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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쌀한’ 쿨 재팬의 속살

    ‘아쌀한’ 쿨 재팬의 속살

    유럽으로 여행을 가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르는 것은 필수 코스다. 그래서 유럽 미술관 기행을 다룬 책이 많이 나왔고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미술관이라 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일본에서는 미술관을 가기보다는 쇼핑, 온천을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트, 도쿄’(최재혁·박현정 지음, 북하우스 펴냄)는 미술사를 공부한 부부가 7년 가까이 산 일본 도쿄에 바치는 애정 고백이자 헌사다. 일상의 도시 도쿄와 직업처럼 느끼게 된 전공 영역인 미술을 미술관이란 공간에 효과적으로 버무리고자 동원한 것은 ‘기억과 편애’라고 저자들은 밝힌다. 책은 부부가 거주했던 우에노의 한 고양이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저자들은 미술관 최대 집결지인 우에노에 학교가 있는 덕분에 눈이 실컷 호강했다고 말한다. 미술사 전공자들이지만 책은 오히려 ‘도쿄에서 내가 반한 미술관 소개’에 가깝다. 미술사에 눈 밝은 이들의 소개이기에 더 신뢰가 간다. 세계적인 명성의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재개발 쇼핑몰 정도로만 인식됐던 오모테산도 힐스에 대해서도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라주쿠와 아오야마를 잇는 거리에 80년 가까이 있던 ‘아오야마 도준카이 아파트’가 철거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고, 오사카 출신 건축가 안도도 마찬가지였다. 안도는 상업공간인 오모테산도 힐스 끝에 아파트 일부를 복원했다. “바보 같은 일”이란 세입자와 소유주들의 반대에 “공공에 대해 그 정도는 낭비할 책임이 있다.”고 안도는 맞섰다. 과거의 기억은 오모테산도 힐스 안쪽에도 남아 있다. 28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화랑 ‘갤러리 412’의 낡은 문이 아직도 화랑 입구에 걸려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은 집의 한가운데에 지붕 없는 정원을 만들어 자연을 집안에 끌어들인 스미요시 주택을 설계하기도 했던 안도는 “춥다.”는 거주자들의 불평에 “옷을 더 껴입든지 운동을 하라.”고 했다. 책은 안도의 건축물에 대해 “그가 꿈꿨던 ‘재생’이 실현되고 있다.”고 평했다. 한류 이전에 일본인들은 ‘쿨 재팬’으로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대중문화를 비롯해 문학, 미술, 디자인, 패션, 건축, 음식에 이르기까지 외국을 겨냥한 문화 캠페인을 벌였다. 일본인들은 ‘쿨 재팬’의 출발을 프랑스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민속화 ‘우키요에’로 꼽았다. 우키요의 원래 의미는 근심 어린 세상(憂世)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힘든 세상, 즐겁게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같은 발음의 우키요(浮世)로 바뀐 것. 서양인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본 우키요에 미술관은 도쿄 중심가인 오모테산도와 하라주쿠로 건너가는 길목에 있다. 수수한 밤색 벽돌 건물 속에 1만 2000점에 달하는 화려한 우키요에를 숨겨놓은 오타 기념미술관에는 다다미 위로 올라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색다른 흥취를 느낄 수 있다. 책에 소개된 24곳의 특색있는 미술관과 별책부록으로 덧붙여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화랑, 카페 소개까지 합해서 총체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일본의 미감은 뭘까. 저자는 ‘아쌀하다’(산뜻하고 시원스럽게라는 뜻이 있는 일본어 부사 ‘앗사리’가 변형된 속어)란 표현을 언급한다. 확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 화려하게 장식한 접시 위에 정작 먹을 건 몇 점 안 되는 사시미에서도 아쌀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근대 미술사는 인상파 화가들이 반해 너도나도 베낀 유키요에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모성의 화가 이와사키 지히로(1918~1974)의 이름을 딴 지히로 미술관에서는 아쌀함과는 좀 다른 따뜻한 기운을 얻을 수 있다. 이와사키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어린이를 주로 그린 수채화로 유명하다. 그의 수채화가 더욱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는 이와사키가 1946년 침략전쟁에서 큰 충격을 받고 공산당에 가입, 인민신문사에서 삽화를 그린 이력 때문이다. 이와사키는 아름다운 어린이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던 까닭에 대해 “공산당원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책은 화려하거나 쓸쓸하고 혹은 따뜻한, 다양한 일본 미술의 속살을 살뜰하게 일러준다. 2만 4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원자바오 “서방서 때려죽여도 中 제 갈길 간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외부에서 우리를 치켜세워 죽음으로 몰아넣든, 때려 죽이든 중국은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답게 유로존 위기해소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압력’과 중국위협론을 내세운 서방세계의 ‘봉쇄’에 연연하지 말고 중국노선을 견지하자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위안화 절상이나 유로존 지원 등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9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원 총리는 상하이협력기구 총리회담 참석차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지난 6일 교민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 같은 말을 꺼냈다. 원 총리는 “외부에서 우리를 치켜세워 죽이든(捧殺·봉살), 몽둥이로 때려 죽이든(棒殺·봉살) 우리 사정을 잘 처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들이) 우리의 쇠락을 노래 부른다 해도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길을 올바르게, 안정적으로 견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중국을 G2로 호칭하면서 국제적 역할을 주문하는 것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해 왔다. 중국을 치켜세워 스스로 오만에 빠지게 한 뒤 몰락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인민일보와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들도 일본의 사례를 제시하며 이 같은 논리 전파에 힘써 왔다. 그런 점에서는 원 총리의 발언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원 총리 등 중국 최고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일 뿐”이라고 강조해 왔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쓰레기장에서 키운 ‘쓰레기 소’ 中네티즌 충격

