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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인사동·북촌 낀 ‘황금알’…조선 말까지 왕족·고관 집터로

    경복궁·인사동·북촌 낀 ‘황금알’…조선 말까지 왕족·고관 집터로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에 있는 3만 6642㎡(약 1만 1084평)의 대규모 나대지다. 경복궁, 인사동, 광화문광장, 북촌, 창덕궁, 청와대 등 핵심 지역을 두루 접하는 요지이지만 높은 담벼락에 둘러쳐진 가운데 공터로 방치돼 있다. 명칭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솔고개(松峴)에서 유래했다. 순종의 장인 윤덕영의 사저로 기록되는 등 조선 말까지 왕족이나 고관대작의 집터로 위세를 떨쳤다. 일제강점기 당시 식산은행에 매각돼 사택 부지로, 독립 이후에는 미군 장교와 미 대사관 직원 숙소로 이용되는 등 급격한 근대사의 흐름 속에서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로 지정된 곳이어서 건축 제한이 있다. 삼성생명이 2000년에 매입한 뒤 10년 가까이 개발하지 못하고 2008년 한진그룹에 매각했다. 한진은 이곳에 7성급 한옥호텔을 짓고 싶어 했으나 주변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가 있다는 이유로 호텔 건립 허가가 오랫동안 나지 않았다. 당시 서울 중부교육청은 호텔설립안을 부결시켰고, 한진그룹 측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2012년 대법원까지 가서도 패소했다. 부지는 정부가 2012년 유흥 사행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학교 인근에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2015년 국회를 통과하면서 호텔 건립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다가 돌연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복합 문화센터인 ‘K익스피리언스’의 중심지로 만든다고 계획이 바뀌었다가 이후 최순실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뒤 흐지부지됐다. 지난 2월 연내 매각 의사를 밝히면서 새 주인을 맞을 운명에 놓였다. 매각가는 5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종로 대한항공 부지에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숲공원 조성 꿈”

    “종로 대한항공 부지에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숲공원 조성 꿈”

    한진, 10년 전 호텔 건립의 꿈 법에 막혀 구청 땅 맞교환 난색… 올해 초 매각 의사市, 강남 시유지 팔고 생태림 만들어야 나무 심으면 도심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역사·문화성 부각… 11일부터 대토론회 “역대 서울시장들은 미세먼지의 습격을 일찍이 예견하셨던지 모두 대형 숲을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조순 전 시장은 여의도공원을 숲으로 만들었고, 고건 전 시장은 시민아파트 단지를 낙산공원숲으로 조성했어요. 이명박 전 시장은 35만평에 달하는 서울숲을, 오세훈 전 시장은 번동 드림랜드를 북서울숲으로 가꿔 놨어요.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에 아직 숲 조성 사업이 없습니다. 서울의 심장 인근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뉴욕센트럴파크를 뛰어넘는 대형 숲공원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4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민선 7기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공원화 재추진 사업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2010년 6월 구청장 첫 임기인 민선 5기 취임 직후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를 아름드리 수목이 우거진 숲공원으로 조성하자”며 땅 소유주인 대한항공(한진그룹)과 이 땅을 사줄 수 있다고 본 서울시를 찾아다니며 설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2월 한진그룹이 매각 의사를 밝히자 이번 임기(2018년 6월~2022년 6월)에는 송현동 부지를 도심 속 거대한 숲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김 구청장은 민선 5기 취임 초인 2010년 11월 한진그룹에 송현동 부지와 구청 땅을 바꾸자며 환지를 제안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송현동 부지는 숲공원으로 안성맞춤인 입지이고, 한진 측은 반드시 도심 속에 호텔을 짓고 싶다고 하니 구청 땅과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땅은 대지 기준 8674㎡(약 2628평)로 송현동 부지(3만 6642㎡)의 4분의1가량에 그치지만 건축 제한이 있는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도 아니고, 주변에 중고등학교도 없어 호텔을 지을 수 있다. 한진은 당시 중구교육청이 송현동 부지 인근에 중고등학교가 있다며 학교보건법을 들어 호텔 건립을 거부당한 데 이어 행정소송 1심에서도 같은 이유로 불가 판결을 받았다. 이에 앞서 김 구청장은 당시 오세훈 시장에게도 송현동 부지를 시가 매입해 숲공원을 만들라고 설득했다. 김 구청장은 “당시 오 시장에게 ‘유서 깊은 송현동 부지에 호텔을 짓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그곳을 시가 매입해 숲을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주자’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종로구는 송현동 부지는 ‘(한진의) 개인 땅’이라는 이유로 시가 매입에 난색을 표하자 환지 아이디어를 들고 직접 한진 측에 문을 두드렸던 것인데 거절당했다는 것이다.김 구청장은 지금도 우선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강남에 있는 시유지를 팔고 역사와 유서 깊은 송현동 부지를 매입해 숲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현동 부지는 바로 건너편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고 인근에 광화문,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인사동 전통문화거리가 있어 상업시설을 짓기에는 부적절한 만큼 공공이 사들여 숲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진행중인 광화문광장의 재구조화 논의와 더불어 송현동의 쓰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송현동 부지가 도심 속 숲공원으로 조성되면 도심 미세먼지 저감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무 한 그루는 연간 35.7g의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47그루는 경유차 1대의 연간 미세먼지를 흡수한다”면서 “도시 숲은 미세먼지를 연평균 25.6%, 초미세먼지는 40.9% 저감시킨다”고 했다. 도시 숲은 여름 한낮의 평균기온을 3~7도 낮추고, 소음을 감소시키며 대기를 정화한다고도 했다. 김 구청장은 나무 26만여 그루를 심었으며, 1만 2000㎡에 달하는 도시텃밭을 조성했고, 옥상 청소, 도로 물청소, 다중시설 공기질 관리 등에 나서며 미세먼지 해소에 나섰으나 도심 숲이 생긴다면 이 모든 노력을 압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현동 부지를 도시공원숲으로 조성할 경우 역사성과 문화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냈다. 그는 “일각에서는 민속박물관으로 짓자는 이야기도 하는데 작게 넣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홍보관, 관광안내소, 도서관 등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드리나무, 작은 풀, 미생물, 새가 살아 숨 쉬는 생태계가 있는 숲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오는 11일 ‘송현동 숲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대토론회’ 개최를 시작으로 송현동 부지 숲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아울러 17일에는 ‘도심 관광정책 이대로 좋은가’라는 이름으로 관광·환경·교통 전문가와 함께 토론회도 연다. 매연 뿜는 관광버스를 도심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대신 도심 순환 친환경 셔틀버스를 만들면 관광객이 시내에 자유롭게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정주권도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제안했다. 김 구청장은 “도시 발전에는 제대로 된 계획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송현동 부지 숲문화공원 조성 사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서울 심장부의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차원에서 힘을 모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저녁 식사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저녁 식사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은 최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에게 지난해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와 관련,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들이 한국측 변호인들을 만나 소통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 변호인들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도쿄의 신일철주금 사옥을 방문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정 실장은 지난 16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전날인 15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 관저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우리 측에서 5명, 일본 측에서 3명, 양측 통역 각 1명 등 모두 10명이 참석했다. 정 실장은 SNS에서 “이번 회동은 내가 지난 달 나가미네 대사 일행에게 인사동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며칠 뒤 서대문 안산을 같이 산행한데 대한 나가미네 대사의 답례차 초청 모임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의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만남은 아니라도 두 사람 간의 이런 ‘물밑 소통’이 얼어붙은 한일 관계 회복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 실장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양국은 불편한 관계이지만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대화가 지속돼야 한다”며 “이날 모임은 비록 사적모임이지만 그런 노력의 일환이며 오래지 않아서 양국이 90년대 ‘김대중·오부치 시절’을 회복해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서로는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만나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다 보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며 “난제일수록 서로 만나 얼굴을 보면서 풀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저녁 식사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은 최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에게 지난해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와 관련,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들이 한국측 변호인들을 만나 소통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 변호인들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도쿄의 신일철주금 사옥을 방문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정 실장은 지난 16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전날인 15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 관저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우리 측에서 5명, 일본 측에서 3명, 양측 통역 각 1명 등 모두 10명이 참석했다. 정 실장은 SNS에서 “이번 회동은 내가 지난 달 나가미네 대사 일행에게 인사동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며칠 뒤 서대문 안산을 같이 산행한데 대한 나가미네 대사의 답례차 초청 모임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의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만남은 아니라도 두 사람 간의 이런 ‘물밑 소통’이 얼어붙은 한일 관계 회복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 실장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양국은 불편한 관계이지만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대화가 지속돼야 한다”며 “이날 모임은 비록 사적모임이지만 그런 노력의 일환이며 오래지 않아서 양국이 90년대 ‘김대중·오부치 시절’을 회복해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서로는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만나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다 보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며 “난제일수록 서로 만나 얼굴을 보면서 풀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우리집에 왜 왔니’ 한혜진, 혜민스님에 농염 포즈 제안

