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민군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42
  • 전 북한 반체제 인사·재소 교포 18명 어제 서울에

    강상호 전북한내무성차관 등 북한에서 고위층인사였던 재소교포 18명이 18일 하오4시55분 대한항공 703편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이들은 모두 북한에서 고위층인사로 지내다 숙청된뒤 소련으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들로 8박9일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철원일대의 격전지와 포항제철 등 주요산업시설을 돌아본뒤 오는 26일 모스크바로 돌아갈 계획이다. 문화방송의 초청으로 온이들 일행은 앞으로 강영훈국무총리 등 정부관계자를 예방하고 「MBC시사토론」 「통일전망대」 등 TV방송에 출연,6·25때의 숨은 비화 등을 공개증언할 예정이다. 이들 가운데는 전 인민군장성 심수철(69),전북한문화성차관 정상건(73),전북한 「새조선」잡지주필이자 전북한문화성국장 송진파(76),전북한내무성소장 박병윤(82)씨 등이 포함돼 있다. 또 현재 타슈켄트 농대교수로 있는 니콜라이(78),전소련모스크바건축대학부총장 김니콜라이(78),타슈켄트문화대학총장 한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57)씨 등 재소한인사회의 유력인사들도 함께왔다. 강전내무성차관은 이날 공항에서 『6·25가 남침이라는 역사적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왔다』면서 『이곳을 찾은 일행대부분은 지난 59년 스탈린격하운동당시 소련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빨치산훈련소였던 전강동학원원장 박병윤씨도 이날 『김일성이 도발한 6·25의 역사적사실 대부분이 북한에서 날조,왜곡되고 있다』면서 『이번 방한기간동안 숨겨진 사실이 많이 폭로,증언될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소 정상회담이 통일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재 소련에서는 각종 매스컴에 남한에 관해 자세히 보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 “비,북한과 수교 검토” 아키노

    【마닐라 AFP 연합】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은 18일 필리핀과 북한과의 접촉은 비공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필리핀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필리핀 외무부는 16일 북한 부총리겸 무역부장 김달현이 서명한 북한의 서한내용을 공개했는데 이 서한은 북한이 필리핀과 쌍무적 외교관계를 맺을 준비가 돼 있으며 필리핀 공산반군인 신인민군(NPA)과의 관계를 단절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키노 대통령은 18일 이와관련,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필리핀과 북한과의 접촉은 비공식적인 것이었으며 필리핀 외무부는 양국간의 공식관계수립 가능성을 중요한 문제로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비에 수교 제의/“공산게릴라와 관계 단절 용의”

    ◎아키노에 공식 서한 【마닐라 AFP 연합】 북한은 코라손 아키노대통령에 보낸 공식 서한을 통해 필리핀과 외교관계를 열 것이며 필리핀내 공산 게릴라인 신인민군(NPA)과의 관계를 단절할 용의가 있다고 말할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필리핀 외무부는 이날 북한 부총리겸 무역부장 김달현이 서명한 북한측의 서한내용을 공개했는데 김은 이 서한에서 북한정부는 필리핀과 통상ㆍ경제ㆍ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친 양국관계를 시작,촉진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의도를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앞서 필리핀 하원의 호세데 베네시아의원과 미구엘로메로의원이 이끄는 의회대표단이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뒤 공개된 이 서한에서 김은 또 이들 필리핀 의회대표단을 통해 북한측에 전달된 필리핀 신인민군(NPA)과 접촉하거나 지원을 하지 말라는 필리핀측 제안에 동의하도록 북한정부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밝혔다.
  • 「김일성 독전 명령서」등 첫 공개/공보처

