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맥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아사히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빅뱅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이석연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 구애
    2026-05-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62
  • 부산 친노·M고 7인방 외압 역할 분담?

    부산 친노·M고 7인방 외압 역할 분담?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42)씨가 추진하는 부산 수영구 민락동 콘도 건립사업에 ‘외압과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서울신문의 취재 결과 김씨의 배후에는 부산의 ‘친노 인맥’과 경남 출신 ‘M고 7인방’으로 통하는 일부 인사들이 얽혀진 채 역할을 분담, 지원한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친노-금융권 7인방-용도변경 앞장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C씨 등 부산상고 출신과 부산 출신 386 그룹으로 형성된 친노 인맥은 금융계에 포진한 동문 등을 동원, 부산은행 대출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7인방은 부지 용도변경에 앞장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2∼3명은 대출 과정에 보증을 서는 등 직접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돼 이를 뒷받침했다. 민락동 콘도 건립 사업의 최대 걸림돌인 부지 용도변경 및 대출 문제 해결과 관련, 시중에는 부산시와 부산은행 고위 인사의 연루설이 나오고 있으며,C씨의 이름도 거명되고 있다. 부산시 고위 인사는 7인방 멤버이고, 부산은행 고위 인사는 부산상고 출신이다. 부산시는 2005년 10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미월드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 여부를 타진하자 ‘불가’라고 회신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공공기관 이전 및 투자개발 기획단’의 용도변경 요청에 일사천리로 추진, 그 배경에 의문이 이어졌다. ●‘고충위 권고´ 내세워 용도변경·허가설 이 과정에서 7인방 멤버들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 고위 인사에게 고충위 권고를 수용하라고 설득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시가 고충위 권고를 수용, 골치 아픈 민원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최모(58)씨는 “미월드측이 행정소송을 한다고 소문낸 것은 쇼였으며, 친노 인맥이 중앙도시계획위원회 통과를 돕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토지 소유주 김모(58)씨는 7인방 일부 인사와는 과거 사회정화위원회 시절부터 교분을 쌓아 왔으며, 지난 2월 실시된 부산시 교육감선거에 출마한 다른 멤버의 선대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1월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한 ‘2020년 도시기본계획 변경안’은 건설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미월드는 부산시가 유치한 도심 놀이공원이다. 김모(61)씨가 부지(3만 8000㎡)를 제공하고, 권모씨가 50억원을 투자해 놀이기구를 설치,2004년 문을 열었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소음 등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자 부산시가 영업시간을 단축, 불이익 처분을 당하자 고충위에 진정했다. 미월드 부지 매매와 관련, 부산은행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모씨가 이 땅을 매입하려고 하자 채무 승계를 거절, 계약을 파기시켰다. 토지 소유주 김씨는 지난해 10월 이 땅을 350억원에 팔기로 하고 이모씨로부터 계약금 35억원과 중도금 30억원을 받았다가 이 바람에 80억원의 위약금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카이시티 대출은 누가 봐도 특혜 부산은행은 지난 5월 김상진씨가 이 땅을 매입할 때 채무 승계를 해주고,685억원의 대출 승인까지 해줬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땅 매입자가 김상진씨라는 것뿐이다. 더구나 겉핥기식 대출서류 심사로 김상진씨가 제출한 엉터리 서류를 보고 용역비 27억 5000만원을 내준 사실도 밝혀져 특혜의혹을 부풀렸다. 은행 측은 “개발 사업은 사업성을 보고 돈을 빌려 준다.”고 강변하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부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女談餘談] ‘백’과 ‘네트워크’/김균미 경제부 차장

    연예계 최고의 ‘마당발’로 통하는 박경림이 자신의 인맥 관리 노하우에 대해 강연을 한다고 한다. 그녀가 털어놓을 비법이 어떤 걸까 궁금해진다. 주위에서 휴대전화에 많게는 수백명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다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1년에 한번도 통화하지 않는 사람이 절반도 넘지만 선뜻 지우지도 못한다. 아깝기 때문이다. 얼마전 채용정보사이트들이 직장인과 대학생을 상대로 성공전략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NQ(네트워크지수·인맥지수)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네트워크 관리에 대한 관심이 연령에 관계없이 매우 높다는 방증이다. 네트워크를 다르게 표현하면 뭐가 적당할까. 언뜻 ‘백’,‘연줄’,‘인맥’ 등이 떠오른다.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사람들간 관계를 지칭한다. ‘백그라운드(background)’에서 온 ‘백’과 ‘연줄’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인맥보다는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백은 동원한다.’고 하고,‘인맥은 관리’하며 ‘네트워크는 구축’한다고 한다. 굳이 백과 네트워크 차이를 따지면 이를 활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인맥을 승진이나 이권 등 개인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면 흔히들 ‘백’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모자라 불공정 경쟁이라는 뉘앙스가 깔려있다. 반면 사회 현안이나 문제를 긍정적으로 개선하려고 이용한다면 네트워크라고들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신정아 사건’이나 부산의 김상진씨 사건은 백과 인맥을 부적절하게 동원한 사례다. 하지만 백이나 네트워크는 솔직히 경계가 모호하고 구분 기준도 극히 주관적이다. 때문에 경계선을 넘기 쉽다. 네트워킹 능력은 분명 개인의 중요한 자산이고 키워나가야 할 덕목이다. 그렇다고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한 네트워크를 구축·유지하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받기만 하는 일방적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고, 변질될 우려가 많다. 책상에 쌓여있는 명함들을 보면서 나의 NQ지수는 얼마일지, 또 건강한지 자문해본다. 김균미 경제부 차장 kmkim@seoul.co.kr
