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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주름잡는 ‘소림 브랜드’

    세계 주름잡는 ‘소림 브랜드’

    |소림사(중국 허난성) 이지운특파원|‘소림(少林) 쿵푸(功夫)’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중국 관련 상징물로 지구촌에 이만큼 널리 알려진 것도 많지 않다. 전통의 소림사가 이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들고 세계로 향하고 있다.‘소림 엔터프라이즈’의 ‘저우추취(走出去, 자본의 해외 진출)’인 셈이다. ●상표권 100개… 이미 ‘문어발’ 기업 지난 주말 찾은 허난성(河南省) 덩펑(登封)시 숭산(嵩山)에 위치한 소림사.1500여년 이어온 산사(山寺)의 기풍은,2000년대 들어 시작된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도 그다지 훼손됐음을 느끼지 못할 만큼 고즈넉했다. 하지만 내면의 소림사는 상전벽해(桑田碧海) 이상의 변화를 거듭하며, 이미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소림의 기업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식·음료 산업부터 영화·학원·여행 산업에 이르기까지 그 다각화 정도는 벌써 ‘문어발’ 수준이다. 소림사는 1998년 ‘소림사 사업발전주식회사(少林寺事業發展有限公司)’를 발족시킨다. 선차(禪茶) 등 소림사 불식(佛食)에 대한 상표 등록은 이전에 마쳤다. 소림사는 중국내 29종류에 100개 가까운 상표권을 갖고 있으며, 일반 기업에 대해서도 상호 사용권을 내주기 시작했다. 2004년 6월에는 ‘소림 약국(葯局)’ 명패를 내걸게 된다.“의약품의 대량 생산과 소비를 위해서는 반드시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성 의약감독국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 때 소림 약국은 700년 전통의 소림 의종(醫宗) 가운데 몇가지 비법을 공개, 선풍을 일으킨다.1989년 새로이 전열을 정비한 ‘소림 승단(僧團)’은 세계 각국을 순회했다. 서구에 쿵푸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마니아가 확산된 것도 이때부터다. 영화 분야는 보충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미 여러 편의 영화에,‘소림기전’이란 3차원 인터넷 게임까지 나왔다.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소림영화 주식회사’를 설립, 영화 산업과 스타 만들기에도 뛰어든다. 이쯤되면 한해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내는 입장료 수입은 따로 셈하기가 무색해진다. 또한 사찰 주변에는 80여개의 크고 작은 사설학원이 운영 중이다.5세부터 청·장년층에 이르기까지 5만여명의 수련생들이 거대한 학원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1년 수련비가 웬만한 대학 수업료보다 비싼 1만위안(130만원)을 넘어서지만 최대 규모인 ‘어포(鵝坡)무술학원’은 현재 수련생이 6500여명이나 된다. 여기에서는 유럽, 미국, 남미 등에서 날아온 무술 학도뿐 아니라 한국에서 온 초등학생 남매도 만날 수 있었다. 소림 권법(拳法)연구회, 소림 서화(書畵)연구회, 중화 선시(禪詩) 연구회 등도 각 영역에서의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상당한 재력을 갖춘 ‘소림사 자선복지기금’의 구제 사업은 사회적 반향이 크다.‘십자가’와 ‘만(卍)자’가 쉽게 연결되진 않지만 ‘소림 적십자회’까지 두고 있는 사실은, 사회 사업에 대한 적극성의 표시로 이해될 대목이다. ●소림 세계 쿵푸대회 6개국서 예선 ‘중국 쿵푸스타 세계 TV대회’(中國功夫之星全球電視大賽)는 소림의 세계화를 위한 본격적인 시동이다. 소림사와 선전(深 )위성텔레비전이 손잡고 이달부터 중국내 6개 도시와 이태리,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호주 등 해외 6개국에서 예선을 진행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무술 대회이지만 흔히 상상하게 마련인 ‘대결’은 없다.‘겨루지만 다투지 않는다.(爭而不鬪)’는 대회의 한 진행 방식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구미에 맞는 인물을 골라야 하는 속사정도 있기 때문이다. 대회 우승자는 TV드라마 ‘소림사 승병이야기(僧兵傳奇)’와 영화 신판 ‘소림사’에 바로 캐스팅될 예정이다. 리샤오룽(李小龍)-청룽(成龍)-리롄제(李連杰)를 잇는 차세대 쿵푸 스타를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다. 소림사 스융신(釋永信) 방장은 “무공(武功)과 무덕(武德), 기술(彩藝)이 심사 기준”이라면서도 “외모와 개성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소림사는 영화에 1억 5000만위안(190억여원)을 직접 투입했을 뿐 아니라 미국 등으로부터도 투자를 유치, 세계적 블록버스터 생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산문(山門)을 나서 중생(衆生) 속을 파고든 지 20여년. 소림 엔터프라이즈는 중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할 힘을 갖춰 가고 있다. jj@seoul.co.kr ■ CEO 스융신 “한국말 할줄 안다” |소림사(중국 허난성) 이지운특파원|소림 엔터프라이즈의 성장 중심에는 스융신이라는 강력한 CEO가 버티고 있다.80년대 후반 본격화한 각종 사업과 연구회 설립은 대부분 그가 주도한 것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10여명의 스님과 몇몇 노인이 몇마지기 땅을 부쳐가며 근근이 유지해온” 소림사를 오늘날의 ‘중견 기업’으로 키워 놓은 것이다. 그는 1981년 16세의 나이로 소림사로 출가했으며 6년 뒤인 87년 전국 최연소 사원주지(寺院住持)가 됐다.99년에는 전임자의 지명에 의해 34세의 나이로 방장(方丈)에 올랐다. 그는 사부였던 전임자에 대해 “문화혁명 기간 목숨을 걸고 탑림(塔林)을 지켜낸 공헌자”라고 평했다. 그는 일찍이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회사 설립도 소림사의 상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94년부터 인터넷을 산사로 끌어왔으며, 소림사의 세계화를 위해 스님들에 대한 어학 및 경영학석사(MBA) 교육, 해외 파견 등 그의 ‘업적’은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금도 소림 쿵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등 지칠 줄 모르는 활동력을 보여 주고 있다. 동시에 스융신 방장은 강한 비판과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나친 상업화로 불교를 세속화시킨다는 비난이 대표적이다. 특히 그가 2000년대 들어 정부의 힘을 빌려 대대적인 사찰 주변 정비 사업을 벌인 것은 지금껏 원성을 사고 있다. 근처 3만여평 일대의 가옥과 상점 1000여곳, 무술학교 40여곳을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거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정치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9기부터 현 10기 전인대 대표인 동시에 중국 불교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허난성 해외우호연맹 부회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일시적인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정치적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곤봉 든 13명의 승려가 당의 왕을 구한(十三棍僧救唐王)’ 역사를 모르느냐.”고 되물었다. 소림사가 수나라를 타도하고 뒤에 당 태종에 오른 이세민(李世民)을 도운 것 자체가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상업화 논쟁은 3가지로 해명했다. 우선 “소림의 전통은 스스로 생활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의 한 방편이란 설명이다. 둘째는 ‘보도중생(普渡衆生)’, 즉 “중생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서”다. 셋째는 불교의 전파를 위해서다. 그는 “소림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보호하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명함을 교환하며 한국 기자라고 밝히자,“나도 한국말(조선어)을 할 줄 안다. 한국에도 몇차례 다녀왔다.”며 반가워했다. 한국말은,“조선족 스님에게 배웠다.”고 했다. jj@seoul.co.kr ■ “불교 교리로 사회통합” 당서 배려 |소림사(중국 허난성) 이지운특파원|소림 엔터프라이즈의 비약적인 성장에 또하나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격상된 불교 대우다. 지난 달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국제불교포럼’이라는 종교 이벤트가 열리고, 불교대학 설립이 추진되는 등 불교에 대한 당의 배려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불교의 가르침이 4세대 지도부의 관심사와 여러 측면에서 맞아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팔영팔치(八榮八恥)’를 통한 도덕성 회복 운동이나, 계층·지역간 갈등을 극복하자는 ‘허시에(和諧·조화)’ 사회 건설 목표 등이 불교 교리에 의해 상승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예샤오원(葉小文) 국가종교사무국장이 국제불교포럼과 관련,“빠른 발전으로 생긴 자연과 사람간의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데 불교가 독특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 언론들도 부모와 국토 등의 은혜에 대한 보답 즉,‘보사중은(報四重恩)’을 강조하고 있는 불교가 애국심 고양, 도덕성 제고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발 나아가 중국 불교협회의 실세로 간주되는 스융신 부회장은 “중국 불교의 발전은 정부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선언, 당과 지도부를 안심시키고 있다. 한편 스융신 부회장은 ‘스님 중에 공산당원이 있느냐.’는 한 서양 기자의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면서 “한 사람도 없다.”고 답했다. jj@seoul.co.kr
  • [열린세상] 문혁 40년과 우리의 숙제/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난 지도 벌써 40년이 된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전국에서 문화혁명을 시작한다는 이른바 ‘5·16 통지’를 채택한 것이 1966년 5월16일의 일이었다. 이날 이후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문화혁명이 계속되는 동안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과 무질서와 파괴를 경험했고 이런 상황은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4인방이 타도될 때까지 사실상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문화혁명은 권력에 대한 마오의 욕심에서 시작됐다.60년대 초 대약진과 인민공사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중국은 류사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마오는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마오 자신의 말대로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를 고물상의 물건처럼 쳐다만 볼 뿐 만져보지도 않았다. 권력에 대한 집념이 유난했던 마오를 부추긴 것이 4인방의 극좌 세력이었고 그가 동원한 수단이 어린 홍위병들이었다. 마오가 내세운 명분은 실종된 사회주의 혁명의 구원이었지만 실상은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중국의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혁명의 완성이 아니라 부강한 국가의 건설이었지만 마오는 이를 외면했다. 뛰어난 혁명가였지 유능한 행정가는 아니었던 마오가 자신의 어설픈 이상을 앞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조리 때려 부쉈다. 파괴가 없이는 건설이 없다(不破不立)고 외쳤지만 건설은 없었고 오직 파괴만 있었다.10년의 공백은 10년의 파괴였다. 대외 관계에서도 자주 자립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됐다. 한 사람의 오도된 집념이 낳은 무서운 결과였다. 덩샤오핑의 업적은 개혁 개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대치하고 닫혔던 문호를 활짝 열어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서 중국이 경제대국의 반열에 진입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보다 더 큰 업적은 부서진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희생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문혁 기간 중 파괴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고 경제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인재들을 골고루 기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적 국제협력체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인치를 법치로 바꾸고 과거 정치 불안의 원인이었던 지도층의 교체를 제도화했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그의 책임은 언젠가는 역사적 평가를 받겠지만 덩샤오핑이 없었더라면 중국이 동구를 휩쓴 사회주의 몰락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강대국 중국의 부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의 성공적 부상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역과 계층 간의 불균형, 피폐해진 농촌의 재건, 에너지와 환경 문제, 공산당의 권력 독점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축적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는 중국의 꿈이 실현되기 어렵다. 이들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앞으로 10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중국은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미·중협력이 적어도 10년 동안은 유지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관리하고 유도하느냐 하는 것이 21세기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와 한반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서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중국을 한국의 미래 대안으로 보려는 인식을 다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바로 문화혁명 4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 할 수 있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버트 카파 지음

