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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일가족 집단탈출/회령∼홍콩 탈북대장정 28일

    ◎재미장인이 북 왕래하며 탈북 주선/“남한출신” 박대… 10·26 새벽 두만강 건너/친척뻘 사회안전원 대동 국경검문 피해/농가일 거들며 숙식해결… 중국대륙 종단 뉴욕 플러싱에 살고 있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재미교포 최영도씨(79).6·25전쟁 뒤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사업을 이루었지만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왔다.전쟁중에 남하하면서 북한에 남겨두고 온 딸 현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94년 최씨는 교포사회에서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미국인신분이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고 송금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잘만하면 이산가족을 북한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최씨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딸이 고향인 회령시 남문리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백방의 노력끝에 지난해 처음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편에 몸을 실었다.최씨는 할머니가 된 딸 현실로부터 사위 김경호를 처음으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서울 출신인 사위 김경호는 6·25때 인민군에 강제로 징집됐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눌러앉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김씨는 부인 최씨와 결혼한 뒤 한동안 평양에 살았으나 결국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57년 처가의 연고지인 함북 회령시 농업지구로 쫓겨났다.김씨는 농사를 짓다가 최근에는 공업지구의 공장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최영도씨는 지난해부터 몇차례 딸집을 방문,쌀도 사주고 돈도 줘봤지만 어차피 북한에서 살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을 깨달았다.현실씨는 특히 94년7월 김일성 사망당시 아파 병석에 있다가 문병온 이웃주민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가 「어버이수령 상중에 미소를 지었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해 심한 고초를 당한 적도 있다.남편 김씨는 당시 돼지 한마리를 뇌물로 바치고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사회에 대한 회의는 깊어만 갔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최영도씨는 지난해 딸과 사위를 방문한 자리에서 탈북계획을 은밀하게 꺼냈다.회령부근에는 김경호·최현실부부와 금철등 5남매의 가족 등 모두 16명의 일가가 살고 있었다.김씨부부는 기왕에 북한을 떠나려면 일가를 모두 데려가기로 했다.어차피 일부만 탈출하면 남아 있는 피붙이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영도씨 등은 치밀한 연구끝에 홍콩을 통해 남한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에 따라 ▲회령에서 두만강도강 ▲중국종단 ▲중국에서 홍콩으로 가는 3단계 탈출계획을 세웠다.우선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는 것이 문제였다.16명이나 되는 일가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남의 눈에 쉽게 띄는 데다 일행 가운데는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포함돼 있었다.고심 끝에 주민의 동태를 감시하는 사회안전부 안전원을 일행에 합류시키기로 했다.김경호씨는 처가의 먼 친척뻘인 안전원 최영호를 지목했다.돈과 자유를 약속하는 대가로 설득에 성공했다. 탈출감행일인 10월26일 새벽 2시.17명의 일행은 회령을 떠나 두만강을 향했다.대규모 일행이었지만 사회안전부 요원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일행은 두만강에서 「10군단」으로 통칭되는 국경경비대에게 포착됐다.10군단은 탈북자를 막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였다.그러나 안전원 최영호가 『식량을 구하러 간다』면서 100달러를 건네주자 경비병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통과시켜 주었다. 이날 새벽 4시.일행은 두만강을 건넜다.두만강은 그동안 강바닥이 높아져 물이 어른의 허리까지밖에 차지 않았다.10월 하순의 새벽이었지만 흥분과 긴장·기대감 때문에 물이 차갑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두만강을 건너자 최영도가 고용해둔 조선족이 기다리고 있었다.중국땅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북한당국은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이른바 「조교(북한출신 중국교포)」나 국가보위부·사회안전부 요원을 각지에 파견하고 있었다. 일행은 조선족 안내인을 따라 용정과 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홍콩으로 향했다.일행은 중간중간 농번기의 중국농가에서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28일간의 장정끝에 11월23일 드디어 홍콩의 문턱에 도착했다.그러나 홍콩으로 진입하는 관문의 경계가 심했다.최근 중국인의 불법진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았다. 홍콩에 들어선 뒤 곧바로 행정부인 정청을찾았다.그리고 신계지역에 위치한 상수특별감호소에 수용돼 조사를 받았다.김경호씨의 일가는 남한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씨일가는 며칠 있으면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남한으로 망명한 최대규모의 일가가 되게 된다.
  • 김 대통령 APEC 순방여로­하노이 이틀째

    ◎“베트남 중화학공업 육성 적극 도울것”/교민초청 “경제발전 최일선 자부심” 당부/국회의장 “개발경험·기술 등 전수 기대” 김영삼 대통령은 베트남 국빈방문 이틀째인 21일 한·베트남 민간경협위에서 연설한데 이어 오리온 하넬공장 시찰과 교민리셉션 참석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민간경협위 연설◁ ○…김대통령은 21일 낮 숙소인 하노이 대우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베트남 민간경협위원회에 참석,「미래를 향한 우정과 협력」이라는 주제로 연설. 김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도이모이(개혁)정책 시행초기에 다른 외국기업이 베트남진출을 주저할 때 한국기업은 누구보다 먼저 이곳을 찾아왔다』며 『앞으로도 우리 기업은 베트남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회간접자본건설과 중화학공업육성에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약속. 오찬연설에는 베트남측에서 판 반 카이 제1부총리와 츠 산업장관을 비롯,동 녹봉 한·베트남 민간경협위원장 등 경제인 100여명이 참석했고 우리측에서는 김상하 대한상의회장·최종현 전경련회장 등 수행기업인 55명 전원과 공식수행원이 참석. ▷오리온 하넬공장 방문◁ ○…김대통령은 이어 TV브라운관을 생산하고 있는 오리온 하넬사를 방문,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영접을 받으며 회사현황등을 청취한 뒤 생산시설을 둘러보며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베트남 근로자를 격려. 김대통령은 『베트남 근로자와 한국의 기업인이 한마음으로 일체가 되어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 선진국시장에 수출하는 것은 한·베트남간의 협력관계를 한차원 끌어올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노고를 위로.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날 하오 숙소인 하노이 대우호텔 1층 그랜드볼룸으로 한인교포를 초청,리셉션을 가졌다. 리셉션에는 유종하 외무·박재윤 통산장관과 이석채 청와대경제수석·반기문 외교안보수석 등 공식수행원 전원과 허방빈 주호치민총영사내외·김경원 한인회장내외를 비롯한 교포 200여명이 참석. 참석교포는 『한글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학부모의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해 어려움이 있다』며 유자격교사 1∼2명을 파견해줄 것을 건의했고 김대통령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요원의 파견을 검토중』이라고 답변. 김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교포 여러분은 우리 경제발전의 최일선에 있다는 자부심을 지켜주기 바란다』며 『여러분이 이 나라 국민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게 자신은 물론 조국을 위하는 일임을 유념해달라』고 당부. ▷국회의장·총리면담◁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상오 주석궁 대접견실에서 농 둑 만 베트남국회의장과 만나 30분간 환담을 나누며 양국간의 우의와 협력증진을 다짐.김대통령은 『어제 도 무오이 서기장과의 정상회담내용은 대단히 훌륭했으며 앞으로 실무차원에서 양국 협력관계를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다짐하고 『특히 아태경제협력체(APEC) 등 주요국제기구에 대한 베트남의 참여를 적극 지지하겠다』고 약속. 농 둑 만 의장은 『한국과 베트남은 무역과 투자뿐 아니라 문화·과학기술·교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협력할 여지가 많다』면서 『베트남은 한국으로부터 투자유치뿐 아니라 개발경험과 과학기술 등 많은 것을 배우려 한다』고 기대감을 표시. 이어 김대통령은 같은 장소에서 보 반 키엣 총리를 접견하고 환담. 김대통령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도 만났고 서울에 왔을 때도 만났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오랜 친구를 본 것 같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키엣 총리도 『김대통령께서 베트남을 방문하신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응답. ▷조깅◁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6시 하노이 국립경기장에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약 4㎞를 조깅. 김대통령은 김광석 경호실장 등과 함께 국립경기장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경기장 관리소장(여성)으로부터 경기장방문 기념화환을 받고 반갑게 악수.이날 조깅에는 고창순 주치의를 비롯,정윤철 의무실장·김기수 수행실장·박영환 공보비서관 등이 함께 뛰었다. ▷현지 언론보도◁ ○…김대통령의 방문을 「역사적 방문」으로 환영하고 많은 지면을 할애,연일 자세히 보도. 베트남 공산당기관지인 「난 단」(인민일보)과 군기관지 「인민군보」,하노이시 기관지 「하노이 모이」 등 관영언론은 물론 영자 일간지인 「베트남 뉴스」와 현지어유력지인 「라오 동」(노동) 등도 21일 1면 머리기사로 김대통령 방문소식을 다루었다. 또 베트남 국영TV도 20일 저녁 7시뉴스와 10시뉴스시간에 톱뉴스로 김대통령의 방문 첫날의 주요행사 및 동정을 취급.
  • 6·25세대의 전쟁 파편(송정숙 칼럼)

