정선희(60·여)씨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죽암서실에 나와 글을 쓰고 있다. 호는 죽암서실 여성구 원장이 지어 줬다. 특히 조씨는 부부가 함께 나오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취미 생활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우리 부부는 밥상을 치우고 나면 바로 글을 쓴다”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조씨도 “글이 잘 써지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니 일요일에 등산을 갔다 와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바로 글 연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는 붓을 잡은 지는 20년이 됐으나 본격적으로 수련한 것은 10년이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해 지금까지 7점의 점수를 쌓았다. 초대작가가 되려면 3점을 더 쌓아야 하는데 올해는 무난히 관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서예는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데다 나이가 들어서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서 “무엇보다 글을 쓰고 나면 즐겁고 마음이 깨끗해져 좋다”고 말했다. 집 안에 작업실이 없는 정씨는 그래서 자녀들에게 빨리 결혼해서 나가라고 압박하고 있다. ■나이들수록 부부함께 취미생활 좋은 취미는 평생의 동반자이고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여유가 없어 취미 활동에 눈을 돌리기 어렵지만 은퇴 이후 시간이 많아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 원장은 80대 노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년까지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니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무료했다. 북한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바라봐도 오라는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평생을 함께 하는 취미가 있는 당신이 부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예는 집중하고 몰두해야 하는 작업이다. 잡념이 생기면 잘 써지지 않는다. 서예는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글의 내용도 음미하게 된다. 자연히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여 원장은 “말은 입 밖으로 내뱉으면 사라지지만 글은 써서 걸어 놓으면 오랜 세월 남는다”면서 “중국 한자가 예술로 승화한 것은 서예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퍼포먼스가 가미되는 등 서예가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는 또 “글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라면서 “몇백년 전의 글을 보면 그들의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대로 글이 계속 발전하니 표구해서 걸어 놓은 글도 몇달 뒤에 다시 봤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멋진 글이 걸려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박씨는 자녀에게 명심보감에 나오는 ‘지락(至)은 막여독서(莫如讀書)요 지요(至要)는 막여교자(莫如敎子)다’라는 글을 써 줬다. 지극한 즐거움은 독서만 한 것이 없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만 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손자, 손녀의 친구들이 놀러 와서는 액자를 보고 ‘너희 할아버지 참 멋지다’며 부러워하고, 사위도 작품을 걸어 놓으니 집안 분위기가 한결 품위 있어졌다고 좋아한다. 글을 표구해서 주면 받는 사람도 굉장히 기뻐한다. 그래서 그는 ‘서예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멋진 작품 집안 분위기 품위있게 서예는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실력이 는다. 여 원장은 “젊었을 때는 수양이 덜 된 탓인지 글이 날린다”면서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지고 삶의 연륜이 더해져 글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서실의 막내인 김씨는 “다른 취미는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발전이 없지만 서예는 노력하면 글이 좋아지고 발전한다”면서 “하루하루 글이 달라지니 더욱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씨도 “추사 김정희는 운명하기 3일 전 봉은사 창고의 현판을 썼다”면서 “글은 붓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생명이 있을 때까지 가능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인성을 길러 주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내친김에 5년 뒤 77세에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생활 자세, 마음가짐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을 쓸 것인가, 서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열심히 구상하고 있다. 생활에 활력이 넘치고 정신을 더욱 집중하게 된다. 요즘에는 논어와 맹자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명제를 찾기 위해서다. 또 매주 토요일 산에서 잠을 자는 ‘비박’을 한다. 어지간한 추위에도 이를 거르지 않는다. 글을 쓰는 데는 하체의 힘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체력을 기르려는 것이다. 정씨는 “일본 방송을 보니 80세에 지공예를 배운 할머니가 100세에 개인전을 열더라”면서 “100세인데도 작품이 굉장히 동적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서예는 나이 든 사람의 경륜과 품격을 더 높게 만들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퇴직 후 직장 동료나 고교 동창 모임 등에 나가면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간 레코드판처럼 되풀이된다. 과거의 무용담이나 실수담, 직장 상사의 험담 등이 대부분이다. 한두번은 재미있지만 계속 이어지면 식상하다. 김씨는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니 즐겁고 뭔가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도 “서예를 배운 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일이 재미없어졌다”면서 “서실에서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들의 대기만성 행렬이 어떻게 꽃을 피울지 기대된다. stslim@seoul.co.kr
  • 남대문~남이섬 셔틀버스로 한번에

