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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베트남군 음악예술단 초청 공연

    국방부는 14일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오는 20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인민군 정치총국 소속 음악예술공연단을 초청해 공연을 한다고 밝혔다. 관람을 희망하는 일반인은 국방부 인터넷 홈페이지(www.mnd.go.kr)를 통해 전자 티켓을 신청하고 접수가 완료된 PC 화면을 출력해 입장하면 된다.
  • 北, 등화관제·방공호 대피훈련 ‘준전시상태’ 긴장감

    북한이 전투 대비 즉각 동원태세에 돌입하면서 1993년 한·미 팀스피릿 훈련에 반발해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을 당시의 살풍경이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았을 뿐 북한 소식통들이 전하는 분위기는 이에 버금간다. 대북매체인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3일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한·미 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 첫날인 지난 11일부터 지하 방공호 대피훈련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여행도 금지됐고 북한 관료들의 해외 출장도 가급적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야 공습에 대비해 길거리의 불을 끄고 가정집의 창문을 두꺼운 모포 등으로 막는 등화관제도 실시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등화관제 때문에 집안에서 탄불(연탄불)도 못 피우게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지시가 내려온다”고 말했다. 전기도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최근에는 주민들에게 배급해 주던 전시 예비식량을 국수로 가공해 배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식통들은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을 전시 예비식량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라고 분석했다. 배급은 오는 6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알려져 긴장 상태가 6월까지 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당조직들과 근로단체조직들이 모든 사업을 전시태세로 전환했다”며 “어느 때든지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췄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북한 전역에 취해진 조치는 1993년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을 때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등화관제를 시작으로 외국인 여행이 전면 금지됐고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이 소환됐다. 평양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군중집회가 열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사실상 북한이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대남 위협 발언의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만큼 실제 ‘준전시’ 선포는 마지막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軍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키 리졸브 끝난 뒤 기습도발 가능성

    軍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키 리졸브 끝난 뒤 기습도발 가능성

    북한의 위협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11일 ‘키 리졸브’ 연습을 개시한 한·미 군 당국은 북한군 동향 파악에 온힘을 쏟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 수뇌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우리 군의 주의가 약해지는 시점을 틈타거나 생각지도 못한 장소를 공격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식 기습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군 당국은 백두·금강 정찰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 아이’,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등 정보 자산을 총동원해 북한군의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군은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의 연평도, 백령도와 영종도 앞바다 등에 대한 해안포나 단거리 미사일을 이용한 도발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북한이 NLL인근 북측지역 해안과 섬에 해안포 1000여문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북한이 공격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경향이 있다”면서 “전쟁 도발의 기본은 기습인데 궐기대회하고 전쟁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구체적 행동을 취할 징후는 아니라고 보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얼마나 정상적인 사고능력이 있는가, 호전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는가가 변수”라면서 “그가 예측가능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은 금물”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지금처럼 높은 수위의 위협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북한이 21일 ‘키 리졸브’ 연습이 끝나고 미군 증원 전력이 철수한 이후 판문점에서 무력 충돌 위기를 고조시키고 허를 찌르는 기습을 서해 NLL 지역에서 감행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높아진다. 이번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미군 병력 3000여명중 2500여명은 주한미군 소속이 아니라 미국·일본 등에서 증원된 병력이다. 북한이 키 리졸브 연습 일정에 맞춰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던 대규모 국가급 군사훈련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북한군 수뇌부의 잇단 현지 시찰에도 주목하고 있다.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이 지난 5일 정전협정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발표한 지 이틀 뒤, 김 제1위원장이 서해 NLL 부근 장재도와 무도를 둘러봤고 현영철 총참모장은 9일 판문점을 시찰했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김 제1위원장과 현 총참모장의 시찰은 철저히 계산된 행동으로 해당 지역이 모두 도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군은 북한이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NLL 일대에서의 전형적 기습 이외에 공기부양정을 이용해 서북 도서를 기습점령하거나 나무와 천으로 외형을 둘러싸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AN2 프로펠러 수송기를 활용해 특수부대원들을 김포 등지에 잠입시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北, 한·미 겨냥 ‘강공 카드’ 총동원

    북한이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3차 핵실험 제재 결의안 채택에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서해북방한계선(NLL) 전선을 시찰하며 무력 시위에 앞장섰고, 인민군 총사령탑인 최고사령부와 대외 기구인 외무성, 대남 업무를 맡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당·군 핵심 기구들이 잇따라 강력 대응을 공언했다.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으로 몰며, 대내·대남·대미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가용할 수 있는 강공 카드를 모두 내미는 모양새다. 김 제1위원장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을 감행한 북한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7일 시찰해 “육·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로케트군이 전면전을 개시할 준비가 됐다”고 선포했다. 유엔 제재 결의 사흘 전인 지난 5일부터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최고사령부 성명에서 정전협정 백지화와 제2 조선전쟁을 거론한 데 이어 외무성이 7일 ‘핵선제 공격권’ 위협을, 조평통은 이날 남북 불가침 합의의 전면 무효화를 공언했다.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핵 탄도미사일이 발사 대기 상태에 있다고 엄포했다. 대규모 군민대회로 내부 결속에 나서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이 키 리졸브 한·미 연합훈련이 개시되는 ‘11일’을 정전체제 및 남북 불가침 합의 무효화 시점으로 공언한 건 군사 조치를 사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서해 NLL은 과거 두차례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공격 후 또 다시 ‘화약고’ 위험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 포병부대의 수도권을 겨냥한 모의 사격훈련이 늘고, 서해 NLL 일대의 해안포와 반잠수정 기동이 활성화된 것으로 포착돼 무력 충돌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하지만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판문점에서의 군사적 충돌이나 치고 빠지는 공격 가능성은 있지만 북한이 확전시킬 가능성은 낮다”며 “한·미 연합전력이 키 리졸브 훈련에 돌입한 시점에서 도발은 자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으로 북한 도발의 현실화는 자칫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를 작동 불능 국면에 빠트릴 수 있다. ‘핵·미사일 실험-제재-추가 도발-보복 응전’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1차 핵실험 때인 2006년의 제재 국면은 이듬해 2·13 합의로 해소됐지만 2009년 핵실험 이후에는 남북 간 대화 모멘텀이 실종되면서 북한의 도발은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신범철 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은 “북한의 핵 선제공격 등의 위협 발언은 거짓으로 강하게 배팅하는 ‘블러핑’(공갈) 전략에 해당한다”며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 군사행동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손발 없는 靑 NSC 北 위협에 ‘비공식 대응’

