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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산 카놀라 이어 육류 수입 중단… 中, 집요한 ‘화웨이 보복’

    캐나다산 카놀라 이어 육류 수입 중단… 中, 집요한 ‘화웨이 보복’

    중국 정부는 지난달 26일 캐나다산 육류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은 캐나다산 돼지고기에서 중국이 금지하는 사료첨가물 ‘락토파민’이 검출된 후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위조된 검역증명서 188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날부터 캐나다에서 수입한 육류제품을 돌려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대사관은 “(캐나다산 육류는) 명백하게 안전상의 허점이 있다”며 “중국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긴급 예방 조치를 취했고, 캐나다 정부에 중국 수출용 육류의 증명서 발급을 보류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관세청)는 앞서 18일 락토파민이 검출된 캐나다 수출업체로부터의 돼지고기 수입 중단을 발표하며 캐나다산 돼지고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중국의 캐나다에 대한 보복 조치가 조직적이고도 집요하다. 중국이 2017년 미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배치할 때 보여 준 것처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의 부회장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舟·47)가 지난해 12월 1일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된 이후 카놀라 수입 중단과 돼지고기 수입 중단, 전직 외교관과 대북 사업가 체포 등 중국의 대캐나다 보복 조치가 정교하고도 치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의 캐나다에 대한 보복 조치는 지난해 12월 10일 전후에 캐나다인 2명을 억류하는 것으로 포문이 열렸다. 중국 정부는 전직 외교관인 마이클 코브릭과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를 국가 기밀을 정탐하거나 훔친 혐의로 정식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다섯달이 지난 5월에야 공식 확인했다. 코브릭은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 선임 고문이다. 언론인과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2013년 캐나다 외교관으로 전직했다. 그는 외교관 활동 당시 베이징, 홍콩 등 중화권 외교공관에서 주로 근무했고 201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는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ICG에 선임 고문으로 합류했다. 동북아 문제를 연구해 온 코브릭은 북한 관련 보고서 작성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2월 초까지 홍콩에 머물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베이징으로 갔으며, 12월 10일까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검찰의 승인을 거쳐 마이클 코브릭은 외국을 위해 국가 기밀과 정보를 정탐한 혐의로, 마이클 스페이버는 외국을 위해 국가 기밀을 훔치고 불법으로 제공한 혐의로 최근 법에 따라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체포 시기나 장소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수출 비중 높은 식육 가공품 겨냥 검역 강화 보복 조치는 중국 자동차 업계로 이어졌다. 플리비오 볼프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업체협회장은 12월 17일 캐나다에 생산 확대를 위한 투자를 논의 중이던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갑작스레 이를 중단하겠다고 알려 왔다고 밝혔다. 볼프 회장은 멍완저우 부회장의 체포로 중국 업체들의 캐나다 확장 계획이 동결됐다면서 “이들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논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이 불확실성을 먼저 해결하자면서 2년 정도 계획을 접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올 들어 첫 보복 조치는 중국 법원이 마약 밀수 혐의를 받고 있는 캐나다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중급인민법원은 1월 14일 진행된 재판에서 마약밀매 혐의를 받고 있는 캐나다인 로버트 로이드 슐렌버그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슐렌버그는 2016년 11월 법원에서 15년 징역형과 15만 위안(약 2526만원)의 재산 몰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한 슐렌버그가 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에 항소했지만, 고등인민법원은 12월 29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하급심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다롄시 중급인민법원에 재심을 명령하자 중급인민법원은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슐렌버그는 2014년 마약밀매 조직에 가담해 중국에서 제조한 222㎏의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을 타이어 속에 숨겨 호주로 밀반출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은 캐나다의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 식육 가공품을 정조준해 수입 검역을 대폭 강화하면서 보복 강도를 높였다. 지난 3월 캐나다산 카놀라에서 유해생물이 발견됐다며 카놀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랠프 구데일 캐나다 공공안전부 장관은 “중국의 이번 제재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요구해 왔지만, 지금까지 어떤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中 작년 캐나다산 카놀라 2조 3825억원 수입 이와 관련해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대변인 담화를 통해 “중국은 정상적인 검역 안전 예방 조치를 한 것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라며 “중국 관련 법률규정과 국제관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 해관총서가 구체적으로 1월 4일과 3월 1일, 3월 15일, 3월 26일 등 통보 날짜까지 명시하며 올해 1월 이후 4차례 캐나다 연방정부의 검역담당 부서에 캐나다산 수입 카놀라에서 검역성 유해생물이 발견된 정황을 적극 통보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중국 대사관은 이어 “업체가 추가 조사를 하고 개선 조치를 적절히 취해 유사 문제의 재발을 피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며 “양국이 기술적인 분야에서는 줄곧 소통을 유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 캐나다에서 생산된 카놀라의 40%를 수입했으며, 그 규모는 27억 캐나다 달러(약 2조 3825억원)에 이른다. 카놀라의 원산지로 알려진 캐나다는 연간 4000t가량의 카놀라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중국은 이와 함께 지난달엔 돼지고기와 관련한 규정을 위반했다며 캐나다 돼지고기 업체 2곳에 대한 수출 허가를 일시 정지시켰다. 마리 클로드 비보 캐나다 농업부 장관은 5월 1일 중국으로부터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진 않았다면서도 중국이 캐나다 돼지고기 수출업체 2곳에 대한 수출 허가를 정지했다는 보고를 직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돼지고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행정적인 문제일 뿐인 것 같다. 왜 허가가 정지됐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에는 캐나다 돼지고기 수출업체인 프리고로열의 돼지고기 수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은 캐나다의 세 번째로 큰 돼지고기와 소고기 수출 시장이다. 올 1분기에만 중국에 대한 캐나다의 돼지고기와 소고기 수출액은 각각 2억 1500만 캐나다 달러, 4800만 캐나다 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소비국인 중국은 지난해 5억 1400만 캐나다 달러 규모의 돼지고기를 캐나다로부터 수입했다. 현재 중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창궐로 국내 돼지고기 공급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세계 3위의 돼지고기 생산국인 캐나다는 대중 수출 증대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비보 장관은 “ASF 문제, 중국이 매우 큰 돼지고기 소비국이라는 점, 캐나다에는 ASF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놀랍다”고 털어놨다. 물론 중국은 ASF 문제와 돼지고기 밀수 위험과 관련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멍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된 데 따른 보복 조치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군다나 이번 육류 및 돼지고기 수입 금지 조치가 멍 부회장이 캐나다 법무장관에게 범죄인 인도 절차를 중지해 달라고 요청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멍 부회장 변호인단은 24일 캐나다 법무부 장관에게 인도 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멍 부회장은 현재 가택연금 상태에서 미국 인도 절차를 위한 법원 심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hkim@seoul.co.kr ■이 기사는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goo.gl/sdFgOq)의 전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 홍콩 향해 총겨눈 中… “반중시위 격화 땐 무력사용” 경고

    홍콩 향해 총겨눈 中… “반중시위 격화 땐 무력사용” 경고

    中언론 “법치에 대한 도발·침범” 비판 대만 고위관료 “中, 일국양제 포기하라”홍콩 사상 초유의 입법회 의사당 점거 시위가 벌어진 직후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 앞바다에서 군함과 헬기 등을 동원해 실시한 훈련 장면을 전격 공개해 홍콩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반중 시위가 격화할 경우 중국 정부가 사회안정 유지를 빌미로 무력 사용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지난 2일 오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홍콩 주둔 중국군이 지난달 26일 오전 8시 40분쯤 홍콩 해역에서 육해공 합동 긴급 출동 및 대응 훈련을 진행했다며 사진 6장을 함께 올렸다. 사진에는 홍콩 앞바다에서 기동훈련을 하는 중국군 소속 군함과 헬리콥터, 고속정 등이 등장한다. 또 해군 함정이 훈련 중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던 센트럴과 애드미럴티 쪽으로 항해하는 장면과 중국군 장병들이 소총으로 홍콩 섬을 조준하는 등 위협적 내용도 담겼다. 중국 정부가 비공개로 실시한 합동 훈련을 ‘엄격한 처벌’을 주문한 입법회 점거 시위 직후 공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 전문가들은 “홍콩 사회에 무력 사용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경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덤 니 호주국립대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훈련 사실을 공개한 궁극적인 목적은 홍콩 정부가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중국군이 동원될 것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기본법에 따라 홍콩 경찰이 치안을 유지하지만 군부대를 상주시킨 중국은 홍콩 스스로 사회안정 유지가 불가능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의 일부’인 홍콩에 군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국 매체들도 3일 홍콩 입법회 점거 시위와 관련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인민일보는 “홍콩 정부의 엄중한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결연히 지지한다”며 “시위대의 폭력 행위는 홍콩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신화통신도 “극단주의 세력이 폭력적인 방식을 이용해 입법회를 점거했다”며 “이들의 행위는 법치에 대한 도발이자 침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CMP는 중국 언론이 일제히 홍콩 시위를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베이징의 개입이 임박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대만 정부는 중국 당국에 ‘일국양제’(1국가 2체제)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대만의 중국 담당 부처인 대륙위원회 천민퉁(陳明通) 위원장은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힌 뒤 “중국은 소통과 대화에 나서 정세 오판의 위험을 낮추라”고 촉구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 평양 도착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 평양 도착

    알렉산드르 포민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이 지난 2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이 평양 공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인민무력성은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을 위한 연회를 개최했으며 이 자리에는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과 북 주재 러시아대사관 인사, 김형룡 인민무력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 평양 도착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 평양 도착

    알렉산드르 포민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이 지난 2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이 평양 공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인민무력성은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을 위한 연회를 개최했으며 이 자리에는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과 북 주재 러시아대사관 인사, 김형룡 인민무력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김유근 어떻게 안이한 판단했는지 안 밝혀… 의혹만 증폭시킨 靑