    ◎「6ㆍ25」 40돌 맞아 「한국전쟁」 펴내/수송ㆍ전투계획등 남침준비 한눈에/미공개 미국 무성자료 8점도 수록 공보처가 6ㆍ25 40주년을 맞아 6ㆍ25의 민족사적ㆍ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9일 펴낸 「실증자료로 본 한국전쟁」에 실린 자료중에 북한의 남침준비ㆍ전투훈련ㆍ수송계획ㆍ독전명령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공개자료가 8점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북한의 남침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발간된 이 책자의 자료들은 그동안 전사편찬위원회ㆍ미국무성 및 미의회도서관ㆍ조지 타운대도서관에서 소장해 오던 것이다. 이 책자에 실린 미공개자료를 연대별로 살펴본다. ①46년 7월1일부터 3일까지 개최된 「북한보위국(내무성)회의록」. 이 회의록 목록 6번째에는 소련군 「주구루잔 대좌의 지시」가 포함돼 있는데 당시 북한이 소련의 지휘아래 있음을 밝혀주는 것으로 볼수 있다. ②북한군이 작성한 「1950년 하기전투 정치훈련계획표」. 부대장 안일성과 부부대장 조인석 명의로 된 이 계획표는 6ㆍ25남침을 준비하기 위한 훈련임을 보여주고있다. ③「371군부대 참모부명령」 50년 6월8일 철원에서 제00118호로 대대전술훈련실시에 관해 하달된 명령서에는 「포병부상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50년도 하기전 훈련계획을 일부 개정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대대계획표를 하달하면서 이를 원만히 진행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명령한다(중략). 군관 및 하사관 훈련은 이미 하달된 계획표대로 실시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④⑤「철도수송에 대한 명령서와 열차적재계획」 특히 50년 6월15일 남포에서 작성된 제466군부대 철도수송에 관한 명령의 전문에는 「현하조국이 조성된 정치정세하에서 우리 부대는 금번 보위성에 실시하는 하기 대연습에 참가하기 위하여…(이하 생략)」라고 쓰여있어 북한군이 치밀한 수송계획을 세워 병력과 보급품을 운송했음을 알 수 있다. ⑥북한보위성 전투훈련국이 50년 8월5일 작성한 「단기정치훈련계획」. 11번째 줄에 「우리조국을 통일시킬 시기는 왔으며 승리는 반드시 우리 인민들 편에 있을 것이다」고 명시돼 있다. ⑦⑧북한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이 후퇴하는 인민군에게 전열재정비를 지시한 「독전명령서」와 북한인민군 총정치국장 박헌영이 김일성의 독전명령서 집행을 위해 하달한 지령서. 김일성의 「명령서」(50년 10월14일작성) 서두에는 「지난 6월에 미제국주의자들의 지시에 의하여 우리 조직에 동족상쟁의 내란을 도발시킨 이승만 괴뢰군의 불의의 공격을 받고…」 운운해 6ㆍ25남침을 북침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 책자에는 이밖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성명서(41년 12월10일) ▲태극기가 걸려있는 48년 5월1일의 북한노동절행사 ▲인민군 총사령부가 50년 6월18일 각사간에 하달한 러시아어 정찰명령1호 ▲우리 6사단의 방어계획 ▲6ㆍ25당시 우리 주민진술서 등 6ㆍ25전후의 희귀한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공보처는 이 책자가 정치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보고 시판도 계획하고 있다.
  • 6월의 전쟁과 평화/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미국은 아직까지 15년전의 월남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전 당사자간의 정치적 협상에 의한 종전이며 미국으로서는 그에 따른 전략적 철군인 것이다. 건국이래 나라밖의 어떤 전장에서건 결코 패배해 본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그들에게 월남전은 두번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전쟁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미국에 있어 40년전 6ㆍ25 한국전쟁은 어떤 것인가. 「한국전쟁을 가리켜 『이상한 시기에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하게 일어난 전쟁』이라고 지적한 이가 있었다. 그럴듯한 표현같지만 기실 그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자체가 정상이 아닌 비상이며 이상인 까닭이다. 오늘의 미국을 대표하는 부시대통령의 6ㆍ25관은 이러하다. 『한국전은 공산주의의 조류를 최초로 되돌린 전쟁이었으나 역사에 의해 종종 무시되어 「잊혀진 승리」로 불려진다』「잊고 싶은 전쟁」(월남전)과 「잊혀진 승리」(한국전)란 표현은 그들이 밖에서 치른 전쟁이란 한 「대상」의 앞뒤면을 설명해준다고 해도 좋다. 해방후 한반도 북쪽에서 김일성이 손쉽게 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던 이유를 현대사가들은 다음 4가지로 꼽는다. 즉 첫째 뛰어난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서울에 모여있었다. 둘째 다른 당파들은 서울이나 평양에서 모두 분열,쟁투하고 있었다. 셋째 그가 북의 군과 정보를 장악했다. 넷째 소련 진주군이 그를 한가닥으로 밀었다는 점 등이다. 그 정도의 호재를 갖는 여건위에 남한에서 미군마저 철수하자 그 힘의 공백을 틈타 김일성은 남침을 감행할 수 있었다. 사실이 그러한 터에 지금에 와서 6ㆍ25가 「민족해방전쟁」이며 「북침에 의한 것」이거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도발전」이라는 검증될 수 없는 가설이 한때나마 유행처럼 언설됐던 것은 객관적으로도 결코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된 것은 6ㆍ25 사흘후인 6월28일 이었다. 그래 세상에 어느 멍청한 정권이 자기네 수도가 사흘만에 거꾸로 적의 수중에 떨어질 정도의 모험을 안고 「침략전쟁」을 일으킨단 말인가. 대개 무기를 갖고는 평화를 얘기하기 못한다. 인간의 정신과 의지만이 평화를 만들 수 있다. 그 평화는 헌장이나 협정만으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사람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착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증오에 앞서 평화에의 간절한 소망과 기대 속에서 만나고 다짐해야 한다. 이 화사한 성장의 계절에 왜 6ㆍ25를 얘기하는 가는 묻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모순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의 분단상태가 해소되지 않고는 해마다 6월에 우리들은 전쟁과 평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경구가 있다. 상대가 문제해결 수단으로 무력을 택한다면 군축이나 협상에 의한 평화유지는 어렵다. 그렇다면 전쟁수행 능력을 기르지 않을 수 없다. 옛말에 일렀다. 나라가 비록 크나 싸움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비록 편안하나 싸움하는 방법을 잊으면 반드시 위험하다(국수대 호전필망 천하수안 망전필위). 평화를 얘기하고 전쟁을 논할즈음 「좋은 전쟁」이니 「나쁜평화」니 하는 말은 의미가 없다. 전쟁은 전쟁이고 평화는 평화일 뿐이다. 평화와 전쟁,전쟁과 평화는 흔히 대립개념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평균적인 이미지를 살펴보면 그둘은 반드시 대립개념은 아니다. 교전 당사자간의 투쟁을 전쟁이라 할 때 전쟁의 개념은 명백해지지만 평화의 개념은 그렇지 못하다. 평화란 전쟁과 관련되면서도 매우 추상적인 데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중세유럽에서의 평화개념이 오히려 오늘의 그것보다 더 명료하다. 즉 『일반적으로 어느 지역이 평화롭다는 것은 그 지역민중이 공유하는 환경의 이용가치가 외부의 폭력적 간섭으로 손상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세적 개념의 평화란 단순히 영주간에 전쟁이 행해지고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민중이 자신의 문화를 유지해 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ㆍ정신적 기반 즉 「생존의 보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직접적인 전쟁의 상흔이외에 6ㆍ25가 우리에게 남긴 더큰 상처는 분단의 굴레를 우리민족 가슴속에 깊이 내면화 시킨데서 더나아가 전쟁과 평화,평화와 전쟁에 대한 위기적 인식을 생활화 시켰다는 점이다. 그나마의 「생존의 보호」가 언젠가 송두리째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전쟁신드롬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판문점ㆍ휴전선ㆍ국립묘지와 저 소모적인 콘크리트 장벽 논쟁ㆍ땅굴 등 6ㆍ25의 전쟁적 실체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지금 이 평화적 생존의 보호에 대해서는 언제나 초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즘 모두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사라져가고 있다고들 얘기한다. 6ㆍ25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1950년 6ㆍ25당시 소련에 있어 한국은 미국의 대소전방 기지였다. 원래 북한정권의 수립을 직접 주관했고 한국전쟁에서도 북한을 지원했던 그 소련의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을 만난 것은 소련이 더이상 한국을 미국의 대소전초기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쪽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자연의 산세는 골이 깊어 수림이 무성하다지만 인간사에선 상처가 크면 치유도 오래갈수밖에 없다. 6ㆍ25가 아직도 그 자체로서 역사적 인식이나 평가 또는 전쟁사적 해석에 있어 미진한 채로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6ㆍ25의 피맺힌 상처는 우리가 그것을 한과 증오의 대상으로서 보다 민족과 역사의 교훈으로 살려야만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은 그래서 6월엔 아무래도 전쟁과 평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소 공군대표단 방북

