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민군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42
  • “북 최구화 대좌 미 망명”/일지 보도

    ◎연초에 애·가나서 무관근무경력 북한 인민군의 대령급 고위간부가 올해초 미국으로 망명했었다고 일본의 격주간지 사피오가 최근 발매된 11월26일자에 보도했다. 망명자는 북한 인민군 최구화 대좌(대령)로,북한 망명자들이 대부분 한국으로 넘어 왔으나 장승길 이집트대사와 이에 앞서 최대령이 ‘아메리카 루트’를 통해 미국으로 직접 망명함으로써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한 망명공작이 주목을 모으고 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이집트와 가나에서 무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최대령은 사피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장래에 대한 절망감과 북한에 의한 전쟁도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망명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물자가 군부로 흘러 들어가고 있으며 군이 1백20만t의 곡물을 비롯한 각종 식량,석유,무기,탄약류 등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전쟁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 “북,이봉원 대장도 처형”/도쿄신문 보도

    북한은 인민군 총정치국부국장인 이봉원 대장(72)을 부정부패와 김정일 체제에 대한 비판 등을 이유로 지난 7월20일쯤 평양 교외에서 처형했다고 도쿄(동경)신문이 6일 보도했다.
  • 망명설 북 이두익 북경체류/북 대사관서 신병치료 확인

    망명설이 나돌았던 이두익(76) 북한인민군 차수는 지난달 21일 북경에 온뒤 북한대사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북경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에 온뒤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망명설이 나돌았던 이두익 차수는 노환으로 인한 신병치료를 위해 북한대사관에 머물고 있으며 대사관으로 중국 의사들을 불러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지난 1일쯤 이두익의 망명설 소문이 돌자 주중 한국대사관측은 “이두익이 지난달 21일쯤 중국에 들어온 것은 확인했으나 이후 행적이나 망명여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 북한군 장성은 총1,200명/대장 위 차수만 현재 11명

    북한 군에는 고위직이 많다.한국군의 계급은 대장이 최고인데 반해 북한에는 대장 위에 차수가 있고 또 그 위에 원수가 있다.원수는 김정일과 호위사령관인 이을설 2명이 있다.그러나 격이 달라 김정일은 ‘공화국 원수’이고 이을설은 ‘조선인민군 원수’이다.망명설이 나도는 이두익은 북한군 원로로 92년에 차수로 승진했다.현재 차수는 이두익 외에 인민군 총정치국장 조명록,총참모장 김영춘 등 11명이나 된다.북한 군 장성수는 대장 19명을 포함 약 1천2백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정규군(1백6만명)의 0.11%로 중국이나 미국보다 2배 정도 높은 비율이다.계급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신병치료 목적 중 입국 “행불”/북 이두익 차수 잠적 전말

    ◎북경대사관 “모처서 요양”분석 지배적/장기체류방식 사실상 망명설도 나돌아 북한 인민군 차수 이두익(76)의 행방을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중국에 온 북한군의 원로 이두익이 중국입국 직후 열흘남짓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이다.이두익은 지난달21일 무렵 중국에 들어온뒤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의 형식적인 입국 목적은 신병치료.중국정부는 그의 입국여부나 행방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고 않다.중국측의 입장은 ‘입국했더라도 개인적인 목적이라면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주중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이두익이 지난달 중순쯤 중국에 들어온 것은 확인됐다고 말했다.그러나 그의 방문이 공식방문은 아니었으며 입국이후의 행적에 대해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두익의 행방과 관련,그의 망명 소문은 북경의 일부 북한무역 관계자들 사이에 지난달 말 나돈 일은 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그가 입국한뒤 행적이 확인돼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들도 이두익의 행적에 대해 추적하고 있으나아직까지 그의 소재에 대해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다만 고령으로 인한 신병으로 중국에 치료차 온 이두익이 모처에서 요양 또는 장기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더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두익이 북한내의 내부 암투로 인해 중국에 장기 체류형식으로 사실상 망명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이 경우 중국정부의 묵인·동의아래 이뤄진 것이고 북한과의 마찰요소를 없애기 위해 신병치료를 위한 장기 체류란 형식으로 중국 모처에 머물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의 정확한 중국행 목적이나 행방은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 북,이두익 북경체류 부인

    【북경 AFP 연합】 북경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1일 이두익 북한 인민군 차수(76)가 신병치료를 위해 북경에 체류중이라는 보도를 부인했다.
  • 귀순자들의 증언/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그동안 북한의 식량난에만 눈길을 주어온 미국 의회와 언론들이 이번엔 북한의 군사력과 전쟁준비 등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AP통신과 ABC방송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김정일정권은 미지상군이 본격 투입되기 전에 미사일 등으로 1만∼2만명의 주한미군을 살상할 계획이며 그렇게 되면 미국인들 사이에 반전무드가 싹터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또한 북한은 이미 2∼3개의 핵탄두와 5천여t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7함대 공격용 미사일까지 개발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곁들였다.“북한이 미국의 힘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거니,“북한은 미국민들이 전쟁에서 사상자가 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취약점을 파고들려고 하는 것 같다”는 등의 우려를 덧붙이기도 했다.미국 언론들의 이같은 대북한 관심은 북한을 탈출,남으로 귀순한 최주활 전 인민군 상좌와 고영환 전 북한 외교관이 증언한 미국 상원 청문회 직후에 촉발됐다.두 귀순자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나서 미국 의회와 언론들은 ‘북한은 역시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미국인들의 성향까지 간파한 북한의 대미전략에 놀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미국인들 보다 더 절실하게 북한을 경계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한국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두 귀순자의 이번 증언은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진 것들이다.그런데도 처음 듣는 것 같고 “그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하는 놀라움이 앞서는 까닭은 무엇일까.아마도 그들의 얘기를 건성으로 받아 들였거나 관계당국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얘기로 치부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이들 말고도 황장엽씨 등 많은 귀순자들이 북한을 경계하고 남침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이전투구나 다름없는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아무 생각없이 허우적거렸거나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 걱정만 하느라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오지 않았나 싶다.우리도 만사 제쳐 놓고 전쟁준비를 서두르자는 얘기가 아니다.북한이 최근들어 여러 측면에서 많이 달라졌다는 점도 인정한다.하지만 북한은 여차하면 언제라도 남침을 감행할 수 있는 위험한 집단이며 그 경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늘 마음에 새겨 두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
  • 북 경제난 타개 외교공세 강화 예상/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칼럼)

