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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관 개관/복원사업 일환… 내일 문열어

    ◎비극의 역사 산교육장으로 전후세대들의 산교육장이 될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관이 경남 거제군 신현읍 고현리에 건립돼 11월1일 문을 연다. 6·25의 참상과 수용소내에서의 처절했던 반공·친공세력간 사상전의 실상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온갖 자료가 갖추어진 이 유적관은 거제군이 지난해 5월 마련한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지 복원계획에 따라 제1차사업으로 추진돼 1년반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군은 오는 97년까지 모두 51억여원을 들여 나머지 복원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설치된 것은 지난 50년 11월27일. 중공군이 참전한뒤 51년 6월부터는 인민군 15만명,중공군 2만명,의용군및 여자포로 3천명등 무려 17만3천명이 수용돼 53년 7월27일 휴전때까지 끊임없는 난동·폭동이 일어났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사이에 전개된 사상전은 살육전으로까지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따른 포로교환으로 수용소는 폐쇄되고 55년 봄부터 주민들이 되돌아와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이같은 역사의 현장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형태를 잃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거제군은 포로수용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당시의 사령관 숙소·포로영창·헌병대 막사·무도장·PX 등 주요건물 15동과 천막막사 20개동을 복원하고 기념관과 기념탑·유적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번에 우선 개관된 50평규모의 유적관에는 포로들이 사용했던 식기류와 친공포로들이 폭동을 일으킬 때 무장했던 죽창·목총·삼지창·철조망·곤봉 등 사제무기류 및 인공기·소련기·중공기·기록사진 등 2백여점이 전시돼 당시 수용소내의 처절했던 실상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전시된 자료가운데 인공기를 비롯한 깃발들이 군용 속옷을 찢어 이어붙인 흰색 광목천에 머큐롬 등으로 비교적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 지독했던 이념투쟁의 단면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 거제군은 유적관 개관을 계기로 국방부와 주한미군 등에 관련 자료제공을 요청하는 한편,반공포로로 석방됐던 인사들을 상대로 새로운 자료수집에 나서기로 했다. 양정식 거제군수는 『거제포로수용소와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면 전후세대에게 6·25의 참상을 생생하게 알리는 산교육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약아닌 「합의서」는 국회비준 불필요”(의정중계:27일 본회의)

    ◎수출경쟁력 강화위해 중기 적극 육성/엄정한 세정으로 재벌 경제집중 방지 ▷외교·통일·안보 답변◁ ◇현승종국무총리=중립내각의 과제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한가지는 공명선거를 어떻게 훌륭히 치러내느냐는 것이며 두번째는 현재까지 계속되어온 국정을 계속 추진해 6공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다.공명선거 의지는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할정도로 확고하다.나 자신도 총리직 수락시 대통령의 공명선거의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수락했다. 비핵화공동선언은 우리가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의 포기도 요구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남북대화에 주무부처가 배제되고 있다는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이동복씨와 관련된 문제제기는 주무부처를 배제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없지않아있다.통일문제는 통일원이 담당하고 다른 부서는 자료제공 등을 협조해야 한다.앞으로 이러한 오해의 여지는 일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소지가 있다면 단호히 경고하겠다. ◇최영철 부총리겸 통일원장관=남북관계는 민족내부관계라는 점과 각자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적 독립개체라는 점 등 이중성을 가진 잠정적 특수관계로 봐야한다.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는 이처럼 잠정적 특수관계에 의한 합의문건이므로 조약에 해당되지 않으며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남북간 경협은 아직까지 본격착수를 하지않아 비교적 부진한 상태다.남북상호간 보완구조를 갖고 있고 경협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므로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제도적 장치와 핵문제 등이 해결되면 경제협력·교류는 본격화 될 것으로 본다.이와관련,남북협력기금은 지난해 2백50억원을 마련했으며 금년도에는 4백억원을 조성목표로 하고 있다.앞으로 경제교류확대에 따른 기금수요에 대비,기금확충문제를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가겠다. 지난 9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훈령묵살사건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고도의 전략기밀사항이므로 공개하기는 어려우나 사실과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히 박힐 수 있다. ◇이상옥외무부장관=중국과 대만모두 「하나의 중국원칙」을 고수하기때문에 대만과의 단교는 불가피했으며 이점을 대만특사에게도 충분히 설명했다.중국의 한국전참전에 대한 사과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측은 수교협상때부터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데 대한 응분의 해명과 함께 사과표명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중국측은 당시 냉전시대아래 국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민군파견이 불가피했다는 점만을 누누이 설명했다.하지만 중국측은 앞으로 이같은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KAL기 격추와 관련,러시아측의 자료제공은 사건진상규명에 불충분하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며 러시아측에 다시한번 블랙박스의 인도를 요청하겠다. ◇최세창국방부장관=주한미군의 전쟁감시 및 조기경보장비는 90년중반이면 도태될 노화장비이기 때문에 인수문제는 신중검토해야 한다. 군단과 군사령부통합문제는 군제개편에 따르는 전투태세약화가 우려되므로 중장기적으로 계속 검토하겠다.군의 사기 및 복지향상을 위해 기본급여는 정부방침에 따르되 별도의 각종수당은 현실화하겠다. ▷경제분야 답변◁ ◇현승종국무총리=정부는 경제·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제7차 5개년 경제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급변하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내에 21세기위원회등을 설치,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고 있다. 추곡수매문제에 대해서는 현행추곡수매운영과정에서 나타난 장단점을 연구하고 관련부처와 협의해 추곡수매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다. 수출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할 방침이다.그러기위해서 자금이 중소기업부문에 유입될 수 있도록 시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한국은행이 자율성을 가질수 있는 방향으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며 중립성을 보장할 것이다.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준조세가 기업에 미치는 부작용을 감안,불우이웃돕기·재해의연금등 자발적 성금을 제외한 일체의 준조세를 조정키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중이다. 다가오는 대선이 물가불안요인으로 작용치 않도록 경제안정화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방지키위해 공권력 개입과 같은 직접적인 수단보다는 상속세및 증여세의 엄정부과등 세정을 강화하고 여신관리및 공정거래법을 보강,여건조성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공개념에 입각,기업의 토지소유전산망을 확충하고 토지소유에 따른 과세를 강화하겠다. ◇이용만재무부장관=경제정의와 분배의 형평성 측면에서는 금융실명제가 반드시 실시돼야 하지만 이는 금융거래의 관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제도개혁으로서 예금자의 불편,증권시장 침체,부동산투기재연등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경제정책을 시험적으로 시행할수는 없으며 충분한 준비를 거친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따라서 금융실명제는 기존질서의 충격을 완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킬수 있는 시기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경련의 금융실명제도입정책제언도 장기적 안목의 주장이고 정부의 보완조처를 요청하고 있는등 실질적으로 정부입장과 같다고 할수있다. 증시는 최근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됨에 따라 경제외적인 요인만 작용하지 않으면 회복할 것으로 본다.신용을 위주로한 은행대출운용은 바람직하다.그러나 은행의 책임경감을 배려하는등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강현욱농림수산부장관=정부가 보유한 고미는 지난 9월 현재 1천3백21만섬으로 가공.주점용반출및 학교·군급식등으로 소비를 확대,점차 재고가 줄고있는 상황이다.농산물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원산지증명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검역,통역의 강화등 각종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쌀시장의 개방은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나 장기적으로는 농산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겠다. ◇한봉수상공장관=중소기업의 도산방지를 위해 11월1일부터 중소수출제조업에 대한 신용보증제도를 실시하고 향후 2년간 20∼40%의 특별세금경감 혜택을 줄 계획이다. 국제적인 지역주의의 심화와 통상압력가중등에 대처하기 위해 내년도에는 수출경쟁력강화시책을 최우선으로 시행하고 96년까지 5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해외시장개척활동등을 지원하겠다. ◇진념동자부장관=최근 5년동안 에너지소비는 배로 늘었으나 발전소건설이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아 올해 전력예비율은 2.5% 수준에 머물렀다.오는 96년까지 19조5천억원을 들여 에너지수급대책을 마련하겠다. ◇서영택건설부장관=장기적인 국토개발계획을 수립,지방도 서울못지않게 잘살수 있도록 배려하겠다. 건영사건은 현재 총리실에서 종합감사를 실시하고 있는 만큼 결과에 따라 엄정조치하겠다. ◇노건일교통부장관=경부선 철도는 지난해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경부고속도로도 심한 정체를 빚고있어 고속전철 건설은 불가피하다.현재 프랑스·독일·일본등과 기술이전문제등에 대해 집중적인 협상을 벌이고 있다. ◇송언종체신장관=지난 8월27일 대한 텔레콤이 사업권을 포기,사업자 재선정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결정하게 됐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과 관련,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여러분에게 송구스럽다. ◇김진현과기처장관=2천년대까지 7대과학기술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96년까지 과학기술개발에 GNP대비 3·5%를 투자하고 총예산의 4∼5% 수준까지 제고시키겠다. 또 핵심선도기술개발을 위해 96년까지 1조원의 과학기술진흥기금을 조성하겠다. 특히 산업기술인력확보를 위해 95년까지 이공계 대학원정원을 1만명,대학정원을 1만6천명,전문대정원을 3만6천명선으로 확대하겠다.
  • 화해공동위원회/남북,명단 교환

