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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미학’ 20년 건축가 승효상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미학’ 20년 건축가 승효상

    새해는 어떤 ‘인생의 집’을 설계할까.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 가난해도 행복해할 줄 알면 되겠다. 그렇다면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이 사람을 만든다.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이란 존재는 땅 위에 정주하면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라고. 따라서 집은 인격이며 존재 방식이다. 그래서 건축은 진실해야 하며 그런 건축에 거주함으로써 우리의 영적 성숙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일까. 선함과 진실함,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겠다. 가난한 집에 살더라도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감격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감수성에 젖으면 되겠다. ‘빈자의 미학’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그렇게 설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시대의 대표 건축가 승효상(61)씨. 그는 평소 ‘주택이란, 그리고 건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윤리의 공간이며 공공적 가치를 지닌다. 건축이란 돈이 아닌 절제이며 본질은 공간에 있다.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 설계는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답한다. 최근에 그는 책을 한 권펴냈다. 제목이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발문에 “건축가 승효상은 글을 잘 쓰는 문필가로 이름 높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그는 글재주가 아니라 건축을 보는 안목이 높은 것이다. 승효상은 자신의 건축에 관해서나 남의 건축에 관해서 반드시 구조와 기능은 물론이고 그것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모두 아우르며 말한다. 그래서 그의 건축 이야기는 언제나 인문정신의 핵심에 도달해 있고 승효상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다”라고 썼다. 승효상씨의 건축학은 앞에 언급한 대로 ‘빈자의 미학’이다. 그렇게 고(故) 김수근 선생한테 15년을 배우고 홀로 그런 철학을 추구한 지 20여년이 됐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동숭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중국 산시성에서 주문한 주상복합 건물을 설계하느라 바삐 보내고 있었다. 여러 설계 도면과 한 움큼의 몽당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불쑥 연필을 하루에 몇 자루나 소비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3’이라는 숫자였다. 중국과는 어떤 인연이 있느냐고 하자 “중국에 진출한 지 12년이고 현지에 법인도 있다. 베이징 장성호텔, 하이난성 리조트 타운, 칭다오(靑島) 인근의 역사도시 재개발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완공된 것이 3개, 설계 중인 것이 5개 등 모두 20개 정도 된다. 중국 외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말레이시아, 중동 등 많다고 했다. 이쯤 되면 국제적 건축가라고 할 수 있겠다. 국내는 현재 용산공원을 설계 중이다. 그의 건축가 인생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김수근 선생과의 15년이고, 다른 하나는 ‘빈자의 미학’으로 걸어온 20여년이다. 먼저 김수근 선생과의 인연을 물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김수근 선생님을 뵈었지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고 거만하시고(웃음). 졸업을 앞두고 존경하는 은사님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1986년에 돌아가셨고 이후 3년 동안 김수근 선생님의 유언을 받아서 ‘공간’ 대표를 했으니까 15년을 김수근 선생 문하로 있었던 셈이지요.” 그때 건축가로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철저히 배웠다. 건축의 기본은 물론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김수근 선생을 극복하고 넘는 것이 목표였다. 선생이 설계도면 10장을 주문하면 20장을 그려냈다. 하지만, 매번 논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실력이 달렸다. 야단맞기 일쑤였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자연스럽게 홀로서기를 한다. 1990년 초 ‘승효상의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한 방황에서 시작됐다.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생겨났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종묘를 찾았다. 문득 느낌이 왔다. 일그러진 서울의 중심을 회복 해주는 경건한 장소이며 우리의 전통적 공간 개념인 ‘비움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건축임을 알게 됐다. 그 비움 속에 마음을 스스로 던졌다. 탐욕을 지우고 혼돈을 걷으며 저 깊이에서 들려오는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절대 무위였으며 궁극 공간이었고 무한 침묵이었다. ‘승효상 건축’의 방향타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사실 ‘비움’이라는 것은 현재 서양의 현대 건축에서 새로운 키워드가 돼 있지만, 우리 선조의 상용어였고 우리의 옛 도시와 건축의 바탕이었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비움은 추방해야 할 구악이 됐고 채우기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도시는 악다구니하는 한갓 조형물과 건조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그래서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는 얘기.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는 우리 삶의 선함과 진실됨,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일깨워지고 확인될 수 있는 곳이며 그것은 비움과 고독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과도한 물신의 탐욕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고독을 다시 찾아 이를 마주하고 우리의 근원을 다시 물을 수 있도록 비워진 곳, 그런 비움의 도시가 결국 우리의 존엄성을 지킨다고 강조한다. 결국, 도시 건축의 아름다움은 채움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대표작을 잠깐 살펴보자. 그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집 ‘수졸당’(1993)과 하얀 집 ‘수백당’(1998) 등을 설계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장충동 웰콤시티,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파주출판단지 등을 설계하면서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 회원으로 추대됐다. 또 같은 해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건축가 승효상’전을 열기도 했다. “건축물은 심성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공간이 인간을 사유케 하고 그래서 좋은 공간에 살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공간에 살면 나쁜 사람이 되겠지요. 수도하는 사람이 암자를 찾는 것도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바꿔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거든요.” 그는 집이란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사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사무실 이름은 이로재(履露齋)이다.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이다. 소학(小學)에 보면 옛날에 가난한 선비가 연로한 부친을 모시고 살았는데, 이른 아침 이슬 내린 길을 밟으며 노부의 처소까지 문안을 드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승효상 건축’의 실마리이자 사고의 근간을 이룬다. 그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피란 나온 일곱 가구가 깊은 마당을 두고 모여 사는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의 구덕산 기슭 밑에 지어진 그 마당 깊은 집의 풍경은 지금도 뚜렷한 비움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화장실과 우물이 하나씩 있는 기다란 마당. 아침은 매일 북새통이었고 해 질 녘엔 저녁밥 짙은 냄새와 웃음이 늘 마당을 메웠다. 곧잘 비워진 마당은 햇살과 빗줄기를 시시때때로 받았다. 그게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거주의 아름다움이며 인간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우리 선조가 일군 모든 집의 마당은 아름다움을 가졌습니다. 그 마당은 대개는 비어 있지만 언제든지 삶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어린이들이 놀든, 잔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든 그 공간은 늘 관대하게 우리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였고 그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움이 되어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비록 불확정 비움이라 하더라도 우리 선조의 아름다움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 아름다움을 버리고 서양의 미학을 좇으며 마당을 없애버린 것이 지금의 우리이며 오히려 서양인들은 우리의 마당을 찾으니 황망할 따름이라는 것. 그의 건축설계 철학에서 배어 나오는 얘기다. 다시 물었다. 빈자의 미학이란 무엇이냐고.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웃으면서 답한다. 우리나라 건축의 흐름에 대한 질문에 “건축 밀도가 가장 높음에도 세계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뭐든지 바쁘게 만든다. 한가해야 건축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겠느냐. 그동안 마구잡이로 지었다.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슬하에 1남 2녀들 두었다. 아들이 영국 런던에서 건축 설계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실수하지 않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70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건축가 승효상은… 1952년 출생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했다. 1998년 북런던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했다.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그의 건축의 중심에 두고 작업하면서 ‘김수근 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받았다. 10년 동안 파주출판도시 설계를 맡아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됐다.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2002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건축가 승효상’ 전을 가졌다. 미국과 일본,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지면서 세계적 건축가로 이름을 알렸다. 2007년 ‘대한민국 예술문화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거쳐 2011년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임됐다. 주요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1996), ‘지혜의 도시’(1999), ‘건축, 사유의 기호’(2004), ‘지문’(2009),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2012) 등이 있다.
  • [열린세상] 문화는 사회의 품격, 예술은 그 원천이다/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열린세상] 문화는 사회의 품격, 예술은 그 원천이다/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지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바티칸 박물관전 ‘르네상스의 천재화가’가 열리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바티칸 박물관의 구이모 코르니니 큐레이터는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은 인문주의, 즉 휴머니즘으로 문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들은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 철학 등 다방면에 걸친 진정한 통섭의 정신을 가진 전문가들이라고 했다. 그 결과, 인간의 개성과 창의성은 자유롭게 발휘되고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송년 모임이 한창이다. 필자도 문화예술 강좌 회원들의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최근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사회 리더그룹의 인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개인적 동기도 있겠으나 조직의 경영과 관리에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접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대학, 연구소, 문화예술기관 등도 인문학과 문화예술 강좌를 다투어 개설하고 있다. 반면, ‘인문학의 위기’도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대학에서 인문학 강좌가 폐강되거나 실용과목과 통합되기도 했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발 경제위기가 아직도 세계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유로존 경제의 양대 축인 프랑스마저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경고에 시달린다. 어려운 여건에서 문화에 대한 프랑스의 선택과 접근법은 어떠한가. 지난 5월 프랑스는 17년 만에 사회당 정부로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새 정부의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경제 위기 상황이 문화를 부수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수록 문화는 필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문화는 미래이며,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문화가 될 때 비로소 사회적 단결을 위한 끈끈한 유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경제 현실 앞에 프랑스 문화부의 내년도 예산 중 방송분야를 제외한 순수 문화예술부문은 4% 감소했다. 과거 좌파와 우파 정권에 관계없이 정부 재정 대비 문화예산 1% 성역화를 지켜온 전통이 무너진 것이다. 영미 문화권과는 다른 프랑스적 모델은 ‘문화적 예외’라는 가치를 통해 더 많은 국민에게 문화 접근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창작과 유통을 장려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우리나라도 프랑스를 많은 부분 참고해 온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프랑스 정부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우파정권이 추진해 온 프랑스 역사의 집을 비롯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대신 정책의 우선순위를 학생들의 문화예술교육 강화와 18~25세 청소년의 박물관 무료입장을 위한 보조금 편성 등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 두고 있다. 또한 파리와 대도시 중심의 지원보다는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문화적 예외’의 제2막으로 문화콘텐츠산업과 디지털 문화정책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문화에서 길을 찾으려는 프랑스적 접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0여년 전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주창했던 문화 민주주의의 가치, 즉 문화 접근성의 확대, 문화예술 창작의 장려, 문화유산의 전승은 지금도 유효하다. 많은 공연단체, 문화예술인들이 기업으로부터 후원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불가피하게 공공부문의 지원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 전망이다. 내년 경제도 밝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도 곧 가동될 것이다. 선거 공약이 실천 가능하게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문화예술 정책도 구체화될 것이다. 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부조직이 개편될지도 모른다. 지난 10월 문화예술인들은 동숭동에 모여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1천인 선언’을 발표했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이 부디 여기서 출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일부를 인용한다.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품격이며 예술은 그 원천이다. 문화예술은 인간적인 삶의 기초이자 즐거움과 보람, 소통과 통합,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모두에게서 태어나야 하며 예술은 모두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 [도약하는 대학] “인사하기·인문학 공부 강조는 패밀리형 리더십 길러 주는 것”

