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민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뇌물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동물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2018년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독일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705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中 정가 ‘저장방’이 뜬다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中 정가 ‘저장방’이 뜬다

    지난달 31일 오후 열린 지린(吉林)성 영도간부회의장이 술렁거렸다. 왕친펑(王秦豊) 당중앙조직부 부부장이 등장해 ‘비리 천국’ 산시(山西)성 당서기로 자리를 옮긴 왕루린(王儒林) 지린성 당서기의 후임에 이례적으로 몽골족인 바인차오루(巴音朝魯) 지린성장을 승진, 임명한다고 발표한 까닭이다. 이(彛)족 출신으로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당서기를 역임한 우징화(伍精華), 안후이(安徽)·장쑤(江蘇)성 당서기를 지내고 국무원 부총리까지 오른 후이(回)족 출신 후이량위(回良玉)에 이어 바인차오루는 소수민족 으로는 세 번째로 ‘지방 이바서우’(一把手·1인자)에 올랐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2인자인 중앙서기처 상무서기를 지낸 그는 저장성에서 부성장, 닝보(寧波)시 당서기로 근무하며 수장이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눈에 띄어 핵심 측근으로 발탁돼 손발을 맞췄다. 중국 정가에 ‘저장방’(浙江幇)이 떠오르고 있다. 시 주석이 2002~2007년 당서기 등으로 근무한 저장성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지난 4월 이후 바인차오루 당서기와 러우양성(樓陽生) 산시성 부서기, 차이치(蔡奇) 국가안전위원회 부주임 등 저장방 인사들이 잇따라 중용되는 현상을 놓고 집권 2년을 맞이한 ‘시진핑의 친정체제’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게 베이징 정가의 분석이다. ●소수민족 출신 바인차오루 이례적 중용 면적 10만 1800㎢에 인구 5477만명(2012년 기준)의 저장성은 2005년 이후 평균 10.6%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일 저장성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인당 평균 소득은 3만 5730위안(약 607만 7673원)이다. 개혁·개방의 1번지 광둥(廣東)성(3만 2142위안)보다 3500위안이나 많은 등 27개 성·자치구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든든한 경제력을 후원자로 둔 저장방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위정성(兪正聲)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정협) 주석, 한정(韓正)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뤄후이닝(惠寧) 칭하이(靑海)성 당서기, 천민얼(陳敏爾) 구이저우(貴州)성장, 차이치 국가안전위 부주임, 러우양성 산시성 부서기, 자오훙주(趙洪祝) 당중앙서기처 서기, 주샤오단(朱小丹) 광둥(廣東)성장, 황치판(黃奇帆) 충칭(重慶)시장, 쉬사오스(徐紹史)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등이 맹활약하고 있다. ●‘시주석의 남자’ 천민얼도 승승장구 북한 전문가인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저장성 당서기를 지냈다. 그는 특히 저장성 당서기 시절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자서전 서문을 쓰는 등 시 주석과의 교분을 과시했다. 위정성 전국정협 주석은 저장성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나 베이징의 81샤오쉐(小學·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7년 시 주석에 이어 상하이 당서기를 맡은 그는 업무 인수인계 자리에서 두번에 걸쳐 “시진핑 동지를 배우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시 동지가 상하이의 경제 발전을 위해 내놓은 중요한 생각을 우리는 계속해서 견지해 나가야 하며 진지하게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보다 8살이나 적은 시 주석을 태자당과 저장방의 맹주로 받아들이는 정치적 기민함을 보여 주목받았다. ●한정, 공청단 계파벽 넘어 상하이 접수 지관(籍貫·본적)이 저장성 츠시(慈溪)인 한정 상하이시 당서기는 2007년 상하이시장 재임 시절 당시 상하이 당서기였던 시 주석의 업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강한 신임을 얻었다. 시 주석은 그의 업무 능력과 태도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공청단파’라는 계파 벽을 뛰어넘어 중국 경제 수도 상하이시를 접수했다. 뤄후이닝 칭하이성 당서기는 저장성 이우(義烏)에서 태어났다. 칭하이성장 재직 당시 규모 7.1의 강진으로 만신창이가 된 칭하이성 위수(玉樹)좡(壯)족자치구 일대에서 5년간 대규모 재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시 주석에게 호감을 샀다. ‘시진핑 주석의 남자’로 불리는 천민얼 성장은 ‘류링허우’(60後·1960년 이후 출생)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저장일보(浙江日報) 사장을 지내는 등 선전(宣傳) 분야가 주 전공인 천 성장은 시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로 근무할 때 저장성 선전부장을 맡아 무한 신뢰를 얻었다. 특히 시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로 재직하던 시절, 2003년 2월 25일부터 2007년 3월 25일까지 4년 1개월 동안 ‘저신’(哲欣)이란 필명으로 저장일보 1면에 ‘지강신어’(之江新語) 칼럼을 쓴 것과 관련해서도 당시 선전부장이었던 그의 공이 컸다고 지적된다. 이때 게재된 칼럼 232편은 책으로 묶여 같은 이름으로 2007년 정식 출판됐다. ●차이치, 부성장 넉달만에 당중앙 부주임에 발탁 차이치 부주임은 시 주석과 같이 푸젠(福建)성과 저장성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형 정치가다. 고향인 푸젠성에서 일하다 1999년 저장성 취저우(衢州) 당서기로 옮겼을 때 시 주석과 인연을 맺은 그는 항저우(杭州)시장·저장성 조직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시 주석이 이끄는 당중앙 인터넷안전 정보화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도 겸임해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정가의 소식통은 “저장성 부성장직에서 4개월 만에 국가 주요 양대 기구인 국가안전위 판공실 부주임으로 간 것은 시 주석의 차이 부주임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각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우양성 산시성 부서기는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의 황태자’로 불린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의 형인 링정처(令政策)가 면직되면서 요동치고 있는 산시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지난 6월 긴급 투입됐다. 시 주석의 저장성 시절 ‘애장’(愛將)이던 러우 부서기는 저장성 진화(金華)시와 리수이(麗水)시의 최고 책임자로 일하면서 깔끔한 일 처리로 당시 저장성 당서기였던 시 주석의 ‘눈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khkim@seoul.co.kr
  • 100개의 금, 南의 프러포즈

