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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In&Out] 소련 자료로 본 북한 ‘국경경비대’ 창설 과정/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소련 자료로 본 북한 ‘국경경비대’ 창설 과정/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북한의 ‘조선인민군’은 북한 사회와 경제에서의 역할이 크고도 중요하다. 북한은 국가 정통성도 항일 유격대라는 준군사조직에서 찾기 때문에 그 역사를 과장해 나갔다. 결국 1970년대 북한에서 유일사상체계가 성립되면서 모든 역사가 재해석됐고 아직도 존재 여부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조선인민혁명군’을 북한군의 모체로 설정한 뒤 그 창건일을 조선인민군의 공식 창건일로 내세웠다. 하지만 튼튼한 기초 없이 건물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역사적 자료가 아닌 상상력에 기초한 역사 해석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인지 북한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역사 교정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중에 2018년 조선노동당이 건군절을 조선인민군이 공식적으로 창설된 1948년 2월 8일로 변경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북한은 건군에서 소련이나 중국의 역할을 여전히 부정하고 있지만 그나마 날짜라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큰 진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역사 해석은 남한의 북한 연구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북한과 만주 국경을 경비하기 위해 조직된 국경경비대의 창설 역사를 들 수 있다. 북한에서 출판된 김일성전집에 따르면 북한 국경경비대의 창설은 1945년 11월 27일 신의주를 방문한 김일성이 평북 도당 책임비서 김일에게 내린 국경경비대 창설 지시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많은 남한 연구자가 이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비밀해제된 소련 측 사료를 보면 북한 측 주장과 상당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소련군은 북한을 점령한 뒤 남한을 점령한 미군과 마찰을 피하고 치안을 유지하려고 북한의 모든 무장조직을 해산시킨 뒤 만주와 북한의 국경경비를 제25군에 맡겼다. 그러나 1945년 11월, 중국 국민당의 군대가 장제스(蔣介石)의 명령을 받아 만주에 진출하면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부대 사이에 무장충돌이 발생했다. 1946년 1월부터 국공 양당의 부대들이 만주와 북한의 경계를 넘어가 약탈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1946년 1월 11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발생했다. 용천군 소련군 경무사령관 보고에 따르면, 60명에 달하는 국민당 부대가 안동시(현 랴오닝성 단둥시)에서 인근 지역을 공격해 면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보안서장을 체포하고 모든 무기를 몰수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빈발한 것을 계기로 국경지역의 경비를 맡은 제384사단 참모부가 1946년 1월 12일에 북한과 만주의 국경 폐쇄를 명령했다. 그러나 일제 패망으로 인구 이동이 있자 소련군 사령부는 1946년 3월 7일 조·만 국경 지역에서 통행증 제도를 실시해 경비 임무가 복잡해졌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소련군은 조선인들로 이뤄진 부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1946년 6월, 평안북도 위원군의 경무사령부가 44명으로 구성된 ‘인민소대’를 조직해 국경경비를 위한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이 인민소대는 국경경비를 하게 됐으며 1946년 9월부터는 정치 교육도 받게 됐다. 소련의 주북한 민정청의 종결보고서에 따르면 인민소대는 모두 2개가 조직됐고 3개 국경 위수사령부와 64개의 국경초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조직 당시에 인민소대는 철도보안대와 달리 북한 경찰 체제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고 소련군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고 있었다. 1945년 11월 제25군 장교들이 작성한 ‘북조선 보안기관 조직 및 사업 요령’에도 1946년 부서체계가 수차례 개편된 보안국에 국경경비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었다. 1947년 2월 22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에 따라 보안국이 내무국으로 발전하면서 국경경비대를 관리하는 부서가 설치되고 국경 경비권이 북한지도부에 이양됐다.
  • “춥고 눈 내리는 겨울… 추풍령 넘어가며 본 얼어 죽은 군인 잊지 못해”

    “춥고 눈 내리는 겨울… 추풍령 넘어가며 본 얼어 죽은 군인 잊지 못해”

    6·25 참전 인천학생 백재익 인터뷰 일시 1998년 11월 12일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3층대담 백재익(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생)이경종(인천학생6·25 참전관 설립자)이규원 치과원장 (이경종 큰아들) ----------------------------------------------------------------------------------------------- 6·25 남침으로 인천의 적화(赤化) 내가 6년제 공립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때인 인 1950년에 6·25 사변이 일어났으며 당시 내가 살던 곳은 동구 화수동(花水洞) 174번지였다. 6·25 사변이 일어난 몇 일 후 인천으로 곧 인민군이 들어오게 되어 나와 우리 가족들은 인민군을 피해 수원에서 가까운 남양에 있는 친척집으로 피란을 가게 되었다. 9·15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 9월 15일 미군(美軍)해병대와 한국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한 다음에서야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인민군 치하를 무사히 견딘 우리 친구들은 “우리가 어려운 위기와 고비를 넘기고 자유를 되찾았으니 우리들은 학생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하자!”해서 호국(護國)활동을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갔는데, 대부분 실종되어 다시는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와 동네 친구 주철재는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에서 호국활동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압록강까지 진군한 UN군과 국군은 중공군(中共軍)의 참전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계송 대장이 이끌었던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전체가 남쪽으로 남하(南下)한다는 지시가 내려와 우리 북구지대도 남하할 준비를 하고 있게 되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남하 드디어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이 인천을 철수하는 1950년 12월 18일이 닥쳐왔다. 이날 남하(南下)하기 위해 모인 장소는 인천축현국민학교였으며 동네 친구 주철재와 같이 오후 늦게 군악대를 따라 인천에서 출발하였다. 그날 행군 도중에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길이 미끄러워서 많은 고생을 하였다. 밤이 깊어서야 도착한 곳이 안양(安養)이었다. 안양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또 행군하여 도착한 곳이 수원(水原)이었다. 수원에서 2~3일간 기다리고 있다가 그때부터 각자 개인적으로 기차 화물칸 지붕 위에 올라타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기차표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게 내려가는 도중에 인천학도의용대에서 연락이 오기를 대구역전에 집결하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단체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와 같이 내려가는 피란민들과 국민방위군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0명 내외 친한 친구들과 동네 선후배들과 함께 걸어서 남하하였다. 그 당시 우리들이 탔던 기차는 증기 기관차였다. 그래서 석탄 그을림에 얼굴들은 까맸으며 추운 겨울철에 세수까지 못 하게 되니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1950년 12월 24일 대구 도착 그렇게 고생하며 대구역까지 주철재와 함께 내려오게 되었다. 1950년 12월 24일 저녁 대구역에 내리니까 대구에 있는 국민방위군(防衛軍)에서 나와 우리들을 대구에 있는 어느 방직공장 창고로 안내하여 우리들은 그 창고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때 가마니 한 장씩을 지급받아 바닥에 깔고 가지고 간 담요를 덮고 그날 밤 잠을 잤다. 그때 주먹밥을 주어서 받아먹었는데 양이 너무나 적어 배를 채우지 못해 혼이 났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서 다시 기차를 타고 경산을 지나 삼랑진까지 오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동네 친구 주철재와 함께 행동했다. 1951년 1월 2일 마산에 도착 삼랑진역에서 내려 주위를 보니까 팻말이 있었다. 거기에는 ‘인천학도의용대는 마산(馬山)으로 집결하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삼랑진에서 하룻밤을 잔 후 마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1951년 1월 2일 마산에 도착하였다. 그때 우리들은 마산에서 해병 6기 신병 모집에 지원했다. 그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학생들만 뽑았는데 그때 나는 합격이 되었고 주철재는 처음에는 불합격되었으나 다시 뒤로 숨어 들어가 합격하였다. 이렇게 해병대에 입대했던 것은 그 당시 당장 갈 곳 없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1951년 1월 24일 해병대 6기 정식 입대 내가 해병대 가입 기간 중 제일 잊지 못한 일은 ‘기념빳다’이다. 그 당시 우리가 훈련받던 진해경화국민학교 뒷산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그때 우리들을 맡아 훈련을 시키고 있던 조교들은 뒷산에 있는 소나무를 3m 길이로 잘라 가늘게 깎아 다듬은 빳다를 여러 개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기합을 줄 때 사용 하였으며 그때 그 소나무 빳다로 우리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가운데 1951년 1월 24일 우리들의 해병대 6기 정식 입대일이 닥쳐왔다. 이날 해병대사령관 참석하에 우리들은 해병대 6기 입대식을 마쳤다. 나는 신병 훈련을 마치고 해병 1연대 3대대 11중대 2소대 전투소대로 배치되어 강원도로 가게 되었다. 주철재는 11중대 3소대에 배치되어 우리는 헤어졌다. 1952년 11월 1일 상이(傷痍) 명예 제대 그때 나는 강원도 양구 도솔산전투에서 큰 부상당했다. 그날 헬리콥터를 타고 진해 해군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그때부터 1년 넘게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후 1952년 11월 1일 상이(傷痍) 명예제대(名譽除隊)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 동네 친구 주철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철재는 다정다감한 친구였는데 어린 나이에 전사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슬프다. 가끔 1950년 12월 말, 추운 눈오는 겨울이 생각난다. 그 당시 철재와 같이 추풍령을 넘어가면서 본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이 생각난다.6·25 전사 인천학생 주철재 1934년 중구 송월동에서 태어나서 송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영화중학교(현재 대건중고교) 4학년때, 해병 6기로 자원입대했다. 이후 해병 1연대 3대대 11중대 3소대 전투병으로 참전하여 장단36고지전투에서 1952년 9월 20일 날 전사했다. 남기고 싶은 말 48년전 나라를 지키겠다고 인천을 떠나서 그 먼 마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많은 인천학생들이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였고, 전사자도 많았다. 기록이 없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경종 이규원 2부자(父子)가 발굴·기록해줌에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 사진 제공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관백재익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소속 1933년 10월 21일 인천 동구 화수동 출생 1950년 6월 25일 6년제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재학 중(18세) 1950년 12월 18일 인천을 출발 1951년 1월 2일 걸어가서 마산에 도착 1951년 1월 3일 해병 6기 신병모집 합격…해병대 6기 보병(군번:9210584) 1951년 11월 1일 강원도 도솔산 전투에서 부상당함 1952년 11월 1일 상이 명예 제대
  • [이경우의 언파만파] 전쟁의 언어, 소통의 언어