  • [단독]한국 무슬림 4人 ‘구출순례’ 했었다

    [단독]한국 무슬림 4人 ‘구출순례’ 했었다

    “우리들의 활동이 피랍자 석방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종교 때문에 서로 반목하지 않고 평화롭게 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한국에 사는 이슬람교인들이 아프간 피랍자 석방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탈레반 고위 지도자와 수차례 전화 협상까지 벌이는 등 적극적인 인질 석방 활동을 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이슬람 인터넷 뉴스사이트인 ‘이슬람 온라인’에 소개되기도 했다. 파키스탄인 줄피카르 알리 칸 대표와 이행래 이맘(이슬람 예배집전자), 이주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선교국장, 정진수 선교위원 등 4명은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1일까지 아프간 접경인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역을 방문, 피랍자 석방 활동에 주력했다.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국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만난 줄피카르 대표 등은 “앗 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신의 평화를)”이라는 인사와 함께 한결같이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이슬람 가르침을 실천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이들의 면면은 한국정부 협상단 못지않았다. 한국에서 10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줄피카르 대표는 아프간 국경지대인 파키스탄 페샤와르가 고향으로 파슈툰족 명문 집안 출신이다. 이 이맘과 이 국장은 아랍어에 능통하고 아랍권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정 위원은 파키스탄에서 7년동안 유학한 경력이 있다. 줄피카르 등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지난달 24일 파키스탄 종교 지도자를 만난 데 이어 26일에는 파키스탄 상원 의원 등을 만나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이어 27일 오전 파키스탄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방문 소식과 방문 이유를 내보내도록 해 석방 여론을 환기시켰고, 저녁에는 탈레반 지도자와 직접 전화 협상을 했다. 이 국장은 탈레반과의 전화에서 “한국에는 무슬림이 3만 5000명에 이르고, 서울만 해도 무슬림이 1만 5000명이나 된다는 점과 함께 인질을 무사히 돌려보내면 이슬람이 평화와 우애의 종교라는 것을 널리 알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차례 통화 끝에 ‘우리들이 출국하기 전에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탈레반 지도자가 ‘손님이 오면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아프간 속담을 언급했다.”면서 “그 말을 듣고 좋은 소식을 예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파키스탄으로 향했던 것은 아프간 피랍 사태가 한국 무슬림들에게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부산 모스크는 사람들이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면서 “2004년 고 김선일씨 피랍 사태 정도는 아니지만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등 걱정스러운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줄피카르는 “종교가 다르지만 평화롭게 같이 살기를 원한다. 종교 때문에 반목하지 않고 공동체로서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 이맘은 “한국인은 이슬람의 실체를 너무 모른다.”면서 “이슬람을 테러리즘과 동일시하는 선입견이 많지만 신앙과 정치를 구분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은 “시시때때로 모스크 주변에서 큰 소리로 테러리스트들은 한국을 떠나라는 식으로 매도하고 위협하는 것은 한국 사회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서 “이슬람이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라는 점을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정부의 아프간 현지 대책반에서 아프간 언론에 대한 홍보를 담당했던 황의갑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 무슬림들이 파키스탄 야당 지도자를 만나 탈레반 지도부를 설득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공기업] 코트라 ‘선택과 집중’ 딜레마

    [공기업] 코트라 ‘선택과 집중’ 딜레마