    100개의 금, 南의 프러포즈

    45억 아시아인의 축제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19일 성화를 밝히고 새달 4일까지 16일 열전에 돌입한다. ‘평화의 물결, 아시아의 미래’를 슬로건으로 내건 대회는 아시아 곳곳에서 발생한 갈등과 분쟁을 잠시 멈추고 평화와 화합의 축제로 도약하기를 꿈꾸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원국 45개국이 모두 참가하는 뜻깊은 대회다. 북한 선수단(150명)이 2002년 부산대회에 이어 1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고, 내전과 유혈 사태를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69명)·이라크(63명)·팔레스타인(56명)·시리아(30명) 등도 인천에 입성했다. 총 9553명의 선수가 36개 종목에서 439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다. 한 선수가 하나의 금메달을 딴다고 가정해도 9114명은 패 배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승자만을 기억하는 것은 스포츠, 아시안게임의 정신이 아니 다. 패자에게도 아름다운 도전을 격려하는 박수가 필요하다. 안방에서만 벌써 세 번째 잔치를 여는 한국은 90개 이상의 금메달로 5회 연속 종합 2위를 노린다. 2006년 도하와 광저우에서 각각 수영 3관왕에 오른 박태환(인천시청)은 사상 첫 3개 대회 연속 3관왕에 도전한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연세대)는 사상 첫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간 한 차례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카바디도 새 역사 창조를 꿈꾸고 있다. 아직껏 아시안게임 메달을 한번도 목에 걸지 못한 부탄과 몰디브, 동티모르 등 세 나라 역시 힘찬 발걸음을 뗀다. 19일 개회식이 열리는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는 오후 6시부터 맞이 행사를 펼치다 7시 18분 본격적인 축제를 시작한다. 선수단은 오후 8시 25분부터 가나다순에 따라 네팔과 동티모르, 라오스, 레바논 순으로 입장한다. 일본은 29번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명의 북한이 30번째, 중국은 31번째, 타이완이 그 다음으로 최근 묘한 관계에 빠져 있는 한국 주변의 네 나라가 공교롭게도 앞뒤로 줄지어 입장한다. 개최국인 한국선수단은 관례대로 맨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376조 ‘슈퍼 예산’ 재정건전성 우려된다

    정부가 어제 확정한 내년도 총지출 예산안은 376조원으로 올해에 비해 5.7%(20조 2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국회 심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슈퍼 예산’이라 할 만하다. 정부는 애초 올해보다 자연 증가분 수준인 12조원(3.5%)가량 늘릴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통상적인 추가경정예산 지출 규모(5조~6조원)를 훨씬 웃도는 8조원을 더 늘려 잡았다. 20조원 수준의 증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강조해오던 대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라 할 수 있다. 저물가·저성장이 고착화되면 경기 회복도 실패하고 세수(稅收)도 늘지 않는 등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 정부는 가용 재원을 최대한 투입해 경제를 살리면 세수는 자동으로 늘어나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증세를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출 확대를 통해 내수가 살아나는 등 경제 활력 회복으로 세수 증대도 이뤄내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한다는 셈법은 탓할 게 없다. 경기 부진으로 세금은 덜 걷히고 지출은 줄어드는 등 축소 균형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은 이해한다. 경기 회복의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관건은 의도하는 대로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느냐 여부다. 정부는 내년에 실질 경제성장률 4%,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명목) 성장률이 6%대는 유지해야 체감 경기가 좋아지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3.7%, 물가상승률은 1%대에 머물 전망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경제 심리는 살아나는 분위기다. 가계소득의 증가로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게 해야 한다.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호응해 기업가 정신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규제완화 정책을 대부분 집행하는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발상의 전환을 하기 바란다. 감사가 두려워 규제를 선뜻 풀지 못한다는 지자체의 소극적인 자세는 기업 투자의 걸림돌이다. 감사원 감사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규제 집행기관의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등 변화가 있어야 한다. 대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어제 초저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하기로 했다. 올해 성장률은 2~2.2%로 낮췄다. 엔저(低)로 인해 국내 수출기업들은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은 인민은행이 시중은행에 약 84조원(5000억 위안)을 공급하는 등 미니 부양책을 내놨다. 정부와 기업들은 머리를 맞대 수출 부진 타개책을 마련해야 한다.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국민연금 등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25조 5000억원에서 내년에는 33조 6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내년 국가채무는 570조 1000억원으로 올해보다 43조원가량 늘어난다. 정부는 재정 적자 폭을 줄여 다음 정권에 넘겨 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고령화·양극화 등으로 인한 복지 수요와 통일시대 대비 등 재정 위험(리스크)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강력한 세출예산 구조조정을 하는 등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 바란다. 선심성 예산은 없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체질 개선과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저출산 문제 해결 등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 ‘용’과 ‘코끼리’, 새 협력 시대 열다

    ‘용’과 ‘코끼리’, 새 협력 시대 열다

    인도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8일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앙숙이었던 ‘용’(중국)과 ‘코끼리’(인도)가 새로운 협력 시대를 향해 한 발짝을 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의 대인도 경제 투자와 양국 간 해묵은 국경 분쟁 문제가 주된 이슈가 됐다. 시 주석은 모디 총리에게 앞으로 5년간 200억 달러(약 20조 8000억원)를 인도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은 인도 구자라트와 마하라슈트라 주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양국은 또 경제·무역 발전 5개년 계획, 상하이·뭄바이 쌍둥이 도시 육성 등 12개 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인도가 불만을 표시한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 인도의 철도 고속화 사업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양국 국경 문제와 관련, “이는 역사 문제로 중국은 인도와 함께 국경 안정을 수호할 결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모디 총리는 “양국 변경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 방안을 찾기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모디 총리는 중국이 인도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를 자국령이라 주장하며 그곳 주민들의 중국 방문 때 별도 비자를 발급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시 주석은 “양국은 국경 문제가 최종 해결되기 전에 평화와 평온을 유지하고, 변경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협력과 발전을 강조했다. 전날 인도령 카슈미르 동남부 지역인 라다크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 수백 명이 양국 국경 역할을 하는 실질통제선(LAC)을 넘어 인도 쪽으로 들어가면서 이날까지 양국 군대 1000여명이 대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속도 내는 북·러 ‘新밀월’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새로운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북·러가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는 내용의 협정 체결이 임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러는 지난 4일 상호 간 불법 입국자와 거주자의 강제 송환 협정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협정은 현재 러 정부 이민국에 계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협정과 의정서의 공식명칭은 ‘러시아연방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 양국 영토 내 불법 입국자 및 거주자 송환에 관한 협정’과 ‘러시아연방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 불법 입국자 및 거주자 송환에 관한 러·북 양국 정부 간 협정 추진 절차에 관한 의정서’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박명철 최고재판소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유리 차이키 러 검찰총장과 협정 체결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협정에는 불법 입국자를 발견할 경우 양국 모두 즉시 송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정은 체제로부터 탈출한 주민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데 러시아가 동의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이 소식통은 분석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본국 송환 시 정치적 탄압이 예상되는 난민들을 강제 송환하는 것은 국제관례와 인권규약에 비추어도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이어서 향후 국제사회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국제사회로부터 우크라이나 분리 정책으로 고립되고,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건의 배후로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탈북자 강제 북송으로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 간 고위급 인사들의 잇따른 교류도 눈길을 끈다. 지난 3일엔 알렉산드르 토르신 러시아의회 상원 제1부의장의 방북을 포함, 러시아의 거물급 인사들이 잇따라 북한을 방문했고 북한도 역시 박 최고재판소장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러시아를 왕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오는 10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방러설이 나오는 것과 관련,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방러와 양국 정상회담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경협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0일 북한은 남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개성공단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에 대해선 무대응했지만, 러시아가 올해 처음으로 요구한 기업인들의 장기 복수비자를 발급했다. 이는 북한에서도 최초의 사례로 알려진다. 북·러 밀착과 관련해서 ‘공산권 때부터 구축해 온 양국 신뢰 관계를 토대로 러시아가 저비용으로 북한과의 관계회복을 꾀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정일 후계자 당시 “공 잘 차면 되지 무슨 마르크스주의”

