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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 사회사는 인간욕망 거울

    ■욕망의 식물학 (마이클 폴란 지음/서울문화사 펴냄). 인간은 세계를 주체와 객체로 나누고 자연,특히 식물에 대해서는 인간이 주체가 돼 종을 선택,재배,개량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위치를 뒤집어 놓고 생각해서 식물이 인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라면?‘욕망의 식물학’(마이클 폴란 지음,이창신 옮김,서울문화사)은 식물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친숙한 네 가지 식물,즉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에 관해,그리고 그러한 식물의 운명을 우리 자신의 운명과 연결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전복적 시각의 책이다. 저자는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공진화(共進化) 개념을 끌어온다.정원에서 과즙을 얻는 뒤영벌은 스스로를주체로,자신이 파헤쳐 놓은 꽃을 객체로 여길 테지만 사실은 사과꽃이 이꽃에서 저꽃으로 자신의 꽃가루를 옮기도록 벌을 교묘히 조정한 결과이다.벌은 양식을 얻고 사과는 자신의 유전자를 운반하는 공진화적 거래에 무의식적으로 참여하며 여기서 주체와 객체라는 전통적 구분은 무의미하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식물 종이 오늘날 우세하게 살아 남았다면 여기엔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개입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식물이 자신의 종족 번식을 위해 인간의 욕망을 이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식물들은 만여 년 동안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병을 고쳐주며,옷을 입히고,도취시키고,그도아니면 즐거움이라도 제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느라 고심하면서 용의주도한 생존 전략을 구사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식물의 유전정보를 읽다보면 인간의 욕망에 관한 정보,인간의 문화에 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며 화려한 식물 기행을 떠난다.예를 들어 튤립의 유전자에서는 오스만 터키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가장 확실한 방법,당시 사회의 미의 기준을 잡아 낸다.마찬가지로 러셋버뱅크 감자에서는 인간의 먹이사슬에 관한,기다란 황금빛 감자튀김을 좋아하는우리 입맛에 관한 정보를 찾아낸다.인간의 욕망과 관련해서는 사과에서 ‘감미로움’의 욕망을 추적하고 마찬가지로 튤립에서는 ‘아름다움’,대마초에서는 ‘도취’,그리고 감자에서는‘지배’ 욕망의 사회사를 그려낸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자연과 인간은 결코 떨어져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삶’이라는 얽히고설킨 거대한 상호작용의 거미줄 속에 함께 속해 있는 존재란 것이다.튤립꽃한송이에서도 인간을 생각할 수 있다면 오늘날의 환경재앙위협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과학에 관한 에세이지만 고대신화에서 셰익스피어,소로,매튜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적 지식을 녹여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NYT ‘주목할만한 책’수상작가 답게 매력적인 문체도 책을 부드럽게 하는 데 한몫 한다.1만 2000원. 신연숙기자yshin@
  • [정책갈등 해법] (1)생명윤리법 제정

    생명과학 연구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생명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생명윤리법 제정이추진된 지 2년째.그동안 생명과학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거듭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차세대 성장엔진이 될 생명공학(BT) 기술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공표하고 나섰지만정작 연구의 가이드라인이 될 생명윤리법 제정은 답보상태다. 사안 자체가 워낙 민감한데가 생명공학 육성의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와 국민 보건·의료 수준의 향상을 추구해야 하는 보건복지부가 각기 법 제정을 추진,정부의 단일 법안 도출이 늦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해 과기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생명윤리기본법 골격안을 발표했고,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를 통해 법 시안격인 ‘생명과학관련 국민보건 안전·윤리 확보방안’을 내놓았다. 두 부처가 법 제정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생명윤리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없다.”며 생명윤리법 제정운동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생명윤리법 공동캠페인단과 함께 7일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생명윤리법 제정 긴급 토론회’를 갖고 생명윤리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생명윤리법 제정문제를 시작으로 부처간 조정이 안 되고있는 정책과제 12건을 선정,그 해법을 찾아본다. ◆과학기술부 입장=(발표자 과기부 생명환경기술과 장현섭사무관) 최근 생명공학은 IT(정보기술) 등 배후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광범위한 분야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생명공학기술 발전의 수혜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생명윤리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그 해결방안 모색을 위해 과기부는 지난 2000년 11월부터 1년간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등 검토를 지속해 왔으며 현재 관련 부처와 입법내용 등에 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입법이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생명공학을 육성해야 하는 주무부처로서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난치병 질환의 근원적 해결 등 경제·사회복지 측면에서 파급효과가 지대한 줄기세포 연구를 주요 내용으로하는 ‘세포응용연구사업’을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줄기세포 연구는 관련 기술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이 세계적으로도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고,현재의 우리나라기술수준도 선진국에 그다지 뒤지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배아 줄기세포의 연구에 있어서는 생명윤리에 관한논란이 있으므로 입법을 감안한 소정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과기부의 입장이다. 즉,줄기세포 연구를 추진함에 있어 성체(成體) 줄기세포·동물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연구분야부터 추진하고,아직까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는 배아복제 등의 분야는 향후 입법방향에 따라 추진하도록 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입장=(발표자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 김헌주 사무관)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을 의뢰받은 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2000년 12월 생명윤리법 시안을 마련해 공청회를 가진적이 있다.당시 법안이 연구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해 과학계의 반발이 심했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이후 1년 넘게 준비해 ‘생명과학관련 국민보건안전·윤리 확보방안’이란 제목으로 생명윤리법 시안을 냈다.이 시안에서는 생명공학 연구범위의 제한에대한 과학계의 반발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다.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 개체복제를 금지하고 배아의 이용은 질병의 예방·진단·치료를 위한 연구·시술 목적으로만 허용하는 것은 과기부의 시안과 같다. 다만 배아연구 결과가 보건·의료분야에 실제 적용될 경우 제기될 우려가 있는 윤리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시안을 마련했다. 배아는 원칙적으로 5년의 보존기간이 경과한 잉여배아로한정했으며,발생학적으로 원시선이 나타나기 이전(정자와난자가 수정된 후 약 14일)의 것만을 대상으로 정했다. 잉여배아연구의 활용범위를 구체화해 줄기세포에서 장기를 만드는 것까지 허용했다. 인간체세포 복제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과학기술 발전과 윤리의식의 변화를 고려해 체세포복제 문제는법 제정 3년 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시민단체 입장=(발표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환석 소장) 주지하다시피 생명윤리법의 제정은그 내용을 둘러싸고서로 다른 집단간에 첨예한 사회적 논쟁을 낳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법의제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하루빨리 ‘사회적 합의’를이루어 법 제정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때 궁극적으로 바탕이 돼야 할 것은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일반시민의 여론이다.따라서 생명윤리법의 주요 쟁점사항에 대한 일반시민의 여론을 확인하고 이를 법 제정에반영함으로써 생명윤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림대학교 인문학연구소가 최근 20세 이상의 일반 성인53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인간배아연구에 대해서는 ‘허용될 수 없다’는 의견이 76.9%,‘조건부로 허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23. 1%를 차지했다.또 성체줄기세포 연구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46.2%,의학적 가능성이 더 크다면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53.6%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인간개체 복제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85.6%)이 찬성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조사 결과를 정부의 생명윤리 관련 법안의 내용에비추어 보면,과기부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 마련된 안이나 보건복지부에서 최근 마련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대한 법률 시안과 대체로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인 내용에서 차이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인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의미다.법안에서 문제되는 내용은 입법과정에서 논의를 거치더라도하루빨리 생명공학 관련 연구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기본법이 마련돼야 한다. [김환석 참여연대 소장-김헌주 복지부 사무관-장현섭 과기부 사무관]함혜리기자 lotus@
  • [괴짜인생 별난세상] 이원우 부산 명덕초등교장

