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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가 안보에 종속돼선 안 된다…北에도 국제사회 역할 줘야”

    “평화가 안보에 종속돼선 안 된다…北에도 국제사회 역할 줘야”

     1990년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는 노학자가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76)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평화가 안보에 종속되면 안 된다”며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내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통일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민족동질성 회복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언젠가 서울과 평양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내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오바마 정부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나 자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열정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지만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빵점이다. 쿠바와 수교한 것처럼 북미관계를 해결해야 하는데 미국을 알려면 군산복합체를 알아야 한다. 군산복합체가 미국을 지배한다. 돈이 미국을 움직이고 그 돈은 총칼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이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Korean conflict’라고 할 뿐 ‘War’란 표현 자체를 금기시했다. 북한은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거기다 군산복합체로서는 북한이 무기 팔아먹기에 딱 좋은 알리바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게 쉽지 않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역사에 남는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북미관계개선이라는 점이다. 나로서는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대신 북한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를 하기를 바란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차원의 비핵화를 주창한다. 그걸 위해서는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북한 등이 동참해야 한다. 북한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북한이 자존심을 세우면서 국제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 그걸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게 해야 한다.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어느 정도 양보를 할 수 있다고 보나. -내가 보기에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이루기 위한 상당한 준비가 돼 있다. 상당한 댓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핵포기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다. 핵포기라는 건 말 그대로 모든 ‘핵’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다시 핵을 시작하면 몇 달만에 지금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 기술자들도 다 있고 원료도 있다. 핵 무기를 만들겠다는 정신무장도 철저하다. 최근 수소 폭탄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북한을 관찰한 걸로 보자면 빈말은 빈말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전략적 인내’는 완벽한 실패작인 셈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걸로 본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생각틀에서 나온게 ‘전략적 인내’다. 북한은 내가 보기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도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굶어서 망하는게 아니다. 정통성이 없어야 망한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에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종교적 성격도 있다. 김일성 주체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끊임없이 찬송가를 만들어내는 체제다. 끊임없이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 환상이 공고하다. 환상 속에서 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고 믿지 않나. 그렇다곤 하더라도, 북한도 현재 경제성장에 목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념적으로 투철해도 배고프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어떻게 하든지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 평양을 가보면 시장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안된다. 평양을 갈 때마다 모란봉을 자주 찾는데 몇 년전에 처음으로 입장료를 내라고 하더라. 시에서 공원 관리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입장료를 내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내야 한다고 단순하게 시장경제 활성화라고 속단하면 안된다. 현재 북한의 변화 흐름은 국가정책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 -통일을 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목적이 좋으니까. 문제는 목표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다. 그게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게 부족하다. 목표설정은 있는데 방법론이 없다.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김씨 왕정을 하고 있다는게 북한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없으면 평화통일이 안된다. 전제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와도 잘 지내지 않나.  →8월 남북 당국간 판문점 합의가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이 일어날 뻔한 엄중한 상황이었다. 평양은 끝까지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서울에서 유감을 사과로 인정하는걸로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전쟁이 날 수도 있었다. 북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북에서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판정패했다. 북한은 과거 미국 시민권자 2명 밀입국 문제에 대해 미국에 사과를 요구했다. 내가 북한 요구를 힐러리 클린던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결국 클린턴 장관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른바 ‘햇볕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다르다. 북한에선 햇볕정책이 북한식 사회주의 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게 하려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건 일리가 있다. 햇볕을 쬔다고 북한이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북중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에게 북한은 사회주의 혈맹이다. 중국은 결코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국가로 군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지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국가가 된다고 해서 중국에 안보위협이 될 리는 없다. 중국은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의지가 크지 않다. 중국이 내세우는 ‘중국식 사회주의’는 시대에 따라 맥락이 차이가 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에 방점이 있었다면 시진핑 체제에서는 사실상 ‘유교식 사회주의’다. 유교식이란 걸 북중관계에서 대입해보면 외교정책에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평화학자로서 생각하는 통일의 원칙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민족동질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얘길 한다. 내 경험상 민족동질성 회복은 불가능한 목표다. 그런 식으로는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회복해야 할 동질성이란게 도대체 무엇인가.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두번째로, 평화를 안보라는 문법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평화정책이 안보정책에 종속되면 안된다. 평화는 지배가 아니라 조화다. 지배하려고 하면 분쟁과 갈등이 생긴다. 지배를 통해 평화를 이룬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다. 더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북은 과연 반드시 통일해야 할까? 통일을 하지 않더라도 갈등과 대립없이 ‘이웃’으로서 각자 잘 살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금 남북관계는 바둑으로 치면 정석이 아니라 줄바둑이라고 할 수 있다. 포석이 없다. 그나마 북한은 수십년간 남북관계만 다루는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유단자다. 그에 비해 한국은 바둑 두는 선수가 해마다 바뀐다. 실력이 늘 수가 없다.  →김정은은 만나 봤나. 북한을 방문하면 누구를 주로 만나나.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자리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다음 방문에는 김정은을 만나 보길 희망한다.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는 북한을 찾을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눈다.(김양건 비서는 최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은퇴식을 했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다. 미국에 온지 50년이 됐다. 올해 4월엔 금혼식을 했다. 며칠 전에는 은퇴식도 했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가 평화학이었다. 강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반도 문제를 집념을 갖고 연구해왔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방문을 해서 계속 북한을 관찰했다. 통계로는 눈에 안보이는게 눈에 보인다. 언젠가 내 경험과 고민을 한반도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 서울과 평양에 평화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 조지아주 애선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박한식 명예교수는 황장엽 초청으로 첫 방북…북한 50차례 넘게 다녀와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미국 내 손꼽히는 북한 학자로 미국 정부에 대북정책을 조언하는 등 북·미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십년간 북한을 오가며 신뢰를 쌓은 덕분에 북한을 50여 차례 다녀올 수 있었다. 박 교수의 북한과의 인연은 그의 강의를 듣던 학생에게서 시작됐다. 박 교수는 1971년 조지아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임용됐는데 그가 가르친 학생 한 명이 알고 보니 당시 지미 카터 조지아 주지사와 해군사관학교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절친한 친구였다. 박 교수는 그 즈음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다룬 논문을 썼고 마침 그 문제를 고민하던 카터 주지사와 만나게 됐다. 카터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79년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을 만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덩샤오핑에게 자신이 하얼빈에서 태어났으며 지금도 그곳에 친척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덩샤오핑이 박 교수를 초청해 1981년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스무 시간도 넘게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에 내렸더니 큰 현수막이 걸려 있고 군악대가 연주를 해 줘요. 덩샤오핑 초청이라고 칙사 대접을 해 준 겁니다.” 주체사상을 연구해야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황장엽에게 편지를 썼고 중국이 다리를 놔 줬다. 중국 방문길에 황장엽의 초청으로 북한도 방문해서 2주간 체류했다. 이후 1990년부터 1996년까지는 황장엽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1997년 황장엽이 탈북한 이후로도 북한과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50차례도 넘게 북한을 방문하며 쌓은 현장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관계, 북·미 관계 개선에 노력해 왔다. 박 교수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평양에서 살다가 이후 서울로 넘어왔다. 그는 “어린 시절 국공내전을 겪었다. 총알이 모자라 낫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걸 목격했다”면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철학과 평화학을 연구해 온 박 교수는 2015년을 끝으로 44년간 재직한 학교에서 퇴임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길미 “연애? 쉬는 기간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 만날 일 적어 기회가 없었다”

    길미 “연애? 쉬는 기간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 만날 일 적어 기회가 없었다”

