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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北 ‘혁명 1세대’ 박성철 정치국 위원 사망

    북한의 박성철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28일 ‘오랜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96세. 경북 경주 출신인 박성철은 ‘혁명 1세대’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하다 광복 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15사단장, 노동당 국제부장, 외무상, 정무원 총리, 국가 부주석 등을 지냈다. 김 주석의 유일사상체계 및 노동당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기여한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성사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에 이어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서울을 방문, 이 부장과 회담했다. 특히 7·4공동성명에 따라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인 김 부장 대신 같은 해 12월 서울을 다시 비공개로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 1994년 7월 김 주석이 사망했을 때 국가장의위원회 서열 5위, 이듬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때는 서열 4위에 오를 정도로 최고위직을 역임했다.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사실상 은퇴했다.‘공화국 영웅’(1992년) 칭호와 ‘김일성 훈장’(1993년)을 받았다.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이제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힘을 써야 할 때”라며 행사 개최에 불만을 표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북한은 박성철의 장례를 30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김 위원장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사설] 정부부처 공무원 보안의식 이 정도였나

    2004년부터 8월말 현재까지 북한 및 중국발 해킹으로 정부 각급기관에서 무려 13만여건의 자료가 유출됐다고 한다. 유출자료 대부분이 기밀로 분류되지 않는 정부의 일반 문건이라고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본다. 충격적인 것은 그 많은 정보들이 유출되도록 방치한 정부 각급 기관과 공무원들의 보안의식이다. 현대의 전쟁은 컴퓨터와 정보통신 체계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탱크나 전투기에 앞서 사이버 공격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도 지난 1986년 인민무력부 산하에 5년제 군사대학을 세워 해킹 전문가를 매년 100명씩 배출하며 우수인력을 해킹부대 군관으로 배치하고 있다. 방산업체와 군, 국가 주요기관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해킹 한방에 국가안보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실제로 북의 해커가 최근 육군 야전군사령부 소속 대령급 컴퓨터에 침투한 적이 있고, 방산업체들도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다. 심지어 청와대도 공격을 받을 뻔했다. 국정원이 펴낸 ‘2008 국가 정보보호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사이버 침해사고는 총 7588건으로 2006년의 4286건에 비해 77%나 늘었다. 공공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 탐지건수는 하루 평균 200만 4037건으로 파악된 가운데 704건의 사이버 침해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강도의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려면 국가차원의 사이버 전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보안의식 강화는 두말할 것도 없다.
  • 女간첩 원정화 계부 국내 2년 행적 추궁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의 간첩 행각을 수사 중인 합동수사본부는 원정화의 계부인 김모씨가 국내에서 벌인 간첩활동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29일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원정화 계부 김씨가 2006년 말 캄보디아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뒤 간첩활동을 했다는 의심스런 정황이 포착돼 확인 중이다. 김씨는 원정화에게 간첩활동에 필요한 공작금을 지원하고 북한 공작원과 수차례 걸쳐 회합ㆍ통신한 사실이 적발돼 공안당국에 구속됐다. 김씨는 2006년 탈북자로 당국에 자수했으나 합수부는 김씨가 원정화와 같이 간첩활동을 위해 위장 탈북한 것으로 판단하고 김씨가 지난 2년여 동안 국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추궁하고 있다. 