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사 발간 「북한인명사전」 분석결과
◎김정일,측근 19명 내세워 비상통치/당·정·군 요직 포진… 대미관계 개선 등 주도/강산성 총리·원로 부주석들 뒷전으로 밀려
김정일이 상중이란 이유로 권력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년간 당·정·군의 실세 19명에 의해 이끌어져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비록 눈에 드러나게 행보는 하지 않았어도 김정일은 막후에서 노동당비서국 및 군을 장악,쌀지원과 대미관계 개선,국방력 강화작업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사 국제전략연구소가 최근 간행한 1996∼97년 개정·증보판 「북한인명사전」이 파악한 북한요인들의 지난 1년 행적 정밀분석결과 밝혀진 것이다.
김정일이 94년에 이어 「김일성없는 북한」을 다시 이끌어온 지난 1년동안 군부를 제외하고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내 권력의 큰 부침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이로 보아 권력 핵심부에 대한 인사는 내년 권력공식승계 때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일은 지난 1년 당·정·군에 핵심측근 19명을 박아 놓고 북한이란 고장난 열차를 움직인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같은 사실은 「북한인명사전」에 나타난 김정일 심복들의 활동상황과 관계당국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우선 당에 포진한 김정일의 심복으로는 계응태(공안) 김용순(대남) 최태복(교육) 한성용(공업)이 꼽히며 정무원과 단체쪽에선 강석주(외교부제1부부장)와 장성택(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설) 최용해(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1비서)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한편 군에선 당중앙군사위원 이하일(차수)인민무력부 총참모장 김영춘(차수)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 조명록(차수) 김두남(대장) 인민무력부 보위국장 원응희(대장) 호위사령관 장성우(대장)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 현철해(대장)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김영룡(상장)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상장)등이 김정일 떠받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동당 비서국의 비서는 김정일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가운데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김정일 맨」은 최태복 김용순 계응태 한성용이다.최태복은 화학분야 전문가이자 당·정의 교육전문가.그가 김정일의 측근으로 부상한 것은 72년 당중앙위 학교교육부 재임 시절 학생들내에 김정일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데 공을 세운 이후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교육분야에서 김정일후계체제 확립의 공로를 인정받아 86년 12월 당중앙위원겸 비서로 발탁됐고 90년5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됐다.
대남당당비서인 김용순은 북한내 최고 성분을 갖춘 권력엘리트.70년대부터 외교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90년9월 일본 가네마루 신(김환신)을 평양으로 초청,외교능력을 발휘한 바 있다.
공안담당인 계응태는 김일성부자에 대한 강한 충성심과 성실성으로 김정일의 환심을 사 86년 이후 김정일의 실무지도및 현지지도를 근접수행하는 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성용은 북한 최고의 빨치산 가족출신.그가 김정일의 신임을 얻고 있는 것은 김정일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해가는 시기에 정무원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김정일과 가까워진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무원과 사회단체쪽의 「김정일 사람」으로는 여동생 김경희 남편인 장성택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1비서 최용해,그리고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가 꼽힌다.장성택은 일족으로,최용해는 옛 사로청원들을 김부자 우상화에 동원,충성을 과시함으로써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강석주는 94년 10월 미·북 제네바핵합의를 이끌어내 경수로2기를 2003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한 장본인으로 김정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인물.
김정일은 군사체계 강화와 관련,자신이 군사비상체제를 영도하고 있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점을 리더십 강화에 십분 활용하는 한편 군수뇌부를 승진 및 지위격상이라는 「당근」으로 휘어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95년10월 총참모장인 최광을 인민무력부장에 앉히고 김광진을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김영춘을 총참모장으로,조명록을 총정치국장으로 승진발령하는 등 자신들의 측근을 수뇌부에 전진배치한 것이 이에 속한다.
김정일은 또 군부 끌어안기에 매우 열심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북한인명사전」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월부터 사전편집마감시한인 7월30일까지 김정일의 군행사참석은 모두 17건으로 집계됐다.이와 관련,눈여겨볼 것은 김정일 수행원의 면면.꼭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수행빈도가 김정일의 신임도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사전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당군사부장 이하일(차수)은 14회,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상장) 13회,작전국장 김명국(대장) 12회,포병사령관 김하규(대장)12회,총정치국장 조명록(차수)은 11회,후방총국장 현철해(대장) 8회,차수 이을설 차수 김광진 총참모장 김영춘은 각각 3회씩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김정일의 수행멤버들이 그의 측근이요,실세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일의 수행멤버 대부분이 당중앙군사위원들이라는 점이다.한마디로 당의 최고사령부격인 당중앙군사위원회에 김정일의 사람들이 포진돼 있다는 얘기다.이 군사위 멤버외에 빠뜨릴 수 없는게 보위사령관 원응희,호위사령관 장성우,공군사령관 오금철 등이다.이들은 한결같이 김정일이 최고사령관(91년12월)과 국방위원장(93년4월)취임을 전후해 요직에 앉혀진 골수 김정일 맨들이다.
그밖에 4명의 부주석 가운데서는 이종옥 부주석이 가장 많은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는 그가 외교관의 신임장 접수 등 주석이 수행해야될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며 이들 부주석들은 외국대표들의 접견만 맡는 등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당정치국원 가운데 총리 강성산은 신병으로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같은 정치국 후보위원 가운데 양형섭의 활동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활발하게 나타난 것은 그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믿어진다.
9명의 부총리 가운데서는 지난 한햇동안 장철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그의 문화예술부부장 겸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김영남 외교부장 역시 비동맹외교 등과 관련,비교적 활발한 행보를 보여 다른 부총리에 비해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밝혀졌다.〈장수근 국제전략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