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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체제 염증느껴 탈출/굶어죽는 사람 목격했다”/귀순 곽 중사

    13일 귀순한 북한군 곽경일 중사(25)는 북한의 궁핍한 사회실상과 군 복무에 염증을 느끼는 등 북한체제에 불신이 쌓여 귀순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6면〉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1군단 1사단 민경대대 1중대 부분대장인 곽중사는 최근 당원심사에서 누락되고 군관(장교)임관 선발도 취소되는 등 군 복무에 불만을 느껴 귀순을 결심했다. 곽중사는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에서 『고향인 신의주 등에서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았으며 먹는 문제로 자식들을 내쫓는 부도덕함이 북한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진술했다. 군 당국 등의 조사결과 곽중사는 지난 10일 4일간의 매복근무에 들어가 11일 하오 6시30분 북한군 전방 156 감시초소(GP)를 단독출발한 뒤 추격해오는 북한군의 총격을 받으며 12일 새벽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곽중사는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수류탄 투척으로 왼쪽 허벅지에 파편상을 입었으며 추격대와 총격전을 벌였으나 북한군의 피해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71년 6월 1일생인 곽중사는 주소가 평북 남신의주 유산2동 79반으로 황북 송림 인민학교를 거쳐 황주 삼정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민군에 입대,1사단 공병대대에서 2개월 가량 있다가 88년 10월부터 민경대대에서 근무해왔다. 미혼인 곽중사의 가족으로는 아버지 곽덕진씨(51·신의주 건설총국 노동행정 책임지도원),어머니와 남녀 동생 각 1명씩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곽중사는 키 1백73㎝에 체중 57㎏으로 비교적 마른 체격』이라면서 『건강을 회복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황성기 기자〉
  • 북,해외공관 이용 선전전/“공비침투는 남한측서 날조” 역공세

    ◎중국정부·파 등 57국 무관에 유인물 북한은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사건진상을 왜곡하는 내용의 선전물을 중국내 주요기관 및 볼리비아·브라질 등 57개 주중 외국 무관부,폴란드 등에 배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28일 주중 북한대사관을 통해 중국 국방부 외사국 및 주중 외국무관부에 뿌린 선전물에서 『일반 훈련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해 한국 강릉에 좌초한 잠수함 및 사체를 조건없이 즉각 되돌려줘야 한다.홍콩에서 적발된 북한의 무기밀매사건은 남측이 날조한 것』이라고 허위선전했다. 지난 2일에는 주중 북한무관부를 통해 뿌린 2차 선전물을 통해 『정상훈련중 사고로 남측 해안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인민군에 대해 무참히 사살한 남측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남측은 그로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대남도발의 가능성을 암시했다.또 북한은 폴란드 등에도 이같은 내용을 주재국 주요기관에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북한의 행위는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모르는 국가들에 북한이 옳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남한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역선전,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모면해 보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황성기 기자〉
  • “백배 천배보복” 실제상황 예고/전례로 본 도발전 위협 발언

    ◎판문점 무력시위­하루전 “DMZ 자위조치” 성명/부여 간첩사건­“독수리 훈련 좌시 않겠다” 선언/전문가들 “만반의 안보 대비책 필요” 지적 북한이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훈련중인 잠수함의 표류」라고 주장하며 보복 위협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북한은 여러차례 『우리는 보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보복은 백배 천배도 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무장공비 남파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발뺌→책임전가→보복위협의 단계를 밟고 있다.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북한 전문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무장공비침투사건에 이은 보복위협이 단순한 경고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특히 최덕근 주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은 이같은 의혹을 더해 준다. 전현준 박사(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는 『90년대 들어 북한의 주요 도발사태를 분석한 결과 사전위협 예고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례가 많다』면서 이번도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4월5일 판문점 무력시위가 있기 하루전인 4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변인 성명을 통해 『비무장지대 및 군사분계선을 인정할 수 없으며 자위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이에 앞서 3월29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광진은 『군사분계선의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무력시위를 예고하기도 했었다. 지난해 10월24일 발생한 부여 무장간첩사건에 앞서서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22일 『95 독수리훈련을 수수방관 하지 않겠다』고 위협했고 18일 외교부 대변인도 『정전체계를 뿌리째 청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95년 4월19일에는 북한 임업부 대변인의 『시베리아 벌목장노동자의 실종은 남한의 책임으로 즉시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담화가 발표된 2개월 뒤 중국 연길에서 리경춘등 북한인 3명이 안승운목사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북한 조평통부국장 박영수의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세계를 경악케 했던 지난 94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북한 참사관 윤호진이 6월 10일 『앞으로 IAEA를 상대하지않겠다』고 발언한지 사흘 뒤에 북한의 IAEA탈퇴선언이 이뤄졌다. 지난달 18일 발생한 무장공비 사건에 앞서서도 북한측은 남한이 나진·선봉 투자설명회에 고의로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남한 당국의 책임』이라고 선전공세를 펼쳤다.또 북한을 무력 제압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대규모의 신식무기들을 배치하고 있다면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따라서 현재 북한의 「백배 천배의 섬멸적 타격」 「침략자에 대한 무자비한 징벌」 「피에는 피로 응답」등의 위협발언은 긴장국면 조성과 어떤 형태로든 제2의 도발을 예고하는 수순일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김경홍 기자〉
  • 북,「최 영사 피살」 보도/남한측 대응 맹비난

    북한 평양방송은 5일 최덕근 주블라디보스토크영사의 피살사건을 보도하면서 『남한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북의 공작원에 의한 범행가능성을 유의하라는 긴급지령을 보냈는가 하면 괴한이 북한인으로 보이며 독침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일대 소란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이것은 모략적인 잠수함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우리(북측)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행위』라면서 『우리 인민군대는 훈련중 예상치않은 사고로 육지에 오른 우리 군인들에게 감행한 남조선의 피비린내나는 살육만행에 대하여 치를 떨고 있으며 전우들의 피값을 백배·천배로 받아내고야 말 일념으로 총검을 벼르고 있다』고 위협했다.
  • 최 영사 살해용의자 2명 검거/러 경찰

    ◎최씨 아파트 수리하던 북한인 노동자/“사인은 두개골 손상”/부검결과 통보 【블라디보스토크=류민 특파원】 최덕근 영사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러시아연방보안국(FSB),내무부경찰 및 검·경 합동수사반은 3일 최영사가 거주하던 블라디보스토크 루스카야거리 55번가 아파트 복도를 수리공사중이던 북한인 두명을 최씨 살해용의자로 체포,살해여부와 경위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이날 상오 공사장 현장에서 러시아경찰에 붙잡힌 북한인은 40대 후반가량에 인민군 복장차림의 노무자와 30대로 보이는 노무자 등 두명이다.이들은 한달전쯤부터 다른동료 10여명과 함께 같은동 아파트 복도를 수리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이들이 북한측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최영사를 살해했는지의 여부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이와관련,블라디보스토크에 나와있는 러시아 연방검찰의 한관계자는 『이들 북한인으로 보이는 용의자가 직접 최씨를 살해했는지 여부는 현 단계에서 알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수사당국이 북한인 용의자를 체포하는등 용의선을 북한측에 둠으로써 이번 최씨 살해사건은 두남자의 단순강도가 아닌 북한의 용의주도한 계획아래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매우높은 것으로 보인다.
  • 당국의 북 저의 분석과 대남 위협 내용

    ◎공비사건 왜곡 국제비난 희석 속셈/국론 분열·한­미 이간 노린 다목적 포석/대선 앞둔 미 압박… 평화협정 체결 유도 북한은 무장공비사건에 대한 국제적 비난압력이 거세지자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남측에 보복하겠다』고 계속 대남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부당국은 이같은 북한의 적반하장격 주장을 일단 사건을 왜곡시켜 국제사회와 유엔안보리의 제재분위기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또 북한이 미국 대통령선거(11월5일)를 앞두고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부각시켜 「북·미 평화협정」 체결분위기를 조성하고 한국의 강경기조에 대한 미국의 압력행사를 유도,한·미 안보협력관계를 이간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 국민에 대해서도 「북한의 보복 공포심」을 확산시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대북제재 완화가 최선이라는 여론을 조장할 목적으로 위협강도를 높이고 있다.특히 친북 운동권세력을 향해서는 표류한 훈련선박을 간첩선으로 조작해 「신 공안정국」을 조성했다고 왜곡해 국론분열을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음은 무장공비 침투사건이후 북한이 보여온 반응과 대남위협 요지. ▲9.22 인민무력부 대변인 담화=13일 인민군 한 군부대가 훈련용 잠수함을 타고 원산항을 출항해 정상적인 훈련을 하던 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강릉 해상에서 좌초해 부득이 육지에 오른 것으로 적지대이므로 무장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잠수함과 생존 군인과 사망자를 무조건 즉시 돌려보내야 한다. ▲9.26 당·정·단체 비상연합회의 결정=우리 군인을 학살한 괴뢰들에게 비싼 대가를 받아낼 것이다.훈련사고를 북남대결 격화와 전쟁접경에로 몰아가는데 이용하고 있다.남조선 일당의 책동에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 ▲9.26 판문점 군정위 비서장급 접촉=남측이 야만적 살인행위를 벌이고 있는데 인민과 군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응분의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며 「피에는 피로」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박임수 대좌). ▲9.27 김창국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 유엔총회 발언=남측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고 즉각 반북소동을 철회하라.피해자는 북한이기 때문에 보복할 권한이 있으며 금번 학살에 대한 보복은 천백배로 할 것이다. ▲9.28 민민전 대변인 성명=남조선 호전분자들은 잠수함·승조원을 무장간첩선·무장공비로 둔갑시켜 무참히 학살한 천인공노할 살육전을 감행했다. ▲9.30 제네바주재 북한대표부 성명=살해된 사람은 선장과 항해사 등 잠수함 승무원으로 누구를 공격하지도 파괴하지도 않았다.남한당국은 이번 문제를 남북대결 조장목적에 이용함으로써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10.2 중앙통신 성명=남조선 당국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승조원을 학살했다.우리는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보복할 권리가 있다. ▲10.2 판문점 군정위 비서장 접촉=끝까지 투항하지 않을 것이며 남측에 대해 보복할 것이니 미국은 개입하지 말라.만약 개입한다면 미측에 대해서도 보복하겠다(박임수 대좌). ▲10.3 노동신문 논평=남측은 군구조 개편과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공대공미사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우리 인민과 군대는 백배 천배의 섬멸적 타격으로 단호히 징벌할 것이다.도발자들에게 차려질 것이란 패배와 후회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경고해 둔다.
  • 북의 보복발언 저의/전현준(전문가 기고)