합수부는 김씨가 북한 대남공작 관련 부서의 고위 간부로 근무했다는 경력에 비춰 김씨가 단순히 원정화의 간첩활동을 지원한 것 외에 자체적인 주요 임무가 주어졌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씨가 중국에 있을 당시 북한 정보기관의 도움 없이는 북한산 물건을 내다 파는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큰돈을 벌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보기관과의 연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원정화도 합수부 조사에서 “아버지가 중요한 임무를 띠고 내려온 것 같지만 그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정보업무를 담당하던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좌를 지냈으며 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먼 사돈으로 알려져 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원정화 집은 ‘공작원 가족’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34)의 출신 성분과 구체적인 범죄사실 등이 28일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 원정화는 미국 달러화 위조지폐를 바꿔서 공작금을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원정화의 아버지 역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원정화가 태어나던 해에 남한 침투 도중 피살됐다. 이후 어머니 최모(60)씨는 김모(63·구속)씨와 재혼해 남매 둘을 더 낳았다. 원정화의 의붓아버지 김씨는 평양 미술대학을 나와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좌, 만년보건총국 함북도 관리처 계획과장, 청진시 공로자협회 경노동직장 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엘리트였다. 김씨 역시 2006년 12월 남파됐으며, 원정화의 이부(異父)여동생도 보위부 공작원이었다. 그야말로 ‘공작원 가족’인 셈이다. 원정화 역시 학교를 다니며 최우등 표창을 자주 받았으며, 출신 성분과 학업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89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최룡해 위원장에게 발탁돼 돌격대 간부교육을 마쳤다. 원정화는 수료 직후 특수부대에 입대해 92년 2월 머리를 다쳐 제대하기 전까지 태권도, 독침 뿌리기, 표창 던지기, 사격, 겨울철 얼음물에서 오래 견디기 등의 공작원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 뒤 취직한 백화점에서 과자, 사탕 등을 훔치다 적발됐고, 교화소(교도소)에서 93년 6월부터 2년 가까이 복역하다 ‘김정일 특사’로 풀려났다. 이어 청진에서 장사를 하다 96년 12월쯤 친구와 함께 아연을 훔치다 단속반에 체포됐고, 친척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중국으로 도피해 2년 정도 친척집 등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 남성과 결혼했지만, 성격 차이로 곧 결별했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겼던 아이도 낙태했다. 원정화는 중국에서 가짜 달러를 판매, 외화벌이 업무도 했다.100달러 한 장에 중국돈 200위안(약 3만원)씩 받았다. 이후에도 원정화는 여동생이 하얼빈에 전달하기 위한 가짜 달러를 보위부 직원으로부터 받는 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2001년 9월 원정화는 “미군기지를 카메라로 찍어 오고, 남조선신문에 실리는 조국에 대한 사설을 모아 가져 오라.”는 지령을 받고 조선족 여성으로 위장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원정화는 “장군님의 전사로서 이 한 몸 다바치는 충신이 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충성맹세도 했다. 당시 잠시 동거했던 한국인 사업가 조모씨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원정화에게 보위부 요원들은 “고문이 심하면 교도관 생활을 했고, 아이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고 하라. 특수부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라.”고 주의시켰고, 자살용 독약 6알, 공작금 1만 달러 등도 줬다. 원정화는 남한에 온 뒤 조씨를 만나 중국으로 유인하려 했다. 하지만 조씨가 이를 거절하며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원정화는 곧 “조씨의 아이를 가져 남한에 온 탈북자”라고 국가정보원에 위장 자수하기에 이르렀다. 또 대북정보요원들과 친해지는데 성공해 그들로부터 “북한 군사기밀을 파악해 달라. 협조해 주면 매달 500만원씩 주겠다.”는 등의 부탁을 받고 이를 들어 주는 척하면서 홍콩에서 만나 살해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정 때문에 정보요원들을 살해하지 못한 데다 북한 노동당 비서로 귀순한 황장엽씨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면담한 탈북자 김모씨의 거처를 파악하라는 지령 수행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상부의 질책이 시작됐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해평화지대’ 일단 스톱

