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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과서 사회 논의기구 만들자” 문재인 제안… 與는 즉각 거부

    “교과서 사회 논의기구 만들자” 문재인 제안… 與는 즉각 거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얼굴) 대표가 29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해 역사 교과서 발행 개선 방안을 백지에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즉각 거부했다. 문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확정고시 전에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역사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드린다”면서 “정부·여당이 현행 검인정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니 역사학계와 교육계 등 전문가와 교육 주체가 두루 참여해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의 개선 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대통령은 국정화 확정고시 절차를 일단 중단해 주기 바란다”며 “사회적 논의 기구 결과에 따르는 것을 전제로 그때까지 정치권은 교과서 문제 대신 산적한 민생 현안을 다루는 데 전념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사회적 기구가 바로 집필진 구성”이라며 “문 대표께서 사회적 기구 구성을 필요로 느꼈다는 것은 곧 현행 역사 교과서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교과서 문제를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 구성 제안은 교과서 문제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와 정쟁을 지속시키겠다는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날 카카오톡 등을 통해 문 대표의 부친이 친일 전력자이고 인민군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해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유포된 글에는 “문 대표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흥남 농업계장으로 친일 공무원이었고 6·25전쟁 때는 북괴군 상좌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 등 야권 유력 인사 선조의 ‘친일 행적’을 주장하고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꽃신 선물 딸과의 약속 65년 만에 지킵니다”

    “꽃신 선물 딸과의 약속 65년 만에 지킵니다”

    “북에 있는 손자 보러 가요.” 23일 6·25전쟁 당시 홀로 피난 온 이정일(90) 할아버지는 북에 있는 손자와의 첫 만남에 이 같은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1950년 추석날 인민군 징집으로 자녀들과 헤어진 남측 최고령자 구상연(98) 할아버지도 “당시 4살이던 둘째 딸 선옥(68)이가 ‘아빠 갔다가 또 와, 아빠 또 와, 아빠 또 와’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아직도 그 말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때 잘 다녀오라고 한 게 마지막이 됐다”고 말했다. 빨간 신발을 선물로 준비한 구 할아버지는 “그때 헤어지면서 신발을 사다 주려고 했는데 65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날 남측 가족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사전 집결지인 강원 속초로 모였다. 상봉단은 속초에서 이산가족 등록과 방북 교육 등의 절차를 밟은 뒤 설렘과 기대감 속에 하룻밤을 보냈다. 24일 오전 8시30분 남북 이산가족 2회차 상봉단은 65년간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금강산으로 출발한다. 이들은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거쳐 금강산에 도착해 오후 3시 30분 금강산호텔에서 단체 상봉을 시작으로 2박 3일간 총 6차례, 12시간에 걸쳐 만남을 이어 가게 된다. 속초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산가족 상봉 첫날] “이게 꿈은 아니지”… 60년 만에 딸 본 아버지 입술을 떨었다

    [이산가족 상봉 첫날] “이게 꿈은 아니지”… 60년 만에 딸 본 아버지 입술을 떨었다

    “총각으로 돌아가신 줄 알고 20년 동안 제사를 지내드렸는데….”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에 있는 시아주버니 김주성(85)씨를 만난 조정숙(79)씨는 이 같은 소회를 밝히며 울먹였다. 남다른 사연을 가진 이산가족 남측 상봉단 389명은 이날 오후 3시 30분(서울시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96가족 141명과 60여년 만에 재회했다. 헤어졌던 시간만큼 사연 많고 회한이 가득한 면회소는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반가움과 울음의 도가니가 됐다. 오후 2시 50분쯤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먼저 착석해 기다리는 남측 가족들 사이로 북측 리흥종(88)씨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서자 동생 흥옥(80)씨는 “오빠” 하며 매달렸다. 흥옥씨가 남측에 남겨졌던 흥종씨의 딸인 이정숙(68)씨를 오빠에게 “딸이야 딸”이라고 소개하자 흥종씨는 눈시울을 붉혔고 입술을 떨었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이별한 오인세(83)씨의 부인 이순규(85)씨는 눈물도 나질 않는다며 야속한 인생을 탓했다. 이씨는 오씨를 본 뒤 “이젠 눈물도 안 나온다. 평생을 떨어져 살았으니 할 얘기는 많지만 어떻게 (3일 만에) 다 얘기하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손목시계를 꺼냈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시계 뒷면에 본인과 남편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북측 대상자 명단에는 북한 최고 수학자였던 고 조주경(1931∼2002년)씨의 아내 림리규(85)씨가 포함됐다. 림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인 금강산호텔에서 남한에 사는 동생 임학규(80), 조카 임현근(77), 시동생 조주찬(83)씨 등을 만났다. 학규씨는 누나인 리규씨에게 “지금 누이가 몇이우?”라며 묻자 리규씨는 “나 여든여섯이야. 근데 등본엔 여든다섯이야”라고 답했다. 리규씨의 남편 조씨도 서울대 재학 중 인민군에 의해 북한으로 끌려갔다. 조씨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다. 상상하기 어려운 오랜 시간의 이별 뒤 첫 상봉이 2시간 만에 끝나자 상봉장은 금세 서로를 부둥켜안은 가족들의 눈물로 가득 찼다. 짧지만 강한 첫 대면을 이어 간 남북 상봉단은 저녁 남측 주최 ‘환영 만찬’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한 차례 더 혈육의 정을 나눴다. 1차 상봉단장으로 방북한 김성주 대한적십자(한적) 총재는 환영사에서 “이산가족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편지도 교환하고 자유롭게 상시 상봉하는 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는 것만이 고령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교전 직전까지 치달은 직후 가까스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여서 그런지 북측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북측 기자들은 또 남측 취재진이나 한적 관계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앞서 북측 출입사무소(CIQ) 수속 절차 과정에서 북측이 남측 기자단 노트북에 대한 전수 검사를 요구하면서 일정이 지연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애초 북측은 노트북을 걷어 검사한 뒤 오후에 숙소로 가져다주겠다고 통보했으나, 기자단의 거부로 현장에서 검사가 진행됐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한승원 새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