    ◎남북대화 재개 제의 등 한국측 대응 주목 김일성 사후 3년3개월을 거쳐 지난 10월8일 김정일이 간신히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함에 따라 김정일 체제와 북한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의 이번 총비서 취임은 ‘만3년’의 복상기간이 끝나 국내적으로 더이상 취임을 늦출 구실이 없다는 점,최고지도자의 부재가 대외적으로 여러가지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12월 한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정식으로 당총비서에 취임해 내년 이후의 남북관계 타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등이 그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또 내년 이후 보다 적절한 취임시기가 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첫 권력 세습이라는 논평도 있지만 80년대 후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라는 유기체적 국가론이 출현한 이후 북한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게 됐다.오히려 김일성 사후의 ‘(수령) 영생론’에 따라서 북한은 의사 종교국가로 변질돼 갔다.최고지도자의 생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활동이 아니라 종교활동이라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이라는 국가의 최대의 특징이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의 비대칭성’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 경제가 대단히 취약해 이미 파탄했다는데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그렇다면 왜 그 국가체제는 옛소련이나 동유럽 여러나라처럼 붕괴하지 않는 것인가.경제체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정치체제가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외교의 유연성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바꿔 말하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정점(교조)으로 하는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존재가 경제체제의 파탄을 떠받쳐온 것이다. 다만 필자도 북한의 정치체제가 만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경제 파탄과 식량위기가 장기화하면 머지않아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전환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이번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조짐이 몇가지 나타나고 있다. ○북 경제재건 급선무 예를 들면 김정일의 총비서 취임의 절차는 상당히 변칙적인 것이었다.9월 하순의 평안남도 당대표회와당 인민군 대표회의 결의 이후 그 밖의 당조직의 대표회가 차례차례 열려 김정일을 총비서로 ‘추대’했지만 중앙 차원의 당대표자 회의가 열렸다는 흔적은 없다.중역과 지점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그대로 이사에 취임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칙적인 절차가 취해졌다는 것은 권력투쟁 때문이 아니라 모든 당조직의 일치된 추대를 필요로 하면서도 당대표자 회의를 개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를 개최하면 김정일 자신이 활동보고를 담당하지 않을수 없지만 심각한 경제정세를 하나하나 보고하는 것도,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경제적 어려움이 총비서 취임의 절차를 왜곡시키고 만 것이다. 따라서 총비서에 취임한 김정일로서 경제 재건이야말로 급무다.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즉 경제개방 없이는 이것도 불가능하다.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이 우선 노력할 것은 폐쇄적인 대외관계 특히 북·일관계를 타개해 경제의 대외개방이 가능하도록 국제관계를 정비하는 일일 것이다.이것 없이는 새로운경제 계획의 발표도,북한의 ‘살아남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올해 8월,9월에 뉴욕에서 열린 4자회담 예비회담도,같은 8월에 열린 북·일 교섭재개를 위한 예비회담도 김정일 총비서 취임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향후 2∼3년이 중요 특히 북한의 대일자세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일본정부에 의한 인도적 식량지원 결정에 이어 앞으로 일본인 처의 고향방문,여당 3당대표단의 평양방문 등도 잇따라 실현될 듯하다.그렇게 되면 북·일교섭 재개도 시간문제가 된다.사실 7월 문명자(미국에 있는 한국언론인)씨에 보낸 공개서한과 8월의 논문 가운데 김정일 자신이 ‘일본과의 선린우호관계’에 기대를 표명해놓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관심의 초점은 북한측이 언제 남북대화의 재개를 제의하는가이다.한국으로서는 4자회담 본회의에 응하지 않은채 북한이 북·일교섭을 재개한다든지,중국 정상과의 상호방문을 실현한다든지,북·미교섭을 진척시키려는 사태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 이상 중요한 것이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이다.내년 2월 이후 그밖의 일련의 외교를 추진해 나가면서 북한이 남북대화를 제의할 경우 한국의 새 정권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으로서는 앞으로 2,3년간이 장래를 결정하는 기로가 될 것이다.김정일이 대외관계를 타개하면서 파탄된 경제를 재건의 궤도에 올려 놓는데 성공하면 남북한은 상당기간 공존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에 실패하면 경제적인 파탄이 이윽고 정치 체제의 불안정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그렇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명확한 의사 결정이다.
  • CIA “북한 남침 가능성 없다” 오판

    ◎50년초 북한군 남진이동 방어조치 판단 【워싱턴 AP 연합】 미국중앙정보국(CIA)은 한국전발발 5개월전인 1950년 1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없다’는 오판을 내린 것으로 24일 공개된 ‘극비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새로 비밀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CIA는 당시 한반도에서의 공산침략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기를 주저하고 보다 조심스런 예측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CIA는 1948년 10월 29일 트루먼 당시대통령에게 제출한 ‘주례요약’ 정보보고에서 ‘남북한 사이의 무력충돌은 있을수 있는 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50년1월에 와서는 이를 수정,‘팽창하는 북한인민군의 38선을 향한 계속적인 남진이동은 아마도 방어조치일 것이다.능률이 점증하고 있는 남한군에 대해 북한군이 명확한 우위를 확보하지 않는한 남침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했다.
  • 몽골 어느 탈북자의 삶과 고백(흑룡강 7천리:9)