    남북은 14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장성급회담을 속개해 서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방안을 논의했지만 어로구역 위치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서 채택에 실패했다. 이로써 지난 10월 양측 정상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북측은 군사회담에서 공동어로구역 문제가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달 중 열기로 한 서해특별지대추진위원회 1차 회의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측 대변인 문성묵 국방부 북한정책팀장은 “북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 어로구역을 만들자는 입장을 고수해 NLL 기준 등면적 원칙을 견지한 우리와 입장차가 컸다.”면서 “다만 수역 설정의 필요성과 조업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남북은 장성급 회담을 다시 열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회담 시기와 관련, 우리측 이홍기 수석대표는 “우리가 입장을 정리하고 (일정을)선정해 통보하기로 했다.”면서 “연내에 다시 열지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개성공단·금강산 내년 휴대전화 가능회담 첫째날인 12일 채택한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통행·통신·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는 이날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의 서명을 거쳐 교환돼 효력을 갖게 됐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에 대한 우리측 인원·물자·차량의 통행시간이 오전 7시에서 오후 10시까지로 확대되고 이들 지역에서 인터넷 통신과 유·무선전화 사용이 내년부터 가능해졌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개성공단 3通 군사보장 합의

    개성공단 3通 군사보장 합의

    남북은 12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을 갖고 개성공단 등 남북관리구역의 3통(통행·통신·통관) 개선을 위한 군사보장 조치에 합의했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구에 대한 우리측 인원·차량·물자의 통행시간이 연장되고 통관 절차가 간소화되는 것은 물론, 인터넷과 유·무선 전화 사용도 용이해져 제한적으로 이뤄져온 경제협력 사업이 새 전기를 맞게 됐다. 우리측 차석대표인 문성묵 국방부 북한정책팀장과 북측 박림수 대좌가 가서명한 합의문에서 양측은 현재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인 경의·동해선 도로 통행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연장하고 유·무선 전화망과 인터넷 회선을 설치키로 한 총리회담 합의사항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통관 간소화를 위한 물자하차장 설치에 대해서도 군사보장을 합의했다. 합의문은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의 최종 서명을 거쳐 발효된다. 첫번째 회담 의제였던 3통 군사보장에 합의함에 따라 양측은 13·14일 회담을 속개해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 설정 문제를 논의한다. 하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양측의 견해차가 워낙 커 합의문 도출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北 ‘종전선언 군당국간 협력’ 제안

    北 ‘종전선언 군당국간 협력’ 제안

    10·4 남북정상선언 이행을 위한 국방장관회담이 27일 평양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막됐다. 양측은 이날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과 경제협력사업에 따른 군사보장 방안 등을 집중 논의했지만 어로구역 위치와 운영 방안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진통을 겪었다. 이날 회담에서 북측은 ‘종전선언을 위한 군당국간 협력’을 의제로 내걸어 우리 대표단을 긴장시켰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기조발언에서 “평화체제 관련국 정상의 종전선언을 위해 군당국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측의 제안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남·북·미 3자 군사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3자 종전선언에 집착했던 지난 정상회담에서의 전례로 미뤄 북측은 남·북·미가 참여하는 3자 군사회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가 기능을 상실한 1990년대부터 미국을 포함한 3자 군사회담 개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체제보장을 위해선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킨 미국과의 협상이 필수적이란 판단에서다. 북측의 제안이 3자 군사회담을 위한 포석이라면 우리측이 희망하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실현 전망이 불투명해진다. 우리측은 이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 ▲최고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 개설 등을 의제로 제안했다.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군사공동위를 다시 제안한 것은 평화체제 전환을 앞두고 포괄적 긴장완화 방안을 다룰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우리측은 군사공동위 구성에 북측이 호응할 경우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문제와 함께 ▲대규모 부대이동·군사연습의 통보·통제 ▲단계적 군축 실현 등 기본합의서 합의사항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점에서 북측의 종전선언 협력 제안은 우리측의 군사공동위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관심을 모은 공동어로구역 설정과 관련, 북측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 구역을 조성하고 이곳을 평화수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우리측은 NLL을 기준으로 남북 등면적의 어로구역으로 설정하되 시범구역 1곳을 운영한 뒤 점진 확대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평양 순안공항에는 북측 차석대표인 김영철 중장 등이 나와 우리 대표단을 맞았다. 수석대표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회담장인 송전각 초대소 입구에서 영접했다. 회담 이틀째인 28일 양측은 오전 전체회의를 속개해 입장을 조율한다. 오후에는 우리 대표단의 단군릉 참관이 예정돼 있다. 평양공동취재단·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국방 “국군포로 송환 촉구”

