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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영국여왕의 방한

    지난 92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 40년을 맞았을 때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기념문서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를 지킨 군주로서 그는 1,000년 역사를 지닌 영국 왕의 자리에 활력소를 불어넣었고 대영제국을 영연방으로 순탄하게 변화시키는 외교적 역할을 발휘했다’고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유럽의 다른 나라 왕실들이 공산주의의 물결에 밀려 붕괴한 데 비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왕위와 위엄을 굳건하게 지켜오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그는 연합왕국의 왕인 동시에 자치령 각국의 왕이며 다시 구(舊)제국에 속해있던 독립국 결합체인 코먼웰스의 수장으로서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전통을 지켜 실제의 정치에는 관여하지않고 있다. 그러나 1년에 두 번으로 제한된 국빈 방문으로 국제 친선에 기여하고 있다.지난 86년,베이징(北京) 방문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여왕으로서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계기를 만들었고 94년에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간의 잇단 불화와 추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방문하여 꿋꿋한 왕실의 체모를 과시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영 국교 재수립 50주년 기념으로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나라에 온다.엘리자베스 여왕의 해외방문엔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 언론의 열띤 취재보도가 따를 것이다.이번 여왕의 한국 방문에는 영국 왕실출입기자 50여명과 세계 각국의 기자 100여명이 동행할 예정이어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TV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방한 스케줄은 이른바 작은 문화답사의 형태로 국립묘지 참배와 金大中대통령 면담후 서울 미동초등학교에 가서 태권도 시범을 관람하고 이화여대와 인사동 거리,남대문시장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국악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도 찾아가 ‘서양음악사가 짧은 한국에서 어떻게 가르치기에 그처럼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나오는지’도 확인하고 싶어한다.그리고 사흘째인 21일에는 73세 생일을 맞아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담연재(澹然齋)에서 전통한식으로 차려진 생일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한국의 양반 마을에서 신사의나라에서 온 영국 여왕의 생일맞이는 동양과 유럽의 조화를 새삼 실감시킬지도 모른다. 물론 영국 여왕의 한국 방문은 한국으로선 전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과연 인사동과 남대문시장,안동의 하회마을에서 동양적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우리에겐 보여줄 것이 적다는 게문제인 것 같다. 이세기 논설실장
  • 中거주 위안부할머니 64년만에 귀국

    “정말 내 나라에 왔어…” 12일 오후 3시 30분 아시아나항공 332편으로 중국에서 귀국한 일본군대 위안부 출신 文明今할머니(82)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해 55년만에 고향을 찾은 캄보디아 훈할머니(본명 이남이)에 이어 해외에 거주하는 일제 치하 피해자가 고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수양딸 白玉蘭씨(56)와 동행했다. 휠체어를 탔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文할머니는 또렷한 우리말로 “너무나좋아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文할머니의 귀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정성으로 이루어졌다. 안식처인 ‘나눔의 집’에 사는 할머니들은 지난 5∼7일 사흘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일일찻집을 운영해 모은 돈 700여만원을 여비로 보내 文할머니의 귀국을 도왔다. 文할머니는 현재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손오현(孫吳縣)에 살고 있다.고향은 전남 광양군 진상면 구황리(현 황중리).18세 때인 1935년 “취직시켜주겠다”는 일본군의 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갔다. 10년 동안 혹독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고 해방 뒤에는 수치심 때문에귀국하지 못했다.
  • 굄돌-가격파괴 전시

    가끔 외신을 통해 거액의 미술품 도난사건을 접한다.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천문학적 액수로 그림이 팔려나갔음을 듣기도 한다.그만큼 미술품은고가의 진귀한 물건으로 인식된다. 최근 개봉된 영화 ‘제너럴’에는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도둑 마틴 카힐이미술관에 잠입,가격 순으로 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그것은 미술품의 가치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미술품은 태생부터 ‘귀족적’이었다.원래 그림·조각은 지배계급만이 독점했었는데 미술관의 등장으로 일반인들도 보고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업화랑의 등장에 따라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미술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미술품을 선뜻 구입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며칠전 모 미술대학의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 선배 화가들이 기증한 약 2호 크기의작품 200여점이 전시되는 행사가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열렸다. 모든 작품이 40만원 균일가에 판매되었으며 선착순에 따라 작품을 고르면주인이 되는 이 ‘게임’은 무척 흥미진진했다.화랑문이 열리자 마자 달려들어 유명작가 순으로 싹쓸이를 해 한시간만에 거의 모든 작품들에 팔렸다는표시의 빨간 스티커가 붙었다. 좋은 기획의도와 ‘가격파괴 전시’가 어우러진 이번 전시회는 그림을 좋아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림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미술애호가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불황에 빠진 화랑가로 미술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호당가격제,지명도에 의존해 유지되는 현재의 미술품 가격형성 구조를 화랑 스스로 탈피해 나가고자 하는 의욕도 주목된다. 그러나 미술품이 백화점의 반짝세일 마냥 팔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객들의 선호 작품이란 것이 자신의 미적 취향 보다 지명도와 투자가치에 의존한 면도 아쉽다.하지만 화랑들이 미술품을 사고 싶다는 본능적 욕망들을채워주지 못했던 그간의 사정을 새삼 돌이켜 보게 만든 전시행사였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 中國거주 위안부할머니 위한 ‘동병상련’ 모금

    일본군대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중국에 사는 같은 처지의 할머니 2명의귀향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원장 慧眞 스님)에서 지내는 할머니 7명은 5일 서울 인사동의 전통찻집 ‘살마시 오소라’에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순우(孫吳)현과 둥닝(東寧)현에 사는 文明今(82)池돌이 할머니(75)의 귀향비용 마련 행사를 열었다.행사는 7일까지 계속된다. 文할머니는 18살 때 끌려가 10년 동안 일본군 막사에서 갖은 고생을 겪었다.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았고 중국의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다. 池할머니는 군 위안소가 있던 마을 근처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훈할머니처럼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文할머니는 몇년 전 나눔의 집과 한국정신대연구소에 의해 생존사실이 확인됐다.지난해에는 중국에서 63년 만에 동생들을 만났다.“죽기 전에 고국 땅을 밝고 싶다”는 것이 文할머니의 바람이다.하지만 동생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초청할 수 없었다. 딱한 사연을 전해들은 慧眞스님은 중국대사관과 외교통상부 등을 뛰어다닌끝에 중국 정부의 출국허가를 얻었다.池할머니는 출국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02)734-4388.金榮中 jeunesse@
  • 굄돌-광주비엔날레 유감

