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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 “北지도부에 진심 전해달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입니다.”(허종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 “진심으로 합니다.”(노무현 대통령) 쿠웨이트를 국빈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27일(한국시간) 사바 알 아흐메드 쿠웨이트 국왕이 주최한 국빈만찬 시작 전 허종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와 조우했다.이 자리에는 아시아 지역 대사들이 초청됐고 노 대통령은 만찬 시작 한 시간 전쯤에 허 대사의 참석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 대사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자 노 대통령은 진지한 표정으로 “가시거든 전해주세요. 진심으로 합니다.”라고 말했다. 허 대사는 노 대통령의 두 손을 잡은 채 “성과를 바란다.”고 화답하고 자리를 떴다.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의 이같은 의미심장한 언급에 대해 “우리가 진심으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에 전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마지막 방문국인 카타르에 도착해 하마드 빈 칼리파 국왕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관계를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동반자 관계로 확대하기로 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허종은 누구인가 허 대사는 2004년 3월 쿠웨이트에 부임했으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와 유엔주재 차석 대사를 역임한 한반도통 외교관. 그는 광복 후 월북, 북한최고인민회의 초대의장을 지내다 지난 51년 사망한 허헌의 아들이라는 전언이다.
  • [중계석] 중국의 정치력 확장 경계하자/정리 박홍기 도쿄특파원

    일본 방위성 산하 싱크탱크인 방위연구소가 연차보고서인 ‘동아시아 전략개관 2007’을 통해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전망했다. 또 아시아에서 중국의 정치력 확장에 대해 ‘공유할 수 없다.’며 강한 경계감을 표시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북한은 개발 중에 있는 핵무기를 완성시킨다는 차원에서도 추가 핵실험을 할 요인이 많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북한 미사일·핵문제 때문에 영향력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또 국제 사회에서의 역할 이행이 쉽지 않다.6자회담을 통한 외교노력이나 경제적 지원에도 불구,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해 중국의 체면을 구겼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과의 정상회담 개최나 6자 회담에서의 적극적인 역할 등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신질서를 구축함과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중국이 기존의 지역 질서에 만족하지 않는 만큼 미·일 양국은 중국에 기존의 질서를 수용하도록 촉구, 동아시아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은 군사 외교를 명목으로 러시아에서 주요 장비를 들여와 인민해방군의 전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군 근대화를 포함한 국방 정책의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됐다고 볼 수 없다. 국제 사회의 염려를 없애기 위해 국방비 등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한편 일본 외무성은 26일 각료회의에 보고한 ‘2007년판 외교청서’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에서 해결하도록 적시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규정한 뒤 “포괄적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 선적의 입항 금지 등 독자적인 제재 조치도 계속 유지키로 했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과 관련,“납치 문제를 포함한 북·일 관계에 진전이 있을 때까지 참가하지 않는다.”라는 기존 방침을 거듭 내세웠다. 정리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 인텔 中에 반도체공장 건설

    세계 최대의 반도체업체인 인텔이 25억달러(약 2조 3470억원)를 들여 중국에 반도체 칩 공장을 건설한다고 폴 오텔리니 인텔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26일 공식 발표했다. 26일 AP에 따르면 중국 북부 랴오닝(遼寧)성 항구도시 다롄(大連) 하이테크산업단지에 들어설 공장은 올해안에 착공,2010년 상반기 중 완공될 예정이다. 이곳에선 12인치(300㎜) 집적 웨이퍼 등이 생산된다. 인텔이 개발도상국에 웨이퍼 가공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중국 산업이 싼 임금에 의존하는 제조업에서 첨단부문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투자도 첨단산업 분야의 최대 외국투자다. 인텔의 이번 결정으로 중국에 이미 진출한 한국 하이닉스와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가공업체인 타이완 TSMC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오텔리니 CEO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과 정보·통신분야에서의 중요성이 더 무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뭘 했길래…” 사내가 파출소서 맞아죽었을까?