    남북한은 26일 오는 11월5일 첫 회의를 갖는 화해공동위원회 구성인원명단을 상호 교환했다. (남측) ▲위원장 송한호 ▲부위원장 이준희국무총리보좌관 ▲위원 김형기통일원국장 최규학총리실심의관 강근탁외무부심의관 김각영법무부심의관 손위수공보처기회관 (북측) ▲위원장 전금철조국평화통일위부위원장 ▲부위원장 정남하외교부순회대사 ▲위원 조상호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부국장 최성익조평통부장 이길청인민군대좌 강성룡중앙인민위심의원 박세덕정무원심의원 (남측교체) ▲부원장 김태연경제기획원실장 ▲위원 이영탁재무부국장 장석환상공부국장 이원동력자원부국장 정종환교통부국장 이종순체신부통신협력국장 (남측교체) △위원 김덕환교육부장학관 오지철체육청소년부국장 이덕주공보처국장 안희옥정무2장관실조정관
  • “북한 개방땐 체제붕괴 된다”/미 타임지 최근호서 분석

    ◎권력암투 시작… 점진적 개혁불가/김일성 사망땐 북 주민 대거 월남 예상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9월14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남한측은 북한이 점진적인 개방정책을 받아들여 흡수통합아닌 화해통일을 기대하고 있지만 북한의 개방은 곧 북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이 기사의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수십년동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또 군사적으로 소련과 중국에 크게 의존해 왔던 북한은 소련과 중국이 최근 남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크게 고립돼 있다. 흐루시초프는 물론 브레즈네프,더구나 고르바초프 같은 지도자는 상상도 할수 없는 사회,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만 있는 북한은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키로 이미 결정해 두었지만 권력승계 싸움은 이미 시작됐음이 틀림없다. 지금 북한에서는 온건한 공산주의노선을 걸을 것인가,그리고 남한과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타협의 길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열띤 논쟁이 계속되고 있음이 확실하다.북한의 지배엘리트들은 독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그리고동독의 호네커 서기장과 그의 동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큰 교훈을 얻었음이 분명한 서울의 관리들과 대외정책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능력의 한계를 면밀히 계산해왔다.그들의 계산대로면 남한이 북한을 독일식으로 통일하는 데는 독일에서 보다 10배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 또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북한에 정치적 소요사태가 났을 경우 수십만명의 북한사람들이 휴전선을 넘게 될 것이다.아니면 휴전선을 넘으려던 북한사람들이 북한인민군에 의해 대량 살육되는 사태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모든 이유들 때문에 남한사람들은 북한에서의 공산주의의 소멸이나 남한과의 통일을 10년,혹은 20년 후의 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따라서 남한은 새로운 파트너가 된 중국이 북한의 새로운 후계자가 좀더 온건한 노선을 걷도록 힘써 줄것을 바라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개방정책이 아무리 잘 계획되고 서서히 시도된다고 해도 예상대로 되리란 법이 없다.그렇게 안된다는 것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이이미 웅변적으로 보여준바 있다.공산주의의 점진적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모순이다.천안문에서의 유혈 진압으로 아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긴 하나 중국도 결국엔 안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의 위대한 친구였던 루마니아의 고 차우셰스쿠의 운명이 필연적 결과였듯이 강압적인 정권일수록 취약성 또한 큰 법이다.북한과 같은 나라가 문을 연다는 것은 곧 집 전체가 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는 지금 북한이 사뿐히 내려 앉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북한의 운명은 추락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 평양지령 따라 반체제활동 주도/고정간첩들의 혐의 사실

    ◎55년 월북… 친북단체 건설 조종/김낙중/인민군서 귀순… “골수” 중간연락책/심금섭/2차례 입북·조총련과 수시 접촉/권두영 ▷김락중(57·전민중당 공동대표)◁ 서울대 사회학과를 중퇴한 이듬해인 지난55년 6월 임진강을 건너 단신 월북,북한의 초대소및 인민경제대학 특설반에 수용돼 1년남짓 공산주의 사상등 간첩교육을 받았다.월남한뒤에는 「김강천」이라는 가명으로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동조자를 입북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지난61년 8월 농부인 안행협씨를 포섭,북한파견 연락원으로 임진강을 통해 입북시켰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있던 지난 72년에는 이 연구소 간사인 노중선씨(52·구속)와 고려대학생으로 비밀지하조직 「N·H회」를 결성,국내운동권에 반정부투쟁 이념을 퍼뜨리는 활동을 해왔다. 김씨는 지난 88년과 90년 두차례에 걸쳐 중국 북경사회과학대학원 이상문교수와 만나 자신의 활동상황 등을 간접보고하는등 북한측과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으며 90년 2월말 남파된 북한사회문화부소속 공작원 최모씨(35)와 접선,「무두봉 11」이라는 암호명과 함께 난수표,단파라디오 등을 건네받았다. 경기도 파주출신인 김씨는 서울고를 나와 서울대사회학과 2년을 중퇴하고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뒤 4·19직후인 60년말 혁신정당인 「이주당」기관지 「정론」정경부장,67년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간사,86년 민족통일촉진회통일정책심의회의장,92년 민중당 총선대책본부장등을 거쳤다. 지난 57년 간첩죄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63년에 반공법위반으로 징역3년6월,지난 73년에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7년을 선고받고 80년 만기출소했다. ▷심금섭(63·청해실업대표)◁ 심씨는 90년 2월부터 회사 부회장으로 있는 김씨와 공작지도원 임모씨의 지시로 지난해 4월 태국 방콕에 있는 북한의 공작위장업체로부터 구명재킷 2천벌을 주문받고 방콕으로 건너가 북한 사회문화부 부부장 리원국과 북한에 거주하는 친형 심호섭(64·전북한정치보위부원)등을 만나 포섭됐다. ▷권두영(63·전민중당고문)◁ 지난 86년 중국방문때 만난 중국 공산당원 권상주(48)의 권유로 지난 90년11월 입북했고 지난 4월 두번째로 입북했다.두번째 입북에서 김일성주체사상과 사회주의우월성등에 대한 학습을 받고 남한의 정치상황과 14대 총선결과분석보고및 진보혁신정당건설의 지령과 공작금 2만달러를 받아 귀국했다.또 지난달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조총련계 무역회사의 대표인 양광우와 접촉,진보정당건설추진자금 10억엔의 확보방안등을 협의하기도 했다. 경북 예천출신으로 대구상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거쳐 51년 서울시경 미고문관실연락관과 문공부 비서실비서관등을 지냈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민사당서울성동지구당위원장,사민당위원장,민중당고문등 진보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해왔다. ▷노중선(52·평화통일 연구회사무총장)◁ 지난73년 김락중씨가 주도한 내란음모사건인 이른바 고려대「민우」지사건에 연루돼 김씨와 함께 복역한뒤 친형제처럼 지내오다 김씨에 포섭됐다.
  • 미/23년 유혈내전 종식 청신호(세계의 사회면)