    ◎노동·농사·목부… 고독한 이방인/“자본주의가 나쁘다는 말만 듣고 살아서리 눈으로 보겠다는 생각에 고향을 뛰쳐 나왔디요 외몽골·소련을 거쳐 구라파로갈 타산으로…”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 동포들이 꽤나 되는 모양이다.탈북자라고 부르는 북한 동포들의 중국 월경은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다.식량난으로 허덕이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하면 요즘의 탈북은 설득력을 갖는다.그런데 중국 보다 살기가 좀 나아서 밥술이나 먹던 시대에도 탈북자가 있었다.금을 캐는 노구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이한우씨(62·가명)가 그런 장본인이다.그것도 두차례에 걸친 탈북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지금도 떠돌아 다니는 신세다.내몽골에 처자가 산다고 얼버무릴뿐 가족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다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대륙에서 살아온 힘겨운 시절만을 털어놓는 것으로 일관했다.그러면서도 연신 주변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목소리를 낮추었다.그가 살아온 처지를 생각하면 그럴수 밖에 없겠지만,신분노출을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선땅이 가까운데서 온 작가선생이라 내레 믿고 얘기합네다.내 이름을 구태여 알라고는 하지 마소.수소문만 하면 형제들이 조선에 살지 않갔수.어디 살던 아무개가 중국에 산다는 것이 소문나면 좋지 않을 것입네다.내레 처음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서 화물차를 탔으니까,고향이 어디쯤이라는 것은 짐작하실 거우다.선생도 그쪽 사람들 다 굶어 죽게 되었다는 소리 들었디요.내 가족들은 죽지나 않았는지…” 그는 1961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서 무작정 화물열차를 탔다.화물차에 숨어 꼬박 이틀을 달려 어느 역에 닿았다.지금 생각하면 아성이었다는 것이다.중국말을 모르는 지라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밥을 빌어 먹었다.그리고 걸어서 하얼빈에 온 그는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화물차에 올랐다.열차는 쉬지도 않고 하루낮 하루밤을 달린 끝에 내몽골 하이라얼(해라이)에 도착했다. 중국은 당시 살기가 어려웠다.나무껍질과 같은 먹을수 있는 것이라면 다 먹었던 이른바 대식품시대라서 빌어먹기도 어려운 때였다.주린 배를 움켜 쥐고 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잘 수 밖에….그러다 경찰에 잡혔다.조선인민군 정찰병으로 권투에도 능했던 그였지만,석탄차를 타고온 주제 꼴은 말이 아니었다.자신이 보아도 의심을 받기 딱 좋았다.붙잡히고 나서 곧바로 수용소로 직행했다.그러나 수용소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식량난이 극심해서 죄수가 도망가도 찾지 않았다.그는 수용소에서 만난 몽골족과 함께 탈출한 뒤 말을 훔쳐타고 외몽골로 들어갔다.조선인(북한인)넷에 몽골족 둘을 합해 일행은 여섯이었는데,몽골족 도움으로 조선족들도 모두 몽골족 차림을 했다.중국에는 당시 먹을 것이 없어서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떼지어 들어가던 시절,그는 왜 탈북자가 되었는가.그의 말을 들어보면 탈출 목적지는 중국이 아니었다. ○“가족들 죽지나 않았는지…” “외몽골과 소련을 거쳐 서구라파로 들어갈 타산을 댔디요.자본주의가 하도 나쁘다는 말만 듣고 살아서리 눈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네다.지금은 부자로 사는 남한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네다.여하간 호기심이 많아서리 고향을 뛰쳐나왔디요.중국과 몽골공화국은 다 같은 공산국가고 우호 인방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내몽골 들어가기가 쉬웠드랬습네다.순라병은 그림자도 없고 철조망 서너 가닥을 늘여 놓았더라 이겁네다.” 그는 일행과 초원 풀더미속에서 잠을 청하다 또 붙잡히고 말았다. 하이라얼 감옥에서 꼬박 두달을 살았다.그리고 나서 추방을 당했다.그를 기다린 곳은 함경도 아오지탄광이었다.그래도 하루 쌀 300g을 배급받았다. 북한은 당시 중국에 비해 사정이 좋아 노동개조를 받는 죄수에게도 쌀을 주었다.요즘 북한과는 천양지판이었으나 그는 또 탈북을 꿈꾸었다.1961년이 돌아오고 음력 설날을 며칠 앞둔 어느날 아오지를 탈출했다.두만강을 건너 도문에 와서 화물열차를 탔다.그래도 있던데가 좋았는지,다시 하이라얼에서 내렸다. ○아오지탄광서 또 탈출 그는 배가 무척 고팠다.자신도 모르게 식당 앞을 서성거리다 식사를 하던 노년의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손짓 발짓으로 식사를 구걸했다.여인은 측은한 눈길을 주면서 얼결에 말을 걸었다.조선말이었다.내몽골에서 조선말을듣는 것은 엄동설한에 불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모든 사연을 실토하고 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그 여인은 당시 쉰 살의 조선족이었는데,몽골족 남편과 산다고 했다.이름은 이영숙,슬하에는 자식이 없었다. “내 딱한 사정을 듣고 자기를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묻습데다.내 거절할 이유가 없었디요.하이라얼에서 90리가 떨어진 그 집을 따라 갔더니,몽골족 남편이 양자를 삼겠다고 제의를 해왔디요.그분은 자기 이름을 투린자라고 소개합데다.촌의 당서기고 해서 사는 것도 그만했디요.몽골 초원에서 당서기 양아들로 사니끼니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모처럼 좌정을 하게 되었다 이겁네다.” ○넓은 초원서 3년을 목부로 몽골 유목민들은 양자를 두거나 데릴사위를 들이는 일을 해운으로 여기기 일쑤다.그래서 여남은 살을 먹은 소년을 소나 말,양 따위와 바꾸어 데려다 키우는 경우도 있다.이는 초원에서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의 하나인데,온정을 베푼다는 의미도 지녔다.‘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속담처럼 양쪽 모두가 손해볼 것이 없는 양속인지도 모른다.어떻든 초원에서 석 삼년을 목부로 살았다.그러는 동안 몽골말도 배우고 짐승을 방목하는 일에도 이골이 났다.이웃에는 28가구가 사는 조선족 마을이 있었으나 가난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초원에 겨울이 오면 유목민들은 정거생활에 들어간다.그 때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우물이다.그래서 이한우씨는 목축을 하면서 우물을 파는 일에 매달렸다.우물을 파서 돈도 제법 번 일이 있다는 그는 노다지 소문을 듣고 흑룡강상류로 들어왔다고 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고독한 이방인으로 초원을 잊지 않았다. “몽골 노래가 왜 음이 길고 높은지 아오? 망망한 초원엔서 방목을 하다 보면 고독할 때가 많디요.그 고독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길고 구성지게 부르는 겁네다.”
  • 군부대만 찾는 지도자/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요즘 북한은 겉보기엔 축제분위기로 들떠있다.김정일의 노동당 총비서 취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리고 대극장이나 교차로 등에선 춤판이 벌어지고 있다.그의 총비서 취임은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일이긴 하지만 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김일성시대를 마감하고 김정일시대의 개막을 공식 선언한 것이어서 그 의미는 적지 않다.저들로선 떠들썩하니 판을 벌일 만도 한 일인 것이다.그렇지만 당사자인 김정일은 지난 9일 열린 노동당 창건 52돌 기념행사에 참석치 않았다.별도의 총비서 취임식이 예정돼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땅히 참석했어야 했는데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그는 다음날인 10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 나타났다.김정일이 당창건 기념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 묘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총서기로서의 공식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통치방식이나 노선을 바꾸지 않고 소위 유훈통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가능성이 충분한 전망이다.어찌됐든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을 최고 권력자로 추대하고 요란스럽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그 지도자의 모습을 보진 못하고 있다.이와 관련,일각에선 “김정일이 종전과 별 차이없는 잠행을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김정일은 본시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데다 김일성과는 달리 자신에겐 없는 카리스마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일부러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수해 가뭄 등 재해현장이나 복구현장,사회복지시설같은 민생현장은 나 몰라라 하면서도 군부대는 열심히 찾아 다닌걸 떠올려보면 그같은 전망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얼굴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곳엔 빼놓지 않고 내민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결국 그가 앞으로 어떻게 북한을 이끌어갈 것인가,그 스타일을 점치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젠 김정일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동안엔 경제를 비롯,골치아픈 현안들은 당과 정무원에 떠넘기고 군심잡기에만 몰두해왔지만 이젠 아니다.뒷전에서 ‘인민군’들에게만 얼굴을 보여주는 지도자는 곤란하다.전면으로 나서야 한다.‘인민’들 앞에도 당당하게 나서 당면한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직접 밝히고 협조를 구하는 정도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 칼럼리스트 티머만 미지 기고문 요지(해외논단)