    ■‘부산사랑’음반 낸 ‘딴따라 교장’. ‘울며∼헤∼어어진 부산항을 돌아∼보∼며….’ 지난달 25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2동 한 레코딩 스튜디오.헤드폰을 끼고 마이크 앞에 선 은발의 청년(?) 이원우(李元雨·61)씨가 목청을 한껏 돋우며 흘러간 가요 한곡을 뽑는다.열창 탓인지 녹음실은 금세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고 그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구슬땀이 묻어나온다. 이튿날 오후 2시 북구 덕천1동 경로당 5층 덕토노인대학. 이씨는 80여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앞에 두고 우리 민요 ‘한오백년’을 구성지게 부르며 흥을 자아낸다. 이씨는 원로 가수가 아니다.교편을 잡은 지 올해로 꼭 40년째인 부산 명덕초등학교의 현역 교장이다.이는 어디까지나 공식 직함일 뿐 교문을 벗어나는 순간 화려하게 변신한다. 10여권의 책을 낸 문학가(수필·소설가)로,노래를 사랑하는 가수로,노인들을 돌보는 노인대학 학장으로,유네스코부산시 사무총장으로….또 한때 일간지에 애견에 관한 글을 연재할 정도로 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애견가이자 15년동안 단 하루도차마시는 일을 거르지 않은 ‘다인(茶人)’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하고 바쁜 삶을 사는 그는 스스로 ‘별난 사람’이자 ‘망나니 교장’이라고 평한다. 최근에는 ‘대통령의 오줌누기’라는 수필집을 냈다.이수필집에서는 그때그때 느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이 교장은 20대 젊은 시절 가수가 꿈이었다.병아리 교사였던 당시 시골에 공연 온 유랑극단 단장을 찾아가 한곡조뽑으며 가수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그는 마이크를 잡으면지금도 300여곡을 음정·박자 하나 틀리지 않고 거뜬하게소화한단다. 가수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한 그는 자비로 ‘부산사랑 부산노래’라는 음반을 취입,한풀이하기도 했다.모 음악회자리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가곡 ‘떠나가는 배’를 불렀을 땐 청중들이 음대 교수로 착각했다고 한다. 또 민요집을 2권이나 내는 등 부산국악협회 회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자신의 일 가운데 어느 하나 열성을쏟지 않는 것이 없지만 가장 혼신을 다하는 것은 노인대학운영이다. 지난 83년 우연히 노인학교에발을 들여 놓았다가 이제는‘마음의 둥지’가 되고 있다. 18년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토요일 오후면 노인대학으로 달려간다.매주 화요일마다 한글을 가르치는 이 교장은노인들을 모시고 외국여행도 3차례나 다녀왔다.또 노인문학상을 제정,운영해 왔지만 최근 자금난으로 잠정 중단돼속이 상한단다.최근에는 부산과 연관된 옛가요만을 연구하는 가요연구소를 설립해 운영중이며 오는 10월 열리는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맞춰 ‘부산노래 가요제’를 개최하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그는 이같은 역동적인 활동으로지난해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늙을 시간조차 없다.”며 환히 웃는그의 얼굴에서 ‘젊은 오빠’의 진정한 모습이 그려진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왼손잡이는 본래 열성일까

    △ 왼손과 오른손(주강현 지음/시공사 펴냄).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차이점은?” 주변에서 적지않이 보게 되는 왼손잡이.점차 인식이 바뀌어 가곤 있지만 왼손잡이는 여전히 오른손잡이와 구별되는,아니 ‘차별’의 대상이 돼있는 게 사실이다. 운전을 할 때나 컴퓨터 마우스를 다룰 때, 정작 왼손잡이본인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인들이 보는 눈은다르다. 그렇다면 왼손잡이는 태초부터 타고난 열성일까? ‘왼손과 오른손’은 자칫 단순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왼손과 오른손의 차별을 사회사적으로 파헤친 흥미있는 보고서다.저자는 인류가 왼손 오른손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 것은 단순히 각자의 편의에 따라 갈라진 좌우에 국한되지 않는,억압과 금기의 총체적인 작용 탓으로 규정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원래 왼손과 오른손,즉 좌우는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고부터 생긴 앞뒤 개념과 같이 왼쪽과 오른쪽의 방위개념에 불과했다.그러나 인류의 인지가 발달하면서동서양 모두에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오른쪽 위주로 살도록 강요하는 오른쪽 우위의 헤게모니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서구 산업혁명의 산물인 자동화도 철저하게 오른손에 맞도록 짜여진 시스템이고 시계 역시 철저하게 오른쪽의 철학이다.“서구사회에서 왼손잡이 편견을 빚어낸 최대의 공적은 기독교 문화”라고 저자는 밝힌다. 예를 들어 선악과를 따는 이브의 ‘악한 손’은 왼손이다. 성화(聖畵)의 대부분이 오른손에 힘을 주며 왼손은 악마 취급을 당한다. ‘오른손의 절대권력화’를 파헤치기 위한 책 속의 궤적은 끝이 없다.고고민속학,역사민속학,도상학,지리학,아동교육학,건축학,유전학,언어학,종교학,철학,한의학,정치학등 인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섭렵된다.저자는 “동양의연구 집적이 초라한 만큼 어쩔 수 없이 서구의 성과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고 한계를 밝히고 있지만 실제 분석에사용된 자료량과 천착의 정도는 이런 한계를 상쇄하고도남는다. 왼손ㆍ왼쪽으로 대표되는 억압과 금기의 상징은 이단이나마이너리티,금기, 소외,비정상이라는 ‘다름’으로 구석구석 스며들었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어릴적부터 왼손잡이의 ‘오른손' 방향선회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엄존한다. 결국 저자는 “왼손잡이 오른손잡이의 문제는 약자에 대한 지속적 차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뤄져왔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면서 “오른손 무한권력의 시대에 왼손의 연대를 촉구하는 것은 문화적 열성,마이너리티에 보내는 경의의 표시이며 양극단을 뛰어넘어 문화다원주의 실현을 희구하는 염원에 다름아니다”고 강조한다.1만2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컴퓨터 게임·소설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컴퓨터게임의 이해-최유찬 지음/문화과학사 펴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자넷 머레이 지음/안그라픽스 펴냄. 컴퓨터 접속 시간이 TV시청 시간을 앞질렀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문화로서 컴퓨터 체험에 대한 분석은 미개척분야로 남아 있거나 심지어는 회의적이다.두 권의 신간은 컴퓨터 이용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인 컴퓨터게임과 소설(혹은 문학)을 통해 컴퓨터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앞으로 이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인문학적 탐색을 시도한 희귀한 성과물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컴퓨터게임의 이해’의 저자는 연세대 국문과 교수.그는 우연한 기회에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에 빠져 들었다가 게임 몰입을 통해 자신의 지각체계가 변화된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자연스럽게 연구는 단순한 게임연구가 아니라 게임의 사회적의미,문화적 파장으로까지 확장된다. 저자는 먼저 컴퓨터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게이머가 게임수행을 통해 ‘소설 읽기’와 같은 현실체험을 하게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모든 게임은 일정한 서사 프로그램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게이머는 게임을 통해 세계를이해하고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법을 배우는데,이는 예술의 체험구조와 거의 동일하다. 저자는 따라서 예술의 개념을 ‘아름다움’을 떠나 ‘흥미로움’을 중심범주로 하는 형태로 바꾸고 게임도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 적극 포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저자는 컴퓨터게임이 인간의 이야기 지각구조를 바꾼다는 점을 밝힌다.소설의 서사구조는 대부분 시간적으로전개된다.그러나 게이머는 긴장된 속에서 매순간 게임세계의 전모를 즉각적으로 파악해야 하며 이런 서사 체험방식을 익히게 되면 서사는 점차 공간적인 형식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저자는 “컴퓨터게임에 빠진 후 어느 순간 ‘토지’라는 방대한 소설이 하나의 공간이미지로 포착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이같은 지각 방식은 질 들뢰즈의 ‘이마주’ 이론과도 상통하며 신세대 작가들에게 영화적 상상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1만6000원‘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은 사이버 서사의 특성과 그 세계에 우리가 즐겁게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제시한다.1971년 이래 미국 MIT에서 ‘인터랙티브 창작’을 강의해 온 저자는 “기존의 문자매체,선형(線形)적 서사로는현대인의 복합적인 삶과 현실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면서 다중적 스토리 구성,독자의 참여,사실성에 의한 몰입 등 사이버 서사의 새로운 즐거움을 예찬한다.1만6000원예술도 매체도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그러나 두 책의 저자는 ‘서사의 힘’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는점에서 일치한다.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데 컴퓨터가기여한다면 문학연구자들의 이에 대한 태도 또한 지금보다 훨씬 열려져야 한다는 과제를 이 책들은 던지고 있다. 신연숙기자 yshin@
  • 나무 세기는 인문학 읽기?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강판권 지음, 지성사 펴냄). “나무를 세면서 역사와 신화 등 인문학을 가르친다.” 일견 엉뚱해 보이는,이 기발한 발상을 실천하는 학자가있다.주인공은 대구대·계명대에서 역사를 강의하는 강판권 박사.그가 펴낸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지성사)는 나무를 세면서 역사와 신화를 해석하려는 노력을 담고있다. 저자는 나무세기 학습법에 담긴 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공부 중 하나는 나무를 세면서 그이치를 깨닫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런 방법을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팔조목(八條目) 가운데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에서 차용했다.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격물치지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물(物)에 이르러 이치를깨닫는 방식이다.내가 선택한 방법도 바로 이런 것이다.” 또 있다.그에 따르면 격물치지가 점진적 공부라면 가까이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성리학자들의 추구한 다른 공부였다.‘논어’의 ‘자장’편에 나오는 ‘근사’(近思·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함)가 공부의 기본이라는 것이다.자연스레 저자는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게 했고 자신의 ‘나무독법’을 모아 책으로 냈다. 그는 나무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통해 심오한 동양철학을쉽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천연기념물 1호인 측백나무에서서거정의 시(詩)와 논어를 겹쳐 읽는다. 나무를 통한 발랄한 인문학 산책은 어느새 고흐가 자살 직전 그린 측백나무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복숭아나무에서는 중국 춘추시대의 민요를 소개한 뒤‘삼국지’의 도원결의로 독자를 이끄는가 하면 금새 도연명의 ‘귀거래사’로 나아간다.끊임없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복숭아에서 ‘서유기’의 손오공,안견의 ‘몽유도원도’,이인로의 ‘파한집’ 등을 스케치하면서 인문학을 즐겁게 맛보게 한다. 이밖에 뽕나무,석류나무,호두나무,자작나무,향나무 등 그냥 스쳐지났던 숱한 나무들이 저자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만나면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는다.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나무 세기는 인문학 읽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는 “개인의 정체성,인문학의 정체성,미래 사회의 향방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무라는 존재가 선택됐다”며“나무와 함께 하면서 모든 인문학의 위기가 저의 무딘 감각,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일상적 풍경 안에 숨어 있는 것을 파헤쳐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살아 숨쉬게 하는 저자의 행보는 계속 될 것으로보인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야 한다.”1만3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대학 온라인 강의 ‘엉성’/ 교수 무성의로 부실 운영…학생들 원성