    깨끗한 외양간이나 초원이 아닌 쓰레기장에서 방목된 채 키워진 소가 일반에 유통된 사실이 알려져 중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인민일보 인터넷판 등 현지 언론의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인터넷상에는 십 여 마리의 소가 외양간이나 초원이 아닌 쓰레기장을 뒤지며 먹을거리를 찾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올라왔다. 조사 결과 문제의 사진은 후난성 창사시의 한 쓰레기 처리장에서 찍힌 것으로, 이곳에 방목된 소들은 각종 음식물 쓰레기 뿐 아니라 유독성 물질들이 마구잡이로 버려진 쓰레기장을 헤매며 먹을거리를 찾고 있었다. 사방은 악취로 가득하고 쓰레기 처리용 대형 기기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일명 ‘쓰레기 소’는 이미 일부가 대중에 유통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창사시의 한 주민은 “이곳에서 잡은 소를 먹어본 적이 있다. 맛이 일반 쇠고기와 달리 식초처럼 약간 신 맛이 났다.”고 말했다. 식품 전문가는 중금속이나 유독성 물질을 먹고 자란 소는 체내에 불량물질이 쌓이면서 육질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이를 먹는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의 사진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창사시 가축관리부서 관계자는 “쓰레기 등을 먹여 가축을 기르는 것은 불법이므로, 해당 소들을 모두 폐기처분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먹거리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는 등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日, 中 선장 해상체포… 영토분쟁 2R?

    日, 中 선장 해상체포… 영토분쟁 2R?