    ◎캘리포니아가 중국 22번째 성인가/통제완화 틈타 대거 유입… 불법거래·안보위협 심각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중국의 22번째 성인가.컬럼니스트 케네스 티머만은 클린턴 행정부 들어 중국에 대한 유연한 정책은 캘리포니아에 엄청난 중국 자본과 기업을 불러들였고,이들의 합법적인 첨단기술 유출과 무기 반출은 미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가 됨은 물론 캘리포니아를 중국의 돈주머니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이달말 중국 강택민 주석의 미국방문을 앞두고 미시사월간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최신호에 기고한 그의 ‘중국의 22번째 성’이라는 글을 요약 소개한다. 미국인들에게 풍요의 상징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가 곧 중국의 22번째 성으로 분류될 날이 올지 모른다.확실히 중국이 최근 캘리포니아를 다루는 방법은 자국의 성을 다루는 것과 흡사하다. 클린턴 행정부 출범이래 캘리포니아는 중국 권력층 자녀들의 교육장소이자 유흥을 위한 도피처가 되었다.이들 귀공자들은 스탠포드와 캘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LA로 이주해왔다.이 가운데서 가장 돈많은 행운아는 등소평의 딸이다.그녀는 개인적 비지니스 상담을 위해 수백만달러의 별장을 사들인바 있다.캘리포니아는 중국 부패관리들의 부정한 재산을 돈세탁하는 천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민군 자회사 수백곳 또한 중국인민해방군(PLA)과 방위산업체들은 수백개의 자회사및 지사들을 설립했다.미국인과의 합작형태 혹은 미국변호사들을 고용,교묘하게 위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정부도 그들의 수와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이 PLA 직영이거나 중국 정보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이들 회사들은 클린턴 행정부 들어 현저하게 수출통제가 완화된 93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주임무가 미국의 첨단기술을 훔쳐가고 중국군의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이들 중국계회사들의 합법을 가장한 불법 행동은 미국안보의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캘리포니아 항구들에서는 엄청난 양의 미국 기술과 부품 등이 이들 중국계회사들을 통해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나,세관이나 상무부 수출담당사무소 등 관계당국은 이같이 위험한 거래에 대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한 예로 최근 이들 회사중 하나는 미국방부 자재창에서 F117A 스텔스기의 방향유도장비 37세트를 구입,‘scrap’(잡동사니)로 분류해 중국으로 선적했다.또 한 회사는 브로커를 통해 컴퓨터 디스켓 등이 포함된 암호화장비 2만6천세트를 빼내 역시 ‘잡동사니’로 분류,중국에 수출했다. ○무기 빼내 적성국 수출 더욱이 위험한 것은 중국당국이 이같은 중국계회사들의 합법적(?) 활동을 십분활용,지난 80년부터 미국무기 수출이 금지돼 있는 이란과 같은 부랑아국가에 미국무기를 팔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범죄수사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이들 중국계회사가 플로리다 펜사콜라의 해군박물관에서 F14전투기 완성품 몇대와 부품으로 가득찬 콘테이너들을 구입,중국으로 수출하려는 것을 적발했다.LA세관이 갖고 있는 또다른 케이스로는 F14기의 무기체계에 활용되는 전자튜브 500개가 역시 ‘잡동사니’로 분류돼 중국으로 선적되려는 것을 압수한바 있다. 이들장비및 부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세계에서 F14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이란 밖에 없으므로 이들이 중국으로 넘어가고,그다음에는 이란으로 갈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중국인들의 무역활동은 자체 조달업자와 선박회사,자체 운송업자,심지어는 자체 은행까지 철저하게 중국네트워크에 의해 움직여지기 때문에 어떤 불법거래가 한사람의 미국인을 통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뤄질수 있다.운송은 중국최대 선박회사인 COSCO(중국국영대양선박)와 자매회사인 해외중국해운 두회사가 맡고 있으며,은행은 중국계 동서은행과 국영중국은행의 지점들이 있다. LA에서는 이같이 간판을 내건 중국계 대형회사들 이외에 간판도 없이 우편함 하나만 갖고 있는 수천개의 이른바 ‘사서함회사’(mailbox company)들이다.이들이 사실상 첨단기술 절도와 무기 밀수 등을 자행하고 있으며,적발될 경우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돈세탁위해 회사 설립 중국군이 직접 운영하는 회사도 미국내 12개중 11개가 캘리포니아에 있다.또한 부패 권력층들이 돈세탁을 위해 세운 회사들도 많다.그러나 이들은 대부분이 중국 최고권력층과 선이 닿아 있기 때문에 미당국은 미·중관계 악화의 두려움 때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달말 클린턴 대통령과 강택민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이같은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이같이 과도한 중국의 행위에 제동을 걸것인가,아니면 캘리포니아 뿐아니라 전 미국을 중국에 더 내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다.〈정리=워싱턴 나윤도 특파원〉
  • 납북 제헌의원 ‘영혼장례식’