    코트라(대한무역투자공사)가 기로에 섰다. 국내 기업과 교민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이 발단이 됐다.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못한 코트라는 얼마전 7개 해외 무역관을 전격 폐쇄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코트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역주행 처사”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러자 코트라는 폐쇄 무역관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며 슬그머니 한발 물러섰다. ●현지 진출 기업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 2일 코트라와 무역업계에 따르면 코트라가 해외에 운영 중인 무역관수는 현재 93개다.10년전(118개)보다 25개 줄었다. 지난달 1일에는 노르웨이 오슬로, 포르투갈 리스본, 캄보디아 프놈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 7개 무역관을 한꺼번에 폐쇄했다. 코트라의 ‘존재의 이유’를 둘러싼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기폭제였다. 캄보디아에서 의류사업을 하고 있는 박모씨는 국제전화를 통해 “40∼50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프놈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무역관을 없앤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제조업을 하는 이모씨도 “종종 타슈켄트 무역관에 들러 시장 정보도 듣고 인맥도 쌓곤 했는데 (무역관이 없어져)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 놓았다. 강남훈 중소기업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중소기업들이 최근 우즈베키스탄 등에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는데 코트라가 오히려 이들 지역의 무역관을 없애 당황스럽다.”면서 “대기업과 달리 자체 정보망이 약한 중소기업들의 타격이 크다.”고 전했다. 지난해 코트라 정보망을 이용한 기업체수는 약 1만 5300개(유료 회원 기준).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90% 이상이다. ●신규 시장·오지 선점효과도 중요 박기식 코트라 기획조정실장은 “한정된 인력과 조직 여건상, 수요가 폭증하고 수출이 유망한 거점지역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문을 닫은 7곳은 한 명이 상주하는 1인 무역관 형태로 거점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해명했다. 그는 “무역관이 폐쇄된 곳은 해당국 대사관에 코트라 직원을 남겨 교민들과 기업의 불편을 최소화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코트라측은 폐쇄 지역 무역관의 재개설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박 실장은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등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나라들이라 나중에 프놈펜과 타슈켄트 무역관 등을 재개설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랑방´ 역할 넘어 실질 지원책 필요 류창무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도 좋지만 신규 시장이나 오지는 선점 효과도 중요하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코트라가 당장 수요가 약하다는 이유로 무역관을 폐쇄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아제르바이잔만 하더라도 신흥 ‘오일 머니’ 국가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 무역관은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인사는 “무역관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한정된 예산을 잘게 나눠 우후죽순 운영할 것이 아니라 군소 무역관을 통폐합해 고정 지출비를 축소, 이 비용으로 무역관의 대형화·체계화를 모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기회에 코트라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외지사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기업인은 “이름만 무역관이지, 현지 기업인과 교민들의 사랑방 역할에 그치는 무역관도 적지 않다.”면서 “사랑방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질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씨줄날줄] 이슬람 네트워크/ 이목희 논설위원

    최근 중동 여러나라를 다녀온 대학교수가 큰 걱정을 했다.“한국의 인상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먹고살 만하니까 강자편에 서서 실리만 챙긴다고 비판하더군요.” 그곳 지식인뿐 아니라 시장통의 일반인 반응 역시 그랬다고 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푸들’이란 인식이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이라고 이슬람 지역에서 다 배척받지 않는다. 프랑스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이미지가 괜찮은 편이다. 미국·영국·이탈리아 등 서방기자들에게 위기대처 요령이 있다.“납치됐을 때 여권을 분실한 척할 것, 그리고 프랑스인이라고 무조건 우길 것.” 프랑스는 어떻게 이런 대접을 받을까. 프랑스 관민이 끊임없이 이슬람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결과다. 미국의 이슬람 정책은 완력이 기본이다. 힘으로 이슬람 국가들을 민주화시키겠다고 장담한다. 프랑스는 정교하다. 우호적인 외교 제스처를 보내면서 민간 차원에서 중동의 왕가와 실력자들을 촘촘히 엮고 있다.‘메디 프랑스’라는 대(對)중동 로비단체의 힘은 널리 알려져 있다.‘메디 프랑스’의 총재는 엘리제궁과 중동의 실력자 사이에 핫 라인을 구축, 사건이 터지면 즉각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인이지만 북아프리카 이슬람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을 ‘피에 누아르’라 부른다. 프랑스 정부는 ‘피에 누아르’를 중동을 잇는 인맥으로 적극 활용한다. 또 프랑스내에 중동인들로 ‘프랑스이슬람위원회’라는 강력한 단체를 만들도록 해 중동지역에서 프랑스를 돕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슬람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 있고, 종파도 다양하지만 하나의 끈으로 묶여 있다. 탈레반 인질 석방교섭에 사우디, 인도네시아가 유용한 중재자로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한국과 이슬람 전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중동 전체에서 배척당할 우려가 있다.‘프랑스형’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강력한 중동협력기구를 빨리 구성해야 할 것이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민간 인력을 무조건 나오라고 하지 말고 교육을 시켜 외교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아쉬운 대로 찾아 보면 중동 전문가를 꽤 구할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부산지역 386 도덕성에 ‘흠집’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과 부산의 건설업체 김모 대표의 자리를 주선,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정권에서 실세로 불리는 부산 출신 ‘386 인맥’과 지역 업체간의 유착 의혹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정 전 청장이 김씨로부터 지난해 8월 삼자 회동 후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근 검찰에 구속됨으로써 현 정권의 실세인 386 인맥들의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났다. 