    손발 없는 靑 NSC 北 위협에 ‘비공식 대응’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공백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등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6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에서 비공식으로 대응책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SC는 국가 안보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헌법상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국무총리와 외교·통일·국방 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등이 위원이며 안보실장 내정자는 간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NSC 구성원 중에 현재 국무총리만 임명된 상태이고 나머지 위원들은 아직까지 임명장을 받지 않은 상황이라 공식회의는 이날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인민군 최고사령부 명의로 북한이 입장을 발표한 만큼 국지적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박 대통령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NSC로부터 북한 동향 등 관련 사항을 계속해서 보고받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가안보실장이 수석비서관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국가안보실은 국방부와 군 당국을 포함해 행정부와 협조체제를 긴밀히 유지하면서 내실 있는 상황 점검과 대응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윤창중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변인은 또 “김장수 안보실장 내정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상황 점검 및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우리 군은 북한 최고사령부의 군사도발 위협에 대해 도발 시 지휘 세력까지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대북 경고성명을 발표했다. 김용현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북측이 어제 핵실험에 대한 제재와 우리의 정례적인 키리졸브 및 독수리연습을 비난하면서 핵실험에 이은 2, 3차 대응조치와 정전협정 백지화 등 위협을 했으나 이번 훈련은 북측에도 이미 통보된 연례적 한·미연합훈련”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도발 원점과 도발 지원 세력은 물론 그 지휘 세력까지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며 이를 시행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 당국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따라 이날 정오를 기준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 동향을 면밀히 감시함은 물론 작전사급 이상 부대의 상황근무를 강화했고, 주요 지휘관들은 1시간 이내에 부대에 복귀할 수 있는 지역에 상시 대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군 당국은 대북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은 여전히 적정을 주의 깊게 감시하는 3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强 vs 强

    强 vs 强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위협에 대해 군 당국이 6일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세력까지 응징하겠다고 결의함에 따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방부 대신 작전 실무를 맡은 합동참모본부가 직접 대북 경고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도발 시 정치적 판단보다 ‘선(先)조치 후(後)보고’라는 군사적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남북 군사당국 간 ‘강(强) 대 강(强)’ 대결이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군 관계자는 “군령 실무를 다루는 합참이 직접 발표함으로써 도발 시 발포 여부를 윗선에 물어보는 등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자위권 차원에서 즉각 응징한다는 결의를 보여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이 포를 발사하면 발포 주체인 ‘도발 원점’과 발포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대기 중인 ‘지원세력’은 물론 사단이나 군단급 지휘소에 해당하는 ‘지휘세력’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시사함으로써 국지전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군의 입장은 인민군 대변인 성명에 이은 북한의 후속 조치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노린 서북 도서 인근에서의 포 사격이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국지도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군은 북한이 서해에 자국 선박과 항공기 등의 항해와 운항 주의를 요망하며 내부적으로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한 정황을 포착했다. 항행금지구역은 서해 쪽은 평북과 황해도에 걸친 서한만(西韓灣) 인근해상과 동해 쪽은 강원도 원산 이북 해상으로, 기간은 서해는 이달 말까지 동해는 다음 달까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이를 정식 통보하지는 않았으나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다음 주부터 사거리 120㎞의 KN02 미사일이나 300~500㎞의 스커드 미사일 등을 발사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군은 북한군이 해빙기를 맞아 3년 전 천안함 사건 당시와 같은 잠수함으로 기습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동계훈련에서 122㎜ 방사포와 자주포·해안포 등을 동원한 포사격을 예년보다 3배 늘렸고 동·서해에서 잠수함 기동 훈련을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날인 지난달 25일 4군단 포병부대를 동원해 서울을 가상 목표로 모의 사격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1면 기사를 통해 “미제가 핵무기를 휘두르면 우리는 다종화된 우리 식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서울만이 아니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며 호전적 분위기를 이어갔다.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이 평양 시내버스와 열차에 군사용 위장그물을 덮어씌웠으며, 이는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기 직전 ‘준전시상태’ 선포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이날 예하부대에 육·해·공 각종 무기의 대기 수준을 높이도록 지시했다. 군사분계선(MDL)과 NLL 인근의 포병부대는 사거리 40㎞의 K9 자주포, 사거리 23~36㎞의 130㎜와 131㎜ 구룡 다연장로켓 등의 화력을 즉각 대응사격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서해상에는 유도탄 고속함(400t급)과 호위함(1500t급) 등을 증강 배치했으며 공군도 KF16, F15K 전투기 등의 초계 전력을 늘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정부조직법 대치정국에 北위협 변수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의 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 변수’가 정국을 강타했다. 정전협정 백지화 등의 내용을 담은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5일 대변인 성명을 강경파로 통하는 김영철 군 정찰총국장이 발표한 점을 청와대는 주목하고 있다. 정찰총국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을 비롯해 사이버 테러 등 크고 작은 대남 도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묶여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강력한 위협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가동하며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외교 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정식 임명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 체계적인 대처에 일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NSC를 이끄는 외교·통일·국방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역시 공식 취임을 하지 못해 공식회의를 열지도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국정 공백기를 맞아 심각한 안보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국민 우려를 의식한 듯 6일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안보 공백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지연으로 존재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신설 국가안보실의 수장인 김 내정자는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 하지만 윤창중 대변인은 “김 안보실장 내정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상황 점검 및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또 한편으로는 외교안보수석실에서 한 치의 공백도 없이 치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조직법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 도발’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야권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박기춘 원내대표가 이날 핵심 쟁점 사항이었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관련 관할권 문제를 원안 처리하는 대신 3대 조건을 긴급 제시한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박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 측의 정전협정 전면 백지화 등 나라 안팎의 상황이 엄중하다”며 “더 이상 국정 표류를 방치할 수 없어 내린 양보안”이라고 말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 국정 공백이 장기화된다면 야당의 ‘발목 잡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의연하게 대처하면 된다”면서 “정부조직법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고유한 일로, 북한 변수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원리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軍 “北 도발 명분 쌓기”… 경계태세 강화