    “헉! 뭐라구요,공안(경찰)이 시민을 인명을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시민을 고문해 때려죽이다니!” 중국 대륙에 공안이 성폭행범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해 때려죽이는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 북부 간쑤(甘肅)성 핑량(平凉)시 좡랑(庄浪)현 파출소장과 민경(民警)은 성폭행 혐의로 덜미를 잡힌 동네 주민 리단단(李旦旦·54·가명)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해 죽인 혐의로 붙잡혔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 천룡(千龍)망이 22일 보도했다. 고문살해 사건은 지난 2004년 10월 발생했다.그해 10월10일 오전 농민 리씨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여중생 성폭행하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히면서 촉발된 것이다. 가을걷이로 돈이 조금 생긴 그는 즐거운 마음에 대낮부터 한잔 거나하게 걸쳤다.가을걷이도 대강 끝난 만큼 특별히 할일이 없어 무슨 재미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노량으로 동네를 배회했다.때마침 두고 온 물건을 가져 가기 위해 집에 들린 어린 여중생 왕징(王靜·14·가명)양을 본 순간,갑자기 욕정이 불타올랐다.그녀의 뒤를 따라 집을 들어간 리씨는 성폭행을 자행하다가 왕양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네 주민들에게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리씨가 동네 주민들에게 붙잡혀 좡랑현 파출소로 연행된 것은 10월10일 오후 1시쯤.리씨는 성폭행하다가 들켜 동네 주민들에게 3시간여동안 두들겨 맞아 거의 파김치가 된 상황이었다. 이에 좡랑현 파출소장 자완윈(賈滿運)과 민경 주쯔핑(朱自平)은 그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5시간 무차별 구타했다.이들은 그날 저녁 9시쯤 리씨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그는 다음날 11시쯤 집에서 숨졌다. 핑량시 중급인민법원은 이들 두 사람에게 죄를 적용,주쯔핑은 징역 10년·자완윈은 징역 8년을 각각 선고했다.이들은 불복해 간쑤성 고급인민법원에 항소했으나,고급인민법원은 ‘이유없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멀쩡한 처녀가 유부녀로 둔갑한 기막힌 내막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멀쩡한 처녀를 유부녀로 둔갑시키다니!” 중국 대륙에 한 30대 여성이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가 자신이 이미 결혼한 여자로 등록돼 있는 사실을 알고 법원에 소송을 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이 황당해 하고 있다. 이 ‘황당한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에 살고 있는 장훙(張紅·여·31·가명)씨.그녀는 지난해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정저우시 진수이(金水)구 인민법원을 찾았는데,자신이 이미 10년전 혼인신고된 유부녀임을 알고 화가 나 명의도용자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정주만보(鄭州晩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장씨가 동네친구 리메이(李梅)씨에게 신분증을 빌려주면서 촉발됐다.이씨가 장씨의 신분증을 가지고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지난 1996년 6월4일,리씨는 성인나이트클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며 절친한 동네친구인 장씨로부터 신분증을 빌렸다.이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소꿉놀이를 하며 커온 터수라 워낙 친한 덕분에 장씨는 흔쾌히 신분증을 리씨에게 빌려줬다. 친구의 신분증을 빌린 리씨는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장씨’로 행세했다.이어 정저우시 진수이구 인민법원으로 달려가 애인과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사실 이전부터 직장에 취업할 때도 ‘장훙’씨 이름으로 등록하고 장훙씨로 행세를 해왔다.리씨의 동료들은 모두 그녀를 ‘장훙’씨로 잘못 알고 있을 정도다. 리씨가 ‘장씨’행세를 한 것은 후커우(戶口·주민등록에 해당)에 자신의 생년월일이 몇년 어리게 등록돼 있어 성인 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이 때문에 그녀는 미성년자로 취급돼 직장에 취업하거나 혼인신고 등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리씨는 “훙의 신분증을 도용해 혼인신고한 사실은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린 마음에 할 수 없이 이같은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장씨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은 도용한 리씨를 상대로 공식 사과와 함께 정신적 피해보상금 2만위안(약 24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정저우시 진수이 인민법원은 리메이씨부부는 최근 장씨에게 구두 사과를 하고 인명 도용에 따른 정신적 피해보상금 5000위안(60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노대통령 이해찬前총리 방북결과 보고 비공개…남북정상회담 깊은 얘기?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로부터 최근 방북결과를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 홍보수석은 “이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면담한 내용과 직접 느낀 북한의 분위기를 한 시간여 동안 설명했다.”고 전했다. 윤 수석은 “이 전 총리가 그간 언론에 보도됐던 정상회담 관련 문제는 (북측과)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눈 의견이라고 말했다.”면서 “그간 언론에 보도된 것 이외에는 추가로 보고할 내용이 없다고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는 이날 하루 일정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돌아온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배석해 더욱 주목을 끌었다. 윤 수석의 브리핑 내용만 보면 다소 알맹이가 빠진 감이 없지 않다. 이 전 총리의 방북 자체가 뜨거운 논란이었고 이면에는 ‘남북정상회담 성사용 방북’,‘노 대통령 특사설’이 끊이지 않았던 점에 비춰봤을 때다. 이 전 총리도 방북 직후 “2·13 합의가 순조로울 경우 4월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윤 수석은 “면담석상에는 노 대통령과 이 전 총리, 백 실장 등 세 분만 참석했기 때문에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외 별도내용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해 깊숙한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만약 정상회담 문제가 면담 테이블에서 거론됐다고 하더라도 남북관계를 6자회담의 종속변수로 설정해온 노 대통령이 이 전 총리에게 ‘쓴소리’를 했을 것이라는 또 다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이날 열린우리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강연에서 “(2·13 합의에 따른 핵폐기)초기 조치가 완료되고 북핵폐기 로드맵이 구체화하는 시점에서 남·북·미·중 4개국 정상회담을 열어 동북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어린 여중생과 동거하면 무슨 죄가 될까요?