    【도쿄 AFP 연합】 소련 공군대표단 일행이 4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의 관영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중앙통신은 이날 평양에 도착한 소련대표단일행이 조선인민군 홍성렬중장과 보리스 모로조프 평양주재 소련대리대사의 영접을 받았다고 전하면서 소련대표단 단장은 소공군 제1부참모총장이며 참모장인 발렌틴 판킨장군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소련 공군대표단일행의 이번 방북은 관계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한 전례없는 한소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가운데 이뤄진 것으로 북한 외교부는 이와 관련,한소정상회담은 한반도분단을 영구화할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 비,북한과 수교 추진/반군지원 중단조건/의원2명 곧 평양방문

    ◎“작년 가을 첫 접촉” 비 외무 【마닐라 AFP 연합】 필리핀은 북한과의 외교관계수립 가능성을 은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라울 망글라푸스 필리핀 외무장관이 31일 밝혔다. 망글라푸스 외무장관은 이날 한 기자회견 석상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필리핀­북한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려면 북한이 필리핀의 공산반군들에 대한 지지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필리핀 군관계자들은 북한이 필리핀의 신인민군(NPA)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으며 공산반군측은 북한의 대NPA무기공급사실을 부인하면서도 북한과는 당대당 차원에서 유대를 맺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망글라푸스 외무장관은 또 필리핀 여당소속 국회의원 2명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에 대해 더이상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 유엔총회 참가차 뉴욕에 갔을 때 북한 외교관들의 방문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현재 진행중인 은밀한 접촉의 시작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대반군 지지포기 선언을 할 경우 북한을 승인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물론이다. 그러한 것은 필리핀의 대북한 정책방향선택과 유관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일,군부 장악… “세습정지”/북한 권력구조 대폭개편의 저변

