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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핵시설 12곳 군사이용 가능/러 정보처,파괴무기 실태 보고

    ◎영변은 플루토늄 제조능력도 보유/탄저병균 등 연구·독가스 극비 개발 러시아 해외정보처가 28일 발표한 대량파괴무기 실태보고서는 대량파괴무기의 잠재적인 개발국가들 가운데 북한이 개발에 가장 의욕적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 북한지도부는 세종류의 대량파괴무기 즉 핵·화학·생물학 무기의 제조능력을 동시 개발하기 위해 다년간 노력해오고 있다.이와 병행하여 이들 무기의 운반수단도 개발해왔다.그러나 이들가운데 각 부문의 집중적 개발과 그 효율이 같지 못했고 현재도 그런 상태에서 개발실적 및 완성정도가 일치하지 않은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핵무기◁ 현재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꽤 장시간 핵개발에 군사적 응용방안을 추진해 이 분야의 연구 실적이 돋보이고 있으나 과학기술 수준은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다. 핵무기 개발에는 북한 인민군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핵 동력공업을 발전시키기에 충분한 원료를 갖고 있다. 우라늄원광 매장량이 2천6백만t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핵개발을 실현하기 위해 근 30년간 원자공업시설을 건설했는데 그 가운데 군사적 응용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평양 김일성대학 핵물리전문연구실 ▲핵연료 제조공장과 녕변원자연구센터내 핵연료 저장소 ▲5MW급 녕변연구용 원자로 ▲50MW급 녕변원자로(현재완성단계로 이 원자로는 발전용 외에 핵플루토늄제조에도 이용될 수 있다) ▲영변 방사화학연구소와 방사화학실험실 ▲대천에 건설중인 2백MW급 가스원자로 ▲박천 및 평산 우라늄 매장지 ▲2개의 우라늄제련시설 ▲각각 6백35MW급의 3개 동력반응장치를 건설하기 위해 지정된 지역 등 북한은 70년대초부터 「핵연료생산기지→과학실험연구소건설→핵물질제조→폭발장치 개발및 실험→운반수단완성→마지막으로 핵무기개발」이라는 기술적 단계로 핵개발을 추진해왔는데 중요한 한 고리가 무너졌다. 플루토늄제조 단계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이 지난해 북한의 핵시설을 사찰하긴 했지만 북한지도부가 그 핵시설을 군사적인 핵개발 목적에이용할 계획을 완전 포기했다고는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생물학무기◁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일련의 대학교,의대 및 전문연구소에서 군사적 목적의 생물학 수단에 대한 개발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들 과학센터에서는 탄저병,콜레라,페스트,천연두 등의 병원체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생물학 무기에 대한 실험은 일부 섬들에서 진행되고 있다.이 무기개발의 공격적 성격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다. ▷화학무기◁ 국제전문가들의 자료에 의하면 화학무기분야에서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개발계획이 실재하며 이에 필요한 공업시설도 존재하고 있다.개발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어 이 분야의 실태를 세부까지 파악,분석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독가스 물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외교부는 올해초 어떠한 화학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나 북한은 지난 1월 파리에서 조인된 화학무기금지조약 조인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운반수단◁ 소련제 스커드­B와 북한제 신형미사일 스커드­C가북한운반수단의 주요 기반으로 돼 있다.북한은 이집트에서 구입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소련제와 같은 스커드형 미사일을 제조,중근동에 수출하고 있다.북한은 사정거리 약 1천㎞의 자체개발 중거리 미사일 「노동­1」을 세계시장에 판매하려하며 현재 이 미사일을 시험중이다.모든 자료를 종합해볼 때 화학무기운반,나아가 핵무기운반에도 이용될 수 있는 미사일을 제작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공업이 엄연히 실재하고 있음을 근거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사일 개발의 기술적 수준을 높이는데 필요한 숙련기술자와 과학자들이 부족해 미사일 개발은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다. 미사일 제조공업을 경쟁력있는 수출부문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북한은 이때문에 필요한 기술자를 외국에서 초빙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북쪽하늘 보며 망향설움 달래/통일전망대서 「실향경모제」

    ◎이름없는 신패앞 성묘객 줄이어 설날인 23일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는 1천만 실향민들을 위한 「실향경묘제」가 치러져 망향의 설움을 달랬다. 「재이북부조 신위」라는 이름없는 신패가 모셔진 이곳 망배단에는 이른아침부터 가족들과 함께 「대리성묘」를 하려는 실향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이지만 제를 올리며 토해내는 분단의 설움은 보는이들을 40∼50년전의 과거속으로 되돌릴만큼 거셌다. 『죽음을 무릎쓰고 38선을 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5년이 흘렀다니…』 평안북도 정주시가 고향인 김용섭옹(67·경기도 고양시 마두동)은 끝내 말문을 잇지 못한채 어머니를 되뇌이며 옷섶에 눈물을 적셨다. 4형제중 맏아들로 태어나 해방후 김일성대학에 다녔다는 김씨는 1947년 이념때문에 가족에게 곧 돌아오겠다는 편지만 띄우고 친구들과 함께 밤을 틈타 38선을 넘었다. 이후 경찰에 몸담으면서 김씨가 들은 고향소식은 전재산이 인민군에 몰수당하고 동생들은 군에 징병되었으며 6·25전쟁중에는 온가족이 평양까지 피란했다는 것이 전부. 부모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죄스러워 그는 명절때면 혼자 산에 올라가 눈물로 지새다 환갑을 넘기고서야 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10시간이 아니라 한달동안의 귀성전쟁을 치른다하더라도 고향에 갈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백민봉씨(57·경기도 안산시)는 자신의 고향이 임진강만 건너면 1시간도 채 안걸리는 경기도 개풍군이라면서 안개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임진강 맞은편의 북녘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함경북도 명천군이 고향인 무남독녀 김초련할머니(63·인천시 북구 상복2동)도 한사코 고향을 지키겠다는 어머니만 남겨두고 1·4후퇴때 내려온 것이 지금도 한이 된다고 했다. 이날 통일전망대에는 손수 젯상을 꾸려 임진강변에서 향을 피워올리는 희수의 할아버지,전망경에 눈을 맞추고 통한의 한숨만 내쉬는 일꾼 차림의 60대 노인등 한발짝이라도 가까이서 고향을 느껴보려는 인파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 6·25때 추락미군 구한 교포 유송단씨/43년만에 10만불 횡재