    김유근 어떻게 안이한 판단했는지 안 밝혀… 의혹만 증폭시킨 靑

    文, 엄중 경고… 靑 “축소·은폐는 아니다” 조사 대상 靑 빠져 ‘반쪽짜리 결과’ 비판 “北 선원들 가족 피해 우려 ‘표류’ 거짓말 4명 모두 특수훈련 신체적 특징 없어” 여야 “경계작전 실패” 한목소리 질타정부 합동조사단이 지난달 15일 발생한 ‘북한 목선 남하’ 사건에 대해 3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개입해 축소 및 은폐를 하려 했다는 의혹은 명확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군이 최초 어선 식별 지역을 ‘삼척항 인근’으로 발표한 것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했거나 안이하게 대처했다”며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초기 상황을 공개하지 말자고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부는 당시 상황이 발생한 후 매뉴얼에 따라 해경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삼척항 인근’이란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일 해경은 기자단에게 문자로 ‘삼척항으로 옴으로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군은 엉뚱하게도 이틀이 지난 17일 ‘삼척항 인근’이라고 표현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개입 의혹이 증폭됐다. 정부는 그에 관한 이유에 대해서 이날 명확히 해명하지 못했다. 또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이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있음을 질책했다는 사실도 공개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떤 사유로 질책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애초에 청와대를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데 따른 ‘반쪽짜리 조사 결과’라는 비판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청와대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국가안보실도 관련자에 대한 징계 조치가 있었다”고만 했다. 의문이 증폭되자 청와대는 몇 시간 뒤 문 대통령이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에 대해 ‘엄중경고’를 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은폐·축소 때문이 아니라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 경고 사유라고 밝혔다. 물론 무슨 상황을 어떻게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아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앞서 국가안보실 소속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달 17일과 19일 브리핑에 참석해 ‘은폐 및 축소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와 관련, ‘행정관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서 왔는지에 대해 제가 답변하기는 제한이 된다”고 하는 등 전반적인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이 역력했다. 말만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인 셈이다. 정부는 이날 북한 선원 4명에 대한 조사 결과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결론 내리며 여러 의혹을 부인했다. 최초 4명이 모두 귀환 의사를 밝혔다가 선장을 포함한 2명이 귀순 의사를 표명한 데 대해서 정부는 “선장이 귀순의사를 처음부터 밝히면 한국 언론을 통해 귀순 사실이 즉각 알려져 북에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동료와 사전에 토의한 대로 기관고장으로 표류해 왔다고 최초 진술했다”며 “이후 실제 송환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귀순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귀순 의사를 밝힌 선원은 과거 한국에 살고 있는 이모를 찾아 육지로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된 전력으로 수감생활을 한 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와 선원의 옷차림이 너무 깨끗하다는 의혹에 대해서 정부는 이들이 조업활동을 지난달 11일과 12일 2회밖에 하지 않았으며 일부 선원은 인민복과 작업복 등 여벌을 챙겨왔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이들이 타고 온 배는 28마력 중국산 저출력 엔진 1개만 장착한 소형 목선으로 간첩선에 비해 성능이 현격히 떨어져 해상 침투 및 도주에 적합하지 않다”며 “북한 선원 4명 모두 특수훈련을 받은 신체적 특징이 없었으며 무기 및 간첩통신장비 등 특이물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여야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대북 경계작전과 공보 대응에 실패했다”며 국방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여정·최선희·현송월…北 협상팀 ‘이례적 여풍’

    김여정·최선희·현송월…北 협상팀 ‘이례적 여풍’

    지난달 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때 북한 측 당국자 그룹에 여성들이 다수 포함돼 있던 점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여정(왼쪽) 노동당 제1부부장은 ‘핵심 실세’, 최선희(가운데) 외무성 제1부상은 ‘대미 협상 중책’, 현송월(오른쪽) 당 부부장 겸 삼지연관현악단장은 ‘의전 총괄’을 맡으며 판문점에 총출동했다. 북한의 막중한 대외 핵 협상에서 여성들이 이처럼 한꺼번에 팀을 이뤄 활약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직접적 계기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따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협상에서 손을 뗀 데 따른 여파로 보인다. 그럼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성별에 상관없이 중책을 맡긴다는 해석은 가능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 자신의 딸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대동했듯 김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 제1부부장과 함께 등장하면서 두 사람 모두 양국 정상의 핵심 측근으로서 위상이 부각됐다. 최 제1부상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제안 트윗에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화답 담화를 내면서 김 위원장의 수석 대변인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최 제1부상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실질적으로 장관급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최 제1부상이 앞으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카운터파트로 나서기보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처럼 실무 협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 부부장은 김 제1부부장의 의전 역할을 물려받아 지난 4월 북러 정상회담과 지난달 평양 북중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의 의전을 총괄하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순종 조문 온 총독 노렸던 ‘금호문 의거’… 6·10 만세 자극제로

    순종 조문 온 총독 노렸던 ‘금호문 의거’… 6·10 만세 자극제로

    1926년 4월 28일 오후 1시 10분쯤 서울 창덕궁 금호문 앞. 사람 무리 속에서 건장한 청년이 자동차 한 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동차에는 일본인 3명이 타고 있었다. 금호문을 빠져나온 자동차는 돈화문 쪽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 다시 금호문 쪽으로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사이토 총독이다”라고 수군거렸다. 청년은 비호처럼 뛰어올라 왼손으로 자동차 창을 잡고 날카로운 칼로 가운데 앉은 사람을 찌르려 했다. 왼쪽 사람이 저지하기에 그 사람을 공격하고 다시 가운데 사람을 찔렀다. 빠르기가 전광석화와 같았다. 총독 처단에 나선 주인공은 평범한 조선 청년 송학선이었다.불행히도 가운데 사람은 일본 총독 사이토가 아니었다. 송학선 의사(義士)가 사이토로 오인하고 처단한 사람은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인민회 이사 사토였다. 왼쪽 사람은 경성부협의원(국수회조선본부이사) 다카야마였다. 이들은 순종 황제 빈소에 조문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송 의사는 재동 쪽으로 달아났다. 휘문고보 교문 앞까지 달아나자 경찰 수십명이 추격했다. 일경들은 칼을 휘두르고 돌을 던지면서도 감히 근접하지 못했다. 겁에 질린 헌병 두 명이 권총탄을 서너발 쏘았다. 하지만 의사는 “오냐, 쏘아 죽여라”라고 하면서 두 팔을 떡 벌렸다. 결국 의사는 머리에 상처를 입고 일경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의사는 구경하던 학생들에게 “만세를 불러라, 만세를 불러”라고 소리쳤다. 다카야마는 사망했고 총독으로 오인받은 사토는 중상을 입었다. 송 의사가 활극 배우처럼 거사를 일으킨 날은 순종 황제가 굴욕적인 삶을 이어 가다 승하한 13일 후로 백성이 비탄에 빠졌을 때였다. 일제는 송 의사 의거 직후에는 보도를 통제해 5일 후에야 언론을 통해 의거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송 의사의 의거는 ‘금호문(金虎門) 사건’이라 이름 붙여졌다. 비록 오인으로 실패했지만 순수한 청년의 단독 의거는 6·10 만세운동을 일으킨 자극제가 되었다.의사는 1897년 2월 19일 서울 천연동에서 태어났다. 아우들의 이름도 우학선(又學善·또학선), 삼학선(三學善)이었다. 의사가 보통학교 1학년에 다닐 때 아버지의 사업 파산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의사도 떠돌이 생활을 했고 16세 때 장사를 하러 갔던 아버지가 돌아와서 가족이 다시 모였다. 19세 때 서울 남대문에 있는 농구(農具) 회사에 취직했다. 집안 살림이 조금씩 나아졌고, 1922년 2월 애오개(아현) 마루턱 북아현동에 오막살이 같은 작은 집을 마련해 이사했다. 그러나 의사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급성 각기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는데 치료를 한 끝에 1925년 봄에 완쾌했다. 송 의사는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외유내강의 강직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사의 성품과 자질에 대해 송상도의 ‘기려수필’에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과묵하여 일생을 두고 남과 언쟁을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의사가 반일 감정을 느낀 것은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진고개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았고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일본인 회사에 다니며 차별을 받았고, 병으로 강제 해고당하면서 그런 의식이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 후 의사는 조선 총독을 목표로 삼아 거사를 계획했다. 의사는 치밀하게 준비했다. 사이토 총독의 사진을 보고 용모를 머리에 담아 두었다. 틈만 나면 집 뒷산에 올라 칼 꽂는 연습을 했다. 막내아우 송삼학선씨는 월간지를 통해 이렇게 회고했다. “형님은 평소에 남한테 싫은 얘기 한마디 않고 지내던 양순한 사람이다. 내가 놀란 것은 형님이 날카로운 비수를 꼬나쥐고 나무 앞에서 찌르는 연습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형님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형님의 칼 쓰는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칼은 집수리를 하던 사진관 부엌에서 주운 서양식 고급 과도였다. 의사는 그때 미장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의사는 “하늘이 주신 것”이라고 기뻐하며 예리하게 갈아 놓았다. 기회가 오자 순하고 불우했던 청년은 단호하게 칼을 휘둘렀다.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그해 7월 15일 의사의 제1차 공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정에는 방청객 500여명이 몰려 재판을 지켜봤다. 의사는 재판장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강경한 태도로 진술했다. 일제는 의거를 궁박한 생활을 못 이긴 강도질로 깎아내리려 했다. 재판장이 강도질을 하려고 칼을 주워다 둔 것 아니냐고 묻자 송 의사는 “총독을 암살할 목적으로 가지고 왔었소. 내가 밥을 굶소? 왜 강도질을 하겠소?”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무료로 변론했던 고 이인 변호사는 “의사의 얼굴에는 의연한 태도, 긍지가 보였다. 조국을 위해서 할 일을 했다는 말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제는 처음에 중국에서 온 독립단원일 것으로 추측하고 배후를 캐려고 했지만,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도 몰랐던 일이었다. 1심에 이어 1926년 11월 10일 2심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은 의사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나를 사형에 처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북아현동 집에서 서대문형무소를 오가며 옥바라지를 하던 모친과 동생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1927년 5월 19일 오후, 비밀리에 사형이 집행됐다. 의사는 교수대에 오를 때도 태연했다.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고 체포된 지 1년 만에 송 의사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신은 화장했다. 몸져누운 모친에게는 사형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사후 92년이 지난 지금, 창덕궁 금호문으로 관광객들이 무심히 드나들고 있지만 의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거 터 표지석도 주변 공사로 어디로 치워 버렸는지 찾을 수 없었다. 북아현동 의사의 집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5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다. 의사의 집터라는 표식도 없다. 송 의사의 유골은 서울 봉원사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묘소는 가묘다. 장남이던 의사의 사형 집행 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송 의사는 결혼하지 않아 직계 후손이 없다. 1962년 정부는 송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동생들과 그 후손들의 행방도 찾지 못하고 있다. 잊힌 의사의 충혼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03년 ‘송학선 의사 기념사업회’가 결성됐고 송주섭(88)씨가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송 회장은 송 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송 의사는 은진 송씨인데 송 회장은 근원이 같은 여산 송씨 종중 대표라는 인연뿐이다. 그러면서도 사재를 털어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다.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이 명예회장,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이 법률고문을 맡아 송 회장을 돕고 있다. 사업회는 서울 세검정 상명대 아래에 기념관과 동상을 세울 부지 660여㎡를 마련했고 내년 6월 착공할 계획이다. 시가 6억원가량의 부지는 송 회장이 개인 땅을 기부한 것이며 사업비 10억여원도 지방의 송 회장 개인 토지를 처분해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송 회장은 “정부에서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안중근, 김구 선생 같은 분만 지원하려 하지 송 의사 같은 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글·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좋은 변화 보여준 만남 긍정적” 김정은, 하노이 노딜 상처 극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깜짝 회담 제의에 응하며 판문점에서 만난 배경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을 서둘러 재개해 톱다운 방식으로 끌고 가겠다는 김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비핵화 협상의 기한을 연말로 못박은 만큼 하반기에는 협상을 재개해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 실무진에게 있다고 간주하며 이들이 정상 간 소통에 개입하는 데 거부감을 가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만남 기회를 놓치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실무가 아닌 정상 간 회담으로 시작함으로써 비핵화 합의는 정상 간 담판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을 향후 회담 방향으로 설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2~3주 내에 실무팀을 꾸려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이벤트에 동참함으로써 그의 재선을 측면 지원하고 그와 비핵화 협상을 4년 더 이어 가려는 의도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 최고지도자와 직접 만나 거래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지난 30년간 북핵 협상을 실패로 이끌었던 미국 관료의 영향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하에 비핵화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김 위원장이 판단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앞으로 더 좋게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는 만남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으면 제가 굉장히 민망했을 텐데 나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사상 처음으로 미국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 대통령과 군사분계선을 넘고 판문점에서 회담하는 파격 이벤트를 선보이면서 하노이 회담 결렬로 인한 내상을 치유하고 내부적으로 권위를 회복했다는 평가다. 또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 내부에 북미 비핵화 협상의 회의론이 불거지는 것을 차단하고 협상 재개의 명분을 쌓았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내년은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이고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종료되는 해이기에 김 위원장은 올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리더십에 상당히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미국도 내년이 대선이기에 김 위원장이 연말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빨리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협상을 재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중국 공산정권 수립 70주년 맞아 대규모 특사 단행