    늦가을 어느날 편지 한통을 받았다.ㅂ씨에게서 온것이다.「편지」받는 일도 좀처럼 귀한 시절이므로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보다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사연과 만났다. 『…공로명 전 외무장관의 급작스런 사의가 정말로 무엇인지는 몰라도 옛날의 「어떤 전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심경의 일단을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생겨 이 글을 드립니다.…』 편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했다. 『전쟁을 치른 세대에게는 그런 「전력」(인민군과 관계된 전력=편집자)이 흡사 전쟁중 몸안에 박힌채 적출해내지 못한 총탄의 파편처럼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그냥 지니고 살기는 하지만 가끔씩 통증으로 옛시련을 상기시키는 상처….나도 공 전 장관처럼 「의용군 전력」을 총탄의 파편처럼 지니고 사는 사람입니다.…나는 중학교 5학년때 6.25를 만났습니다.정부가 언제 철수했는지도 모르는채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까 서울시내에 붉은 깃발을 단 탱크가 진입해 있었고 「적치하」가 되어 있었습니다.직위가 높지는 않았지만 공직생활에 종사하시던 아버지께서는 곧바로 마루밑에 피신하셨고 그런 아버지 소재를 추궁하는 발길이 시작되었습니다.…그런 무렵 집근처였던 학교에서 전갈이 왔습니다.다음날 학교에 오지 않으면 「좋지않을 것」이라는 협박이 곁들인 소집이었습니다.그러잖아도 마루밑의 아버지때문에 식구 모두가 겁먹고 있는 판이라 장남인 나로서는 그 소집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감시의 눈길을 더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 소집에서 우리는 「의용군」지원을 강제당했고 그길로 집에는 들르지도 못하고 끌려갔습니다』 그로부터 최근 공비가 숨어들었던 비슷한 산속에서 인민군을 탈출하고 다음해 가족을 만나기까지 10대의 ㅂ씨가 겪은 고초는 60을 지난 황혼녘의 지금도 꿈속에서 가위가 눌리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총탄파편은 수술로 제거라도 할수 있지만 수술도 할수 없는 이 고통의 파편은 일생을 두고 ㅂ씨를 따라다녔다.외국여행이나 직업을 가질때 또는 승진의 기회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불거져 나오곤 했다.대학졸업후 청운의 꿈을 품고유학을 가고싶었을 때도 지레 겁먹고 포기했으며 어릴때 지녔던 관심도 모두 버리고 방향을 바꿔 남의 눈에 잘 띄지않는 직업을 선택해서 살아 왔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시기부턴가 실제로는 그것이 문제가 되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때는 이미 ㅂ씨자신의 인생이 활동기를 멈추어 그런 불이익의 영향을 입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어 있었다.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했던 국가의 무책임 때문에 어린날을 이렇게 상처속에 보내고 꿈꾸던 미래에서 벗어나 바뀐 인생을 보내게 된 일을,그렇다고 그가 지금까지 한으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온몸의 여기저기를 제멋대로 돌며 뜸금없이 쿡쿡 찔러대는 상처의 파편처럼 아직도 그에게는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ㅂ씨의 편지는 ㅂ씨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공 전 외무장관의 사임과 유관했던 것으로 떠돌던 「어떤 전력」의 풍문은 이런 사람들의 해묵은 고통을 다시 한번 고통스럽게 버혔을 것같다.본인의 잘못과는 관계없이 어린 소년에게 새겨진 상처가,그 이후 삶에서 온갖방법으로 충성과 성실의 봉사와 의무를 다하여 소명했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흠이 되는 것이라면 그의 사연처럼 『새삼스럽게 허탈하고 절망스런 일』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그러므로 이런 전력을 「폭로용」으로 준비하려는 정치권이 있었고 그것을 선수치기 위한 결정으로 장관의 진로에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라면 ㅂ씨같은 사람들을 새삼스럽게 다치게 했을 것이다. ㅂ씨의 편지에는 그런 일의 노여움과 실망이 낙엽지는 날의 설움처럼 담겨 있었다.『전쟁에 휘말렸던 시기에 청소년이 겪은 불가항력적인 상처를 정쟁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야속하고 그리고 여전히 그런 일에는 약한 대응을 하는 층에 무력증을 느낀다』는 ㅂ씨의 말에 동감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면 ㅂ씨처럼 생애 동안 고통의 파편을 운명처럼 끼고 살아온 이웃이 우리에게는 적지않을 것이다.늦가을에 찾아온 편지 한통으로 그것을 겨우 깨닫게 된 무신경이 민망했다.〈본사고문〉
  • 이성호 파문­복지장관 경질 청와대 기류

    ◎비리 연루땐 즉각교체… 척결의지 단호/“잘라내도 다시돋는 부패싹” 혐오·통탄/“곳곳 암초” 공직자 주변 돌아보는 계기 이성호 전 보건복지장관이 경질된 13일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인간이 두렵다』면서 『하느님께서 예수를 보내 인간의 원죄를 구원하려 한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잘라내도,잘라내도 다시 돋는 「부패의 싹」이 혐오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상황이 어려워도 낙심 않는게 장점이다.이 전 장관의 가족이 비리에 연루된 게 밝혀지자 바로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을 임명했다.비리의 뿌리가 깊은데 비례,그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도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비리에 연관되거나 공직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일을 끌지 않고 교체하고 있다.따로 거창한 개각이 없고 「문제 있으면 교체한다」는 원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금년 들어 부분보각횟수는 6회로 10자리,11명의 장관이 교체됐다.지난 8월초 한승수 경제부총리 기용때 6명의 각료가 임명된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1명씩의 장관이 바뀌었다.최근에는 지난 10월 이양호 전 국방장관이 뇌물수수로,이달초에는 공로명 전 외무장관이 인민군 복무경력시비로 각각 자리를 물러났다. 이와 관련,김광일 청와대비서실장은 『몇명의 각료개편은 당정개편이 아니며,정부나 당의 총책임자를 교체하는게 당정개편』이라고 개념정의를 하기도 했다.내각의 절반에 가까운 장관이 올들어 교체됨으로써 가까운 시일안에 전면적인 당정개편은 없으리라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정치권 출신중 비교적 처신이 깨끗한 편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나 부인쪽에서 문제가 터지자 『문민시대 공직자는 곳곳의 암초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공직자 모두가 주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노동당조직부 제1부부장 장성택