    ◎김정일의 주민불만 돌리기 술책 북한은 무장공비사건과 관련하여 남한에 대해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정부·정당·단체 비상연합회의」(9.26),「중앙통신」위임성명(9.27),군사정전위 비서장급회의(10.2)를 통해 북한은 한국의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대해 백배·천배로 보복할 것임을 호언하고 있다.북한이 금번 사태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첫째,김정일의 군사지도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김정일은 공식지위 미승계상태에서 군최고사령관 명의로 통치하고 있다.따라서 김정일은 군최고사령관으로서의 용맹성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후계자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특히 북한군은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지위에 대해 군경력 부족을 들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김정일은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핵문제를 비롯한 군사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해 왔었다. 둘째,군부의 충성심 과시이다.김정일은 김일성사망이후 최광·이을설에게 원수칭호를 수여하고 인민군창건일및 「전승기념일」을 국가명절로 지정하는 등 군부우대정책을 채택하여 왔다.따라서 군부는 김정일에 대해 충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군부는 평소 『김정일을 위해 총 폭탄이 될 것』임을 과시해 왔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대남 강경책을 보여줌으로써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북한식 안보논리이다.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사회일탈 및 주민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내부불만을 외부로 전환하기 위해 남한과 지속적인 갈등관계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DMZ에서의 무력도발,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등도 군사도발을 통한 내부통합용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북한은 안보유지 및 경제난 해결을 위해 대미 적개심을 완화하는 대신 경제난원인을 남한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전가하고 있고 주민들은 정부선전에 따라 통일시까지 「김정일 장군」을 중심으로 철저히 단결하여 제반 재난을 인내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대미 평화협정체결 분위기조성용이다.북한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북·미평화협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여 왔다.평화협정 필요성 환기를 위해 북한은 지난 4월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실시(4.5∼7)하였다.북한은 한반도에서의 긴장국면조성을 통해 위기상황원인을 대미 평화협정 부재로 전가하고,핵협상과정에서 보였던 「벼랑끝 전술」을 구사,미국과의 군사접촉창구를 획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금번 무장공비사건을 계기로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불만을 남한과의 대결로 전가함으로써 김정일의 실정 책임을 모면하는 한편 한반도내에 긴장분위기를 북·미 평화협정체결로 연결시키기 위해 대남 강경발언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 24시간 비상체제 돌입/북 보복위협­부처 스케치

    ◎김 대통령,이 국방에 전화 “만반 대비” 지시/합참 간부 긴급소집… 북 저의 분석 “긴박”ㄹ▷청와대◁ ○…청와대는 북한이 판문점 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에서 대남보복을 거론했다는 보고를 접하고 「심각한 사태」라는 판단아래 다각적 대응책을 강구. 김영삼 대통령은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국정감사를 받던 이양호 국방장관을 전화로 찾아 만반의 대비태세 구축을 지시. 김광일 비서실장,이원종 정무·유 외교안보·윤여전 공보수석 등은 긴급구수회의를 갖고 『북한의 직접적 협박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청와대를 비롯한 관련부처는 24시간 비상체제를 갖추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청와대 대부분 수석들은 이날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사태추이를 주시. 한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정규군 수준의 공비를 내려보낸 것도 모자라 노골적 협박을 하는 상황을 가벼이 볼수 없다』면서 『정부는 물론,여야 그리고 국민 모두가 안보경각심을 바짝 가져야할 때』라고 강조. 이 관계자는 『상황을 봐서 국가안전보장회의,안보장관회의,안보조정회의 혹은 긴급국무회의가 소집될 가능성도 있다』고 피력. ○…김동진 합참의장도 이장관과의 회의를 마치자마자 작전·정보 등 주요 합참간부들을 소집,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북한측의 저의를 심층분석하는 한편 다각적인 대응책을 수립.김의장은 존 틸렐리 한미연합사령관과도 만나 대책을 논의한 뒤 집무실로 돌아와 수방사령관을 비롯한 전·후방 지휘관들에게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지시.김의장은 틸렐리사령관에게 『워치컨을 3에서 2로 올리자』고 제의했으나 미군측은 『좀 더 지켜보자』고 답변한 것으로 한 군관계자는 전언. ○…군정위 회의가 끝난 뒤 짐 콜스 유엔사 대변인은 회의 내용에 대한 공개수위를 놓고 우리 군 당국과 협의하는 등 북한의 「보복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애써 축소하려는 듯한 인상.유엔사는 당초 이날 하오 4시30분쯤 국방부 기자실에 보도자료를 배포할 예정이었으나 하오 5시40분쯤에서야 영문으로 된 2쪽의 자료를 배포.그러나 이 자료에는 비서장급 회의 내용만 있었을 뿐 「북한 인민군이 한국에 대해 보복하므로 미군은 간여하지 말라」는 내용은 전혀 없어 이 내용을 보도자료에서 뺀 배경에 대해 해석이 분분.이에 대해 한 군 관계자는 『미국측이 북한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상당히 부담을 느낄 것으로 판단,보도수위를 상당히 낮추려 한 것 같다』고 분석.
  • 북 “가까운 시일내에 보복”/김 대통령,전군에 경계령

    ◎정전위서 “미 개입 말라” 요구 김영삼 대통령은 2일 하오 북한이 판문점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에서 『가까운 시일안에 남조선에 보복하겠다』고 협박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양호 국방장관에게 『전군이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합참은 이날 하오 이양호 국방장관과 김동진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들이 참석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긴급소집,전군에 경계강화령을 시달하는 등 대책을 마련중이다. 군은 대북감시태세인 워치콘을 평시수준인 4에서 2∼3단계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한·미 군사공조태세 긴급점검에 나섰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상오 판문점서 열린 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에서 미측 대표에게 『북한 인민군은 한국의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대해 보복하겠다』며 『미국은 북한군의 보복행위에 간여하지 말라』고 협박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북한측 비서장인 박임수 대좌는 이날 회의가 끝난뒤 미측대표와 별도로 만나 이같은 내용이 담긴 종이쪽지를 보여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군정위 접촉을통해 군사보복 위협을 공식제기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정부는 북한의 보복발언이 무력도발의 통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날 북한은 잠수함 및 승무원 송환을 요구했으나 유엔사측은 북한 잠수함의 한국해역 침투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북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날 상오 11시부터 1시간 남짓 열린 회의에는 유엔사측에서 에스턴 옴스 대령,한국군 대령,필리핀 장교가 북한측에선 박임수 대좌가 참석했다. 한편 군은 현재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투입된 1군사령부 관할의 부대 가운데 상당수를 작전에서 빼내 경계강화에 투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진 합참의장은 이날 하오 틸렐리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 북한의 「보복」발언의 배경과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대해 논의했다.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발표,『우리 군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행위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금번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북한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고 밝혔다.
  • 수세 입장서 공세 전략/북 보복위협­발언 배경

    ◎위협수위 최고도… 군사적 긴장 고조/실제도발에 앞선 경고일 가능성도 북한이 2일 열린 판문점서 열린 군사정전위 접촉에서 『남조선에 강력 보복하겠으니 미국은 북한군의 보복행위에 간여하지 말라』고 폭탄성 협박 발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측의 이같은 협박발언은 과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할 때마다 있어 온 것이지만 이번의 경우 발언의 강도나 수위가 최고도에 달해 있어 정부는 국방부와 안기부를 중심으로 발언의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3일 인민무력부 담화를 통해 『소형잠수함이 훈련중 좌초했다』며 송환을 요구한데 이어 26일에는 당·정·사회단체 연합회의 결정을 통해 『인민군 사살은 부당하며 강경 대응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위협했다.27일에는 중앙통신사 성명을 통해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보복할 권리가 있다.잠수함과 함께 승무원들과 희생된 우리측 인원을 즉각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북한은 이같이 인민무력부 담화와 중앙통신 등 정부기구와 각종 관영기구 등을 통해 꾸준히 발언의 수위를 높여왔다.북한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관련,이처럼 협박성 발언의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는 것은 일단 대외적인 수세상황을 공세적으로 돌리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분석된다.공세적으로 전환함으로써 잠수함의 강릉 앞바다 좌초가 불가항력이었다는 점을 강조,국제사회의 「동정론」을 얻어 유엔을 통한 제재조치 등 우리측 전략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고육책인 셈이다. 북한측이 이날 군사정전위 접촉을 통한 「보복위협」의 공식제기는 북한이 실제 국지적인 도발에 앞선 「통보」 성격이 짙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 94년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압력과 관련,조평통 박영수의 「서울 불바다론」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행동의 전조로 여겨진다.북한이 이날 군사정전위 접촉에서 회담이 끝난 뒤 미측 대표와 개별접촉을 시도,『북한군의 보복행위에 미국은 간섭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북한이 유엔사 채널이 아닌 미측과 직접 접촉을 시도한 점,접촉에서 미국의 불개입을 요구한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으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피살사건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점으로 미뤄볼 때 북한이 주장하는 「보복」이 시작됐다고 판단,강력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 공군조종사의 하루(이철수 대위의 증언:5·끝)