    중국 공산정권 수립 70주년 맞아 대규모 특사 단행

    중국 정부가 오는 10월 공산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9번째이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9일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항일전쟁에 참가하는 등 9가지 분류에 해당하는 죄인들을 특사로 석방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날 건국 이래 9번째인 특사 결정문건에 서명해 즉각 공포했다. 특사자들은 법원의 결정 즉시 차례로 풀려난다. 이번 특사는 공산당 지도부가 사회주의 정권 출범 70주년을 향한 축하 무드를 고양하고 공산당의 구심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특사 대상은 올해 1월 1일 이전에 확정 판결을 받은 죄수들 가운데 국가의 주권과 안전, 영토를 수호하는 대외작전에 참가하거나 모범 노동자로서 표창을 받은 적이 있는 이들이다. 또한 과잉 방위나 긴급 회피 행위 등으로 3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잔여 형기가 1년 미만인 죄수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부패와 오직 혐의로 복역하는 수형자는 제외시켰다. 이에 따라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 정쟁에 휘말려 비리로 낙마한 정치 거물들도 빠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 당국은 2015년에도 ‘항일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특사를 실시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에 밉보여 집요하게 보복당하는 캐나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에 밉보여 집요하게 보복당하는 캐나다

    중국 정부는 지난 26일 캐나다산 육류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은 캐나다산 돼지고기에서 중국이 금지하는 사료첨가물 ‘락토파민’이 검출된 후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위조된 검역증명서 188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날부터 캐나다에서 수입한 육류제품을 돌려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대사관은 “(캐나다산 육류는) 명백하게 안전상의 허점이 있다”며 “중국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긴급 예방 조치를 취했고, 캐나다 정부에 중국 수출용 육류의 증명서 발급을 보류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관세청)는 앞서 18일 락토파민이 검출된 캐나다 수출업체로부터의 돼지고기 수입 중단을 발표하며 캐나다산 돼지고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캐나다에 대한 보복 조치가 조직적이고도 집요하다. 중국이 2017년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배치할 때 보여준 것처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의 부회장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舟·47)가 지난해 12월1일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된 이후 카놀라 수입 중단과 돼지고기 수입 금지, 전직 외교관과 대북 사업가 체포 등 중국의 대캐나다 보복 조치가 정교하고도 치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의 캐나다에 대한 보복 조치는 지난해 12월 10일 전후에 캐나다인 2명을 억류하는 것으로 포문이 열렸다. 중국 정부는 전직 캐나다 외교관인 마이클 코브릭과 캐나다인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를 국가 기밀을 정탐하거나 훔친 혐의로 정식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다섯달이 지난 5월 16일에야 공식 확인했다. 외교관 출신인 코브릭은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 선임 고문이다. 언론인과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2013년 캐나다 외교관으로 전직했다. 그는 외교관 활동 당시 베이징, 홍콩 등 중화권 외교공관에서 주로 근무했고 2017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는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ICG에 선임 고문으로 합류했다. 동북아 문제를 연구해온 코브릭은 북한 관련 보고서 작성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2월 초까지 홍콩에 머물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베이징으로 갔으며, 12월 10일까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검찰의 승인을 거쳐 마이클 코브릭은 외국을 위해 국가 기밀과 정보를 정탐한 혐의로, 마이클 스페이버는 외국을 위해 국가 기밀을 훔치고 불법으로 제공한 혐의로 최근 법에 따라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체포 시기나 장소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보복 조치는 중국 자동차 업계가 이어받았다. 플리비오 볼프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업체협회 회장은 12월 17일 캐나다에 생산 확대를 위한 투자를 논의 중이던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갑작스레 이를 중단하겠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볼프 회장은 멍완저우 부회장의 체포로 중국 업체들의 캐나다 확장 계획이 동결됐다면서 “이들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논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이 불확실성을 먼저 해결하자면서 2년 정도 계획을 접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올 들어 첫 보복 조치는 중국 법원이 마약 밀수 혐의를 받고 있는 캐나다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중급인민법원은 1월14일 진행된 재판에서 마약밀매 혐의를 받고 있는 캐나다인 로버트 로이드 슐렌버그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슐렌버그는 2016년 11월 법원에서 15년 징역형과 15만 위안(약 2526만원)의 재산 몰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한 슐렌버그가 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에 항소했지만, 고등인민법원은 12월29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하급심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다롄시 중급인민법원에 재심을 명령하자 중급인민법원은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슐렌버그는 2014년 마약밀매 조직에 가담해 중국에서 제조한 222㎏의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을 타이어 속에 숨겨 호주로 밀반출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은 이도 부족했던지 캐나다의 수출비중이 매우 높은 식육 가공품을 정조준해 수입 검역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3월 캐나다산 카놀라에서 유해생물이 발견됐다며 카놀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랠프 구데일 캐나다 공공안전부 장관은 “중국의 이번 제재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요구해왔지만, 지금까지 어떤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중국은 정상적인 검역 안전 예방 조치를 한 것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라며 “중국 관련 법률규정과 국제관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 해관총서가 구체적으로 1월 4일과 3월 1일, 3월15일, 3월26일 등 통보 날짜까지 명시하며 올해 1월 이후 4차례 캐나다 연방정부의 검역담당 부서에 캐나다산 수입 카놀라에서 검역성 유해생물이 발견된 정황을 적극 통보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중국 대사관은 이어 “업체가 추가 조사를 하고 개선 조치를 적절히 취해 유사문제의 재발을 피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며 “양국이 기술적인 분야에서는 줄곧 소통을 유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 캐나다에서 생산된 카놀라의 40%를 수입했으며, 그 규모는 27억 캐나다 달러(약 2조 3825억원)에 이른다. 카놀라의 원산지로 알려진 캐나다는 연간 4000t 가량의 카놀라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중국은 이와 함께 지난달엔 돼지고기와 관련한 규정을 위반했다며 캐나다 돼지고기 업체 2곳에 대한 수출 허가를 일시 정지시켰다. 마리 클로드 비보 캐나다 농업부 장관은 5월1일 중국으로부터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진 않았다면서도 중국이 캐나다 돼지고기 수출업체 2곳에 대한 수출허가를 정지했다는 보고를 직원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돼지고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행정적인 문제일 뿐인 것 같다. 왜 허가가 정지됐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에는 캐나다 돼지고기 수출업체인 프리고 로얄(Frigo Royal)의 돼지고기 수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은 캐나다의 세 번째로 큰 돼지고기와 소고기 수출 시장이다. 올 1분기에만 중국에 대한 캐나다의 돼지고기와 소고기 수출액은 각각 2억 1500만 캐나다 달러, 4800만 캐나다 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소비국인 중국은 지난해 5억 1400만 캐나다 달러 규모의 돼지고기를 캐나다로부터 수입했다. 현재 중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창궐로 국내 돼지고기 공급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세계 3위의 돼지고기 생산국인 캐나다는 대중 수출 증대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비보 장관은 “ASF 문제, 중국이 매우 큰 돼지고기 소비국이라는 점, 캐나다에는 ASF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놀랍다”고 털어놨다. 물론 중국은 ASF 문제와 돼지고기 밀수 위험과 관련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멍완저우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된 데 따른 보복 조치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군다나 이번 육류 및 돼지고기 수입 금지 조치가 멍 부회장이 캐나다 법무장관에게 범죄인 인도 절차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이같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멍 부회장 변호인단은 24일 캐나다 법무부 장관에게 인도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멍 부회장은 현재 가택연금 상태에서 미국 인도 절차를 위한 법원 심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화웨이 직원들, 중국 인민해방군과 공동 연구”

