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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조명록 위독설

    조명록(趙明祿·70)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겸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신장병의 악화로 중국 베이징(北京)의 301병원에 입원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은 10일 “조 부위원장이 지난달 중순쯤 지병인 신장병이 악화돼 베이징의 301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며 “병세가 상당히 위독하다”고 전했다.301병원은 중국 인민해방군 의료기관으로 덩샤오핑(鄧小平)이 97년2월 이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부위원장은 지난달 김일성(金日成) 사망 7주기행사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이번 모스크바 방문을 수행하지않아 건강이상설이 나돌았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1)김동환 가족사

    한 여인이,생신을 보름 남짓 앞둔 91세의 한 여인이 1993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났다.‘백구 신원혜지묘(白鷗 申元惠之墓)’라는 묘비명만으로는 이 여인의 죽음이 한국 문학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아리송할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이름위에 있는 ‘파인 김동환(巴人 金東煥)’이란 각자(刻字)를 보노라면 ‘아,파인의 본처가 그때까지 생존했더란 말인가’라는 자못 회고조의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1903년 원산에서 태어난 신원혜가 서울 정신여고를 졸업,블라디보스토크,간도,원산 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서사시 ‘국경의밤’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두 살 연상의 시인 김동환과 결혼한 건 1926년 3월 14일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아내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3남 1녀를얻은 그녀는 1942년 작가 최정희(崔貞熙)와 남편의 관계가알려지자 시인의 “우유부단한 처신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기어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그 극심한 어머니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는 끝내 여관으로 잠시의 거처를 정하였다”고 셋째 아들 김영식(金英植·68)은 회상한다.“그 후 어머니는 교회 일과 모교인 정신여고 동창회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아픈 상처를 홀로 달래고” 지냈는데,나중 동네 아낙들에게 “아무리 남편이 속을 썩이더라도 집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김영식,‘아버지 파인 김동환-그의 생애와 문학’). 조혼이 아닌 어엿한 신여성과 연애를 거쳐 사랑이 그득한결혼을 했던 파인의 예기치 못했던 탈선이 문단에서는 가십이었으나 그의 고향을 비롯한 애독자들로부터는 마침 휘몰아친 친일문학과 함께 따가운 매도의 대상이었다.어쩌면 이 두가지 탈선은 오히려 동시에 수행되면서 인간과 민족의존재론적 본질을 벗어나 원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 도피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파인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애정을 받은 것은 정작 남편이 버린 여인 신원혜였다.아니,파인 조차도 그녀를 버릴 수 있었을까.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한 직후인 1950년 7월 초 파인은 홀연히 귀가했다.피신 차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은 비록 짧았으나 단란했는데,이내 최정희의 자수 권유를 받고 나간(7.23) 뒤 그대로 납북,생사도 모르게 분단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앓은 게 이 일가족이었다.가족이랬자 두 아들은 일찍세상을 떠나버려,셋째 영식과 딸 영주(英珠·63)뿐이었다. 영식은 서울 경복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대통령 비서실,주불 한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았고,영주는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와 시인으로 등단,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다. 이 한많은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마련해 둔 유품 속에는파인의 사진과 애증이 교차하는 몇몇 증빙 서류들,그리고자신이 묻힐 묘소와 묘비명이 포함되어 있었다.살아서 쫓아냈던 지아비를 죽어서야 한 문패 안으로 맞은 것이다.보따리 속에 파인이 보낸 편지도 한 묶음 있었다.파인은 맨몸으로 집을 나갔으니 여러 유품들은 저절로 신원혜가 간직했을 터여서 여간 소중한 자료가 아니리라는 기대에 부푼다.신원혜는 파인에게 보냈던 기라성같은 문인들의 편지를 그 격변의 역사를 헤치면서 고이 간직해 왔었다.신혼초 서울의정동,다동을 거쳐 종로구 돈의동 74번지로 호적을 옮긴 뒤,적선동(1927.5),인사동(1930.7),견지동(1933.12),필운동(1935.10),옥인동(1936.11),통인동(1938.1),효자동(1940.2)을전전하다가 1941년 6월 12일 적선동 183번지의 목조 기와집으로 이사,거기서 해방을 맞았다. 만주로부터 돌아온 피난민의 딱한 사정 때문에 방세도 안받고 그대로 살게 했던 이창규씨가 어느날 정전(停電)이 되자 성냥불을 켜들고 초를 찾다가 넘어져 석유난로에 점화,순식간에 집이 불타 버렸다.바로 1946년 12월 12일 오후 7시쯤,파인의 유품이,그리고 그가 ‘낭자 신원혜’에게 보냈던 달콤한 연애편지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순간이다.일가는창성동 자교(紫橋)교회 목사 사저에서 신세를 지다가 청운동(1948.5∼1953.2)으로 옮겨 6·25와 1·4후퇴를 겪으면서도 행여나 남편이 돌아오려나 싶어 몇 년간 이사도 하지 않았다.이제 파인과 신원혜는 갔고,사랑의 편지도 불타버렸다.그러나 1947년부터 납북당했을 때까지의 격랑을 헤치며 파인이 한 지아비와 육친의 정으로 아내 신원혜와 자녀에게보냈던 32통의 편지는 문단 비사의 차원을 넘어 가난했던글쟁이의 인생론적인 비애를 느끼게 한다. 중학생 아들(영식)과 초등생 딸(영주)을 아내에게 맡긴 빈털터리 시인 김동환은 이 무렵 최정희로부터 지원(1942년생),채원(1946년생) 두 딸을 가진,허리가 휘청거리는 아버지였다.최정희와의 보금자리였던 덕소에서 8·15를 맞은 파인의 심경은 실로 착잡했을 것이다.