    ◎독립운동가 구중회 선생 100세 맞아 임진각서 “아버님께 올리는 우표없는 이 편지가 바람타고 훨훨 날아서라도 북쪽의 아버님께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0일 낮 12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는 6·25전쟁때 납북된 독립운동가이자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이었던 구중회 선생의 영혼장례식이 치러졌다.가족은 선생이 살아 있을 것으로 믿고 이제껏 제사도 지내지 않다가 100세가 되는 올해 영혼장례식을 치르게 됐다. “아버님을 그토록 기다리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던 날 저희 형제들은 아버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아버님 전상서를 읽어 내려가는 둘째 아들 자호씨(58·서울예술단 이사장)의 주름진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189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선생은 3·1운동 당시 24명의 결사대를 조직,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석방된 뒤 주시경 선생이 운영하던 조선어강습원에 다니다가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1926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고향에서 조선어강습 야학당을 운영하는 등 교육을통한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해방후 경남 창녕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됐다.하지만 50년 7월 서울 장충동 집에서 인민군에게 납치돼 북으로 갔다. 가족은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선산 부인 허점분씨의 묘에 선생을 합장키로 했다.
  • 북 김정일 총비서 공식추대/당중앙위·군사위 발표

    북한은 8일 김정일이 노동당총비서로 공식추대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이날 하오5시 중앙방송의 당중앙위원회와 당군사중앙위원회 특별보도에서 “조선노동당중앙위와 당중앙군사위는 (김정일 동지가) 우리당의 공인된 당총비서로 추대됐음을 엄숙히 선포한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 2·6면〉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대표회,도대표회 등에서 김정일 동지를 당총비서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은 전당 전군 전민이 김일성동지의 위업을 완성하려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김정일은 김일성사후 만3년3개월만에 당총비서로 공식추대됐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추대발표는 당중앙위 전원회의소집 등 공식절차를 거쳤는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승계작업은 완료된 것으로 본다”면서 “북한내부에서는 김정일을 ‘선출’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추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치치하얼의 조선족(흑룡강 7천리:6)