    전설적인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보도사진 에이전시 매그넘(MAGNUM)의 창시자인 로버트 카파.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조국 헝가리에서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돼 독일로 건너간 그는 사진을 배운 뒤 18년에 걸쳐 다섯 차례의 전쟁(스페인 내전, 중일전쟁,2차대전, 중동전쟁, 인도차이나전쟁)을 취재한다. 전장에서 병사보다 더 적진 가까이 다가가 촬영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1954년 41세의 나이로 인도차이나전을 취재하러 갔다가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아 폭사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을 일컫는 ‘카파이즘(Capaism)’이란 말까지 낳으며 그는 보도사진계의 신화가 된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필맥 펴냄, 원제 Slightly Out Of Focus)는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본명 엔드레 에르노 프라드만)의 2차대전 종군기다. 카파의 사진철학은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같은 철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바로 1936년 스페인내전 당시, 어느 병사보다도 더 적진에 바싹 다가가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다.“삶과 죽음의 확률이 반반이라면 나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길을 택하겠다.”고 한 카파. 전쟁사진의 백미로 꼽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을 비롯한 60여점의 사진이 카파이즘의 극치를 보여준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차 한 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강판권 지음, 지호 펴냄) 늘 푸른 키 작은 나무인 차나무는 특이하게도 비옥한 땅이 아닌 척박한 땅, 즉 자갈땅에서 가장 잘 자란다. 또한 햇볕을 좋아하면서도 반드시 그늘을 필요로 해 인삼밭처럼 햇볕을 가려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에는 예로부터 오동나무를 이용했다. 오동나무는 세상에서 잎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차나무와 오동나무는 찰떡궁합이다. 차나무의 꽃잎은 다섯 장. 흰빛을 띤 다섯 장의 꽃잎은 고(苦), 감(甘), 산(酸), 신(辛), 삽(澁) 등의 맛을 지닌다. 차나무를 통해 수천년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창의적으로 읽어낸 솜씨가 돋보이는 책.1만8000원. ●피타고라스가 보여주는 조화로운 세계(이광연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피타고라스에 관해선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행한 ‘동물과 대화하기’와 같은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사모스인들의 구전 속에선 아폴론의 아들로 신격화되기도 했다. 그리스 철학자 이암블리코스의 저작 ‘피타고라스 학파의 생활에 관하여’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유학하고 돌아 와 이탈리아 남부 타렌툼에서 ‘케노비테스’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지식을 전수하며 살았다고 한다.‘수’를 통해 피타고라스가 진정으로 무엇을 추구하고자 했는가를 살핀다.9000원. ●중국 근대화를 이끈 걸출한 인물들(이병주 엮음, 지식산업사 펴냄) 양무운동의 선구자이자 아편전쟁의 영웅인 임칙서에서부터 중국 개혁ㆍ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에 이르기까지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삶을 고찰. 청말 근대화의 지도자 이홍장, 변법유신 사상가 캉유웨이,5·4운동의 기수이자 중국공산당 창당의 주역인 진독수, 중국적 마르크스주의의 창도자 이대교, 남경 국민정부의 영수 장개석, 군국주의사상가 장병린, 여성해방과 반만(反滿)혁명운동의 열사 추근, 중화민국 창설자 쑨원, 쑨원의 부인이자 민주사회주의자였던 쑹칭링, 중국 무정부주의의 선구자 오치휘,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자 마오쩌둥 등이 주인공이다.3만원. ●바보예찬(에라스무스 지음, 문경자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16세기의 볼테르’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출신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선구자 에라스무스를 유럽의 스타작가로 만든 문제작. 총 6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화자인 ‘바보’가 등장해 세상에 불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열거하고 고대 그리스ㆍ로마문학과 철학의 고전, 성서를 인용해가며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자유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친구 토머스 모어에게 헌정한 책.1만원.
  • [서울의 문화재] (9) 구세군 본관