    [도약하는 대학] “인사하기·인문학 공부 강조는 패밀리형 리더십 길러 주는 것”

    손풍삼 순천향대 총장은 교수들과 대화할 때마다 “진정성 없는 교육은 하지 마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신도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아 주고, 보듬어 주곤 한다. 그는 “학생이 우선이다. 애정이 없는 교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일갈했다. 손 총장은 명함에 ‘교장 손풍삼’이라고 새겨 넣었다. 총장이란 권위적인 말 대신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용어를 쓴 것이다. 그는 예술가처럼 생긴 풍모답게 자유분방하고 지적이면서도 말에 거침이 없었다. →명함에 교장이란 말을 새겨 넣은 게 특이하다. -애정이다. 학생들이 애정결핍증이 있다. 교수들에게 학생들을 격려하고, 보듬고, 인정하라고 당부한다. 패밀리형 리더십을 길러 주라고 한다. 우리 대학 전통이다. 학생들이 나한테도 “교장 선생님, 밥 사주세요.”라고 하면서 달려온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이 겉돌다가도 학교에 잘 적응한다. 우리 학생들 데려간 기업에서도 “참 착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더불어 살 줄 알고, 성실하다는 뜻이다. 인성교육이 스며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얼마 전 대한민국 인재상 시상식에서 순천향대생 2명이 수상했는데, 그런 결과인가. -6연 연속 수상이다. 교수들의 애정이 낳은 결과다. 우리 대학은 엘리트 교육을 하지 않는다. 인성을 강조한다. 교수나 나에게는 못하더라도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경비원에게는 반드시 인사하도록 가르친다. 대학이 너무 실용화돼 가고 있다. 대학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고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총장이 추구하는 순천향대의 교육 목표도 그것인가. -그렇다. 인문학 공부를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분석에 예술적 표현력을 갖추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자기가 섭렵하지 못한 것은 책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인문학의 고전인 톨스토이 한 번 읽지 않은 자들에게 ‘칼’을 쥐여 주면 사달이 난다. 요즘 사법부 파동도 지나친 출세주의가 낳은 것 아닌가. →어떤 뜻인가. -남대문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학생들에게 금강송 대들보만 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굽은 나무도 쓸모가 있듯이 서까래가 올라가야 남대문이 된다. 대들보 말고도 여러 재목이 뒤섞여야 국보 1호가 된다는 얘기다. →지속적인 학교 발전을 뒷받침할 전략이 있나. -우리 학교가 황해경제자유구역과 내포신도시의 중심이 됐다. 경찰타운이 인근에 조성돼 국내 처음으로 법과학대학원·연구소도 열었다. 최근 ‘내포신도시 발전방안’ 포럼을 열고 내포와 우리 대학이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 토론했다.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학생에 대한 투자가 끊임없이 이뤄진다. 의학바이오 육성 사업도 기대가 크다. 아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내포신도시/서동철 논설위원

    충남 홍성과 예산 일원에 세워진 내포(內浦)신도시가 새해 정식 출범한다. 충남도청이 80년 남짓한 대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터전을 잡는 것이다. 충남도청은 올해 안에 이사를 마무리하고, 1월 2일 새 청사에서 ‘내포시대’를 선언한다. 충청남도는 조선 고종 33년(1896년) 전국을 8도에서 13도로 개편하면서 처음 설치됐다. 줄곧 공주에 있던 도청은 1932년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대전으로 옮겨 갔다. 이후 1989년 대전광역시가 분리되자 도청 이전 논의도 본격화됐다. 내포신도시라는 이름은 지난 2010년 ‘도청 이전지역 새 이름 공모’의 당선작이다. 응모자는 ‘내포’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풍부한 역사 및 인문지리 자료를 제시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들도 응모작 가운데 ‘내포시’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한결같이 무릎을 쳤다고 한다. 충남도청이 들어설 새로운 도시의 역사성을 이만큼 완벽하게 보여 주는 이름을 다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주변 10개 고을을 지칭한다고 이중환(1690~1752)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설명했다. 태안, 서산, 당진, 홍주, 예산, 덕산, 결성, 해미, 신창, 면천이 이에 해당한다. 내포는 바닷물이 내륙으로 드나들던 지역을 뜻하는 일반명사였지만, 서쪽으로는 바다와 만나고 내륙으로는 평야가 넓어 살기 좋은 이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일찌감치 탈바꿈한 것이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며 장거리 항해의 안녕을 빌던 가야산 서쪽의 서산마애불은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이 대중국 교류의 전진기지였으며, 가야산 동쪽 덕산의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부보상의 역사 또한 내포가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알려 준다. 나아가 추사 김정희의 예술혼을 낳은 내포의 정신 문화가 20세기에도 김좌진 장군과 윤봉길 의사의 충절로 이어졌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민도 없지 않다. 두 지역 민심이 이견을 보이며 내포가 행정구역 명칭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일산신도시나 분당신도시처럼 그저 편의상 명칭으로 굳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한 울타리 안에 지어진 도청과 도의회의 주소가 홍성과 예산으로 갈리게 됐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들린다. 두 지역민에게 내포 지역이 공유한 동질성을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같은 DNA를 가진 사람들이 화합의 정신을 되살린다면 더 큰 문제라도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인문학 강의의 기적/임태순 논설위원

