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민군
    2025-12-3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42
  • 북 권력재편… 군부 급부상/새주석단 서열

    ◎김영주 4위­강성산 8위 “건재” 북한의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25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 권력의 재편을 드러내는 새로운 주석단 서열과 함께 그동안 실각된 것으로 알려졌던 강성산과 김영주가 참석해 주목된다. 평양방송이 보도한 새주석단 서열에는 호위사령관 이을설과 총정치국장 조명록,총참모장 김영춘의 서열이 지난 1월 금수산궁전 참배서열 9·10·11위에서 5·6·7위로 급부상해 군부의 권력전면 부상이 두드러졌다. 이와함께 부주석 김영주와 강성산이 각각 서열 4위와 8위로 호명돼 아직 건재함을 나타냈으나 평양방송은 주석단 서열에 강성산의 공식직함은 밝히지 않아 그가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식량 지원 등 전제돼야/북,4자회담 참석주장

    【워싱턴 연합】 북한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외교적 승인,대규모 식량지원 등이 이루어질 경우에만 4자회담에 참석할 것이라는 방침을 북한 관리들이 확인했다고 미국 CNN방송이 평양발 기사로 25일 보도했다. CNN방송은 이날 북한의 인민군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 광경과 이 행사에 참석한 김정일의 모습 등을 자세히 보도하고 이같이 전했다.
  • 북 대규모 군퍼레이드/인민군 창건65돌 기념식

    북한은 25일 평양에서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인민군 창건 65주를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 열병식을 진행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 중앙통신은 이날 열병식에 인민군 근위부대와 각급 군사학교,노농적위대,붉은청년 근위대들이 참가했으며 김정일이 열병식 시작을 알리는 군총참모장 김영춘의 보고를 받고 손을 높이 들어 열병부대에 답례를 보냈으며 김정일의 연설은 없었던 것으로 전했다.
  • 한국근로자에 파업 촉구(북녘 뉴스라인)

    북한 노동신문은 28일 한국 각 산업체의 봄철 임금협상을 앞두고 『근로인민들의 살길은 투쟁뿐이다』『완강한 투쟁으로 본때를 보여야 한다』 등 선동성 구호를 외치며 근로자들의 파업과 투쟁확산을 부추겼다. ○수출품 많이 만들기 운동 북한은 30일 각 도 무역관리국의 수출품생산기지 조성사례를 부각선전하면서 각지 무역관리국 근로자들에게 수출품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갈 것을 촉구했다. ○차량 연료절약 사례 선전 북한은 최근 잡관목 등 흔한 원료를 이용,농기계와 각종 운반차량 연료를 제조한 사례를 선전하며 각 군 및 생산단위들에 이를 본받아 연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집단체조 7백여회 공연 북한은 해방후 지난 50년간 「노동당의 기치따라」 등 50여편의 집단체조를 창작,7백70여회의 공연을 가졌다고 평양방송이 30일 보도했다. ○인민군 열병식메달 제정 북한은 최근 조선인민군 창건65주(4·25)를 앞두고 인민군 「열병식 기념메달」을 새로 제정했다고 관영 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임흥지구 644세대 건설 평양 중앙방송은 최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인근에 위치한 임흥지구에 6백44세대분의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FAO와 수해지원 합의 북한은 1일 유엔 산하기구인 식량농업기구(FAO)와 농업부문의 홍수피해 지원문건에 합의했다고 관영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남북 종교단체 회의 제의 북한은 최근 한국의 각 종교단체들에 편지를 보내 종교단체들간 접촉을 갖고 「남북 및 해외 정당·단체 연대회의」소집문제를 토의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중앙방송이 3일 보도했다. ○유휴 자재수집 할당제로 북한은 최근 원료와 자재난으로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실정임을 고려해 직장이나 작업반·개인별로 일정량의 유휴 자재 수집량을 할당,완수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 작년 봄 함흥서 불발쿠데타”/도쿄신문 보도

    ◎주동 이하일 차수 체포 북한 경제난 가중에 따라 북한내에 김정일체제에 반대하는 저항세력들이 늘고 있다는 설이 나도는 가운데 일본의 도쿄신문은 4일 북한 인민군 고위간부인 이하일 차수가 작년 여름 쿠데타 음모에 관련된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의 극동 소식통을 인용,작년 봄 함경남도 함흥의 제7군단 간부 및 장병들이 식량난 등으로 김정일체제에 불만을 갖고 쿠테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했으며 이와 관련,의심을 받고 있던 이차수가 작년 여름 이을설 원수가 지휘하는 정보기관에 체포됐다고 블라디보스토크발로 보도했다. 이차수는 체포 당시만 해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국방위원을 맡고 있던 군 고위간부중 한사람이었다.
  • 청년동맹,군 버금가는 실세 부상