    ◎틈만 나면 정치·사상학습… 사생활이 없다/휴일 아내 손잡고 외출하면 “방탕하다” 비판/미사일 「꽝꽝」」 생산… 조종사 사격술 뛰어나/김부자 초상화 닦기로 충성경쟁… 장교반찬 12가지 우대 북한에서 비행사는 모두 노동당의 당원이다.47년 평양학원 항공과를 찾은 김일성이 『비행사가 되려면 모두 공산당원이 돼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이다.김일성은 당시 『하늘에는 국경도 없고 철조망도 없다.혼자서 원할때면 언제든지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그만큼 노동당은 공군비행사들의 철저한 사상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 혁명동지로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북한주민들 가운데 노동당원의 수는 3백50만명쯤 된다.북한에서는 누구나 15세가 되면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에 가입하게 되는데 사로청 조직에서 「일 잘하고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노동당 입당기회가 주어진다.노동당 입당을 위해선 사로청의 심의와 보증,당세포의 심의,연대·사단 당위원회의 심사,사단 당 비서처의 수표(사인) 등의절차를 거쳐야 한다.모든 당원은 매월 월급의 2%를 당비로 낸다.북한에서는 노동당원이 되어야만 비로소 「사람 값」을 하고 각 기관의 간부로 등용될 수 있다.입당을 못한 사람은 불량배·망나니 취급을 받으며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 ○“당원이어야” 김일성 교시 비행사들은 장교들의 영외 거주지인 관사와 부대,식당 이외에는 가는 곳이 없다.사회와 접촉하면 사회현상을 보게 되고 「머리가 바뀐다」며 못나가게 한다.한마디로 「비사회주의 현상」에 물들 여지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개인적으로 근무지였던 온천비행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평양시도 두번밖에 못 가봤다.휴일때 아내와 사택 밖을 나가 손을 잡고 다니면 『부화방탕하고 안일해이하다』고 비난받는다.심지어 장마당에도 못가게 한다.일주일에 하루 휴식날에 아이들과 함께 시내에 나가 상점에도 가보지만 진열품 이외엔 파는 게 없다.그래도 장마당에 나가야 뭔가 살 게 있는데 못 가게 막으니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못 사준다. 북한주민들이 연변을 오가며 보따리장사를 하고,남·북한 사람들이 만나기도 한다는 사실은 여기와서야 처음 들었다.보통 북한 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이외 북한 전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북한은 완전 봉쇄된 곳이다.북한 당국은 그런 말들이 모두 남한에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선전하고,주민들은 그렇게 믿는다. 북한에서는 비판이 많다.가령 군대내 뇌물사건 등과 관련해 부대 지도부에 대해 불평불만을 터뜨린 것이 부대내 보위부 요원 등에게 발각되면 정치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여는 「주 당 생활총화」에서 비판을 받고,또 「월 당 생활총화」에서 집중 비판대상이 돼 「몰아서 심판받는다」.『신념이 투철하지 못해 당의 신임을 저울질한다』,『당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오직 당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신념화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등이 주요 비판내용이다.이렇듯 모든 사람이 불평불만을 하지 못하도록 서로를 감시한다.심지어 셋이서 술을 마실때 조금 이상한 말을 했어도 누군가에게 발각돼 곧 비판을 받는다. 비행사들의 일과는 대개 전투준비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위대성에 대한 교양학습으로 채워져 있다.비행사들은 각각 가족과 함께 부대근처 장교 사택에서 영외거주를 하지만 여름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부대운동장에 집결한다.40분동안 집체적으로 달리기·체조 등 아침운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7시까지 세면 및 아침식사를 한다.장교사택과 부대까지는 보통 4분 거리. ○보따리장사 여기와 알아 가족과 함께 하는 아침식사의 식단은 대개 밥에 김치,해삼,웅단(성게알)젓,조개젓,쇠고기 절인 것(쇠고기조림)이다.식사뒤에는 라디오 보도(뉴스)를 듣는다.텔레비전은 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배터리를 사용하는 라디오만 듣는다. 상오 7시10분쯤 다시 부대로 출근,20분동안 부대 강당에 있는 사무실을 청소한다.장교 사무실은 하전사들의 출입이 금지돼 있어 장교들이 직접 청소를 한다.청소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닦는 것부터.공동 사무실에 걸린 초상화를 누가 닦느냐는 장교들의 충성심을 재는 중요한 판단근거로 활용된다.일주일에 한두번 일찍 나와 초상화 청소를 하지 않으면 유일사상 체계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해석된다.때문에 출근이 늦어 초상화를 닦지 못한 비행사는 동료들에게 『내일은 내가 닦을테니 다른 사람들은 제발 닦지 말아 달라.이러다가 내가 비판받겠다』고 사정하기도 한다. 이어 상오 8시까지 30분동안 「독보시간」.노동신문이나 인민군신문 등에 실린 사설을 한 명이 일어나 낭독하고 나머지는 듣는 식이다.김정일의 위대성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다음 9시까지는 「정치시간」이다.대대 정치지도원이 김일성·김정일의 위대성에 대한 교양사업을 한다.김일성·김정일의 혁명사상 및 당의 방침,정책 등을 전하고 당의 정책과 방침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결함들을 지적한다.당과 부대의 사업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결함 및 긍정적 사실 등을 지적한 총 정치국의 지시문도 전달된다.또 개인별,부대단위별 당적 분공(성과)을 발표한다.한달에 한차례씩 당원별로 당 세포로부터 월별 과제를 지시받는다.「정치시간」에 이어 낮 12시까지는 연대별,대대별 「상학시간」.강의,전술토론회 등 전쟁준비와 관련된 비행사 고유의 업무를 한다. ○잡곡밥에 염장무 3형제 낮 12시부터는 부대 식당에서 공동으로 점심식사를 한다.하전사의 경우 옥수수에 흰쌀이 드문드문 섞인 잡곡밥에 「염장무(소금에 절인 무) 3형제」가 반찬으로 나온다.염장무 3형제란 절인 무를 하나는 동그랗게,하나는 삼각형으로 썰고,하나는 채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어쩌다 고춧가루가 들어가면 「고급」이다.기름이 없어 양배추,오이,가지,호박이 나와도 그냥 삶아서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다.국은 부대에서 자체 생산한 무와 배추가 주재료.간혹 군관들이 먹을 명태 등이 변질되면 이를 하전사 식당에 넘기기도 한다.보병보다 사정이 좋다는 공군이 이렇다.다만 점심식사마다 콩비지를 1인당 100g씩 준다.그러나 부대 식당에서 만들면 중간에 떼먹는 일이 많고 맛도 없어 군관 가족들에게 교대로 콩을 나눠줘 요리해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하전사들의 식단이 이처럼 형편없지만 군관들,특히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에 대한 대접은 최상이다.군관들은 매일 점심의 반찬수가 무려 12가지나 되며 질도 좋은 편이다. 식사후 하오 3시까지는 오침시간.3시부터 5시30분까지는 「체육시간」이다.비행사들은 특수 신체단련을 해야 되니까 필수적으로 만능회전륜 등 특수기구를 사용한 체육을 30분동안 한 뒤 대대별로 축구·농구·배구 등 구기종목에 대한 시합을 한다.그러나 축구나 농구경기를 했다하면 서로 부딪쳐 팔이 부러지고 이빨이 깨져 나가는 현상이 많아 잘 시키지 않는다.대신 금을 긋고 양편에서 하는 배구를 주로 한다. ○체육은 “미국과의 전쟁” 체육은 곧 전쟁이다.미국과 싸움하는 식이다.지면 「반쯤 죽는다」.일과후 하오 6시30분부터 대대장과 대대 정치지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비판을 받는다.진 원인을 밝히고 『왜 지게 됐는가,누구 때문에 졌는가.왜 기술수준이 낮은가』 등을 따져 비판한다.이길 수 있는데 졌다면 완전히 「투쟁을 벌인다」.「눈물이 찔끔 나고 배알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정도로 분이 나도록」 비판을 받는다.이 때문에 경기에 진 대대 장교들은 다음 날부터 너무 악이 나서 낮잠도 안 자고 연습한다.그래도 「아득바득하다」졌으면 실력이 모자라니 좀더 노력하자며 토의한다. 체육 후 목욕한 다음 6시부터 6시30분까지 「하루 사업 총화」를 한 뒤 퇴근한다.총화에서는 하루 사업을 결산하고 다음 날의 과제를 받는다. 어떤 때는 퇴근 후 노동당 세포총회 또는 당총회를 열기도 한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하오 8시부터 10시까지 다시 부대로 가서 자체 전술연구도 하고 싸움준비와 관련한 미진한 연구를 한다.『비행기를 남한보다 많이 못타니까 지상연습이라도 많이 하라』고 해 「연습틀 훈련」을 많이 한다.새벽 2∼3시까지 자발적으로 훈련한다. 84년 처음 비행했을때 몰았던 비행기는 야크 18기였다.86년 미그 15,88년 온천비행장에 배치됐을 때부터 미그 19기를 몰았다.일년에 48회정도 실전 비행을 한다.매월 4∼5일정도씩.한번 비행할 때마다 두세번정도 이착륙을 반복한다.한번 떴다 공중을 선회한 뒤 내리는 6분짜리부터 15분·25분·40분·45분·50분·1시간5분짜리 등 여러가지가 있다.실제 작전훈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온천에서 떠서 삼천­양덕­개천을 거쳐 다시 온천에 내리는 300㎞거리의 25분짜리 부터다.○「빽」 있어야 민항조종사로 미사일은 북한에서 「꽝꽝」 생산하므로 많다.30㎜ 기관포와 로켓탄(미사일)인 방사 57㎜,항방 122㎜ 등을 쏴봤다.88년도부터 8년동안 로켓탄은 40여번 쏴 봤다.한번에 6발씩.남한서는 이보다 훨씬 많이 쏜다고 들었다.하지만 북한 조종사의 사격술은 100% 명중이다.내가 있던 57연대 비행사 60명중에 90%가 100% 명중이다. 비행사들에겐 자기생활이 없다.한달에 집에서 10번정도 자면 많이 잔다.군대에서는 군사대학과 군사학교만 일요일에 쉰다.휴식일은 매 연대마다 다르다.특히 비행사들은 3교대로 휴일도 구분없이 365일간 비행기에 앉아 출격대비,즉 「전투직일」을 선다.『싸움준비로 밤을 새고 새 날을 맞이하는 전투원이 되자』는 식이다.비행사들은 심지어 「조국을 위해서 더 많이 먹자」는 구호아래 먹기 싫어도 밥을 먹는다. 지난 10년동안 5차례 훈장을 받았다.훈장서열은 김일성훈장­시계표창­공화국 영웅칭호­국기훈장 1급 순이다.87년 서열 두번째인 시계표창을 받았다.스위스제 「티쇼트」 시계에 김일성 이름을새긴 「김일성 존함시계」를 받았다.이 상은 당 간부들도 받기 힘든 표창이다.77년에 이어 두번째로 모든 비행사들에게 줬다.일반 훈장은 별다른 혜택이 없다.그러나 김일성훈장과 시계표창을 받으면 제대후에도 매일 쌀 600g과 매월 현역때의 60%를 생활비로 받는다. 민항기 조종사로 직업을 바꿀 수 있다.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힘,「빽」이 있어야 한다.인민무력부·당 간부·국가보위부 등 권력기관에서 「누구 누구를 올려 보내라」하는 지시가 있어야 한다.
  • 유엔사­북 오늘 판문점회담/북측 요청/정전위 비서장급 접촉될듯