    [서울의 문화재] (9) 구세군 본관

    지난 5일 구세군 본관을 찾았다. 주소는 서울 중구 정동 1의 23. 지난 연말 종이 울리는 가운데 한 소년이 구세군 자선 냄비에 돈을 넣는 장면이 떠올랐다.‘구세군 자선활동을 하는 본부는 어떤 모습일까.’하는 설렘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본관을 대면한 첫 느낌은 유럽 배낭여행 때 본 건물 같다는 것.5m밖에 안 되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넝쿨이 뒤덮인 덕수궁 돌담길이 있다. 유럽식 건물과 한국 전통 담장이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문을 열자 구세군역사 박물관장인 김준철(67)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군복에 수염을 기른 그가 역사책에서 본 영국 신사와 비슷해 보여 살짝 미소를 지어 보았다.“건물안에 들어오니 영국에 있는 한 집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붙이자, 그는 “맞아요.80년 전쯤 영국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구세군 본관은 현관 앞에 4개 기둥이 있고 좌측과 중앙, 우측이 1대 2대 1의 비율로 나뉜 르네상스 양식이다. 근대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2년 3월 서울시 기념물 20호로 지정됐다. 덕수궁 주변엔 영국식 건물이 몇개 더 있다. 구세군 본관 뒤편엔 영국대사관이 있다. 대사관 옆엔 영국 성공회교회가, 교회로부터 20m이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인 영국 감리교회인 정동교회가 있다. 정동교회와 성공회교회는 모두 110년과 80년 전에 지어졌다. 영국에서 본 수백년 된 아름다운 건물이 생각났다. 영국에 다녀온 사람은 덕수궁 주변을 돌면 잠시 영국에 온 느낌이 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구세군은 자선단체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구세군은 기독교의 한 종파이다. 본래 구세군은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뜻이다. 종파가 군 조직으로 이뤄진 건 독특하다. 구세군에서 교주는 대장으로 불린다. 구세군 본관도 1928년 구세군 대장이었던 브람웰 부스의 방문 기념으로 지어졌다. 대장 아래 98개의 군국으로 이뤄졌다. 군국은 보통 국가와는 좀 다르다. 한국처럼 한 국가가 한 군국이 되기도 하지만 신자가 적으면 몇 나라가 합쳐 한 군국이 된다. 구세군은 군대 조직인 만큼 군국 책임자는 사령관, 신자는 병사로 불린다. 목사는 사관이고 이들은 계급에 맞는 계급장을 단다. 140년 된 구세군 역사를 살펴 보면 구세군 창립자는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다. 산업혁명 이후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자 부스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선교활동을 하며 사회사업을 한다. 빈민들은 그들을 구세군이라고 불렀고 교회가 구세군을 혹독하게 비판하자 부스는 독립해 구세군 교회를 세웠다. 그 뒤 구세군은 창립 취지에 따라 선교활동 못지않게 사회사업에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구세군의 한국에서의 사회복지사업 활약은 대단했다.1908년 한국에 들어온 구세군은 그동안 어두운 시절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들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일부 구세군이 인민군에게 처형을 당하는 억압 속에서도 사회사업을 멈추지 않았다.1960∼1970년대 연말에 불우한 이웃을 돕고 물난리 등 국가 재해 때 적극 복구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런 한국 구세군 역사는 구세군 본관 1층 구세군 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1930년대 초 구세군 냄비가 있다. 앞면엔 ‘남비’, 옆면엔 ‘냄비’라고 표기돼 있어 재미를 더 한다. 냄비가 바른 표기다. 또 한국 전쟁과 1960∼1970년대 불우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재해 복구작업을 하는 장면을 찍은 흑백사진들과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구세군 군복의 변형 과정과 최초 한국에 구세군을 전도한 허가두 정령의 책상과 의자도 있다. 박물관에서 나오면서 “경제 발전으로 한국에서 구세군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 아니냐.”고 묻자, 김 관장은 “건물이 커질수록 그림자도 커진다.”면서 “도시 곳곳에 빈민이 오히려 늘고 있어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비유는 양극화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이 구세군 마음이 널리 퍼져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아끼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올 광복절에 평양서 열릴듯

    노무현 대통령이 울란바토르발(發)로 던진 대북 메시지를 북한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문가들은 향후 우리 정부가 제시하는 ‘물건’의 내용에 따라 북한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서주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 수석이 8일 “김대중(DJ) 전 대통령 방북시 답방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듯, 일단 초점은 ‘답방’이다.2000년 6·15 때 한 약속이행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방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답방은 힘들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표현을 써왔다. 노 대통령이 방북할 경우 회담 장소는 ‘평양’이 될 개연성이 높다.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평양이 가장 무난하다.”면서 “만약 철도를 연결하는 이벤트가 마련된다면 김 위원장이 도라산역이나, 개성 등에 깜짝 출연하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15남북 행사 때 임동옥 통일전선부장이 현충원을 참배한 뒤 경주를 전격 방문한 것이 김 위원장 답방을 위한 사전 답사였다는 해석도 있다. 김 교수는 “통일지도자 이미지로 북측 인민들에게 각인된 김정일 위원장으로선 하기 힘든 모험”이라고 분석했다. 남측 시민들이 ‘통일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을 열렬히 환영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회담의 시기도 DJ가 6월에 방북할 계획이고 7월엔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르면 8·15 때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높다.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광복절’은 괜찮은 택일이다. 그러나 지난 4월 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8·15 행사 때 남북 정부 대표간 교환방문에 합의했다. 따라서 8·15때 정부 대표단이 방북, 사전 조율을 한뒤 더 큰 ‘성과’를 담은 정상회담을 만들기 위해 가을 적절한 시점을 택할 수도 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2000원 때문에…” 200만원 물어주게 된 사연