    ‘우리집에 왜 왔니’ 한혜진, 혜민스님에 농염 포즈 제안

    스카이드라마(skyDrama)의 신규 예능 ‘우리집에 왜왔니’의 첫 번째 호스트로 혜민스님이 등장한다. 19일 저녁 7시 40분 첫 방송되는 ‘우리집에 왜왔니’에서는 세계인의 힐링멘토이자 치유의 아이콘으로 대 활약 중인 혜민스님의 아지트가 공개된다. 예능계 핵인싸 악동절친 4인방 김희철, 한혜진, 김신영, 오스틴강이 혜민스님 아지트인 인사동에 출동하여 신명 나는 홈파티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올해로 4년 째 마음치유 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대중들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힐링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혜민스님은 ‘우리집에 왜왔니’를 통해 초특급 반전 매력을 선보인다. 인자한 스님의 마음에 화를 지핀 우주 대스타 김희철과 혜민스님이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4명의 절친 MC들의 화딱지 나는 폭소 현장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특히 한혜진은 혜민스님의 개인채널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한 시그니처 포즈를 제안하면서 농염한 모습을 선보여 혜민스님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연초에 절을 들썩이게 만드는 스님들의 보드게임인 ‘성불도’ 게임과 함께 스님들은 어떻게 놀고 무엇을 먹는지 이색적인 이야기도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혜민스님과 악동 4인방의 종교 대 통합의 현장, 왁자지껄한 집들이 모습을 보여줄 ‘우리집에 왜왔니’는 오는 19일 일요일 저녁 7시 40분 스카이드라마 채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드러머가 보여주는 소리의 회화…최소리 개인전 ‘소리를 본다’

    드러머가 보여주는 소리의 회화…최소리 개인전 ‘소리를 본다’

    퍼커셔니스트(타악기 연주자) 최소리가 소리를 보여주는 미술전시를 연다. 오는 17~2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 전관에서 열리는 최소리 개인전 ‘소리를 본다(Seeing Sound)_打法(타법), 두드림으로 그린 소리’에는 최소리가 소리에 대한 탐구로 빚은 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1990년대 초반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타악기 연주자로서는 드물게 10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가 하면 G20 정상회담, 광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 등 행사의 공연을 기획·감독한 음악감독이다. 최고의 퍼커셔니스트로 인정받은 그는 15년 넘는 기간 동안 악기가 아닌 금속판, 종이 등을 두들겨서 소리를 보여주는 작품 창작에 몰두했다. 최소리는 금속판과 종이를 스틱과 북채로 두드려서 연주하며 색을 입히고 다시 지워내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탄생시켰다. 음악으로 전달하던 소리에 대한 깊은 탐구가 미술의 영역으로 옮겨온 결과물이다.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최소리의 작업에 대해 “그동안 금속(드럼)과 천(북)의 피부에서 다양한 소리를 뽑아낸 최소리는 아예 금속과 천의 표면 그 자체에 다양한 표정, 질감을 시술했다”며 “그의 화면은 보는 것이자 듣는 것이고, 망막을 빌어 청각을 자극하려는 회화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소리의 화면은 타격의 횟수, 시간, 신체적 힘의 강도에 따라 무수한 변화와 깊이를 지닌 표면”이라며 “자신의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이 같은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최소리 개인전이 시작되는 17일 오후 6시 오프닝리셉션에는 최소리 작가의 연주가 있을 예정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3대 맞춤화 전략이 ‘스세권’ 만든다