    ◎김정일의 매제… 50대 선두두자로 부상/30혁명 소조운동 주도… 신임 절대적 최근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50)은 김정일의 매제로 향후 김정일체제를 떠받쳐줄 측근 핵심들 가운데서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인물.귀순자들은 장이 김정일의 하나밖에 없는 친여동생 김경희(49)의 남편으로 혈연관계에 기초해 김정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실제로 장은 북한내 50대 테크노크라트중 선두주자이자 김정일의 수족을 키워내는 3대혁명소조운동의 실질적인 리더로 『믿고 의지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김정일의 총애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3대혁명소조 부장에서 자리를 옮긴 것으로만 알려졌던 그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달 30일 조선중앙방송보도에 의해서였다.도쿄의 라디오 프레스가 청취한 중앙방송은 김정일이 지난달 28일 인민군 제512부대가 건설한 월비산발전소(강원도 고성군)를 시찰했다고 전하면서 김정일을 수행한 장성택을 당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소개했다. 조직사업에 뛰어난 장이 조직지도부에 입성함으로써 조직지도부는 향후 명실공히 「당내 당」으로 그 영향혁이 더욱 막강해질 것으로 관측되는데 조직지도부는 당과 행정기관의 간부들을 직접 통제하는 알짜 부서다. 46년 함북 어랑 출신.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와 김일성고급당학교를 졸업했다.
  • 김정일/9월이후 발걸음 빨라졌다

    ◎군부대·발전소 건설현장 등 잇따라 방문/내년 권력승계 앞두고 「민심 달래기」 목적 북한 최고실권자인 김정일의 나들이가 요즈음 부쩍 많아졌다.잠수함 무장공비침투가 발각된 지난 9월중순이후 최근까지 무려 10차례에 이른다.참석하는 행사도 발전소건설현장 시찰,군부대 방문,예술단공연관람 등 다양하다. 최근들어 많아진 김정일의 공식활동을 분류해보면 군부대 방문 및 발전소건설현장시찰에 역점이 두어지고 있다.김정일은 올들어 26차례나 군관련행사에 참석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차례는 군부대를 방문했다.최근에 있었던 10차례의 나들이에서도 3차에 걸쳐 군부대를 찾았다.이와같은 군부대의 잦은 방문은 권력기반을 다지지 위한 이른바 군심달래기에 1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최근 김정일의 군부대방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군하부조직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장병들과 마주앉아 사업과 군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야전식사」도 같이함으로써 사병들의 사기진작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이를 두고 북한 언론매체들은 『최고사령관의 전사들인 인민군장병들의 전투적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높다』고 선전하고 있다.김이 이처럼 군의 하부조직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식량과 보급품 부족,호된 군사훈련 등으로 빚어지고 있는 하층부의 동요와 일탈을 막고 자신에 대한 절대충성심을 심기 위한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발전소건설현장을 찾는 발걸음도 많아지고 있다.지난 6월10일 금강산발전소,6월24일 영원발전소건설현장을 방문한 이래 9월15일엔 두번째로 금강산발전소건설현장을 찾았다.지난달 28일엔 월비산발전소건설현장을 방문,건설공사를 독려했다.그런가 하면 발전소건설에 참여한 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건설공사에 투입되고 있는 군인들의 사기진작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김정일은 또 자기가 먼저 발전소건설현장을 시찰한 뒤 당정 고위간부들을 집단으로 참관시키고 있다.김이 이처럼 발전소건설의 독려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북한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는 에너지난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일의 최근 나들이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매제인 장성택이 김정일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김정일의 동생이자 당 정책검열부장인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김정일의 핵심실세로 알려지고 있다.장이 김정일을 공식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최근 잦아진 김정일의 군부대·발전소건설현장 시찰과 장성택의 김정일 수행을 내년 7월전후로 예상되고 있는 권력의 공식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것으로 보고있다.이는 또 최근의 김정일에 대한 호칭변화와도 무관치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최근 북한매체들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현지지도를 계승했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일을 「두분의 수령」,「수령 그대로인 김정일」,「현시대의 위대한 수령」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 북 공습 대비할 방어체제 갖춰라/윌리엄 테일러(특별기고)

    ◎기아와 빈곤 심각… 군사도발 가능성 커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북한문제에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는 윌리엄 테일러 미 국제전략연구소(CSIS) 부소장은 「기로에 선 북한」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신문에 보낸 특별기고를 통해 한국은 서울 방어를 위해 패트리어트미사일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의 공습과 포공격에 대비할 고도의 방어체제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그의 특별기고문이다. 지난 9월12일 필자는 미 상원 외교위산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 출석,증언한 적이 있다.당시 필자의 증언은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우선 그 내용부터 소개하겠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할때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우리는 고립돼 있는 북한의 내부 움직임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해외원조 거의 못받아 필자는 네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고 모두 한달간 북한 전역을 여행했다.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때 그와 만나 7시간동안대화한 것을 포함,북한 고위지도자들과 수백시간동안 여러 문제들을 논의했다.어떤 외국방문객도 잘 조직된 북한의 선전범주를 벗어난 영역을 보거나 듣지는 못한다.그러나 필자는 이 범주를 벗어난 몇가지 관찰을 전하고자 한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사지를 절단당한 환자다.냉전이 끝난뒤 러시아와 중국에게 버림받음으로써 북한은 거의 외부지원을 받지 못했다.거대한 외국차관에 대한 채무불이행에 의해 북한은 이제 차관을 들여올 수도 없게 됐다. 따라서 심각한 연료난과 함께 원자재및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공산주의식의 통제경제는 90년이래 대략 연평균 4.5%의 마이너스성장을 보여왔다.산업은 약 3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고 농업생산성이 지극히 저조한데다 두번에 걸친 최근의 홍수피해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세계식량기구(WFO)는 북한의 기근상태가 절박함을 알리고 있다. 북한은 모든 권력이 조선노동당(KWP)의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고전적인 공산독재국가다.1백10만명을 헤아리는 막강한 북한 인민군(KPA)조직은 주민들의 빈궁함에 아랑곳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노동당간부들에게 있어서 권력유지의 주요한 기반이다.감옥과 세뇌교육캠프가 곳곳에 널려 있으며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전선에 군전진배치 북한인민군은 한국의 안보에 매우 현실적인 위협요소다.인민군 병력의 약 3분의2는 서울에서 30마일 거리이내의 비무장지대 근처로 전진배치돼 있다.이는 지대지미사일과 전투기,그리고 장거리대포와 박격포 공격이 가능한 거리다.이같은 위협은 북한군이 65만명의 국군과 3만7천명의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 연합군 및 그들의 첨단무기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다만 현 상황에서 볼때 고도의 파괴무기와 화학무기,그리고 아마도 세균무기 등으로 단기전 초기 3∼4일만에 서울을 파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현재 서울의 미사일방위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습과 대포공격에 대응,서울을 방위할 능력도 의문시된다. 서울을 파괴하고 노동1호미사일로 일본의 대부분 지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과 북한에 1∼3개의 핵무기가 있다는 미국중앙정보국(CIA)의 평가는 북한이 미국·한국·일본과 거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수단이다.북한은 벼량끝까지 사태를 몰고갔다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이를 철회하는 극한정책을 취해왔다.이같은 평양당국의 접근방식은 94년 핵합의를 포함,반복적으로 시행됐다.그같은 방식을 이용,북한은 5메가와트짜리 원자로와 핵연료재처리공장을 잠정적으로 폐쇄하는 대신 매년 50만t의 원유를 얻는 한편 50억달러가 투입되는 2개의 경수로건설을 지원받게 됐다.핵합의의 핵심에는 북한이 한국과 대화를 재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그러나 미국과 한국·일본 등이 지난 2년동안 원유와 수백만달러의 식량원조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한국영해로 잠수함을 침투시킴으로써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일상적인 훈련이었건 아니었건간에 26명의 침입자들은 한국해안에 상륙했다.침투의 이유는 무엇일까.평양당국은 자본주의국가인 한국이 자멸할 것이라는 주체사상을 믿고 있다.그에 따라 한국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요원들을 침투시키고 남한의 내부분열 또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파괴되어질 목표물들을 정탐할 목적으로 10만명의 특수훈련부대를 이용하고 있다. ○특수부대원 10만 육성 우선 서울을 방어하라.이를 위해 패트리어트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공습과 포공격에 대비,보다 고도화된 방어체제도 구축해야 한다.이를 위해 미국과 한국은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평양당국에는 한국과의 대화재개일정과 관련,명백한 날짜를 제시하라.그리고 남북대화의 진척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대북 원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그러는 동안 조화를 이루면서 북한 독재정권이 무너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 통일외무위/“공 외무 사퇴 진짜 이유 뭐냐”(초점 상위)