    ◎당시 백불포상증서 보관/미 공군서 금리가산 지급 6·25때 북한상공에서 격추된 B­29 폭격기 승무원들을 구조,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도록 도와준 재미교포 유송단씨(60)가 미국 공군으로부터 10만달러의 사례금을 받았다. 지난 88년 미국으로 이민,휴스턴 공항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유씨는 1950년 7월12일 고향인 황해도의 한 섬 상공에서 미국공군의 B­29기 1대가 격추되자 부친을 도와 승무원 7명을 구하고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도록 주선해 이들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미군 승무원 가운데 1명은 이때 유씨 일행에게 격추된 항공기 승무원을 도와주면 1백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증서를 주었으며 유씨는 미국에 이민간뒤 공군당국에 이에따른 포상금을 지급해주도록 신청서를 제출,그동안의 금리등을 감안한 10만달러의 사례금을 받게된 것이다. 유씨의 부친인 유호춘씨는 미군 병사를 구조한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민군들에 처형됐으며 유송단씨와 다른 가족들도 북한군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재산을 압수당했다. 유씨는 이날 포상금을 받은뒤 『당시 마을 사람들은 구조 활동에 끼지말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미군 병사들도 우리를 돕기위해 사랑하는 가족들 곁을 떠나왔기 때문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아버지께 감사의 뜻을 돌리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 세밑 최전방 경계근무 “이상무”/본지 기자 육군 뇌종부대를 가다

    ◎거센 눈보라… 체감온도 영하30도/장병눈빛엔 “민족수호 첨병” 긍지/북한군 얼음깨 고기잡아 “부식충당” 모습 한눈에 세밑 진중(진중)바람이 매섭다.체감기온은 영하30도쯤 되는것 같다. 그러나 전선은 고요하다.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동북방 최전선은 차라리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는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고,보이지않게 서로 총구를 겨냥하고 있는 전야.남북화해 무드와 탈냉전의 세계조류 속에서,언제 어미품을 뛰쳐나와 새로이 분쟁을 형성할지도 모를 포자(포자)와 같은 곳이다. ○무장공비 2백회 침투 더욱이 이곳은 부대창설(53년)이후,육상과 해상을 통해 북측이 1백19회 2백여명을 침투시킨 곳이다.북측은 이곳을 주요공격의 축선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육군 제5861부대는 자신들을 뇌종(뇌종)부대라 부른다.태백준령들이 용틀임하는 곳에 위치,민족수호의 첨병으로서 통일의 종을 타종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쪽」과 「저 쪽」 사이 초소거리 5백80m.큰 목소리는 서로 잘 들린다.그러나 어느 쪽도 고함치지 않으니 괴괴할 뿐이다.해금강 낙타봉을 비롯,남으로부터 북으로 외초도·작도·복선암·사공바위·부처바위·만물상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북한의 고급휴양지 말무리반도는 망원경에만 들어온다. 『저 아래 감호가 있죠.북한병사들이 얼음을 깨고 고기 잡는게 보입니까?』안내장교는 그들의 부식보급이 제대로 안되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그렇지 않고서야 이 겨울에 한가롭게 천렵(천엽)을 즐길 리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김강은 불현듯 전장(전장)으로 변했다.애써 보지않으려던 선전간판들이 줌렌즈에 잡히듯 선명하게 드러났다.「미군 철거」「세금없는 나라」「반미」「무료교육」등등.개중엔 「월북 환영」이라는 간판도 있는데,그림이 그려져 있다.분홍빛 한복저고리를 입은 「북녀」가 꽃다발을 든채 웃고 있다. ○철책 사이두고 신경전 『우리는 내 한몸 조국에 바친다는 각오로 24시간 철통경계에 임하고 있습니다.안심하셔도 됩니다』스키파카를 입은 제○소초장 박진형중사(24)의 힘찬 목소리는 일순간 칼바람을 잠재운다.우렁찬 소리에 긴장한듯,저쪽 초소 인민군들이 날렵한 몸짓을 보이며 이쪽을 관측하기 바쁘다.그러자 군견시합에서 공격상을 받았다는 맹견 「베스타」가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상병 김대식,최전선 경계임무 이상무!』김상병의 표정은 건강색으로 매우 맑았다.사단장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언제나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부대,그러나 살맛나는 병영(병영)생활」그러다보니 상하간에 스스럼이 없고,공사가 뚜렷하다. 축구에서 장군의 무릎이 까지는 부대,스트레칭을 하는 부대,민사심리(민사심이)최우수부대의 장병들이 지키는 세밑 최전선은 이상(이상)이 없다.
  • 연극인 오태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7)