    “뭐요,강간죄라고요? 너무 억울합니다.우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앞으로 평생 해로할 작정인데 무슨 죄가 된다고 그럽니까.” 중국 대륙에 어린 10대 소녀와 동거생활을 하다가 강간죄를 선고받은 20대 남성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상하이(上海)시 자베이(閘北)구에 살고 있는 차이밍(蔡明)씨.그는 부모님의 묵시적 동의로 미성년자인 나이 어린 여중생과 동거생활을 했다는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최근 보도했다. 차이밍씨가 동거녀 샤오이(曉怡)양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5년 11월 어느날.차이씨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장닝루(江寧路)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아리따운 한 소녀를 만났다.그녀의 이름은 ‘샤오이’였다. 늘씬한 몸매에다 길게 기른 생머리 덕분에 성숙한 아가씨로 보이는 샤오이를 본 순간,차이씨는 그만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그의 평소에 생각하던 ‘이상형’이 나타난 까닭이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다잡은 다음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이에 샤오이양도 날렵한 인상에 그윽한 눈길로 보는 차이씨가 마음에 들어 서로의 앙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이 꽂혔다. 이들의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으로 달아올랐다.그러던 어느날,차이씨는 그녀가 14살인 1992년생,이제 여중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실에 화들짝 놀란 차이씨는 샤오잉양이 너무 어려 도저히 사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헤어질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은 더욱 증폭돼 도저히 헤어져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의 만남이 하룻밤 풋사랑인 엔조이 상대라기보다 순수한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 두 사람은 결국 성관계를 갖는 등 넘지 못할 선도 넘고 말았다. 이후부터 샤오이양은 차이씨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그녀는 이미 3년전 집을 가출,혼자 살고 있는 ‘싱글족’ 학생인 까닭에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1개월여가 지나면서 그녀는 옷가지 등 자신의 물건을 갖고와 차이씨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는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샤오이양의 학교로 가 그녀를 데려오는 등 애정을 과시했다.이같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한 차이씨 부모도 그와 샤오이양이 동거를 할 수 있도록 방 한칸에 내주며 깨끗이 도배를 해 신접살림을 차리도록 도와줬다.정식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그 어느 부부 못지않게 행복한 신혼살림은 꾸려나갔다. 그러나 이들 두사람의 ‘행복한 신혼 살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샤오이양의 부모가 그녀를 찾기 위해 샤오양의 친구집에 찾아갔다가 이미 떠나버리고 없어 공안(경찰) 당국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상하이 자베이구 인민법원은 부모의 동의 아래 동거생활을 해왔지만,샤오이양이 너무 어린 미성년자인 탓에 차이밍씨에게 강간죄를 적용,징역 3년형을 선고했으나 정상을 참작해 3년유예한다고 판결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중국 해양대국 실현 ‘야심’

    중국 해양대국 실현 ‘야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예상과 관측으로만 제기됐던 중국의 항모 건조설이 중국의 장관급 고위 당국자에 의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대양으로의 팽창이 가속화되는 것으로 미국, 일본, 인도 등 주변국들의 신경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장윈촨(張雲川) 국방과학공업기술위원회 주임은 지난 16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이 열린 인민대회당에서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자체 기술로 항공모함을 연구, 제작하고 있으며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2010년 이전에 항공모함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항공모함 건조설에 대한 질문에 “국가의 해상안전 보위, 영해 주권 및 해상 권익 수호는 중국 군대의 신성한 임무”라면서 “해상안전 보위와 영해주권 수호를 위해 항공모함 건조를 추진할 수 있다.”는 애매한 말로 답했었다. 중국의 항모 건조는 그간 여러 갈래에서 예상됐던 일이다. 미국 군사연구 기관 등은 2002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도입해 다롄항에 정박돼 있던 러시아제 6만 7500t급 바랴크호에 대해 항모 개조작업이 진행중이라는 설을 제기했었다. 홍콩 매체들은 “중국이 자체 항모설계를 마쳤으며 상하이 인근 창싱다오의 장난 조선소에서 2008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항모건조에 착수했다.”고 보도해왔다. 중국으로선 항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왔다. 동중국에서는 일본 등과 영토 및 자원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남사군도 영유권 분쟁 등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 긴장을 빚고 있다. 태평양 인도양 등에서 경제 급성장에 따른 석유 등 에너지 공급로와 상품 수출로 확보도 절실하다. 중국은 지난해 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최근 실전 배치된 최신예 한국형 구축함 ‘왕건함’(4500t급)의 제원과 전력을 상세히 분석할 정도로 이 문제에 민감해 있다. 당시 “한국 해군의 흥기가 서태평양에 대형 군함이 운집하는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만들고 있다.”며 한국에 대해서도 경계감을 드러냈을 정도다. jj@seoul.co.kr
  • 北 박용석 당 중앙위 검열위원장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박용석(80) 위원장이 17일 사망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18일 보도했다.중앙방송에 따르면 노동당 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부고를 통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인 박용석 동지가 불치의 병으로 17일 오후 3시 80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정무원 총리, 부주석 등을 역임했던 김일(본명 박덕산)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 중국 올 첫 금리 0.27%P 전격 인상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이 18일부터 금리를 0.27%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올 들어 첫번째이지만 지난 11개월간 세번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17일 금융기관의 1년 정기예금 기준금리는 2.79%로, 대출 기준금리는 6.39%로 각각 0.27%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중국 건설부는 주택대출금리도 0.18%포인트 상향조정했다. 이같은 조치는 경기과열과 물가상승에 뒤이은 것이다. 지난 2월 월간 기준으로는 사상 두번째로 많은 237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06년 연평균 1.5%를 훨씬 웃도는 2.7%를 기록했다.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도 과잉 유동성으로 불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인플레 압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시중의 돈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25일 올 들어 두번째, 지난해 7월 이후 다섯번째로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올렸었다.jj@seoul.co.kr