    ◎여­백내장 수술후 휴식 못취해 건강악화/야­OECD대사 산정 싸고 부처간 알력 6일 열린 국회외무통일위에서는 예산심의와는 별개로 공로명 외무부장관의 전격적인 사퇴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야당의원들은 공 전 장관의 사퇴배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여당측은 애써 언급을 자제,구구한 억측을 조기 불식하려는 모습이었다. 국민회의 이협 의원은 『공장관의 사퇴를 놓고 전력시비설과 정부부처간 알력설등 갖은 억측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공장관의 진정한 사퇴이유를 밝히라』고 이기주 외무부차관에게 주문했다. 자민련 이동복 의원은 공장관의 사퇴배경으로 6·25때 인민군에 징집됐다가 탈출한 전력이 새삼 언론에 거론되는 대목에 의혹을 나타냈다.이의원은 『공장관의 경질은 시기나 정황에 있어서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정부부처간의 알력을 불식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전력을 부각시켜 사퇴시킨 것이라면 이는 인사투명성이나 정치 건전화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기주 외무부차관은 『공장관이 평소 고혈압인 데다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아 건강이 악화된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전날 발표된 정부의 공식설명을 되풀이 했다.이에 신한국당 이만섭 의원은 『내각제도 아닌 마당에 국회가 공장관 사퇴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조기진화를 시도,문제의 확산을 경계하는 여권의 기류를 대변했다. 한편 예결특위에서도 외무장관의 경질이 도마에 올라 국민회의 김영진 의원이 『항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 선정을 둘러싸고 외무부와 재경원 등 관계부처가 갈등을 빚은 끝에 공장관이 사퇴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진상을 묻기도 했다.
  • 공 전 외무,군전력 시비로 고민/외교팀 전격교체 뒷얘기

    ◎“대통령에 누될라” 서둘러 퇴임/김 대통령 “공 전 외무 업적 높이 평가” 김영삼 대통령이 6일 외무장관에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외교안보수석에 반기문 의전수석을 기용한 것은 『될 사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대통령은 유외무­반수석이라는 새로운 외교 투톱시스템을 기용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있다.김동진 국방장관이 최근 임명된 것과 연관돼 외교안보팀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게기가 될 수 있다. 지난 9월에 한승수 경제부총리팀이 출범했고,외교안보팀이 다시 정비됨으로써 연말로 예상되던 대폭적 개각 요인이 상당히 줄어든 느낌도 있다.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초대대사에 현직 경제각료가 내정되어 있는 등 부분개각 요인은 있다. 유신임장관은 「외무장관 발탁 0순위」로 거론돼왔다.때문에 관가에서는 유장관 기용보다 공로명 전임장관이 갑자기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더 관심이 쏠리는 듯 하다. 청와대는 공전장관이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관가에서는그와 관련해 갖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공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외무장관 재임중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김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것을 감안하면 공 전 장관이 비리에 연루되지는 않았다고 판단된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 전 장관이 6·25때 고등학생 신분으로 인민군에 강제징집,잠시 복무했던 전력이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공 전 장관은 그후 국군에서 통역장교로 5년을 근무했고 40여년간 외교관으로서 국가에 충성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공 전 장관은 그러나 최근 모 주간지가 자신의 전력을 다시 기사화하려고 하자 김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으며 특히 야당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크게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김대통령은 공 전 장관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사표를 수리하고 일찍 후임을 임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 김정일과 북한의 운명/재미 북한전문가 서대숙 박사 지적