    북한의 강경파인 김영철(67) 군 정찰총국장이 5일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한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직접 발표해 그의 위상이 주목된다. 북한은 과거에도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대남·대미 위협 발언을 쏟아냈지만, 군부 주요인사가 직접 TV에 나와 성명을 읽은 경우는 이례적이다. 김영철은 이날 오후 8시 조선중앙TV에 출연해 “미제에 대해 다종화된 우리식의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맞받아치게 될 것”이라면서 “(이를) 퍼부으면 불바다로 타 번지게 돼 있다”고 위협했다. 그는 2009년 5월 대남·해외 공작업무를 담당하는 노동당 35호실과 작전부를 노동당에서 떼어내 인민무력부 정찰국으로 통합한 뒤 정찰총국으로 확대개편한 주역으로 꼽힌다. 정찰총국은 이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대남도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김영철은 지난해 대장에서 중장(우리 군의 소장)으로 2계급 강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복권된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군부 서열이 높은 현영철 군 총참모장이나 김격식 인민무력부장 대신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가 정찰총국장 직위뿐 아니라 최고사령부 내에서 또 다른 직책을 갖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영철이 대남 도발 측면에서는 일종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만큼 그를 통해 대남·대미 위협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군은 키 리졸브 등 한·미 연합훈련에 맞춰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가시화됨에 따라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군부 주요인사가 직접 공개적으로 위협한 만큼 도발 명분을 쌓기 위한 수사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계훈련에 나선 북한군은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서북지역에서 반잠수정 작전을 시작하고 해안포 포문을 개방하며 동해에서는 대규모 육·해·공군 합동훈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날 일부 언론에서 우리 군 중동부전선 최전방지역의 철책 일부분이 뚫렸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군 당국은 “해당 부대 조사결과 철조망 상단의 윤형철조망 한 군데 연결 부위가 노후화로 단절된 것일 뿐”이라며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北 “한반도 정전협정 전면 백지화”

    北 “한반도 정전협정 전면 백지화”

    북한이 5일 한반도 정전협정을 전면 백지화하고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한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이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직접 발표한 건 군사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위협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된다. 북한이 올해 60주년을 맞은 정전 체제 무효화를 주장하고 나선 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에 강력 반발하는 한편 한·미 연합사 독수리 훈련(3월 1일~4월 30일)과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 훈련(3월 11~21일)에 대한 대응 조치로 읽혀진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TV에서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쟁연습이 본격적 단계로 넘어가는 3월 11일 그 시각부터 정전협정의 효력을 완전히 전면 백지화하겠다”며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하여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밀 타격을 가하겠다”고 밝혔다. 성명을 발표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최고사령부는 이미 우리가 천명한 대로 미국을 비롯한 온갖 적대세력들의 횡포한 적대행위에 대처해 보다 강력한 실제적인 2차, 3차 대응조치를 연속 취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우리의 이 경고를 무심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 군사 채널인 판문점 활동의 전면 중단도 제시했다. 북한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조선 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협상기구로서 우리 군대가 잠정적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던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의 활동을 전면중지할 것”이라며 “판문점 조미군부전화(북미 군사 전화)도 차단하는 결단을 병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5. 영원한 은막의 여인 최은희