정 전 비서관은 최인호 전 부대변인, 송인배 사회조정2비서관과 함께 노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3인방 중 한명이다. 부산지역 386 가운데 최측근으로 꼽힌다. 지난 2004년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 낙선한 뒤 같은 해 9월 국무총리 민정2비서관으로 기용됐고 2006년 8월9일 청와대 의전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2년 가까이 공무원 비리 감찰 업무를 맡는 등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있었던 그가 자신의 고향인 부산의 건설업자와 서울에서 국세청 고위 인사를 만나는 자리에 합석한 것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부산의 정치권에서는 다른 정권에 비해 비리 및 이권 개입 등에 비교적 자유로웠던 386 인맥들이 이번 정 전비서관 스캔들로 인해 오명을 남기게 됐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다음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정 전 비서관의 정치적 행보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정 전 비서관은 이 사건이 불거지자 “두 사람을 소개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의 식사 자리를 주선한 것은 아니다.”면서 자신을 적극 변호하고 나섰으나 재개발 건설업자의 ‘세무조사 무마로비’에 연루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기는 어렵다. 또 한나라당이 29일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특검도 검토하겠다고 밝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정국장이 그럴 분 아닌데…” 국세청 곤혹

    국세청은 정상곤 부동산납세관리국장 뇌물수수 사건이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다시 불거지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정 국장이 세무조사 무마 조로 건설업체 사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정 국장과 함께 근무했던 국세청 직원들은 “그럴 분이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더욱이 승진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자기 관리에 철저했을 정 국장이 국세청 고위 관리에게는 ‘금기’인 세무조사 대상업체 사장과 사석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현금으로 1억원을 받는 등의 무리수를 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때문에 정 국장 구속 직후부터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부탁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국세청 일각에서는 행정고시 21회인 정 국장이 당시 동기가 10명이나 남아 있는 상태에서 승진 인사를 앞두고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심적 압박이 무리수를 두게 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 국장이 김 사장과 저녁을 같이 한 게 부산국세청장 부임 두달 뒤이고, 평균 6개월 정도 재직한다고 볼 때 다음 인사에 대비해 인맥을 넓히는 데 관심이 많았을 시기이다. 한상률 국세청 차장, 오대식 서울청장, 권춘기 중부청장 등이 정 국장의 행시 21회 동기다. 울산 출신인 정 국장은 경남고와 영남대를 나와 창원세무서장을 거쳐 국세청 징세과장, 감사관 등을 지냈다.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서울광장] ‘외교 부총리’ 필요하다/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외교 부총리’ 필요하다/이목희 논설위원

    유력 대선후보 진영 인사가 사적인 모임에서 정부 조직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침 개편대상으로 거론된 부처의 간부 공무원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공무원은 “의원님, 생각을 바꾸시지요. 우리 부처를 축소하거나 통폐합하는 것은 국가운영에 심대한 차질을 가져옵니다.”라며 읍소에 가까운 설명을 했다. 상세한 자료를 보내주고 따로 보고자리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인원감축에 대비한 각 부처의 생존로비가 벌써 치열하다. 강력한 로비력을 가진 기관은 역시 경제·사회 부처들이다. 평소 쌓은 정치권 인맥이 든든한 데다 산하에 표를 가진 이익단체가 즐비하다. 그러나 다음 정부의 목표는 ‘대외 역량’ 강화에 모아져야 마땅하다. 경제 규모나 지정학적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대내지향적인 정부구조를 혁파하는 작업을 더 늦출 수 없다. 부처와 이익단체의 로비에 흔들리지 말고 국가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미국 국무장관은 대내외적으로 사실상 총리급 대우를 받는다. 중국 외교부도 부처 서열에서 확고한 1위다. 일본 외교부는 공식서열과는 별개로 정치실세를 장관으로 임명해 가장 영향력있는 부처로 꼽히고 있다. 요즘은 후진국들도 외교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높여 대외업무를 총괄케 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차관이 7명이고, 중국·일본·영국은 외교부 차관이 6명씩이다. 북한은 차관을 7명 두고 있다. 한국은 정부조직법상 부총리 3명과 통일부 장관 밑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위치하고 있다. 장관회의를 외교부 장관이 주도하지 못함으로써 외교 측면의 목소리가 밀리기 일쑤다. 대외정책 관련 사항도 여러 부처에 산재되어 있다. 외교강국뿐 아니라 후진국들까지 통합형 외교안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쩌려고 이러고 있는가. 외교부 서열을 올리고, 대외업무 조율을 외교부로 일원화해야 한다. 부처간 조정자 역할을 위해 외교부 장관의 부총리급 격상이 시급하다. 