    길미가 어떠한 가수인지 설명하고 싶어도 쉽사리 한 문장으로는 그 설명이 마무리 지어지지 않는다. 길미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음악처럼 그의 모습은 뚜렷한 한 가지의 색으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려는 음악의 색이 다양한 것은 비단 그가 음악을 시작한 시간이 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꿈꾸는 가수로서 스스로의 모습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많은 것을 이뤄내는 것이고 19살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지만 지팡이를 짚는 노인이 되어서도 음악을 하고 싶은 그런 가수일 뿐이었다. 긴 시간 동안 음악에 대해 늘 고민하고 음악을 대함에 있어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그와 함께한 대화는 길미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게 만들었고 그에 대한 더 많은 궁금증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길미와 bnt가 함께한 화보는 스타일난다, 츄, 레미떼, KKXX, 아키클래식 등으로 구성된 총 네 가지의 콘셉트로 진행됐다. 첫 번째 콘셉트는 약간은 우울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드러내 감각적인 의상을 함께 매치했다. 두 번째 콘셉트는 길미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글래머러스한 원피스와 퍼로 평범치 않은 그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세 번째 콘셉트는 루즈하면서 초점을 잃은 듯한 무드로 동적인 동작과 함께 자유로운 무드를 선보였다. 네 번째 콘셉트는 여성스럽지만 러프한 느낌이 묻어나는 콘셉트로 스포티하면서도 감각적인 의상으로 마무리됐다. 화보 촬영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화제가 되었던 ‘언프리티 랩스타2’ 출연에 대해 “부담감이 많은 상태에서 시작해 압박감이 정말 많았다”며 “오히려 출연 하고 난 후에는 잘하든 못하든 무엇인가를 깨부순듯한 느낌에 편안해졌다”며 그간의 고민과 해결에 대한 답을 전했다. ‘언프리티 랩스타2’의 출연진들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예지, 키디비, 수민과 자주 만난다”며 “친해질 줄 몰랐던 조합에 신기하다고 느낀다”는 대답을 전했다. 또한 방송상 편집에 대해서 “경쟁이기는 했지만 1회분을 촬영 할 때는 오히려 단합하고 협업하는 느낌이었다”며 “편집은 날선 느낌으로 표현됐지만 실제로는 달랐다”며 방송을 통해 보여준 모습에 대한 대답을 했다. 방송 출연이 적은 그가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이 있냐는 질문에는 “의외로 발이 넓어서 잘 친해지는 성격이다”라며 “배우부터 모델, 가수까지 19살부터 방송일을 하다보니 인맥이 넓어졌다”며 웃음으로 답을 전했다.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묻자 “아무리 미친 듯 몰두한 곡이라고 해도 지나가면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진상이라 느낄 정도로 세심하게 체크한다”며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열정을 보여줬다. 음악을 쓸 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래퍼보다는 가수 길미였기 때문에 래퍼라는 이름에 갇히고 싶지 않다”며 “오랫동안 음악을 하고 싶고 지팡이를 짚더라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대답을 전했다. 길미에게 음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묻자 그는 “음악을 하면서 매 순간이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굳은살로 남았다”며 “늘 돈을 벌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을 포기해야 하냐의 기로에 섰던 것을 잊을 수 없다”며 속내를 밝혔다. 힘들었던 순간에 그는 특히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 하지 않았다고 하며 “녹음하러 다니고 늘 바쁘게 움직이려 노력했다”는 답을 전했다. 그는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롤모델이 성장의 원동력이라 말하지만 사실 롤모델이 없다”며 “누군가를 따라가며 비교하고 자격지심을 가지는 것이 싫어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은지원과 미스터 타이푼이 함께하는 클로버에 대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고 모인 것이 클로버의 시작”이라며 “아직은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컴백은 미지수”라는 답을 전했다. 또한 길미의 가장 마지막 연애에 대해 묻자 “최근 1,2년간은 없었다”며 “늘 썸이라도 타고 쉬는 편이 아니었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적어져 기회가 없다”며 웃음을 전했다. 2016년 그의 새해 포부를 묻자 “병신년이라는 어감이 러프하지만 기운이 좋은 것 같다”며 “새로운 해에는 많은 것을 이뤄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오랜 시간 길미라는 가수에 대해 알았지만 그를 다시 보면 또 새로움이 보인다. 비단 그가 보여주는 음악적 변화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생각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만나면 결코 그를 전과 같은 길미로 보지 않을 것이다. 포기의 기로에서도 다시 음악을 선택한 길미의 열정이 그가 바라던 대로 언제까지고 음악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남길 바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년기획] “비핵화 전제 북미관계 개선… ‘김씨 왕정’이 北의 적나라한 모습”

    [신년기획] “비핵화 전제 북미관계 개선… ‘김씨 왕정’이 北의 적나라한 모습”

    1990년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는 노학자가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76)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평화가 안보에 종속되면 안 된다”며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내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통일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민족동질성 회복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언젠가 서울과 평양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내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나 자신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열정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지만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완전 낙제점이다. 쿠바와 수교한 것처럼 북·미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미국을 알려면 미국을 지배하는 군산복합체를 알아야 한다. 돈이 미국을 움직이고 그 돈은 총칼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이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한국전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 분쟁’(Korean conflict)이라고 할 뿐 ‘전쟁’(War)이란 표현 자체를 금기시했다.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이다. 군산복합체로서는 북한이 무기 팔아먹기에 딱 좋은 알리바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은 없나.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역사에 남는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북·미 관계 개선이다. 개인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대신 북한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를 하기를 바란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차원의 비핵화를 주창한다. 그걸 위해서는 북한이 동참해야 한다.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 내려면 북한이 자존심을 세우면서 국제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 그걸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게 해야 한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양보 가능성은. -내가 보기에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이루기 위해 상당한 준비가 돼 있다. 상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핵 포기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다. 핵 포기라는 건 말 그대로 모든 ‘핵’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다시 핵을 시작하면 몇 달 만에 지금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도 다 있고 원료도 있다.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정신무장도 철저하다. 최근 수소 폭탄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북한을 관찰한 걸로 보자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결국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작인 셈이다. →많은 이들은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걸로 보는데. -북한 붕괴론이라는 생각틀에서 나온 게 ‘전략적 인내’다. 북한은 내가 보기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도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굶어서 망하는 게 아니다. 정당성을 잃어야 망한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에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종교적 성격도 있다. 김일성 주체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환상’이 공고하다. 환상 속에서 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고 믿지 않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현재 경제성장에 목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념적으로 투철해도 배고프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어떻게 하든지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 평양을 가 보면 시장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안 된다. 평양을 갈 때마다 모란봉을 자주 찾는데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입장료를 내라고 하더라. 시에서 공원 관리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입장료를 내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내야 한다고 단순하게 시장경제 활성화라고 속단하면 안 된다. 현재 북한 내 변화의 흐름은 국가정책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는. -통일을 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목적이 좋으니까. 문제는 목표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다. 그게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게 부족하다. 목표 설정은 있는데 방법론이 없다.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김씨 왕정’을 하고 있다는 게 북한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없으면 평화통일이 안 된다. 전제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와도 잘 지내지 않나.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중국에 북한은 사회주의 혈맹이다. 중국은 결코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 국가로 군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지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 국가가 된다고 해서 중국에 안보 위협이 될 리는 없다. 중국은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의지가 크지 않다. →남북 간 이질성이 높아지는 걸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많은 분이 민족동질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식으로는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회복해야 할 동질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통일의 원칙은 무엇인가. -평화를 안보라는 문법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평화정책이 안보정책에 종속되면 안 된다. 평화는 지배가 아니라 조화다. 지배하려고 하면 분쟁과 갈등이 생긴다. 오히려 더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북은 과연 반드시 통일해야 할까? 통일을 하지 않더라도 갈등과 대립 없이 ‘이웃’으로서 각자 잘살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금 남북 관계는 바둑으로 치면 정석이 아니라 줄바둑이라고 할 수 있다. 포석이 없다. 그나마 북한은 수십년간 남북관계만 다루는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유단자다. 그에 비해 한국은 바둑 두는 선수가 해마다 바뀐다. 실력이 늘 수가 없다. →김정은은 만나 봤나. 북한을 방문하면 누구를 주로 만나나.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자리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다음 방문 때는 김정은을 만나 보길 희망한다.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는 북한을 찾을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눈다.(김양건 비서는 최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은퇴식을 했는데. -마지막 강의 주제가 평화학이었다. 강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방문을 해서 계속 북한을 관찰해 보니 통계로는 눈에 안 보이는 게 눈에 보인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내 경험과 고민을 서울과 평양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토론하고 싶다. 애선스(미 조지아 주) 글 사진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박한식 명예교수는 황장엽 초청으로 첫 방북…북한 50차례 넘게 다녀와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미국 내 손꼽히는 북한 학자로 미국 정부에 대북정책을 조언하는 등 북·미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십년간 북한을 오가며 신뢰를 쌓은 덕분에 북한을 50여 차례 다녀올 수 있었다. 박 교수의 북한과의 인연은 그의 강의를 듣던 학생에게서 시작됐다. 박 교수는 1971년 조지아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임용됐는데 그가 가르친 학생 한 명이 알고 보니 당시 지미 카터 조지아 주지사와 해군사관학교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절친한 친구였다. 박 교수는 그 즈음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다룬 논문을 썼고 마침 그 문제를 고민하던 카터 주지사와 만나게 됐다. 카터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979년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을 만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덩샤오핑에게 자신이 하얼빈에서 태어났으며 지금도 그곳에 친척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덩샤오핑이 박 교수를 초청해 1981년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스무 시간도 넘게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에 내렸더니 큰 현수막이 걸려 있고 군악대가 연주를 해 줘요. 덩샤오핑 초청이라고 칙사 대접을 해 준 겁니다.” 주체사상을 연구해야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황장엽에게 편지를 썼고 중국이 다리를 놔 줬다. 중국 방문길에 황장엽의 초청으로 북한도 방문해서 2주간 체류했다. 이후 1990년부터 1996년까지는 황장엽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1997년 황장엽이 탈북한 이후로도 북한과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50차례도 넘게 북한을 방문하며 쌓은 현장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관계, 북·미 관계 개선에 노력해 왔다. 박 교수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평양에서 살다가 이후 서울로 넘어왔다. 그는 “어린 시절 국공내전을 겪었다. 총알이 모자라 낫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걸 목격했다”면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철학과 평화학을 연구해 온 박 교수는 2015년을 끝으로 44년간 재직한 학교에서 퇴임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1등 홍보’ 빌의 외조 vs ‘1등 참모’ 제인의 내조