    ◎95년말 5백만명… 1비서 최용해 「3인자」설/김정일도 관련행사마다 만사 제치고 참석/올 하반기 권력승계 앞두고 돌격대역 맡을듯 군다음은 청년동맹­.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약칭 청년동맹)과 청년동맹을 이끌고 있는 제1비서 최용해(49)의 비중이 날로 무거워지고 있다.이같은 사실은 김정일이 청년동맹 관련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최용해가 김정일의 군부대시찰및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고 있는 사실에서 인지되고 있다. 또 북한이 인민군 다음으로 청년동맹을 중시하고 있음은 이 조직의 공식명칭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 김일성의 이름을 넣은 데서도 충분히 시사되고 있다.북한의 청년동맹에 대한 이같은 관심표명은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절대적으로 긴요한 사회 정치적 안정과 경제건설에 젊고 힘있는 청년동맹원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절실히 필요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청년동맹을 『혁명과업을 직접 계승하는 청년들의 혁명적 조직이자 당의 전투적 후비대』로 규정하고『반봉건적 민주주의혁명과업 실현과 사회주의,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을 그 역할로 내세우고 있다.행정및 생산단위별로 조직되는 청년동맹의 95년말 기준 맹원수는 약 5백만명.이같은 청년동맹원수는 약 2천3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북한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하는 것이다.여기다 청년동맹 산하단체인 만7∼13세까지의 소년소녀들로 조직된 조선소년단 단원 3백만명을 포함하면 그 수는 무려 8백만명으로 늘어나고 전체 인구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약 35%로 높아진다. 엄청난 규모와 영향력에 걸맞게 북한은 지난헤 1월19일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명한 후 1년동안 이 조직에 대한 사상교육과 선무활동을 비중있게 전개해왔다.북한이 청년동맹원들에 대한 사상교육과 선무활동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당면한 정치 경제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맹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청년동맹에 대한 사상교육은 동맹원들이 『항일혁명세대들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아 주체혁명위업과업달성에 앞장 설 것』을 촉구하는 가운데 ▲김정일에 대한 충성유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선봉대 돌격대로서의 역할 강화 ▲사회주의 체제고수를 위한 예비 전투대 별동대로서의 역할 제고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은 청년동맹원들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1년여동안 매주.매월별로 사상교양계획을 수립,이를 추진해왔다. 아울러 체제고수를 위한 전투 예비대 별동대 교육도 실시되고 있다.북한은 청년동맹원들을 혁명적으로 키우는 것은 『혁명의 장래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청년동맹을 「김정일 붉은기 사상」으로 일색화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따라 청년동맹원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노력도 다각도로 기울여지고 있다.그중의 하나가 상훈 수여다.북한은 지난해 2월2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린 전국대학생대회 참가자및 대학생 수십명에게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수여했고 지난 1월에는 청년동맹 선포1주를 맞아 순천지구 2.8직동청년탄광,이용상 소속 구분대,김일성종합대학 등 청년동맹조직과 맹원들에게 김일성청년영예상을 무더기로 수여했다. 김정일은 지난해 1월19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사로청대표자회 폐막식에 참석한데 이어 청년동맹 일꾼 및 모범 동맹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으며 3월6일에는 새로 구성된 청년협주단공연을 관람했다.올들어서도 김정일은 지난 1월2일 인민군 청년기동대선전대원들을 접견한데 이어 2월4일에는 청년동맹 선포1주를 맞아 기념행사로 열린 청년협주단 경축공연을 관람하는 등 청년동맹활동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청년동맹의 제1비서 최용해는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활동을 함께 한 최현의 아들로 최근들어 김정일의 현지시찰에 자주 동행,김정일의 실세로 분류되고 있다.나이는 김정일보다 아래지만 매우 절친한 사이로 북한에 정통한 일부 소식통은 최를 김정일의 매제이자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장성택에 이은 No.3맨으로 평가하고 향후 그의 거취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최는 청년동맹의 전신인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중앙위원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하반기 1비서로 승진했다.
  • “식량난 해결이 제1과제”/김정일 비밀연설

    최근 북한은 무정부상태가 조성될 정도로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으며 김정일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난 해결을 제1의 과제로 설정,행정조직과 당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월간조선이 지난해 12월7일 평양의 한 비공개모임에서 행한 김정일의 연설내용을 입수,4월호에 게재한데 따르면 김정일은 『지금 어디에나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차 넘치고 있으며 인민군대에도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북한 인민무력부장 최광 사망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최광이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북한 중앙방송이 22일 보도했다. 중앙방송은 최광 동지가 급병 심장마비로 2월21일 8시30분 78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는 것을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에게 알린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 2면〉 북한은 부고에서 최광의 장례를 국장으로 하고 김정일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85명의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25일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 북경 곳곳 줄잇는 애도 인파/등소평 사망­중국 표정

    ◎소요사태 우려 인민군 비상경계 돌입/중 국영방송,조전소개때 「김정일」 생략 ○…등소평 사망 3일째인 21일 북경은 곳곳에 조기가 게양되고 천안문광장에 등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짓는 것외엔 외견상 평소와 큰 차이가 없는 평온한 모습을 유지.그러나 홍콩신문들은 소요사태 발생을 우려,인민해방군이 비상경계에 돌입했으며 북경을 수비하는 북경 위수사령부는 장병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병력을 소집,출동대기 상태에 들어갔다고 보도. ○…장례를 소박하게 치르라는등의 등의 유언이 밝혀지자 중국국민들은 한결같이 등은 역시 죽어서도 영웅이라고 감격을 표시.등의 미망인 탁림과 5명의 자녀들이 지난 15일 당중앙으로 보낸 등의 유언은 ▲유해 고별의식을 거행말라 ▲화장후 추도대회를 거행하되 유골함은 당기로 덮고 그위에 사진을 걸것 ▲집에는 빈소를 설치하지 말것 ▲각막을 기증하며 유체는 해부해 의학연구용으로 사용하라 등이다.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이미 지난 10일부터 뇌사상태에 빠져있었다고 도쿄신문이 중국의 믿을 만한 소식통을 인용해 21일 보도. 이 신문은 등의 사인이 파킨슨씨 병과 폐감염증 합병증이라고 발표됐으나 북경시내 301 군병원에서 춘절(구정)전인 지난 10일 등의 뇌기능이 정지해 기계로 심장을 움직이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은 당대회인 전국대표대회를 원래 예정보다 앞당겨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홍콩 경제일보가 21일 보도.이 신문은 북경의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중국 공산당이 등소평 사후 강택민 총서기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15차 전국대표대회(15전대회)를 당초 예정한 오는 11월 이전에 개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중국국영 중앙TV는 21일 상오7시 뉴스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위로전문을 하시모토 일본총리,클린턴 미 대통령 등에 이어 6번째로 소개,반면 김정일이 보낸 위로전문은 쿠바·베트남·미얀마 등과 함께 도매금으로 소개되는데 그쳤으며 그나마 김정일이라는 이름도 거론되지 않았다.
  • 황장엽 망명­56년 저서 「사회발전사」