    ◎라모스 취임뒤 게릴라 수뇌 석방/반군세력 크게 약화… 테러도 격감 공산반군의 테러자행으로 공포속에 치안이 어수선했던 필리핀에 평화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라모스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실시한 유화정책의 영향으로 반군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데다 이들에 의한 테러활동이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3년간 지속돼온 필리핀 정부군과 공산반군간의 유혈 내전은 조만간 종식될 것으로 보인다.필리핀 정부대표단과 공산주의 민족민주전선(NDF)대표간에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협상이 우호적인 분위기속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양측간의 대화에 앞서 필리핀당국이 공산당 최고위급 지도자인 사투르 오캄포(53)를 석방조치한 것도 화해분위기 조성에 큰몫을 하고있다. 언론인 출신인 오캄포는 지난 86년 실패로 끝난 정부와의 협상에서 필리핀 공산당과 당의 군사조직인 신인민군(NPA)에 의해 운영되는 NDF의 협상대표를 맡았던 인물. 필리핀당국과 공산반군간의 대화는 6년전 아키노정권때도 시도됐다가 실패한 적이 있어 살얼음판 위를 밟는듯하지만 그 전망을 한층 밝게해주고 있다.지난 6월 집권한 피델 라모스 정권이 우유부단했던 아키노정부보다 확고하게 정치·사회적 안정을 다지게됨에 따라 공산반군에 대해 유화적 조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국민 여론을 양분시켜온 필리핀주둔 미군기지를 조만간 폐쇄키로 한 것도 반군세력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있다.지난해 필리핀상원이 수비크만 미해군기지에 대한 새 임대계약안을 거부함에 따라 미군은 오는 12월까지 철수할 예정이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 붕괴이후 필리핀 공산게릴라의 입지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지난 87년 전성기때 2만5천5백명에 이르던 신인민군의 수는 최근들어 그 절반 수준인 1만2천5백명으로 감소했다.과거 지하공산당원의 소굴이던 대학캠퍼스도 이제 이데올로기가 크게 퇴색되어 가고있다. 신인민군은 필리핀 공산당(CPP)과 13개 공산단체의 연합체인 민족민주전선의 무장투쟁조직으로 그간 학생·노조 및 농민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었다. 이에 힘입어 이들은 필리핀전국 73개주 가운데 63개주에서 공산게릴라활동을 펴는 한편으로 농민층 의식화뿐 아니라 도시포위혁명노선을 구사하며 데모선동·테러활동을 일삼았다.특히 지난 87년에는 스패로 스워드(참새부대)라는 특공대를 운영,정부요인 암살은 물론 정부시설물에 대한 폭파와 방화를 자행,이 나라에선 가히 공포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이번에 석방된 NDF의 지도자 오캄포도 지적했듯이 공산주의자들은 「가난과 사회적 불의」를 먹고 자란다. 따라서 공산당원들에 대한 대규모 사면조치에 이은 필리핀정부의 획기적인 공산당 합법화가 노리고 있는 정치적 목적의 달성여부는,라모스대통령이 앞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고 사회개혁을 성사시키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겠다.공산반군에 대한 군사적 승리보다는 「국민적 화해」라는 라모스의 선택이 자칫하면 「약」이 「독」으로 변질될수 있기 때문이다.
  • 북한 「6·25 선공계획」 확인

    ◎김일성,50년 2월 스탈린 승인 받아/러군사연 공개 【모스크바 연합】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져온 「선제타격계획」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국방부산하 군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코로트코프박사는 28일 「조선인민군 선제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하고 김일성이 지난 50년2월27일 이 남침계획서를 휴대하고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의 선제타격계획 원본이 현재 모스크바와 평양에 각각 1부씩 보관돼 있으며 이번에 공개한 것은 그가 연구목적을 위해 러시아군 총참모부의 허가를 받아 복사한 사본이라고 말했다. 코로트코프박사에 따르면 당시 7명의 군사대표단을 대동한 김일성은 3일간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스탈린과 슈티멘코총참모장 등 소련군 막료들과 남침계획을 놓고 구체적으로 협의했으며 스탈린의 전폭 지원약속을 받은후 5월말까지 전쟁준비를 완료키로 다짐하고 3월1일 평양으로 돌아갔다. 코로트코프박사는 결국 한국전쟁이 개전초기에는 남침계획에 따라 거의 성공적으로 전개됐다면서 이 문서야말로 남침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중수교는 경협10년의 결실”/AP통신이 분석한 양국국교 안팎

    ◎북한도 관계정상화 예견… 제지 포기/북경 실용정책­서울 투자욕구 부합 그동안 예상돼왔던 한중수교가 이뤄진 것은 지난 10년동안 가속화된 양국간 경제협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은 야심적인 개혁정책 추진에 필요한 주요 투자국으로 한국을 꼽고 있으며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한국기업들 역시 중국에 시멘트와 자동차,전자제품생산을 위한 대규모공장 건설을 희망하는등 경제협력은 중국과 한국에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국간 조기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중국측이 과거 「순치」에 비유할 만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은 미국 주도의 유엔군을 맞아 함께 싸웠으며 모택동의 아들은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는등 양국간 관계는 유달리 긴밀했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한국에 대항하여 북한의 편을 드는 것은 점차 실용주의적인 색채를 더해가는 중국의 외교정책상 지속될 수 없는 다분히감상주의적인 면이 없지않다. 일본의 중국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북한은 한중수교가 언젠가 실현될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미 필연적인 사실로 간주,포기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이붕 중국총리와 정원식 한국총리는 지난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담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등 한중수교가 곧 실현될 것임을 예고했다.그러나 한국은 이미 지난 수년동안 북경에 그 존재를 확고히 해온 상태다. 북경국제공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북경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현대그룹의 초대형 광고와 접하고 있으며 아직 북경노선에 취항하지 않고 있는 대한항공도 북경에 자사를 알리는 광고를 하고 있다. 또 한국산 텔레비전과 기타 전자제품들이 중국의 백화점들에서 팔리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80년대 중반이후 한국은 중국에 1억6천5백70만달러(한국통계기준)를 투자했으며 지난해에는 중국의 6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부분의 대중국투자는 한국중소기업들에 의한 것으로,대기업들의 경우는 공식적인 관계수립을 고집해오면서 투자를 자제해 왔었다.
  • 중국인민군 60% 특수장비 중무장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군의 현대화는 현재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졌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8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중국관영 영자주간 베이징 리뷰지 보도를 인용,특수장비로 무장된 중국인민해방군의 비율이 전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같은 특수장비부대는 포병·공병·기갑·화생방·대전자전및 전략미사일등 각 병종과 병과에 걸쳐 두루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 시사주간은 또한 「군당국」의 말을 인용,중국잠수함 함대가 「선진수준」을 이룩했으며 공군의 63%가 전천후 전투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했다. 베이징 리뷰지는 또 중국의 전략미사일군은 미사일공격에 있어 1백%의 정확한 명중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사일군이 수행한 연구 프로젝트만도 1천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 독,유럽군축의 첫발 내딛다/재래무기 폐기조치의 의미