    ◎정치개편·지도사상·경제문제·외교혁신·군사개편/5대과제 해결에 달렸다/「우리식 사회주의」로는 더이상 생존 어려워/군 감축하고 경제문제는 정무원에 맡겨야 이른바 「수령의 나라」 북한에는 지금 수령이 없다.「어버이 수령」 김일성이 죽은 후 아들 김정일이 대를 이었지만 그는 그냥 지도자일 뿐 수령은 아니다.과거 김일성이 갖고 있던 당총비서·국가주석 자리는 2년5개월째 비어 있다.북한은 지금 명실상부한 수령­최고지도자가 없는 가운데 통치되고 있는 「이상한 나라」다. 북한의 수령과 지도자문제와 관련,미 하와이대학의 서대숙 교수는 최근 펴낸 일어판저서 「김일성과 김정일­혁명신화와 주체사상」에서 『수령이란 「인정하는 칭호」이지 「임명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전제,『북한에 있어서 수령은 김일성이지 김정일이 아니다.그 수령이 최고지도자를 의미한다면,김정일이 현재 어떻든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별문제될 것은 없다.그러나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김정일이 과거의 김일성처럼 수령이 된다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교수는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북한의 지도자가 되려면 북한에 먼저 법치체제가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북한에서 이른바 김정일시대가 열리려면 선거가 실시되고 헌법과 당규약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김정일의 입장은 생부인 김일성 치세때와는 다르다.그도 이미 50대중반에 들어섰고 장래 장기집권을 한다 해도 20여년남짓일 것이어서 그에게는 김일성에게 주어졌던 만큼의 시간도 없다.따라서 현재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는 김정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한두개가 아니다.그런 과제를 해결하여 자신이 「지도자」임을 정치와 정책으로 입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는다면 김정일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서교수의 논리다. 이 대목에서 서교수가 지적하는 김정일의 첫번째 과제는 정치개편이다.김정일은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다』라며 인민과 정부의 관계를 충성심과 인덕정치로 비유했다.김정일은 이상주의자가 아닌 실천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셰계에서 사회주의,그것도 「우리식 사회주의」에 귀기울일 사람은 없다.그리고 김정일을 둘러싼 지도세력도 구세대로부터 신세대로 바뀌고 있다.또한 군부통치에도 한계가 있다.따라서 앞으로 당·정·군 조직체계와의 관계를 여하히 개편,정립시키는가가 제일의 과제가 될 것이다. 김정일의 두번째 과제는 이른바 지도사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주체사상은 김일성 사후에도 아직은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는 사상이다.그러나 그 사상의 유용도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김일성이 주체를 내세운 것은 동서냉전과 한국전쟁,그리고 중·소분쟁 등에 기인했었다.오늘날 사회주의진영은 붕괴했고 소련도 사라졌다.이런 상황에서,더욱이 과거의 자주성이나 우리식 사회주의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21세기엔 맞지 않는다.김정일은 이런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김정일은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일방적으로 인민의 사랑이나 충성을 구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을 내세울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세워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김일성 사망전후의 북한경제에 관해서는 누구의 설명도 필요없다.세상이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지난 95년의 수해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김정일은 과거의 김일성식 경제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북한의 경제난은「재래식」 방식으로는 회복될 수 없다.군과 병사를 동원하고 200일전투니 속도전 같은 인해전술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경제침체가 해결되지는 않는다.우선 경제발전의 목표부터 바꿔야 한다.의식주해결은 물론 외국자본유치,첨단기술의 습득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제정책의 체계도 문제다.김일성시대에는 당의 주도로 경제가 이끌어져왔다.그러나 경제는 정부(정무원)가 주도해야 한다.경제문제를 경제문제로 해결하는데 있어 경제를 잘 모르는 당간부에게 경제를 맡겨서는 안된다.경제는 철저하게 정무원의 경제관료에게 맡겨 시행하고 책임도 지워야 한다. 북한주민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자본주의로부터 피해를 받아왔다는 선입관을 지닌 채 자주성을 강조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길러왔다.그러나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의식주해결과 자주성만을 강조하다 국제사회의 구제대상이 되어서는 집권은 물론 나라 자체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김정일의 네번째 과제는 외교의 혁신이다.김일성은 조선노동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북한외교의 3대정책을 자주·친선·평화로 내세웠다.이 3대정책의 명목에는 별문제가 없다.그러나 그것만으로 다양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그것만으로는,또 제3세계 외교만으로는 세계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발전하는 자본주의국가와 외교를 할 수가 없다. 연대는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있다.21세기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될 것이다.사정이 이러한데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자신의 우월성이나 자주성을 소리 높여 외친들 북한의 경제발전이 이뤄질 수는 없으며 국제관계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아무리 주장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김정일의 다섯번째 과제는 군사문제다.북한군은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보장했다.그리고 북한군은 김일성 사후로부터 김정일이 당과 정권기관의 직위를 차지할 때까지 북한의 질서와 국방,주민의 치안을 담당했다.북한의 군부에는 두개의 큰 사명이 있다.순수한 의미에서의 국방의 역할과 국내 정치체제유지가 그것이다.그러나 군의 국내적 역할 즉 정치체제유지역할은 김정일의 지도체제가 확립된 다음엔 점차 감소돼야 할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시대와는 다른 안보체제를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안보환경이 변했고 동서대결도 끝났다.북한이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할 때 지금 군의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인민군을 경제건설에 동원하지 않으려면 상당수의 군인을 제대시켜야 한다. 북한경제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군사비임은 주지된 바다.21세기 김정일시대에는 북한과 같은 작은 나라에 핵무기는 필요없다.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해서 한국과 미국·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어 경제원조를 하고 있다.북한은 핵의혹을 풀고 군사문제는 군사문제로서,경제문제는 경제문제로서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북한은 지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김정일과 새로운 세대 지도층이 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분명치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이상의 다섯가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왜.김정일과 북한의 명운이 5대과제의 해결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북 공비침투 전쟁준비 목적”/생포 이광수 진술

    ◎실전훈련 5차례 실시/오늘 귀중중사와 합동회견 잠수함을 타고 강릉 해안을 통해 침투했다가 지난달 18일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는 『정찰국 해상처장이 잠수함에 탄 것으로 보아 이번 침투의 목적은 전쟁준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8일 국가안전기획부가 이의 수사 과정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에 따르면 이는 『이번 침투의 목적은 남한의 군사기지를 정찰해서 임의의 순간에 타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또 『내가 속한 북한 조선인민군 인민무력부 정찰국 22전대는 이번 침투를 위해 다섯번에 걸쳐 실전훈련을 실시했고 정찰조는 정찰국 직속 지도원의 참여하에 7월초와 8월초에 두번 실전훈련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무력부 정찰국은 정찰대대와 육상정찰대대 5개가 있으며 동서 해상기지중 동해는 3기지 22전대로 구성돼 있다』면서 『남측 군사기지 정찰 및 파괴,후방교란,중요 요인 납치,살해 등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안기부는 29일 상오 10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광수와 지난 13일휴전선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곽경일 중사(25) 등 2명에 대한 합동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 북한인 부녀 귀순/중령급 약제사 출신

    지난 3월 북한을 탈출해 제3국에 체류하다 우리 공관에 귀순을 요청한 북한 노동당 소속 속도전 돌격대 군의장 출신인 허창걸씨(47)와 딸 금순양(17·여·평남 용남고등중학 6년)부녀가 28일 하오 5시10분 홍콩발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허씨는 지난 94년 10월부터 군의장을 그만두고 실직해 있는 동안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껴 탈북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북 구성시에서 태어난 허씨는 68년 3월 인민군에 입대해 77년 제12사단 상사로 제대한 뒤 83년 황북 사리원시 동약단과대학을 졸업하고 94년 10월까지 노동당 속도전 돌격대 군의장으로 근무해 왔다. 허씨의 직책인 군의장은 우리 군의 군의관에 해당하며 계급은 중좌(중령)로 알려졌다.〈주병철 기자〉
  • 서울신문사 발간 「북한인명사전」 분석결과

