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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개각/ 장관(급)·청와대수석 14명 프로필

    ■신건 국정원장. 164㎝의 단신이지만 강한 추진력과 칼같은 기질이 있어수사를 맡으면 끝을 보는 특수부 검사 출신.외모와 달리소탈해 부하직원을 편하게 해주는 장점도 갖고 있다.‘이철희·장영자 사기사건’을 담당했다.97년 DJ진영에 합류,98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지냈고 개각 때마다 법무장관 후보에 올랐다.김영삼(金泳三) 정권 초기 법무차관까지올랐으나 슬롯머신 대부인 정덕진씨와의 친분 시비로 중도하차했다.부인 한수희(韓受熹·59)씨와 1남3녀. ■임동원 통일. 치밀하고 깔끔한 업무처리 능력 때문에 육군소장을 지낸군인출신의 체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통일부 장관,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통일분야의 3박자를 두루 갖췄다. 95년 아태평화재단에 합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 및 3단계 통일론 등을 구체화했고 대북 포괄접근구상을 기획·집행했다. 국민의 정부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부인 양창균(梁昌均·62)씨와 3남. ■한승수 외교통상. 치밀하면서도 원만한 성품의 국제경제통.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국제경제를 강의한 3선 의원이기도 하다.공사가 분명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외모에 비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주미 대사,청와대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현 미 공화당 행정부 인맥을 잘 아는 ‘미국통’으로평가받고 있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처조카사위이며 부인 홍소자(洪昭子·61)씨와 1남1녀. ■김동신 국방. 잔정이 없어 친화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한 군내의 대표적인 작전 및 전략통.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해 대미 관계에 밝으며 부시 미 행정부 고위직에기용된 군출신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지난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당시 작전을 지휘하면서능력을 인정받았다.호남 출신 첫 육군참모총장을 기록했으나 96년 ‘북풍 사건’ 연루설 및 군 인사잡음이 화근이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부인 이혜정(李惠貞·57)씨와 1남1녀. ■이근식 행정자치. 조용하고 깔끔하며,다정다감한 성격의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경남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행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뒤 내무부와 총리실,청와대 등주요 부처를 두루 거쳐 행정경험이 풍부하다.꼼꼼한 스타일로 업무공백이 거의 없으며,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조직운영도 매끄러운 편. 부드러운 언행으로 실무를 이끄는 능력은 탁월하지만,소신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있다.부인 허위순(許渭順·53)씨와 3녀. ■김영환 과학기술. 노동운동가에서 치과의사, 시인, 국회의원,장관….곱상한외모와 달리 다양한 삶의 굴곡을 헤쳐 온 인물이다.94년펴낸 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는 70∼80년대학생운동권을 조망하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이 이끌던 재야단체 ‘통일시대국민회의’에서 활동하다 95년 6·27 지방선거 때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기획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부인 전은주(全銀珠·42)씨와 1남2녀. ■장재식 산업자원. 지난 1월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여권내 대표적인경제통. 미 하버드대 국제 조세과정을 수료하고 국세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말해주듯 특히 조세정책에 밝다.14대 총선 때 등원에 성공한 뒤 의정활동을 하면서 서울대와 한양대 등에서 세법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바둑실력(아마 7단)이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수급에 속한다.소탈하지만 고집이세다는 평을 듣는다.부인 최우숙(崔又淑·64)씨와 2남1녀. ■양승택 정보통신. 지난 9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시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주역이다.TDX(전전자 교환기) 개발단장으로 전화 현대화의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부드럽고 소탈한 성격의 테크노크라트라는 점에서 조직장악력은 미지수.박지원(朴智元) 신임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 가까운 게 발탁의 또다른 배경으로 대두된다.부인 황영자(黃英子·61)씨와 1녀. ■오장섭 건설교통. 건설사업가 출신의 3선 의원으로 14대 때 민자당 의원으로 등원했다.15대 총선때 신한국당 후보로 나섰다가 자민련 후보였던 조종석(趙鍾奭) 전 의원에게 패했으나 재선거에서 조 전 의원을 꺾은 뒤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겼다.원내총무,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당의 안정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외유내강형으로 추진력과 협상력이 뛰어나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신임이 두텁다.부인 인계선(印桂善·51)씨와 2남1녀. ■정우택 해양수산.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자민련을 대표하는 경제통. 단정한외모에 논리적인 언변을 갖춰 TV 토론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지난 2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수행,입각이 점쳐졌다.14대 총선 때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낙선한 뒤 15대에서 자민련 당적으로 국회에 입성했다.지난 79년 김영삼(金泳三) 신민당 총재가 직무정지 가처분을받았을 때 총재직무대행을 맡았던 5선의 정운갑(鄭雲甲)씨가 부친이다.부인 이옥배(李玉培·44)씨와 2남. ■김덕배 中企특위위원장. 활달하면서도 보스 기질을 지닌 의리파이다. 자수성가형사업가 출신으로 한국청년회의소(JC) 회장과 민주당 외곽조직인 ‘연청’의 회장직을 맡아 왔다.경기도 정무부지사재직때 구속된 임창열(林昌烈) 지사의 공백을 메워 실무능력과 의리를 인정받았다.현직만 14개에이를 만큼 활동반경이 넓다.연청회장으로 뛰어난 조직관리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김홍일(金弘一) 의원 및 동교동계 의원들과도가깝다.부인 유인숙(兪仁淑·42)씨와 2녀. ■나승포 국무조정실장. 행시 10회 합격후 전남 함평군수와 여수시장,목포시장,전남 행정부지사 등을 역임한 ‘지방 행정통’.원만한 성품에 시의성 있고 정확한 정책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이 장점으로 꼽히나 중앙무대에서의 지명도는 낮은 편이다.호탕한성격 덕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지난 95년 7월부터 3년10개월동안 전남 행정부지사를맡아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장수 기록을 세우기도.부인 송순자(宋順子·58)씨와 3남. ■박지원 정책기획수석. ‘김심(金心)’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핵심측근 가운데 한명이다.발군의 부지런함과치밀함,뛰어난 화술로 야당시절부터 ‘명대변인’이라는평을 얻었다.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사건때 야당의 집중공세로 문화관광부장관에서 물러났으나 그 뒤에도 여론 수집및 전달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 청와대 재입성으로 여전히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줬다. 부인 이선자(李善子·58)씨와 2녀. ■이태복 복지노동수석. 시장 지게꾼에서 노동운동가,신문사 발행인에서 청와대수석으로 탈바꿈했다.국민대 2학년 때 반유신 독재투쟁으로제적된 뒤 서울 용산시장에서 지게꾼 생활을 하다 노동운동에 투신했다.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인‘노동의 역사’등 20여권의 노동저서를 펴냈다.‘불의에는 비타협적이나 소박한 노동자’라는 게 동료들의 평.88년 특별사면된 뒤 노동일보를 창간했고 뒤늦게 심복자(沈福子·44)씨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다.
  • [이사람] 여성원로과학자 신영애박사