    독일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1944년 성탄절과 이듬해 1월에 유독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원인 규명에 나선 정신의학자 빅터 E 프랭클은 ‘집단적 실망’이 대량 사망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당시 수용소에는 성탄절이 되면 연합군이 진격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 기다리던 12월 25일은 물론 다음 날이 되어도, 해를 넘겨도 연합군이 오지 않자 희망을 잃어 버린 유대인들이 발진티푸스에 맥없이 무너져 줄줄이 죽어갔다. 이처럼 인간은 마음을 놓아버리면(mindless) 한없이 약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지만 반대로 정신을 놓지 않으면(mindful) 어떠한 고난과 시련, 병마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힘을 갖는다. 경기도 화성의 한 운수회사에서 실시한 인문학 강의가 놀라운 효과를 가져와 눈길을 끌고 있다. 택시기사들이 ‘셀프 리더십’, ‘연탄길 이철환 작가의 인문학 강의’ 등 강좌를 한달에 2시간씩 한 차례 들었을 뿐인데도 교육이 이루어진 4~7월에 평소 1~2건에서 5~6건 일어나던 교통사고가 신기하게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회사 측은 강의가 기사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남에 대한 배려감을 갖게 해 사고가 줄어든 것 같다고 분석한다. 기사들도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달라지다 보니 과속을 안 하게 된다고 맞장구를 친다. 최근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TV에서 행복학 강연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행복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행복도는 그리 높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24위로 중하위권에 처져 있으며, 최근 한 보험회사가 발표한 자료를 봐도 50대 10명 중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자가 6명이나 될 정도로 ‘불행공화국’이다. 삶에 대한 마음을 놓다 보니 하루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8년째 고수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은 생에 대한 만족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파트나 자동차 크기 등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만남, 소통 등 경험의 공유에서 오는 만족감이 더 행복감을 배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너무 물질적 만족에 마음을 빼앗겨 왔다. 인문학은 문학·철학·사학을 버무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일깨워주고 인생을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인문학을 충전해 황폐해진 우리들의 인성을 치유할 때도 됐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속고 속이는 인간관계… 여성 애환 그리다

    속고 속이는 인간관계… 여성 애환 그리다

    인생은 배신의 연속일까.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진정 부끄러워할 때는 거짓말이 탄로 나는 바로 그 상황이다. 그러니 상대가 너무 많이 알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인지도 모른다. 6년 만에 신작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작은 문학동네 펴냄)로 돌아온 작가 이혜경(52)은 독백 형식을 빌려 여성들의 애환을 풀어놓으며 이같이 진지하게 묻는다. ●남자는 속이고 여자는 속은 것일까 1982년에 등단해 현대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이수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소설가답게 단편 9편에는 들끓는 여성만의 속내가 한층 농익게 압축됐다. 대표 단편인 ‘너 없는 그 자리’에서 주인공 ‘경원’은 처음에는 여리고 순정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저 멀리 아프리카 케냐로 직장을 옮겼다는 남자 친구 ‘태호’를 기약 없이 기다리며 매일 주인 없는 편지를 써 보낸다. 남자 친구가 보고 싶을 때면 하릴없이 차를 몰아 해변에 가고 인도양 너머 ‘그’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도 한다. 심지어 ‘그’의 친구인 ‘윤성’이 찾아와 “태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을 때 자신을 남몰래 짝사랑한 윤성이 기어이 친구의 여자를 노리고 엉뚱한 작업을 걸었다며 치를 떤다. 그러나 ‘큰 키에 마른 몸집이 잎 떨구는 가을 나무를 생각나게 하는’(20쪽) 남자 친구는 사실 케냐에 가지 않았다. 땡볕에 전혀 그을리지 않은 ‘그’는 서울 강남 뱅뱅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운전 중이던 경원에게 목격된다. “당신, 잘 지내요? 그곳은 덥다니, 가뜩이나 더위 많이 타는 당신, 쉬 지치지나 않을지 늘 걱정이에요.”(9쪽)라던 여자의 순정은 일순 무너지고 눈에선 섬광이 터진다. ●“배신으로부터 자신 지키려 안간힘” 더 놀라운 두 번째 반전은 뒤에 숨어 있다. 과연 남자는 속이고 여자는 속은 것일까. 남자는 애초부터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손가락을 다친 여자가 깁스를 풀 때까지 잠시 관심을 기울였을 따름인데 여자가 착각한 것이다.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27쪽)는 말을 친구를 통해 전하기까지 했지만 여자의 착각은 쉽사리 바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는 병원에 입원한 남자의 어머니를 매일 찾아가고 남자의 생일날 회사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 남자를 당황하게 했다. 결국 남자는 케냐행이란 ‘선의의’ 거짓말을 택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앎은 비극이요, 삶은 축제”라며 “작가 이혜경이 소설에서 그리고자 한 것은 배신과 복수의 흥미로운 드라마가 아니라 세상의 배신으로부터 가까스로 자신을 지켜내려는 가진 것 없는 자의 안간힘”이라고 해석했다. 여자의 뚱딴지같은 시치미야말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살기 쉬우면 울면서 태어났겠나?” 또 다른 수록작 ‘꿈길밖에 길이 없어’에서는 한 남자의 시치미 떼기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는 왜 미쳐지지도 않는 걸까요?”(190쪽)라던 평화이발소의 이발사 ‘갑선’은 망나니 같은 두 동생 뒤치다꺼리에 평생을 바치다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싸 해외여행을 간다며 동네 노인들에게 호기롭게 값비싼 식사까지 대접한다. 단골손님인 ‘김씨’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갑선을 데려간 곳은 호텔이 아닌 정신병동의 병실이었다. ‘감히 핀 꽃’에선 한 중년 여성이 미혼인 여동생에게 전화로 들려주는 독백을 통해 이른바 ‘시월드’(시집살이)의 무궁무진한 반전을 드러낸다. 바깥 살림을 차린 시아버지와 남편의 새 여자까지 받아들인 통 큰 시어머니의 잔인한 삶이다. 가면놀이에 한껏 취해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사는 게 쉬우면 아기가 웃으면서 태어나지 울면서 태어나겠어요? 힘들지만 이렇게 깨닫는 순간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 같아요.”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고졸 공무원의 천기누설] (1)서울시 첫 고졸채용 합격자에 듣는다