    ◎강경파 부상… 대남정책 변화 가능성/“섣부른 개혁은 위기 자초”체제 고수 북한의 김일성이 24일 개막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국가주석으로 다시 선임됨으로써 그간 논란이 되어온 「김정일의 국가주석직 승계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날 확대개편된 국가기구인 국방위윈회에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인민군총참모장 최광을 제치고 김일성에 이어 제1부위장직을 신설,그 자리에 앉음으로써 이제까지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군내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 이에 따라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그 시기만 남아있을 뿐 거의 모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지난달 22일 이례적으로 6개월여 앞당겨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대의원선거나 이번 대의원 1차회의는 일부에서 예측했듯 김일성이 일선에서 완전히 퇴진,김정일에게 전권을 물려주기 위한 절차였기보다는 소련 및 동구권국가들의 대변혁에 대응,김일성의 유일지배체제를 보다 강화해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김정일의 입지를 보다 강화시켜 언제라도 권력세습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준비단계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는 외부의 압력이 점증하고 있고 주체적 자립경제의 건설마저 난관에 봉착해 있는 등 내우외환이 겹친 현상황에서 권력이양이나 섣부른 개혁 및 대외개방,남북교류 등이 오히려 북한체제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45년간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을 국가원수로 재추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현재까지 드러난 이번 회의의 결과는 대남정책을 통괄해온 허담(65)의 당비서탈락,최광(73) 등 군출신과 한성룡등 테크노크라트의 부상,김필환등 제2세대 인물의 진출등이 두드러진다. ○대남정책 실패 문책 허담의 당비서탈락은 「다른 직무를 맡게됨에 따라 해임됐다」는 평양방송의 해명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대남정책 실패책임을 물어 실각됐다는 관측이 유력시되고 있다. 지난 83년 11월 정치국원(서열10위)으로 승진하면서 외교부장을김영남에게 넘겨주고 대남사업에 전념해온 허담이 이번 당비서탈락을 계기로 대남사업에서 손을 뗄 경우 북한의 대남정책이 앞으로 보다 강경한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고위당국자는 이와 관련,『허가 북한측 실무총책을 맡았던 금강산공동개발계획이 무효화 되는등 최근 노동당내에서 강경파들이 득세를 하고 있는 조짐이 엿보인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북한이 이번 대의원회의를 계기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모종의 제안을 내놓으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또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인민군 총참모장 최광의 정치국원기용이나 김철만(전인민군부총참모장)의 정치국후보위원 승진,김익현(전인민무력부 부부장)의 당중앙위원 승진 등이 이같은 예측을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이들 군출신들의 당내 영향력이 강화될 경우 지난 69년부터 대남공작사업의 총수로서 땅굴ㆍ무장간첩남파 등 각종 대남도발을 지휘해 오다가 지난 86년 아웅산사건으로 밀려나 지난 88년 11월 당비서로 재기용된 강경파 김중린(66)이 다시 대남정책을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김일성대학출신인 최영림(64)과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 김달현,문화예술부부장 장철(64) 등의 부총리 기용,당경제담당비서 한성룡의 정치국원 승진 등은 3대혁명소조원 출신으로 추측되는 김필환(정무원내 광업부부장),김이용(2ㆍ8직동청년탄광 지배인),김격식(9기대의원) 등 신진세대의 기용과 함께 김정일후계체제의 공고화작업으로 분석된다. ○중국식개방 따를 듯 또 이들 전문테크노크라트출신 당관료들은 북한의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김정일을 도와 침체에 빠진 북한의 경제활성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중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과 무역부부장을 겸직하고 있는 김달현의 부총리 승진은 북한의 적극적인 경제적 대외개방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여져 주목된다. 국가주석으로 재추대된 김일성은 이날 정책연설에서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나가는 것은 역사의 기본추세이며 이것만이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동구권국가들의 변혁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고수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대내 정치 및 대남정책에서 강경한 입장을 계속 견지하면서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식 모델의 개혁과 대외합작 등을 추진할 것으로 분석된다는게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 비 좌익 신인민군 미 사병 살해 주장

    【마닐라 UPI 연합】 필리핀의 좌익게릴라단체인 신인민군(NPA)은 15일 성명서를 통해 지난 13일 밤 마닐라시 홀리데이 로지호텔 앞에서 미공군사병 2명을 살해한 것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이 필리핀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미국인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각 언론사에 전달된 성명서는 또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이 미군기지연장사용권을 불허할 경우 공산반군은 미국인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 비 반군,미군에 전면전 선언/“즉각 철수안하면 병사 계속 살해”

    ◎“비서 원하면 기지 철수”/미협상 대표 【마닐라 로이터 AFP AP 연합】 필리핀 주둔 미군기지의 장래에 관한 미ㆍ필리핀 협상이 시작된 14일 미국측 협상대표로 참석한 리처드 아미티지 특사는 필리핀에 전략적인 측면에서의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자고 촉구했다. 부시대통령의 특사로 미국측 협상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아미티지는 이날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가운데 마닐라의 중앙은행건물에서 시작된 기지협상 벽두에 『필리핀의 미군기지는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데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미국과 필리핀간의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의 형성을 촉구했다. 아미티지 특사는 『그러나 필리핀측이 임대기간이 만료되는 오는 91년9월 이후 미군기지의 철수를 원할 경우 미국은 근 1세기에 걸쳐 주둔해 온 필리핀 내의 미군기지들을 기꺼이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필리핀측 협상대표로 참석하고 있는 라울 망글라푸스 외무장관은 『미국이 작년 12월의 쿠데타를 진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인정했으나 『미측이 기지사용료로 금년에 지불키로 한 4억8천1백만달러 가운데 2억2천2백58만달러를 삭감하는 등 기지사용에 관한 협정을 이행치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측은 필리핀의 미군기지에 대해 필리핀군과의 공동 사용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필리핀은 현재의 기지사용에 관한 보상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협상을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필리핀 공산반군은 미군기지의 연장사용에 관한 협상이 시작된 후 필리핀 주둔 미군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신인민군(NPA)사령관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미군이 즉각 철수하지 않을 경우 미군이 살해되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NPA는 필요할 경우 최후의 일인까지 미제국주의 추방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소군 통독뒤에도 동독잔류”/동독국방/“나토군 서독서 철수때까지”