    3대 맞춤화 전략이 ‘스세권’ 만든다

    스타벅스 점포 개발·상권 분석 비법배우 하정우씨가 최근 서울 화곡동의 한 건물을 약 73억 3000만원에 매입했다. 2016년 9월 준공된 이 건물을 그가 사들인 것은 같은 해 11월 입점한 스타벅스 영향이 컸다. 스타벅스가 15년간 스타벅스DT(드라이브 스루) 운영 조건으로 건물 전체를 임대해서다. 그만큼 스타벅스는 요즘 건물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스타벅스가 들어서면 주변 상권이 살아나 점포 매출과 건물 시세까지 동반 상승하는 효과 때문에 ‘스세권’(스타벅스+역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다. 어떤 땅을 어떻게 고르고 꾸미기에 이런 효과가 나는 것인지 스타벅스코리아에서 점포 개발과 상권 분석을 맡는 팀이 14일 들려준 세 가지 핵심 비법을 전한다. ①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되살려라 스타벅스는 입점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해당 주민센터를 찾는다. 지역만의 역사화 문화를 찾고, 인근 고객 성향을 파악해 매장 콘셉트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중 하나가 문경새재점이다. 전통 한옥의 아름다운 외관을 갖추고 전통 좌식 공간으로 지역 특성을 살렸다.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분위기로 내부를 꾸며 놨다. 그 덕에 스타벅스 점장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매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인사동점의 경우 전 세계 최초로 자국어 간판을 세워 매장을 열 때 많은 화제를 모았다. ②불모지를 변신시켜라 스타벅스는 유동 인구 확보 같은 통상적인 커피 전문점 입지 관점에서 벗어나 공간의 가치를 바꾸는 방식으로 입지를 낙점한다. 2012년 9월 문을 연 경주보문로DT점은 스타벅스가 한국 최초의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연 곳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 있는 2000개의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은 출근길에 들르기 좋게 집과 회사 동선 중간에 위치한다. 경주보문로DT 주변은 이런 조건에 걸맞지 않았다. 유동 인구가 적었고, 사무실 밀집 지역이 아니라 너른 들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코리아는 경주가 연간 관광객 800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라는 점을 기회로 봤다. 유동 인구는 거의 없는 상권이지만, 장거리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방문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건물 구조물만 남았던 공장 폐허를 활용한 을숙도강변DT점이나 기존 모델하우스 자리를 스타벅스로 개발한 전북정읍DT점도 모두 활용 가치가 없던 나대지, 효용성이 떨어지는 시설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③스토리를 입혀라 스타벅스는 매장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미에파크점도 그중 하나다. 슬럼화돼 있던 공간에 ‘도심의 커피숲’이라는 문화 테마를 입혔다. 돔 형태의 매장에 울창한 숲이 물결치듯 유기적인 곡선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넣었고, 다양한 커피 관련 소품을 풍성하게 전시한 뒤 커피나무 화분을 곳곳에 배치해 숲 같은 느낌을 줬다. 덕분에 파미에파크점 매장은 반포동 센트럴시티지역의 랜드마크 명소로 부상했다. 국내 1000번째 매장인 청담스타점은 강남 노른자 땅이란 점을 고려해 프리미엄급 매장으로 꾸몄다. 청담스타점만의 전용 음료와 음식 등이 30여종에 달할 정도다. 거기에 프리미엄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넓은 오픈 바를 갖춰 놓고 3층 공간을 도심 속의 테라스정원으로 만들어 힐링 공간으로 꾸몄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매장마다 지역 특색과 고객 성향에 맞는 메뉴, 인테리어를 갖추고 매장 종류를 달리한 게 현지 맞춤화 성공 전략”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100명의 실험정신… 3·1운동 100년을 만나다

    100명의 실험정신… 3·1운동 100년을 만나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인사동마루 갤러리’는 오는 5월 7일까지 ‘공인전 [오브제·다다이스트]’전을 연다.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연작 사진 전시회다. ‘다다이스트’라는 주제에 걸맞게 사진작가 탁기형의 개인전 ‘The Blue’ 등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사진전들이 연이어 열린다. 이번 연작 사진전은 기업가 지승룡이 100명의 작가들에게 무료로 개인전을 열어 주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총 11주 동안 다양한 분야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는 인사동마루 갤러리 G3에서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 30분 열린다. 관람은 모두 무료다. 탁기형 작가의 사진전 오프닝 파티는 오는 31일 오후 6시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日심장부에 폭탄·총성… 목숨 불사르며 ‘독립 열망’ 알린 의열단