    주한유엔군사령부는 북한측의 요청에 따라 2일 판문점에서 북한측과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짐 콜스 유엔사대변인은 『북한 인민군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가진 군 일직장교(중령급) 접촉에서 일직장교보다 한단계 높은 회담을 요구했다』면서 『이번 회담은 특별한 접촉이 아닌 필요할 때마다 했던 정례적인 수준의 회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2일 유엔사와 북측의 접촉은 유엔사 애시턴 옴스 대령과 북측 박임수대좌간 비서장급(대령급) 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콜스 대변인은 『북한은 회담의 의제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달 26일 이후 공비가 타고 온 잠수함과 공비들의 송환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도 이들의 송환요구를 제기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 어둠의 공화국(이철수 대위의 증언:4)

    ◎전기 하루 5시간 공급… 밤이면 “암흑세상”/군서 중동에 무기팔아 군수품 자체 조달/나진·선봉지역 이주하려 뇌물 제공 만연/제대준비 군인들 식량약탈·도둑질 등 행패 잇따라 ▷전력난◁ 북한의 전력사정은 북한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요즘 북한 전 지역에 「전깃불」이 공급되는 시간은 잘해야 하루 24시간중에 다섯시간 정도이다.평양도 마찬가지다.중심구역만 불이 오고 나머지는 다 「새까맣다」.야간비행을 해보면 남한은 완전 「불바다,불천지」이고 북한은 암흑세상이다.내가 살던 평안남도 온천은 김일성·김정일의 특가(별장)가 있어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온천에서 가까운 황해남도 과일군의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력사정이 가장 안좋은데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3시간 정도만 불이 들어온다.그곳 주민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일을 한다.비행사들은 과일군에 「미개도 정전군 등잔리」라는 별명을 붙였다.전깃불이 안 들어오니 텔레비전을 볼래야 볼 수도 없고 냉동기(냉장고) 등이 아예 필요도 없다. 전기공급이 안되니 공장또한 가동되지도 않는다.그래도 군수공장,강철공장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장에는 전기가 공급되지만 강철공장의 경우 전압이 낮아 「전기로」가 10개라면 그중에 3∼4개만 가동된다.심지어 전기기관차같은 것도 1시간 정도 잘 가다가 정전돼 3,4시간 연착되기 일쑤다.기차가 「가다 서다,가다 서다」한다는 뜻이다. ○TV·냉장고 쓸모없어 공장이 가동된다고 해도 본래의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가령 농기계공장이라면 농기계 대신 장사할 수 있는 물건들,즉 구멍탄 집개·자전거 등을 만들어 판다.공장 자체가 장사를 해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공장원들에게 노임도 주고 중앙당에 올리기도 한다는 말이다.그래서 북한사람들 사이에 「북한도 자본주의 다 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석유사정만 나쁜게 아니다.석유가 없으면 대체에너지인 석탄이라도 많이 캐야 하는데 이 또한 그렇지 못하다.북한 텔레비전을 보면 전기를 이용한 기계로만 석탄을 캐는데 그것은 텔레비전의 선전일 뿐이다.북한의 탄광은 일제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이 곡괭이로 석탄을 채취한다.굴이 무너져 숱한 사람들이 죽지만 「동발목」(갱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모자라 일손을 놓고 있다.러시아가 개혁·개방을 한뒤 북한은 탄광에서 쓸 나무조차 모자란다.북한주민들 사이에 나도는 「개 팰 나무도 없다」는 말은 북한의 다급한 사정을 잘 말해준다.나무가 없어 굴을 뚫을 수도 없고,먹을게 없어 배가 고픈 노동자들은 일을 안한다.연형묵 전 총리가 90년 초 『전력난을 뚫자면 탄광이 잘돼야 한다』며 90년초 탄광에 간 일이 있다.하지만 연총리가 갱안에 들어갔는데도 탄부들은 일을 하기는 커녕 담배만 피우고 앉아있었다.탄부들은 연총리가 당황하면서 『왜 일 않는가』라고 묻자 『죽으러 갱도에 들어가는가.당신이나 한번 직접 해보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북한 군의 돈벌이◁ 경제사정이 나쁘자 중앙당은 군대도 자체 외화벌이를 해 일정액을 올려보낼 것을 독려하고 있다.인민무력부산하 「2경제위원회」에서 무기개발및 군수품조달등을 맡고 있고 「15국」은 러시아제를 토대로 개발한 각종 무기를 외국에 수출한다.자동소총,자동권총,14.5㎜ 고사총,박격포,자주포,미사일 등이 이란과 이라크,리비아,시리아,이집트,짐바브웨 등 북한의 영향권에 있는 중동·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에 팔려 나간다.무기를 팔지 않고는 1백만명이 넘는 인민군대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인민무력부는 쌀·간장·된장 외에 군복·신발·속내의 등 모든 군수품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북한군의 또다른 외화벌이수단은 금광개발이다.사금을 줍고 금을 캐는데 군인들이 동원된다.인민무력부의 연간 금 생산계획은 20t이다.각 군단별로 생산량을 배당한다.공군사령부의 배당량은 2t.실제 각 군은 금을 캐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한다.「외화벌이 부대」가 따로 있지만 정식명칭은 아니다.임시적 개념의 비편제 부대인데 각 연대·중대·소대별로 1명씩 뽑아서 사단에 올려보내면 사단에서는 각 부대에서 올라오는 500∼600명정도의 병사들을 모아 금광을 개발하고 사금을 채취한다. ▷북한 군의 부패상◁ 북한 군의 식량배급 사정은 사회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그러나 일반 주민들이 어렵고 또 사단장·경리사관·부소대장 등 지휘관들이 층층으로 떼먹다보니 부족할 수 밖에 없다.군인들은 누구나 제대와 함께 2만원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빈털털이로 나가봐야 직업도 마땅치 않고 제대후 장가라도 가려면 군대내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 재대하려는 것이다.3원50전,5원,7원 정도의 하전사(우리의 하사관 이하) 월급으로 「제대준비」을 제대로 하려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다.하전사들은 17세에 입대해 27살에 제대한다.장교들은 장교들대로 자식들 옷을 해 입히고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도둑질을 한다.쌀은 제대로 준다.그러나 부식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참모부 군관들에게는 하루 700g,하전사들에게는 800g을 준다.한끼에 250g으로 밥을 하면 다 먹지 못할 만큼 많다.그런데 도처에 날치기 도둑놈들이 판을 치니,제 양대로 배급될리 없다.지난 2년 동안 조종사들은 그래도 1년치 식량을 제 규정대로 받았다. ○군서도 외화벌이 독려 북한주민들은 군대를 「공산군」이라고 부른다.공산군이라는 게 남한에서 빨갱이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이제는 북한주민들이 그런 의미로 쓴다.군인들이 물을 마시자고 민간인 집을 찾아가면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는다.물 먹자고 민간인 집에 쑥 들어와서는 뭐 있는가 쓱 한번 보고,눈들이 어찌나 빠른지,집주인이 자기를 당해내지 못하겠다 싶으면 아무 물건이나 갖고 도망친다.자칫 붙잡으려 하면 집주인이 칼에 찔려 죽든,돌에 맞아죽든 죽기 십상이다.이러한 살인죄로 총살 당하는 군인이 많다. 군인들의 도둑질은 식량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필요할 경우 공군사령부 참모부는 각 구분대(연대 이하 대대 중대 소대등의 개념) 단위로 시멘트·철근·나무 등의 필요량을 할당한다.이 때문에 일선 부대들에선 「군대가 젖짜는 암소냐」고 불평한다.지휘관들은 할 수 없이 밑의 하전사들에게 『무조건 만들어 오라』고 시키는데 하전사들은 『맨주먹 가지고 어디가서 사오란 말이냐』고 불평하면서 낮에는 공장기업소나 살림집들을 정찰하고 밤에는 옮겨온다.도둑질이라고 안하고 「옮겨온다」고 한다. ○금 캐는데 병사 동원 과거에는 하전사들도 잘 먹어서 그런 현상이 없었는데 기름기없이 소금에 밥만 먹다보니 식량약탈과 도둑질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쌀은 주는데 기름같은 것은 적게 나오고 고추장은 생각도 못한다. 군인들의 행패는 끝이 없다.얼마 전 한달에 한번씩 나오는 총정치국 통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을 소개하면서 민간인들에게 군인들이 차를 세우라면 무조건 태워주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고속도로에서 군인들이 두패로 나뉘어 차를 세웠다.50m앞에 두,세명이 손을 들고 50m 뒤에서 30명정도가 돌멩이를 들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그런데 운전수가 그대로 도망치니까 돌을 들고 있던 30명이 화물트럭 앞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차가 서자 운전수의 머리를 시동기로 때려 죽인 다음 자기들끼리 목적지까지 간 뒤 차를 벼랑에서 굴려버렸다」.이 군인들은 「노동군대」에 갔다.가면 1년간 죄수생활이다.몽둥이 주먹 노동으로 단련시킨다.말 안들으면 법보다 주먹이 먼저다. ○제대시 2만원 목표 ▷나진·선봉 개발◁ 북한은 나진·선봉만 개발하게 되면 북한에서 1개 도가 1년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는 돈이 나온다고 말한다.1년에 40억달러에 이르는 돈이 저절로 들어온다고 선전한다. 그런데 선봉군당 조직비서(군수급)를 지낸 가까운 친척에 따르면 북한은 나진·선봉을 개발하면서 성분이 나쁜 불순분자들은 모두 추방시키고 이곳에는 주로 보위부 성원들이나 계급적 토대가 좋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있다.당 일꾼이라도 경제분야에 밝은 사람만 배치한다.나진·선봉은 아주 특별한 곳이어서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그곳에 들어가면 잘산다고 하니깐 모든 주민들은 누구나 가고싶어 한다.그러나 보위부의 검열이 있어야 가능하지,희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예를 들면 내가 그곳 주민의 아들이라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친척들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는다.평양시보다도 대우를 잘해줄 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 맞추기 위해 매달 봉급도 달러로 준다고 한다.즉 외국사람에게 북한이 아주 잘 사는 걸로 보여야 하니까 먹고 입고 쓰는데 「부러움 없도록」 생활수준을 높여준다는 말이다. ○성분 좋은 사람들 이주 때문에 몇년전부터 평양에 사는 사람들도 나진·선봉에 이사가기 위해 「작전」을 편다는 말이 나돌았다.군대에 복무중인 사람들은 미리 제대해 나진·선봉지역에 있는 탄광에라도 가려고 난리다.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해도 안한다.그곳이 연고인 사람들은 모두 귀가해서 노동자라도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만 10년동안 군사복무했으니 대학도 필요 없다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뇌물작전을 쓰는 것이다. 아무튼 선봉지구를 국제적으로 지원해줄 경우 북한체제는 승승장구할 것이다.외국의 지원이 없으면 아마 북한주민들 자체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자꾸 식량등을 지원해주니 문제다.
  • 권력승계와 군부실세(이철수 대위의 증언:2)