    [명사가 걸어온 길] 5. 영원한 은막의 여인 최은희

    어느 시인이 말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너무나 드라마틱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운명적 단어들로 여자의 일생이 가득 채워졌다. 15살에 집을 나가 배우가 됐고 순탄치 않은 결혼과 이혼, 전쟁의 아픔, 그리고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 납북과 탈출 등으로 이어지는 질곡의 세월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서사시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를 가리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은막의 스타 최은희(83)씨.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까만 모자에 안경, 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파란 많은 삶을 살아온 그 세월이 무진할 텐데 수줍게 웃는 모습이 여전히 은막의 소녀처럼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창밖을 바라본다. 안경 너머의 눈빛,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신 감독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애절하게 서려 있는 듯했다. 중얼거림으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길고도 모진 세월을 살아왔다. 고생을 모르고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아온 젊은 세대들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간들이었다”라고 말이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선정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했다. 이 자리에서 영화 ‘은교’로 신인예술인상을 받은 한참 후배 김고은의 손을 잡고 격려해 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요즘에는 어떻게 지낼까. “올겨울에는 날씨가 워낙 추워서 되도록 집에서 쉬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삶, 지나온 세월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 요새는 쉬어도 피곤함을 느낍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기능을 너무 많이 혹사시켰나 봐요. 제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해 외부활동을 하지 못하고 대신 마음의 정성을 담은 카드 등을 보내는 일로 대신하고 있다. 나들이할 때에는 걷기가 힘들어서 휠체어에 의지한다. 젊었을 때 너무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보니 건강을 돌보지 못했고 요즘에는 노후 관리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집에는 사촌동생이 함께 있고 가끔 영화감독인 아들 신정균과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은 1999년 ‘삼양동 정육점’으로 데뷔했으며 ‘스무살’(2001)과 ‘나의 스캔들’(2008) 등을 제작했다. 아들의 영화에 대한 평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웃는다. 자연스럽게 우리 영화 얘기로 이어졌다. 지난해 ‘영화 관람객 1억명 돌파 시대’와 관련해 그는 “너무 고맙고 흐뭇한 일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잘 만들어 가고 있다”면서 1961년 자신이 출연했던 ‘성춘향’을 떠올렸다. 이 영화는 당시 설 연휴 때 명보극장에서 개봉돼 서울에서만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이로 인해 ‘신상옥-최은희’ 전성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옛날에는 검열이 심했거든요. 그로 인해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에는 패밀리 영화가 자주 나오는데 좋은 현상이고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신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 당시를 잠시 떠올린다. 북한을 탈출한 뒤 신 감독은 할리우드에 ‘신프로덕션’을 설립해 ‘쓰리 닌자’를 제작했으며 시사회 때 미국 전역 1500개 극장에 배급이 결정된다. 이는 대단한 사건이었고 신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 1호로 기록됐다. 최씨는 2007년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냈다. 이와 관련, “영국의 한 제작사에서 작년부터 제의가 들어왔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곧 촬영에 들어간다. 또 최근 미국 드라마 제작사에서 제의가 들어와 국제변호사와 얘기하고 있다”고 말해 해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영화 발전을 위해 원로 연기자로서의 견해를 밝힌다. “집에 있으면서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작가가 대본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얼굴만 가지고 등장하는 후배 배우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대사 구성을 잘 못하는 경우이지요. 뭐든지 확실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들, 어머니, 딸 역할이 분명해야 하구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반추해보며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화제를 데뷔 당시로 돌렸다. 어린 시절 활달하지 못한 성격이어서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 말이었다. 방공호에서 만난 친구가 “배우하자”고 느닷없이 제의했다. 그러더니 친구가 방공호에 함께 있는 배우 문정복(탤런트 양택조의 어머니)씨한테 가서 배우시켜 달라고 졸랐다. 당시 문씨는 연극계에서는 유명한 주연배우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미인이었다. 이튿날 그는 친구와 함께 종로6가에 있는 극단 ‘아랑’ 사무실에서 문씨를 다시 만났다. 부모한테 허락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거침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바람에 허드렛일을 시작하면서 단원이 됐다. 나중에 연극협회 회원증을 받아 정식 회원이 됐고 덕분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게 됐다. 얼마 후 지방 공연 일정이 잡혔다. 첫 행선지는 대전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문씨가 대본을 건넸다. 얼떨결에 읽었다. 그랬더니 이번 지방공연 때 무대에 한 번 서 보라고 권유했다. 제목은 ‘청춘극장’으로 하녀 역할이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연기자로 데뷔하게 됐다. “지금도 첫 무대의 낯섦과 두려움, 떨림과 환희, 관객들의 숨소리, 뜨거운 눈물과 갈채를 잊지 못합니다. 극단 연구생으로 어렵게 치러냈던 첫 무대에서 이미 연극의 마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열심히 했고 운 좋게도 주연을 많이 맡았습니다.” 광복이 되자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에 이름을 최경순에서 최은희로 바꿨다. 극단 활동 또한 ‘토월회’와 ‘극예술연구회’ 등으로 넓혀 ‘40년’ ‘맹진사댁 경사’ ‘이순신’ ‘세자매’ ‘나도 인간이 되련다’ 등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영화를 처음 시작한 것은 동양극장에서 연극할 때였다. 토월회에서 함께 일했던 최운봉 선생이 찾아와 시나리오 대본을 주면서 같이 영화를 하자고 권유했던 것.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에서 순박한 어촌 처녀 역할이었다. 이 영화 역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이어 ‘마음의 고향’ ‘밤의 태양’ ‘무영탑’ 등에서 잇따라 주인공역을 맡으면서 영화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다가 목포에서 ‘사나이의 길’을 촬영할 때 6·25전쟁을 맞이한다. 배우들이 우왕좌왕했다. 부산으로 피란을 가거나 월북하는 배우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편과 집안 식구들이 걱정돼 서울로 왔다. 집에서 지내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시장 보러 가던 중 그를 알아보는 인민군 장교를 만나 어쩔 수 없이 북한 내무성 소속 경비대 합주단원이 됐다. 당시 합주단 사무실은 명동 성당의 수녀들이 숙식하던 곳이었다. 배우 김동원·김승호, 지휘자 임원식, 성악가 등 200여명의 예술인들이 모여 있었다. 포로들처럼 수용돼 사상교육을 매일 받았다. 그러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할 때 평남 순천 쪽으로 끌려갔다. 평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목숨 건 탈출을 했고 그 과정에서 국군을 만났다. 최씨는 인민군복에서 국군복으로 갈아입고 정훈공작대원으로 선무활동에 나서게 된다. 전쟁의 와중이라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다 1·4후퇴 때 서울을 거쳐 피란지인 대구에서 극단 ‘신협’ 단원들과 연극을 하게 된다. 이때 출연했던 작품이 ‘마의태자’ ‘춘향전’ ‘맹진사댁 경사’ ‘뇌우’ 등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십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신 감독과 만난 것은 ‘춘향전’ 공연 때였다. 어느날 알고 지내던 배우 황남씨가 영화 출연 교섭을 해왔고 며칠 뒤 중국집에서 신 감독을 처음 만났다. 이후 신 감독은 극단에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열정을 보였다. 결국 영화를 하자는 구애작전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1954년 3월 7일 을지로6가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둘은 하루 24시간 그림자처럼 같이 다녔다. 영화 같은 삶이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이 찍은 첫 작품 ‘꿈’을 비롯해 최씨는 ‘젊은 그들’ ‘무영탑’ ‘지옥화’ ‘춘희’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1976년까지 130여편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 ‘어느 여대생의 고백’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다정도 병이런가’ ‘동심초’ 등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신 감독과 함께 전성기를 누린다. 우리 영화사의 큰 획을 그은 것도 이때였다. 1978년 최씨는 신 감독과 이혼을 했으며 안양예술학교를 운영하는 일에 전념했다. 어느 날 홍콩 금정영화사의 초청으로 홍콩을 방문했다. 일정을 소화하던 중 북한의 요원들에 의해 납북된다. 이후 5년 동안 연금 상태에서 혼자 지내다가 북한에서 신 감독과 다시 운명적인 재결합을 한다. 그렇게 9년 동안 북한에서 지내면서 모두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때 찍은 대표작이 ‘불가사리’ ‘임꺽정’ 등이다. “당시 매주 금요일에 연회가 열렸고 여러 번 참석하면서 김정일 위원장과 여동생 김경희·장성택 부부, 김영남 외교부장 등과도 만났지요. 김정일 생일에도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김정일과 관계된 곳은 공공 건물이든 가정집이든 어디나 영사실이 부설돼 있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1986년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했다가 탈출에 성공한 최씨 부부는 미국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1999년 다시 국내로 돌아왔고 2006년 신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혼자 노년을 보내고 있다. 최씨에게 앞으로 출연기회가 온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동안 정적인 역할이 많았다. 발랄한 연기를 하고 싶다”며 빙그레 웃는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北 “우린 핵 보유국” 전방위 선전 대외 협상력 높이려는 의도인 듯