    [이경우의 언파만파] 전쟁의 언어, 소통의 언어

    “가락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 여일에게 수류탄의 안전핀은 ‘가락지’다.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그 ‘가락지’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손을 댄다. 국군, 인민군, 연합군 간 긴장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순수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믿는다. 군인들은 잔뜩 얼어 있지만, 천하태평하게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돌아다닌다. 그래서 얼굴에 빗물이 흐르는 채로 서 있는 인민군의 얼굴을 편하게 닦아 줄 수 있다. 순간적이지만 인민군은 긴장이 풀리고 ‘가락지’를 뽑아도 반응할 틈도 의욕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그사이 긴장감은 더 팽팽해지고 곧 터지고 만다. “펑” 소리와 함께. 그런데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소리, 언어였다. 불발탄이라 여겨졌던 수류탄은 “펑” 소리를 내며 온 마을에 ‘팝콘’을 눈처럼 내리게 한다. ‘펑’은 극에 달했던 긴장을 풀라는 신호처럼 작용했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기 시작했고, 마음을 조금씩 열어 나갔다. 여일이와 마을 사람들이 보인 따듯한 인간미와 화해의 마음이 전달된 것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허풍이나 거짓말을 뜻하는 ‘뻥’도 ‘팝콘’처럼 의미를 만들어 갔다. 한때 전통시장의 뻥튀기 기계는 그곳이 시장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왁자지껄한 시장 바닥을 큰 소리로 일시에 덮어 버렸었다. “뻥” 하며 뻥튀기 기계를 요란하게 빠져나온 옥수수 낟알들은 한껏 커지며 달콤하고 구수한 강냉이를 내놓았다. 여기에 먹을거리에서 그치지 않고 장터의 인심까지 담은 말들까지 전했다. 그렇지만 소리와 함께 커지게 한다는 속성 때문에 ‘뻥’은 ‘과장’의 의미가 담겨 ‘허풍’이 되고 ‘거짓말’이란 말이 됐다. 그래도 ‘허풍’이나 ‘거짓말’처럼 정색하지 않은 말이어서 그리 밉게 보이지 않는다. 언어에 관해서도 일가견 있는 의견을 내놓은 장자도 이런 ‘뻥’을 섞는 데 달인이었다. 북쪽 바다에 사는 물고기 둘레가 몇천 리라고 하고, 그 물고기가 변한 새 ‘붕’은 등이 또 몇천 리가 넘는다며 얘기를 풀어 나간다. 또 잉어와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고 ‘뻥’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 일상을 꿰뚫는 지혜를 전하고 있기에 ‘뻥’이라고 하지 않는다. ‘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들이 내놓은 ‘펑’ 소리처럼 시원하게 막힌 곳을 뚫어 주는 ‘뻥’이었다. 장자는 소리를 퉁소에 빗대어 말했다. 그 가운데 추구해야 하는 건 하늘의 퉁소 소리였다. 곧 마음으로 내고 듣는 소리다. 여일이의 ‘가락지’에서 비롯된 ‘펑’ 소리 같다. wlee@seoul.co.kr
  • 3월 한미훈련도 축소 방침…北 ‘레드라인’ 도발 막는다

    3월 한미훈련도 축소 방침…北 ‘레드라인’ 도발 막는다

    국방부 “한미 긴밀 공조로 조정 시행 입장” 연합훈련 실시 땐 北 ICBM 발사할 수도 인민군 창건일 도발땐 훈련 재개 가능성文대통령 “남북관계 운신의 폭 확대 노력”북한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하며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를 예고하면서 한미가 오는 3월 예정된 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대규모 훈련을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일 연합훈련과 관련해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하에 조정 시행한다는 기조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한미는 대규모 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연습과 독수리훈련(FE)을 폐지하고 대신 기간과 규모를 축소한 ‘19-1 동맹’을 진행했다. 올해 훈련도 일단 이와 같은 형태로 계획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은 축소된 훈련조차 ‘침략연습’이라고 비난해 왔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보도하며 “조미(북미) 사이의 신뢰 구축을 위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폐기하는 선제적인 중대 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에도 미국은 이에 응당한 조치로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 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 놓았다”고 주장했다. 오는 3월 어떤 형태로든 연합훈련이 실시된다면 이를 명분으로 ICBM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한미가 연합훈련 유예라는 결단을 내려 북한이 ‘레드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한이 연합훈련을 명분으로 ICBM을 발사한다면 그동안 ICBM 발사 중단을 성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 국면에서 곤경에 처할 것”이라며 “미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훈련을 유보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북한이 다음달 8일 인민군 창건일을 계기로 군사 도발에 나선다면 한미가 기존 대규모 훈련을 재개할 수도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남북 관계에서도 더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합동인사회 신년인사에서 “지난해에도 우리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며 한반도 평화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북미 정상 간의 대화 의지도 지속하고 있다. 평화는 행동 없이 오지 않는다”며 이렇게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5차 전원회의 발언에 남북 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점에 비춰 더 주목된다.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에서 북한이 사실상 핵·경제 병진노선 회귀를 시사하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만큼 촉진자의 입지는 위축된 게 사실이지만,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김 위원장을 향한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러의 유엔 대북 제재 일부 완화 결의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최근 북한의 비핵화 실천에 대한 ‘상응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은 향후 미중 정상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고, 대화 모멘텀이 유지되도록 적극적인 상황 관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ICBM 발사 기점 될 한미 연합훈련…한미 ‘연기 또는 재개’ 고심