  • 中 사유재산 인정·외자기업 혜택 철폐

    中 사유재산 인정·외자기업 혜택 철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제10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5차회의가 16일 오전 ‘물권법’과 ‘기업소득세법’을 통과시킨 뒤 공식 폐막했다. ●사유재산 인정으로 빈부격차 커질 듯 물권법은 이날 표결에서 전체 참석 대표 2878명 가운데 찬성 2799표, 반대 52표, 기권 37표로 통과됐다. 중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국·공유재산과 사유재산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내용의 이 법안은 오는 10월1일부터 시행된다. 물권법은 1993년 논의를 시작해 2002년 12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심의한 이후 8차례의 심의과정을 거쳤다. 중국 입법 사상 가장 많은 심의가 이뤄진 법안이다. 법안은 주택용 토지 사용기한이 만료된 뒤 사용권을 자동 연장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거래가 더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되지만, 사유재산 인정으로 중국이 당면한 빈부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기업 소득세법은 찬성 2826표, 반대 37표, 기권 22표로 통과돼 내년 1월1일 발효된다. 내·외자기업의 소득세를 25%로 통일하되, 첨단기술 등 일부 외자기업에 대해서는 종전의 우대세율이 일정기간 적용된다. 외자우대 세제는 5년간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2013년에 완전히 폐지된다. ●내년부터 여성대표 22%이상 선출 이날 함께 통과된 ‘제11기 전인대 대표 정원 및 선거문제에 관한 결정’은 내년 1월 실시하는 제11기 전인대 대표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정한 수의 ‘농민공(농민 출신의 도시근로자)’ 대표를 뽑고, 여성 대표를 22% 이상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이로써 제10기 전인대는 다섯차례의 연례 회의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이번 전인대는 올 10월 중국공산당 제17기 전국대표대회를 위한 양호한 환경 및 조건 마련,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에 목표가 맞춰졌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이날 전인대 폐막 후 인민대회당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일·북 양국간의 일”이라면서 이 문제와 6자회담을 연계하는 것을 경계했다. 원 총리는 “일본인 피랍자 문제에 대해 중국이 앞으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느냐.”는 일본 기자 질문에 “중국이 일본인 피랍사건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동정과 이해를 표시한 바 있으며, 양국이 교류와 담판을 통해 순리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 총리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만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의 개인적인 미래에 관한 대화와 협상의 문호는 항상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달라이 라마가 국가통일과 티베트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국가분리 기도를 포기한다면 대화와 협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j@seoul.co.kr
  • “한국서 모국어 제대로 배우겠다”

    “복서 생활을 마치는 데 쓸쓸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북한 국적의 첫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홍창수(32·일본명 도쿠야마 마사모리)가 링을 떠났다.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홍창수는 지난 15일 일본복싱위원회(JBC) 관서사무국에 은퇴서를 냈다. 통산전적 32승(8KO)3패1무. 기자회견에서 그는 “(WBC 밴텀급 도전자에) 지명되지 않은 걸 보고 은퇴를 결정했다.”면서 “인생의 절반을 바친 복서 생활을 마치는 데 쓸쓸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2000년 8월 한국의 조인주를 꺾고 WBC 슈퍼플라이급 왕좌에 올라 북한 국적으로는 사상 첫 프로복싱 세계챔프가 된 홍창수는 북한으로부터 노력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냉대를 받았다. 역대 일본 선수 가운데 세 번째 ‘롱런’인 8차 방어에 성공하는 등 복싱 실력은 인정했지만, 벨트에 ‘ONE KOREA’라는 글자를 새긴 채 선전하는 그가 눈에 고울 리 없었기 때문. 한때 잃었던 타이틀을 2005년 7월에 되찾은 뒤 지난해 2월 1차 방어에 성공한 그는 “슈퍼플라이급에서 할 일은 다했다.”며 지난해 말 타이틀을 반납했고, 한 체급을 올려 밴텀급 도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WBC 밴텀급 챔피언 하세가와 호즈미(27)가 4차 방어전 상대로 자신이 아닌 심피웨 베치카(남아공·5위)를 14일 지명하자 은퇴를 단행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홍창수는 조만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방한한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한국에서 모국어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관서일본 복싱계에 보은하고 싶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민생의 이면/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지난 5일은 천안문 광장 일대에 가장 많은 오성홍기(五星紅旗)가 내걸리는 날이었다. 그 많은 깃발들이 다리미로 다려놓은 듯 깃대와 직각으로 펼쳐졌다. 바람이 연출한 장관이었다. 여간해선 펴지지 않는 광장 중앙의 초대형 깃발도 힘차게 나부꼈다. 바람 많은 베이징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5차회의는 이런 가운데서 시작했다. 이보다 하루 앞서 개막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함께 이번 양회(兩會)는 ‘민생’이라는 단어로 출발했다. 물론 중국 언론이 내건 표제어다. 많은 서방 매체들도 이에 초점을 맞춰 이번 양회를 보도했다. 지난해에 이어 투명성도 강조됐다. 하지만 올 양회는 범상치 않은 바람만큼이나 예전과 다른 이면을 보여줬다. 우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글이 느닷없다.‘사회주의 초급단계의 역사적 임무와 대외정책의 몇가지 문제에 관해’라는 제목의 글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분석처럼 그저 “최근 잇따르는 민주화 압력과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개혁 요구에 대한 당국의 공식 반응”일 뿐인가. 발표 시점이나 공개 장소도 없이 2월27일자로 국영 신화통신이 전재한 형식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취임 이래 이같은 방식으로 글을 낸 적이 없다. 이처럼 이례적인 일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비정상적 상황은 비정상적인 인사(人事)로 대변된다. 오는 10월 열리는 17차 당대회는 4세대 지도부의 2기 출범식.3세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따라서 각 성(省)의 서기와 성장 인사가 마무리돼 힘의 토대가 구축돼 있어야 할 때다. 그러나 인사는 지금까지 14곳에서만 이뤄졌다. 예전 같으면 이미 지난해 말에 다 끝나야 할 일이다. 한 중국 인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했다. 내부적으로는 오는 6월까지 정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지지만, 그마저도 달성될지 의문이다. 각 단위에서 이른바 ‘미세 조정’까지 마치려면 시간이 급하다.‘후진타오(胡錦濤) 2기’가 자신만의 실핏줄 조직을 갖지 못한 채 출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사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후 주석의 힘이 과거 전임자들만큼 충분치 못하다는 방증으로 여겨진다. 