    ◎80년대 중반 「곁가지 치기 운동」… 동생부터 제거/“김 부자밖엔 모른다” 이진우가 앞장서/보안부 권한강화… 김정일 앞잡이 활용/군서열 김정일→최광→조명록→김영춘→김명국 순/개방틈탄 밑으로부터의 동요 막게 “전쟁준비” 지시 30년 가까이 「김정일이 최고다」「김정일이 온당히 김일성의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며 김정일을 부각시켜 왔다.당의 모든 선전·교양사업은 주민들을 김정일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집중돼 왔다.이 결과 북한 주민들은 현재 「김정일이 위대한 수령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이토록 오랫동안 교육을 해왔으니 김정일이 후계자로 올라서는데 문제가 있을 수 없다.김일성이 살아 있을 당시도 김정일은 모든 업무를 보고받았으며 자기가 처리하지 못할 일만 김일성과 「토론」했다.김일성도 생전에 『나는 조선에 또 한 명의 장군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주 말했었다.사정이 이러하니 주변사람들 또한 김일성이 늙어갈수록 오직 김정일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장성택·김정일최측근 김정일의 측근 실세가운데 김정일의 누이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이 최고로 꼽힌다.이미 장성택에게 붙는 사람이 많다.김정일이 주석이 되면 그도 중요한 직책에 임명될 것이다.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 이외는 누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알려주지도 않는다.알려고 하면 문제시된다.김일성과 김정일 이외에 김일성의 가계에 대해 말하거나 알려고 하면 「종파분자」로 몰린다.「조선에는 오직 김정일밖에 없다」고 교육하고,그렇게 믿을 뿐이다.『어느 간부가 좋다.정말 잘한다』는 말을 할 경우에는 군 정치부·보위부에 즉각 포착되고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는 영문도 모른채 호출돼 쿠데타음모를 꾸민게 아니냐는 추궁을 받게 된다.「잘한다」고 생각하는 제3자를 보호하려면 아예 『좋다』 『나쁘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렇듯 군부를 완전히 틀어쥔 김정일은 『총대는 정권에서 나오고 이 총대 위에서 정권이 유지된다.노동당이 총대를 장악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오직 당과 군대를 통해서만 조국통일도 하고,주체혁명 위업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군대와 당 가운데 어디가 우위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당이다.정치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북한으로서 노동당 말고는 볼 게 없다.군부 내 엘리트 그룹들이 쿠데타나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그런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쿠데타같은 말은 꺼내지 않는게 현명할 뿐이다.또 있을 수도 없다. ○“김정일 밖에 없다” 교육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없으면 조국도,인민도,우리도 없다.오직 김정일을 따라야 찬란한 내일과 희망이 있다』고 선전하고 그렇게 믿는다.이같은 김정일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는 「조선의 하느님」이라는 김일성에 대한 믿음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94년 김일성이 죽었을때,인민들이 울며 불며 한 것은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다.누가 「지금부터 마구 울라」고 지시해서 우는 것 아니다.사람들이 너무 무질서하게 마구 몰려드는 바람에 단체별로 시간을 배정해 참배객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북한 사회를 남한의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을때 당시 연형묵 총리가 남한의 고위층 인사와 술자리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우리끼리 싸움하면서 조선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되겠는가.평화적으로 통일하자,그런 다음 함께 옛날 고구려 땅을 같이 찾자』라고 말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김정일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북한의 속마음은 그런게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총리에서 자강도 도당책임자로 떨어냈다. ○오진우 노여움 사 강등 그러나 연형묵이 총리에서 떨어져 나간 「진짜 화근」은 「인민생활이 이렇게 한심한데 국방비에서 1∼2% 떼서 인민생활에 돌리자」고 한 건의였다.당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이 소식을 듣고 김정일에게 말도 안된다며 강력히 반발했고,김정일은 오진우의 말을 따랐다.그만큼 군부의 말에 김정일이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오진우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전인 70년대 초 김일성과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그의 아들 김평일 등이모인 곳에 배석했다가 김정일이 없는 자리에서 후계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고 『백두산의 김정일이 있는데 누가 흐지부지 다른 사람을 말할 게 있는가』라며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이같은 호통에 김정일의 친위대인 호위국 요원들이 들어와 「김성애 일파」를 끌어 냈는데 당시 김일성은 한마디도 안했다고 한다.이처럼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는데 있어 오진우의 공적은 대단했다.이 때문에 김정일은 오진우가 살아있을때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다. 특히 오진우는 지난 80년대 중반 김정일이 「당에서 곁가지를 칠 데 대하여」라는 교시를 들고 나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군에서 실천했다.당시 김정일은 『당에 곁가지가 있을 수 없다.김일성 이외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확립을 들고 나왔다.이에 오진우는 인민군대에 「김일성·김정일 이외는 누구도 모른다」는 관점을 갖고 일할 것을 지시했다.이 결과 김평일을 추종하던 종파들은 모두가 제거됐으며 김평일은 이후 외국에 대사로 쫓겨났다. ○김평일 군사지식 탁월 김평일은 김일성의 품격과 인격을 가장 많이 닮았고,미남에 목소리도 김일성과 꼭 닮았다.특히 그는 군사에서도 천재라는 평판을 군 내부에서 듣고 있었다.김일성군사대학을 나왔으며 일선 부대 대대장까지 지냈다.83년 무렵 김일성은 직접 『앞으로 조선의 정치를 보려면 정일이를 보고,군사를 보려면 평일이를 보라』고 말할 정도로 김평일의 군사 지식은 대단했다. 김정일의 「곁가지 치기운동」은 바로 김일성의 이 발언 직후에 나왔다.김정일은 「조선에는 김일성 이외는 누구도 없다」는 이 운동을 펼치며 김평일을 견제하고 꺾어버린 것이다.어쨌든 군부에서는 김평일을 모두가 높게 평가했다.그를 인정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많았었던 것은 사실이다. ○군내 정보수집 주업무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 일은 있을래야 있을 수도,있지도 않다.그런 말했다가는 「목이 날아간다」.군대내에서는 완전히 정리됐다.반정부 음모 및 반당분자를 밝혀내고 잡아내는 보위부 권한이 현재 북한 군내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과거 군대 조직상 보위부는 정치부의 통제를 받았는데 이제는 「뚝 떨어져 나와」 암행어사식으로 활동한다.국가보위부장은 현재 과거 공군사령관을 지낸 이원웅이 맡고 있다.보위부는 군내 사상동향을 파악하고 반당분자를 적발하는 등 정보수집 업무를 한다. 군부의 인사 결정권은 정치부에 있다.일선부대 정치위원과 정치 지도원,중대 정치지도원,대대 정치지도원 등 정치부 일꾼들이 장악하고 있다.중대장이나 대대장,연대장은 허수아비다.군대 안에는 정치부,보위부,참모부,후방부 등 여러 부서가 있지만 보위부를 뺀 모두가 정치부 아래에 있다. 과거에는 보위부도 정치부의 통제를 받았다.그러나 함북 나남의 6군단 사건으로 보위부의 힘이 세졌다. 함북 청진 나남구역에 6군단 본부가 있는데,현 군 총참모장인 김영춘이 몇년 전 그곳에 군단장으로 부임돼 갔다.군단 실태를 확인해 보니까 군단 전투력이 한심하고 싸움을 할수 없는 정도로 돼 있었다.당시 6군단 보위부는 군단내의 비리현상들,특히 외화벌이와 관련한 숱한 비리현상을 적발,보고하려 했는데 6군단정치부에서 이를 「깔아 뭉갰다」는 것이 확인됐다.김영춘은 이를 「요해」해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했다.김정일은 보위부에서는 일을 제대로 했는데 정치부 때문에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보위부를 정치부에서 「뚝 떼어냈다」.이에 따라 보위부가 자기 맘대로 의심도 하고 뒤로 캐기도 하고 자체 계통을 통해 정보보고를 하게 되자 정치부도 보위부에 절절 메게 됐다.김정일이 보위부의 권한을 높여 준 것이다. 이후 김정일은 지난해 김영춘을 총참모장에 발탁했다.당시 김정일이 김영춘을 총참모장시키기 위해 20년간 검토해왔다는 말이 나돌았다.김영춘은 머리가 좋고 인민무력부에서 못해 본 직무가 없다.정찰국장,작전국장,의료단장,사단장,6군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나이는 60대이고 러시아 프룬제군사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북한군의 서열은 최고사령관 김정일아래 최광 인민무력부장­조명록 총 정치국장(전 공군사령관)­김영춘 총참모장­김명국 작전국장 순이다. ○정치부가 군부 총지휘 보위부가 독립해서 독자적으로하지만 인사및 북한 군부를 총 지휘하는 것은 정치부이다.김정일은 올 3월에 정치부사람들에 『당 맛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지시했다.당 권한을 「노골적으로 쓰라」는 뜻이다.이때까지는 결함을 보고하면 어떻게든 교양을 시켜 다시 중용했지만 이제는 안되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떼 버리라」는 말이다.정치지도원들은 공공연히 『이제는 비행사 열댓명 없다고 해서 통일 못하는 게 아니다』며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신념이 있소,없소』라는 말을 많이 한다.북에서 말하는 과오라는 것은 바로 이 신념이 흔들린다는 뜻이다.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투철한 신념이 부족한 사람들,일하던 도중에 비리현상이라든가,당 정책하고 맞지 않는 불평불만을 부르는 현상이라든가를 말로만 교육하지 말고 무자비하게 떼어버리라는 말이다. 김정일은 최근의 나진·선봉개발과 조·미,남북회담과 관련해 자기의 정권을 확고히 하고,밑으로부터의 동요를 막기 위해 올 초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려보냈다.「당의 노선과 정책은 변함이 없다.전략과 전술은 시기시기마다 달라진다.지금 일시적으로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주의 나라 시장들이 다 무너졌으니까 자본주의 시장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그러려면 이런 저런 나라들과 이런 저런 관계를 맺을수 있는데,옆에서 잘못 생각하지 말고 더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라」
  • 북 「담화」는 기만투성이(사설)

