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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명한 전직 북고위층 27명/“김정일 즉각퇴진” 촉구

    ◎북 민주화 서울대회… 8개항 결의문 채택 「북한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94 서울대회」가 28일 하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파크텔에서 북한 전직 고위인사로서 해외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27명과 시민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김일성 사후의 북한정세 및 북한의 민주화 방안등을 집중 논의했다. 이날 대회에는 전 북한 내무성 부상 강상호(강상호·85)씨 등 해외망명 반북한인사들이 결성한 「조선민주통일 구국전선」(약칭 구국전선,상임의장 박갑동 전 남로당 지하총책·75)과 국내에서 반북운동을 벌이고 있는 「북한민주화촉진협의회」(회장 이연길·68)가 공동주최했다. 북한민주화촉진협의회 이회장은 『김일성이 사망한 뒤 국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김정일체제의 본질을 각성시키기 위해 이번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됐다』며 『앞으로 북한체제의 변혁 내지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김정일의 즉각적인 퇴진과 정치범 석방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한국과의 자유왕래 및 외국여행 자유 보장 ▲6개월내 자유총선거 실시 ▲핵무기 생산 즉각 중단 등 8개항을 북한 당국에 촉구했다. 대회 참석자 가운데에는 전 김책군관학교장 장학봉씨,전 문화선전성 부상 정상진씨,전 김일성대학 부총장 박일씨,「혁명 1세대」인 최종학 전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아들 최아파나시씨(러시아),엄승렬 전 국가계획위 부위원장의 아들 엄페렉스씨(러시아),재일동포 북송에 앞장섰다가 나중에 반북인사로 변신해 지금은 「북송동포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모임」 중앙위원으로 있는 장명수씨(재일동포)등 북한 전직 고위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한편 「구국전선」은 이번 대회에 앞서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미국과 일본·러시아 등지의 회원 3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차 대회를 가졌으며,내년에는 모스크바에서 3차 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 북 권력개편 가속화될듯/오진우(무력부장 서열2위)신병치료차 파리에

    ◎김정일 「승계」 지연 가능성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25일 하오(현지시간)돌연 신병치료목적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등 김일성 사후 북한내부의 권력재편과 관련하여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오진우의 와병으로 김일성세대인 「빨치산 1세대」(혁명1세대)에서 김정일세대인 「혁명2세대」로 권부내 세대교체가 가속화되는 한편 아울러 물밑 암투가 전개돼 김정일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등 승계작업이 더 지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기호 외무부대변인은 26일 오진우가 파리주재 북한 일반대표부 직원 6명의 영접을 받고 북한대표부에 숙소를 정했으며 폐암증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정부가 오의 파리행이 정치적 이유에서 이뤄진 것으로는 보고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프랑스정부로부터 오진우가 신병치료 목적으로 비자신청을 한 사실을 지난 20일 대외비로 통보받았다』면서 『오가 신병치료를 위해 파리로왔다는 것은 북한내 의술로써는 할만큼 다했으나 더 이상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같다』고 설명했다. 【파리=박정현특파원】 북한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77)이 25일 신병치료를 위해 비자(입국사증)를 발급받아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오진우부장은 이날 평양에서 주치의·경호요원 등 6명을 대동하고 특별기 편으로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으며 26일 폐암검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정부는 인도적인 목적에 따라 오에게 비자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의 한 외교소식통은 『오진우는 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파리에 도착했으나 망명 등 정치적인 목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그가 단지 검진을 받기 위해서인지 중병을 앓고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북,일체 보도않아 【도쿄=강석진특파원】 북한 평양방송은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출국 및 파리도착 사실을 26일 상오10시 현재 일절 보도하고 있지 않다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26일 북한방송 청취 전문기관인 라디오 프레스를 인용 보도했다. 한편 조선통신은 25일 평양에서 열린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쟁참전44주년」기념 리셉션에 북한측에서는 오부장을 대신해 최광 인민군총참모장과 장철 부총리가 참가했다고 북한의 중앙통신을 인용,보도했다.
  • 북 혁명1세대 “퇴장”의 신호탄/오진우 와병과 북의 권력향배

    ◎당·정·군 주요포스트서 체제수호역 맡아와/급격한 세대교체땐 권력 불확실성 커질듯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25일 신병치료차 프랑스 파리에 도착함으로써 북한권력의 향배와 관련해 크게 주목되고 있다. 오의 프랑스 방문은 북한 권부로부터의 축출이나 망명 등 정치적 사유와는 무관하다는 게 현단계에서의 정부당국의 분석이다.그가 폐암으로 추정되는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돌았기 때문이다.사실 오는 지난 91년에도 폐질환과 관련해 중국에서 한방치료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급격히 노쇠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파리행이 정치적 복선이 없는 순수 치료용 목적이라 하더라도 김일성 사후 북한의 권력이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체제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이른바 「혁명1세대」의 선두주자이자 인민군의 「대부」격인 그가 회복불능의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권부와 군부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예고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의 와병은별개로 치더라도 올들어 김일성 사망을 전후해 세상을 떠난 북한 고위급인사는 모두 6명이 넘는다.강희원(73·부총리)을 비롯해 주도일(75·인민군 차수·국방위원·평양방어사령관) 이동춘(61·대장·당중앙위원) 권민준(65·당부부장) 박수동(66·전농근맹위원장) 조명선(72·대장·강건군관학교장)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60∼70대의 고령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특히 강희원과 주도일·조명선 등은 경제난과 고립 등 대내외적 악조건 속에서도 북한체제를 떠받쳐온 버팀목들인 「혁명1세대」그룹에 속한다. 이들의 줄이은 사망에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한 모종의 음모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고,현재로선 그렇게 믿기도 어렵다. 다만 인위적인 제거 음모가 없다 하더라도 당정치국과 당중앙위 등 북한권력 핵심부의 세대교체는 필연적인 수순으로 뒤따를 것 같다.오진우(77) 이종옥(78) 박성철(81)등 당·정·군에 포진중인 혁명1세대들이 대부분 70대 후반의 고령이라는 점에서 이들도 어차피 하나 둘씩 사라질 수밖에없는 운명인 까닭이다. 이는 외형상으로는 김에게 유리한 상황전개라고 볼 수 있다.이들 대부분이 김일성과 같은 「빨치산1대」로 상대적으로 김일성에게 헌신적인 인물들로 김정일이 자신의 심복들로 물갈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이 오진우의 와병을 계기로 최광 총참모장이나 김철만 국방위원 등 혁명1세대 대신에 심복으로 알려진 오극렬 당작전부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북한 군부의 물갈이를 단행할 것이라는 일부 관측도 없지 않다. 그러나 김이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실세그룹의 퇴조는 북한권력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보다 우세하다. 김이 건강상이나 다른 이유로 장악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형편에 이들 핵심 원로급들의 잇따른 퇴진은 당정치국 등 북한권부의 의사결정력을 한층 약화시킬 것이라는 추론이다.오의 와병으로 김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등극 시점이 늦어질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특별기 타고 급행…“폐암 중증” 관측/오진우,왜 갑자기 파리 갔나