그의 뇌리에는 선비적 지조의 상징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후손으로서 민족운동에투신했던 화려한 투쟁 경력들-민요 전설시의 거봉,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중앙위원,침략주의에 항거했던민완 기자,잡지 ‘삼천리(三千里)’의 폭발적인 성공과 민족의식이 강한 각종 출판물 간행,신간회 집행위원 등등이스쳤을 것이다.이런 경력 때문에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보였던 친일행위의 오점들은 그로 하여금 발빠른 자성과 회오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진흙 속에 빼앗긴 두 발 겨우 뽑고/오래 가뒀던 옛 날개 와락 펴 멀리 쳐다보니”(‘돌아온 날개’),“새나라 백성들은 이래서는 안된다/우리는소생하지 않으면 안된다”(‘소생’)는 참회와 함께 “올해엔콩팥을 맘대로 심어/천리객은 몰라도 십리의 벗 맞아들여/소찬에 약주라도 싫도록 대접할꺼나”(‘起耕’)라는 은인자중의 자세를 보여줬다.반민특위 때 그가 자수(1949.2.28)할 수 있었던 심리적인 배경도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이승만 정권이나 한민당 추종이 아닌,조선민주당 대변인격으로 정당활동에 몸담았던 것(1946.2)은 나름대로의민족관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혼란 속에서 숙원이었던 잡지 ‘삼천리’ 복간에 온 정력을 쏟았는데,민족 독립노선이나,문인으로 발 빠르게 자아비판한 채만식을 부각시킨 걸로 봐서 다분히 참회적인 자세를 취했다.을지로5가 여관에서 업무를 시작한 파인은 틈틈이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납득시키려고 난필의 쪽지를 보냈다.우편 배달이 아닌 사환이나 인편을 통해 직배시킨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라 겉봉에는 ‘영식 모(英植 母)’ 혹은 아예 ‘영식 전(展)’이라 쓰고는 원고지나 적당한 백지에 절박한 용건만적어 보냈다.서른 두 통의 편지중 가장 빈도수가 많은 내용은 잡지 일로 인쇄소에 붙어 있어야 한다든가,당장 돈이없으니 우선 얼마만 보내고 며칠 뒤 더 보내겠다는 등등이다.신원혜의 이성적인 결벽과는 달리 어린 남매들이 아버지에게 귀가와 생활비를 독촉하는 전화를 했던 데 대한 회답으로 보인다. 이 역마살의 시인을 신원혜와 함께 묻고 딸 영주는 “기다리면 다시 올 사람인가/시를 만드시던/파인,내 아버지//하늘 밑을 파고/그를 묻었다.//그가 다니던 길도/함께 넣었다.//눈물도 못 내고/기어 가/나도 묻힌다.//아 아,내 아버지 파인”(‘아름다운 작별’)이라고 마음을 추스렸다.이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시인으로서의 김영주와는 달리,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던 딸로서의 김영주는 무척 신랄했다.“친일행동과 여자 문제로 부끄러운 아버지 책을 써서 알리는 것은 정말 내가 부끄러워요”라며,“아버지는 실패한 인간입니다.자신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을 이루어 살라고 주신 한 가정의 책임을 저버리므로 해서,어머니와 우리 자녀는 가장아픈 불행을 체험했으며,어머니의 고통과 수치와 배반에 대한 증오와 세상이 보내는 그 부끄러운 수근거림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놀라울 뿐입니다”(김영식,위와 같은 책)라고 통매했다. 그러나 파인의 애틋한 조각편지들은 실패한 인간의 자료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멍에를 헤어날 길 없었던 인정미 넘치는 나약한 한 서정시인이 치러야만 했던 가정과 사랑과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일 것이다. “몸 무고히 학교에 잘 다니느냐.마음에 어느 날 잊은 적이 없었다”거나,“추위가 심하니,남대문 야미(暗)시장에 가서,영식이나 영주의 외투 한 벌 사서,한 아이라도 입히오”,“한방의 침술 운운하지만 큰 아이들 때(장남 영사는 16세로 1942년에,차남 영창은 17세로 1947년에 사망)에 보아도도무지 믿을 사람들이 못 되니 더 보이지 말고,내가 정초에 영식이를 데리고 전문 신의(新醫)들에게 보여 충분히 치료할 터이니,아이에게 겁나는 말을 일체 말고,내가 가기를 기다려 주오”라는 등등의 구절에 이르면 이 시인이 얼마나가슴으로 울었던가를 알법도 할 것이다.“내일 산소에 가는 일은 중지하고,5월 단오에나 가기로 하오”란 구절은 바로 두 아들이 묻혔던 미아리 공동묘지로,거길 가면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묘소에 절하라’고 말한 후 묵념을 했고,어머니는 쌍봉 무덤 앞에 엎드려 흐트러진 모습으로” 울부짖었다고 김영식은 회고한다.살뜰한 지아비와 부정(父情)이 넘치는 글이기에 오히려 다른 서간문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 글들을 쓴 주인공이 어째서 가정을 버릴 수 있었을까. 임 헌 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김정일 누가 수행할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탄 ‘평양발 모스크바행’ 특별열차에는 모두 140여명의 북한인사가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인사는 연형묵(延亨默) 자강도당 책임비서 겸 국방위원과 전희정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이들은 김 위원장이 26일 오전 러시아 국경도시 하산에 도착,러시아관계자의 영접을 받는 모습을 일본 NHK방송이 보도하면서 확인됐다.백남순(白南淳) 외무상도 이때열차에서 잠시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백 외무상이 최근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불참한것은 이번 러시아 방문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용삼 철도상은 이미 지난 24일 모스크바에 도착,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인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계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실무협상을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 국방위원은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시 수행했고 또 지난 5월 김 위원장이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만날 때도 배석했다.북한 군수산업시설이 밀집한 자강도 책임비서로서 이번 방러중 군사분야의 실무협상을 맡을 것으로관측된다. 전희정 국장은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기내에서 영접했던 인물.80년부터 김일성 주석부의 외사국장으로 일해왔으며 김 주석 사후에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 직함을 갖고 김 위원장이 평양에 온외국 인사를 만날 때 의전을 담당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북한군 주요 고위간부들은 동행하지 않았다.김용순 당 중앙위 비서와 기계공업부문에 해박한 곽범기 부총리,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오수용 전자공업상은 물론,리광근 무역상,리상무 임업상,김영일 육해운상,리성웅 수산상 등이 실무협상을 위해 특별열차에 탑승한 것으로 관측된다. 노주석기자 joo@