    “겨우 15 위안(元·2000원) 받으려다가 무려 1000배나 많은 1만 5000 위안(200만원)의 배상금을 물게 생겼네.” 중국 대륙에 통행료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급차를 통과시키지 않아 구급 환자가 사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 위시(玉溪)시 중급인민법원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준비하지 못한 구급차가 요금을 내지 않자 이를 통과시키지 않아,결국 환자를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윈난쿤마(昆磨)고속도로공사측에 대해 사망자 유족에게 1만 5000만 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법제일보(法制日報)가 10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윈난쿤마고속도로공사는 구급 환자를 싣고 병원으로 옮기려던 120 구급차가 톨게이트를 통과하려고 할 때 통행료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구급차를 통과시키지 않고 20여분을 지체시키는 바람에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 사건은 지난 2004년 4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날 새벽 스궈칭(師國慶) 등 4명은 윈난성 위시시 고속도로 상에서 교통사고를 내 중상을 입었다.이를 목격한 110 민경(民警)이 위시병원 응급실에 연락,120구급차를 불렀다. 병원에서 보낸 120 구급차는 쿤마고속도로공사 소유의 톨게이트를 통과하려는 순간,너무 바쁘게 출발하다보니 미처 통행료를 준비하지 못해 요금을 치를 수 없었다.이에 120 구급차는 “환자가 위급하다.”고 통사정을 했으나 톨게이트 직원은 규정을 들어 통과시킬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었다. 할 수 없이 120 구급차는 사고 현장의 민경에게 연락,톨게이트를 통과하기까지는 25분이나 지체됐다.곧장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중상자중 한 명이 이미 열명길로 떠났다.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유족은 120 구급차를 통과시키지 않아 자신의 아들이 사망했다며 쿤마고속도로를 상대로 12만 위안(약 1600만원)을 배상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위시 중급법원은 쿤마고속도로공사측은 120 구급차가 다급하게 환자를 구하러 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통행료가 없다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아 중상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일부 책임이 있다며 사망자의 부모에게 1만 5000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온라인뉴스부
  • [中 문화대혁명 40주년] 사회부조리가 부른 마오의 부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당신의 검색어는 관련 법률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단어에 대한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반응이다. 문혁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법률로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아예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안내어가 뜨는 곳도 많다. 신화사 등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나 다른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16일로 발발 40주년을 맞는, 문화대혁명의 현주소다. ●16일 40주년… 기념식·정치행사 없어 올해 문혁과 관련, 국가차원의 특별한 기념식이나 정치행사가 준비된 것은 없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등에서 공산당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문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움직임조차 없는 건 아니다. 문혁을 재조명하자는 주장도, 간헐적이나마 끊임이 없다. 대문호 바진(巴金)을 비롯,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비서를 지낸 리루이(李銳) 전 공산당 조직부 부부장 등이 대표적이다.“마오는 위대했으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해 문혁과 같은 참상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주장의 실질적 핵심이다. 이같은 ‘전통적인’ 문혁 재조명론 외에 양극화 문제 등 일련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제2의 문혁론’ 등 문혁 재조명론의 이유도 양분돼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한 주요인사는 최근 한 사석에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잣대가 있다.”는 표현으로 공식적인 문혁의 재조명 가능성을 일축했다. 평가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시각이 있지만, 그것과 재조명과는 별개의 일이란 얘기다. 그는 “지금 문혁을 드러내놓고 떠들어봐야 중국 사회에 득 될 게 없다는 사실에 지도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혁 재조명은 중국이 전면적 발전단계에 진입하는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경제의 성장 정도가 그 여부를 가름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의 부패·빈부격차에 불만 팽배 이런 가운데 정작 문혁의 주역 마오쩌둥 전 주석은 이미 문혁의 ‘어두운 그림자’을 떨쳐냈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1981)를 통해 “마오 전 주석이 오류를 저질렀으되, 공과(功過) 비율은 7대3”이라는 ‘체면치레’ 평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전직 언론인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차라리 그 때가 좋았다.’며 마오를 추억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당의 부패, 빈부 격차, 사회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이 마오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며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은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적 역기능이 심화될수록 옛날에 대한 향수와 동경은 더 깊어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신좌파 지식인’의 문혁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는 이런 분위기와 맞물린 것이다. ●“지도부 실질적 재산공개하라” 베이징의 한 주요 대학에 재직중인 A교수는 마오 신드롬의 한 요인을 ‘솔선수범’에서 찾아냈다.“마오는 전쟁터에 아들을 보냈고 그 아들은 죽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층의 자제는 모두 외국에 나가 있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떼돈을 벌고 있다. 마오 이후의 당과 지도부는 솔선수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질적 재산 공개 없이 현 지도부와 당은 결단코 마오 시대와 같은 신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지식인도 있었다. 그는 “법에 따라 재산신고를 할 때 어느 성(省)의 성장(省長)은 비서가 월급봉투에 적힌 액수만을 적어낼 뿐 예금이나 부동산 등은 숨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그나마 국가 최고 지도자급은 그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4세대 지도부가 반부패를 강조하고 ‘팔영팔치(八榮八恥)’ 등을 선전하는 배경을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중국 사회가 다시 문혁을 들춰낼 기미는,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마오에게만 조용히 손짓만 하고 있을 뿐이다.‘사회 부조리’는 마오를 부르는 주문(呪文)인 셈이다. jj@seoul.co.kr ■ 성장이냐 분배냐 中 지도부 딜레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가난이 걱정이 아니고 균등치 못한 게 근심이다.’(不患貧而患不均) 중국에서 평등 의식을 제고시키며 마오쩌둥을 불러내고 있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동시에 인터넷 토론방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중국 사회 전체에 ‘효율과 균형(또는 공평)’, 즉 ‘성장과 분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나아가 ‘물질재부가 적은 게 두려운 게 아니고 분배가 고르지 못한 게 두렵다.’(不物質材富少,而是分配不均)는 말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사회 진단은 ‘분배 불공평’(分配不公平)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를 감안,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정권은 분배를 선택한 마오쩌둥의 정책 노선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2006∼2010 5개년 경제규획 등에서 성장 일변도 경제 정책을 조정한 데 대해 “중국이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며 좌파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인다. ●‘부의 획득 단계, 우파 논리 그대로’ 그러나 당의 동향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을 일축한다. 이들은 “현 정권은 마오쩌둥식 분배 정책을 실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절대 그런 식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 핵심부 및 싱크탱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효율과 균형’ 논의는 사회 일반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균형, 즉 분배에 관한 논의가 사회 일반에서는 뭉뚱그려져 있으나, 당 내부에서는 세분화돼 있다. 즉 ‘생산과정 또는 부의 획득 과정’에서는 여전히 효율이 중시돼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분배 여력 많지 않아’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남은 ‘균형(분배)’은 교육, 의료 등에 있어 기회의 평등이다. 나아가 엄청난 부를 축적중인 기업 등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조성, 공적부조를 통한 분배도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 또는 정부가 균형, 분배에 역량을 쏟더라도 실질적인 분배 효과를 내기에는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농민·저소득층의 제반 문제를 ‘혜택’으로 해결하기에는 재정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등이 보조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의식이 현저하게 낮은 중국에서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 부의 획득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부패 및 각종 경제범죄 척결’을 통한 간접적인 ‘기회 조정’ 방식 정도가 꼽힌다. 그러나 이마저도 뿌리깊은 관행을 뽑아내기엔 갈 길이 멀다. 중국 싱크탱크 집단의 한 전문가는 “지금의 사회 갈등과 문제점들은, 교육·의료·양로 등 모두 국가가 책임져 오던 것들이 시장경제 도입 이후 개인 부담으로 전가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면서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고충을 토로했다. 시대가 마오를 찾으나 마오로도 시대를 아우르기 쉽지 않은, 문혁 40주년 중국의 현실이다. jj@seoul.co.kr ■ 아직도 금지단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츠부바오(吃不飽).´ ‘그 시절´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배부르게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립적이되 다소의 ‘판단´이 가미된 이 표현은, 중국 사회가 문혁에 대해 암묵적으로 내리고 있는 대체적인 ‘평가’다. 지식인, 예술인 그룹을 중심으로는 “전통이 사라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답변이다.“한국은 전통을 잘 유지했다….”는 부러움도 종종 접할 수 있다.“한류(韓流)의 배경에는 ‘전통’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고 평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년의 교수부터 유력 언론사의 중견 간부, 택시기사에까지 어려서라도 그 시절을 경험한 이들의 답변은 의외로 담담해 보인다. 답변도 길지 않다. 물론 ‘문혁’은 묻지도 못하고,‘어려웠던 당시’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물었을 때의 얘기다. 가까운 사이에서라면 간혹, 억눌린 시절에 대한 울분을 들을 수도 있다.“문혁은 정치 투쟁의 산물일 뿐이며 당과 국가에 의해 명백히 과오로 인정된 일 아니냐.”는 단정적인 반응도 접하게 된다. 젊은이들에게서라면 확실히 국수적인 태도를 확인할 때가 많다. 베이징 모 대학의 한 4학년생은 “결과적으로 당과 사회의 모순을 한번에 들춰내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순작용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한껏 긍정론을 폈다. 칭화대(淸華大)의 한 중견교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또 다른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유력 방송사의 30대 초반의 PD는 사회 금기에 대한 외국기자의 호기심이 못마땅한 듯,“도대체 뭘 알고 싶은 게냐, 서점에 가면 책도 많은데…”라는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한 3학년 여대생의 대답 역시 젊은 부류의 또 다른 반응이다. 한편 많은 중국인들은 문혁이란 단어가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아직도 금지 단어냐?”는 반응인 셈이다. jj@seoul.co.kr
  • 체포·북송·재탈북 되풀이

    북한을 떠나 지난 5일 밤(현지시간) 제3국을 거쳐 미국에 도착한 탈북자는 모두 6명. 탈북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7일 “3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호로위츠 선임연구원으로부터 ‘난민신청을 추진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중국 선양 등 4곳에서 머물던 이들을 지난달 3일 중국 남부로 이동시켰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그 뒤 13일 동남아 국가를 향해 국경을 넘었고 이틀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17일 현지의 미국 대사관에 인계되면서 난민신청을 했고 4일만에 난민 허가를 받았다. 미국 대사관이 마련한 장소에서 기다리다 지난 5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4명과 남성 4명인 탈북자들의 사연도 기구하다. 두리하나선교회가 7일 공개한 이들의 편지에는 대부분 배고픔 때문에 국경선을 넘었고 체포·강제북송을 되풀이한 사연이 담겨 있다. 또 중국에서 2∼6년 머무는 동안 인신매매와 강제임신 등을 경험했고,2명은 오누이 사이로 밝혀졌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 나오미(34·여·가명)씨는 고교졸업 후 회령 구두공장에서 재봉공으로 근무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담배장사를 하다 1998년 탈북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되는 수모를 겪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중국인과 결혼했지만 임신 8개월 때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가까스로 풀려났다. 나씨는 북한으로 끌려갔다 2002년 12월 다시 탈북했다. 신요한(20)씨는 수재들만 다니는 제1고등중학교에 다니던 1999년 기숙사에서 나와 이른바 ‘꽃제비’로 전락했다. 탈북 경험이 있는 친구를 만나 국경선을 넘었다. 하지만 3일만에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신찬미(20·여)씨는 2001년 7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중국으로 탈출했다.2002년 10월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북송됐으나 두달 만에 재탈북했다. 이후 중국 남성에게 성폭행당하고 중국화폐 5000위안에 팔려 다른 남성과 강제 결혼했다.2004년 2월 또다시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으나 금년 1월 중국으로 다시 탈북했다. 찬미씨 오빠인 요셉(32)씨는 인민군 3군단에서 근무하다 질병으로 제대했다. 탄광에 취직한 요셉씨는 1997년 중국 친척집을 방문하고 돌아왔으나 한국 노래 테이프를 소지한 혐의로 노동단련대에 수용됐다.1998년 5월 탈북에 성공했으나 2000년 1월 체포돼 북송된 뒤 그해 5월 재탈북했다.그러나 다시 체포돼 강제북송된 뒤 갖은 고초를 겪다 2004년 3월 기적적으로 재탈북에 성공했다.연합뉴스
  • ‘거세’된 대가로 받는 돈 7200만? 4억4000만?

