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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제로 나눔으로 기억하는 8·15] 독립군 vs 순사, 물총으로 붙자!

    [축제로 나눔으로 기억하는 8·15] 독립군 vs 순사, 물총으로 붙자!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가 열린다. 일본이 우경화를 넘어 군국주의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다. 서대문구는 광복절인 15일부터 이틀에 걸쳐 서대문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민주축제’를 연다고 11일 밝혔다. 2010년부터 해마다 가을에 열었는데 이제는 광복절 전후로 바꿨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독립운동가와 민주인사들이 사형 등을 당한 곳이다. 독립협회가 자주독립의 결의를 보이기 위해 국민 성금으로 세운 ‘독립문’도 옆에 있다. 특히 이번엔 ‘독립과 민주,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자라나는 세대와 공유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채롭다.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옥사 체험, 독립군 대 순사 물총 싸움, 폐장난감으로 만드는 평화의 기차, 청소년 역사길 걷기 프로그램은 14일부터 운영된다. 전야 행사로 같은 날 오후 7시 ‘역사와 내 삶이 만났던 순간’을 주제로 역사콘서트가 마련된다. 역사학자 주진오, 시인 류근, 명창 염경애, 성악가 송현상 등이 출연한다. 15일에는 독립민주인사들의 ‘풋프린팅’을 남기는 본 행사가 열린다. 항일학생 결사 조직인 태극단을 만들어 옥고를 치른 서상교(91) 지사와 이태원(86) 지사,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오충일(74) 목사와 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박중기(81) 선생이 참여한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가수 김장훈, 밴드 딕펑스, 극단 해인의 개막 축하 공연도 이어진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시민 100명이 참여하는 ‘역사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100분 토론은 16일 오후 5시 30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통곡의 미루나무’ 앞에서 열린다. 아울러 한승헌 변호사와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가 출연하는 독립민주인물열전 ‘나의 삶, 그의 이야기’와 거리예술공연, 한국보도사진 특별기획전, 금난새가 지휘하는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도 선보인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국민 모두가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내야 한다. 독립유공자와 민주인사들의 뜻을 기리고 바른 역사 인식을 계승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통진당 압수수색] DJ 이후 33년 만에 적용된 내란음모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게 적용된 ‘내란음모’ 혐의는 1980년 제5공화국 출범 직전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것이 마지막일 정도로 지난 30여년 동안 좀처럼 보기 힘든 혐의다. 내란음모죄가 적용된 것은 민주 정부 들어서는 처음인 데다 현직 국회의원 등에게 적용된 것이어서 향후 큰 파장이 예상된다. 형법 제87조에 따르면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을 때 적용된다.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무력으로 전복시키거나 정당한 절차 없이 헌법·법률기능을 소멸시키는 행위 등이 해당된다. 내란죄는 폭동에 관여하기만 해도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며 내란의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해진다. 이러한 내란을 예비 또는 음모하는 행위는 형법 제90조(예비, 음모, 선전, 선동)를 적용해 처벌한다. 이 의원에게 적용된 내란음모죄는 2명 이상이 모여 내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는 행위 등이 해당된다. 이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해질 수 있다. 내란을 위해 선동하거나 선전한 경우에도 같은 죄로 벌을 받게 된다. 실행에 옮기기 전에 자수하면 감경 혹은 면제가 된다. 형법상 상당수의 범죄는 실제 행위에 이르지 않고 미수에 그친 행위를 처벌하도록 돼 있지만 예비나 음모 혐의까지 처벌하는 규정은 많지 않다. 내란 관련 혐의가 적용돼 재판을 받은 사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 다수 있었다. 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80여명을 재판에 넘겨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중앙정보부가 서울대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을 국가를 전복시키려 한 혐의로 구속한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이다. 5공화국 출범 직전인 1980년에는 증거를 조작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는 등 모두 24명이 유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관련자들은 이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1980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신군부’에 맞서다 체포됐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내란방조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데스크 시각] 국정원과 워터게이트/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국정원과 워터게이트/오일만 정치부 차장

    국가정보원의 대선 및 정치 개입 논란이 요즘의 장맛비처럼 가슴을 짓누른다. 지난달 24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격 공개를 기점으로 국정원이 정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면서 한 달 가까이 국정의 혼란은 극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음지에서 일하는 정보기관이 본연의 임무를 포기하면서까지 진흙탕 싸움에 가세한 후폭풍은 거셌다.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가 맞다”는 취지의 대변인 성명은 당혹감을 넘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국정원의 행동에서 속속 드러나는 대선 개입 정황을 희석시키려는 초조감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으로 비쳐진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교수와 대학생들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은 일부 고등학생들마저 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 앞에서 우비를 입은 청소년 40여명이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전북 무주의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인 이들은 “대선에 국정원이 개입한 게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분노하지 않은 채 침묵하는 것은 역사의 방관자”라고 기성세대를 질타했다. 