    대학의 사이버 강의가 일부 교수들의 무성의로 부실투성이가 되고 있다.일부 교수는 아예 온라인에서 학생들의 질문에 한번도 대답을 하지 않아 원성을 사기도 한다. 사이버 강의는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1대 1 질의응답과 토론 문화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98년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됐다.이에 따라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이 온라인 강의를 마련해놓고 있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가 사이버 강의를 하겠다고 하면 별도의 전담조교를 둘 수 있도록 배려하고 수당까지 준다. 이 때문에 사이버 강의는 교수에겐 인기가 높지만 강의의 질이 낮아 학생에겐 불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연세대·서강대 등은 오프라인 강의와 사이버 강의를 함께하는‘사이버 병행수업'을 채택하고 있다.이들 대학은 주당3시간짜리 과목의 경우 1시간 30분∼2시간은 오프라인 강의로,나머지 시간은 사이버 공간의 토론이나 과제물 제출로 채운다. 연세대는 98년 4개 시범강좌를 개설한 이래 현재 사이버 병행 수업 수가 200개를 넘었다.하지만 사이버 강의실의 전자칠판은 비어있는 때가 숱하다.질문 답변란도 수업내용보다는 과제물이나 시험 관련 문의로 가득 차 있다.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교의 몫이다. 학생들의 참여율이 비교적 높은 토론방도 교수가 정리해 주거나 지도해 주는 일은 거의 없다.교수가 올린 글이라고는대부분 강의계획서 뿐이다. 사이버 교양 강의를 듣고 있는 사회학과 2학년 M씨는 “언제나 편리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이버 강의에들어가지만 매번 실망한다.”고 말했다. 이 대학 인문학부 K교수는 “학생 수가 많아 토론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사이버 강의를 신청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 주로 조교에게 맡긴다.”고 털어놓았다.사이버 강의 조교인 대학원생 L씨는 “토론을 성적에 반영한다고 했더니 1000건 정도 올라와 요즘에는 일부러 토론을 자제시킨다.”고 밝혔다. 지난해 처음 학부에 사이버 강의를 개설한 성균관대는 이같은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교양강좌 위주로 사이버 강의를 제한했다.이에 따라 지난해 195개이던 사이버 강의가 올해는 68개로 대폭 줄었다. 사이버 강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이 대학 디지털교육지원팀의 한 관계자는 “교수들이 사이버 강의를 소홀히 해도 달리제재할 방법이 없다.”면서 “지난해 사이버 강의를 하는 교수,조교에게 강의료조로 3억원도 넘게 지급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지난해 30강좌를 사이버로 진행한 서강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이 대학 H씨는 “사이버 강의는 학점을 쉽게 올리는 재수강용 강의로 흔히 치부된다.”고 말했다. 또 이 대학 3학년 K씨는 “남들은 사이버 강의라고 하면 동영상 강의로 착각하는데 기껏해야 교재 수준의 자료를 사이버로 보는 것”이라면서 “전공과목을 이렇게 부실하게 수업해도 되느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이 대학의 한 관계자는 “사이버 강의를 원활히 진행할 수있도록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교수의 사이버 강의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사이버 강의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purple@
  • 고전서 캐는 지혜의 寶庫