    “화웨이 직원들, 중국 인민해방군과 공동 연구”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가 중국 인민해방군(PLA)과 연구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중국 정부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할 수 있다며 국가안보상 위협을 제기해온 만큼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화웨이 소속 일부 직원들은 지난 2006년부터 10여년 동안 PLA 내 다양한 조직의 인사들과 팀을 꾸려 인공지능(AI), 무선통신 등 분야에서 최소 10건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 프로젝트 중에는 이들 직원이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온라인 영상 코멘트를 추출해 감정별로 분류하는 협력 작업을 했고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NUDT)과는 위성 사진과 지리학적 좌표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에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이는 화웨이와 중국 PLA가 이전에 알고 있던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파워하우스 분야 이상의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10편의 협력 논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블룸버그는 “화웨이 임직원이 18만명에 이르는 만큼 실제로 더 많은 협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민감한 연구들은 아예 비공개 분류되거나 온라인에 업로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중국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정기 간행물과 온라인 연구 데이터베이스(DB)에서 논문을 살펴본 결과 관련 논문의 저자가 화웨이 임직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화웨이가 PLA와 군사·안보적 문제와 관련해 협력, 인민해방군 프로젝트에 참여했음을 방증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연구 논문들이 화웨이 직원 개인의 연구 참여에 불과한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화웨이는 즉각 부인했다. 글렌 슐로스 화웨이 대변인은 “화웨이는 직원 개인 활동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화웨이는 PLA 산하 기관과 연구·개발(R&D) 협력이나,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 않다”면서 “민간용 통신장비만 개발·생산할 뿐 중국군을 위해 어떠한 작업을 하고 있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중국 국방부에 논평을 응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줄곧 부인해왔다. 평소 언론 노출을 꺼려하는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서방을 중심으로 제기된 ‘중국 정부 스파이’ 우려를 없애기 위해 올초부터 공개적 행보에 나섰을 정도다. 올초 미 CBS의 ‘디스 모닝’(This Morning)과의 인터뷰에서 런 회장은 “개인적인 정치신념과 화웨이의 사업은 밀접한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서방에서는 화웨이를 100% 민영기업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런 회장이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자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이 중국 당국과의 유착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화웨이가 사명부터 ‘중국을 위한다‘(華爲)는 뜻이며 회사 문화는 군대식이라고 알려지면서 화웨이의 국유기업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화웨이가 ‘백도어(인증 없이 전산망에 침투해 정보를 빼돌릴 장치)’가 설치된 자사 통신장비를 통해 기밀을 빼돌릴 수 있다는 이유로 영국·호주·뉴질랜드 등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 사용 자제를 촉구해왔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화웨이에 대해 거래중단 조치도 밝히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해 화웨이는 궁지로 몰리고 있다. 여기에 중국 PLA와의 협력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우리가 사랑한 소녀들(최현미·노신회 지음, 혜화1117 펴냄) 일간지 문화부장인 엄마와 대학생 딸이 어린시절에 만난 동화, 애니메이션, 만화, 그림책 속 여성 주인공들을 소환해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봤다. 50대 엄마가 ‘피터팬’ 속 웬디에게 요구된 현모양처의 품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20대 딸은 어린아이로 머무는 피터팬에 비해 성장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웬디를 이해하는 식이다. 324쪽. 1만 6500원.올가(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시공사 펴냄) 독일어권 소설로는 최초로 뉴욕타임스 1위 기록을 세웠던 작가의 신작. 19세기 말 가난한 슬라브족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고아가 된 여성 올가가 비스마르크 시절부터 나치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편견과 광기에 맞서 스스로의 삶을 지켜내는 모습을 담았다. 368쪽. 1만 4800원.1962(마이클 돕스 지음, 박수민 옮김, 모던아카이브 펴냄) 지난해 국내 출간된 ‘1945’의 저자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중 두 번째 저작.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위기로 손꼽히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케네디와 흐루쇼프 두 초강대국 지도자는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했을까. 워싱턴포스트의 외신기자 출신 작가가 쿠바 미사일 위기의 실체를 치밀하게 그렸다. 640쪽. 3만 2000원.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류현수 지음, 예문 펴냄) 2011년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처음 세워진 우리나라 1호 공동체주택 ‘소행주’. 소행주를 탄생시킨 장본인인 저자는 현대 대한민국 주거에서 사라진 마당의 개념을 부활시켜 소통과 관계 맺기의 기쁨도 되살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288쪽. 1만 7000원.인민의 얼굴(한성훈 지음, 돌베개 펴냄) 분단과 냉전 체제를 살아온 북한 사람들의 생활과 그 구조를 살펴보는 책. 이들에게 냉전이라는 정치적 현상은 어떤 생활세계의 변화로 이어졌는지, 북한 체제의 공식 의제 아래에서 작동하는 비공식 담론의 형태와 그 속마음은 어떤지, 21개 키워드로 들여다본다. 424쪽. 2만 2000원.붕괴(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아카넷 펴냄)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글로벌 경제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역사를 다룬다.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위기, 브렉시트 국민투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적 사건들을 금융위기와의 관련 속에서 풀어냈다. 964쪽. 3만 8000원.
  • [단독] “北에만 핵무장 해제 강요 땐 협상 또 실패… 美 상응조치 보여야”

    [단독] “北에만 핵무장 해제 강요 땐 협상 또 실패… 美 상응조치 보여야”