    ◎“가공할 시공처리… 이시대의 연극천재”/변혁에의 집념,70년대 연극사 전환점 이뤄/역사적사건 재조명… 「탈고정관념」 방향제시/「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연극 “30년 외길인생”으로 이어져 연극 「약장수」를 본 사람이라면 북치고 장구치듯 한바탕 굿판을 이루던 재담과 사투리,종횡무진의 요설 사설등 우리 말이 갖는 무한한 리듬감과 현란했던 언어구사의 묘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백곰 모시곰 달하 높이곰 돋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72년 초연된 이 연극은 75년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오태석씨가 공간사랑무대에 직접 출연하여 「연출가·작가의 연기」라는 차원에서 연극팬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오태석은 귀신이 넘나드는 경이의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틀거리거나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뒹굴어 만신창이가 된 처절한 몸부림은 연극이 말하려는 문제의식과 함께 관객을 숙연케하는 기원이 도사려있다. 몸짓은 물론 언어와 분장·무대미술과 의상에도 변혁·개혁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관객에 의외성 제시 라면박스나 신문지조각으로 꾸며진 무대는 차라리 눈부시고 싱그럽다.칡과 치자물들인 무명 저고리,백발노인 역할을 분장하지 않은 20대 연기자가 맨 얼굴로 등장하는등 서구적 사실주의 연극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무대에서의 파격과 의외성을 연속적으로 맛볼수 있게한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쓰고 연출한 「태」와 「한만선」 「사추기」 「물보라」 「춘풍의 처」등 일련의 작품은 7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전환기를 이룬 대표작으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뼈의 마디마디,어쩌면 동맥 정맥까지도 탄탄한 생명력이 살아 꿈틀거려야만 그는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그리고 그만의 정서와 상상력에 몰입하다보면 관객은 안개속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도 극의 한복판에 선채 도무지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이처럼 가공할 시공처리와 시각·청각·상징적 무대언어는 극의 「완성도」성취라는 명제아래 연극다운 품격과 연극만의 특징미를 진하게 각인시켜 주고있다. 그는 하오 1시에서 1시반사이 서초동 삼익상가에 있는 그의 연습실에 나온다. 커다란 검은 숄더백에 검은 레닌모를 깊숙이 눌러쓴,새벽까지 마신 작취미성에도 불구하고 모자밑의 두 눈은 새파랗다 못해 광기가 번뜩인다. 연습도 마찬가지다. 연출자의 지시에따라 창조적 연습,되풀이 연습,연기자들이 준비해온 각자 연기를 지켜보다가 그는 마치 제각기 다루던 악기를 한데 모아 교향곡을 이루는것처럼 세시간 네시간 심오하게 숙고하면서 작품의 주제에 파고든다. 그래도 성에 차지않으면 무대에 뛰어올라 요란한 손짓발짓으로 시범을 하고는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치거나 무대장치에 직접 못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기 일쑤다.오태석의 멍든 이마는 자신의 것을 하기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한 예술가의 고독한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술취해 있을땐 더욱이나 이 고독이 소스라쳐 그는 연극의 심연속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다.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것이 연극에 관한 토론일때는 이제까지의 취기를 삽시에 거두고 예의 오태석특유의 논리정연한 속변달변을 속사포처럼 전개해 나간다. 「주어진 여건과 틀속에서 그 여건과 틀에 맞춘 행위만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의미하다」「연극이 예술인 바에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모든 연극표현술과 수단을 동원하고 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의 모티프를 끌어내고 이를 현시점에 비쳐보는」탈역사로의 방향을 간단없이 제시해왔다고 할수있다. 87년이래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작해온 「부자유친」이 그 좋은 예의 하나다.「부자유친」은 한마디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다. 이 연극은 뒤죽박죽 진행되어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종잡을수 없는 충격의 장면 장면이 이어진다. 왕은 흰두루마기,제자는 팬티바람,신하는 왕의 명령에 응석을 부리고 울던 사람이 파안대소,죽은자가 기지개를 켜는가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가 풀죽은 마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어느 한구석도 논리에 들어맞지 않지만 이 반논리와 탈논리가 지극히 논리적임을 관객들은 당장 깨닫게 된다. ○반논리속 논리 정립 아버지가 자식을 학살하는데 논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이 노리는 초점이다. 83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장화를 신은 고양이」때는 한국무용을 하는 국수호에게 안무를 맡기면서 연출자는 「한국무용이 아닌 발레」로 안무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한국무용가의 「발레」란 오태석만의 익살이자 풍자,어쩌면 냉소의 한 일면일 수가 있다. 이렇게 오태석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연극을 이끌어왔다.그러나 그의 연극의 뿌리는 일찍이 동랑으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문법이 뼈대를 이루고 한국적 몸짓으로 지칭되는 마당놀이의 연희가 질서정연하게 바탕에 깔려있다.그리고 「우리의 너그럽고 훈훈한 인심,너털웃음,호연지기,유약한듯 하나 끈질긴 인내」등 반만년 역사를 통해 일관된 한국인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연극 구석구석에 채우고 있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3살되던해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남대문국민학교에 다니던 11살때 6·25를 만나 당시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부친 오세권씨가 인민군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던 광경을 눈앞에서 겪은,이른바 6·25 비극으로 인한 피해자의 한사람이다.연극 「자전거」에서 유년시절의 이 잊지못할 광경을 또렷하게 묘사해 보이고 있다. 배재고에 다닐때까지는 편모슬하에서도 비교적 여유있게 자란 편이었다.그러나 「계(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 이라안여사(74)가 모았던 계가 깨지는 바람에 집안은 하루아침에 풍산되고 대학입학과 함께 그는 뼈저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넘나들다가 대학의 빈 강의실을 찾아 잠자리를 마련했다.그때도 물론 「연극」이라고는 구경도 해본적이 없는 문외한이었다.그러나 61년 정부가 「연극인 활성화 방안」으로 마련한 「신인예술제」개최를 위한 희곡공모 소식을 듣고는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밤새도록 써서 제출한 희곡이 당선. 이 대목에서 「제목이 뭔데?」물으면 그는 영락없이 얼굴을 확 붉히면서 「영광!」하고는 와하하 웃어버린다. ○「연세찬가」 작사 당선작품은 다른 단체들과 더불어 나란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갖게되어 있었다.그래서 여기저기 연극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모아 급조한 것이 그가 최초로 발족한 「회로무대」다. 「영광」에 이어 다음해 「사중주」,또 다음해 공연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연극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마약에 깊숙이 빠져든 자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공연날짜가 임박했으나 공연할 돈이 없던차에 마침 학교에서 동문·재학생들을 상대로한 「연세찬가」작사를 공모했다. 본래의 「연세찬가」는 백락준박사가 지은 장편소설(?)같은 것이어서 행사때마다 끝까지 부를수 없을만큼 길었다고 했다. 「형제자매」와 「사랑」만 잘 섞으면 될것같아 그는 신인예술제 공모때처럼 이번에도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나운영작곡의 /반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자유와 진리 심어온 모습…/은 바로 그가 지은 작사다. 그는 「연세찬가」작사 당선 상금으로 세번째 공연인 「조난(조란)」을 무사히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호구지책」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이선택한 최선의 길이며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알고 지난 30년을 오로지 연극에 전념했다.그리고 그의 연극에 대한 찬반양론의 시비속에서도 오태석의 위치는 우리 연극사에서 확고한 획을 긋고 있다는 것,그만의 독특한 오태석 언어와 색깔을 소유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끈질기게 실천해 보이는 것 등을 강점으로 들 수 있다. 90년 동숭동 대학로에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전용극장인 충돌Ⅰ,Ⅱ(흥사단지하)를 개관,목화레파토리 전용극장으로 쓰다가 연극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무대에 올려야 하는 부담감에 쫓기기 싫어 지난 봄부터 대관을 겸하면서 서초동 연습실로 컴백했다. 지난 20년동안 그를 한결같이 섬기는 조상호·정진각등 속칭 「오사단」초창기 멤버들이 목화의 단원이다.가족은 부인 최란선씨와 딸 시내(고2)아들 영택(중2). 그는 이따금 자신의 연극에 직접 출연,올해도 서울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에 가져간 자작·연출 「떠도는 혼」에서 상주로 찬조 출연하기도 했으며 87년부터는 해마다 도쿄 파르코 극장 초대공연을 가져 일본 연극계의 열렬한 찬사와 호응으로 목화의 고정팬을 확보하면서 일본속에 한국의 목소리와 몸짓을 심고 있다. 이시대의 연극천재·연극계 기인이란 호칭에 걸맞게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의 입에서나 「오태석=연극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연보 ▲1940년10월 충남 서천에서 오세권씨(6·25때 납치)와 이라안여사의 3남1녀중 장남 ▲63년 「회로무대」창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회로무대」해체 ▲67년 한국일보 장막희곡 「화장한 남자」가작수상,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68년 국립극장,경향신문공모 「환절기」당선 ▲72년 동랑레파토리 극단 「Luv」로 연출데뷔 ▲84년 목화극단 창단 ▲80년 「초분」일본공연 ▲83년 「어미」일본공연 ▲85년 MBC창사기념 「메밀꽃 필무렵」(작,연출) ▲86년 MBC창사기념 「봄,봄」(작,연출) ▲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시나리오·연출 ▲87년 일본 도가국제페스티벌 「춘풍의 처」참가이래 해마다 초청공연,제11회 서울연극제 「부자유친」참가 ▲88년 서울예술단 「새불」(작,연출),일본 미쓰이 페스티벌,「태」참가 ▲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 「비닐하우스」(작,연출) ▲90년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돌ⅠⅡ개관 ▲92년 서울 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 「떠도는 혼」(작,연출),일본 마에바시(전교)시승격 1백주년 기념공연 「도라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쇠뚝이 놀이」「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이식수술」「약장수」「물보라」「사추기」「육교위의 유모차」「19 90년5월」「산채우」「자전거」「아프리카」「필부의 꿈」「나래섬」「운상각」「심청이는 왜 두번 임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구야 껑충나지마라」「환절기」산문집 「북소리 울릴때」 서울연극제 대상,서울신문사제정 제2회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창작상,한국연극예술상
  • 북한 인민군대장 김봉을 사망