    1월의 한가로운 인사동 화랑가에 이색적인 전시가 열렸다.21세기 화랑에서열린 ‘항의 엽서전’이 그것이다.작가들이 항의의 뜻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엽서들이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웠다.도대체 미술인들이 이 추운겨울날 무엇 때문에 모이고 무엇을 항의한 것일까. 다름아니라 광주비엔날레를 둘러싼 최근의 상황을 풍자,항의한 것들이다.얼마전 광주비엔날레는 전시총감독으로 위촉된 최민씨를 전격 해임하고 새 총감독을 임명했다.많은 전시 관계자들도 사퇴하였다.그로 인한 파장이 만만치 않다.문민정부들어 급조된 광주비엔날레는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광주시와공무원들이 예산권과 인사권을 쥐고 놓지 않으면서 전시를 치루려니 미술인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밥그릇과 관련된 일이라 그렇다. 전시를 기획하고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전시기획자(전시총감독)에게 있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어 이의 시정을 요구한 최민씨가 밉보일 만도 했다.칼자루는공무원들이 쥐고 있었다.또 광주에서 열리니 광주인들이 주가 되어야 한다면 더욱 할 말이 없다. 우리 나라 문화행정은 이렇듯 문화예술인들과는 거리가 먼 행정관료들의 권위주의적 자세와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왔다.지역주의에서도 벗어나지못했다. 공무원 중심의 방만한 운영구조를 개선하고자 한 이를 내쫓고 고분고분한이를 맞아들인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그떡,밥그릇에 파리떼처럼 몰려드는 미술인들이 있기에 전시를 치룰 자신과 여유를 가질 것이다.매사가 다 그렇다.결국 우리 미술인들의 후진적 의식이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관료적 문화행정의 폐해를 말하기 전에 우리 미술인들의 의식부터가 문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 ‘99분야별 서울 시정(10회)-문화·관광

    서울시가 올해 추진할 문화관광정책의 핵심은 ‘새 1000년,서울 르네상스 21’이라는 말로 요약된다.서울의 독창성과 상징성을 살린 소프트웨어 중심의 문화인프라를 확장하고 문화·체육·관광·산업을 접목한 고부가가치의 문화관광산업을 육성,2002년 월드컵을 문화월드컵으로 치를 계획이다.●서울다운 문화이미지 개발 올해중 고궁길·왕궁길 등 왕궁탐방로를 시범운용하고 4대문 안을 순환하는 시티투어를 선보인다.2002년까지 왕궁탐방로 외에 가회동·인사동,대학로,덕수궁·경희궁,숭례문·명동 등 4개 지구를 연결하는 6개의 역사·문화 탐방로를 조성한다.●생활속의 문화진흥 3월부터 11월 사이에 거리·공원·광장에서 소규모 문화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한다.2001년 개통을 목표로 중앙정부와 자치구 및 983개 문예기관을 연결하는 문화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민의 다양한 문화욕구에 1대1로 대응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 라이브러리를 개설한다.1자치구당 1개씩의 지역문화원과 지역정보화도서관 건립을 지원한다.●생활·전문체육 활성화 3월부터문화월드컵준비 기획위원회를 운영하고 시에 문화월드컵 기획단을 설치한다.행정력만으로 대처하기 힘든 홍보·질서·환경·교통·문화관광·민박·문화이벤트 등 7개 분야에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새서울 자원봉사 2002’를 추진한다.●전통문화 계승 발전 남산골 한옥마을의 전통한옥 5개 동별로 프로그램을특화해 ‘한국의 소리와 춤’마당을 운영한다.2억4,600만원의 예산을 들여시민편의시설과 전통정원 등을 보완한다.2002년까지 13개 사립박물관 설립을 목표로 지원계획을 마련하고,시립박물관에의 민간 소장품 기증·기탁을 활성화해 2001년까지 1,000여점의 전시유물을 수집한다.조선조 고종 이전의 옛 한양 모습을 복원하는 ‘영상으로 보는 한양촌’ 재현사업을 추진한다.2001년까지 자연사·원시생활전시관을 5개로 늘리고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을 현재의 70개에서 125개로 확대한다.●관광경쟁력 강화 서울의 각종 관광자원에 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서울관광정보망을 구축한다.숭례문·명동·남대문시장·북창동·소공동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육성한다.50곳의 지하철 역사에 관광안내소를 추가로 설치,현재 17개의 안내소를 67개로 늘린다.국내 체류 외국인으로 자문단을구성,‘외국인이 뽑은 서울관광 30선’을 선정해 관광명소로 개발한다.2000년 1월부터 운영될 셔틀형 시티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金宰淳
  • ‘무자본 무공해’ 관광산업(3회)