    국내 생명과학계가 미국과 교류를 시도할 때나 거꾸로 미국 과학계가 한국 사정을 알고자 할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통하는 길이 있다.재미 원로 여성과학자 신영애박사(辛英愛·69)를 만나는 것이다. 미국립보건원(N I H)에서 35년간 연구원과 과학행정가로활동해 온 신박사는 워싱턴D.C.주변 과학계는 물론 정계,관계에 촘촘한 그물망을 갖고 있는 마당발. 그가 미국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 위해 한국에왔다.공직을 은퇴하고 고국의 젊은 과학도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을 나누고자 영구 귀국한 것이다. 한발 먼저 들어와 서울 청담동에 빌라를 마련해 놓고 그를기다린 남편은 “노인네가 은퇴까지 하고 한국에 와선 뭘그리 바쁘게 돌아다니느냐”며 제발 편하게 좀 살자고 충고를 한다.하지만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국제협력실상임자문관이라는 공식 직책에 연세대,서울대,이대에서강의까지 맡은 그는 “바쁘게 사는 건 내 천성”이라며 슬쩍 빠져나간다. 6·25전쟁 통에 도미해 대학을 졸업한후 2년 간격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 2년만에 종신연구원직을따내며 과학행정가로 자리잡기까지는 그의 이런 천성이 큰몫을 했다. 대학원때부터 ‘뻔뻔한’ 성격에 조직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는 동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교수나 디렉터를 대리하는 일이 많았고 외부 회의에 자주 참석하게 되면서 뛰어난 대인관계 수완을 발휘해 마침내 행정쪽으로 방향전환을 권유받기에 이른다.그가 마지막 10년동안 맡았던 연구평가담당관은 국내외에서 들어온 각종 연구지원신청과제에 대해 적절한 관련전문가를 찾아내고 평가단을 구성해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자리다.자연히신진 연구자들을 키워주기도 하고 실력있는 전문가를 사귈수도 있어 광범한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또한 연방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의회 설득작업을 통해서는 관계와 정계 인사들과도 빈번한 접촉을 갖게 돼 인맥 구성은 더욱다양해진다.신박사는 이곳서 쌓은 연구관리 노하우를 모국에 아낌없이 전수하는 한편 타고난 근면함,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미간 교량역을 도맡아 왔다.워싱턴D.C에서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미과학기술포럼은 그의 역할이 숨겨진 대표적 사례. 지난 학기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시작한 ‘과학커뮤니케이션’강의는 그가 귀국후 가장 즐겁게 몰두하고있는 분야다.“NIH는 연간 80%의 연구비가 외부에 개방돼있다.한국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비를 따낼수 있다.나의 목표는 유망한 고국의 과학도들에게 NIH 평가자들을 설득할수 있는 의사소통기술을 가르쳐맘껏 연구를 펼칠수 있게 하는 것이다”과학자들끼리,혹은 과학자와 대중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수 있도록 글쓰기, 발표력 등을 훈련하는 이 분야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사실 과학자들은 어렵고 폐쇄적인 전문용어로 대중들을 소외시켜 왔다.그러나 이는 오직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과학자의 사명에 어긋나며 실제로 국민과 정책결정자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더 이상 과학의 존립기반마저 위협받을 상황에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훈련이 필수적이라는게 그의 소신이다.영어로 진행되는 이 강의는 반응이 좋아 출강 요청이쇄도하고 있다. 그는 미국대학 경제학교수로서 역시 은퇴한 남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자녀들은 프린스턴 스탠포드 다트머스등 명문대와 예일등 대학원을 나와 법률 금융분야에서활동한다. 일과 결혼,가족을 모두 성공시킨 비결은 무엇이었을까.“남들이 안할 때 일찍 시작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는 그래도 한가지만 들어달라고 하자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능성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가 귀국함으로 해서 미국의 유용한 한 거점을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NIH는 은퇴한 나에게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 직책을 주며방까지 마련해 주었다”며 “언제든 내역할이 필요한 때면 달려가겠다”고 말한다.나아가 미국의 친구들을 국내에끌어들여 합동강의를 꾸밀 계획도 갖고 있다고 들려 주었다.과학계의 맏누이 같은 그에게 칠순 나이로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가 느껴져왔다. 신연숙편집위원 yshin@. *신영애 박사는. ■32년 서울출생(본명 임영애,‘신’은 남편의 성)■53년 도미■56년 미국 머서대(조지아 메이컨 소재)졸업(화학전공)/58년 오하이오주립대(콜럼버스 소재)석사(무기화학전공)/60년 〃박사■61∼63년 일리노이대·65∼67 미국립보건원(NIH)산하 노인학연구센터 박사후과정■67∼89년 NIH 노인학연구센터 분자세포생물학연구실 무기생화학부 연구원■89∼91년 NIH 노화연구소 분자세포생물학 프로그램관리담당관/일반의학연구소 질환세포및 분자기초 프로그램 담당관/당뇨 소화 및 신장질환연구소 신진대사질환연구프로그램 담당관■91∼99년 〃 구강및 두개안면연구소 연구평가담당관■99년12월31일자로 NIH은퇴■2000년 5월 영구귀국■∼현재 과기부 산하 과학기술정책평가원 국제협력국 상임자문관/NIH 포가티국제센터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한국과학기술원·이화여대등 출강. * NIH와 한국인 과학자들. 미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메릴랜드주 베데스타 소재)은 미국정부 산하기관이지만 인류건강증진을 위한 의학연구의 세계적 메카라 할 만하다.연구영역만도 미국인들에 많은 심장병에서부터 AIDS,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전(全)지구적이며 새로운 지식의 싹이 보이는 곳이면 국적,소속,신분,연령을 불문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유명하다. 이같은 사실은 연간 203억달러(2001년기준)의 예산 중 자체 연구소에서 쓰는 돈은 10%에 불과한 반면 일반 대학및민간연구소,외국기관에 지원하는 연구비는 82%나 되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나머지 8%는 행정비용).국립암연구소등 26개의 산하 연구소와 센터에 4.000명의 박사급연구진을 포함한 1만5,6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NIH밖에서 연구에 참여하는 인원은 2,000개 연구소,5만명에이른다. 지난 2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것을 비롯, 22년 사이 미국내 심장병사망율을 36% 감소시키고 5년간 암환자생존율을 60% 증가시켰으며 90년도 세계최초로 유전자치료를 실시하는등 연구성과도 눈부시다. 이곳에서 연구를 하거나 연구비를 지원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97명이나 될 정도다. 외국인들에 대한 문호도 활짝 열려있어 이곳서 연구하는한국인 과학자는 250명에 이른다.이는 중국(300명)에 이어두번째. 연구자로서 최고지위인 랩 치프(Lab Chief,세포신호전달연구실장)에 오른 이서구박사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정신의학연구소 진혜민박사·생명공학정보센터 장원희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해 화제가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서울대 연구처장을 맡고 있는 의대 박상철교수가 이곳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는등 학계,연구계 인사가 많아 동창회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미국인들의 NIH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높아만 가고 있다.NIH는 99년과 2003년사이에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으며올해도 약 6%,10억달러의 예산 증액이 이뤄져 이 계획은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신연숙편집위원
  • [공직인맥 열전](39)법무부 검찰④

    서울지검은 전국 검사의 3분의 1이 재직하는 ‘매머드’지검이다.웬만한 대도시 검찰청보다 큰 동·서·남·북부지청과 의정부지청을 거느리고 있다.권력과 경제력이 집중된 수도권을 관할하는 서울지검 사령탑인 서울지검장은‘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요직중의 요직인데도 역대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사례가 많은 것은 아이러니다.91년4월 전재기(全在琪) 전 서울지검장부터 서울지검장 출신으로서 검찰총장에 오른 인물은 박순용(朴舜用) 현 검찰총장이 유일하다.전재기·이건개·송종의·김종구·최영광·최환·안강민·김수장 전 서울지검장은 총수에 오르지 못했다.총장 자리가 ‘정치 바람’을 많이 탄다는 반증이기도하다. 부산·대구·광주·대전지검 등 광역시를 낀 지검도 주요 포스트.수도권의 인천과 수원지검은 ‘고참’들이 맡는것이 관례다.검사장급이면서도 일선에서는 한발 비껴난 고검 차장은 대개 초임 검사장이 맡는다.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은 김종구,김수장씨로 이어져오는 대전고 라인.고려대 인맥이기도 하다.89년 광주지검형사1부장으로 재직할 때 조선대생 이철규군 변사사건을수사해 타살이 아닌 실족사라는 결론을 내렸다.83년 명성사건 수사에도 참여하는 등 특수수사 경험도 많다.시골 사람같은 친근한 외모에 솔직한 성격. 조준웅(趙俊雄·사시 12회) 인천지검장은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법대에 들어가 늦게 검사가 됐다.최연장 검사.진종채 전 2군사령관이 장인.서울지검 공안1·2부장을 지낸 공안통. 송광수(宋光洙·사시 13회) 부산지검장은 경남 마산이 고향으로 서울고를 나왔다.‘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1과장을 거친 기획통.서울지검 형사부장 때 경원대 입시부정사건을 지휘했다.바둑 실력이 프로에게 2점으로버티는 아마추어 최고수급. 정충수(鄭忠秀·사시 13회) 수원지검장은 활달한 성격에보스 기질이 있다.서울지검 산하 3개 지청장을 역임했고법무행정에도 밝다.장인이 B양조 회장.목포고,고려대 출신. 김진환(金振煥·사시 14회) 대구지검장은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때 아이스하키 특기생 선발비리 사건을 지휘했다. 친화력 있고 성품이 원만해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정홍원(鄭烘原·사시 14회) 광주지검장은 대검 중수부 3·4과장,서울지검 특수 1·3부장을 거친 특수수사통.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수사에도 참여했다.격의없는 소탈한 성격이 장점. 김영진(金永珍·사시 14회) 창원지검장은 검찰1과장을 거쳐 인사·기획분야에 해박하다.소탈하고 겸손한 성품.경남 밀양이 고향으로 부산고를 졸업한 ‘PK’. 김규섭(金圭燮·사시 15회) 대전지검장은 목포고 출신.겸손하면서도 합리적인 성품으로 청렴하다는 평.서울지검 3차장 때 ‘고급 옷 로비의혹 사건’ 수사를 맡았다. 황선태(黃善泰·사시 15회) 청주지검장은 실무에 밝고 성실하며 인화력에 강점이 있다는 평.‘동남아 각국의 사법제도 및 공안정세’라는 책(공저)을 썼다. 정진규(鄭鎭圭·사시 15회) 울산지검장은 겸손하면서도소신이 강해 위아래의 신망이 두텁다.대검 공안2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낸 공안통. 채수철(蔡秀哲·사시 15회) 춘천지검장은 차분한 성품으로 책임감이 투철한 실무통.매사에 완벽을 중시해 업무처리에 엄하다. 김종빈(金鍾彬·사시 15회) 전주지검장은 수사 및 기획분야에서 뛰어나고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조규정(趙圭政·사시 15회) 제주지검장은 온화한 성품의‘선비형’ 검사.업무처리는 꼼꼼하고 빈틈이 없다. 손성진기자 sonsj@
  • 두산重 회장 박용성씨 한중 민영화후 첫 주총