    【내외】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군대장 김봉을(61)이 4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북한방송이 6일 보도했다. 김봉을은 사망당시 당중앙위 후보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직함을 갖고 있었다.
  • 「보험사업」국가서 독점운영/“우리와 어떻게 다른가”…그 실태 분석

    ◎인체보험은 보상·장기저축 기능/재산보험엔 소·말·돼지·양도 가입/46년 첫 창설… 생활 보장보다 재산보호 더 중요시 북한에도 과연 보험제도가 있을까.그리고 있다면 개인의 경제행위를 인정치 않는 사회주의 체제의 북한에서 어떤 이유로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을까. 보험감독원이 한국보험학회(회장 조해균·한양대교수)에 의뢰해 최근 발표한 「북한의 보험제도」에 관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북한에도 보험제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보험사업은 그 형태에 관계없이 국가가 독점,국영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따라서 보험자는 국가이고 구체적인 보험업무의 관장 역시 국가기관이 하고 있다.보험사업자의 명칭이 「○○보험회사」라고 돼있지만 그것은 우리 보험과 같은 독립된 법인체는 아니고 국가기관의 대외적인 명칭일뿐이다. 북한의 국가보험제도는 자연재해나 그밖의 사유로 근로자들이 노동능력이나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 또는 재산상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에 해당 공민이나 그 가족들에게 보험금이나 보험보상금을 지급함으로써 그들의 정상적인 생활안정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국가보험제도는 근로자들의 생활향상에도 이바지하는 바 보험기간이 지나도록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 납부한 보험료에 일정한 보상금을 붙여서 보험가입자에게 반환하게 함으로써 인체보험은 장기저축과 같은 기능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보험은 국내보험과 국제보험으로 이원화돼 있다.이는 보험대상의 소유관계가 국가소유와 협동단체소유및 개인소유로 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보험◁ 현재 북한의 국내보험사업은 조선중앙은행의 저금보험처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국제보험사업은 조선국제보험회사가 수행하고 있다.국내보험사업 가운데 재산보험이나 인체보험과 관련,따로 보험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중앙은행 본점과 총지점및 해당지역 지점에서 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국내보험의 핵심종목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재산보험이며 가입대상은 협동단체의 건물을 비롯한 고정자산과 농산물등 유동자산,그리고 공동 관리하고 있는 소 말 돼지 양과 같은 집짐승이다. 이밖에 16세 이상 65세 이하의 근로자는 임의로 인체보험에 가입할수 있지만 인민군대나 인민경비대,사회안전부,와병중인 근로자등은 가입할 수 없다. ▷국제보험◁ 국제보험업무는 지난 57년에 설립된 조선국제보험회사가 수행하고 있다.이 회사는 자본금이 5천만원(한화 약 3백70억원)으로 본점은 평양에 있고 2백여개의 국내지점과 8∼9개의 해외지점을 두고 있다.지난 89년 8월엔 조선만년보험회사라는 자회사가 신설됐다 국제보험은 담보되어야 할 대상에 따라 재산보험과 인체보험으로 나뉘고 계약내용의 차이에 의해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으로 구분된다.국제보험에서는 국제수송화물보험과 선박보험,항공보험,외국인자동차공민피해보험,전람회보험,수출신용보험,외국인재산보험등을 취급하고 있다. 이와같은 북한의 보험사업은 지난 46년 민간자본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국가와 민간의 공영으로 보험주식회사를 창설,화재보험 생명보험 가축보험등을 실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연구자료를 발표한 한국보험학회 고평석책임연구원(경남대교수)은 『북한에서는 재산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인체보험보다는 재산보험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보험산업의 남북교류를 위해서는 먼저 이같은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북한 군대표단 시리아를 방문/최광 총참모장 포함

    【도쿄 AFP 연합】 최광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군사대표단이 29일 평양을 출발,시리아 방문길에 올랐다고 30일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의 정보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수년간 시리아에 스커드­C 미사일을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관 개관/복원사업 일환… 내일 문열어

    ◎비극의 역사 산교육장으로 전후세대들의 산교육장이 될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관이 경남 거제군 신현읍 고현리에 건립돼 11월1일 문을 연다. 6·25의 참상과 수용소내에서의 처절했던 반공·친공세력간 사상전의 실상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온갖 자료가 갖추어진 이 유적관은 거제군이 지난해 5월 마련한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지 복원계획에 따라 제1차사업으로 추진돼 1년반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군은 오는 97년까지 모두 51억여원을 들여 나머지 복원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설치된 것은 지난 50년 11월27일. 중공군이 참전한뒤 51년 6월부터는 인민군 15만명,중공군 2만명,의용군및 여자포로 3천명등 무려 17만3천명이 수용돼 53년 7월27일 휴전때까지 끊임없는 난동·폭동이 일어났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사이에 전개된 사상전은 살육전으로까지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따른 포로교환으로 수용소는 폐쇄되고 55년 봄부터 주민들이 되돌아와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이같은 역사의 현장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형태를 잃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거제군은 포로수용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당시의 사령관 숙소·포로영창·헌병대 막사·무도장·PX 등 주요건물 15동과 천막막사 20개동을 복원하고 기념관과 기념탑·유적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번에 우선 개관된 50평규모의 유적관에는 포로들이 사용했던 식기류와 친공포로들이 폭동을 일으킬 때 무장했던 죽창·목총·삼지창·철조망·곤봉 등 사제무기류 및 인공기·소련기·중공기·기록사진 등 2백여점이 전시돼 당시 수용소내의 처절했던 실상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전시된 자료가운데 인공기를 비롯한 깃발들이 군용 속옷을 찢어 이어붙인 흰색 광목천에 머큐롬 등으로 비교적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 지독했던 이념투쟁의 단면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 거제군은 유적관 개관을 계기로 국방부와 주한미군 등에 관련 자료제공을 요청하는 한편,반공포로로 석방됐던 인사들을 상대로 새로운 자료수집에 나서기로 했다. 양정식 거제군수는 『거제포로수용소와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면 전후세대에게 6·25의 참상을 생생하게 알리는 산교육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약아닌 「합의서」는 국회비준 불필요”(의정중계:27일 본회의)