    ‘1등 홍보’ 빌의 외조 vs ‘1등 참모’ 제인의 내조

    “도와줘. 여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짓는 초반 경선인 아이오와주 전당대회(코커스·내년 2월 1일)와 뉴햄프셔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2월 9일)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힐러리 클린턴(왼쪽 작은 사진)과 버니 샌더스(오른쪽 작은 사진)가 배우자를 ‘소환’했다. 힐러리를 ‘외조’할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다음달 4일부터 본격적인 지원 유세에 들어간다. 샌더스의 부인 제인 샌더스 역시 남편의 광고, 메시지 등에 적극 개입하며 ‘내조’에 힘쓰고 있다. 지난 19일 워싱턴포스트(WP) 등이 실시한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힐러리(59%)가 버니(28%)보다 곱절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초기 경선 지역에서의 지지율 격차는 한 자릿수로 양쪽 캠프 모두 일전을 벼르고 있다. ●빌 클린턴 ‘정책·인맥’ 부분서 기회 창출 1993~2001년 대통령이던 빌은 힐러리에게 ‘후광’을 더하는 존재다. 단순히 유명한 정도를 넘어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정책과 인맥 측면에서 힐러리에게 수많은 기회를 창출해 주는 게 빌의 임무다. 본인의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줬던 훈남형 외모와 연설 능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급 선거운동원’이다. 반면 군중 속에 섞였을 때 전혀 도드라지지 않는 뚱뚱한 할머니의 외양을 지닌 제인은 ‘1등 참모’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 1988년 남편 샌더스와 재혼한 제인은 이후 샌더스가 하원·상원 의원을 맡는 동안 남편의 보좌관 겸 정책고문으로 시간을 보내 왔다. 후보 샌더스는 “클린턴이 출격한다면, 나는 그에게 절대 밀리지 않을 제인으로 맞서겠다”고 장담해 왔다. 그러나 빌의 인기와 유명세는 상대 후보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빌의 재임 중 ‘르윈스키 성 추문’ 사건이 힐러리에게 부메랑이 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남편이 여성을 학대했는데 힐러리가 내게 ‘여성 차별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고 AFP가 28일 보도했다. 또 빌이 받는 천문학적인 강연료, 부부가 대통령에 도전하며 불거진 세습 논란 등도 약점이다. 빌이 지금까지 선거운동과 거리를 두어 온 이유다. ●제인 샌더스, 남편에게 ‘희망적 연설’ 조언 반면 제인은 버니와 24시간을 함께하며 일상마저 선거 캠페인의 일환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제인은 정치를 알고, 남편의 강성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다”며 버니의 선거전략 전반에 제인의 손길이 미침을 지적했다. 최근 제인은 남편에게 “연설에서 제발 비관적이며 어두운 전망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가 (양극화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적인 방안을 섞어 달라”고 조언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빌과 제인이 배우자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경우 이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엇갈리고 있다. 힐러리의 독자 노선 확보를 위해 전임 대통령인 빌이 한 발짝 물러설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제인은 역대 가장 정치적인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NYT는 “샌더스 부부에겐 아이오와 코커스보다 식탁 코커스가 더 치열할 지경”이라면서 “소수자 인권, 중산층 복원 등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인 제인은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확대시킬 역량을 지녔다”고 총평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저장성, 中 최초 ‘빈곤 탈출’ 선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저장(浙江)성이 전국 최초로 빈곤 탈출을 선언했다. 시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로 있을 때 호흡을 맞췄던 인맥들은 중앙의 핵심 요직을 장악했다. ‘저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9일 1면에 ‘저장성 탈빈곤 임무 첫 완수’라는 기사를 실었다. 신문에 따르면 저장성은 전국 최초로 모든 가구의 연간 수입을 빈곤 기준선인 4600위안(약 81만 7000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저장성은 10년 전부터 동부 연해 도시의 자금, 기술, 인재와 서남부 산간 농촌의 노동, 생태환경을 결합하는 ‘산해(山海)합작’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인민일보가 10년 전부터 계속돼 온 저장성의 빈곤 타파 프로젝트를 부각시킨 것은 이 시기가 시 주석의 성 서기 근무(2002~2007년)와 겹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즈장(之江·저장의 별칭)신군’으로 불리는 저장성 인맥은 권력의 중심부로 배치되고 있다. 천이신(陳 一新) 저장성 원저우시 서기는 최근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판공실의 부주임(장관급)으로 발탁됐다. 개혁영도소조는 시 주석이 만들어 직접 소조장을 맡은 조직으로, 국정을 총괄한다. 시 주석이 성 서기 시절 매주 한 차례 연재한 ‘즈장신위’의 초고를 작성했던 천민얼(陳敏爾)은 구이저우성 서기로 승진했다. 국가안전위 판공청 부주임 차이치(蔡奇), 중앙선전부 부부장 황쿤밍(黃坤明), 공안부 부부장 멍칭펑(盟慶豊), 중앙군사위 판공청 부주임 중사오쥔(鐘紹軍)도 저장성에서 시 주석을 보좌했던 핵심 측근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12·21 개각]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 내정자, 광주지검장 역임… 유연한 사고·추진력 호평

    25년간 검찰에 재직하며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적극적이고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남부지검 차장 시절 허위사실을 유포한 허경영 대통령 선거 후보에 대한 수사를 맡아 매끄럽게 처리한 바 있다. 광주지검장으로 지내던 당시 보해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을 지휘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정수장학범동창회 상청회’의 대표적인 법조 인맥으로 꼽힌다. ▲서울(55) ▲명지고, 연세대 법학과 ▲사시 25회(사법연수원 15기) ▲부산지검 ▲서울북부지검 특수부 ▲광주지검 ▲법무부 특수법령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인천지검 특수부 부부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
  • 국가 안보 뒤흔드는 무기 브로커의 세계