  • 대규모 군중집회 부쩍…6·25 평양대회 20만 참석

    올들어 북한의 대규모 군중행사가 부쩍 늘어난 양상이다. 10만∼20만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평양시 군중 대회만 세차례나 열렸고,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군중행사가 잇따르고있다. 평양시 군중대회는 지난해에도 6차례나 열렸던 만큼 올행사가 잦다고 할 수 없지만 지난해의 경우 주로 기념일축하성격이 짙었던 반면 올해에는 반미와 단결을 강조하는내용이 주를 이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올해 열린 평양시 군중대회는 지난 1월5일 신년 행사와 6월24일 6·25관련 대회,7월17일 김일성 생일 90주년 기념준비대회 등이다. 이 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6·25 미제 반대투쟁의 날평양시 군중대회’는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최태복 당중앙위 비서,리종산 인민군 차수 등 당·군·정의 고위관계자와 평양시민 20여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로 개최됐다. 6·25 관련 군중대회는 91년에 이어 10년만의 행사로 군중들은 대회 후 반미시위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평양대회 외에도 각 지방과 기관에서도 군중행사가 활발하다.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7일 평양에서 10만명 군중대회가 열린 뒤 각 도와 직할시에서 군중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대규모 군중대회를 통해 반미의식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경색국면에 빠진 북·미관계를 반영한 것이다.그러나 식량난 등 악화되고 있는 경제사정도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5일 “군중대회뿐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횟수도 크게 늘었다”면서 “이는 식량배급이 제대로 안되는 등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북한 당국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민들의 의식강화에 주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 김용순 실각? 와병?

    지난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곁에서 대남정책을총괄지휘했던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의대외활동이 올들어 크게 줄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16차례에 걸쳐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두터운신임을 과시했으나 올해엔 단 한차례도 수행한 적이 없어그의 입지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돌고있다. 올 들어 북한언론에 보도된 김 비서의 대외활동은 고작 몇차례에 불과하다.지난 4월 이후만 따져도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의 면담(4월 25일),남북공동선언 1주년 기념 평양보고대회 참석(6월 14일) 등 두차례에 그치고 있다.이달 들어 6일 판문점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7주기추모행사와 8일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 때 방송 화면에 얼굴이 잡히긴 했으나 보도되지는 않았다. 김 비서의 행보가 이처럼 줄어들자 일각에서는 ‘와병설’과 ‘실각설’까지 나돌고 있다.통일부 당국자는 그러나 18일 “대남관계가 침체된 데 따른 것일 뿐 다른 이유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김 위원장 수행이부진한데 대해서도 “올들어 수행인단을 간소화하고 수행인사도대장급,부부장급 등 실무진으로 구성한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남관계와 무관한 행사에도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런 분석에도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김 비서가 관장하는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의 역할 축소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올들어 남북경협의 창구가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쪽으로무게중심을 옮겨가면서 상대적으로 활동영역이 좁아졌다는것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지난 상반기 차질을 빚은 점도 활동위축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활동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를 북한내 온건론자들의전체적인 쇠퇴로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지난해대외관계의 전면에 섰던 인사들이 그대로 건재하다”며 “대외관계가 소강국면을 맞은 데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유고전범법정 다음 차례는 ?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유엔 유고전범법정(ICTY)에 서면서 밀로셰비치의 공범들도 ICTY에 인도될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ICTY가 공개수배중인 25명 가운데 특급 수배자는 보스니아세르비아계 대통령을 지낸 라도반 카라지치와 군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 등 2명.지난 92∼95년 보스니아 내전 중 크로아티아인들과 이슬람 신자들을 대상으로 ‘인종 청소’ 운동을 전개했던 주동자들이다.최악의 반인륜범죄로 불리는 42일간의 사라예보 포위 만행과 약 7,0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도했다. ■카라지치=몬테네그로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아마추어시인.세계2차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전쟁인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켰다.