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잔영은 여전히 잔인하다/몽상적 독재자 김일성의 저승길을 보며
◎광신적 오열행렬에 피란짐보다 더 무거운 슬픔이…/“미망이 저런건가”… 통일로 가는길 먹구름 보는듯
불과 열흘전 한반도에서는 82세로 그 인생을 마감한 헛된 몽상가의 죽음이 있었다.필자는 그 죽음의 소식을 남쪽으로가는 여행길의 휴게소에서 들었다.그리고 두가지의 충격을 받았다.그 첫째는 물론 김일성의 물리적인 죽음이었고,다른 한가지는 백여명을 헤아리는 그 휴게소 여행객들이 보여준 의연한 침묵이었다.그러나 그 무표정에 묻어 흐르고 있는 일말의 아쉬움 또한 필자는 읽을 수 있었다.죽기 전에 남북정상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회담을 갖자 하던 그의 결심이 진정한 조국애에서 비롯되었기를 바란 것이었기에 그 죽음의 아쉬움은 우리 가슴에 진한 구두점을 찍어준다.분단 50년의 포한을 풀려 한 것이 진정이었다면,하필이면 이 찰나에 불귀의 객이 되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고 미련이다.
그러나 그 몽상가는 그 유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치문맹이었다.그는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스탈린의 추종자였다.스탈린이 그러했듯인민을 그의 수하에 두었고 인민을 그의 이념구현의 도구로 삼았다.그는 2천5백만 인민을 울타리속에 가둬두고 필요에 따라 동원하고 배급으로 울게 만들었다.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 좁은 땅위에 살던 군인과 민간인 2백58만명이 초개와 같이 죽거나 실종되었고,무려 5백50만여명이 미망인·불구자·고아등으로 비참한 전쟁후유증을 겪었다.그 전쟁은 게르만민족의 대이동보다 더 많은 민족의 이동을 불러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란한 남북이산가족이 1천만명에 이르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전쟁의 깊고 깊은 상흔은 가시지 않고 민족적인 비극으로 남아 있다.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말끝마다 나가라고 외치고 있는 미군은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이 나라에 들어왔고,소련군대와 중공군까지 불러들여 동족을 살상하고 국토를 초토화시키는 일에 이용했다.설혹 물리적인 피해는 당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말미암아 우리 겨레의 가슴에는 피맺힌 슬픔이 자리잡고 말았다.그 폐단의 상흔 역시 우리의 진솔한 삶의 그롯속에 아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필자는 11살,산골국민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먼 산자락을 뒤흔들던 포성소리가 가까워지자 어머니는 새우잠을 자고 있던 우리 어린 두 형제를 깨웠다.문 바깥은 한치 앞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의 칠흑같은 어둠,동생을 들쳐업은 어머니는 포성을 등뒤로 하고 허둥지둥 발걸음을 떼어놓았다.11살의 나이로는 엄두조차 못낼 무거운 피란봇짐을 등에 진 필자 역시 경황없이 어머니의 뒤를 무작정 따라야했다.동이 트기 시작하는 어느 산기슭에선가 우리는 벌써 쇠파리가 들믿는 국군의 시체를 보았고,그 곁에 인민군에 포위된 채 매복하고 있는 국군을 보았다.남하의 피란길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산협의 낯선 농가의 추녀 아래서,그리고 빗물이 새어드는 움집에서 병고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남아 그 모욕적인 전쟁이 먼발치로 떠나가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간 작년 여름,필자는 중국의 집안에 있는 선착장에서 작은 배를 타고 그 맞은편에 있는 만포의 강안을 스쳐간 적이 있었다.우리가 탄 배가 북한의 만포연안을 서행으로 거슬러 올라갈제 40여년전 필자 나이 또래였던 헐벗은 아이들이 몰려와서 담배를 달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필자 곁에 있던 일행중 한사람이 담뱃갑을 던질듯 포즈를 취하다가 그만두자 그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은 배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돌팔매질을 사양 않던 그 철부지들의 단도직입적인 호전성을 목격하면서 자리잡은 충격적인 슬픔은 11살의 나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웠던 40여년전의 피란짐보다 훨씬 무거웠다.집권 49년을 그는 북한 인민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하였고,그 인민은 동원의 미망속에 살고 있다.그 인민은 미망속에 살면서 언제 어디서든 수령의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려왔다.그들은 스스로 창조하려는 몸부림보다 식량배급표를 쥐고 있는 수령의 명령과 교시만을 따르려 하였다.그런 바탕위에서만 우리는 북한의 그 엄청난 오열의 행렬을 이해한다.울먹이는 목소리로 독재자의 죽음을 알리고 있는 북한 아나운서의 슬픈 가슴을 이해한다.냉정한 검증을 거쳐가는 역사에 참여되고 있는 민족이 아닌한 독재자의 신격화에 동원되었던 인민의 미망을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면서,우리는 또 다른 무게로 등을 덮치는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과 마주서야 한다.우리는 통일의 열쇠가 이제 우리와 유명을 달리한 독재자 김일성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미망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우리가,그리고 우리겨레가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는 그 통일의 열쇠는 공교롭게도 바로 백성으로 이름되는 우리 모두의 이해와 용서와 화합에 달려 있다.그렇기에 그에 대한 냉정한 검증없이는 국민의 이해와 용서는 구걸조차 어려울 것이다.
고달픈 인생살이에는 필경 눈물이 많은 법이고 가슴을 에는 듯이 통렬한 예배의 대상을 둠으로써 심정적 위안을 획득한다.우리가 북쪽에 있는 동포에게 보내고 있는 슬픔이 바로 그런 모습들에 있다면 그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궁핍에서 벗어나고 자기개발과 창조의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터득시켜 그들이 겪고 있는 미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주선하는 아량과 노력이 통일을 위한 정치적 담판과 병행되어야 할 줄 안다.
2년전 겨울 필자는 중국의변경에 있는 어느 해관(세관) 식당에서 중국의 친지방문을 위해 방금 북한땅에서 건너온 어떤 모녀의 점심식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그 두사람의 식탁은 너무나 빈약해서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애옥살이를 견디고 있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죽은 자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닐 것이고,전쟁도 아니고 핵을 개발하는 데도 있지 않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들도 알고 있는 일이다.그것은 바로 남북한간의 화합과 용서,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통일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제 한시대는 물러났다.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한반도의 북쪽에서 가장 야만적인 모습으로 군림하던 독재자는 사라졌다.그러나 그 잔영은 너무나 진하게 우리앞에 남아 있음을 또다시 목격하게 된다.그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아닌 비방과 이간질의 현실이 북한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 신문에서도 우리는 읽고 있다.아연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통일로 가는 길위에 놓인 고통과 갈등을 예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