    ◎김정일,측근 19명 내세워 비상통치/당·정·군 요직 포진… 대미관계 개선 등 주도/강산성 총리·원로 부주석들 뒷전으로 밀려 김정일이 상중이란 이유로 권력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년간 당·정·군의 실세 19명에 의해 이끌어져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비록 눈에 드러나게 행보는 하지 않았어도 김정일은 막후에서 노동당비서국 및 군을 장악,쌀지원과 대미관계 개선,국방력 강화작업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사 국제전략연구소가 최근 간행한 1996∼97년 개정·증보판 「북한인명사전」이 파악한 북한요인들의 지난 1년 행적 정밀분석결과 밝혀진 것이다. 김정일이 94년에 이어 「김일성없는 북한」을 다시 이끌어온 지난 1년동안 군부를 제외하고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내 권력의 큰 부침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이로 보아 권력 핵심부에 대한 인사는 내년 권력공식승계 때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일은 지난 1년 당·정·군에 핵심측근 19명을 박아 놓고 북한이란 고장난 열차를 움직인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같은 사실은 「북한인명사전」에 나타난 김정일 심복들의 활동상황과 관계당국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우선 당에 포진한 김정일의 심복으로는 계응태(공안) 김용순(대남) 최태복(교육) 한성용(공업)이 꼽히며 정무원과 단체쪽에선 강석주(외교부제1부부장)와 장성택(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설) 최용해(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1비서)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한편 군에선 당중앙군사위원 이하일(차수)인민무력부 총참모장 김영춘(차수)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 조명록(차수) 김두남(대장) 인민무력부 보위국장 원응희(대장) 호위사령관 장성우(대장)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 현철해(대장)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김영룡(상장)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상장)등이 김정일 떠받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동당 비서국의 비서는 김정일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가운데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김정일 맨」은 최태복 김용순 계응태 한성용이다.최태복은 화학분야 전문가이자 당·정의 교육전문가.그가 김정일의 측근으로 부상한 것은 72년 당중앙위 학교교육부 재임 시절 학생들내에 김정일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데 공을 세운 이후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교육분야에서 김정일후계체제 확립의 공로를 인정받아 86년 12월 당중앙위원겸 비서로 발탁됐고 90년5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됐다. 대남당당비서인 김용순은 북한내 최고 성분을 갖춘 권력엘리트.70년대부터 외교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90년9월 일본 가네마루 신(김환신)을 평양으로 초청,외교능력을 발휘한 바 있다. 공안담당인 계응태는 김일성부자에 대한 강한 충성심과 성실성으로 김정일의 환심을 사 86년 이후 김정일의 실무지도및 현지지도를 근접수행하는 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성용은 북한 최고의 빨치산 가족출신.그가 김정일의 신임을 얻고 있는 것은 김정일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해가는 시기에 정무원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김정일과 가까워진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무원과 사회단체쪽의 「김정일 사람」으로는 여동생 김경희 남편인 장성택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1비서 최용해,그리고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가 꼽힌다.장성택은 일족으로,최용해는 옛 사로청원들을 김부자 우상화에 동원,충성을 과시함으로써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강석주는 94년 10월 미·북 제네바핵합의를 이끌어내 경수로2기를 2003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한 장본인으로 김정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인물. 김정일은 군사체계 강화와 관련,자신이 군사비상체제를 영도하고 있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점을 리더십 강화에 십분 활용하는 한편 군수뇌부를 승진 및 지위격상이라는 「당근」으로 휘어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95년10월 총참모장인 최광을 인민무력부장에 앉히고 김광진을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김영춘을 총참모장으로,조명록을 총정치국장으로 승진발령하는 등 자신들의 측근을 수뇌부에 전진배치한 것이 이에 속한다. 김정일은 또 군부 끌어안기에 매우 열심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북한인명사전」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월부터 사전편집마감시한인 7월30일까지 김정일의 군행사참석은 모두 17건으로 집계됐다.이와 관련,눈여겨볼 것은 김정일 수행원의 면면.꼭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수행빈도가 김정일의 신임도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사전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당군사부장 이하일(차수)은 14회,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상장) 13회,작전국장 김명국(대장) 12회,포병사령관 김하규(대장)12회,총정치국장 조명록(차수)은 11회,후방총국장 현철해(대장) 8회,차수 이을설 차수 김광진 총참모장 김영춘은 각각 3회씩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김정일의 수행멤버들이 그의 측근이요,실세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일의 수행멤버 대부분이 당중앙군사위원들이라는 점이다.한마디로 당의 최고사령부격인 당중앙군사위원회에 김정일의 사람들이 포진돼 있다는 얘기다.이 군사위 멤버외에 빠뜨릴 수 없는게 보위사령관 원응희,호위사령관 장성우,공군사령관 오금철 등이다.이들은 한결같이 김정일이 최고사령관(91년12월)과 국방위원장(93년4월)취임을 전후해 요직에 앉혀진 골수 김정일 맨들이다. 그밖에 4명의 부주석 가운데서는 이종옥 부주석이 가장 많은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는 그가 외교관의 신임장 접수 등 주석이 수행해야될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며 이들 부주석들은 외국대표들의 접견만 맡는 등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당정치국원 가운데 총리 강성산은 신병으로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같은 정치국 후보위원 가운데 양형섭의 활동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활발하게 나타난 것은 그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믿어진다. 9명의 부총리 가운데서는 지난 한햇동안 장철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그의 문화예술부부장 겸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김영남 외교부장 역시 비동맹외교 등과 관련,비교적 활발한 행보를 보여 다른 부총리에 비해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밝혀졌다.〈장수근 국제전략연 연구위원〉
  • 「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토론요지