    ◎수출경쟁력 강화위해 중기 적극 육성/엄정한 세정으로 재벌 경제집중 방지 ▷외교·통일·안보 답변◁ ◇현승종국무총리=중립내각의 과제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한가지는 공명선거를 어떻게 훌륭히 치러내느냐는 것이며 두번째는 현재까지 계속되어온 국정을 계속 추진해 6공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다.공명선거 의지는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할정도로 확고하다.나 자신도 총리직 수락시 대통령의 공명선거의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수락했다. 비핵화공동선언은 우리가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의 포기도 요구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남북대화에 주무부처가 배제되고 있다는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이동복씨와 관련된 문제제기는 주무부처를 배제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없지않아있다.통일문제는 통일원이 담당하고 다른 부서는 자료제공 등을 협조해야 한다.앞으로 이러한 오해의 여지는 일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소지가 있다면 단호히 경고하겠다. ◇최영철 부총리겸 통일원장관=남북관계는 민족내부관계라는 점과 각자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적 독립개체라는 점 등 이중성을 가진 잠정적 특수관계로 봐야한다.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는 이처럼 잠정적 특수관계에 의한 합의문건이므로 조약에 해당되지 않으며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남북간 경협은 아직까지 본격착수를 하지않아 비교적 부진한 상태다.남북상호간 보완구조를 갖고 있고 경협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므로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제도적 장치와 핵문제 등이 해결되면 경제협력·교류는 본격화 될 것으로 본다.이와관련,남북협력기금은 지난해 2백50억원을 마련했으며 금년도에는 4백억원을 조성목표로 하고 있다.앞으로 경제교류확대에 따른 기금수요에 대비,기금확충문제를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가겠다. 지난 9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훈령묵살사건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고도의 전략기밀사항이므로 공개하기는 어려우나 사실과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히 박힐 수 있다. ◇이상옥외무부장관=중국과 대만모두 「하나의 중국원칙」을 고수하기때문에 대만과의 단교는 불가피했으며 이점을 대만특사에게도 충분히 설명했다.중국의 한국전참전에 대한 사과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측은 수교협상때부터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데 대한 응분의 해명과 함께 사과표명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중국측은 당시 냉전시대아래 국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민군파견이 불가피했다는 점만을 누누이 설명했다.하지만 중국측은 앞으로 이같은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KAL기 격추와 관련,러시아측의 자료제공은 사건진상규명에 불충분하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며 러시아측에 다시한번 블랙박스의 인도를 요청하겠다. ◇최세창국방부장관=주한미군의 전쟁감시 및 조기경보장비는 90년중반이면 도태될 노화장비이기 때문에 인수문제는 신중검토해야 한다. 군단과 군사령부통합문제는 군제개편에 따르는 전투태세약화가 우려되므로 중장기적으로 계속 검토하겠다.군의 사기 및 복지향상을 위해 기본급여는 정부방침에 따르되 별도의 각종수당은 현실화하겠다. ▷경제분야 답변◁ ◇현승종국무총리=정부는 경제·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제7차 5개년 경제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급변하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내에 21세기위원회등을 설치,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고 있다. 추곡수매문제에 대해서는 현행추곡수매운영과정에서 나타난 장단점을 연구하고 관련부처와 협의해 추곡수매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다. 수출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할 방침이다.그러기위해서 자금이 중소기업부문에 유입될 수 있도록 시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한국은행이 자율성을 가질수 있는 방향으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며 중립성을 보장할 것이다.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준조세가 기업에 미치는 부작용을 감안,불우이웃돕기·재해의연금등 자발적 성금을 제외한 일체의 준조세를 조정키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중이다. 다가오는 대선이 물가불안요인으로 작용치 않도록 경제안정화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방지키위해 공권력 개입과 같은 직접적인 수단보다는 상속세및 증여세의 엄정부과등 세정을 강화하고 여신관리및 공정거래법을 보강,여건조성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공개념에 입각,기업의 토지소유전산망을 확충하고 토지소유에 따른 과세를 강화하겠다. ◇이용만재무부장관=경제정의와 분배의 형평성 측면에서는 금융실명제가 반드시 실시돼야 하지만 이는 금융거래의 관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제도개혁으로서 예금자의 불편,증권시장 침체,부동산투기재연등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경제정책을 시험적으로 시행할수는 없으며 충분한 준비를 거친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따라서 금융실명제는 기존질서의 충격을 완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킬수 있는 시기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경련의 금융실명제도입정책제언도 장기적 안목의 주장이고 정부의 보완조처를 요청하고 있는등 실질적으로 정부입장과 같다고 할수있다. 증시는 최근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됨에 따라 경제외적인 요인만 작용하지 않으면 회복할 것으로 본다.신용을 위주로한 은행대출운용은 바람직하다.그러나 은행의 책임경감을 배려하는등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강현욱농림수산부장관=정부가 보유한 고미는 지난 9월 현재 1천3백21만섬으로 가공.주점용반출및 학교·군급식등으로 소비를 확대,점차 재고가 줄고있는 상황이다.농산물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원산지증명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검역,통역의 강화등 각종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쌀시장의 개방은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나 장기적으로는 농산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겠다. ◇한봉수상공장관=중소기업의 도산방지를 위해 11월1일부터 중소수출제조업에 대한 신용보증제도를 실시하고 향후 2년간 20∼40%의 특별세금경감 혜택을 줄 계획이다. 국제적인 지역주의의 심화와 통상압력가중등에 대처하기 위해 내년도에는 수출경쟁력강화시책을 최우선으로 시행하고 96년까지 5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해외시장개척활동등을 지원하겠다. ◇진념동자부장관=최근 5년동안 에너지소비는 배로 늘었으나 발전소건설이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아 올해 전력예비율은 2.5% 수준에 머물렀다.오는 96년까지 19조5천억원을 들여 에너지수급대책을 마련하겠다. ◇서영택건설부장관=장기적인 국토개발계획을 수립,지방도 서울못지않게 잘살수 있도록 배려하겠다. 건영사건은 현재 총리실에서 종합감사를 실시하고 있는 만큼 결과에 따라 엄정조치하겠다. ◇노건일교통부장관=경부선 철도는 지난해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경부고속도로도 심한 정체를 빚고있어 고속전철 건설은 불가피하다.현재 프랑스·독일·일본등과 기술이전문제등에 대해 집중적인 협상을 벌이고 있다. ◇송언종체신장관=지난 8월27일 대한 텔레콤이 사업권을 포기,사업자 재선정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결정하게 됐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과 관련,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여러분에게 송구스럽다. ◇김진현과기처장관=2천년대까지 7대과학기술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96년까지 과학기술개발에 GNP대비 3·5%를 투자하고 총예산의 4∼5% 수준까지 제고시키겠다. 또 핵심선도기술개발을 위해 96년까지 1조원의 과학기술진흥기금을 조성하겠다. 특히 산업기술인력확보를 위해 95년까지 이공계 대학원정원을 1만명,대학정원을 1만6천명,전문대정원을 3만6천명선으로 확대하겠다.
  • 화해공동위원회/남북,명단 교환