    “57만 위안(元·약 72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봐요.” Vs “적어도 338만 위안(4억 4000만원)은 받아야지.” 중국 대륙에서 사상 처음으로 의사의 오진에 따라 성기능을 잃어버린 한 남성이 낸 성기능 상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돼 시끌벅적하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고급인민법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안산(鞍山)시에 살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이 의사의 오진으로 성기능을 상실한 탓에 이를 배상해달라고 낸 소송에서,“피고측은 56만 위안을 원고측에 주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하상신보(華商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번 소송사건의 장본인은 두쉐량(竇學亮)씨로 세상에서 가장 재수가 없는 사나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의사가 생식기 감염으로 병원을 찾은 두씨에게 생식기에 악성종양(암)이 발병했다고 오진,생식기 절제수술을 받아 결국 남자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까닭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전국에서 처음으로 성기능 상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그가 성기능을 상실한 것은 지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생식기 감염으로 안강(鞍鋼)광업그룹 소속 의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음경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생식기의 악성종양 부위를 잘라내면서 1차적으로 성기능을 잃어버렸다.특히 치료과정에서 링거주사를 대량으로 맞다보니 그 음경에 독이 퍼져 성기능은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지났을 때 알고보니 그냥 생식기 감염이어서 생식기 절제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을 의사의 오진으로 생식기를 잘라낸,이른바 ‘거세’를 당한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이에 화가난 두씨는 1997년 1월 안강그룹 소속 병원을 상대로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금 338만 위안을 달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3년동안 끈 2002년 1심 판결 결과는 초라했다.승소는 이끌어내기는 했으나 병원측으로부터 받으라는 정신적인 배상금은 겨우 5만 위안(650만원)에 불과했다. 안산시 중급법원은 환자에게 마취약품을 장기적으로 다량 사용하고 링거주사에 너무 의존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며 병원측에 정신적 피해배상금 5만 위안을 주라는 판결했다. 두씨는 한창 성생활에 무르익을 팔팔한 나이에 10여년 동안 거세당한채 살아온 대가가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데 대해 치를 떨릴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그로서는 당연히 불복했다. 그래서 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에 상고했다.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은 지난달 30일 사건을 재심리한 뒤 병원측은 원고인 두씨측에 물질적·정신적 피해 배상금 57만 위안을 주라고 판결했다. 고급인민법원은 병원측에 정신적 위로금 50만 위안과 두씨에 대한 오진비와 교통비,진단비 등 비용 7만 위안 등 모두 57만 위안을 주라고 판시했다. 두씨는 그러나 여전히 불만이다.그는 “이번 재판에서 법원은 단지 정신적 피해 배상만 했지,그 정신적 피해가 온 원인이 된 성기능상실의 직접적 피해에 대해서는 배상하지 않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성기능 상실에 대한 직접적 피해 배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 [클릭 지구촌 이곳!] 中 베이징 한복판 식당 ‘레드캐피털’

    [클릭 지구촌 이곳!] 中 베이징 한복판 식당 ‘레드캐피털’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베이징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레드 캐피털(Red Capital)’. 중국 이름으로는 홍쯔쥐러부(紅資俱樂部)라는 호텔 겸 레스토랑이다.1년 내내 100%에 가까운 객실률을 기록하는 곳으로, 주 고객층인 서양인 사이에서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객실은 단 5개.2인실 셋,1인실 둘이다.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 하나를 약간 손질해 만든 만큼 방들도 좁다. 인기의 비결은 뭘까. 청조(淸朝) 분위기의 내부 장식에 전통 침대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2인실 190달러,1인실 150달러에 각각 15%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에 요금도 거의 1급 호텔급이다. 게다가 시내 동북쪽 전통 가옥 밀집촌에서 간판도 없는 호텔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입소문 없이는 찾아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답은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찾은 레드 캐피털. 가뜩이나 좁은 마당 한가운데 자리한 돌무더기가 맨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른은 드나들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구멍이 나 있고, 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매우 가파르다. 깊이는 2m 남짓, 안으로 제법 넓은 공간이 나 있다. 미니바가 있고,2곳에 테이블을 놓고 10여명은 족히 앉아 술을 마실 수 있을 정도다. 팻말이 눈에 띈다.‘탱크를 막을 수 있는 무기 개발을 가속화하라.’ ‘전쟁 대비능력을 강화하라….’ 아래에는 ‘1969년 10월17일, 국가부주석 겸 국방장관 린뱌오(林彪)’가 적혀 있다. 방공호(防空壕) 였다. 중국 정부는 1960년 후반 소련과의 분쟁으로 긴장이 극도에 달하자 도심 지하에 대규모 방공호를 건설했다. 성내 모든 가옥에도 각각 방공호를 파게 했다. 그리고 방공호는 집집마다 연결되도록 했다. 민간 방공호는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새 건물을 지으면서 없어졌거나 옛집 형태로 남아 있더라도 막아 버린 곳이 많다. 한 직원은 “방공호는 뒤에 도둑들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 가는 통로로도 쓰였다.”고 귀띔한다.“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이 종종 온 집안 식구가 모여 방공호를 파던 때의 얘기를 하곤 하셨다.”고도 했다. 방공호 내부는 혁명의 냄새가 물씬하다. 홍위병의 홍색 목도리에 각종 혁명 판화, 총과 무전기…. 이른바 ‘혁명 마케팅’인 셈이다. 공산혁명 사적지 관광을 일컫는 ‘홍색(紅色) 관광’이 유행하면서 더욱 인기다. 호텔 식당 겸 레스토랑은 어떤가. 직원은 문 옆에 늘어진 낡아 빠진 커튼을 자랑한다.‘많은 기밀의 배후를 알고 있는 커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집무실에 있던 커튼이라고 한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사용했다는 라디오도 있다.‘50년대 만들어진, 고위층이 사용하던 것 가운데 하나’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개인사무실에서 쓰던 것으로 저우 총리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국제뉴스를 통해 영어·불어·독어·일어를 완벽하게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내부 소파는 저우 총리와 펑더화이(彭德懷), 천이(陳毅) 등 고위 인사들이 외국 손님을 맞을 때 앉았던 것이라고 한다.‘정책을 결정한 의자(決策椅子)’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 모든 게 당과 정부의 핵심지도자들의 집무실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하니,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중난하이가 가구와 집기 등을 교체할 때 당시 ‘힘있는’ 사람들이 헌 것들을 따로 챙겨 두었는데, 호텔 사장인 미국인이 중앙판공실의 친구로부터 직접 구해온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언젠가 현지 한 신문의 칼럼이 ‘다시 부는 홍색 물결’을 언급하며 이 곳을 거명한 것을 보니 과히 틀린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직원들의 의상도 모두 혁명시대의 것들이다.60∼70년대의 대자보와 마오쩌둥 주석의 사진과 어록, 당시의 인민일보와 북경일보가 펼쳐져 있다. 레드 캐피털은 평범한 중국의 전통가옥에 또 다른 ‘과거’의 흔적인 ‘혁명’의 기운을 살린 뒤 ‘유행’에 올려 태운 하나의 전형이랄 수 있다. 그야말로 ‘혁명’과 ‘자본’이 어떻게 결합돼 ‘홍색 자본(紅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홍색 자본가(Red Capitalists)시대를 맞아 이런 조합에서 만개하는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jj@seoul.co.kr
  • 내년 5월 개국 경인민방…”지상파 광고 10% 먹는다”