    [고졸 공무원의 천기누설] (1)서울시 첫 고졸채용 합격자에 듣는다

    2013년, 공무원이 되는 문턱이 한층 낮아지게 됐다. 고등학교 교과목이 9급 공무원 시험의 선택과목으로 채택되면서 고교 3학년생 공무원이 탄생하게 됐다. 한해 15만명가량이 응시하는 국가직 9급에 내년부터 고교 3학년생과 대학 신입생까지 몰릴 전망이다. 올해도 추천채용제도 등을 통해 300여명의 고등학생이 공직에 입문했다. 2011년에는 3000여명을 뽑는 국가직에 채용된 고졸은 26명뿐이었다. 서울시에서는 최근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고교 3학년생이 기술직 공무원에 합격했다. 2012년 서울시 고졸자 경력경쟁채용시험 합격자 3명을 만나 비결 등을 들었다. 이들은 공무원이 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고졸 채용정책이 꾸준히 뒷받침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잊지 않았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공공기관 고졸 신입사원과 국가직 고졸 공무원 등을 만날 예정이며, 고졸로 공직에 입문한 선배들의 이야기도 이어서 소개할 계획이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서울시는 지난 2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공업, 보건, 시설, 방송통신 4개 직렬에서 40명의 고졸 공무원을 뽑는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시험 준비기간이 3개월여밖에 되지 않아 합격최저점인 과목당 40점에 못 미치는 과락자가 많이 나와서 보건, 일반기계, 일반토목 분야에서 10명의 고졸 공무원만이 선발됐다. 이들은 내신 성적이 해당 학과의 상위 50% 이내로 전공과목 필기시험을 세 과목 치르고, 면접을 거쳤다. 합격한 10명은 분야별로 3대1에서 10대1의 경쟁률을 뚫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승훈 신진자동차고등학교 3학년으로 이번에 서울시 토목직 9급에 합격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였는데 특성화고가 되면서 학교 이름이 바뀌었다. 고등학교에서 전공은 건설교통과다. 지적기능사를 포함해 4개의 자격증을 땄다. -양소영 화곡여자정보산업고에서 화곡보건경영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특성화고 1기다. 서울시 보건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마포구청으로 발령이 날 예정이다. 보험심사분석사 2급 등 자격증 9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호인 특성화고인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3학년으로 일반기계직에 합격했다. →어떻게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되었나요. -승훈 선생님이 2월 말에 서울시에서 고졸자 공무원을 뽑는다는 공문이 왔다고 알려줬다. 3월 초부터 필기시험을 준비했는데 6월 9일이 필기시험일이라 일정이 촉박했다. 원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특출난 재능이 없으면 특성화고를 가라고 하셨다. 적성검사를 하면 항상 이공계 쪽으로 나왔다. -소영 주위에서 해보라고 권유했다. 내신성적은 10%다. 특성화고는 집안이 부유하지 않아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다. 어려서부터 조부모와 같이 살았는데 두 분의 몸이 안 좋아서 보건에 관심이 있었고, 특성화고에 가면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호인 선생님들이 추천해줬다. 고등학생한테만 기회를 주는 시험이라고 했다. 필기시험으로 기계일반, 기계설계, 물리 세 과목을 봤는데 기계설계 과목이 어려웠다. 내신은 2등급 정도다. 자격증은 밀링기능사 자격증이 하나 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승훈 응용역학, 측량, 물리 세 과목을 시험 봤다. 원래 다른 고등학교는 2학년 때 역학을 배우는데 우리 학교는 3학년 때부터 역학에 들어간다. 처음 배우는 거라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물리 과목도 1학년 이후 과학을 배우지 않았는데 시험에는 물리Ⅱ까지 나왔다. -소영 필기시험 준비는 방과 후 학교에 공무원 시험준비반이 생겨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8명이 함께 공부했는데 혼자 합격했다.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려 했지만 고졸자를 대상으로 처음 행하는 시험이라 학교에서도 잘 몰랐다. 김일환 선생님께서 전공이 화학인데도 생물을 가르쳐 주셨다. 혼자서 주로 인터넷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를 얻었다. 시중의 수험서나 문제집을 보진 않았고 기출문제를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많이 풀어봤다. 경쟁률은 5대1이었다. -호인 같은 학교에서 일반기계 분야에 5명 응시했는데 혼자 합격했다. 이선주 선생님께서 전공이 화학인데도 방과 후 학교를 통해 물리를 가르쳐 주셔서 큰 도움이 됐다. 필기시험이 고등학생 수준을 뛰어넘어 너무 어려워서 30~40%는 찍었다. 면접 때도 무척 떨렸는데 교복을 입고 갔더니 면접관들이 귀엽게 봐 주셨다. -소영 필기시험은 생물, 공중보건, 환경보건 세 과목을 봤는데 무척 어려웠다. 암기과목이라 정신적으로도 부담됐다. 먼저 회사나 병원에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나타나는 불안과 초조함이 제일 힘들었다. →내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은. -승훈 저보다 시험 준비기간이 길므로 남은 시험일정에 따라 과목별로 공부 날짜를 잘 배분하고, 계획을 탄탄하게 짜는 것이 중요하다. -소영 끝까지 불안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하다. 혼자 집에서 어려운 내용을 보려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방과 후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려운 지문을 알기 쉽게 말씀해 주셔서 제일 큰 도움이 됐다. -호인 문제집과 인터넷 강의는 별로 도움이 안 됐다. 시험 준비기간이 2개월밖에 안 돼서 이론 문제만 외우고 인터넷으로 서울시 기출문제를 내려받아서 공부했다. 변호사가 쓴 ‘불합격을 피하는 법’이란 책에 나오는 “공무원 시험은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시험통과가 목표니 이해가 안 되면 무조건 외우라.”는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됐다. 취업이나 수능 시험 대신 공무원 시험을 택하더라도 선택에 따른 결과에 옳다, 그르다는 없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이 된 소감은. -승훈 올해 초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공무원은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직업인데 내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어려웠다. 학교 정문에 합격 축하 플래카드가 붙었다. -소영 기능인재 추천채용제로 공무원이 된 학교 선배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며 선생님이 힘들어도 부딪쳐 보라고 하셨다. 민원인들이 전화 목소리가 너무 어리다고 안 좋게 볼까 봐 걱정이다. -호인 누가 정권을 잡아도 고졸 채용 정책이 계속 뒷받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인문학 들으며 자기성찰… 노숙에서 일어섰죠”

    “인문학 들으며 자기성찰… 노숙에서 일어섰죠”

    “세계 유일의 노숙인 풍물패 ‘두드림’입니다.” 무대에 오른 자신들을 소개하는 권일혁(60)씨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스스로 ‘질곡의 역사’라고 표현한 불안정한 노숙 생활을 끝마쳤기 때문인 듯했다. 권씨는 “풍물은 동료들과 함께 손을 맞춰야만 할 수 있는 예술”이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물놀이 가운데 가장 흥겨운 ‘별달거리’ 장단이 나오자 사람들의 손, 발,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25일 권씨가 7명의 두드림 풍물패와 함께 무대에 오른 곳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따스한 채움터’. 서울시와 백신 전문기업 ㈜사노피 파스퇴르가 노숙인 900여명에게 무료로 독감 예방주사를 놓는 자리였다. 두드림은 2008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인 ‘성프란시스 대학’ 4기 졸업생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장구를 맡은 문점승(53)씨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고민하게 해 주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노숙인들의 삶은 성한 데가 없는 종합병원과도 같다.”면서 “몸이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졌을 때 스스로의 삶을 다시 성찰하게 하는 원동력이 인문학”이라고 말했다. 징을 치는 이홍렬(58)씨도 “노숙 생활을 하며 늘 문화에 대한 배고픔이 있었다.”면서 “인문학을 통한 자기 성찰은 천지개벽할 경험이었다.”고 했다. 노숙 생활을 청산한 이들은 노숙인에게 ‘자존감’을 심어 주는 것이 노숙인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라고 했다. 의식주 해결 같은 물적 지원과 동시에 인문학 강좌 등 정신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드림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박경장 명지대 교수는 “밥 한 끼 더 챙겨주는 게 노숙인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니다.”라면서 “자활의 기본 조건은 자존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노숙인을 한 개인의 잘못만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문씨는 “노숙인 개인의 탓으로만 문제를 돌릴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드림은 노숙인 행사 등에 참여하며 매년 4~5차례 공연을 갖고 있다. 연습공간이 마땅치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어렵게 여는 공연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우리들 자체가 곧 메시지”라고 말했다. “우리의 모습 자체가 행복이죠. 함께 있던 동료가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힘찬 풍물소리가 다시 건물을 가득 채웠다. 글 사진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디지털 인문학과 ‘논어’를 읽는 밤