    한국중공업은 23일 서울 역삼동 지사에서 민영화 이후 첫주총인 제38회 정기주총을 열고 회사 이름을 두산중공업㈜으로 바꿨다. 이날 주총은 박용성(朴容晟) OB맥주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민경훈(閔庚勳) 두산건설 부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박용만(朴容晩) ㈜두산 전략기획본부 사장을 이사로각각 선임하고 박지원(朴知原) 전무(전 두산상사 BG기획담당)를 유임하는 등 두산 출신 인맥을 대거 진출시켰다. 윤영석(尹永錫)사장과 김재학(金載學) 부사장은 유임됐고최송학(崔松鶴) 대우중공업 전무가 부사장으로 선임됐다. 주총에서는 사내이사 8명과 사외이사 6명 등 모두 14명이새로 선임됐다. 강선임기자 sunnyk@
  • [공직인맥 열전](28)법무부 검찰③

    검사장은 ‘사단장’격이다.검찰의 최일선 지휘관으로서일선 지검장과 대검찰청의 부장,법무부 국장 등을 맡는다. 검사장 중에서도 서울지검장,대검 중앙수사부장,대검 공안부장,법무부 검찰국장은 ‘빅4’로 불리는 요직이다. 검사라면 누구나 검사장에 오르는 게 꿈이다.초임 검사가검사장이 되려면 20년 이상 걸린다.검사장은 모두 31자리. 매년 검사장 승진인원은 5명 남짓한 정도여서 검사장의 문턱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옷을 벗는 검사들이 많다.특히 사시 동기생이 수백명씩 되는 23회 이후 기수에서는 그야말로 ‘바늘구멍’이다.때문에 검사장 승진철이 되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지난해 인사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16회 K검사가 탈락했다.15회 H검사 등은 또다시 밀려나 사실상 검사장의 꿈을 접었다. 검사장이 되기 위해 검찰 내부 뿐 아니라 정·관계 요로의인맥을 동원하기도 한다. 제갈융우(諸葛隆佑·사시 11회) 대검 형사부장은 91년 ‘수서 사건’ 때 중수부 1과장으로서 비리를 파헤친 ‘TK’출신.문민정부 시절 몇차례 탈락 끝에 간신히 검사장 반열에 오르긴 했으나 ‘대전 법조비리’사건에 연루돼 고검장승진에서는 계속 배제되고 있다. 김승규(金昇圭·사시 12회) 공판송무부장은 전남 광양 출신에 순천 매산고를 졸업했다.지난해 검사장 인사에서 서울지검장에 천거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맡을 수 없다’고고사해 안타까움을 샀다. 김대웅(金大雄·사시 13회) 중앙수사부장은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의 광주일고 3년 후배.구여권의 안기부 예산전용사건과 고속철 로비사건 등을 무난히 처리했다.각계에 수많은 ‘형님’ ‘아우’들을 둔 ‘마당발’. 김원치(金源治·사시 13회) 감찰부장은 제주 출신으로 대표적인 공안통.구정권에서 공안 역량을 쌓은 ‘구공안’으로 분류돼 공안부장 선임에서 밀려나기도 했다.‘신좌파와테러리즘’,‘독일 적군파’ 등 많은 책과 논문을 썼다. 이범관(李範觀·사시 14회) 공안부장은 총 97명인 연세대출신 검사들의 맏형이다.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국회 수석전문위원도 지냈다.김중권(金重權) 민주당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행시 10회에도 합격했다. 유창종(柳昌宗·사시 14회) 강력부장은 국내 마약수사의‘대부’.국내보다 세계 마약수사계에서 더 알려져 있다.서울지검 강력부장 때 슬롯머신 업계의 비리를 캤다.단소 불기와 고와(古瓦) 수집이 취미. 이정수(李廷洙·사시 15회) 기획조정부장은 충남 서산 출신의 고려대 인맥.서울지검 3차장 때 경성비리 사건을 수사하다 수사팀이 해체되면서 1차장으로 수평이동한 뒤 검사장으로 승진했다.검찰 조직과 기획 분야에 밝으며 특수수사경험도 많다.‘일본 법무부 조직과 기능'등 3권의 저서가 있다. 법무부에선 국장 4자리를 검사장들이 맡고 있다. 김학재(金鶴在·사시 13회) 검찰국장은 목포고 인맥으로나서기를 싫어하지만 업무처리는 분명하다.대검 중앙수사부2과장으로도 재직,특수수사 분야에도 밝다. 명로승(明魯昇·사시 13회) 법무실장은 법무부와 검찰의기획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기획통.‘산을 뛰어 다닌다’고 할 정도로 등산을 좋아한다. 장윤석(張倫碩·사시 14회) 기획관리실장은 대검 공안기획관과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거친 공안통.조용한 성품에 합리적이고 실무에 밝다.경북 영주가 고향이나 경복고를 졸업했다. 박종렬(朴淙烈·사시 15회) 보호국장은 법무부 내 ‘아이디어맨’으로 통한다.보호국장을 맡은 뒤 소년원을 특성화학교로 바꾸는 등 많은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겼다. 손성진기자 sonsj@
  • [공직인맥 열전](37)법무부·검찰②

    5월말이면 박순용(朴舜用·사시 8회) 검찰총장의 2년 임기가 끝난다.차기 검찰총장은 사시 9∼12회가 포진한 고검장급에서 나올 전망이다. 검찰 인맥의 정점에 있는 고검장급은 모두 8명.대검차장과법무연수원장, 법무부차관,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고검장이다.출신지별로는 경북 3명,호남 2명,경남 2명,서울 1명으로 골고루 안배돼 있다.고려대 출신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고검의 역할이 강화되긴 했으나 직접 수사를 하는 일이 없어 고검장은 ‘촌수만 높은’ 한가한 직책으로 꼽힌다.검찰총장으로 발탁되거나 대법관,헌법재판관 등으로 영전되기도하고 동기나 후배가 총장이 되면 옷을 벗는 마지막 보직이되기도 한다. 신승남(愼承男·사시 9회) 대검차장은 현재 가장 유력한차기 검찰총수 후보.목포 출신으로 목포고를 졸업했다.검사장급 중 김학재(金學在) 법무부 검찰국장,김규섭(金圭燮)대전지검장,정충수(鄭忠秀) 수원지검장 등 3명이 목포고 동문이다. 신차장은 서울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사시에 수석 합격,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특채돼 공직자 사정업무를 맡았던 특이한 경력이 있다.다소 차가운 느낌을 주는 외강내유형.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는 평을 듣는다.공안·특수수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도 거쳤다.조상호 전체육부장관의 사위. 주선회(周善會·사시 10회) 법무연수원장은 오는 22일 퇴임하는 이영모(李永模)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헌재에는 사시 동기생인 송인준(宋寅準)재판관이 있다. 이명재(李明載·사시 11회) 서울고검장과 김경한(金慶漢·사시 11회) 법무부차관은 사시 동기이면서 경북고와 서울법대 선후배 사이.박순용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찰내TK라인을 잇고 있다. 이 고검장은 특수수사 분야에서,김차관은 법무부 검찰국과공안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선의의 경쟁을 해왔다.이 고검장의 형은 이경재 기업은행장,동생은 이정재 재정경제부차관.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영동개발사건 등 경제사건 수사에 족적을 남겼다.부드럽고 겸손한 성품.김차관은검찰1과장을3년간 역임,검찰행정과 인사에 밝고 공안수사와 교정행정 분야 등 다방면에서 경력을 쌓았다.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원만한 대인관계가 큰 장점. 김영철(金永喆·사시 11회) 대구고검장은 ‘TK’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법대를 나왔다.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에 정이 많은 외유내강형.서울지검 특수2부장과 강력부장을 역임한 특수·강력수사통.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할 때 인권법과 재외동포법 입안에 큰 역할을 했다. 호남인맥의 실세인 임휘윤(任彙潤·사시 12회) 부산고검장은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다.92년에는 호남 출신으로는 두번째로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역임했고, 69년 고 김용제(金龍濟) 서울지검장 이후 호남 출신으로 30년 만에 서울지검장에 올랐다.공안·특수수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호방한 성격에 보스 기질이 있다. 이종찬(李鍾燦·사시 12회) 광주고검장은 검찰내 손꼽히는특수수사통.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려대를 나왔다.체구는 작지만 추진력이 강하다. ‘율곡비리’ 사건,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12·12 및5·18사건 재수사 등 굵직한 사건을 지휘했다. 한부환(韓富煥·사시 12회) 대전고검장은 서울 출신으로경기고 인맥의 정점에 있다.자상하면서 유머가 뛰어나 검찰내 재사(才士)로 알려져 있다.서울고검 차장 시절 ‘수사지휘론’을 썼다.대검 중수부 과장 때 ‘수서사건’ 수사를맡는 등 특수수사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손성진기자 sonsj@
  • [공직인맥 열전](36)법무부·검찰①