청소년들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이들의 항변이 너무도 정당하다. 대다수 직원들이 국익의 최일선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국가 최고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국가로선 재앙이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사건 은폐에 동원된 것이 확인되면서 정보기관으로서의 신뢰와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CIA가 그로 인해 손실된 정보 역량을 만회하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보기관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국정은 혼돈으로 빠져든다. 정보 자체의 폐쇄성과 정보기관의 맹목적 충성심이 결합하면 음험한 조작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동안 인민혁명당·민청학련 등 우리 정보기관이 조작한 사건이 셀 수 없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충정으로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외신들은 “한국에서는 첩보기관이 ‘유출자’(leaker), ‘정치적 선동가’(provocateur)이다”라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국익이 걸린 중대한 정보를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국제적 망신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신뢰와 명예는 남 원장이 고려하는 국정원의 명예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어떤 명분이나 이유에서든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공개적으로 정치문제에 개입하는 국정문란 사태는 끝내야 한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국정원을 청와대 비서진들이 통제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정원의 ‘셀프 개혁’ 대신 강도 높고 근본적인 개혁을 박 대통령이 이끌어야 한다. “공공기관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경고한 주인공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국정원은 일반 공기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국가의 공적기구라는 점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oilman@seoul.co.kr
  • [서울광장] 박근혜,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박근혜,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국민통합이라는 인(因)을 통해 행복이라는 과(果)를 만들어 내겠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다짐이다. 이른바 ‘100% 대한민국’을 통한 국민행복론이다. 국민통합을 이뤄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니 참 좋은 얘기다. 그러나 한편 공허하다.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에 의한 통합이고 행복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다. 지난주 출범한 국민대통합위원회, 아니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는 그 거창한 간판만큼이나 실망도 크다. 박 후보가 진정으로 국민통합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요, 시대정신으로 여긴다면 애당초 다른 건 몰라도 대통합 위원장만큼은 내가 직접 맡겠다고 나섰어야 했다. 티격태격 볼썽사나운 싸움 끝에 할 수 없이 미봉책으로 위원장을 떠맡은 꼴이 됐으니 그게 무슨 원칙이고 소신인가. 한물간 호남 인물을 영입한다고 지역통합이 되고 전향한 좌파 인사를 끌어들인다고 이념통합이 되는 게 아니다. 진정성을 의심받는 보여주기식 통합은 국민의 눈에는 한갓 정치유희로 비칠 뿐이다. 새누리당은 쇄신과 비리, 통합과 봉합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이상한 동거정당이다. 비리 전력이 있는 한광옥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대통합 위원장에 임명하면 사퇴하겠다며 배수진까지 친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은 한 전 고문이 수석부위원장으로 내려앉자 슬그머니 물러섰다. 위원장 자리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던 한 전 고문은 내가 뭘 더 바라겠냐며 꼬리를 내렸다. 밸 없는 게도 아니고, 정말 속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 강단으로 도대체 무슨 쇄신을 하고 무슨 통합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인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새누리당의 퇴행적인 조직 문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강자 앞에 모두가 두려워 납작 엎드리는 백수습복(百獸?伏)의 세계, 그게 바로 지금 새누리당의 자화상이다. 결국 모든 건 박 후보에게 귀착된다. 통합이든 쇄신이든 박 후보가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 그런 기형적 체질에서 누가 어떤 감투를 맡든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박 후보 개인의 ‘명령일하’ 리더십만이 힘을 발하는 판국이다. 그런 만큼 더욱 엄정한 눈으로 박 후보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시대의 화두인 국민통합이야말로 그 리트머스 테스트다.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선한 방식으로 풀어 내느냐에 대선의 성패가 달렸다. 문제는 다시 과거사다. 모든 게 과거사 블랙홀로 빨려드는 대선 상황을 우려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과거를 잊고서는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박 후보는 5·16과 유신, 인민혁명당 사건에 이어 부마민주항쟁에 대해서도 아쉬운대로 사과를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정수장학회라는 또 하나의 검질긴 과거사가 가로놓여 있다. 진실은 하나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법적으로 장학회에서 손을 뗐으니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입다무는 건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박 후보가 뒤늦게나마 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니 다행이다. 