    [최동호 새벽을 열며] 디지털 인문학과 ‘논어’를 읽는 밤

    청명한 가을밤 논어를 읽는다. 그동안 무심하게 보던 논어를 읽게 된 것은 최근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중고등학교 시절 논어의 구절들을 한문 시간에 배웠지만 논어를 통독한 것은 대학시절이며 당시 중국철학의 대가로 알려진 이상은 선생과 김경탁 선생에게서 논어의 철학적 의미를 조금 공부했다. 서양 사람들이 논어를 처음 읽고 나면 이 책의 평가에 대해 인색하다고 한다. 거대한 이론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요 화려한 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화록이나 에세이집 수준으로 논어를 본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논어를 처음 읽고 난 필자의 소감은 공자의 언행이 매우 시적이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말이 거의 없는 이 함축적인 문장의 행간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요구되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제기되는 많은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논어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최근의 일이다. 생명 복제의 시대 그리고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시대,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 논어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공자는 기원전 6세기 춘추전국시대 말기 노나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여 동양 최고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주 왕조 건국의 원훈 주왕을 흠모하여 그의 정신을 살린 문화국가 건설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한때 노의 정공에게 발탁되어 중책을 맡아 일대 국정개혁을 단행했으나 수구세력에게 축출되어 노나라를 떠났으며, 이후 14년간 제자들을 데리고 중원의 여러 나라를 주유하며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정진했다. 중원의 방랑길에서 공자는 초의 소왕을 만나기 위해 3년 이상을 기다렸으나 끝내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공자를 비판하는 은자들은 공자를 ‘상가 집의 개’라고 조롱하기도 했으나 천하를 구하기 위해 큰 뜻을 펼치고자 했던 공자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으며, 그의 언행과 저술을 통해 자신의 큰 뜻을 후세에 전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천하를 얻을 수 없다. 그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디지털 시대 생명 공학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을 확보했다고 한다. 앞으로 인류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날의 생활에서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이 인간을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시킬 위험을 지니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대화는 사라지고 스마트폰을 통해 대화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다. 전국시대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에서 인간존재의 위대함을 발견한 공자의 지혜가 절실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서양의 지성을 상징하는 이성이나 신이 아니라 온갖 가능성을 지닌 인간을 깊게 이해한 것이 공자의 지혜였던 것이다. 인간은 때때로 이성이나 윤리에 반하는 존재이며 고귀한 덕성을 함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난세를 피하고자 하는 사람은 장자를 읽고 난세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논어를 읽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논어가 절실하게 된 것은 오늘의 정치적 현실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에게 500명이 넘는 폴리페서가 몰리고 있다는 보도나 구정치인 중에 일부가 간판을 바꿔달고 정치적 변신을 시도했다는 보도를 읽을 때 과연 그들의 심중에 학생이나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대선후보들조차 국가적 비전이 아니라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 바쁘다. 국민적 여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2500여년 전 춘추전국의 난세를 살며 천하를 구하려 했던 공자가 혼탁한 격류가 흘러가는 황하를 바라보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가을밤 어둠이 깊다.
  • 지구촌 한해 100만명 왜 목숨 끊을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갖고 있다. 통계청은 최근 ‘2011년 사망원인통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60~80세의 자살률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은 80세 이상이 116.9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70대 84.4명, 60대 50.1명, 50대 41.2명, 30대 30.5명, 20대 24.3명 등의 순이었다. 자살률은 지난해 10대, 30대, 50대, 70대가 전년보다 늘었고, 특히 60대와 70대 남성은 여성보다 3배 이상 높았다고 통계청은 밝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자살 통계는 많이 나온다. 하루에 전 세계 2500여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잃는다고 한다. 한해 100만명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자살을 할까. 학자들은 자살의 유형을 이기적 자살, 애타적(愛他的) 자살,아노미(무규제상태)적 자살 등으로 나눈다. 신간 ‘왜 사람들은 자살을 하는가’(토머스 조이너 지음, 김재성 옮김, 황소자리 펴냄)는 매일 수천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과학과 임상의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성공한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이런 과제를 고민했다. 심리학자의 길을 택하고 죄책감과 그리움, 자살자의 유족에 쏟아지는 숱한 편견과 싸워야 했다. 개인적인 슬픔인 동시에 치열하게 탐구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이 책은 2005년 미국에서 출간해 자살에 대한 대중의 시각 및 향후 자살행동 연구방향에 일대 변혁을 몰고왔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온하게 여겨지던 풍토 속에서 임상심리학은 물론, 유전학, 신경생물학, 정신분석학, 여타 인문사회학의 도구를 총동원해 ‘자기 살해’라는 범상치 않은 행동의 안과 밖을 촘촘하게 살피고 있다. 자살에 관한 무지를 환기시키고 기존 자살론이 지닌 한계를 돌아보고, 또 기존 자살론이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질문들에 차근차근 답을 한다. 정신장애나 나이, 성별, 태생적 기질과 성장환경 등 상이한 요소들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공한다. ‘자기보존 본능’마저 뿌리치게 만드는 죽음에의 욕망은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에서 비롯되며 여기에 치명적인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이 더해질 때 자기 살해라는 극단적인 불행이 일어난다고 분석한다. 자살을 이 시대의 핵심 연구과제로 불러들이는 책이다. 1만70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원효에서 리영희까지… 한국 이끈 지성 24인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양식 또는 이념을 말한다. 시대정신은 한 사회의 발전에서 북극성의 역할을 담당한다. 어느 사회든지 어둠 속 망망대해에서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북극성처럼 시대정신을 미래 좌표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사회학자인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시대정신을 이렇게 정의하면서 “이러한 시대정신을 주조하는 이들이 곧 지식인”이라고 말한다.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독해하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분이라면서 “특히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를 시대정신 탐구”라고 꼽는다. 김 교수가 쓴 ‘시대정신과 지식인’(돌베개 펴냄)은 그가 세운 기준에 부합한 지식인 24명을 조명한 한반도 지식인의 계보다. 선택 기준은 명확하다. 얼마나 자기 시대를 대표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기 시대가 주는 한계를 극복하려 했는가이다. 고대사를 대표하는 두 사상가 원효와 최치원을 한반도 지식인의 시작점에 둔다. 민족과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원이 될 만한 역사가 김부식과 일연, 유교사회의 기초를 세운 정몽주와 정도전,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이황과 이이, 18세기 조선을 새로운 문명국으로 개조하기 위해 치열한 지적 고투를 벌인 박지원과 박제가 등 역사적 지식인을 차근차근 끄집어낸다. 이어 일제강점기에 절대 독립을 강조한 신채호와 끝내 친일로 기운 이광수의 갈림길, 대표적인 재야 사상가로 현재의 사상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함석헌과 장일순, 한국인의 의미를 탐구한 황순원과 시대의 스승이자 실천적 지성인 리영희까지 짚어 내려오면서 시대정신의 흐름을 한 줄로 꿴다. 두 명의 전 대통령 박정희와 노무현도 지식인 계보에 포함시켰다. 저자는 “지식인이라기보다 정치가이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지식사회와 우리 사회에 미친 다각적인 영향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시대정신이 이끌게 될까. 저자는 “새로운 시대정신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될 수도 있다.”면서 “함석헌과 노무현의 민주주의, 리영희의 민족주의, 장일순의 생명주의, 황순원의 인간주의 역시 모두 소중한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지식인 24명을 되짚으면서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개혁과 혁신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는 것을 지식인의 책무로 결론 내린다. 사회 변화를 이끌 사람을 판단해야 할 이 시점에 참고할 만하다. 1만 4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아셨나요? 엘리자베스 1세·나폴레옹도… 어린시절 ‘性的 트라우마’를 겪었다