    ICBM 발사 기점 될 한미 연합훈련…한미 ‘연기 또는 재개’ 고심

    북한이 또다시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오는 3월 예정된 연합훈련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연합훈련에 대한 고강도 반발과 ‘새로운 전략무기’를 언급하며 군사도발을 암시한 만큼 연합훈련을 두고 한미가 진행 여부를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연합훈련 진행 여부와 관련해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하에 조정 시행한다는 기조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일단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대규모 훈련은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3월 한미는 대규모 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 훈련(FE)를 폐지하고 대신 기간과 규모를 축소한 ‘19-1 동맹 연습’을 진행했다. 통상 1부 방어에 이어 2부 훈련에서 진행되던 ‘반격’도 생략하면서 비핵화 분위기 형성에 주력했다. 군 당국은 일단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훈련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가 규모를 축소한 훈련에도 반발해 왔다. 북한은 지난 11월에도 “훈련의 명칭이나 바꾼다고 하여 전쟁연습의 침략적 성격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 약속에 상응한 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보도하며 “우리가 조미사이의 신뢰구축을 위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폐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에도 미국은 이에 응당한 조치로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 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놓았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북한은 오는 3월 연합훈련이 실시되면 이를 명분으로 ICBM을 발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연합훈련이 재개되는 3월 쯤에 북한의 도발 수위가 결정될 것”이라며 “ICBM을 쏘더라도 연합훈련을 핑계로 쏘면 중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 행동에 나서기 전 양국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연합훈련의 유예 가능성도 거론된다. 연합훈련을 유예하면서 일단 북한이 ‘레드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대화의 기조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적 결단에 따라 계획된 훈련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연합훈련 이전 ICBM을 발사해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재개해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8일 인민군 창건일이나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을 계기로 군사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일(현지시간) 트윗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취소되거나 축소된 모든 군사 훈련을 완전히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는 북한의 동향을 지켜보며 추후 훈련의 최종 방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최 대변인은 “훈련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추가적인 진전되는 사항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北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서 전문 공개-주체혁명 불멸의 대강 2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과학연구사업에 대한 정책적지도를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국가과학원을 비롯한 과학연구 및 교육기관들과 성, 중앙기관들에서는 과학기술부문의 10대전망목표에 예견된 연구과제들을 무조건 제기일내에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어 우리 나라를 첨단과학기술개발국, 선진문명개발국으로 전변시키는데 기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과학이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기관차라면 과학의 어머니는 교육이라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전반적인 대학들의 구성과 교육강령을 현실발전과 세계적추세에 맞게 부단히 개선해나갈데 대한 문제, 교육부문에서 교육내용을 실용화, 종합화, 현대화하고 교육과 과학연구, 생산을 밀착시키며 교육조건과 환경을 개변시키고 중앙과 지방의 교육수준차이를 줄이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추진하여 재능있는 인재들과 가치있는 과학기술성과들을 더 많이 내놓는 문제, 교원대렬을 질적으로 강화할데 대한 문제, 교육조건과 환경을 일신하기 위한 사업을 품을 들여 실속있게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교육혁명의 시대에 맞게 나라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보건은 우리 제도의 우월성이 인민들의 피부에 직접 닿는 사회주의영상의 주요징표라고 언급하시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이 자기의 본태를 지키고 보건부문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며 모든 의료일군들을 무한한 인간애와 높은 의학적자질을 갖춘 로동당의 붉은 보건전사로 키우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증산절약과 질제고운동을 힘있게 벌리며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재해방지대책을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오늘의 정면돌파전은 수백만 근로대중의 앙양된 열의와 창조적노력에 의거한 거창한 애국투쟁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그리고 모든 공민들이 최대한으로 증산하고 절약하여 우리의것을 더 많이 창조하고 극력 아껴쓸 때 적대세력들이 아무리 제재해도 우리의 경제는 끄떡없고 우리의 살림은 보다 윤택해질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오늘의 시대에 내세워야 할 본보기는 절약정신을 체질화한 애국적인 근로자이며 로력절약형, 에네르기절약형, 원가절약형, 부지절약형기업체라고 하시면서 전사회적으로 전기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문제,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실정에 맞게 예비를 찾아내고 더 많이 증산절약하는 경쟁열풍을 일으킬데 대한 문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선질후량의 원칙에서 생산물, 창조물의 질을 높이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을데 대한 문제, 생태환경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한 결정적대책을 세우며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위기관리체계를 정연하게 세울데 대한 문제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의 장엄한 정면돌파전을 정치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담보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전대미문의 혹독한 도전과 난관을 뚫고나가는 정면돌파전에서 반드시 승리하자면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담보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성된 형세에 대처하여 외교전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방략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선반도에 조성된 준엄한 정세와 복잡다단한 현 국제관계구도를 전면적으로 깊이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장하기 위한 공세적인 조치들을 취할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이 지난 70여년간 우리 국가를 적으로, 《악의 축》, 《핵선제공격대상》으로 규정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비인간적인 제재와 지속적인 핵위협을 가해왔으며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말미암아 오늘 조선반도정세는 더욱 위험하고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다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가 조미사이의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페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사이에만도 미국은 이에 응당한 조치로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차례나 벌려놓고 첨단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였으며 십여차례의 단독제재조치들을 취하는것으로써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야망에는 변함이 없다는것을 다시금 세계앞에 증명해보이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으며 이것은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있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는 우리가 이미 천명한바와 같이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자주권과 안전을 감히 범접할수 없도록 우리의 힘을 필요한만큼 키워 우리자신을 지키는 길만이 우리가 힘겨워도 중단없이 그리고 주저없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것을 실증하여주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의 대미정책적립장을 천명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드팀없는 국방건설목표라고 하시면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상대로는 감히 무력을 사용할 엄두도 못내게 만드는것이 우리 당 국방건설의 중핵적인 구상이고 확고부동한 의지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전략무기개발사업도 더 활기차게 밀고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미국의 강도적인 행위들로 하여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것이 없고 여전히 적대적행위와 핵위협공갈이 증대되고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시적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수 없다고 단언하시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것이라고 확언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의 본심을 파헤쳐본 지금에 와서까지 미국에 제재해제따위에 목이 매여 그 어떤 기대같은것을 가지고 주저할 필요가 하나도 없으며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비핵화는 영원히 없을것이라는것,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것임을 단호히 선언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의 핵위협을 제압하고 우리의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수 있는 강력한 핵억제력의 경상적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것이며 우리의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것이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 대국들이 보유한 절대병기들이 태여난것도 커다란 성과이지만 이 과정을 통하여 과학기술의 쟁쟁한 인재부대가 자라난것이 더없이 기쁘며 이것이 우리 당이 더 소중히 여기는 성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국방과학연구부문과 군수공업부문에서 철두철미 자력과 주체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이미 시달된 단계별목표를 점령하기 위하여 더 높이, 더 빨리의 구호를 추켜들고 당의 국방건설로선을 충직하고 완벽하게 받들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이 제시한 전략적방침에 따라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 인민의 행복한 미래를 굳건히 담보하기 위한 국방건설사업에 계속 전국가적인 총력과 깊은 관심, 아낌없는 지원을 따라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국방공업부문 일군들과 과학자들은 지난 3년간 간고한 투쟁을 벌려 핵전쟁억제력을 틀어쥐던 그 기세, 그 본때대로 당과 혁명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간직하고 나라의 방위력을 백방으로 다져나가기 위한 성스러운 활동에 매진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전당적, 전국가적, 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현상을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전개하며 근로단체사업을 강화하고 전사회적으로 도덕기강을 강하게 세울데 대한 문제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강화하고 그 령도력을 비상히 높여나갈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실천적경험으로 보나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교훈으로 보나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현 국면을 타개하고 힘차게 전진하기 위하여서는 당을 강화하는데 계속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지난 8년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뜻대로 우리 당을 주체혁명위업을 향도하는 불패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는데 제일 많은 품을 들이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이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령도적사명을 수행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매 시기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나아갈 방향과 투쟁목표, 과업과 방도를 정확히 명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능숙히 조직동원하는것이며 당의 향도력을 불패의것으로 다지는데서 중요한것은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 당, 인민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룬 당으로 건설하는것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더욱 강화하며 간부들의 역할을 높이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과 실천적대책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은 힘차게 전진하고있지만 이에 반발하는 적대세력들의 도전은 집요하고 부닥친 난관도 만만치 않다고 하시며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위대한 우리 인민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우리 당은 또다시 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을 결심하였다고 강조하시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오늘의 이 사회주의운명의 기로에서의 승과 패의 결정은 오직 우리 당의 단결된 위력과 그 향도적역할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당은 봉착한 난관들앞에서 정확한 자기의 령도력을 발휘할것이며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것입니다. 우리 당은 꿋꿋이 뻗치고 서서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적대세력들에게 계속 심대한 타격을 가할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할것입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 인민은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장기적인 가혹한 환경속에서 자체의 힘으로 살아가는 법, 적과 난관을 이기는 법, 자기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고 하시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라고 천명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모두가 불굴의 혁명신념과 불같은 조국애, 견인불발의 투쟁정신으로 계속 힘차게 투쟁한다면 난관은 격파될것이며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가 온 나라 전체 인민의 실생활로 될 새로운 승리를 맞이하게 될것이라고 확언하시면서 모두다 혁명앞에 가로놓인 준엄한 난국을 정면돌파하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포부와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오늘의 영광스러운 투쟁에서 선구자, 기수가 되여 승리의 진격로를 힘차게 열어나가자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의 보고를 심중히 청취하면서 전체 참가자들은 조성된 현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대비하여 우리의 주체적힘, 내적동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것으로써 혁명적진군을 방해하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뿌리채 제거해버리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을 보다 힘있게 다그치려는 당중앙의 의도를 정확히 새겨안았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 강령적인 보고를 마치시자 전체 참가자들은 조국과 인민, 혁명에 대한 위대한 책임감과 억척불변의 혁명신념, 천리혜안의 예지와 선견지명으로 우리 당과 인민이 나아갈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진로를 환히 밝혀주신 우리 당 위원장동지를 우러러 열광적인 박수와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를 올리며 절대적인 지지와 찬동을 표시하였다. 전원회의에서는 첫째 의정에 대한 서면토론들이 제기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박봉주동지, 내각총리 김재룡동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태형철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용원동지,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박정천동지, 청년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철민동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리충길동지, 평안북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 계명철동지, 김책제철련합기업소 지배인 김광남동지를 비롯한 많은 참가자들이 토론에 참가하였다. 토론자들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새로운 승리의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당중앙의 웅대한 작전도, 설계도를 받아안은 크나큰 감격과 흥분을 토로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의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온갖 도전과 난관을 단호히 박차고 자력부흥의 대업을 앞당겨 실현해나갈데 대한 위원장동지의 탁월한 정면돌파사상과 전략, 실천강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들은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의 사상과 정신에 준하여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내재하고있는 편향들과 본질적결함, 그 근본원인을 심각히 총화하였다. 토론자들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의 기본정신을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 깊이 체득시키고 정치사상교양을 공세적으로 벌려 그들모두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뼈속깊이 체질화한 자력자강의 투사, 참된 애국자로 준비시키며 자체실정에 맞는 자력갱생전략으로 증산투쟁과 현대화를 힘있게 벌리도록 키잡이와 견인을 잘해나감으로써 당중앙이 제시한 정면돌파전에 관한 사상과 의도를 자랑찬 실천으로 받들어나가겠다는것을 본 전원회의앞에 엄숙히 맹세하였다. 전원회의에서는 첫째 의정에 대한 결정서초안을 놓고 심중하고 적극적인 연구토의가 진행된데 따라 결정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결정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정들이 명시되여있다. 첫째, 나라의 경제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할것이다. 둘째, 과학기술을 중시하며 사회주의제도의 영상인 교육, 보건사업을 개선할것이다. 셋째, 생태환경을 보호하며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위기관리체계를 세울것이다. 넷째,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것이다. 다섯째,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화하고 도덕기강을 세우며 근로단체조직들에서 사상교양사업을 짜고들것이다. 여섯째, 혁명의 참모부인 당을 강화하고 그 령도력을 비상히 높여나갈것이다. 일곱째, 혁명의 지휘성원인 일군들이 사회주의건설의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을 뚫고나가기 위한 정면돌파전에서 당과 혁명, 인민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분투할것이다. 여덟째, 각급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이 결정서를 집행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짜고들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을 비롯한 해당 기관들은 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조치를 취할것이다. 전원회의에서는 둘째 의정인 조직문제를 보았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였다. 리일환동지, 리병철동지, 김덕훈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김정관동지, 박정천동지, 김형준동지, 허철만동지, 리호림동지, 김일철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을 해임 및 선거하였다. 리일환동지, 김형준동지, 리병철동지, 김덕훈동지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거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였다. 김형준동지, 한광상동지, 강종관동지, 김광철동지, 김경준동지, 양승호동지, 곽창식동지, 박광주동지, 박명수동지, 리봉춘동지, 송석원동지를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허철만동지, 리호림동지, 오일정동지, 김영환동지, 김일철동지, 김정호동지, 손영훈동지, 림광일동지, 최상건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직접 보선하였다. 장광명동지, 전현철동지, 심홍빈동지, 리태일동지, 최광일동지, 리완식동지, 리영철동지, 최춘길동지, 김학철동지, 김철동지, 박정근동지, 전학철동지, 조용덕동지, 신영철동지, 김승진동지, 문정웅동지, 리정길동지, 최성남동지, 전형길동지, 강선동지, 김영배동지, 김기룡동지, 신홍철동지, 김영남동지를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당중앙검열위원회 위원장 선거 및 위원 소환, 보선이 있었다. 리상원동지를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으로 선거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일부 부서 부장들을 해임 및 임명하였다. 리일환동지, 김형준동지, 최휘동지, 리병철동지, 김덕훈동지, 최부일동지, 허철만동지, 리호림동지, 한광상동지, 오일정동지를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임명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들을 임명하였다. 김동일동지, 리영길동지, 김여정동지, 리영식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임명하였다. 도당위원장들을 해임 및 임명하였다. 김영환동지를 량강도당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국가기관 간부들을 해임 및 임명하였다. 김일철동지를 내각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으로, 전학철동지를 석탄공업상으로, 전명식동지를 문화상으로, 김승진동지를 국가과학원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전원회의에서는 셋째 의정으로 당중앙위원회 구호집을 수정보충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결정하였다. 전원회의에서는 넷째 의정으로 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성대히 기념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해당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전원회의를 마치시면서 이번 전원회의가 조성된 국면을 정면돌파하고 우리 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상승시키는데서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은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려야 한다는것입니다. 다시말하여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우리가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리라는 꿈은 꾸지도 말아야 하며 사회주의건설의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을 오직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투쟁에서 객관적요인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 객관적요인이 우리에게 지배되게 하여야 합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가 제시한 과업관철을 위한 전당적인 접수토의사업을 실속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토의사업이 광범한 군중속에 접근되지 못하고 행사식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극복하고 회의사상을 그 집행의 직접적담당자인 당원대중에게 정확히 전달침투하여 이 과정이 곧 전 대오를 각성분발시키고 전원회의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사상동원과정, 작전과정, 임무분담과정으로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사상을 전달침투하는 사업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문제들과 전원회의과업관철을 위한 작전과 임무분담을 치밀하게 짜고들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모든 부문, 모든 단위가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구호만 웨치면서 빈말이 되지 않도록 각자의 임무를 똑똑히 확정하며 당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옳은 방법론을 세우고 실천적인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혁명가들이 혁명을 하자면 우리 인민으로부터 받는 값진 믿음을 생의 전부로 받아안아야 한다고 하시며 우리 인민과 같은 훌륭한 인민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충실하고 부지런한 인민의 심부름군이 되자는것을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는 시대가 부여한 중대한 임무를 억척같이 떠메고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활로를 열기 위한 영예로운 투쟁에 전당, 전민, 전군을 총궐기, 총매진시키는데서 혁명의 지휘성원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가려는 전체 참가자들의 비상한 정치적자각과 혁명적열의속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는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가 진행된 뜻깊은 장소에서 당중앙지도기관 성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의 지도밑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는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 향도자인 존엄높은 우리 당의 령도력과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불변침로따라 용진해가려는 우리 인민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과시하고 혁명위업의 정당성과 자기 힘을 굳게 믿고 나아가는 주체조선의 백절불굴의 공격정신을 만천하에 떨친 력사적인 대회로 우리 당과 조국청사에 찬연히 빛을 뿌릴것이다. 본사정치보도반
  • 北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서 전문 공개-주체혁명 불멸의 대강 1