    김정일 후계자 당시 “공 잘 차면 되지 무슨 마르크스주의”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며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0년대 북한 축구대표팀을 이끌다 2004년 탈북한 북한 축구계의 ‘거목’ 문기남 전 감독을 만나 인천아시안게임을 바라보는 소감과 북한 스포츠계의 속 얘기를 들어 봤다. 문 전 감독은 17일 서울 강남구 자택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를 국제사회의 관심을 얻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관측하며 북한 스포츠계의 향후 행보에 주목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여한다. 얼마 전 북한 축구대표팀이 예선에서 중국을 3대0으로 이기기도 했다.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시점에서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것이고 시기도 아주 좋다. 장성택 처형 등으로 국제 정세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시안게임을 국제사회에 자신들을 보여 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 기회로 삼은 것 같다. 중국과의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 방남한 손광호 북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오길남 북한 축구협회 사무부총장, 윤정수 남자축구대표팀 감독, 김광민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등이 내 후배들이다. →성적은 어떻게 예상하나. -몇 개 종목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다. 역도나 탁구, 레슬링, 체조, 여자 축구, 사격 등이 기대된다. →오랫동안 북한 축구를 이끌어 왔다. -원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인데 세 살 때 아버지가 공산당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하며 외갓집이 있던 평양으로 도망 왔다. 성도 문씨에서 최씨로 바꾸고 평양에서 자랐다. 남한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민등록 사업을 하며 간첩 등을 색출하는 모습을 본 김일성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1966년 북한에서도 신분을 정비했는데, 이때 내가 성을 바꾸고 있던 게 드러났다. 당시 연극영화대학 축구선수였는데 ‘반동성분’으로 낙인찍히면서 축구도 못하게 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이 선수 명단을 다시 구성하며 나를 불러들였다. 당시 김정일은 축구와 영화 등으로 후계자로서 성과를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김정일이 축구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 -김정일은 주말마다 축구를 관람했다. 당시 북한은 매주 주체사상 교육인 ‘토요학습’을 진행했는데, 선수들도 원래는 토요일 학습에 참가해야 했다. 최고권력자의 아들인 김정일은 학습에 참가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자기를 위해 축구시합을 하라고 지시했다. 하루는 북한군 대좌(대령)였던 4·25체육단 축구부장이 “당의 지시로 선수들이 토요학습을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김정일이 “선수가 공이나 잘 차면 되지 무슨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냐”고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북한 매체에 나오기도 했던 당시 리영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그 대좌에게 “왜 말대꾸를 했느냐”며 안절부절못하고 불같이 화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축구를 좋아했나. -토요일마다 직접 경기장에 와서 담배를 피우며 두 경기를 연이어 보기도 했다. 90분 경기에서 승부가 안 나면 직접 선수들에게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지시했다. 사실 축구 전문가도 경기를 연이어 몰두해 보기는 힘들다. →장성택도 북한 체육에 많이 관여했다고 들었다. -1976년에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터지자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한다고 하면서 나를 내부 불순세력으로 몰아 추방했다. 그때 양강도로 추방됐는데 장성택이 나를 다시 불렀다. ‘김정일 접견자’였다는 논리로 노동당 입당도 하게 하고 북한군 직위도 수여했다.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8강까지 오르고 돌아왔는데 나에게 아파트도 줬다. 원래 대상이 아니었는데 장성택이 “저 사람이 안 받으면 누가 받겠느냐”고 편을 들어줬다. →장성택이 축구에 애착을 둔 이유가 뭘까. -내 기억으로 장성택은 교육, 예술 등에 다방면의 지식을 가진 ‘인텔리겐치아’였다. 하지만 김정일·김경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위치이기도 했고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축구 인사들과의 자리였던 것 같다. 축구계 인사들과는 술도 그나마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고, 무슨 얘기를 해도 밖으로 나갈 염려가 없었던 게 이유였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는 어떻게 참가했나. -단일팀이 구성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을 신청했는데, 북한은 남한의 유엔 단독 가입을 막으려고 했다. 또 당시 박철언 체육부 장관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란 얘기도 있었는데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군부 정권이 연장되는 게 달갑지 않은 북한이 이를 막고자 선전전을 벌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우리 코치진과 선수들은 “한반도가 둘로 나뉘어 유엔에 가입하면 영원히 통일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적극적으로 남측 선수들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포섭하라는 핑계로 남측 코치진과 술도 마음대로 먹게 했다. 그 덕에 최만희 감독(현 축구협회 파주 NFC 센터장)과 원 없이 술을 마셨다. 한국에 정착할 때도 최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결국 유엔에 동시 가입했는데. -포르투갈에서 경기를 하는 도중에 유엔 동시 가입 소식이 들렸다. 동시 가입된 그때부터는 남측 인사들과는 인사도 하지 말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전날까지 형·동생 하다가 그 다음날 아침부터는 인사해도 대답도 못하는 처지가 되니 얼마나 곤란했겠나.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한 최만희 당시 코치가 이것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남북 단일팀 훈련을 할 때 북한 국가보위부, 통일전선부와 당 관료들도 남한에 내려와 자기들 사업을 벌였다. 그 가운데 방북 인사였던 임수경의 부모를 만나려는 사람도 있어 내가 무척 화를 내기도 했다. “서울에서 계속 있어야 하는데 서로 다 죽이려고 하느냐”고 버럭 화를 내니 미안하다며 꼬리를 내리더라. →남북 스포츠계를 모두 경험한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스포츠에 대한 오해도 있다. -북한에선 감독들을 ‘야전사령관’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누구보다 우선권을 주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반면 남한 감독들은 이런저런 일들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성과를 내야 하니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성적을 못 내면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얘기도 있는데 1960년대에나 있었던 얘기지 그 뒤로 그런 일은 없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북한 응원단 참가 여부도 관심이 높았다. -북한 응원단이 인천에 와서 한국 사회를 경험하는 것은 북한 체제에 달갑지 않은 일이다. 대표단 본진이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원래 파견할 생각이 없었던 응원단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일 수도 있다. 한국에 환상을 갖고 있는 20~30대 여성들이 한 명이라도 탈북하는 사고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겠나. 더불어 장성택 처형 이후에는 아예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안 하려는 경향이 더 커졌을 것이다. 사고라도 나서 책임지는 것보다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저들 입장에서는 더 안전하다는 의미다. 결국 북으로서는 응원단을 일종의 ‘버리는 카드’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결렬되면 남측에 책임을 넘길 수도 있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올렸을 수 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문기남 전 감독은 1990년 북한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준우승을 한 뒤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북 단일팀의 북한 측 코치를 맡아 한국 축구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2000년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아시안게임에 나서기도 했다. 2004년 부인과 2남 2녀의 자녀와 함께 탈북했고, 이듬해 당시 울산대 이사장이었던 정몽준 전 의원 등 축구계 인사들의 배려로 울산대 축구팀 감독과 울산과학대의 여자축구팀 고문으로 활동했다.
  • [문소영의 시시콜콜] ‘대박통일’과 인공기