    아셨나요? 엘리자베스 1세·나폴레옹도… 어린시절 ‘性的 트라우마’를 겪었다

    캔디의 양팔에는 수많은 칼자국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의 눈에는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은 채 엉긴 핏자국을 훤히 드러내는 캔디의 행동은 성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확실하다. 하지만 그는 자해의 원인이 될 법한 어떤 성적 사건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3년간 이어진 치료 끝에 그는 자신이 일곱 살 때부터 10년간 양아버지에게서 성폭행을 당해 왔다는 사실을 끄집어냈다. 성적 트라우마의 강력한 힘이 그의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다. 40대 기혼남성 토니는 혼란과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지하실 바닥에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자신이 왜, 언제,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됐는지 모른 채. 경련과 우울증 등을 치료할 약을 주는 간호사의 목을 부러뜨리거나 아내를 칼로 찌르는 상상을 한다. 자신에게서 동성애 성향을 발견한 뒤에는 증오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면서 자살 충동을 느꼈다. 토니의 고통은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에게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받았고, 후에 친척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트라우마로 토니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았다. ●안전지대 없는 성범죄 성범죄에 관한 한 안전지대는 없다. 미국인문협회에 따르면 1984년 성학대 사건은 10만건에 이른다. 이듬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전국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27%, 남성의 16%가 각각 성학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986년 미국 보건복지부는 성학대 사건이 15만 5900건이라고 발표했다. 10여년 뒤 아동 성학대 사건만 13만 2000건에 달할 정도로 성범죄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8년 학교에 가던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조두순 사건에 이어 최근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까지 충격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별법 제정이나 화학적 거세와 같은 강력한 처벌에 대한 요구가 빗발친다. 더불어 성적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 논의도 활발하다.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은 여전히 특정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특별한 ‘사고’일 뿐이며, 아동 성폭력에 대해서는 더더욱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적 트라우마 역시 피해자들이 해결해야 할 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美, 사회적·물질적 피해 연 503조원 추산 미국에서 30년 넘게 성학대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섹슈얼 트라우마’(블루닷 펴냄)를 낸 정국(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는 “전문가들조차 숱한 오해와 시행착오를 낳고 있는 분야가 성적 트라우마 영역”이라면서 “성적 트라우마는 질병이 아니라 인간사의 한 단면으로, 치료가 아닌 극복의 문제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알게 모르게 상당수가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예방만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성학대의 파급력은 충격적이다. 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대학 진 아벨 교수가 1985년에 발표한 아동 성폭력범의 특징에 대한 연구를 보면, 이들은 주로 남성으로 15세부터 성학대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이들은 평균 281건의 성학대를 저지르고, 평균 117명의 10대를 성폭행했다. 이런 통계라면 성폭력범 85만명이 1억명에게 성적 트라우마를 가할 수 있는 셈이다. 성학대의 트라우마가 남기는 후유증은 강력하다. 가장 두렵고 혼란스러운 것은 회상환상이다. 뭔가 알 수 없는 이미지와 소리, 냄새, 통증, 촉감 등이 희생자를 덮친다. 저자에게 상담을 받던 켄트는 갑자기 벽을 향해 “꺼져, 내게서 뭘 바라는 거야?”라고 소리치기 일쑤였다. 다른 상담자 칼라는 “공 한 개가 계속 돌고 있다. 1, 2, 3부터 31까지, 다시 1, 2, 3, 4부터 31까지….”라면서 어지러워하더니 이윽고 팔과 다리, 남자 둘, 다시 공으로 반복되는 환영에 시달렸다. 자해를 하거나 화상을 입히는 등 자기절단과 파괴를 비롯해 우울증, 공황장애, 뒤틀린 성관계 등으로 후유증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피해자들의 후유증은 부모 등 주변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다. 인간의 고통에는 감히 빗댈 수 없지만, 사회적·물질적 피해도 엄청나다. 툴사대학 엘라나 뉴먼 교수는 성적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과 그에 따른 삶의 질 저하로 겪는 피해는 연간 4500억 달러(약 503조원)로 추산한다. 저자는 예방과 보호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성폭력이 이 정도로 만연해 있다면 극복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적 트라우마가 아무리 파괴적이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사형선고나 불치병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30년 이상 환자 치료 경험… 구체적 조언 제시 저자는 성폭력의 피해를 딛고 일어선 여러 사례를 통해 희망을 제시한다. 양부모에게 부적절한 성희롱을 당한 엘리자베스 1세(왼쪽), 왕실 군사학교에서 성적 폭력을 겪은 나폴레옹(오른쪽) 등 성적 트라우마를 경험했음에도 위대한 인물로 거듭난 일화를 소개한다. 무엇보다 책에서 주목할 것은 실제적인 조언 편이다. 저자는 성장기 성적 피해자와 성인 피해자, 부모와 치료사, 의사 등 피해자와 주변인을 세부적으로 나눠 성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조언을 쏟아낸다. 방대한 양의 조사 자료, 다양한 피해 사례와 극복기, 충실한 제언 등이 담겨 있어 632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 어렵지 않게 넘어간다. 2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열린세상] 학제간 혹은 초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학제간 혹은 초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최근 우리 학계는 통섭과 융합이란 말로 학제 간 혹은 초학제 간 연구 방법을 숙의하고 있다. 물론 통섭이라든가 융합이라든가, 학제 간이라든가 초학제 간이라든가 하는 하나하나의 용어가 지닌 함의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전공의 좁은 범위에서 자족하는 연구가 아니라 전공분야를 뛰어넘는 연구 속에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또 각 분야의 연구방법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은 비슷하다. 얼마 전에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BK21 사업팀이 문화콘텐츠 총서를 간행한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문분야 학제 간 연구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3권은 ‘제화시-인문정신의 문화적 가치’라는 제목인데, 이것은 2007년 2월 세미나를 통해 얻어진 연구 결과물이다. 참여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그림 속에 나오는 제화시(題畵詩)를 주제로 글을 모아 그 시대 선비들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또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각각 다른 연구팀이 근대 지식 개념의 형성과 역사적 변화에 대해 연구한 것도 상당히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고 본다. 사실 그동안 각 대학의 BK21사업은 학제 간 소통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대개의 사업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면 끝나는 듯한데, 그 득실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할 말이 많으리라.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공만이 아니라 타 전공으로 시선을 확대할 좋은 기회가 되었을 듯하다. 필자 또한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문학을 재해석하게 되었으며, 기초논리학의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초학제 간 연구 방면에서는 올해에 고등과학원이 초학제독립연구단을 결성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단은 사유 패러다임의 문화적 차이와 학문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면서 학문 융합의 방법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2회 심포지엄에 참석했는데, 여러 연구자의 말씀을 청취하면서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이 연구단이 사물의 분류와 지식의 탄생, 동서양의 시공간 인식 태도 등등 여러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 나가길 기대한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개별 연구들이 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편, 그것이 거꾸로 개별 분야의 연구를 심화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고 믿는다. 2년 전 일본의 메이지 대학에 객원교수로 있을 때 대학원 전담 과목 이외에 두 개의 대학원 학제 간 연구 과목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과목의 이름은 ‘문화계승학’과 ‘종합사학’이었다. 그 두 과목은 일본문학, 일본사학(특히 고문서학), 중국사학, 고고학, 민속학 분야의 전공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연구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기왓장의 문양, 탑신의 형태, 일본 고문서, 일본 신화론 따위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랴 생각했지만 차츰 많은 흥미가 일었다. 더구나 하나의 문물, 문서 혹은 문자표기체계가 어떻게 전파되고 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방법론은 내 분야에서 지식 담론의 생성과 유통을 분석하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우리 대학교에는 아직 학제 간 통합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문과대학 내에 문이회(文以會)라는 교수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신간을 준비 중이거나 출판한 연구자가 자신의 저서를 소개하고 다른 연구자들이 질의하여 연구주제를 예각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공이 다를 경우 용어도 방법도 모두 생소하지만, 문과대학의 여러 학문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담론들이 이 모임에서 이루어진다. 게다가 학교 차원에서는 학문소통위원회가 정기적인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학문의 소통과 융합에 관해 학내외의 다양한 연구자들로부터 고견을 청취하고 있다. 대단위 연구 사업, 대학 내 학문소통의 모임, 대학을 넘어선 초학제 간 심포지엄 등이 우리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공동 연구나 통합 연구가 더욱 내실 있게 운영되기를 기대하고, 또 정부의 유효한 지원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 [시론] 노인을 위한 계몽/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시론] 노인을 위한 계몽/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한국 인구가 마침내 5000만명을 넘었다. 우리는 이것을 ‘20-50클럽’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자축했다. 한국이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에 이어 7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들에 속하게 됐다. 이른바 5000년 역사에서 우리가 세계 7대 강국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가. 위대한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빛나는 업적의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면서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라는 사실이 우리의 장래를 어둡게 만든다. 인구는 2030년 5216만명을 정점으로 하여 줄기 시작해 2045년쯤에는 다시 4000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라 한다. 이에 반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10년 545만명에서 2040년에는 1650만명으로 3배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 생산가능 인구가 지금보다 20% 줄어들어서 2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지금도 한국 노인층의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3.3%를 훨씬 넘어선 45%다. 국가재정을 확충할 생산가능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서 노인복지 비용을 계속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이다. 노인문제는 우리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다. 어느 시대에나 노인은 있었기에 노인문제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전 시대에서 노인문제는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로 여겨졌지 공동체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협하는 사회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인구학적 구조가 피라미드가 아니라 역삼각형으로 변함에 따라 노인들은 여성과 계급처럼 하나의 정치집단으로 의식화하고 있다. 계급투쟁이 아니라 세대투쟁이 가장 큰 사회적 갈등요인이 될 때, 해결책은 무엇인가? 사회복지 정책으로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늙는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노인문제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영화 ‘은교’에 나온다. 늙는다는 것은 소멸하는 과정이다. 육체가 낡고 정신이 희미해지는 건 노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다. 이 순리를 거슬러서 젊은이처럼 욕망을 충족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노인의 비극은 시작된다. 영화에서처럼 이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는 꿈의 공장일 뿐이고,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할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젊음을 우상화하는 근대는 노년과 죽음을 추방했다. 현대인들은 안티 에이징으로 늙음을 지우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모든 기도는 ‘미션 임파서블’이다. 노년은 죽음이라는 인생 여정이 끝나 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이 죽는다는 것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이 언제 죽느냐다. 그 죽음을 추방해서 망각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을 병들게 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칸트는 “계몽이란 자기 자신이 책임이 있는 미성숙함에서 벗어남”이라고 정의했다. 이 같은 계몽을 위해 칸트가 제시한 모토가 “감히 알려고 하라.”이다. 오늘날 노인들이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선조들은 죽음이란 내가 왔던 곳으로의 회귀라고 믿어서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했다. 죽음이 본래로의 회귀라면, 죽음은 결코 삶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삶이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므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목적지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여행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면,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어찌 슬프겠는가? 이런 초연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계몽을 하는 것이 고령사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 “난 달라” “백인이니까”