일각에서는 그만큼 인사에 대한 예측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과연 9인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7명으로 줄어들 것인지, 쩡칭훙(曾慶紅)은 살아남을 것인지, 새 상무위원의 반열에는 누가 오를 것인지, 반부패 수사의 칼날은 어디까지 겨눠질 것인지…. 인사는 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인사는 당사자들의 주변 사람과 그들의 대규모 사업, 얽히고설킨 그들의 네트워크를 운명짓는다.“주요 인사들은 지금 모두 살얼음을 걷듯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 지난 2월의 춘제(春節)에 묻혀 조용히 지나갔던 덩샤오핑(鄧小平) 서거 10주년에 대해서도, 혹자는 “제 앞가림에 정신이 없는데 추모고 뭐고 신경 쓸 틈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이쯤 되니, 원자바오 총리의 글은 “1차적으로 후 주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어떤 노선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선언한 행동이란 해석이다. 지금 중국의 핵심부가 얼마만큼 민감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17차 당대회의 중요성과 민감성을 두고 한 경제계 인사는 “올해 당 대회 이전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당 지도부의 물갈이는 아예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환율도, 증시도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도 이 기간만큼은 잠잠해야 한다.16일 양회가 끝났다. 중국 핵심부의 소리없는 전투는 진행형이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 [BDA계좌 논란 종지부…새 전기맞은 북·미 관계] 마카오 정부 “BDA 경영관리 연장 계획”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가 16일 북한계좌에 관한 입장을 발표키로 했다.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베이징 회의에 참석한 스탠리 아우(區宗傑) BDA 회장은 15일 “내일 오전 마카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북한자금 해제 규모는 일단 여기서 파악될 전망이다. 마카오 정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조만간 BDA 및 북한 동결계좌 등에 대한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카오 정부는 BDA에 대한 경영관리를 연장할 계획이라고 공개했다.“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예금주 이익을 보호하고 금융체계의 안정을 유지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BDA가 이미 금융기관으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만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간판을 바꿔 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BDA는 이같은 긴장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상 영업 중인 은행은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미국의 돈세탁 은행 지정이 현실화되자 직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대변인은 이날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다른 직원들은 “북한 관련 일은 잘 알지 못하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직원들은 북한계좌 문제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역력했다. 직원들은 최근 영업상황이 개선돼 오랜만에 보너스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jj@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과 몽골의 연합군마저 물리친 누르하치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하다, 호이파, 울라 등 해서의 여러 부족들을 강온(强穩), 양면으로 통제하여 가장 강한 예허부(葉赫部)를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당시 해서여진이 누르하치에게 맞서려면 4부 사이의 단결이 절실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 사이의 알력 때문에 누르하치에 대해 연합전선을 펼 수 없었다. 하다, 호이파, 울라는 차례대로 누르하치에게 각개격파되었고, 혼자 남은 예허는 결국 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누르하치는 예허의 그 같은 전략을 꿰뚫었다. 그는 해서여진을 공략하는 동안, 자신을 견제했던 명에 몸을 낮추었다. 명의 견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여 명분을 축적하고, 내실을 다졌다.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기 위해 숨고르기를 했던 것이다. ●하다와 호이파를 멸망시키다 1599년 하다의 국주(國主) 멩게불루는 예허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하게 되자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멩게불루가 셋째아들을 볼모로 보내자 누르하치는 2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하다를 원조하려 했다. 다급해진 예허는 개원(開原)에 주둔한 명군 지휘부를 움직여 멩게불루를 질책했다. 누르하치와 동맹을 맺은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멩게불루에게 자신을 딸을 아내로 주었다. 멩게불루는 예허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의 동맹을 철회했다. 누르하치와 예허, 명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의 ‘눈치보기’였다. 격분한 누르하치는 하다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멩게불루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명이 개입했다.1601년 명의 만력제(萬曆帝)는 사신을 보내 누르하치를 질책하고, 하다의 유민들을 멩게불루의 아들 우루구다이(武爾古岱)에게 반환하라고 강요했다. 누르하치는 명의 요구에 따라 유민들을 송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허가 하다를 공격하여 우루구다이를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누르하치는 명에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 자신이 하다를 격파한 것은 문제삼고, 예허의 침략은 그냥 넘어가는 이중적 태도를 따졌다. 하지만 명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은 삼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호이파를 정벌하는 과정도 하다의 경우와 유사했다.1607년 9월, 호이파의 신료들이 모반하여 예허로 귀순하자, 국주 바인다리는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7명의 볼모를 보내왔다. 그러자 예허는 바인다리에게 “누르하치에게 볼모 보낸 것을 취소하면 귀순한 자들을 송환하겠다.”고 제의했다. 바인다리는 예허에게 속아 누르하치에게 다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누르하치는 결국 정벌에 나서 바인다리 부자를 살해하고, 호이파를 병합했다. 예허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울라 격파와 조선에 미친 파장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해서 부족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울라였다.1596년, 울라에서 내분이 일어났을 때 누르하치는 자신이 억류하고 있었던 부잔타이(布占泰)를 송환하여 국주로 즉위시킨 바 있다. 부잔타이는 누르하치의 은혜에 감사하여 혼인 관계를 맺고 동맹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수시로 향배를 바꾸어 배신과 복종을 반복했다. 부잔타이는 국주가 된 이후 모두 7차례나 누르하치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누르하치 또한 자신의 딸을 포함한 세 명의 여인들을 부잔타이에게 아내로 주어 다독였다. 