    남북한은 26일 오는 11월5일 첫 회의를 갖는 화해공동위원회 구성인원명단을 상호 교환했다. (남측) ▲위원장 송한호 ▲부위원장 이준희국무총리보좌관 ▲위원 김형기통일원국장 최규학총리실심의관 강근탁외무부심의관 김각영법무부심의관 손위수공보처기회관 (북측) ▲위원장 전금철조국평화통일위부위원장 ▲부위원장 정남하외교부순회대사 ▲위원 조상호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부국장 최성익조평통부장 이길청인민군대좌 강성룡중앙인민위심의원 박세덕정무원심의원 (남측교체) ▲부원장 김태연경제기획원실장 ▲위원 이영탁재무부국장 장석환상공부국장 이원동력자원부국장 정종환교통부국장 이종순체신부통신협력국장 (남측교체) △위원 김덕환교육부장학관 오지철체육청소년부국장 이덕주공보처국장 안희옥정무2장관실조정관
  • “북한 개방땐 체제붕괴 된다”/미 타임지 최근호서 분석

    ◎권력암투 시작… 점진적 개혁불가/김일성 사망땐 북 주민 대거 월남 예상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9월14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남한측은 북한이 점진적인 개방정책을 받아들여 흡수통합아닌 화해통일을 기대하고 있지만 북한의 개방은 곧 북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이 기사의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수십년동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또 군사적으로 소련과 중국에 크게 의존해 왔던 북한은 소련과 중국이 최근 남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크게 고립돼 있다. 흐루시초프는 물론 브레즈네프,더구나 고르바초프 같은 지도자는 상상도 할수 없는 사회,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만 있는 북한은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키로 이미 결정해 두었지만 권력승계 싸움은 이미 시작됐음이 틀림없다. 지금 북한에서는 온건한 공산주의노선을 걸을 것인가,그리고 남한과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타협의 길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열띤 논쟁이 계속되고 있음이 확실하다.북한의 지배엘리트들은 독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그리고동독의 호네커 서기장과 그의 동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큰 교훈을 얻었음이 분명한 서울의 관리들과 대외정책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능력의 한계를 면밀히 계산해왔다.그들의 계산대로면 남한이 북한을 독일식으로 통일하는 데는 독일에서 보다 10배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 또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북한에 정치적 소요사태가 났을 경우 수십만명의 북한사람들이 휴전선을 넘게 될 것이다.아니면 휴전선을 넘으려던 북한사람들이 북한인민군에 의해 대량 살육되는 사태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모든 이유들 때문에 남한사람들은 북한에서의 공산주의의 소멸이나 남한과의 통일을 10년,혹은 20년 후의 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따라서 남한은 새로운 파트너가 된 중국이 북한의 새로운 후계자가 좀더 온건한 노선을 걷도록 힘써 줄것을 바라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개방정책이 아무리 잘 계획되고 서서히 시도된다고 해도 예상대로 되리란 법이 없다.그렇게 안된다는 것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이이미 웅변적으로 보여준바 있다.공산주의의 점진적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모순이다.천안문에서의 유혈 진압으로 아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긴 하나 중국도 결국엔 안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의 위대한 친구였던 루마니아의 고 차우셰스쿠의 운명이 필연적 결과였듯이 강압적인 정권일수록 취약성 또한 큰 법이다.북한과 같은 나라가 문을 연다는 것은 곧 집 전체가 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는 지금 북한이 사뿐히 내려 앉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북한의 운명은 추락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 평양지령 따라 반체제활동 주도/고정간첩들의 혐의 사실

    ◎55년 월북… 친북단체 건설 조종/김낙중/인민군서 귀순… “골수” 중간연락책/심금섭/2차례 입북·조총련과 수시 접촉/권두영 ▷김락중(57·전민중당 공동대표)◁ 서울대 사회학과를 중퇴한 이듬해인 지난55년 6월 임진강을 건너 단신 월북,북한의 초대소및 인민경제대학 특설반에 수용돼 1년남짓 공산주의 사상등 간첩교육을 받았다.월남한뒤에는 「김강천」이라는 가명으로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동조자를 입북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지난61년 8월 농부인 안행협씨를 포섭,북한파견 연락원으로 임진강을 통해 입북시켰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있던 지난 72년에는 이 연구소 간사인 노중선씨(52·구속)와 고려대학생으로 비밀지하조직 「N·H회」를 결성,국내운동권에 반정부투쟁 이념을 퍼뜨리는 활동을 해왔다. 김씨는 지난 88년과 90년 두차례에 걸쳐 중국 북경사회과학대학원 이상문교수와 만나 자신의 활동상황 등을 간접보고하는등 북한측과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으며 90년 2월말 남파된 북한사회문화부소속 공작원 최모씨(35)와 접선,「무두봉 11」이라는 암호명과 함께 난수표,단파라디오 등을 건네받았다. 경기도 파주출신인 김씨는 서울고를 나와 서울대사회학과 2년을 중퇴하고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뒤 4·19직후인 60년말 혁신정당인 「이주당」기관지 「정론」정경부장,67년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간사,86년 민족통일촉진회통일정책심의회의장,92년 민중당 총선대책본부장등을 거쳤다. 지난 57년 간첩죄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63년에 반공법위반으로 징역3년6월,지난 73년에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7년을 선고받고 80년 만기출소했다. ▷심금섭(63·청해실업대표)◁ 심씨는 90년 2월부터 회사 부회장으로 있는 김씨와 공작지도원 임모씨의 지시로 지난해 4월 태국 방콕에 있는 북한의 공작위장업체로부터 구명재킷 2천벌을 주문받고 방콕으로 건너가 북한 사회문화부 부부장 리원국과 북한에 거주하는 친형 심호섭(64·전북한정치보위부원)등을 만나 포섭됐다. ▷권두영(63·전민중당고문)◁ 지난 86년 중국방문때 만난 중국 공산당원 권상주(48)의 권유로 지난 90년11월 입북했고 지난 4월 두번째로 입북했다.두번째 입북에서 김일성주체사상과 사회주의우월성등에 대한 학습을 받고 남한의 정치상황과 14대 총선결과분석보고및 진보혁신정당건설의 지령과 공작금 2만달러를 받아 귀국했다.또 지난달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조총련계 무역회사의 대표인 양광우와 접촉,진보정당건설추진자금 10억엔의 확보방안등을 협의하기도 했다. 경북 예천출신으로 대구상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거쳐 51년 서울시경 미고문관실연락관과 문공부 비서실비서관등을 지냈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민사당서울성동지구당위원장,사민당위원장,민중당고문등 진보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해왔다. ▷노중선(52·평화통일 연구회사무총장)◁ 지난73년 김락중씨가 주도한 내란음모사건인 이른바 고려대「민우」지사건에 연루돼 김씨와 함께 복역한뒤 친형제처럼 지내오다 김씨에 포섭됐다.
  • 미/23년 유혈내전 종식 청신호(세계의 사회면)