    ◎20년대 첫 이주… 1만9천명 ‘공생’/눈강평원 드넓은 초원/서광촌·명성촌·선명촌서 농사일­상업으로 생계 이어 흑룡강 한 지류인 눈강유역의 평원은 장관이다.달리는 열차에서 바라본 차창밖으로 푸른 벌판이 아득했다.하늘을 흐르는 흰 뭉게구름과 초원에서 풀을 뜯는 새하얀 양떼가 어울린 평원은 그야말로 목가적이었다.그 망망한 초원 한 가운데 옹기종기한 마을은 마치 섬처럼 보였다.조선족들도 일찍 눈강평원에 들어와 그 섬같은 외로운 마을을 꾸렸다.눈강유역인 흑룡강성 치치하얼지구의 조선족은 지금 1만9천명을 넘는다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눈강평원의 조선족 이주는 1929년에 시작되었다.조선시대 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을 배출한 성씨가문의 22대손이 식솔을 이끌고 첫발을 들여놓았다.오늘의 흑룡강성 용광현 서광촌이었는데,당시 지명은 눈강성 대유수다.그 손자 성영석씨(46)는 지금 서광촌에 살고있다.할아버지가 처음 서광촌으로 들어올때 이끌고 온 식구는 여섯이었다는 것이다.지금은 성씨네 일가가 100명으로 늘어났다는 그는 이주해온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당시 지식인이었던 모양입네다.한일합방이 되자 벼슬할 꿈을 버리고 경상도 청도읍에서 서당을 꾸렸다고 기래요.한학에 능하셨던 할아버지는 일제의 농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서리 관리들의 밉상을 받았디요.그래서리 고향을 등지고 만 것입네다.아들 삼형제와 사촌까지 여섯이 고향을 떠나왔다고 합데다.봉천까지는 기차로 왔으나 더 갈만한 노자가 있어야디요.꼬박 두달을 남부여대하고 걸어서 대유수(서광촌)에 도착했다는 것이디요” ○성삼문 22세계 첫발 그들 일가는 비록 일망무제한 옥토에 짐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부릴 소나 말은 고사하고 씨앗도 없었기 때문이다.그 할아버지는 당시 눈강성 이몽기 성장에게 글을 올렸다.문장에 감복한 성장은 성소재지 치치하얼로 불러들였다.한주일여를 성장집에 머물면서 필담으로 교유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다.성장은 마차 두대에 쟁기며 양식,씨앗을 선물했다.첫해의 농사도 대풍을 이루었다.그래서 사람을 고향 청도로 보내 일가친척들을 서광촌으로 데리고 왔다. ○일제때 강제이주 시작 오늘날 눈강유역 평원에는 서광촌 말고 치치하얼시 메리스구 명성촌과 선명촌에도 조선족이 몰려있다.서광촌이 자생마을인 것과는 달리 이들 명성촌과 선명촌은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다.당시 눈강성에는 이같은 집단 이주마을이 13군데나 되었다고 한다.한 마을에 100호씩이 자리잡았다.모두가 경상북도 사람들이었는데,이주 초기인 1942년에는 일제가 배급도 주었다.그러다 일제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른바 대동아전쟁에 광분한 일제는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놓은 쌀을 모두 군량미로 빼앗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 등쌀에 견디다 못해 마을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경상도에서 온 전병형씨네 일가도 겨우 이태를 살고 도망치다시피 내몽골로 들어갔다.해방을 맞고서도 십수년이 지난뒤 그들 일가는 치치하얼로 돌아왔다.아들 성렬씨가 한국전쟁때 북한 인민군 소대장으로 참전했다가 대퇴하고 식솔 모두를 치치하얼시 메리스구로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한때 선명소학교 교장을 지낸 아들도 이미 세상을 떴다.지금은 치치하얼시 교육위원회 종교처장으로 일하는 손자 창국씨(49)가 가계를 잇고 있다.창국씨는 1968년 치치하얼 조선족고급중학 재학 당시 반혁명분자로 몰렸다.그는 이듬해 제적되어 선명촌으로 쫓겨났다.반혁명분자이기는 했지만 선명촌에서 촌장 아래 직급인 생산대장으로 올라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그가 쫓겨나서 일했던 선명촌은 눈강을 사이에 두고 명성촌과 마주한 마을이다.모두 조선족 마을이지만,한때는 남조선 북조선이라 불렀다.요새는 한국 북조선으로 바뀌었다.그렇다고 다른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단지 강남북에 자리한 마을 위치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그가 반혁명분자로 쫓겨났던 선명촌은 말하자면 북한이다.요즘에 와서 보면 두 마을의 별칭에는 유머러스한 구석도 있다.그러나 문화혁명 당시 그의 선명촌생활은 말이 아니었다.1975년 중앙민족대학으로 진학하기 이전까지 옹근 여섯해를 오로지 농촌에 매달렸다.기왕 농촌으로 들어온 바에야 조선족 농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각오로 별별 궂은 일을 다 맡았다. “아마 1973년인가 그럴겁네다.그 무렵 여기서는 농사일에 부릴 수 있는 한마리 말값이 3천원이라 싼 말을 사러 내몽골로 갔디요.하라이얼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자동차와 말을 갈아 타고 우숴무에 도착했수다.거기서는 말 한마리에 550원을 해서리 20마리를 사디 않았갔수.그 말을 끌고 초원을 지나 대흥안령을 넘어오는데 40일이 걸렸디요” 그 시절 총각 전창국은 마을 처녀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처녀들은 아무런 사심없이 일에만 매달린 그의 열정에 흠뻑 반했던 것이다.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전통가치관이 사뭇 달라졌다.그런 신랑감이라면 거들떠 보지않는 세월로 변한 것이다.농촌처녀들은 파랑새처럼 도시로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그래서 힘을 들여 농사일을 하는 총각들이 짝을 못 찾는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그런데 치치하얼에 머무는 동안 선명촌으로 가는 강가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를 만났다.“옳지,아직은 짝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총각은 치치하얼시에서 소문난 업소 금복문술집(금복문주점)주인 김홍률씨(51)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내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외지 농촌에서 왔다는 예쁘장한 처녀는 바로 금복문주점 종업원으로 주인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2백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치치하얼시에서 손꼽는 금복문주점을 들렀다.남향으로 나앉은 술집은 칸막이 온돌방에 식탁을 갖춘 홀을 갖추었다.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출수 있는 또 다른 홀과 별채의 숙소가 있어서 마시고 놀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아가씨가 열둘에 강씨라는 마담 한사람을 둔 금복문주점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제법 흥청댔다. ○시골주점 손님 북적 강마담은 한달에 천원을 받는다고 했다.아가씨들은 아예 월급이 없다는 것이다.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라서 아가씨들은 팁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연변에서 왔다는 미스김은 말이 아가씨였지 사실은 유부녀라고 실토했다.연길시 철남구가 집인 그녀는 한국으로 갔던 남편이 빚 5만원만을 진채 강제 송환되어하는 수 없이 치치하얼로 흘러들어왔다.내가 연길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시콜콜한 화류계 속사정을 다 까발려 놓았다. “팁이야 주는 사람 마음에 달렸디요.한국사람들은 보통 백원씩은 줍데다.그것도 침대에 올라가야 백원을 주디요.한국사람은 팁은 꽤 주지만 손이 점잖지 않아서 싫더라…”
  • 김정일 당총비서 추대/북 군부도 결정서 채택

    북한 군부도 김정일의 당 총비서 추대 결의를 지지하고 나섰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22일 3군의 당조직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 인민군 집회에서 김의 총비서 추대 결의가 “만장일치의 승인을 얻어 채택됐다”고 전했다.
  • 북은 시대 착오적 신격화 중단하라/황장엽씨 특별기고문