    주체혁명위업승리의 활로를 밝힌 불멸의 대강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에 관한 보도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 인민군장병들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가 주체108(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되였다.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령도따라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새로운 승리를 앞당겨가는 력사적전환기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는 전대미문의 준엄한 난국을 정면돌파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리익을 끝까지 수호하며 자력부강의 기치높이 주체혁명위업승리의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불멸의 대강을 제시한것으로 하여 우리 당력사와 자주강국건설사에 특기할 사변으로 된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전원회의를 지도하시였다. 전원회의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들과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성, 중앙기관 일군들, 도인민위원장들, 도농촌경리위원장들, 시, 군당위원장들, 중요부문과 단위, 무력기관 일군들이 방청으로 참가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전원회의를 운영집행하시였다. 전원회의에는 다음과 같은 의정들이 상정되였다. 1.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당면한 투쟁방향에 대하여 2.조직문제에 대하여 3.당중앙위원회 구호집을 수정보충할데 대하여 4.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성대히 기념할데 대하여 전원회의에서는 첫째 의정이 토의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첫째 의정에 대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전원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지난 8개월간은 대단히 강도높은 투쟁과 과감한 전진의 련속이였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이 그 기간 항상 우리 인민의 절실한 요구와 권익, 국가의 자주권과 안전보장을 중심에 두고 정확한 대내외정치로선을 수립하고 견지하며 그를 관철하기 위하여 부단히 투쟁한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기치높이 용진하여온 우리의 전투적로정을 새로운 승리에로 계속해 이어가자면 혁명적진군의 보폭을 더 크게 내짚어야 하며 현정세의 추이와 우리앞에 나선 방대한 과제들은 현실에 대한 랭철한 판단에 기초한 적실하고 과감한 대책을 요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은 우리 혁명의 거창하고도 줄기찬 전진도상에 직면한 주객관적인 장애와 난관들을 전면적으로 심도있게 분석평가하고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한 결정적대책을 강구할 취지에서 이번 전원회의를 소집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현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정면돌파전을 벌릴데 대한 혁명적로선을 천명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긴장된 투쟁속에서 자립, 자력을 원동력으로 하는 우리의 주체적힘이 일층 강화되였다고 평가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사회주의건설의 일대 앙양기를 열어나갈데 대한 당의 호소따라 우리 국가와 인민이 난국을 맞받아 도도히 전진비약해나가는 강인한 기상과 막강한 잠재력을 크게 과시한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지난 몇개월동안 우리앞에 봉착한 도전은 남들같으면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고 물러앉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이였으나 그 어떤 곤난도 공고한 전일체를 이루고 굴함없이 나아가는 우리 인민의 돌진을 멈춰세울수도 지체시킬수도 없었으며 국가의 힘, 국방력강화에서 거대한 성과들을 끊임없이 비축한데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국방과학기술의 선진국들에서만 보유한 첨단무기체계들을 개발하는 방대하고도 복잡한 이 사업은 과학기술적측면에서 혁신적인 해결책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스스로 찾을것을 전제로 하였으며 이 모든 연구과제들은 주체적력량 즉 우리의 믿음직한 과학자, 설계가, 군수로동계급에 의해 완벽하게 수행되였습니다. 이는 위대한 승리로 되며 당에서 구상하던 전망적인 전략무기체계들이 우리의 수중에 하나씩 쥐여지게 된것은 공화국의 무력발전과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보위하고 담보하는데서 커다란 사변으로 됩니다. 첨단국방과학의 이같은 비약은 우리의 군사기술적강세를 불가역적인것으로 만들고 우리 국력의 상승을 더없이 촉진시킬것이며 주변정치정세의 통제력을 제고하고 적들에게는 심대하고도 혹심한 불안과 공포의 타격을 안겨줄것입니다.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수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게 되여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여있습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건설분야에서도 일련의 성과들이 이룩된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적대세력들의 악착한 제재로 말미암아 많은 제약을 받고 불리한 기상기후가 계속된 조건에서도 올해 농사에서 최고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없는 대풍이 마련된데 대하여서와 삼지연시꾸리기 2단계 공사가 결속되고 혁명전통교양의 중심지에 산간문화도시의 훌륭한 표준, 리상적인 본보기지방도시가 자랑스럽게 건설되였으며 중평남새온실농장과 양묘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이 우리 당의 구상대로 완공됨으로써 우리 인민들에게 선진문명의 창조물을 선물할수 있게 된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순천린비료공장건설, 어랑천발전소와 단천발전소건설을 비롯하여 전국의 여러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대상건설들도 면밀히 추진되고 금속, 석탄, 건재공업과 경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 거의 모든 부문이 현저한 장성추세를 보인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전국에 자력갱생경쟁을 호소한 강원도에서 당정책관철의 본보기적인 경험들을 계속 창조하고 평안북도를 비롯한 다른 도들도 경쟁적으로 농산과 축산, 교육과 보건, 지방공업발전에서 뚜렷한 실적을 올리고있는데 대하여 평가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이것은 전체 인민이 당의 부름따라 한사람같이 궐기해 견인불발의 증산운동, 창조운동을 과감하게 벌려온 위대한 투쟁의 필연적결과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성된 현정세의 추이를 분석하시면서 미국의 본심은 대화와 협상의 간판을 걸어놓고 흡진갑진하면서 저들의 정치외교적리속을 차리는 동시에 제재를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힘을 점차 소모약화시키자는것이라고 락인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그 무엇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것임을 더 굳게 결심하였다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과 배치되는 요구를 내대고 강도적인 태도를 취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조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여있다고 하시면서 근간에 미국이 또다시 대화재개문제를 여기저기 들고다니면서 지속적인 대화타령을 횡설수설하고있는데 이것은 애당초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문제를 풀 용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면초가의 처지에서 우리가 정한 년말시한부를 무난히 넘겨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수 있는 시간벌이를 해보자는것일뿐이라고, 대화타령을 하면서도 우리 공화국을 완전히 질식시키고 압살하기 위한 도발적인 정치군사적, 경제적흉계를 더욱 로골화하고있는것이 날강도 미국의 이중적행태라고 못박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는 결코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대화를 불순한 목적실현에 악용하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것이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환경이 절실히 필요한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수는 없습니다.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여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있습니다.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것입니다. 미국과의 장기적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세력들의 제재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힘을 보다 강화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습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적과의 치렬한 대결은 항상 자체의 력량강화를 위한 사업을 동반하며 자기를 강하게 만드는 사업이 선행되여야 주동에 서서 승리를 쟁취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력강화의 견지에서 볼 때 국가관리와 경제사업을 비롯한 이여의 분야에서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력갱생, 자급자족하자고 계속 말하고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우리의 사업은 지난날의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자립, 자강의 거창한 위업을 견인하고 추동하기에는 불충분하며 대담하게 혁신하지 못하고 침체되여있는 국가관리사업과 경제사업 등 현 실태에 대하여 분석하시였다. 오직 혁명임무를 스스로 걸머지고 수행하려는 높은 책임감, 오늘과 래일을 다같이 안고 정확히 개척해나가는 지혜와 용기만이 우리 위업을 성공적으로 떠밀어나갈수 있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의 령도체계가 확고히 서있고 전당이 사상정신적으로 통일되여있으며 인민들이 절실히 요구하고있기때문에 문제될것이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지도기관 성원들과 모든 일군들이 이번 전원회의를 계기로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존재하는 난관을 자기 사업에 내재하고있는 부족점들과 결부하여 심각히 분석해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정세하에서 사회주의강국건설에 기여하고있는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몫을 엄밀히 따져보고 락심하거나 동요함이 없이 무거운 과제를 억척같이 떠메고 완강히 돌진해나갈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고생과 투쟁이 없이는 위대한 승리를 가질수 없으며 혁명의 승리는 필연적이지만 그 어떤 장애도 곤난도 없이 성취되는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적대세력들의 제재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합니다.정면돌파전은 우리 혁명의 당면임무로 보나 전망적인 요구로 보나 반드시 수행해야 할 시대적과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제재해제를 기다리며 자강력을 키우기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다면 적들의 반동공세는 더욱 거세여질것이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자고 덤벼들것입니다. 우리가 자체의 위력을 강화하고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값진 재부들을 더 많이 창조할수록 적들은 더욱더 커다란 고민에 빠지게 될것이며 사회주의승리의 날은 그만큼 앞당겨질것입니다. 모든 당조직들과 일군들은 시대가 부여한 중대한 임무를 기꺼이 떠메고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적들의 제재봉쇄책동을 총파탄시키기 위한 정면돌파전에 매진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 이것이 오늘 전당과 전체 인민이 들고나가야 할 투쟁구호입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이라고 하시면서 나라의 경제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것을 현시기 경제부문앞에 나서는 당면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현시기 나라의 경제실태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국가경제의 발전동력이 회복되지 못하여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우게 좋아지지 못하고있으며 중요한 경제과업들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미약한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준엄한 난국에 부닥친 중대하고도 관건적인 시기에 경제부문의 대응이 기민하고 원만하지 못하고 자력갱생한다고 구호만 웨치면서 실지에 있어서는 인민경제의 자립적토대를 정비보강하는데 힘을 넣지 않고있는 페단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들을 들어 세세히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사업에 대한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실현하고 기업체들의 경영관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서 뚜렷한 전진이 없다보니 국가의 경제조직자적역할이 강화되지 못하였으며 경제전반을 정비보강하고 활성화하여 장성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사업에서 심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사업체계와 질서를 정돈할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가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경제사업체계와 질서를 합리적으로 정돈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공화국이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발전을 지향하고있는 오늘에 와서까지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림시적인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나라의 경제를 재정비하자면 결정적으로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는 심각한 현 실태를 엄책하시고 국가경제사업체계의 중핵인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도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내각은 현존경제토대를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하고 생산단위들도 활성화할수 있게 경제작전을 바로하고 조직사업을 치밀하게 짜고들어야 하며 당면하여 국가경제의 명맥과 전일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에서부터 내각의 통일적지도와 지휘를 보장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혁명적인 사상과 정신은 시대를 앞서나가야 하지만 경제사업은 현실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현실적요구에 맞게 계획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명확한 방안을 찾고 전반적인 생산과 공급의 균형을 맞추며 인민경제계획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높이기 위한 관건적문제들을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내각사업이자 당중앙위원회사업이고 당중앙위원회의 결정집행이자 내각사업이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전원회의이후부터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관리를 강화하는데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중한 문제들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하시였다. 경제발전을 추동하고 일군들의 역할을 높일수 있게 전반적인 기구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책과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신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그에 토대하여 경제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강하게 밀고나갈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하여 사회주의상업의 본태를 고수하면서도 국가의 리익과 인민들의 편리를 다같이 보장할수 있게 상업봉사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대책하기 위한 문제, 세계가 분초를 다투며 새 기술, 새 제품개발경쟁을 벌리고있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경제관리를 개선하는데서 불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정리할데 대한 문제, 국가관리와 경제사업에서 생산활동에 제동을 걸고 사업능률을 저하시키는 요소들을 빠짐없이 찾아 바로잡기 위한 문제, 국가적으로 전문건설력량을 확대강화하고 건설장비를 현대화하여 중요대상건설을 맡아 수행하게 하는 방향에로 나갈데 대한 문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현실성있게 실시하는 사업을 잘해나갈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전당적, 전국가적으로 강력히 추진하여야 할 경제장성의 관건적문제들에 대한 해결방향을 명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인민경제 주요공업부문들의 과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였다. 자립경제를 떠받드는 주요공업부문들에서부터 겹쌓인 난관을 정면돌파하고 실제적인 생산적앙양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금속공업, 화학공업, 전력공업, 석탄공업, 기계공업, 건재공업, 철도운수, 경공업부문들에 산적되여있는 페단들과 부진상태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시고 경제사업에서 진일보를 가져오기 위한 과학적이며 실질적인 대책들을 일일이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기 힘을 믿지 못하는 땜때기식투자, 자체의 잠재력에 의거하지 않는 하루살이식투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며 경제사업에서 그 어떤 진일보도 가져올수 없다고 하시면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망성있게 사업하는것이 혁명을 책임지는 마땅한 태도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나라의 경제를 안정적으로, 전망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10대전망목표의 지표별계획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타산하여 세우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 나라의 경제토대를 차곡차곡 공고히 다져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망목표가 확정되면 국가적으로 경제조직사업과 지휘를 짜고들고 전인민적인 생산투쟁과 창조투쟁을 맹렬히 벌려 그것을 반드시 점령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이라고 하시면서 농업부문에서 과학농법을 틀어쥐고 다수확열풍을 더욱 세차게 일으킬데 대하여 지적하시고 농업부문의 과학기술력량과 농업과학연구기관들을 튼튼히 꾸릴데 대한 문제, 농업과학기술인재육성사업에 힘을 넣을데 대한 문제, 농촌경리의 수리화를 더욱 완성하여 흉풍을 모르는 농업생산토대를 마련할데 대한 문제, 농산작업의 기계화비중을 높이고 나라의 농업토지를 한선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축산업과 과수업 등 농업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전환을 안아오기 위한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과학, 교육, 보건사업을 개선할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오늘 우리가 의거할 무진장한 전략자산은 과학기술이라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지금과 같이 경제사업에서 애로가 많을 때에는 과학기술이 등불이 되여 앞을 밝히고 발전을 선도해나가야 할것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조직들은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열어제껴야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이 승리하게 되며 강국의 리상과 목표도 오직 과학의 첨단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고심어린 탐구와 투신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다는 자각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 김정은 위원장 ‘육성 신년사’ 올해 없을 듯, 2013년 집권 이후 처음