    ◎초기이론 김일성 우상화 내용 없어/정치·경제 등 민주적 절차를 강조/남녀평등론 등 개혁 필요성 역설 북한의 사상적 지주이자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북한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학자로 널리 알려진 황장엽비서의 초기 이론전개에는 김일성 우상화나 신격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주적 절차를 강조했던 것으로 13일 미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의 저서 「사회발전사」에서 밝혀졌다. 황은 1956년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은 물론 일반 지식층의 정치학습용 교재로 펴낸 이 책에서 북한건설의 견인차가 될 4요소를 「인민정권」「인민군대」「조선노동당」「김일성 원수」 순으로 지적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각분야에서의 생활이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개조되는 것과 이를 위한 남녀평등권 노동법령 등 일련의 민주주의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정치의 「고전」으로 알려진 이 책은 170페이지 분량으로 도쿄 천대전구 부사견에 위치한 조선노동당의 도쿄 소재 출판사인 학우서당에서 출판된 것으로김정일을 비롯,노동당 역사연구소장 강석승 등 50,60년대 황의 강의를 들었던 현 북한지도층들이 재학당시 교재로 배운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특히 40년동안 저자의 사상적 고뇌가 정치적 망명이라는 「백기투항」으로 결말지어진데 대한 북한정치사상의 과오를 비교해볼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사회는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발전하여 왔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1장 「인류사회의 발생과 인류의 첫사회­원시공동체사회」,제2장 「계급사회」,제3장 「사회주의 사회 및 공산주의 사회」의 3개 장으로 나뉘어 국가사회 발전과정을 설명했으며 북한의 건설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황이 최근 망명과정에서 편지와 석명서 등을 통해 밝힌 사상적 동요 내용들과 이 책에 나타난 그의 초기 견해들을 비교해 본다. 〔북한과 같은 1인 독재,세습체제가 없다〕:부르좌들과 그의 앞잡이들은 인류역사는 어떤 위대한 인물(왕이나 영웅)이 변화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것은 통치계급의 지배를 강화하며 근로 대중의 힘을 무시하고 그를 억제해 보려는 수작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정반대로 전체 근로 인민들이 행복스럽게 살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 명백하다. 〔북한은 노동자와 농민이 굶주리고 있다〕:우리의 투쟁은 정치,경제,문화 각방면에서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공화국 북반부에서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어 갔다. 〔북한은 봉건주의나 마찬가지다〕:자본가들이 영도한 부르좌혁명은 철저하게 봉건적 잔재를 숙청할수 없었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그들의 혁명적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봉건세력들과 협력하게 됐다. 〔북한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된 암흑의 땅이다〕:공산주의 사회에 가면 문화가 최고도로 발전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본질적 차이가 없게 된다.특히 기계가 고도로 발전되어 적은 시간 일을 하고도 더많은 생산물을 얻을수 있으며 따라서 여유시간을 즐길수 있게 된다. 한편 황은 이 책에서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 사회를 이미 완전히 건설한 소련 인민은 현재 벌써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면서 최고의 이상향으로 소개해왔기 때문에 그같은 소련의 붕괴는 그의 이론을 뿌리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북한이 인민민주주의를 건설할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튼튼한 민주기지가 있고 김일성 원수의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인민군대와 조선인민을 승리에로 조직 동원하는 조선노동당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제국주의자들이 제아무리 낡은 자본주의제도를 옹호,유지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다하여도 그 멸망은 피할수 없으며 사회주의 진영은 반드시 승리하고 착취없고 행복스러운 근로자들의 사회인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전 지구상에 건설될 것은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 망명 김덕홍씨/막내삼촌 서울에 산다

    ◎67세 김학순씨 “영리하고 튼튼했다” 회고 『튀어나온 입하며 이마가 나와 똑같아.우리 덕홍이가 분명해』 지난 12일 저녁 TV뉴스를 지켜보던 김학순씨(67)의 얼굴은 순식간에 상기되었다.김씨는 황장엽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같이 북경 한국총영사관에 망명한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인 김덕홍씨(59)의 막내삼촌. 현재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 335의 7 명지연립 202호에서 부인 김영애씨(65),큰아들 은철씨(39) 내외와 손자 등 5명이 살고있다. 김씨는 『3남1녀중 셋째인 덕홍이는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튼튼했다』고 회고했다.김씨는 김덕홍씨가 거물급 인사라는 사실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김씨는 그러나 『만약 김덕홍이가 조카가 맞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가 고향 신의주 고관면 중단리 화암골을 떠난 것은 6·25전쟁이 나던 지난 50년.가족중 유일하게 기독교신자던 김씨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인민군에 입대했다.김씨로 인해 가족은 늘 당국으로부터 감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반공포로로거제도에서 석방된 뒤 김씨는 당시 감리교 대전신학교를 마치고 황해도 연백에서 월남한 실향민 부인 김씨와 56년 결혼했다. 그뒤 김씨는 목사로 목회활동을 해오다 지난 94년 강원도 도계 도계감리교회 목사직을 은퇴했다.KBS의 이산가족찾기운동에도 손길을 뻗쳤지만 가족의 생사는 확인할 수 없었다.
  • 재러 고려인협회 초대부회장 역임 허진씨 별세