    검사들은 외부에서 검찰의 인맥을 논하는 것을 싫어한다. 승진과 출세를 위해 출신 지역과 학교별로 뭉치고 줄을 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인맥’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다. 그러나 지연과 학연에 바탕을 둔 검찰의 인맥 분류는 아직도 통용되는 게 사실이다.검찰의 인맥은 5공 때부터 본격형성됐다.검찰권이 정권의 풍향에 민감해지면서 인맥은 일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이다. 검찰의 인맥은 크게 6개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출신지에따라 호남·TK(대구,경북)·PK(부산,경남)·충청 인맥이,출신 학교에 따라 경기고·고려대 인맥이 각각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전체 검사수는 1,284명.출신 지역별로는 서울·경기369명,호남 266명,대구·경북 225명,부산·경남 221명,충청 146명의 순이다.장관을 포함해 검사장급 이상 40명은 호남 13명,부산·경남 9명,대구·경북,충청 각 6명,서울·경기5명 등의 순이다. 지연은 학연과 중복되기도 한다.각 지역의 옛 일류고를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된다. 출신 고교별로는 경기고 57명,경북고 45명,전주고 31명,광주일고 27명,서울고,대전고 각 25명,경복고·진주고 24명의 순이다. 검사장급 이상에서는 경기고 6명,경북고·목포고 각 4명,대전고 3명으로 상대적으로 많다.출신 고교는 모두 240여개교나 된다.고교 무시험전형 세대의 진출로 옛 일류고 중심의인맥이 약화됐음을 뜻한다. 지연에 의한 인맥은 5공,6공,문민정부 등을 거치면서 특정지역 출신이 우대받으며 생겨났다.5·6공때는 TK출신이 요직을 독점했다.문민정부에서는 PK출신이 득세했다.이번 정권에서는 문민정부 때까지 ‘홀대’받던 호남 출신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호남 출신은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을 필두로 신승남(愼承男) 대검차장,임휘윤(任彙潤) 부산고검장,김대웅(金大雄) 대검중앙수사부장,김학재(金鶴在) 법무부 검찰국장이 앞자리에 포진해 있다. 박종렬(朴淙烈) 법무부 보호국장,김승규(金昇圭) 대검 공판송무부장,정충수(鄭忠秀) 수원지검장,채수철(蔡秀哲) 춘천지검장,김규섭(金圭燮) 대전지검장,김종빈(金鍾彬) 전주지검장,조규정(趙圭政) 제주지검장,임래현(林來玄) 광주고검차장이 뒤를 잇고 있다. 대구·경북 출신은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김경한(金慶漢) 법무부차관,이명재(李明載) 서울고검장,김영철(金永喆) 대구고검장,제갈융우(諸葛隆佑) 대검 형사부장 등이 있다. 장윤석(張倫碩) 법무부 기획관리실장,김재기(金在琪) 대전고검 차장도 같은 지역 출신이다. 부산·경남 출신은 주선회(周善會) 법무연수원장,이종찬(李鍾燦) 광주고검장,조준웅(趙俊雄) 인천지검장,송광수(宋光洙) 부산지검장,정홍원(鄭烘原) 광주지검장,황선태(黃善泰) 청주지검장,김영진(金永珍) 창원지검장,곽영철(郭永哲) 서울고검 차장,김성호(金成浩) 대구고검 차장 등이 있다. 충청 출신은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이 맏형격.유창종(柳昌宗) 대검 강력부장,이정수(李廷洙) 대검 기획조정부장,윤종남(尹鍾南) 부산고검 차장,서영제(徐永濟) 법무연수원기획부장이 동향이다. 경기고 출신은 한부환(韓富煥) 대전고검장,김진환(金振煥) 대구지검장,정진규(鄭鎭圭) 울산지검장,박종렬 보호국장,명로승(明魯昇) 법무실장,임래현 광주고검 차장,임승관(林承寬) 의정부지청장,고영주(高永宙) 서울지검 1차장,홍석조(洪錫肇) 서울지검 2차장,박상길(朴相吉) 대검 수사기획관등이 있다. 고려대 출신은 김 법무장관을 비롯,주선회 법무연수원장,이종찬 광주고검장,김각영 서울지검장 등이 맥을 이루고 있다.이정수 기획조정부장,정충수 수원지검장,김성호 대구고검 차장,김종빈 전주지검장이 동문이다.연세대 출신으로는이범관(李範觀) 대검 공안부장,윤종남 부산고검 차장,민유태(閔有台) 대검 중수3과장 등이 있다. 검찰의 인맥은 특정 근무부서나 근무지를 통해 형성되기도 한다.거창과 통영 등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출생지를 관할하는 지청장은 구 정권에서 소위 ‘능참봉’으로 불리며 우대받았다.이번 정권에서는 해남지청장 출신이 중용됐다. 김대웅 중수부장,김승규 감찰부장,김규섭 대전지검장,청와대 사정비서관 출신 박주선(朴柱宣) 민주당 의원 등이 이자리를 거쳤다. 손성진기자 sonsj@
  • [공직인맥 열전](35)통일부.하

    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통일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남북회담사무국이 통일부로 이관된 이후다.손재식 장관(82년1월∼85년2월)은 통일부에도 일반관료 출신이 필요하다고 생각,5급 12자리 등 별정직 16자리를 일반직과 복수직으로 조정하면서 고시 출신들을 대거 수혈했다. 통일부에서 행시 출신 중 가장 앞선 사람은 홍양호 인도지원국장과 현재 미국에서 공부중인 황하수 전 교류협력국장이다.경북고 동기동창에 행시 21회인 두 사람은 다른 정부부처에 근무하다 통일부로 옮겨왔다.홍 국장은 장관 비서관,총무과장 등을 지냈다.홍 국장은 이산가족 분야를 맡아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상봉을 성사시켰다. 두 사람 다음으로 행시 22회에서 박찬봉 감사관,홍재형 경수로기획단 정책조정부장 등을 꼽을 수 있다.행시 23회에서는 조명균 교류협력심의관,고경빈 인도지원기획과장,조용남총무과장 등이 선두주자다. 이외에 행시 27회인 김천식 통일정책실 정책총괄과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비고시 출신으로는 손필영 정책심의관과 변경섭 통일교육원 개발지원부장 등을 꼽을 수 있다.두 사람 다 9급 공채로 다른 정부부처에서 근무하다 통일부로 옮겨왔다. 80년대 전후로 특별채용직은 이전보다는 적은 숫자지만 꾸준하게 들어왔다.79년에 들어온 조건식 교류협력국장,신언상 정보분석국장,이관세 정보분석심의관,80년에 들어온 이봉조 청와대 통일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조 국장은 청와대통일비서관을 거쳐 인도지원국장 교류협력국장 등을 지냈다. 청와대 근무 시절 일반직으로 전환시험을 봐 통일부 내주요보직을 두루 거친 셈이다. 신 국장은 남북회담사무국 운영2부장,공보관 등을 거쳤다.신 국장은 공보관 재임시 각 실국장의 매주 기자단 브리핑을 정례화하는 ‘악역’을 맡기도했다. 80년대 후반,특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박동진 장관(85년8월∼86년8월) 비서관으로 들어온 김홍재 공보관,김중태정착지원사무소장,서호 정보화담당관 등이 대표적이다.최근에는 현 박재규 장관 비서관으로 들어온 양무진 비서관이유일한 편이다. 90년대 들어 국내외적 통일환경이 변하면서 통일부 조직도크게 늘어났다.교류협력국(91년7월)이 생겼고,늘고 있는 탈북자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산가족문제를 다루기 위해 인도지원국(96년12월)도 만들어졌다. 더 큰 변화는 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수로기획단의 출범(95년1월)이다. 최동진 전 주영대사가 초대 단장으로 1년동안 기획단을 이끈 뒤 96년부터 장선섭 단장이 맡고 있다.차관급인 이 자리를 두고 한 때 통일부와 외교부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미·일·유럽연합(EU)과의 협상 등에는 외교부 출신자가적임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장 단장은 주프랑스 대사, 주덴마크대사 등을 지낸 정통외교관 출신으로 현재 KEDO 집행이사회 의장직도 맡고 있다. 통일부에 다양한 출신들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내부에서마찰음이 나오기도 했다.90년대 들어 고시 출신들이 총무과장을 맡게 되자 이들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인 것이 대표적이다.별정직은 ‘융통성이 없다’,일반직은 ‘논리적이다’라는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문민정부 시절 도입된 별정직공무원의 일반직 전환시험도별정직의 ‘거부’로 유명무실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환시험에 대다수 별정직이 응시,직급 구분이 큰의미가 없는 부서로 바뀌어감에 따라 이런 움직임은 90년대후반 들어 누그러들었다. ‘남북 화해협력’에 앞서 ‘부서내 협력’이 된 것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정권 재창출 위해 합당을”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송석찬(宋錫贊)의원이 13일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2여 합당을 간곡한 어조로 건의해 눈길을 끌고 있다. 송 의원은 건의문에서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대통령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는다”“과거에도 그러했고,지금도 그러하듯 저 송석찬은 앞으로도…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김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시했다. 송 의원은 합당을 건의한 배경에 대해 “정책 혼선이 잦은공조체계에서는 정권 재창출은 말할 것도 없고,지방선거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현 상황을 대통령님과 민주당을 사랑하는 많은 국민과 당원들이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며 하루 속히강력한 정부가 탄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대립성격을 지닌 자민련과 민주당의 조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역과인맥으로 형성되고 유지돼 온 우리나라 정당정치에서 진정한보수와 진보의 의미는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이고, ‘나라와국민을위해서’라는 단 한가지 명백한 목표 앞에서는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혹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에게) 당권을 맡김으로써 파생될지 모르는 권력 분산의 우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이 당원들이 한마음이 돼 한 치의 착오도생기지 않도록 대통령님 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공직인맥 열전](34)통일부.상