    일본 해상보안청이 자국 영해를 침범한 혐의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해 양국 간 충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일본 나가사키 해상보안부는 6일 나가사키현 고토열도에서 남서쪽 60㎞ 떨어진 도리시마 근처에서 정선 명령을 거부한 중국 어선(135t급)을 나포하고 선장 장톈슝(張天雄·47)을 어업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해상보안부는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 2척을 4시간 동안 추적한 끝에 오후 4시쯤 한 척을 나포했다고 밝혔다. 선장과 함께 있던 어부 10명도 연행해 영해 침범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국내법령에 근거해 수사 당국이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당국은 상황을 파악중이라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 언론은 이번 사건을 신속하게 크게 보도하는 등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관영 통신 중국신문사에 따르면 중국의 나가사키 총영사관 관계자는 “일본과 교섭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관련 부처와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며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인민일보 인터넷판을 비롯해 큐큐닷컴과 시나닷컴 등 대형 포털 사이트들은 일제히 이번 사건을 주요 뉴스로 올렸다. 중국 정부는 어선 나포 지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아닌 일본 본토와 가까운 나가사키현 내라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양국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이번 사건이 제2의 영토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지난해 9월 7일 센카쿠에서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의 어선이 충돌했고, 일본 검찰이 중국 선장 잔치슝(42)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에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 중단 등으로 경제적·정치적 압력을 가해 결국 일본 정부는 잔치슝 선장을 기소하지 않고 석방했다. 이는 일본이 ‘백기’를 든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내 여론이 악화돼 간 나오토 내각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끝에 결국 지난 9월 총사퇴했다. 실제로 선박 충돌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양국 간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센카쿠 해역 주변에서는 지금도 많으면 하루 약 50척의 중국 어선 등이 출몰하고 있다. 방위성에 따르면 센카쿠 충돌 이후 중국 군용기의 일본 영공 접근도 급증했다. 올 4~9월 자위대 전투기가 중국 항공기의 일본 영공 접근으로 인해 긴급 발진한 횟수가 83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24 차례)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특파원 jrlee@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천안문 광장을 가득 채운 홍위병들을 사열하는 순간 문화혁명은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10년 동안 중국은 상처로 얼룩져 갔다. 1976년 마오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종결되었고, ‘마오’라는 아우라에 지배되던 중국 현대사도 일단락됐다. 마오는 중국 공산당 창립(1921년) 멤버 12인 중 한 사람으로, 혁명의 씨앗을 뿌린 ‘대장정’(1934년)을 이끌었던 홍군의 일인이었다. 아울러 국공합작을 이끌어 중일전쟁(1937년)에서 승리하고, 1949년 10월에는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성립을 선포하는 천안문 광장에 섰다. 신중국 성립 이후 많은 지식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내란’ 문혁 때도 마오는 홍위병 곁에 있었다. ‘마오쩌둥 어록’은 홍위병들의 성경이었다. 이렇듯 중국 현대사는 마오의 족적을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오가 걸어간 길은 곧 중국혁명이 걸어간 길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마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민들의 평가는 양가(兩價)적일 수밖에 없다. 마오에 대한 평가는 바로 중국 인민인 ‘나’, ‘우리’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현실에 대한 ‘나’의 저항서 시작 마오쩌둥은 후난(湖南)성 샹탄(香潭)현 출신으로, 소작농에서 자수성가하여 중농이 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머슴과 마찬가지로 호되게 어른 몫의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오의 어린 시절 학업은 3년 정도의 서당 공부가 전부인데, 부친이 수를 셈하고 장부를 정리할 정도의 지력만 키우고, 소송에 대처할 수 있는 고문만 배울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마오는 자신이 저질렀던(?) 두 가지 일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하나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서당 훈장에게 저항하여 수업을 거부하고 땡땡이쳤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력과 힘으로 가족을 억누르는 부친에게 목숨을 걸고 대들면서 반항했던 일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오는 그 사건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했다. “공개적인 반항으로 나의 권리를 지키려고 할 때면 아버지가 누그러지고, 내가 온순하게 복종하는 태도를 보일 때는 그가 오로지 욕만 하면서 때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마오쩌둥 자서전’) 마오는 경험을 통해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혁명이란 다른 누구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항을 통해서만 획득된다는 것. 그것은 중국 인민 전체에게 적용되는 문제였다. 마오는 신해혁명을 창사(長沙)에서 맞았다. 하지만 신해혁명의 성공 이면에서 혁명의 ‘덧없음’을 경험했다. 그는 빈자와 피억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난의 혁명가들이 상인, 학자, 부르주아지 및 돌아선 군중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혁명이 반혁명으로 변질되던 1910년대에 베이징의 한 처량한 회관에서 탁본을 베껴 쓰면서 적막감을 토로했던 루쉰처럼 마오도 학교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몇 해 동안 점심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도서관에서 서구와 중국의 근대 지식을 흡수하는 데 쏟았을 정도다. 그러다 5·4운동(1919년)이 일어날 즈음 마오는 베이징도서관 사서의 조수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접하게 된다. 오랜 적막 뒤 마오가 깨달은 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혁명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인민 스스로가 자신을 해방하고 혁명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의 임무란 무엇인가. 공산당원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인민을 계몽하거나 그들에게 혁명의 열매를 시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혁명의 주체로 서게끔 실마리를 풀어 주고, 옆에서 뒤에서 그들을 돕는 것, 그게 혁명가의 임무였다.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꾸다 “지식을 얻으려면 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에 참여하라.”(‘실천론’, 1937년)는 말대로 마오는 혁명에 관한 지식과 이론을 현실의 농민들에게서 ‘몸으로’ 배웠다. 그에게 ‘몸으로’는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신체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한겨울에 들판을 누비거나 산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남중국 일대를 무전여행하기도 했다. 걸어 다니면서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을 기회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중농 출신인 마오는 스스로를 인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지식인들과는 달랐다. 마오는 ‘인민을 위한’ 혁명이 아닌,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 ‘인민’이라고 생각했다. 마오는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이나 강령에 중국 현실 꿰맞추기를 거부하고, 혁명의 현장에 대한 정확한 장악과 실제적인 조직화 사업을 통해 ‘중국적 사회주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먼저 농촌 근거지를 만들고 농민운동을 조직화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 경험의 결과물이 ‘후난성 농민운동 시찰보고서’(1926년)인데, 여기서 마오는 농민의 실생활을 직접 조사하고, 농촌에서의 혁명 가능성을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 줬다. 농촌 경제의 모순과 농민의 계급분화 및 갈등은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런 판단하에 그는 소유 토지 면적이나 높은 이자율뿐만 아니라 돼지기름, 소금, 석유, 차, 종자, 비료, 장작, 가축, 농기구 유지 비용까지 자세히 분류한 후, 그 소유 정도에 맞춰 농민계급을 보다 세분화했다. 이런 실천적 분석을 통해 마오는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혁명을 구상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탄생이었다. 몇 차례 계속된 국민당의 포위공격을 피해 장시(江西)성 징강(井岡)산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원들은 근거지를 버리고 ‘도주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도망으로 시작한 ‘대장정’은 승리로 귀결되었다. 1년 동안 공산당은 18개의 산맥을 넘고(그중 5개의 산은 만년설로 덮여 있었다), 24개의 강을 건넜으며, 12개의 성을 통과했다. 또 62개의 마을과 도시를 점령했으며, 전투를 치르고 돌파한 지방 군벌의 포위망이 무려 10개에 달했다. 지나가는 곳마다 대중 집회를 열어 노예를 해방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이 초인적인 고난의 행군을 가능하게 했던 규율은 가난한 농민들로부터는 어떤 것도 빼앗지 않는다는 것, 지주들에게 몰수한 재산은 소비에트 정부에 전달해서 처분한다는 것, 농민들과의 모든 거래는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한다는 것 등이었다. 지도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마오는 이들과 똑같이 자기 ‘몸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 지역에 마련된 근거지에서 마오가 다른 홍군에 비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 있다면 모기장 정도였다고 한다. ●주어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1938년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는 대장정을 마친 공산당의 근거지를 찾아가 직접 보고 들은 중국공산당의 실체와 역사를 담은 ‘중국의 붉은 별’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원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스노는 마오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마오가 행한 역할은 선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적인 마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오의 진술에서 사용되는 주어는 더 이상 ‘나’가 아니라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느 혁명가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지 않았겠는가마는 마오는 자신을 온전하게 인민 속으로 던졌다. 때문에 역사적 현장에서 마오는 비인칭으로 존재했다. 자신의 이름을 잊고 혁명의 흐름에 몸을 던지면서 인민과 함께 걸어간 혁명의 동반자 마오의 혁명은 실패였을까 성공이었을까.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을 내 삶의 지침으로, 나의 앎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변혁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마오의 삶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메시지다. 마오는 어떤 일이든 자신을 온전히 그 현장에 넣지 못하면, 몸으로 전력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어떠한 열매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마오쩌둥이 중국 현대사의 선봉에 선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정치가라는 이름보다 혁명의 순간에 자신을 내던져 자신을 산 혁명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최정옥 남산 강학원 연구원
  • ‘특별한 공기’ 마시는 中 지도부 혼쭐

