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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대화 기조 강조 속 유엔서 “일방적 핵포기 불가” 발언 왜

    ‘대화? 핵포기 불가?’ 북한이 강온 양면의 목소리를 내며 외교 공세를 펴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대화 기조를 강조한 가운데 유엔 무대에서는 일방적 핵포기 불가를 재차 공언하는 강경 기조를 드러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23일 6·25 전쟁 ‘도발자’, 한반도 핵 위기의 ‘진범’이라고 미국을 맹비난했다.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발언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 제1부상으로 이어지는 대화공세 속에서도 북한의 근본적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재확인시켰다. 신 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본부 기자회견에서 밝힌 핵심 줄기는 ▲미국의 적대적 위협이 계속되는 한 핵포기 불가 ▲북·미 대화를 통한 평화협정 논의 등이다. 속내는 비핵화 의제의 확장에 있다. 북한만의 핵포기가 아닌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정책까지 포괄해 논의하자는 기존 주장의 되풀이인 셈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적시된 한반도 비핵화의 북한식 논리를 또 꺼내든 셈이다. 미·중·러를 포괄하는 ‘핵군축 회담’을 하자는 것으로 북한에 집중되는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을 희석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신 대사는 “급박한 현안은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개심”이라며 “한반도 비핵화는 최종 지향점이지만 우리가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해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19일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가 미 워싱턴에서 제시한 ‘2·29 합의보다 더 강한’ 비핵화 대화 조건을 제시한 데 대한 노골적 반발로도 읽힌다.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협정 전환, 주한미군 철수 및 유엔군사령부 해체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기존 인식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태도다. 신 대사의 발언으로 대화 국면은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핵보유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 입장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재확인되면서 협상 동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중국이 오는 27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타낼 비핵화 수위가 향후 6자회담 재개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신 대사의 입을 통해 “남측이 남북대화의 조건을 철회하지 않는 한 대화는 재개될 수 없다”고 공언한 만큼 남북대화 역시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대화 공세에 속지 말아야”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잇따라 중국을 찾아 대화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중국 관영 언론이 북의 대화 공세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관영인 환구시보는 20일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중앙당교 장롄구이(張璉?) 교수의 칼럼을 통해 북이 2009년 2차 핵실험 직후 ‘핵 개발’ 및 ‘관련국 간 대화’ 병행을 통해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일명 ‘플랜C’ 전략을 발표한 사실을 적시한 뒤 한반도에 찾아온 대화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보는 일부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칼럼에서 “핵 개발 및 관련국과의 대화 외교 병행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어서 북이 한동안 핵 개발에 매진한 뒤 다시 관계개선 운운하며 대화카드를 꺼내는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중국 외교부는 자체 사이트를 통해 왕이(王毅) 외교부장(장관급)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전화 통화를 갖고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 나타난 일부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변화란 북이 최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를 주장하는 것을 중국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6·25 대한해협 전투 승리 ‘…바다의 전우들’ 펴낸 백두산함 갑판사관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김문이 만난 사람] 6·25 대한해협 전투 승리 ‘…바다의 전우들’ 펴낸 백두산함 갑판사관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때는 1950년 6월 25일 정오. 진해항에 정박 중인 국내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 갑판에는 외출·외박을 나갔던 장병들이 급히 모였다. 최용남 함장은 비장한 모습으로 말했다. “적 인민군대가 오늘 새벽 동해안 옥계, 임원해안으로 쳐들어왔다. 우리는 지금 동해로 출동한다. 적 상륙군을 격멸해야 한다. 각자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자.”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승조원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 전투준비를 한 뒤 오후 3시 진해항을 출항했다. 여기서 잠깐, 백두산함에 대해 잠시 살펴본다. 초창기 해군의 염원은 함포가 장착된 군함을 갖는 것이었으나 빈약한 국가재정으로 군함 구입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해군은 자체적으로 군함 구입자금을 모으기 위해 장병들의 월급에서 5~10%씩 갹출하고 부인회에서 삯바느질, 의복세탁, 수선, 뜨개질로 1만 5000달러를 모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했다. 이 대통령은 해군의 뜻을 높이 사 4만 5000달러를 보태 군함 구입을 주선했다. 결국 1949년 12월 뉴욕 맨해튼 섬 부두에서 정박 중인 고물 함정(2차대전 직후 퇴역)에 태극기를 높이 올리고 마이애미와 파나마 운하를 지나 1950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입항했다. 3인치 포를 장착하는 등 무기정비를 마친 3월 20일 하와이를 떠나 25일 콰잘린 섬에 기항해 연료를 공급받고 괌 섬 아프라 항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형편에 맞춰 3인치 포탄 100발만 장착하고 4월 10일 진해항에 입항했다. 이후 심하게 녹이 슨 배를 진해항에서 한 달 동안 정비했다. 