    ◎주치의등만 수행… 정치목적 없는듯/의료수준·인도적 정책 고려 불 선택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폐암치료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것은 입국 신청 4일만에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난 20일 북경주재 프랑스대사관에 오진우부장의 입국 비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프랑스정부는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 「거물」의 입국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이틀 뒤인 지난 22일 알렝 쥐페 외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입국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진우부장은 비자를 받은지 이틀 뒤인 24일 서둘러 평양을 출발했다.그의 비자발급을 위한 입국 목적도 「폐암 치료」라고 돼 있을뿐 아직은 그가 중병을 앓고 있는지 단순한 검진차원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수교국간의 영공통과 문제로 특별기보다는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달라는 프랑스정부의 의사전달에도 굳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특별기를 타고온 점등을 보면 그의 폐암이 중증일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진우부장을 수행한 인물은 주치의2명,간호요원 2명,경호원 1명,통역 1명인 것으로 전해졌다.때문에 그의 프랑스 방문에 신병치료 이외의 망명등 정치적 목적은 없는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 시내 라에넥병원은 파리의 6대 종합병원의 하나로 호흡기전문 병원이다.그러나 26일 현재 그의 병원입원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가명으로 입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진우부장이 중국 등 수교국을 두고도 프랑스를 택한 것은 프랑스의 발달된 의료기술,프랑스와의 관계및 프랑스의 인도주의적 정책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프랑스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당 정권의 출범으로 서방국가 가운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84년 12월에는 통상대표부에서 일반대표부로 승격됐다.평양의 양각도호텔도 프랑스 기업이 투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의료기술은 에이즈 백신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등 세계적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또 고 김일성주석의 심장박동기도 프랑스 의료진이 방북해 달았을 만큼 북한에는 프랑스 의료기술이 친숙한 점도 고려된듯하다. 또 프랑스가 미수교국의 지도층이 치료나 검진을 희망하는 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락해준 전례들도 오진우부장의 프랑스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프랑스는 지난 85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제2인자의 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지난 5월에는 리비아의 외무장관이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파리를 경유하는 과정에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오진우의 전력과 최근 행보/항일유격대출신 혁명 1세대… 77세로 거동 불편/군 좌지우지… 김정일과 권력투쟁설 올해로 만 77세인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최근 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노쇠현상이 뚜렷했다.가장 최근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16일 김일성사망 1백일 추모회였는데 이때 다리를 저는등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습으로 북한 TV에 비쳐졌다. 그는 김정일에 이어 권력서열 제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 이후 몇몇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김정일과의 불화설등 그의 신변을 둘러싸고 이상이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즉,7월20일 중앙추도대회 후 첫 중요행사인 「7·27 전승기념일」 행사에 군원로이며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가 당연히 참석해야 했으나 불참했고,이어 9·9절(정권수립기념일)행사,10월11일의 단군릉 개건 준공식등 비중있는 행사에 잇달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다만 지난달 20일 추석을 맞아 「혁명열사릉」에 헌화한 뒤 다음날인 21일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사망 45주 추모회에 참석했고 또 하루 뒤인 22일 김정숙동상에 헌화한 사실이 전해졌다.생전에 두터운 교분을 유지해 왔던 김일성부부,혁명열사 추모행사에만 참석했을 뿐이다. 폐암이라는 오의 병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지금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86년 9월께 음주운전 사고를 내 의식불명의 중태에까지 빠졌었다는 것이 전부일 정도이다.당시 오는 한 연회에 참석한 뒤 만취된 채로 차를 몰고가다 평양시내 전승기념관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9개월가량 고위 당정간부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이때 김정일이 헬리콥터까지 동원,긴급 후송을 하도록 지시하고 치료에도 세심한 배려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돼 김정일에 호감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그의 출생연도가 김일성보다 불과 5년 아래인 1917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폐암이 아니더라도 노환을 피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으로 혁명 1세대를 대표하고있는 그는 김일성과함께 오늘의 북한 체제를 구축한 주역의 한사람이다.함남 북청출신인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언제나 2인자로 군림함으로써 그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옛 소련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을 수료한 뒤 항일유격대에 가담한 오는 45년 10월 인민군 최고사령부 호위국장에 취임하면서 북한 군부의 핵심라인에 올랐다.이어 60년 8월 1집단군 군사령관을 거쳐 당정치위 후보위원이 됐으며 마침내 76년 5월 인민무력부장에 취임,군부를 장악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다가 김일성이 죽자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최근에는 그의 「거세설」·「연금설」과 함께 아들의 중국탈출설도 나왔었다. ◎“오진우란 환자없다” 입원 부인/파리병원 주변 스케치 ○…파리시내 비노가에 있는 북한 일반대표부는 오진우 부장의 방문에도 불구,겉으로는 조용한 분위기. 북한측 한 관계자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오부장이 대표부내에 있는지 등을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딱딱한 반응. 북측은 한달여전부터 폐암치료병원을 물색해 왔으며 암치료약을 상당분량 구입해 평양으로 수송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오늘중 검진 받을것” ○…오부장은 입원할 병원이 워낙 취재진에게 노출돼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거소에서 의사왕진을 통해 진료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라에네크병원측은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오늘 이 시간 현재 「오진우」라는 환자는 병원에 없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다』고 발표. ○노출우려 왕진 가능성 ○…프랑스 내무부는 26일 상오 오부장이 이날 중 라에테크병원의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발표. 외무부는 검진결과에 따라 입원,수술,귀국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 ○외교소식통,망명 일축 ○…한 외교소식통은 오부장이 망명할 가능성에 대해 『프랑스정부는 인권탄압등의 경우에 한해 망명을 허용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일축. 이 소식통은 『오부장의 프랑스방문이 핵문제합의문 채택에 이어 남북대화등 관계진전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
  • 북한군대장 방중

    【내외】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23일 인민군 대장 오용방(75)을단장으로하는 인민군 친선참관단이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22일 평양을 출발했다고 밝혔다.
  • 김정일 권력승계 순항 과시/김정일의 공석출현 안팎

    ◎추도분위기 높여 「등극」 정당화 노려/군차수급 상위서열 앉아… 「실세」 입증 16일 평양 금수산 의사당에서 열린 김일성 사망 1백일 중앙추모회에 김정일이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그동안 나돌던 건강이상설이나 권력암투설등 그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들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향후 그의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날 상오 만수대언덕 대형 김일성동상앞에서 열린 1백일 추모대회에는 김정일이 참석치 않아 갖가지 추측을 자아내게 했는데 결국 김일성에 대한 추도분위기를 최대한 높여 김정일의 1인자 등극을 정당화하는 「추대분위기」로 이어가 「극적효과」를 노리기 위한 시나리오였던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 ○…김정일은 이날 하오4시쯤 당정간부들을 대동,주석궁으로 불리는 만수대 의사당에 88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난번 장례식때보다는 건강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보였으나 공식연설은 일체 없었다.그는 이날 상오 오진우 등 당정 고위간부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화환 증정식에 얼굴을 내밀것으로 예상됐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서 당서열 2,3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강성산 정무원총리가 김정일의 좌우에 도열하는등 이들과 박성철 양형섭등 고위 당정인사들의 권력서열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주민과 군간부등 10만여명이 참석한 이날 하오의 만수대 의사당 중앙추모회는 평양시 당책임비서 강현수의 개회사에 이어 당비서 김기남이 당대표로,북한군대표로는 총참모장 최광이 나서서 추모사를 했다.김기남은 『김일성주석이 창시한 주체혁명 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김정일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하자』고 다짐.최광도 『우리 군은 김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김정일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할것』이라고 강조. ○…이날 상오에 열린 대규모 추모제에는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를 비롯,강성산 정무원총리와 이종옥·박성철·김영주부주석 등 고위 당정간부 전원이 참석. 김정일의 측근으로 알려진 박남기 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은 화환증정식에서 추모사를 통해 『애도의 나날에 수령님의 영전에 다진 엄숙한 맹세대로 김정일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며 김정일을 「친애하는 지도자」로 호칭. ○…한편 이날 행사에서 지난 7월의 김일성 장례식때와 달리 김봉률·김광진·김익현 등 몇몇 인민군 차수급들이 김기남 당비서보다 상위서열에 자리잡아 김일성 사망후 군부를 포함한 강경보수세력들이 실세로 부상하고 있다는 일부 관측을 낳기도.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현재 노동당 정치국 중심의 권력구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이 와중에서 군부나 노동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 ○…앞서 북한 중앙방송은 이날 김일성 사망 1백일을 계기로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 거리에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를 미리 세워 놓았다고 보도. 북한당국은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 제1백화점 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글과 함께 가로15m,세로11m의 대형 초상화를 세워 놓았으며 문수네거리에도 대형 초상화를 걸어 놓았다는것.한편 북한당국은 이날 추도대회 행사장면 TV녹화 화면을 당초 상오 10시 일본TV 공동취재단에 보내주기로 했다가 시간을 하오 3시,하오 5시로 잇따라 연기해 또한차례 갖가지 추측들을 증폭시켰었다.
  • 북한 권력구조 불확실성 증폭/김정일 단군릉 준공식 불참의 저변