    “대기오염이 이렇게 심하고,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데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권부)의 공기는 모두 특별공급됐다고?” 한 공기청정기 업체의 ‘천기누설’로 후진타오 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몇 주일째 짙은 스모그 때문에 베이징 시민들의 호흡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중국 최고지도부가 업체로부터 공급받은 공기청정기를 사무실과 침실 등 곳곳에 갖춰놓고 생활하고 있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4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등에는 서민들과 동떨어져 이처럼 ‘특별한 공기’를 마시는 지도부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이 같은 ‘천기’는 후난성의 공기청정기 업체 위안다(遠大)그룹이 누설했다. 이 업체의 베이징 지사가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 공기청정기의 우수성을 뽐내면서 ‘중난하이’에 진출한 사례를 공개한 것이다. 집중적인 검사를 거쳐 위안다 공기청정기가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실에 처음 설치된 이후 최고지도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마침내 중난하이 지정 공기정화기의 영예를 획득했다고 소개했다. 후 주석이 사무실 등에 설치해 놓고 사용 중이며 국가 지도자들이 해외순방할 때도 필수품이 됐다고 자랑했다.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공기청정기의 필터에서 잉크색 더러운 물이 나오는 것을 본 뒤 중국 지도부가 이 공기청정기의 필요성을 확신했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 공기청정기가 지도자들에게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은 인민들에게 축복”이라고 자찬했다. 중국에서 식품과 술, 담배, 전자제품 등 모든 물품에 지도부와 국가기관을 위한 ‘터궁’(特供·특별공급)이 존재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이처럼 최고지도부가 공기청정기까지 특별공급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최근 스모그가 연일 계속되자 베이징의 공기 질이 2008년 올림픽 개최 이전 수준으로 악화됐는지 여부를 놓고 주중 미국대사관과 중국 환경당국이 열띤 공방을 벌이면서 베이징 대기 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최고지도부의 ‘진면목’이 드러나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서민들은심하게 오염된 공기에서 숨쉬고 있는데 공기마저 특별공급받는 지도부가 과연 서민들의 삶을 이해할지 궁금하다.”고 비아냥댔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北·日 국교협상 급물살 타나

    일본인 납치문제로 2008년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북 국교정상화추진 의원연맹’ 회장인 에토 세이시로(70) 중의원(하원) 부의장 등 초당파 국회의원 8명이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 북한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북한 정부 고위관계자들과 국교 정상화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또한 오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 아시아 예선 북한과 일본 경기를 앞두고 일본 외무성 직원들이 응원단의 안전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 외무 관료의 북한 방문은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이후 7년 만이다. 에토 부의장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한 발짝이라도 진전시키고 싶다.”면서 “이원 외교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에게 이미 방북 계획을 전달했다는 것을 의미해 북한 수뇌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메시지가 있는지 주목된다. 일본 언론들은 방북단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과의 면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방북단은 2008년 8월 이후 중단된 국교정상화 교섭 타개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06년 7월 북한이 핵 실험을 한 이후 북한 선박의 입항과 북한 국적인의 입국, 북한산 물품의 수입 등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북한도 일본이 최우선 과제로 요구하고 있는 납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으려고 하고 있어 이번 방북단과 양측 정부 관계자의 접촉 등으로 인해 북·일 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시진핑 시대… 권력이동 시작됐다

    中 시진핑 시대… 권력이동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이 2일부터 제18차 전국대표대회 대표 선거에 돌입했다. 전국대표대회 대표는 일종의 전당대회 대의원격으로 이번에 선출되는 대표들은 내년 10월 열리는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해 공산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중앙위원과 후보중앙위원을 선출한다. 이때 뽑힌 중앙위원과 후보중앙위원이 곧바로 열리는 제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세대 지도부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전국대표대회 대표 선거는 중국의 권력 교체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국대표대회 대표 선거는 내년 6월 말까지 끝내야 한다고 ‘당중앙’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밝혔다. 31개 성·시·자치구와 중앙직속기관, 중앙국가기관, 인민해방군, 무장경찰부대 등 40개 선거 단위에서 8000만명의 당원 비례에 따라 대표들을 선출한다. 당원 증가로 18차 대표는 2007년 열린 17차 때보다 53명 많은 2270명으로 정해졌다. 1921년 제1차 전국대표대회(공산당 창당) 때는 마오쩌둥을 포함한 13명의 대표가 참석한 바 있다. 공산당은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고 있다. 경쟁선거인 차액(差額)선거를 통해 정원보다 15% 이상 많은 후보자를 내세워 득표 순서로 대표들을 뽑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아울러 서민과 여성의 비율을 확대하고, 소수민족에도 적절하게 배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대표대회는 공산당의 최고권력기구이다. 하지만 5년에 한 차례 2주일 정도 열리고, 참여 인원도 많기 때문에 200여명의 중앙위원과 160여명의 후보중앙위원을 뽑아 중앙위원회를 구성한 뒤 당의 모든 업무를 수행하도록 돼 있다. 중앙위원회 역시 수시로 회의를 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치국위원들을 뽑아 중앙정치국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 또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를 구성해 당과 국가를 이끌도록 했다. ‘전체 당원→전국대표대회→중앙위원회→중앙정치국→정치국상무위원회’ 순으로 권력을 넘겨놓고 있는 것이다. 앞서 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2217명의 대표들이 중앙위원 204명과 후보중앙위원 167명을 선출한 뒤 곧이어 열린 17차 1중전회(17차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우방궈(吳邦國), 원자바오(溫家寶), 자칭린(賈慶林), 리창춘(李長春), 시진핑(習近平), 리커창(李克强), 허궈창(賀國强), 저우융캉(周永康) 등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포함한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을 선출했다. 내년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이들 9명 가운데 시진핑 부주석과 리커창 부총리를 제외한 7명이 물러나고, 새로운 인사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역대 공산당 지도부 선임 관례에 따르면 전국대표대회 이전에 현 지도부와 당 원로들 간의 의견 절충을 거쳐 내년 8~9월쯤 내정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中, 5년간 효자 100만명 키운다?