특히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국가대표가 외국을 방문하거나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 격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부총리급 외교부 장관은 접대가 달라진다. 외교부 차관이 가면 성과가 있을 국제회의에 국장급을 보내야 하는 난감한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측 관계자의 얘기는 고무적이다.“외교부 장관의 부총리급 격상을 공약으로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대신 교육부를 부총리급에서 빼는 방향으로 논의중이라고 했다. 범여권 후보들도 빨리 외교역량 강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기 바란다. 앞서 현 정부가 정신차리고 외교부총리를 만들어주면 더욱 좋다. 장관들의 숫자와 격을 대통령이 수시로 바꿀 수 있도록 유연한 제도를 채택한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그리고 외교부 장관의 재임기간을 늘려야 한다. 현 정부 초기 외교부 장관이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이전 장관 이름이 써 있어 혼선이 빚어졌다고 한다. 국가의 얼굴인 외교부 장관을 1,2년마다 갈아대면 외국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외교는 결국 ‘사람 장사’다. 독일은 한스디트리히 겐셔에게 1974년부터 무려 18년간이나 부총리급 외교총책을 맡겨 통일의 기적을 일궈냈다. 우리에게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드문 예가 있다. 반 총장은 정권교체의 풍파를 겪으면서 요직에 오래 남아 있음으로써 지구촌 최고기구의 수장을 꿰찰 정도로 폭넓은 국제 인맥을 구축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학벌을 깬 사람들] (6) ‘고졸 명장’ 김호 대전시티즌 감독

    [학벌을 깬 사람들] (6) ‘고졸 명장’ 김호 대전시티즌 감독

    “학력이 필요한 곳과 기술이 필요한 곳이 따로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필요한 곳에는 학력보다 기술의 숙련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를 어기고 사람을 잘못 뽑게 되면 그 한 사람이 조직의 흐름을 망쳐 결국 전체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프로축구팀 대전 시티즌 김호(62) 감독은 학력 위조 파문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대전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내가 축구밖에 몰라서 축구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자.”며 경기장으로 안내했다. 경기장에서는 대전 시티즌과 경희대의 연습경기가 한창이었다. 고졸인 그는 연세대와 고려대 등 특정 학교 출신이 장악했던 축구판에 뛰어들어 1965년부터 9년간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어 국가대표 감독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을 이끌었다. 프로팀에서는 울산 현대와 수원 삼성을 이끌면서 두 차례의 K리그 우승과 일곱 차례의 컵 대회 우승, 두 차례의 아시아컵 대회 우승을 만들어낸 이 시대 명장 가운데 한 명이다. ●학력·기술 필요한 곳 우리사회 분간 못해 그가 처음 학벌의 벽을 느낀 것은 1964년 청소년대표 선발전이었다. 선발전에서 당시 최고로 꼽히던 그는 탈락했고, 주위에서는 ‘연·고대 출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위로했다. 그 시절은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실패해 부유하던 집안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방황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축구를 포기하고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같이 축구를 하던 친구들이 그에게 용기를 줬다. 밥을 먹여 주고 돌아가며 하숙집에서 잠도 재워 준 친구들은 ‘축구는 기술직이고 학벌보다 기술이 중요하므로 언젠가 네가 이긴다.’는 말을 해줬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습 경기 탓인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현재 축구판으로 흘렀다.“과거 축구계는 중요 안건을 투표할 때마다 학벌을 위주로 표심이 갈리죠.7년 후배인 이회택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을 맡을 때까지 매번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1994년에야 월드컵 팀을 맡았어요. 당시 학벌을 이용해 월드컵 대표에 넣어 달라는 선수도 있었는데 일절 거부했습니다. 부탁한 사람은 한 명일지 모르지만 그 한 명이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니까요.” 김 감독이 말하는 사회는 축구팀과 같은 유기체다. 한 부분이 학벌에 의해 점령되면 다른 분야도 전염된다. 혼자만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전체 물을 흐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조직력을 깨 놓는다. 그래서 그는 ‘열한 마리의 사자로 이루어진 팀보다 한 마리의 사자와 열 마리의 이리로 이루어진 팀이 강하다.’고 말한다. ●학벌없어 대표팀 탈락 자살 생각도 그는 “그렇다고 학벌이 필요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학벌이 필요한 ‘공법가’와 기술이 우선인 ‘기술공’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축구도 학벌과 상관없이 축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술공이 있으며 학벌이라고 부르는 지식이 꼭 필요한 스포츠 행정, 의학, 교육 분야의 공법가도 있는데 한국은 아직 이 두 분야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서 “베켄바워나 펠레도 학벌은 없지만 뒤에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고 미래까지도 관리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자신이 성장한 원동력을 끊임없는 준비성이라고 꼽았다.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자신에게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5년 이상을 대표팀에 대해 남모르게 분석하고 구상했다. 그리고 결국 제안이 왔을 때 기술에 있어서는 더 이상의 준비된 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준비를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학벌이라는 변수에 쉽게 말려든다고 생각했다.”