    관광산업은 21세기의 핵심 서비스산업이자 문화산업,정보통신서비스업과 함께 성장전망이 밝은 지식기반 산업이다.지난해 우리나라 관광업계는 사상 처음으로 425만여 명의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그러나 우리나라는 관광객들에게 덤핑판매를 하는 등 여전히 질보다는 양의 확대에 치중,관광산업의 부가가치가 낮다.외형 불리기에 급급하기보다 품격 높고 실속 있는 선진국형 관광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관광의 부가가치 제고가 시급한 실정이다.●친절과 청결 일본인들의 친절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미소띤 얼굴로 ‘하이’하며 길을 안내해준다.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은 화장실을 깨끗이 하고 관광도로를 정비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스페인은 이후 도로 정비 및 화장실 개선에 힘써 관광대국이 됐다.96년에는 관광부문에서 28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무역에서의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았다. 친절과 서비스,청결은 돈없이도 쌓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자 관광산업의기본덕목이다.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관광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회의산업에 눈을 돌려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24만㎡의 대형 실내 전시장이 있다.주차장 등 부대시설까지 포함하면 40만㎡에 이른다.이 곳에서는도서 전시회,자동차 전시회,음악 전시회 등 각종 국제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메세(전시회)’가 열리면 시내 호텔이 모두 차는 것은 물론 인근 중소도시의 숙박시설도 동이 난다.100달러이던 호텔 하루 숙박료는 150∼200달러로 올라간다.그나마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식당,택시 등도 덩달아특수를 누린다. 회의산업은 부가가치가 높다.외래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평균 1,491달러를 쓰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3,285달러를 지출한다.2.2배 많은 것이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 대한 소득창출,세수증대,고용창출 등의 간접효과도 가져온다.●문화와 접목된 관광상품 미국 뉴욕시는 브로드웨이 연극공연을 통해 연간2조7,000억원의 수입을 올린다.뉴욕시 관광수입의 23%다.이탈리아 라 스칼라좌의 오페라,소련 볼쇼이 발레단의 발레도 유명한 문화상품이다.‘쌍동이표칼‘을세계에 수출하는 독일인들은 일본에 가면 일제 사시미용 회칼을 찾는다.회칼이 수십년 동안 요리수련을 거쳐 도(道)를 얻은 주방장만이 잡을수있는 신성한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일본이 일식을 세계에 전파하면서 전통음식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 결과다.‘사시미’(회)와 ‘스시’(초밥)는 서양에서도 고급 음식으로 인식된다. 우리에게도 문화상품은 무궁무진하다.팔만대장경,탈춤,판소리,사물놀이,태권도,김치,씨름,한복,한지 등 헤아릴 수 없다.인사동 거리에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전설을 만들어라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분수에 가면 동전이 수북하다.동전을 구멍 안에 넣으면 행운을 가져온다는 전설 때문이다.독일 라인강변의 로렐라이언덕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이다.그러나 프랑크푸르트를 찾는 관광객은 한번쯤 들르게 마련이다.선원들이 요녀(妖女) 로렐라이의노래를 듣다 강에 빠져죽었다는 전설 때문이다.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가 된 것도 입소문이 났기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폭포 절벽에 새겼다고 하는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중국 후한서와 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徐市,서복이라고도 함)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소년·소녀 500명과 함께 서귀포에 도착했다고 한다.정방폭포 근처에 전설을 기념하는 기념비석을 세우거나 영지버섯 등 건강식품을 불로초 대체 상품으로 개발하면 중국인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밤문화를 만들어라 캉캉춤과 뮤지컬로 이어지는 프랑스 파리의 리도쇼.화려한 무대와 볼거리로 파리의 밤을 외롭지 않게 하는 나이트 라이프다.에펠탑은 낮에 보면 그저 고철 덩어리이지만 밤이 되면 독특한 간접조명시설로멋진 야경이 연출된다.개선문의 야경도 놓칠 수 없다.낭만이 가득한 세느강의 야간 유람선도 밤을 풍성하게 한다.이러한 밤 상품은 500프랑∼1,000프랑을 호가한다.반면 낮에 둘러보는 루부르박물관은 입장료가 50프랑을 밑돈다. 점심시간에 세종문화회관 빈터에서 열리곤 하는 음악회가 밤에 열린다면 서울의 밤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관광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일본 가가와현은 쫄깃쫄깃한 우동으로유명한 고장이다.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우동학교에서 우동만드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만든 우동을 시식한다.모두들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한다.괌에서는 민속마을 관람이 끝나면 현지 안내원이 관광객들에게 민속모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민속춤 경연대회도 벌인다.춤을 멋지게 춘 관광객에게는 민속모자를 선물로 준다.관광객은 민속춤을 익히고 현지인은 외국인에게 괌의민속춤을 알리는 등 누이좋고 매부좋고다. 관광객은 단순히 구경만 하는 피동적인 객체이기를 싫어 한다.한복 입어보기,널뛰기 등 관광객이 직접 체험하게 하라.그러면 재미는 배가된다.●살거리,먹거리를 만들어라 IMF가 터지지 전 영국 런던의 버버리매장에는한국인 점원이 배치돼 있었다.한국 관광객이 앞다투어 값비싼 의류를 구입했기 때문이다.프랑스 파리의 면세점도 랑콤,샤넬 넘버5 등 유명 화장품을 사려는 한국인들로 북적됐다.유사품이 아닌 진품을 살 수 있는데다 시세차익을 올릴수 있기 때문이다.스위스에 가면 대부분의 관광객이 선물용으로 등산용 칼을 산다.쇼핑은 관광객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남대문시장과 이태원상가의 활기찬 거래 행위는 그 자체가 관광상품이다.여기에 값싼 상품 또는 독특한 기념품이 있다면 금상첨화다.●눈높이를 관광객에게 맞추어라 자금성,만리장성을 자랑하는 중국인에게 경복궁,비원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그러나 이들에게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수원 삼성전자 단지 견학은 훌륭한 관광상품이다.롯데월드,에버랜드 등 대형 위락시설도 이들의 눈길을 끈다.반면 유럽인들에게 서울 시내 고궁관람은호기심의 대상이다. 동남아인들이 한국의 겨울스키,가을단풍에 매료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도움말 주신 분] 대전대 邊在眞 교수,홍콩 관광청 柳桓圭 대표,수안보 산그림 호텔 李鍾完사장,한국 관광공사 朴春圭 홍보실장,문화관광부 林炳秀 관광국장.
  • 중견 박용인씨 작품전

    시적 이미지의 조형과 뛰어난 색채감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중견작가 박용인씨의 작품전이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린다. 그의 그림은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구상화의 한계를 극복,신선한 감각의 또 다른 구상세계를 보여준다.원색적이면서도 결코 원색이 아닌,화려한 색의 배치와 구성의 단순성,서구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성이 넘쳐난다. 소재에서 사실적 이미지를 추출해내기보다는 추상적 이미지의 조형언어를 창출해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비시각적 카타르시스가 내재돼 있다는 평을 듣는다. 대담한 단색조의 면처리와 표현의 생략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에서 관객들은 지적 분위기와 함께 구상화이면서도 비구상화의 맛을 느낄수 있을듯.정물화과 서구적인 풍경을 담은 30여점이 전시된다.
  • IMF 한파로 ‘꽁꽁’/국내 미술시장 ‘봄은 언제 오려나’

    ◎수요급감으로 마비상태 전업작가들 생계걱정까지/주요화랑가 퇴락현상 기업 지원도 갈수록 줄어 국내 미술시장이 혹독한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80년대말 부동산시장의 활황과 더불어 호경기를 맞았던 미술시장은 90년 말을 부터 서서히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으나 IMF이후의 불황은 유례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부르는게 값이던 유명·작고·원로작가들의 작품을 포함,대부분의 미술품 가격이 IMF이전에 비해 많게는 50%까지 내렸으나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예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이처럼 미술품 수요가 급감하자 미술시장이 마비 상태를 보여 특히 전업작가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대학교수를 겸직하는 작가와 달리 전업작가들은 작품판매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환율상승도 작품활동을 어렵게 만든다.오일 등 대부분의 미술재료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재료비는 지난 연말에 비해 40%까지 올랐다. 한국화랑협회 권상능 회장(조선화랑 대표)은 “화랑 경력 30년에 이런 극심한 불황은 처음”이라며 “대부분의 화랑이 일손을 놓고 있는데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이같은 불황은 미술 지형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미술의 거리’ 인사동에 버금갈 만큼 80년대 주요 화랑가로 급부상한 서울 강남지역이 퇴락하는 양상을 보인다.청담동의 박영덕화랑만이 꾸준히 전시회를 열뿐 이일대의 전시활동을 주도한 주요 화랑들이 개점휴업 상태이다. 인사동 화랑들도 마찬가지다.10년 전통의 화랑 사계가 카페로 영업형태를 바꿨고 샘터화랑,갤러리 현대,가나화랑 국제화랑 등도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고 있다.또 젊은 작가 발굴에 주력해온 갤러리2000도 간판을 내렸으며 동아건설이 지원해온 동아갤러리도 곧 미술사업에서 손을 뗄 것으로 전해졌다.벽산그룹의 갤러리 아트빔도 올해초 폐관했다. 이에 따라 미술품 가격도 심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 홍석창씨 13년만의 개인전/심상이 농축된 수묵의 비경