    지난달 28일 방송위원회가 목동 방송회관에서 경인지역 새 지상파방송 사업자 심사결과를 발표하던 날. 발표장 한편에서 몇몇 지상파 관계자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새 지상파방송이 시작되면 기존 지상파 방송의 광고물량 중 얼마나 가져갈까 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한 사람은 별 지장 없을 것이란 의견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10%는 빼앗아갈 것이란 분석이 있다.”고 말했다. 경인TV는 옛 iTV에 비해 방송권역이 경기 북부권까지 넓어졌고, 유선방송사업자(SO)를 통한 서울지역 재전송이 가능해 수도권 2300만명을 시청권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방송광고 시장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우선 경인TV측은 오는 2007년 5월 방송을 시작해 2010년이면 1300억원의 광고매출을 이룰 것으로 내다본다. 그때 손익분기점에 도달해 흑자기조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 현재 지상파TV 방송 광고시장 규모가 2조 5000억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의 약 5% 수준이다. 이는 경인지역 400만가구를 감안했을 때 나온 수치다. 하지만 SO를 통해 역외재전송이 가능한 서울지역에 대한 광고효과를 감안하면 이보다 더 규모가 커질 수도 있다. 물론 SO를 통한 역외 재전송은 지상파의 가시청 인구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광고단가 산정에선 고려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광고 판매율을 높이는 데는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기 한국방송공사 연구위원은 “옛 iTV는 광고 총재원(광고를 100% 팔았을 때의 액수) 1000억원 중 그 절반인 500억원 정도 광고매출을 올렸다.”며 “권역이 넓어진 경인TV는 광고 총재원이 1500억원 이상 되고 그 절반만 팔아도 800억원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기에다 서울지역에 대한 역외 재전송 효과 때문에 광고판매율이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프로그램의 질이다. 과거 iTV보다 프로그램 수준을 높여 시청률을 높인다면 역외재전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연구위원은 “경인TV는 기존 지상파 방송보다 광고단가가 훨씬 낮기 때문에 역외재전송을 통한 시청률만 담보된다면 광고주들이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둔 듯 경인TV측은 프로그램 제작에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투자조합’을 결성해 13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하는 등 프로그램 업그레이드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산고 끝에 경인지역 새 민방으로 선정된 경인TV가 산적한 어려움을 딛고 옛 iTV와의 차별화에 성공, 기존 지상파 방송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겨우 13만원 벌었는데, 징역 11년 살라구요”

    “아이구,정말 미쳐버리겠네.겨우 1000위안(元·약 13만원)을 벌었을 뿐인데,11년 동안이나 감방에서 썩으라구요?” 중국 대륙에 한 대학 졸업자가 음란 사이트를 개설한 뒤 회원을 모집해 운영하다가 덜미를 잡혀 무려 10년 이상 햇볕을 보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그의 인생이 완전히 결딴나게 돼 정보통신법의 음란물 유포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중국 동북부 헤이룽(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중급인민법원은 지난달 29일 음란사이트를 운영한 20대 남성 피고인에게 징역 11년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흑룡강신보(黑龍江晨報)가 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피고인 두쥔(杜軍)씨는 대학 졸업한 지난해 8월 돈을 벌기 위해 음란 사이트를 개설했다.공안(경찰)을 눈을 따돌리기 위해 동남아 인도에 서버가 있는 ‘포병클럽’사이트를 사들여 ‘포병지휘부’·‘남병영’·‘여병영’·‘시네마존’ 등 12개 메뉴 등으로 세분화한 다음,각종 성인 동영상·누드사진·음란소설 등을 올려 회원 가입비를 받아 챙겼다. 성인 동영상·음란사진 9976편과 음란소설 82편 등을 올린 이 사이트의 등록인원은 4만 8555명.하지만 정식 회원이 44명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 일천하다.이런 까닭에 두씨가 거둬들인 불법 소득은 여태 런민비(人民幣) 1000위안(약 13만원) 정도에 불과할 따름이다. ‘ADMIN(참모총장)’이라는 관리자계정 ID를 사용한 두씨는 특히 12개 메뉴를 관리하는 운영자도 모집,관리해왔다.메뉴의 운영자로 활동한 류창칭(劉長慶)·마푸민(馬福民)·셰정(謝靜)·양전(楊震) 등은 징역 8월∼1년 6개월 동안 각각 구메밥을 먹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 中금리인상에 증시 출렁

    중국 금리인상 충격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출렁였다.28일 코스피지수는 중국 인민은행이 전날 1년만기 대출금리를 5.58%에서 5.85%로 전격 인상한 여파로 32.80포인트(2.26%) 떨어진 1419.73으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7.93포인트(1.14%) 하락한 685.44로 거래를 마쳤다.지난 2004년 4월 중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펼 것을 시사하면서 국내 증시는 물론 세계 증시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차이나 쇼크’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도 전날보다 1.22%(208.31포인트) 떨어져 1만 6906.23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금리인상은 2004년과 상황이 다르고 경기과열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단기적 충격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대우증권 주희곤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1·4분기 경제성장률이 10.2%를 기록하자 경기과열을 우려해 대출금리를 소폭 인상했다.”면서 “철강, 화학, 기계 등 중국 의존도가 큰 업종을 빼면 장기적 안정대책으로 받아들여져 충격은 곧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은 중국의 금리인상 조치가 증시뿐 아니라 국내경제와 기업들에 미칠 영향에 쏠리고 있다.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중국은 올해에도 연평균 9% 이상의 고속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과열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금리인상’카드를 꺼내든 것도 과잉투자를 해소하면서 경기의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론적으로는 중국이 대출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경기가 진정되면서 중국내 수요가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의 중국에 대한 수출이나 투자는 줄어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 대출금리 인상이 ‘원만한 조정’인 만큼 과열경기를 해소하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조치로 부실대출의 위험을 미리 없앰으로써 나중에 ‘버블(거품)’이 붕괴되는 부작용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금리인상으로 중국내 투자와 생산이 줄어들면 국제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예상된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원가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선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대중국 수출이나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 조치로 중국내 과열이 진정되면서 소비나 투자에 건전성이 확보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투자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아주경제팀 이규인 차장은 “위안화 대출이 많은 기업이야 당장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번 대출금리 인상으로 중국내 과잉 업종이 정리되면 지속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면서 “앞으로 추가 금리인상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번 조치로 미흡하면 행정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김경운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견제없는 ‘1인 경영’이 화근

    현대차그룹은 무척 빠르다.2001년 공식 출범 당시 자산 31조원으로 재계 5위였지만 5년 만에 자산이 62조원으로 불어났고 순위는 2위로 껑충 뛰었다. 사업 추진력도 남다르다. 중국공장 설립 ‘작전’은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의 ‘스피드 경영’을 잘 보여준다. 폴크스바겐,GM 등 경쟁업체에 비해 중국 진출이 늦어 현지 공장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정 회장은 2002년 2월 베이징기차와 합작법인 설립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12월 생산을 목표로 내걸었다. 중국 정부의 허가도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9월 초부터 공장 설립에 들어갔으니 12월 양산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중국 고위층과의 ‘관시(關係)’와 뚝심으로 무장한 정 회장은 그해 10월 중국정부의 비준을 받았고 실제 12월23일 EF쏘나타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8일 열린 중국제2공장 기공식에서 왕치산 베이징시장은 “지난 3년간 베이징현대가 보여준 비약적인 성장과 놀라운 성과는 중국인민들의 귀감이 됐으며 베이징현대가 만든 ‘현대속도’는 중국 공상계(工商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고 말했다. 중국공장 완공 직후인 2003년 현대차의 중국내 판매순위는 13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23만 4000대를 팔아 4위로 수직 상승했다. 올해는 30만대로 3위를 노리고 있다. 정 회장은 2002년 중국,2003년 미국 앨라배마,2004년 슬로바키아공장 등 매년 10억달러가 넘는 해외투자를 숨가쁘게 결정해왔다. 검찰수사로 차질을 빚긴 했지만 올해도 중국2공장, 조지아주공장, 체코공장 등 3건의 해외투자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 세계 자동차메이커 가운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정 회장의 성공신화에는 늘 ‘황제경영’,‘1인경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현대차그룹 스스로도 정 회장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부인하지 않는다. 너무 잦은 인사로 계열사 경영진이 ‘책임경영’을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대차그룹의 유일한 최고경영자는 정 회장이다. 나머지 사장들은 ‘참모’일 뿐”이라는 반박이 나올 정도다. ‘황제경영’은 탁월한 경영 성과를 냈지만 문제점도 드러냈다. 무엇보다 보좌하는 측근들이 충성심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을 뿐 ‘고언’을 하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됐다. 이사회가 제기능을 못한 것도 ‘황제경영’의 그늘이다. 수시로 단행되는 계열사 대표이사 교체는 이사회 결의 사항임에도 ‘본인 의사에 의한 사임’이라는 이유로 생략됐다. 아들, 딸, 부인, 사위, 조카 등 오너일가의 지나친 경영참여와 오너 지분이 들어간 계열사에 대한 ‘밀어주기’도 견제받지 않았다. 김선웅 변호사는 “지난 2002년 본텍과 현대모비스의 합병시도가 시장과 여론의 반대로 실패했을 때 주변에서 무리한 경영승계를 지적해줬어야 했다.”면서 “만일 이때 진심어린 충고가 있었고 정 회장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글로비스 문제 등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임직원이 정 회장만 쳐다보다 보니 회장이 조금만 흔들려도 조직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것도 문제다. 다른 그룹 같으면 회장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예정된 해외공장 착공을 ‘무기한’ 연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정 회장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자 현대차 수뇌부들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 채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수사 도중 강행해 여론을 악화시킨 미국 출장도 앞뒤 가리지 않고 회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만 앞선 탓이라는 지적이다. 상생협력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터져나온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하도 회장에게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한 측근 출신의 무리한 선택이었다는 반성이 뒤늦게 일고 있다. 정 회장의 절대적 비중을 너무 강조하다 “정 회장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하는 체제라면 비자금 조성 같은 중요한 일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검찰의 ‘반격’에 허를 찔리기도 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中금리 전격인상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이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전격적으로 인상했다. 중국의 중앙은행격인 인민은행은 27일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금리를 0.27%포인트 상향조정했다. 인민은행은 이날 “거시경제 조정을 위해 1년 만기 대출금리를 기존 5.58%에서 5.85%로 인상하고, 기타 대출 금리도 조정한다.”고 밝혔다. 인상률은 28일부터 적용된다.인민은행은 이번 금리인상이 “거시경제 차원에서 경제운영의 효과를 높이고, 국민경제가 지속적이고 건전하게, 빠른 성장 추세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금리인상은 지난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0.2%에 이르는 등 경기과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jj@seoul.co.kr
  • 中 자금세탁방지법 조사범위 확대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한층 강화된 자금세탁방지법 초안이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회에 제출돼 본격 심의에 들어갔다고 26일 신화사 등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자금세탁방지법 초안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자금에 대한 조사 범위를 은행에서 보험, 증권 외에 부동산이나 경매 등 일반 상업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전인대 예산공작위원회 펑수핑(馮淑萍) 부주임은 “밀수, 마약거래, 부패와 관련된 자금세탁이 중국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입법 배경을 밝혔다. 중국은 2003년 자금세탁방지법을 제정했으나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지하 자금’의 형성을 막고 지능화하고 있는 금융범죄에 대처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앞서 중국 중앙은행은 이 법과는 별도의 규제안 초안을 발표해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이 대량 거래의 경우 중앙은행의 자금세탁방지센터에 보고하도록 했다. 한편 신화사는 중앙은행 자금세탁방지센터가 2004·2005년 자금세탁으로 의심되는 683건의 거래를 신고했으며 관련 자산 규모가 180억달러에 달했다고 신화사가 보도했다.jj@seoul.co.kr
  • [월드이슈] 만리장성후 中최대 역사 싼샤댐 새달 완공