    ◎라모스 취임뒤 게릴라 수뇌 석방/반군세력 크게 약화… 테러도 격감 공산반군의 테러자행으로 공포속에 치안이 어수선했던 필리핀에 평화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라모스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실시한 유화정책의 영향으로 반군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데다 이들에 의한 테러활동이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3년간 지속돼온 필리핀 정부군과 공산반군간의 유혈 내전은 조만간 종식될 것으로 보인다.필리핀 정부대표단과 공산주의 민족민주전선(NDF)대표간에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협상이 우호적인 분위기속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양측간의 대화에 앞서 필리핀당국이 공산당 최고위급 지도자인 사투르 오캄포(53)를 석방조치한 것도 화해분위기 조성에 큰몫을 하고있다. 언론인 출신인 오캄포는 지난 86년 실패로 끝난 정부와의 협상에서 필리핀 공산당과 당의 군사조직인 신인민군(NPA)에 의해 운영되는 NDF의 협상대표를 맡았던 인물. 필리핀당국과 공산반군간의 대화는 6년전 아키노정권때도 시도됐다가 실패한 적이 있어 살얼음판 위를 밟는듯하지만 그 전망을 한층 밝게해주고 있다.지난 6월 집권한 피델 라모스 정권이 우유부단했던 아키노정부보다 확고하게 정치·사회적 안정을 다지게됨에 따라 공산반군에 대해 유화적 조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국민 여론을 양분시켜온 필리핀주둔 미군기지를 조만간 폐쇄키로 한 것도 반군세력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있다.지난해 필리핀상원이 수비크만 미해군기지에 대한 새 임대계약안을 거부함에 따라 미군은 오는 12월까지 철수할 예정이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 붕괴이후 필리핀 공산게릴라의 입지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지난 87년 전성기때 2만5천5백명에 이르던 신인민군의 수는 최근들어 그 절반 수준인 1만2천5백명으로 감소했다.과거 지하공산당원의 소굴이던 대학캠퍼스도 이제 이데올로기가 크게 퇴색되어 가고있다. 신인민군은 필리핀 공산당(CPP)과 13개 공산단체의 연합체인 민족민주전선의 무장투쟁조직으로 그간 학생·노조 및 농민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었다. 이에 힘입어 이들은 필리핀전국 73개주 가운데 63개주에서 공산게릴라활동을 펴는 한편으로 농민층 의식화뿐 아니라 도시포위혁명노선을 구사하며 데모선동·테러활동을 일삼았다.특히 지난 87년에는 스패로 스워드(참새부대)라는 특공대를 운영,정부요인 암살은 물론 정부시설물에 대한 폭파와 방화를 자행,이 나라에선 가히 공포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이번에 석방된 NDF의 지도자 오캄포도 지적했듯이 공산주의자들은 「가난과 사회적 불의」를 먹고 자란다. 따라서 공산당원들에 대한 대규모 사면조치에 이은 필리핀정부의 획기적인 공산당 합법화가 노리고 있는 정치적 목적의 달성여부는,라모스대통령이 앞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고 사회개혁을 성사시키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겠다.공산반군에 대한 군사적 승리보다는 「국민적 화해」라는 라모스의 선택이 자칫하면 「약」이 「독」으로 변질될수 있기 때문이다.
  • 북한 「6·25 선공계획」 확인

    ◎김일성,50년 2월 스탈린 승인 받아/러군사연 공개 【모스크바 연합】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져온 「선제타격계획」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국방부산하 군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코로트코프박사는 28일 「조선인민군 선제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하고 김일성이 지난 50년2월27일 이 남침계획서를 휴대하고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의 선제타격계획 원본이 현재 모스크바와 평양에 각각 1부씩 보관돼 있으며 이번에 공개한 것은 그가 연구목적을 위해 러시아군 총참모부의 허가를 받아 복사한 사본이라고 말했다. 코로트코프박사에 따르면 당시 7명의 군사대표단을 대동한 김일성은 3일간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스탈린과 슈티멘코총참모장 등 소련군 막료들과 남침계획을 놓고 구체적으로 협의했으며 스탈린의 전폭 지원약속을 받은후 5월말까지 전쟁준비를 완료키로 다짐하고 3월1일 평양으로 돌아갔다. 코로트코프박사는 결국 한국전쟁이 개전초기에는 남침계획에 따라 거의 성공적으로 전개됐다면서 이 문서야말로 남침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중수교는 경협10년의 결실”/AP통신이 분석한 양국국교 안팎