    한승원 새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

    고향 전남 장흥을 중심으로 남해안 지방의 정서를 대변하고 기록하는 데 천착해온 소설가 한승원(76)이 이번엔 바다가 아닌 고향땅 깊은 분지를 무대로 ‘아버지가 남로당원’이었던 한 남자의 삶을 곡진하게 풀어냈다. 신작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에서다. 작가는 19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소설가들 중 아버지가 남로당원인 작가들이 몇 사람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의 삶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면서 “두 형은 바다에 수장되고 할아버지와 단둘이서 산 그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눈물겹고 슬퍼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25년 전 이번 소설의 뿌리인 단편 희곡 ‘아버지’를 썼다. ‘아버지’는 연극으로 각색돼 지금까지 서울, 광주, 벨기에, 프랑스 파리 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210회 공연됐다. 희곡 ‘아버지’를 토대로 5년 전 장편소설 집필에 들어갔다. “줄거리에 얽매이다 보면 정서나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아름다움, 문장의 묘미가 가볍게 다뤄질 때가 있다. 몇 달 지나 쓴 걸 다시 읽어보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내놓을 수가 없다. 부끄러운 문장이나 잘못 해석한 사건을 진중하게 바로잡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하다 보니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설은 비극의 땅 전남 장흥 유치면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영육에 깊은 상처를 입은 김오현의 삶을 형상화했다. 어린 시절부터 죽지를 펴지 못하고 주눅이 든 채 자투리 인간(잉여인간)으로 살아온 아버지(김오현)의 한스런 삶을 11남매 중 아홉째인 소설가 칠남이의 감수성과 시각에서 조명했다. 6·25 전쟁 이후 남로당 골수분자였던 김오현의 아버지 김동수는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가지 못하고 빨치산이 돼 유치면 일대에서 유격투쟁을 벌이다 죽는다. 어머니와 할머니, 네 명의 형들은 아버지에게 숙청당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할아버지가 외가로 몸을 피해 목숨을 건진 유일한 혈육인 오현을 키운다. 오현은 시대에 순응하며 유순한 삶을 살아간다. 유치면 일대는 가지산 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협곡 안의 분지다. 6·25 전쟁 이후 한동안 ‘모스크바’로 불렸다. 북으로 가지 못한 남로당원들이 이 산골짜기를 접수하고 토벌하려는 경찰대와 일진일퇴의 피비린내 나는 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지역이다. 2006년 장흥댐이 세워지며 물속에 잠겼다. 작가는 57세 때 귀향한 이후 글쓰기에만 매진해오고 있다. “귀향하며 소가지 없이 살자고 생각했다. 소가지 없이 산다는 건 철이 들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철이 든다는 건 이재에 밝고 탐욕에 젖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탐욕을 전부 비우고 소가지 없이 사니까 편안하다. 바닷가를 거닐며 소설만 생각한다.” 우리 나이로 올해 희수를 맞은 작가의 창작열은 여전하다. “글을 쓰는 한 살아 있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 하나는 생물학적인 생명이고 하나는 작가로서의 생명이다. 그 가운데 하나만 무너지면 제 삶은 끝난다. 글을 쓰지 않으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날마다 시든 소설이든 쓴다. 요즘은 재작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고 시도 한 권 분량을 써 놨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사설] 北, 인민을 위한다면 핵개발 중단해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그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인민군 2만여명이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에서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최신형 무기가 등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열병식에서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라는 향후 북한 체제를 이끌어 갈 3대 전략을 제시했다. 25분간의 연설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무려 90여 차례나 언급한 것도 주목된다. ‘인민에 대한 깊은 감사’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해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 다짐’으로 연설을 끝낸 것도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이 ‘인민제일주의’를 들고나온 것은 장성택과 현영철 처형 등을 통해 권력 상층부에 대한 장악이 끝난 만큼 ‘애민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민심을 잡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하지만 말만 그럴듯할 뿐 인민들을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 행사에만 연간 예산의 3분의1 수준인, 1조~2조원에 이르는 돈을 투입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평양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주민생활이 극도로 피폐한 지경에 처한 상황에서 초호화 열병식을 준비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정권이 대대적인 외화 조달을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인민을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주민들이 당장 배를 곯고 있는데 ‘이밥에 고깃국’은 아니더라도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에 막대한 헛돈을 쏟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북한은 핵개발부터 포기하고 개혁개방과 대화의 장에 나와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면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들이고 개성공단 사업을 비롯한 남북 간 경제협력을 더 확대해야 한다. 노동당이 진정으로 인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기를 원한다면 대결과 고립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력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매번 떼를 쓰듯 반복하는 무력시위를 통해서는 원하는 것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전후해 북한이 예고했던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 도발은 없었다는 점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군사 도발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일단은 긍정적인 신호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서 미국과 어떤 형태의 전쟁이라도 치를 수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는 했지만 핵에 대한 언급이나 우리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 없었다는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려면 북한은 8·25 합의부터 준수해야 한다. 오는 20~26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후 당국자 회담을 조속히 열어 남북한 간 시급한 현안을 폭넓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부터 처리해야 한다. 인민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북한이 지금 가야 할 길이다.
  • “너무 다른 북한 인민군 여군...”