    ■고전의 세계 시리즈 5권-책세상 펴냄. ‘고전의 위기’ ‘고사(枯死) 직전의 인문학’ 등 인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문학을 살릴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일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고전의 세계’시리즈를 책세상에서 펴냈다.도서관에 처박힌 고전을 세상으로 끄집어 내 인문학의 지적 토대를 다진다는 의도로 1차분 5권을 내놓았다. 1권은 프랑스 사상가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신행선 옮김).사상사에서 르낭의 이론은 좌에서 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사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르낭의 민족주의가 프랑스에 갇힌게 아니라 유럽을지향하는 열린 공간임을 보여준다. 또 요한 G.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서정혁 옮김)는 돈이 되는 학문만 인정받는 한국 사회 풍토에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그에 따르면 학문의 본질은현재의 유행을 부나방처럼 좇는게 아니라 ‘진리와 자유를추구’하는데 있다.“학자는 현실 비판자이자 변혁자이어야한다”고 강조하는 피히테의 일갈은 지금도 유효하게 다가온다. 사회학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에게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마르퀴 드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장세룡 옮김)도 우리 학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계몽사상가의 마지막 세대인 콩도르세는 이 책에서 진보의진정한 의미를 모색한다. 이밖에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거치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서문’(김석수옮김)도 고전의 향기가 듬뿍 우러나오는 역작이다. 또 한 평생 사회주의를 고집한 ‘철의 여인’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은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도 고전대열에 합류해 눈길을 끈다.주로 일대기 위주로 소개되었던 로자가 이론으로 독자를 찾아온 것이다. 개혁과 혁명,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한 로자의 사상을 오롯이담고 있는 이 책은 현존하는 자본주의 문제점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아울러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를 무조건 역사 속에 묻으려는 흐름에 반성의 단초를제공한다. 모두 현대를 보는 지혜의 보고로서 한몫 하는 책들이다.고전의 향기가 은은히 배어있다. 책마다 역자가 자상한 해제를 달아서 이해를 도와주고 더 깊이 고전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참고서적들을소개하고 있다.책세상의 고전의 세계는 매달 10일께 다섯권씩 만날 수 있다.4,900∼5,9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2002문화계 새인물,새지평]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단행본 출판시장 유통개선 영세업자들에 가능성 제시. 김인호(金仁浩·37)바다출판사 대표는 단행본 출판사들의 모임인 ‘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의 ‘공식 입’으로통한다.동료 출판인들도 부러워하는 감각으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블루데이 북’등 베스트셀러를 펴냈고 사재기 등 업계 고질적 관행들을 합리적으로 고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편집과 기획,영업 등을 두루 경험한 뒤에야 ‘나홀로 사업’에 나서는 국내 출판인의 일반적 경향에 견줘 그의 창업은 이색적이다.“종이를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르는 상태”서 겁없이(?) 뛰어들었다. “언론노보 기자생활을 접고 고민하던 중 친구와 소주 한 잔 하다 ‘우리 책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죠. 아직 이런 인터뷰하기엔 모르는 게 많은데 쑥스럽네요.” 고려대 철학과 졸업 뒤 한신대 대학원에 잠깐 다니다 포항제철에 입사,월간 사회평론·언론노보 기자 등 몇 곳을전전했다.농수산물시장 감자도매상 이력도 더하면 떠돌이같은데 정작 본인 생각은 다르다.“내 길을 못찾았기 때문”이라며 “장사와 컴퓨터(포철 프로그래머),기사작성·기획 등 모두 출판 일에 밑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96년 창업후 2년 간격으로 베스트셀러를 터뜨렸다.97년펴낸 소설 ‘편지’가 첫 자신감을 주었다.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든 신씨네와 ‘원 소스 멀티 마케팅’이란 참신한전략을 펼쳐 20여만부를 팔았다. 그러나 IMF여파로 중간도매상이 잇단 부도가 나 1억9,800만원을 허공에 날렸다.단행본 출판사로선 큰 타격이었다. 이때 단행본시장의 유통구조가 얼마나 허구렁인가 실감했다.김 대표는 다음해 단행본 출판사의 눈으로 문제를 푸는 데 공감한 출판사들을 조직하여 ‘출판인회의’탄생의 핵심역할을 했다. ‘인간 조조’‘고구려의 재발견’ 등 꾸준히 인문학 서적을 펴내다 99년 김경일 상명대 교수와 함께 기획한 ‘공자가…’는 나오자 마자 잇단 논쟁을 이끌면서 ‘사회의눈’으로 떠올랐다.30여만부가 팔렸고 ‘바다’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지난해 낸 ‘블루데이 북’도 이를 능가할 ‘효자’다. “김 교수와 다른 책 출판이야기를 나누다 IMF의 본질이화제에 올랐어요.경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정체성에 위기의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바로 출판준비에 들어갔죠.‘편집자와 저자의 행복한 만남’이 성공을 일군거죠.‘블루데이 북’은 제가 기획한 게 아닙니다.일본에서 연수하고 있는데 기획자가 해외도서를 검색하다 ‘눈에 띈다’며 의견을 내놓았어요.재미는 있는데 책도 아니고 사진집도 아닌 것이 팔릴 수 있을까를 놓고 고심하던 중 사내 강경파가 밀어붙인 거죠.” 5년 동안 150여종을 내놓으면서 꾸준히 성장한 비결을 물었더니 “성공 비결은 없고 실패하지 않는 비결은 있다”고 에두른다.아무리 광고와 마케팅에 돈을 털어넣어도 5,000부 예상되는 책이 2만∼5만부 팔리지는 않는다는 것.책을 만드는 데 무게를 둔다는 게 그의 출판 철학이다.자연스레 화제는 출판계 악습인 ‘사재기’로 넘어갔다.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어요.합리적 판매집계 시스템을 만들어 사재기 효과가 줄면 차츰 나아질 것입니다.” 출판인회의는 전국 서점의 가중치를 감안한 집계방식을만들었다.특정서점 자료만 이용할 경우 그 판매량만 조작하면 베스트셀러로 둔갑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온-오프라인 서점이 공존하고 독자들이 책읽는 풍토를 만들어가는 데 초점을 두면 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정가제를 폐지한 뒤 ‘공장도 가격’‘권장소비가’ 등 여러 대안을 떠올려보지만 혼란만 커진다는 의견이다. “꿈이요?.바다출판사를 ‘논픽션의 명가’로 만들고 싶습니다.그 속에서 제 최종 위상은 ‘영원한 편집자’로 남는겁니다. 사장요? 그건 직무에 불과하죠.”이종수기자 vielee@
  • [2002문화계 새인물,새지평] 김명섭 한신대교수

