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북한 군대에도 봄은 오는가/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북한은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주력으로 하는 정치’, 즉 선군정치를 내놓았다.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상정한 것이다.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혁명을 위해서 군을 핵심으로, 본보기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사회주의를 실행하는 데 노동계급이 혁명의 영도계급, 주력군으로 규정되었으나 시대가 변해 노동계급은 더 이상 혁명의 주력군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군대는 단순히 ‘반혁명적 폭력을 격파하고 견제하는 기본무기, 혁명을 수호하고 조국을 보위하는 수단’을 넘어 정치적 역량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정치적 역량은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집약되는 혁명 정신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북한 군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성을 다해 보위하는 핵심수단이 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수령결사옹위를 위해 군대에 대내외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적에 대한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대외적 체제의 적으로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을 지목하며 이들 국가들을 ‘계급적 원수’로 치부하고, 그들의 군대가 이들과 싸우는 계급투쟁의 맹수가 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남북관계 확대, 북핵 6자회담과 미국·북한 양자회담이 이어지면서 이를 평화의 계기로 인식하는 ‘평화 환상’이 북한군내에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에 대한 북한군의 의식변화가 뚜렷하다는 증언들이 많다. 예를 들면, 장교급에서 남한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지고 남한방송 청취율도 높아가고 있고, 한국·미국·홍콩영화를 감상하는 분위기가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중에서는 홍콩, 한국, 미국 영화 순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에 대한 북한군 당국의 단속 역시 강화되고 있다. 보위부가 장교와 병사들의 언행을 감시한다든가, 장교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라디오, 텔레비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후 라디오는 회수하고 텔레비전은 채널을 고정시켜 버린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단속이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 당국은 “당이 평화적 구호를 들면 들수록 인민군대는 오직 총대로 조국통일하겠다는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남북한 대화뿐 아니라 미국·북한 간 대화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북한군의 평화 환상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북한군의 평화 환상이 확대되면 될수록 주적으로서의 반미의식은 유연하게 바뀌지 않을 수 없으며 남한에 대한 ‘계급적 원수’ 인식 또한 옅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군의 주적인식 완화는 북한체제의 변화에 대한 요구로 연결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북한군이 그들의 수령체제 유지를 위한 가장 보수적이며 충성집단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젊은 장교들은 변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띠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당간부들이나 당원들, 그리고 군 장교들은 적극적인 개혁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밀담이 오가기도 한다는 증언들도 있다. 장교들이나 사관급 군인들은 어떡하면 주변 여건을 활용해 돈을 벌 것인가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경제난의 지속으로 인하여 식량을 비롯한 군 보급품 부족이 지속될 경우, 북한군은 자구책으로 경제적 이익을 위한 일탈행위들에 대해 더욱 과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의 다변화와 활성화 현상이 심화되면 될수록 북한 군대의 이러한 부정적 인식변화는 보다 커질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에 대비하여 인민군대에 대한 정치교양교육과 통제활동을 보다 강화할 것이지만 군의 부정적 인식변화를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