법적으로 무관하다는 판에 박힌 형식논리에서 벗어나 어떤 진전된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생각의 혁명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꼭 정서적 울림이 있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내놓기 바란다. ‘정수’라는 을씨년스러운 역사의 이름을 지워내고 ‘원상회복’ 수준의 사회 환원을 실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끝내 ‘못난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헛것에 연연한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 박 후보 앞에는 ‘가지 않은 길’이 놓여 있다. 모든 걸 버리고 한달음에 그 길로 달려가라. 인정할 것 인정하고 사과할 것 사과하고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박정희 딸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의 길을 가면 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아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한 과거사의 동통(疼痛)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무슨 죄인가. jmkim@seoul.co.kr
  • [10월 유신 40년] 대학에 부대 주둔… 언로 막히고 국회는 거수기 전락

    [10월 유신 40년] 대학에 부대 주둔… 언로 막히고 국회는 거수기 전락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존의 헌법을 폐기시키고 유신헌법을 발표한 이후 한국사회는 시인 양성우의 표현대로 ‘겨울공화국’의 가위에 눌려 지냈다. 대통령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제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이념은 실종되고 ‘군주주권(君主主權)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시각이다. 유신시절 내내 박 전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발표해 항시적 계엄상태를 유지했고 대학에는 부대가 주둔했으며 언로가 막히고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권력의 공격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유신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준 시기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정치권과 재야인사들이 반유신 운동을 벌였던 것은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이 10월 17일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대학에 휴교조치를 내리고 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구속에 나서면서 이들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대대적인 저항의 계기가 된 것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대학생 300여명이 10월 2일 일제히 반정부 시위에 나섰고 이를 필두로 전국 각 대학에서 반유신 학생시위가 꼬리를 물었다. 종교계와 언론계도 유신반대운동에 동참했다. 유신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1979년 부마민주화항쟁을 거치며 정치·사회·노동·학계·종교계 등 각계의 대대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민청학련 사건은 단일 사건으로는 해방 이후 사상 최고의 검거 기록을 남겼는데, 당시 검거돼 조사받은 인사만 1200여명이다. 재야세력의 강한 결속은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동력이 됐다. 유신에 대한 평가는 보수·진보 진영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민주진보진영은 사회양극화, 지역감정,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유신 시절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고속 성장을 위해 재벌 기업에 각종 특혜를 주는 과정에서 정경 유착과 부정부패가 고착화됐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으며 통치의 수단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면서 지금의 지역갈등을 낳았다는 것이다. 반면 유신 지지자들은 소모적 정쟁을 피하고 국력을 집중해 중화학공업을 국책사업으로 육성시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민주, 과거 진실규명 결의안 당론 채택

    민주통합당이 27일 국회에서 ‘인민혁명당 사건의 역사적 재조명과 명예회복 대책’을 주제로 의원총회를 열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맹공했다. 과거사 관련 사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박 후보의 행보를 옥죄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해찬 대표는 “인혁당 사건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로 넘어가는, 유신을 정리할 수 있는 대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박 후보가 오전에 5·16,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오후에는 (부산시당 당사에서 청년당원들과) 말춤을 췄다.”며 “오전에 사과했다면 그 유족들이나 역사 앞에 오후만이라도 근신하며 진정 어린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비판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유인태 의원은 “박 후보는 1974년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퍼스트레이디로 전국을 다니며 유신을 설파하고 다녔던 유신의 장본인”이라며 “2005년 인혁당·민청학련이 조작이라는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지적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박 후보의 인혁당 관련 사과를 ‘진정성이 실종된 사과’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의총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인권유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과거 사건들의 재조사를 촉구하는 ‘국가권력의 위법·부당한 행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및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진실규명 조사활동 재개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결의안은 정부가 국가 권력이 행한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유족과 국민 앞에 사과하는 한편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재개토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인혁당 피해 유가족 “박근혜, 두 번 죽이고 있다”