    중진 한국화가 홍석창씨(홍익대 교수)개인전이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린다. 10여년만에 갖는 전시회에서 홍씨는 거침없는 표현과 과감한 생략,그리고 밀도 있는 추상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홍씨는 우리나라 현대수묵화운동의 주역으로 젊은시절 홍익대와 대만 중국문화대를 거치면서 갈고닦은 수묵 및 채묵화의 기량이 탁월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4년 중국·독일에서 개인전을 가져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격정적이면서도 천진난만한 풍격을 지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 특히 색채가 풍부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작업은 섬세하면서도 재기가 넘치는데다 스케일이 크고 강한 화면,기운이 생동하는 운필과 내면의 심상이 농축된 수묵의 비경이 일품이다.
  • 박은선씨 ‘존재와 공간전’

    이탈리아에서 8년동안 수학하다가 돌아온 젊은 여성작가 박은선씨가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종로 인사동 가나아트 스페이스(02­734­1020)에서 귀국전을 갖는다.이번 전시회에서 박씨는 ‘존재와 공간’이라는 철학적 명제로 2차원적 평면에 공간을 담아낸 설치와 평면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거울을 이용한 설치작업에서 그는 평면에 나타나는 공간이 내부 구조나 내용에 상관없이 어떻게 비쳐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그는 이를 통해 평면에 비쳐진 공간이 허구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감상자는 그림의 프레임안에 실제공간이 담겼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화면 바깥까지 뻗쳐있는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담아낸 화면이 실은 2차원적 평면에 허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 공주 민속극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2)

    ◎“잡귀야 물렀거라 신명난다 인간사”/탈·인형극에 담은 선조들 희로애락/각종 탈·인형 유물 3,000점 전시/짚 방상씨탈 등 희귀자료 가득/전통악기·외국민속탈도 눈길 충남 공주시내에서 연기군 전의면쪽으로 차를 몰아 20분쯤 달리면 의당면 청룡리라는 한적한 마을에 닿는다. 마을로 들어서면 소나무 숲으로 된 이색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깨끗하게 잘 가꾼 공원 분위기가 더한 아담한 문화공간.바로 공주민속극박물관(관장 沈雨晟)이다. 마을의 옛 지명 ‘돌마루’ 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 왼쪽의 자그마한 원두막을 지나면 안쪽에서 농기구자료관과 민속극자료관을 차례로 만난다. 곳곳의 석물(石物)들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 포근히 안겨 민속공원 분위기를 살려준다. 소나무 숲길이 끝날 무렵 주 전시관인 민속극자료관이 나타난다. 자료관 앞 50평 크기의 잔디 놀이마당이 깔끔하다. 놀이마당에서 한차례 탈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으로 160평 규모의 2층 전시장에 오르면 온갖 탈이며 인형들의 표정이 정겹다. 우리 민속극은 인형놀이와 탈놀이·놀이굿을 모두 포함한다. 옛 사람들은 민속극으로 삶의 애환과 갈등을 풀어내면서 생활의 활기를 되찾는 멋을 지녔다. 따라서 옛 탈과 인형은 민초들의 정서를 관통하는 그 무엇을 담고 있다. 공주민속극박물관은 이 민속극에 쓰이는 각종 탈과 인형 악기 옷 등 대소도구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민속극계의 전문가인 沈雨晟씨가 사재를 털어 3,000평 규모의 선산에 세운 공간. 민속극박물관으론 국내 유일하다. 1966년 인사동에서 창립된 한국민속극연구소에서 시작,박물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인형놀이·탈놀이·놀이굿에 쓰이는 관련 유물이 3,000점.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서산박첨지놀이 등 전통 인형극 관련 자료만도 200여점이 들어 있다. 네 면의 벽에 그림자극 인형들이 매달렸고 그 아래 탈춤에 쓰이는 각종 탈들의 모습이 정겹다. 그림자극 만석중놀이의 만석중이 우뚝 서있어 인형에 매달린 끈을 잡아당길 때마다 가슴을 탁탁 치는게 퉁명스럽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각양각색의 탈. 양주별산대부터 하회별신굿,통녕오광대,봉산탈춤 등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수영·동래들놀음,강령·은율·봉산탈춤,남사당놀이 덧뵈기,처용무,하회별신굿,꼭두각시놀음,통영·고성·기산오광대,강릉관노탈·송파산대·만석중놀이의 등장인물들이 금방이라도 살아날듯 생생한 표정을 머금고 있다. 짚으로 만든 탈들은 박물관의 자랑거리. 방상씨(方相氏)탈,열두띠(十二支)탈,만석중놀이에 쓰인 그림자인형들은 모두 이곳에만 있는 것이다. 짚 방상씨탈은 남사당패 출신인 朴龍泰씨의 고증을 거쳐 재현됐다. 1930년대까지도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방상씨 탈은 장례행렬 앞에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했던 것. 궁중에선 나무,양반들은 종이를 썼던데 비해 서민들은 주로 짚을 썼다고 한다. 인형극에 쓰이는 각종 인형들도 만만치 않고 그림자 인형들이 벽면 윗부분을 빙둘러 장식해 그림자극을 벌이는 것만 같다. 전시품중엔 독지가들의 기증품이 상당수. 沈관장과 뜻을 같이해온 민속극·국악계 인사들의 정이 담긴 것들이다. 국악인 朴範薰 崔태현 李輔亨 金素熙씨의 이름이 눈에 띈다. 서울국악예고가 갖다놓은 장구·북과 李相薰 화백이 기증한 金得洙씨의 북,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기증한 갖가지 판소리북·퉁소·단소들이 훈훈한 정을 더한다. 우리 탈과 인형들의 중간중간엔 외국 민속탈이 드문드문 끼어들어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미얀마 수문(守門)탈,뉴기니아 구나면(驅儺面),일본의 무악면(舞樂面),인도네시아·베트남 민속탈,브라질의 기우제 탈,중국의 면구(面具)…. 우리 것과는 생김새가 사뭇 다르지만 탈에 담긴 표정과 분위기는 우리 민초들의 희노애락에서 그리 멀지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민속극자료관을 둘러본뒤 내리막길을 따라 입구 쪽으로 걷다보면 농기구자료관이 기다리고 있다. 沈관장의 연구실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가볍게 둘러볼만한 공간. 학교 교재엔 들어 있지만 사라진 옛 농기구들을 만날 수 있다. 충남 일원에서 쓰였던 재래 농기구와 생활집기 200여점을 모아놓아 인근 학생들의 견학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沈관장은 박물관의 기능이 단순히 옛 물건들을 보여줌에 그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전시품을 매개로 우리민속을 재현,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청소년 어울마당’을 마련,청소년들에게 우리가락·춤·민속이야기를 가르치고 있다. 또 음력 3월15일을 전후해 지내는 계룡산 산신제와 9월 첫째주 금·토·일요일 3일간 개최되는 ‘아시아 1인극제’도 모두 沈관장의 욕심이 일군 알찬 행사들이다. ◎이렇게 가세요 인근에 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공산성,계룡산 갑사,마곡사 등 유적지와 명사찰들이 있어 이 곳들과 연계해 가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민속극 관련 전시자료를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토·일요일엔 직접 강좌에 참가해 이론교육과 실기를 체험해볼 수도 있어 교육적 가치가 큰 박물관이기도 하다. 공주버스종합터미널에서 전의쪽으로 방향을 잡아 의당파출소 앞에서 우회전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종합터미널에서 노선버스 18번·20번이 운행되고 있고 승용차로 10분 거리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에는 1시간 정도가걸린다. 입장료는 어린이 600원,청소년·군인은 800원,일반은 1,000원. 단체의 경우 어린이는 400원,일반은 800원을 받고 있다. (0416)55­4933. ◎한마디/沈雨晟 박물관장/“우리 전통문화 재창출 구심점 됐으면…”/40년 외길 민속학자/단순한 전시공간 탈피/국제연극제 등 개최 희망 沈雨晟 관장(65)은 민속극계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민속학자. 40년간 이 분야에 천착해 살고 있으며 공주 민속극박물관은 그의 고집이 만들어놓은 옹골찬 문화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沈씨의 박물관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전국에서 유일한 민속극박물관이란 명칭에 비해 미흡한게 많습니다. 전시장이 작아 보여주지 못하는 소장품이 너무 많지요. 전시품을 매개로 우리 전통문화를 재창출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됐으면 합니다” 공주민속극박물관이 민속학자들은 물론 학술답사단까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있는 민속극의 보고로 성장했지만 더 많은 관람객들이 직접 찾아와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게 沈씨의 욕심이다. 전시에 그치지 않고 전시를 매개로한 문화행사나 국제연극제,학술세미나등을 수시로 열어 그야말로 민속극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겠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나마 만든 것도 쉽진 않았습니다. 연구과정에서 모은 자료들이 넘쳐나 친구와 친척들 신세도 많이 졌지요.” 지난 50년대말부터 민속극을 배우기 시작해 민속극 관련단체의 구심 역할을 해왔고 전국민속경연대회 심사위원을 해마다 맡아오고 있다. 전국 답사를 다니면서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 박물관 건립을 계획했고 부친과 자신의 사재 7억원의 비용을 들여 우뚝 세워 놓았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만도 전국에 15종이 되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우리 탈춤과 인형극을 보기란 쉽지 않지요. 차츰 잊혀져가는 이 민속극은 우리 조상들의 놀이와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유물이란 점에서 많이 찾아와 즐기기를 바랍니다”
  •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 이석주 개인전