모든 승조원들이 달려들어 시뻘겋게 녹슨 선체를 해머로 털어내고 방부 페인트를 칠한 후 깨끗하게 단장해서 탄생된 것이 백두산함이다. 그렇게 해서 진해항을 떠난 백두산함이 부산항과 울산 앞 방어진 동쪽 3마일 해상에 도착한 것은 1950년 6월 25일 밤 9시 10분쯤이었다. 이때 우현에서 근무 중인 승조원이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견시보고, 우현 45도 수평선 검은 연기 보임.” 항해 당직사관 최영섭 소위는 쌍안경으로 동쪽 수평선을 봤다. 수평선에 검은 연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夏至) 때라 해는 넘어갔으나 시정(視程)은 좋았다. 해상은 흐리고 너울이 일고 있었다. 최 소위는 함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즉각 보고했다. “함장님, 저기 수평선에 검은 연기가 흐르는 것이 보이지요. 그쪽으로 가서 확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함장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백두산함은 당초 목적지인 옥계 방향을 바꿔 15노트 속력으로 수평선을 향해 달렸다. 밤 9시 30분쯤 연기를 뿜으며 남하하는 배가 가까이 들어왔다. 백두산함과 비슷한 형태의 괴선박은 백두산함이 접근하자 항로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계속 남하했다. 최 소위는 부하들에게 국제통신부를 통해 국적, 출항지, 목적지를 문의하는 신호 부호를 찾도록 했다. 이어 발광신호를 보내게 했다. 최 함장은 괴선박의 예사롭지 않은 행태를 보고 적 인민군 함정이 아닌가 의심했다. 최 소위는 괴선박의 발견과 추적, 여러 동태 등을 해군본부에 타전했다. 이어 최 소위는 신호사에게 “정지하라,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는 국제부호를 찾아놓으라고 지시한 뒤 공격적 탐색기동을 개시했다. 그러자 장교들 사이에 “무장한 군대가 갑판에 가득 깔려 있습니다. 아, 함수 갑판에 대포가 있습니다. 양현에 기관포도 있습니다”라는 외침이 잇따랐다. 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 괴선박과 거리를 좁히자 장교들은 다시 “주갑판, 후갑판, 중갑판에 있는 병력만 500명은 돼 보입니다. 선실과 선창에 타고 있는 군대는 보이지 않지만 모두 합치면 700~800명쯤 되겠습니다. 적함이 틀림없습니다. 공격합시다”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하던 최 함장도 “저 배는 대포와 기관포로 무장하고 1000명 가까운 무장 육전대(해병대)를 태우고 있다. 저 배의 항로로 보아 부산을 점령하려고 내려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전투에 돌입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라고 명령했다. 이어 함장은 다시 한번 장교들의 얼굴을 보면서 냉수로 건배를 했다. “살아서 마지막 마시는 대한민국 물이다”고 결의를 다졌다. 최 소위는 건배를 마치고 곧바로 함수 사병 침실로 가서 포술갑판 부대를 집합시킨 뒤 전투에 임할 것을 지시했다. 26일 밤 12시 30분, 함장의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3인치 포탄 첫 발이 포성을 울리며 적함으로 날아갔다. 최 소위의 조마조마하던 가슴이 일시에 풀렸다. 백두산함은 인수 후 포탄이 아까워 모의탄으로만 훈련했지 실탄사격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함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응사해 왔다. 백두산함은 18노트 최고 속력으로 기동하며 주포와 기관총으로 공격했다. 적함도 주포와 기관포로 맹렬히 반격해 왔다. 치열한 포격전이 20여분간 계속됐다. 백두산함은 최고 속력으로 적함을 향해 돌진하면서 포탄을 계속 쐈다. 이윽고 적 함교에 포탄이 명중했다. 백두산함에는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 함은 검붉은 연기에 휩싸여 좌현으로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때 적 포탄 한 발이 백두산함 조타실 외판을 때렸다. 조타사 김창학 등이 복부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또 적 포탄 한 발이 주포 갑판에 떨어져 파편이 튀었다. 장전수 전병익 등이 가슴에 파편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주포 전화수 김춘배 등이 다리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부상병을 후갑판 아래 사병식당으로 이송해 응급처치하고 3인치 포 수리에 착수했다. 이때가 6월 26일 오전 1시 20분쯤이었다. 백두산함은 약 4시간에 걸친 적함 잔해물 수색을 끝내고 아침 6시쯤 부상자 치료를 위해 포항기지로 향했다. 이상은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대한해협전투’에 대한 내용이다. 이 해상 전투는 전사(戰史)에는 기록돼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한국전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3·8선 돌파하고 육상으로 남침한 것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에 의하면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육상은 물론 남한의 부산과 진해항을 점령해 유엔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치밀한 계획을 짰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문서기록보관청에도 이러한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대한해협 전투에서 백두산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백두산함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던 최영섭씨를 지난 13일 경기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위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기 위해 ‘6·25 바다의 전우들’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책을 펴냈다. 당시 부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대한해협전투’는 물론 서해 봉쇄작전, 인천상륙작전, 함경도 동해진격작전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다의 전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적함을 침몰시키고 포항으로 항진할 때 함미 사병식당에 있는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군의관 김인현 중위는 심한 배멀미로 목에 깡통을 달고 구역질을 하면서도 출혈이 심한 전병익, 김창학에게 응급수술을 했습니다. 두 중상자는 그 와중에도 ‘적함이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격침했다. 살아야 해’라고 했더니 두 중상자의 눈빛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러더니 ‘대한민국 만세’라면서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지요.” 그는 한국전쟁을 회고하면서 “육지에서 불이 붙었으나 바다에서 진화해 갔다. 6·25 그날 대한해협 전투 승첩으로 부산항을 지켜냈고 대한민국을 돕는 유엔군과 무기, 탄약, 장비 등 병참 물자가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전쟁과 미국 해군’이라는 책자에도 ‘전쟁의 가장 중요한 해상 첫 전투로, 백두산함이 1000t급 북한의 무장 수송선을 수장시켜 부산항을 통해 증원 병력과 물자가 도착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1961년 4월 ‘대한해협 해전 승전’이라고 공표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그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최씨는 해군사관학교 3기 출신으로 나중에 백두산함 함장, 최초의 구축함인 충무함 함장, 51전대 사령관 등을 거쳐 1968년 해군 대령으로 전역했다. 