    ◎탱크 1천4백대등 모두 1만여점/냉전유물 청산 “수범”… 평화정착 전기/나토 보유분의 4분의 1선… 해체비용만 2억마르크 독일이 재래식무기 감축협정(CFE)국으로는 처음으로 4일 구동독 튀링겐주의 로켄주스라 무기폐기장에서 탱크·대포·장갑차·항공기·헬기등의 분해폐기에 착수,냉전해소후 군축이 실질적인 진전을 보게 됐다. 독일은 앞으로 40개월동안 1천4백81대의 탱크를 비롯,1만1천여점의 공격 및 방어용 재래식 무기들을 해체한다.러시아는 9월부터 폐기작업에 착수하며 이 협정조인 유럽각국들도 뒤를 이어 협정이행에 들어간다. 재래식무기 감축협정은 세계대전이후 맺어진 군축협상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유럽지역에서 각국의 무기보유 상한선을 설정,초과 보유 무기들을 폐기함으로써 전쟁발발 위험성을 줄인다는데 의미가 있다. CFE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회원국 22개국이 90년11월 파리서 탈냉전후 실질적 신뢰와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화해협정을 체결,동구와 서구국 쌍방간에 총 무기보유 상한선을 전차와 대포 각각 2만대,장갑차 3만대,항공기 6천8백대,헬기 2천대로 제한하기로 했으며 이번에 협정체결 2년만에 초과보유무기 해체작업이 실행에 옮겨지게 됐다. 이날 해체작업 시무행사에는 킨켈독일 외무·뤼헤국방장관을 비롯,러시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사찰관들이 참석했다.뤼헤국방장관은 『유럽은 이제 하나의 다원적 민주사회가 된만큼 과거와 같이 과다한 무기로 병영화된 적대관계는 끝났다』고 선언했다.독일이 폐기하는 재래식 무기는 NATO측이 폐기해야하는 4만여점 가운데 4분의1을 넘으며 폐기하는데 드는 비용은 모두 2억마르크(약 1천억원).이는 통일독일이 구동독군 무기를 인수해 폐기,할당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며 폐기되는 탱크중에는 동독인민군이 사용하던 소련제 T55형 54대도 포함돼 있다.장갑차 1대 해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5천마르크,탱크는 1만2천5백마르크라고 군축관계자가 밝혔다.이때문에 독일은 경비절감을 위해 폐기 대상 탱크중 1천대를 나토회원국중 보유상한선미달 국가들에 넘겨 주기로 했으며 이중에는 비나토국인 핀란드가 포함돼 있다. 분해하기 위해 길게 일렬로 세워논 탱크들은 포탑과 무한궤도등 핵심부분에 노란색 표시가 돼 있어 용접공들이 이 부분을 떼어내 해체,재활용 할 수 없도록 하고있다.또 협정국들이 교차로 사찰단을 무기해쳬 현장에 보내 확인하며 독일의 경우 올해 폐기확인사찰을 2백회 받는다.
  • 비 의회,공산당 합법화 승인/신 인민군·분리주의자 4천여명 사면도

    【마닐라 AFP 연합】 필리핀 의회는 31일 4천4백85명에 달하는 공산게릴라및 회교도 분리주의자들의 사면과 불법화된 필리핀 공산당(CPP)의 합법화 조치를 승인했다. 이날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된 법안은 『필리핀 국민들의 전반적인 이익을 위해 피델 라모스 대통령이 제안한 것과 같은 사면령이 필요하다는데 상·하 양원은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사면령의 대상자가 법질서에 복귀하고 사면을 신청한 신인민군(NPA)과 모로 국민해방전선(MNLF) 분리주의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법안은 사면을 받은 사람은 과거의 범죄행위와 형사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며 공민권과 참정권이 완전히 회복된다고 밝혔다. 앞서 필리핀 의회는 지난 30일 역시 만장일치로 국가전복금지법을 폐지하고 공산당을 합법화한 라모스 대통령의 제안을 승인했다.
  • 북한 김평일 “신상이변”/일 산케이신문 보도/5개월째 모습 감춰

    ◎이복형 김정일과 관계악화 가능성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솔하고 있는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 주불가리아대사가 5개월째 공식 행사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28일 도쿄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김평일은 군부출신으로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이지만 전부터 김정일과의 사이에 불화가 전해지고 있는 만큼 신변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산케이신문은 말했다. 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주 불가리아대사로 부임한 김평일은 지난 2월에 일시 귀국,3월에 소피아에 귀임할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북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4월15일 김일성주석의 80세 생일축하행사,그 10일후 북한인민군 창설 6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라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었으나 김평일이 참석했다는 정보는 없으며 현재 그의 동향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평일은 1954년 김일성의 현부인인 김성애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77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 들어가 대좌로 승진했다.그후 외교분야로 옮겨 주 헝가리 대사를 거쳐 88년12월부터 주 불가리아 대사로 재직하고 있다.원만한 성격으로 군부 장교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모으고 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김정일은 김평일을 잠재적인 라이벌로 보고 경계하고 있으며 양자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불가리아의 북한대사관에는 특별임무를 띤 관원이 상주,김평일의 동향을 일일이 김정일 직속의 당조직 지도부에 보고해온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 라모스,비공산당 합법화 추진/의회에 승인요청

    ◎투옥 3대반군세력 사면도 【마닐라 UPI AFP 로이터 연합】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은 27일 공산당의 20여년간에 걸친 무장봉기를 종식시키기 위해 현재 불법단체로 규정돼있는 필리핀공산당(CPP)을 합법화하고 투옥돼있는 신인민군과 우익반군,회교분리주의반군등 3대무장 반군세력의 전소속원들에 사면을 단행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라모스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행한 첫 국정연설을 통해 『평화와 안보는 가장 우선적이고 절박한 문제』라고 전제,『불안정과 불확실성이 우리 일상생활을 채운다면 아무런 진보도 이룩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의회에 대해 공산당을 불법화한 법률의 폐지를 촉구하고 그같은 법률을 폐지할 경우,공산당은 무장 투쟁이라는 방법 대신 정치·경제·사회분야에서 자유롭고 공개적이며 평화롭게 경쟁할수 있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들 3대 무장 반군 세력들과 평화 협정을 맺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협상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자애로운 어버이” 김정일 우상화 박차(오늘의 북한)