    중국이 ‘효자 육성공정’을 통해 향후 5년간 효성이 깊은(?) 어린이 100만명을 키운다. 중국인민라디오방송은 31일 중국윤리학회가 주관하는 ‘효자 육성공정’이 전날 베이징에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효자 육성공정’은 3단계로 실시된다. 인성 습득의 최적기인 4~6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100일간 집중적인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3년 남짓 효행과 선행 등이 몸에 배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가 적극 인도하는 한편 성인이 된 이후까지 그들을 지원해 효행과 선행 등이 전체 사회에 퍼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6년까지 2800여개의 각 현(懸·우리의 읍에 해당)급 도시에서 한 해에 30~60명씩의 어린이를 선발해 본격적인 효자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선발된 어린이에게는 공자, 맹자, 증자 등 성현의 가르침이 담긴 ‘100일 수첩’을 나눠 줘 하루 한 구절씩 습득하게 하는 한편 부모나 어른에 대한 아침인사 등을 통해 예의와 도덕을 알게 하는 집중교육을 실시한다. 100일간의 인성교육을 마친 어린이가 친구와의 교류를 통해 효성과 효심, 도덕개념 등을 1억여명의 중국 전체 어린이에게 전파토록 하겠다는 게 이번 공정의 주목적이다. 중국윤리학회 쑨춘천(孫春晨) 비서장은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지금의 청소년교육에서는 지식을 중시하고, 도덕을 가볍게 여기는 현상이 퍼져 있다.”면서 “만연한 사회 병폐는 모두 어린 시절부터 효심과 도덕을 알게 하는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대세다. 효자를 어떻게 ‘육성’하고, 그것도 100만명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한정하느냐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이런 공정은 형식주의에 불과하고 가소롭기까지 하다.”고 비아냥댔다. 또 다른 네티즌도 “효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지 계획적으로 육성할 수 없다. 사기극을 그만두라.”고 힐난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외화유동성 4300억弗로 늘어… “금융위기 방어에 충분한 수준”

    외화유동성 4300억弗로 늘어… “금융위기 방어에 충분한 수준”

    26일 한·중 간 통화스와프(맞교환) 확대로 우리나라 외화유동성은 외환 보유액(9월 말 현재) 3034억 달러, 한·일 통화스와프 700억 달러, 한·중 통화스와프 566억 달러(3600억 위안) 등 총 4300억 달러로 늘어났다. 외환시장에서는 그동안 4000억 달러 정도의 외화유동성을 ‘충분한 규모’라고 평가해 왔다는 점에서 외환시장의 안전판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원·위안스와프 3600억위안으로 한국은행은 이날 중국 인민은행과 원·위안 통화스와프를 1800억 위안(38조원)에서 3600억 위안(64조원)으로 확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은 2014년 10월 25일까지 3년간 유효하다. 지난 2009년 4월 20일 체결된 기존 원·위안 통화스와프는 이날로 종결됐다. 통화스와프는 외환 보유액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맞는 외환 위기 상황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300억 달러)는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에 주효했다. “외환 보유액 3000억 달러 수준은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방어하는 데 충분한 수준이나 시장의 급변동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 현대경제연구원은 4300억 달러의 외화유동성에 대해 충분한 규모라고 평가한다. 주원 연구위원은 “4300억 달러 정도면 충분한 수준”이라며 “급박한 상황이 생길 때를 가정해 안전망을 확보하는 차원인데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을수록 좋은 것이 통화스와프”라고 말했다. ●준비통화로의 전환도 검토 특히 한·중 중앙은행은 이날 교환 통화의 준비 통화로의 전환 가능성 및 그 규모에 대해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 19일 체결된 한·일 통화스와프와 같이 교환되는 통화에 달러를 포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우리나라가 700억 달러 상당의 원화를 제공하면 일본이 3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엔화와 400억 달러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우리가 수입할 때 위안화, 중국에서 수입할 때 원화로 결제하는 지역 내 통화 결제를 활성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 간 교역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하는 방식에서 지역통화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양국 통화, 특히 위안화의 국제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이번 통화스와프 규모도 지난 3년간 늘어난 양국 교역 규모를 반영해서 결정됐다. ●한·미 스와프 재개될 수도 다음 달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지난해 2월 종료됐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지금은 위기가 누적되고 있어 지역부터 기초를 튼튼히 하고 세계적 위기에 대비해 글로벌 안전망을 구축할 것”이라며 “한·미(통화스와프)는 상대방이 있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과 통화스와프가 체결된 나라는 캐나다, 영국, 일본, 스위스, 유럽연합 등 5개 중앙은행뿐이다. 전경하·오달란기자 lark3@seoul.co.kr [용어 클릭] ●통화스와프 미래의 어떤 시점에 미리 정한 환율로 두 나라의 통화를 교환하기로 한 약속이다. A국이 외화유동성 위기를 맞을 때 A국 통화를 B국에 맡기고 외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외화를 빌려 쓰면 이자를 부담한다. 그러나 개인의 마이너스 대출(신용대출)처럼 쓰지 않으면 비용(이자)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외환 보유액과 달리 유지 비용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 ‘中 부상과 한반도 미래’ 국제회의