최씨는 매년 6월 25일 당시 대한해협전투를 겪은 전우들(당시 70명이었으나 현재 생존한 15명)과 같이 부산에서 만나 그날을 되새기고 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 공부할 당시 조국의 군복을 입고 바다를 지키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됐다. 이번에 펴낸 ‘6·25 바다의 전우들’을 쓰기 위해 26개월 동안 자료수집을 다시 했고 1년 동안 연필로 직접 썼다. 그는 자칭 ‘통합군사령관’이라고 한다. 왜냐 하면 첫째 아들은 해군장교, 둘째와 넷째는 육군장교, 셋째는 공군장교, 손자는 해병대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을 맡고 있다. 올해 85세의 고령인데도 열심히 강의를 다니면서 “육지 자원은 더 이상 없다. 우리나라는 이제 바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하늘로 돌아간 전우들이여, 그리고 머지않아 사라져 갈 전우들이여, 조국과 6·25의 바다는 그대들의 피끓는 조국애를 길이길이 기억하리라”고 말한다. 노병의 눈가가 잠시 적셔진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은 1928년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시립 제2중학교(우에노)를 졸업했다. 광복 이후 남한으로 와 해군사관학교 3기로 1950년 졸업했다. 또 단국대학교 법정학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육군대학, 미국 국방산업대학원 등을 나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위 계급장을 달고 백두산함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로 해상전투에 참전했다. 주요 참전 경력은 6월 25일 대한해협전투를 비롯해 인천 철수작전, 여수 철수작전, 진동리 정찰작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군산 양동작전,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원산·함흥·성진 동해진격작전, 제2차 인천상륙작전 등이다. 해상 근무 시에는 백두산함 함장, 충무함 함장, 51전대 사령관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을 기록한 ‘고하도’ 등 3권이 있다. 슬하에 아들 넷을 두었으며 모두 육·해·공군 장교를 지냈다. 현재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으로 있다. 백두산함에 3인치 포를 설치하는 모습.
  • 반기문 총장 방중… “한반도 평화 위한 中 역할 기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18~21일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 반 총장의 방중은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이다. 특히 오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이 예정돼 있어, 반 총장과 시 주석이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주목된다. 반 총장은 17일(현지시간)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방문에 대해 “새 지도부와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이번 방문에서 한반도 문제와 시리아, 말리, 콩고민주공화국 상황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은 특히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안정 유지, 남북 간 대화 분위기 조성에 중국이 지속적으로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시 주석이 김정은 북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특사로 최근 중국을 방문했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만난 것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반 총장은 “이런 노력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화합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 총장은 “시 주석을 포함해 새 지도부를 만나 중국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더 이바지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방문 때 중국이 커진 국력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 줄 것도 요청할 계획이다. 그는 “중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지속 가능한 개발 문제 등에서 더 많은 공헌을 해 주기를 바란다”며 “유엔과 중국이 더 크고 강한 동반적 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북·미 고위급회담 제안] 시진핑·푸틴, 북핵 등 한반도 현안 논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지난 15일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이 16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와 관련,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불인정 방침을 설명하고 러시아도 같은 입장을 취해 줄 것을 요청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시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 회동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핵무기 개발도 용인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표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앞서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팡펑후이(房峰輝) 중국군 총참모장도 지난 4일 중국을 방문한 정승조 합참의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무장화에 절대 반대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오는 27일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중 양국은 현재 비핵화 원칙을 비중 있게 명기하는 방향으로 공동성명 문안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중국 언론들은 북한 측 발표를 인용, 김정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생일 축전을 보내 북·중 우의를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축전에서 “북한과 중국의 전통 우의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조선노동당과 조선 인민의 흔들림 없는 의지”라며 “양국 간 우의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 북·미 고위급회담 제안] 전방위 대화공세로 고립 탈피… 한·미·중 북핵 공조 흔들기 전략