    ◎오진우도 참석 안해… 김­오 불화설 뒷받침/권력승계 공식화 지연가능성 더 높아져 북한당국이 1년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른바 단군릉 준공식에 공식후계자 김정일이 얼굴을 내밀지 않아 북한 권력구조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준공식에는 북한 권력서열 3위인 강성산 정무원총리가 준공사를 낭독하는 한편 이종옥부주석 등 당정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것으로 북한 중앙통신이 전했다.그러나 정작 서열 1,2위인 김정일과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자리를 비움으로써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단군릉 개건공사는 생전의 김일성이 북한체제의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부자간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바로 이같은 시나리오에 따라 「주연」으로 나타나야 할 김정일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심상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단군릉 개건작업은 김일성 처리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관측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아왔다.즉 북한당국이 매장하든,영구보존하든 평양 근교의이른바 단군릉에서 김일성시신을 처리한 뒤 오는 15일 대대적인 1백일추모제를 거쳐 김정일이 공식 1인자로 등극한다는 구도가 상정됐었다. 하지만 이날 북한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자연히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오진우의 이날 불참도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최근들어 오진우와 김정일의 불화설 및 인민군 장성인 오의 아들이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중국으로 탈출했다는 미확인 루머가 유포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불참이 그의 건강상의 문제나 장악력의 부족에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현재로선 예단키 어렵다. 지난 10일 당창건기념일에 이어 김정일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실이 반드시 그의 실각을 의미한다고 속단하기에는 시기상으로 이르다는 분석이다. 다만 15일 김일성 사망 1백일제에도 김정일이 무대 위로 「등장」하지 않으면 그의 후계승계 가도에 모종의 장애가 생겼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봐야 한다는게 정부와 북한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 북 군부 강경파 득세한듯/김익현 등 서열 급부상

    ◎제네바핵협상 제동 추정/정부 당국자 분석 김일성 사망후 군부를 포함한 강경보수세력들이 북한의 실세로 등장,주요 대외·대남 정책을 주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29일 밝혔다. 정부는 특히 제네바에서 진행중인 미북간 핵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북한 군부 강경파들이 신속한 타결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현재 노동당 정치국 중심의 권력구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이 와중에서 군부나 노동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당국자는 지난 8월28일 「김정일노작 발표20돌」기념식에서 공안담당 비서인 계응태가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치자』고 밝힌 이래 북한정권 핵심인사들이 포진한 당정치국 회의를 통해 중요 정책방향이 결정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북한의 권력구도가 정립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실세그룹과 관련,『폐쇄체제의 속성상 과도기에는 무력을 장악한 군부와 공안계통이 힘을 쓰게 마련』이라고 말해 최광인민군총참모장,인민무력부부부장인 김광진·김봉율,김익현중앙군사위원 백학림사회안전부장 등 인민군 실세그룹과 최근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계응태 공안담당비서의 득세 가능성을 점쳤다.특히 김익현등 인민군차솔그룹들은 김일성사망직후 발표된 장의위원 명단에서 서열이 43위에서 79위 사이에 불과했으나 이후 열린 여러 행사에서는 서열 24위인 김기남 당비서보다 서열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 정부당국은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북,“대미 무력대응 불사”/인민무력부 담화/미­북회담 중단 경고

    【내외】 북한은 27일 미항공모함 전단배치와 페리 미국방장관의 군사조치발언 등 미국의 대북압력에 대처,군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경대응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이날 제네바에서 진행중인 미­북 3단계 2차회담과 관련한 「인민무력부대변인」 담화를 발표,키티호크 등 미항공모함 전단 배치 및 페리 미국방장관의 대북군사력 사용 발언을 비난하는 가운데 『미국이 무력대결로 나오고 있는 이상 우리도 언제까지나 회담에만 매달릴 수 없다』며 미­북회담중단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담화는 또 미군부 보수세력의 대북군사압력에 대응,『말로만 아니라 총대로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는 것이 인민군대의 사명』이라면서 『만일 또다시 무분별하게 조선반도에서 불질을 한다면 값비싼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 김정일 손가락은 기형… 짧고 굽어(「85년 북한」 극비보고서:하)