    日심장부에 폭탄·총성… 목숨 불사르며 ‘독립 열망’ 알린 의열단

    “피고 곽재기, 이성우 두 사람은 상해, 길림, 안동현, 경성 사이를 왕래하며 동지들의 연락을 도모하고, 조선에 있는 동지로 하여금 전시 폭탄 사용의 목적을 수행할 준비를 하게 했다.”(1921년 6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형사부 재판장 이토 준키치의 판결문 일부)의열단 최초의 암살·파괴 활동 계획인 ‘밀양 폭탄 사건’은 마지막 실행 단계에서 꼬리가 잡혔다. 의열단 창단 멤버인 곽재기와 이성우는 1920년 6월 서울 인사동에서 회의를 하던 중 경찰의 급습으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당시 스무 살도 채 안 된 단원 윤세주도 함께 잡혔다. 결국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등 3곳을 폭파하려는 계획은 뒤로 미뤄야 했다. 주범으로 지목된 곽재기와 이성우는 폭발물을 반입한 혐의로 폭발물취체(단속)벌칙 3조 위반에 해당돼 1년 만에 각각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각 피고가 정치의 변혁을 목적으로 안녕·질서를 방해하려 한 점은 제령 7호 위반에 해당된다고 봤지만, 폭발물취체벌칙의 형이 더 무겁다는 이유로 해당 죄만 적용하기로 했다. 윤세주(폭발물 사용 공모, 4조 위반)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의열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1920년 9월 박재혁이 고서상으로 위장해 부산경찰서장을 찾아가 폭탄을 던졌다. 서장은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다. 박재혁은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단식 투쟁 끝에 사망했다. 같은 해 12월 최수봉도 밀양경찰서 조회 시간에 폭탄 2개를 던졌다. 이 중 폭탄 1개는 안 터지고, 나머지 1개는 위력이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최수봉에게도 사형이 선고돼 1921년 7월 형 집행을 당했다. 목숨까지 불사르는 의열단의 기개 앞에 일제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은 의열단의 의열 투쟁은 거사 자체만 놓고 성패를 따질 수 없다고 말한다. 거사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공판 과정을 보면 의열단 단원들은 고통스러운 신문 과정과 고문을 겪으면서도 법정에서 당당하게 ‘우리가 왜 폭탄을 던질 수밖에 없는지’를 밝히려 했다. 1921년 9월 식민통치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던 김익상은 이듬해 3월 중국 상하이 황포탄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다 붙잡혔다. 김익상은 당시 중국 순경에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서 중국 순경이 아닌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 살인 미수, 절도, 상해, 폭발물취체규칙 위반 등 6개가 넘는 혐의로 일본 나카사키지방재판소에 끌려와 재판을 받던 김익상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중국인을 죽일 필요는 없고 오직 위협하기 위해 쏜 것이오. 하늘을 향해 쏘았던 것은 사실이다.” 의열 투쟁이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공격을 하는 테러와 분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익상은 재판을 받으면서 “어떠한 형벌이든지 사양치 아니할 터이며, 이후로 제2·제3의 김익상이 뒤를 이어 일본 대관 암살을 계획하되 조선 독립을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김익상은 나카사키재판소(재판장 마츠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24년 1월 도쿄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지려고 했다가 휴회 중인 사실을 알고 황궁 앞으로 가서 이중교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도 같은 해 11월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지섭은 공판 과정에서 재판장이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직업은 독립당원”이라고 했다. 최후 진술에서는 “우리 조선의 독립 선언은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라면서 “조선 민중은 굶어 죽고 맞아 죽고 하는 가운데 나 홀로 적국에 들어와 사형을 받는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형이든 무죄든 둘 중에 빨리 판결을 내리라”고 했다. 김지섭의 변호인들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을 때도 김지섭 스스로 거부했다. 김지섭은 “나는 조선사람이니 일본사람인 재판장이 어떠한 사람이 되든지 똑같을 것이니 기피 신청을 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는) 아무 죄가 없으니 무죄를 선언하든지 검사 청구대로 사형에 처하든지 하여 달라”고 말했다. 일본 사법제도의 권위와 재판관의 양심을 문제 삼으려고 했던 것으로 읽힌다. 1926년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 경성지점에 폭탄을 던지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나석주 의거 사건과 관련, 배후조종 혐의로 검거된 김창숙은 아예 재판 자체를 거부했다. 일본인 재판장이 ‘본적이 어디냐’고 물으면 “없다”고 답하고, ‘왜 없느냐’고 또 물으면 “나라가 없는데 본적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창숙은 법정에서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 법률을 부인한다”면서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얼마나 대의에 모순되는 일인가”라며 변호 조력도 거부했다. 결국 김창숙은 대구지방법원에서 1928년 12월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 공소도 거부해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1920년대 전반, 드디어 조선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막을 올렸다.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조선 영화의 첫발을 뗀 1919년부터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 ‘아리랑’이 개봉한 1926년 이전의 시기, 조선 영화계는 어떤 영화들을 만들면서 무성영화 시대를 개척해 갔을까. 주목할 부분은 식민지와 제국 구도에서 조선인들만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 아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뿐 아니라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끊임없이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인 감독의 연출과 조선 사람을 연기하는 조선인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지점이 조선의 무성영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던 셈이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 일본인 흥행사가 제작한 최초의 상업영화 ‘춘향전’(1923),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제작된 ‘장화홍련전’(1924)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무성영화 제작 현장을 살펴보도록 한다.●조선인이 감독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 1923년에 공개된 ‘월하의 맹서’는 온전한 극영화의 형식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야외의 활극 장면만 영화로 표현했던 이전의 연쇄극과 달리,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모두 필름 촬영으로 소화한 극영화라는 점 그리고 각본, 감독, 출연 모두 조선인의 손으로 이뤄낸 점이다. 당시 언론인이자 연극인으로 활동했던 윤백남(1888~1954)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그가 이끌어 온 민중극단의 단원 이월화, 권일청, 문수일, 송해천 등이 출연했다. 신파극 무대에서 활약하던 이월화(1904~1933)는 이 영화를 통해 조선 영화 최초의 스타 여배우로 등극한다. 한편 영화 매체를 성립시키는 기술 파트까지 조선인이 해결하기는 힘들었는데, 촬영과 편집은 일본인 오타 히토시가 맡았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한 극영화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제작한 계몽영화였다. 다시 말해 영화관용 상업영화가 아니라 당국의 선전영화였다. 1923년 4월 9일 경성호텔에서 처음 상영했고, 이후 순회영사로 각 지역에서 공개되었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는 ‘월하의 맹서’의 분량을 ‘전 2권’, ‘2천척의 긴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이를 상영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33분 정도에 해당한다. 중편 길이의 영화였던 것이다. ‘월하의 맹서’ 제작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의 무성영화는 자본과 기술의 제공, 연출과 배우의 역할이 분리되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큰 자본이 필요한 작업이고 촬영, 현상 등의 근본적인 기술이 해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본, 연출 그리고 출연 영역에서 조선 영화인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렇게 조선 무성영화는 첫발을 뗐다.‘월하의 맹서’ 공개 이전에도, 일본인 영화제작사가 만든 ‘국경’(1923)이 상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리키요 다케마쓰 등 재조선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극동영화구락부가 제작한 영화로, 촬영은 일본에서 온 나리키요 에이가 담당했다. 물론 출연은 박순일 등 조선인 배우들이 맡았다. 이 영화는 중국 국경 지대의 마적을 토벌하는 일본국경수비대의 활약을 묘사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1923년 1월 13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첫날, 조선인 학생들의 야유로 영화 상영이 중단되었고, 이후 다시 상영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조선공론’의 문예담당 기자 마쓰모토 데루카가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직접적인 야유를 보내 중지시키는 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이다”고 기록한 것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과격한 반응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학생들 야유로 하루 만에 상영 중단된 ‘국경’ 이 영화의 상영이 하루 만에 중단된 사정을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진다. 조심스러운 추정이지만, 조선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들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무장독립군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국경’은 상업영화로서 실패했지만, 조선인 관객들이 영화를 거부한 사건으로 영화사 기록에 남게 되었다. 조선 영화계가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시대를 연 것은 일본인 흥행사 하야카와 마스타로가 설립한 동아문화협회의 ‘춘향전’(1923) 그리고 조선인 영화관 단성사가 영화제작을 위해 설립한 촬영부의 ‘장화홍련전’(1924)이 등장하면서이다. 하야카와는 1913년 경성의 일본인 거리에 고가네칸을 설립하며 조선 흥행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조선부업공진회 개최에 맞춰 고전 소설 ‘춘향전’의 영화화를 추진하며, 하야카와 고슈라는 이름으로 직접 연출까지 나섰다. 영화는 전북 남원 현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해 당대 최고의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몽룡으로, 기생 한명옥이 춘향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동아문화협회의 간부였던 김조성이 배우의 역할로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 자본주가 감독에 나선 작품이지만, 조선 고전의 각색과 연출 과정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춘향전’은 조선부업공진회가 개최된 1923년 10월 5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해 조선인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18일부터 전북 군산의 군산좌에서, 21일부터 공진회 내의 활동사진관에서 연이어 상영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최초의 상업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하야카와는 ‘춘향전’의 성공을 기반으로 1924년 7월 인사동의 조선인 상설관 조선극장을 인수해 단성사의 라이벌로 나섰다.●‘장화홍련전’ 흥행에 日 ‘춘향전’ 재개봉 응수 당시 ‘춘향전’은 “이건 한 개의 슬라이드지, 영화에 대한 몽타주가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선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흥행에 성공하자, 조선 영화계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는 조선 흥행계의 유일한 조선인 경영자였던 박승필 역시 단성사에 촬영부를 만들고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으로 응수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극장 자본이 주도한 영화제작을 넘어 본격적인 영화사 설립이 추동된 점이다. 바로 부산에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였다. 조선인 주도의 영화 제작은 바로 이듬해에 이어졌다. 하야카와의 행보에 자극 받은 단성사의 박승필이 1924년 7월 단성사 내에 촬영부를 설치하고, 역시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극영화로 제작했다. 배우는 장화와 홍련 역에 기생 김옥희와 김운자, 원님 역에 인기 변사 우정식을 출연시켰다. 앞선 ‘춘향전’의 성공 요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연출 인력이 보강되었다. 각색은 단성사의 변사로 유명한 김영환이, 감독은 우미관 출신의 영사기사로 단성사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었던 박정현이 나섰다. 훗날 감독이 되는 이구영도 당시 단성사 직원으로 각본과 연출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무성영화 현장은 지금의 프로듀서와 감독처럼 그 역할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촬영 역시 조선인이 맡았다는 점이다.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로 기록되는 이필우(1897~1978)가 이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장화홍련전’의 영화사적 의미는 제작, 연출, 출연 그리고 초창기 영화매체의 가장 중요한 성립 조건인 기술에서도 전부 조선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경성 천지의 키네마 팬이 한결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장화홍련전’이 1924년 9월 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자 조선에 영화상설관이 생긴 이후로 처음 맞는 대성황을 이뤘고, 이에 하야카와의 조선극장은 ‘춘향전’의 재개봉으로 응수한다. 이후 동아문화협회는 하야카와가 다시 감독으로 나선 ‘비련의 곡’(1924), 김조성이 감독으로 나선 ‘흥부놀부전’(1925)을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후, 경영난으로 해산했다. ●무성영화 개척해 간 조선영화인들 초창기 조선 영화계에서 극장의 산하가 아닌, 영화제작사로 처음 등장한 조직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다. 1924년 7월 11일 일본인 사업가들에 의해 부산에서 설립됐다. 촬영소는 복병산에 있던 러시아 영사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고, 회사의 중심인물은 부산 묘각사 주지였던 승려 다카사 간초였다. 그는 왕필렬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회사 창립작 ‘해의 비곡’(1924)과 원제가 ‘암광’이었던 ‘신의 장’(1925), ‘동네의 호걸’(1925)을 직접 연출했다. 촬영기사는 작품마다 일본에서 불러왔다. 동아문화협회에서 김조성의 역할처럼,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도 조선 영화인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무성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경손, 안종화 등 당시 무대예술연구회 단원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해의 비곡’의 경우 안종화, 이월화, 이채전 등 조선인 배우들이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이경손이 조감독을 맡았다. 실질적인 감독 역할이었다. 규모를 키운 2회작 ‘운영전’에서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윤백남이 감독으로 초빙되었다. 조선키네마 역시 조선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가담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한편 무성영화의 스타 나운규가 조선키네마의 연구생이던 당시 ‘운영전’에서 처음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1923년부터 1925년까지의 무성영화 전기에 모두 12편의 조선 영화가 제작되었다. 1923년 2편, 1924년 3편, 1925년 7편이다. 이 작품들 중 다수는 일본인 제작자가 만들고 연출도 겸했다. 그리고 그 제작 현장에서 조선인 감독과 기술 스태프들이 성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단성사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처럼 연출과 출연은 물론이고, 조선인 촬영기사가 전면에 나선 작품도 있었다. 이처럼 무성영화 시기, 제작, 연출 그리고 촬영 등의 기술 파트에서 일본인과 조선 영화인이 만들어내는 도제, 경합, 협업 등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무심서가 춘강 서정건 선생 초대전’