    ◎서울신문 창간51돌 제2회 국제포럼 「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한 제2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이 18일 한국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이날 국제포럼에는 「북한의 위기상황­어디까지 왔나」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의 모색」이라는 두가지 주제가 제시됐다.한국과 중국·일본·미국·러시아 등 5개국 석학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이 있었다.토론자로는 제1주제인 「북한의 위기상황…」에는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과 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교수·하영선 서울대교수·옥태환 민족통일연구원 자료조사실장이 나섰다.제2주제인 「한반도의 항구적…」의 토론에는 서진영 고려대교수와 이경숙 숙명여대총장·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교수·김정환 국방대학원교수·심지연 경남대교수가 참가했다.이어 정태익 외무부기획관리실장이 「한국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제1주제­북한의 위기상황… 어디까지 왔나/개인·물질주의 확산속 최저생계조차 불안/북은 비상사태… 「2개의 한국정책」 분단장기화/종교국가적 측면 강해 신학적 접근 필요 ▲옥태환 교수=주제발표자들은 모두 김정일이 김일성이 죽은뒤 2년3개월 동안 노동당총비서와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당·군·정을 장악한 채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다고 공통되게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은 어렵다.이를 「구조조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그런데 지난 4월에는 북한의 김책제철소가 문을 닫았다.한국으로 따지면 포항제철,미국같으면 「유에스스틸」에 해당한다.그런데 구조조정으로 이런 공장이 문을 닫을 수 있겠는가.김정일은 올해 신년사에서 「95년은 건국 이래 가장 어려웠고 이런 어려움은 금년에도 해소될 전망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서대숙 교수는 『김정일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려움을 관리할 능력은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북한은 과도한 군사비와 고질적 에너지난,심각한 식량난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모두 하루 아침에 선순환될 수 없는 문제다. 또 서교수는 『영토문제에 있어 한국은 남한만,북한은 북한지역만으로 한정하는 것으로 헌법을 바꾸고 서로 수교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이같은 「2개의 한국정책」은 자칫 분단을 장기화할 수도 있지않느냐는 생각이다. ▲강인덕 소장=김학준교수는 김정일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3개 그룹으로 ▲김정일의 친인척 ▲항일 빨치산 및 그들의 2세들을 비롯한 군부인사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을 들었다.나는 이 3대 그룹에 김정일이 만든 「3대 혁명소조」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연령구성으로 볼 때는 정책결정 구조의 밑바닥에 해당하지만 정책을 「집행」하는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반대파의) 입을 봉하게 하고 전위부대로서 김정일체제의 안정에도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김정일과 군부와의 문제는 상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북한은 지금 비상사태다.어느 나라라도 그같은 상황에서는 군부가 나서기 마련이다.북한이 지금 그렇다.북한은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북한에 관한 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김정일이 바로 김일성 아들이라는 점이다.김정일이 살려면 김일성이 세운 주체사상을 버리고 적극적 개방에 나서야 하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릴 수 없기에 「개혁없는 개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석렬 교수=발제자들의 공통의견은 북한이 결국 「소프트 랜딩」의 길을 택해 다음 세기로 생명을 연장할 가능성이 큰 반면 붕괴가능성은 적다는 것이었다.그런데 북한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평가할만한 기준이 있어야겠다.적어도 효율성과 정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주의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살아남아 왔다.그런데 김정일은 새로운 정책 대신 김일성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답습한다.과도기에는 역할을 하겠지만 이후에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국가보다는 개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암시장과 부정부패 등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확산이 그것이다.이것이 사회주의의 결속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효율성」측면에서도 현재와 같은 군부중심의 비상체제에서 군 상층부로 부터는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중하층 인민군으로부터는 자발적인 충성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대외적으로는 벼랑끝 외교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통치수단으로의 식량배급도 이제 불가능하다.이래서는 정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총체적 위기다.획기적으로 변신하기 전에는 오래 지탱하기 어렵다고 본다. ▲하영선 교수=솔직히 북한전문가가 쓴 글을 잘 읽지않는다.늘 맞는 곳보다는 틀리는 곳이 더 많다.왜 이렇게 됐는지를 심각하게 논의하여야 한다.잠수함 공비침투같은 사건이 있을 때 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북한연구와 대북정책의 빈곤 때문이다.무엇보다 자료,특히 객관적 데이터가 빈곤하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분석틀」이 빈곤하다.그러나 현재 북한에 맞는 분석틀은 보이지 않는다.그 책임의 일단은 흔히 북한을 근대국가로 상정하는 미국식 연구모델에 돌릴 수밖에 없다.북한을 정치학이나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보면 제대로 못볼 수밖에 없지않느냐는 생각이다.종교국가적인 측면이 너무 간과되어 있다.북한을 이해하는데는 신학적 측면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이렇게 보면 권력승계 문제도 좀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10대 강령」같은 것도 「성경」이나 「4서」처럼 분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2주제­한반도의 평화체제 모색/한반도문제 남북한 당사자 해결이 원칙/4자회담 북·미회담 마당 전락 경계해야/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의연한 자세 긴요 ▲서진영 교수=당면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이다.이에 대해 주제발표자들은 대체로 인내와 끈기로 북한을 포용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부담이 적은 방안이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는 이상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과연 북한의 위협이 실재하는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는가.오로지 한국만이 끊임없는 인내를 시험받고 있으며 박애주의를 강요받고 있다. ▲이경숙 총장=4자회담에 대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제각기 다른 입장이 표출된 듯 하다.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평화적 통일을 위한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다른 4개국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생각된다.특히 4자회담에 있어서 이들 국가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은가.4자회담이 실제로는 북·미회담의 마당만 만들어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북한이 미국접근에만 관심을 두는 한 한국이 더이상 북한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는 어렵다. ▲이서항 교수=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은 북한이다.그동안 한국과 주변국들은 지나치게 형식,즉 평화체제 구축방안에만 관심을 두었다.특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다.아울러 평화협정만 체결하면 곧 평화가 온다는 인식은 잘못이다.남북한의 군사대결 완화와 교류협력 확대 등 평화협정 체결이후의 실질적 실천내용이 중요하다. 4자회담 제의는 실현가능성과 실효성,법리적 타당성등 세가지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우선 북한이 대미접근에만 주력하는 상황에서 주변국의 역할과 남북기본합의서,한반도비핵화선언 등이실천되는 데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곽태환 소장이 제안한 「4개국 다자협정」은 필요성이나 실현가능성이 의문이다.한반도문제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당사자 해결원칙이 존중돼야 하며 북한 스스로 이를 인정해야 한다.이를 위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아직 중국의 자세는 불명확하다. ▲전정환 교수=평화나 통일에 대해 남한과 북한이 과연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지,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남한은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한 교류를 통해 공존공영의 관계를 이룩한 뒤 합의에 의한 통일을 구상하고 있다.반면 북한은 한반도 상황을 미국의 남한 강점에 의한 긴장상태로 인식,미군철수를 통한 적화통일을 한반도 안정구도로 세워놓고 있다.즉 정전협정을 북·미 평화협정으로 대체한 뒤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자는 계산이다.이런 양립할 수 없는 개념 차이 때문에 서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연 교수=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성 유지와 의연한 자세가 중요하다.그러나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채널에 급급해 하는 인상이다.국민 자존심을 훼손하는 대화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우리 스스로 경제력을 보다 향상시키면 북한은 대화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4자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을 설득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중국은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바라지 무리하면서까지 북한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북한의 권력투쟁 가능성을 전망한 오코노기교수의 견해에 의문이 든다. ▲오코노기 게이오대 교수(주제발표자)=솔직히 일본은 4자회담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당사자인 남북한의 합의가 없이 다국간 안보체제는 실현될 수 없다.순서가 뒤바뀐 것이다.4자회담의 실현가능성도 의문이다.북한은 4자회담을 수용하는 대신 미·북,남·북회담을 병행하는 변칙 3자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4자회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정태익 실장=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한국정부의 목표와 정책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항구적 평화안정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며 이는 남북한이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것이다.북한은 대미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4자회담을 거부하지 못한다.정부는 북한이 4자회담에 응할때 혜택을 고려할 것이다.4자회담의 의제는 당사자가 있으므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다만 남북기본합의서와 평화협정 전환 등의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회담형식은 「2+2」에 얽매이지 않고 융통성 있게 할 것이다.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지지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으나 회담이 성사되면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러시아는 「동북아 포럼」 등의 채널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정리=서동철·진경호 기자〉
  • 40여년 「떠돌이 생활」 홍승복 할머니/가족들과 “조국서 새삶”

    ◎북한 탈출 중국 유랑… 94년 남편묻힌 한국에/아들 내도 지난달 영주귀국·취업… 한 풀어 40년남짓 중국에서 살다 지난 2월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등록(서울신문 96년 3월 6일자 보도)된 홍승복 할머니(68)가 중국에 있던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살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홍할머니의 장남 현광섭씨(45)와 며느리 이경희씨(45),손자 영산군(15)을 지난달 영주귀국시키는 한편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도 마련해줬다.홍할머니의 남은 소망이 모두 이뤄진 것이다. 홍할머니는 남편 현만호씨가 6·25전쟁 때 인민군 징집을 거부하고 국군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뒤 북한에서 불순분자 가족으로 몰려 중국으로 이주,40여년 어렵게 살아오다 한국에서 유공자등록을 하려 했으나 국적이 북한이어서 번번이 거부당했었다. 보훈처는 장남 광섭씨가 중국에서 월 1천5백위안(한화 15만원)을 받고 철도기관사로 23년간 근무한 경력을 감안,철도청과 협조해 14일 기관사로 취업시켰으며 부인 이씨는 서울 이촌동 아산재단 금강병원 조리사로 취직시켜줬다.손자 영산군의경우 지난 7월 심양시 조선족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어 오는 11월 전형을 거쳐 내년 국내 대학에 특례입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홍할머니는 『중국에 남아있던 가족들까지 정부의 도움으로 함께 살게 돼 맺힌 한을 풀었다』며 『반세기가 다 지난 지금까지 남편의 공로를 잊지 않고 환대하며 보살펴준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지방보훈청은 15일 상오 10시30분 이들 가족을 초청,격려하고 「홍여사 가족취업증서 전수 및 성품·성금 전달식」을 가졌다.〈황성기 기자〉
  • “북 체제 염증느껴 탈출/굶어죽는 사람 목격했다”/귀순 곽 중사