    김정은 위원장 ‘육성 신년사’ 올해 없을 듯, 2013년 집권 이후 처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1일치 1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 대신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결과 기사를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김 위원장이 2013년 노동당과 국무위원회의 최고 자리에 올라 권력을 장악한 후 노동신문에 신년사가 게재되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날 평소보다 1시간 앞선 오전 8시 정규 방송을 시작한 조선중앙TV에도 예년과 달리 ‘신년사 예고’ 방송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는 오전 8시 45분쯤 북한 방송매체가 신년사 방송을 예고하고 오전 9시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 신년사를 내보냈다. 대신 올해는 나흘 동안 이어진 당 전원회의 결과를 기록영화 형태로 방영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매년 1월 1일 오전에 신년사를 발표해왔다. 육성 신년사를 녹화 중계로 내보낸 뒤 노동신문에 전문이 실렸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새해 분야별 과업을 제시하면서 통상 대내정책, 대남메시지, 대외정책 등의 순으로 구성되며 신년사에서 제시된 과업은 북한에선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절대적인 지침으로 여겨진다. 권력투쟁 등의 여파로 신년사 발표를 거른 해가 있긴 하지만 김일성 주석 때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거쳐 김정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년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가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이 거의 모든 신년사를 육성으로 발표한 반면, 김정일 위원장은 1995∼2011년 신년사를 노동신문과 청년전위, 조선인민군 3개지 공동사설 형식으로 게재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매년 육성 신년사를 발표한 김 위원장은 지난해 여러 개의 마이크가 놓인 단상 위가 아닌 서재를 연상케 하는 장소의 일인용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낭독하는 파격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올해는 북미교착과 제재 장기화라는 엄중한 국면에 진행된 이례적인 연말 ‘마라톤 전원회의’에서 결산한 내용으로 신년사를 대체할 것으로 추정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北김정은 “안전보장 위한 공세적 조치…자립경제 강화”

    北김정은 “안전보장 위한 공세적 조치…자립경제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에서 경제와 국방, 외교와 관련된 과업을 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통신은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 인민군장병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속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2일 회의가 12월 29일에 계속되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선노동당 위원장 김정은 동지께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정형과 국가사업전반에 대한 보고를 계속하시었다”고 밝혔다. 통신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조치들을 취할 데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대외사업 부문과 군수공업 부문, 우리 무장력의 임무에 대하여 밝혀주시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자주권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와 부문별 임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태도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강경노선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28일 열린 1일차 회의에서도 “현 정세 하에서 당면한 투쟁 방향과 우리 혁명의 새로운 승리를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도 높이 벌이며 근로단체 사업을 강화하고 전사회적으로 도덕 기강을 강하게 세울 데 대한 문제들”을 강조했다. 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동지께서는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도 높이 벌리며 근로단체 사업을 강화하고 전사회적으로 도덕 기강을 강하게 세울 데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었다”고 밝혔다. 무역의 자율화 등 일부 시장화 조치로 외부 문물이 유입되고 지속적인 경제난으로 흐트러진 사회 분위기를 다잡겠다고 기강을 확립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외교·국방 부문 외에도 국가 관리와 경제 건설을 비롯한 국가건설 전반에 대해 “전면적으로, 해부학적으로 분석하시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우리 혁명과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투쟁 방향과 그 실천적 방도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기하시었다”고 평가했다.통신은 김 위원장이 “나라의 자립경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들을 강구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고 전했다. 농업 부문에서는 생산력 향상을 위해 과학농사 제일주의를 내세울 것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또 과학연구 사업에 대한 정책적 지도 개선 방안, 교육부문과 보건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방안에 대해 과업과 방도들을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 증산 절약과 질 제고 운동을 통해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재해 방지대책을 철저히 세우자고 주문했다고 했다. 통신은 “2일 회의에서 계속된 조선노동당 위원장 동지의 보고는 대내외 형편이 그대로 분석되고 사회주의 건설을 전면적으로 촉진시켜나가기 위한 명백한 방도와 우리 당의 혁명적인 입장과 투쟁전략이 반영된 것”이라며 “전체 참가자들의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고 했다. 아울러 “전원회의는 계속된다”고 언급해 3일 차 회의가 30일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 전원회의가 이틀 이상 열리는 것은 김일성 시대 열린 노동당 6기 17차 회의(1990년 1월 5~9일) 이후 29년 만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北, 핵·ICBM 뺀 저강도 도발할 듯… 1월 8일·2월 8일·2월 16일 주목