    ‘무심서가 춘강 서정건 선생 초대전’

    한자 성경을 붓글씨로 옮겨 쓴 춘강 서정건(82)의 첫 전시회 ‘무심서가 춘강 서정건 선생 초대전’이 6~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춘강이 1992년 캐나다로 이민 간 후 27년간 공들여 쓴 2000여점 가운데 300점을 추려 선보인다. 특히 성경을 한문으로 다시 쓴 한자 성경이 이채롭다. 작가는 “4년 남짓, 5000여 시간에 걸쳐 130만 자의 한자 성경을 모두 옮겨 썼다”고 밝혔다. 하영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춘강의 글씨쓰기는 책을 통째 베껴 공부하는 조선시대 책서(冊書) 전통에 닿아 있다”며 “책서로 필력을 얻은 춘강체는 글과 글씨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난삽한 곳이 없다”고 평했다. 작가와의 만남은 9일 오후 3시부터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돌아온 ‘서울 돌’… 조선총독부의 잔재에서 ‘3·1독립선언광장 주춧돌’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서울 돌’이 돌아온다. 창신동 채석장에서 채굴돼 조선총독부 건물에 쓰였지만, 인고의 세월을 지나 이제 인사동 태화관터에 조성될 ‘3·1 독립선언 광장’의 주춧돌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돌의 귀환’ 행사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돌의 귀환 행사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관된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 돌을 3·1 독립선언 광장의 주춧돌로 활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이은숙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국회의원, 윤봉길 의사의 장손인 윤주경 선생 등이 참석한다. 앞서 1926년 준공된 조선총독부 건물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1995년 철거돼 일부 잔재가 독립기념관에 보관됐다. 서울시는 여기에 포함된 돌이 창신동 채석장에서 채굴된 것으로 판단하고, 인계받아 ‘서울 돌’로 등록했다. 행사 첫날인 24일에는 서울 돌이 독립기념관을 출발해 경기도 안성 3·1운동기념관 만세광장,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은숙 선생의 옛 집터를 거쳐 서울시청에 도착한다. 시청 로비에서 하룻동안 전시되며 시민들과 만난 서울 돌은 다음날인 25일 오후 3시 종로구 인사동 태화빌딩으로 옮겨져 ‘돌의 귀환 및 3·1독립선언 광장 조성 선포식’에서 다시 공개될 예정이다. 이후 서울 돌은 태화빌딩에서 보관·전시한 뒤 오는 8월 조성될 3·1독립선언 광장에 쓰이게 된다. 한편 태화빌딩 앞에 오는 4월 착공해 8월에 준공 예정인 3·1독립선언 광장은 서울시와 종로구청, 태화복지재단,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KB국민은행 등이 민관협력으로 조성한다. 서울 돌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중국 하얼빈 등 해외 주요 독립운동 지역 10곳의 돌을 현지 한인회의 협력으로 옮겨와 광장 조성에 사용할 계획이다. 세계 각국에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널리 알린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다. 박 시장은 “이번에 돌아온 ‘서울 돌’은 식민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상징하는 돌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면서 “3·1독립선언 광장을 독립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념하는 ‘기억의 광장’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세대를 잇는 ‘소통의 광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조선 문인석 한 쌍 36년 만에 돌아온다