    ◎북한강 새벽안개 화폭에 흐르고 들판과 숲,산 등 목가적 대상을 배경으로 잔상을 남기며 질주하는 기관차와 백마,낙엽 시계…등. 정교한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가 이석주씨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11월8일까지). 이번 전시회에는 ‘환(幻)’을 주제로 한 연작 등 2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중 2,000호 1점을 포함해 200호 이상 대작이 3점이나 된다. 경기도 양평군 대성리 북한강변 경치가 빼어난 작업실에서 1년여동안 그린 작품들이다. 70년대말 국내에 도입된 하이퍼 리얼리즘은 현대성을 담보할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로부터 호감을 받아 국내화단에서도 일정한 영역을 차지했다. 이씨는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흡수,서정성이 깃든 독자적인 극사실 형상의 경지를 이루어낸 작가. 문명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가득했던 이씨의 초기화면은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정성을 띠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같은 변화에 대해 “현대미술이 폭력 섹스 마약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서정성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서정성이 더욱 깊어졌다.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게 한 이번 작품들은 북한강변의 새벽안개를 머금은듯 뽀얗게 처리돼 한층 더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이씨는 홍익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아시아 비엔날레 금상과 국전 특선,91년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 북한 문화재 밀반입 법적 대응 최선인가

    ◎北 “외화벌이” 공공연히 도굴·반출/국내 반입 안되면 외국으로 유입/문화재 환수차원서 접근 필요 북한문화재는 고미술시장에서 ‘비밀’이랄 것도 없이 그동안 버젓이 유통돼왔다.서울 인사동 골동품상 치고 중국을 통해 북한 문화재에 손을 대지 않은 이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문화재는 최근 고미술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돼 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문화재 밀반입사건으로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 등 고미술관계자 다수가 구속된 후 국내 고미술계는 IMF이후 위축된 시장경기가 더욱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문화재는 국내 문화재급 고미술품이 거의 고갈되고 도자기 불화 등 한국 고미술품의 국내 가격이 국제 시세를 웃도는 상황을 보완해줄 수있어 크게 환영을 받아왔다.그러나 국내 상인들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격을 부추키고 위조품을 반입하는 등 부작용이 심했던 것도 사실.한 고미술상인은 “문화재적 가치있는 작품외에 엉성하고 조악한 위조품들이 들어와 시장을 혼탁하게 하기도 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반입은다소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미술품의 특수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가 않다.또다른 고미술상은 “북한이 외화벌이목적으로 문화재를 도굴,반출한다는 것은 이미 2∼3년전부터 공공연한 사실”이라면서 “국내로 들여오지 않으면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돼 그것을 다시 환수해오려면 지금보다 몇 배의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후소회 25번째 회원전/김기창·오용길씨 등 회원 41명 출품