    통일부의 인맥은 다른 정부부처에 비해 별정직이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별정직도 국가정보원 출신과 특별채용 출신으로 나눠진다.이는 통일부의 출생과정과 이후 변화상에 따른 ‘태생적인’ 것이다. 통일부는 69년 3월 45명으로 출발한 국토통일원이 전신이다.당시 민간단체와 정당들이 필요성을 먼저 주장하고 나섰고이에 따라 조사·연구·홍보가 주요 업무인 국토통일원이 생겼다.당시 통일원의 조직은 3실 1과 7담당관이었다. 행정업무를 맡는 일반직 공무원은 경리·인사 등 총무과에한정됐고 숫자도 적었다.통일원 출범 이후 늘어나는 자리도별정직 위주로 만들어졌다.당시 남북관계상 북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통일부의 기능도연구 중심에 국한됐기 때문이다.따라서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관련 학문을 공부하다 들어온 사람들이 오랫동안 통일부를 이끌어왔다.대학졸업자는 6급으로,석사 학위 소지자는5급으로 임용됐다. 70년대 초반 ‘5급 상당 채용’으로 들어온 사람으로는 양영식 차관,이호 기획관리실장,최병보 통일교육원장 등을 꼽을 수 있다.양차관은 공보관,통일정책실장,통일교육원장 등을 거쳤다.현 정권 출범 때 통일부를 떠나 통일연구원장을맡다가 99년 개각 때 돌아와 눈길을 끌었다.학계와의 인연이 깊은 편이다. 이실장은 경제과학담당관,정보분석실장을 거치는 등 북한경제에 있어서는 내로라하는 전문가로 꼽힌다.업무와 관련,잘 나서지 않는 성품이다.최원장은 통일부에서 공보관을 10년 이상 맡아 93년 전·현직 출입기자들의 감사패를 받기도했고 이후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공보관 시절 쌓은 다양한인맥이 큰 힘이다. 통일부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특채 그룹은 ‘이용희 사단’이다.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지낸 고(故) 이용희장관(76년 12월∼79년 12월) 때 들어온 정세현 전 통일부 차관,구본태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한나라당 경기 김포지구당위원장),김형기 통일정책실장,박성훈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중 남북회담 사무국장과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낸 김실장은 지난해와 올해 이뤄진 남북 장관급회담의 실무대표로활동해왔다.회담 진전사항 등 남북간에 논의된 사항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위원은 통일정책실장,경수로기획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경수로기획단 출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통일부는 80년 남북회담사무국의 조직·인력·건물을 당시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넘겨받으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이관된 사람들은 정보직에서 일반직으로 지위가 바뀌면서 처우면에서 ‘강등’당하는 조치를 입은 셈이다.반면 이들은 그동안 남북간 각종 회담을 주도해와 통일부로 옮겨온 뒤에도회담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맡아왔다. 이 때 안기부에서 넘어온 인원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손인교 남북회담사무국장,이정윤·이종렬 상근위원 등을꼽을 수 있다. 손국장은 92년 처음 문을 연 남북연락사무소 초대소장,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의 선발대 단장 등 30년 동안 회담에 관여해왔다.이정윤 위원은 통일교육원 교수부장,회담사무국 기획부장 등을 거쳤고 이종렬 위원은 회담사무국 운영부장,인도지원국장 등을 거치는 등 회담에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기획관리실장,정책실장,남북회담사무국장 상근위원(3명),통일교육원장 등 통일부내 7개인 1급 자리는 아직 고시출신의몫은 아닌 셈이다.80년대 초반부터 고시출신 공무원들이 통일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통일부는 서서히 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전경하기자 lark3@
  • 삼성 ‘3세 경영’ 본격 시동

    이재용씨의 삼성전자 상무보 임명은 삼성가(家) 경영권 승계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상무보가 친정체제를 구축, 경영전면에 나서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같다. ■의미 삼성은 재용씨의 임원선임이 경영수업이 시작됐음을의미하는 것이지,본격적인 경영참여나 경영승계는 아니라고강조한다. 그러나 이 상무보는 이미 지분구조로 보면 삼성을 지배할수 있는 실질적 소유주다. 따라서 그의 경영참여는 3세 경영체제가 가동에 들어갔음을뜻한다.물론 경영자로서의 자질검증 등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무슨 일 할까? 이 상무보가 일하게 될 경영기획팀은 삼성전자의 핵심부서다.경영기획팀은 사업전략그룹과 미래전략그룹을 축으로 태스크포스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 상무보는 미래전략그룹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전략 그룹은 ‘디지털 컨버전스’ 등 미래전략과 비전을 만드는 곳이다.이 곳에서 최고경영진을 보좌,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발굴하는 일에 체중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수업은 누가 이 상무보는현명관(玄明官) 삼성물산 회장,삼성전자 윤종용(尹鍾龍) 부회장,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 등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진대제(陳大濟) 디지털 가전부문 사장, 반도체 이윤우(李潤雨) 사장 등 삼성전자의 테크노 CEO들로부터도 신기술 개발등에 관해 조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승계는 언제쯤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26살이던 65년에 동양방송 이사가 된 뒤 79년 부회장,88년 회장에 올라23년만에 경영대권을 장악했다. 이에 비하면 이 상무보는 출발이 늦다. 그가 상무-전무-부사장-사장-부회장을 거쳐 회장까지 오르려면 이 회장의 건강 등 여러변수가 있겠지만 40살은 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10년은 주요 포스트에서 실무를 익혀야 국내 최대그룹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되고 나름의 인맥을구축,경영권 승계를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상무보는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의 오프라인기업 지주사인 삼성생명지분 19.3%,온라인 지주사인 삼성SDS지분 10.1%(BW 제외)를 갖고 있으며,인터넷기업 지주회사인 e-삼성지분60%를 갖고 있어, 그룹전체를 재용씨 체제로 묶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건강과 최근 젊은 층이 경영전면에 나서는 조류에 비춰 조기승계를 점치기도 한다. 물론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부정적 여론, 변칙증여에 대한 시민단체 반발 등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룹인사 특징은 실적주의와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의 약진으로 요약된다.사상 최대실적을 올린 삼성전자 임원 승진자가 148명으로 전체 40%가량을 차지했다. 삼성SDI 21명, 삼성전기 17명까지 포함하면 전자 계열사의임원승진이 절반을 넘는다. 구조본 기획홍보팀장인 이순동(李淳東) 전무가 부사장으로,삼성전자 홍보팀장 장일형(張一炯) 상무가 전무로 승진한 것도 눈에 띈다. 임태순기자 stslim@
  • [공직인맥 열전](33)교육인적자원부.하