    13일 귀순한 북한군 곽경일 중사(25)는 북한의 궁핍한 사회실상과 군 복무에 염증을 느끼는 등 북한체제에 불신이 쌓여 귀순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6면〉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1군단 1사단 민경대대 1중대 부분대장인 곽중사는 최근 당원심사에서 누락되고 군관(장교)임관 선발도 취소되는 등 군 복무에 불만을 느껴 귀순을 결심했다. 곽중사는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에서 『고향인 신의주 등에서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았으며 먹는 문제로 자식들을 내쫓는 부도덕함이 북한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진술했다. 군 당국 등의 조사결과 곽중사는 지난 10일 4일간의 매복근무에 들어가 11일 하오 6시30분 북한군 전방 156 감시초소(GP)를 단독출발한 뒤 추격해오는 북한군의 총격을 받으며 12일 새벽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곽중사는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수류탄 투척으로 왼쪽 허벅지에 파편상을 입었으며 추격대와 총격전을 벌였으나 북한군의 피해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71년 6월 1일생인 곽중사는 주소가 평북 남신의주 유산2동 79반으로 황북 송림 인민학교를 거쳐 황주 삼정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민군에 입대,1사단 공병대대에서 2개월 가량 있다가 88년 10월부터 민경대대에서 근무해왔다. 미혼인 곽중사의 가족으로는 아버지 곽덕진씨(51·신의주 건설총국 노동행정 책임지도원),어머니와 남녀 동생 각 1명씩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곽중사는 키 1백73㎝에 체중 57㎏으로 비교적 마른 체격』이라면서 『건강을 회복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황성기 기자〉
  • 북,해외공관 이용 선전전/“공비침투는 남한측서 날조” 역공세

    ◎중국정부·파 등 57국 무관에 유인물 북한은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사건진상을 왜곡하는 내용의 선전물을 중국내 주요기관 및 볼리비아·브라질 등 57개 주중 외국 무관부,폴란드 등에 배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28일 주중 북한대사관을 통해 중국 국방부 외사국 및 주중 외국무관부에 뿌린 선전물에서 『일반 훈련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해 한국 강릉에 좌초한 잠수함 및 사체를 조건없이 즉각 되돌려줘야 한다.홍콩에서 적발된 북한의 무기밀매사건은 남측이 날조한 것』이라고 허위선전했다. 지난 2일에는 주중 북한무관부를 통해 뿌린 2차 선전물을 통해 『정상훈련중 사고로 남측 해안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인민군에 대해 무참히 사살한 남측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남측은 그로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대남도발의 가능성을 암시했다.또 북한은 폴란드 등에도 이같은 내용을 주재국 주요기관에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북한의 행위는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모르는 국가들에 북한이 옳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남한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역선전,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모면해 보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황성기 기자〉
  • “백배 천배보복” 실제상황 예고/전례로 본 도발전 위협 발언

    ◎판문점 무력시위­하루전 “DMZ 자위조치” 성명/부여 간첩사건­“독수리 훈련 좌시 않겠다” 선언/전문가들 “만반의 안보 대비책 필요” 지적 북한이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훈련중인 잠수함의 표류」라고 주장하며 보복 위협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북한은 여러차례 『우리는 보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보복은 백배 천배도 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무장공비 남파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발뺌→책임전가→보복위협의 단계를 밟고 있다.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북한 전문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무장공비침투사건에 이은 보복위협이 단순한 경고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특히 최덕근 주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은 이같은 의혹을 더해 준다. 전현준 박사(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는 『90년대 들어 북한의 주요 도발사태를 분석한 결과 사전위협 예고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례가 많다』면서 이번도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4월5일 판문점 무력시위가 있기 하루전인 4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변인 성명을 통해 『비무장지대 및 군사분계선을 인정할 수 없으며 자위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이에 앞서 3월29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광진은 『군사분계선의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무력시위를 예고하기도 했었다. 지난해 10월24일 발생한 부여 무장간첩사건에 앞서서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22일 『95 독수리훈련을 수수방관 하지 않겠다』고 위협했고 18일 외교부 대변인도 『정전체계를 뿌리째 청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95년 4월19일에는 북한 임업부 대변인의 『시베리아 벌목장노동자의 실종은 남한의 책임으로 즉시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담화가 발표된 2개월 뒤 중국 연길에서 리경춘등 북한인 3명이 안승운목사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북한 조평통부국장 박영수의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세계를 경악케 했던 지난 94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 참사관 윤호진이 6월 10일 『앞으로 IAEA를 상대하지않겠다』고 발언한지 사흘 뒤에 북한의 IAEA탈퇴선언이 이뤄졌다. 지난달 18일 발생한 무장공비 사건에 앞서서도 북한측은 남한이 나진·선봉 투자설명회에 고의로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남한 당국의 책임』이라고 선전공세를 펼쳤다.또 북한을 무력 제압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대규모의 신식무기들을 배치하고 있다면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따라서 현재 북한의 「백배 천배의 섬멸적 타격」 「침략자에 대한 무자비한 징벌」 「피에는 피로 응답」등의 위협발언은 긴장국면 조성과 어떤 형태로든 제2의 도발을 예고하는 수순일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김경홍 기자〉
  • 북,「최 영사 피살」 보도/남한측 대응 맹비난

    북한 평양방송은 5일 최덕근 주블라디보스토크영사의 피살사건을 보도하면서 『남한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북의 공작원에 의한 범행가능성을 유의하라는 긴급지령을 보냈는가 하면 괴한이 북한인으로 보이며 독침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일대 소란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이것은 모략적인 잠수함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우리(북측)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행위』라면서 『우리 인민군대는 훈련중 예상치않은 사고로 육지에 오른 우리 군인들에게 감행한 남조선의 피비린내나는 살육만행에 대하여 치를 떨고 있으며 전우들의 피값을 백배·천배로 받아내고야 말 일념으로 총검을 벼르고 있다』고 위협했다.
  • 북의 보복발언 저의/전현준(전문가 기고)

    ◎김정일의 주민불만 돌리기 술책 북한은 무장공비사건과 관련하여 남한에 대해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정부·정당·단체 비상연합회의」(9.26),「중앙통신」위임성명(9.27),군사정전위 비서장급회의(10.2)를 통해 북한은 한국의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대해 백배·천배로 보복할 것임을 호언하고 있다.북한이 금번 사태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첫째,김정일의 군사지도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김정일은 공식지위 미승계상태에서 군최고사령관 명의로 통치하고 있다.따라서 김정일은 군최고사령관으로서의 용맹성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후계자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특히 북한군은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지위에 대해 군경력 부족을 들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김정일은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핵문제를 비롯한 군사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해 왔었다. 둘째,군부의 충성심 과시이다.김정일은 김일성사망이후 최광·이을설에게 원수칭호를 수여하고 인민군창건일및 「전승기념일」을 국가명절로 지정하는 등 군부우대정책을 채택하여 왔다.따라서 군부는 김정일에 대해 충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군부는 평소 『김정일을 위해 총 폭탄이 될 것』임을 과시해 왔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대남 강경책을 보여줌으로써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북한식 안보논리이다.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사회일탈 및 주민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내부불만을 외부로 전환하기 위해 남한과 지속적인 갈등관계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DMZ에서의 무력도발,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등도 군사도발을 통한 내부통합용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북한은 안보유지 및 경제난 해결을 위해 대미 적개심을 완화하는 대신 경제난원인을 남한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전가하고 있고 주민들은 정부선전에 따라 통일시까지 「김정일 장군」을 중심으로 철저히 단결하여 제반 재난을 인내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대미 평화협정체결 분위기조성용이다.북한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북·미평화협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여 왔다.평화협정 필요성 환기를 위해 북한은 지난 4월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실시(4.5∼7)하였다.북한은 한반도에서의 긴장국면조성을 통해 위기상황원인을 대미 평화협정 부재로 전가하고,핵협상과정에서 보였던 「벼랑끝 전술」을 구사,미국과의 군사접촉창구를 획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금번 무장공비사건을 계기로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불만을 남한과의 대결로 전가함으로써 김정일의 실정 책임을 모면하는 한편 한반도내에 긴장분위기를 북·미 평화협정체결로 연결시키기 위해 대남 강경발언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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