    [문소영의 시시콜콜] ‘대박통일’과 인공기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에 태극기가 있듯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는 인공기가 있다. 1987년 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규정돼 국가로서의 북한을 부인하지만, 그 이후 1991년 9월 18일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 두 국가로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한 민족 두 개의 국가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여당으로 정부를 책임지던 노태우 대통령 때다. 1990년 소련과 수교한 뒤 북방정책을 펴 적성국가(敵性國家)로 분류됐던 공산국가인 동유럽과 중국(1992년)까지 수교하자 북한이 유엔 동시가입 반대를 철회한 덕분이다. 유엔 동시가입의 기획은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1973년 6·23 특별선언에 담긴 정신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6월 23일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대통령 특별성명’을 발표하기 전 그 내용을 북한 정부에 미리 통지했다. 이 외교비사는 지난해 12월 밝혀졌다. 미국의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영국 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외교문서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한 해 전인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기 전에 박 대통령은 북한에 미리 알려준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1970년대에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각기 아프리카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데 사활을 걸었지만, 물밑에선 큰 정보도 주고받고 협상도 했던 것 같다. 7·4공동선언이 그 결과물이다. 물론 정부가 북한에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최근 경기 고양시 종합운동장 주변 도로에 인공기가 게양됐다며 항의 소동이 일었다.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 58조에 따르면, 모든 경기장 및 그 부근, 호텔, 선수촌과 메인프레스센터, 공항 등에 참가국 국기를 달아야 한다. 북한이 참가했으니 인공기 게양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지난 11일 인공기 게양 및 소지는 경기장, 시상식장, 선수촌 등 최소한으로 축소했고, 남한인이 소지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덕분에 북한이 중국을 3-0으로 이긴 15일 축구경기에서 푸른 한반도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북한에서 태극기가 걸린 적 있느냐는 질문에 남북관계에 상호호혜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시각을 느낀다. 그러나 올 초 박 대통령이 강조한 ‘통일 대박’과 ‘유라시아 철도 연결’ 같은 구상이 현실적인 정책으로 성사되려면 호혜평등 기준만으로 가능할까 싶다. 먼저 허용할 여유도 있어야 한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똑똑 아시안게임] 북한의 체육 요람은? 4·25체육단

    한국에 국군체육부대가 있다면 북한에는 ‘4·25체육단’이 있다. 4·25체육단은 북한군 소속 체육부대이자, 정상급 선수들의 산실이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양학선과 금메달을 다툴 리세광, 남자 역도 62㎏급 세계기록 보유자 김은국, 작년 레슬링 세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55㎏급 챔피언 윤원철은 모두 4·25체육단이 배출한 선수다. 탁구 혼합복식에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김혁봉과 김정, 작년 7월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에서 북한 여자축구를 우승으로 이끈 공격수 허은별 역시 4·25체육단 소속이다. 명칭인 4·25는 군 창건 기념일에서 따왔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는 1932년 4월 25일을 군 창건일로 정하고 매년 이날을 국가적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4·25체육단에 들어가기 위한 우수 선수들 간의 경쟁도 뜨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속인 4·25체육단은 경제난 속에서도 군 물자 등을 우선 공급하는 정책 덕분에 다른 체육단보다 지원을 잘 받기 때문이다. 4·25체육단은 지난해 한국의 전국체전과 비슷한 공화국선수권대회에서 사격, 양궁, 탁구, 농구, 배구 등 대다수 종목을 석권했고, 올해도 지난 6월 열린 ‘보천보횃불상체육경기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기흥 역세권 계획복합도시 롯데캐슬 레이시티 첫 분양

    기흥 역세권 계획복합도시 롯데캐슬 레이시티 첫 분양

    롯데건설이 이달 경기 용인시 기흥역세권 5100가구 계획복합도시 내 첫 아파트인 ‘기흥역 롯데캐슬 레이시티’(조감도)를 분양한다. 롯데건설은 오는 18일 수지구 죽전동 신세계 백화점 앞에 견본주택을 열고 ‘기흥역 롯데캐슬 레이시티’ 분양에 나선다고 14일 밝혔다. 이 주상복합아파트는 지하 4층~지상 38층 3개 동으로 지어지며 전용면적 84㎡ 위주의 3면 발코니 확장형 아파트 260가구와 전용면적 22~26㎡ 오피스텔 403실, 근린생활 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이 아파트의 시행은 자광건설, 시공은 롯데건설이 맡았다. 기흥역세권 5100가구 계획복합도시 사업은 기흥구 구갈동 234 일대 24만 7765㎡를 환지방식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 아파트는 기흥역세권 도시개발사업지구 내 최초 분양 물량이며 용인시에서 가장 높은 38층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단지 바로 앞에 오산천과 뒤에는 야산이 있어 쾌적한 주거 입지를 갖췄다. 또 서울 왕십리까지 연결되는 분당선과 용인 경전철 환승역인 기흥역 5번 출구가 단지에 붙어 있는 역세권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구성을 거쳐 동탄까지 이어지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가 개통되면 구성역에서 환승 시 기흥역부터 수서역까지 네 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고 소요 시간은 20분대에 불과해 강남 접근성이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교육 여건도 좋은 편이다. 단지 인근에 신갈초·중·고교, 구갈초·중학교 등이 있고 강남대, 단국대, 경기대 등과 가깝다. 아파트 근처에 용인 에버랜드, 용인민속촌 등이 있고 사업지구에 AK플라자가 들어설 예정이다. 분양가는 아파트는 3.3㎡당 1150만~1200만원대, 오피스텔은 3.3㎡당 858만원대로 책정됐다. (031)283-6868.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중·미관계와 한국의 역할/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중·미관계와 한국의 역할/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중·미 간의 불편한 관계는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가함으로써 적대관계로 변화 확대됐다. 그러나 1960년대의 중·소 관계의 악화와 1969년 우수리 강을 사이에 둔 영토분쟁은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을 선택하게 했고, 월남 전쟁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던 미국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중·미 두 나라의 염원은 드디어 1972년 2월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양국 사이에 이른바 ‘상해공동성명’이 발표됨으로써 20여년간의 적대관계는 끝나게 됐다. 미국을 ‘세계인민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던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도모한 데는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위협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는 미국뿐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해공동성명’에는 두 나라가 아직 합의되지 않은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이 같은 견해 차이를 줄이기 위해 두 나라는 먼저 스포츠와 문화 분야에서부터 관계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키신저 보좌관과 닉슨과 포드 등 현직 대통령들의 연이은 방중을 통해 수교의 기틀을 다짐으로써 1979년 1월 1일을 기해 이들 양국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중·미 두 나라는 올해로 수교 35주년을 맞는다.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웬차오(李源潮) 부주석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수교 3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리 부주석은 “양국 지도자의 전략적 안목과 정치적 혜안을 통해 중·미 수교는 20세기 후반의 국제관계에서 전략적인 의미가 가장 큰 역사적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고, 카터 전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미·중 관계 발전의 증인으로서 미·중 간 우호적인 사업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두 나라는 현재 90여개의 정부 간 대화채널과 5000억 달러의 무역규모에 연간 400여만명의 인적 교류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중·미관계의 현주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한 것은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고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특수 관계라 하겠다. 이러한 관계는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신형대국관계’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중·미 간의 이런 관계 속에서 자존과 번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한국의 처지라는 현실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미국과는 기존의 ‘동맹관계’를 보다 강화시켜야 하고,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더욱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솔직히 말하면, 중·미 양국은 지금 각기 자국만을 선택해주기를 내심 바라면서 상대국과의 밀월관계를 경계하고 있는 눈치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중·미 외교에서는 고도의 균형감각을 견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균형감각도 중요하지만, 이는 소극적인 방법에 불과하므로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미 간의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고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중심에 서서 효과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더 적극적인 전략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종전처럼 중·미가 공조하고 협력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이들 양국이 견제와 균형은 물론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우리가 더욱 필요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존과 번영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러한 한국의 역할이야말로 중·미 간 윈·윈(win-win)효과를 볼 수 있고, 역내 국가들은 루즈·루즈(lose-lose)게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상)