    김장수 국방장관은 “남북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지난 4일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대화하면서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강력히 촉구했다.”고 5일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정상회담 공식 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결과를 설명하면서 “회담 마지막 날 환송오찬 도중 옆자리에 앉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에게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히고 “노무현 대통령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국군포로 문제를 강력히 얘기했다.”고 덧붙였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2007 남북정상 선언 요지

    1.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2.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3.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 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 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선언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5. 경제협력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 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 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협력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6.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7.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금강산면회소 완공에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재난이 발생할 경우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8.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 [2007 남북정상회담] 北 군부도 온건파 3인방 득세 ?

    [2007 남북정상회담] 北 군부도 온건파 3인방 득세 ?

    지난 2일 평양 4·25문화광장에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하러 나온 북한 권력실세 23명 가운데 눈길을 끈 인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좌해 선군정치를 이끌어가는 군부 인사 3명이다. 우리의 국방장관과 차관에 해당하는 김일철(71·차수) 인민무력부장과 김정각(61·대장) 인민무력부 부부장,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리명수(70·대장) 상임위원이다. 탈북 외교관 출신으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으로 있는 현성일씨는 지난달 펴낸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라는 책에서 이들을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 구성이 당 중심에서 군 중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탁된 신흥 엘리트”로 분류했다. 김 위원장의 유일 지도체제 확립과정에서 충성심과 업무능력을 검증받아 최측근 대열에 발탁된 경우라는 것이다. 우리측 김장수 국방장관의 상대역으로 지난 1998년부터 인민무력부를 이끌어온 김일철 부장은 해군 출신으로 2000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1차 국방장관회담에도 참석했다.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명록 제1부위원장에 이어 서열 3위다. 김 부장은 당초 노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면담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막판에 포함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김정각 부부장은 지난해 10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핵실험 성공 환영대회에 군부 대표로 참석,“인민군대의 핵 억제력은 조선반도와 주변 지역의 안정을 수호하는 강력한 방어수단으로, 미제가 무모한 도발의 길로 계속 나온다면 비참한 자멸행위가 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당 중앙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군부의 젊은 실세로 지난 3월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 류샤오밍 중국대사와 환담할 때 배석하기도 했다. 리명수 상임위원은 군부 핵심요직인 총참무부 작전국장을 거쳐 국방위에 진출한 파워 엘리트. 올해 상반기에만 김정일 위원장을 일곱 차례나 수행했다. 같은 기간 김 위원장을 수행했던 40명 가운데 수행 횟수로는 김기남 당 중앙위 비서와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 부국장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국방연구원 관계자는 “김일철과 김정각, 리명수는 군부 인사 중에서도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된다.”면서 “이들을 노 대통령 환영행사에 내보낸 것은 2·13합의 이후 북한이 취하고 있는 협상노선과도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北언론 첫보도 2000년보다 2시간 빨라