    조선신보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기관지이다. 그 조선신보의 김지영 편집국장 인터뷰는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과 미국 간 교착 상태에 대한 북한의 의중을 살피려고 기획된 것이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언론 매체와 조선신보가 지난 4개월간 미국과 남한을 향해 수많은 언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문가조차도 분석에 쩔쩔 매는 게 현실이다. 25년간 도쿄와 평양을 오가며 고 김일성 주석,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북한 지도자의 현장 취재를 해온 김 편집국장은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대미 대화 연말 시한의 진의, 북미 톱다운 대화 가능성, 비핵화 정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등 최근의 북미·남북 현안에 대해 황성기 서울신문 평화연구소장, 김태균 도쿄 특파원이 2시간 동안 김 편집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는 도쿄에서 지난 26일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북미를 뜻하는 ‘조미’ 같은 표현은 그대로 살렸다. 1만 2000자의 인터뷰 전문은 인터넷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다).-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로 친서를 주고받았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재개하자는 의지로 볼 수 있나. “김 위원장의 의지는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에 다 나와 있다. 인내심을 갖고 연말까지 3차 조미(북미) 수뇌(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미국의 용단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용단의 주체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친서는 두 수뇌들의 신뢰관계를 재확인하는 내용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친서라고 하는데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조선(북한)과 미국 두 나라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 조선의 최고지도자가 미국 대통령과 여전히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앞으로 3차 수뇌회담 개최를 위해 셈법을 바꿔야 하는 것은 미국 측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친서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은 ‘진심 외교’를 하고 있다. 친서도 그러한 진심의 표현이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은 조미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세력의 저항과 방해를 억제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대통령 의향에 충실하다는 보장이 없으며 자기 나름의 ‘국익’을 주장하며 협상에 난관을 조성한다. 그런 만큼 오랜 적대에 기인한 불신의 장벽을 넘고 새 조미관계를 수립하자면 톱다운이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친서에 대한 김 위원장의 평가가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공개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유를 뭐라고 보나.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 정신에 어긋나게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취한 데 있다. 미국은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강요했다. 새로운 조미관계의 수립, 평화체제의 구축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다. 조선만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라 미국도 비핵화를 위한 행동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은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을 준수할 때 원활하게 이행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협상팀은 조선의 비핵화를 전제로 해야만 공동성명을 이행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들 뜻대로 되면 보상하겠다고만 한다.” -미국이 꺼낸 빅딜 문서의 내용은 뭔가. “핵무기, 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조선은 없다고 하는데도 생화학무기도 폐기하라고 한다. 과학자, 기술자들도 전직시키라고 한다. 저들의 요구만 나열했다. 이건 딜이 아니다. 항복하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이 해야 하는 것밖에 없었다.” -미국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은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행동조치, 군사분야에서의 행동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전쟁 종결과 평화체제 구축에서는 국제법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미국 협상팀은 미국이 비핵화를 향해 어느 단계를 거쳐서 어떤 절차를 밟을지를 조선 측에 제안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조선은 더이상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영변 핵시설의 영구페기를 제안했다. 그러면 미국도 상응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협상이 성립될 수 있다. 미국 협상팀은 단지 밝은 미래가 있다,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만 하는데 말이 안 된다. 조선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조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핵을 버리면 잘살 수 있다는 헛소리만 한다.” -4월 시정연설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대화 시한을 연말이라고 했다. 그 의미는. “2020년 미국 대선이 있고,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외교를 못 한다. 지금 대화 상대는 김 위원장과 신뢰관계가 있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대선의 해를 맞이하기 전에 싱가포르 정신에 따라 어떻게든 비핵화의 첫걸음을 내딛고 조미관계를 진전시키자, 그걸 하고 나서 대선을 맞이하자는 것이 아닌가. 조선에서는 ‘미국식 계산법’이라고 부르는데 하노이에서 합의도출에 장애를 조성한 그릇된 계산법을 접고 조선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들고 나온다면 한 번은 더 수뇌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북한이 양보해서 셈법을 바꿀 가능성은.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밝힌 원칙은 정세가 어떻게 흐르든 변경이 없다. 미국이 올해 말 전에 하노이에서의 잘못을 고치고 화답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조선은 까닥도 하지 않는다. 조선과 미국은 오랜 적대 관계에 있는 만큼 미국이 조선의 우려를 가셔줄 용의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조선만이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로 없다. 조미 사이의 충분한 신뢰조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쌍방의 동시적 행동이 필수적이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순차적으로 해 나가는 단계적 방식이 필요하다.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협상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셈법을 안 바꾸고 연말까지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화 없이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고 군사 대결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은 조선이 핵무장하지 않으면 안 됐던 상황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화는 하지 않고 너희들 핵 버리라고 제재를 가하고 군사적 위협도 한다면 조선에서도 상응하는 조치가 나올 수밖에 없다. 5월에 있었던 인민군의 화력타격훈련에서 전술유도무기가 발사된 것을 두고 미국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저강도 도발’이다 이런 식으로들 말하는데, 도발을 먼저 한 것은 미국과 남측이다. 합동군사훈련을 안 한다고 했는데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종합훈련을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전개훈련도 있었다. 모두 조선을 겨냥한 훈련이다. 힘에는 힘으로 대처하기 위해 인민군이 훈련을 했다. 전술유도무기가 240㎞ 날아갔다지만 고도가 40㎞였다. 일반적인 탄도로켓이라면 고도는 80㎞다. 낮은 고도로 날아드는 전술유도무기는 사드로는 요격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연말 시한이란 것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의 시한이라는 뜻인가. “연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용단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것을 벗어나면 하노이 약속이 유지될지 파탄 날지 장담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게 없다’고 하는데 그건 셈법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조선반도 비핵화는 스텝바이스텝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전쟁위협 제거, 핵전쟁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는 조치를 미국이 단번에, 한순간에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할 수밖에 없다. 조선은 미국의 걸음에 맞추어 전진한다. 모두가 기대하는 그런 시점까지 가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연말까지 안 되면 제재는 유지될 것인데, 제재에 견딜 체력은 얼마나 되나. “제재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나라가 붕괴하거나 대미협상에서 양보를 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여느 국가라면 안 되지만 조선은 건국 이래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실천해 왔다. 국내의 자원과 기술에 의거하여 제발로 걸어가는 경제다. 바로 자립경제의 토대가 있어 조선은 제재를 박차고 국가핵무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그 자력, 자강의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부흥을 이루겠다고 시정연설에서 밝혔다. 충분한 승산이 있기에 그런 연설이 가능한 것이다.” -북한은 북미에 톱다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근차근 실무협상을 한 후 톱다운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실무협상은 의미가 없다. 하노이와 똑같은 대화는 실무급이든 고위급이든 안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말로는 비핵화를 얘기하지만 실제로 핵·미사일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관측도 많다. “비핵화는 진심으로 얘기했다고 본다. 세계를 기만하기 위한 공동성명이 아니다. ‘평화의 보검’(핵무기)은 미국과의 대결관계가 이어지는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영원히 핵전쟁이 조선반도에서 없다고 하면 그것이 평화다.” -문 대통령을 두고 오지랖이 넓은 ‘중재자’가 되지 말라든지 북한이 남한을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북남(남북) 수뇌회담이 3번 열리고 수뇌 합의가 2번 나왔고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했는데 남측 당국의 언동을 보면 어긋나는 것이 너무 많다. 자주와 자결의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라 정반대라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북남이 합의했던 것 하나라도 행동에 옮기면 된다. 행동에 옮긴 것을 바탕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 문제도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 없이 대가 없이’ 재개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조선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 조치로써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8천만 겨레가 눈물 흘리며 박수 치고 환호했던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가 왜 조선이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의 보상조치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북 회담이 힘들다고 봐야 하나. “회담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특히 수뇌회담은. 조선은 미국에 셈법을 바꿔서 가져오라, 조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서 오라는 것인데, ‘여러 사정이 있는데 미국 측 사정을 봐야 한다’ 이런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아니고 북남 합의가 이렇게 이행됐다, 그러니 다음 단계를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 그런 식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정리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김지영 국장은 1966년 일본 교토 출생의 재일동포 3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만든 조선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89년 총련 기관지를 제작하는 조선신보사에 입사했다. 조선신보 정치부에 적을 두고 92년부터 평양지국의 단기특파원으로 시작해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2018년 7월까지 도쿄와 평양을 오가며 기자 활동을 했다. 지금도 김지영 기자 명의의 논평을 조선신보에 싣고 있다. 조선신보 기자로서 고 김일성 주석,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취재현장에서 지켜봤다.
  •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 인터뷰 2] “비핵화는 김 위원장의 진심”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 인터뷰 2] “비핵화는 김 위원장의 진심”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과 인터뷰 두 번째 대목이다. 인터뷰 1 보러 가기 25년 동안 도쿄와 평양을 오가며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북한 지도자의 현장 취재를 해온 김 편집국장은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대미 대화 연말 시한의 진의, 북미 톱다운 대화 가능성, 비핵화 정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등 최근의 북미·남북 현안에 대해 황성기 서울신문 평화연구소장, 김태균 도쿄 특파원이 2시간 동안 김지영 편집국장과 만났다. 인터뷰는 도쿄에서 지난 26일 진행됐다.Q: 4월 시정연설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과 대화 시한을 연말이라고 했다. 그 의미는 뭔가. A: 2020년 미국 대선이 있고, 선거 국면 들어가면 외교를 못한다. 지금 대화 상대는 김정은 위원장과 신뢰관계가 있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대선의 해를 맞이하기 전에 싱가포르 정신에 따라 어떻게든 비핵화의 첫걸음을 내딛고 조미관계를 진전시키자, 그걸 하고 나서 대선을 맞이 하자는 것이 아닌가. 조선에서는 ‘미국식 계산법’이라고 부르는데 하노이에서 합의도출에 장애를 조성한 그릇된 ‘미국식 계산법’을 접고 조선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들고 나온다면 한번은 더 수뇌회담을 할 수 있다는것이다. Q: 북한이 양보해서 셈법을 바꿀 가능성은. A: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밝힌 원칙은 정세가 어떻게 흐르든 변경이 없다. 미국이 올해 말 전에 하노이에서의 잘못을 고치고 화답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조선은 까닥도 하지 않는다. 조선과 미국은 오랜 적대관계에 있는만큼 미국이 조선의 우려를 가셔줄 용의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조선만이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로 없다. 싱가포르 성명에도 조미 수뇌들이 ‘호상(상호)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명기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감정이 아니다. 조미 사이의 충분한 신뢰조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쌍방의 동시적인 행동이 필수적이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순차적으로 해 나가는 단계적 방식이 필요하다. 조선은 미국의 ‘최대 압박’에 굴복하여 회담장에 나온 것이 아니다. 미국의 오만과 독선을 짓부시는 핵무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회담장에 나온 것이다. 상대에게 그 무엇을 강요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패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쥔다면 조미 대화는 좌절을 면할 수 없다. 조선은 최고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미국의 행동에 상응한 선의의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갈 각오와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를 구별하듯이 불공정한 요구를 들이대고 굴복을 강요하는 오만과 독선은 허용하 않는다. 이것은 조선의 사고방식이 경직돼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협상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신뢰조성에 치명적인 강권의 방법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저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만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현실적인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제시된 시한 내에 미국이 건설적인 방안을 가지고 나온다면 조선도 그에 상응하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Q: 미국이 셈법을 안바꾸고 연말까지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 대화 없이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고 지금의 군사 대결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은 조선이 핵무장하지 않으면 안됐던 상황이 그대로 이어진다는것이다. 미국이 대화는 하지 않고 너희들 핵 버리라고 제재를 가하고 군사적 위협도 한다면 조선에서도 상응하는 조치가 나올 수밖에 없다. 5월에 있었던 인민군의 화력타격훈련에서 전술유도무기가 발사된 것을 두고 미국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저강도 도발’이다 이런 식으로들 말하는데, 도발을 먼저 한 것은 미국과 남측이다. 합동군사훈련 안하다고 했는데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종합훈련을 했다. 사드의 전개훈련도 있었다. 모두 조선을 겨냥한 훈련이다. 힘에는 힘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인민군이 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전술유도무기가 240km 날아 갔다지만 고도가 40km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탄도로케트라면 고도는 80km다. 낮은 고도로 날아드는 전술유도무기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로는 (요격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군사전문가들이 지적했는데 그것은 무모한 군사도발을 제압할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훈련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발사에 대하여 ‘단거리’라며 문제시하지 않았다.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중단조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통령은 그 약속을 믿고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노이 회담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대화가 재개된다면 두 수뇌가 상대의 견해와 입장을 확인한 하노이회담은 3차 수뇌회담에서 ‘포괄적이고 획기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성명 이행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둘러싸인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김 위원장을 믿고 용단을 내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면 위원장은 반드시 선의의 조치로 화답할 것이다. Q: 연말 시한이란 것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의 시한이라는 뜻인가. A: 연말까지 인내심 갖고 용단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것을 벗어나면 하노이 약속이 유지될지 파탄될지 장담할 수 없다. Q: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이 넘어가 있다는 것인가. A:하노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제재 해제 문제가 아니다. 영변 핵시설 폐기 문제도 아니다. 그 시점에서 미국 측에 비핵화를 추진할 의사가 없었다. 그것은 조선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조선의 일방적 핵무장 해제 요구를 나열한 빅딜 문서를 꺼내들고 합의도출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공동선언에 따라서 한다면 조선이 얼마든지 미국이 취하는 행동조치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이다. 영변만 하자고 한다면 영변만 하고, 영변 플러스 알파를 말한다면 우선 미국측에서 그에 상응하는 저들의 행동조치를 내놓으라는 것이다.Q: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게 없다’고 하는데 그건 셈법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A: 조선반도 비핵화는 스텝바이스텝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전쟁위협 제거, 핵전쟁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는 조치를 미국이 단번에, 한순간에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할 수밖에 없다. 조선은 미국의 걸음에 맞추어 전진한다. 모두가 기대하는 그런 시점까지 가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Q: 연말까지 안되면 제재는 유지될 것인데, 제재 견딜 체력은 얼마나 되나. A: 제재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나라가 붕괴하거나 대미협상에서 양보를 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여느 국가라면 안되지만 조선은 건국 이래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실천해왔다. 국내의 자원과 기술에 의거하여 제발로 걸어가는 경제다. 바로 자립경제의 토대가 있어 조선은 제제를 박차고 국가핵무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그 자력, 자강의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부흥을 이루겠다고 시정연설에서 밝혔다. 충분한 승산이 있기에 그런 연설이 가능한 것이다. Q: 북한은 북미에 톱다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근차근 실무협상을 한 후 톱다운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A: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실무협상은 의미 없다. 하노이와 똑같은 대화는 실무급이든 고위급이든 안한다는 것이다. Q: 김 위원장이 말로는 비핵화를 얘기하지만 실제로 핵·미사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는 관측도 많다. A: 비핵화는 진심으로 얘기했다고 본다. 세계를 기만하기 위한 공동성명이 아니다. ‘평화의 보검’(핵무기)은 미국과의 대결관계가 이어지는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영원히 핵전쟁이 조선반도에서 없다고 하면 그것이 평화다. 정리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인터뷰 3 보러 가기
  •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 인터뷰 1] “핵 버리면 잘 살수 있다는 헛소리만”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 인터뷰 1] “핵 버리면 잘 살수 있다는 헛소리만”