사라예보 포격 뿐 아니라 지난 95년 5∼6월 유엔 평화유지군 385명을 인간 방패로 만든 혐의도 받고 있다.보스니아 동부 포차 인근 나토평화유지군 바로 코앞에서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다. ■믈라디치=보스니아 내전 당시 유고인민군(JNA)사령관으로인종 청소를 진두지휘한 카라지치의 행동역.전쟁이 끝난 뒤베오그라드에서 밀로셰비치의 보호막 속에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지난 4윌 밀로셰비치 체포 뒤 도피했는데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공화국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8년 코소보 사태 수배자들=밀란 밀루티노비치 세르비아현 대통령,전 유고연방 부총리인 니콜라 사이노비치,유고군참모총장을 지낸 드라골류브 오이다니치,전 세르비아 내무장관 스토일리코비치 등 모두 4명.밀로셰비치와 함께 코소보 5인방으로 불린다. ■체포 가능성=전범들은 대부분 집권 당시 부정축재한 돈으로 경호원들의 보호까지 받으며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의지만 있다면 검거는 시간문제라는 게 일반적 관측.그러나 문제는 목소리만 높이는 서방 입장이다.서방측은 체포과정에서 세르비아계의 반발을 야기,새로운 소요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내전 당시 서방에 불리한 비밀을 너무 많이알고 있기 때문에 검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강하다. 김수정기자
  • 진상규명 범국민위, 학술심포지엄 “”한국전 민간인학살 대부분 계획적””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학계,시민·유족단체의 노력이 한층 활기를 띄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상임대표 강정구 외)는 27일 낮서울 세종문화회관 4층 컨퍼런스홀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지방사적 인식’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이날 행사에서는 ▲경남서부·마산 ▲대구·경북 ▲여수·순천 ▲전남·광주 등 4개 지역에서 자행된 학살의실태,유형 등에 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경남서부·마산지역의 학살실태를 발표한 전갑생(민간인학살문제 해결을 위한 경남지역모임)진상조사팀장은 “경남의 경우 구체적으로 학살책임자나 학살경위 등이 밝혀져있지 않으나 최근 1960년 4대 국회의 진상조사 기록 등이공개되면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 지역의 민간인학살은 한국전쟁 전후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저질러진 대학살극”이라고 밝혔다. 전씨는 한국전쟁 이전 거제지역에서 두차례에 걸쳐 발생한학살사건은 국군과 우익단체인 민보단,CIC(육군방첩대)등이 사감을 앞세워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용석 대구·경북 공동조사단장은 “대구·경북지역은낙동강 전선을 중심으로 북한군과 국군이 최대격전을 벌인곳으로, 민간인학살이 대형으로 이뤄졌다”며 경산·청도·포항지역에 살고 있는 유족의 증언을 공개했다. ‘여순사건’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과 관련,이영일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이승만정권이 ‘여순사건’을국군내부의 반란이 아니라 민간인 공산주의자 폭동으로 선전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하고 “당시 여수·순천지역에 내려진 계엄령은 국회가 아닌,정부가 제정한것으로 명백한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했다.이 소장은“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피학살자는 대부분 명령계통이분명한 의도적·조직적 학살로 ‘국가 후원적 대량살해’의성격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기 광주인권센터 운영위원(전남대 강사)은 광주·전남지역 실태조사 중간보고를 겸한 발표문에서 “거의 동일한 시기에전남 모든 지역에서 발생한 ‘보도연맹사건’의경우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학살”이라고 강조하고“경찰의 후퇴과정에서 발생한 해남·완도지역 학살사건의 경우,해당지역에 들어가지 전에 전화로 ‘인민군 환영대회를준비하라’고 연락한 다음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들어가 환영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만 학살했다는 점에서 매우 기만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발표가 끝난뒤 정범구 의원,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장완익 변호사,김동춘 교수 등이 통합특별법 제정과 국회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자료공개 청구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운현기자 jwh59@
  • 북한 풍향계

    ■김정일 국방위원장 겸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최근 군 기강을 엄정 확립토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최근 ‘군민관계를 훼손시키지 말고 문란한 군사규율을 바로 잡을데 대하여’란최고사령관 명령을 군에 하달,지휘관 등에게 군기 확립을지시했다. 최고사령관 명령은 북한군의 최고 명령권자의 군령으로,김 위원장은 91년 12월24일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이후 장성 진급이나 긴급한 군사현안 발생시 이 명령을 하달하고있다. ■수백통의 팬레터와 전화를 받는 북한 최고의 인기 방송작가가 있다.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문예창작단 윤광연부단장(58)이 주인공이다. 지난해 함북 금야군 광명성제염소의 건설과정을 그린 조선중앙TV의 7부작 미니시리즈 ‘붉은 소금’을 쓴 이후 윤부단장에게 많은 팬들로부터 격려의 편지와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북한의 월간화보 조선이 6월호에서 소개했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에서 남포시 경계를 잇는 ‘청년영웅도로’ 주변에 인구 100만명을 수용하는 위성도시가 조성될 전망이다. 