면서 “준비된 사람만이 학벌이라는 인맥을 넘어 원하는 것을 차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반전 팽팽하던 경기는 “후반에는 결국 기술이 좋은 프로팀이 좋은 경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압도적인 골차로 프로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끊임없는 노력 학벌 넘는 밑천 경기가 끝난 뒤 ‘상대가 대학팀이기는 하지만 이겨서 좋겠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축구의 관중이나 사회 구성원이나 이기는 것만 좋아해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즐기는가 하는 거죠. 유럽에는 100년을 넘긴 팀도 있잖아요. 한 명이라도 더 이겨 보겠다고 학벌을 이용하고 그러는 겁니다. 기술이 필요한 곳에는 기술이 능력이고 학력이 필요한 곳에는 학벌이 능력이죠. 그 둘이 조화를 이루고 함께 즐기다 보면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겁니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사진 대전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김호 대전 시티즌 감독 ▲1944년 경남 통영 출생 ▲1962년 부산 동래고등학교 ▲1965∼1973 국가대표팀 수비수 ▲1971년 국민훈장 석류장 ▲1988∼1991년 울산현대프로축구단 감독 ▲1992년 국가대표팀 감독 ▲1992∼1994년 미국 월드컵대회 감독 ▲1995∼2003년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 ▲1999 프로축구 K리그 감독상 ▲2001∼2002 대한축구협회 이사 ▲2002년 아시아 클럽 선수권 대회 우승, 아시안 슈퍼컵대회 우승 ▲2007∼ 대전시티즌 감독
  • 中정부 조선족 인맥 끊어지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정부내 최고위 조선족인 이덕수(李德洙·64)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물러나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측근 인사로 교체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장관급인 이 주임이 정년으로 퇴진함에 따라 앞으로 당분간 중국에서 장관급 조선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현재 차관급으로는 지린성 당 부서기를 지내다 전국공상연합회 부주석으로 자리를 옮긴 전철수(全哲洙·55)씨와 지린(吉林)성의 김진길(金振吉·48) 부성장 등이 있다. 국장·부국장급으로는 중앙 정부에 8명 등 전국적으로 수십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과장급 이하 직급에선 조선족 공무원 수가 적어 갈수록 ‘고위직’ 조선족의 출현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 교수는 “대학 졸업생들이 국가기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거 회사쪽으로 취직하고 있어 조선족의 관계(官界) 인맥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면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0년대 즈음해 시작된 이같은 현상이 1992년 한·중수교로 더욱 본격화됐다.”고 전했다.●당, 관계진출 조선족 눈에 띄게 줄어 한국기업의 진출 및 한국인들과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적잖은 조선족들이 무역 및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공산당 및 관계진출 포기가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학 및 연구기관에 진출하는 연구직 조선족 수도 급감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과거에는 각 행정 부처마다 수십명씩의 과장급 이하 직원이 있었고 한두 명씩 국장급으로 승진하곤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행정분야에서 배출된 차관급 조선족은 20여명이나 된다. 특히 군에서는 9명의 ‘별’이 탄생, 행정분야에 비해 많은 공간을 확보해왔다. 은퇴한 조남기 전 후근부장은 가장 높은 계급인 별 3개의 상장에 올랐다. 조 전 부장은 중국 군부의 실세로서 그 뒤 부총리급인 정치협상회의 부주석까지 지냈다. 조선족 동포들 가운데 별 2개의 중장에 2명, 별 1개인 소장에 6명 등이 배출됐고 현재 소장에 2명이 재직 중이다. 지린성, 랴오닝성 등 동북지방에 집단 거주하고 있던 조선족들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군에서 더욱 고위급 인사를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많이 희생됐거나 뒤에 북한군에 많이 편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9명의 장성 배출이 200만명 인구에서 이미 적은 숫자는 아니며 조선족들의 그간의 영향력을 상징한 것이라고 말했다.●과거와 같은 영화는 어려울 듯 베이징 조선족협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20대들은 60·70년대처럼 다시 학력과 공산당 입당 등을 중시하기 시작했지만 과거와 같이 조선족들이 당·정·군에서 비교적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덕수 주임의 후임에는 후 주석이 총애하는 양촨탕(楊傳堂·53)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이 승진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양 부주임은 후 주석이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서기를 맡던 1980년대 초반 지루(齊魯) 석유화학공장과 산둥(山東)성의 공청단 지도자를 함께 지냈다.jj@seoul.co.kr
  • 中企 “삼성출신 가장 선호”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외부에서 핵심인력을 영입하고 있었다. 또 삼성출신 인재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취업업체 잡코리아는 16일 직원수 100명 이상 300명 이하의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374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68.0%가 인맥(40.4%)이나 전문 헤드헌팅 업체(16.6%)등을 통해 핵심인력을 영입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 주로 대기업(45.2%)과 중소·벤처기업(44.4%) 출신자를 선호했다. 또 영입 1순위는 삼성출신(51.9%)이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씨줄날줄] 유엔 대사/ 황성기 논설위원