    북한 언론은 2일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비교적 신속하게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오후 3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도착 소식을 전하면서 “북남 수뇌(정상)분들의 상봉은 역사적인 6·15 북남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확대 발전시켜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고 강조했다.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오후 5시에 첫 보도가 나온 것보다 2시간 빠른 것이다. 중앙통신은 노 대통령에 대해 ‘남조선’이란 표현을 붙이지 않은 채 바로 ‘로무현 대통령’이라고 불렀고, 권양숙 여사는 그냥 ‘부인’이라고만 지칭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같은 시각 관련 뉴스를 일제히 내보냈다. 북한 언론들은 김영일 내각 총리,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 당, 무력기관, 정권기관, 근로단체, 성, 중앙기관 간부들이 환영식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또 “재정경제부 장관 권오규, 과학기술부 장관 김우식, 통일부 장관 리재정, 국방부 장관 김장수, 농림부 장관 임상규, 보건복지부 장관 변재진, 국가정보원 원장 김만복을 비롯한 수행원과 기자들이 왔다.”고 소개했다. 중앙통신 등은 “김정일 동지께서와 로무현 대통령은 군중들의 앞을 지나시며 열렬한 환영에 답례하시었다.”고 했다. 또 노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카퍼레이드를 벌인 소식을 전하면서 “수도의 거리는 환영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군중들은 꽃다발을 흔들면서 로무현 대통령을 환영하였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 누가 어떻게 경호하나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 방문 일정 동안 남북 양측의 입체 경호를 받는다. 노 대통령의 밀착 경호는 청와대 경호실이 맡고, 외곽 경호는 북한 호위총국이 책임진다. 노 대통령이 지나가거나 머무르는 길목에는 북한 인민무력부 병력이 배치된다. 노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북측은 호위총국을 비롯해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군·공안·정보기관을 총동원한 모습이다. 노 대통령이 전용차량을 타고 자유로에서 통일대교를 건너기 전까지는 청와대 경호실 통신차량이 근접 경호를 맡고, 앞에서 경찰이 선도했다. 통일대교 남단을 넘어서면서 노 대통령 차량의 외곽 경호는 군이 맡았다. 군 헌병대 차량은 비무장지대 남측 통문을 넘어 군사분계선까지 안내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면서부터 북한 호위 총국과 군·공안·정보기관원들이 철통같은 경호를 맡았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 기간 사용하는 전용차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사의 S600 모델이다. 청와대가 2002년 구입한 이 차량은 시중의 S600과 달리 각종 방탄 기능을 갖췄다.5513cc짜리 12기통 엔진을 장착해 최대 517마력, 최고 시속 210km에 이른다. 수류탄을 비롯한 각종 군사용 무기나 폭발물 등 위협물질로부터 탑승자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는 안전성을 갖추고 있다. 방탄판은 군용 소화장비로 고압 분사를 해도 전혀 지장이 없도록 특수 소재로 만들어졌다. 방탄유리도 적용됐다. 두께만 4.5cm나 된다. 폴리카보네이트층이 한층 강화돼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유리의 형태가 유지되며, 외부 폭발로 파편조각이 차량 내부에 침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펑크가 나더라도 시속 80∼100㎞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 특수 타이어가 장착됐다. 북측은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 노 대통령이 전용차량을 이용하도록 하고,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는 경호원을 남측 요원들로 배치하는 등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 북측 인사 면면

    [2007 남북정상회담] 공식환영식 북측 인사 면면

    노무현 대통령을 맞는 평양 4·25문화회관 공식 환영식에는 북한 권부의 핵심들이 총 출영했다. 고위 인사만 23명으로,2000년 순안공항 영접 행사 때의 12명에 비해 2배나 늘었다. 김영일 내각 총리,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박순희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중앙위원장 등을 망라했다. 이들 중 ‘경제사령관’격인 김영일 내각 총리가 눈에 띈다.2000년 당시 홍성남 총리는 불참했었다. 이번 회담에 경협이 주요 의제로 올라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04년 초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 등의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다가 2005년 12월 말 현 직책으로 복귀했다. 대남사업 총책임자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대미 외교를 총괄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도 노 대통령에게 환영인사를 했다. 군부에서는 차수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국방위원회의 리명수 대장,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김정각 대장이 모습을 보였다.2000년 때 참석하지 않았던 김일철 차수가 나온 것은 김장수 국방장관의 상대역으로 보인다. 앞서 군사분계선에서 노 대통령을 영접한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와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둘다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텁다. 최 책임비서는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인 최현(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대남사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최 부부장은 김 위원장에게 직보가 가능한 ‘실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대규모 軍인사 단행 작전국장 김명국 대장