    가느다란 미풍이 끝내 온 숲을 흔들어댈 수 있다.2002년을맞는 문화계 곳곳에서 우리 눈에 익숙한 문화의 여러 모양새와 알맹이를 바꿀 잠재력의 인물들이 大바람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우리 문화의 외적 형상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내적 지평의 새 땅을 일굴 기대주들을 분야별로 소개해본다. ***“美 주도 세계화 탈피 우리의 눈으로 보자”. “언제까지 미국정치학회의 한국지부 노릇만 할 것인가.미국이란 ‘제국’의 확장에 복무하는 국제정치학 인식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지난해 소장학자로서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시각이 번득이는 저서 ‘대서양문명사’를 발표해 지성계를 강타했던 김명섭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39).그가 이 땅에서 태어난 국제정치학자로서 이제부터 ‘한국적 국제정치학’을 수행할 것을 소명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데 인문학의 위기가 왜나왔는가.우리 인문학이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국제정치학도 우리 중심이 돼야 한다.미국이라는 제국적 중심에 우리의 지적 역량이 이용당하고있다.”김 교수는 ‘대서양문명사’는 우리 중심의 글쓰기에 앞서우리 시각의 글읽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최근 학자들의 ‘탈식민주의적 글쓰기’주장은많았지만 의외로 우리 시각에서 서양을 읽어내려는 작업은없어 ‘탈식민주의적 글읽기’를 먼저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관계를 분석하되 역사적 사실에서 통찰력을 얻는거시적 접근법을 사용한다.‘대서양문명사’에서 그가 내린결론은 특정 강대국의 개별적 표준이 국경을 넘어 시대를 압도하더라도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통해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동심원적 구조의 세계화를 기해 간다면 약소민족공동체에게도 생존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페르시아라는 대국의 도전에 직면했던 아테네,로마 지배하의 유대,이슬람문명권의 도전에 맞섰던 베네치아 등은 각각 민주주의와 기독교문명,그리고 실용주의라는 자기쇄신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세계화를 달성한 사례로 본다. 그렇다면 미국 주도의 세계화 상황에서 한국이 치고 나갈 ‘자기표준’은 어떤 것들이 될 수 있을까.김 교수는 “환경,평화,여성문제등 여러 분야에서 독자적인 창조력을 발휘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최근 동향을 보면 디지털TV의 예처럼 지나치게 미국적 표준을 따라 가려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김 교수는 “이제 미국으로부터는 냉전시대와 같은 전략적 배려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유럽과 중국 등 여러 세력을 지렛대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또 요즘 국제흐름을 읽는 데 있어 386세대들의 맹목적인 친중국 심리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낸다.80년대 세대들이 당시 반미 문제의식의 결과로 친중 성향을 갖고 있으나 중국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한국의 아이덴티티는 과거와 같이 앞으로도 중국과의 ‘구별’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그는“최근의 달라이 라마 방한 불발은 주권행사와 관련된 중대한 문제로 앞으로 중국이 커 갈수록 비슷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게 될것”이라면서 이러한 중국문명권과 미국문명권의충돌은 향후 지역 헤게모니 문제와 관련,핵심 과제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올해 그가 손댈 작업은 미국과 중국의패권경쟁 시대에 바람직한 남북한 협력관계의 창출방안을 태평양문명의 시각에서 도출하는 것이다.또 EU로부터 ‘EU와남북한’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 조직을 요청받았는데 2003년 열릴 이 회의는 네덜란드와 EU의 통합모델을 한반도문제의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에게는 올해의 또다른 중요 과제가 될 것이다.그는 또 방송통신대에서 역서 ‘거대한 체스판’(브레진스키 저)을 주제로 TV강의를 하게 되는데 이 또한그를 설레게 하는 일이다.‘젊은이들에게 세계를 읽을 수 있는 힘을 키워 주는 것이 세계화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이번 공개강의는 좋은 기회의 창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게 새해는 여러 학문간의 경계만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대중과의 간격도 허물어 시대인들과 소통하는의미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김명섭 한신대교수 약력. 1963년 출생/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및 석사/프랑스 팡테옹 소르본 대학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논문 ‘지배를 위한통합:트루먼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삼각적 지역체제의 기원’)/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한신대 국제관계학과교수(현재)/저서 ‘대서양문명사’,공저 ‘80년대의 한국사회’‘해방전후사의 인식(4·6권)’ ,역서 ‘거대한 체스판’ 등/논문 ‘제국정치학과 국제정치학:한국적 국제정치학의 모색’‘남북한 관계에 대한 문명론적 조망’ 등. 신연숙기자 yshin@
  • [기고] 문화국가와 인문학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에 쓴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부력도 아니요,경제력도 아니다.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이 마음만 발달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그러면서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사랑과 평화의 문화가 꽃피는‘문화국가’가 되기를 소망하였다.21세기를 흔히 ‘문화의 시대’라 한다.그렇다면 이 글은 오히려 오늘에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국가’란 무엇인가.그것은 인문학이 꽃피는 국가를 말한다.인문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한 개인이 가족·사회,지역공동체와 어울려 사는 길을 가르쳐 주고,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는 방법,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그뿐만 아니다.오늘날에는 문화산업에 필요한 각종 응용콘텐츠의 기초콘텐츠를 마련하는 일도인문학의 몫이 되고 있다.영화,애니메이션,관광 등 문화산업은 인문학의 기초 없이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의 인문학은 오늘날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각 대학의 학부제 실시 이후 인문학은 학생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분야가 되었다.인문학 대학원도 텅 비어가고 있다.인문학 박사학위 소지자 수만 명이 사실상 반실업상태에 놓여있는데 누가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겠는가.이미 인문학은 학문후속세대가 단절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인문학 교육만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니다.인문학 연구도 위기상황이다.2001년도 학술진흥재단의 ‘인문학육성지원사업’ 예산은 겨우 40억원이었다.다른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인문학 지원을 다 합쳐도 겨우 100억원을 넘는 수준이었다.이는 2000년도 산업과 과학기술 부문의 연구개발비가 약 13조원에 달한 것과 너무나 대비된다. 인문학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인문학 지원’을 정부에 요구해왔다.최근에는 정부도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모처럼 ‘인문학 육성계획’을마련하였다. 이 계획은 각 대학 인문학연구소의 인문학 박사 등 연구인력 채용,인문학 대학원생 지원,한국학·향토문화·외국지역문화연구 지원사업,동서양 고전번역,인문학 저서 출판지원사업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정부는 일부 기초과학 지원까지 포함하여 매년 1,000억원씩,3년간 3,000억원을 기초학문에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대로만 실행된다면 인문학은 어느 정도 위기를 모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산 지원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제도 상의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법학·경영학·언론학·사범계 등을 전문대학원으로 옮기는 일이다.학생들은 학부에서기초학문을,전문대학원에서 응용학문을 공부할 수 있도록제도를 고쳐야 한다.조선 왕조는 건국 이후 반세기도 채안되어 민족문화를 활짝 꽃피운 세종대왕기를 맞이했다.그것은 건국 이후 수십 년 동안 인문학 진흥에 온 힘을 쏟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새해는 김구 선생이 소망하던 선진문화국가로 가기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박 찬 승 충남대교수·국사학
  • 고재득 성동구청장 수필집 발간

    최근 문단에 데뷔한 고재득(高在得) 성동구청장이 수필집을 발간했다. ‘시작의 두려움을 넘어서’란 제목의 이 수필집은 모두4장 220쪽 분량으로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사회현상에 대한 생각들이 잘 정리돼 있다. 제1장 ‘화장 안하는 아내’편에는 고 구청장의 가족에대한 사랑과 생활속의 경험담이 쉽고 간결한 필체로 그려져 있다. 제2장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에는 사회현상에 대한저자의 생각을 예를들어 정리했고 3·4장은 구청장으로서겪은 행정에 대한 입장을 진솔하게 드러냈다. 고 구청장은 세계시인협회 고문,세계 시낭송클럽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월간 문학세계 수필부문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문의 2290-7410. 이동구기자
  • 지식인의 ‘변질’ 혹독한 비판

    △ 지식인의 종말(드브레 지음/예문출판사 펴냄). 지난해 12월초부터 프랑스 지성계에는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 레지 드브레가 ‘프랑스지식인=진보’라는 등식에 죽음을 선포하면서 좌·우파를막론,현대의 프랑스 지식인을 싸잡아 혹독하게 비판한게발단이었다.그가 당시 지식인을 향해 읊은 조문 ‘지식인의 종말’(원제 Intellectuel Francais suite et fin:프랑스 지식인 연속과 종말)이 예문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프랑스의 지식인상을 묘사한다.큰 얼개는 1898년 드레퓌스 사건으로 떠오른 ‘처음의 지식인’이 시간이지날수록 타락하다가 20세기말 종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드브레는 지식인의 유형을 몇가지로 제시한다.지식인의자세에 충실했던 ‘최초의 지식인’,그리고 그가 조롱하는 ‘최후의 지식인’을 가장 빼닮은 현대의 ‘프랑스 지식인’ 등이다.저자의 눈을 빌자면 최후의 지식인은 프랑스언론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로 유명한 에밀 졸라로 대변되는 1900년대 ‘최초의 지식인’은용기와 이성으로 무장한채 앙가주망(사회참여)운동을 주도했고 이 흐름은 사르트르에서 정점에 이른다.그러다 지식인들이 ‘정치적 바이러스’에 걸려 ‘최후의 지식인’으로 변질됐으며 그 뒤에는 미디어 권력과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드브레가 그리는 ‘최후의 지식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대중·민중과 떨어진 채 집단 자폐증에 걸려있거나,텔레비전에 얼굴 비치느라 공부를 못한 탓에 현실감 상실증에도 시달리고 있다.또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회를 선도한다고 착각하는 도덕적 자아도취증,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못하는 만성적 예측불능증,매스컴의 주문에 따라 그럴듯한 말만 남발하는 순간적 임기응변증에 신음하고 있다. 현대의 프랑스 지식인을 꼬집는 저자의 입은 매섭다.책이 나온 뒤 드브레가 잇단 인터뷰에서 “텔레비전에 얼굴이나 비치려하고 사인회나 여는 스타주의에 빠져 공부하는것을 잊었다”며 날이 곧추 선 말을 잇따라 터뜨리자 앙리 레비나 솔레스 등 구체적 이름이 도마에 오른 지식인들이 반박하면서 전장(戰場)이 확대되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텔레비전에 대하여’에서 시도한 지식인 비판을 연상케 하는 드브레의 문제 제기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상을 되돌아 보는데도 좋은 거울이 될 것으로 보인다.1만3,000원. ▲레지 드브레는=1940년생으로 프랑스의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를 나온 수재.쿠바로 건너가 체 게바라의 게릴라부대에 합류하여 혁명활동을 하다가 1967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돼 30년형을 언도받았다가 드골 정부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되었다.체 게바라,카스트로와 친했고 소르본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매개학’ 논문으로 박사학위를받고 리옹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국내에 ‘혁명 중의 혁명’(석탑),‘불타는 설원’(한마당)‘이미지의 삶과 죽음’(시각과언어) 등이 번역 소개됐다. 이종수기자 vielee@
  • 문화콘텐츠 발전위한 예술과 인문학 역할 세미나