    ◎“‘소련 붕괴’교훈 외면 수령 우상화·독재 고집/위대한 영도의 결과가 세계 최악의 민생고인가”/“50여년간 대이은 통치 대남 무력통일에 혈안/군사비 등 몇%만 아껴도 주민 식량난 거뜬 해결”/“북 사회주의는 허울뿐 실상은 봉건주의 불과/7천만 겨레 염원 부응 남북대화·교류 나서라” 북한은 자기 수령의 탈상을 계기로 ‘주체연호’를 쓰기로 결정함으로써 다시금 세상 사람들을 개탄케 하고 있다.스탈린주의와 소련의 붕괴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준 심각한 역사의 경고였다. 많은 개인주의 나라들이 뜻하지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훈을 찾고 개혁 개방의 길을 모색하였다.유독 북한 통치자들만은 스탈린주의의 가장 나쁜 면인 수령 우상화와 개인독재를 몇배로 증폭하여 그것을 당과 국가건설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국민생활을 지배하는 기본원리로 전환시켰다.그 결과 이번에는 북한의 통치체제 자체가 헤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북한은 오늘 세계 최악의 민생고를 겪고 있으며 빌어먹는 나라라는 수치를 무릅쓰고 국제사회의 자비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체제가 겪고 있는 오늘의 위기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주는 역사의 마지막 경고라고 볼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경고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는 대신에 봉건주의 냄새가 그대로 풍기는 ‘주체연호’를 사용하여 김일성 왕조를 유지해 보려 함으로써 시대와 건전한 상식에 도전하고 온 겨레와 세계인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심중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아직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주체연호’까지 내놓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 쓰는 것은 파산된 개인독재 체제를 더욱 버림받게 하고 그 종말을 촉진하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을 것이다.북한은 수령 우상화와 개인독재가 인민들에게 어떤 불행과 고통을 들씌우고 멸망하지 않을수 없는가를 생동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산 역사박물관을 방불케 하고 있다.개인독재는 민주주의를 배제하게 되고 민주주의를 배제하면 민주주의 이전 사회인 봉건사회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오늘 북한은 봉건주의와 전체주의적 통치수법이 결합되어 사회주의의 탈을 쓴현대판 봉건주의의 전형이다.독재를 반대하고 자유롭게 살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인간의 본성에 배치되는 개인독재는 인간의 본성에 배치되는 포악한 폭력수단과 정신적 기만수단에 의하여서만 유지될 수 있다.북한에서는 중앙으로부터 하부 말단에 이르기까지 조밀한 폭력독재망에 의하여 주민들의 생활의 구석구석이 통제되고 있으며 수령절대주의의 봉건도덕이 사람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북한 통치자들은 주민의 삶의 목적은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데 있다고 설교하며 수령은 곧 조국이라고 하면서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노래까지 보급하고 있다.수령과 후계자는 천재적 예지와 고매한 덕성과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위인중의 위인이라고 떠들고 있다. 그렇다고 하자.그러면 어째서 수령과 후계자는 북한을 오늘의 비참한 상태로 이끌어 왔으며 왜 수백만 주민들이 굶어죽어가는 것을 구원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재능있고 근면한 북한동포들이 겪고 있는 오늘의 고통과 불행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50여년간 부자가 대를 이어 실시하여온 봉건적 개인독재의 산물이라는 것은 더 논의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지금 북한의 경제는 크게 당의 경제,군대의 경제,정무원 경제의 3부분으로 갈라져 있다.외화벌이에 유리한 공장 기업소들은 당경제에 집중되어 있고 기술장비 수준이 비교적 높은 군수공장들은 군대경제에 속해 있으며 나머지가 정무원이 관리하는 일반 국민경제로 되고 있다.당경제,군대경제는 영도자의 개인소유나 다름없다.이 부분경제의 수입과 지출에 대하여서는 위대한 영도자 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며 또 감히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알맹이는 다 빼앗기고 남은 정무원 경제마저 정무원총리를 비롯한 경제일군들이 주견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영도자의 비준과 지시 밑에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북한의 영도자는 자기가 경제관리와 인민생활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을뿐 아니라 경제전문가들이 경제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권리마저 빼앗고 있다. 북한이 겪고 있는 현 위기는 또한 북한 통치자들의 고질적인 대남 무력통일정책과 결부되어 있다.북한 통치자들은 인민군대를 조국통일의 주력군으로 간주하고 ‘군대는 곧 국가이고 인민이며 당’이라고 하면서 철저한 군국주의와 군사독재를 표방하고 있다.북한에서는 국가를 위하여 군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위하여 국가가 필요하며 국가예산의 한 부분을 군대가 군사비로 쓰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쓰고 남은 것이 국가예산이 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북한통치자들은 당장 북침전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허위선전을 일삼고 있는가 하면 적을 일격에 소멸하고 전쟁위험의 근원인 남한의 존재자체를 없애 버리겠다고 호언장담 하고 있다.그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남한이 군국주의이고 전쟁을 바라고 있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며 반대로 북한이 군국주의가 아니고 전쟁과 테러로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취약한 경제력을 의식하고 있는 북한 통치자들은 선제공격과 전격전을 기본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배신적 선제공격과 전격전의 요행수가 결코 군국주의자들에게 전쟁승리의 열쇠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평화적 경쟁에서 여지없이 참패한 북한이 비평화적 방법으로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통치자들은 현 경제위기의 원인이 자연재해와 외국의 경제봉쇄에 있는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천만부당하다.북한 영도자의 신년사를 보면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도 만풍년을 이룩하였다’는 말을 매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또 자립경제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장담하며 무기를 마음대로 팔아먹으면서 외국의 경제봉쇄 운운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만일 북한통치자들이 방대한 군사비와 수령 신격화에 쓰는 거액의 낭비의 몇 %만이라도 절약한다면 주민들의 식량을 해결하는 것쯤은 문제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4천5백만의 남한동포들은 북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북한 군국주의자들의 그 어떠한 도발도 물리칠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오늘 남한동포들의 한결같은 의지는 동족상잔의비극을 절대로 되풀이하여서는 안되며 전대미문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하루빨리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뜨거운 동포애로 집약되고 있다.날로 융성번영하는 대한민국은 북한동포들을 손쉽게 구원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남한동포들은 이북동포들을 마음껏 도와주지 못하여 안타까워 하고 있다.지금 북한 동포들에 대한 남한동포들의 지원을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것도 아름아닌 북한 통치자들이다. 우리는 북한 통치자들에게 아직도 폭력혁명론과 군국주의 망령의 포로가 되어 동족상잔의 새전쟁 도발에 몰두하고 남북교류를 가로막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으며 얼마나 큰 죄악으로 되는가에 대하여 냉정하게 심사숙고할 때가 왔다는 것을 충고하고 싶다. 출로는 명백하다.역사의 흐름에 배치되는 ‘주체연호’와 같은 우상화 놀음으로서는 오늘의 위기를 수습할 수 없다.북한통치자들은 이미 실패와 파산이 역사적 현실로 된 시대착오적인 봉건개인독재 체제와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야 하는 것이며 7천만 겨레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남북대화와 교류를 실현하는데로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역사와 민족앞에 더이상 엄중한 죄과를 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북한의 모든 각성된 사람들은 눈을 가리우고 귀를 막은채 썩고 병든 개인독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여온 오랜 잠에서 깨어나 민족이 평화적 통일을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 나설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이와 함께 우리는 북한동포들의 불행을 가슴아파하고 있는 모든 애국적 해외동포들은 북한이 그릇된 노선과 정책을 버리고 개혁개방과 평화통일의 길로 나가도록 사심없는 애국애족의 입장에서 떠밀어줄 것을 진심으로 부탁하는 바이다.
  • 권력 이미 일원화… ‘직위 승계’ 성격/김정일 총비서 추대 의미