    북한당국이 최근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에 김명국 대장을,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에 정태근 중장을 새로 임명하고, 국방위원회의 전임 보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규모 군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대북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인 리명수 작전국장이 국방위원회 전임으로 이동함에 따라 과거 작전국장을 지낸 적이 있는 김명국 제108기계화군단 사령관이 작전국장에 다시 부임했다. 인민군내 사상 및 선전사업을 총괄하는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에 오른 정태근 중장은 92년께부터 서해안 전방초소를 지키고 있는 일선 제3군단(황해남도 소재) 정치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전임자인 박재경 대장은 인민무력부 대외사업담당 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박재경 대장이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간 것은 경질 성격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장은 94년부터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으로 활약하면서 2000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의 송이버섯 추석선물을 남측 인사들에게 전달한 바 있으며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에 수시로 동행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김영춘 전 총참모장에 이어 리명수 전 작전국장까지 국방위 전임보직으로 자리를 이동함에 따라 국방위가 명실상부한 실체를 갖춘 공식조직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유엔 北제재 결의 이후] ‘고립무원’ 北, 금융제재 탈출구 있나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의 핵심은 해상봉쇄이자 금융봉쇄다. 북한의 핵,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금융자산을 동결하고, 북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이나 단체의 금융자산을 동결하기로 결의해 금융자산 동결 범위 확대는 불가피하다. 금융봉쇄는 ‘사치품 금수’와 함께 북한 지도부 와해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 일부에서는 북한에 들어가는 달러 창구가 막히면서 달러 부족현상은 북한 권력층을 더욱 압박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으로 버텨나가도록 독려하겠지만, 지도층에게는 달러 부족은 견디기 어려운 핵겨울일 수 있다. 당장 우리가 북한에서 모래를 들여오고 지급하는 달러도 논란이 될 것같다.2002년부터 올해 6월까지 해주의 모래 1129만여t을 들여오면서 북에 지급된 금액은 4192만달러다. 이 돈은 무역상사를 거쳐 인민무력부, 즉 군부로 들어갔다. 유엔 제재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모래대금 송금은 제동걸릴 가능성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북한과의 경협에서 돈이 지급되는 무역상사의 실태파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계좌 동결 이후 러시아의 스베르 은행, 베트남의 베트콤 은행, 몽골 골룸투 은행 등이 계좌를 개설했다고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은 당연히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드러난 북한 계좌는 또다시 동결조치될 것으로 보여 북한 돈줄을 조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BDA 은행의 북한계좌가 김정일이 북한 군부에 하사하는 데 쓰이는 개인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민간차원의 상거래라고 하지만 북측 상대자 대부분은 대남기구의 외곽기구이거나 내각이 관여한 외화벌이 사업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안보리 결의문이 정한 ‘대량살상무기 관련자’로 정해지면, 중국도 방문하지 못하는 출국금지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관측마저 일부에서는 나온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선물통치/육철수 논설위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사들의 증언을 모아 보면, 그의 통 큰 선심은 통치의 핵심 수단이라는 게 거듭 확인된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란 배경을 이용해 친구나 주변 인물에게 수시로 선물공세를 폈다고 한다.1974년 후계자 확정 이후 주요 인사에게 외제승용차를 선물하고 연회를 자주 베풀어 “나라를 거덜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민의 생일상 환갑상을 제대로 차려주지 않으면 김 위원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니, 인민이 ‘지도자 동지’에게 갖는 충성심은 짐작하고도 남을 법하다. 군부 실세 오진우를 충복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은 김정일 ‘선물통치’의 백미다. 김 위원장은 1980년부터 오진우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오진우에게 건넨 선물은 포드승용차와 벤츠 450형, 사냥용 차량 등 6대. 여기에다 공병부대를 풀어 호화주택까지 지어줬단다. 하지만 오진우를 ‘뻑 가게’ 만든 결정타는 1987년 일어난 오진우(당시 인민무력부장)의 음주교통사고. 외제차로 김 위원장 주최 비밀파티에 다녀오던 오진우가 평양 전승기념관 앞 대로의 가로등을 들이받아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 김 위원장은 그를 모스크바까지 보내 살려냈다고 한다. 오진우의 사고는 권력 핵심부의 비밀이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1986년 군부 핵심 측근 6명에게 소형 벤츠를 한 대씩 선물했다. 이 차는 선물받은 본인이 직접 몰아야 하며, 김 위원장이 부를 때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늘그막의 오진우가 직접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차량번호가 특이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모두 ‘216-5555’로 똑같단다. ‘216’은 김 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뜻한다. 핵실험으로 유엔의 제재를 받게 된 북한은 이제 외제승용차와 시계, 양주, 외국산 고급음식 등 사치품의 반입이 어려워졌다. 김 위원장의 ‘선물통치’에 타격을 주어 권력기반을 흔들어 보려는 미국의 전략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앞으로 고급선물을 받지 못하게 된 북한 권력층은 김 위원장과 미국 중 과연 누구한테 반감을 품을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北지원 모래반입금 인민무력부 유입”