    중구는 다음 달 1일부터 매주 토요일 남대문시장에서 경기 가평 남이섬을 오가는 직행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26일 밝혔다. 시범적으로 운행하고 이용자가 많을 경우 평일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1시간~1시간 30분 걸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1시간 이상 빠르게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이섬은 드라마 겨울연가 등으로 한류 팬 선호 관광지”라며 “구 주관으로 지난 1월 맺은 남대문시장과 남이섬의 ‘남남 상생협정’ 후속으로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숭례문광장 앞 남대문 관광버스 주차장(남대문시장 1번 게이트 롯데손해보험빌딩 맞은쪽)에서 오전 9시 30분 출발하고 오후 4시 남이섬에서 출발한다. 요금은 편도 7500원이다. 현재 인사동과 잠실에서도 남이섬을 오가는 버스가 매일 운행되고 있다. 요금은 남대문시장 구간과 같다. 구는 앞으로 남남 공동 브랜드 개발, 남이섬에서 남대문시장 페스티벌 개최 등 다양한 남남 상생협정 사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최창식 구청장은 “관광 셔틀버스 운행에 따른 한류 관광객 이용 증가로 남대문시장이 관광 쇼핑브랜드 명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커버스토리-서울은 ‘호텔 공화국’] 서울, 호텔 지도를 새로 그리다

    [커버스토리-서울은 ‘호텔 공화국’] 서울, 호텔 지도를 새로 그리다

    지난 4일 오전 11시 흥인지문(동대문) 인근 청계천로에 동대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특급 호텔이 문을 열었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이다. JW메리어트는 세계 최대의 호텔 기업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최고급 브랜드 호텔로, 서울에서는 강남에 이어 두 번째로 들어섰다. 그만큼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쇼핑하러 한국에 오는 중국 관광객 등을 겨냥했다. 지상 11층, 객실 170개로 규모가 다소 작은 부티크 급이다. 지척에 있는 보물 1호 흥인지문과 조화로운 풍광을 빚어내기 위해 외관 디자인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이날 오프닝 행사에는 취재진 수십 명이 몰리며 언론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한국, 특히 서울 시내 호텔 시장이 포화 상태이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은 사이몬 쿠퍼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아태 지역 사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최근 한국 경제가 둔화되고 일본 관광객이 줄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고 보지 않는다. 이미 성숙한 시장인데도 외려 객실 공급은 크게 늘고 있지 않는 편이다. 한국, 특히 서울은 굉장히 강력한 시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적절한 기회를 찾아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를 선보일 생각이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과 기업도 중요하다. 지난 25년 동안 아태 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 고객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수입 업체였는데 올해부터 삼성으로 바뀌었다. 그 정도로 우리에게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관광호텔이 우후죽순 솟고 있다. 특급 호텔들이 단연 눈에 띈다. 광화문 사거리에선 ‘포시즌스’ 호텔이 올라가고 있다. 벌써 9층가량 지어졌다. 굴지의 글로벌 호텔 브랜드인 포시즌스가 국내에 상륙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상 25층, 객실 317개로 2015년 5월 개관이 목표다. 공인 최고 등급인 5성급(국내 기준 특1등급)을 뛰어넘는 6성급이란다. 이른바 초특급 호텔이다. 강남구 삼성동에 6성급 호텔이 또 생긴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스타우드 그룹의 ‘럭셔리 컬렉션’이다. 복합시설 파르나스 타워에 들어선다. 2016년 12월 개장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 롯데그룹도 송파구 잠실에 짓고 있는 123층 규모 제2 롯데월드 타워에 6성급 호텔을 개장할 계획이다. 롯데호텔 소공동 본점 신관도 6성급으로 리모델링된다고 한다. 앞서 2012년엔 영등포구 여의도에 콘래드 호텔이 들어서기도 했다. 기존에 6성급으로 평가받던 곳은 삼성동 파크하얏트와 광장동 W호텔 정도였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해외 큰손 관광객을 붙잡기에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초특급 호텔이 다수 들어서면 경쟁에 대한 부담감도 늘지만 인프라가 있어야 프로모션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국내 관광산업이 질적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급 호텔 시장만 달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전체적으로 호텔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2008년 131곳에 그쳤으나 2011년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2011년 146곳에서 2012년 161곳, 지난해 10월 말 기준 190곳으로 뛰었다. 사업 승인을 받았거나, 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이르면 2017년 300곳을 넘어서게 된다. 불과 10년 사이에 호텔 숫자가 두 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지렛대 역할은 외국 관광객들이 하고 있다. 2000년 532만명이었던 해외 관광객은 지난해 1220만명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일본 엔저 영향과 독도 문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 파문 등 정치·외교적인 이슈, 중국의 여유법(旅遊法) 시행으로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됐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전년 대비 9.3% 증가했다. 관광업계는 2017년 1600만명이 한국에 올 것으로 점치고 있다. 외국 관광객 10명당 8명(2012년 기준)은 서울을 찾는다. 숙박 수요는 수직 상승했으나 관광숙박 시설 증가는 조금 더딘 편이다. 2000년 2만 3644실에서 지난해 3만 1556실로 33% 늘었다. 그나마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 등 당근책을 꺼내든 결과다. 사업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용적률 규제 완화다. 쉽게 말해 같은 넓이의 땅이라도 관광호텔을 지으면 일반 건물보다 더 높게 올릴 수 있어 사업비는 더 들어가더라도 재산상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대기업은 물론 쇼핑몰이나 모텔도 리모델링과 증축 등을 통해 호텔 사업에 뛰어드는 등 신규 사업 승인 요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업계 현장에선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서울시 등은 ‘여전히 배고프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당분간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시는 지난해 6월 숙박 시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2014년 1만 5335실, 2017년 2만 4451실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들어서는 그 폭이 줄어든 리포트가 나왔다. 지난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4076실, 2017년 7437실이 부족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 호텔 지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마포구 서교동의 경우 30년 가까이 관광호텔은 서교호텔 한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 사이 홍대 앞 지역이 새로운 관광 명소로 급부상하며 지난해 초 관광호텔 두 곳이 잇따라 들어섰다. 옛 청기와주유소 자리와 복합역사로 개발되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도 호텔이 지어질 예정이다. 종로·동대문 일대도 마찬가지다. 아벤트리호텔(2012년 9월), 센터마크호텔(2012년 11월), 이비스 앰배서더 인사동(2013년 10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2014년 1월), 이비스버젯 동대문, 롯데시티호텔 장교, 하얏트 플레이스 서울(이상 개관 예정) 등이 청계천을 따라 줄줄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관광 산업에서 한발 비켜 서 있던 서울 외곽 지역에도 호텔이 새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자치구들이 저마다 지역 특색에 맞은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는 등 관광 자원을 적극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의료관광호텔업과 소형호텔업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관광진흥법 시행령이 개정됐다”며 “20~30실 규모의 작은 호텔도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찜질방을 호텔로 둔갑? 불법 게스트하우스 업주 무더기 덜미