    잠수함 무장공비침투 사건으로 나라안팎이 펄펄 끓고 있는 터에 북한당국이 불쑥 무례하고 기만에 찬 「담화」란 것을 내 또한번 온국민의 분통을 터뜨리게 하고 있다. 23일 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북한인민무력부 명의의 담화란 『인민군 한부대가 잠수함을 타고 훈련을 하던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강릉앞 해상에서 좌초한 것으로 판단되니 잠수함과 승무원들의 시체를 무조건 송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란 바로 이런데 쓰는 말이다.공비를 침투시키기 위해 잠수함까지 동원했고 그로인해 수많은 젊은이가 피를 흘리고 있는 마당에 사과한마디 없이 불쑥 잠수함과 시체송환을 요구하고 나선 북한당국의 철면피적 담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담화」는 북한측해역에서 훈련을 한 것으로 돼있지만 생포된 이광수의 진술에 따르면 잠수함은 좌초되기 이전 15·16일 두번씩이나 강릉앞바다에 이르러 공작원과 접촉을 시도하려다 실패했다.또 해류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측 해상에서 훈련중 기관고장을 일으켰을 지라도 당시의 해류로보아 잠수함은 강릉아닌 북한측 해안으로 표류했어야 옳다. 북한의 담화를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기관고장에 의한 표류였다면 잠수함은 불시의 사고였음을 우리측에 알리고 구원을 요청했어야 한다.훈련중 사고를 당한 적은 보호하는 것이 국제법상의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또 북측해역에서의 훈련이었다면 침투공비들의 복장이 왜 모두 남한제여야 하며 한국군 장교복으로까지 위장을 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한마디로 인민무력부의 「담화」는 허위와 기만에 찬 문서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다만 한가지 의미가 있다면 북한당국이 이번사건을 처음 공개적으로 시인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결코 더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국제사회는 북한의 무모한 군사도발에 상응하는 대가를 북한이 반드시 치르도록 해야 한다.
  • 한총련/친북단체 범청학련과 동일노선/검찰수사서 밝혀진 실체

    ◎북의 대남혁명전략 전위대 역할/주한미군 철수·연방제 통일 주장 한총련이 사실상 북한 노동당의 지시를 받는 친북단체임이 검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지도노선은 물론 핵심간부들이 북한의 대남공작사업을 총괄하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충격적이다. 한총련의 핵심기구인 조국통일위원회와 정책협의회가 이적단체로 규정된 점과 핵심간부들이 이 기구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해준다. 또한 한총련은 8·15 통일대축전을 빌미로 북한 폭력혁명 노선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이적단체 범청학련의 조종에 따라 사전 치밀한 계획 아래 연세대 시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총련의 성격은 주요 핵심사업이 범청학련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한 사실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범청학련은 주한미군과 핵무기 철수,한반도의 비핵·평화지대화,연방제 방식에 의한 통일,남북 해외 청년학생들간의 자주적인 교류와 협력,국가보안법 철폐와 장기수를 비롯한 모든 양심수 석방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올해 통일축전의 4대 투쟁과제로는 북·미평화협정 체결,군비축소 및 주한미군 기지반환,국가보안법 철폐,양심수 석방,공안탄압 분쇄,연방제 통일방안 확산 등을 선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한총련이 범청학련의 「앵무새」 역할을 하는 하급기구로 보고 있다.남측본부가 상급단체인 범청학련의 지도이념을 그대로 실천하고,현정권을 「식민지 대리정권」으로 규정하는 등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수행하는 전위대로 분석한다. 또한 범청학련 남측본부(한총련)가 이 단체의 실질적인 핵심기구인 북측본부의 지시대로 움직인다고 파악하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북측본부는 북한의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지휘를 받고 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산하 단체이다. 따라서 범청학련은 조선노동당의 지시를 받아 산하조직인 한총련을 지도하고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로 범청학련 북측본부 의장 허창조(40)가 소속된 조선학생위원회의 단장 이금철(50)이 조선노동당(통일전선부)당원이라는 사실은 한총련이 북한의 지시를 받는다는 정황을 뒷받침하기에충분하다. 한총련이 핵심기구인 조국통일위원회를 통해 북한의 노선을 추종하고 있으며,유병문 조통위원장이 남측본부의 사무국장을 맡고있는 점도 한총련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총련 간부들의 행태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기소된 서남총련 의장 안상묵군(단국대 총학생회장) 등은 김일성과 인민군을 민족의 영웅으로 찬양하는 「조선의 별」 등의 북한영화 테이프를 시청한 사실이 확인됐다.또한 지난 6월에는 범청학련의 상급단체인 범민련 간부의 지시에 따라 김정일에 대한 충성의 편지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이 한총련 핵심간부들의 검거와 자금원 추적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같은 반체제적인 불법 학생운동을 이번 기회에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 “북녘추석 별의미 없어요”/귀순 최주활씨 인터뷰