    인혁당 피해 유가족 “박근혜, 두 번 죽이고 있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역사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후보는 법원에서 가혹행위를 통해 사건이 조작된 사실이 밝혀지고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는데도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한다는 황당한 말로 유족을 두 번 죽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고 하재완씨 유족 이영교(78·여)씨는 “대한민국 사법을 무시하는 말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면서 “죽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키기는커녕 두 번 죽이려는 몰역사성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고 우홍선씨 유가족 강순희(80·여)씨는 “시정잡배도 그런 막말은 못한다. 내 목숨을 걸고 이 지구상에 인혁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씨는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인혁당 사람들을 죽인 게 나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후회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들었다.”면서 “아버지보다 더한 딸”이라고 성토했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 내내 “아이고 분해.”, “살려내라.”며 오열했다. 이들은 영정사진을 들고 새누리당 당사 건물 바로 앞까지 나가 “더는 못 참겠다. 내 남편을 살려내라.”고 외치기도 했다. 피해자 고 이수병씨 유가족 이정숙(67·여)씨는 “남편은 박정희가 죽이고, 살아남은 가족은 박근혜가 죽인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집회에서는 김윤기 화백이 인혁당 사건 구명운동 당시 유가족들이 외쳤던 ‘내 아들 내 남편 정치제물 삼지 마라’라는 구호를 검은 천 위에 흰색 페인트로 쓴 대형 현수막을 만들기도 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기고] 베트남 공산화 교훈과 한국정치의 현실/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기고] 베트남 공산화 교훈과 한국정치의 현실/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당시 월맹보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모두 앞섰으며 미국의 전쟁 지원까지 받았던 베트남이 왜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손자병법의 제33계 반간계(反間計) 내용 가운데 인간(因間)과 내간(內間)은 베트남 패망의 원인을 적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계’란 적국의 평범한 주민을 첩자로 이용하는 책략이고 ‘내간계’는 적국 관리를 포섭하여 첩자로 이용하는 것이다. 베트남에는 공산화되기 직전 월맹의 간첩과 그들에게 포섭된 시민 및 종교단체들이 반전·반미 시위를 주도하며 조직적인 선전·선동을 벌였다. 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여명, 인민혁명당원 4만명 등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그리고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각종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 비서실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당시 베트남 인구의 0.5%에 달하는 수치다. 5만명 남짓한 체제전복세력에 의해 나라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든 것이다. ‘5만명’이란 숫자는 왠지 귀에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 현재 한국 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북한의 고정간첩 숫자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 당시 서신에서도 확인된다. 황 선생에 따르면 북한의 고정간첩은 한국 사회에서 권력의 핵심부에까지 침투해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인간계 및 내간계가 횡행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225호실의 지령을 받아 암약하다 적발된 간첩단 ‘왕재산’ 사건뿐 아니라 과거 중부지역당 사건, 민혁당 사건 등이 모두 북한의 지령에 의한 용간(用間) 책략이다. 불편한 진실은 이제 제도권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11 총선 결과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13석을 건졌다. 민주노동당 시절이던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거둔 10석 기록을 경신하며 당 역사상 최대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당선된 13명의 통진당 인사들 가운데 5명 정도는 이 당의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이다. 더 정확히는 구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관련 세력들이다. 민혁당은 1989년 결성된 반제청년동맹을 모태로 하여 1992년 3월 창당한 친북 지하조직이다.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이 항일투쟁 시기에 만들었다는 조직 이름이다. 이렇게 볼 때 통진당 또한 종북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진당 내에 민혁당 재건파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과 제도권 정치에 진출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하여 국기를 뒤흔드는 행위가 연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속출하고 있다. 37년 전 자유 베트남은 내부에 존재하는 적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나 나라를 잃는 비극을 맞았다. 당시 베트남의 불순세력들은 반미를 표방하며 평화주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를 부르짖었다. 우리 국회에서도 그 같은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이 낯익은 풍경이 될 것이다. 베트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국민의 의식수준이 깨어 있어야 한다. 베트남의 패망은 외적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과 갈등 때문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
  • 법원 “민청학련 피해자 등 31명에 71억 배상”

    민청학련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71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 임범석)는 이강철(64)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피해자 3명과 가족 등 3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관이 이 전 수석 등을 체포·구속할 때 적법절차를 어긴 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점 ▲밤샘수사·고문·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받은 점 ▲법원에서 증명력이 없거나 부족한 증거에 따라 유죄가 확정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국가가 이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지급을 명한 배상액은 원금 25억원에 1974년 무렵부터 연간 5% 비율로 줘야 하는 지연이자 46억원을 합쳐 71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을 조직, 공산비밀지하조직인 옛 인민혁명당과 일본계 조총련의 배후 조종을 받아 폭동을 유도해 국가보안법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내란예비음모 및 내란선동,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이 확정됐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간첩누명 북파공작원 국가 28억배상” 판결