    [北, 북·미 고위급회담 제안] 전방위 대화공세로 고립 탈피… 한·미·중 북핵 공조 흔들기 전략

    남북 당국회담이 결렬된 지 5일 만에 북한이 북·미대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14일 일본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방중에 이은 ‘전방위적 대화 공세’의 연장선에 있다. 비록 남북 당국회담은 무산됐지만, 국제사회 공조에 따른 고립국면에서 벗어나려고 북한 수뇌부가 전략을 수정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북한이 제안한 고위급회담 의제 가운데 ‘군사적 긴장완화’나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등은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핵 없는 세계건설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미국이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온 ‘선(先) 비핵화 조치’ ‘진지하고 의미 있는 변화’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체코 프라하 연설에서 ‘핵 없는 세계’란 표현을 빌려 온 북한이 과거 핵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더는 거론하지 말고, 현재 핵 능력을 인정받은 채 이를 토대로 협상을 해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미국과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북한의 북·미대화 제의는 중국과 한국에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미국의 수용거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중국에 대한 ‘보여주기용’일 수 있다는 의미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닌 만큼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칠한 대화제의”라고 평가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한·미·중의 북핵 공조를 흔드는 동시에 남북 당국회담 무산 이후 언제든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북한이 대화를 제의한 상대가 미국인 만큼 우리가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미국정부가 북한에 대한 대응을 지켜볼 뿐이지 청와대가 뭐라고 말하겠느냐”고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북·미대화에 앞서 북한의 실질적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남북대화 제안(조국평화통일위 특별담화)보다 ‘격’을 높여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 형식을 취한데다 김정은 체제에서 ‘비핵화’ 문제를 사실상 처음 언급한 데서 적극적인 대화 의지로 읽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이 의제로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과 관련, 행간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1년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한 이후 비핵화 표현 자체를 꺼리던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변화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날 담화에서 “비핵화는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라며 처음으로 ‘김정일 유훈’임을 강조해 관심을 끌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과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채 나온 일방적인 대화 제안일 것”이라면서도 “‘비핵화는 수령과 장군의 유훈’ 등을 언급한 것을 보면 최근 핵보유 강화 기조와 달리 대화를 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데스크 시각] 베이징, 랜초미라지, 판문점… 그리고 서울, 평양/박홍환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베이징, 랜초미라지, 판문점… 그리고 서울, 평양/박홍환 정치부장

    중국 베이징에서 미세하게 포착된 한반도 정세의 변화 징후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다. 지난달 말 베이징 북·중 접촉, 그리고 7~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 휴양지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에 이어 9일 판문점 남북 접촉을 거치면서 불과 20일도 안 되는 사이에 한반도 정세는 대치 국면에서 대화 모드로 급격히 바뀌었다. 남과 북의 실무 당국자가 활짝 웃으며 악수를 주고받는 모습은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세계의 ‘분쟁 리포터’들이 서울에 몰려들어 당장이라도 로켓포가 떨어질 듯 호들갑을 떨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그 어떤 드라마에도 이 같은 극적인 반전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반전 시나리오’는 이미 우리 주변에 준비돼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초 가장 큰 관심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 한반도 관련국들에 예외 없이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 가져올 한반도 정세의 변화 가능성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밀접한 스테이크홀더(이해당사자)인 남·북·미·중 4개국에 의해 만들어질 ‘새 판’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기억이 새롭다. 앙시앵레짐(옛 체제)과의 작별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리더십은 누구라도 자신만의 독자적 색깔을 과시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기도 했다. 물론 당시 한반도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에 착수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핵무기를 거론하며 더 큰 위협을 장담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거침없었다. 변화에 대한 기대는 신기루처럼 원래부터 허상인 듯했다. 하지만 모르고 있던 사이에 변화의 싹은 이미 자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권력을 완전히 이양받은 3월 이후 대북 정책의 ‘출구전략’을 모색했다. 특사 파견 요청을 무시하면서 북한을 애태우더니 관영 매체를 동원해 북한의 무모함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는 ‘북핵 공조’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를 구축하려는 시 주석으로서는 미국과의 대결보다는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달 22일 베이징에 등장한 김 제1위원장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표정은 기대에 차 있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떠들썩하게 최룡해의 방중을 보도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지방출장에서 돌아온 시 주석을 어렵게 면담한 최룡해는 밤 비행기에 노구를 싣고 평양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결국 이 지점이 한반도 정세 변화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랜초미라지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고립무원’ 상황을 눈치챈 북한은 결국 대화 테이블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베이징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은 저 멀리 미국 랜초미라지를 돌아 판문점까지 도달했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우리 몫이다. 그 바람이 12~13일 서울을 거쳐 평양까지 당도할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큰 날개를 펴야 할 때이다. stinger@seoul.co.kr
  • [미·중 정상회담 이후] 정상회담 평가 전문가 인터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정상회담 평가 전문가 인터뷰