    ◎이당미술상 수상 김지현씨 작품도 국내 미술단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후소회(後素會)’의 25번째 회원전이 서울 종로 인사동 갤러리 상(02­730­0030)에서 열린다(10월2일까지). 이번 전시에는 회장 운보 김기창화백을 비롯,오당 안동숙,우당 이길범,인봉 권기옥,유석 오용길,이성근 등 회원 41명의 작품과 함께 지난해 제정돼 올해로 2회를 맞은 이당미술상 수상작가 김지현씨의 작품도 전시된다. ‘후소회’는 지난 1936년 한국화단의 거봉 이당 김은호화백의 문하생들인 백윤문 김기창 장우석 한유동 조중현 등이 창립한 동문회로 근·현대미술사에 산 증인과도 같은 미술단체다.창립회원 모두 당대에 총망받던 젊은 화가들이었으며 이후 영입된 작가들도 모두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쟁쟁한 멤버들이었다.
  • 차없는 날/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차속에 앉아 있으면 차의 소통을 방해하는 보행자들이 거추장스럽게 마련이다. 보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자동차가 우선이고 보행자는 뒷전인것 같아 불쾌하기만 하다. 한길에서는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걷거나 멈추지만 골목길에서는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행인이 비켜 서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자동차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불편한가. 그러면서도 자동차 경적과 공해와 혼잡에 시달려 자동차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이 도시인들의 잠재적 소원일지도 모른다. 주말이나 일요일에 차없는 대학로나 인사동에 나가면 마음껏 자유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세계각국의 주요도시들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폭증하는 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과 매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파리를 비롯한 37개 도시에서 하룻동안 ‘자동차 없는 날’을 정해서 온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유모차를 끌고 롤러블레이드를 즐기는 등 보행자 천국으로 축제분위기를 누렸다는 것이다. 전국민의 12%인 500만명이 참여한 이 행사는 대기오염과 싸워 도시의 맑은공기를 되찾자는 것이 목적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대기오염 추방과 교통혼잡 완화를 위해 지난 91년부터 휴일과 토요일 오후 3시 이후, 평일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만 자동차를 사용하는 주말차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시는 도심대기 오염수치가 일정기준을 넘으면 아예 차량통행을 금지시키고 있다. 우리도 자동차 100만대였던 85년에는 서울의 경우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은 전체의 27.4%에 불과했다. 그러나 자동차 1,000만대 시대를 맞은 지난해는 80.6%로 급상승하고 있다. 8월말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1,040만여대. 서울에만 174만여대가 운행되고 있고 자동차 대기오염물질중 미세먼지와 질소화합물은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는 호흡기에 침투한뒤 축적돼 폐렴 등을 유발하고 하늘을 부옇게 만드는 시정장애 현상도 일으킨다. 배기가스 공해와 경적 소음,사고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차없는 거리를 차츰 넓히고 하루정도 ‘차없는 날’을 시도해보는 것도 환경의식을 깨우치는 다시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그리운 북녘산하 화폭 가득/한국화가 황창배씨 북한기행 작품전

    ◎단군릉·구월산·선죽교…/주민모습·생활상 까지 대형작품 40점 선보여 “흥분하기 위해,자극받기 위해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이번 북한여행만큼 흥분한 적은 없습니다” 24일부터 오는 10월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북한기행 작품전을 갖는 중견 한국화가 황창배씨. 지난해 12월 남한화가로서는 처음으로 12일동안 북한지역을 답사하며 풍경과 주민생활 모습 등을 현장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와 돌아와서 큰 화폭으로 옮겨 완성도를 높인 작품 등 40점을 선보이는 황씨는 아직도 그때 흥분에 젖어있다. 이번 전시회에 대한 기대도 크다.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지금까지 그가 가진 그 어떤 전시회보다 의미있는 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어찌 황씨 뿐이랴.우리국민 모두가 가보고 싶은 산하가 아닌가.하여 극진한 관심과 심혈을 기울인 자연사생(寫生)을 담은 이번 전시회는 특히 실향민들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향수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평양시내 풍경과 황해도 평안도지역의 명승지,자연풍경,체류중에 접촉한 북한주민들의 모습,생활상 등을 담았다.특히 안악고분,단군릉,대동강지역의 고구려 유적,구월산 정방산 박연폭포 을밀대 선죽교 등 해방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젠 거의 잊혀져 가는 산하의 모습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황씨는 기존 한국화의 틀을 깨는 파격과 변화를 추구하는 등 자유분방하면서도 역동적인 그림세계를 구축해온 작가.그런 그가 이번 북한기행그림을 통해 오랫동안 묵혀왔던 묘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작가 스스로가 “오랜만에 사실작업을 하니 아카데믹한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그동안 구상작업보다는 추상표현 작업만 해왔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지난 91년 그동안 재직해오던 이화여대 교수직도 버리고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심심산골로 들어와 작업실을 짖고 혼자 생활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지난 89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뉴욕주 올버니 근처에 있는 아티스트 콜론 야도에서 3개월동안 작업만 할 때의 기억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괴산으로 내려오게 됐다고 한다. “야도에서 고립무원으로 혼자서 작업만 할 때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하도 생생해 다시 그런 느낌으로 창작작업에만 몰두하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는 것이다.그리고 벌써 7년이나 됐다.요즘은 경기대대학원 등 멀지 않은 지역의 대학으로 가끔 강의도 나간다. 황씨는 78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가.또 87년에는 부단한 실험과 독창적인 조형성으로 ‘선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월간미술 96년 6월호에서는 한국화부문 생존작가중 가장 비중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변화가 없이는 전시를 갖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이 9번째 개인전이다.
  • 국내 첫 가요사 박물관 선다