평양도시계획설계사업소 리철호 부기사장과 평양건설건재대학 김태렬 부교수는 최근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와 가진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내년까지 청년영웅도로 주변에 1만가구의 주택을건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장기적으로 인구 100만명 규모의 위성도시를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이것은 평양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최근 마(麻)의 일종인 ‘양마’ 재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양마를 “종이공업,축산업 등을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원료식물”이라며 재배를 적극 권장,황남 해주와 신천,평남 안주등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장에 김성국씨가 기용됐다. 조선중앙방송은 최근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열린 사진전시회 ‘백두에서 한나(한라)까지’의 소식을 전하면서 “김성국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개막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60대 중반의 김 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졸업하고 중앙방송위원회 기자로 활동했으며 70년대 중반에 국장이 된 뒤 80년대 초반에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북한 강원도 시중호 부근의 요양소에서 머드(mud)를 이용한 임상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조선은 최근 “요양소에서는 치료효과가 좋은 시중호 감탕(머드,물에 풀어져 아주 곤죽같이 된 흙)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치료방법을 완성하기 위한 과학연구사업을 힘있게 벌여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 한국전 희생자 지리산 위령제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등 7개 종단과 190개 시민단체는 지난 26일 전북 남원 지리산 뱀사골 달궁계곡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군경과 민간인,빨치산,인민군들의 원혼을달래는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종교계 지도자와 각 시민단체 대표,시민 등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혼들이 찾아올 길을 닦는 길놀이와 이들의 한을 푸는 씻김굿으로 시작,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유족 대표들은 분향과 헌주로 영령들을 위로하면서 안식을기원했고 시민단체 대표들도 백두산과 백두대간에서 떠온흙과 물을 한 그릇에 담는 합수합토(合水合土) 행사로 화합을 다짐했다.이날 지리산 계곡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단의사방 벽면에는 전쟁 당시 이 곳에서 희생된 3만여 명의 위패가 나붙었다. 김성호기자 kimus@
  • 북한 풍향계

    ■고려 태조 왕건의 가문 족보와 옥쇄,왕건을 형상한 금동좌상 등 관련 사료가 북한에 상당량 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방송 등의 보도에 따르면 왕건 가문의 족보와 옥쇄는 92년 9월 개성에 살던 ‘왕명찬’이란 노인이 왕건의후손이라고 밝히면서 대대로 보관해온 족보와 옥쇄를 기증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이 족보는 ‘국보’로 지정돼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중앙역사박물관에는 또 왕건이 사용하던 옥대도 ‘국보’로 보관돼 있다. 금동좌상은 97년 8월경 개성 왕건릉 북쪽 5㎞지점에서 발굴됐다.“이 금동좌상은 높이 1.5m,무게 80㎏이며 동 주물과 금도금으로 형상한 국보적 유물”이라고 당시 중앙방송이 보도했다.백옥으로 만든 고리 장식품 등 10종 30점의 유물도 함께 나왔다. 북한은 92년 5월 왕건릉 복원공사를 시작해 94년 1월 완료했다. ■북한 근로자들은 여름 휴가 대신 추수가 끝난 뒤인 11월과 12월 휴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도 예전에는 여름철 해수욕장이나 계곡으로 휴가를 떠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95년 이후 식량난으로 변화가 생긴 것 같다”며 “11,12월에 휴가를 얻은 근로자들은 주로 고향 근처로 가 식량을 구하고 있다는 탈북자 증언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노동법은 근로자가 연 14일간의 정기휴가와 직종에따라 7∼21일간의 보충 휴가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차 평양 국제상품전람회가 7일 평양에서 개막됐다.10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북한을 포함해 러시아·독일·이탈리아·프랑스·영국·대만·중국·호주·일본·싱가포르등지에서 온 220여개 기업체들이 참가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 기업들이 예년에 비해 다수 참가한 것이 특징”이라면서 “일본 기업은 NKK철강 등 10개사에 이르며 중국 기업은 수십개”라고 전했다. ■북한 최대 비철금속광산인 검덕광산에는 2대째 광부로 일하고 있는 ‘61년생 소대’ 대원들이 ‘최우등생 광부’로성가를 높이고 있다고 노동신문에 소개됐다. ‘61년생 소대’는 검덕광산 금골분광산 채광 3소대 대원들로,61년 4월 김일성 주석이 검덕광산을 현지지도한 해에태어나 올해 만 40세가 된 광부들이다.특히 이들은 지난 20여년간 100개의 채굴장을 옮겨 다니면서 해마다 광물생산계획을 140% 이상씩 초과 달성,김정일 총비서로부터 여러 차례의 감사를 받았다.소대원들 중에는 2명의 ‘김일성청년영예상’ 수상자와 6명의 노력영웅,1명의 공훈광부가 포함돼있다. ■친북단체인 ‘조선친선협회’는 오는 6월 미국 아칸소주의 핫 스피링스에서 사상 첫 북한전시회 개최를 추진중이다. 스페인의 타르고냐에 본부를 두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조선친선협회는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www.korea-dpr.com)에서 이같이 밝히고 “조선친선협회의 미국대표인 하워드 리킬비가 전시회 개최를 위해 미 정부측과 접촉하고 있다”고전했다. 조선친선협회는 지난해 12월10일 북한정부의 승인 아래 인터넷홈페이지를 개설했으며,미국 핫 스프링스,독일 아헨,노르웨이 콜론,중국 후베이성 우한,싱가포르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남포시에 거주하는 4쌍둥이가 동시에군입대를 자원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기관지 청년전위 최근호는 “올해고교를 졸업한 김일순, 김편순,김 단,김심순 4쌍둥이가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할 것을 탄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4쌍둥이가 군에 입대하면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이름인 ‘일편단심’의 맹세를다짐했다고 밝혔다.