    ◎북한도 관계정상화 예견… 제지 포기/북경 실용정책­서울 투자욕구 부합 그동안 예상돼왔던 한중수교가 이뤄진 것은 지난 10년동안 가속화된 양국간 경제협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은 야심적인 개혁정책 추진에 필요한 주요 투자국으로 한국을 꼽고 있으며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한국기업들 역시 중국에 시멘트와 자동차,전자제품생산을 위한 대규모공장 건설을 희망하는등 경제협력은 중국과 한국에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국간 조기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중국측이 과거 「순치」에 비유할 만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은 미국 주도의 유엔군을 맞아 함께 싸웠으며 모택동의 아들은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는등 양국간 관계는 유달리 긴밀했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한국에 대항하여 북한의 편을 드는 것은 점차 실용주의적인 색채를 더해가는 중국의 외교정책상 지속될 수 없는 다분히감상주의적인 면이 없지않다. 일본의 중국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북한은 한중수교가 언젠가 실현될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미 필연적인 사실로 간주,포기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이붕 중국총리와 정원식 한국총리는 지난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담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등 한중수교가 곧 실현될 것임을 예고했다.그러나 한국은 이미 지난 수년동안 북경에 그 존재를 확고히 해온 상태다. 북경국제공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북경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현대그룹의 초대형 광고와 접하고 있으며 아직 북경노선에 취항하지 않고 있는 대한항공도 북경에 자사를 알리는 광고를 하고 있다. 또 한국산 텔레비전과 기타 전자제품들이 중국의 백화점들에서 팔리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80년대 중반이후 한국은 중국에 1억6천5백70만달러(한국통계기준)를 투자했으며 지난해에는 중국의 6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부분의 대중국투자는 한국중소기업들에 의한 것으로,대기업들의 경우는 공식적인 관계수립을 고집해오면서 투자를 자제해 왔었다.
  • 중국인민군 60% 특수장비 중무장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군의 현대화는 현재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졌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8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중국관영 영자주간 베이징 리뷰지 보도를 인용,특수장비로 무장된 중국인민해방군의 비율이 전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같은 특수장비부대는 포병·공병·기갑·화생방·대전자전및 전략미사일등 각 병종과 병과에 걸쳐 두루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 시사주간은 또한 「군당국」의 말을 인용,중국잠수함 함대가 「선진수준」을 이룩했으며 공군의 63%가 전천후 전투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했다. 베이징 리뷰지는 또 중국의 전략미사일군은 미사일공격에 있어 1백%의 정확한 명중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사일군이 수행한 연구 프로젝트만도 1천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 독,유럽군축의 첫발 내딛다/재래무기 폐기조치의 의미

    ◎탱크 1천4백대등 모두 1만여점/냉전유물 청산 “수범”… 평화정착 전기/나토 보유분의 4분의 1선… 해체비용만 2억마르크 독일이 재래식무기 감축협정(CFE)국으로는 처음으로 4일 구동독 튀링겐주의 로켄주스라 무기폐기장에서 탱크·대포·장갑차·항공기·헬기등의 분해폐기에 착수,냉전해소후 군축이 실질적인 진전을 보게 됐다. 독일은 앞으로 40개월동안 1천4백81대의 탱크를 비롯,1만1천여점의 공격 및 방어용 재래식 무기들을 해체한다.러시아는 9월부터 폐기작업에 착수하며 이 협정조인 유럽각국들도 뒤를 이어 협정이행에 들어간다. 재래식무기 감축협정은 세계대전이후 맺어진 군축협상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유럽지역에서 각국의 무기보유 상한선을 설정,초과 보유 무기들을 폐기함으로써 전쟁발발 위험성을 줄인다는데 의미가 있다. CFE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회원국 22개국이 90년11월 파리서 탈냉전후 실질적 신뢰와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화해협정을 체결,동구와 서구국 쌍방간에 총 무기보유 상한선을 전차와 대포 각각 2만대,장갑차 3만대,항공기 6천8백대,헬기 2천대로 제한하기로 했으며 이번에 협정체결 2년만에 초과보유무기 해체작업이 실행에 옮겨지게 됐다. 이날 해체작업 시무행사에는 킨켈독일 외무·뤼헤국방장관을 비롯,러시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사찰관들이 참석했다.뤼헤국방장관은 『유럽은 이제 하나의 다원적 민주사회가 된만큼 과거와 같이 과다한 무기로 병영화된 적대관계는 끝났다』고 선언했다.독일이 폐기하는 재래식 무기는 NATO측이 폐기해야하는 4만여점 가운데 4분의1을 넘으며 폐기하는데 드는 비용은 모두 2억마르크(약 1천억원).이는 통일독일이 구동독군 무기를 인수해 폐기,할당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며 폐기되는 탱크중에는 동독인민군이 사용하던 소련제 T55형 54대도 포함돼 있다.장갑차 1대 해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5천마르크,탱크는 1만2천5백마르크라고 군축관계자가 밝혔다.이때문에 독일은 경비절감을 위해 폐기 대상 탱크중 1천대를 나토회원국중 보유상한선미달 국가들에 넘겨 주기로 했으며 이중에는 비나토국인 핀란드가 포함돼 있다. 분해하기 위해 길게 일렬로 세워논 탱크들은 포탑과 무한궤도등 핵심부분에 노란색 표시가 돼 있어 용접공들이 이 부분을 떼어내 해체,재활용 할 수 없도록 하고있다.또 협정국들이 교차로 사찰단을 무기해쳬 현장에 보내 확인하며 독일의 경우 올해 폐기확인사찰을 2백회 받는다.
  • 비 의회,공산당 합법화 승인/신 인민군·분리주의자 4천여명 사면도

    【마닐라 AFP 연합】 필리핀 의회는 31일 4천4백85명에 달하는 공산게릴라및 회교도 분리주의자들의 사면과 불법화된 필리핀 공산당(CPP)의 합법화 조치를 승인했다. 이날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된 법안은 『필리핀 국민들의 전반적인 이익을 위해 피델 라모스 대통령이 제안한 것과 같은 사면령이 필요하다는데 상·하 양원은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사면령의 대상자가 법질서에 복귀하고 사면을 신청한 신인민군(NPA)과 모로 국민해방전선(MNLF) 분리주의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법안은 사면을 받은 사람은 과거의 범죄행위와 형사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며 공민권과 참정권이 완전히 회복된다고 밝혔다. 앞서 필리핀 의회는 지난 30일 역시 만장일치로 국가전복금지법을 폐지하고 공산당을 합법화한 라모스 대통령의 제안을 승인했다.
  • 북한 김평일 “신상이변”/일 산케이신문 보도/5개월째 모습 감춰

    ◎이복형 김정일과 관계악화 가능성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솔하고 있는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 주불가리아대사가 5개월째 공식 행사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28일 도쿄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김평일은 군부출신으로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이지만 전부터 김정일과의 사이에 불화가 전해지고 있는 만큼 신변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산케이신문은 말했다. 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주 불가리아대사로 부임한 김평일은 지난 2월에 일시 귀국,3월에 소피아에 귀임할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북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4월15일 김일성주석의 80세 생일축하행사,그 10일후 북한인민군 창설 6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라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었으나 김평일이 참석했다는 정보는 없으며 현재 그의 동향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평일은 1954년 김일성의 현부인인 김성애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77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 들어가 대좌로 승진했다.그후 외교분야로 옮겨 주 헝가리 대사를 거쳐 88년12월부터 주 불가리아 대사로 재직하고 있다.원만한 성격으로 군부 장교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모으고 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김정일은 김평일을 잠재적인 라이벌로 보고 경계하고 있으며 양자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불가리아의 북한대사관에는 특별임무를 띤 관원이 상주,김평일의 동향을 일일이 김정일 직속의 당조직 지도부에 보고해온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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