    ◎가요연구가 김점도씨 소장품 인천예총에 기증/SP·LP음반 11,600여장에 유랑극단시절의 포스터도/새달 17일 현판식후 본격준비/내년 6월이면 일반에 공개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사 박물관이 인천에 세워진다. 한평생을 가요관련 자료 수집에 바쳐온 가요연구가 김점도씨(金占道·63)가 기증한 소장품 1만여점을 토대로한 것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회(이하 예총인천지회·회장 李鮮周)부설로 오는 10월17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설립준비에 들어갈 이 박물관은 국내 미공개 자료들을 더 모아 명실상부한 우리 가요사의 최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가요계의 자료광’김씨가 내놓은 자료는 일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대중가요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SP(78회전)음반 1,600여장,LP음반 1만여장과 유랑극단 시절의 포스터 100여점 등 양적인 의미 외에도 미공개된 자료가 많아 가치가 더 크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보컬그룹 ‘연희전문 4중창단’사진이나,국내 여성보컬1호 ‘저고리시스터’,대정11년(1922)시대의 노래책 등은국내에서 처음 빛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시는 내년 6월이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집에서 예총인천지회로 옮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는 김씨의 ‘30년 정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선 10월의 현판식 및 축하공연을 통해 공식출범한뒤 전국에 있는 미공개 자료들을 보태서 내년 상반기내에 100평 규모의 인천문화회관(인천시 숭의4동) 1,2전시실에 상설전시관을 개설할 계획이다. 박물관 건립의 공신은 김점도씨와 예총인천지회장 이선주씨. 이선주 회장은 “우선 가요사박물관을 세운뒤 사진,문학박물관 등을 차례로 세워 예술박물관을 건립하는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힌뒤 “벌써 소문이 나기 시작해 개인 소장가들이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혀와 작업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총인천지회 차원에서 추진한뒤 인천광역시나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가요 전통에 비추어 볼때 번듯한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 대중가요가‘천덕꾸러기’였음을 반증한다. ◎가요관련 자료 기증 김점도씨/“30년간 돈만 생기면 자료찾아 전국 헤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국내 최초의 가요사박물관 설립을 눈앞에 둔 김점도씨(관장 위촉·KBS­TV ‘가요무대’ 자문위원)의 얼굴엔 지난 30년간의 ‘대중가요 짝사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67년 밴드마스터로 활약할때 전주나 간주가 없는 악보가 이상해 원래의 음반이나 악보를 모으면서 시작한 외길인생이 벌써 30여년. 돈만 생기면 서울 인사동이나 전국 곳곳을 헤매면서 고귀한 자료를 찾아다녔다. “언젠가 인사동 고서점에서 SP음반 몇개를 발견하고는 주머니를 뒤져 샀는데 인천에 돌아올 차비가 없는거예요. 할수없이 주인에게 1,000원을 빌리기도 했지요”. 김씨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가요사는 상처투성이다. 특히 월북이나 피랍된 사람의 작품인 경우 이름이나 가사를 고쳐서 유통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쓰로 있다는 것이다. “가요‘알뜰한 당신’은 어부풍 작사·전수린 작곡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월북한 조명암씨가 작사한 것”이라며 당시 나온 ‘빅터 레코드’의 종이자켓을 보여준다. ‘선창’이나 ‘번지없는 주막’도 비슷한 사연이라고 덧붙인다. 이번 박물관 건립이 가요사를 새로 쓰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소장자나 유족들에게 달라고 하면 잘 주지않아 어려웠던 점이 이번 박물관 설립으로 수월해질 것”이라고 소박한 의미를 부여했다. 꾀가 많은 사람은 못할,실속도 없는 일에 매달리느라 살림은 부인이 도맡다시피 했고 “남은건 600만원 빚뿐”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흠뻑 배인 김씨의 굽은 어깨 너머로 곰팡내나는 ‘김씨의 분신’들이 고맙다는듯 빽빽이 어깨겯고 있었다.
  • 가수 정태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9)