    ◎찬양·노래·시 보급… 「잔치상내리기」도/언론 연일 대대적 보도… 이미지 부각/열성파 480여명에 생일·결혼선물도/개방바람속 「신 체제」 모습 관심 북한사회 이곳저곳에서는 요즘 김정일비서가 친히 내려준 음식으로 차리는 결혼·생일잔치가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와함께 김정일을 북한주민들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북한인민군을 김정일의 「사병」으로 묘사한 군가와 가요,시 보급사업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지난해 12월의 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 지난 4월의 원수직 추대로 당·정·군의 실권을 장악한 김정일이 새롭게 구사하고 있는 「신체제」구축용 통치방식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즉 김일성에 이어 바야흐로 「어버이」로 등장한 김정일의 이미지를 보다 「어버이」답게 형상화하고 김정일의 군부장악을 주민들이 자발적 나서서 칭송한다는 분위기를 「연출」,김정일과 주민 사이를 더욱 밀착시키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른바 「어버이 이미지 심기작전」은 김정일의 전권장악이 가시화된 지난해부터 불이 붙기 시작, 91년 한햇동안 김정일로부터 생일 및 결혼상을 받은 북한 주민의 수가 4백80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수많은 공장과 기업소,문화기관등에 내려진 김정일 명의의 감사문도 같은 맥락의「정책적 사업」의 하나라는게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일의 감사문 전달은 4월15일의 김일성생일잔치가 끝나고 5월에 접어들면서 본격화, 5월 한달에만도 17개 사업단체에 감사문이 전달됐으며 이에 답하는 해당기관 일꾼들의 충성다짐 집회 역시 연달아 열렸다. 이는 지난날 김일성이 행했던 것보다 수적으로도 훨씬 앞서는 것이며 그 방식 또한 새로운 것이라는게 북한관측통들의 지적이다. 북한 언론들도 「김정일어버이만들기」에 맞장구를 치고 나서 로동신문,민주조선 등은 이와 관련된 사례들을 보도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북한 언론매체들의 대대적인 보도 실상은 북한방송이 전한 「친어버이같은 김정일지도자」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일화방송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5일 평남 순천지구 청년탄광으로 지원,이미 이곳에서 광부로 일하고 있는 제대군인들과 합동결혼식을 치르기로 한 26명의 제대여군들이 이를 사전에 김정일에게 보고하고 택일까지 부탁했다.김정일은 결혼하는 제대여군들에게 이들의 부탁을 들어줌은 물론 이에 더해 선물까지 주었다. 김정일이 친히 내리는 잔칫상이나 선물,감사문을 받는 대상은 주로 ▲당세포의 비서장이나 기업소의 작업반장등 북한의 기본조직단위에서 열성적으로 과업을 달성하고 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운 사람 ▲「사회주의적 품성」이 다른 주민의 본보기가 된다고 당에 의해 인정을 받은 사람등이다. 『오늘은 오실까 우리 어버이/내일은 오실까 김정일동지/우리를 키워준 어버이 모습/한해가 다르게 그립습니다』. 지난 5일 부터 보급돼 불리고 있는 「기다렸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가요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의 등장을 간절히 희구해왔음을 묘사하는 것으로 역시 「어버이」로서의 김정일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만든 것이다. 『총칼을 번쩍 발구름 쩡쩡/우리들은 위대한 장군의 병사/보라 우리는 무적의 지도자동지군대 …』 이 또한 인민군을 김정일의 사병으로 묘사하는「우리를 보라」라는 제목의 최신 군가의 한 부분이다. 이밖에도 북한은 최고사령관 추대를 축하하는 시 「축원의 꽃보라」와 「우리의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김정일의 원솔추대를 축하하는 내용의 「로동당의 영도자 김정일 원수이시여 경례를 받으시라」등 김정일과 군의 관계를 나타내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급,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과 원수추대 이후의 더욱 확고한 군부 장악을 거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징조작을 통한 김정일의 체제관리 노력은 개방·개혁외에는 달리 활로가 없는 북한의 경제사정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더욱이 실용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탈이데올로기화,화해 협력시대로 접어든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개, 북한과 미국·일본의 빈번한 접촉 등은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고수와 경제발전이라는 두개의 떡을 한꺼번에 쥐려하는 북한. 이같은 2중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북한이 향후 어떤 몸짓과 행보로 빈곤과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할지,그리고 이를 위해 김정일이 어떤 새로운 관리방식을 채택하고 나설지가 궁금하다. ◎김일성대에 「김정일 사적관」도 건립/2백만명 관람 ○…김정일 우상화작업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이 김의 대학생활까지 이른바 「혁명활동」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어 가관. 김정일은 지난 60년 9월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경제학과에 입학,4년후인 64년 3월 졸업했는데 북한은 이 기간에 김이 『혁명활동을 정력적으로 벌였다』고 주장하는 한편 김의 이같은 「불멸의 혁명업적」을 대를 두고 전하기 위해 「혁명사적관」까지 조성해 놓았다는 것. 11개 방으로 이루어진 이 사적관에는 김정일의 대학생활 모습은 물론 졸업 당시 같은 과 동급생들과 나눈 대화내용(북한은 이를 「역사적인 연설문헌」으로 선전)과 61년 김이 평양방직기계공장 견학시 수리했다는 26호선반의 모형(이로 인해 「26호선반을 따라 배우는 충성의 모범기대 창조운동」이라는 노력경쟁운동이 생겨남)등을 전시. 북한은 김정일이 김일성대를졸업한 이후 이 대학을 「유서깊은 배움의 성지」로 선전하면서 이 대학 졸업생은 물론 주민과 외국인까지 김의 「혁명사적관」을 참관케 해왔는데 그 인원이 지난 2월까지 약 2백만명에 달했다고.
  • 이인모는 누구/38년동안 전향 거부한 빨치산출신 고정간첩

    이인모씨(75)는 34년간의 영어생활 끝에 지난 88년 풀려난 「미전향 좌익수」출신.함경남도 풍산군 안산면산. 최근 공개된 52년 4월28일자 광주고등군법회의 「피의자 신문조서」등 당시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씨는 50년 8월 인민군소위의 계급을 달고 조국보위위원회 군사지도원의 자격으로 남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41년 일본 도쿄공고 1년을 중퇴한 이씨는 50년 8월 경남군사위원회 지도원으로 진주에서 의용군모집등 인민군의 작전을 지원하다 그해 9월 인민군 후퇴시 경남 거창 덕유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전개,12월 대공세때 한쪽다리에 총탄을 맞고 체포됐다. 이씨는 7년복역후 59년 만기출소했으나 61년 고정간첩혐의로 다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다 76년 만기출소.그러나 사회안전법에 의거,88년 동법이 폐지될때까지 청주보안감호소에서 다시 감호생활을 했다. 국내 연고자가 전혀 없는 이씨는 서준식씨(민가협의장)의 주선으로 현재 경남 김해에서 김상원씨(51)의 보호를 받고 있다.지난해 7월 뇌졸중이 발병,거동이 불편한 상태인데 북한에는 부인 김순임씨(64)와 딸 이현옥씨(42)부부및 외손자 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귀순한 김영성씨가 밝히는 생활상(오늘의 북한)