    교육인적자원부는 행시 22·23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있다.특히 22회의 ‘전성시대’이다.다른 기수보다 인원도많고 실력도 쟁쟁하다. 22회는 15명,23회는 11명에 이른다.때문에 인원이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22회는 본부의 국장·심의관·과장,부교육감 등 다양하게퍼져 있다.23회는 부교육감이나 본부 과장이 주류를 이룬다. 다른 부처의 같은 기수보다 비교적 승진이 빠른 편이다. 22회 중 본부에는 구관서(具寬書) 대학지원국장과 정기오(鄭冀五) 인적자원정책국장을 비롯,김정기(金正基)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백종면(白鍾冕) 총무과장 등 8명이 포진해 있다. 김정기 기획관은 46세로 동기 가운데 가장 젊다.그러나 총무과장과 경북 부교육감,공보관,교원정책심의관 등 요직을두루 거쳤다.교육정책심의관 때 교원단체와의 첫 단체교섭을 맡았었다.교육부 ‘백발’로 통하며,소신과 주장이 뚜렷해때론 손해를 보기도 한다. 교육부 본부 및 산하의 2,500명 인사를 담당하는 백종면 과장은 산업교육정책과장에서 지방교육재정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채 1년이 안돼 총무과장에 기용됐다. 이해찬(李海瓚) 장관 시절,교원정년 단축 등 교육개혁 정책을 주도했던 이른바 ‘5인방’도 22·23회 출신이다.세계은행에 파견된 김광조(金光祚·22회) 전 교원정책심의관과 서남수(徐南秀·〃) 경기 부교육감,임승빈(任承彬·23회) 대구 부교육감과 장기원(張基源·〃·휴직·홍익대 교수) 전 인천 부교육감,고용(高用·〃) 국무조정실 교육문화심의관이그들이다. 교육부내‘대학통’인 김영식(金永植·미국 피츠버그대 연수) 전 대학지원국장,‘국제통’인 박경재(朴景載·휴직·명지대 교수) 전 국제교육협력관도 22회다.23회 중에서는 ‘두뇌한국(BK)21’을 주도한 김화진(金華鎭) 대학행정지원과장,이상진(李相珍) 정책총괄과장,전찬환(全燦桓) 조정1과장 등4명이 본부에 있다. 우형식(禹亨植) 교원정책심의관은 총무과장에서 인천 부교육감으로 간 지 6개월 만에 전격 발탁됐다.24회이지만 고시선배들보다 빨리 요직을 거쳤다.특유의 ‘배포’가 상황에따라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고참선배급인 19회의 이승무(李承茂)공보관은 장관 비서관,교육정책기획관 등 잘 나갈 때에 비해 요즈음 ‘행보’가느린 편이다. 21회의 경우,김왕복(金王福) 전 지방자치지원국장과 이종서(李鍾瑞) 전 대학지원국장은 각각 강원대 사무국장과 서울대 사무국장으로 잠시 비켜나 있다.김 국장은 오는 7월 주미교육관으로 간다.현재 주미 교육관인 정석구(鄭碩九) 국장은 20회다.21회인 정봉근(鄭奉根) 비서실장은 어학에 능통하고 아이디어가 많다.하지만 ‘친화력’이 다소 약하다는 평을듣는다. 고시 출신 이외에 비고시·교육전문직들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행시 22회·23회의 틈속에서도 곽현수(郭玹洙)지방교육기획과장,양창현(梁昌鉉) 전문대학지원과장,조흥래(趙興來) 행정관리담당관 등 비고시 출신 8명은 30년 이상의교육행정 경험을 토대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정책과 일선 현장을 연결하는 교육전문직은 정원의 18.5%를 차지하고 있다.교장 출신으론 송영섭(宋永燮) 학교정책과장과 이경환(李景煥) 교육과정정책과장이 있다.이해영(李海英) 국가전문행정연수원 연수부장은 이돈희(李敦熙) 전 장관때 전문직으로는 처음 공보관을 맡았다. 박홍기기자 hkpark@
  • 영상원장 인사놓고 또 ‘시끌시끌’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 영상원이 안팎으로 시끌시끌하다.최민 전 원장 후임에 심광현씨가 임명된 게 불씨다. 영상원 부교수이던 심씨가 신임 원장에 임명된 것은 지난 1일.영화계와 학계의 6개 대표단체들은 언론사에 일제히 반대성명서를 돌렸다.“국립예술실기 교육기관인 영상원에 비영화전문가를 다시 원장에 임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요지였다.보다 직설적인 내용까지 포함됐다.“미술평론가 출신의최민 전 원장에 이어 역시 미술평론가 출신인 심씨가 임명된 것은 학맥(서울대 미학과)과 인맥으로 엮인 명백한 불투명인사”라는 성토였다. 기실,이런 소동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지난 95년 영상원이설치되고 3회 연임했던 최 전 원장 시절에도 내내 있어온 잡음이다. 게다가 심 원장의 ‘전력’도 학계쪽에서 보면 고울게 없다.99년 영상원 석사학위의 정식인정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 논쟁때 한국예술종합학교 비상대책위원을 맡았던그는 사립대 교수들과 의견대립하던 사이였다. 그러나 영화계는 이번 일을 일과성 감정싸움으로만 흘려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성명서를 낸 한국영화학회 영화학교수협의회 영화인협회 영화제작가협회 영상기술학회 등의 관계자들은 지난 7일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을 따로 면담까지 했다. 김창유 영상기술학회 회장(용인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은 “국세로 운영되는 영상원의 기능이 지금처럼 이론교육 위주로비대해져서는 곤란하다”면서 “당장은 비합리적 인사부터개선될 수 있도록 당국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할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영상원쪽의 소란이 가라앉는 데는 또 한참이 걸릴 것같다. 황수정기자
  • 대학가 다단계 유혹…피해자 속출

    최근 다단계 피라미드식 판매방식이 대학가에까지 파고들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다단계 판매업체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고수익을 미끼로 접근,더욱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피해학생들은 금전적인손실은 물론,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까지 앓고 있다. 김모씨(23·여·A대학 3년 휴학)는 지난해 9월 남자 친구의 소개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다단계업체인 S사에 회원으로가입했다.김씨는 “직급만 올라가면 앉아서 매월 2,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부모 몰래 휴학까지 했으나6개월만에 등록금만 날리고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김씨는 “상위 직급에 오르기 위해 등록금과 하숙비를 털어 물건을 사고,심지어 은행에서 대출받아 물건을 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B대 인문학부 96학번인 박모씨(24)는 전화기 다단계판매에뛰어들었다가 등록금 500만원을 날렸고 학과 선후배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됐다.박씨는 “회원만 많이 끌어모아오면 앉아서 수천만원을 벌 수 있다는 회사 선전에 속았다”면서 “회원으로 끌어들였다가 피해를 본 선후배들의 따가운 시선과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한탄했다. C대학 2학년 김모씨(19·여)는 부모님 몰래 상호신용금고에서 학자금 360만원을 대출받아 화장품 다단계판매에 뛰어들었다가 대출금만 고스란히 날렸다.김씨는 화장품을 돌려주고 돈을 되찾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회사를 찾았으나 “환불기한이 지났다”며 거부함에 따라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 한양대 화학공학과 4년 이윤호(李潤浩·24)씨는 “다단계판매회사의 설명회에 참가해본 학생이 전체 학생의 10% 정도는 될 것”이라면서 “과마다 1명 이상씩 다단계 판매업에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대학가에 만연돼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 업체를 고발하는 시민단체인 ‘안티피라미드운동본부’(www.antipyramid.org)에는 매일 수십건의 피해사례가접수되고 있다.이 사이트에는 현재 324개의 다단계 업체로부터 피해를 봤다는 신고 8,600여건이 접수돼 있다. YMCA 피라미드업체 상담실장 윤호창(尹鎬昌·32)씨는“상담자의 대부분이 대학생들로 1인당 평균 100만∼300만원 정도 손해를 본 것 같다”면서 “인맥을 이용해 회원을 확장하는 다단계판매의 특성상 금전적인 손실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까지 겪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석 이송하기자 hyun68@
  • [공직인맥 열전](32)교육인적자원부.상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1월29일 부총리급 격상과 함께 새로출범했다. 새 체제에 맞춘 실·국장,과장 인사도 뒤따랐다. 공교롭게도 첫 인사는 한완상(韓完相)부총리가 아닌 이돈희(李敦熙)전장관의 ‘작품’이다.정부조직법상 불가피하게 이전장관이 짜놓은 인사안에 한 부총리가 서명한 셈이다. 교육부의 직제는 부총리 겸 장관과 차관을 빼고 1차관보 2실 3국 4심의관 32과로 구성돼 있다.정원은 437명이다.정원중에는 교육전문직이 81명 포함돼 있다.부총리급 부처 치고는 조직 규모가 작은 편이다.그러나 직·간접적인 관할범위는 행정자치부에 버금갈 정도로 크다. 한 부총리와 김상권(金相權)차관을 빼면 본부의 실·국장은비교적 젊다. 40대 후반이 주류다.지난 96년 안병영(安秉永)장관때의 대폭적인 세대교체 인사 때문이다.당시 50대 비(非)고시 출신들은 지방으로 전출되거나 옷을 벗었고,40대 초반고시출신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실·국장들은 ‘가방끈’이 어느 부처보다 길다.모두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박사 과정에 있다.절반 이상이 서울대사대출신이라 ‘동창회하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특이한 점은 김 차관 외에 호남 출신은 이영찬(李永燦)감사관뿐이다. 요직으로 꼽히는 이기우(李基雨)기획관리실장-김평수(金坪洙)교육자치지원국장-구관서(具寬書)대학지원국장-김정기(金正基)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우형식(禹亨植)교원정책심의관등은 모두 총무과장 출신이다. 비고시 출신인 이기우 실장은 부총리 체제에서 유일하게 유임됐다.1년7개월째 실장을 맡고 있으며,교육부내 ‘맏형’으로 통한다.직원들의 신망도 두텁다.특히 교육부 안팎에서 인정하는 ‘마당발’로 국회·정치권 등 대외창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1급 상당의 개방형 직인 학교정책실장은 교육전문직의 수장이다.이상갑(李相甲)실장은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으로재직하다 실장에 지원,12명의 응모자 중에서 뽑혔다.고교 교사와 교장,교육부과 시교육청의 전문직 등을 두루 거친 ‘교육 전문가’다. 정기오(鄭冀五) 인적자원정책국장과 구관서 국장은 올해의교육부 주목 대상이다.행시 22회 동기다. 신설된 인적자원정책국은 교육부의 위상을 가름할 척도가될 가능성이 크다.정 국장 산하에는 정책총괄 등 4개과가 있다.부처의 선임국이다.정 국장은 개방형 직인 인적자원정책국장에 자원,선임됐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3년 동안파견돼 교육·노동·사회분야에서 자문관으로 활동했다. 직책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구관서 국장이 맡은 대학업무도 올해 ‘핫이슈’거리다.새로운 2002학년도 대입제도의 정착 여부가 우선 관건이다.두뇌한국(BK)21,국립대 구조조정,지방대 육성방안 등 굵직한현안도 한두가지가 아니다.감사관을 2년여 지냈지만 대학 현장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췄다. 김평수 국장은 자립형 사립고,중학교 의무교육 재정확보 등추진해야 할 일이 만만찮다. 김 국장은 강원·경기 부교육감,국무조정실 교육문화심의관 등 4년6개월간 ‘외곽’을 돌다이번에 입성했다. 김경회(金京會) 평생직업교육국장은 행시 20회로 고시출신중에서는 선배축이다.전문대와 실업계 고교,평생교육 등을담당한다.목소리가 다소 크지만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편이다. 이영찬감사관은 사무관때 대학행정과,서기관때 기획예산담당관을 거쳐 순천대·부경대 사무국장 등을 지낸 ‘대학통’이다. 박홍기기자 hkpark@
  • [공직인맥 열전](31)과학기술부