    문화산업 논리가 팽배한 현 문화계의 흐름에서 예술과 인문학의 자리는 어디쯤 될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서병문)이 10일 오후2시 서울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갖는 세미나는 이런 물음에대한 해답찾기다.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을 위한 예술과인문학의 역할’을 모토로 3개의 작은 주제로 토론한다. 제1주제 ‘순수예술과 인문학의 경제적 가치’에서는 최혜실 KAIST교수 등 3명이 토론자로 나선다.제2주제는 원구식 월간 현대시 주간 등이 나와 ‘예술과 산업의 소통,그현실과 과제’를 놓고 견해를 밝힌다.제3주제는 ‘문화콘텐츠산업의 새로운 방향’으로 심상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등 3명이 참가해 토론을 벌인다. 서병문 원장은 “문화예술 분야의 산업화가 주된 이슈로떠오르면서 문화콘텐츠산업의 샘물인 예술과 인문학이 상대적으로 움츠려들고 있다”며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예술과 인문학이 뿜어내는 창조력과 상상력,문화적 원형이문화산업의 뿌리임을 재확인하고 이를 관련 정책에 반영할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세미나주관 의도를 설명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치즈와 구더기- 진즈부르크 지음 / 김정하·유제분 옮김

    역사인가,문학인가.한편의 학술연구서인가,장황한 소설인가.16세기 이탈리아의 한 방앗간 주인 이야기를 쓴 ‘치즈와 구더기’는 기존의 역사연구 방법론이나 서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이하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한 ‘역사책’이다. 역사학자인 이탈리아인 저자(미 UCLA대 교수)는 주인공메노키오가 이단혐의로 피소돼 화형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사고를 마치 추리소설을 쓰듯 생생한 필치로 재현한다. 메노키오는 이탈리아 동북부 프리올라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마을 촌장의 직책도 맡은 바있는 인물이다. 메노키오는 중세 사회에서 이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자신의 생각들을 마을에서 이야기 하고 다니다 밀고된다. 그는 예수의 신성과 마리아의 처녀성,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이 실천적이고 교육적인역할을 하지 않고 직책을 남용해 가난한 농민을 착취한다고 비난한다. 그는 천지창조설도 믿지 않고 우주생성론을 주장한다.그에 따르면 태초의 모든 것은 흙,공기,물,그리고 불이 섞여있는 혼돈이었다.이 혼돈으로부터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만들어지듯 물질 덩어리가 형성되어 구더기가 나타났는데이 구더기가 천사이며 이 천사중에 신도 있었다.그 중 한천사가 절대선인 하느님과 동등해지려고 하자 하느님은 그를 하늘에서 추방하였고 하느님은 추방된 천사를 대신하여 아담과 이브,그리고 많은 수의 사람들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메노키오는 세 차례나 피소되면서도 이같은 생각을 굽히지 않아 결국 1599년 68세의 나이로 화형에 처해진다. 저자가 메노키오를 통해서 추적하려 한 것은 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이 과정에서저자는 메노키오가 읽었을 여러 책들에 영향을 받은 것도아니고 당시 일부 진보주의자들에게 퍼져있던 루터파의 사고를 받아들인것도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결론적으로 메노키오의 독자적 사고방식은 지금까지의 역사학이 소홀히 여겨온 민중문화의 전통에서 나왔다는 것이다.나아가 저자는 항상 상위문화가 하위문화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위문화도 상위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역사에참여했음을 종교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평범한 개인에게서 특정역사 기간에 존재한 사회계층의 특징을 추적해 낼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1976년 출간된 이 책에서 구체화됐으며 이 책은 곧 ‘미시사’라는새로운 학문분야의 장을 열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이 책에 관한 연구와 언급은 많았지만정식 번역은 이번이 처음이다.이탈리아와 미국문학을 전공한 역자들은 일본어판까지 대조해 가며 정확성에 심혈을기울였다고 한다. 저자 특유의 상상력과 방대한 인문학적 탐색,맛깔스런 문체로 씌어져 역사연구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는 미시사의 미덕을 흠뻑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책이라 할 수 있다.1만5,000원. 신연숙기자 yshin@
  • 韓·佛 공동학위 박사 탄생

    한국과 프랑스의 대학에서 동시에 박사학위를 받은 공동학위 박사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지난달 23일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 논문이 통과된신항수씨(35)는 5일 프랑스 파리 7대학의 논문심사위원회에서 박사 논문이 통과돼 한국과 프랑스에서 같은 논문으로 동시에 박사 학위를 받은 첫 주인공이 됐다. 논문 제목은 ‘이익(李瀷)의 경사(經史) 연구와 정치인식’.고려대는 문학박사,파리 7대학은 동양학박사를 줄 예정이다. 한국학을 전공했으면서 프랑스 대학의 공동 학위를 받은이유에 대해 신씨는 “프랑스의 인문학 전통이 한국 역사를 더 폭넓은 시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비전 21세기 ‘우리 캠퍼스’] 동국대