    북한이 지난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각종 매체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핵 보유국’이란 단어를 집중 사용하며 핵 보유국 지위 굳히기에 나섰다. 북한 매체는 3차 핵실험 직후인 13일부터 핵 보유국 표현을 늘리기 시작해 15일부터는 매일 하루 10건 정도 사용했다. 심지어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5일 제14차 아시아마라톤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 김금옥 선수의 경기 장면을 “핵 보유국의 기상이라는 비상한 각오를 안고 시간이 흐를수록 속도를 높여 나갔다”고 묘사했고, 조선중앙방송은 정월 대보름 소식을 전하며 “(주민들이) 핵 보유국 위용을 만천하에 과시한 긍지를 안고 정월 대보름을 즐겁게 보냈다”고 소개했다. 노동신문은 21일 한국 매체 보도를 인용하면서도 “최근 남조선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단호한 정치적 결단’ ‘북은 실질적 핵 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글과 견해를 계속 발표하고 있다”며 한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다.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 굳히기에 나선 것은 국제사회와의 핵 협상에 대비해 대외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 전후로도 핵 보유국 표현을 사용해 왔지만 이번처럼 전방위로 집중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6일 “1, 2차 핵실험 때보다 완성된 기술을 근거로 핵 보유국 지위를 명확히 해 협상력을 더욱 높여 나가는 방향으로 대내외 정책 수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남 군사적 위협도 점점 수위가 오르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근 포사격 훈련을 지도하며 “연평도의 적들이 무모한 포탄을 감히 날렸다가 인민군 포병들이 퍼붓는 명중 포탄에 호되게 얻어맞았다”고 연평도 포격 사건을 언급하는 등 남측을 자극했다. 김 제1위원장은 21일부터 연일 군부대를 찾는 등 군부대 시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군 대비 태세를 독려하는 한편 3차 핵실험 직후 예고한 ‘물리적 대응’을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DB를 열다] 1966년 조선의 마지막 왕비 윤씨 장례 행렬