    2·13합의로 순항할 것으로 봤던 북핵문제가 BDA 송금이라는 암초를 만나 난항하던 지난 4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지사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평양에 갔다. 공화당 정권인데도 민주당 소속인 리처드슨이 특사 격으로 방북했던 것은 그가 북한 인맥과 사정에 정통하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에서 1997년 개각 때 리처드슨을 유엔대사로 기용한 감회를 언급하고 있다.“빌 리처드슨은 북한과 이라크에서 보여준 능력으로 뛰어난 외교관임을 입증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유엔대사를 맡아주어 기분이 좋았다.” 유엔을 우습게 보면서도 유엔을 중시하는 미국의 양면성은 국무부 차관을 지낸 존 볼턴의 유엔 대사 발탁에서도 드러난다. 대북 강경책을 이끈 네오콘인 볼턴은 부시 대통령이 상원 인준을 포기하면서 대사 자리에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오긴 했어도 말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 발표로 묻히긴 했어도 김현종 유엔 대사 내정자 인사도 논란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한·미 FTA를 성사시킨 주역이지만 비외교관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치와 안보분야 경험이 없는 통상법 전공의 학자 출신 통상교섭본부장의 발탁에 대해 코드·보은인사라는 지적이 일었다.“인사권자의 권한이라지만…”이라는 다수의 부정적인 견해 속에서도 “FTA를 통해 교섭 능력이 검증됐다.”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 유엔 대사를 직업외교관이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경원 전 주미대사, 노태우 대통령 때 안기부 차장을 지낸 현홍주 전 주미대사도 비외교관 출신으로 유엔 대사를 했다. 유엔 대사는 4강 대사 다음의 요직이다.192개 회원국을 둔 유엔 무대에서 다자 외교를 펼쳐야 한다. 직업 외교관의 노련함과 경험이 필요한 것인지, 영어에 능통한 젊고 돌파력 있는 엘리트가 적합한지는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인 김경원 대사는 유엔 시절 개인 플레이를 했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영어 토론이 가능한 어학실력 덕분에 평가가 엇갈렸다. 유엔으로 떠날 김 내정자가 정권 말기 지명이란 부담을 털어내려면 성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아프간 사태 23일째] “부족장들 설득,탈레반 움직여야”

    [아프간 사태 23일째] “부족장들 설득,탈레반 움직여야”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인질의 안전과 석방을 위해 지금이라도 현지 부족장들을 찾아 접촉, 여론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중국 최고의 아프간 전문가로 불리는 장민(張敏) 전 주 아프간 중국대사관 참사관은 막후에서 조용하게 탈레반을 움직여야 한다며 탈레반의 특성에 따른 해법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인 인질의 무사귀환을 위한 조건은. -그들은 지금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1950∼60년대 옛 소련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원조 경쟁을 벌였다.(이번 문제의 해결에도) 돈이 생각보다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군사행동이 이뤄진다면 성공 가능성은. -인질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확실한 위치 파악도 안된 것 아닌가…. 탈레반을 소멸시키기 어렵다. 누구나 총을 들고 있다. 탈레반은 무장단체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사회조직 같은 것이다. 무역을 하던 이들도, 농사를 짓는 이들도 바로 전사로 변할 수 있다. 지금 청·장년층은 14∼15세부터 총을 들기 시작해 내전을 거쳐 지금까지 총을 들고 있다. 순박하긴 하지만 낙후되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이다. ▶인질들은 어디에 있나. -알려진 대로 남부의 자불, 칸다하르, 헬만드주의 사막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활동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이동거리는 500㎞ 미만이다. ▶사막보다는 산맥이 인질 은닉에 적당한 장소가 아닐까. -사막과 산맥이 분리된 게 아니다. 사막 뒤에 산이 나오고 동굴도 있고 숨을 곳이 많다. ▶파키스탄 접경지대인데, 파키스탄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탈레반의 주류를 이루는 파슈툰족은 3000만명 정도다. 그 가운데 1000만명이 아프간에,1800만명은 파키스탄에 있다. 모두 접경지대에 몰려 있다. 이는 1947년 영국이 강제로 그은 선이다. 그런 점에서 파키스탄이 정보는 많다. 그러나 접근·접촉과는 별개의 문제다. ▶아프간 탈레반의 특징은. -복수심이 대단히 강하다.‘중국인에게 10년 뒤의 복수는 늦지 않다.’는 말이 있지만,‘탈레반은 100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조롱을 당했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중요한 것은 부족들에 대한 접촉이다. 부족은 하나의 독립국가이면서도 서로 연결돼 있다. 예컨대 석방 문제도 탈레반 지도자가 정하지만,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도 아니다. 부족간에 어느 정도 협의가 있게 마련이어서 이 부족의 족장들을 통해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구축한 단단한 관계나 중간에서 도와줄 인맥들이 필요할 것이다. jj@seoul.co.kr ●장민(張敏) 전 참사관 올해 70세로 중국의 아프간 유학 1세대이다.1959년 국비 장학생으로 현지에서 3년을 공부한 뒤 세 차례에 걸쳐 15년을 아프간에서 머물렀다. 은퇴 상태인 2001년 말 현 아프간 정부 성립과 함께 중국 대사관의 재개설을 위해 다시 현지로 파견된 경력도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그를 따로 불러 아프간 문제를 상의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파슈툰어와 다리어 등 아프간의 2가지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국인 가운데 한 명이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윤은기 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윤은기 총장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마침내 그가 (혼외정사를)시인한 순간 피가 속구치면서 그의 목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옆방에 가서 잠시 생각해 보니 비록 흠집은 났지만 내 생애에서 그보다 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매력(魅力), 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다. 