    北, 핵·ICBM 뺀 저강도 도발할 듯… 1월 8일·2월 8일·2월 16일 주목

    레드라인 넘지 않고 무력 과시 가능성 美 강경 대응, 중러 무시 못해 리스크 부담 협상 문 안 닫고 특정 시기 무력시위 관측 軍 창건일에 신형무기 위력 과시 전망도 美, 北 ICBM 요격 가상 영상 공개 ‘경고’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너뛰고 내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앞둔 마지막 수순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면서 북미 협상 중단과 국방력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길’을 공식화한 뒤 이어질 중대도발의 수위와 시기, 변수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1일 회의가 지난 28일 진행됐다고 보도하며 ‘전략적 지위와 국력을 가일층 강화하기 위한 투쟁노선과 방략이 제시되게 될 전원회의’라고 언급한 것은,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 문제가 ‘새로운 길’의 주요 내용으로 논의됐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 7일과 13일 ICBM 엔진 시험장인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면서 ‘전략적 지위 변화’,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강화’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북한이 곧바로 ‘레드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인 핵·ICBM 실험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이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묵과할 수 없기에 북한으로선 리스크가 너무 크다. 북한이 ‘전략적 지위 강화’, ‘국방 건설’의 성과를 보이면서도, 국제사회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정도의 ‘저강도 무력시위’를 연초에 진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미 국방 당국자들이 이달 초만 하더라도 ICBM 시험발사 가능성을 두려워했으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단거리 미사일 또는 엔진 시험, 해군 훈련 또는 ‘맹렬한 연설’ 등 보다 제한된 것들에 대해 점점 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섣불리 레드라인을 건드려서 위기를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략적 지위’를 굳혀 나간다는 차원에서 ICBM 엔진 시험 등의 무력시위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전원회의와 신년사에서 북미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한동안 정세를 살펴보다 특정 계기에 무력시위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계기로는 김 위원장의 생일인 1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태양절) 등이 거론된다. WSJ는 일부 한국 당국자들이 2월 16일(광명성절)까지는 북한의 주요 무기 시험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했다. WSJ는 한국 측 판단에 대해 보고를 받은 한 인사가 “북한은 그(내년 2월 16일) 무렵까지 미국 협상 태도에 변화가 있을지 기다릴 것”이라며 “변화를 보지 못한다면 장거리 미사일 또는 잠수함 기반 미사일 발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생일보다는 국방력을 과시할 명분이 있는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에 무력시위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건군절과 같은 날에 대규모 퍼레이드를 하면서 올해 13차례 시험발사했던 신형 무기를 등장시킬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무력시위를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은 ICBM 발사를 가정한 홍보 영상을 공개하며 북한에 재차 경고를 보냈다. 지난 26일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가데나 미 공군부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평양 북쪽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지상 요격미사일로 대응하는 1분짜리 영상을 게재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北 중대도발 언제… 김정은·김정일·김일성 생일·건군절 거론

    北 중대도발 언제… 김정은·김정일·김일성 생일·건군절 거론

    북한이 군사도발 가능성을 내비쳤던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넘기고 ‘새로운 길’을 공식화할 내년 1월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앞둔 마지막 수순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면서 적어도 올해까지는 ‘중대 도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연초에 북미 협상 중단과 국방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길’을 공식화한 이후 미국의 대응에 따라 대응 수위를 점차 높여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중대도발의 시기와 변수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중앙통신 등이 29일 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1일 회의가 28일 진행됐다고 보도하며 ‘전략적 지위와 국력을 가일층 강화하기 위한 투쟁노선과 방략이 제시되게 될 전원회의’라고 언급한 것은,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 문제가 ‘새로운 길’의 주요 내용으로 논의됐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 7일과 13일 ICBM 엔진 시험장인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면서 ‘전략적 지위 변화’,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강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북한이 곧바로 ‘레드라인’인 핵·ICBM 실험 재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이 북한의 레드라인 침범에 따른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고,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도 핵·ICBM 도발은 묵과할 수 없기에 북한으로선 리스크가 너무 크다. 때문에 북한이 28일 전원회의 1일 회의에서 강조한 ‘전략적 지위 강화’, ‘국방 건설’의 성과를 보이면서도, 국제사회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정도의 ‘저강도 무력시위’를 연초에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7일(현지시간) 미국 국방 당국자들이 이달 초만 하더라도 ICBM 시험발사 가능성을 두려워했으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단거리 미사일 또는 엔진 시험, 해군 훈련 또는 ‘맹렬한 연설’과 같은 보다 제한된 것들에 대해 점점 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섣불리 레드라인을 건드려서 위기를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략적 지위’를 굳혀나간다는 차원에서 ICBM 엔진 시험을 하는 등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않을 정도의 무력시위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와 다음 달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북미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미국의 양보를 재차 요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할 경우 한동안 정세를 살펴보다 미국의 답에 따라 특정 계기에 무력 시위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정 계기로는 김 위원장의 생일인 1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은 2월 16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태양절) 등이 거론된다. WSJ는 일부 한국 당국자들이 김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기념하는 2월 16일(광명성절)까지는 북한의 주요무기 시험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한국 측 판단에 대해 보고를 받은 한 인사가 “북한은 그(내년 2월 16일) 무렵까지 미국의 협상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 기다릴 것”이라며 “(미국의 협상 태도에서) 변화를 보지 못한다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또는 잠수함 기반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생일보다는 국방력을 과시할 명분이 있는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에 무력시위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건군절과 같은 날에 대규모 퍼레이드를 하면서 올해 13차례 시험발사했던 신형 무기를 등장시킬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무력시위를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 공군은 북한의 ICBM 발사 상황을 가정한 홍보 영상을 공개하며 북한의 ICBM 도발에 재차 경고를 보내는 모습이다. 지난 26일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가데나 주일 미 공군부대는 SNS에 북한 평양 북쪽 지역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지상 요격미사일로 대응하는 약 1분 짜리 영상을 게재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사방에 포탄 터지는 소리… 지뢰 폭발로 잃은 다정했던 친구 잊지 못해”

    “사방에 포탄 터지는 소리… 지뢰 폭발로 잃은 다정했던 친구 잊지 못해”

    일시 1999년 5월 16일 장소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부산식당 대담 유세원(북구지대 감찰부장) 이경종(인천학생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원장 (이경종 큰아들)1950년 6월 25일 6·25 사변 이전 나는 화수동 281번지에서 살고 있었다. 인천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학생이나 젊은이들을 의용군(義勇軍)으로 막 잡아갈 때였다. 그때 나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화수동에서 친구들과 지하에 숨어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인공(人共/인민공화국의 약자)치하때 어려웠던 지하 땅굴 생활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유문길·사철순·문호영·이용운·허용환·김유득·이희중·신현남·정명돌·노영남·주억재·이상순·유세원’ 이었다. 이들이 후일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로 활동한 핵심 멤버들이었다. 1950년 9월 15일 어느 날 하루는 포탄 터지는 요란한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인천 앞바다에서 쏘아대는 함포탄이 인천 시내에 떨어지면서 터지는 소리였다. 그날이 1950년 9월 15일이었다. 이날 UN군과 국군이 인천에 들어와서 인민군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북구지대 우리들은 인민군 치하에서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호국활동을 하게 되었고, 인천학도의용대가 창설되어 북구지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그 해도 다 저무는 12월이 되면서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단체로 남하(南下)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었다.1950년 12월 18일 남하(南下) 1950년 12월 18일 남하 행진에 참여한 우리들은 안양, 수원을 거쳐서 기차 화물차 지붕에 올라타서 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밀양을 지나 마산에 도착 하였다. 마산에 도착해서는 어느 민가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가지고 내려왔던 여비도 다 떨어졌었다. 그런데 “해병대모집이 있다!”라는 소식이 있는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해병대 모집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들은 해병대 모집장소에 찾아갔다. 1951년 1월 3일 해병대 6기에 지원 해병대 모집 장소는 마산국민학교였다. 그때 시험관들은 우리들을 운동장에 쭉 세우더니 10명씩 조를 짜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게 하고는 1등부터 3등까지만 뽑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때 간단한 학과 시험도 있었다. 이날이 1951년 1월 3일쯤이었으며 그때 나는 합격 되어 마산에서 진해로 걸어가 진해경화국민학교에 들어갔다. 1951년 1월 24일에 우리들은 정식으로 해병대 6기 입대식을 하였다. 1951년 2월 10일이 되어 우리들 6기생 전 훈련과정을 마쳤으며 6기생 중 반수는 보병으로 가고, 그 당시 처음으로 해병대에 생긴 포병과로 반이 가게 되었다. 이때 나는 포병과로 배치받아 당시 진해에 있던 육군포병학교로 포병교육을 또 받게 되었다. 이때 포병학교를 마친 나는 다시 미(美)해병대에서 또 포병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후 나는 강원도 최전방으로 배치받았다. 처음 우리 해병대 포부대가 올라가 전투한 곳이 김일성고지와 스탈린고지였다. 그 당시 이 2 고지는 적의 수중에 있었는데 이때 우리 해병대가 뺏는 큰 전과를 올렸다. 1956년 9월 21일에 가서야 만 5년 8개월 만에 나의 파란만장한 군 생활을 마감하고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6·25 전사 인천학생 윤운철 1933년생으로 인천송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영화중학교(현재 대건중고교) 4학년생으로 마산에서 해병6기 입대하여 1951년 7월 17일 입대한지 6개월 만에 17세로 전사하였다.전사한 동네 친구 윤운철을 추모하며 인천에서부터 같이 학도의용대원으로 내려와 6기생으로 같이 입대한 윤운철은 입대한지 6개월 만에 전사했다. 당시 나는 전포대가 돼서 포를 쏘는 직책이고 윤운철은 포를 수호하기 위해 포 전면에서 보초를 서면서 포를 지키는 임무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임무를 한 윤운철은 척후 임무를 띠고 전면 숲속으로 가다가 대인지뢰를 잘못 밟고 그 지뢰 폭발로 전사하였다. 윤운철은 성격이 유하고 온순하며 남하고 이야기할 때에는 말을 가려서 하는 아주 다정다감하고 배려 많은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런 온순한 사람이 왜 먼저 하늘나라로 가야 했는지 안타까운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부디 이경종 이규원 2부자(父子)께서 하시는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발굴사업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란다. 글 사진 제공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관유세원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감찰부장 1933년 8월 5일 인천 동구 화수동 출생 1950년 6월 25일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감찰부장(용산중학교 5학년생) 1951년 1월 24일 해병대 6기로 자원입대 군번 : 9210591 병과 : 해병대 포병 1956년 9월 21일 만기 명예 제대
  • 정세현 “北, 연말 조용히 보낸다는 의미…성탄절엔 안 쏠 것”