    조선신보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기관지이다.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 인터뷰는 하노이 회담 이후 4개월간 북한과 미국 간 교착 상태에 대한 북한의 의중을 살피려고 기획된 것이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언론 매체와 조선신보가 지난 4개월간 미국과 남한을 향해 수많은 언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문가조차도 언설의 분석에 쩔쩔 매는 게 현실이다. 25년 동안 도쿄와 평양을 오가며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북한 지도자의 현장 취재를 해온 김 편집국장은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대미 대화 연말 시한의 진의, 북미 톱다운 대화 가능성, 비핵화 정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등 최근의 북미·남북 현안에 대해 황성기 서울신문 평화연구소장, 김태균 도쿄 특파원이 2시간 동안 김지영 편집국장과 만났다. 인터뷰는 도쿄에서 지난 26일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미를 뜻하는 ‘조미’ 같은 표현은 그대로 살렸다.)Q: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로 친서를 주고받았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재개하자는 의지로 볼 수 있나. A: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는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에 다 나와 있다. 인내심을 갖고 연말까지 3치 조미(북미) 수뇌(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미국의 용단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 용단의 주체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친서는 두 수뇌들의 신뢰관계를 재확인하는 내용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친서라고 하는데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조선(북한)과 미국 두 나라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에 있다고 했다. 조선의 최고지도자가 미국 대통령과 지금도 여전히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앞으로 3차 수뇌회담 개최를 위해 셈법을 바꿔야 하는 것은 미국 측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그에 관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Q: 문재인 대통령이 친서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고 했는데. A: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사람은 사심이 없이 진실해야 한다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들이 진심으로 나오면 진심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외교활동에서도 사람과의 사업이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국방위원장의 외교철학을 계승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른바 ‘진심 외교’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조미 두 나라가 이렇게 적대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두 나라의 이익과 세계의 평화, 안전을 위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역사적 사명을 지닌 정치가로서 함께 해보자. 이렇게 ‘진심 외교’를 했을 것이고 친서도 그러한 진심의 표현일 것이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진행된 수뇌회담은 조미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세력의 저항과 방해를 억제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미국의 외교는 진심외교가 아니라 패권 추구의 수단이며 그 원동력은 이기심이다. 상대에게 자기의 주장을 강요하고 비핵화 논의에서는 조선에 대하여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대통령의 의향에 충실하다는 보장이 없으며 자기 나름의 ‘국익’을 주장하며 협상에 난관을 조성한다. 그런 만큼 오랜 적대에 기인한 불신의 장벽을 넘고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자면 톱다운이 매우 중요하다. 김 위원장 친서는 그러한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어넣어준 것이라고 본다. 새 결단을 내리는지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위원장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위원장은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고 하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친서에 대한 위원장의 평가가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통해 공개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Q: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유를 뭐라고 보나. A: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 정신에 어긋나게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취한 데 있다. 미국은 2018년 6월 조미 수뇌회담에서 채택된 싱가포르 성명의 정신에 따라 조선반도(한반도)를 비핵화할 의지가 없었다. 실제로는 조선에 대하여 일방적인 핵무장해제를 강요하려고 했다. 공동성명에 명기된 합의사항 즉 새로운 조미관계의 수립, 조선반도 평화체제구축,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앞에서 발표한 공약이다. 이것들은 조미 공동의 과제이며, 해결을 위해 쌍방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조미관계의 수립도 평화체제의 구축도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다. 조선만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라 미국도 비핵화를 위한 행동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은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을 준수할 때 원활하게 이행될 수 있다. 이 원칙은 어느 일방의 주장이 아니라 싱가포르 회담에서 확인된 사항이다.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 사이에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조선 측이 도발로 간주하는 미남(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며 조선에 대한 안전담보를 제공하고 관계개선이 진척되는 데 따라 대 조선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측이 관계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 조치를 취해 나간다면 그에 상응하게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미국의 협상팀은 조선의 비핵화를 전제로 해야만 공동성명을 이행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들 뜻대로 되면 보상하겠다고만 한다. 조선이 일방적으로 굴복하면 적대관계가 없어진다는 것인데, 그건 아니다. 지금 비핵화를 논하고 있는데 조선반도를 핵화한 장본인은 미국이다. 조선반도에 핵을 끌어들이고 조선을 상대로 핵전쟁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조선이 억지력으로서 핵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제압하는 힘을 조선이 버리면 조미관계가 좋아진다고 거꾸로 말한다. 조선의 일방적 핵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핵전쟁 위협은 지속시키겠다는 소리나 같다. Q: 미국이 꺼낸 빅딜문서의 내용은 뭔가. A: 핵무기, 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조선은 없다고 하는데도 생화학무기도 폐기하라고 한다. 과학자, 기술자들도 전직시키라고 한다. 저들의 요구만 나열했다. 이건 딜이 아니다. 항복하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이 해야 하는 것 밖에 없었다. Q: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보좌관이 빅딜 카드를 꺼낸 것은 비핵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봤나. A: 그 사람들은 조선이 일방적으로 핵을 버림으로써 자기들 위험이 가셔지는, 그런 비핵화를 바라고 있다. 70년에 걸쳐 미국이 조선을 한번도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니까 조선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핵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원인 제공자가 이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걸 알게 됐고 (핵·미사일로) 미 본토까지 겨냥하게 됐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수뇌회담을 하자고 한 것이다. 미국의 협상팀은 하노이 회담에서 조선에 타협하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수뇌회담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요인, 배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Q: 미국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란. A: 조선 입장에서 보면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핵무기도 ICBM도 가질 필요가 없는 객관적인 조건과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는것이다.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다시 말해 핵전쟁의 우려를 완전히 가시기 위해 너희(미국)는 뭐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은 말로만 해서는 안되고 구체적인 행동조치, 군사분야에서의 행동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전쟁종결과 평화체제 구축에서는 국제법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 협상팀은 저들이 취할 비핵화 조치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 그들은 미국이 비핵화를 향해 어느 단계를 거쳐서 어떤 절차를 밟을지를 조선 측에 제안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조선은 더 이상 핵무기 생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제안했다. 그러면 미국도 상응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협상이 성립될 수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안전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하였고,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의 전문에 그렇게 명기되어 있다. 이것이 조미가 수뇌급에서 대화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며 대화를 이어가는 전제다. 안전담보 제공의 개념을 규정하고 그 단계별 행동조치들을 조선 측에 제시하는것은 미국의 몫이다. 미국 협상팀은 비핵화의 개념을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빅딜문서까지 작성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했던 조선에 대한 안전 담보 제공을 위해 미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국무장관도 안보담당보좌관도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밝은 미래가 있다,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만 하는데 말이 안된다. 조선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조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그걸 버리면 잘 살 수 있다는 헛소리만 한다. 정리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인터뷰 2 보러 가기 인터뷰 3 보러 가기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 도봉 김수영 문학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 도봉 김수영 문학관