  • 김정일위원장 장남 ‘후계 수업’

    [홍콩 연합]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겸 노동당총비서는 지난 1월 중국 방문시 장남 김정남(金正男·30)을 대동하는 등 후계자 수업을 시키고 있다고 홍콩의 시사월간 광각경(廣角鏡) 최신호가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모스크바와 스위스에 유학한 김정남은 컴퓨터에 정통하며 일어 학습을 위해 일본에도 다녀오는 등 서방세계를 왕래하고 있으며 현재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요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광각경 최신호(4.15∼5.15)는 ‘김정일과 그의 맏아들 김정남’ 제하 논평 기사에서“김 위원장은 부친으로부터 승계한 권좌를 장남인 김정남에게 승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현재 북한에서 김정일과 김정남을 각각 ‘장군’과 ‘작은 장군(小將軍)’으로 부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여름 남북 이산가족 교환 방문시 한 북한측 관계자는 평양의 한 건축물을 가리키며 “이 건축물은 김정남동지가 설계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김정남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동포작가 김순금씨 ‘굴러가는 태양’

    “큰 삼촌은 국군, 작은 삼촌은 인민군으로 6·25 전쟁 중에 전사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동생에게 형 노릇을 제대로못했다고 평생 우셨습니다.” 중국 CCTV에서 TV드라마로 방영될 베스트셀러 ‘굴러가는태양’의 중국동포작가 김순금(金順錦·49)씨는 책처럼 한많은 가족사를 털어놨다.중국동포가 쓴 희곡이 현지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굴러가는 태양’은 지난해 1월 출간된 희곡으로 6·25이후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여주인공 혜주는 개성출신의 중국동포.아버지가 어머니의 외도로 집을 나간 뒤 혜주는 친아버지가 따로 있으며 6·25때 특수임무를 띄고 남파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생아라는 사실에 방황하던 혜주는 남한에 내려가 공부하던 중 한 남자를 사귀게 된다.하지만 그가 자신의 가정을해체시킨 어머니 외도상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복수를결심,자기파멸의 길을 걷는다.결국 혜주는 남한에서 친아버지를 만나지만 6·25 때문에 꼬여버린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며 자살을 택한다. 김순금씨는 “혜주의 비극적 삶을통해 6·25가 다음 세대에게 남긴 피해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6·25 다음세대인 김씨는 “일제시대 일본인 두명을 때려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친 아버지는 동생들의 비극적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며 매일 술을 마셨다”면서 “어릴 적에 이런 아버지가 싫었는데 나중에는 불쌍해서 서로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이어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을 잘했지만 아버지의 한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기위해 어문대학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북경아진흥문화발전유한회사와 주간 차이나한겨레사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나를 위해 울지 않는다’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이송하기자 songha@
  • 野, 신임각료‘전력들추기’공세

    이번 임시국회를 ‘3·26 개각’으로 입각한 각료들의 인사청문회로 삼겠다고 별러 온 한나라당은 10일 대정부질문에서 신임 장관들의 전력을 들먹이며 공세를 취했다. 한나라당 강인섭(姜仁燮)의원은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에게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사피오’는 성균관대 교수의 말을 인용,‘임 장관은 고교를 졸업한 뒤 김일성(金日成)종합대에 입학,6·25가 발발하자 인민군에 입대했다’고 적고 있다”며 사실 여부를 물었다. 또 임 장관이 지난 90년 10월 남북 고위급회담 2차회의때 평양에서 북한의 누이와 상봉한 사실을 지적하며 “혹시북한이 누이를 인질로 이용하려 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임 장관은 “지난 50년 12월 국민방위군에 입대했으며 국민방위군이 해체된 뒤 2년 동안 미군부대에서군속으로 근무한 뒤 52년 가을 육사에 응시해 합격했다”고 밝혔다.또 “‘사피오’의 기사는 사실과 다르며 누이의 인질 이용 운운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의원은 “보도에 따르면 김동신(金東信)국방부장관은 송환 직전의 비전향 장기수에게 꽃다발을 건넨 사실 때문에 군 통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북으로 가면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노력해달라는 차원에서 화환을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북한이 자랑하는 3대 가극

    북한의 대표적인 공연물인 혁명가극 ‘피바다’가 지난 71년 초연 이래 3월 말까지 만30년동안 1,500회 공연 기록을세웠다.이는 일년에 50회씩 공연한 셈으로 세계공연사에서도 진기록에 속한다. 조선중앙방송은 지난달 31일자 보도에서 ‘피바다’의 1,500회 기념공연이 평양대극장에서 진행됐다고 이례적으로 동정을 보도했다.이날 강능수 문화상과 중앙예술단체의 책임자 및 문화 예술인들이 대거 극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피바다’는 혁명가극의 효시로 일컬어지며 ‘꽃파는 처녀’‘당의 참된 딸’과 함께 3대 혁명가극이다.북한에서는 ‘밀림아 이야기하라’‘금강산의 노래’를 묶어 5대 혁명가극이라고도 하지만 3대 가극에 비해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북한이 자랑하는 3대 가극에 대해 알아본다. [피바다] 원제는 혈해(血海)이며 7장4막으로 구성돼 있다.3대 혁명가극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북한내부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혁명가극 건설에 관한 방침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내린다.북한의 공연사에는 ‘혁명투쟁의 위대한 진리를 밝혀주는 불후의 고전명작’이라고소개하고 있다. ‘국악과 서양악기의 조화로 신비한 음악적 효과를 창출했다’고 북한언론이 극찬하는 배경음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김위원장은 60여곡의 노래를선정하기 위해 무려 1,200여곡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줄거리는 일제에 의해 남편을 잃은 주인공 을남어머니가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대열에 합류,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맏아들을 해방전투에 참여케 한다는 상투적인 내용이다. [꽃파는 처녀] 악독한 지주와 일제 순사에게 억눌려 살던꽃분이 일가의 생활상을 통해 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김일성 주석에 의해 30년대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 첫 공연은 71년 12월에 있었다.지난 89년 제2차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단 교환방문을 위한 접촉과정에서 서울공연이 추진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당의 참된 딸] 71년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 아래 북한인민군협주단에 의해 창작됐고 공연됐다.‘인민상 계관작품’칭호를 받았다.6·25전쟁때 나이어린 인민군 간호원 강연옥이 갖은 고난과 시련을 뚫고 임무를 수행하다 장렬하게최후를 맞는다는 줄거리로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포럼] 남북대화 소강상태 ‘藥’으로