    ◎6·25때 중국 피란… 석회 섞인물 먹은탓/멜론 등 열대과일 즐겨 특수온실 마련/오진우는 부정맥환자… 현준극도 심장박동기 달고다녀 국제정세와 관련,김정일은 몇몇 사회주의국가들의 사정을 언급하면서 일부나라들에서 종교의 위치가 너무 강하다고 비난.폴란드에서는 당화합에 사람모으기가 교회에 사람 모으는 것보다 더 힘들다니 한심하다고 했음.그는 최근 북한을 방문한 폴란드 예술단의 일행중에 당원들이 많이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인 호텔에서 예배를 본 사실을 이야기했음.김정일은 대부분의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에서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사실도 못마땅하다고 했음.그는 북한은 종교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나라라고 말했음.북한에는 실제로 예배를 보는 교회나 사찰·수도원은 한곳도 없다고 했음.그는 남한에는 수백만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조선노동당도 종교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음. 몽골에 관해 이야기하며 김정일은 도시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유르타(천막)생활을 하는데 수많은 스님·신자들이 있는 나라라고 했음.양모나 무두질한 가죽 따위를 수출하면서 나라가 발전했다고 자랑하는 나라라며 꼬집었음.소련 국가 계획위원회 동지들이 북한경제에 필요하다며 몽골영토에서 갈탄채광을 계획했다가 철도건설·주택·생산시설등에 투자할 경비가 너무 많아 포기했다는 예도 이야기했음. ○중국 맥주맛 혹평 83년 6월 자신의 중국방문에 대해 언급하며 김정일은 호요방의 안내로 캔맥주 생산공장을 둘러본 이야기를 했음.그는 맥주맛이 어떠냐는 그 공장책임자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고 함.맥주맛이 너무 형편없는데 그 책임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것임.그는 북한맥주가 훨씬 더 맛이 좋다고 했음.그 이유는 물 때문이라고 하며 김정일은 소련산 맥주,기타 소프트 드링크류도 맛이 떨어진다고 했음.소련산 미네랄 워터에 대해서는 칭찬. 남북한 관계에 대해 김정일비서는 사마란치위원장의 주선으로 로잔에서 열린 남북한 올림픽위원장 회담이 결과없이 끝났다고 했음.양측이 기존입장만 되풀이,아무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함.그는 최근 남한이 새로운 형태의 스파이활동을 시작했다고 강조.얼마전 황해도 남부에서 남한 첩자 1명이 당노동자로 위장해 활동하다가 채포됐다고 했음.이 첩자는 무기나 기타 장비는 일체 소지하지 않고 북한파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목적의 선전물배포 임무를 받고 파견됐다고 함.이 사람은 지방당조직의 당선전내용을 요약한 노트 30권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수정주의·교조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함.이 사람은 자신이 북한의 북쪽지방으로 침투하라는 밀명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함.이 노트를 소련·중국에서 친척방문을 위해 온 한인들을 통해 소련·중국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함.김정일은 국가보위부장이 이 일을 자신에게 보고하면서 이 노트들이 이미 형제국들에게 넘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함.김정일은 적들이 북한·소련 관계가 강화되는 것을 원치 않고 두려워한다고 했음. 김정일은 자신을 포함,북한지도자들의 신상에 관한 정보도 제공했음.그는 자기 가족이 신장결석에 잘 걸리는 체질이며 자기도신장에 작은 결석 수개가 있다고 했음.그래서 의사들이 가급적 맥주를 많이 마시고 시금치를 먹지말라고 충고한다고 함.북한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3년째 동독에서 신장결석 레이저 파쇄 치료법을 배우고 있다고 함.그는 현재 치료법은 비용이 너무 비싸 1회 치료에 자동차 3대값이 든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일반주민들도 이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음.그는 정기적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주치의는 인민군의 의료 책임자로 있었고 소련서 3년 공부한 대학교수라고 소개했음. ○신장에 결석 많아 그는 자신이 한국전쟁중 중국의 길림에 피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석회등 혼합물이 많이 섞인 나쁜 물을 먹어서 손가락이 모두 굽었다고 했음.손가락을 보니 모두 짤막하고 기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음.그는 손가락을 보여주며 『중국으로부터 받은 평생의 선물』이라고 말했음.정치국 상임위원이며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당중앙위 행정부장 김시학등도 중국 북동지방에 오래 살아 물로 인한 병을 같이 얻었다고 함. 김정일은 부친을 따라 50년대 소련,60년대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이야기를 했음.모스크바에서는 당중앙위 비서인 황장엽을 따라 동물원에 가서 한국 꿩을 본 기억이 난다고 했음.그는 정치국원과 당중앙위 비서를 지낸 숙부인 김영주가 몹시 건강이 나쁘다고 했음.김일성은 나이에 비해 크게 건강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함.김일성은 80년 눈질환으로 인한 두통을 심하게 앓았으나 그해 눈수술을 받은 뒤 두통이 없어졌다고 함.김일성도 신장결석 수술을 받았다고 함.수술은 권위있는 외과의사인 박명빈이 집도했으며 소련전문의들이 옆에서 도왔다고 함.평양의대를 졸업한 박명빈은 이 수술을 하기 위해 1년반을 준비했다고 함.의학서적을 집중연구하는 외에 수술경험을 쌓기 위해 유사환자 1백60명을 수술했다고 함.그는 현재 55세로 보건부장이라고 함(90년 10월 사망 ­편집자주).가끔씩 시도 쓰는 그는 지금도 수술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주 3회씩 수술을 계속한다 함.그는 수술일에 전념하고 싶다며 3번이나 보건부장 면직요청을 정치국에 내 차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그의 청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함. 오진우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불정맥을 앓고있다고 함.지난해 합병증으로 심하게 앓아 심장박동촉진기를 달라고 했는데 「병신같이 사느니 죽는게 낫다」며 그가 거부하고 있다고 함.김정일은 정치국 위원인 김중린,인민군 해군사령관 김일철,중앙전신전화국장 주현옥,당중앙위 국제부 제1부부장 현준극등이 모두 이 심장박동촉진기를 달고 잘 지내는데 오진우만 왜 안 달겠다고 우기는지 모르겠다고 했음.김정일은 이 박동기는 7년에 한번씩 배터리만 교체해주면 되는 아주 효과적인 기계라고 했음. 김정일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인 권희경이 간질환과 신경계통에 질환이 있어 정기적으로 평양으로 와 진찰을 받는다고 했음.10월 14일에도 정기진찰을 받으러 와 10월 16일까지 평양에 머문다 함.김정일은 권희경대사가 모스크바에서 소련술과 중앙아시아산 과일등 음식물을 자주 자기앞으로 사서 보내온다고 했음. ○소 정부에 호의적 대화중 김정일은 슈티코프,라주바예프,수즈달레프,푸자노프등 소련대사와 소련고문관들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이야기했음.그는 어떻게 하든 자기가 소련정부와 소련국민들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애썼음.그는 자기가 소련에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소련·북한의 우호관계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다.그는 앞으로 더 자주 만날 것을 제의했다. 그는 자기 국민들,동료들에 대해서 아무 거리낌없이 말했음.정치국원·당중앙위 비서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혹평을 해 그가 이미 국가·당서열에서 제2인자인 위치를 확고히 굳힌 것으로 보였음.김정일은 일상생활에서는 사치가 몸에 밴 것으로 보였음.서방 제품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바나나·멜론·수박등 여러 과일·채소들이 김일성 일가족만을 위해 특수온실에 연중내내 재배된다고 함.본인은 그가 여러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답해준데 대해 소련정부를 대신해 사의를 표했음.
  • “63빌딩 능가할 70층호텔 지어라”(「85년북한」극비보고서:중)