    과학기술부는 부처 가운데 구성원들의 ‘가방끈’이 가장길다.전문성을 요하는 업무 특성상 전문직·개방직 특채가많은데다 정통 행정관료의 비율이 타 부처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과기부의 과장 이상 박사비율은 35.4%.10명이 모이면 3명이상이 박사일 정도로 고급인력이다.서정욱(徐廷旭) 장관부터 미국 텍사스 A&M대 공학박사다.과장급에도 박사가 수두룩하다.석사학위는 명함도 못 내민다. 과기부는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출신,특채가 골고루 포진해있다.이같은 특징은 2명의 1급 인적사항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유희열(柳熙烈) 기획관리실장이 행시 7회이고,이헌규(李憲圭) 과학기술정책실장은 기술고시 12회 출신이다. 유 실장은 70년부터 과기부에 근무하며 주요 국·과장을 두루 거친 ‘맏형’.행정학 박사인 그는 각 부처에 지인이 많고 대외교섭력과 업무추진력이 강하지만 말이 앞서는 것이흠이다.만 3년간 기획관리실장을 하며 행시 동기를 두 차례나 상관으로 모시는 등 ‘관운’은 좀 없는 편이다.조건호(趙健鎬·무협 부회장) 전 차관과 한정길(韓錠吉) 차관이 모두 유 실장과 행시 동기다. 이헌규 실장은 서울대 전기과와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을 나온 테크노크라트.원자력 및 연구관리 분야에 밝고과학기술 정책의 종합조정 능력이 뛰어나다.겉으로는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소신을 갖고 추진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할 말을 다 한다.산자부와 정통부의 방해작업을 따돌리고 과기부의 위상을 지켜주는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KAIST 출신의 석·박사들이 고위직 간부에 진출해 있는 점도 다른 부처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국장급에서 정윤(鄭潤) 연구개발국장,조청원(趙靑遠) 원자력국장,문유현(文惟賢) 과학기술협력국장이 KAIST특채 출신이다. 정윤 국장은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협력,기초과학분야에 정통하다.투명한 연구비 집행을 위해 연구비카드제를 도입했다.조청원 국장은 원자력 및 과학기술 국제협력 전문가로 인정받아 개방형 직위에 임명됐다.미국 신시내티대 공학박사로우리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문유현 국장은 해박한 지식과 이론으로 무장,기획력이 뛰어나다.미국 과학관으로 근무하면서 한·미 과학기술협력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영일(朴永逸) 기획조정심의관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행시(23회)를 통해 공무원이 됐지만 KAIST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연조가 짧아 아직 국장 직무대리에 머물고 있지만 과학기술정책,기획 등 다방면에서 업무능력은 실장급이라고 말할 정도로 발군이다.무능력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심해 내부의 적이 많은 편이다. 과기부 간부들은 타부처에 비해 조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한계로 지적된다.사심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개인적이고 엘리트 의식이 지나치게 강해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드물다.부처 이기주의가 발동하는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과기부가 번번이 다른 부처에 밀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직은 건재를 과시하고 있지만 연구개발예산의 중복투자에 대한 비판론과 함께 정보통신부나 산업자원부 등 타부처와의 통합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어 ‘위상정립’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함혜리기자 lotus@
  • [공직인맥 열전](30)해양수산부

    해양수산부는 ‘미래’에 대한 꿈을 가꿔가는 부서다.“청색혁명으로 해양강국을 실현한다”는 게 캐치프레이즈다. 해양부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96년 8월신설됐다.기존의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이 통합됐고,건교부·내무부·과기부 등의 해양분야 업무가 해양부로 넘어왔다.출범 초기엔 나름대로 파워를 자랑했다.상당수 직원들은 초대신상우(辛相佑)장관 시절을 전성시대로 꼽으며 그리워하고있다. 그러나,99년초 한·일어업협정체결때 ‘쌍끌이 파동’으로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것을 비롯해,처음 출발때의 기대만큼‘통합부처’로서의 시너지효과는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부지까지 마련해 놓고도 과천청사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해양부가 힘이 없어서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노무현(盧武鉉) 현장관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이항규(李恒圭)전 장관이 내부승진을 한 유일한 케이스이며,노무현 장관(6대)을 포함해,역대 대부분 장관들이 정치인 출신이다. 더구나 통합 초기에는 출신 부처별로 대립이 심각했다.대표적인 해양부 인맥으로 꼽히는 해운항만청과 수산청 출신들이쉽게 융합되지 않았다. 두 청 출신의 직원은 본부 전체 직원의 90%에 달한다. 게다가 나머지 부처에서는 관련 업무만 이관됐을뿐,인원은거의 따라오지 않았다.그러나 두 청 출신간 및 ‘소수파’인다른 부처 출신간 반목은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줄었다. 양대직군간 활발한 ‘교차인사’를 펼친게 주효했다. 해양부 신설때 이론적 틀을 제공한 홍승용(洪承湧) 차관은국제해양법 전문가로,다음달이면 취임 만 2년이 된다.1급은차관보와 기획관리실장 두자리다.수산청 출신의 맏형 격인박재영(朴宰永)차관보는 한·일,한·중 어업협정을 주도적으로 이끈 협상전문가다.한때 금전관련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치렀으나 의혹이 해소돼 ‘복권’됐다.해운항만청 출신의 김성수(金成洙)기획관리실장은 해운쪽 전문가이지만 항만국장을 지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행시17회에 최연소로 합격한 서정호(徐廷皓)해운물류국장은해운항만청 진흥과장 시절인 90년 9월 당시 미수교국가인 중국과 카페리항로를 최초로 개설한 산파역이다.머리회전이너무 빠른게 흠이라면 흠.국회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김성규(金性奎)안전관리관은 해운항만청 외항과장때 반대가 극심했던 관계부처들을 설득,선박도입관세를 없애는 방안을 실현시킨 뚝심을 지녔다.행시 22회인 강무현(姜武賢)수산정책국장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수협의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있다. 건설부 출신의 김영남(金英南)항만국장은 기존의 항만개발계획을 전면수정,대전환을 주도하고 있다.한·중어업협정의실무협상 대표인 박덕배(朴德培)어업자원국장은 논리정연하고,설득력이 뛰어나다.엘리트의식이 너무 강해 다소 거부감도 준다는 평. 해양정책과장과 청와대 근무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신평식(申平植)국제협력관은 추진력이 뛰어나다.초대 총무과장을 지낸 이용우(李龍雨) 해양정책국장은 안전관리관 시절 국제해사기구(IMO)총회에서 독특한 연설로 경쟁국을 제치고 우리나라를 IMO이사국에 진출시킨 일화를 갖고 있다. 한준규(韓駿奎)공보관은 해양부 발족후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에 오래 파견돼 활약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은행 신풍속도](6)전문가 우대

    최근 은행권 인사에서 새로 발탁되거나 유임된 임원들의 면면을 보면 뚜렷한 특징이 잡힌다.특정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점이다. 특히 부실기업 정리·리스크관리·외자유치·e-뱅킹전문가들이 급부상했다.외환위기와 디지털시대의 산물이다. 과거에는 연공서열이나 학맥·인맥 등이 임원선임을 크게좌우했던 것이 사실이다.‘임원은 전문능력보다는 종합능력이 요구된다’는 말이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원부터 임원까지 전문가가 우대받는다.그러다보니 ‘CFO’(재무담당임원)·‘CCO’(여신담당임원)라는 생소한 직함들이 생겨나고,40대 임원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얼마전 파격적인 발탁인사를 단행해 관심을 끌었던 위성복(魏聖復)조흥은행장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면서 “연공서열식의 임원기용으로는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한빛 김종욱(金鍾郁)상무,외환이연수(李沿洙)부행장·주원태(朱元泰)상무,조흥 홍칠선(洪七善)상무,산업 박상배(朴相培)·이성근(李成根)이사는 부실기업 전문가로 통한다. 외환위기는 또하나의 임원군을 만들어냈다.국민 김유환(金有丸)상무는 골드만삭스,주택 김영일(金榮一)부행장은 ING,한미 정경득(鄭庚得)부행장은 칼라일의 신뢰가 두텁다.이들은 외국인 대주주의 투자유치 과정에서 협상 파트너로 활약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골드만삭스 민지홍 이사는 사석에서 “김상무와 (투자조건을 놓고)싸우다가 투자결심을 굳혔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조흥 이건호(李建鎬)상무,한미 이인호(李仁虎)부행장,신한신용순 상무대우는 리스크관리가 주특기이다.선진기법인 만큼 대부분 해외근무 경험이 많고 나이가 젊다.은행이론에 밝은 지동현(池東炫)박사는 금융연구원에서 조흥은행 상무로파격발탁됐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젊고 패기넘치는 임원들은 회의석상에서 거침없이 의견을 개진,은행의 보수적인 직장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주택 조제형(趙帝衡)부행장·하나 김종열(金宗烈)상무·조흥 홍석주(洪錫柱)상무는 핵심요직으로통하는 CFO들이다.홍상무는 2급부장에서 임원으로 발탁되는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CCO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제일 이수호 상무와 서울 최동수부행장은 각각 뉴브리지캐피탈(제일은행 대주주)과 강정원(姜正元)행장이 은행경영을 새로 맡으면서 맨먼저 스카우트한인물이다. 은행권의 손꼽히는 영업통인 한미 서방현(徐方鉉)부행장은“전문가가 아니면 임원들도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한빛 김종욱상무도 “아랫사람들을 공포로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털어놓는다. 임원들은 대부분 연봉제이다.행장과 1대1 성과계약을 맺어목표치를 미달하면 이듬해 재계약에서 밀려난다.철저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임원사회가 뿌리내리고 있다고 신상훈(申相勳) 신한은행 중소기업본부장은 강조했다. 안미현기자 hyun@
  • [공직인맥 열전](29)농림부.하