    일련의 남북대화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3일 개최예정이었던 제 4차 남북적십자 회담은 북측이 2일 판문점연락관 접촉에서 “상부의 지시가 없다”면서 서울회담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고 대표단도 보내지 않음으로써 무산되었다.북한은 이미 지난달 13일 열릴 예정이던 제5차 남북장관급 회담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참가할 수 없다”며무기한 연기했다. 또 오는 23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제4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키로 한 남북합의 역시 북측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남북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를 위해 지난 2∼3일 금강산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실무접촉도 불발로 끝났다. 북한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남북대화를 기피하는 것은 두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첫째는 부시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구체적인 대북(對北)정책 방향이 아직 정립되지 않아 이를지켜본 뒤에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에 대처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북한측으로서는 ‘남한정부의 지나친 대미(對美) 의존적 외교행태’에 대해 일종의 불쾌감을 표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 것 같다.부시 행정부의 북한정책은 국무부의 파월 장관,아미티지 부장관,켈리 동아태차관보,국방부의 럼즈펠드 장관,월포위츠 부장관 등을 통해 한국정부의 포용정책을 재점검하는 단계에있다.이들의 기본 인식은 포용정책을 원칙적으로 이해하고지지는 하지만 충분한 검증조치 없이 너무 빨리 진전시킬필요가 있는가 하는 데 있다. 북한이 남한정부를 이용하여전술적인 화해분위기를 유지하고 대신 실리만 취하려 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국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북한의 대내 일정이 너무 벅차 남북대화에 총력을쏟을 계제가 못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이달에 최고인민회의(5일),김일성(金日成)주석 생일(15일),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17일),인민군 창건일(25일) 등의 일정이 빡빡해 각급 채널의 남북대화나 교류접촉에 적극적으로 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물론 이는 부수적인 이유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일련의 남북대화가 무산되었다하더라도 우리가 안달복달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또 조바심을 갖고 대화 재개를 모색한다해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렇다면 이같이 남북관계가 소강 국면에 접어든 시기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 첫째,우리의 대북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대북지원 등에대해 그동안 부족했다 싶은 국민적 합의 기반을 두텁게 해나가는 것이다. 지난번 3·26 개각과 후속 차관급 인사로우리의 통일·외교·안보분야 장·차관이 전원 교체됐다. 이를 계기로 대북정책 추진과 관련한 소관 업무를 전반적으로 다시 한번 점검하고 관계부처간의 협조사항을 재조율해야 한다.4월 한달은 실질적인 남북대화나 교류접촉이 없어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그동안의 추진 상황을 따져 보고문제점을 분석하여 향후 대책을 정립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둘째,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상반기가 아니라 하반기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준비에 임해야 할것이다.쿠바 아바나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의회연맹(IPU)총회에 참석중인 북한대표는 경의선이 복원되는 9월 이후가 시기적으로 더 자연스럽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셋째,남북대화에 있어 북한의 일방적인 연기나 합의사항의 파기 등 안하무인(眼下無人)식의 태도는 결코 그들에게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보여주는 것이필요하다.이같은 북측의 행태는 그들의 국제적 신뢰를 추락시키고 결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좁아들게 한다는점을 인식시켜야 한다.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남북문제에 있어 마음가짐을 좀 느긋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경형 수석논설위원 khlee@
  • 남북 民官접촉 잇따라 무산

    4월 한달은 남북관계의 ‘휴식기’가 될 전망이다.북한은 당국간 대화가 막혀있는 동안 그나마 유지해 오던 민간차원의 교류도 중단시켰다. 2일 오전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2∼3일 금강산에서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가지려던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 관련 실무접촉에 대해 ‘준비부족’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추후 일정에 대해서는앞으로 협의하자고만 덧붙였다.이번 실무접촉에 참여할남측 민화협 대표단 5명은 1일 속초항을 출발,2일 금강산에 도착한 상태다. 3일 예정인 4차 적십자회담에 대해서도 북측이 2일 현재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 사실상 회담이 무산됐다.회담 당일인 지난달 13일 연기된 5차 장관급 회담에 대해서도 북측은 묵묵부답이다.정부는 적십자회담 당일인 3일까지 북한의 반응을 기다려본 뒤 대응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그동안 민간차원의 교류는 해왔는데 이것도 중단할 모양”이라며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정리가 끝나야하는 만큼 4월 한달은 남북관계가 소강국면에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5일),김일성(金日成) 주석 생일(15일),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방러(17일쯤),인민군창건일(25일) 등 북한 내부행사 일정도 빡빡해 북측이 회담에 임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4월은 북한 축제의 달