    한국학술연구원(이사장 박상은)은 오는 28일 오전 9시 30분 중국 베이징 스위소텔에서 중국 인민대학과 공동으로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국제회의를 갖는다.
  • 김정일, 방북 리커창 면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4일 방북 중인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상무부총리를 접견하고 만찬을 함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위원장은 면담에서 평양에서 이뤄진 북·중 회담이 잘된 것에 대해 평가하고 전통적인 양국 간 친선협조관계를 강화 발전시키려는 노동당과 정부의 의지를 표명했다고 중앙통신은 밝혔다. 리 부총리도 “중·조(북한) 최고 영도자들 사이에 이룩된 광범위한 합의들을 성실히 이행하며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조강화의 정신을 견지함으로써 전통적인 중·조 친선을 공고 발전시키자는 것이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고 화답했다. 면담에는 북측에서 후계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리영호 군 총참모장, 강석주 내각 부총리,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영일·김양건 당비서 등이 배석했다. 중국 측에서 여우취안 국무원 부비서장, 장즈쥔(張志軍) 외교부 상무부부장, 천위안 국가개발은행 이사장 등이 함께했다. 리 부총리는 김 위원장과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선물을 전달했으며,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하고 만찬을 마련했다. 리 부총리는 앞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북한 내각총리 등과 면남을 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3일 방북한 리 부총리는 25일 중국 베이징으로 돌아갔다가 26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인도적 대북 지원은 정치상황과 분리해야”

    “인도적 대북 지원은 정치상황과 분리해야”

    “굶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돼 이뤄져야 합니다. 북한 정부도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대규모 식량 부족을 타파하기 위해 자구 노력과 함께 정책적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5세이하 北 어린이 33% 영양실조 심각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뒤 중국을 거쳐 방한한 밸러리 에이머스(57) 유엔 인도지원담당 사무차장 겸 긴급구호조정관은 24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북에서 어린이 등 많은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밝혔다. 에이머스 차장은 “북한은 매년 필요한 전체 식량에서 100만t이 부족하고, 1인당 배급도 올해 초 400g에서 최근 200g으로 떨어졌다.”며 “5세 이하 어린이 중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는 비율이 33%나 되고, 함흥의 한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는 영양실조로 병원에 오는 어린이들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대북 지원을 꺼리는 상황에 대해 에이머스 차장은 “모든 나라는 대외 원조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北에 반기문 총장 메시지 전달 에이머스 차장은 “지난 5일간 평양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북측이 식량 배분에 대한 모니터링을 위해 무작위 가정 방문 허용 등을 강화해야 하고 식량·영양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중요하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에이머스 차장은 방북 기간 중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과의 면담을 통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북 지원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함경남도·강원도 등의 병원 및 탁아소, 가정, 농장, 시장 등을 방문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메디컬 팁]

    연세의료원, 中서 종합병원 설립 연세의료원(원장 이철)은 중국 장쑤(江蘇)성 이싱(宜興)시 인민정부, 중국 건설회사인 장쑤중대지산그룹, ㈜네패스 등과 4자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이싱시 실버타운(동궤양생단지)에 VIP검진센터와 종합병원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연세의료원은 새로 건립될 검진센터와 종합병원의 장비 운영·의료인력 교육·관리운영 등 전반적인 의료콘텐츠에 대한 경영솔루션을 제공하게 된다. ASRM, 차광렬 줄기세포상 제정 미국생식의학회(ASRM)가 줄기세포와 불임에 관련된 차병원그룹 차광렬 회장의 공헌을 기려 ‘차광렬 줄기세포상’을 제정하기로 했다. 미국생식의학회는 회원수 8000명으로 세계 최대 학회 중 하나로 꼽힌다. 차병원 측은 “이 상에 아시아인 이름을 붙인 것은 첫 사례”라면서 “그동안의 불임 생식의학에 대한 공로와 줄기세포 연구성과 등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차광렬 줄기세포상이 제정됨에 따라 수상자에게는 매년 2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며, 관련 심포지엄도 정기적으로 열리게 된다. HIV치료제 ‘키벡사’ 국내 판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대표 김진호)은 새로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키벡사’를 국내에서 발매한다. 키벡사는 HIV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라미부딘’과 ‘아바카비어’의 복합제로, 다른 항바이러스 제제와 병용해 성인 및 12세 이상 청소년의 HIV 감염 치료에 사용되며, 음식이나 음료 제한 없이 하루 한번 복용한다. 노인용 독감백신 ‘플루아드’ 공급 한국노바티스는 면역증강제가 함유된 노인 전용 독감백신 ‘플루아드’를 SK케미칼을 통해 국내에 공급한다. 이 제품은 ‘반트플루TM’이라는 이름으로 대웅제약에서도 공급하게 된다. 대한감염학회가 노약자에게 권장하는 독감백신 접종 시기는 매년 10∼11월. 2011∼2012년도 노인 전용 독감백신은 올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3가지 계절독감백신 바이러스주가 들어간 제품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주요 접종 대상이다. 문의(02)768-9000.
  • “카다피, 나토군 아주 무서워했다”