    ◎지방주택난 심각… 곳곳에 「블록집」/한집에 3∼4가구씩 동거 예사/고급 「광복아파트」도 제한급수/연형묵·강성산등 동구유학그룹이 재건 주도 북한은 6·25동란이 종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지난 52년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엘리트들을 대거 동구에 유학시켜 전후재건을 위한 혁명2세대 양성에 착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국가건설위원회소속 건축설계사로 독일에 파견근무중 지난달 7일 망명,30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첫 기자회견을 가진 김영성씨(58)는 『연형묵 정무원총리와 강성산 함북도당책임비서,김시학 로동당행정부장,김유순 북한IOC위원 등 현재 북한을 이끌어가고 있는 테크너크랫(전문관료)의 상당수가 이들 유학생그룹에 속한다』고 밝히고 이들이 김정일 후계체제확립에 공헌하고 있는 충성파들이라고 증언했다. 지난 52∼59년 체코 프라하공대에서 이들과 함께 유학한 김씨는 연형묵 강성산의 나이가 자신보다 다섯살이 많은 63살이며 이들이 6·25동란중 김일성의 직속 호위부관으로 일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공개,관심을 모았다.이제까지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67,61세로 소개돼 왔으며 출신학교등 인적 사항과 50년대의 활동상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연형묵과 강성산은 유학시절 학생지도부 모임을 주도,향후 방향에 대한 논의를 갖는등 남다른 지도력과 충성심을 보였다는것이다. 귀국후 강성산은 69년 자강도당책임비서,70년 평양시인민위원장을 거쳐 84년 정무원총리에 취임,합영법을 추진하는등 만3년동안 경제개혁을 이끌며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88년부터는 함북도당책임비서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성산의 총리직 사임 이유와 관련,김씨는 『총리재임시 「주석예비펀드」(김일성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게 비축해 놓는 기금·이밖에 김정일펀드와 장성택펀드가 있다)를 김일성의 재가없이 제멋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김씨는 『그러나 강은 학식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됨이 좋아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고 북한경제를 위해 쓴 것으로 다들 생각했다』고 덧붙였다.강성산은 현재 표면적으로는 좌천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경제개방의 상징인 두만강경제특구 개발과 관련,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인 함북에서 그 실무총책을 맡고 있는 등 여전히 김부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연형묵은 귀국후 경제 및 조직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급성장,74년 김정일의 친위대인 「3대혁명소조」의 중앙지도부 책임자역을 맡았으며 88년 총리에 기용된 이래 7차에 이르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이끌어오는 등 혁명2세대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김영성씨는 이밖에 평양과 지방의 생활차이등 북한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증언을 했다. ▲평양과 지방주민의 생활차이=평양시민들에게 지급되는 쌀은 입쌀비율이 50%는 되고 가을에는 70%까지도 된다.또 행사때 배급되는 외출복이 많아 당에서 잘들 입고 나오라면 차려입고 나올 수 있다.치약·칫솔·세면비누등이 별부족함이 없이 공급되는 등 특별시 인민다운 대접을 받고있다. 그러나 함북 청진·무산등 지방의 주민들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공중목욕탕의 경우 월중 15일만 가동돼 대부분 한달에 한번 집에서 목욕한다.배급되는 팬티와 수건도 면제품이 아니라 인조화학섬유로 만들어져 햇볕에 잘못 널었다가 쪼그라들어 낭패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년전 건설된후 그대로인 주택문제 역시 심각한 실정이어서 일제시대 중심가였던 청진시 해방동과 언곡동의 경우 기존의 집에서 서까래를 2m나 내뽑아 집을 넓히는바람에 보도는 아예 없어지고 차도만 남았다. 인구 9만명의 무산군은 주택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여유공간 하나없이 빽빽이 지은 「하모니카주택」을 보급했으나 그것으로도 모자라 인민학교 운동장에까지 블록집이 들어섰다. 기타 지방도 마찬가지로 전후 복구부터 60년대까지 지은 한칸짜리 「콩알만한 집」에 3∼4가구가 동거,그 결과로 노인을 천대하는 악습이 전국적으로 생겨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특히 자녀가 결혼하게 되면 노인들은 잘곳이 없어지게돼 『며느리 맞는 날은 벼락맞는 날이다』는 말이 생겼다. ▲공장가동률=외화벌이를 위한 군수공장이나 수출전략상품인 시멘트·금·동·아연 등비철금속공장은 비교적 활발히 돌아가고 있다.그러나 생필품 생산을 담당하는 지방공장은 전력과 원료의 부족으로 90%이상 조업을 중단하고 있다.김책제철소 같은 특급공장도 대형용광로 4기중 1기만 가동되고 있으며 청진제강소는 이미 5∼6년전부터 굴뚝의 연기가 멎었다. 따라서 일할 공장이 없는 노동자들은 소속 공장·기업소에서 양권과 월 20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농촌이나 도로보수공사에 동원되고 있고 그나마 일이 없을 때에는 출근부에 도장만 찍고 각자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광복거리 아파트=광복거리건설(김영성씨가 직접 설계)은 김정일의 매부 장성택의 지휘하에 북한전역의 각 기관과 기업소 노동자·군인 등 총 18만명이 돌격대원으로 「조직동원」돼 지난 86년 착공,6년만인 올 4월에 완공됐다.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생활은 상상도 못할만큼 비참했다.천막이나 임시 토담집을 숙소로 사용했으며 강냉이밥과 시래기가 식사로 제공됐다.공사기간중 강냉이농장이 습격당한 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 범인을 잡고 보면 공사에 동원된사회안전부나 인민군대의 나이어린 돌격대원들이었다. 건설장비도 불도저 30여대,굴착기와 기중기가 각각 40·50여대에 불과,거의 모든 공사를 인력에 의존했다. 아파트내부에는 조리대·붙박이찬장·이불장등이 공통적으로 설치돼 있으나 프로판가스와 전화기는 고위간부용 집에만 갖추어져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석유곤로를 쓰고 있다.수돗물은 상오4∼7시,하오3∼7시 두차례 제한급수되며 온수는 일주일에 하루만 공급된다.승강기는 6층 이상만 가동하며 고장이 잦아 할머니들을 승강기운전공으로 배치,운영하고 있다. ▲김영성씨의 설계기술수준=김씨는 북한 조립식 건축공법의 제1인자로 평양시 광복거리를 비롯,평양체육관 평양인민대학습당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건설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김책제철소 영빈관,무산학생소년궁전등도 그의 작품.특히 83년부터 1년6개월동안 함북 경성군 주을역에서 북쪽으로 16㎞ 떨어진 산골 소재 김부자 전용 초호화판 1호 특각(별장)을 설계,국기훈장 3급을 받기도 했다.
  • 외언내언

    1918년10월 혁명의 무장봉기 다음날 레닌은 그때까지 자기들 볼셰비키의 공격대상이었던 러시아 정규군장교들에게 협력을 요구했다.정권을 창출하여 사회주의독재를 확립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사전문가들이 필요했다.◆레닌의 동반자 트로츠키도 같은 인식이었다.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정부군사인민위원에 취임한 바로그날 『공업이 숙련된 기사를 필요로 하고 농업이 적격한 농학자를 필요로 하는것처럼 군사전문가는 국방의 불가결한 존재』라고 말했다.볼셰비키가 구군(러시아정규군)의 지휘관을 대담하게 기용한 정책배경이다.◆그러나 독재자들은 정규관료나 군지휘관들의 전문지식과 두뇌를 빌려 전쟁을 벌이고는 그들이 쓸모가 없어지면 미련없이 소탕해버린다.자신과의 구연은 물론이고 동료 전우관계도 거추장스럽다.그들의 전공이나 전공도 소용없다.오히려 혁혁한 전공은 엉뚱하게도 독재자자신의 지위를 넘보는 「반역」의 요인이되어 무자비한 숙청의 빌미가 된다.◆고금의 그러한 사실들은 우리 한반도 현대사의 북쪽대목에서도 재연되었다.대남한「반타격 전투명령」으로서 기습남침공격을 감행할때 김일성의 수하장령들 대부분은 빨치산계열,조선의용군 계열,소련군출신계열의 군사전문가들이었다.그들은 김일성의 명령일하 충실하게 이른바 대남적화혁명전쟁을 수행했다.그 전공으로 훈장도 받고 승진도 했다.◆전중,전후 그들에게 돌아온것은 전쟁실패의 책임과 핍박과 숙청이었다.작전을 잘못해 동족들을 덜죽였다고해서 책임추궁을 받았다.급기야는 독재 철권을 피해 러시아로,중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망명살이를 했다.그 인민군작전국장 유성철등이 42년후 매우 뒤늦게나마,전쟁범죄자로부터 받은 훈장과 계급장을 반환했다.김일성의 야욕이 빚은 동족상잔의 전쟁에 앞장섰음을 부끄러워한다며….사실은 사실임을 다시한번 확인해주고 있다.
  • 6·25참전 전인민군 간부 5명/북한서 받은 훈장 반환

    ◎구소 알마아타서 회견 【모스크바 연합】 한국전쟁당시 북한 인민군의 고위 간부였던 강상호(84·중장·내무성부상),유성철(76·중장·작전국장),박병율(86·소장·강동정치학원원장·군수국장),정상진(73·대좌·문화성부상),장학봉씨(73·대좌·정치군관학교교장)등 5명은 전쟁발발 42주년인 25일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으로부터 참전공훈으로 수여받은 훈장과 계급장을 모두 반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야욕이 빚은 동족상잔의 비극이며 따라서 이 전쟁에 참여한데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하고 모든 훈장 등을 이날 자로 모스크바주재 북한대사관에 우송하겠다고 밝혔다.
  • 내가 겪은 「1950년여름」/윤남경 작가