    ◎김정일,루마니아 석유 공급않자 불만/이철봉 사회안전부장 과음문책 해임/중공군 6·25참전 기념식 열어 유대 과시하라 김정일은 당중앙위 정치국 전체회의와 중앙인민위 합동회의 결과에 대해 공개된 정보외에 상세한 사항을 본 대사에게 알려주었음.당지도부 인사이동상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음.정치국원이며 군수산업분야 담당 당중앙위 비서인 연형묵을 정무원으로 보냈다고 함.이는 행정부내 당의 원칙강화를 위해서라고 함.정치국 후보위원 이진모가 대신 군수산업 담당 중앙위 서기로 임명됐다 함.정치국 후보위원겸 당중앙위 비서인 안승학이 정무원 부총리겸 경공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 됨.정치국 후보위원 계응태가 경공업 담당 당중앙위 비서로 임명 됨.이 결정사항은 차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채택되나 업무 인수인계및 새업무는 이미 시작됐다고 함. 북한경제에서 비철금속 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채광·비철산업 개발을 전담할 특수부서를 중공업분야를 관장하는 당중앙위 제1경제부로부터 독립시키기로 했다고 함.김하철이 이 새부서의 책임자로 임명 됐음.정하철은 50년대 소련에서 광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당중앙위 총무부장,당중앙위 총서기국 비서장 임.그의 후임에는 최영림 부총리가 임명 됨.최영림은 이전에도 총서기국 비서장을 역임했음.최영림이 정무원 부총리라는 힘든 직책에서 벗어나 공공연히 기쁜 내색을 한데 대해 김정일은 그의 당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김정일은 조선노동당에서도 소련공산당과 마찬가지로 당중앙위에서 총무부를 조직부 다음으로 중요부서로 간주한다고 함.당중앙위 총무부장이 당총서기와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직을 수행한다는 점을 감안할때 최영림이 정무원 재직시 익힌 업무가 새직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함. ○지도부 인사 설명 김일성은 고령인 탓에 지방순시를 자주 못하고 대신 보좌관들을 지방에 파견해 현지사정을 보고서로 올리도록 하는데 현재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도 보좌관들은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함.김정일은 얼마전 노동신문 주필 김기남을 당중앙위 선전부장으로 임명했다고 함.대신 이성복을 노동신문 주필에 임명.이성복은 노련하고 균형감각을 가진 노동자출신으로 한국전쟁시 인민군으로 낙동강까지 내려갔다고 함. 제대한뒤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신문 남한부장을 지냈으며 최근 15년간 당중앙위서 연구원·부서책임자로 근무했다고 함.75년부터 중앙위 선전부 부부장을 지냈음. 김정일은 이철봉 사회안전부장을 해임하고 정치국원이며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백학림을 신임 사회안전부장에 임명한 배경에 대해 설명.김정일의 말에 따르면 이철봉의 경질이유는 과다한 음주때문.지난9월 중국인민경찰 대표단 일행을 위해 옥류관 식당에서 베푼 만찬에서 이철봉이 혼자 보드카 2병반을 마시고는 몸을 움직일수 없을 정도로 취했다 함.1967년 제4차 당중앙위 전체회의의 결정에 따라 잠수함근무를 제외한 모든 군에서 음주는 금지돼 있음. 국내사정에 관해 김정일은 일기불순과 태풍피해까지 겹쳐 금년도 작황은 흉작이라고 말함.그러나 국가전체로 볼때 수확량이 지난해 수준은 된다고 함.86년도 1월1일을 기해 농민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된다는데 엄청난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함. 김정일은 또 현재 북한지도부는 자동차도로 건설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도로혁명을 완수하자」는 슬로건을 채택했다고 함.관련부서에서는 운전자들에게 지시사항을 많이 내렸으며 수송량 증대로 인한 도로정비의 필요성을 주지시키느라고 애쓰고 있다고 함.구역마다 교통법규강습회를 조직하고 트럭운전자 1만5천명을 평양시내 체육궁전에 모아놓고 특수교육도 시킨다 함.김정일은 그러나 기대한만큼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련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소련 내무성의 「가이」(경찰)의 교류 필요성을 역설했음. ○도로건설에 박차 김정일비서는 또 외국관광객들을 위해 대규모 호텔건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음.이미 평양에 45층짜리 호텔을 지었고 4,5개의 호텔을 더 지을 계획이라고 함.호텔건설은 88년도까지 완성할 계획이라 함.특히 대동강의 섬에 프랑스와 합작으로 70층짜리 호텔(유경호텔)을 지을 예정이라고 소개했음.김정일은 이에 덧붙여 『얼마전 남한에서 60층짜리 보험회사 건물을 지어 이를아시아 최고층 건물이라고 지랑하는데 이를 능가할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음.아울러 평양에 15만명을 수용할 대형 스타디움 1개와 5만∼6만명을 수용하는 스타디움 4개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함.내주중 원산시 갈마반도의 군용비행장이 있는 자리에 국제호텔 기공식이 있을 예정이라고 함.원산을 휴양도시로 만들라는 김일성주석의 지시에 따라 일제때 건설된 이 비행장을 철거키로 했다고 함. 모스크바에서 열린 청년학생축전이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김정일은 말했음.그는 소련콤소몰(청소년동맹)이 행사준비를 비롯,행사전반에 걸쳐 많은 조언을 해준데 대해 매우 고마워했음.차기 청년학생축전을 평양에서 개최하겠다는 뜻을 소련측이 지지해준데 대해서도 사의를 표했음.조만간 있을 미소 정상회담과 관련,김정일은 레이건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음.레이건은 제국주의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고 제국주의의 요체는 변치않기 때문이라는 것임. 김정일비서는 또한 10월말 중공의용군의 한국전쟁 참전35주년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음.적들에게 북한과 중국의 유대가 긴밀함을 과시하기 위해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 함.소련대표단을 대규모로 초청해 해방40주년 기념식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함.중국대표단은 10명으로 구성될 에정이며 초청받은 사람 모두가 초청을 수락했다고 함.당·정부 인사들로 구성될 이 대표단의 단장은 정치국원이며 중공당중앙위 서기인 이붕부총리가 맡을 것이라 함.이붕은 소련에 더 잘알려진 인물임. 소련에서 공부했고 지난3월 고르바초프와 면담했던 인물.여성 1명도 대표단에 들어있는데 중공당 중앙위 국제관계부 부부장이라고 함.이 여성도 소련서 공부해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고 주로 동구관계 업무를 다룬 인물이라 함. 지난 가을 김일성과 호요방의 신의주회담때 배석했다고 함.행사중에는 리셉션·매스게임·문화공연등이 들어있고 미국의 한반도정책 비난,주한미군철수등을 요구하는 연설이 있을 것이라고 했음.김정일은 중국대표들이 미국 비난연설을 할지 흥미거리라고 했음. ○소련 대표단 초청 차우셰스쿠 루마니아대통령의 북한방문과 관련,김정일은 두나라 정상이 사회주의 건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고 했음.차우셰스쿠는 공산당·노동당 국제회의 개최와 구코민테른과는 다른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설을 제의했음.이 문제는 추후 추가검토와 논의를 갖기로 합의했음.아시아문제를 논의하면서 두 정상은 미국에 대응하는데 일본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데 동의했다고 함.차우셰스쿠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으며 특히 고려민주연방창설 제의와 남북한·미국 3자회담개최를 지지했다고 함.차우셰스쿠는 또 88올림픽에 관한 조선노동당의 입장에 대체적으로 동의했음.루마니아측 요청으로 차우셰스쿠방문 결과를 양국공동 커뮤니케로 발표키로 결정했다고 함. 두 정상간 이견은 특별히 없었으나 경제문제에서 때로 첨예한 견해차가 드러났다고 함. 루마니아는 북한측에게 자국산 기계수입을 대폭 늘리고 이를 북한산 시멘트·비철금속·기타 원자재로 갚아줄 것을 요구.반면 북한은 예를들어 트럭의 경우 자체 생산분이 충분해루마니아산 자동차를 수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더구나 루마니아에서 수입한 6∼7t짜리 트럭은 북한에서 1년만 쓰면 고장난다고 함.루마니아제는 아스팔트 도로용인데 북한은 이를 광산·군용등으로 사용할 목적임.북한에서 꼭 필요한 자동차는 루마니아도 전략물품이라는 이유로 수출을 거부했다고 함.전략물품의 경우는 루마니아 자체에서도 부족하다는 주장.북한이 루마니아산 석유를 수입하고 싶다고 하자 루마니아측은 자기들도 매년 소련에서 6백만t의 석유를 수입한다며 거절했다고 함.김정일은 루마니아가 자기들 석유는 앞날에 대비,비축하고 있다며 불만스레 말했음.
  • 고개:상(서울 6백년 만상:59)