    42년간 최고의 권좌에서 호의호식해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도망자로 전락한 지난 2개월여 동안 자신의 신세를 선뜻 인정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고 생포된 그의 최측근이 전했다. 카다피와 함께 붙잡힌 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22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카다피 일행의 마지막 날들을 털어놨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과도정부군에 함락된 지난 8월 22일 보좌관과 경호원 10여명만 데리고 거점 지역인 타르후나와 바니 왈리드를 경유해 곧바로 고향 시르테에 도착했다. 남부 사막지대에 은신했다거나 니제르로 도피했을 것이라는 그간의 추측을 뒤엎은 것이다. 시르테행은 4남 알무타심이 외부의 예상을 역이용한 결정이었다. 카다피는 민가에 은신하면서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어?”라고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 그는 쌀과 파스타로 연명했다고 한다. 또 카다피의 지지자들이 그를 ‘호전적’이라고 선전한 것과 달리 카다피는 전투에 나서지 않았으며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한다. “카다피는 나토군을 아주 무서워했다.”고 이브라힘은 말했다. 카다피는 코란을 읽거나 전화를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뿐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 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로 전달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에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특히 카다피보다는 아들 알무타심이 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주 전 과도정부군의 포위망이 시르테 중심부까지 좁혀오자 카다피 부자는 주택 2곳을 오가며 공격을 피해 다녔다. 궁지에 몰린 카다피는 결국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20일 새벽 3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했다. 그러나 무질서했던 카다피군의 혼란으로 출발이 지연되면서 차량 40대로 구성된 카다피 일행은 오전 8시에야 이동을 시작했고, 카다피와 최고사령관, 친척, 이브라힘이 탄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30분 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파편을 맞고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는 이브라힘은 “리비아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북한의 역사2 : 주체사상’ 펴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위원

    [저자와 차 한 잔] ‘북한의 역사2 : 주체사상’ 펴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위원

    “오늘의 북한이 왜 이런 상황에 와 있고,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려고 했다. 이를 통해 일반 대중이 북한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북한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으로서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화해협력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북한의 역사2: 주체사상과 유일체제 1960~1994’(역사문제연구소 펴냄)를 냈다. 전편격인 ‘북한의 역사1:건국과 인민민주주의의 경험1945~1960’은 오랜 지기 김성보 연세대 교수가 맡았다. 북한 연구에 천착하며 베스트셀러 ‘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를 비롯해 ‘북한-중국관계: 1945~2000’, ‘조선로동당연구’ 등을 내놓으며 북한 연구의 지평을 열어 왔지만, 일반 대중을 위한 저서는 이례적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나. -북한 주민과 지도자들이 생각하고 살아 왔던 삶과 그려 왔던 미래와 전략을 1차적으로 담았다. 오늘날 북한의 위기가 어떤 역사적 진행 과정과 요소들이 쌓여온 결과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학술서와 전문가 대상의 책을 써 오면서도 일반 대중이 북한을 객관적·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었다. →북한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했나. -북한이란 주체에 영향을 미친 대외 환경이란 변수로 북한의 행동과 변화를 설명하려고 했다. 3차원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남북관계와 미국 및 중국, 러시아 등 국제관계의 얽힘이 어떻게 북한의 정책결정과 북한 사회에 투영되고 영향을 미쳤는지를 풀어서 보여 주려고 했다. →현재의 북한을 진단한다면. -내부 경제 자원 고갈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핵 개발을 통해 생존 조건을 강화하려는 모순된 상황에 있다. 냉전 해체 직후 한국과 미국, 중국 등에 생존을 위한 의존을 분산했다면, 2009년부터는 중국에 대한 의존의 일방화를 통해 삶의 기초를 보장받으려 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대국 관계의 위험성’을 경계해 왔지만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를 겪으면서 서방으로부터 안정적인 체제유지 발전의 동력을 얻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중국과의 전통적 관계 복원이 생존을 위한 북한의 국제관계 활용 방식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이율배반적이며 복잡하고 착잡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같은 민족이고 끌어안아야 할 당위적 존재이면서 분단과 분열 속에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이중성을 갖는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가 우리 공동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지만, 우리는 현실의 북한을 이끌어 나가면서 그들의 호전성을 감소시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재인식해야 한다. 통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총체적인 삶의 질적 비약을 이뤄 낼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 주면서 경제공동체, 평화공동체 건설에 대비해 나갈 때다. →현실적인 대북정책의 처방은 무엇인가.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은 이 순간에도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 혼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북의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강화했지만 지금은 제재가 무력화됐다. 부시 정부 때에는 북핵과 관련,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던 중국이 2009년부터 대북경제 지원으로 입장을 바꾼 탓이다. 우리가 북한을 압박해도 북한 상황은 전에 비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제재 압박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란 점에서 중국과 어디까지 협력할 수 있느냐가 북한 문제 해결의 관건이다. →앞으로 북한의 진로를 어떻게 보나.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체제가 해체되면서 중국이란 강대국이 자신의 삶의 모델을 개발도상국들에 확산시키고 있다. 김정일도 이를 고민하면서 새 길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중국식 모델로 갈 것으로 본다. 주관주의 노선을 고수하려는 관성보다 새로운 필요성과 반작용이 더 크다. 중국의 개혁개방 사례에서 보듯이 주체들의 결단과 결정, 조건을 어떻게 활용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북·중 관계를 세밀하게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요새는 뭘 하나. -동아시아가 나의 화두가 됐다. 중국의 성장을 어떻게 우리의 기회로 만들어 나갈지와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북한만의 현상을 설명하기보다 동아시아라는 틀 속에서 북한 그리고 북·중 관계를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김정일父子 3개월만에 軍시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조선인민군 제4304군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20일 보도했다. 김정일 부자가 군인들의 공연 관람이 아니라 군부대를 시찰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는 지난 7월 25일 해군사령부 시찰 이후 3개월 만이다. 오는 24~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북·미 2차 고위급 대화 등에 앞서 군의 결집을 강화하고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부대 내 연혁실과 군사강실, 군인회관, 도서실, 식당 등을 둘러봤고 군인들의 훈련을 지켜본 뒤 기념 촬영을 했다. 또 부대가 관할하는 중대 내 교양실, 병실, 세목장 등도 돌아보고 군인들의 생활에 관심을 표했으며 특히 세 쌍둥이 병사인 허충심·효심·일심을 만나 격려했다고 중앙방송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기본 전투 단위인 중대를 강화하는 것은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백두산 혁명 강군으로 만들기 위한 매우 중요하고도 책임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美글로벌 호크 본딴 中무인기, 성능은 ‘헉’