    ◎“대부분 명절제사 안지내” 오는 27일은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다.북한의 추석은 어떨까.작년에 이어 올해도 북한 주민들은 잇따른 수해로 먹거리가 부족해 하루나마 「배부른 추석」은 못 맞을 것이라는 게 탈북자들의 걱정이다. 작년 10월,제3국을 통해 귀순한 인민군 상좌 출신 최주활씨(47)는 『현재 북한의 추석은 하루 쉬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부분의 북한 가정에서 명절제사를 안 지낸지는 오래됐다』면서 『일부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봉건적인 집안에서만 제사상을 차린다』고 말했다. 최씨는 다만 군대나 공장에서 하루 놀기 때문에 『같은 구역내에 있는 공동묘지의 부모님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형제들끼리 모여 저축해둔 고기나 사이다 등 단과류를 나눠 먹는 정도로 명절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군출신인 최씨는 『군대에서는 성묘갈 사람을 평양,개성 방향등 구역별로 차편을 마련해 성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그나마 하루길이어서 부대에서 먼 곳에 떨어진 고향은 갈 엄두도 못낸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명절이라고 해서 군대에서 특식을 주는 경우는 없다』면서 『최근에는 식량사정이 나빠서 하루 쉬는 것만이라도 고마워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씨는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서 『당간부 등 권한이 있는 사람은 명절에 잘먹고 지낸다』고 지적했다.
  • 민심이반 막으려 무더기 포상

    ◎금강산댐 공사관련 무려 10만명 “표창”/문책대상 침몰선 선원에 영웅칭호 주기도/친분·뇌물따라 선정 잦아 되레 불신 증폭 북한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군인이나 주민복장 앞가슴엔 메달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흔히 볼 수 있다.어떤 사람은 양쪽가슴에 빼곡히 메달고 있어 달고 다니는 데도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이는 북한당국이 각종 유공자에 대해 여러가지 「칭호」와 상훈을 주면서 준 훈장과 메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훈은 꼭 받아야 할 사람이 받아야 하고 대상자가 소수로 엄선돼야 상훈의 값어치가 있는 법인데 올들어 북한은 칭호와 상훈을 남발하고 있다.지난 8일 금강산발전소 1단계공사에서만 무려 10만명에게 각종 표창을 수여했다.인민군 장령 안피득 등 3인에게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준 것을 비롯,총 9만7천5백58명에게 노력영웅칭호부터,이번에 새로 등장한 김정일표창 등 14단계의 표창을 했다.북한이 주민에게 상훈을 수여한 것은 북한정권 수립이후부터 매년 계속돼온 것이지만 이번처럼 10만명에 가까운 사람을 표창한 것은 일찍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자난 3월16 북한 정무원 해운부에서는 이색적인 상훈수여식이 있었다.동해상에서 2월말 침몰한 화물선 염분진호 선원에 대한 표창이 있었던 것.북한은 이날 침몰선 선장 등 3명에겐 노력영웅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1급을,나머지 선원에겐 국기훈장 1급을 주었다.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국에 항해부주의로 배와 화물을 침몰시킨 선장과 선원을 엄중문책했어야 함에도 거꾸로 포상한 것이다. 이처럼 북한당국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무더기 포상을 하는 1차적인 목적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되돌아서는 민심을 추스리고 사상이완을 막는 데 있다.김정일 명의의 감사 및 선물·생일상 전달 등과 함께 각종 포상을 체제결속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금강산발전소 건설과 관련,군인뿐 아니라 일반행정·기술분야의 민간인을 무더기 표창한 것은 경제건설실적이 부진,김정일의 업적으로 제시할 만한 성과가 없던 차에 발전소 1단계공사완료를 과시함으로써 김에 대한 충성유도및 체제안정기반구축에 활용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이와 함께 김일성유훈을 실현한 것과 같은 축제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침몰선 선원을 처벌하기보다 포상쪽으로 선회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문책보다는 포상을 하는 것이 현재의 북한내부 사정으로 보아 통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열심히 일하다 뜻밖의 사고를 당하는 경우 처벌을 받기보다 당의 배려를 받는다는 사실을 주민에게 널리 알려 당면한 경제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제고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모든 인민을 포용하는 정치를 한다」는 김정일의 이른바 「인덕정치」와 「광폭정치」를 선전하는 데도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선 상훈과 칭호를 받는 사람에겐 노동당 입당을 보장받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등 많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은 이를 받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북한당국은 이를 노려 노역경쟁을 유도하고 있다.그런데 이러한당국의 포상이 오히려 주민의 당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포상대상자를 친분과 뇌물제공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줄 것이 별로 없는 김정일은 주민의 체제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명의의 표창을 포함한 포상을 앞으로도 계속 남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 “북과 24차례 불법교신”/경찰이 밝힌 한총련 활동상

    ◎지난 6월 북 인민군 묘소참배 기도/94년이후 공공시설 공격 “테러양상” 경찰은 17일 「한총련의 이적·폭력 실상」이란 자료를 발표했다.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범청학련」과 「한총련」의 실체=「범청학련」은 「북한 조선학생위」의 제의로 92년 8월 결성됐다.이후 북한의 연방제 통일노선·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통일대축전」을 주최하는 등 북한의 배후조정에 따라 친북 통일노선을 추종해 온 이적단체다. 「한총련」은 「주사파」(NL)주도의 「전대협」이 확대 개편된 대학운동권 연합체 조직으로 「범청학련」과 수시로 국제전화 및 팩시밀리를 교환하며 투쟁노선과 활동방향을 협의해 왔다.북한의 대남 흑색선전매체인 「민민전」 방송을 직접 수신하며 투쟁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다.「한총련」의장단은 「범청련」 남측본부 의장단을 겸하고 있어 같은 조직이다. ▲「한총련」의 이적활동=올 5월 「전민족 통일대행진 연대투쟁으로 90년대 연방통일 조국건설하자」는 내용의 서신을 「범청학련」 북측본부로 발송하는 등 24차례에 걸쳐 북한측과 불법 통신을 하며 투쟁방향을 협의해 왔다.올 1월부터 6월까지 북한의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을 청취,김일성부자를 찬양하고 주체사상을 미화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제작해 사상학습 교재로 활용했다.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지난 3월 「한총련」 대의원회의와 4월 「통일전진대회」에서 김일성의 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통일투쟁 지침으로 제시했다. 올들어서만도 북한을 찬양하고 공산혁명을 선동하는 1백75종의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했다. 지난 4월 경북대에서 「인혁당」사건 추모비를 건립하고 6월에는 북한군 묘소 참배를 획책했다. ▲「한총련」의 폭력시위 양상=문민정부이후 투쟁대상을 상실하고 일시 폭력을 자제했으나 94년 쌀수입개방 반대시위부터 달라져 올해는 폭력투쟁노선으로 회귀했다.쇠파이프로 무장,미국관련 시설과 국가 공공시설에 대한 화염병 습격 등 테러양상을 보이고 있다.올들어 23차례에 걸쳐 경찰관 납치,공공시설 기습 등을 감행했다. ▲「8·15 행사」의 이적·폭력성=「범청학련」 대표를 밀입북시키고 「서총련,평양시 학생위원회간 공동 결의문」등을 북한과 불법으로 통신했다.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서총련 통일선봉대 자료집」등 각종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하고 「연방제 통일」 등 북한의 주의·주장을 선전·선동했다.14일에는 한총련 간부 5백여명이 참석해 이적행사인 「범청학련 총회」를 강행했다.쇠파이프 3천여개를 소지하고 화염병 4만8천여개와 4t트럭 1대분의 돌을 던져 6백55명의 경찰관을 부상케 했다.
  • 소설가 김채원(인물탐구:101)