    【모스크바 AFP 연합】 라이너 에펠만 신임동독 군축·국방장관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력이 통일독일의 서부지역(현재의 서독 영토)에 잔류하고 있는 한 소련군은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도 현재의 동독땅에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에펠만 장관은 타스통신과의 회견에서 『나토군이 서독땅에 주둔하는 한 소련군도 현재의 동독 영토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두 군사동맹체가 유럽에 존재하는 한 「국가인민군(동독군)」도 계속해서 현재의 동독땅에 존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참모장 해임 오극렬 대의원후보로 선출/평양방송 보도

    【도쿄 AFP 연합】 88년 2월 북한 인민군 참모장직에서 해임된 오극렬이 오는 22일 실시되는 제9기 최고인민회의대의원에 후보자로 선출된 것으로 20일 보도돼 그의 건재를 과시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평양방송은 이날 오가 6백87개 선거구의 입후보자에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국의 서철과 비서국의 허정숙은 이번 후보자명단에서 제외됐는데 각각 현직에서 해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정일의 절친한 친구인 오는 노동당 정치국원에서도 제외돼 김정일의 후계자로서의 위치에 어떤 변동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었다.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도 이번 후보자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최고인민회의는 단일후보 선거다.
  • 외언내언

    소련을 비롯한 온세계의 공산권이 개혁과 개방으로 요란한데 북한만은 아직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모스크바방송은 보도하고 있다. 북한은 정말 이대로 무사할 것인가? 개혁바람이 아시아의 몽고까지 불어닥친 지금 세계가 갖는 의문이다. ◆시간은 좀 걸리고 늦어는 지겠지만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란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되는 관측. 일본 시사잡지 군사연구 최근호는 「38도선의 벽은 무너지는가,공포의 김일성친위대」란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소상히 분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철저한 주민 감시ㆍ감독과 무자비한 처벌때문이란 것. ◆그 핵심은 김일성 직속의 국가정치보위부와 사회안전부라는 비밀경찰 친위조직이다. 반혁명행위등의 감시ㆍ감독에서 우편물 검열,전화도청 등 당ㆍ정ㆍ군ㆍ기업ㆍ민간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2중3중의 거미줄로 감시하며 불순분자를 적발하고 처벌한다. 모든 주민은 다섯 가구를 한단위로 상호 감시케 하는 이른바 「5호담당제」로 묶여 있고 비밀경찰은 주민30명에 한명꼴. ◆전주민 스파이화로 불신을 조장하고 무자비한 처벌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김일성 사진을 훼손해도 「9번사건」으로 재판없는 총살형. 또 한가족이 갑자기 사라지는 수도 있는데 중죄인의 경우 「특별독재 대상구역」으로 불리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져 살아서는 그 곳을 나오지 못한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불만이 표출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플렁커연구원은 군의 쿠데타밖에 길이 없다고 했지만 북한은 인민군과 국가 정치보위부,사회안전부와 그 부속국경 경비대로 힘이 3등분되어 군의 쿠데타도 어렵다는 것. 하지만 비슷했던 루마니아에서도 터졌다는 것이 희망적 관측의 근거인데 터지면 루마니아보다 훨씬 더한 유혈 사태가 될 것이라고 군사연구지는 경고하고 있다. 소련ㆍ동유럽 유학생 소환도 일시적인 방편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인 대책은 못될 것이다. 북한은 무의미한 휴전선장벽 제거타령 그만하고 이 주민 감시장벽이나 풀어 북한내 자유 왕래부터 실현해야 할 것이다.
  • 북의 남편과 말잊는 재회/40년 그리움 고향의 꽃 한다발로 전달

    ◎손경한씨 어머니 【도쿄=강수웅특파원】 김선순씨(62ㆍ부산 동래구 칠산동 195의4) 일가족이 6ㆍ25때 인민군에 입대한뒤 소식이 끊겼던 북한의 남편 손영종씨(62ㆍ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를 40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상봉했다. 손씨의 형 영춘씨(65),여동생 영숙씨(60)와 함께 17일 하오 도쿄에 도착한 김씨는 이날 하오8시50분 도쿄 오테마치(대수정) 팔레스호텔 2층에 마련된 별실에서 남편 손씨와 재회의 감격을 누렸다. 30분쯤 먼저 회견장에 들어온 북한의 손씨는 김씨로부터 고향에서 가져간 꽃다발을 건네받고도 한동안 말문을 열지못한채 눈시울을 붉혔으나 형 영춘씨가 뒤쫓아 들어오며 『너 이놈 살아있어 다행이다』라고 소리치자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며 반가워했다. 북한의 손씨는 6ㆍ25가 일어난 1950년 서울대 문리대 3학년 재학중 부인 김씨에게 『잠시 학교에 다녀올테니까… 』하며 집을 나간채 행방불명된뒤 이번에 아시아 사학회창립총회겸 한ㆍ중ㆍ일 고대사에 관한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하기위해 도쿄에 왔다가 지난16일 아들인 변호사 손경한씨(40ㆍ서울 태평양 법률사무소)와 상봉하게 됐다. 손변호사는 지난 85년 미국유학중 북한학자로부터 아버지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사실을 확인,이번에 정부의 승인을 받고 생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기위해 도쿄에 왔었다.
  • 남 변호사 아들­북 역사학자 아버지/남북 부자,40년만에 상봉