    ◎인공기 보면 아직도 떨리는 이가슴… 『아직도 옛말 삼기는 멀다』 몇해전까지만 하더라도 6·25가 돌아오면 나는 이 말을 되뇌이곤 했었다. 6·25 당시 부산으로 피란을 간 뒤에도 『언제쯤 이런 생활을 옛날얘기삼아 우리 후손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마치 우리가 3·1운동 얘기나 임진왜란때 이야기들을 할머니에게 듣듯이 말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 후배들은 공산당 얘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숫제 인민공화국 깃발을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을 볼때 나는 꺄악하고 소리라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뻔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극단으로밖에 사물을 판단못하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대학기숙사에서 한가롭게 노래를 하고 있는데 우리 귀에 난데없는 대포소리가 쿵쿵하고 울릴 때 우리는 그저 국군의 훈련소리라고만 믿고 있었다.그러나 며칠뒤 사감선생님이 속히 집으로 돌아가거나 지방 학생들은 연고자를 찾아가라고 다급하게 말할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부산이 집이었던 J는 이미 길이 막혀 이리저리 걸식하다시피 살면서 그 시절을 지냈다.영문도 모르고 집에 가 있는 내 귀에 모교인 K여고에서 인민재판을 연 결과 사형선고가 내려진 몇사람 속에 내가 끼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즉시 이모님댁으로 몸을 피했다.그때 기독학생회장과 훈육부장을 겸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이모님댁에도 밤마다 내무서(경찰서)원들이 집을 뒤지며 젊은 남자는 인민군으로,젊은 여자는 의용군이나 간호원으로 끌고가는 바람에 거기도 못 있고는 땀띠의 투성이 얼굴로 골방에서 뛰쳐나와 집에 가서 식구들 얼굴을 한번만 보고 어디론가 가리라 하고 집에 가보니 모두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인민군이 후퇴하기 직전에 몇몇집식구들은 다 죽이고 가는데 우리집도 그중의 하나라는 것이다.그러니까 빨리 피하라고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었다.그들은 종적인 명령계통은 잘 서 있지만 횡적인 연락에는 둔하니 장소만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큰고모님네와 작은아버지 식구들하고 한 20여명이 성북동에 있는 작은 고모님댁으로 갔으나 가자마자 누군가가 찔렀다면서 내무서원들이 들이닥쳐 아버지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네가 상공장관인 아무개지?』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할머니가 질겁을 하며 권총을 부여잡고 그애는 장관의 동생이라고 소리치시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한 일도 있었다. 결국 노인과 어린이만 빼놓고는 우리를 굴비엮듯이 엮어 끌고가니 그것을 본 동네사람들이 혀를 차며 『어제도 몇십명을 잡아다 뒷동산에서 죽이더니 오늘도 또 저렇게 죽이는구나』하는 말이 들렸다.어머니 친구분중 한사람은 잡혀 갈때 검정고무신과 흰고무신을 한짝씩 신고가면서 내가 죽거든 이 고무신을 보고 찾으라고 하며 끌려갔는데 정말 그들이 도망간 뒤 삼청동 산 웅덩이속에서 얼굴은 썩어 분간할 수가 없었으나 고무신때문에 찾은 일도 있었다. 우리를 끌고간 그들은 한사람 한사람씩 밤새도록 심문을 했으며 새총인지 무슨 총인지를 들고 공연히 사람들 얼굴에 겨냥하며 쏘는 시늉도 해보고 어디서 훔쳤는지 길다란 일본 사무라이 칼을 빼서 사람을 후려치는 흉내도 내보고 갖은 악독한 짓을 다하며 사람을 밤중까지 묶어 두었다.내게는 어디 다니느냐고 하기에 정직히 대학생이라고 말하니까 갑자기 표정이 잔인해지더니 『흥! 난 인민학교도 못나왔소.당신 나를 업신여기기요?』하고 대드는게 아닌가.업신여기다니 내 목숨을 쥐고있는 사람인데라고 생각했으며 『이승만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등 몇가지 이상한 질문을 던지더니 자기들도 사람 죽이는데 진력이 났는지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그때 풀어주는 것은 정말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모두 말했다.그대신 자기들을 욕하면 또다시 잡아들인다고 협박도 했다. 인민군이 내려오자 멋도 모르고 환영하며 협력했던 사람들도 뒤에 알고보니 대부분 쫓겨났거나 숙청당했다는 것이다.이유는 서울에서 이북으로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었으니 반동분자라는 것이다.결국 이용할대로 이용해먹은 뒤에는 발길로 걷어차버리는 것이 그들의 속성인 줄 알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달콤한 말을 하더라도 속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당시 우리들의 심정이었다. 그 더운 복중에도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디오를 들으면(들키면 사형이니까 목숨걸고 듣는 단파 라디오였다)미국의 소리방송에서 『여러분 오늘도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하고 나올때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오늘 하루도 죽지않고 살았구나하는 실감때문이었다. 쌀을 구경못하는 배고픔에다가 전쟁전에 먹었던 군것질거리 생각이 나서 참기 어려웠지만 그보다도 사람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그들은 자식이 부모를,이웃이 이웃을 모두 못믿고 감시하고 서로 내무서에 일러바치는 자들만이 영웅이라고 가르친 까닭에 정말 누구하고 마음놓고 이야기할수 없었다. 그러나 북쪽사람도 우리 부모요 형제들이다.우리는 하루속히 통일이 되어 사람을 속삭이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그러나 공산주의,김일성주의에 물들은 사람들하고는 아직도 마음놓고 흉금을 털어놓지 못한다는게 솔직한 내 심정인 것이다.
  • 남침에서 「합의서」 채택까지… 그 교훈과 통일 전망 대담