    조선 문인석 한 쌍 36년 만에 돌아온다

    獨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새달 반환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이 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로텐바움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문인석 2점을 다음달 말 한국에 반환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문인석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 점은 높이 131㎝·가로 40㎝·세로 32㎝이고, 다른 한 점은 높이 123㎝·가로 37㎝·세로 37㎝다. 이 문인석들은 1983년 독일인 헬무트 페퍼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동품상에게 구입해 독일로 반출했고, 1987년 로텐바움박물관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 14~16년 로텐바움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에 대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이 먼저 조선시대 문인석의 유물 출처 여부에 대해 ‘불법성이 의심된다’는 의견을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에 전달했다. 박물관은 별도 조사에서 문인석이 컨테이너에 숨겨진 채 독일로 불법 반출된 사실을 확인한 뒤 함부르크주정부와 독일 연방정부를 통해 반환 절차를 진행했다. 문인석은 다음달 19일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열리는 반환식 이후 국내에 돌아와 4월쯤 국립민속박물관에 양도돼 일반에 공개된다. 바르바라 플랑켄슈타이너 로텐바움박물관장은 21일 독일 현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에 귀중한 유물을 돌려주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은 “이번 환수 사례가 유물의 출처 확인 의무를 철저히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예술의 예술을 위한 -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예술의 예술을 위한 -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헤이리 헤이리 어허야 “산천 경계로 구경을 가자아 / (중략) / 에헤 어리 헤이리 어허 어허야” ‘헤이리’라는 마을 이름 하나는 기막히게도 잘 지었다. 서울 위쪽, 그러니까 고양시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파주에는 예로부터 특이한 노동요 하나가 내려오고 있다. 바로 ‘헤이리 소리’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메기고 되받아치는 형식의 노래로 혼자서도 부르고, 논 맬 때도 부른다. 내용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시간이 흘러 늙어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꽃다운 청춘에 님의 허리를 덥썩 안고 산천 경계로 구경’을 가자는 내용이다. 우리도 구경거리 가득한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로 가 보자.파주 탄현면에 위치한 헤이리 예술마을은 넓다. 생각보다 크다. 15만평이다. 이와 더불어 볼거리와 쉴거리, 먹을거리, 들을거리도 많다. 무궁무진하다. 한두 시간 슬렁슬렁 걸어 다닐 요량이라면 애당초 헤이리에 오면 안 된다. 시작은 이러했다. 헤이리 예술 마을은 1998년에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여명의 국내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간이다. 이 곳에는 실제 작가들이 거주하는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의 문화예술공간과 아울러 방문객들을 위한 여러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 2009년 12월, 문화지구로 지정되다. 처음 헤이리 예술 마을이 들어섰을 때는 작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전원마을 정도로 여겨졌다. 실제로도 외부 관람객들을 위한 시설들은 거의 전무하였다. 고작 딸기 캐릭터 체험관이나 작은 카페나 식당 등이 마을 조성 단지의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그러다 2009년 12월에 정부가 이 곳을 문화지구로 지정한다. 한 마디로 서울 도심의 인사동이나 대학로처럼 나라가 헤이리 마을을 관리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문화지구로 지정이 되면 지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가 있는 데 박물관, 미술관, 서점 등의 권장시설에 대해서는 취득세, 재산세 등을 50% 감면을 받는다. 또한 건물을 새로 짓거나 기존 건축물을 개보수하는 경우에도 융자금이나 이자 감면의 혜택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이런 정부의 넉넉한 지원을 바탕으로 헤이리 예술 마을의 외양은 2011년부터 비약적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게 된다.현재 헤이리 마을의 모든 건축물의 60%는 문화 시설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또한 페인트를 쓰지 않고 지상 3층 이상의 건물은 짓지 않는다는 마을 규정에 따라 될 수 있는 한 생태친화적인 풍광을 유지하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헤이리 예술 마을이 조성 초기에 가졌던 정체성보다는 상업적 공간의 이미지가 짙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 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럼에도 다정한 연인, 아니면 혼자라도 서울 외곽의 조용한 거리를 거닐고픈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추천하고픈 공간, 헤이리 마을이다. <파주 헤이리마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파주에 갈 일이 있다면, 방문 적극 추천. 2. 누구와 함께? - 연인들. 데이트 코스 3. 가는 방법은?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 합정역에서 좌석버스 2200번 / 파주 시내버스 900번 4. 감탄하는 점은? - 아직은 남아있는 창립초기 가졌던 예술 마을로서의 흔적들. 갤러리.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중, 주말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다. 6. 관람방법은? - 걸어서 다니는 것보다는 매표소에서 패키지 티켓을 구매하여 전기버스인 ‘도나도나 버스’를 타고 다는 것이 제일 낫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커피와 머핀 ‘카메라타’,‘커피공장’, 파스타 ‘잇탈리’, 피자 ‘라치오 비엘’, ‘인스퀘어’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heyri.net/blog/heyri/index.a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도라산역, 제 3땅굴, 임진각, 파주 출판단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너무 많은 갤러리, 공방, 카페 등이 있기 때문에 블로그나 기타 헤이리 마을 방문 관련 정보를 미리 보고 가는 것이 좋다. 헤이리에 어울리지 않는 공간도 최근에 많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서울 근교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는 편. 방문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법원, ‘고은 성추행’ 인정한 결정적 증거는 ‘일기장’

    법원, ‘고은 성추행’ 인정한 결정적 증거는 ‘일기장’

    법원이 ‘고은 시인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최영미 시인의 일기장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부장 이상윤)는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 등을 상대로 낸 총 10억 7000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영미 시인에 대한 청구 등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최영미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어서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최영미 시인 측이 제출한 일기장이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했다고 인정했다. 최영미 시인은 처음 폭로 당시 고은 시인의 성추행 등 부적절한 행위가 벌어진 시기를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로 다소 폭넓게 잡았다. 구체적 시기를 특정하지 못하면서 최영미 시인의 폭로는 여러모로 흔들리기 쉬웠다. 더구나 고은 시인 측 증인으로 나선 인사동 술집 주인 한모씨가 SNS를 통해 ‘최영미 시인의 주장은 허위’라는 취지로 반박글을 올리면서 진실 공방이 격화하고 있었다. 이에 최영미 시인의 동생 최영주씨는 언니가 예전부터 ‘내 재산 1호는 일기’라고 했을 만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써 왔으니 일기장에 왠지 ‘문제의 그 날’의 기록도 있을 것으로 보고 언니에게 일기장을 뒤져보라고 권했다. 일기장을 살펴본 결과 1994년 6월 2일자에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오기인가 - 고 선생 대(對) 술자리 난장판을 생각하며”라고 적혀 있었다.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술자리에서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목격했음을 추단케 하는 일기가 존재하고, 그 일기가 조작됐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하면서 최영미 시인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중요 증거로 인정했다. 고은 시인 측도 ‘고은 시인의 일기’를 반대 증거로 제출했다. 고은 시인의 일기에는 최영미 시인이 1994년 이후에도 고은 시인이 참석한 술자리에 함께하거나, TV 프로그램 인터뷰를 부탁하고, 두 사람이 통화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은 시인 측은 최영미 시인이 실제로 부적절한 행위를 목격했다면 사건 이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건 당시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했던 것이 아니었고, 당시 고은 시인의 주변 사람들 사이에 고은 시인의 술자리 기행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무렵 문단 내 고은 시인의 지위 및 영향력 등까지 고려하면 관계를 유지했다고 해서 최영미 시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영미 시인이 사건 당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는 고은 시인 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너무 놀라서 가만히 있었다는 최영미 시인의 주장은 수긍할 수 있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부수적인 사정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고 했다. 최영미 시인이 의혹 제기를 하게 된 과정에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은 처음에 고은 시인의 문단 내에서의 지위, 고은 시인에 대한 폭로를 할 경우 사회적 반향이나 불이익 등이 두려워 알리는 것을 주저하다가, 다수의 목격담이 나오고 기사화가 이뤄진 상황에서도 고은 시인이 별다른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제보를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영미 시인이 허위의 제보를 해 고은 시인을 음해할 만한 별다른 사정이나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고 봤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무심서가’ 춘강 첫 전시회…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