    재러 고려인협회 초대 부회장을 지낸 허진씨(본명 허웅배)가 뇌출혈을 일으켜 그동안 거주해 오던 모스크바에서 지난 5일 숨을 거뒀다.향년 68세.경북 구미출신으로 일제시대에는 중국에 거주하다 47년 북한으로 건너간 허씨는 6·25때 인민군 중좌로 참전했다.종전후 소련유학길에 올랐다 망명의 길을 택한 허씨는 이후 익명으로 유명한 저서 「김일성 평전」을 펴낸 바 있다.허씨는 한·소 수교이후 한국측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북한망명자들의 단체인 구국동맹의 상임위원으로 활약해 왔으며 모스크바 유라시아 국제대학교 이사장을 지내왔다. 유족으로는 독립운동가 후손인 미망인 최선옥 여사(63)와 1녀가 있다.발인은 7일 상오.유해는 귀국한 뒤 왕산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720­7444.모스크바 001­7­095­150­7981.
  • “군의 총창위에 사회주의 운명있다”(북의 말말말)

    인민군대의 총창위에 사회주의 운명과 부강조국이 있다.우리를 건드리는 자들은 추호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1월1일 신년공동사설,사회주의 고수를 촉구하며〉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어나가고 농민들의 지향과 자체의 실정에 맞게농사를 지어 쌀풍년 고기풍년을 마련하자〈1월1일 신년공동사설,농민들에 쌀증산을 요구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불신과 대립은 「승냥이와 양의 관계」로 결코 해결될 수 없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96 12월30일 노동신문,주민들의 자본주의 성향에 대해 경고하며〉
  • 김정일,연말 군부대 방문

    【도쿄 연합】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은 구랍 31일 군부대를 방문,병사들을 격려하는 등 매우 드물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일본의 NHK방송이 3일 방영한 비디오테이프에서 밝혀졌다. 이 테이프는 김정일이 군부대를 방문해 자동소총과 권총을 직접 사격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한편 북한 관영 중앙통신(KCNA)도 2일 김정일이 인민군 938부대를 찾아 훈련과정과 시설들을 둘러본 뒤 쌍안경 2개와 자동소총 1정을 선물하고 병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 북,민족공동 역량만이 돌파구(사설)

    지난 1일 당기관지인 「노동신문」,군보인 「조선인민군」,청년보인 「노동청년」 등 3개 신문 공동사설로 발표된 북한의 신년사는 우리를 또 다시 실망시켰다.대화재개등 남북관계개선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 채 올해가 김일성사후 3년상이 되는 해임을 강조하면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더욱 다그쳐나가자」는 시대역행적인 메시지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신년사에서 식량난해결을 최우선과제로 제시했다.그러나 새로운 정책대안은 내놓지 못한 채 「김일성 유훈 통치」에만 매달리고 있다.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은 50년이상 계속된 공산통치가 실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낙후된 농업정책의 개선을 모색하는 한편 우리정부와 협력,민족의 공동역량으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개선이 가장 빠른 길이다.우리민족의 일을 우리민족끼리 풀지 못하고 외세에 의존하는 것은 북한당국이 걸핏하면 내세우고 있는 「주체사상」과도 어긋나지 않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북한당국은 올 신년사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우리정부를 「괴뢰」라고 지칭하면서 원색적인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그런가 하면 미국에 대해서는 「새로운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을 강력히 촉구했다.이것은 우리정부를 배제한 채 핵문제·식량난 등 모든 현안을 미국만을 상대로 협상하고 대화하려는 그들의 집요한 대외정책을 올해도 답습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없고 실질적인 남북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남북한은 이제부터라도 당국간의 대화를 통해 민족끼리의 현안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북한당국이 남북기본합의서정신을 되살려 같은 핏줄끼리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 적극 나서주기를 거듭 촉구한다.우리정부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 북 잠수함 침투로 “초긴장”/96 정치결산­얼어붙은 남북관계