    [월드이슈] 만리장성후 中최대 역사 싼샤댐 새달 완공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의 싼샤(三峽)댐이 마침내 세계 최대의 위용을 드러낸다.‘만리장성 이후 중국 최대’로 불리던 토목공사가 다음달 준공식을 갖게 된 것이다.1994년 착공된 지 12년 만이다.‘신중국의 아버지’ 쑨원(孫文)이 처음 댐 건설을 제안했다는 1919년부터 따지면 87년이 된다. ●세계 최대의 규모 중국에는 높이 30m 이상인 댐이 모두 4694개(2003년말 기준)나 있지만 규모나 의미에서 싼샤를 당할 수 없다. 양쯔(揚子)강 중상류인 후베이(湖北)성의 취탕샤(瞿塘峽)~우샤(巫峽)~시링샤(西陵峽) 등 장강 삼협을 잇는 댐의 제방 길이는 2309m에 이른다. 높이는 해발 185m, 저수량은 393억t으로 소양호 29억t의 15배 가까이 된다. 하나의 용량이 70만㎾로 북한 압록강의 수풍발전소 전체와 맞먹는 발전기가 26개나 된다.1800만㎾ 설비용량은 우리나라 총 전력 생산의 30%에 육박한다. 담수 작업 등 전 공정이 모두 완료되는 2009년까지 30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여곡절 싼샤댐 건설은 90년대초 중국 공산당 당사에 엄청난 정치적 논쟁을 유발했다.1992년 4월 전국인민대표회의 정식 통과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벌어졌고, 리펑(李鵬) 당시 총리가 논란 종식을 선언했음에도 댐 건설에 대한 승인은 한참 후에야 났을 정도다. 2005년 1월에는 중국 환경당국에 의해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점 때문에 다른 30개 대형 프로젝트와 함께 공사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2003년 9월 발효된 환경보호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서를 당국에 제출해 승인을 받는 절차를 밟지 않은 때문이다. 한편 적잖은 역사적 유물이 물에 잠기게 됐다. 굴원과 중국 3대 미인의 하나인 왕소군의 고향 즈구이(枾歸)와 샹시(香溪)가 수몰된다. 제갈량의 적벽대전과 유비가 숨을 거둔 백제성 등 숱한 역사 유적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93년 이후 고고학자들은 1000여곳의 유적을 찾아내 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벌였으나 문화재의 원형은 되찾을 길이 없다. 두보와 이백, 백거이, 소식 등이 아름다움을 칭송한 싼샤의 절경 역시 그 맛을 잃게 됐다. ●‘미완(未完)’의 준공 이달 초부터 ‘싼샤 이민정신 기념행사’가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열렸다.‘백만(百萬) 이민(移民), 중국을 감동시키다’가 행사의 주제다. 수몰지역 주민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다. 목적은 여러 가지다. 수몰지역 ‘백만’ 주민을 위로한다는 것에서부터, 국민적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중국 정부는 1997년 싼샤댐 바로 옆에 산을 깎아 신도시를 만들고 주민 5만명을 집단 이주시키는 등 여러 곳에 수몰민 정착촌을 건설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주민들이 이주를 거부했고 보상금 확대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는 ‘회류이민(回流移民)’도 수천만에 달했다. 준공식은 코앞에 다가왔지만 보상금 문제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2억 2000만명에 이르는 양쯔강 유역 주민들의 불안감도 위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류지역에 대형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상과 함께 댐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청나라를 멸망시킨 신해혁명보다 규모가 큰 폭동사태가 야기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을 정도다. 정부로서는 댐 건설로 인한 손해보다는 관광객과 물자, 자금의 유입 등 다양한 혜택이 있을 것을 강조하는 행사가 절실한 상황이다. 결국 ‘이민정신 기념 행사’는 싼샤댐의 건설 목적만큼이나 ‘다목적’을 갖고 있다. 댐 건설의 성공 여부가 준공 이후에나 확인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jj@seoul.co.kr ■ 싼샤댐의 효용과 역효과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싼샤댐은 논의 단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찬반 논쟁을 야기해 왔다. 정부는 만성적인 홍수를 막고, 수력발전과 함께 환경을 보호하고, 물을 공급하며, 아울러 원활한 해운 수송을 통해 서부지역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대재앙을 경고한다. 홍수 방지에도, 물길 이용에도 회의적이다. 환경을 해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관측도 대두된다. ●홍수방지, 전력, 물류… 중국 역사는 1870년 7월을 잊지 못한다. 기록상 가장 긴 시간, 가장 ‘미친 듯이’ 비가 쏟아져 가장 큰 범위에, 최대의 피해를 낸 ‘1000년 만에 만나는(千年一遇) 재해’로 남았다.1931,1935,1954,1998년 대홍수도 수만명의 사망자와 수천만의 이재민을 낸 물난리였다. 특히 98년은 우리에게도 기억이 생생하다. 목까지 차오르는 강물에 뛰어든 인민해방군이 ‘인간댐’을 만들던 장면이 방송 화면으로 전달됐다. 싼샤댐은 홍수로부터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전력은 중국이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중국의 개발가능한 수력자원 부존량은 6.76억㎾로 세계 1위다.2003년 에너지 소비의 93.9%를 석탄, 석유 등 화석에너지에 의존한 중국으로서는 원자력과 함께 수력발전에 눈을 돌리는 게 자연스럽다. 운송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서부대개발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업으로 보고 있다. 사람과 돈, 물자가 항로를 타고 서부로 흘러들 것으로 기대되면서 ‘황금 물길(黃金水道)’로 불리고 있다.4세대 지도부가 사활을 걸다시피 한 ‘신농촌건설’을 위해서도 물류 확보는 필수적이다. 물류비용은 현재의 35∼37%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재앙 우려 그러나 효용성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칭화(淸華)대 장광다오(張光道) 교수는 연간 10억t가량의 산업 및 생활폐수가 댐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싼샤 호수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댐 아래로도 강 유속이 느려지면서 산소 생성 능력이 저하되면 강은 시궁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강의 중상류에 서울보다 넓은 632㎢의 인공호수가 생기는 만큼 이에 뒤따를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예컨대 40도를 웃도는 여름철 어떤 자연 현상을 야기할지 전망이 엇갈린다. 호수가 거대한 ‘에어컨’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가습기’가 됐을 때 어떻게 될지 의문이 나온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걷잡을 수 없는 자연 재앙으로 중국은 물론 동북아 전체의 환경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여름철 수량(水量) 감소에 따른 우리나라 서해의 염분 변화와 어종의 변화 문제부터 오염 문제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한 강 퇴적물로 인해 충칭 등 주요 항구도시로 향하는 뱃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퇴적물은 오히려 더 큰 홍수를 야기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강 주변 주민의 불안감도 가중되고 있다. 물류 기능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홍수조절을 위해서는 물의 높이를 135m 아래까지 내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1만t급 선박이 운항하는 데 큰 차질을 빚게 되고 결국 홍수 방지를 위해서는 한동안 항운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올 초에는 댐 초기 담수 이후 흙·모래 함량이 적은 물이 새어나오면서 모래를 끌고 내려가는 능력이 증강돼 강 아래쪽의 하상(河床)을 침식, 강둑 붕괴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jj@seoul.co.kr ■ 中 국책사업 속속 마무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싼샤 댐 준공식으로 지난 세기에 시작된 중국의 주요 국책 프로젝트들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청장철도(靑藏鐵道)’가 싼샤댐을 뒤이어 곧 첫선을 보인다. 서부 칭하이(靑海)성 거얼무(格爾木)∼티벳 라사(拉薩)간 1100여㎞ 구간에 철도를 놓은 사업이다. 해발 4000m 이상 고원구간이 960㎞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게 깔리는 철도다.550㎞는 땅이 얼어 있는 동토(凍土) 구간이다. 공기를 1년 이상 앞당겨 지난 3월 화물열차를 시험운행한 뒤 7월 여객열차를 운행한다. 서부 지역의 수력전기를 북·중·남 3개 송전 선로 건설을 통해 동쪽으로 수송하는 ‘서전동송(西電東送)’은 2단계 공정이 진행중이다.2001년 착공돼 북선(北線) 250만㎾ 등을 포함한 송전선 건설이 완료됐다. 신장(新疆), 칭하이 등의 천연가스를 동부지역으로 수송하는 ‘서기동수(西氣東輸)’는 이미 가동에 들어간 지 오래다. 당초 목표보다 3년을 앞당겨 2004년 8월 파이프 라인 공사를 마치고 그해 12월부터 천연가스 공급을 개시했다. ‘남수북조(南水北調)’는 우리나라 한강의 연간 총유량에 해당하는 380억∼480억㎥의 양쯔강 물을 동북지역으로 수송하는 사업이다.2010∼2030년 순차적으로 개설된다.2020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하이 신항만도 이미 지난 1월 1단계 개항을 마쳤다. jj@seoul.co.kr
  • 中 공산당 ‘이념 마케팅’