    ◎도쿄 학술회의서 【도쿄=강수웅특파원】 변호사 손경한씨(40ㆍ서울태평양합동 법률사무소)가 6ㆍ25때 인민군에 입대한 뒤로 소식이 끊겼던 북한의 아버지 손영종씨(62ㆍ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지 40년만에 처음으로 상봉했다. 손변호사는 지난 15일 아버지 손씨를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학회 창립총회(15∼18일)때 만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16일 한국을 떠났다. 손변호사의 아버지 손씨는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50년 6ㆍ25가 일어나자 인민군에 입대했으며 당시 나이가 23살로 부인 김선순씨(62ㆍ부산거주)와 결혼한지 3년만이었다. 손변호사는 지난85년 미국유학중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북한학자로부터 아버지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 북한,땅굴굴착 첫 시인/휴전선서 2차례 대남방송

    ◎“남침용아닌 장벽대응용” 강변/북측,정전위서 공동조사 제의 【판문점=김원홍기자】 정부는 14일 북한측이 지난 3일 발견된 제4땅굴을 판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상오 제455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판문점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측이 지난 9일 상오 8시20분부터 30분사이에 한국군 28사단 520GP전방의 북한인민군 5사단 503GP에서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제4땅굴은 자신들이 굴착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측은 지난 9일의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땅굴은 남침을 하기 위해 판 것이 아님을 남조선이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말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는 콘크리트 장벽부터 없애야 하며 우리의 제4땅굴은 절대로 남침을 위해 판 것이 아님을 재삼 강조한다」고 밝힘으로써 땅굴굴착사실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9일 하오 1시47분부터 2시10분 사이에 북한은 휴전선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제4땅굴은 남침용이 아니라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는 콘크리트 장벽의 대치용이며 평화적 통일을 위한 땅굴』이라고 강변하고 『땅굴의 길이는 2천5백m에 달하지만 콘크리트 장벽은 몇배 이상이나 되면서도 남조선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파놓은 땅굴을 비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상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서 공산측 요청으로 열린 제455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산측수석대표 최의웅소장은 『북침을 위한 공격훈련인 팀스피리트 90훈련을 즉각 중지하라』면서 『한국이 주장하는 제4땅굴은 북침을 위해 남한측이 판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최소장은 『제4땅굴을 확인하기 위해 본인과 북한측의 터널전문가및 기자 등 60여명으로 구성된 공동감시소조가 4대의 헬리콥터에 분승,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비무장지대에 가겠으니 북한측 조사단이 남쪽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안전담보확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 북한 96년쯤 핵무기 보유/미 군사 전문가 전망

    【뉴욕 연합】 북한은 유사시에 대비,상당량의 공격용 생물ㆍ화학무기를 개발,비축하고 있으며 오는 96,97년께는 운반용 핵무기도 갖게 될 것 같다고 미국의 한 군사문제 평론가가 8일 밝혔다. 미국방부 정보분석가로 일하면서 특히 중국ㆍ북한문제를 전문으로 다룬 적이 있는 조셉 버뮤데즈씨는 이날 미국 콜럼비아대학 한국학연구센터(소장 개리 레드야드)가 마련한 세미나에 참석,「북한 인민군의 생물ㆍ화학및 핵무기 전력」이라는 주제로 최근의 북한사정을 전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
  • 기대와 불안… 「통독」움직임의 반향