    전통과 첨단 과학을 조화시켜 세계에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고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떨치고 있는 대학,바로 동국대다. 동국대는 1906년 불교계 선각자들이 만든 ‘명진학교’가모태다.그 뒤 여러 과정을 거쳐 1946년 4년제 동국대로 새출발했다.동국대는 전통적으로 인문학과 정치행정학 분야가강해 문학가와 정치인을 많이 배출했다. 대학의 발전 방향을 새로 잡은 때가 1994년이었다.‘과학동국’‘의학 동국’으로 변신한다는 목표로 교육과정을 전반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했다.기존 인문학의 전통 위에 과학을 접목한 21세기형 첨단과학·정보 종합대학이 동국대가지향하는 대학상이다. 이제 그 결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 공과대학 교육 평가기관인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이 수여하는 공학교육 인증서를 받은 국내 최초의 대학이 됐다. 인증을 받은 전공 프로그램은 건축공학,기계공학,산업공학,전기공학,전자공학,정보통신공학,토목공학,화학공학의 8개전공. 실질적으로 동국대 공과계열의 거의 모든 전공이 교육 내용과 질에 있어서첨단 미래 사회가 요청하는 교육을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99년에는 ‘기초과학연구센터’와 ‘공학연구센터’가 우수 연구센터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10년간 180억을 지원받아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대학 정보화의 성과와 노하우를 대학원 과정까지 연계한 ‘영상정보통신 대학원’을 신설,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과학 동국’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인술을 통한 자비의 실천’이라는 취지 아래 병원 개원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3년 경주한방병원을 개원한 뒤 포항병원과 경주병원을개원하고 연이어 수도권에 분당한방병원과 강남한방병원을문여는 등 단기간에 2개의 대형 양방병원과 3개의 한방병원을 개원,운영하며 지역 사회의 복지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의학 동국’의 큰 틀을 완성시킬 결정판은 경기도 일산에 내년 12월에 개원할 ‘수도권 종합병원’.연면적 2만7,000여평에 지하 2층,지상 12층 규모에 1,000병상을 갖춘 양·한방 종합병원이다.한방과 양방의진료 비율은 2대 8 정도이며 성인병과 노인병 전문크리닉,종합건강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동국대는 100%의 취업률을 달성하기 위해 실력이 검증된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참사람 인증제’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졸업 예정자 가운데 희망자를 선발해 별도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와 직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인성교육과기능교육을 시킨 뒤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학생에게 인증서를 줘 졸업생의 실력을 대학이 보증하는 제도다. 인증서를 받으려면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40시간이상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하며 토익 800점 이상을 받아야하고,컴퓨터 교육원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이 인증제를 거친 학생들은 실제로 100%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동국대는 이와함께 재학생들의 이력서를 CD롬에 담아 1,000여개 기업체에 보내 홍보하는 등 첨단화된 데이터베이스를활용,학생들과 기업을 연결시켜 주고 취업을 돕고 있다. 동국대는 ‘세계속의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학문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데도 열성을 쏟고있다. 도서관·박물관·기초과학센터·외국어교육원·컴퓨터 교육원 등 첨단 시설을 구비한 부속기관과 불교문화연구원,사회과학연구원,한국문학연구소 등 연구기관,그리고 부속병원등 다양하고 풍부한 연구기관들은 학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학문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서울캠퍼스와 경주캠퍼스,미국 LA캠퍼스,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일산 자연과학대학 캠퍼스에 이르기까지 동국대의 캠퍼스와 부속기관은 국내와 외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구축해 세계화로 뻗어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고 있다. 지식과 인간성을 동시에 갖춘 ‘테크노 휴머니즘’.동국대가 지향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한준규기자 hihi@. ■동국대 이색학과 ‘E-비지니스 학과’. 21세기의 화두는 인터넷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대학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없다. 동국대에서는 지난해 경영정보학부에 e-비즈니스학과를신설,학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현재 1·2학년 각8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미래의 기업 경영에 있어서핵심적인 역할을 맡게될 e-비즈니스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동국대는 2년 뒤 1회 졸업생이 배출되면 기업체 정보전산실,정보시스템 개발분야,정보통신(IT) 컨설팅 분야 등으로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생들은 경영정보학 개론,디지털 콘텐츠 제작,웹기반 시스템 디자인,비즈니스 프로그램밍,정보 조사분석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과정을 배우고 있다. 콘텐츠 제작과 디자인 수업시간에는 거의 실습을 한다.커리큘럼은 미국과 유럽 등 앞선 외국 대학들을 철저하게 벤치마킹을 했고 국내 정보통신 분야 업체들의 기술 동향과조언을 상당 부분 참조하고 있다. 교수진도 화려하다.정교수 6명 가운데 4명은 해외 IT연구분야에서 상당한 경험을 쌓았고 연구 실적도 많은 사람들이다.나머지 교수 2명도 국내 IT업체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사람을 초빙했다. 한준규기자. ■신재호 교무처장 “인간미·기초실력 갖춘 학생”. “인간미와 기초 실력을 갖춘 학생을 뽑을 것입니다.” 동국대 신재호(申宰浩·50) 교무처장은 ‘동국대가 원하는신입생’의 두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면접의 평가기준도 여기에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나’군에서 실시하는 면접은 1명당 6∼10분에 걸쳐 진행된다.우선 인문,사회,자연,공학계열로 나눠 전공의 기초를묻는다.다음은 수험생이 제출한 추천서,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한다.두 영역은 반반씩 점수로 반영된다.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자체는 점수화되지 않는다.글씨나 분량,문법 등에 관계 없이 기본 양식에 맞춰 쓰면 된다.하지만 면접의 기본자료로 쓰이기 때문에,면접에 들어가기 전서류의 내용으로 기출문제를 만들어 대답하는 연습을 하는것이 도움이 된다. 인간 됨됨이가 중요한 평가기준인 만큼 면접 때 예의바른태도는 기본이다.노크를 하고 들어간 후 면접관에게 간단한인사를 한다. 모자를 쓰거나 껌을 씹는 것은 금물.핸드폰을끄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르는 질문을 받았더라도 끝까지 성실하게 답변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대기시간에는지루하지 않도록 중강당에서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논술의 소재는 고전에 한정되지 않는다.사고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면서 구체적인 예를 들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영어지문은나오지 않는다. 문법이나 원고지 쓰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않아도 된다.정해진 원고 분량의 10%를 넘으면 부정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탈락하는 수도 있다. 김소연기자. ■입시 전형 일정. 동국대는 오는 13일까지 정시모집의 원서를 교부한다.접수는 11일∼13일이다.연극전공 실기자를 제외한 ‘가’군과‘다’군의 일반전형에서는 인터넷 접수도 가능하다(www.applybank.com).인터넷 접수는 12일까지다. 서울캠퍼스의 모든 과는 ‘나’군에 속해 있지만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가’군과 ‘다’군에서도 많은 학생을뽑는다.서울캠퍼스 기준으로 ‘가’군에서는 총 308명,‘나’군은 1,296명,‘다’군은 483명을 선발한다.‘다’군의경주캠퍼스에서는 내신(40%)과 수능(60%)을 반영한다. 수능성적은 변환표준점수 총점(제2외국어 제외)을 적용하며 모집단위별 가중치는 두지 않는다.이과·공과대학과 수학교육과를 제외하고는 교차지원도 가능하다.교차지원에 따른 가감점이나 모집인원 비율은 따지지 않는다. ‘나’군은 인문계의 경우 내신(40%),수능(55%),논술(3%),면접(2%)으로,자연계는 내신(40%),수능(57%),면접(3%)으로선발한다.논술과 면접고사는 내년 1월 8∼9일에 치른다.예·체능계 실기고사는 내년 1월 8∼12일에 실시한다. ‘지방방문전형’은 동국대 정시만의 특징.부산,대구,광주,전주,제주,강릉,대전 등 7개 도시에서 같은 기간에 시험을 치른다.각 도시별로 5∼7명의 교수가 직접 찾아가 지방 수험생들이 서울까지 와야하는 수고를 덜어준다.단 예·체능계열은 실기고사 관계로 지방방문전형에 응시할 수 없다. 김소연기자 purple@
  •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 을 주고 받다/ 휴머니스트 펴냄