    ◎4월엔 판문점 무력시위… 민간 경협도 중단/국제 여론에 밀린 북의 사과발표로 새국면 1996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90년대 들어 최악의 상황으로 기록된다.지난해 대북 쌀지원 과정의 앙금으로 연초부터 위태위태하게 시작된 남북대화 및 교류는 4월 북한인민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에 이어 9월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꽁꽁 얼어 붙었다. 남북관계의 결빙은 북한의 체제에 대한 위기와 2년째 계속된 수해로 인한 식량난 등에서 비롯된다.북한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미·북,미·일 관계개선 등 대외관계 개선쪽으로 눈을 돌렸고 남북긴장관계의 지속이 대외관계 개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유인전략을 계속했다.결국 국제사회의 여론에 밀린 북한이 이례적으로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함으로써 일단 남북관계 복원의 물꼬는 텄다.그러나 북한이 4자회담을 전제로한 3자설명회에 어떻게 나오느냐 등 태도변화에 따라 새해 남북관계도 크게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96년 시간대별 남북관계를 보면 북한은 1월 열린 정당·단체연석회의에서올해를 「민족평화 대단결의 해」로 결의,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였다.따라서 우리측에서도 1월말 한적 주도로 제3차 대북물자지원을 재개하는등 이에 호응했다. 3월 중순,북한은 전금철 명의의 팩스를 우리측에 보내 지난해 9월 중단됐던 남북 베이징 접촉을 재개하자고 제의해 왔다.이에 우리 당국은 북한의 대남 비방등 이중전략을 거론하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4·11 총선」을 며칠 앞둔 4월4일 북한은 느닷없이 비무장지대 관리 업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3차례에 걸쳐 중무장 군인들을 비무장지대 무력시위에 동원,긴장관계를 고조시켰다.우리 당국은 이를 미·북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평가했다. 긴장관계는 6월11일 우리 정부가 북한에 3백만달러 규모의 식량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다소 호전되는 기미가 보였다.북한도 남북대화에 유화적인 내용의 조평통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이에따라 남북적십자사는 7월말에서 8월초까지 수해로 각각 떠내려온 시신을 송환하는등 한때 빈번한 연락관 접촉을 가졌다.남북경협도 북한이 나진·선봉 투자포럼(9월13일∼15일)에 우리를 초청하고 당국도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한때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그러나 9월초 막판에 우리측 참가자를 선별 초청함으로써 찬물을 끼얹었다. 9월18일 강릉해안에서 발견된 북한의 잠수함과 무장공비침투는 지금까지 살얼음판을 걷듯 유지해온 남북관계를 완전 결빙상태로 되돌려 놓았다.우리 정부는 잠수함사건에 대해 북한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시인 및 사과가 있으면 대북지원 등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북한은 국제사회의 여론과 내부의 경제난 등에서 탈출하기 위해 12월 29일 무장공비사건에 대해 공식사과했다. □96,남북관계 일지 ▲1월 25일=한적,3차 대북물자 지원(라면 10만개). ▲3월 20일=북한,전금철 명의의 남북 베이징접촉 제의 팩스 발송. ▲4월 4일=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 관련 임무포기 선언. ▲4월 5∼7일=북한군,판문점에서 3차례 무력시위. ▲4월 16일=한·미 정상,북한에 4자회담 제의.▲5월 23일=북한,경비정 5척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6월 11일=정부,북한에 3백만달러 지원 발표. ▲8월 12일=정부,북한 나진·선봉 투자포럼 참가기업 발표. ▲8월 15일=김영삼대통령,광복절 경축사 통해 전향적 대북정책 천명. ▲9월 10일=정부,북한의 선별초청에 따라 나진·선봉포럼 불참 결정. ▲9월 13일=남북한,북한 영공 한국 민항기에도 개방키로 합의.북,나진·선봉 포럼 개최. ▲9월 18일=북한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 발생. ▲11월 20일=북한,판문점 북측 연락사무소 잠정 폐쇄. ▲12월 29일=북한,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 공식 사과.
  • 김정일 권력승계 작업 박차/잇단 충성집회속 대대적 생일 준비

    ◎전문가들 “내년 10월10일 취임” 관측 북한은 김일성 사망 2주년이었던 올해에도 김일성 우상화작업을 계속해온 가운데 최근들어서는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위한 정지작업을 병행해서 벌이고 있다.북한은 최근 각급 집회를 통해 김정일에 대한 충성과 옹위를 서약하는 한편 내년 2월 김정일의 55회생일(2월16일)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를 계획 아래 안팎으로 준비작업을 시작하는 등 김정일의 권력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8일 평양에서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 5주(12월24일)를 맞아 중앙연구토론회를 열고 전군·전민이 김정일을 옹호하는 「방패」·「총폭탄」이 될 것을 촉구했다.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김일성군사대학,김일성정치대학,노동신문사,노동당출판사,조선인민군신문사,사회과학원 등 각기관들의 대표자가 나와 「김정일의 군사부문 영도」를 주제로 한 토론을 벌이며 충성분위기를 부추겼다.평양방송은 『김정일을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 5돌을 맞으며 수많은 각계층 근로자들과 인민군 장병들이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을 찾고 있다』고 전하고 지난 5년동안 5천여명의 외국 방문객과 50여만명의 군장병 및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방문했다고 선전했다. 이 방송은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을 찾은 군장병등 각계각층의 근로자들이 『김정일의 영도를 받고 있는 한 언제나 백전백승한다는 철의 신념을 간직하고 조국의 방선을 금성철벽으로 지켜나갈 충성의 결의를 굳게 다지고 있다』며 김정일에 대한 북한군의 충성을 강조했다.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지난 기간동안 군부문 현지지도시에 내린 지침·과업 등 각종 「사적」들이 수집,전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달초부터 청소년학생과 근로자·군인들을 동원해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과 같이 김정일의 군부「지도력」을 과시하는 사적관들에 대한 방문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최근에는 기념우표 발행과 함께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우상가요「조선의 장군」을 창작,보급하고 있다.또 올들어 주요 촬영소에서는 김정일의 「은덕」「영도력」「충성배가」등을 주제로한 극영화를 대량 창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지난달 말 덴마크에서 「김정일동지 탄생 55돌 경축행사준비위원회」를 결성한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주재 북한대사 손성필이 참석한 가운데 「김정일동지 탄생 55돌 경축행사 러시아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내년도 김정일의 생일행사는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5주,10주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인데다가 공식적인 권력승계절차 등과 맞물려 그 어느때 보다도 더 요란하게 치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들어 더욱 빈번해진 김정일의 「현지지도」시찰은 이들 충성모임과 연계돼 이른바 「대를 이은 충성」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지난 11일 평양에서는 「여맹」(여맹·위원장 김성애)중앙위 제5기24차 전원회의를 개최,여맹원들을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충신 효자」로 만들 것을 촉구한데 이어 13일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궐기모임을 열고 전체 교직원·학생들에게 김일성·김정일만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충신·효자가 될 것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최근 북한전문가들 간에는 북한의 김정일은마침내 94년의 김일성사망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는 당총비서직에 공식취임,명목상의 권력공백기를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그러나 김정일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또하나의 최고위직인 국가주석직은 보다 의례적인 자리로 격하시켜 다른 사람에게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문제 분석가들은 전망하고 있다.최근 북한을 다녀온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문제와 관련,▲김정일의 이례적으로 잦은 공석등장 ▲11월 24일의 판문점 방문 ▲매우 빈번하고 공식적인 충성다짐대회 ▲북한 관영매체들의 암시등을 예거하면서 북한은 의미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북한문제 분석가들은 97년 9월9일의 노동당 창당기념일 등이 김정일의 최고위직 공식 승계일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우리 정부의 한 당국자는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문제와 관련,대내외여건이 정비된 시점에서 김정일 자신이 선택할 것 같다고 내다보고 『3년상이 끝나는 97년 하반기 이후 제7차 당대회 및 제10기 최고인민회의의 개최와 더불어 승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 북한은 주민 가둬놓은 감옥(사설)