    ‘무심서가’ 춘강 첫 전시회…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

    “난 서가이지, 서예가 아니다…9살때 훈장 노릇도”한자성경 붓글씨 완서…5000여시간에 130만자 써한자 성경을 붓글씨로 완서한 서가(書家) 서정건(82)의 첫 작품 전시회가 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열린다. 특유의 글씨체와 함께 글에 담긴 그의 마음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주미술관은 다음 달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낙원상가 남쪽 대일빌딩) 2층에서 ‘무심서가 춘강 서정건 선생 초대전’을 연다고 밝혔다. 작가와의 만남은 3월 9일 오후 3시부터다. 석주미술관이 주최하고, 협찬은 ㈜인풍, 후원은 한국미술관과 월간 서예가 맡았다. 전시회에는 춘강이 1992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간 후 27년간 공들여 쓴 작품 2000여점 가운데 300점을 추려 선보인다. 한국 대기업의 기술사 출신인 그가 붓글씨에 도전, 5000여 시간 4년여에 걸쳐 130만 자의 한자 성경을 모두 옮겨썼다. 이와 관련해 서예계 원로 김응현(1927~2007년) 선생은 “글씨를 100만 자쯤 쓰면 당신은 이제 명필이요. 글씨에 통달한 것이지.”라고 했다고 전한다.춘강은 작가의 말에서 “나는 스스로를 서가라고 지칭하지, 서법가(書法家)나 서예가(書藝家) 등의 호칭을 쓰지 않는다.”라며 “(작품을) 아무런 목적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의도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무심서가’라고 한다. 춘강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그의 친구 류성우씨 덕분이다. 2014년 5월 밴쿠버에 왔던 류씨가 그의 작품을 보고 어쩔 것이냐고 묻기에 춘강은 “뒤뜰에 모아 놓고 모두 불태울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에 깜짝 놀란 류씨는 이런 계획을 말리며 그의 작품 일부를 고국으로 가져왔고, 결국 전시에 이르게 되었다. 춘강이 한자성경을 쓰게 된 것은 그가 한문에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네 살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을 배웠고, 7살에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완독했다.”며 “시경과 서경을 공부하다 9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아버지 뒤를 이어 훈장 노릇도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자의 도덕경, 부모은중경, 퇴계선생 언행록, 중용, 율곡선생풍악기 등을 완서하기도 했다.그는 틈틈이 글을 써 책을 낸 것이 20여 권에 이른다. 수필집 ‘물이고 구름이어라’ ‘피리부는 목동’ ‘청강에 배 띄우고’ 등을 냈고, 한국과 중국 고전과 문집 수백편을 번역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박사 지음, 허밍버드 펴냄)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나 싶은 당신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그림 에세이. 서울신문에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를 연재 중인 ‘선천적 재미주의자’인 저자가 ‘조롱 전문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 40가지를 옮겼다. “세관에 신고할 것이라고는 나의 천재성밖에 없다” 등의 주옥같은 냉소에 담긴 저자의 친절한 풀이를 읽으면 다큐 같은 인생이 다소간 예능으로 바뀌는 ‘매직’을 경험하게 된다. 256쪽. 1만 3800원.부의 지도를 넓힌 사람들(박상주 지음, 예미 펴냄) 지구촌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175개국에 750만명. 카리브해 연안에서 발전소를 운영하는 기업인부터 브라질 향기 마케팅 사업가까지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12인의 한국인 사업가의 치열했던 도전과 성공 이야기를 ‘지구촌 순례기자’의 눈으로 담았다. 376쪽. 1만 6000원.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신은경 지음, 마음의숲 펴냄) 전직 KBS 9시 뉴스 앵커가 말하는 나이 들수록 멋지게 살아가는 법. 공영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저널리즘을 강의하는 교수로 제2의 이력을 이어 가는 저자는 서른이든 마흔이든 바삐 내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전략적 하프타임’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248쪽. 1만 3800원.임정로드 4000㎞(김종훈 외 3명 지음, 필로소픽 펴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임시정부 순례길 가이드북. 유적지마다 지도앱을 QR코드로 삽입해 순례 여정을 돕는다. 352쪽. 1만 6000원.그래서 너에게로 갔어(홍아미 지음, 두사람 펴냄) 핫스팟보다 좁은 골목과 시장,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평범한 여행 중독자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곧 여행인 에세이스트의 길 위의 깨달음을 담았다. 264쪽. 1만 4000원.지명직설(오동환 지음, 안나푸르나 펴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은 조선 초기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다 하여 ‘대사동’이라 불리다가 후일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인근 ‘관인방’과 합쳐지며 오늘날의 ‘인사동’이 됐다. 내가 발 디딘 곳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땅 이름 뜻 풀이 책. 300쪽. 1만 8000원.
  • “귀 기울여 들어주면, 웃으며 마주보게 돼요”

    “귀 기울여 들어주면, 웃으며 마주보게 돼요”

    경청은 상대에게, 침묵은 나에 대한 존중 힘들수록 사람 만남을 축복으로 여겨야“살아가는 건 모두 이유의 연속입니다. 그 이유를 마음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사람에 대한 존중 아닐까요.” 에세이집 ‘그래, 다 이유가 있는거야’(마음의숲)를 펴낸 성전 스님. 책 출간에 맞춰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스님은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얹어 배려의 말을 먼저 던졌다. “귀 기울여 들어주면 웃으며 마주볼 수 있게 됩니다.” 성전 스님은 불교계의 소문 난 문장가다. 교리 전파 대신 쉬운 언어와 감성적인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글쟁이 스님’으로 숱한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월간 ‘해인’ 편집장과 불교신문 주간을 지내고 지금은 불교방송 아침프로그램 ‘좋은 아침, 성전입니다’ 진행을 맡고 있다. 그간 세상에 낸 10여 편과 달리 이 에세이집은 스님에게 아주 각별하단다. “수행자랍시고 세상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고 덕을 베푼 것 같지도 않아요. 주로 나를 위해 글을 써왔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공감은 언제 어디서나 세상 모든 일에 있기 마련인 이유를 깊이 살피고 정성스레 들어주는 것이다. “화두를 들고 참선에 몰입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중생구제라는 거창한 발심이 사람의 관계 속에서 용해되고 꽃피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 말마따나 책 속에는 바람 부는 날,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달빛이 유난히 밝을 때 등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적어놓은 마음의 글들이 훈훈하게 펼쳐진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세요. 나를 괴롭힐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믿으세요’ ‘경청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면 침묵은 자신에 대한 존중입니다’…. “오늘 하루 흐려도 나는 선같이 가늘게 이어진 푸른 하늘로 두 눈을 가득 채웁니다.” 그 희망의 시선과 마음 자리는 어디서 나올까. 스님은 “마음에 담은 세상이 바로 자신의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방식과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이 더 정답고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어디에서나 위로받을 수도 있지요.”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하면 세상 일을 한층 더 여유롭게 받아들이게 된단다. 이를테면 뺨을 한 대 맞으면 맞을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돌리는 식이다. “자기만의 방식을 못 가지다 보니 세상은 더 급해지지요. 물론 자기만의 방식은 분노와 폭력이 아닌 품격과 덕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겠지요.” 스님은 힘든 세상일수록 사람의 만남을 축복으로 여겨 용기를 얻으라고 말한다. ‘자비와 친절이 가장 큰 수행’이라는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소개한 성전 스님은 언제까지나 기꺼이 손잡아주는 수행자이고 싶다고 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도 사랑과 자비를 깨우는 아름다운 수행이 되지요.”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치·막국수·한천 이야기 듣고 가마솥밥·수삼 튀김·차 맛보고