    지난 5월8일 간판을 올린 휴머니스트 출판사가 건장한 첫 아이를 낳았다.‘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라는 약간 긴 제목의 책이 눈길을 확 끄는 것은 생산적 논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은 서양철학자 김용석 전 그레고리안대학 교수와 동양철학자 이승환 고려대 교수가 127일 동안 주고 받은 대담을 정밀묘사한 것이다.30여 시간의 대담,개별 인터뷰 8시간,다섯 달 동안 주고 받은 이메일 210여 통 등을 정리했다. 의례적인 인사 뒤 새벽2시 술자리까지 이어진 첫 만남부터 상대를 존중하려는 배려,날세운 이견 대립 등이 살아있다.또 대담 분위기를 잘 살린 사진을 적절히 배치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준다. 첫 대면부터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먼저 철학이란 거대한 세계에 몸 담은 배경,유학 경험 등 가벼운 문답을 주고 받으며 긴장을 푼 뒤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태와 그로 인한 ‘인문학의 위기’ 등을 함께 우려하면서 대화의 속도가 빨라진다. 이 공감대는 최근 불고 있는 ‘동양 사상’ 붐으로 이어진다.동양사상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을 이 교수가 “‘도구적 합리성’만 판치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자 김용석씨는 “어쩌면 자본활동의 논리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거들며 논의를 풍성하게 한다. ‘의도한 만남’이라해서 매번 의견이 일치한 것은 아니다.서양철학의 특성을 질문받은 김씨가 애지(愛知),형이상학과 과학의 밀접성,상식 뒤집기로서의 패러독스 등으로답하자 이 교수의 반격이 시작된다.동양철학도 그런 특성이 많다는 것.이에 김씨는 ‘특성’이 배타적 의미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반론,논쟁의 불씨를 지핀다.그간 온축된 학문의 곳간통은 한번 빗장이 풀리자 서구 중심주의,근대성 등을 주제로 곡식낟알을 끝없이 쏟아냈다. 책 뒤에 딸린,두 철학자가 주고 받은 장문의 편지는 그동안의 과정이 실감나게 담겨있다.서로의 소감을 주고 받으면서 “10년 뒤에 다시 만나 이런 토론을 벌이자”는 유쾌한 제의로 끝맺는다. 두 철학자의 대화는 동서양 철학,나아가 그것을 ‘먹고사는’ 두 지성의 세계가 만날 수 있는 점과 없는 지점을동시에 보여준다.또 출판사가 기획한 것이라 ‘점잖은 진행’이라는 테두리가 있지만 우리 논쟁 문화를 되돌아 보게 한다.시비를 걸려고 작정한 글은 예외로 하더라도 학문 방법론 차이에 대한 논쟁에서조차 서로를 보듬어 안는 자세가 부족한 현실을 테메우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지성들이 벌이는 감성 커뮤니케이션’을 내건 이번 기획은 인문학과 자연과학(도정일 경희대교수-최재천 서울대교수),한·일 역사학자(임지현 한양대교수-사카이 나오키미 코넬대교수)의 만남으로 이어진다.1만3,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공무원 Life & Culture] 국사편찬위 박한남 연구관

    “승정원일기는 우리에게도 오래 전부터 기록문화가 중시됐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기록물입니다.승정원일기를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귀중한 사료의 활용가치를 높이고,우리의 높은 역사·문화콘텐츠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됩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 편사연구관 박한남(朴漢男) 박사(44·4급)는 요즘 사학자로서 공무원의 길을 택하기를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하곤한다.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기록물이자,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장에서 쓰여진 통치기록물인승정원일기의 전산화 작업이 국고지원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 제303호로 지난 6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지정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이 매일 작성한 기록물.조선 개국 초부터 작성됐으나 일부가 화재와 전쟁 등으로 소실돼 현재는 1623년(인조 1년) 3월∼1910년(순종 4년) 8월까지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분량은 총 3,245책,2억4,250만자로 총 888책,5,400만자로구성된 조선왕조실록의 5배에 달한다. 상당한 정도의 한문해독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매일 8시간씩 읽는다고 가정했을때 전체를 읽는데 26년이 걸릴 만큼방대한 사료다. 승정원일기 정보화사업은 총 100억원을 투입,올해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승정원일기 전문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한문으로 된 고전을 한글세대와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쉼표·마침표·가운뎃점·의문부호 등 문장부호를 표시하고,초서체인 원전을 알기 쉬운 해서체로 바꾸며,사건별로 핵심내용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원년부터 철종 14년까지 472년간의역사기록물인데 비해 승정원일기는 조선후기 288년간의 기록에 그치고 있지만 왕실 의례와 정치·경제·외교 등 주요 정책결정과정,관리들의 출퇴근 및 인사이동,매일의 날씨,별자리 등 천문기록도 담겨 있는 승정원일기의 사료적가치는 실록의 그것과 비교할 바 아니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실록은 선왕 사후에 설치된 실록청에서 작성하기 때문에 곡필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승정원일기는왕의 최측근에서 왕실의 모든 일들을 기록한 것이어서 사실성과 객관성이 실록과 비교할 수 없다”면서 “디지털사업이 완료되면 조선후기 역사뿐 아니라 인문학·천문학 등 인접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박사는 “한문코드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서로쓰인 것을 영인본과 대조하며 해석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마치 그 시대 왕궁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생생함과 사료로서의 매력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게 된다”며 밝게 웃었다. 함혜리기자 lotus@
  • 한림대서 인문학적 반성 세미나/ 남성의 몸 억압자의 몸인가?

    90년대 이후 우리 학계와 사회에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 ‘몸’.‘몸’담론이 모색했던 우리들의 욕망과 육체의 해방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일까. 한림대 인문학연구소(소장 김재환)는 지난 16일 ‘남성의몸에 대한 인문학적 반성’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열어 ‘몸’담론의 오늘을 점검했다.여성의 몸 위주로 전개돼 온 ‘몸’담론에 대한 문제점 제기,IMF환란 이후 나타난 ‘몸’담론의 변화에 대한 분석은 의미있는 성과로 받아들일 만하다. ◆ ‘몸’담론의 역사=육체는 오랜 기간동안 오해,폄하,극복의 대상이었다.이성중심주의의 근대철학 이후 육체는 담론의 객체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정치 이론에서도 육체는 주체이기는 커녕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기호학,페미니즘의 등장과 더불어 획기적 변화가 생겼다.이때부터 육체는 자연적 공간보다 문화적 공간의 의미가 더 커졌다.신체에 부여된 여러 가치들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권력구조의 일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임신,낙태,포르노,몸매가꾸기 등의 현상에서 권력과 자본의 가차없는 힘이 읽혀지기에 이르렀다.한국에서 ‘몸’은 90년대 초반 정치적 의식화 운동의 급속한 퇴조와 함께 비로소 자율적인 향유의 주체로서 전면에 부상했다. ◆남성의 육체는 무엇을 보여주는가=세미나에서 송승철 한림대 영문과 교수는 남성의 몸은 가부장적 시선과 동일시되거나 억압자의 몸이었으나 자본의 예속에 의해 점차 식민화하고 있다는 말로 논의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소비자본주의는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을 과거의 ‘인격과 교양’에서 ‘개성’으로 바꾼다.개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품의 소비를 통해 의식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이제 보기 좋은 육체는 건강의조건이라기 보다 사회적 성공과 자아실현의 지표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중산층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노동자의 몸은 여전히 생산기계로서의 몸이며 기업은 이제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정신노동조차도 관리를 위해 규격화함으로써 육체노동으로 전화하고 있다.여기 이 지점에서 남성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근주의적 지배의 실질적인 피해자이다.송 교수는 최근 군필자 가산점 논쟁은 약자끼리 주고받은 쓸모없는 소모전에 불과했다고 말한다.여성들은 군필자 남성들의 몸의 억압문제를 가볍게 보았으며 남성들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이 보상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는 것이다.송 교수는 이 사례를 남성의 몸에 대한 정치한 분석이 있어야 하는 이유로 꼽고 남성과 여성의 연대가능성을 암시한다. ◆ 몸의 문화정치학을 위한 시론=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IMF환란 이후 육체적 욕망 및 담론과 실제적현실 사이에 괴리가 확대,‘몸’담론에 균열이 발생하기시작했다며 이에 대한 대안모색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대중의 육체를 기계적인 노동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하는 대신 몸의 성적 쾌락을 상품패키지의 형식으로 소비하도록 부추긴다.그러나 IMF 이후 경제적 조건의 악화는 욕망과 현실을 분리시키고 일하는 몸과 향유하는 몸 사이의 모순을 확대시켜 왔다는 것. 그러면 대중에게 절제와 금욕을 요구할 것인가.심 원장은이것은 극히 비현실적인 처방이라면서 욕구를 보다 많이충족시키도록 하되 상품미학의 모델에 흡수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이를 위해서 정신과 육체를 대칭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정신을 육체에 잠재된 부분적인 한 기능으로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것. 즉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육체가 아니라 인식,감각,정서,행위의 원천으로서 육체를 작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이때개인의 특이성과 차이들이 활성화되며 이 차이를 통한 공존과 배려의 관계만이 인간을 상품화하는 ‘몸’의 기호화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연숙기자 y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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