    한국전쟁 최대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서울사수’를 외치던 이승만 정부가 전쟁발발 이틀 만에 서울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면서 한강 다리마저 폭파해 150만 서울시민을 적지에 버린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전에 머물면서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라는 녹음방송을 내보내 국민을 속였다. 국회가 서울 사수 결의를 전달코자 했을 때 대통령은 경무대에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그때 한강 다리를 넘지 못한 서울 사람들의 원한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져 오늘의 강남 아파트공화국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몽진(蒙塵)의 역사는 길다. ‘서울 사수’는 한국전쟁 때 처음 나온 말이 아니다. 고려 이후로 역사를 좁혀도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 도읍 송악(개성)이 함락돼 현종이 나주로 몸을 피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9차례 일어났다. 조선 선조와 인조, 고종 등 3명의 왕이 5차례에 걸쳐 의주와 강화, 남한산성, 러시아공사관으로 각각 몸을 피했다. 인조는 강화, 남한산성에 이어 ‘이괄의 난’ 때 공주까지 도피한 비운의 ‘몽진 3관왕’이었다. 그 이전에 4명의 고려 왕(현종·고종·충렬왕·공양왕)이 거란과 몽골을 피해 강화, 안동 등을 30년 가까이 전전했다.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몽진이나, ‘도성을 떠나 딴 곳으로 간다’는 파천(播遷) 같은 왕에게만 쓰는 고상한 용어로 헛갈리게 하지만 이승만식 야반도주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도성수성론 대 서울사수론 1751년에 나온 영조의 ‘수성윤음’(守城綸音)은 봉건 전제군주의 폭탄선언이었다. 이제는 도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도성수성론’(都城守城論)이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 거론된 것이다. 인조가 1637년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한 지 114년 만이고, 고종이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기 145년 전의 일이다. 사실 도성과 도성민은 방어의 대상이 아니었다. 외적이 침입해 도성에 접근하면 왕은 신속하게 피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 결과 임진왜란 때 왜군은 부산상륙 18일 만에, 병자호란 때 청군은 압록강을 건넌 지 5일 만에 한양도성을 손에 넣었다. 유사시 왕의 안전을 담보하고자 별도의 보장처(피신장소)를 여러 곳에 마련해 두는 것을 동양 병법의 전통으로 여겼다. 보호해야 할 대상은 오직 왕뿐이었다. 개성, 강화, 화성, 광주 등 4곳에 유수부(留守府)를 두어 중앙관서로 삼았다. 왕이 도성 밖 행차할 때 머물던 행궁이자 피신처였다. 이 중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은 강화도, 수원 화성과 더불어 외침에 대비한 농성 장소였다. 1712년 북한산성 축성공사를 끝낸 숙종은 북한산성에 올라 “내 어찌 도성을 지키는 백성을 버릴 수 있으리”라는 기념시를 지었다. 외침이 있으면 이곳에 들어와 백성과 더불어 성을 지키겠다는 얘기다. 이때 19살이던 연잉군(영조)은 부왕을 부축해 산성에 올랐다. 도성민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결코 인심을 얻을 수 없다는 도성 사수 의지가 가슴에 깃든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수성윤음이 무색하게 200년이 지난 한국전쟁 때 인민군 남하 3일 만에 대통령은 서울을 버렸다. 영조가 도성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진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 도성 방어 전략의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17세기 말, 18세기 초엽 서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상은 임진년과 병자년의 양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도성의 인구가 30만명에 육박했고, 상공업의 발달로 서울은 거대한 소비도시가 됐다. 중세 유럽의 대도시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선비들의 낙향문화는 사라지고, 경화사족(京華士族)의 벼슬길 독점이 극심했다. 서울은 조선에서 유일무이한 대도시였고, 서울을 떠난 왕은 존재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서울을 버릴 수 없는 속사정과 함께 이제는 중국과 일본을 향해 큰소리칠 때가 왔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숙종 이후 영조에 걸쳐 삼군부를 중심으로 도성 방어 군사체제를 정비하면서 이들 병력을 동원해 한양도성과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했다. 더불어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을 쌓으면서 도성 방어체제가 비로소 갖춰졌다고 본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서울 사수 방송은 대국민 사기극이었지만 영조가 직접 지어 반포한 도성 수성 의지는 탄탄한 국력의 과시이자 거듭된 환난에 고생한 대국민용 위로였다. ●북한산과 남한산,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조선 개국 이후 서울의 정식 명칭은 한성(漢城)이었다. 백성은 한양(漢陽)이라는 별칭을 즐겨 썼다. 삼국시대 이래 지역명 한주(漢州), 한산(漢山)의 맥을 이어받은 지명이다. 기원전 18년 한성백제가 터 잡은 이후 한강(漢江) 아래쪽 지금의 강남 땅이 중심이었지만 1392년 조선이 백악 아래 오늘의 사대문에 도읍을 정하면서 한강 이북으로 중심지가 북상했다.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산은 북한산(北漢山)이요, 산성은 북한산성(北漢山城)이다. 삼각산은 세 개의 뿔(백운대·만경봉·인수봉)을 이르는 신령스런 산이름이지만 한강 북쪽 산은 모두 북한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본래 산이름이 희미해졌다. 한강 남쪽 산은 남한산(南漢山)이요, 성은 남한산성(南漢山城)인 점도 자연스럽다. 남한산성은 세계 최강 10만 청군의 공격을 45일간 버틴 금성탕지(城湯池)이자 난공불락의 철옹성(鐵甕城)이었다. 남한산성은 함락된 것이 아니다. 강화도 함락과 주사파와 주화파의 분열 그리고 식량이 떨어지자 왕이 스스로 걸어서 내려온 것이다. ‘성곽의 증축과 수리는 사전에 허락을 받을 것’이 6번째 항복조건일 정도였다. 남한산(522m)이 최고봉이고 산성은 일장산과 주장산 두 산 사이에 걸쳐 쌓았다. 우리에게 북한산은 산의 개념이 강하지만 남한산은 산성이라는 인식이 더 세다. 서울의 성곽축조 역사는 한성백제, 삼국의 한강 쟁패, 고려의 남경, 조선의 한양도성 등 크게 네 개의 시기로 나뉜다. 지금의 서울은 한성백제의 위례성, 고려의 남경, 조선의 한성 등 2000년 세월 동안 여러 왕조의 도읍지였기에 궁궐과 내성, 산성의 3중 체제를 두루 갖추고 있다. 한강 남쪽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강을 따라 중곡동·옥수동·삼성동·암사동 토성과 대모산성, 양천고성 등이 외곽방어 진지 역할을 했다. 아차산성·이성산성·금암산성·남한산성 또한 백제왕성의 방어기지로 파악된다. 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은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각축지였다. 한강권에서는 주장성, 이성산성, 아차산 고구려 보루성, 대모산성, 행주산성 등이 뺏고 빼기는 삼국의 격전지였다. 진흥왕이 북한산 비봉에 순수비를 세워 이곳이 신라 영토임을 알린 까닭이다. 임진강권에도 칠중성·호로고루·고모리산성·당포성·아미성·계양산성 등이 산재했다. 고려시대 성곽의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연흥전이라는 남경별궁을 세웠고, 최영 장군이 북한산성 자리에 중흥산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성 환인현 오녀산성이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졸본성이었다.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 북쪽 해발 820m의 솟아오른 암벽 위 조촐한 산성이 기원전 37년 고구려의 첫 둥지였다. 이처럼 우리의 왕성(도성)은 산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삼국시대 초기 산성과 왕성의 이원적 구조가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사비성에서 나타났지만, 후기 들어 산성과 왕성의 일체화가 정립되었다. 고려 송악에 이어 조선 한양 도성에도 이 같은 전통이 이어졌다. 중국에는 한국형 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성은 자생적 문화유산이다. 평지의 도성과 산지의 산성이 짝을 이루는 조합은 고대 삼국 이후 한반도 도성 축조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성은 산등성이와 산기슭을 타고 쌓았다. 자연지형의 최고 경계점에 성곽을 쌓아 지형의 높낮이를 성곽으로 이용한 것이 중국이나 일본의 축조 기법과 다르다. ●홍지문과 탕춘대성 창의문을 나서 부암동 가는 산등성이가 내려가는 곳에 백석동천이 있고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세검정과 탕춘대 터가 있다. 도성 밖 북쪽을 지키는 군대(총융청)가 새로 생겼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신영동(新營洞)이다. 탕춘대 터에는 세검정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지만 본래 신라시대 장의사(藏義寺)라는 절터였다.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파랑과 장춘랑 등 두 화랑을 기리는 사찰이었으나 연산군이 이를 허물고 연희장으로 만들어 ‘질퍽하게’ 놀았다고 해서 탕춘대라고 이름 붙었다. 장의사 당간지주가 세검정초등학교 교정 한 귀퉁이에서 1400년의 역사를 뒤집어쓰고 서 있다. 장의사는 비록 사라졌지만 이름은 장의동으로 남았고, 서울의 북소문인 창의문을 장의동에 있는 문이라고 하여 장의문이라고도 불렀다. 인조반정 때 반군이 홍제원에 집결하여 세검정을 거쳐 창의문을 통해 들어와 반정에 성공하였으므로 창의문이 개선문인 셈이다. 풍수 최양선이 숙정문~창의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은 곳이니 길을 내어 지맥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여 태종 때부터 폐쇄한 문을 인조반정 이후 열어 놓았다. 영조는 반정공신들의 이름을 창의문 현판에 새겼다. 안동 김씨 중 이곳에 사는 권문세족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다. 김정호의 경조 오부도 중 백악과 인왕산 사이에 그려진 성곽과 ‘서성(西城) 한북문(漢北門)’이라는 기록이 곧 오늘의 탕춘대성과 홍지문이다. 서성은 한양도성의 인왕산과 북한산 비봉을 연결하는 4㎞ 길이의 산성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처음에는 한성의 북쪽에 있는 문이라고 하여 한북문이라고 불렸으나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이라는 편액을 하사하면서 공식 명칭이 되었다. 탕춘대성 안에 전시 식량을 비축하는 곳간을 만들어 평창(平倉)이라고 하였는 데 평창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서울은 도성을 중심으로 3개의 산성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는 북한산성, 남쪽에는 남한산성이 있고,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서쪽 산성이 탕춘대성이다. 원래 도읍은 궁궐과 내성 그리고 외성 등 삼중구조를 갖춰야 하지만 조선은 궁궐과 해자도 없는 도성만으로 버텼다. 외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양란을 호되게 겪고서야 도성의 군사적 방어체계를 고쳤다. 이를 본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한양도성을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고 찬탄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모닝 브리핑] 시진핑, 北정권수립 66주년 축전