    북한은 무너져가는 하나의 커다란 감옥임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17명이나 되는 일가족이 한꺼번에 북을 탈출하는 기록을 세운 김경호씨일가의 증언,그리고 군 관계자의 브리핑에 따르면 북한동포는 굶주림 외에 잇따른 주민의 탈출과 동요에 자극받은 북한당국의 감시와 억압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주민은 식량난으로 지난 1월이후 식량배급을 받지 못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종전 귀순자들과 일치하는 김씨일가의 증언이다.사회주의체제에서 식량배급이 끊기면 주민은 끼니를 이을 방도가 없다.살림도구를 암시장에 내다팔아 연명하고 형편이 나아 여분의 식량을 숨겨놓은 친척 신세를 지는 것도 하루이틀이다.결국 야산의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생명을 연장하며 먹을 것을 찾아 정처없이 헤맨끝에 중국 접경지대로 몰려든 유랑민이 급증했다는 것이다.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이들 상당수가 얼어붙은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땅으로 탈출하고 있다.굶주림에 지친 주민은 차라리 전쟁이 일어나 기아의 고통을 끝내주기를 바란다는 끔찍스러운 증언이다. 북한지도부는 백성은 먹여살리지 못하면서도 「남한과 미제의 침략」을 들먹이며 강력하게 양성해놓은 인민군을 동원해 동요하는 주민을 탄압하고 탈출을 차단하느라 바쁘다.우리 군 관계자도 북한이 최근 평북 신의주,함북 청진 등 4개소 외에 함북 선봉에 국경경비여단을 신설하고 경비초소도 대폭 증설하는 등 주민 탈출봉쇄에 인민무력부가 총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처럼 심각한 식량난과 주민동요를 언제까지 버텨나갈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극심한 식량난 등 어려움에 처한 북한지도부가 정권유지를 위해 언제 또 다시 발악적 대남도발행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경고가 그 어느때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다.
  • “인간답게 살려고 목숨걸고 남행”/탈북일가 회견­일문일답