    국가 안보 뒤흔드는 무기 브로커의 세계

    타인 간의 상행위 매개를 업으로 하는 사람. 줄여서 중개상인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브로커’(Broker). 국내에서는 특정 단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로비스트’와 혼용되기도 하는 브로커는 비리나 도박 등 주로 범죄와 관련된 내용에 붙어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특히 브로커가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범죄 분야는 현재 정부가 대대적인 소탕에 나선 방위산업 영역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올 연말로 수사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할 예정인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위협했던 무기 브로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방위사업 수사는 무기 브로커와의 전쟁” 지난해 11월 범정부 합동수사단 출범이 공식화한 직후 검찰과 합수단은 언론에 “방위산업이 아닙니다. 방위사업 수사단입니다”라며 수사단 명칭을 정확히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합수단 명칭이 ‘방산비리 합수단’과 ‘방사비리 합수단’으로 언론사마다 다르게 보도되는 것을 하나로 바로잡은 것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방위산업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요한 산업 분야로 ‘방산비리 합수단’으로 보도가 반복되면 국민에게 방산 분야 전체가 비리로 얼룩졌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고 수사팀도 방위산업 전반이 아닌 육·해·공군 특정 개별 사업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방위사업 합수단’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수단의 이런 설명은 군 고위 장교와 국내외 방산업체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 주는 무기 중개상이 개입하는 방위사업의 특성상 앞으로 수사의 방향이 방위사업별로 포진한 무기 브로커 비리 적발 및 처벌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됐다. 수천억~수조원대의 대형 사업을 주무르는 무기 브로커를 적발하면 이들과 결탁한 군 수뇌부와 방산업체까지 함께 도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방위사업 수사는 사실상 무기 브로커와의 전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1년 동안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 실제 국내 거물급 무기 중개상들의 이름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이규태(66) 일광공영 회장과 정의승(76) 유비엠텍 회장, 함태헌(59) 셀렉트론코리아 대표 등이 피의자 신분으로 합수단에 소환됐다. 특히 과거 대형 방위사업 비리인 율곡비리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정 회장과 불곰사업 비리로 처벌된 이 회장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면서 쉽사리 뿌리가 뽑히지 않는 방위사업 비리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곰’ 이규태 가장 먼저 혐의 드러나 범죄 혐의가 가장 먼저 드러난 거물급 무기 브로커는 ‘불곰’ 이 회장이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이 회장은 1985년 돌연 제복을 벗고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그해 11월 일광공영을 설립한 뒤 30여년간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 일광그룹으로 키웠다. 그는 2000~06년 옛 소련에 제공한 경협 차관의 원리금 일부를 러시아 무기로 상환받는 ‘2차 불곰 사업’에서 러시아 군수업체 측 중개상으로 활동하며 휴대용 대전차유도미사일과 공기부양정 등을 군에 납품했다. 당시 이 회장이 중개한 무기의 총금액은 3억 1000만 달러(약 3650억원) 규모였다. ‘불곰의 이규태’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배임·횡령 범죄가 드러나면서 2012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사법처리된 뒤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거느린 사업가로,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을 둔 교육자로, 노인·아동 대상 복지사업을 하는 복지가로 승승장구했지만 과거 범죄 혐의가 합수단에 포착되면서 지난 3월 구속 기소됐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터키 하벨산사의 전자전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예비역 공군 준장 출신 등과 공모해 1101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받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회장이 경기 의정부 도봉산 컨테이너 야적장에 숨긴 군사기밀 등 방위사업 관련 자료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그에게 기밀을 빼돌린 국군기무사령부 군무원 등 군 관계자도 재판에 넘겨졌다. ●정의승, 율곡비리 이어 잠수함 비리도 연루 1993년 군 전투력 증강을 목표로 진행된 대규모 방위사업인 율곡사업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됐던 정 회장은 무기 브로커 중에서도 ‘범털’로 통한다. 그는 1977년 해군 중령을 끝으로 전역해 무기중개상으로 변신했지만 장성급 등 전·현직 군 간부를 통해 지금도 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정 회장은 해군 장교 시절부터 탁월한 영어 실력과 사교력으로 국내외 방위산업체의 영입 대상으로 떠올랐다. 예편 직후 독일 방산업체 엠테우(MTU) 한국지사장으로 무기중개업을 시작해 사업 영역을 넓혀 왔으나 율곡사업에서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3억원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드러나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이후 보석으로 풀려난 뒤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율곡비리 이후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던 정 회장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합수단이 수사에 착수한 3조 7000억원대 규모의 해군 잠수함 도입 사업인 ‘장보고Ⅰ,Ⅱ 사업’ 비리에 연루되면서다. 합수단은 정 회장이 이 사업을 통해 외국 방산업체로부터 받은 1000억원대 중개수수료를 홍콩 등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계좌에 숨겼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만 법원은 “정 회장이 관련 해외계좌 내역 등을 스스로 제출하는 등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 7월 영장을 기각했다. 합수단은 또 5890억원대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사업에서 이를 중개한 셀렉트론코리아의 함 대표가 최윤희 전 합참의장 등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하고 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두 차례나 기각되면서 수사가 가로막힌 상황이다. ●靑경호실장부터 ‘미녀 브로커’ 린다 김까지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대형 방위사업비리는 1980년대 ‘노스롭 스캔들’이다. 당시 군에 F20 전투기 판매를 추진했던 미국 노스롭사는 한국 정부와의 계약 체결을 위해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종규씨에게 수천억원의 뇌물을 주고 박씨를 무기 브로커로 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정부 최고위층과 노스롭 임원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전방위 로비를 벌였지만 전투기 시험비행 중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도입 계약도 무산됐다. 첩보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미녀 브로커’가 정부 고위직을 상대로 스파이 노릇을 한 ‘린다 김’ 사건은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재미 무기 브로커 린다 김(62·한국명 김귀옥)은 1995년 정부가 추진한 2200억원 규모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백두·금강 사업)에서 미국 방산업체를 위해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과 전직 국회의원 등에게 접근했다. 이 전 장관이 린다 김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 린다에게. 편지 잘 받았어요. 중략 편지 말미에 린다의 결론, ‘당신을 사랑해요’가 모든 것을 감싸고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린다 김을 고용한 미국 방산업체는 사업 응찰업체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도 최종 사업자로 낙점됐다. 하지만 이후 린다 김은 군사기밀을 빼돌리고 사업총괄팀장에게 1000만원을 준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이 전 장관은 경전투 헬기 사업에서 뇌물 1억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언론에 재갈·보복수사 우려” vs “다른 분야보다 공공성 크다”

    “언론에 재갈·보복수사 우려” vs “다른 분야보다 공공성 크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개 변론이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도록 한 법이다. 내년 9월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관계자 등으로부터 4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고, 이날 이에 대한 공개 변론이 열렸다.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공공기관’에 포함해 이 법을 적용하는 게 언론·사학의 자유를 침해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위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김영란법이 지나치게 사적 영역에 간섭하고 언론 자유 및 교육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합헌’ 측에서는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할 뿐 언론의 자유,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법원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한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언론인(대한변협신문 편집인) 자격으로 “언론이 이 사건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된다면 취재활동이 위축되고 비판 언론에 재갈 물리기를 통한 보복·표적 수사가 가능하다”며 “언론은 언제든 수사기관에 불려갈 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사립학교 측 대리인인 김현성 변호사도 “미완성 인격체인 학생들의 공간인 학교에 불신과 감시를 근간으로 하는 법률이 적용되면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부정 청탁’이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것’ 등의 용어가 명확하지 않고 배우자의 금품 수수까지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민간 영역 중 언론과 교육만을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으로 본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합헌을 주장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측 대리인은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할 뿐 언론의 자유,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재환 변호사는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부정한 청탁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취재의 위축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며 “식사나 술자리에서 취재를 하게 되는데 더치페이를 한다면 대부분의 언론사가 그 비용 감당이 어렵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언론이나 교육의 자체 정화작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영역을 우선 포함시킬 건지는 입법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국어사전에 ‘촌지’의 뜻은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주는 돈,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며 “사회적 공공성이 강조되는 언론과 교육은 다른 민간 분야보다 부패 척결을 위해서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법대 최대권 명예교수도 “부정부패에 잘 노출되는 다른 전문직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더 나은 개선 입법의 논거로 작용할 뿐 평등권 침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한 것에 대해 이 변호사는 “신고 의무를 가진 본인에 대해서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의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인맥, 연고라는 곰팡이가 슨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김영란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헌재는 공개 변론을 통해 양측 주장을 확인한 뒤 집중 심리를 통해 내년 9월 법 시행 전 위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겨울철 건강을 지키려면…비결 14가지