    “너무 다른 북한 인민군 여군...”

    10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인민군 여군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저 북한군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뭘 생각할까”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저 북한군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뭘 생각할까”

    북한 인민군이 10일 오후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리는 평양 김일성 광장 한복판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A North Korean soldier stands in the rain on Kim Il-Sung square following a mass military parade in Pyongyang on October 10, 2015. North Korea was marking the 70th anniversary of its ruling Workers’ Party.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저 인민군은 왜 뒤를 돌아봤을까”

    “저 인민군은 왜 뒤를 돌아봤을까”

    10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리는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주석단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도착하자 인민군들이 박수를 치며 맞이하고 있다. Soldiers applaud the arrival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during a mass military parade at Kim Il-Sung square in Pyongyang on October 10, 2015. North Korea was marking the 70th anniversary of its ruling Workers’ Party.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육성연설 장면보니..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육성연설 장면보니..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창단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3년 만에 육성 연설했다. 김 제1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오후 3시53분 연설을 시작했다. 김 제1위원장은 “사회대국 강성을 위해 매진해 온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며 “기념식에 참석한 외국 벗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했다. 연설 내내 허리가 불편한 듯 연설대에 두 팔을 기댄 채 쉰 목소리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김 제1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연설한 것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 이후 3년만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북한 인민군 차량...열병식 참가 위해 대기중