    ◎남태령/여우고래로 불리다 정조때 개명/춘향전서도 언급… 서울∼사남 잇는 길목/산적 많아 행인들 넘을때 월치전 준비 『전라도로 내려갈제 청파역졸 분부하고 숭례문밖 내다라서…동자기(지금의 동작동)밧비 건너 승방들(승방뜰)·남태령·과천·인덕원 중화(점심)하고…』­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전라도로 내려가는 대목에서 알수 있듯 남태령은 서울과 삼남을 잇는 길목이었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승방뜰(승방평)과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을 잇는 남태령은 그 길이가 무려 3.3㎞에 이른다.지난 63년 서울로 편입되면서 2.2㎞는 서울에,나머지 1.1㎞는 경기도 땅으로 남아있다.관악산의 북동쪽 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개의 남서쪽에는 관악산 정상이,북동쪽에는 우면산 정상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남태령의 이름이 아직 「여우고개」로 불리고 있을 때 정조는 이고개를 넘어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자주 참배했다고 한다.정조는 당시 배로 한강을 건너 남태령과 과천,사그내(현재의 의왕시)를 지나 수원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어느날 임금의 행차가 남태령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을 때 정조는 수행하는 시종들에게 고개이름을 물었다.이때 과천현 이방은 「남태령」이라고 선뜻 대답했다.「여우고개」라고 알고 있던 임금은 『왜 남태령이라고 했느냐』고 되물었다.그는 『임금께 요망스런 짐승 이름을 댈 수가 없어 서울 남쪽의 가장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 둘러댔다』고 아뢰었다.정조는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거짓고함을 책망하지 않고 남태령으로 부르도록 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고 전해진다. 미아리고개등 서울의 대표적인 고개가 다 그렇듯 남태령 역시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고개가 험준해 옛날에는 관아에서 젊은이들을 고용해 여러사람이 모인뒤에야 행인들을 호송,고개를 넘도록 했다.행인들은 고용된 젊은이들의 요구에 따라 월치전(고개넘잇돈)을 준비해야만 했다.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혼자 고갯길을 넘어야 했고 그때마다 산적들에게 약탈을 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땔감장수들 가운데서도 험준한 관악산에서 나무를 해다 파는 사람이 많아 지게나 소의 바소쿠리에 장작을 가득얹어 남태령을 넘는 과천나무장수들의 모습은 서울 사람들의 눈에 익은 풍물의 하나이기도 했다. 6·25때는 격전지로 바뀌기도 했다.관악산을 장악한 인민군과 북상하는 국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과천부터 긴다』는 옛말이 있다.이는 어떤일을 앞두고 미리 겁부터 먹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쓰던 말이다.서울나들이에 나선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각박스럽고 사나운 장안인심이 겁나 가파른 남태령을 기어넘듯 과천에서 부터 몸을 사렸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과천 안양 시흥등 도시들이 집중 개발되면서 남태령은 출퇴근 시간은 물론 거의 하루종일 몰려드는 차량들로 홍수를 이뤄 남태령을 기어 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기존 4차선도로가 8차선으로 넓혀졌고 최근에는 고개밑으로 지하철 과천선이 통과해 사정은 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그러나 평촌·산본신도시를 비롯,과천정부종합청사,서울대공원,서울경마장을 드나드는 차량이 하루 3만여대에 이르는등 이용차량이 갈수록 늘어 서울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중 하나가 됐다.
  • 북,미군유해 「값올리기」 열중/1구 3만불 제시에 미 난색

    ◎작년 2만불,유족보상비의 갑절/미/외화확보 노려 “수천구 더 있다”/북 지난해 9월 한미 군장교가 판문점의 협상 테이블에 89만7천달러가 든 서류 가방을 북한 인민군장교에게 건넸다.장교는 이 가방을 열어본 뒤 거액의 현금다발에 놀란듯한 표정을 짓다가 곧 의심스런 눈빛으로 지폐를 검사했다. 이같은 광경은 한 미국관리가 전한 한국전 참전 실종미군병사의 유해인도에 따른 양측간 후속절차 처리과정이다. 지난해 전달한 89만7천달러는 90∼92년 북한측이 인도한 46구의 유해에 따른 보상금이며 양측은 또 지난해 인도한 유해 1백48구와 지난 13일의 14구에 따른 보상문제를 현재 협의중이다. 미군 당국과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최근 인도된 유해가 대부분 미군 또는 외국인의 것이지만 이 가운데 한구만이 확인됐으며 일부에서는 동물의 뼈도 섞여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유해 한구당 보상액 2천∼3천달러를 제시하고 있다.이에 비해 북한이 요구하는 보상액은 3만달러이다. 미국방부의 한 관리는 북한측이 유해인도에 따른 항목별 비용을 보내왔으며 미국도 신뢰의 표시로 비용을 지불하기를 바라지만 한구당 평균 1만9천5백달러로 책정한 지난해 보상금을 앞으로 있을 유해 인도에 따른 「지정가격」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미군이나 유엔사령부는 공식적으로 유해를 사들이는 것은 아니며 유해발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물론 북한측도 유해를 파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인도적 차원에서 이를 넘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90년 첫 유해 인도 협상에 참여한 한국전 참전 용사인 노먼 E 존스씨는 『솔직해지자.그 돈은 유해의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존스씨는 유해 인도 협상 당시 북한측 대표로 나왔던 허종 유엔주재 북한 부대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유해를 인도하라는 미국측 제의에 『일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반문,실제로 유해인도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바라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양측간에 앞으로의 유해인도절차를 위해 금전거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북한이 한국전 참전 병사의 가족들이 받는 보상금보다더 많은 돈을 받게 된다고 분개했다. 한국전이 끝난 뒤 지난 54년 사망자로 발표된 미군 병사의 유족들이 받는 생명보험액수는 현재 북한측이 유해 한구당 제시하고 있는 보상금 3만달러에 훨씬 못미치는 1만달러 수준이다. 한 북한관리는 최근 북한정부가 한국전에 참전했던 유엔군 등의 유해 수천구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이를 발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측이 밝힌 유해 수천구,아니 유엔이 파악하고있는 미송환 유엔군 전쟁포로 2천2백여명만 치더라도 북한측의 보상가를 수용할 경우,6천6백만달러가 들어간다.미국이 제시하는 최저 보상가인 2천달러를 준다 하더라도 4백40만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 핵·관계개선 대미직거래 “창구트기”/북의 정전위체제 무력화 속셈

    ◎한미공조 틈새 벌리기 집요한 기도/「전문가회담」 앞서 중 철수 결국 관철 이번에 중국이 군사정전위 철수를 결정한 것은 정전협정체제의 폐기를 집요하게 획책해온 북한측의 정전위 무효화 전술에 중국이 공조한 산물로 볼 수 있다. 정전위의 중국인민군 지원단 철수 결정이 북한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더욱이 북한이 이미 정전위 대표단을 철수한데 이어 정치협상기구 성격을 띤 인민군대표부를 판문점에 설치한 상태에서 이번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체제의 변화를 기도하고 있는 이면에는 우리측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직거래를 통해 관계개선과 경제지원 등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장기적 전략이 깔려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즉 정전협정을 북한과 미국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논리를 펴면서 그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등을 추구한다든가 상주연락사무소급 이상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는 속셈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올들어 그들의 이같은 장단기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1차적으로 군사정전위를 기능상실 상태로 몰고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해 왔다.지난 92년 한국군 황원탁소장이 미국측을 대신해 유엔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직후부터 군정위 본회의 참석을 거부해온 연장선상에서 중립국감독위 철수통보에 이어 지난 4월28일부터 군정위 비서장을 아예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북측이 지난 5월24일 유엔사측에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도 정전협정의 폐기를 노린 계산된 행동이었다.지난달부터 북한측이 판문점 북측지역에 있는 판문각 확장공사에 들어간 것 역시 판문점대표부 활동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군정위의 효력정지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처럼 북측이 군정위 기능정지를 꾀하고 있는 데는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되 정전협상의 당사자로서 미국과의 대화채널은 유지·확대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때문에 이러한 북측의 처사들을 미국과의 핵 및 관계개선을 일괄타결하기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북한특유의 「벼랑끝 대화전술」의 일환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미­북 전문가협상을 앞두고 중국측의 정전위 철수발표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측도 정전협정을 무효화한 뒤 당장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게 정부당국의 분석이다.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를 약화시키고 미국과의 대화창구를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은 미국과의 막후접촉에서 단골메뉴인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이로 미뤄 볼 때 북측은 의도적 긴장조성을 통한 대내 결속 도모 차원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중간단계의 과도기 체제를 일단 중간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표 소환」 중국의 정전위정책/정전협정 존중·평화협정 지지 함께/한국 자극않고 북지원 「양다리 외교」 중국이 1일 군사정전위에서 대표단을 소환키로 결정함으로써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중국 외교부 수뇌부는 북한 특사로 지난달 30일부터 북경을 방문중인 외교부 부부장 송호경과의 일련의 회담 끝에 북한측 주장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라는 북한측 주장에 동조하는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전위대표단 철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은 한반도에서 당사국간 협상을 통해 새로운 평화보장 체제가 탄생하기까지는 기존 정전협정체제가 유효하다는 상치되는 입장을 동시에 밝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혼선은 중국측이 나름대로 이 문제로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대외명분상으로도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 정전협정유효라는 원칙론을 덧붙인데서 빚어진 것이란 분석이다.중국이 명분상의 입장 선언은 전기침외교부 부장이,실질적 입장은 당가선외교부 부부장의 입을 통해 밝히는 더블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측으로 보아서도 중국의 입장은 분명치 못한 구석이 있는 셈이다.왜냐하면 당부부장은 국제관계의 변화와 한반도형세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평화체제수립이 필요하다는데 두나라(중국과 북한)의인식이 같다고 송호경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바로 같은날 전외교부부장은 송에게 기존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보장 제도 마련을 위해선 한반도안정과 평화정착이 전제조건이며 여전히 정전협정은 유효하고 이해당사자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 주장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중국측은 정전위에서의 대표단 소환 필요성을 정전위의 파트너를 이루고 있는 북한대표단이 이미 철수,정전위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돼 있어 북한측의 요구를 고려한 끝에 이같이 결정할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의 정전협정의 유효성 천명에도 불구,우리측으로선 중국 외교부 당국자가 정전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체제에 대한 고려논의가 언급됐다는 점에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한편 북경의 외교관측통들은 중국과 북한과의 이러한 논의는 지난6월 최광북한총참모장의 방중등을 통해 계속돼 왔으며 북한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날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또 관측통들은 중국도 정전위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여지를 갖게 하고 중국 자신들도 대미 외교의 협상력을 발휘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은 주중 한국대사관등에 중국의 이번 조치가 철수가 아니라 다시 대표단을 재파견할 수 있는 소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북경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중국측의 결정이 정전위의 단계적인 무력화와 나아가서는 주한미군철수의 당위성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성하면서 한국정부의 대응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 유감스런 중국의 정전위 철수(사설)