    남한이 북한에 파견한 공작원이었지만 오히려 인민혁명당(인혁당)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북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쓴 고(故) 김상한씨 유족들에게 정부가 28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 황적화)는 27일 김씨의 부인과 자녀 등 7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는 김씨가 1963년 북한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유족들에게는 2008년이 돼서야 알렸다.”면서 “이는 국가가 국민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인 만큼 유족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국가는 김씨가 특수임무를 위해 북파됐고, 남파된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인혁당 사건 당시 김씨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허위로 발표했다.”고 덧붙였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인혁당사건 67명에 235억 배상 판결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와 가족들이 국가로부터 200억원대의 위자료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 황윤구)는 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창일 통일연대 상임고문 등 사건 관련자 14명과 가족 등 6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235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 8개월을 복역한 전 고문 등에게는 7억원씩, 유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 10개월을 복역한 피해자들에게는 6억원씩,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들의 가족에게는 각 7500만~4억원씩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재판부는 “중앙정보부 및 수사관들이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사건 관련자들을 체포 및 구속하고, 밤샘수사와 구타 등 각종 고문과 협박 등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 위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위자료 배상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쪽은 “형 집행이 이미 1975년에 있었고, 진상 파악 결과도 2002년에 나왔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9년 가까이 복역한 강창덕씨는 판결 선고 뒤 “국가는 유신반대운동을 반국가단체 구성으로 몰면서 우리에게 너무 가혹하게 했다.”면서 “그 사이 아내를 잃고 내 몸도 만신창이가 됐는데, 살아서 이 판결을 보게 된 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원고를 대리한 김형태 변호사는 “사형집행으로 사망한 희생자에 이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34년 동안 낙인이 찍힌 채 살았던 피해자들에게도 배상해주라는 취지의 판결은 법원이 과거사 반성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영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특권층 광산지분 서민 품으로”

    “특권층 광산지분 서민 품으로”

    몽골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타키야 엘베그도르지(46) 후보가 당선됐다고 AP통신 등이 26일 보도했다. 몽골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4일 선거에서 엘베그도르지 후보가 51%의 득표율로 새 대통령에 선출됐다고 밝혔다. 여당인 몽골인민혁명당 후보로 나온 남바린 엥흐바야르 현 대통령은 47%의 표를 얻어 연임에 실패했다. 이번 정권교체의 가장 큰 이유는 광물 자원을 둘러싼 국민들의 불만 때문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현재 극소수 개인이 차지하고 있는 몽골 광산들은 지분 이전 추진 계획이 공회전하며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잇따른 경제정책 실패도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엘베그도르지 후보는 광산 자원 지분을 서민들과 나눌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변화를 약속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특히 인구가 집중된 도시 지역 유권자들에 집중한 전략도 승리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엥흐바야르 현 대통령은 농촌 지역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었음에도 전체 득표에서는 야당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했다. 엘레그도르지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보다는 중국과 러시아 등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약속해 친미적이었던 몽골 외교정책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다음 정권의 앞길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현재 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대통령으로서 권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경제발전과 외교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몽골 부정선거 항의 유혈시위

    몽골 부정선거 항의 유혈시위