    ◎무너지는 동독… 일어서는 「거대 독일」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에 힘입은 통독논의는 오는 18일 동독의 자유총선후에는 더욱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단계로 뛰어오르게 될 전망이다. 미국과 소련등 강대국들,특히 독일과 인접한 유럽각국은 거대독일의 출현을 우려,통독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분단극복이 거역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판단,벙어리 냉가슴앓이를 간직한채 통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통독 움직임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배경및 전망을 살펴본다. ◎미국의 시각/초강대국화 우려,나토잔류 강력 희망/고르비 실각땐 통일행보 지연 가능성/국민열망이 원동력… “올해가 재결합 완성의 해”인식 지난2월 모스크바와 워싱턴을 돌며 통독외교를 벌인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양독의 신속한 통일만이 동독의 경제적ㆍ정치적 붕괴와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 사태를 막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콜총리의 「동독붕괴」발언은 서독측의 정치적 주장이기보다는 객관적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워싱턴은 보고 있다. 동독은 지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각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동독 경제위기감 팽배 동독의 미래에 대한 동독인들의 불안감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작년에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올들어 지난 두달간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은 11만5천명에 달한다. 1월의 하루 1천8백명에서 2월엔 하루 2천2백50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독일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내년엔 다소 고개를 숙이겠지만 앞으로도 동독 인구 1천6백만명 가운데 1백80만명 이상이 더 빠져 나가 동독의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독 사회의 공동화 실상은 작년 11월10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절반으로 줄어든 동독군이 잘 대변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동독군은 수천명씩의 탈영자가 발생하고 기강이 무너져 『이미 군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나토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나토측 추정에 따르면 동독국가인민군(NPA)의 병력 수는 작년의 17만3천명에서 지금은 9만명에 불과하다. 동독경제는 지금 파국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숙련 노동 인력의 엑소더스로 사회 각 분야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살쾡이 파업(노동조합의 일부가 본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멋대로 벌이는 파업)ㆍ작업정지ㆍ태업 등의 만연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져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 마르크화간의 공정 환율은 1대1이나 서베를린 암시장에선 10대1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동독경제에 절망과 무질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능성」이 「현실」로 성큼 콜 총리가 지난 2월 제의한 「양독의 통화 단일화」는 1차적으로 동독인 엑소더스의 저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날로 시세가 떨어지는 동독의 「장난감」 돈을 서독의 안정되고 태환성 있는 통화로 바꿔주면,그것도 1대1의 공정 환율로 바꿔주면 동독인들이 동독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돼 엑소더스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통화 단일화」의 논리라고 타임지는 풀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의 3분의2와 서독인의 4분의3이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분단된 독일 국민의 이같은 통일 열망이 통독의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동독을 붕괴의 위기로 몰아가고 서독의 사회복지에 중압감을 안겨주고 있는 동독 주민의 끊임없는 엑소더스야말로 현실적으로 양독의 신속한 통일을 촉구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풀이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얼마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통일이 1990년에 완성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년내 통일을 예견하면서 『사실상의 경제 통합과 통일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개방됐을 때만 해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독일통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당초 금년 5월로 예정됐던 동독 총선때까지는 진지한 조치가 요구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 1월28일 동독정부가 총선일을 3월18일로 앞당긴다고 발표하자 사태의 급박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동독지도부가 5월까지 나라를 지탱해 나갈수가 없기 때문에 총선일을 당긴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3월 동독 총선에선 통일 지지 정당들이 압승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제 독일통일은 가능성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로 다가섰다고 판단했다. 부시 정부는 국제적인 통독 협상방안을 서둘러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13일 오타와 회담에서 두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 영 불 소 4개국간에 합의된 통독협상의 틀 「2+4」가 그것이다. 「2+4」방식에 따르면 먼저 독일이 통일의 경제적 정치적 법적 측면을 논의한다. 그 다음에 두 독일과 4강이 만나서 통일된 독일의 병력 규모라든가 나토와의 관계등 유럽의 안보 문제를 논의한다. 금년 초까지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나치와의 전쟁에서 2천6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소련이 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인 7천7백만명의 재결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르바초프는지난 2월초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브의 독일 중립화 통일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서독 총리 콜의 방소를 받아들여 『통독은 독일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의 비대한 힘과 영향력을 억제하는데 나토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 독일의 나토 편입을 주장하고 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는 「경제거인」 독일을 고립시켜 강대국이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상황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어 고르바초프도 결국 독일의 나토 잔류를 받아 들일것으로 워싱턴은 내다보고 있다. ○통독협상 방안 마련중 콜이 이끄는 서독의 기민당 정권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와 독일 통일을 확정시켜야 한다는 방침 아래 서독의 온 체중을 실어 통독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콜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 동독 영토내에는 나토군이 주둔해서는 안된다는 방안을내놓고 있다. 서독은 또 과도기간중 독일 동부에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인종분규 등에 직면한 고르바초프가 언제 실각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만일 그가 실각할 경우 그의 대담한 동서긴장완화정책에 따라 급격히 빨라진 통독 행보도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시각/동독에 어떤 정부 들어서도 「통독」불변/국제적 지위ㆍ국경ㆍEC와의 관계 촉각/양독의 경제격차가 기폭제… “민족주의 망령 부활”긴장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서독 통일 작업을 바라보는 서유럽 나라들의 요즈음 모습은 엉거주춤한 상태 바로 그것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볼 묘책도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질 않는다. 『독일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독일민족의 소리를 외면할 처지가 못되며,자국의 이해에 관련된다 하여 민족자결의 명분에 반하는 처신을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 변화가 촉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통독에심한 거부감을 가져오던 서유럽나라들이 어느새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동독총선이 끝난 뒤에 곧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든지,오는 7월1일부터는 서독 돈이 동독에서도 통용되는 등 통화 통합과 경제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성급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불가능한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같은 현실인식은 통독작업이 급진전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말할것도 없이 독일의 분단은 2차세계 대전의 결과입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두쪽으로 갈라졌으며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개막신호였습니다. 이러한 대결 구조가 존속되는 한 독일의 분단상황도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반대로 냉전시대가 종료되면서 분단국의 재통일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런던 국제관계연구소의 토머스 펠러만 박사는 독일의 재통일 문제를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동서간 대립과 대결구조의 해소는 분단민족의 통합을 촉진시킬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모멘트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반도라 해서 이같은 국제정치 질서의 흐름이 외면해 지나칠 이유가 없으며 당사자들(남북한 지칭)이 이같은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흡수 소화할때 분단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같이 분단국 재통일 문제의 부각은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가 촉매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대부분의 견해이지만 이에 곁들여 『동독의 소멸』현상을 중요한 모멘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호네커정권이 무너지면서 동독의 공산당은 물론 과거의 동독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독은 책임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고 구체적인 통일 논의는 오는 18일의 동독 총선뒤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총선뒤 동독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첫 과제는 서독의 통일 스케줄에 자신들의 일정표를 짜맞추는 일이 될것입니다』 파리사회과학연구소의 코르넬리우스 교수는 줄곧 두개의 독일을 고집해 오던 공산당 정권의 붕괴로 통일논의의 최대 장애가 제거된 셈이며 이로인해 국민들의 통일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서독이 대화할 책임있는 상대가 없는 때를 역으로 통일논의의 최적기로 삼아 기회를 놓칠세라 안팎으로 뛰어 통일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산당 붕괴로 새 국면 이와함께 동서독간에 빚어진 경제ㆍ사회적 격차가 통일작업을 재촉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헝가리가 국경철조망을 걷어 치운 뒤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량 탈출 현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되어 요즈음도 하루 2천∼3천명이 서독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들은 체제나 이념문제를 떠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보다 잘사는 형제들 곁으로 향하는 대열이다. 『서독으로의 탈출 대열이 보여주듯 파탄지경에 이른 동독경제는 서독경제의 도움이 절실하며 칼자루를 쥔 서독의 통일논의에 응할수 밖에 없는 상황』(불 리베라시옹지)이 통독작업을 서두르게 하는 원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그동안 동서독이 꾸준히 힘기울여온 통일기반 조성 작업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 의한 대동독 경제원조,인적교류,문화ㆍ체육교류등을 통한 민족동질성의 고취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통일논의가 동서독 국민들에게 다같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와같은 통독논의의 가속화에 대한 원인분석 뒤에 따르는 관심은 자연히 통일독일의 지위와 국경보장문제, EC(구주공동체)와의 관계등에 대한 것이다. 서유럽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서독 페이스 불가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날 곡괭이를 들고 장벽을 부수겠다고 달려드는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신문을 통해 보면서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알랭 투랜박사(파리 국제전략연구소)는 많은 유럽사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한맺힌 통일염원의 표출로 보기보다는 「민족주의 망령의 부활」을 느꼈을 것이라고말했다. 그들은 통일독일이 다시 유럽을 지배하거나 중부유럽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싸여있다. 이같은 통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연유하는 것이 요즈음 초점이 되고 있는 오데르­나이세국경선 선보장문제이며 헬싱키협약 준수의무 요구나 EC통합범위 안에서의 통독작업 진행 주장 등이다. 콜총리가 6일 오데르­나이세 국경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통독을 보는 유럽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가 씻은듯 가셔질리는 없는 것이다.
  • “와해 위기” 정예 동독군/베를린장벽 무너진 뒤 탈영자 속출