    정부가 지난 2002년부터 올해 6월까지 모래 반입 대금으로 북한에 지불한 4200만달러 전액이 북한 인민무력부로 유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13일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관세청 자료를 인용, 북한 모래 반입량이 2002년 9680t에 8만 6000달러어치,2004년 43만 2903t에 146만 7000달러어치,2005년 608만 5666t에 2298만 1000달러어치, 올들어 6월까지 476만 2983t에 1739만 5000달러어치 등이었다고 설명했다.2003년에는 모래 반입이 없었다. 최 의원은 “이 기간에 모두 1129만 1232t의 모래 값으로 4192만 9000달러 전액이 북한 군부로 흘러들어간 게 확실하다.”면서 “북한 해주 지역 모래 반입시 북측 계약 당사자와 송금처 계좌는 바로 인민무력부 산하의 무역상사”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또 “지난해 감사원 감사 결과 현대아산에 지원된 남북협력기금 1159억 6000만원 중 대부분이 북한에 현금으로 지원됐다.”며 경협자금의 무기개발 전용 가능성을 지적하고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남북경협사업과 기금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경협자금이 무기 개발에 쓰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나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모래 반입 대금이 북한 군부로 넘어간다는 점을 지난 4월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4200만달러는 운송비 등을 포함한 통관액으로 실제 북한에 지급된 금액은 1000만달러이며, 양은 660만㎥ 정도”라고 해명했다 또 재경위 소속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한국금융연구원이 1996년 발간한 ‘우리나라 사금융시장에 관한 연구보고서’와 2005년 ‘대부업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996년 가계부문의 사금융 규모는 4조∼4조 9000억원 이었으나,2005년에는 36조∼45조원 규모로,10년 사이 사금융 시장이 10배로 폭증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금융 피해자의 대출금리는 2002년 11월 이자제한법 폐지 이전에는 219%, 폐지 이후에는 210%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이자제한법의 도입을 주장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법사, 정무, 재경, 국방 등 13개 상임위별로 48개 소관부처와 산하기관의 국정감사를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달 1일까지 20일간의 국감일정에 들어갔다. 이날 국감에서는 북한 핵실험에 따른 대북제재 수위, 바다이야기 파문 등이 도마에 올랐다.박찬구 문소영기자 ckpark@seoul.co.kr
  • 北 개혁파·군부 주도세력