    ◎틀·관념 거부… 투명·영롱한 문학세계 지향/산수화 같은 셈세한 묘사… 문단에 신선한 충격/새로운 언어·글쓰기 형식 찾아 고집스런 노력/파인 김동환·여류뮨인 최정희사이 출생… 언니도 소설가 김채원의 단편 「가득찬 조용함」은 4개의 파트로 나눠진 소넷 같은 소설이다.첫 패러그래프는 이렇게 시작된다. 「조그만 아이가 커다란 목욕탕에 들어앉아 오색공을 가지고 놀고 있다.아이의 머리통보다 조금더 큰 공이다.빨강·파랑·노랑·주황·초록으로 칠해진 공의 색채가 이 한낮을 바로 그런 색채의 무수한 조각으로 갈라놓고 있다」.「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과 가끔씩 불어오는 미풍이 그런 색채속에 휘말려 소용돌이」치듯 작가는 눈에 보이지않는 비실제의 색채를 만져지는 실제로 실천시키고 있다. 83년 김채원이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문학평론가 원형갑은 「이와 같은 섬세한 묘사의 세계는 산수화에서 느낄수 있는 녹차의 맛과도 같은 맛」「귀떨기를 스치고 지나는 가을 바람과도 같은 인간의 진지함을 돌이키게 된다」고 호평한바 있다.그리고 「그의 소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 겪었던 삶을 다시 살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삶으로 우리를 유도하기때문」이라고 했다.「그의 예사롭지 않은 작가적 감수성」은 내적독백 무의식 잠재의식 패러디의 방법으로 「스토리라는 이데올로기에 매어있지않고」 「그의 주인공들은 스토리를 전제하는 가운데 살고있지도 않으며 다만 일상이 그려놓은 단조로운 기억과 환상위에 어렴풋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그 형상위에 일상의 발자욱을 겹치면서 본래의 자취에다 진실의 밝은빛을 뿌려나간다」는 것이 평론의 요지다. ○스토리 전제않고 작업 김채원은 소설 「초록빛 모자」「겨울의 환」이 널리 알려져있으나 그의 소설을 대중적인 인기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일단의 평자들은 「그것에 남성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넓은 범주의 페미니즘 문학」으로 구분짓기도 한다.그러나 그는 「작가로서의 세계감각」과 「즉물적이고 즉사 즉시적인 생활문장」으로 그 어느것도 충실하게 현실에 대응하고 소설진행상에서도 장면과 장면의 연결보다는 「장면과 장면의 겹침으로 얻어지는 상황성의 포착에 성공」하고 있다.그리고 이 상황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체의 다양한 변화가 유도되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 88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독자의 관심을 끌고있는 중편 「겨울의 환」은 나이 들어가는 한 여성의 갖가지 떨림을 음악에서의 안단테 칸타빌레와도 같은 우아한 필치로 받아낸 것이 특징이다. 한 여성의 떨림을 「시간과 삶」의 출렁거림에 실어서 흔들림과 설렘,두려움으로 함축시키고 그안에 센티멘토(정감)와 스케르초(해학)를 담아 운명에 대한 외경심과 운명지향성의 무게로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현실·초현실 넘나들어 최초의 장편소설인 「형자와 그 옆사람」에 대해 시인 김화영도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바 있다.「다른 대다수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중년에 접어드는 한 여자의 일상에 관한 이 소설은 목마르게 삶의 중심을 찾는 몸짓과 느닷없는 환상의 떨림이 미묘하게 교차되면서 박명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반추상의 우울한 그림을 이루고 있다」고 「해설」에 쓰고있다. 이어서 평론가 권영민의 「김채원의 소설속에는 작가자신의 의식의 그림자가 환상처럼 드리워져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가장 특이한 감성을 지닌채 일상의 테두리에서 언제나 머뭇거리고 있는 한 인간」이 작가자신의 의식의 흐름에 실려 현실과 초현실과 피안과 차안의 언덕을 자재로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는 복합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형자와 그 옆사람」을 출간했을 당시 『현실적으로는 책이 많이 팔렸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그러나 『그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한사람도 만나지 말았으면』했고 때때로 『아주 다른류의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두가지 마음에서 모순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는 찬물처럼 차갑고 풀잎처럼 연약해보이지만 고집이 센편이고 급진적이며 엉뚱한 면이 많아서 자신의 상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상상은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일」이라고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이점은 일찍이 그의 소설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원로 황순원씨가 「어떤 틀이나 관념에 매이지않고 독자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호감이 간다」고 예고한 것을 뒷받침해준다. 김채원은 「국경의 밤」의 시인 파인 김동환과 「흉가」「탄금」등의 주옥같은 단편으로 1940년대 문단을 풍미한 여류 최정희사이의 딸로 언니인 김지원도 소설가다.본명은 「달속의 선녀」인 「항아」에서 딴 항란,문단에서는 드물게 미모의 자매로도 유명하다. ○한때 일서 교편잡아 그가 유년에 살던 집은 꽃과 나무가 많고 아침이면 꿩이 마당에 내려오던 「동숭동 낙산 바로밑의 외딴집」으로 전란에 시달린후 「왠지 지붕은 진흙같은 것을 이고 점점 무거워지고 기둥은 점점 가늘어져서 바람부는 밤이면 집은 밤새워 사력을 다해 바람과 싸워야했고」 「어머니는 매일밤 좀도둑때문에 아귀가 맞지않는 마루문에 커다란 못을 박고는 아침이면 장도리로 다시 못을 빼곤 했다」고 돌아본다.6·25가 나던해 그집에서 『아버지 파인은 인민군에게 잡혀갔고 어머니는 새벽이면 머리맡에 불을 켜놓고 글을 썼으며 그런 집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필연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그집이 우리를 품어 언니도 나도 글쓰는 사람으로 분만해 주었다』고 말한다. 한때는 절방에 누워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읽었고 이대 미대졸업후 일본에 건너가 도쿄에 있는 한국학교 미술교사,언니 김지원이 있는 뉴욕에 머물다가 다시 파리로 건너가 이응로 김창열씨등 파리화단의 화가들과 교분을 갖기도 했다.문단교류는 활발치 않으나 어머니 최정희여사가 살아계실때 그를 따르던 후배들의 모임인 정릉구락부의 이제하 김문수 서영은 김청조 김경옥 이재연 조문진 등과 친분이 있고 가족은 79년 시인 김영태의 중매로 만나 결혼한 백동규교수(아주공대 교수)와 그의 동화집 「장이와 가위손」의 「장이」인 아들 수장(고1)이 있다. 파인과 최정희의 후예답게 그는 「설익은 감을 씹듯 함부로 덤벼드는 혈기」나 「홍수와도 같은 구태의연한 이야기의 여울속에 허우적거리는 석연찮은」 여느 소설들과는 달리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투명하고 영롱한 문학세계」를 지향하여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의식있는 평자들의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한순간의 신선한 풍경 하나에도 소설을 찾아내어 「내면에 잠자고 있던 삶의 격정」을 일깨우고 「그만의 얘기,그만의 언어,그만의 접근방법으로 창의의 욕구」를 되살리는 작가다.「언제나 언어의 새로움과 소설형식면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그가 펼쳐낼 또다른 미지의 문학세계」는 시인 장석주에 의하면 「김채원이라는 작가를 가진 한국문학이 우리에게 베푸는 행복의 하나」가 아닐수 없다. 어떤 의견분분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의 소설에서 보이는 「이상스러운 차가움」,「비애에 가까운 차가움이 소설 도처에서 발견되는 때문」이며 들릴듯말듯 나지막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목소리속에 담긴 편광과도 같은 번뜩임,비실제조차 실제로 실현시키고야마는 진실을 향한 열정때문일 것이다. □연보 ▲1946년 경기도 덕소출생 ▲64년 이대부속고 졸업 ▲68년 이대 미대 회화과 졸업 ▲1972년 일본 도쿄 한국학교미술교사,도쿄(동경)대 외국인을 위한 클라스수업 ▲74∼75년 단편 「먼바다」「밤인사」로 현대문학소설 추천,도미,뉴욕 아트스튜던트리그 수업,단편 「얼음집」「자전거를 타고」「달의 손」발표 ▲76년 도불,김지원과의 자매창작집 「먼집 먼바다」(지식산업사)출간 ▲78년 귀국,단편 「밀월」「봄의 끝」발표 ▲79년 단편 「초록빛 모자」 「안개」 「나이애가라」발표 ▲1980년 단편 「가을 햇빛」 「산중기」 「묘약」발표 ▲81년 「오월의 숨결」 「물위에 어린 그림자」 「아이네 크라이네」 「오솔길로 가는 사람들」발표 ▲83년 단편 「공중에는 또하나의 다른 방이」 「가득찬 조용함」발표 ▲84년 작품집 「초록빛 모자」(나남)출간,단편 「애천」발표 ▲89년 중편 「겨울의 환」 「오후의 세계」발표,이상문학상 수상 ▲1990년 작품집 「봄의 환」(미학사)출간 ▲91년 중국여행,중편 「미친 사랑의 노래」발표 ▲92년 러시아여행,콩트집 「장미빛 인생」(작가정신)출간 ▲93년 수필집 「꿈꿀 시간 있으세요」(도서출판 전원),장편 「형자와 그 옆사람」(도서출판 창)출간 ▲94년 이라크와 지중해연안도시 여행,4인 에세이집 「사막,그리고 지중해에 바친다」(문학동네)출간 ▲95년 일본여행,작품집 「달의 몰락」(청아출판사)출간 ▲96년 장편창작동화집 「장이와 가위손」(한양출판)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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