    ◎17만병력 4개월새 절반으로 줄어/일부 부대선 소군과의 합훈도 거부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자랑이었던 동독군이 수천명씩의 탈영자가 발생하고 기강이 무너지는 등 붕괴되고 있다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소식통들이 밝혔다. 상세한 정보 보고서에 접근이 가능한 나토의 한 고위관리는 『동독군은 이미 군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 『이것은 동유럽의 여타 사태와는 다른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나토측은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 이전까지 17만3천명의 병력수에 공산주의 이념으로 확고히 무장된 동독의 국가인민군(NPA) 병력수가 지금은 약 절반정도인 9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토의 또 다른 소식통은 『동독 병사들이 단순히 근무처에 나타나지 않는 것만이 아니다』면서 『일부 병사들은 서독으로 넘어갔고 다른 병사들은 직장을 구하러 군대를 이탈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병사들 가운데 다수는 이제 군대가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과거 유명했던 독일군의 기강도 이젠 사라졌다』고 전했다. 지난주 동독군 1개대대는 아직도 동독에 주둔하고 있는 약 38만명의 소련군 가운데 일부가 선도하는 군사훈련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또한 고위장교들이 훈련에 참가할 의사가 이는 부대들을 찾아다니는 사태도 벌어졌다. 동독군부대 가운데 일부는 국가산업 인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식적으로 현역근무를 떠났으며 수천명의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병영을 이탈하고 있다고 이 소식통들은 전했다. 또 장교들도 서독군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서독으로 떠났으며 동독군 참모총장인 만프레드 그라에츠 총장은 이들을 탈영자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1월에는 엄격한 군사훈련,스파르타식 병영생활,18개월간의 의무 군복무 등을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군대내에선 벌어졌다. 군 당국은 이들 요구를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테오도르 호프만 동독 국방장관은 지난주 통일독일의 군대로 병력수 약 15만의 제한된 화력을 가진 통합군을 창설하자고 제의했다. 한 나토 외교관은 『현재 다른 동유럽국가 정부들은 일정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군대도 나름대로 존재할 이유를 느끼고 있어 상당부분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동독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 이전까지 동독군은 바르샤바조약기구 내에서 가장 훈련이 잘 된 충성스럽고 장비가 충실한 군대였다. 동서독은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로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가 이루어진 지역가운데 하나이다.
  • 북한,전투준비 명령/팀스피리트 비난

    【내외】 북한은 27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를 발표,전체 북한군 및 민병조직에 전투동원준비태세명령을 하달했다. 북한은 중앙방송으로 발표된 이 보도에서 팀스피리트훈련을 「북침 예비전쟁ㆍ핵시험전쟁」이라고 비난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