    “난 달라” “백인이니까”

    울컥한다. 오렌지를 ‘아륀지’라 발음하기 위해 혀뿌리를 뽑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나라라지만, 정말 이런 거까지 알아야 해?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다. 독설과 유머 범벅이다 보니 이내 다음 항목이 궁금해져서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두 얼굴’(크리스천 랜더 지음, 한종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의 원제는 ‘백인들이 좋아하는 것’(Stuff White People Like). 같은 이름의 웹사이트를 개설해 백인이란 대체 어떤 인간인가 연구한 끝에 내놓은 책이다. ‘백인 앵글로 색슨 청교도’들이 대체 무엇을 즐기고 어디를 좋아하고 어떻게 살면서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낱낱이 해부했다. ‘WASP 완전정복’쯤 된다. 저자의 주장을 총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오랜 역사 때문에 너무 많은 전통이 있다 보니 전통에 치여 죽을 판인 유럽과 달리 지킬 것이 없다 보니 지키기 위한 전통을 발명해서라도 지켜 내야 한다는 열등감과 강박관념. 인디언 학살에서부터 각종 제국주의적 행패에 이르기까지 짧은 역사에도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역사적 죄악을 저질러 왔다는 깊은 죄의식. 그럼에도 어쨌든 지금 이 세계를 이끌고 가는 것은 우리들이라는 오만함. 글로벌 먹이사슬 제일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돈 버는 걸 경멸하고 정신적 가치를 찬양하는 가치관. 실은 유럽의 인문학적 교양을 갈망하면서도 아시아·아프리카 계통 문화는 다문화적으로 포용하겠다는 태도. 현대문명 덕은 톡톡히 누리면서도 이 따위 썩어 빠진 현대문명을 떠나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꿈. 읽다 보면 딱 떠오르는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최종철 옮김, 새물결 펴냄)이다. 그런데 여기다 비교해 버리면 너무 엄숙해질 위험이 있으니 차라리 ‘마이 코리안 델리’(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정은문고 펴냄)를 불러 내자. 한국인 장모 ‘케이’와 조그만 슈퍼를 2년간 운영한 경험을 담아 정통 WASP, 하우가 쓴 책이다. 하우는 ‘잡탕’ 뉴욕과 달리 고즈넉한 보스턴에서 컸고, 인문학의 꽃인 문학을 전공한 데다 일하는 곳도 문학 계간지다. 미국인을 상대로, 미국 문학을 다루는 계간지인데도 계간지 이름은 ‘파리 리뷰’다. 아, 넘쳐 흐르는 유럽과 인문학과 교양의 향취여! 해서 하우는 자연스레 주류 백인에 대해 언급하는데 두 대목만 따와 보면 이렇다. “미국에선 자식이 부모에게 적대감을 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십대 때는 부모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연락을 끊고, 나이가 들어선 모든 불행의 근원이 부모라고 주장하는 회고록을 쓴다.”, “예절이 사람을 만든다는 금언도 백인 청교도 중산층들에겐 충분하지 않다. ‘예절이 모든 것을 만든다.’ 우리 자신에 대한 판단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까지 목소리 크기부터 셔츠에 달린 글씨 크기까지 모든 것이 의미를 내포한다고 믿는다.” 저자는 하우가 들려 주는 이 웃긴 이야기를 무려 150가지 항목으로 요약 정리해 뒀다. 몇 가지만 추려 보면 이렇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떨까. 17번 항목 ‘부모 증오하기’. “백인의 환심을 살 필요가 있다면 부모에 대해 물어보라. 고아이더라도, 학대를 당했더라도, 부모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했더라도 가만 있는 게 좋다.” 친구 관계는 어떨까. 88번 항목 ‘게이 친구 사귀기’. “게이 친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백인들의 올스타 명단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애 하나 딸린 흑인 게이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평생 단 한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다.” 무슨 꿈을 꿀까. 131번 항목 ‘꿈 펼치기’. “막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가겠다는 백인을 만나게 되면 절대로 그것이 실수라고 암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파행적이고 무책임한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 어떤 직업을 택할까. 56번 항목 ‘변호사’. “난 로스쿨에 갈 거지만 변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똑똑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돈만 좇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법학을 공부해 예술가나 빈민층을 도울 계획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승자다.” 취향은 어떨까. 40번 항목 ‘애플 제품’. “백인들은 애플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창의적이고 특별한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한다. 창의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창의적으로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창의적으로 DVD를 시청하기 위해.” 이 책이 주는 재미의 정체는 뭘까. 백인들의 위선을 비웃어 주니 통쾌하긴 한데, 한편으로는 우리라고 얼마나 다를까 싶어서다. 거꾸로 위선이거나 허위의식이라도 좋으니 우리나라에서 잘나간다는 분들이 좀 흉내 냈으면 좋겠다 싶은 대목도 많다. 그 좋다는 미국 정통 글로벌 스탠더드이니 말이다. 1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인 김수영이 묻는다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관리가 우겨 데니//나는 잠이 깰 수밖에(김수영의 ‘김일성만세’) 어느 강좌에서 강단에 선 이가 대뜸 이리 읊는다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다음 구절을 궁금해하게 될까,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당혹감을 느낄까. 철학자 강신주는 그가 대학을 다니던 군사독재 시절과 지금 대학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삼삼오오 모여 있으면 작당모의를 하진 않는지 감시의 눈초리를 받고 불신검문도 감수해야 했던 것이 20여년 전인데, 오늘의 대학생들은 대학 벤치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과연 인문정신이 살아 숨쉬고 창조적인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그 자유를 비로소 누리게 된 것인가. 이런 궁금증으로 강신주는 강단에서 이 시를 읊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불쾌한 표정을 확인한 뒤에야 강신주는 무겁고 괴로운 마음에 휩싸였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이 ‘김일성만세’를 외친 50년 전과 비교해 지금도 내면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탓이다. ‘김수영을 위하여’(김서연 만듦, 천년의상상 펴냄)는 강신주가 우리가 ‘자유‘라고 느끼던 것이 어떤 이유로 진실일 수 없는지, 김수영을 통해 고찰한다. “자유로운 공기가 없다면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시인보다 잘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수영은 김수영이려고 발버둥 친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긍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온전한 나’이기 위해 채찍질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투덜거리며 치워 버릴 거미줄을 보면서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거미’ 중에서)고 이상에 닿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구름의 파수병’ 중에서)라고 회고한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단독성’을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저자는 사람(人)이 만드는 문양이나 표현(文)이 ‘인문’(人文)이며, 모든 존재들은 내면에 각각의 발자국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단독성으로, 자신만의 포즈로 표현한 사람이 김수영이다. 이런 김수영의 표현방식이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에, 비로소 인문이 완성되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2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선진국 자살시도자 관리는