    ◎지나 1월이후 식량배급 완전히 중단/국경감시 11월부터 인민무력부 투입/전쟁물자 100% 완비… 군엔 외제담배 지난 9일 귀순한 김경호씨(61)일가족은 17일 상오10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사회의 삶에 염증을 느꼈으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귀순했다』고 말했다. 일문일답 내용을 간추린다. ­남한으로 오기까지의 정확한 탈출경위는. ○남한출신이라고 천대 ▲최현실=남편 고향이 남한이라 평소 천대와 감시를 받았다.또 평양에서 함경북도 회령으로 추방된 뒤에도 계속해서 이런 천대와 감시를 받아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됐다.부모님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된 뒤 편지와 사진을 주고 받았다.지난 7월에는 어머니로부터 중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인편을 통해 전해 받았다. 이어 48년만에 어머니를 중국에서 만나 『한국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탈북 권유를 받고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자녀·사위들과 인간답게 살기로 의견을 모은 뒤 북한을 탈출했다. ­회령지역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는데. ▲최현실=식량사정은 북조선이 전반적으로 다 어렵다.지난 1월 식량배급이후 지금까지 중단됐다.병원이나 학교 교원들도 상오 근무만 하고 식량구입을 위해 시장으로 나간다. ○결핵·간염 사망자 많아 ­굶어죽는 사람을 보거나 들은 적 있나. ▲최현실=굶어죽는 경우는 직접 보지 못했다.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강냉이·풀뿌리 등으로 연명해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다.때문에 결핵·간염·영양실조로 죽는 경우가 많다. ­탈출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비는. ▲김명숙=두만강을 건널 때와 동남아 국가(홍콩을 지칭)에 있을 때였다.아버지 지병의 재발과 철없는 아이들이 두만강을 건널 때 소리를 내지 않을까 매우 긴장했다. 또 홍콩에 있는 것이 비밀인 줄 알았는데 현지 신문과 TV에 우리의 탈북경위와 목적지까지 자세히 보도돼 안전이 걱정됐다.그뒤 2∼3일동안 잠도 이루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한국행 비행기안에서도 긴장했으나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월남가족 군입대 못해 ­올 겨울 추위와 식량난으로 탈북할 사람이 많다던데. ▲최영호=많은 북조선 주민이 식량난 등 여러사정으로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오고 싶어한다.그러나 최근 탈북자들이 늘어나자 지난 11월부터 국경수비를 강화,국가보위부 대신 인민무력부가 맡고 있다.따라서 탈출하고 싶어도 주민들이 선뜻 결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전쟁준비 실태는.전쟁 가능성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은. ▲김일범=일반 가정에서는 생필품이 매우 부족한데 반해 양식과 피복 등 전쟁물자는 100% 갖추고 있다.또 김정일은 최근 군인의 사기를 북돋운다는 차원에서 외제담배를 수입해 군인에게 지급했으며 정치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당간부나 상인 등 잘사는 상류·중류층 주민은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쟁이 나길 원치않으며 가능성도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못사는 하류층은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서 빨리 조국통일이 돼 배불리 먹기를 바라고 있다. ­월남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차별을 받았나. ▲김성철=학교를 졸업하면 인민군 입대·대학·사회 등 세가지 진출이 가능하다.그러나 나는 월남가족이라는 이유로 군대와 대학은 갈 수 없어 시계수리공이 되는 사회진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회령시 안전부 노무원 최영호씨에게)김씨 일가족과는 어떤 관계이며 이번 탈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최영호=맏아들인 금철씨와 친구 관계다.탈출하기 6일전에 금철씨가 찾아와 북한을 탈출하려고 하는데 도와 달라고 해 같이 탈출하기로 결심했다.특히 전가족이 탈출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탈출을 돕게 됐다. ○최영호·금철씨는 친구 특히 내가 두만강 주변에서 군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경비상황·지형·위치·교대시간을 잘 알고 있어서 성공적으로 탈출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 ­북한 변경지방 등에서의 시장 형성과 상거래는 어떤가. ▲박수철=회령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장마당이 서있다.원래 10일 간격으로 장마당이 열렸으나 지난해 7월부터 식량난으로 매일장이선다.또 규모가 커져 농산물을 포함,각종 설비·이불 등 세간살이도 거래되고 있다.사람이 많다보니 전문적인 홀치기꾼(소매치기)이 설치고 있다.이 때문에 옷장사를 하는 사람은 옷가지를 동여매서 훔쳐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장마당에 나오며 전직 공무원들과 간부의 부인들도 있다. ­월남자 가족으로서 북한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나. ▲최현실=남편은 고향이 남한이라는 이유로 무슨 임무를 받고 왔느냐는 등의 감시를 받아왔다.남편은 당으로부터 다른 월남자 가족을 감시하라는 과업을 받았으나 거절하자 감시와 멸시를 받았다.나도 동생이 정치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지난 76년에 회령으로 추방돼 감시를 받았다.또 김일성사망시 웃음소리가 집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회령시장에게까지 보고돼 조사를 받았다.김일성이 사망했을때 어느 집에서 몇번이나 애도를 하는지 국가보위부에서 감시하기 때문에 억지로 애도했다.꽃다발을 김일성동상앞에 헌화하고 우는 척도 했다. ▲김명숙=아버지는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서울 이태원이 고향이라며 「내가 살아 못가면 통일이돼서 가족들과 함께 가보라」고 하는 등 고통을 당할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시며 우시곤 했다.그 때마다 아버지와함께 고통을 받았다.진정으로 북한과 동화될 수 없었다. ­북한의 의료시설 수준은. ▲최현실=종합진료소 등 의료시설이 있다.그러나 병원에는 약이 없어 의사는 진단만 할 뿐 치료는 하지 못한다.필요한 약은 개인이 시장에서 구입해 쓴다. ­서울 나들이에서 북한과 가장 다르게 느낀 점은. ○기운옷 입는사람 많아 ▲이혜영=백화점·식당·시장 등을 둘러볼 때 만난 사람들이 모두 웃는 얼굴에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그때마다 눈물이 났다.북한에선 옷이 없어 기운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또 백화점에 희귀한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북한 같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맞을 것이다. ­해군 서해함대사는 어떤 곳인가. ▲김일범=지난 86년부터 93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해군사령부에 소속된 서해함대라는 뜻으로 남침 지점으로 지정된 곳에 해상육전대를 승선시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 ○최고급 김일성별장 ­창성특각은 어떤 곳인가. ▲박수철=압록강 호숫가에 있는 김일성별장이다.74년부터 85년까지 그곳에 근무할때 김일성은 통상 5월부터 7월사이에 왔고 40일 정도 머물렀다.김정일도 가족들을 데리고 와 1주일 정도 머물다 갔다.그곳은 일반주민들의 생활 처지와는 다르게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최고급으로 꾸며졌다.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대부분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일가족중 여자들의 직업이 무직으로 돼 있는 까닭은. ▲김명숙=북한 여성의 50%는 일을 한다.처녀 때는 100% 직업이 있다.결혼을 하면 대부분 가정에서 가사일을 하지만 나머지는 직장을 다니기도 한다.그러나 지금은 직장에서 배급표만 받고 노임이 없어 기술·학교·병원일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 북경에서 관광을 하고 사진을 찍는 등 탈북자로 보기에는 너무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김금철=목숨을 건 북한탈출에 성공한 뒤 연길과 심양을 거쳐 북경에 들어왔을때 너무나 걱정이 많았다.그러나 중국 공안당국이 이상하게 볼까봐 일부러 연길에서 온 조선족 관광객으로 가장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일반 주민이 왜 전쟁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김명숙=전쟁에 대한관점에는 세가지가 있다.전쟁을 겪은 세대는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TV를 갖고 있는 간부 계층은 국내외 사정에 정통하기 때문에 전쟁을 해서 이로운 점이 없다고 생각한다.일반 주민은 남한때문에 군비에 많은 물자가 투입돼 못살고 있고 통일만 되면 잘살수 있다고 교육을 받고 있다.그래서 앉아서 굶어죽으나 전쟁이 나서 죽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전쟁이 터지기를 바라고 있다. ­남한 주민에 대한 실상을 알고 있었나. ▲김명숙=북한당국은 보도를 철저히 통제해 왜곡된 보도를 많이 한다.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면서도 TV를 통해서는 행복하고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허위보도를 하고 있다. 또 남한인민은 인정미가 전혀 없고 남한에는 모든 문화유산들이 말살됐다고 교육을 받았다. ▲김일범=북조선이 못사는 것은 미국이 북한의 경제를 봉쇄하고 우리가 둘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라고 교육받았다. ­북한의 혼례풍속은. ○혼수는 여자가 부담 ▲최현실=약혼식때 남자가 여자에게 옷한벌·화장품 등을 사주는 정도이며 모든 혼수는 여자가 부담한다.결혼식은 집에서 치른다. ­해외친지의 경제적 도움은. ▲최현실=92년 8월쯤 부모님이 미국에 살고 계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이후 한번에 5백달러씩 보내줘 생활에 큰 보탬이 됐다.그러나 당국이 이 돈을 한꺼번에 찾지 못하게 했다.보통 해외에서 친지로부터 돈이 송금되면 몇년 걸려야 찾을 수 있다. 보내준 달러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100달러를 북한돈 203∼205원 상당의 「바꿈돈」으로 바꾼다. 부모님이 약을 보낸 적도 있었으나 평양국제통신국 직원들이 가로챘다. ­남한에 대한 소감은. ○눈부신 발전에 놀라 ▲최현실=한강다리 밑에 거지들이 수두룩하고 집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들었다.그러나 막상 와보니 남한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줄은 몰랐다.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은. ▲김금철=아직 잘 모르겠다.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열심히 일하겠다.그리고 부모님이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선 아버지의 병치료에 힘쓰겠다. ▲최현실=남편의몸이 편치 않고 나도 환자다.그러나 자식들이라도 한국의 국민으로 떳떳하게 일했으면 좋겠다.
  • “서울까지 반세기 걸렸소”/탈북 김경호씨 일가 입국