    북한 인민군 차량...열병식 참가 위해 대기중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열병식에 동원될 군용차량들이 평양의 길거리에 줄지어 서 있다. Military vehicles line up on a road in Pyongyang on October 10, 2015. North Korea is gearing up for a lavish celebration marking the 70th anniversary of its ruling Workers’ Party. ⓒ AFPBBNews=News1
  •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두 팔 기댄 채 육성연설 ‘대체 무슨 일?’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두 팔 기댄 채 육성연설 ‘대체 무슨 일?’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창단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3년 만에 육성 연설했다. 김 제1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오후 3시53분 연설을 시작했다. 김 제1위원장은 “사회대국 강성을 위해 매진해 온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며 “기념식에 참석한 외국 벗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했다. 연설 내내 허리가 불편한 듯 연설대에 두 팔을 기댄 채 쉰 목소리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김 제1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연설한 것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 이후 3년만이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이 연설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왼쪽 가까이에서 지켜 보는 등 군간부들이 도열했다. 열병식은 당초 오전 10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연기, 오후 2시50분부터 시작됐다. 열병식은 열병대열 이동, 이영길 총참모장의 열병준비 검열, 이영길 총참모장의 열병식 준비 보고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김 제1 위원장은 중국 권력서열 5위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오후 3시29분쯤 주석단에 올랐다. 김정은 집권후 열병식은 201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2월16일)과 김일성 주석(4월15일) 생일, 2013년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7월27일)과 정권 수립 기념일(9월9일)에 이어 이번이 5번째이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사진 = 서울신문DB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육성연설 장면보니..‘편해보이지 않는 김정은?’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육성연설 장면보니..‘편해보이지 않는 김정은?’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창단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3년 만에 육성 연설했다. 김 제1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오후 3시53분 연설을 시작했다. 김 제1위원장은 “사회대국 강성을 위해 매진해 온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며 “기념식에 참석한 외국 벗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했다. 연설 내내 허리가 불편한 듯 연설대에 두 팔을 기댄 채 쉰 목소리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이 연설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왼쪽 가까이에서 지켜 보는 등 군간부들이 도열했다. 열병식은 당초 오전 10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연기, 오후 2시50분부터 시작됐다. 열병식은 열병대열 이동, 이영길 총참모장의 열병준비 검열, 이영길 총참모장의 열병식 준비 보고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김 제1 위원장은 중국 권력서열 5위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오후 3시29분쯤 주석단에 올랐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사진 = 서울신문DB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정은 허리 불편한가...건강 이상설 다시 증폭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인민을 위해 멸사봉공해야 한다”며 선언한 가운데 허리가 불편한 듯 연설대에 두팔을 기댄 채 쉰 목소리로 원고를 읽어 건강 이상설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김 제1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오후 3시53분부터 4시18분까지 25분간 연설했다.  하지만 연설내내 허리가 불편한 듯 연설대에 두팔을 기댄 채 쉰 목소리로 “인민군대는 미국이 원하는 모든 전쟁을 상대하겠다”며 원고를 읽었다.  김 제1위원장은 비교적 빠른 목소리로 연습을 많이 한 듯 쉼없이 원고를 읽어나갔다. 하지만 31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비만에 따른 허리 통증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김 제1위원장 옆에 배석한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열병식 내내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것과 대조적이다.  김 제1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연설한 것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 이후 3년만이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의 연설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왼쪽 가까이에서 지켜 보는 등 군간부들이 도열했다.  열병식은 열병대열 이동, 이영길 총참모장의 열병준비 검열, 이영길 총참모장의 열병식 준비 보고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김 제1 위원장은 중국 권력서열 5위인 류 상무위원과 함께 오후 3시29분쯤 주석단에 올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3년만에 열병식

    김정은 열병식 육성연설, 3년만에 열병식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창단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3년 만에 육성 연설했다. 김 제1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오후 3시53분 연설을 시작했다. 김 제1위원장은 “사회대국 강성을 위해 매진해 온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며 “기념식에 참석한 외국 벗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했다. 연설 내내 허리가 불편한 듯 연설대에 두 팔을 기댄 채 쉰 목소리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이 연설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왼쪽 가까이에서 지켜 보는 등 군간부들이 도열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무슨 이유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무슨 이유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무슨 이유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그동안 한·미·일 추정보다 훨씬 적은 규모”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그동안 한·미·일 추정보다 훨씬 적은 규모”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그동안 한·미·일 추정보다 훨씬 적은 규모”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뭔가 보니?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뭔가 보니?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가 뭔가 보니?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무엇?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무엇?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도대체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우리 정부 추정보다 훨씬 적다” 왜? 북한군 규모 70만명 북한의 상비군 규모가 7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이 추정하는 숫자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미야모토 사토루(宮本悟)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발표문 ‘조선인민군의 군제와 전력’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하는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 2014년판은 북한 상비병력을 119만명으로 추정했다. 일본 방위백서 2014년판도 이를 참고해 북한 정규군 규모를 119만명으로 적었고, 한국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년판은 120만명이란 숫자를 내놓았으나 어떤 근거로 추산된 수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야모토 교수의 지적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유엔 인구기금(UNFPA)의 협조로 1993년 실시된 북한 첫 인구조사와 관련해 당시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생이었던 문호일씨에 따르면 총인구는 2121명인데 연령별 인구는 2052만명으로 69만1027명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발표된 북한 인구연구소연구원 논문에서 이는 ‘군인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만큼 69만1027명이 상비병력임을 북한 당국이 간접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우수한 엘리트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무복무시키는 선발징병제를 도입했지만 상비병력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2008년 10월 재차 실시한 인구조사에서도 총인구(2405만여명)와 지역별인구 소계(2334만여명)가 맞지 않았다”면서 “총계에서 소계를 빼 병력을 산출한 결과 2008년 상비병력은 70만2372명이고, 남성은 66만20349명, 여성은 4만23명,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선발징병제 실시 이후에도 상비병력은 별로 변화가 없고 총인구 대비 비율은 1999년(3.3%)보다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70만명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합계에 가까운 만큼 북한은 이와 동일한 수준의 상비병력을 갖추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다만 전쟁이 일어난다면 예비군 포함 총인구의 5% 이상이 병력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군제에 대해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 변화가 많아서 북한군의 재편성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지휘계통에 대해선 “(정치위원제도를 창설한) 70년대부터 그다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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