    [건강을 부탁해] 겨울철 건강을 지키려면…비결 14가지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듯하다. 이미 감기에 걸려 고생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약간의 노력을 하면 이를 극복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 다음은 영국 일간지 메트로가 이번 겨울에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 14가지를 소개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많겠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건강하게 올겨울을 나보자. 1.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 당연한 말이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우리는 두꺼운 옷을 새로 장만하거나 꺼내 입는다. 그렇다고 위에는 따뜻하게 입었지만 아래는 살을 드러내는 것은 감기걸리기 딱 좋은 행동이다. 그리고 한두겹의 옷을 입는 것보다 얇은 옷을 여러 개 겹쳐 입는 것이 체온 유지에 더 효과가 크다. 2. 되도록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주지 말라 냉정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무심코 빌리거나 빌려준 볼펜에 의해 감기가 걸릴 수도 있다. 3. 아연을 섭취하라 감기 예방에 있어 꼭 필요한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아연이 많이 든 음식이나 보충제를 통해 섭취하자. 4. 너무 게을러지지 마라 겨울에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에 몸을 녹이며 TV를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바보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거의 온종일 누워만 있는 것은 삼가라. 춥다는 변명 어린 이유로 늘 해오던 운동을 포기하지 마라. 운동은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데 좋고 건강에도 좋다. 다른 사람들이 이불이나 담요를 뒤집어쓰고 TV를 보는 동안 당신은 우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 손을 씻어라 그것도 자주 씻어라. 비상시에는 손 세정제를 쓰는 것도 좋지만 물로 씻어야 할 때 비누만 한 것이 없다. 6. 충분히 자라 물론 수면은 항상 중요하지만 잘 쉬었다고 느끼는 것은 겨울철만큼 중요할 때도 없다. 제때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당신의 면역기능은 떨어질 것이고 피곤해 일상이 엉망이 될 수 있다. 일찍 자도록 노력하라. 7.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라 비타민C를 보충제 형태로만 섭취하는 것은 감기와 같은 질병을 막는데 역부족일 수 있다. 과일과 채소를 통해 비타민 등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라. 8. 직장에서 아픈 사람이 있다면 집에서 쉬라고 조언하라 만일 당신 직장동료가 심하게 기침하고 약까지 먹으며 완전히 녹초가 돼 보인다면 집에서 쉬도록 권하라. 아픈 사람들이 빠지면 업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아프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9. 휴식 시간에 투자하라 당신은 면역기능에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스트레스다. 휴식 시간만큼은 꼭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엄격해져라. 일정 중간에 휴식 시간을 넣도록 하라. 10. 물을 자주 마셔라 무더운 여름에야 시원하게 마실 수 있지만 춥다는 이유로 물을 피하지 마라. 미지근하게 해서라도 자주 마셔야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11. 멀티비타민도 챙겨라 앞서 과일과 채소를 통해서 영양분을 섭취하지만 부족한 영양소는 이를 통해 보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12. 균형 잡힌 식사를 하라 같은 맥락에서 올바른 식사를 하는 것이 면역체계를 지키고 감기를 막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밥이 보약이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13. 인맥을 유지하라 춥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라. 스트레스를 풀고 활동하는 것만큼 건강 유지에 좋은 것도 없다. 14. 한가한 시간에 출퇴근하라 만원 버스나 전철에서 기침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없던 감기도 옮게 된다. 조금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등 되도록 사람이 없을 때 이동하는 것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큐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데스크 시각] ‘헬조선’에 ‘올리버’가 필요하다/한준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헬조선’에 ‘올리버’가 필요하다/한준규 사회2부 차장

    영국의 요리사이자 사회운동가로 유명한 제이미 올리버(41) 같은 사람이 한국 사회에는 절실하다. 올리버는 어려운 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의 음식점에서 요리하기 시작한 올리버는 우연한 방송 출연으로 영국의 대표 셰프로 떠올랐다. 많은 부와 명성을 축적한 올리버는 ‘요리’로 사회 변화를 꿈꿨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리버가 불우 청소년 15명과 만든 ‘피프틴 레스토랑’이다. 2002년 12월 영국 북런던에 세워진 이 레스토랑은 16~24세 사이의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에 시달리며 가출했던 청소년 등이 요리사의 꿈을 키우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곳이다. 레스토랑 내에 요리 교육뿐 아니라 전문 상담사를 두고 청년들이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상담과 치유센터도 있다. 청년의 자립을 돕고 맛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피프틴 레스토랑에는 2007년 한 해 동안 10만명이 넘는 손님이 다녀갔으며 400만 파운드(약 7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피프틴 레스토랑은 이제 사회적기업으로 변신했다. 소유주도 제이미 올리버가 아니라 피프틴재단이다. 피프틴재단은 요리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그 이윤을 어려운 청소년들의 직업재활 프로그램에 재투자한다. 지난해 5000여명의 청년이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꾸었다. 훈련생 취업률은 평균 65%가 넘는다고 한다. 이 지점을 서울시는 눈여겨봐야 한다. 시는 지난 5일 2020년까지 5년 동안 저소득층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월 50만원씩 ‘최소 사회참여활동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해마다 9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또 복지비 논란을 피해 가고자 선별적으로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에 50만원, 그것도 최장 6개월 지원이 최선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자리 대장정’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이 ‘현금’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하지만, 해마다 90억원씩 5년간 450억원을 청년 용돈으로 나눠 주는 정책이 지속 가능할까 되묻고 싶다. 가장 좋은 복지는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올리버와 피프틴재단에서 배우면 된다. 서울시는 올리버보다 훨씬 많은 직원과 인맥, 힘을 가지고 있다. 야당의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다. 박 시장의 넓은 인맥을 동원한다면 스타 셰프뿐 아니라 게이머와 프로그래머, 패션디자이너 등 훨씬 다양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박 시장은 ‘올리버’를 잘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부르던 2011년에 영국 사회 혁신 리포트로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라는 책도 썼다. 서울시가 나선다면 기업의 도움도 쉽게 이끌어 낼 수 있다. 프로그래머 교육은 박 시장의 정치적 동지인 안철수 대표와 인연 있는 안랩이, 자동차 정비사를 꿈꾸는 청년은 현대차가, 호텔리어를 꿈꾸는 청년은 롯데호텔에서, 외식업은 CJ 등 기업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할 일은 무엇인가. 구시대적인 취업 교육을 현실에 맞도록 계획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또 교육적인 공간을 만들고, 시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테스트 마켓을 지원해야 우리 청년의 미래가 밝지 않을까.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청년들이 ‘헬조선’ 발언을 멈추고 일하며 땀을 흘릴 수 있다. hihi@seoul.co.kr
  • “선거 외압 없다… 당선땐 6개 대회 추가 개최”

    “선거 외압 없다… 당선땐 6개 대회 추가 개최”

    “당선되면 6개 대회를 확보해 내년에는 18개 대회가 치러지도록 하겠습니다.” 제17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한 양휘부(73) 후보는 24일 이 같은 공약을 내걸며 해마다 경기 수가 줄면서 침체된 KPGA 부활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최근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입후보 배경에 대해 “지난 3월 임기를 마친 케이블TV협회 주변 인사들이 출마를 권유했다”면서 “처음에는 고사했으나 소장파 프로 선수들이 몇 차례 찾아와 사정하는 바람에 수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선을 하면 갈등과 대립이 뻔하기 때문에 추대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된다면 미디어업계에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협회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는 케이블TV 등 방송·언론계와 광고주들의 넓은 인맥을 활용해 KPGA 투어 후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당초 2파전의 경선 상대였던 김상열(54) 호반건설 회장의 중도 사퇴와 지난 23일 선거관리위원 전원이 돌연 사퇴하면서 불거진 의혹에 대해서는 “제가 외압을 할 만한 위치가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2년 안에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선관위원들의 일괄 사퇴에 대해서도 “소식을 듣고 ‘선거를 모르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성 담보가 어렵다는 게 사퇴의 이유였는데, 그들 스스로가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한 것 아니냐”면서 “사퇴서에 ‘김 전 후보에 대한 부적절한 압력 의혹 징후가 포착됐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면 조사해서 조치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골프는 규칙을 제대로 만들고 지키는 신사 운동”이라면서 “그들(사퇴한 선관위원들)은 골프계의 레전드들이다. 제가 당선되면 그분들부터 만날 것이다. 2년만 시간을 주면 갈등 해소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KPGA 투어가 혹독한 시련을 맞은 한 해였다. 남자대회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스폰서들이 등을 돌리는 악순환이 수년째 계속되면서 투어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보다 100억원이나 적은 84억원으로 12개 대회를 겨우 치러냈다. 대회 수가 해마다 줄면서 경기인 출신 협회장에 대한 젊은 선수들의 불신도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이에 따라 201명으로 구성된 선수위원회가 양 후보를 지지했다. 앞서 호반건설 김 회장은 “사재를 털어서라도 KPGA 투어를 살리겠다”고 출마를 선언했지만 양 후보가 후보 등록을 마친 직후 “협회장 선거가 특정 집단 간의 세력 대결구도로 변질돼 가고 있다”며 사퇴했다. 양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는 오는 28일 진행된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영화 多樂房] ‘어떤이의 꿈’, 달콤살벌한 록 페스티벌의 뒷이야기