    ◎총비서 이어 내년9월 주석승계 가능성/대내외정책·남북관계 큰 변화 없을듯 북한이 평안남도 평성에서 21일 열린 노동당 평안남도 대표회에서 김정일을 ‘당총비서’로 추대키로 결정한 것은 김정일 공식 권력승계의 구체적인 절차를 밟고 있음을 의미한다.따라서 북한은 평남에 이어 각도별로 당대회를 열어 분위기를 확산한뒤 오는 10월10일 노동당창건 52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전체 당대회나 대표자회의를 열어 김정일이 총비서직을 승계토록 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당국도 최근 북한의 해외공관 등을 통해 지방당대회를 개최하려는 분위기를 전해듣고 김정일이 권력승계가 임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당 최고위직인 당총비서직을 승계할때 국가주석직도 함께 승계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년 9월9일 정권창립 50주년을 앞두고 평양시가지를 정비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한 점으로 미루어 내년 정권창건일을 전후해 김정일이 국가주석직을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또 남한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월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연말쯤 승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3년2개월이 넘도록 공식승계를 미루어 왔고 아직까지도 김일성의 ‘유훈통치’에 권력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직은 공석으로 남겨둘 공산도 있다. 김정일이 오는 10월 당총비서직을 공식 승계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권력 승계’라기 보다는 ‘직위 승계’의 성격에 가깝다.이미 김정일은 조선인민군총사령관직과 국방위원장직을 갖고 있고 실질적으로 당·정·군의 최고권력을 휘둘러 왔다.최근 북한 금호지구에서 만난 북한의 고위관계자도 ‘김정일비서가 언제 국가주석직을 승계하느냐’는 질문에 “지도자동지는 이미 국가의 중심이며 자리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 북한에서 최고권력자로서 김정일의 위치는 확고부동하다. 정부당국도 김정일이 당총비서직을 승계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북한의 대내외 정채나 기존의 남북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김정일이 당면한 식량난과 함께 경제난 극복의 탈출구로 삼고 있는 대미·대일관계 개선에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경우 ‘직접대화를 기피하는 우회전략’에서 직접대화에 나서는 등 남북관계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총비서 승계절차/당대회·당대표회 소집 등 두가지 방법/당대표회 중앙위 회의통해 추대 유력 북한 노동당규약에 따르면 당총비서 선출과정은 두가지로 나뉜다.첫째는 당의 최고지도기관인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을 선출해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선출하는 것이고,둘째는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을 토의결정하는 당대표자회를 열어 중앙위원을 선출,중앙위 전원회의를 여는 방법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김정일의 선출과정은 두번째 방법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이미 평남에서 당대표회를 열어 추대를 발표한데다가,당대회는 개최 3개월전 공고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연내 당대회가 개최되기는 시간상 어렵기 때문이다. 통일원 이호 정보분석실장은 “평남도를 비롯해 각도별로 당대표회를 연뒤 10월10일을 전후해 중앙당대표회에서 김정일을 총비서로 공식선출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과거 김일성의 당총비서 선출은 반드시 당대회를 소집,당대회 마지막날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선출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주석직 선출은 빠르면 연말이내 또는 정권창립 50주년이 되는 내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총비서와 주석/당 인사는 총비서 권한/주석은 국가수반 위치 북한 노동당총비서는 당비서국의 총수다.당비서국은 당인사 및 당면과제 등 모든 당내문제를 토의결정하고 집행을 조직지도하는 곳으로 정치국보다 더 큰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따라서 당총비서는 노동당뿐아니라 국가전체의 최고지위다. 당총비서는 10여명의 비서와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등 22개의 전문부서를 총괄함으로써 당·정·군 간부들을 총감시한다.임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은 없고 당대회나 당대표자회 개최까지로 관례화되어 있다. 국가주석은 지난 72년 수상제를 폐기하고 도입된 제도.북한 헌법에 따르면 주석은 국가의 수반이고 중앙인민위원회 수위로 명실공히 북한최고의 권력자다.그러나 북한은 92년 개정헌법을 통해 최고인민회의에 주석소환권,국방위원장에 무력지휘통솔권을 각각 부여함으로써 주석의 권한은 상당히 약화됐다.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다.
  • 살림집 1만세대 평양에 건설계획

    북한은 내년 정권수립 50주(98년9월9일)까지 평양시에 1만여 세대의 살림집(주택)을 건설하고 새 거리를 조성하는 대규모 건설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중앙방송이 최근 보도했다.앞으로 1년동안 추진될 평양시의 주요 건설사업은 금수산기념궁전앞 미문로터리부터 형제산구역 신미동에 이르는 20여리(약 8㎞) 구간에 ‘우리식의 독특한 새거리’를 형성하고 4·25여관,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 등 여러채의 중요건물과 1만여세대의 살림집을 건축하는 것이다.
  • 황장엽씨 “소녀거지 보고 망명 최종결심”

    ◎정부 조사결과 일 전달 내용 교도통신 보도/“김정일,카리스마 높이려 대중연설 피해” 【도쿄 연합】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평양의 자택까지 찾아온 10대 소녀 거지를 보고 망명을 최종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또 북한의 김정일이 카리스마를 유지하기 위해 공개석상에서 연설을 피하고 있다고 한국의 조사 당국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내용들은 황씨가 한국에 도착한 직후와 지난달 10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한국이 황씨의 기자회견에 앞서 외무장관 특별보좌관을 일본에 파견,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그동안의 조사 결과 가운데 포함돼 있다고 교도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일은 94년 김일성 사후 주량을 줄이고 있고 감기예방법을 실천하는 등 건강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으며,평소 말을 잘하는 편인 그가 밖에서 말을 삼가는 것은 대중앞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카리스마를 높이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또 북한의 권력구조에 대해 김정일 1인이 정책을 결정,권력투쟁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하면서 노동당에는 인민군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도록 지시가 내려져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황씨는 북한의 권력승계 문제에 관해서는 김정일이 당총비서에는 취임할 것으로 보이지만 국가주석직은 사람들과 만나야 되는 것 이외에 권력유지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취임에 소극적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