    ◎‘규제’ 뛰어넘은 노래하는 음유시인/진솔­고단한 민중의 삶 대변/78년 첫음반부터 시련의 길/기득권 비리에 ‘민주대열’로 ‘가요 사전심의’ 정면대결/마침내 위헌판결 승리가 지난 96년 6월 어느 날 서울대 문화관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결정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출연한 가수 20여명이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특히 90년도부터 공연윤리위원회(공륜)와 정면대결을 벌이며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가수 鄭泰春씨(44)의 감흥은 남달랐다. 78년 ‘시인의 마을’‘촛불’로 데뷔한뒤 인기를 끌었던 鄭씨는 시골 아저씨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가수겸 작곡가. 그러면서도 시적인 언어구사와 현실에 대한 직설적 묘사로 왜곡된 대중문화의 모습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게 특징이다. 절실한 삶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온 만큼 ‘노래하는 음유시인’‘운동권 가수’ 등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도 다양하다. 지난 4월 제9집 ‘정동진’을 낼 때까지 어느 것 하나 평탄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외로운 투쟁 끝에얻어낸 가요 사전심의 철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90년과 93년 두차례에 걸친 사전심의 거부 운동은 공륜을 상대로한 전쟁이었고 이 과정에서 음악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다. 90년 사전심의 거부 운동은 사실상 하루아침에 불거진 것이 아니다. 두차례나 비합법 음반을 내고 사전심의 거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첫 음반을 낼 때부터 쌓였던 불만의 결과였던 것이다. 78년 낸 첫 음반에 대한 공륜의 심의보류 조치는 그 단초다. 음반자체가 통째로 심의보류에 걸렸다. 노래 ‘시인의 마을’중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라는 대목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을 받았다. 이미 발표된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는 핑계였다. 시 확인이 안되자 ‘전면개작지시’로 돌아섰다. 사실상의 심의 탈락이었다. 결국 레코드 사장이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로 바꿔 심의에 통과할 수 있었다. 鄭씨는 문제의 음반에 실린 노래 ‘촛불’로 그 이듬해 문화방송 10대가수상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88년 합법음반 6집 ‘무진 새노래’를 낼 때까지 전면개작지시를 받은 것이 10곡,부분개작 지시를 받은 것은 20여곡이나 된다. 음반을 낼 때마다 공륜과 끊임없는 실랑이를 벌였다. 심의에서 본래의 의도가 거듭 좌절되면서 방송에서도 멀어졌고 차츰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85년부터 부인 朴恩玉씨와 함께 ‘鄭泰春 朴恩玉의 얘기 노래마당’이란 타이틀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운동권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은 87년부터. “당시 청계피복노조 젊은 노조원들과 어울리면서 좀더 실천적인 활동을 찾았지요”. 87년부터 시작한 현장운동은 6·29이후 운동권 진영으로 치달았고 89년엔 전교조 지원을 위한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를 갖고 전국을 순회해 20만명 이상을 만났다. 이미 대중가수의 이미지는 멀어져 있었다. “물론 내가 직접 선곡해 수록한 2집음반과 국악풍의 노래만 실은 3집 음반의 반응이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격변기 민주화운동의 거센 물결속에서 내가 거들 수 있는 몫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리고 90년 마침내 정면대결로 들어간다. 사전심의 철폐운동이 그것이다. 당국의 사전심의에 통과되지 못한 반민족·반민주 세력에 대항하는 노래들을 묶은 비합법 테이프 ‘아 대한민국’을 내고 심의거부와 판매에 들어갔다. “가요사상 첫 사전심의 거부였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정부의 간섭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89년 이후 해금의 분위기에서 큰 제재를 받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습니다” 93년 또 한차례 정면투쟁. ‘92년 장마,종로에서’라는 제목의 불법 테이프 발매가 그것이다. 이때는 90년과는 달랐다. 문화부 지시에 따라 각 시도 경찰서로 “鄭泰春 朴恩玉 음반을 회수하라”는 공문이 돌았다. KBS 지방홀과 서울 새마을체육관 등 공공성격이 짙은 곳에선 여지없이 판매저지가 있었고 제지가 들어왔다. “테이프를 팔면서 ‘창작표현의 자유만세’란 문구를 붉은 스탬프로 찍었는데 ‘왜 빨간색이냐’면서 파란색 스탬프로 다시 찍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93년 음반은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사회비판을 담았던 90년 음반에 비해 오히려 평이하고 서정성이 짙은데도 상황은 더욱 급박했습니다” 93년말 문화부의 고발이 있었고 그 이듬해 1월 ‘음반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서울지검 형사6부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그리고 세차례의 재판이 이어졌다. 鄭씨도 맞대응했다. 그해 3월 서울형사지법 담당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5월 위헌제청이 됐다. 그로부터 2년 1개월만인 96년 6월 마침내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지난해엔 부인 朴씨와 함께 그렇게 별러오던 첫 공식 콘서트를 ‘사랑하는 이에게’란 타이틀로 6개 도시에서 열수 있었다. ◎사연들/짙은 서정성의 ‘92년 장마,종로에서’/‘아 대한민국’보다 더 핍박/시의 좇는 제도 허점 드러내 78년 데뷔곡들로 성공한뒤 국악을 도입한 80년의 새 음반 2·3집에서 거푸 외면당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거듭된 심의싸움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던 중 예상외의 반응에 부닥쳤던 것이다. 결국 관객들과 직접 마주치고 싶어 85년부터 3년에 걸쳐 전국순회공연에 나섰다. ‘鄭泰春 朴恩玉의얘기노래마당’이 바로 그것이다. 제도권 음악에 대한 회의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나 할까. 93년 두번째 비합법 음반 ‘92년 장마,종로에서’를 낸 뒤엔 더욱 실의가 컸다. 불법 테이프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판매가 막힌데다 운동권 진영의 판매망이 거의 사라져 테이프 판매는 사실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기에 공륜과의 외로운 싸움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가요 사전심의에 대한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 계속 미루어진 채 결과에 대한 긍적적인 희망이 없었던 것이다. 90년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의 노래말들은 그래서 절절하기가 말할 수 없다. 기득권의 비리와 정부의 폭력성을 꼬집은 ‘아 대한민국’,87년 조선대생 李哲揆군 사망사건을 담은 ‘일어나라 열사여’,기성제도권 문화의 허위의식과 비열한 사치성을 꼬집은 ‘인사동’,지하 전셋방에서 화재로 질식사한 두 어린이의 죽음을 묘사한 ‘우리들의 죽음’ 등이 그것이다. 모두 구체적 현실에 대한 고민이 각인된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을 주는 것들이다. 오히려 93년 발표한 두번째 비합법 음반 ‘92년 장마,종로에서’는 90년의 ‘아 대한민국’ 보다는 훨씬 서정성이 짙은 편. 갓 시집온 새댁의 심정을 담은 ‘양단 몇마름’,소시민들의 메마른 모습을 관조한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늙은 농부의 모습을 통해 고향의 한가로운 모습을 담은 ‘저 들에 불을 놓아’ 등 언더그라운드 포크계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 첫 비합법 음반을 냈을 때 보다 93년 두번째 비합법 테이프에 대한 관계당국의 압박이 훨씬 컸던 것은 심의의 일관성 결여와 시의에 치우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길 ▲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72년 평택고등학교 졸업 ▲75년 군 입대 ▲78년 ‘촛불’‘시인의 마을’로 데뷔 ▲80년 박은옥씨와 결혼 ▲85년 ‘정태춘 박은옥’ 전국순회공연 ▲87년 문예운동 진영에서 활동 ▲89년 11개월에 걸쳐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순회공연 ▲90년 ‘아 대한민국’ 발표 ▲93년 ‘92년 장마,종로에서’ 발표 ▲96년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 ▲97년 5월 서울 정동 문화예술회관서 포크콘서트
  • 북 문화재 밀반입 단속 철저히(사설)

    국보급을 포함한 1백억원대의 북한문화재를 중국에서 밀반입,유통시킨 문화재 밀매 조직이 검찰에 적발됐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거액의 외화가 유출된데다 한국고미술협회 회장·부회장이 나란히 밀매조직의 일원으로 구속돼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북한 문화재도 우리 민족문화유산인 터에 밀매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관직원까지 한통속이 돼 저지른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에 대한 엄벌로 불법 문화재 유통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돌던 북한 문화재의 국내 대량유통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90년대 초부터 북한 골동품이 중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 오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고미술품 거래 중심가 인사동의 전체 고미술 거래량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주민의 도굴과 밀매로 시작된 북한 문화재 유출은 이제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 차원에서 묵인·조장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세계 문화유산 지정이 추진되는 고구려 고분벽화등 북한 박물관 소장품까지 국내에 밀반입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북한 당국의 무능과 무책임은 당연히 비난받을 일이다. 국내 수집가들의 책임도 크다. 그들의 무분별한 이기적 소유욕이 북한 문화재 도굴과 유출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대만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위한 애국심의 발로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강변이다. 도굴과정의 실수로 문화재가 파괴 될 수도 있고 비록 온전한 상태로 도굴된다 해도 문화재의 생명인 출토지와 출토상태를 알 수 없게 해 고미술사 연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굴을 조장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골동품 거래가 워낙 비밀리에 이루어져 매입자가 누군지 알아내기 어렵다지만 몇억대를 호가하는 국보급 문화재들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는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번에는 그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 고미술품 유통 질서의 개혁도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고미술협회가 가짜로 판정된 물건을 진품으로 둔갑시켜 유통시키도록 했다는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번 회장단은 물론 역대 회장 가운데도 문화재 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경우가 여러차례 있는 만큼 고미술계의 정화 작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북한 문화재 공동조사와 전문가 교류가 하루빨리 성사돼 더 이상 북한 문화재가 훼손되기 전에 정확한 실태파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 문화재 보호를 위해 유네스코등 국제기구의 힘을 빌리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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