    9일 북한 정권 수립 66주년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축전에서 “양국 간 친선은 두 나라 인민들의 귀중한 재부(재산)”라고 했다. 이는 지난 7월 시 주석의 한국 방문 등으로 북·중 관계가 냉랭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북·중 간 전통적 우호관계가 건재함을 강조하기 위한 제스처로 풀이된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을 겨냥해 노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 “일부 줏대 없는 나라들도 맹종해 미국의 꽁무니를 따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중국과 갈등을 빚은 일본과 납치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 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현대사의 ‘진행형 아픔’ 알려… 관심 낮아 걱정”

    “현대사의 ‘진행형 아픔’ 알려… 관심 낮아 걱정”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인 현대사의 아픔을 알리려 했는데, 의외로 관심이 낮아 걱정이에요.” 개인과 공동체에 얽힌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뤄온 설치미술 작가 임민욱(46)씨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대형 퍼포먼스를 벌여 주목받고 있다. 작품 제목은 ‘내비게이션 아이디’. 지난 4일 6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광주비엔날레의 오프닝 행사에서 경북 경산과 경남 진주에서 60여년 전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담은 컨테이너를 동원해 화제가 됐던 퍼포먼스다. 당시 놓인 컨테이너 2개는 광주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장 앞 광장에서 계속 전시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은 지금도 억압받는 공동체로 남아 있어요. 진실과화해위원회가 발굴하다가 활동 종료로 방치되거나 유족이 발굴한 유해들을 모았습니다.” 보도연맹 관련자와 인민군 부역자로 지목받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유골이다. 작가는 “세월호 사건 못지 않게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하기 위해 앰뷸런스, 소방헬기를 등장시켰다”면서 “권력에 희생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치유하자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작가는 제6회 광주비엔날레상(2006년), 제7회 에르메스미술상(2007년), 제1회 미디어아트 코리아상(2010년) 등을 수상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中정부 대변인 ‘우먼 파워’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中정부 대변인 ‘우먼 파워’