    찜질방이나 고시원을 호텔로 속여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인 게스트하우스 업주들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광경찰대는 외국인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 한 게스트하우스 27곳을 적발해 정모(38)씨 등 업주 25명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위생상태가 불량한 찜질방 내에 외국인 전용 방을 만들어놓고 호텔이라고 과장광고를 하거나 과도하게 비싼 요금을 요구하는 등 불법 영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22∼28일 서울 중구 명동, 남대문, 종로구 인사동, 마포구 홍대 등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불법 게스트하우스 집중 단속을 벌였다. 이번에 적발된 중구 소재 N업소와 G업소는 게스트하우스 한 곳만 제대로 신고한 채 체인 형태의 다른 4∼5개 게스트하우스를 신고하지 않고 영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명동에 있는 G업소는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고시원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규정에 따르면 업주가 실제로 거주하는 69.5평 이하의 다가구·다주택 건물에서만 게스트하우스 영업이 가능하다. 중구 소재 M업소는 찜질방 내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의 ‘캡슐방’을 설치한 뒤 호텔로 속여 광고해 관광객을 끌어모았고, 보통 찜질방 이용금액보다 비싼 3만 5000원의 숙박료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영업 중인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는 900여 곳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정식으로 지정받은 곳은 377곳에 불과하고 나머지 500여 곳은 불법 운영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처럼 불법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는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좁은 골목에 있거나 소화기가 제대로 비치돼 있지 않아 화재시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도난사고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법 게스트하우스 영업 행위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만큼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불법 콜밴과 호객행위, 가격 미표시 등 여러 방면에서 단속을 펼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외국인 관광객 지난해 1000만명 돌파