    북한 내각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박봉주와 장성택이다. 내각에 실질적 권한이 부여된 것은 2003년 9월 홍성남의 후임에 박봉주가 임명되면서부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 총리로부터 당과 권력기관이 국가경제를 침해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내각에 권한을 주었으면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봉주 총리는 경제관료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측근에 앉혔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현성일 국가안보통일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측근 대열에 당과 군뿐 아니라 내각의 인물들이 합세하고 있다는 것은 김정일의 권력구조가 단순한 역할분담의 차원을 넘어 권력분산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성택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숙청 후 복권’된 파워엘리트로 꼽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로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 부부장은 2003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가 지난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 올해 초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8명으로 구성된 국방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조명록 1부위원장, 이용무 부위원장,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4명이 현역 장성이다. 나머지 3명은 당 군수담당 비서인 전병호, 김양건 책임참사, 그리고 백세봉이다. 백세봉은 김정일 위원장의 둘째 아들 정철의 가명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방위원 외에 이명수 총참모부 작전국장, 이용철 조직지도부 1부부장,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원용해 보위사령부 국장이 군부의 실세 4인방으로 꼽힌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131차례의 공개활동을 했으며, 이 가운데 군관련 활동이 70회로 가장 많았다. 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대장)은 김 위원장을 44차례나 수행하면서 김 위원장의 곁을 가장 많이 지켜 관심을 모은다. 박 대장은 2000년 9월 김용순 당시 노동당 대남비서를 수행해 송이버섯을 들고 서울을 방문했으며,68년 1ㆍ21청와대 습격사태 당시 김신조와 함께 남파됐다 살아 돌아간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대포동 2호 기지 노동당 핵개발국 관여”

    대포동 2호 미사일 기지가 위치한 함경북도 무수단리 기지 건설에 북한 노동당 131지도국이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131지도국은 북한에서 핵시설 건설을 담당하는 기구로 중앙당에서는 유일하게 직속 부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단체인 ‘탈북자동지회’ 소속으로 1980년대 북한 원자력공업부에서 우라늄폐기물 작업반장으로 활동한 김대호(47)씨는 7일 “무수단리 기지 건설에는 핵개발을 담당하는 노동당 ‘131지도국’이 깊이 관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북한이 1990년 무수단리에 있던 군사건설국을 철수시키고 1개 대대(약 300명)의 핵개발 부대를 투입했다.”며 “무수단리는 해안에 접하면서도 노출이 잘 되지 않는 지형으로,6·25전쟁 당시 미국의 함포사격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북한으로서는 안성맞춤의 군사기지”라고 말했다. 그는 “핵개발 부대에서 같이 일하다 무수단리로 들어간 동료들로부터 정무원 총리급의 ‘특급 경호’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들은 무수단리 기지가 서울이 아니라 일본 도쿄를 겨냥한 대일 전략기지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탈북자단체인 숭의동지회 최청하(59) 사무국장은 “북한 당국은 1980년대 초 무수단리에 ‘불순분자’를 이주시킨 뒤 주민 전원에게 인민무력부 신분증을 지급했다.”며 “이곳은 표면적으로 과학원 함흥분원 산하에 있지만 사실상 인민무력부가 모든 것을 통제, 관리하는 특별구역”이라고 소개했다. 최 국장은 “1990년대에는 기지에 방어부대가 투입됐다.”면서 “영변(핵시설)보다 보안이 철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北 고위과학자등 2명 한국행 희망”

    북한을 탈출한 뒤 현재 제3국에 머물고 있는 북한 과학기술 분야의 간부와 의사 등 2명이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이날 “지난 3월 중국으로 탈출한 조선과학기술총연맹 00도 위원장 박원두(43·가명)씨와 1월 탈북한 조선인민무력부 산하 00호총국 병원장인 한영임(65·여·가명)씨 등 2명이 현재 동남아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탈북자 정착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미국보다 한국으로 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도 대표는 “지난 5월 동남아로 이동한 이들은 현재 안전한 장소에서 한국에 입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계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박원두씨는 현재까지 북한을 탈출한 과학자 가운데 최고위급으로 북한 과학기술과 군사시설에 관한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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