    지난 7~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이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 역사상 최고의 파격적 형식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데 두 정상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합의를 이뤘다”는 획기적 회담 결과는 두 강대국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데탕트(긴장완화) 국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이번 회담의 형식과 결과가 새로운 미·중관계의 서막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로 인해 세계질서가 다시 쓰여지는 것인지에 대해 세계는 지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중 양국의 전문가들로부터 이번 회담의 성과와 향후 양국 관계 전망을 들어봤다. ■앨런 롬버그 美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 “美·中정상 새 관계 구축 성공적” “두 정상 간 새로운 관계 구축이 목표였다고 본다면 이번 회담은 성공적이다.” 앨런 롬버그 미국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은 9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날 끝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롬버그는 국무부 정책기획국 부국장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국 분석관 등을 역임한 미국 내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다.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나. -양국이 당초 설정한 회담의 목표는 두 정상 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협력’을 말했고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회담 결과는 앞으로 양국 관계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줄 것이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의 의미를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주석 간 만남에 견줬는데. -양국 관계가 의미심장하고 진지하게 변화할지, 전략적 긴장관계가 완화될지 등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백악관은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8시간이나 만나는 등의 파격이 전례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점에는 동의한다. 두 정상이 이번 회담의 형식에 의기투합한 것은 옳은 판단이다. 타이밍상 오는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는 것보다 시기를 앞당긴 건 잘한 일이다. 수도에서의 퍼레이드나 공식 만찬 등 격식을 갖춘 회담에 비해 이런 비공식 회담은 이점이 많다. 원고 없이 오랜 시간 대화하다 보면 진정한 속내를 교환할 수 있다. →두 정상의 친분이 두터워진다 하더라도 시 주석의 경우 중국 특유의 집단 지도체제 때문에 재량권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색이 ‘넘버원 권력’인데, 이런 식의 회담이 아예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시 주석이 이런 파격적인 형식의 회담을 수용한 것 자체가 그의 파워를 보여 준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시 주석은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현안을 다루는 데는 조심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정상도 마찬가지다. 시 주석이 귀국한 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논의하게 되는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각종 현안에 대해 내각은 물론 의회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시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보나. -후 전 주석에 비해 시 주석이 더 개방적인 성격인 것 같다. 대화를 피하지 않고 원고 없이 말하는 경우도 더 많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국가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적인 톤은 긍정적인 게 틀림없다. 물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국이 강한 어조로 미래의 협력을 말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중국의 대북 입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2010년 북한의 도발(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 북한을 감싸고 돈 것과 비교하면 최근의 자세는 협조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붕괴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본다. →최근 재개된 남북대화를 미·중은 지지할까. -그렇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모든 나라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주의깊게 평가하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대화 테이블에 올린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비핵화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화 기류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북한이 확실하게 대화 기조로 돌아선 것으로 보이나. -단기간 내 도발은 안 할 것이다. 지금은 도발하면 중국으로부터 ‘징계’와 불이익을 받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대화 기조로 돌아섰을까.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전 대화를 재개하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진찬룽 中인민대학교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中의 변화는 北태도 수정 전략” “중국은 제3자와 북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이번 정상 회동에서 보듯 많이 달라졌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북핵 불용(不容)’을 함께 천명했고, 오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도 북한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화를 종용하고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를 하기 전까지 중·북 정상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부원장은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중국의 대북 전술 변화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진 부원장은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박사 출신으로 중·미 관계, 중국 국내와 한반도 문제 등에 정통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미 두 정상의 북핵 불용 선언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보나. -북에 근신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더 이상 도발할 경우 아무도 북한과 상대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던졌다. →중국의 대북 태도 변화가 이번 정상회담에 반영됐나. -과거 중국은 북한의 기분을 살피느라 제3자와 북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제는 공공연히 하고 있다. 이는 북에 대한 압력 행사다. →중국은 대북 문제에 있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북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방중 때 ‘대화’는 언급했으나 중국이 요구한 비핵화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 재개는 어렵다.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 미국에 이어 한국과도 만난다. 반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북·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중·한·미가 대북 공조를 이룬다면 북한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고 결국 우리의 요구(비핵화)에 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대북 정책 변화를 말하나. -아니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만 중국은 북한이 정책을 바꾸기만 바랄 뿐 북이 계속 완충지대로 남길 바란다. 다만 북의 태도를 수정하기 위해 전략만 바꿨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중국이 ‘북핵 불용’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란 반응도 있는데. -일관적인 입장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중·미가 뜻을 모아 재천명한 것은 처음이어서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의 성과는. -중·미 양국 지도자가 개인적인 신뢰를 형성하고, 중국이 요구한 새로운 대국 간 관계에 대한 의견 일치를 이뤘다. 북핵·군사교류 개선·사이버 안전·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냈다. 양국 정상 간 상호 방문, 통신, 전화 등의 교류를 강화하고 각 부문 간 소통을 넓혀 양국의 갈등을 관리하기로 했다. 국제 및 지역 문제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와 남중국해 영토분쟁 문제에 있어 미국에 우리의 반대 편에 서지 말아 달라고 말했지만 미국 측 발표로 볼 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동은 누구에게 더 이득인가. -중국이다.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기존에 랜초미라지 서니랜즈로 초청됐던 원수들은 모두 영어권 국가나 미국의 맹방이었다. 이번에 중국을 초청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친구라는 점을 인정하겠다는 메시지다. 특히 오바마는 이번 회담에 대한 미국 엘리트층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시진핑 국가주석을 초청했다. 미 엘리트층은 아직 중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바마가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아메리칸드림과 시 주석이 주창한 ‘차이나드림’은 시 주석의 말처럼 서로 통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반론이 많은데. -차이나드림은 당초 중국 내 좌우 간 이데올로기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적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탄생한 개념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이를 민족주의 회귀로 해석했다. 중국은 이 같은 문제점을 발견한 뒤 다시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면서 국가도 더불어 발전시켜 나간다는 의미로 이 개념을 개선했다.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부분이 포함되면서 아메리칸드림과도 통하는 부분을 갖게 됐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습례정과 인민대회당/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습례정과 인민대회당/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베이징 중심가의 톈안먼(天安門) 서쪽에는 수백년 된 측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중산(中山)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끔 들르던 이곳은 쯔진청(紫禁城)이나 톈안먼 광장처럼 관광객이 크게 붐비지 않아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이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습례정(習禮亭)은 명(明)·청(淸)나라 때 외국 사신 등이 황제를 만나는 예절을 가르치던 조그마한 육각정자다. 조선 사신이 ‘황제만세만세만만세’(皇帝萬歲萬歲萬萬歲)라는 푯말을 세워놓고 9품석 맨 끝에 서서 삼궤구고(三?九叩·무릎을 세번 끓고 머리를 아홉번 조아림)의 예를 익히던 굴욕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에서 지난달 24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푸대접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같은 시기 베이징을 방문하고 돌아온 유기준 의원은 “시 주석을 만나는 시간이 잡히지 않아 (최 특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애를 태우다가 면담 30분 전에 급히 만나러 갔다. 귀국 시점이 몇 번 연기되기도 했다”며 북한의 찬밥론을 제기했다. 그는 북·중 관계에 대해서도 “(방중 기간 동안) 피부로 느낄 만큼 인식이 변하고 있다.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이 북·중은 일반적 국가관계라고 말했다”며 양국의 혈맹관계에 틈새가 벌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부 언론들도 최 특사가 면담한 인사, 시 주석의 지방 시찰, 시 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장면, 면담 후 발표문 일정 등을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 특사 김무성 의원이 환대받은 방중 때와 조목조목 비교하며 그가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찬밥론을 부추겼다. 이런 분석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장거리 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등 북한의 잇단 도발로 양국이 상당히 소원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던 터라 ‘피를 나눈’ 북·중 관계가 사실상 ‘별거’에 들어갔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북한 특사의 환대 여부를 부각시켜 한·중 관계가 북·중 관계보다 비교 우위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데 있다. 한·중 관계는 북·중 관계와는 달리 이해관계에 기반한 결과물이다.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주고(give) 받는(take) 식의 관계’라는 얘기다.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국이 자동차·조선·전자·정보기술(IT) 등 많은 산업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선진 기술을 보유한 덕분이다. 5~10년 후 한·중 간 기술격차가 없어지거나 역전을 당해도 지금과 같이 ‘화창한’ 한·중 관계가 이어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한·중 간에는 핵무기·탈북자 등 대북 문제, 이어도와 대륙붕 경계, 서해 불법조업 등 경제적 문제, 고구려사 등의 역사 왜곡 문제 등 파괴력이 큰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현안들은 언제든 한·중 관계에 먹구름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최 특사에 대한 홀대를 마냥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khkim@seoul.co.kr
  • 美·中 정상회담 최우선 의제는 “북한”