    [영화 多樂房] ‘어떤이의 꿈’, 달콤살벌한 록 페스티벌의 뒷이야기

    동완은 자신의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르겠다는 꿈을 안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사무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무대에 설 기회는 오지 않고, 밴드 동료들의 원성은 높아져만 간다. 동완의 직장 상사가 푸드코트에 부스를 마련해주자 동료들은 돈을 벌어서 음반을 내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하지만, 동완은 영 마뜩지 않다. 한편, 보잘것없는 이력 때문에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던 필립은 동완의 군대 인맥으로 록 페스티벌의 영어 통역 자리를 얻는다. 그는 부족한 영어 실력을 털털한 성격과 취업에 대한 열정으로 채워 넣으며 고군분투하는데, 일본어 통역으로 들어온 미나와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미나에게는 유명 뮤지션이 된 후 연락이 끊긴 남자친구를 만나겠다는 꿍꿍이가 있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10주년을 맞아 제작된 이 영화는 유명 뮤지션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는 데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렌지 렌지와 같은 유명 밴드도 동완이나 미나와 함께 잠깐씩 등장하는 조연일 뿐이다. 대신 영화는 화려하고 우렁찬 무대의 뒷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행사를 만들어가는 직원들이 주인공이다. 카메라는 세 주인공의 동선을 분주하게 쫓으며 록 페스티벌 스태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사건·사고들-게스트의 돌발 행동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크고 작은 실수, 진상 관객 출몰과 그에 대한 대처 방식 등을 속도감 있게 펼쳐놓는다. 여기에 동완이 매년 펜타포트를 찾는 뮤지션들과 갖게 된 친분 및 교감이라든가 필립과 미나 사이에서 피어나는 묘한 감정 등이 또 다른 차원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공연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주인공들이 함께 즐기는 오렌지 렌지의 공연은 록 페스티벌 현장의 젊고 뜨거운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영화가 머금고 있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분출시키는 듯한 이 장면은 음악을 잘 모르는 관객들조차 리듬을 타게 할 만큼 역동적이다. ‘내가 고백을 하면’, ‘산타바바라’ 등을 만들었던 조성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맛깔스런 대사들로 어색할 수 있는 영화적 순간마다 웃음을 유발시킨다. 심각한 갈등 상황이나 위기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캐릭터들은 어쩌면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일지 모르지만, 젊은이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이 시대에 위로를 전달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제목이 천명하듯 이 영화는 ‘꿈’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꿈의 범위와 모양새는 너무나 다양해서 때로는 엇갈리고 부딪치기도 한다. 음악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두려고 하는 동완에게 꿈은 아직 실현 가능성이 적은 이상에 가까우며, 일을 하고 싶은 필립에게 취업은 닿을 듯 말 듯 눈앞에 있는 현실적 목표다. 그러나 이것은 씁쓸하거나 우울한 ‘아이러니’-모순-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결말은 오히려 우리가 저마다 다른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보여준다. 쌀쌀한 겨울날, 록 페스티벌의 열기가 그리운 이들에게 추천한다. 26일 개봉. 12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취임 10여일 만에 ‘하나회’ 척결…관료화된 조직 청산 여전히 숙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하나회’ 척결로 대표되는 군 개혁이다. 김 전 대통령은 30여년간 한국 정치사의 기득권 집단으로 자리잡던 군부에 과감히 칼을 들이댔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 계기가 된 12·12(1979년)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해 문민통제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개혁이 인적 청산에만 그쳐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군내 인사 잡음, 조직 이기주의, 방산비리 등은 청산할 적폐로 남아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집권 기반이 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배타적 인맥을 형성해 요직을 독식하고 군이 공공연히 정치에 개입하는 통로로 뿌리내려 왔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여일 만인 1993년 3월 8일 하나회 출신인 김진영(육사 17기)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국군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은 4월 2일 군부의 실세였던 안병호(육사 20기) 수도방위사령관과 김형선(육사 19기) 특전사령관을 해임했다.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부터 30조원 규모를 투자한 전력 증강 사업(율곡사업) 비리에도 칼을 들이댔다. 이를 통해 이종구, 이상훈 전 국방장관,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 한주섭 전 공군참모총장 등 전직 군 최고위 간부들이 방산업체와 무기중개상 등으로부터 수억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12·12와 하나회 연루인사, 율곡비리 등과 관련해 전역 조치되거나 해임·전보된 장성만도 50여명에 이른다. 취임 첫해에 군단장급 장성의 62%, 사단장급의 39%가 교체된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군 개혁은 취임 직후부터 3개월 동안 파격을 거듭하며 전광석화처럼 진행했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후보 시절부터 12·12 사태의 피해자인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과 교분을 갖고 군내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개혁이 인적 청산에 그쳐 본질적 적폐를 뿌리 뽑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군은 1993년 9조 2154억원이던 국방예산이 올해 37조 4560억원으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도 방산비리 문제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등 전투형 강군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23일 “김영삼 정부 이후 우리 군 인사 관행이 정권 교체에 따른 한풀이, 유력자와의 친분에 따른 정실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신주의와 관료화된 조직은 여전히 후임 대통령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노무현·이명박·김무성·손학규… ‘정치적 자손’ 숱하게 발탁