부잔타이는 끝내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양단을 걸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누르하치가 압박하여 곤경에 처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조선에 손을 내민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610년, 누르하치의 압박 때문에 위기에 처하자 부잔타이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직첩(職帖)을 하사해주고 교역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울라의 세력은 두만강 너머까지 미치고 있었는데 광해군(光海君)은 부잔타이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그에게 직첩을 주고, 관복을 하사했다. 광해군의 의도는 그들을 회유하여 두만강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해군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를 보면 당시 조선 조정은 누르하치와 해서 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변의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1610년 2월14일의 경우,‘이 오랑캐가 겉으로는 누르하치와 화해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 형상이 있다. 예허와의 중간 길이 끊기고, 교역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에 우리나라 변방에서 교역하기 위해 우리의 의도를 떠보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참으로 정확한 정세 판단이었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이 같은 정보를 기초로 누르하치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했다. 나아가 곧 닥쳐올 ‘누르하치와 명의 대결’이라는 파장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팔기제(八旗制)를 완성하다 누르하치는, 향배가 무상했던 부잔타이를 공격하여 1613년 마침내 울라부를 멸망시켰다. 예허만 빼놓고 해서여진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르하치는 이윽고 1616년, 국호를 아이신(金)으로 고치고, 칸(汗·한)으로 즉위했다. 바야흐로 12세기 한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아구다(阿骨打)의 위업을 계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지배하는 종족이 다양해지고,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통치 체제가 필요했다. 주목되는 것은 바로 팔기제(八旗制)였다. 팔기제는 니루(牛)라는 만주족 고유의 조직에서 기원했다. 만주인들은 수렵 등을 나갈 때 10명을 한 조로 삼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뽑아, 그를 니루라고 불렀다.‘니루’란 ‘큰 화살’을 뜻한다. 누르하치는 성년 남자 300명을 1니루로,5개의 니루를 1자란(甲喇)으로, 다시 5개의 자란을 1쿠사(固山)로 편제했다.1쿠사는 결국 7500명인 셈인데 그것을 한자로는 기(旗)라고 했다. ‘기’는 군사조직이자 정치, 사회조직으로 모든 만주인은 예외 없이 여기에 소속되었다. 각 기에는 고유한 깃발이 있는데 황색, 백색, 홍색, 남색만으로 제작된 것을 정기(正旗), 황색, 백색, 남색 깃발에 홍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과 홍색 깃발에 백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을 양기(旗)라고 한다. 1616년 누르하치는 본래 4기였던 것을 8기로 확충했다. 해서여진을 통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귀순해 오는 한족과 몽골족이 늘어나면서 한군팔기, 몽골팔기가 등장했다.“나가면 병사가 되고 들어오면 인민이 되는(出則爲兵 入則爲民)” ‘군민일체’,‘군정일체’의 팔기제의 효용성은 엄청났다. 평소 일상 생활과 전쟁에 동시에 대비할 수 있게 편제된 팔기제 아래서 후금(後金)의 백성들에 대한 통제력과 전투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당시 쇠망의 조짐이 뚜렷했던 명군이, 조직화된 팔기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팔기는 1644년, 청이 베이징으로 입성한 뒤에도 중원(中原)을 제압하고 통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원 장악 이후, 팔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기인(旗人)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별도의 호적에 편입된 특수 신분이 되었다. 그들은 기지(旗地)라 불리는 토지를 하사 받고, 그들만을 위한 독자적인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중원 입성 이후 기인들은 오로지 만주어를 익히고 궁술(弓術)을 연마하여 관리나 군인으로 등용되었다. 다른 농공상의 직업을 갖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특권도 컸지만 의무도 명확했다. 기인들에게 만주어를 익히게 하고, 궁술을 연마시킨 것은 결국 만주족이 지닌 정체성과 야성(野性)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수십만에 불과한 만주족이 1억 이상의 한족을 270여년이나 통치할 수 있었던 비책이기도 하다. 요컨대 1616년, 팔기제를 완성하면서 누르하치는 명과 일전을 겨룰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던 셈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발언대] 역사속으로 사라진 ‘러 혁명기념일’/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객원교수·역사학 박사

    사회주의이념 혁명을 최초로 성공시켜 노동자 농민의 천국을 이룩했다는 러시아의 ‘10월 혁명기념일’은 러시아의 구력(舊曆)으로 1917년 10월25일 레닌이 영도하던 공산당의 전 명칭인 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에 의해 노동자와 군인의 봉기로 성공한 날을 기념한 날이다. 러시아는 이후 오랜 기간 공산당 정권의 유지를 위해 외부와 단절하는 폐쇄정책을 시행하다 1980년대 말 폐쇄정책에 한계를 느낀 소련 최후의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개방이 되었다.1991년 외부세계에 눈을 뜬 인민의 저항을 견디지 못해 74년 동안 국가의 상징이었던 혁명으로 흘린 붉은 피와 노동자 농민의 낫과 망치가 그려진 국기를 내리고 15개 공화국은 각각 독립국가로 해체되고 말았다. 신생 러시아는 국호를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개명하고 매년 국제적으로 성대한 행사를 해오던 ‘10월 혁명기념일’을 1991년부터 ‘화해와 화합의 날’로 개칭하였다. 그러다가 2005년에는 10월 혁명이 발생한 11월7일을 국경일에서 슬그머니 빼버렸다. 그 대신 11월4일을 ‘인민화합의 날’이라는 새로운 국경일로 제정하였다.10월 혁명이 이념만을 앞세워 계층간에 분열과 숙청으로 극단적인 상호 증오심과 반목을 조성하고 획일적 집단주의와 폐쇄적 정책으로 인간의 창조적 정신과 자유를 말살해 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반목과 증오심을 종식하고 신생 민주주의 국가건설에 다같이 화합하여 참여하자는 뜻에서 ‘인민화합의 날’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소련제국의 해체를 합의한 6월12일을 ‘독립의 날’이라고 선포하였다. 이제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은 국가 발전의 낙후와 이념 투쟁으로 많은 상처만 남겨놓고 한 시대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거꾸로 한국사회는 러시아에서 폐기 처분된 이념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원인과 목적이 무엇이든 극심한 국론의 분열과 반목은 국가 발전의 암이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시행한 ‘국민 화합의 날’을 교훈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객원교수·역사학 박사