    ◎현실 무시한 감상적 통일론 경계할때/평양,체제유지 하려 대화채널 이용/상호사찰수용등 「합의서」 이행 급선무/남북신뢰 구축의 지름길은 북의 적화야욕 포기/마찰작은 문화­경제교류 힘써 북의 변화 유도해야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며 미래는 다가올 현재」라는 말이 있다.역사는 항상 연속선상에서 진행된다는 말인 것같다.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2년이 흘렀다.최근의 남북관계진전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통일에의 꿈을 부풀게 하고 있다.하지만 핵사찰문제에서 알수 있듯이 남북관계는 현실을 무시한채 성급한 결론을 유도하기 힘든 난제가 아닐 수 없다.국군사의 산 증인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과 북한문제전문가 유석렬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대담을 통해 「6·25에서 남북합의서 채택」까지의 역사적 교훈과 통일의 전망등을 들어 본다. ▷채명신◁ ▲육본 작전참모부장 ▲주월한국군 총사령관 ▲주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 ▷유석열◁ ▲미 미주리주립대 정치학박사 ▲미 북 아이오와대 조교수▲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유석렬외교안보연구원교수=올해로 6·25전쟁 42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6·25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최근의 남북관계와 연결시켜 조망해보는 것이 올바른 남북관계를 펼쳐나가고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봅니다. 6·25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이지만 어찌보면 남한이 너무 무방비상태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혼란한 상황이어서 우리에게도 책임은 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저는 6·25가 발발하기 전에 북한에 거주하다 47년에 월남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해방직후 북한사정은 잘 알고 있지요.좌경화된 일부 세력은 6·25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주장하는데 터무니없는 얘기입니다.6·25는 소련군부가 북한 공산군을 육성,치밀한 계획아래 준비한 끝에 일으킨 것입니다.시초단계에서는 소련군이 주도했고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진후 남침계획에 참여했다고 보여집니다.46년 2월 본인이 진남포근처 보통학교에서교편을 잡고 있을때 공산당간부훈련기관인 평양학원설립식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그 설립식에서 축사를 한 소련군 사령관과 북한주재대사가 「내년에는 여기에 탱크·공군기가 참여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지요.이것은 6·25를 스탈린이 주도했고 김일성이 그 꼭두각시 노릇을 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유교수=말씀 중에 북침얘기가 나왔는데 요즘은 많이 들어갔지만 한때 일부 좌경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많이 주장됐었죠. 분명한 것은 3일만에 서울이 함락당한 것이나 전쟁 발발당시 전군의 3분의 1만이 근무중이었던 점만을 봐도 북침은 전혀 근거없는 주장으로 생각되는데 채선생님께서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시죠. ○수차례 예비도발 ▲채전사령관=소련과 김일성은 6·25 남침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저는 장교임관 후 48년 송악산전투 등 인민군과 치열한 정기전을 여러차례 치렀는데 우리쪽 전투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예비도발이었어요.또 2천5백명에서 3천명에 달하는 게릴라부대를 태백산 등지에 남파시켜 후방을 괴롭혔는데 이것도 우리의 군전투능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게다가 50년 6월25일은 일요일이었으며 3분의 1 이상의 병력이 외출을 나간 상태였지요.농촌출신 군인들은 농번기휴가를 내보냈었습니다.그것도 새벽 4시의 기습남침이었으니 첫날부터 우리의 군전력이 궤멸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이때 두가지 미스터리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첫째는 군비상경계가 6·25전쟁발발 하루전에 해제된 이유와 둘째는 그해 6월10일 전후 대대적 군인사가 단행돼 6·25당시에는 자기 부대순시도 채 못한 전방 연대장·사단장이 많았었다는 점이지요. ○두가지 미스터리 ▲유교수=이제 최근의 남북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90년대 들어 남북한 관계가 어쨌든 호전된 양상을 보여 7차에 걸친 고위급회담이 열렸습니다. 3차회담까지는 기본관계합의서를 먼저 체결하자는 남측과 불가침선언을 먼저 해야한다는 북측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4차회담에 이르러서 남북 쌍방은 단일안건을 채택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5차회담에서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이라는 단일안건을 채택,처음으로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7차회담에서는 북측이 놀랄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와 평양에서 모종의 특명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띠게 된 것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먼저 체제의 위협을 느낀 것 같습니다.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제도적 장치로 합의서를 만들자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죠. 또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수교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침체와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조정작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남북합의서 채택을 「역사적 사변」으로 선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일성도 공개적으로 크게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합의서채택이 김정일의 주도로 이루어진 업적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죠. 또다른 측면에서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축제분위기 속에서 맞자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축제분위기를 만드는데는 남북합의서가 최상의 선물이고 이를 이용,김일성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부각시키자는 것이죠. 이밖에 남한 주민들의 대북 경계심을 이완시켜 친북세력을 조성하려는 숨은 뜻도 보입니다. 북한은 남한사회를 불안하고 불투명한 사회로 규정하고 대남혁명의 기대를 결코 버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올해 대통령선거와 총선등 2차례의 큰 선거를 치르고 경제가 침체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국민과 정부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혼란을 일으켜 보자는 거죠. ▲채전사령관=이북 공산주의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북한측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릴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들이 통일을 외치고 있는 것은 미·일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절박한 필요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진심으로 평화구축을 바라기 때문이 아닙니다.7·4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 땅굴을 팠다든지 얼마전 3인조 무장간첩침투사건등 그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바라지않는 예는 많습니다.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씨가 엄연히 서울에 살고 있는데도 아직 우리측 조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습니까.그들은 거짓말도 공산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교수=현재 남북관계에서는 핵문제의 해결이 선결과제로 등장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얻은 교훈 하나가 북한을 실뢰할 수 없다는 것인데 북한의 핵개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임시사찰 결과를 검토해보면 영변에 위치한 의문의 건물은 핵재처리시설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남북간의 비핵화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입니다. 북한은 IAEA의 사찰만으로 핵의혹을 해소하려 하지만 우리로서는 상호사찰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핵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군사·교류협력분과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없게됩니다. 북한이 진실로 남북간에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상호사찰에 응해 핵의혹을 깨끗이 풀어야 합니다. ▲채 전사령관=유교수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상호주의 원칙에 의해 의심스러운 곳은 어디든지 개방되어야 합니다.우리가 이제까지 얼마나 북한에 속았습니까.국제적 압력을 총동원,핵문제 만큼은 털끝만한 의심도 남겨서는 안됩니다.작은 땅덩어리,높은 인구밀도의 상황에서 핵무기를 쓰려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북한은 또 핵운반수단을 완벽하게 개발해놓았습니다.핵폭탄만 만들면 일본 일부까지 목표물이 됩니다.따라서 사찰대상에는 핵운반수단과 핵폭탄 못지않은 피해를 줄수 있는 화학무기까지 넣어야 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유교수=이러한 상황인식 아래 앞으로의 통일정책 방향과 추진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남북이 불신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쉬운 것부터,상호마찰이 적은 것부터 해결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정치·군사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자는 북한의 주장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습니까. 남북이 먹고 먹히는 통일이 아니고 한민족이 함께 사는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점진적인 노력을 통해 남북의 합의 사항을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면 통일은 반드시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채전사령관=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추구에는 위험이 많습니다.북한이 도저히 들어줄수 없는 주장을 할때는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론적 자세가 필요합니다.실천가능한 교류문제는 덮어둔채 정치·군사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것은 억지입니다.특히 남북한이 당장 몇십만명을 감군하자는 주장같은 것은 합의가 무척 어려운 난제인데 이런 주장을 전제로 내세운 대화는 무의미합니다.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과거 감정을 들추어내어 앞으로의 대화분위기를 깨서도 안되지요.말장난으로 시간을 끌때는 단호조치를 취해야겠지만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놓아야 합니다.이번 여름 남북이산가족 상호방문도 인원이 너무 적어 답답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남북왕래를 해서 서로를 알겠다는 끈기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존노력 중요해 ▲유교수=그러한 바탕에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전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남북간에는 핵통제공동위를 포함 모두 4개의분과위원회가 설치됐는데 남북합의서에 따른 부속합의서의 채택이 당면과제가 될 것입니다. 정치·군사분과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 미군철수등을 주장하는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교류분과위는 북한이 경제교류를 원하고 있어 낙관되지만 결국 핵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만 본격적인 교류가 성사되겠죠. 통일의 시기를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김일성은 최근 한 연설에서 『95년을 통일의 해로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물론 완벽한 통일이 아니고 연방제 등 공존적인 의미죠. 우리도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69%의 국민이 10년 안에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까지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결정적인 기회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죠. ▲채 전사령관=통일의 기본개념에 있어 우리와 북한이 다릅니다.북한은 공존·공영에 바탕한 평화통일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적화통일이 우선입니다.국제적 압력이 너무 거세니까 할 수 없이 시늉만 내는 것이지 속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그러니까 큰 줄거리는 합의해놓고 세부실천과정에서 계속 트집을 잡아 남북관계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닙니까.저들이 95년 통일을 얘기하고 있는 것도 그때가서는 적화 통일준비가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아래 나온 발언일 가능성도 있지요.핵무기개발뿐 아니라 김일성나이도 생각할때 그때쯤을 적화통일의 호기로 여길 수 있습니다.특히 북한은 남쪽의 혼란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최근 주체사상·인공기 등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자기들은 무력강화를 늦추지 않으면서 남쪽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실각하는 북한내부변란이 없는한 통일에 대한 북한의 자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일본도 통일한국등장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에 나설 수도 있어 통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독일의 경우도 엄청난 통일비용을 치르지 않았습니까.우리도 공산당의 실체를 직시하면서 초연한 자세로 통일의 기회가 성숙될때까지 실력을 쌓아야겠습니다. ○국민합의에 최선 ▲유교수=42년이 지난 뒤에도 6·25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적대감과 불신이 없을 수 없지만 우선 점진적인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독일이나 예멘에서와 같이 금방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감상적인 생각은 한반도의 상황여건을 도외시한 것입니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은 우리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갖가지 제안을 내 혼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국민의 합의와 노력을 통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북한이 동경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그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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