    # <폭포>, <풀>, <눈>, <거대한 뿌리> 등의 작품, 자유주의자 시인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산문, 김수영 전집, 민음사, 2003> 광화문 광장이다. 온갖 ‘말’이 넘친다. 이렇듯 말들은 하루 종일 세종대왕님 발아래에서 물고기 떼 지나가듯 흘러간다. 그래서 지금, 시인 김수영(1921-1968)을 찾아간다. 왜냐하면 그에게 ‘말’을, 무슨 ‘말’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결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의 혀는 정확히, 그리고 주저 없이 시대의 금기(禁忌), 그 한 가운데를 꿰뚫었다. 일례로 4.19혁명 이후 그는 한국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시 한 편을 몇몇 신문사에 보낸다. 당연히 발표되지 못한다. 제목이 뜬금없다. ‘김일성 만세’. 물론 진짜 ‘김일성’하고는 하등의 연관도 없는, 요샛말로 제대로 ‘어그로(aggro : 도발, 공격을 뜻하는 aggressive에서 유래된 말)를 끄는 제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슬이 퍼렇다 못해 시커먼 작두날같은 분단의 시대 한 가운데에서, 조금도 머뭇거림없이 반대편 과녁 정중앙을 향해 그는 '말'을 쏘아 올린 것이다. ‘무슨무슨 주의의 노예가 될 수 없는 게 아니겠소?’라며 시인 신동엽(1930-1969)에게 자신의 속내를 보였던, 징집된 인민군에서조차도 도망쳐 나왔던, 오히려 <연꽃 (1961)>이라는 작품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의 맹목적성을 비판까지 하였던 김수영은 당연히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1차원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굴레가 죽을 때까지 덧씌워지는 순간이다. 폭포처럼, 팽이처럼 고독하게 양심의 자유를 거침없이 부르짖었던 ‘자유주의자’ 김수영을 만난다. 도봉구에 위치한 김수영 문학관이다.시인 김수영은 삶은 이러하였다. 1921년 11월 27일 종로구 관철동 158번지, 그러니까 정확히 현재 파고다 어학원이 있는 자리에서 태어났다.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연극 공부를 하기도 한 그는 1943년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를 하였다. 해방을 맞아 서울로 돌아온 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서 공부를 하기도 한 그는 1950년에 진명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부인 김현경(1927 ~ )여사와 결혼을 하였고 서울의대 부속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다. 하지만 6.25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모든 일상은 무너진다.1950년 9월 의용군으로 강제 동원된 그는 한 달 만에 인민군 부대를 탈출하고,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1953년 석방 이후 미8군 수송관의 통역관, 선린상업학교 영어 교사,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의 일을 하다 1955년 6월 이후 번역과 양계를 하면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68년 6월 16일 밤 11시 30분경, 인도로 돌진해 온 버스에 치여 이튿날 아침 8시 적십자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시대를 온몸으로 갈아내며 피를 뿜듯 시를 뱉어내던 48년의 삶이 끝났다. # 육필 원고, 시를 쓰던 물품들이 고스란히김수영 문학관은 2013년 11월 27일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개관하였다. 원래 이 곳은 방학 3동 문화센터 건물로 사용하던 건물로 주변의 원당샘공원, 방학동 은행나무, 연산군 묘, 북한산 둘레길 등과 엮어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면서 새로이 리모델링되었다. 현재 김수영 문학관 건물은 지상 4층, 지하 1층 총 400평 규모로 이루어져 있는 데 1층과 2층은 김수영 문학관으로 사용되고 3층은 도서관 4층은 학술 행사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강당으로 나뉘어져 있다.현재 김수영 문학관에는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와 여동생 김수명 씨가 나누어 보관하던 시인의 유품을 제 1전시실과 제 2전시실로 나누어 보관 전시하고 있다. 제 1전시실에는 한국 근,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경험하며 이루어진 시 원고, 산문 원고, 저서, 번역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곳에는 육필 원고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세상에 향해 ‘자유’를 외치던 시인의 거친 숨결을 느낄 수도 있다. 제 2전시실에는 시인의 일상유물을 전시하여 김수영의 삶의 궤적이 담고 있는 시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그가 시작 활동을 하였던 테이블과 여러 가재 물품 등은 지금도 생생히 시인의 삶과 함께 하는 듯하다. <김수영문학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시인 김수영을 안다 ★★★★☆ (★ 5개 만점) - 시인 김수영을 모른다 ★★ (★ 5개 만점) 2. 누구와 함께? -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시인을 기리는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 버스 130번, 1144번, 노원15번 정의공주 묘 하차 - 지하철 4호선 쌍문역 하차 2번 출구, 06번 마을버스 환승 김수영문학관 하차 4. 특징적인 점은? - 김수영 시인의 삶을 제대로 구현해 낸 문학관이다. 소장 및 전시 수준이 수준급.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생각보다 관람객들이 많지는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제 1전시실의 육필 원고, 제 2전시실의 여러 일상 속 물건들. 7. 관람시 주의사항은? - 텍스트 위주의 문학관. 천천히 작품을 읽을 시간을 만들어 가면 좋다. 반나절.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kimsuyoung.dobong.go.kr/intro/information.a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함석헌 기념관, 둘리뮤지엄, 간송전형필 가옥, 원당샘 공원, 연산군 묘, 정의공주 묘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서울 시내에 있는,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 중에서는 첫 손에 꼽히는 전시 수준이다. 둘러보는 수준이 아니라 김수영 도서관이라는 느낌으로 최소한 반나절의 시간은 필요하다. 거침없이 세상에 향해 침을 뱉어 내던 용기 가득한, 자유인 김수영의 삶의 흔적이 뜨겁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어린 시절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 48년 만에 비석으로 만나”

    “어린 시절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 48년 만에 비석으로 만나”

    아래의 글은 6·25 전사 인천학생 조순범의 동네 선배 형인 이경종이 전사한 고향 후배 고(故) 조순범을 추모하며 서해문화 1998년 12월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고 조순범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조순범 참전기를 대신한다.송림동에서 같이 자란 동네 후배 조순범과 나 조순범은 인천 동구 송림동 333번지에서 태어나서 6·25사변 때 인천해성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는 송림동 333번지에서 살았고 조순범은 송림동 334번지에서 살았다. 인민의용군에 끌려가서 실종된 청소년들 1950년 6월 25일 6·25사변이 터지고 악몽과도 같았던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보다도 더한 고통을 견디고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 치하에서 벗어났다.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중학생 또래의 청소년들이 인민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나는 매부가 살고 있던 용유도로 피난 가서 몰래 숨어 있었다. 그래서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는 것을 피했지만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간 인천 지역 청소년들은 대부분 실종되었다. 인천학도의용대 해성지대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천이 수복되었고, 차차 안정을 되찾아갈 무렵인 1950년 10월 초에 인천학도의용대가 창립되어 호국활동을 하면서 우리 송림동에는 인천학도의용대 해성지대가 생겼고, 동네 후배인 조순범과 나는 해성지대에 들어가서 호국활동을 같이 하였다. 중공군의 참전과 인천학도의용대의 남하 1950년 11월이 되자 우리 국군과 UN군은 압록강까지 북진했으나 만주 지역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1950년 12월에는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가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의 병무청)에서 파견을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서 경상남도 통영충렬국민학교에 있었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최종 목적지로 하여 인천축현국민학교에서 떠날 때, 나와 조순범도 같이 걸어서 남하하였다. 조순범과 함께 18일간 걸어서 도착한 마산 조순범과 나는 함께 출발하여 첫날은 안양역에서 자고 그다음 날은 수원역에서 하룻밤을 자고, 대전에 도착했을 때는 1950년 12월 24일이었다. 조순범과 나는 계속 걸어서 같이 내려갔는데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지나서 마산에 도착한 것은 인천을 떠난 지 18일만인 1951년 1월 4일이었다. 조순범과 나는 추운 겨울 함께 걸어서 내려갔는데 추풍령 고개를 지나면서부터는 추운 겨울 날씨에 제대로 된 방한복 없이 남하하는 국민방위군을 행렬을 많이 봤다. 국민방위군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여서 굶거나 얼어 죽은 경우가 많았고 겨울 황량한 논밭에 제대로 묻지도 못해서 내팽개쳐 있는 국민방위군 시체를 많이 봤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 입소 조순범과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로 들어가지 않고 마산에서 해병 6기 모집 광고를 보고 둘이 같이 지원했는데 둘 다 탈락하였다. 인천학도의용대 이계송 대장의 인도하에 조순범과 나는 마산항에서 함께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1951년 1월 10일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자원입대하였다. 1~3학년 중학생들이 입대할 수 있었던 이유 이 당시 훈련소에 입소하는 징집군인 중에는 문맹자가 많았다. 그래서 훈련소에서 훈련하기 전에 문맹자를 위해서 기본적인 문자 교육을 해야만 했다. 미군이 주는 각종 무기가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명령서나 무기 사용 안내서 등 공문서를 읽어야 하므로 문맹자는 국군의 큰 골칫거리였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영어와 한자까지도 아는 중학교 1~3학년 중학생들을 행정 요원으로라도 쓰기 위해서 입대를 받아줬다. 1951년 1월 31일 조순범과 헤어지다 부산 육군 제2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조순범과 나는 1951년 1월 31일 헤어졌다. 조순범은 동대신동에 있었던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가게 되었고 나는 공병학교로 가서 공병이 되었다. 그 뒤로 군 복무 중에는 조순범을 만나지 못했다. 또한 나는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조순범의 소식은 그 후 전혀 듣지도 못했고 48년간 나는 만나 본 적도 없었다. 47년 만에야 알게 된 조순범의 전사 1996년 7월 15일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발굴을 큰아들(이규원 치과원장)의 도움으로 시작했는데, 1997년 9월 15일 6·25 참전 인천학생 변광선(인천상업중학교 4학년 재학 중 해병 6기로 입대)선배가 제공한 자료를 보고 조순범의 전사를 알게 되었다.48년 만에 비석으로 만난 고향 후배 조순범 인천상업중학교 변광선 선배님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통하여 조순범의 전사를 알게 된 나는 1998년 4월 26일 아침에 동작동 국립묘지를 큰아들 이규원(치과원장)과 함께 찾아갔다. 전사한 후배여! 참전역사 찾기를 도와다오! 나는 조순범 무덤 앞에 앉아서 “48년 전 인천에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여 너는 전쟁터에서 죽고 나는 참전하고 살아 돌아와 여기서 만나게 되었구나! 채 피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너의 기록을 남기려고 48년 만에 이렇게 찾아왔다”라고 조순범에게 말하였다. 또한 잠들어 있는 조순범에게 나는 “넋이 있다면 부디 편안한 잠들기 바라며 나와 큰아들 이규원(치과원장)이 하고 있는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찾기 사업을 도와다오!”라고 말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글 사진 인천학생 6·25참전관 제공 ■참전기 24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또한 중학교 3학년 16살이어서 인민군에 끌려갈 나이지, 국군에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나이였습니다. 조순범은 저의 아버지보다도 2살이나 어린 14살 인천해성중학교 1학년생으로 저의 아버지께서 사시던 동구 송림동 같은 동네에 사는 동네 후배였습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한 조순범은 부산까지 저의 아버지를 따라 함께 내려가서, 1951년 1월 10일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같이 입소하였습니다. 1951년 1월 31일 헤어졌던 운명의 날, 조순범은 육군통신학교로 갔고 저의 아버지는 공병학교로 가셨습니다. 1951년 1월 31일 조순범과 헤어져 다시는 소식을 모르고 지내시다가 48년 만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동네 후배 조순범을 만나고서 아버지께서 비석을 어루만지시며 구슬프게 우시는 모습을 저는 지켜봤습니다. 이규원 인천학생 6·25 참전관 관장故 조순범 1936년 10월 22일 : 인천 동구 송림동 334. 출생 1950년 12월 18일 : 인천해성중학교 1학년때 인천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30일간 걸어서 남하 1950년 12월 24일 : 대전역 도착 1950년 1월 4일 : 마산역 도착 1951년 1월 10일 : 부산 육군 제2 훈련소 입소 1951년 1월 31일 : 부산육군통신학교 입교 통신병 군번 0243077 1951년 12월 1일 : 동부전선에서 전사(戰死) 묘지 위치 : 동작동 국립묘지 동-08-31891하늘땅처럼 오래갈 겨레는 끝없는 충성을 나라에 바치고, 자손만대를 이어갈 집안은 먼저 어버이께 효도를 다 하고, 여기 오가는 바람이여 이 뜻을 모두에게 전하라! -충렬사-
  • 미중 G20협상 빅딜? 노딜?… ‘승자 없는 게임’에 휴전 가능성