    중국이 지난달 31일 남북군사정전위에서 중국인민군대표단을 철수한 것은 한마디로 한반도 평화체제유지라는 유엔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그것은 당장 정전위기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종국에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까지는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려는 북한의 끈질긴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그런 조치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적합하다는 계산도 있었으리라 본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반도 평화정착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북한주장에 쉽게 동조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이번 조치는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했다.중국은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련국간에 협의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철수한 것이다.게다가 우리와는 사전협의는커녕 연락조차 없었다.일방적인 사후통고만 있었다고 한다.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중국은 대표단을 철수하면서 「남북한의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해당국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전위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고는 정전협정은 계속 유효하다니 그게 어디 이치에 맞는 말인가.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며 이중적 태도다.겉으로만 선린외교를 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남북양측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기겠다는 태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군사정전위는 지난 40년여 동안 활동해오면서 휴전체제유지를 위한 안전판 노릇을 훌륭히 해왔다.그러나 지난 4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수한데 이은 중국의 철수는 남북간 긴장완화를 위해 지탱돼온 정전위기능을 완전 마비상태로 들어가게 했다고 봐야 한다.따라서 앞으로 비무장지대에서 사소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국면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정전위기능은 그런 이유로라도 유지돼야 한다. 북한이 왜 그토록 중국을 정전위에서 철수토록 설득했을까.정전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데 1차적 목적이 있다.그래야 자신들의 의도대로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로 한·미방위조약을 무력화시키고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조성한다는 것이 북한의 교활한 계략인 것이다.중국은 결과적으로 북의 그런 계략을 돕고 있는 것이다. 미·북간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전문가협의일정까지 잡아놓고 있다.중국의 정전위철수나 미·북회담 진행과정으로 보아 평화협정까지 체결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남북간 신뢰가 구축된 뒤 남북한당사자가 직접 협의해 해결할 문제다.남북한 신뢰구축에는 북한핵문제의 해결이 선결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 김정일,「혁명1세대 끌어안기」추파/북방송「각별한 배려」선전의 배경

    ◎권력승계 지연속 「충성부추기기」 일환/70대이상 고령원로 장악력 미흡 반증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의 순항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김정일과 북한권력핵심층인 이른바 「혁명1세대」간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중앙방송이 최근 김일성을 추종하던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각별한 배려」를 장황하게 선전한 것이 그 하나다. 중앙방송은 이례적으로 김정일과 혁명원로들 사이의 일화 등을 장시간에 걸쳐 소개했다.특히 김이 혁명1세대들을 『응당 우리 인민의 존경을 받아야할 사람들』이라고 말한 사실을 들어 『일찍이 김일성을 받들어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사랑은 각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더 나아가 이들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배려」를 강조하면서 김에 대한 충성을 노골적으로 독려했다.김정일의 「품」을 『노투사들 모두가 운명을 맡긴 위대한 어버이 품』이라든가 『모자 밑에 흰서리를 날리면서도 왕성한 기백으로 사회주의 위업에 헌신할 수 있게 하는 정력의 샘터』라고 비유한 논조에서 그같은 기류가 감지된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들은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말하자면 아직도 김정일이 이들 원로그룹을 의식할 만큼 확고한 권력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혁명1세대는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 운동을 한 원로를 지칭하며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이다.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박성철부주석,최광군총참모장,전문섭국가검열위원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이을설호위총국장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을 전후해 이들 혁명1세대 원로급 인사 7명이 잇따라 숨졌다.지난달 28일 사망한 강희원(73·부총리)을 비롯해 주도일(75·인민군차수·국방위원·평양방어사령관),조명선(72·군대장·강건군관학교장)최만현(75·전금속공업부장)등이 그들이다.
  • 월북자/이용가치 없을땐 “헌신짝”

    ◎저학력·전과자·곧장 산간오지 탄광으로/체제환멸 못이겨 탈출… 자실기도 “방랑” 국제사면위의 폭로로 납북자들이 북한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음이 밝혀진 이후 자기발로 걸어들어간 월북자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하고있을까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월북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있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론 체제선전에 이용 당할대로 이용 당하면서 북한당국의 철저한 감시,통제와 북한체제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경우는 이용가치가 있고 북한체제에 협조적인 경우이고 그렇지않고 월북자가 저학력자 및 전과자이거나 이용가치가 없을 땐 산간오지의 탄광촌등에 배치되기 일쑤이며 심한 경우 숙청되기도 한다. 또 사소한 불평,불만이라도 털어놓다가 적발되면 그냥 놓아두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이 월북하게 되면 평양 등지에서 환영집회를 열어주고 직장 및 결혼을 알선하거나 대학 또는 대학원 입학을 주선하는등 처음엔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또그들이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학력,경력,사회적 지위에 따라 이에 상응한 대우를 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92년에 발행한 화보 「조선」에서 80년대 사병으로 근무하다 월북했다는 6명이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으며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라고 선전한 바 있다.또 지난 91년2월 월북한 호텔종업원 지영준도 「장철구대학」에 입학했다고 전하고 있다. 군장교출신의 월북자들은 일단 1계급 승진시켜 인민군에 편입시키고 있다.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북한사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심한 심리적 갈등을 느껴 군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에 따라 일부 월북자들은 북한에서 다시 탈출을 기도하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고상문씨와 함께 승호리 수용소에 수감된 이준광(전육군소령) 등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월북자들에 대해서는 북한 관계당국이 철저하게 「일일동향」을 파악,감시하고 있다.이 작업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부 등 정권보위기관을 통해 2중3중으로 수행된다. 80년 월북한 염규환 등 4명이 「남한간첩」으로 몰려 자취를 감춘 것도 불평·불만 등을 늘어놓다 이같은 감시망에 걸린 대표적 사례이다. 한편 북한당국은 저학력자나 전과자 등 이용가치가 별로 없는 인물이 북으로 넘어올 경우 일체의 환영행사없이 곧바로 산간오지의 탄광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상례다.89년과 90년 월북한 전과 5범 전권수와 국민학교 중퇴학력의 표병호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 국내외학자연구로 본 남북단정수립 과정