    美·中 정상회담 최우선 의제는 “북한”

    미국 백악관이 7~8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리는 버락 오바마(왼쪽)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오른쪽)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의 최우선 의제로 ‘북한’을 꼽았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4일 전화 기자회견(콘퍼런스콜)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와 관련, “북한, 영유권 분쟁, 인권, 양국 군의 군사활동,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사이버 해킹, 주요 20개국(G20) 활동 등이 될 것”이라며 북한 이슈를 맨 앞에 언급한 뒤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의 시작은 미국과 동맹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안보 문제가 될 것이며, 이 지역 주요 위협의 원인은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이 현재 가장 우려하고 있는 문제는 북한”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미·중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중대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시 주석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지 여부에 대해 “시 주석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우선시한다는 입장을 직접적이고도 강력하게 재확인한 반면 북한은 최룡해의 귀국 직후 비핵화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北, 정전 60주년에 시진핑·리커창 방북 요청… 中, 즉답 안해”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최근 방중 당시 중국 최고 지도부에 정전협정 60주년 기념행사(7월 27일)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전달했지만 중국 측이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9일 ‘복수의 베이징 외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 측이 (정전협정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요청한 최고 지도부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나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가리킨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중국 매체는 최룡해가 방중 시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전했지만, 실제로는 기념행사에 중국 최고 지도부를 참석시켜 한·미·일 등의 압력에 대항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식량 원조도 요청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을 ‘조국해방전쟁 승리’라고 주장하며 해마다 대대적인 기념식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적(한·미)보다 성대하게 60주년을 축하해야 한다”고 지시함에 따라 군사 행진 등 대대적인 행사 계획을 세우고 중국 등에 최고위 관계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또 최룡해가 지난 24일 시 주석이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자 ‘6자회담 등 다양한 형식’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겠다고 응답한 것은 ‘6자회담 틀 속에서 (미국·일본 등과) 양자, 3자 회담을 열자’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중국이 향후 기념식 참석 여부를 지렛대로 삼아 북한에 대화를 압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美·中 “실용적인 협력·신뢰 강화” 교감