    ◎가족들과 감격의 상봉 지난 10월26일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61)·최현실(57)씨 일가족 16명과 북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30) 등 17명이 9일 하오5시17분쯤 대한항공 618편으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씨 일가족은 김포공항에 도착,5시45분쯤 17번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와 서울에 사는 김경호씨의 친형 경태씨(70)와 조카 흥석씨(33),최현실씨의 작은아버지 최전도씨(78)와 사촌조카 최철욱씨(43·서울 베델의원원장) 등 가족 7명과 눈물로 상봉했다. 김씨 형제는 6·25가 일어난지 얼마후 경호씨가 인민군에 징용되면서 헤어졌고 최현실씨도 10살때인 50년 월남한 아버지 최영도씨(79·미국 뉴욕거주),작은아버지 최전도씨와 헤어졌다. 최현실씨는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따뜻하게 받아줘 정말 감사하다』면서 『일행 17명이 빨리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행동했기 때문에 이렇게 서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북한에는 상당수 주민이 생활고 등을 이유로 중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으나당국의 검거를 두려워해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탈북경위 등에 대해서는 『적당한 기회에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이들은 44일동안의 대탈주기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관례에 따라 귀순동기 등을 조사받고 귀순절차를 밟기 위해 하오6시쯤 서울시내 모처로 출발했다. 공항 관계당국은 이날 김씨일행의 신변안전을 위해 공항경찰대 5개 중대를 배치,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등 경비를 강화했다. 김씨일행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6일동안 머물던 홍콩 상수 보호감호소를 출발,하오1시쯤 홍콩 카이탁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홍콩정청 이민국 직원의 안내로 공항보안구역을 통과,서울행 대한항공기에 탑승한 뒤 우리측 호송요원에게 정식으로 인계됐다. 김씨 일가족은 부인 최현실씨의 부친인 재미교포 최영도씨의 도움으로 지난 10월26일 새벽 함경북도 회령의 집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재미 친척들이 고용한 조선족의 안내로 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28일만인 지난달 23일 홍콩에 밀입국,한국망명을 요청하며 상수보호소에 수용돼왔다. 김씨는 6·25당시 인민군에 강제징집돼 월북,평양에 거주하다 최씨와 결혼했으나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회령으로 추방되는 등 심한 억압을 받고 식량난까지 겹치자 탈출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