    ◎“평양 45년말 실질적 공산정권 수립”/「5도인민위」 조직 등 남측보다 3년 더 빨라/“「서울단정」 출발로 분단고착 ” 주장 허구 입증 대한민국 정부는 민족과 국토가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난지 만 3년째 되는 날인 1948년 8월15일 출범했다.비록 해방된 민족의 염원인 「통일 조국」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대한민국의 수립은 민주사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자못 심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일각에는 「대한민국이 38선 이남에 세워진 단독정부」라는 이유로 그 의의를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남아 있는데다 급진세력은 『남한에서 단정이 출범함으로써 분단이 고착됐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의 출범에 떠넘기는 이같은 주장이 어느정도 타당성을 갖는지 학계의 연구성과를 통해 알아본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관한 역사적 평가를 위해서는 당시 남한지역을 통치하던 미 군정과 정치주도 세력이 통일정부를 이룩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단정을 강행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신용하·김학준·진덕규교수등 국내 학자와 미국의 스칼라피노(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이정식씨(펜실베이니아대 교수)등 국내외 학자 대부분이 한반도 남쪽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이 불가피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 학자의 입장은 ▲광복이후의 정국이 남쪽과 북쪽간에 크게 달랐고 ▲남쪽에서는 새로 탄생할 국가의 주도권을 놓고 좌·우의 정파가 극한대립하고 있었던 반면 ▲이북에서는 소련주둔군의 지원아래 공산세력이 「실질적인」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특히 북한지역에서의 공산통치는 현실적으로 통일정부 수립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남한지역은 미군이 군정을 실시하면서 나름대로의 일정표에 따라 민의를 수렴한 정치단체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실정이었다.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으로 남북을 통괄할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참가신청한 정당·단체가 4백25개에 이른 예에서 보듯 당시의 남한 정국은 지리멸렬한 상태였다.이에는 46년 9월의 「9월총파업」,10월의 「대구폭동」등 광복이후 잇따라 발생한 좌익의 준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반해 이북에서는 45년 8월16일 「함경남도 인민위원회」결성을 시작으로 연내에 황해도·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등 5개 도의 인민위원회 조직을 완료했다.또 46년 2월에는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는등 급속히 통치조직을 확립해 나갔다.이 과정에서 소련식 소비에트정권 수립에 반대하는 기독교·지주·지식계층등의 반대파를 일사불란하게 숙청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이란 저서로 유명한 미국학자 브루스 커밍스마저도 자신의 책에서 『북한에서는 45년 말에 이미 실질적인 정권이 들어섰다』고 인정하는 정도이다.그는 「단정 수립은 한반도 남부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학파의 대표격 학자이다. 따라서 당시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의 논의에 따른 통일정부 수립은 불가능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유엔에 넘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유엔총회는 「남북한 전지역에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구성」할 것을 결의했지만 당초 한반도문제의 유엔상정 자체를 거부했던 소련은 유엔감시단의 입북을 거절함으로써 결국 남한의 단독선거를 가져왔다. 대한민국은 48년 5월10일의 총선거,7월17일의 헌법 공포를 거쳐 8월15일 출범했다. 이에 북한은 기다렸다는듯 8월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치르고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성립시켰다. 이로써 45년 미·소 양군의 진주로 시작된 영토분단은 48년 체제분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 앞서 ▲47년 2월의 「조선인민군 창설」 ▲48년 4월의 「헌법 채택」등 발빠르게 정부수립을 위한 준비를 다져왔다.막상 정부수립 일자만 한달여 늦었을 뿐 단독정부를 준비하고 이룩한 과정은 남쪽보다 북쪽이 훨씬 빨랐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단정의 분단책임론」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대목이다.
  • 김정일·김영주 “권력 암투”/북경 서방소식통

    ◎김영주측,주석직 할애 요구 【북경 연합】 북한은 현재 당총비서와 주석선출을 둘러싸고 김정일과 김일성의 실제인 김영주부주석겸 당정치국위원간에 심각한 권력투쟁을 빚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난 20일 김일성추도대회가 열린 직후 소집될 예정이던 노동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개최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북한 최고지도부내의 이같은 권력암투는 핵심지도부는 물론 중간엘리트층과 하부구조에서도 김정일지지와 김영주지지로 양분되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사정에 밝은 이곳의 한 서방소식통은 『당초 김일성의 장례식이 끝난뒤 당사업총괄담당비서,인민군최고사령관,당중앙군사위원,국방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정일의 당·정·군 3권 장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주석직 할애를 요구하는 김영주 지지세력의 부상으로 권력승계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에 주재하는 북한정부인사들의 말을 인용,이같이 말하고 『중국에서 활동중인 북한외교관 등 관변인사들도 겉으로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북한권부의 복잡한 속사정 때문에 초조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특히 권력투쟁 양상과 관련,『김정일이 핵심지도부내에서는 김일성의 사망으로 당서열 2위로 올라선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 강성산정무원총리의 지지를 받는 등 유리한 위치에 있으나 일부 원로세대와 당·정·군내의 중간엘리트계층,많은 인민들사이에서는 김정일당총비서­김영주주석으로 하는 권력분담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어 『김정일과 김영주간의 힘겨루기 양상은 내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쌍방간 갈등과 대립이 더욱 심화될 경우,다음달초로 예정된 미·북한간 고위급회담 성과와 남북한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북한내부에서 중대한 정변이 돌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정일승계」 발표 왜 늦어지나/북 「전승기념일」 행사와 권력향배

    ◎“권력서열 조정작업 진행” 추측/화려한 「대관식」 앞둔 준비설도 27일 열린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 행사에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발표가 나오지 않아 김일성 사후 북한권력의 향배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이 해마다 휴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치르는 연례행사이긴 하나 이번에는 김정일체제 출범을 알리는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관측이 빗나간 것이다. 물론 이번 행사가 조용히 끝난 게 반드시 김정일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김일성부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요란하게 치렀던 지난해와 달리 소규모 실내행사로 진행되었지만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당정치국위원이자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가 보고를 통해 『전체인민과 인민군 장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우리 혁명의 수호자로 높이 모시고 당의 사상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자』고 충성을 유도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김정일체제의 조기구축 가능성에 의문점을 던지는 몇가지 특이사항이 노정됐다는 분석도 있다.그가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그에 대한 호칭도 여전히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에 그친 것이 그 하나이다.또 군의 최고실력자중 한사람인 최광 인민군총참모장이 군행사에 참석지 않은 사실도 퍽 이례적인 대목이다.더욱이 지난 대회에서 보고서를 낭독했던 권력서열 3위 강성산 총리가 그의 사위의 한국 귀순사실이 밝혀진 이날 불참한 것도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이같은 특이점들은 이날 행사에서 오진우·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한명씩 호명되지 않고 「정치국 후보위원들」이라는 식으로 일괄소개한 것과 함께 권력핵심부간 내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즉 김정일의 권력승계 그 자체에 결정적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권력서열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미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사회저변의 충성서약을 좀더 이끌어낸뒤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즉 핵문제 등을 일괄타결한 뒤 이같은 업적을 이용해 오는 10월 전당대회에서 축제분위기 속에 추대식을 치르려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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