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통일… 타락하는 한반도
1960년 11월 스물 네 살의 최인훈은 중편소설 ‘광장’을 내놓았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명준이 주인공이다. 이데올로기가 개인에게 안겨주는 전형적인, 그러나 치열했던 강박 사이에서 방황은 중립국행 배에 올라 검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데올로기가 내리누르던 압박은 최소한 이명준에게는 끝이 난 것이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갈등은 형태와 입장을 달리할 뿐 여전히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2009년 4월, 스무 살에 시로 등단한 뒤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은 서른 아홉 살의 이응준은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민음사 펴냄)로 통일 한국의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다. 3년 만의 문단 복귀이자 13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이응준이 그려낸 통일 한국은 2011년 ‘갑작스럽게’ 이뤄진다. 그리고 5년 뒤 남쪽 출신이냐, 북쪽 출신이냐를 가릴 것 없이 타락한다. 북한 인민군 출신 조직폭력배들이 벌이는 범죄와 폭력, 살인, 마약, 총격, 성매매가 일상이 되는 식이다.
이응준은 “누아르 소설과 블랙코미디, 추리, 멜로 , 판타지 등 여러 장르의 장점을 뽑아서 혼합하는 작법을 사용했다.”면서도 “장르문학이 아닌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 본격문학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소설 초반부에선 ‘광장’ 속 이명준이, 소설가 이응준으로 이름을 살짝 바꿔 되살아나 못 다한 얘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다만 시대와 불화만 동일할 뿐, 치열한 지식인으로서 이명준의 소명은 없어지고 편견만 남은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이응준은 300권이 넘는 책과 논문을 참조하여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만큼 간간이 언급되는 북의 현실-소설 속에서는 과거이고, 우리에게는 현재다-은 리강, 오남철, 조명도 등 북한 출신 인물군의 허무와 고독, 희망없음, 분노를 설명해 주는 핵심 키워드로 장치되어 있다. 허나 그가 주로 인용하고 반영한 책들은 황장엽, 시대정신 등 등 반북인사, 반북 출판사들의 것이 주종이다.
작가는 “아마도 통일이 된 뒤 인민군 출신 북한 사람이 옆 집에서 살고 있다는 가정이 가장 무서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소설은 ‘어느날 갑자기’ 이뤄질지도 모르는 통일(사실은 북한의 붕괴)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이 소설을 통일 문학, 반통일 문학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손에 땀을 닦아가며 읽기에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 누아르 문학으로 진지하지 않게 읽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렸다면 말이다.
실제로 가상의 미래를 얘기하는 이응준 소설의 작법은 더욱 촘촘하다. 이야기는 과거와 대과거, 현재를 숨가쁘게 오가며 독자를 잡아 끈다.
또한 마치 영화의 장면 하나 하나를 그려내듯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곳곳에 숨겨놓은 장치는 복선이 되어서 소설 속 인물들을 구속하고 있다. 마치 잘 만들어진-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전사(戰士)였던-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응준은 “장삿속이 아니라 진짜 독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