    몽골이 유혈 폭력시위로 혼란에 빠졌다. 시위가 확산되자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은 2일 새벽 국영방송 포고령을 통해 4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AP,AFP 등이 보도했다. 이 기간 동안 야간통행과 대중집회가 금지되고, 언론 취재활동이 제한된다. 또 경찰은 시위 진압을 위해 발포 등 무력사용도 가능하다. 시위는 지난 주말인 29일에 실시된 총선에 대한 부정선거 시비로 달아올랐다.2일 BBC 등에 따르면 집권당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60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충돌해 이 과정에서 최소 5명이 숨지고 시위대 등 300여명이 다쳤다.2명은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잠정 개표 결과 집권 인민혁명당이 전체 76석 중 46석을 획득하고, 몽골민주당은 26석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자 인민혁명당 당사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당사에 불을 지르고, 건물 내부를 약탈하는 등 폭력 양상을 보이자 경찰도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야당인 민주당측은 “부패 정권이 매표 행위로 결과를 조작해 승리를 앗아갔다.”고 비난하면서 인민혁명당의 사과와 재투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산야긴 바야르 총리는 “선거는 자유롭고, 공평하게 치러졌다.”면서 “민주당이 공식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선거 결과를 비난하는 발언을 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몽골에서 선거와 관련해 이처럼 대규모 유혈 시위가 일어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1990년 옛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전환한 이후 공산당 후신인 인민혁명당과 신생 민주당은 권력 투쟁을 벌여왔다.4년 전 연합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2006년 첨예한 대립으로 갈라섰다. 이번 총선에서 양당은 경제성장에 한목소리를 냈으나 고비사막에 매장된 구리, 금, 석탄 광산 개발의 지분 문제를 놓고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여왔다. 인민혁명당은 광산 개발 국제투자협정시 정부 지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민간 기업이 과반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 300만명의 몽골은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이 1500달러에 불과한 빈국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인혁당’ 생존 14명도 무죄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전창일 전 통일연대 상임고문 등 14명이 23일 재심에서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5년 4월 유신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중앙정보부가 투쟁을 주도하던 민청학련의 배후로 국가 전복을 기도한 반국가 단체로 규정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관련자 25명을 기소해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17명에게 징역 15년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사건이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인혁당 사형수’ 故 여정남씨 44년만에 명예졸업장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고 여정남씨가 대학 입학 44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16일 경북대에 따르면 다음달 26일 졸업식 때 인혁당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당한 뒤 제적된 여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인혁당 사건의 법원 무죄 선고후 조카 여상화씨와 추모사업회측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명예졸업을 신청함에 따라 이뤄졌다. 경북대는 유족측과 명예졸업장을 줄 장소와 방법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고 여정남씨는 1945년 대구에서 태어나 1964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민주화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1974년 이 사건으로 구속된 뒤 다음해 사형선고를 받고 20여시간 만인 4월9일 사형이 집행됐다. 여씨는 당시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법원은 지난해 8월 여씨 등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숨진 8명의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경북대는 여씨를 비롯해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경북대 출신 3명에 대한 추모 조형물과 공원을 올해 안에 교내에 건립할 계획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2007년 사라진 ‘별’

    올해도 친숙하던 많은 동시대인들이 생을 접고 저 세상으로 갔다. 세밑을 맞아 우리들 곁을 떠난 ‘진별’들의 생을 반추해 본다.●정·관계 5공 시절 외무부장관을 지낸 이원경(85·8월4일)씨가 별세했다. 제1회 외교관 공채시험에 합격한 고인은 외무부 의전국장·차관 등을 거쳐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12·13대 국회의원이었던 지연태(79·12월21일)씨도 유명을 달리했다. 황정일(52·7월29일) 주중 정무공사는 베이징에서 식중독 치료를 받다 숨져 의료사고 여부를 놓고 외교마찰이 일기도 했다. 해병대 초대 사령관을 지낸 신현준(92·10월15일) 예비역 중장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통영 대꼬챙이’로 불린 이일규(87·12월2일) 전 대법원장은 1975년 대법원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릴 때 유일하게 반대했다. 민복기(94·7월13일) 전 대법원장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10년간 재임한 최장수 대법원장이었다. 이종원(83·8월27일) 전 법무장관과 이범준(79·11월30일) 전 교통장관도 해를 넘기지 못했다.●사회·학계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인 윤한봉(59·6월27일) 민족미래연구소 소장이 지병인 폐기종으로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잠들었다. 독도 의용수비대 김경호(79·6월16일) 선생도 별세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를 추적해온 권중희(71·11월16일)씨도 세상을 떠났다. 평생 고아들의 무료 진료와 사회사업을 위해 헌신한 김종원(93·3월26일) 선린병원 설립자도 타계했다. 군 복무 중이던 장병들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서 근무 중이던 윤장호(27·2월27일) 하사는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해병대 박영철(20·11월6일) 상병은 총기탈취사고의 희생자였다. 국제법 권위자로 프랑스 문화재 반환과 독도 영유권 분쟁 해결에 앞장서 온 백충현(68·4월11일)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1990년 국내 최초의 의학대사전을 발간한 이우주(89·4월25일) 전 연세대 총장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약리학자였다.KAIST 초대 원장을 역임하며 국내 물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이주천(77·9월27일) 교수도 생을 달리했다. 1993년 3월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1호 이인모(89·6월16일)씨도 북한에서 사망했다. 기독교계의 대표적 진보인사로 도시 빈민과 노동자를 위한 종교운동에 힘썼던 김동완(65·9월12일) 목사도 소천했다.