    ‘농림부 변화는 본부 과장들이 선도한다-.’ 농림부 본부내 과장급은 33명.90년대 중반부터 고시 출신들이 주요 자리를 맡고 있다.핵심과장에는 행시 22∼25기가 주로 포진해 있다.다른 부처에 비해 승진은 상대적으로 빠른편이다.농업을 생명공학(BT)과 정보산업(IT)에 접목시키고,증산 위주의 농업정책을 수급균형 쪽으로 바꾸는 작업을 과장급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예산배분 등 집행 위주였던 과장업무가 요즘은 기획력을 요구하는 분야가 많아진 점이 특징이다. 농림부는 지난해 봄 잇따라 발생한 구제역과 산불에 이어연말에는 농가부채 감축 문제로,올해 들어서는 광우병 파문이 확산되면서 홍역을 치렀다.부처 규모와는 달리 관련 업무가 광범위한 점도 바람 잘 날 없는 이유중 하나다.쌀 수매가,농가부채,구제역·광우병,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 협상,새만금 간척사업,협동조합 개혁 등이 모두 농림부의 소관업무이다. 크게는 농업·통상·축산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시대가 변하면서 담당부서의 위상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선 통상분야의 비중이 커졌다.우루과이라운드(UR)파동을겪으면서 1개과에 불과했던 국제협력과는 국제협력국으로 확대됐다.반면,3개국에서 나눠 맡던 추곡수매·보관·판매 업무는 1개국(식량정책국) 소관으로 줄었다. 국장급 이상에 농업 관련 분야 전공자가 많은 데 비해 과장급에는 경제·법학·행정학과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이가많은 게 또다른 특징이다.미국 농무부 파견 프로그램 등 다른 부처에 비해 유학갈 기회가 많아 ‘박사 과장’도 4명이나 된다.조규담(曺圭潭)총무과장,송주호(宋朱鎬)국제협력과장,배종하(裵鍾河)농업정책과장 등이 모두 농업경제학 박사다.송·배과장은 농림부내에서 주목받는 ‘통상전문가’ 그룹을 형성해 가고 있다. 배과장은 사무관 때부터 국제통상 문제를 다뤄왔다.농림부인터넷 홈페이지에 WTO협상 내용을 쉽게 풀어 쓴 ‘통상이야기’를 20회 넘게 올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송과장은 실무경험이 적다는 게 흠이지만,업무능력은 인정받고 있다.유병린(劉柄鱗)통상협력과장은 요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제로 정신없이 바쁘다.국장승진 1순위라는 말도 있지만,지나치게 과묵하다는 평가다.UR협상때 사무관으로 궂은 일을도맡았던 김종진(金鍾珍)식량정책과장은 머리 회전이 빠르다. 심재천(沈載千)농산과장은 농업직으로는 처음 김성훈(金成勳) 전 장관때 비서관을 맡았다.친화력이 뛰어나고 책임감이강하다. 지난해 협동조합과장때 농·축·인삼협 통합을 무난하게 해결해 주목받은 박현출(朴玄出)유통정책과장은 이번에는 유통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상길(李相吉)축산정책과장은 축산 수입시장 개방에 대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농림부로 이관된 한국마사회도 다루고 있다.지난해 구제역 방역으로 이름을 떨친 이주호(李周浩)가축위생과장은 수의사 출신으로 광우병 등 가축전염병의 ‘해결사’다.자그마한 체구지만 강단이 있어 최근 광우병 파동때도 며칠씩 밤을 새우고도 끄덕없었다.6선경력의 이종근(李鐘根) 전 의원이 부친이다. 최희종(崔喜淙)기획예산담당관은 합리적인 성격으로 배짱도두둑하다.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열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도있다.행시 26회인 나승렬(羅承烈)농지과장은 농지개혁 문제와 관련,신문에 자주 기고문을 낸다.배금자(裵今子)변호사가 부인이다. 춘천고·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안호근(安虎根·행시 29회)장관비서관은 농림부내 ‘브레인’으로 꼽힌다.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온 이천일(李千一)시장과장은 행시 33회로 올해 과장자리에 오른 ‘막내’다. 김성수기자 sskim@
  • [공직인맥 열전](28)농림부.상

    농림부는 과거에 비해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는 게 일반적인평가다. 농민과 쌀 소비량이 많이 줄고,농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70년대 경제개발 시대만 해도 농림부는 정부내 핵심부처로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식량정책을 전담했던 양정국은재무부 이재국을 비롯,내무부의 경무국·지방국 등과 함께정부 부처의 ‘5대 국(局)’으로 불릴 정도였다.혼·분식 정책을 시행할 때는 호텔 식당에까지 직원들이 암행출장을 나가 쌀밥을 내놓는다고 호통치기도 했다. 한때는 곡물수입 추천권까지 갖고 있어 수입권을 따내려는업자들의 로비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쌀이 남아돌게되면서 농림부의 입지는 좁아졌다. 이름도 농림부에서 농수산부,농림수산부,96년 다시 농림부로 바뀌었다. 직원의 출신도 다양하다.행시·기술고시 출신을 비롯해 전문분야도 농업·축산·수의·토목 등 11개나 된다.복잡한 직렬 때문인지 농림부에는 눈에 두드러지는 특정인맥이 없다. 굳이 따지면 서울농대 출신과 고대 출신 정도로 양분되지만,대립관계는 아니다. 본부 전체직원은 505명으로 부처 가운데 중간 규모다.1급은차관보와 기획관리실장 2명이고,국장급 10명,과장급 33명이다. ‘수장(首長)’인 한갑수(韓甲洙)장관은 농림부 농정국장과경제기획원(EPB)차관,가스공사사장을 지냈다. EPB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논리적이지만,워낙 입이 무거워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동근(金東根)차관과 서규용(徐圭龍)차관보는 기술고시 8회 동기로 농림부내 기술고시의 ‘대부(代父)’.국민의 정부에서 농정국장→산림청차장→청장에 이어 승진한 김차관은조용히 업무를 챙긴다는 평이다.특히 김성훈(金成勳)전 장관과 호흡이 잘 맞았다. 식량생산국장을 지낸 서규용차관보는 90년대 중반이후 5년연속 풍년농사의 주역으로 꼽힌다.‘독일병정’이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추진력이 뛰어나다.안종운(安鍾云)기획관리실장은 행시 17회의 선두주자로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요직을 두루 거쳤다.‘아이디어 뱅크’로 불리며,유력한 차기 차관후보로 거론되고 있다.한장관의 고교 후배라는 점이 오히려 약점이다. 안종운실장과 행시 동기인 손정수(孫貞秀)농촌개발국장은‘말많은’ 새만금 개발사업,현대 서산농장 매각 등 굵직한현안을 맡고 있다.정승(鄭勝)공보관은 기획예산담당관,농업정보통계관을 거쳤다.장교 출신으로 리더십이 뛰어나고,일욕심이 많다. 행시 18회인 김주수(金周秀)농업정책국장은 지난해 봄 구제역 파동때 축산국장을 맡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소만호(蘇萬鎬)농산물유통국장은 부처내 손꼽히는 ‘브레인’이다.합리적인 편이지만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평도 있다. 노경상(盧京相)축산국장은 자리를 맡은지 두달도 안돼 ‘광우병 파동’으로 곤욕을 치렀다.건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 부처내 국제통으로는 최용규(崔龍圭)국제농업국장이 꼽힌다. 우루과이 라운드(UR)때 담당과장을 거쳐 지금껏 통상문제만줄곧 맡으면서 탁월한 협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1급자리가생기면 0순위다. 박해상(朴海相)식량생산국장은 본부 국장 가운데 유일한 농업직 출신이고 김재수(金在水)농업정보통계관은 식물검역소장시 경험을 살려 올해 중앙대에서 종자산업과 관련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성수기자 s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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