    [DB를 열다] 1966년 조선의 마지막 왕비 윤씨 장례 행렬

    조선시대의 마지막 왕비는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계비(繼妃)다. 순종은 순명효황후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으나 즉위하기 전인 1904년 사망했다. 윤비는 윤택영의 딸로 1906년 13세에 동궁의 계비로 책봉되었다. 이듬해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다. 아버지 윤씨는 친일 인사였는데 윤비는 그렇지 않았다. 1910년 창덕궁에서 일제가 한일병합조약을 맺으려고 순종을 협박하자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던 윤비는 “덕수궁 상왕(고종)께 여쭈어야 한다”고 귀띔하고는 옥새를 빼앗아 치마 속에 숨기고 버티었다. 그러나 큰아버지에게 옥새를 빼앗기고 말았다. 나라가 패망하고 순종마저 후사 없이 죽자 윤비는 대비로 불리며 창덕궁에서 지냈다. 윤비의 강직한 성품에 얽힌 일화가 많다. 1950년 전쟁이 터졌지만 윤비는 피란을 가지 않고 창덕궁을 지켰는데 인민군 기마병이 들이닥치자 “이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지키는 곳이다”라며 호통을 쳐서 내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듬해 전세가 급박해지자 부산으로 피란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휴전 후 윤비는 창덕궁으로 환궁하려 했지만, 이승만 정부가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환궁을 방해해 전세방을 전전하다 정릉의 인수제에서 거처했다. 1960년 윤비는 창덕궁 낙선재로 환궁하는데 구황실 사무총국장을 지낸 당시 공보처장 오재경의 도움이 컸다. 윤비는 만년에 영어 공부를 하고 책과 신문을 읽으며 소일했다. 불교에 귀의해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배운 영어 실력은 타임지를 읽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윤비는 1966년 2월 3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윤비의 임종은 그녀를 평생 보필한 김명길 상궁이 지켰다. 유서에는 김 상궁을 위해 남은 재산을 써 달라는 유언이 적혀 있었다. 윤비의 장례식이 있던 날, 창덕궁에서 종로 3가, 동대문, 신설동을 거쳐 순종과 합장될 경기 남양주 금곡 유릉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시민이 나와 조선 마지막 중전의 모습을 지켜봤다. 사진은 단성사 앞을 지나 종로 3가로 빠져나오는 장례 행렬의 모습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한국군 주도 첫 한·미 키리졸브 훈련

    한·미 연합군의 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연례적으로 실시하던 ‘키 리졸브’ 훈련이 처음으로 한·미연합사 대신 우리 군 합동참모본부의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이는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해 우리 군의 주도적 전쟁수행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다음 달 11일부터 21일까지 2주간에 걸쳐 한국군 1만여명과 미군 3500여명이 참여하는 ‘2013년 키 리졸브 연습’을 실시한다고 21일 밝혔다. 한·미 연합군의 작전 수행능력 향상과 미군 증원전력을 한반도에 원활하게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이 훈련은 야전에서의 대규모 기동훈련이 아닌 지휘소훈련(CPX)의 성격을 띤다. 합참은 키 리졸브를 뒷받침하는 한·미연합사 주도의 야외기동훈련 ‘독수리 연습’도 다음 달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이뤄진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2009년에도 당시 2012년으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을 염두에 두고 우리 군 주도로 키 리졸브 연습을 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훈련 계획까지 합참이 수립하는 등 전 과정에 걸쳐 우리의 능력이 발휘됐다”면서 “실질적으로 한국군이 주도하는 첫 연합 훈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전쟁 수행 계획을 세워 전반적인 것을 시행해 보는 것 자체가 전쟁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특히 이번 훈련은 사전에 계획된 연례행사로 지난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긴장된 한반도 정세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북한에 무력시위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군 당국은 지난 20일 북한의 스커드·노동미사일 등에 대비한 유도탄 방어연습을 지난 1일 실시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예민한 군사 현안인 미사일 방어 훈련을 뒤늦게 공개한 것은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소속 323군부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김 제1위원장이 핵실험 이후 1주일여 만에 첫 군 시찰에 나선 것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한 강경대응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北, 軍 장성에 달러 현금카드 ‘특혜’

    北, 軍 장성에 달러 현금카드 ‘특혜’