    노무현·이명박·김무성·손학규… ‘정치적 자손’ 숱하게 발탁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인맥은 상도동계가 핵심이다. YS는 특유의 ‘인물 발탁’으로 한국 정치사에 수많은 ‘정치적 자손’을 남겼다. 이 중엔 YS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여의도를 호령하는 인물들도 있다. ●‘정치인 양성 사관학교’ 상도동계 1세대인 ‘좌(左)동영 우(右)형우’를 비롯해 서석재·김덕룡 전 의원,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4선 정병국·이병석 의원 등은 모두 YS와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거나 YS가 발탁한 인사들이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가 발탁했다. 진보 진영의 야권 인사들도 YS가 제도권 정치로 흡수했다. ●김무성 1987년 막내로 입문 김 대표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거쳐 1987년 상도동계 막내로 입문한 뒤 김영삼 정권 초대 민정수석비서관, 최연소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서 최고위원은 YS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 문민정부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최형우 전 의원은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민주화 운동 시절 YS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정치적 동지다. 문민정부 2인자로 내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1997년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고문과 여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 정계에서 물러났다. 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4선 김동영 전 의원은 1991년 55세로 일찍 세상을 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북고 동기로 민정당 출신인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은 당시 대구·경북 의원들을 결집시켜 김영삼 정권 탄생에 공을 세운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 킹메이커다. 2009년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김동영·최형우·김덕룡과 함께 민주계 ‘실세 4인방’으로 불렸다. 164㎝ 단신으로 별명이 ‘작은 거인’이었던 그는 조직의 귀재로,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설을 제기한 뒤 총무처 장관직에서 8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YS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 ●2012년 대선후보 놓고 갈려 상도동계는 2012년 대선 때 지지 후보를 놓고 갈렸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상도동계의 드문 호남 인맥인 김덕룡 전 의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며 다른 길을 걸었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YS에게 영입돼 부산 동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발하며 YS와 갈라서게 된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깜짝 발탁됐다. 세 차례 대권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YS 정부 최연소 노동부 장관 출신인 이인제 최고위원도 YS가 발굴했다. 특히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권에서 감사원장·총리로 중용되는 등 YS가 직접 대권 가도를 놓아줬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서강대 교수 시절 광명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민중당 소속 운동권 정치가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총재였던 YS가 영입했다. 15대 총선 때는 ‘YS 키즈’가 대거 배출됐다. 정의화 국회의장,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박종철 검사’ 안상수 창원시장, 이완구 전 국무총리 모두 신한국당 초선 동기다. ‘YS의 영원한 입’ 박종웅 전 의원, 홍인길 전 총무수석도 YS 직계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상도동 가신그룹] ‘킹메이커’ 김윤환에 좌는 김동영 우는 최형우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인맥 계보는 상도동 가신 그룹이 핵심이다.  상도동계 핵심은 최형우·서석재·김덕룡·김윤환 전 의원, 김동영 전 장관, 서청원·김무성 의원 등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YS 집권을 전후한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 사이 정치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이들은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다.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 킹메이커인 김윤환 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을 역임한 그는 문민정부 출범 때 대구·경북 의원들을 결집시켜 김영삼 정권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호 허주(虛舟)로 더 유명한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대권을 노렸으나 이회창 후보에게 투항하면서 꿈을 접었다. 이 후보의 대선 패배 뒤에는 “권력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발언을 남겼고, 2000년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낙선, 2003년 말 신장암으로 별세했다.  상도동의 ‘좌동영 우형우’ 가운데 한 명인 최형우 전 의원은 일찍 세상을 뜬 김동영 전 장관과 함께 YS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으로 8대 국회 첫 배지를 달며 YS와 인연을 맺은 그는 YS 당선 이후 민자당 사무총장으로서 공직자 재산공개를 주도하는 등 변화와 개혁의 선봉에 섰지만 1994년 부천세무서 탈세 사건으로 경질됐다. 1996년 15대 총선에 당선돼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1997년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2009년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김동영·최형우·김덕룡과 함께 민주계 실세 4인방이었다. 164㎝의 단신인 탓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조직의 귀재였다. 1992년 대선 당시 나라사랑실천본부란 사조직을 이끌며 YS 당선에 일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총무처 장관에 발탁했으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설을 주장해 8개월 여만에 물러났다. YS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김덕룡 전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택하며 상도동계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앞서 2007년 대선 경선 때 이명박 후보 지지 핵심멤버인 6인회 멤버로 박근혜 당시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1970년 신민당 총재 비서실장으로 정계 입문해 5선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반면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낙천, 총선 공천헌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정치적 암흑기를 겪다 최근 복권돼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부활했고, 10·30 재보선을 통해 원내 복귀에도 성공했다. 기자 출신으로 민한당 국회의원 시절이던 1981년 YS와 처음 만난 그는 1989년 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1996년 신한국당 원내총무 등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2002년 한나라당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책임지고 탈당, 실형 선고를 받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연을 맺고 친박(친박근혜)계 원조 좌장 역할을 해 왔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4·24 재보선으로 복귀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상도동계의 막내다. 1992년 대선에서 정책보좌역을 맡으며 YS와 첫 인연을 맺었다.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도 보스 정치의 한복판이었던 상도동에서 정치 역정을 겪으며 얻게 됐다.  YS의 가신이자 대변인격으로 불렸던 박종웅 전 의원은 현재 대한석유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는 YS 퇴임 이후에도 대립했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연대21이라는 조직을 주도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원했지만 18대 총선 때 부산 사하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한때 건강이 악화됐지만 최근에는 기력을 많이 회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대선 때도 고인과 함께 투표소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다. ‘YS 황태자’로 불렸던 차남 현철씨(전 여의도연구소장)는 지난해 총선 공천 때 경남 거제에서 낙천한 뒤 탈당해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권부의 핵심에 있었지만 집권 말기 조세포탈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YS 서거]한국정치 ‘양대 산맥’ 상도동·동교동계도 역사속으로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한국 현대 정치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YS는 1969년 상도동으로 이사온 뒤, 영욕의 세월을 상도동과 함께 겪어왔다. 집권때 까지는 군부독재에 항거해온 민주화의 성지로 상징됐지만, 집권 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무능과 파벌 정치의 본산으로 치부됐다.  동교동 역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61년 이사온 뒤, 1995년까지 35년여 동안 DJ의 정치적 요새와 마찬가지였다. DJ는 1995년 일산으로 이사했다가, 대통령 퇴임 후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왔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과 마포구 동교동은 각각 ‘양김(金)’의 권력과 인맥을 상징하는 용어였다. 80년 신군부가 언론을 검열하던 당시 신문에서는 두 야당 거물의 이름 조차 쓰지 못하게 했다. 이에 신문들은 DJ와 YS를 각각 ‘동교동 인사’와 ‘상도동 인사’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두 거물의 집을 드나들던 인사들도 각각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불렸다.  1984년 YS와 DJ가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중심이 돼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 축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영남을 상징해온 상도동계와 호남을 상징해온 동교동계는 1987년 YS와 DJ의 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뒤, 서로 치열한 경쟁 속에 갈등과 반목을 거듭했다.  DJ가 서거한 2009년 이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해묵은 갈등을 씻고 화해했다. DJ 서거 직전 YS와 DJ간의 극적인 화해가 이뤄졌다. 2009년 11월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YS 주재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가 만찬을 갖기도 했다. 이듬해 새해 첫날에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22년 만에 ‘교차세배’를 하기도 했다. 이후 간간이 갈등이 재연되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의 교류는 이어졌다.  최근들어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인사들이 각자 제갈길을 택하면서 사분오열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상도동계인 김덕룡 전 의원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상도동계 인사 중심의 민주동지회 소속 회원 100여명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공식선언했다. 동교동계에서는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 김경재 전 민주당 최고위원에 이어 ‘리틀 DJ’로 불렸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도 박 후보를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과 상도동계 김 전 의원 등 양측 인사 상당수는 최근 시민사회 원로들과 함께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 모임에 참여하는 등 새롭게 ‘결합’하는 양상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빅4’ 소속 회계사 32명, 미공개 기업정보로 억대 이득

    기업 회계감사를 하며 얻은 미공개 실적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한 삼일회계법인 등 이른바 ‘빅4’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2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경력이 짧은 회계사들로 학교 동문 등 개인적 친분으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이진동)는 감사 대상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 등으로 억대 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로 삼일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이모(29)씨와 배모(30)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상대적으로 적은 이득을 챙긴 것으로 조사된 장모(29)씨 등 4명은 불구속 기소하고 다른 7명은 벌금 400만~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정보를 단순히 누설한 혐의를 받는 19명은 금융위원회에 징계를 하라고 통보했다. 이씨 등 6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31개 주요 기업의 미공개 실적 정보를 파악하고 이 가운데 14개 기업의 주식 등을 사고팔아 6억 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을 주도한 건 이씨였다. 이씨는 혼자서 5억 6000여만원을 챙겼고 자신의 정보를 아버지에게 전달해 추가로 5500여만원의 이득을 봤다. 이씨가 투자한 곳 가운데 자신이 직접 감사한 곳은 한 곳이었지만 학교 동문이나 입사 동기 등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회사 실적 정보를 입수했다. 32명의 소속을 보면 삼일회계법인이 26명으로 가장 많고 삼정회계법인 4명, 안진회계법인 2명이다. 10명은 특정 대학교 동문이었다. 범행 대상이 된 회사는 아모레퍼시픽과 다음카카오, 엔씨소프트, 제일기획, 이마트, 한샘, KB국민카드 등 이름만 대면 쉽게 알 수 있는 대기업이었다. 이들이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카카오톡’, ‘라인’ 등 국산 메신저를 쓰지 않고 이른바 ‘사이버 망명지’로 통하는 ‘텔레그램’ 메신저를 쓰려고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실제로 이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앞으로 주식 관련 얘기는 텔레그램을 이용하자. 이건 대화를 삭제해 더 안전하다고 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문찬석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는 “자본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인 회계사가 오히려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대규모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을 처음으로 적발한 사례”라고 밝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공기업 사람들 남동·중부발전] 허엽 사장 ‘정통 한전맨’… 1급 이상 68% 공대 출신