    김치·막국수·한천 이야기 듣고 가마솥밥·수삼 튀김·차 맛보고

    올겨울 여러 지방의 특산물과 먹거리를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맛집 탐방에서 한발 더 나가 각 지역의 음식 박물관을 찾아가면 식재료와 요리, 식문화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 한국관광공사가 ‘맛있는 박물관 여행’이라는 테마로 12월 여행지를 추천했다.①서울 뮤지엄김치간 종로구 인사동의 뮤지엄김치간(間)은 국내 첫 김치박물관이다. 1986년 김치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2015년 삼성동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뮤지엄김치간으로 재개관했다. 2015년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 11대 음식 박물관’에 이름을 올렸다. 박물관 관람은 김치의 발효처럼 조금 느린 템포가 어울린다. 김치의 유래와 종류, 담그는 도구, 보관 공간 등 관련 유물과 디지털 콘텐츠가 전시돼 있다. 김치 담그는 영상을 보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고, 맛보고 냄새를 맡으며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4~6층은 테마 공간이다. 커다란 항아리가 벽을 채운 ‘김치마당’에서는 4세기부터 시작된 김치의 역사가 소개된다. 올해 새 단장한 ‘김치사랑방’에서는 부엌에 담긴 김치 이야기가 있고, ‘과학자의 방’은 발효의 과학적인 원리를 알려 준다. 뮤지엄김치간 (02)6002-6456. ②경기 이천 쌀문화전시관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던 쌀로 유명한 이천쌀의 고장 이천에는 쌀문화전시관이 있다. 국내 쌀 문화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쌀 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15세기 말 이천 부사 복승정의 치적 자료에는 “성종이 세종릉에 성묘하고 환궁하면서 이천에 머물던 중 이천쌀로 밥을 지어 먹었는데 맛이 좋아 진상미로 올리게 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시작된 이천쌀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쌀알이 투명하고 밥에 윤기가 도는 추청 품종으로 생산·수확·저장 과정을 깐깐하게 관리해 품질을 고급화했다. 이천 쌀을 즉석에서 도정해 맛볼 수 있는 것은 쌀문화전시관의 자랑이다. 미리 신청하면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있다. 도자기 장인들이 모여 이룬 마을 사기막골도예촌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공방과 도자기를 만날 수 있다. 쌀문화전시관 (031)632-6607. ③강원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 춘천은 막국수를 대표하는 고장이다. 예부터 메밀 요리가 발달한 강원도에서 막국수는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의 별미이자 겨울을 나는 음식이었다. 춘천 출신 작가 김유정의 소설에도 막국수가 자주 등장한다. 단편소설 ‘솟’에는 “저 건너 산 밑 국수집에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환하다. 아마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국수를 눌러 먹고 있는 모양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등장하는 ‘눌러 먹는 국수’가 막국수다. 막국수를 테마로 한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은 건물부터 국수틀과 가마솥을 본떴다. 춘천 막국수의 유래와 메밀 재배법, 막국수 조리 과정 등을 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막국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흔히 여름 별미로 생각하는 막국수가 사실은 겨울 음식이라는 등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033)244-8869. ④충남 금산 인삼관 금산은 15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삼의 고장이다. 금산은 고려인삼의 종주지다. 기후와 토양, 일교차 등 인삼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다. 단단하고 잔뿌리가 발달해 사포닌 함량이 높은 인삼을 생산한다. 금산인삼관은 인삼 문화·역사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 금산 인삼의 역사와 재배·제조 과정, 과학적인 우수성부터 인삼을 활용한 100여 가지 음식까지 살펴볼 수 있다. 금산읍 중도리 인삼약초거리에는 전국 3대 약초시장으로 꼽히는 금산인삼약초시장이 있다. 금산 인삼과 약재 수백 종이 거래되는 약초거리는 1년 내내 북적거린다. 한 개에 1500원짜리 수삼튀김, 한잔에 1000원인 인삼먹걸리 등을 맛봐도 좋다. 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375.⑤전남 보성 한국차박물관 차가워진 바람에 코끝이 아린 겨울이면 따스한 차 향기가 생각난다. 보성은 새잎 돋는 봄에 많이 찾는 고장이지만 겨울에도 인기가 많다. 한가해진 초록빛 차밭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 좋다. 보성은 주변 지역보다 표고가 높아 일교차가 크고 해양성 기후 영향으로 차나무가 잘 자란다. 한국차박물관에서는 차에 대해 배우고, 차와 차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녹차 천연 화장품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1~2층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차·다기의 역사와 재배에서 수확까지의 생산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주말에 3층을 방문하면 다례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와 산책로가 있다. 오는 14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차밭이 빛으로 물드는 보성차밭빛축제가 열린다. 은하수터널과 빛산책로, 디지털차나무 등 빛 조형물은 겨울밤의 낭만을 더할 예정이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850-5215. ⑥경남 밀양 한천박물관 밀양은 식이섬유가 많아 건강식품으로 인기 있는 한천의 본향이자 최대 생산지다. 한천은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무를 건조한 것으로 양갱이나 젤리에 들어가는 재료로 생각하면 쉽다. 1층 460㎡ 규모의 한천박물관은 작지만 알찬 공간이다. 건강식품으로 유명하지만 제조과정 등은 생소한 한천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우뭇가사리를 세척하는 데 쓰는 세척기, 우뭇가사리를 삶을 때 쓰는 자숙용 가마솥 등이 있다. 박물관 내 체험관에서는 한천을 이용한 먹거리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박물관 건너편에는 한천레스토랑, 한천상점 등이 있어 한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한천박물관(밀양한천테마파크) 1577-6526.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서양화가 강석진 개인전 … 5~10일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서

    서양화가 강석진 개인전 … 5~10일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서

    ‘두고 온 별, 우리의 산하’ 주제로…“아련한 정서 되살려”서양화가 강석진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두고 온 별, 우리의 山河’로 2018년 자랑스러운 미술인상 수상 기념 초대전이다. ‘서양화가 강석진’ 그러면 고개를 갸웃할 사람들도 GE 코리아 회장 하면 무릎을 칠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 들어온 외국 기업 가운데 사장과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로 21년간(1981~2002년) 재직하면서 최장수 재임기록을 세웠다.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전문경영인으로서 또 화가로서 자연의 순수한 모습과 대자연의 깊은 마음을 담은 유화 50여 점이 전시된다. 작가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과 넓은 마음, 따뜻한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오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향기를 화폭에 담았다”고 밝혔다. 미술평론가 김상철 씨는 “작가가 다루는 우리 산야는 평이하고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우리 산하의 절절한 애정을 통해서 태생적 감정을 확인한다”며 “어린 시절 시골 향리에서의 추억과 감흥, 그리고 이를 통해 배태된 풍부한 감성들은 잊혀져 가는 아련한 정서를 되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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