    4월은 북한에서는 의미있는 달이다.15일 ‘태양절’이 있고 25일은 인민군 창건일이다. 태양절은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생일로 15·16일 이틀이 휴일이다.태양절 일주일 전부터는 외국인의 출입이엄격하게 통제되는 등 북한 전역이 태양절 준비에 나선다. 김 주석의 생일이 태양절 이름을 얻은 것은 김 주석 사망3주년이던 97년 7월이다.당시 북한은 김 주석이 태어난 해(1912년)를 원년으로 해 ‘주체’연호를 쓰고 생일은 ‘태양절’로 부르겠다는 중대 발표를 했다. 그동안의 행사를 되돌아보면 북한 전역은 태양절을 맞아각종 행사가 벌어져 축제분위기가 된다. 가장 큰 행사로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을 꼽을 수있다.40여개국의 각종 단체가 참석하는 이 행사는 지난 82년 김 주석의 70회 생일을 시작으로 83년만 빼고는 매년열렸다.이외에도 당·정·군 간부와 지식인·근로자·군인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하는 30여건의 경축행사가 태양절전후에 치러진다. 태양절의 또 하나의 특징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대한 충성의 맹세다. 이는 평양4·25문화회관에서 열리는생일기념 보고대회에서 거듭 강조된다. 즉 김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로 새롭게 부른 것은 김일성 시대의 마감을 공식화하고 김정일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나가기 위한 수순이었다. 충성심 제고 차원에서 태양절을 앞두고 특별배급이나 사회 각 분야에서 대규모 승진 등도 이뤄진다.98·99년 2년연속 군 장성급 승진인사가 있었고 학자들에게 교수직이주어지기도 한다. 한편 인민군 창건일은 북한의 29개 기념일 중 유일하게휴일이다.이날을 기념,군과 관련된 건물에는 4·25를 붙이는 경우가 일반화됐다. 전경하기자 lark3@
  • 北아버지 눈물로 쓴 편지에 끝내 울어버린 남녘 3남매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너희들에게 편지로라도 소식을 전하니 금시라도 너희들을 만난 것 같다.” 인천시 주안2동에 사는 한정구(韓正九·56)씨는 16일 아버지 인기(仁基·84)씨가 보내온 편지를 받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끝내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 평생을 눈물로 살아온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인기씨는 6·25전쟁 1·4후퇴시 부인 최순례씨와 3남매를 처가인 강화로 먼저 피란보낸 뒤 인천 집에 남아 짐을 꾸리다 인민군에 징집당했다.가장이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최씨는 장사와 공장일을 해가며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만 했다. 72년 최씨가 72세로 사망하자 자식들은 한씨도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고 제사를 함께 지내왔다. 인기씨는 편지에서 자신은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 결혼해 5남매를 두고 있으며 기업소 직맹위원장을 지내다 퇴직했다고 밝혔다. 인기씨는 “통일이 되면 마주앉아 몇밤이고 지새우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자”며 자식 상봉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은 채 50년만의 편지를 마무리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北형님 편지받은 김민하 민주평통 부의장 ‘애통’

    “어머니,성하 형이 편지를 보냈어요.창하 형도 옥희 누나도 살아있대요,어머니!” “…어… 어…” 분단 50년만에 첫 서신교환이 이뤄진 15일 형 성하(成河·75·함경남도 단천시)씨의 편지를 받은 김민하(金玟河·67)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병상의 노모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6개월 전부터 의식불명상태인 어머니 박명란(朴命蘭·100)씨로부터는 반응이 없었다.윤하(潤河·71·전 국회의원)씨 등 5남매가 모두 달려들었지만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김 수석부의장은 둘째형 성하씨의 소식과 함께 한국전쟁이후 소식이 두절된 넷째형 창하(昌河·69)씨와 큰누나 옥희(玉姬·72)씨의 생존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졌던 5남 5녀,10남매 전원이 남과 북에서 각각 살아남은 사실이 확인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창하씨는 전쟁 당시 대구 경북중학교 4학년에 재학중 의용군에 징집됐었다.숙명여자전문대학을 나와 대구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옥희씨는 인민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이번에소식을 전해온 성하씨는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에다니던중 전쟁이 일어나면서 연락이 두절됐다.김 부의장은“성하 형은 유달리 효심이 깊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안부를 몰라서 자다 깨어 가슴 아프게 지내왔는데 오늘 어머니 생존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기쁜 소식을 듣고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50년만에처음으로 어머니께 편지 올리는 가슴은 세차게 뛰고 있습니다”라고 시작된 편지에는 사진 2장이 동봉돼 있었다.사진속에는 누나 옥희씨와 성하씨,성하씨의 아들인 영일씨와 옥희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편 이날 경남 사천시 축동면에서는 형 손윤모(孫閏模·68)씨의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 상모(相模·65·경남 사천시 축동면 배춘리)씨가 “제사까지 지내던 형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손씨(당시 19세)는 국군으로 참전,전사 처리됐다가 지난 1월 31일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후보자 명단에 국군포로로는 처음으로 생존이 확인됐었다.동생 재모(在模·59)씨는“지난 1월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에 탈락돼 아쉬웠다”면서“형님의 체취를 느끼게 돼 너무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경하 홍원상기자 lark3@
  • 국군포로와 반공포로가 고려호텔에서 동시에 혈육과 상봉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한 ‘국군포로’와 ‘반공포로’가 고려호텔에서 동시에 혈육과 상봉,50년 동안 참았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국군포로 손원호(75)씨를 만난 남의 동생 준호(67·경북 경주)씨는 40년간 제사를 지냈다며 수절한형수의 안부를 전했다.원호씨는 영웅훈장 바로 아래인 ‘국기훈장 1급’ 등 8개의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덕(69)씨의 남측 동생인 재조(65·경남 남해군)씨는 가슴에 훈장을 4개나 달고 나타난 형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삐죽히 솟은 어금니를 확인한 뒤 “맞구나,맞아 형이구나”라며 감격어린 포옹을 나눴다.한편 53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인민군 출신 반공포로 김한전(70)·장형섭(78)·최인식(71)·최창환(70)씨 등은 북측 혈육들을 만나 모진 ‘한풀이’를 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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