    [공기업 사람들 남동·중부발전] 허엽 사장 ‘정통 한전맨’… 1급 이상 68% 공대 출신

    지난해 경남 진주로 본사를 이전한 한국남동발전은 한국전력 산하 6개 발전회사 가운데 유연탄 화력발전을 주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 발전기업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5개 화력발전회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유일하게 지난해 자산 9조원을 넘겼다. 매출은 4조 4800억원, 영업이익은 5300억원이다. 지난해 남동발전이 생산한 전력량은 총 6만 7436GWh로 우리나라 총발전량(52만 1970GWh)의 13%를 차지했다. 1000만 서울시민(지난해 전력소비량 4만 5019GWh)이 1년 넘게 쓰고도 남는 양이다. 삼천포·영흥·분당·신영흥·영동·여수 등 6개 지역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남동발전은 어떤 인맥들로 형성돼 있을까. 2년 전 수장 자리에 오른 허엽(62) 사장은 1978년 한전에 입사한 정통 ‘한전맨’이다. 제주 오현고,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한전 개발사업본부장과 배전운영처장 등 핵심 보직을 거쳤다. 온화하고 세심한 성품으로 직원과의 소통 강화 속에 지난해 남동발전 창사 이래 최대인 383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임직원 2120명(계약직 6명)을 이끌고 가는 남동발전의 1급(갑) 이상 핵심 간부는 허 사장 외에 임원 4명과 본부장과 처장을 포함해 모두 19명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5.8세이며 출신 대학은 한양대, 부산대, 울산대, 방송통신대(각 2명) 등으로 비교적 고른 편이다. 대학 전공은 전기공학과, 기계공학과 등 공대 출신이 13명(68.4%)으로 가장 많았다. 김낙규(50) 상임감사위원은 공인회계사 경력 18년의 회계 전문가로 회사 부채비율 감축과 재무건전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마산고,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전 영업처장과 요금제도실장을 지낸 홍성의(58) 기획관리본부장은 한전 전기요금조정 전문가로 통한다. 기획력과 분석력이 좋고 따뜻한 성품으로 취임 첫해인 지난해 정부3.0 추진실적 평가에서 전체 공공기관 3위를 일궈 냈다. 숭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정석부(58) 기술본부장은 신성장·발전·건설·안전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발전소 무결점 운영과 함께 최근 파키스탄 굴푸르 수력사업 건설 착공 등 신사업 추진에도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산업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 무역학과 출신 이용재(55) 기획처장은 회사의 중장기 재무관리와 경영평가 등을 이끌고 가는 연료조달 전문가다. 일벌레형 리더로 발전 5개사 가운데 연료조달 분야 최우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손광식(55) 관리처장은 발전처장과 삼천포·영흥화력본부장을 지내면서 발전과 경영을 두루 섭렵했다. 지난해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대상 수상의 공을 세웠다. 류성대(54) 신성장동력실장은 국내외 사업의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해외 수력산업 본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단국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발전처장 재임 2년간 설비신뢰도 분야 경영평가 연속 1위를 달성했다. 김부일(56) 발전처장은 발전소 현장과 감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실무와 지식을 겸비한 현장통으로 꼽힌다. 화력 부문 설비이용률 1위, 전력시장 우수사업자 선정 등 ‘발전업계의 마에스트로’로 평가된다. 김학현(56) 건설처장은 토건팀장과 건설총괄팀장을 거친 건설통이다. 영흥 1~4호기 건설과 최근 영흥 5, 6호기 건설사업에 참여했다. 김철규(55) 감사실장은 서울 대신고, 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를 나와 관리처 총무인사팀장, 영흥화력본부 경영지원처장을 지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공기업 사람들 남동·중부발전] 핵심 간부 연세·방통대 출신 최다… ‘뚝심’ 이정릉 본부장 사장 직무대행

    [공기업 사람들 남동·중부발전] 핵심 간부 연세·방통대 출신 최다… ‘뚝심’ 이정릉 본부장 사장 직무대행

    올해 5월 충남 보령으로 본사를 이전한 한국중부발전은 한국전력 산하 6개 발전회사 가운데 자산(7조 2200억원) 규모는 가장 작지만 국내 최초 발전소인 서울화력발전소(1930년)와 최대 화력발전단지인 보령화력본부 등을 보유한 매출 5조원대의 ‘알짜’ 회사다. 국내 제조업 매출액 기준으로는 40위권의 대기업에 속한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700억원이다.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시 20만 가구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 총발전량의 10.5%(5만 2623GWh)를 담당하는 중부발전은 사장 부재 속에서도 ‘일당백’ 인맥 속에 조직력을 뽐내고 있다. 중부발전의 임원은 모두 3명이며 본부장 및 처·실장급은 16명이다. 현재 이정릉(58) 기획관리본부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연세대와 방송통신대 출신이 각 3명으로 가장 많고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등 공대 출신이 11명(68.8%)으로 압도적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임직원 수는 2197명으로 전원 정규직이다. ‘넘버2’ 구자훈(66) 상임감사위원은 32년간 한전에 몸담았다. 친근하고 솔선수범하는 정도 경영으로 재임 1년 만에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 시책평가 최우수등급을 달성했다. 기획조정처장을 지낸 ‘만능 스포츠맨’ 이 기획관리본부장은 경기 평택고,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와 한전에 입사해 외자 유치를 주로 맡았다. 뚝심과 소신으로 본부장까지 올랐다. 보령화력본부장 출신인 박형구(59) 발전안전본부장은 통찰력이 탁월하고 성품이 온화해 인기가 많다. 보령화력1, 2발전소 등의 건설과 운영에 참여한 발전산업계의 산증인으로 1000㎿급 초초임계압 화력발전소 국산화 등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이덕섭(55) 신성장동력실장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국내외 신규발전사업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인도네시아 찌레본발전소 등 해외 6개 사업장 등 총 10개 사업장이다. 기획처장을 지낸 장성익(58) 감사실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빅데이터 활용 감사기법 도입 등으로 부정부패 근절 평가를 받았다. 중부발전은 역대로 기획처장에 연세대가 많은 편이다. 장 감사실장은 연대 행정학과, 김신형(55) 기획조정처장은 연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싱가포르법인장, 신성장동력실장 등 국내외를 두루 거치면서 경영혁신업무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윤정환(57) 경영관리처장은 분석력과 균형감이 뛰어나며 본사 보령 이전을 총괄 지휘했다. 이윤섭(57) 조달협력실장은 연료구매, 계약 업무 등을 도맡았다. 이호태(51) 발전처장은 20년 이상된 노후설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목받았다. 최영일(55) 건설처장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발전소 건설공사(5개 사업장, 4021㎿)를 이끌고 있다. 최경환(55) 안전품질실장은 안전관리 강화로 장기 무재해 환경을 구축했다. ‘조용한 영웅’으로 불리는 유성종(57) 보령화력본부장은 지난해 보령 3호기의 세계 최장 5500일(16년 4개월) 무고장 운전이란 대기록 달성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박소민(57) 인천화력본부장은 올해 자체 외부청렴도 평가에서 사업소 1위를 일궈 냈다. ‘멀티 플레이어’ 곽병술(57) 서울화력본부장은 지난 6월 34년 7개월의 국내 최장기 무재해 기록과 세계 최초 도심지 대용량 지하 발전소 건설로 눈길을 끌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파리 테러 지시”… AQI합류 1년 만에 1인자로… 한 달여 행방 묘연

    “파리 테러 지시”… AQI합류 1년 만에 1인자로… 한 달여 행방 묘연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지도자’로 불리는 알바그다디(44)의 목에는 무려 1000만 달러(약 117억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이라크 정보 당국이 프랑스 파리 테러의 배후로 그를 지목하면서 현상금은 갑절 이상 뛸 것으로 보인다. AFP는 이슬람국가(IS)란 조직의 정점에 자리하면서 그간 배후로 언급된 적 없던 알바그다디가 이번 테러를 계기로 전면에 등장했다고 전했다. 그가 널리 알려진 건 지난해 7월쯤이다. 이라크 북부 모술의 한 사원에서 설교를 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이라크, 시리아를 아우르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스스로 전 세계 무슬림의 지도자인 ‘칼리프’에 등극했다. 선전용 동영상에선 “당신들도 내게 복종하라”고 강요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상대로 투쟁하다 1989년 알카에다를 창설한 오사마 빈라덴보다 종교 색채가 더 짙다. 여태껏 알바그다디에 대해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다. 본명은 ‘아브라힘 아와드 이브라힘 알리 알 바드리 알 사마라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타고난 지략가로 바그다드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향에서 이슬람 교사로 활동했다. 그를 IS의 우두머리로 변신하게 한 동기는 무엇일까.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에도 그는 학생 신분이었다. 그러나 2005년 반미 성향의 수니파 단체에서 중간급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면서 급진주의자로 돌변했다. 미군이 운영하는 이라크 남부 포로수용소 ‘캠프 부카’에 4년간 수감됐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맥과 급진 사상을 접했다고 AP는 설명했다. 알바그다디는 2010년 5월, 바그다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의 수장이던 아미르인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폭격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조직의 1인자로 ‘깜짝’ 데뷔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AQI에 합류한 지 1년 만이다. 지금은 미 국방부의 개별 타격 목록 맨 위 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괴물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알바그다디는 측근인 알골라니에게 알카에다란 사실을 숨긴 채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도록 하고 미국과 서방의 무기 지원을 끌어냈다. 그의 생사는 늘 불투명하다. 미군 특수부대의 표적이 되면서 ‘부상설’과 ‘사망설’이 끊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유튜브 등에 연설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려 건재함을 과시해 왔다. 지난달 10일 이라크 공군의 차량 행렬 폭격 뒤에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알바그다디는 이라크 안바르주 서부 국경 지대의 카라블라 산악 지대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그를 제거하는 것으로 IS의 활동에 타격을 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빈라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던 예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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