    정세현 “北, 연말 조용히 보낸다는 의미…성탄절엔 안 쏠 것”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북한이 연말까지는 무력 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의장은 25일 tbs 라디오 ‘김어준 뉴스공장’에 출연해 “아마 연말에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점잖게 해를 넘기면서 내년 신년사에서 방향을 발표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발언의 근거로 지난 14일 박정천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한 발언을 언급했다. 당시 박정천은 “미국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은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해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도, 대결도 낯설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부의장은 “이건 ‘크리스마스 때 연말을 조용히 보내도록 해 주겠다’는 이야기이고, 안 쏜다는 이야기”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거친 언행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군인이 ‘대화를 낯설어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야기는 특이한 것”이라며 “대화라는 단어를 쓰길래 역시 판을 안 깨려고 하는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정 부의장은 또 “시기적으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중국 청두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24일쯤 쏘면 중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며 “북한은 앞으로 중국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 처지인 데다가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이번에는 안 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도 했다.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같은 방송에서 “지금 쏘면 1월 1일 신년사가 완전히 묻힌다”며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을 낮게 전망했다. 아울러 “북한이 선물을 줄 수도 있다고 한 것이 (국제사회에) 통했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도 했고 미국이 들썩거렸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에 제재완화 뜻을 드러내는 등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글로벌 In&Out] 북한군의 모체 철도경비대 어떻게 창설됐는가/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북한군의 모체 철도경비대 어떻게 창설됐는가/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북한 정부 수립 역사와 한국전쟁 연구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북한의 조선인민군 건설사다. 북한군이 북한 정부보다 먼저 창설됐으며 1949~1950년의 38도선 무장충돌과 한국전쟁에서 활동한 주요 무장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군 건설 과정은 북한 당국뿐만 아니라 소련, 중국 등 외부세력의 영향을 받은 극도로 복잡한 것이며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냉전 시기와 사료 부족도 북한 군사(軍史) 연구에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많은 연구자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료로 확인되지 않은 가정을 사실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북한의 철도경비대 창설이다. 1946년 1월 초에 창설된 철도경비대는 북한의 최초 무장조직 중 하나다. 현재까지 많은 연구에서는 철도경비대 창설의 주요 이유가 소련이 북한의 정규군 창설을 위해 합법적인 위장간판을 만들고 “은밀히 군사 목적의 병력을 확보,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랬을까? 소련 측 자료를 중심으로 북한 철도보안대의 창설 과정을 알아보자. 1945년 8월 소련군은 북한에 주둔한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면서 북한 동해안의 일부 도시를 해방시키고 남하해 나갔다. 진격하는 소련군과 해방된 조선인의 복수를 두려워한 많은 일본인 관료들은 가져갈 수 없는 선박, 열차, 궤도 등을 파괴하고 남한으로 도망갔다. 이 때문에 전후, 북한 철도 시설의 상태가 극히 불만족스러웠다. 일제를 격파하고 북한에 진출한 소련군 부대 일부의 철수, 전리품의 소련 운반 등에 바빴던 소련군이 철도 이용권을 독점한 것과 전쟁으로 인한 경제 손실 등의 이유로 경제 생활이 극히 어려워진 북한 주민들이 불만을 품게 됐다. 그 결과 1945년 11월 말 나진시에서 일제 탄약을 소련으로 운반하는 열차 방화(放火) 사건이 발생했다. 그 폭발로 인해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북한 철도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게 된 소련군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945년 12월 북한 민정청 교통국 대표인 예고로프 상위가 민정담당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에게 만주에서 열차를 보내는 것과 함께 2개 철도운영연대, 그리고 철도경비를 위해 2개 내무인민위원부(NKVD) 철도경비연대를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 2차 세계대전 종결로 인해 대규모의 제대를 실시한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약 5000명 규모의 병력을 추가적으로 북한에 파견할 수 없었다. 1946년 초 조선인들로 구성된 철도경비대를 조직했고 이를 민정청 보안국 경비부 철도과로 편입해 운영하다가 1946년 7월에 보안국에서 철도경비사령부로 독립시켰다. 1946년 3월 백의사 등 테러단체가 소련군인과 북한정치가들을 상대로 일으킨 일련의 테러행위를 계기로 소련이 북한경찰을 준군사화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군사고문단을 파견했으나, 철도보안대는 군사교육을 받지 못하고 철도경비를 계속 수행했다. 1946년 12월 말 북한 부대의 현황조사를 진행했던 소련 군사고문단 정치 담당 고문 카넵스키 대좌는 북한 철도부안대의 상태를 ‘불량’이라고 평가했다. 이 상황에 대해 불만을 느낀 김일성은 1947년 3월에 제25군 사령관에게 직접 보낸 편지에서 철도경비대가 군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철도경비 임무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철도경비를 위해 북한 철도경비대를 이용해 온 소련군은 진퇴양난이었다. 김일성 요청을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하기 위해 제25군 사령부는 “조선인들이 경비하는 철도 시설 지도를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1947년 중순이 돼서야 북한 철도경비대가 북한군에 편입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 [포토] 北 양덕온천문화휴양지 건설 현장의 인민군대

    [포토] 北 양덕온천문화휴양지 건설 현장의 인민군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4일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문화휴양지 건설 과정 사진 23장을 공개했다. 신문은 “당의 부름에 산악같이 일떠서 빈터나 다름없던 산간벽촌에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세계적인 온천문화휴양지를 떠올린 인민군대의 그 정신, 그 기백이면 극복 못할 난관이 없다”라고 보도했다. 양덕온천 건설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삼지연군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진한 역점 사업 중 하나다. 최근 완공되면서 북한이 올해 건설 성과 중 하나로 내세우며 선전을 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유엔사(司), ‘고스트 아미’?

    [이해영의 쿠이 보노] 유엔사(司), ‘고스트 아미’?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죽은 자들의 군대가 등장한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 아라곤을 도와 승리를 이끌었다. 아라곤이 명한다. “그대들의 맹세가 이행됐으니 이제 편히 안식을 취하라.” 그러자 이들의 왕이 앞으로 나와 아라곤에게 정중히 절을 한다. 그리고 ‘고스트 아미’는 아침안개처럼 사라진다. 유엔군은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자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참전했고 1953년 정전협정에 조인한 그 군대다. 그렇다면 이 유엔군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경의선 철도 연결을 위한 남북공동조사 때에, 남북한 군사적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에 경계초소를 없애고 긴장을 완화하자는 데에도 문득 유엔사가 등장해 제동을 걸었다. 이뿐이 아니다. 타미플루 대북지원사업에, 우리 통일부 장관이 고성 통일전망대를 방문할 때도 등장해 길을 막았다. 이제는 마땅히 안개처럼 사라져 안식을 취하고 있을 거라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역사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섰다. 역할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런 고스트 아미가 아니라 좀 막무가내다. 유엔군의 역할은 1953년 유엔군 사령관과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 간에 체결된 정전협정문에 나와 있다. 제1조 9항과 10항이다. “9.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고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비무장지대에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 10.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 즉 유엔군 사령관은 정전협정에 근거해 일반인의 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 가로 248㎞, 세로 2㎞ 공간에 대한 출입통제권을 갖는다. 단 군사정전위 허가를 받은 자와 ‘민간행정 및 구제사업’ 관련 인원은 예외다. 유엔군 사령관의 이 ‘책임’의 범위 등에 대한 별도의 구체적 규정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1조 17항을 보면 이렇다. “본 정전협정의 조건과 규정을 준수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본 정전협정에 조인한 자와 그의 후임 사령관에게 속한다.” 곧 ‘정전협정의 조건과 규정을 준수·집행’하는 책임이다. 그런데 이 협정문의 전부에 적용되는 ‘서언’은 이렇다. “이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purely military in characker)에 속하는 것”이다. 즉 유엔군 사령관의 책임과 권한은 ‘순전히 군사적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군사적이지 않은 것, 비군사적인 것은 어찌 되는가. 이 역시 서언에 실마리가 있다.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하는 것이 협정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전협정문의 모든 조건과 규정의 목적은 무력행위의 완전 중단을 통해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에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 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행위는 유엔군 사령관의 책임과 권한 범위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그가 간섭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비무장의 통일부 장관이 수행원 및 해외 방문단과 함께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는 것이 ‘군사적’ 행위인가? 문제의 심각성은 또 있다. 2018년 9월 17일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가 유엔 사무국에 한국 주재 유엔사의 법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답변을 요구했을 때, 사무총장을 대신해 로즈메리 디카를로 사무차장은 아래의 취지로 답한다. 한국전이 발발했을 당시 유엔 결의에 의해 미군이 중심이 돼 유엔참전국을 지휘하도록 결의한 바는 있으나 유엔사는 미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성됐으며, 휴전 이후 단 한 번도 미국으로부터 유엔사에 대해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협의를 요청받은 사실도 없다. 자신이 파악하는 한 유엔과 유엔사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즉 ‘현재’의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도 ‘기구’(body)도 아니며, 유엔의 ‘지휘’나 ‘통제’하에 있지도 않고, 안보리의 ‘보조기구’(subsidiary organ)도 아니며 유엔 예산 지원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 유엔군은 유엔군이 아니라는 이 지극히 불편한 진실을 직면해야 하는 우리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뒷목이 당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고스트 아미가 DMZ 이남에 대한 관할권(jurisdiction), 곧 주권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의 민낯은 ‘주한유엔군 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한미연합사 사령관’이라는 거룩한 삼위일체를 직시할 때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 北 “자위적 국방력 강화”… 한반도 안보 ‘슈퍼위크’

    北 “자위적 국방력 강화”… 한반도 안보 ‘슈퍼위크’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회의 직접 주재 연말 시한 이후 ‘새로운 길’ 수순 관측 ICBM 관련 결정 이뤄졌을 가능성도 오늘 한중정상, 내일 한일정상 연쇄회담 北 중대도발 억제할 단초 마련할지 주목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정, 공표한 ‘연말 비핵화 협상 시한’ 종료를 눈앞에 두고 직접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해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문제를 토의했다고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북한이 지난 3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급하며 25일 전후에 무력 시위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가운데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연말 시한 이후 군사력 증강과 실력 행사 등 ‘새로운 길’을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1일 중일 정상과 연쇄 전화 통화를 하며 북한의 군사 도발을 견제하고 나섰다. 이르면 이번 주 북한이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고 ‘새로운 길’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23~24일 한중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됨에 따라 이번 주가 북핵과 한반도 문제를 가를 ‘운명의 한 주’가 될 전망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3차) 확대회의를 지도하시었다”며 “국가방위사업 전반에서 결정적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중요한 문제들과 자위적 국방력을 계속 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문제들이 토의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조성된 복잡한 대내외 형편에 대해 분석 통보했다”며 “정세변화 흐름과 우리 혁명발전의 관건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비롯한 나라의 전반적 무장력을 군사정치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조직정치적 대책들과 군사적 대책들을 토의결정하며 조직문제를 취급할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 앞서 ▲북미 협상 중단 ▲경제적 자립 ▲군사력 증강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길’을 내년에 공식화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신은 ‘자위적 국방력 발전 문제’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김 위원장이 회의에서 ‘대내외 형편’을 분석통보했다는 점으로 미뤄 ‘연말 시한’ 이후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재개 등 실력행사 계획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검토되고 다음달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북한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신년사를 앞두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며 “신년사에 ‘새로운 길’과 관련해 대내적으로는 자력갱생, 대외적으로는 중러 중심의 국제연대, 군사적으로는 핵무력 강군화가 강조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8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중국을 방문한다. 문 대통령은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베이징) 및 리커창 국무원총리(이하 청두), 24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개별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중일 회의에 참석한다. 특히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는 중국의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중대도발을 억제할 단초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北 ‘도발’ 언급은 없었지만…자위력·軍출신 앞세운 김정은