    지난달 26일 오후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부두에 정박 중인 해군 88함선의 기자회견장. 하얀색의 여름 해군 장교복에 옅은 화장을 한 40대 여성이 사뿐히 걸어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인민해방군 해군 최초의 여성 대변인으로 발탁된 싱광메이(邢廣梅·44) 해군 대교(大校·준장급)가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싱 대교는 “27~28일 해군 88함선에서 청·일전쟁 120주년 연구토론회를 개최하고 부근 해역에서 해상 제례의식을 거행하겠다”며 “지금은 (중국이) 해양 강국을 건설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북양해군의 장병들을 위한 제례의식을 통해 청·일전쟁의 치욕과 처참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려는 것”이라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중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호감을 샀다. 해군군사학술연구소 세계해군연구실 주임인 그는 지난해 11월 해군 대변인에 발탁됐지만 단독 기자회견에 등장하기는 처음이었다. 법학박사 출신으로 중국군사과학회 군사분회 부비서장을 지낸 해상안보정책 전문가로만 알려졌을 뿐 개인 정보는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첫 등장을 계기로 인터넷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인민해방군 최초의 여성 대변인이 계급이 높고 미인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싱 대교는 남자 대변인인 량양(梁陽) 상교(上校·대령)보다 한 단계 높은 계급이다. ●해군 최초 싱광메이 대교 발탁 중국 정부 부처에 여성 대변인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과 국무원 타이완(臺灣)사무판공실, 교육부, 국가위생계획생산위원회, 최고인민검찰원 대변인에 이어 인민해방군 대변인에도 늠름함과 지혜를 겸비한 여성이 처음으로 공식 등장했다고 신경보(新京報) 등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주요 부처에 여성 대변인을 잇따라 발탁하고 있는 이유는 ▲대내외적으로 정치체제의 폐쇄성을 불식시키고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포석이며 ▲최근의 여성파워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베이징 정가의 분석이다. 현재 활약하는 여성 대변인은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외사위원회 주임과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신문사(국) 부사장, 쑹수리(宋樹立)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 선전사 부사장, 쉬메이(續梅) 교육부 대변인, 샤오웨이(肖瑋) 최고인민검찰원 신문대변인, 판리칭(範麗靑) 타이완사무판공실 신문국 부국장 등이다. 푸잉 주임은 이들의 ‘대모’ 격이다. 몽골족 출신인 그는 1988년 필리핀 대사로 임명돼 첫 소수민족 여성 출신 대사, 최연소 여성 대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1977년 중국 외교관의 산실로 불리는 베이징 외국어학원 영어과를 졸업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 등 최고 지도자들의 통역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호주·영국 대사 등 영어권 대사를 주로 맡았다. 지난해 3월 전인대에서 중국의 개혁 방향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여성의 섬세함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푸잉 전인대 외사위 주임이 ‘대모’격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2012년부터 외교부 다섯 번째 여성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강(秦剛)· 훙레이(洪磊) 대변인과 함께 매일 내외신 브리핑을 번갈아가며 맡는다. 친강 수석 대변인은 발탁 이유와 관련, “20년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양호한 소통능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일본이나 베트남 등과 해상 영유권 분쟁이 심해질 때 화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면 중국에 우호적인 외신기사가 많아진다는 분석도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여성이 하늘의 반쪽을 떠받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는 말을 남겼다. 마오는 외교부에 여성 대변인을 두는 걸 염두에 뒀으나 이루지 못했다. 중국에 대변인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오의 생각은 1987년 리진화(李金華)가 외교부 대변인에 기용되면서 실현됐다. 난카이(南開)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는 중국 외교부에 대변인 제도가 생긴 이후 7대 대변인이다. 외교부 신문사의 전신인 정보사 도서자료실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대변인 역할을 깔끔하게 수행했다. 중국 외교정책의 원칙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대 여성 대변인은 판후이쥐안(範慧娟) 전 아일랜드 대사다. 외교학원 외교학과 영문반을 졸업한 그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국 등에서 근무한 뒤 56세이던 1991년 외교부 대변인에 임명됐다. ●마오쩌둥 “여성이 하늘 반쪽 떠받쳐” 최연소 외교부 여성 대변인 기록을 가진 장치웨(章啓月)는 부부 외교관이다. 남편은 류제이(劉結一) 주유엔 대사다. 아버지가 일본 대사 등을 지냈으며 어머니도 외교부 관리였다. 3대 여성 대변인인 그는 당시 외신기자들 사이에서는 “답변이 간결하고 시원시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1년 발생한 중·미 정찰기 충돌 사고 당시 사고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등을 보여주며 중국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진가를 높였다. 단아한 미모로 유명한 장위(姜瑜)는 네 번째 여성 대변인이다. 2009년 스페인의 언론이 선정한 ‘세계에서 아름다운 여성 정치인 및 공직자’에 중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차갑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상냥한 편이다. 그는 대변인 시절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줄 때마다 옅은 웃음을 띠어 ‘미소 대변인’이라는 별칭도 있다. 쑹수리 국가위생계획생육위 대변인는 베이징중의약대를 졸업한 뒤 10년간의 강사 생활을 거쳐 공직에 입문했다. 중의학에 대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그는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의 중국 내 상황을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전해 중국 보건 정책에 대한 해외 불신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쉬메이 대변인은 2008년부터 교육부 대변인을 맡아 대변인 경험이 풍부하다. 베이징사범대를 졸업한 뒤 교육부 산하 언론기관에서 일하며 언론 감각을 키웠다. 샤오웨이 최고검찰원 대변인은 20여년간 검찰일보에 근무한 덕에 법 집행에 따른 검찰의 딱딱하고 강한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신화사 기자 출신인 판리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 대변인은 홍콩의 ‘점령시위’와 ‘타이완독립’ 통합물결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홍콩 사회를 어지럽히고 양안관계를 깨뜨려 국가를 분열시키는 세력에 대해서는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며 중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khkim@seoul.co.kr
  • 우크라·반군, 전쟁 중단 합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5개월 동안 이어 온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 반군,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5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교전 사태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을 열고 휴전 의정서에 서명했다. 의정서에는 즉각적인 전투 중단, 반군의 점령지 철수, 안전지대 획정, 중립 국가들에 의한 휴전 감시, 포로 교환, 평화 정착 방안 등 14개 항의 합의가 포함됐다. 합의 발표 직후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육군 사령관에게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으로 5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1시)를 기해 전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반군 지도자들도 똑같은 명령을 전장의 지휘관들에게 하달했다. 이날 민스크 ‘접촉그룹’ 회의에는 우크라이나 측에서 레오니트 쿠치마 전 대통령, 러시아 측에서 미하일 주라보프 키예프 주재 러시아 대사, 유럽 측에서 하이디 탈리야비니 OSCE 우크라이나 문제 담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분리주의 반군 측에선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분리주의자들이 각각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 수장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와 이고리 플로트니츠키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허종만 조선총련 의장 訪北 김정은과 면담 가능성

    허종만 조선총련 의장 訪北 김정은과 면담 가능성

    허종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의장이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고 교도통신이 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 의장은 이날 도쿄 하네다공항을 통해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으로 향했으며 조선총련 부의장, 조선대학 학장과 함께 6일 평양으로 들어간다. 허 의장은 9일 북한 건국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면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조선총련 의장의 방북은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처음이다. 허 의장 본인도 2006년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참석차 방북한 이후 8년 만에 북한을 찾게 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급구! 소림사 대변인

    1500년 역사를 가진 중국 무술의 본산인 소림사가 홍보 책임자 모집 공고를 내면서 또다시 상업화 논란에 휩싸였다. 소림사 산하 소림무형자산관리유한공사가 지난 1일 자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서 “글 잘 쓰고 영어 소통이 가능하며 인터넷 등 신매체에서 일해 본 경험자를 우대한다”는 조건으로 홍보 책임자를 모집한 결과 4일 현재 300여명이 지원했다고 인민망이 5일 보도했다. 지원자 중에는 예일대 등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한 해외파를 비롯해 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등 중국 유력 매체 출신의 언론인이 많다고 덧붙였다. 소림사 관계자는 “홍보 책임자를 선발하려는 것은 세계에 소림사를 잘 알리기 위한 의도”라면서 “웨이보 등 신매체를 통해 소림사를 알리고 소림사 국제청소년여름캠프 등 관련 활동도 홍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림사가 전액 출자한 소림무형자산관리유한공사는 소림사의 지적소유권을 관리하고 소림사를 대외에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홍보 책임자 선발을 두고 소림사 상업화의 연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신경보는 이날 사설에서 “소림사가 더욱 힘써야 할 부분은 미디어관리인 채용이 아니라 소림 문화에 대한 보급”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소림사는 경영학 석사 출신인 스융신(釋永信)이 1999년 방장을 맡은 뒤 쿵후(功夫)쇼와 영화 촬영, 기념품 판매, 모바일 게임 출시 등 수익사업에 몰두하면서 불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스융신은 “소림사의 상업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기업 관리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소림사를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 25일 올 두번째 최고인민회의 소집, 왜