●문화·체육계 연예가는 벽두부터 잇따른 자살로 패닉에 빠졌다.1월 탤런트 겸 가수인 유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0여일 만에 영화배우 정다빈의 자살 사건이 겹쳤다. 개그우먼 김형은은 교통사고로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고,‘큰손’ 장영자씨의 사위였던 인기 탤런트 김주승과 원로 연기자 최길호는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당뇨합병증과 싸워 오던 중견 탤런트 홍성민의 사망소식도 팬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문단에선 2월에 ‘분명한 사건’‘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등을 남긴 오규원 시인,5월엔 ‘국민 수필가’ 피천득과 ‘강아지똥’의 아동문학가 권정생,11월엔 ‘수난이대’의 소설가 하근찬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화가·무용평론가로 이름을 날린 팔방미인 예술인 김영태, 원로출판인 홍석우 탐구당 대표, 한국 서예계의 거목 여초 김응현도 치열하게 생을 살다간 문화인으로 남았다. 원로 가수들의 부음도 전해졌다.2월 ‘키다리 미스터 김’의 주인공 이금희에 이어 5월엔 ‘이별의 인천항’ 등을 히트시킨 원로가수 박경원이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도 우리 곁을 떠났다. 대표적인 창작국악 작곡가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인 이강덕을 비롯해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조선시대 마지막 무동’ 김천흥,‘대동굿’ 명예보유자 최음전,‘영해별신굿놀이’ 보유자 김미향,‘북청사자놀음’ 보유자인 여재성 등이 역사 속 인물이 됐다. 원로무용가 송범, 한국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았던 원로성악가 바리톤 윤치호, 가요 ‘잊혀진 계절’ 등을 쓴 작사가 박건호, 정명조 천주교 부산교구장 등도 역사의 뒤안으로 돌아섰다.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투수였던 박동희(39)씨가 3월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한국 체육계의 큰 별인 조상호(81) 전 체육부 장관은 8월25일 뇌출혈로 별세했다. 최은택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2월 66세로 유명을 달리했으며 국내 최초로 프로복싱 동양챔피언에 올랐던 강세철(81·5월)씨, 김성은(64·8월)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도 세상을 떴다.●경제계 ‘마지막 개성상인’이자 40여년 화학산업의 외길을 걸은 송암 이회림(90·7월)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이 세상을 떴다. 박경복(85·7월)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93년 OB맥주의 아성을 무너뜨려 ‘하이트 신화’를 세웠다. 경제기획원 전신인 부흥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신현확(87·4월) 전 총리도 올해 진 큰 별이다.5·6 공화국 시절 ‘금융계의 황제’ 이원조(74·3월) 전 은행감독원장도 유명을 달리했다. 강권석(57) 기업은행장은 편도종양 치료를 받다 12월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86)씨도 8월 남편 곁으로 갔다.●해외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지난 9월 미얀마 양곤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다 진압군 병사의 총격을 받고 50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마지막까지 비디오카메라를 놓지 않아 감동을 주었다.`컵라면´ 등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든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안도 모모후쿠(96) 회장이 1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미국의 자선 사업가 브룩 애스터는 지난 8월 폐렴으로 105세로 생을 마감했다. 초대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보리스 옐친은 4월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지난 9월 세계적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타계, 팬들의 애도가 지구촌 곳곳으로 이어졌다. 첼리스트 겸 지휘자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러시아가 배출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티콘 흐레니코프 등의 거장들도 떠났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자 `길’`닥터 지바고´ 등의 대작을 남긴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 네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차지했던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왕과 나´‘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할리우드 명배우 데보라 카도 `진 별’이 됐다.각부종합
  • “인혁당 유족에 245억 배상”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으로 판결 16시간 만에 사형당한 8명의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245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인당 27억~33억… 사상 최고액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는 21일 고(故) 하재완씨 유족 등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 1인당 27억∼33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시국사건과 관련한 국가 배상액 가운데 최고액이다. 법원이 거액의 국가배상 책임을 물은 데는 공권력을 이용한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한 근절 의지를 표방하고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족들에게는 사법부를 통해 명예 회복을 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유족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사법 살인을 당한 8명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됐다.”며 환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임무가 있음에도 오히려 국가 권력을 이용해 사회 불순세력으로 몰아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면서 “30여년간 유족들이 사회적 냉대, 신분상 불이익과 경제적 궁핍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으므로 피해자 본인에게는 각 10억원, 처나 부모에게는 6억원, 자녀들에게는 각 4억원 등을 위자료로 정한다.”고 밝혔다.“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10년 만에 손해배상 청구권의 공소 시효가 소멸됐다.”는 국가측 주장에 대해선 “유족들이 과거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인정받기 전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사단법인 만들어 추모사업” 이에 따라 고 우홍선씨 등 결혼한 희생자의 유족은 가족별로 27억∼33억원씩을, 여정남씨 등 미혼인 채 사망한 희생자는 형제와 누나, 조카 등이 모두 30억원을 각각 받게 됐다. 