    北 ‘도발’ 언급은 없었지만…자위력·軍출신 앞세운 김정은

    “전반적 무장력 강화 위한 군사적 대책 결정”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말 시한’을 앞두고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주목된다. ‘도발’을 예고하는 거친 표현은 없었지만,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군 출신을 앞세운 점에서 최근까지 거듭 강조해온 ‘새로운 길’을 우회적으로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2일 “김정은 동지께서 확대회의를 지도하시었다”며 “국가방위사업 전반에서 결정적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중요한 문제들과 자위적 국방력을 계속 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문제들이 토의되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조성된 복잡한 대내외형편에 대하여 분석통보하셨다”며 “정세변화 흐름과 우리 혁명 발전의 관건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비롯한 나라의 전반적 무장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조직정치적 대책들과 군사적 대책들을 토의·결정하며 조직문제를 취급할 것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또 통신은 “당의 군사 전략적 기도에 맞게 새로운 부대들을 조직하거나 확대 개편하는 문제, 일부 부대들을 소속 변경시키는 문제와 부대 배치를 변경시키는 중요한 군사적 문제와 대책들이 토의결정되었다”고 말해 이번 회의에서 군 조직개편이 대폭 이뤄졌음을 알렸다.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한 확대회의 현장사진을 보면 한 줄에 10명씩 70여명이 착석했다. 맨 앞줄에는 김수길 군 정치총국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정경택 국가보위상, 최부일 인민보안상, 박정천 총참모장, 서홍찬 인민무력성 제1부상, 손철주 군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조경철 군 보위국장, 리만건 당 부위원장 등이 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통일부가 올해 4월 북한정포포털에 게시한 권력기구도상 중앙군사위원회 명단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4월 20일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과를 반영한 이 명단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총 14명이 이름을 올렸다.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리명수 군 최고사령부 제1부사령관,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부일 인민보안상, 김수길 정치총국장, 리영길 전 총참모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리병철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정경택 국가보위상, 서홍찬 후방총국장, 장길성 정찰총국장, 황병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었다. 올해 4월 통일부가 공개한 중앙군사위 명단에 나온 인물이 이번 확대회의 맨 앞줄에 앉은 것은 김수길·노광철·정경택·최부일·서홍찬 등 군 소속 5명 안팎에 그친 것이다. 당연히 포함됐을 것으로 보였던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나 내각 총리 등 군부 인사가 아닌 인물들은 모두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지난 9월 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에서 군 총참모장이 된 박정천의 얼굴이 맨 앞줄에 보이는 점에서 그가 새로 군사위원에 임명됐을 가능성이 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국사분야 사업을 총괄하는 기구다. 정치인을 제외하고 군부 핵심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북한이 앞으로 강경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이 거듭 언급한 ‘새로운 길’ 노선에서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낮아져다는 뜻도 된다.다만 통신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일부 위원들을 소환, 보선하였다”며 “무력기관의 일부 지휘성원들과 군단장들을 해임 및 조동(전보), 새로 임명할 데 대한 조직문제(인사)가 취급되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인사 결과를 소개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회의 개최 날짜와 정확한 장소도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관영매체들이 통상 주요 회의 다음 날 관련 소식을 보도한다는 점에서 21일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장소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집무실로 추정된다. 이 집무실은 지난 1월 1일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했던 곳이다. 본부청사는 우리로 치면 ‘청와대’처럼 최고지도자를 위한 공간이다. 김 위원장은 본부청사에서 지난해 9월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3차 정상회담을 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5월 제7기 1차 중앙군사위 회의는 같은 해 4월 노동당 제7기 4차 전원회의 이후 한 달 만에 열었다. 4차 당 전원회의는 6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고 이어진 1차 중앙군사위 회의에서는 전원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 전원회의에 앞서 국방과 군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어 당 전원회의에서 대미 외교와 국방 및 군사 정책의 큰 그림과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北, 한밤 7분 도발…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 가능성도

    北, 한밤 7분 도발…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 가능성도

    ‘10시 41분~48분 중대실험’ 시간 발표 이례적 “1단엔진은 127초 연소 그쳐… 7분이라면 2단” 2단 추진체 시험해 ICBM 기술 향상 노린 듯북한이 지난 7일에 이어 엿새 만에 ‘중대 시험’을 진행하면서 엔진 연소시험의 목적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고도화인지 정찰위성 발사용 대형로켓 개발인지 관심이 증폭된다. 박정천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남한 합참의장 격)은 지난 14일 담화에서 “국방과학연구시험의 귀중한 자료들과 경험,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위협을 견제·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면서도 ‘전략무기’의 정체는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북한이 이례적으로 ‘13일 오후 10시 41분부터 48분까지 7분간 시험을 진행했다’고 시험 지속시간을 구체적으로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7분은 북한이 사용했던 ‘백두산 엔진’에 비하면 연소시간이 길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ICBM용 1단 엔진에 이어 액체연료 2단 엔진을 시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ICBM 1단엔진은 127초가량 연소한다”면서 “(7분을 고려하면) ICBM 발사를 위한 2단 엔진을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단 추진체는 엔진을 켰다 끄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방향과 속도를 바꾸는 능력에 중점을 둔다. 북한이 이 능력을 시험해 ICBM 기술의 정밀도를 향상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진행했던 1단 액체엔진을 재시험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은 현재 신형 엑체엔진 또는 기존 백두산 엔진을 클러스터링(결합)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만약 북한이 개발하는 액체엔진을 처음부터 완전한 연소를 하면 녹아버리는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처음 시험은 가볍게 하고, 두 번째는 첫 실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완전히 연소를 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대다수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새 ICBM 개발을 위한 엔진 성능 개량을 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 신형 액체엔진 또는 백두산 엔진 클러스터링 기술을 시험해 추진력을 높여 더 커진 신형 ICBM을 개발하는 움직임이란 것이다.이와 관련, 북한은 이미 화성 14·15형을 통해 ICBM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만큼 마지막 관문인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을 위한 시험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사일이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진입하도록 하는 기술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에서 가장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북한은 아직 완전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의 책임자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트윗에서 “7분은 모터 분사·연소보다는 재진입체 시험처럼 들린다”고 밝혔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도 “만약 북한이 위성발사체가 아닌 ICBM으로 방향을 설정했다면 가장 시급한 재진입체 기술을 우선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기권 재진입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엔진 뒤쪽에 탄두를 놓고 최대한 가열하며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지 검증했을 수 있다”고 했다. 미연소 가스를 재활용해 엔진 효율을 높이는 방식인 다단연소사이클 액체엔진을 시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방형 사이클 방식에 비해 연소 효율이 약 10% 정도 높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확실하게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이라고 발표했으니 ICBM 관련 엔진 시험임에 틀림없다”며 “여전히 고체(연료)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다단연소 사이클 액체엔진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던진다”고 했다. 반면 정찰위성 발사용 대형 로켓을 개발하려는 목적이라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미 두 차례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해 성공했다고 평가한 북한이 다음 수순으로 위성체를 발사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시험이 2단 엔진이고 인공위성이라고 한다면 7분 (연소)시간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핵 카드 꺼낸 北… ICBM 2단엔진 시험한 듯

    핵 카드 꺼낸 北… ICBM 2단엔진 시험한 듯

    엿새만에 또… “서해발사장 중대시험” 비건 방한 앞두고 도발… 연말시한 압박 北 “美, 언행 삼가야 편해”… 대화 여지도북한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두 차례나 ‘핵’을 언급하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최종 결렬 시 선택할 ‘새로운 길’이 핵 능력 고도화에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평북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13일 22시 41분부터 48분까지 중대한 시험이 또다시 진행됐다”고 발표하고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4일 밝혔다. 이어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도 같은 날 밤늦게 담화문을 통해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 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과학원은 지난 7일 진행한 ‘중대한 시험’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사항은 밝히진 않았으나 두 번째 시험에선 ‘핵 억제력’을 강조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사일 엔진과 관련된 시험으로 관측된다. 15일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의 두 차례 엔진 연소시험이 ‘신형 ICBM 2단엔진’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북한이 연말 시한 이후 선택할 ‘새로운 길’은 핵 능력 고도화라는 점을 노골화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박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미사일 실험이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 핵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ICBM 등으로 미국 영토를 타격할 가능성이 있다면 미국이 쉽게 북한을 선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다. 박 총참모장이 “힘의 균형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진정한 평화를 지키고 우리의 발전과 앞날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한 것도 핵 억제력 논리의 연장선상이다. 핵·미사일 실험의 중단은 지난해 4월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 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선제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로 자랑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핵 억제력 차원에서 미국을 위협할 ICBM의 성능 향상을 해왔으니 대화와 대결 모두 다 준비가 되어 있고 연말 시한 안에 미국이 선택하라는 경고”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ICBM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연말 시한까지 대화를 통해 ‘새로운 길’의 수위를 조정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총참모장이 미국을 향해 “그 어떤 언행도 삼가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 여지를 남겼다는 해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 개발 재개 결정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것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자위적 국방력 차원에서 무기 개발에 역점을 두겠다’는 정도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인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를 접견한다. 문 대통령이 차관급 지명자인 비건 대표를 단독 접견하는 것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인 9월 11일 이후 두 번째다. 그만큼 한반도 정세가 중대 갈림길에 섰다는 의미다.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비건 대표는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숙소로 떠났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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