    美글로벌 호크 본딴 中무인기, 성능은 ‘헉’

    중국이 만든 무인정찰기 ‘샹룽’(翔龍·비상하는 용)이 시험비행을 마쳤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캐나다에 본부를 둔 민간 군사연구기관인 칸와정보센터(KWIC)를 인용, 위성사진을 분석해 중국 쓰촨성 청두시에 있는 인민해방군 계열의 항공기 회사인 청두비행기공업의 제132공장에서 최소 1대의 샹룽이 시험비행 중이라고 전했다. 조만간 완성될 것이라거나 이미 실전배치 됐다는 관측도 있지만,확인되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인민일보사의 자회사인 환구망이 지난 7월 4일 샹룽이 활주로에 서 있는 모습을 공개한 게 전부였다. 샹룽은 세계 최강의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Global Hawk)와 비슷해서 ‘중국판 글로벌호크’로 불린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령 괌까지 정찰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성능은 글로벌호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떨어진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샹룽은 순항시속이 750㎞이고 최대 항속시간이 10시간이다. 항속거리는 7000㎞다. 650㎏의 정찰 장비를 실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호크는 항속시간이 35시간으로 샹룽의 3.5배에 달하고 항속거리도 2만 3000㎞로 샹룽의 3배가 넘는다. 특히 2만m 상공까지 올라갈 수 있는 터보엔진에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능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中 블랙호크 품나

    중국에서 미국 무기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인 UH60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구매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무기수출 규제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최근 의회에 블랙호크 헬기와 C130 수송기, F16 전투기를 포함한 다양한 무기의 수출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블랙호크의 중국 판매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 중반 시코르스키사로부터 블랙호크의 상업용 기종인 S70을 24대 도입해 당시 갓 설립된 인민해방군 육군항공대에 배치했다. 티베트 등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탁월한 성능을 확인한 인민해방군은 그 뒤 최고 100여대까지 구매를 늘릴 계획을 세웠지만, 1989년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이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및 무기 판매를 중단하면서 추가 구매가 불발됐다. 중국은 인명구조 등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만큼 미국을 상대로 노후 기체 보수를 위한 부품 공급만이라도 재개해 달라고 요청해 왔지만 미국은 군사무기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해 왔다.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의 타오원자오 연구원은 “블랙호크와 C130은 이미 오래된 기종으로 미국 입장에서 정치적 의미나 기술적 중요성이 크게 떨어진다.”면서 “이 기종들의 중국 판매가 이뤄진다면 미국이나 중국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UH60 블랙호크는 최대 시속 257㎞, 최대항속거리 592㎞의 다목적 전술공수작전 수행용 헬리콥터로 1978년부터 실전 배치됐으며 미국·한국·일본·호주·타이완·그리스 군 등의 주력 헬기로 이용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反월가 시위 ‘보스턴 차 사건’만큼 역사적”

    한 달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200여년에 걸친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10대 저항운동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10대 미국 저항운동’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 독립전쟁의 계기가 된 ‘보스턴 차 사건’부터 1960~1970년대 미국을 격랑에 몰아넣은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과 민권운동 등 미국을 뒤흔든 사회·정치적 저항을 소개했다.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거나 거스르는 정부 정책에 맞서 싸워 정책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보스턴 차 사건은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1773년 12월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46t의 홍차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을 가리킨다. 영국 정부가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바로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다. 1963년 워싱턴DC를 가득 메운 20만명이 넘는 시위대는 흑인 민권운동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이 운동은 1964년 민권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1969년 50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운집한 베트남전 반대 운동도 결국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1848년 뉴욕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여성권리대회는 여성참정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는 결국 1920년 성별 차이에 따른 참정권 제한을 없애는 수정헌법을 통해 실현됐다. 1969년 뉴욕 동성애자 밀집 지역이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시민 2000여명이 경찰과 대치하며 동성애자 처우 개선을 요구한 스톤월 항쟁은 현대 성적 소수자 운동의 서막을 알린 사건으로 꼽힌다. 40여년이 지난 올해 뉴욕 주정부는 동성 결혼을 허용했다. 타임은 이 밖에도 세계 최초로 8시간 노동제를 외쳤던 미국 노동운동,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킨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 2009년 결성된 티파티 등을 주요 저항운동 사례로 소개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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