    “중국 공산당이 마오(毛)주의 정당이라고? 순진한 소리! 그들은 ‘마케팅 정당’이다.” 베이징 인민대학의 미국인 교수 러셀 레이 모제스가 최근 중국 공산당의 ‘메시지 정치’를 꼬집어 내놓은 진단이다. 실제 중국 대중매체는 당이 발주하거나 후원하는 메시지 광고들로 홍수를 이룬다. 당이 표방하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독려하기 위해 1930년대 빨치산 전사부터 10대들의 우상인 대중 가수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부지런히 오간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최근 중국 지도부가 나날이 심화되는 사회적 불안요인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이질적 가치들을 닥치는 대로 활용하는 메시지 정치에 힘을 쏟고 있다고 25일 보도했다. 최근 중국은 잇따르는 농촌 소요사태와 관료 부패, 물질주의 만연 등 급속한 개방과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메시지 정치는 이 같은 ‘해체적 징후’들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 지도부가 고안해낸 고도의 사회통합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메시지 정치에 동원되는 가치들은 다양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옛 사회주의 건설기의 검약과 절제문화에 향수를 갖는 노년층에겐 영웅적인 인민해방군 전사가 활용된다.중국 고유의 전통이 사라져버렸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교문화 부활 캠페인이 펼쳐진다. 사회주의 유물론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영적인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겐 불교가 있다. 조국의 번영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겐 일본·한국과 경쟁하는 중국산업의 놀라운 발전상이 제시된다.‘흑묘백묘론’의 사상적 변종인 셈이다. 모제스 교수는 “인민들을 향해 ‘말만 해라. 우리에겐 다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면서 “공산당이 이미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 입각한 ‘소비자 정당’으로 변신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공산당은 최근 베이징 인민대학에 유교전공 학과를 개설하는 것을 허가했다.13일에는 사상 최초로 세계 불교포럼을 개최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상적 다양성의 허용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원칙은 견고하게 고수된다. 지난달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사유재산권 허용 법안이 부결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선전 캠페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8개 영욕론’이라고 본다. CCTV의 한 프로듀서는 “지난달 고위 각료가 당이 시작한 새로운 캠페인을 저녁 뉴스 시간대에 내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정된 메시지 광고들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양자오휘 베이징대학 교수는 전임자들과 다른 현재 지도부의 특징이 이같은 메시지 정치의 활성화를 낳고 있다고 진단한다.그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은 연설능력뿐 아니라 논문을 통해 이념과 사상을 만들고 전파하는 데 뛰어난 인물들이었다.”면서 “그러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溫家寶)는 기술관료들이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고 분석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美 의도적 냉대… 中 현안고수 맞불

    미국은 20일 백악관을 찾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크고 작은 의전적 결례를 범하거나 의도적으로 냉대했으며, 이에 따라 후 주석은 현안에 대해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1일 보도했다. 신문은 “의전에 집착하는 중국 지도자가 의도적이거나 부주의해 빚어진 외교적 결례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며 “그는 북한이나 이란, 위안화 절상, 무역 불균형 해소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미국측에 어떤 가시적인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후 주석의 연설이 파룬궁 여성 수련자에 의해 무려 5분이나 방해받은 것과 관련,“백악관과 경호팀은 그가 등록된 언론인이었고 의심스러운 게 없었다고 밝혔다.”면서도 “중국은 환영식에 누가 참석 허가를 받았는지 주의해 살펴볼 것을 백악관에 전달했으나 결국 허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문이 정리한 다섯 가지 결례나 의도적인 방해.●중국 영어 명칭 혼동 후 주석 환영식장에서 미국측 행사 진행 아나운서는 중국의 공식 영어 명칭을 타이완으로 잘못 소개했다. 즉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소개했어야 함에도 타이완을 가리키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고 부른 것. 진행자는 “신사 숙녀 여러분, 중화민국 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가 연주됩니다.”라고 말했다.●동양예절에 어긋난 체니 선글라스 착용 날씨가 화창했던 이날 딕 체니 부통령은 환영식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부시, 후 주석 소매 붙잡는 결례후 주석이 연설을 마치고 계단을 내가려는 순간, 나란히 서 있던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후 주석의 왼쪽 팔소매를 잡아 끌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가 내려가야 할 계단이 아닌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바로잡아 주려는 의도였지만, 후 주석은 소매가 끌리는 순간 짜증을 내는 듯한 표정으로 되돌아선 뒤 부시 대통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연설 방해 5분이나 내버려둬파룬궁 수련자이자 이 단체가 발행하는 ‘에포크 타임스’ 기자인 왕웬(47·병리학과 의사)이 후 주석의 연설 도중 “후 주석! 당신도 얼마 남지 않았어!”,“부시 대통령! 그가 살인을 중단하도록 저지하시오!”라고 외쳤다. 왕은 지난 2001년 몰타를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경호팀을 뚫고 장 주석과 언쟁을 벌인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왕에게 일일 출입증을 부여했다.●국빈 만찬도 제공하지 않아중국은 지난 1997년 장 주석이 받았던 것과 같은 국빈 방문 의전을 원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공식 방문을 고집했으며 국빈 만찬도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빈 식당이 아닌 이스트룸에서 오찬이 열렸다. 한편 중국 언론은 파룬궁 소동에 대해 거의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으며 중국내 호텔과 외국인 거주단지 등 10만곳에 대해 홍콩 피닉스 TV의 송출을 중단시켰다고 AP통신이 전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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