    북한이 지난해부터 군 장성들에게 미국 달러로 결제되는 현금 카드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군 대장의 카드 한도는 매달 1200달러로 파악됐다. 2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장성들의 생활을 보장하라는 지시를 내려 지난해부터 (장성들이) 매달 미화로 결제되는 전자카드를 지급받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군 대장이 매달 미화 1200달러, 상장이 1000달러, 중장이 700달러를 받는 등 계급에 따라 차등 지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북한 장성뿐 아니라 인민군 정찰총국 산하 대남침투 요원과 전자전 부대(해킹 전담) 고급 군관들에게도 미화 카드가 일부 지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에 쓰이는 달러 공급 주체가 마약과 무기, 천연자원 등의 거래를 통해 외화를 벌어 온 노동당 39호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군 장성들은 이 카드를 평양의 외화상점과 식당에서 사용하며, 청진과 함흥 등 지방 휴양소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장성들에게 고급 주택과 전용차를 제공하고 매일 특별 배급을 하는 등의 혜택을 줬으나 달러 공급은 김정은 체제 이후 처음 도입된 제도다. 이는 군부의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특혜 조치로 보인다. 현재 북한에서는 조선무역은행이 발급하는 ‘나래카드’와 고려은행의 ‘고려카드’ 두 종류의 카드가 사용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총정치국이 軍 통제…쿠데타 어렵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부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군을 통제하는 노동당의 집행기구 ‘인민군 총정치국’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한 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총정치국을 통해 군을 강력히 통제하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의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19일 ‘북한군 총정치국의 위상 및 역할과 권력승계 문제’ 논문을 통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은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 제1위원장에 이르는 3대 권력세습 과정에서 수령의 후계자가 군을 장악하는 핵심적 수단”이었다면서 이같이 발표했다. 국가에 대한 당의 우위를 기본 노선으로 채택한 사회주의체제에서는 기본적으로 군부도 당의 통제를 받는다. 정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북한은 인민군 창군 당시 군 간부들이 모두 노동당원이었기에 굳이 군대 내에 별도의 강력한 당 조직 설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군의 규율이 무너진 것을 목격한 당 지도부는 군에 총정치국을 설치하고 통제를 강화한다. 이후 1950년대 김일성 주석의 권력강화 과정을 거치며 총정치국은 작전을 관할하는 총참모부나 군수 등을 총괄하는 인민무력부 등 군부 내 경쟁 기관보다 우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2009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군 총정치국의 김정각 당시 제1부국장과 김원홍 당시 조직부국장은 김 제1위원장의 군부 엘리트 장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민간인 출신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해 4월부터 급부상한 배경에는 그가 김 국방위원장 사후 김 제1위원장을 보좌하도록 주도면밀하게 키워진 인물임을 시사한다. 최 총정치국장은 현재 김 제1위원장에 대한 군부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핵심 실세로 통하고 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지도부가 총정치국을 통해 군을 조직적·사상적으로 확고히 통제해 심각한 경제난에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우리 정부는 쿠데타로 인한 북한의 급변 사태보다는 북한군의 군사력 현대화가 가져올 위험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동공은 빛을 잃었고 귀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만이 숨이 붙어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1968년 6월 16일, 새벽 5시쯤.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김수영(왼쪽) 시인은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無)의 세계에 들었다. 선불로 받은 번역료로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고 귀가하던 시인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받혀 풀잎처럼 쓰러졌다.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김현경(오른쪽·86)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지난 두 달간 구술로 김수영의 삶을 풀어놨다. 원고는 조만간 자전적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 펴냄)으로 빛을 보게 된다. 에세이에는 생전 김수영이 탈고했던 시구 속에 숨은 창작 배경과 일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김수영은 평소 집에서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술만 취하면 무궁무진한 애교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는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 레퍼토리는 ‘수일과 순애’였다. 하지만 비위가 거슬려 술을 마신 날이면 주사가 심했다. 이혼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열흘간 별거까지 했다.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으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 ‘이혼 취소’는 이런 부부의 삶을 말해 준다. 몸도 돌보지 않고 폭주를 하는 날이면 시인은 자유당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곤 했다. 4·19 직후 부정 선거에 대한 칼럼 청탁을 받고 동아일보에 원고를 보냈는데, 지면에는 김수영 이름 석자만 있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김수영은 “멋있잖아, 이런 게 저항이지”라며 오히려 신이 나 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이종구(1990년 사망)로, 광산을 경영하던 김 여사 부친의 첩의 남동생이었다. 이종구와 김수영은 선린상고 2년 선후배로 일본 도쿄에서 함께 유학한 사이였다. 김 여사는 6살 차이인 김 시인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고, 이후 일본에 유학 중이던 시인과 편지로 사랑을 나눴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귀국한 김수영은 ‘마이 솔 이즈 다크’란 한마디 영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1949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이번엔 6·25전쟁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김 여사는 부산 피란살이 기간 동안 이종구와 동거한 뒤 김수영과 재결합했다. 이렇게 정착한 곳이 서울 성북동집. 김 여사는 “원래 거부 백낙승의 별장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세를 얻었다”면서 “정원 한쪽에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절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 ‘폭포’를 썼다”고 회고했다. 1968년 발표한 절명시 ‘풀’은 그해 5월 29일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무성한 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 김수영의 삶 속엔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다. 1950년 8월 인민군에 끌려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김수영은 총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8남매 중 가장 총명했던 넷째 수경은 의용군에 자원 입대했고, 셋째 수강은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다 납북됐다. 여동생 김수연씨 내외도 1969년 KAL기 납북 때 북쪽으로 끌려갔다. 김 여사는 현재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살며 김수영의 육필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 ‘김수영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北, MB 정권교체 발언에 “최후 발악” 발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정권교체’(레짐 체인지)를 언급한 데 대해 16일 “민족반역자의 최후 발악”이라고 맹비난했다. 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행위에 대처한 자위적 조치인 제3차 핵실험 앞에 어떻게나 얼이 나갔는지 시간이 갈수록 넋두리”라고 비난하며 ‘만고역적’, ‘대결병자’ 등 각종 욕설을 동원해 이 대통령을 헐뜯었다. 또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를 동결상태에 둘 각오가 돼 있다’는 집권 초기의 악담 그대로 지난 수년간 민족공동의 이념과 성과물을 전면 부정하고 체계적으로 말아먹었다”며 한반도에 엄중한 사태가 조성된 것은 미국과 이 대통령의 ‘반공화국 대결책동’ 때문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민원로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핵을 포기시킬 수 없다. 정권이 바뀌고 무너지기 전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며 북한의 ‘정권교체’ 필요성을 거론했다. 한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는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1회 생일인 ‘광명성절’을 맞아 당·군 주요인사들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제1위원장과 리설주는 인민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노농적위군 명예위병대 대장의 영접보고를 받은 뒤 김 위원장의 시신이 있는 영생홀과 훈장보존실, 열차 보존실 등을 둘러봤다.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을 맞아 남편과 함께 모란봉악단 신년경축공연을 관람한 이후 40여일 만에 등장한 리설주는 지난번보다 살이 빠진 듯한 모습이어서 출산설에 더욱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이날 “참가자들은 장군님을 천년만년 길이길이 받들어 모시고 최고사령관 동지의 영도 따라 백두의 행군길을 남해 끝까지 이어가며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기어이 완성해 나갈 불타는 결의를 다짐했다”며 행사 분위기를 전했다. 통신은 또 “제3차 지하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그 어떤 제재도 압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군조선”, “무진막강한 핵 억제력을 가진 천하무적의 백두산혁명강군이 있기에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부각시키는 표현도 잇따라 사용했다. 김성수 기자 sskim@seoul.co.kr
  • 핵실험 앞둔 北, 군·당 노선 갈등?