    므누신 “협상 90% 완료… 연내 타결 기대” 블룸버그 “美 추가 관세폭탄 보류 검토” 美 관세 제안 수용불가 입장에 노딜 존재 中언론 “타협 필요… 관건은 평등한 협상” 오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성사될지, ‘노딜’로 끝날지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추가 3000억 달러(약 347조원) 관세폭탄 중단설이 흘러나오면서 미중 정상이 빅딜은 아니더라도 최소 ‘휴전’에 합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식재산권 등에 대한 미중 간 이견이 커서 노딜로 끝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협상이 90%는 마무리됐다”며 “(협상을) 완료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갖고 무역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면서 “양국 경제에 좋은 결과를 낳고, 미국 경제가 균형잡힌 무역관계를 회복하는 동시에 양국 관계를 제대로 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협상에 다시 나왔다는 게 반가운 메시지”라고도 했다. 므누신은 이어 “연말까지 협상이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적절한 노력이 이뤄져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25일 미중 무역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3000억 달러의 추가 관세폭탄을 보류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계기 회담에서 90일 휴전에 합의했던 미중 정상이 29일 정상회담에서도 최소 휴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지식재산권 보호와 강제 기술이전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미중의 이견이 커 노딜로 끝날 가능성도 여전히 제기된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 “협상 재개 전제조건으로 관세와 관련한 어떤 제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세부적인 무역 협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에 협상 조건 수용을 거듭 요구하며 공을 넘긴 것이다. 이에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무역전쟁과 관세 부과로는 자신과 남을 해칠 뿐이고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국도 무역담판을 앞두고 대내외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24일 공산당 정치국을 소집해 집단학습을 주재하며 공산당의 장기집권 실현을 위해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논평에서 “미중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하다”면서도 “관건은 평등한 협상에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정가는 미중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관세 부과 취소 등에 대한 합의가 있을지 불투명하나 어떤 형태로든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중은 무역전쟁이 ‘승자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휴전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美 방한때 기존 협상라인 총출동…北, 또 폼페이오 비난하며 기싸움

    美 방한때 기존 협상라인 총출동…北, 또 폼페이오 비난하며 기싸움

    트럼프, 볼턴·비건 등과 대동 재신임 北외무성 “제재, 대화 이끈다고 궤변”전문가 “실무 협상 재개 앞두고 견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9~30일 한국 방문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 대북 협상 라인이 총출동할 전망이다. 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미 협상 라인을 정비함과 동시에 회담 결렬의 책임을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에게 돌리며 이들을 협상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대북 협상 라인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6일 담화를 내고 미국이 지난 21일 대북 제재 행정명령의 효력을 1년 연장한 데 대해 “싱가포르 조미 수뇌회담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대조선 적대행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대변인은 “특히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어느 한 기자회견에서 조미 실무협상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에 북조선 경제의 80% 이상이 제재를 받고 있다는 데 대해 모두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제재가 조미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듯이 궤변을 늘어놓았다”며 폼페이오 장관을 겨냥했다. 이어 “조미 수뇌분이 아무리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애쓴다고 해도 대조선 적대감이 골수에 찬 정책작성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 조미관계 개선도, 조선반도 비핵화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이 지적한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지난 23일 취재진과 문답에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 답변한 뒤 이란 제재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경제의 80% 이상이 제재를 받고 있다”고 한 뒤 곧바로 “이란 경제의 80%”라고 말하며 정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대이란 지적을 대북 비난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나온다. 앞서 북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지난 4월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나는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대화 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방문에 폼페이오 장관 등 기존 협상 라인을 대동해 재신임함에 따라 북미가 실무 협상 재개를 앞둔 상황에서 협상 파트너를 둘러싸고 기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미 실무 협상 재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대북 제재 유지 필요성을 언급하니 협상 전에 견제하고자 강하게 비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대미 협상 라인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미 협상을 총괄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통일전선부 라인이 물러나고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 등 외무성 라인이 협상을 주도할 전망이다. 지난 20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대신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 제1부위원장이 배석한 것으로 미루어 최 상임위원장이 대미 협상을 관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용인시, 터키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지자체 최초 추진

    용인시, 터키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지자체 최초 추진

    6.25전쟁 당시 터키군이 용인 김량장 전투에서 앞도적 우세였던 중공군을 상대로 1명당 40여명을 무찌르며 대승을 거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전투를 계기로 수세에 몰리던 전세는 극적으로 역전됐고, 중공군과 인민군은 서울 이북으로 물러나게 됐다. 용인시는 6.25 69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 참전용사들을 초청하고, 김량장 전투 등에서 대승을 거둔 터키군의 활약상 등을 발굴해 대내외에 알리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중앙정부 차원의 UN군 참전용사 초청 행사는 있었으나 지자체 차원의 초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 관계자는 “참전용사 대부분이 80대 중반을 넘긴 고령이어서 정부의 초청만으로는 한국 방문이 쉽지 않은 만큼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에게 한국 방문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터키는 6.25전쟁 당시 한국의 참전 요청에 제일 먼저 응했을 뿐 아니라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1만4936명을 파병해 ‘형제의 나라’로 불린다. 현재 참전용사 중 400여명만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군은 1950년 10월18일 부산에 1개 여단이 먼저 상륙한 이후 전국 각지의 전투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용인 일대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1951년 초 중공군의 개입으로 UN군이 일방적으로 후퇴하던 와중에 1월25일 전후 김량장 전투에서 수적으로 압도적 우세였던 중공군을 상대로 백병전을 벌여 1명당 40명 상당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뒀다. 한때 트루먼의 한국 포기설까지 거론됐던 전세는 이 전투를 계기로 극적으로 역전됐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중공군과 인민군은 서울 이북으로 물러나게 됐다. 이 전투는 당시 UPI 기자에 의해 알려졌고, 터키군 부대는 한국 대통령은 물론 미국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정부는 이같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지난 1974년 마성IC 인근에 한국 유일의 터키군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고 국가보훈시설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전쟁기념재단에 따르면 터키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741명이 전사한 것을 비롯해 부상 2068명, 실종 163명, 포로 244명 등 3216명의 인명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군기 용인시장은 “목숨을 바쳐 도움을 준 터키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는 게 도리이기에 초청키로 했다”며 “역사를 알아야만 미래도 있기에 시민들에게 용인시 역사를 발굴해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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