    “전례 없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내자.”(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더욱 높은 수준의 협력·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다음 달 7일(현지시간) 열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정상이 양국관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상하자는 발언을 간접 교환했다. 중국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홀대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점에 나온 미·중 정상의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28일 인민일보와 허핑턴포스트 등 미·중 언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미·중 정상회담 준비 차 베이징을 방문한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현재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이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면서 “이전에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계속될 ‘신형 대국관계’의 길을 만들어 내자”고 말했다. 도닐런 보좌관은 시 주석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 사이의 차이와 불일치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 더욱 높은 수준의 협력 및 신뢰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주장한 신형 대국관계는 중국 5세대 지도부의 새로운 대미 전략으로 두 나라가 경쟁보다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도닐런 보좌관이 전한 “더욱 높은 수준의 협력·신뢰 관계를 원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은 시 주석의 신형 대국관계론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 한·일 어민 납치부대 편성”

    북한이 1962~1985년 전담 부대까지 편성해 한국과 일본 어민을 납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8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는 최근 조선인민군 전직 간부로 납치 작전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는 한 탈북자를 조사했다. 이 남성은 북한이 1962~1985년에 원산 부근에 약 120명 규모의 부대를 편성, 한국 어민을 납치하는 ‘대남어민작전’과 일본 어민을 납치하는 ‘대일어민작전’을 벌였다고 증언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원산 부근의 납치 전담 부대에 속해 있었고 1983년쯤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4~6명이 탄 일본 어선을 습격해 30대 남성을 납치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젊은 사람만 데려가고 다른 선원은 배와 함께 수장했다”고 설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는 또 북측이 중형 공작선에 공작원 10여명을 태워 4~10월에 2~5명이 탄 중소형 어선을 상대로 범행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많게는 연 3회, 적게는 2년에 1회 (납치를)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일본 해상보안청(해경)을 인용해 1970~1980년대에 동해에서 행방불명된 일본 어선이 18척에 이르고, 이 남성이 증언한 시점과 비슷한 1980년 10월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30~70대 남성 6명이 탄 어선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납치한 젊은이들을 교육한 뒤 한국과 일본에 보내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선제적 비핵화 없다” 입장 고수

    北 “선제적 비핵화 없다” 입장 고수

    북한이 28일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일방적으로 전쟁 억제력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며 선제적 비핵화 불가 입장을 재천명했다. 북한이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파견해 대화 의사를 표명한 것과 관련, 전날 우리 정부가 ‘비핵화 전제 없이 대화는 없다’는 첫 공식 입장을 밝힌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비핵화 설득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미국은 위협과 도발론을 걷어치워야 한다’는 개인 필명의 글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보장이 실현되려면 미국의 핵 위협과 대북 적대시 정책이 종식돼야 한다”고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쟁 억제력은 국가의 최고이익을 고수하기 위한 위력한 보검이며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믿음직한 방패”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 “세계적인 핵군비 경쟁, 핵무기 전파의 장본인은 다름 아닌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핵 문제부터 범죄시해야 한다”며 핵 군축 협상을 요구했다. 북한의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지난달 미국 의회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의 한국 판매를 승인한 점을 거론하며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中은 일반적 국가관계”

    최근 중국을 방문한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27일 “중국의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우리 방중단에 중국과 북한 관계를 일반적인 국가 관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주 초당파 의원으로 구성된 방중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해 왕 부장과 쑨정차이(孫政才)충칭(重慶)시 당서기 등 중국 측 핵심 인사를 만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혈맹 관계인 북·중 관계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소원해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는 중국의 핵심 인사인 왕 부장이 북·중 관계를 ‘일반적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된다. 지금까지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 간의 ‘당대당 특수관계’로, 일반적인 국가 간의 관계와는 사뭇 달랐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잇단 도발 이후 중국 지도부의 달라진 대북관을 보여주는 언급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유 최고위원은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으나 그를 맞는 (중국의) 태도는 이전과 달랐다”면서 “최룡해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만남도 귀국 직전에야 어렵사리 성사됐고 시 주석은 북한의 비핵화를 계속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中, 김정은 9월이전 訪中 확답 안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오는 9월 이전에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나 중국 측이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제1위원장은 최근 중국을 다녀간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통해 방중 의사를 밝혔으나 중국 측은 이에 대해 “알았다”고만 말했을 뿐 구체적 시기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았다고 미국에 서버를 둔 둬웨이(多維)뉴스가 소식통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북한의 방중 특사는 핵실험 등 일련의 도발 행동에 대해 중국 측에 해명하고 6자회담 재개에 동의를 표시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김 제1위원장 방중을 위한 선발대 임무를 띠고 있었으나 정확한 시기에 대한 답을 받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스융밍(時永明) 연구원은 “그간 (갈등이 있었던) 중·북 관계를 감안하면 이번 방중 특사는 김정은 방중을 위한 선발대라기보다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탐색하기 위한 의도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제1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자신의 방중 희망 의사를 피력한 이상 중국이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김 제1위원장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선언이라는 ‘선물’을 줘야 할 것이라고 둬웨이는 지적했다. 한편 프랑스 르몽드는 최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중국으로서는 성공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향후 행동에 대해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점과 오는 6월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시 주석이 빈손으로 가는 것을 면하게 된 점을 이유로 꼽았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한반도 비핵화’ 靑 외교력 시험대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6월 한 달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변화의 윤곽을 드러내는 중대 시기가 될 전망이다. ‘김정은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으로 대북 정책 조율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조짐이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대북 압박에 공조하던 중국이 ‘대화 모드’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번 특사 파견 기간 중국은 과거 북·중 혈맹의 연장선상이 아닌 ‘북한 길들이기’의 모양새를 연출했지만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란 기존 정책을 유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최 총정치국장 면전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며 북한을 압박한 가운데 중국 관영 환구시보를 비롯한 중국 언론들은 북한이 6자회담 등 대화 참여 의사를 표명한 데 기대감을 표시했다. 중국이 북한 지렛대를 활용한 동북아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은 신중 모드를 견지하고 있다.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내외신 브리핑에서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미 있는 행동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대화와 억지를 두 축으로 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앞세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재개와 북핵 시설의 동결, 궁극적인 폐기 등을 위한 한·미·중 공조 체제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 달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 등은 박 대통령 외교의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관건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보낸 친서의 내용과 다음 달 7~8일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으로 집약된다. 중국이 친서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성의’가 담겨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특사 파견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체면을 살리는, 일종의 선물이라는 성격이 있다”며 “시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며 북·미 대화를 원하는 북한의 의사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국의 힘에 이끌려 북한이 대외적으로나마 대화를 언급한 사실에 주목한다. 다소 가능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 국면 전환을 꾀한다면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을 다시 꺼내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北·中 정상회담 이르면 하반기 성사”