    자살 사건이 터지면 “죽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막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설득해도 소용없고, 따라다닐 수도 없어 불가항력이라는 뜻이다. 자살을 단순한 개인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을 사회적 시각으로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자살 예방은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선진국들은 자살을 사회문제로 간주해 철저한 관리정책을 편다. 일본은 2005년부터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액션J’라는 관리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특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주기적으로 면담을 실시하고 자살을 시도한 배경에 대한 정보도 면밀하게 파악한다. 이들의 정신과 치료를 돕는가 하면 치료를 중단할 경우 대상자들을 추적해 치료를 유도하기도 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관련 정보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노르웨이는 1983년부터 정신과 의사, 지역사회 사업가, 심리상담사, 간호사 등이 포함된 자살예방협력팀을 구성해 자살시도자를 관리하고 있다. 지역 병원과 지역 보건 서비스가 긴밀하게 공조해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살시도자와 그 가족에 대한 추적관리도 꼼꼼하게 진행된다. 이후 12년간 자살률이 계속 감소했다. 덴마크는 2004년 ‘OPAC’라는 사후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해 자살문제 해결에 나섰다. 가정방문·대면접촉·전화·편지·이메일·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대상자들에게 다원적 접근을 시도해 자살 재시도율을 34%에서 14%까지 줄였다. 이탈리아는 자살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 자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88년부터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비상시 휴대용 장치를 이용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텔레헬프’(Tele-help) 제도를 도입했는가 하면 일주일에 두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심리 상담을 하는 ‘텔레체크’(Tele-check)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도 다르지 않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전화통화 서비스를 제공해 자살률을 크게 낮췄다.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해 방문 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실까지 동행하도록 했다. 또 미국에서는 각 지역 담당자들이 자살 시도자에게 주기적으로 친필 서한을 보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고 있으며 프랑스 역시 정부가 자살 시도자와 가족들에게 전문 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김명수·변증남·홍원탁 교수 수당상 수상

    김명수·변증남·홍원탁 교수 수당상 수상

    재단법인 수당재단은 3일 제21회 수당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기초과학부문에 김명수 서울대 교수, 응용과학부문에 변증남 울산과학기술대 석좌교수, 인문사회부문에 홍원탁 서울대 명예교수 등 3명을 선정했다. 수당상은 삼양그룹 창업자인 수당 김연수 회장의 산업보국과 인재육성 정신을 계승해 1973년 제정됐다. 시상식은 새달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수상자들은 각각 1억원의 상금과 상패를 받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CEO 칼럼] 인내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하자/김창범 한화L&C 대표

    [CEO 칼럼] 인내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하자/김창범 한화L&C 대표

    헬렌 켈러는 미국에서 최초로 인문계 학사를 취득한 중복 장애인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 장애의 어려움을 딛고 그는 작가, 사회운동가, 교육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암흑 속을 뚫고 나온 빛의 천사로 불리며 칭송받았던 그의 뒤에는 48년 동안 고난과 헌신의 삶으로 일관한 개인교사 앤 설리번이 있었다.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에게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켈러의 기적적인 삶은 인생에서 인내의 힘을 깨우쳐 준 설리번과 같은 조력자가 있어 가능했다. 한 사람이 보낸 인고의 세월이 다른 사람의 천재성을 발현시킨 값진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꿈을 실현시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월트 디즈니. 그의 어린 시절은 그가 이룬 환상의 세계와는 달리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가정 불화로 집을 뛰쳐나와 추운 골목을 뛰어다니며 신문배달을 했던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고난의 세월을 견뎠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고전을 거듭했지만 꿈을 이루겠다는 집념과 신념으로 마침내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그룹을 일구고,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을 구현한 디즈니랜드를 탄생시켰다.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모두가 인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하철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추태를 부리는 ‘○○녀’, ‘○○남’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출현은 인내가 더 이상 미덕이 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소한 피해에도 발끈하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야 권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참을성 부족한 개인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다. 무한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 참을성 있게 꿈을 좇는 일은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 됐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기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경제불황과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정신적, 물질적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남에 대한 배려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살벌한 경쟁으로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믿음을 되찾기 위해 특별한 처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손바닥을 건드리는 것이 전부였던 열악한 교수법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암흑 속의 소녀를 일깨운 앤 설리번의 참을성과 암담한 현실에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수없이 도전했던 월트 디즈니의 인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이 세상 어느 것도 스스로를 낮추고 인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계의 원리가 그러하고 인생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지나친 성급함과 조바심으로 천재일시(千載一時)의 기회를 놓치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삶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기다리면 값진 선물을 안겨 주기도 한다. ‘몸과 정신을 단련하는 부단한 노력이 재능을 앞선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기고 인내하는 여유를 갖자. 기나긴 제련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순금이라는 빛나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없듯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기업경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불안한 세계 정세와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 등으로 위기 의식이 팽배한 요즘과 같은 기업환경 속에서 믿음의 인내와 도전의 인내는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성급한 열정에 휩쓸리지 않고 참고 노력한다면 인생은 달콤한 결실로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은근과 끈기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내는 유전자가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세웠다면 기다림의 여유와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기대해 보자.
  • [공생발전 특집] 현대산업개발

    [공생발전 특집] 현대산업개발

    현대산업개발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중심축은 ‘포니 정 재단’이다. 2005년 11월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업적과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은 국내외 장학사업과 인문학 육성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와 호찌민 국립대에 각각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수혜 학생에게 2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조건이다. 지금까지 포니 정 재단의 지원을 받은 베트남 대학생은 모두 260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164명의 대학생이 혜택을 받았다. 정 명예회장의 기일이 있는 5월이면 ‘포니 정 혁신상’ 시상으로 혁신적 사고와 도전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난해 제5회 포니 정 혁신상 수상자는 경제학 분야의 혁신을 이끌어 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였다. 경영활동을 통해서도 함께 사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영세 규모 협력사들의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협력회사에 무이자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과는 12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 펀드를 함께 조성, 시중보다 저렴한 우대금리를 통해 협력회사들에 금융지원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 밖에 임직원으로 구성된 ‘아이파크 사회봉사단’은 2004년 발족 뒤 경영진부터 신입사원까지 전 직원이 참여해 건설업의 전문성을 살린 사회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시가 추진한 ‘희망온돌’에 동참해 3000만원 상당의 쌀과 방한복을 전달했다. 사회복지재단인 아산나눔재단에 정몽규 회장의 사재 50억원을 비롯해 총 100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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