  • [6者 ‘2·13 합의’ 한달] ‘초기 이행’ 순항… 美·中·日 입장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2·13합의’가 13일로 한 달을 맞는다.‘60일 이내 북한과 미국의 초기단계 이행 조치 합의’를 위한 북·미 양국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지난 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도 ‘이행 조치’를 향해 한 걸음 전진했다는 평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도 북핵 시설의 사찰을 위해 13일 방북하는 등 합의 이행을 위한 행보가 다각적으로 진행 중이다.2·13 합의 한달을 맞아 미국, 중국, 일본 등 6자회담의 주요 합의 당사자들의 입장을 살펴봤다. ■ 미국 - HEU등 핵문제 해결 낙관적 기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국은 2·13합의의 초기이행 목표 달성에 낙관적인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지난 6일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뉴욕회담을 마친 뒤 이 같은 기대감을 확인했다. 그는 당시 “회담이 매우 유익했다. 양측이 ‘2·13 합의’에서 60일간 이행토록 규정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북·미 관계정상화의 걸림돌이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 해제에 대해 미국은 파격적일 정도의 긍정적인 자세로 선회했다.BDA에 동결된 북한 계좌 50개, 자금 2400만달러의 전면해제를 결정하고 발표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 외교 해결의 성의를 보이고 북한의 상응하는 대응, 즉 핵폐기 행동을 기다리겠다는 ‘빅 딜’의 자세다. 사실상 2·13합의의 전반부 조치는 미국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도 그 중 하나다. 동맹국 일본의 태도가 주요한 변수지만전과 다른 전향적인 태도여서 일본의 애를 태우게 하고 있다. 미국은 2단계 핵심과제인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및 불능화, 경수로 등 대북 추가지원 문제까지도 발빠르게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2년 제네바 기본합의 파기의 단초가 됐던 고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 문제에 대한 입장에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힐 차관보는 2·13 합의 후 “북한이 HEU 프로그램 관련 장비를 사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이용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진전시켰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며 해결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한 달 동안 두드러진 또 하나의 변화는 양측이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보다 큰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른 시일 내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 메커니즘을 창출하는 절차가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미국 입장이다. dawn@seoul.co.kr ■ 중국 - ‘6者 주도’ 가시적 성과에 만족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전반적인 국면에서 볼 때 양호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6자회담의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의 ‘2·13 합의’와 그 이후 진행상황에 대한 평가다. 최근 중국 네트즌과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일단 2·13 합의라는 가시적 성과에 대단히 만족해하고 있다. 중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6자회담의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의외로 조심스러운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일단 방향의 가닥은 잡았으되, 급가속을 밟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국쪽의 시각이다. 이 같은 전망은 논의가 진전될수록 핵심은 한층 더 북·미 관계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북·미 수교에 문제와 관련,“반세기 적대 관계 해소를 위한 일보”로 평가하면서도 “장기적인 레이스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영 신화사의 논평에서부터 관련 전문가까지 편차는 있으나 맥락은 한결같다. 우다웨이 부부장도 “향후 어떤 속도로 진전될 것인가는 참가국들이 협의 여하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으나, 결국 속도의 결정 주체인 북·미간의 협상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미간의 신뢰가 하루 아침에 다져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문제가 발생한다면 양국간 ‘신뢰’의 틈에서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예상들을 하고 있다.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6일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초청 기자회견에서,“합의의 이행은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부단한 발전을 촉진하는 데는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 수호에 중대한 의의가 있다.”면서 회담 참가국 모두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었다. jj@seoul.co.kr ■ 일본 - ‘납치문제 집착’ 국제고립 우려 심화 |도쿄 이춘규특파원|6자 회담에서도 일본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에 의한 자국민 납치문제였다. 이는 2·13합의 이전부터 일관된 태도였다. 여기에는 일본의 국내정치적 요인이 작용한다. 일본인 납치문제는 아베 신조 총리 집권의 결정적 ‘공신’이었다. 아베 총리는 ‘북한 때리기’를 통해 총리직에 올랐다. 집권 후에도 납치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납치문제에 관한 입장은 변할 기미조차 없다.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6자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어떤 경제·인도적 지원이 결정되어도 응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래서 2·13합의에 따라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가 설치되고 양자 접촉이 13개월 만에 재개됐다. 그러나 일본측은 납치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북한은 이미 해결됐다고 팽팽하게 맞서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가 급전전한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일본이 6자 회담의 핵심 의제인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자국의 정치적 과제인 납치문제에 집착하면서 6자 회담의 다른 참가국들은 물론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그래서 일본의 고립을 우려하는 소리가 정권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납치문제는 중요한 인권문제라며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내외의 시각을 부정한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며 이를 ‘일본 고립’의 노림수라고 비판한다. 2·13회담 합의에 따라 설치된 5개의 실무회의 가운데 북·일 회의만 일본이 납치문제를 고집, 진전이 없다는 인상을 주도록 북한이 유도해 참가국 가운데 일본을 고립시키려 한다는 항변이다. 일본은 북한의 태도가 7월 참의원선거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 taein@seoul.co.kr