    북한이 오는 25일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한 가운데 지난 4월 전격 발탁된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임명 제청 등 권력 개편에 따른 후속조치 논의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중앙통신은 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으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2차 회의를 9월 25일 평양에서 소집한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4월 9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4월 말쯤 당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었던 최룡해를 대신해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을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북한의 최고 결정권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지만, 과거 김정일 시대와 달리 공식 의결 기구를 통해 결정을 해온 만큼 이번에도 최 전 총정치국장이 겸직했던 당 군사위원회 및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황 총정치국장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 측의 고위급 접촉에 대한 북한의 무응답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했다. 임 대변인은 “우리 측이 두 차례나 대화를 촉구했음에 북한이 아직까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길에 동참하길 기대한다”며 북한의 화답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북한은 조선적십자회 명의로 제3국을 통해 월북한 남측 주민을 오는 11일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월북한 사람은 경기 안성시에 사는 김모씨로 생계가 어려워 불법 입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우크라서 실제 총성 멎을지… 푸틴에게 달렸다

    우크라서 실제 총성 멎을지… 푸틴에게 달렸다

    우크라이나 정부, 친러시아 반군,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5일 벨라루스에서 열린 다자회담에서 휴전안에 전격 서명함으로써 지난 5개월 동안 전 세계를 ‘신냉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전기를 맞았다. 유엔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유혈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정부군과 반군을 합쳐 2600명에 달하고, 피란민도 34만명이다. 지난 7월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교전 지역에서 격추됐을 때 논의됐던 휴전안과 달리 이번에는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댔고 결국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실제로 양측이 전투를 멈출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휴전안은 친러 반군의 배후로 지목돼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서서 제안했고,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도 “합의안이 서명되면 곧바로 휴전을 명령할 것”이라고 밝혀 왔기 때문에 회담 전부터 성사에 무게가 실렸다. 동부의 친러 반군들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지도자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도 “민스크에서 합의안이 도출되면 1시간 내에 전쟁을 중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정말로 총성이 멎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푸틴 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지도자들은 “절대 푸틴을 믿을 수 없고 반군이 당장 점령지에서 철수하기 전에는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경파인 아르세니 야체뉴크 우크라이나 총리는 휴전 성사 직후 “러시아가 손을 뗀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미국과 유럽이 이를 보증해야 휴전이 실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장의 반군들도 “우크라이나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푸틴에게 수차례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끼고 있는 서방이 합의안을 전폭 지지할지도 미지수다. 당장 이날 영국 웨일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담에선 더 강력한 러시아 경제제재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휴전 상황을 봐 가면서 제재를 시행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나토는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1500만 유로(약 200억원) 규모의 군사 지원 기금을 조성하고, 동유럽 회원국에 이틀 내 배치 가능한 신속대응군을 창설해 러시아를 압박하기로 했다. 서방국 사이의 견해차도 있다. 미국과 영국은 “휴전과 무관하게 강력한 추가 제재안을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독일과 프랑스는 “휴전이 됐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구본영 칼럼] ‘박세리 키즈’와 리영희 혹은 후쿠야마 키즈

    [구본영 칼럼] ‘박세리 키즈’와 리영희 혹은 후쿠야마 키즈

    며칠 전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10가지’ 중 대표적 사례로 여자 골퍼들의 역량을 꼽았다.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때마다 한국 낭자군이 리더보드 상단을 차지하고 있으니 빈말은 아니다. 최근 LPGA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김인경이 아깝게 준우승했다. 그 직전까지 이미림, 박인비, 유소연이 LPGA 3개 대회 연승 행진을 벌이던 터였다.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도 신지애, 이보미, 안선주가 상금왕 3파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박세리 키즈(kids)’다.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자 박세리의 ‘맨발 투혼’을 보며 골프에 입문한 그들 말이다. 젊은 날 누군가에게 감화를 받고 분발의 계기로 삼는 이들이 박세리 키즈뿐이겠는가. 유신 치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는 리영희 교수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등은 사실상 금서였다. 당시 리 교수의 책을 함께 탐독한 학우들 중 일부는 마오쩌둥을 정말 ‘위대한 혁명가’로 받아들였다. 작가 이병주가 그랬던가.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고. 필자에겐 달빛 어슴푸레한 골방에서 읽던 금서의 솔깃한 메시지가 오래갈 순 없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마오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이 수천만 중국인을 사지로 내몬 폭거였음이 백일(白日)하에 드러났지 않는가. 최근 ‘리영희 키즈’로 남지 않은 게 천만다행임을 거듭 실감했다. 지난달 말 탄생 110주년을 맞은 덩샤오핑에 대한 대륙의 엄청난 추모 열기를 보면서. 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마오는 공업화와 인간혁명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상찬했다. 하지만 마오가 밀어붙인 대약진운동 기간 중 3800만여명의 무고한 중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리 교수는 생전에 마오의 이런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인민의 운명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적 흐름까지도 바꿔놨다”고 마오의 노선을 뒤엎은, 덩의 개혁·개방 노선을 극찬했다. 덩처럼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쫓겨 ‘하방’(下放: 지방 오지에서의 강제 노역)의 쓴맛을 본 그가 허튼소리를 했을 리는 없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스탈린이나 마오,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등 마르크스-레닌 사생아들의 경제 실험이 좌초하며 각광을 받은 인물이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다. 일본계 3세 정치경제학자인 그는 ‘역사의 종언’에서 오만하게도 변증법적 역사발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로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가 지구촌의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는 지론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면 더 이상 역사적 진보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일종의 ‘후쿠야마 키즈’들이 경제적으론 신자유주의, 정치적으론 신보수주의(네오콘)와 손잡고 맹위를 떨치는 동안 뜻밖의 반전이 이뤄졌다. 정작 후쿠야마 본인이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를 목격하고 미국식 시장경제의 비전이 허물어졌다고 지적하면서다. 자신의 오류를 일부 인정한 셈이다. 후쿠야마든 리영희든 극단적 주장만 펴는 인물이 젊은이들의 ‘사상의 은사’가 된다면 매우 위험한 일일 게다. 세월호 정국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좌든 우든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내 생각만 옳다”며 독선적·비타협적 주장을 펴는 이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다간 세월호에 이어 대한민국호(號)가 가라앉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다. 이념적 편향 없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정직한 스포츠에서 한국정치가 배워야 할 판이다. 그게 박세리 키즈의 성공이 주는 교훈이다. “국가 조직(정책)에도 궁극적 인식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더 나은 해결책을 향한 접근만 있을 뿐”이라는 철학자 칼 포퍼의 겸손한 어록이 새삼 와 닿는 요즘이다.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