    서울 외국인 관광객 지난해 1000만명 돌파

    서울에서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열렸다.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 1004만 5000여명을 기록했다고 ‘서울관광의 질적 내실화 방안’ 정책 리포트를 통해 23일 밝혔다. 연구원은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 1217만 5550명(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2012년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 방문율 82.5%를 적용해 이같이 추산했다. 1000만명 돌파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힘이 컸다. 엔저 영향으로 일본인 관광객은 2012년 290만 3175명에서 지난해 226만 7100명으로 22% 줄어든 반면, 중국인 관광객은 234만 525명에서 356만 9775명으로 53% 늘었다. 중국인 수가 일본인 수를 처음 추월했다. 연구원은 또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에서 쓴 돈을 1인당 141만 1000원으로 집계했다. 2007년(73만 8000원)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5월 5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와 이전 통계를 비교한 결과다. 타이완(145만 6000원), 중국(144만 5000원), 일본(139만 8000원) 순으로 썼다. 평균 체류 기간도 5.4일로 2008년(4.8일)보다 증가했다. 숙박 시설은 비즈니스호텔, 이노스텔, 여관, 게스트하우스, 유스호스텔 등 중저가 시설 이용률이 58.2%를 차지했다. 관광호텔은 34.3%에 그쳤다. 최근 7년 새 선호 관광지도 달라졌다. 명동(59.6→83%)과 인사동(36→49%)은 여전했으나 남대문(55→42%), 동대문(62→54%), 이태원(23→16%), 박물관(29→17%) 방문율은 꾸준히 줄었다. 대신 홍대 일대(6→35%), 북촌·삼청동·청와대(6→33%), 압구정·신사동(3→25%), 강남역 일대(10→19%), 대학로(4→15%)가 늘었다. 금기용 연구위원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시급히 개선할 것으로 언어 소통과 교통 혼잡, 상품 강매 등을 꼽았다”며 “만족도를 높여 또 찾고 싶은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백두산 촬영만 20년… 통일의 길이 보여요”

    “백두산 촬영만 20년… 통일의 길이 보여요”

    정말로 백두산이 인사동에 옮겨져 있었다.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천지 물빛에 모습을 비치는 것은 1년에 스무 날이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백두산을 다녀온 이들도 눈에 말간 천지를 담아 오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의 가운데 뜰이 확 뚫린 5개 층 9개 전시실에 내걸린 백두산 사진들은 그 산을 다녀온 이들의 갈급증마저 해소할 만하다. 20년째 백두산 사진만 찍어 온 안승일(68)작가의 백두산 사진전 ‘불멸 또는 황홀’이 20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천지를 항공촬영한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이 16m, 너비 4.5m나 되는 엄청난 대작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천지를 제각기 다른 높이에서 조망하는 맛이 이채롭다. 초대형 풍광 사진 60여점, 자생식물 사진 70여점, 백두산에 서식하는 곤충들의 짝짓기 사진 10여점이 내걸렸다. 안 작가는 지난 16일부터 작품들을 내거느라 밤을 지새우곤 했다. 워낙 대작들이어서 천장에 자일을 걸고 장비를 동원하느라 적잖은 비용이 들었다. 안 작가는 1년의 절반 이상을 백두산에서 지낸다.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음집을 지어 놓고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백두와 아침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백두산에 렌즈를 향하다 보니 절로 사랑에 빠졌고 통일의 길이 보였다고 했다. 웅걸한 천지를 내려다보는 순간, 한민족 정체성의 벼락 세례가 이뤄졌다고 했다. 안 작가는 “처음 백두산에 갔을 때만 해도 민족이니 그런 거 잘 몰랐다. 백두산은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민족사적 시공간으로 빠져들어 애국자로 거듭나게 한다”고 말한다. 이어 “한민족이면 피를 나눈 사이이니 통일의 길도, 대화의 길도 백두산 사랑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사진학과를 중퇴한 그는 10대 후반부터 하루도 산에 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다 1994년 백두산에 처음 다녀온 뒤 생의 절정 20년을 오롯이 바쳤다. 2007년 1월 백두산 용문봉에서 찍힌 그의 얼굴 사진을 보라. 곤두박질친 수은주를 형상하듯 그의 머리에 서리꽃이 피어 있다. 간첩으로 오인돼 중국 공안에 끌려갔는가 하면 죽을 고비도 서너 차례 넘겼다. 그런데도 “백두산에만 가면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런 사진들을 찍었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보다 ‘왜 찍었느냐’고 물어야 한다”며 “이 사진들을 보면 내가 그랬듯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일본 작가 이와하시 다카시, 1998년 북한 작가 김용남과 각각 ‘백두산 2인전’을 열었던 안 작가는 “나의 20년 백두산 사랑이 통일을 이끌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면서 “전국 순회 전시와 아울러 북녘에서도 이런 기획이 성사됐으면 하는 게 소박한 꿈”이라며 웃었다. 정식 개막식은 오는 24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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