유신 정권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을 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휘말려 사형 선고를 받았던 8명은 올해초 32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3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검찰, 인혁당사건 항소 포기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송찬엽)는 관련자 8명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재심 사건에 대한 항소를 30일 포기했다.이로써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돼 원심에서 유죄 증거가 된 조서 대부분이 재심에서 증거능력을 상실했다.피고인들은 원심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고,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해 원심에서의 공판조서의 증명력이 인정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사형 선고의 근거가 된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 등에 대해 검찰이 상소해도 무죄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아울러 “30여년간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 온 유족들의 고통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항소의 법리적인 타당성 등에 주안점을 두고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구상권 문제 등을 검토키로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주둥이가 완전히 깨진 도자기가 진품명품에 의뢰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입체적으로 복원한 도자기의 본 모습. 철제 도자기의 제작과정을 공개한다. 한국 남종화의 큰 획을 그은 소치 허련.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우리 고유의 남종화를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그의 작품이 공개된다. ●진실(YTN 오후 11시5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대법원 판결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사건 8인의 사형수. 물증 하나 제시되지 않았고 ‘인민혁명당’ 명칭이 적힌 문서 한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들어본 적도 없던 ‘인민혁명당’의 당원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미국 버클리 음대 출신의 레이 강은 서른두살의 늦깎이 신인 가수이다. 김건모와 김진표의 음반작업에 작곡가로 참여해 음악성을 인정받은 뮤지션이다. 새로운 음악장르를 개척하면서 진정한 뮤지션으로 거듭나고 싶은 그의 소망을 담았다.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 매력에 빠져본다. ●게임의 여왕(SBS 오후 9시55분) 은설과 함께 강재호의 유골이 뿌려진 곳으로 간 한미숙은 처음으로 은설에게 마음을 터놓는다. 은설은 한미숙이 애처로워 다음에 아빠를 만나면 대신 따져드리겠다 말한다. 신전은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 자리에서 은설과의 결혼식 청첩장을 건넨다. 둘은 충실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일본 유학생인 성민은 단짝 친구인 쇼타를 통해 세계적인 화가 고흐에게 영향을 준 일본화가에 대해 듣게 된다. 성민은 쇼타가 말하는 그 화가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된다. 몇달 후, 성민은 한국에서 온 한 교수에게 쇼타가 자랑스러워하던 일본의 화가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반올림#3(KBS2 오전 8시50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사고로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 일권. 친구들은 그런 일권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보충수업으로 몰아치는 교장의 매몰찬 모습에 아이들은 더욱 속상하고, 모두 한 마음으로 일권이 일어나 주길 바란다. 윤만이만 차갑게 일권 문제를 외면한다.
  • 檢 “더 밝힐 진실있다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심에서 1975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8명에게 23일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이 항소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공판 내내 “처벌보다는 진실규명이 우선”이라고 천명한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이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구형 없는 논고를 했다. 이 때문에 무죄 선고가 나는 즉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선고 직후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항소를 할지 포기할지 결정하는 데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진실을 규명할 부분이 더 남아 있다면 상급심에서 다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사건과 관련,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수백억원대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검찰이 항소를 검토하는 이유중 하나다.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가 과거 잘못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하급심이 아니라 대법원이 판례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법원 판례는 1심은 1심대로,2심은 2심대로 의미가 있다.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정상적인 판결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검찰의 항소 포기를 촉구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부분 60∼70대의 고령으로 32년간 고통을 받아온 유족들에게 또다시 법정 공방을 펼치게 하는 일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한편 유신정권 당시 만들어져 역사와 함께 묻힌 대통령긴급조치에 대한 위헌성 문제는 뒤늦게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고(故) 우홍선씨 등 이 사건 피고인 8명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24일 “피고인들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소(訴)를 제기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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