  • 연내 1달러=7위안 밑돌듯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이 12일 “위안화 환율의 유연성을 확대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이에 따라 달러 대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74위안대 안팎에서 연내 7위안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한 경제소식통은 이날 “중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7.0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저우 행장은 이날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점진적으로 위안화 환율제도를 개혁하는 한편 금융개혁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면서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추가로 개선할 것이고, 위안화 환율 유연성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환시장 개혁을 위해 장외시장에서 위안화 파생상품을 도입하고 중국외환중개시스템을 통해 위안화 선물상품을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저우 행장은 “국유 은행 개혁이 중대 돌파구를 마련했다.”면서 “긴급대출을 받은 3개 국유 은행 외에 다른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올해 추가로 긴급대출과 구조개혁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jj@seoul.co.kr
  • X은 묻지마 발바리? 10~50대 무차별 성폭행

    “나는 미모나 연령을 따지지 않습니다.그냥 치마만 두른 여자라면 모두 좋은 ‘사냥감’이죠.” 중국 대륙에 한 20대 남성이 모색이나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무차별 성폭행하는 이른바 ‘잡식성 묻지마 발바리’가 등장,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시에 살고 있는 20대 남성은 지난 10년동안 10대∼50대 여성 40여명을 무차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영어(囹圄)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활보(生活報)가 최근 보도했다. 이 ‘잡식성 묻지마 발바리’는 다칭시 두얼바이터 몽골족자치현에 살고 있는 자오페이(趙非·29).키꼴이 설멍한 그는 모색이 해사하고 반반한 탓인지 ‘얼굴값’을 톡톡히 해냈다.특히 조신한 아내까지 두고 있는 멀쩡한 유부남이다. 경찰 조사결과 ‘종자’는 장장 10년 가까이 다칭시 전역에서 1년에 4∼차례씩 무려 4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아직 꽃망울도 피우지 못한 14살까지 소녀 등 10대 초반부터 5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상대 여성의 미모나 연령에 상관없이 무차별 범행을 자행했다. 그가 ‘발바리’ 길로 들어선 것은 10년 전인 지난 1997년.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도색잡지와 소설,영화에 빠진 ‘종자’가 집에서 핀둥거리던 19살 때였다.혈기방장한 그는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10대 후반의 소녀를 덮친 게 ‘잡식성 묻지마 발바리’로 ‘양명(揚名)’하는 도화선이 된 셈이다. 10년 가까이를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잘도 빠져나가던 자오가 붙잡힌 것은 성공에 따른 지나친 자만심이 화근이 됐다.같은 여성에 대해 여러차례 성폭행을 자행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지난해 8월 27일 오후 7시쯤 다칭시 두얼바이터현.종자는 길거리서 늘씬한 몸매에 미니 스커트를 입은 천훙(陳紅·가명)씨를 보고 한눈에 반해 뒤를 살금살금 밟았다.그녀는 홀로 사는 싱글족이어서 ‘희생의 제물’에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몰래 문을 밀고 들어가 자오는 고대 문을 닫아걸고 그녀를 덮쳤다.힘에서 밀린 천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이때 천씨는 “만일 다음에도 오면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종자는 이를 비웃으며 또다시 그녀를 덮치자,분노한 천씨가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차디찬 쇠고랑을 차게 됐다.다칭시 중급인민법원은 죄질이 악랄한 자오페이에게 강간죄를 적용,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 기자 khkim@seoul.co.kr
  • “이해찬 전총리 김영남 면담때 김정일에 모종의 서신” 盧대통령 친서 전달 가능성

    “이해찬 전총리 김영남 면담때 김정일에 모종의 서신” 盧대통령 친서 전달 가능성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서울 구혜영 기자|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깊숙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한 유력한 소식통은 11일 “이 전 총리가 김영남 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모종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친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것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는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편지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범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리 방북 전 참여정부와 김대중 전 대통령간에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라면서 이같은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7∼10일 방북했던 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특사가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방북기간 중 북측 인사들과 남북정상회담 성사 조건 및 시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눴다고 밝혀 향후 진전상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이 전 총리의 특사 역할을 거듭 부인했다. 북한 방문을 마치고 지난 10일 베이징에 도착한 이 전 총리는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4월 중순 이후에는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구체적인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 시기를 공식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 전 총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북핵 관련 초기 이행계획의 진행을 봐가면서 이행조치 기한인 60일이 끝난 이후 판단할 사항’이라는 제 생각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말해 북측 관계자들과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했음을 인정했다. 이는 이 전 총리가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2·13 초기조치 이행의 연관성에 대해 북측에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는 이어 “정상회담은 6자회담과 병행해 가는 것이며 초기단계 이행계획이 끝나고 검토·논의가 가능하다는 데는 북한도 별 이의가 없었다.”고 전했다. 북측 관계자들과 정상회담 개최 필요성 및 전제조건, 시기 등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음을 시사한다. 이 전 총리는 또 “3월중 북·미관계 신뢰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이행 행동들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북쪽이 ‘2·13 합의’를 이행하려는 태도가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북측의 2·13합의 이행과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가 밀접하게 연계돼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의 약속이행에 따른 남북정상회담의 조기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전 총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만날 예정도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 위원장, 최승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만났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11일 이 전 총리가 “4월 중순 이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발언과 관련,“‘뒷거래’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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