    민간인 출신인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차수에서 대장으로 계급이 강등된 지 2개월 만에 다시 차수 계급으로 오른 것으로 확인돼 핵실험을 앞둔 북한 내부에서 군과 노동당의 노선 갈등이 진행 중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 조선중앙TV는 5일 인민무력부 보고회 소식을 전하며 차수 계급장을 단 최룡해의 모습을 방영했다. 최룡해는 2010년 9월 당시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았고 지난해 4월 차수로 승진하는 등 군부 실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1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최룡해는 1계급 아래인 인민군 대장으로 소개됐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앞두고 군부에 힘을 실어 주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6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위신을 회복한 만큼 사기 차원에서 고려됐을 수 있다”면서도 “최룡해가 정통 군 출신은 아니므로 군부에 힘을 실어 준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가 강화되는 일련의 흐름이나 최룡해가 북한의 2인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계열인 점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룡해가 군에서 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므로 군에 대한 당의 영도를 확립하는 움직임과 장성택의 위상 등이 조기 복귀에 영향를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김정은이 그의 계급을 높였다 낮췄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그가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며 북한 내부의 노선 갈등이 상존함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北 핵실험 임박 긴박한 한반도] ‘은하 3호 로켓 아닌 미사일’ 北 간접 시인

    북한이 지난해 12월에 발사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와 비슷한 기체를 탄도미사일 ‘화성 13호’로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그동안 은하 3호를 운반 로켓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장거리 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아사히신문은 4일 익명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지난해 4월 평양에 개관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 ‘전략로켓관’이라는 돔형 전시실을 개설하고 이곳에 각종 미사일을 전시했다고 전했다. 중심부에는 ‘화성 13호’로 적은 기체의 실물을 전시해 놓았고, 안내원은 이 기체의 지름이 2.4m이고 길이는 26m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4월과 12월에 발사한 은하 3호와 비슷하다. 북한이 지난해 4월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은하 3호의 크기는 지름 2.4m, 길이 30m, 중량 91t이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3호의 2호기를 운반 로켓인 은하 3호에 실어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韓 밀착 감시·美 핵잠 입항·北 입대 종용… 긴장의 한반도

    韓 밀착 감시·美 핵잠 입항·北 입대 종용… 긴장의 한반도

    한·미 군 당국이 북한의 3차 핵실험 징후에 맞춰 미군 핵추진 잠수함 등의 한반도 입항을 공개하는 ‘무력시위’를 벌임에 따라 한·미·중 등 국제사회의 핵실험 저지 압박도 본격화되고 있다. 군 당국은 1일 북한이 핵실험 전후로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이를 요격할 전력 태세를 갖추는 등 군사적 조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정보당국은 북한이 첩보 위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 입구에 가림막을 설치한 것이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의 기습 발사와 같이 허를 찌르는 위장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군 당국이 내주 초 동해안에서의 훈련을 앞둔 미 해군 전력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자 1주일 후 우리 군의 현무 미사일 시험 발사 장면을 공개하며 북한에 경고한 사실과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특히 부산에 입항한 이지스급 순양함(9800t급)인 샤일로함은 미 7함대의 주력 순양함으로 탄도미사일 요격용 SM3 미사일을 탑재해 북한이 핵실험과 동시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언제든지 요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잠수함이 한반도 해상에서 훈련한다는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근해에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북한에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미국은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스텔스기와 B2전략폭격기 2대를 괌에 배치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B2폭격기는 유사시 북한 핵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특히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도 곧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최근 북한이 도발 위협을 지속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에 대한 도전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핵개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일 수 있기에 안이하게 대처하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해 이번 실험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에 진전을 가져올 수 있고 1, 2차 핵실험 당시와는 다른 엄중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미 하원 의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 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과 북한의 추가 도발에 단호한 대처를 천명했다. 비록 현 정부에서 핵 실험이 이뤄지더라도 차기 정부에서도 이를 그대로 좌시할 수 없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은 로이스 위원장에게 “국군포로의 조기 송환이 중요한 과제이며 북한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평화와 번영의 토대가 한·미 동맹”이라고 밝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공조를 강조했다. 한편 북한도 청년들에게 군 입대를 종용하는 등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달 31일 “각급 학교 학생들의 입대 탄원 모임이 진행됐다”면서 “인민군 입대를 탄원하는 청년들이 시간이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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