    북한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해 북·중 관계 복원과 교류 증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북·중 간 정상회담 개최 시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 특사의 방중 성과는 “도발을 일삼던 북한이 대화 의지를 표명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던 한반도 정세를 전환시킨 데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북·중 정상회담까지 이뤄지려면 일련의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북의 대화 의지에 화답하는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대화 국면이 조성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이 비핵화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이 특사 방중 직후 관련국들에 대화 분위기 조성을 촉구하고 있고 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천명하는 분위기를 감안할 때 최소한의 협의점만 찾아지더라도 북·중 정상회담 논의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르면 하반기 중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방중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민대학교 스인훙(時殷弘) 국제관계학원장은 26일 “중국은 비핵화에 대한 북의 태도를 지켜본 뒤 북·중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 24일 김 제1위원장의 특사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접견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세 차례 언급하는 등 북의 핵 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반면 최 총정치국장은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김 제1위원장은 친서에서 “선대 혁명가들이 맺은 조(북)·중 우의를 계승·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으며 이에 시 주석은 “북한과의 우호·교류 확대를 희망한다”고 전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5일 북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 3차 핵실험 당시 중국은 모멸감 느껴”

    “北 3차 핵실험 당시 중국은 모멸감 느껴”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 행위 등 최근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로 중국이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북한이 그 선을 넘어 중국의 설득에 정면 도전한 데 대해 중국은 모멸감을 느꼈다.”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한 김숙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61)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언론사 합동 인터뷰에서 “중국 외교관들이 사석에서 한 말”이라며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 뉴욕 유엔 외교가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김 대사는 “만장일치로 채택된 2094호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다른 나라들이 놀아났다’고 평가했는데 여기에도 중국은 모멸감을 느꼈다”며 “중국은 잘못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제재 결의에 동참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입장 변화를 보여준 단면으로 그는 리바오둥(李保東)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안보리 결의 2094호 표결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원칙을 지키는 나라”라고 발언한 점을 꼽았다. 다만 “북한 인민군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방중은 중국의 근본적 대북정책에 큰 변화가 없다는 증거”라면서 “최룡해의 방중이 청신호가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유보적 진단을 내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 朴대통령 실명 언급 비난 ‘이중행보’

    北, 朴대통령 실명 언급 비난 ‘이중행보’

    북한이 중국에 파견한 특사를 통해 국제사회와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남한에 대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며 거칠게 비난하는 등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거 미국 등과는 대화하면서도 남한은 철저히 배제해 온 행태를 재현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지난 25일 발표한 담화에서 박 대통령을 ‘괴뢰 대통령’ 또는 ‘박근혜’라고만 호칭하고 ‘악랄한 흉심’ ‘요사스러운 언행’ ‘아양을 떨어댔다’는 등의 원색적 표현을 동원했다. 심지어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4일 대변인 문답에서 박 대통령을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성공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박 대통령을 비난할 때 청와대 안주인, 남조선 집권자 또는 당국자라는 간접 호칭을 사용해 왔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4월에도 지켜 온 ‘마지노선’을 하필 대화 기류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 시점에 넘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2008년 4월 노동신문이 이 전 대통령을 실명 비난한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6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흐름이 6자회담 재개 쪽으로 간다면 남북 관계도 개선되겠지만 당장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북한이 미·중·일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좀 더 적극적 태도를 유도하기 위해 거꾸로 대남 압박 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담화는 “대결 광기를 부려댈수록, 우리를 자극하는 악담을 늘어놓을수록 차려질 것은 오직 하나, 수치와 파멸뿐”이라며 남북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5일 중국에 특사로 파견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 활동을 전하며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한다”는 최 총정치국장의 발언을 일절 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즉각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일단 대화의 물꼬는 텄다”며 “과거 중국이 남북 대화를 중재한 사례가 있고 미국이 선(先) 남북 대화 후(後) 북미 대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 회담 등 남북 대화, 북미 대화, 6자회담 순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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