이제는 그야말로 ‘매력시대’다. 개인이나 가정, 조직이나 사회, 어떤 국가라도 ‘매력지수’에 따라 선호도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당신의 총매력지수는 얼마? ●매력 넘치는 ‘명품 CEO´에만 문호개방 흥미롭게 분석한 예가 있다. 비너스 윌리엄스와 샤라포바는 둘 다 테니스 실력이 세계 최정상급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개인 총매력지수는 샤라포바가 좀 더 높게 나온다. 옷 입는 것, 귀걸이 등 외모에도 많이 신경쓰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서브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는 사운드 장착에 있다. 인간의 심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콘티’라도 싱싱한 ‘사운드’에 끌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품 CEO’들에게만 입학자격(?)이 주어진다는 매력넘치는 곳이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을 말한다. 그럴 것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등이 이곳 출신이다. 또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권영빈 중앙일보 논설고문, 유재건 국회의원, 이치범 환경부장관 등 정·관계 및 언론·예술계의 많은 인사들이 최근 이 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각계 인사들의 지원희망이 쇄도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대학원이 생긴 지 불과 4년밖에 안됐다는 점에서 더욱 귀가 솔깃해진다. 우선 ‘빵빵한’ 교수진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와 뉴욕주립대, 핀란드 헬싱키경제대학, 네덜란드 트웬테대학 등과의 탄탄한 교육프로그램 제휴를 바탕으로 현지 교수들이 방한해 직접 질 높은 강의를 한다. 두번째는 한국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세계화 마인드로 무장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전문 비즈니스 스쿨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이 대학원의 CEO인 윤은기(56) 총장의 특별한 매력도 한몫한다. 윤 총장은 방송활동 10년, 경영컨설턴트 경력 20년 등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최근에는 골프칼럼니스트, 저술가, 교수, 강연가 등의 명함이 더 생겨 이른바 ‘멀티잡스’로 통한다. 각계 인사들과의 친분 또한 두터워 ‘인맥관리의 달인’이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원래 달변이기도 하지만 여러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미래사회에 대한 명쾌한 전망 등을 담은 그의 강의내용은 항상 인기를 끈다. ●매력은 권력·금력보다 더 영향력 높아 최근 서울시내 모처에서 가진 재계인사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도 ‘21세기 매력’의 중요성을 설파해 주목을 끌었다.“매력은 권력, 금력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우리말로 매력을 ‘멋’이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attractive, lovely, sexy, cool´ 등으로 사용된다.”고 풀이했다. 또한 이런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될수록 선진화된 커뮤니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사회가 매력지향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즉 경제·교육·민주화 수준이 높아진 점을 예로 들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냐.’가 아닌 ‘매력지수가 얼마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과 집안, 조직과 회사,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매력지수를 쑥쑥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사무실에서 윤 총장을 만났다. 지난 3월 총장직에 부임했다는 그는 “경영학을 중심으로 한 MBA, 즉 석·박사와 최고경영자과정을 둔 대학원대학교”라고 소개한 뒤, 차별화된 ‘4T 교육이념’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4T는 eThics-Teamwork-Technology-sTorytelling, 즉 윤리-팀워크-테크놀로지-감동창조 등을 말한다. “과거에는 돈을 버는 목적이 단순히 물질적 풍요였다면, 이제는 사회에 기여하는 정신적 만족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영적 파워(spiriture power), 즉 21세기 CEO는 다른 어떤 것보다 윤리 및 사회적 책임경영의 정신적 우위가 강조되고 있지요.” 예를 들어 빌 게이츠가 창의력 하나로 과거에 많은 돈을 벌었지만 요즘 들어 사회공헌의 윤리를 실천하고 있기에 새삼 존경받는 것이며, 스필버그 감독 또한 영화 ‘ET’로 떼돈을 벌고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로 인류사회에 공헌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우리나라 사업가들도 마찬가지란다. 과거 이익 극대화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사회공헌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기반으로 100년,1000년 장수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가 아닌 Chief Ethics Officer로 불러야 한다는 것. 이는 곧 최고경영자가 가진 지속경영의 능력이자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조건이라고 부연했다. 바로 이러한 윤리와 철학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건학이념이자 교육프로그램의 주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존경받는 것보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훨씬 행복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 뛰는 일이 아닙니까. 한국 부자들의 비극은 돈을 과시하려는 데 있습니다. 또한 존경할 대상은 없으면서 본인들은 존경받기를 원하지요.” ●“은퇴후에는 전업작가로 살아갈 터” 그러면서 골프의 매력을 늘어놓는다. 여러 가지 룰을 정확히 알고 매너를 지켜야 하는 ‘품격있는 운동’이라면서 “인맥관리에도 좋고 스트레스를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운동이 바로 골프”라고 했다.18홀 골프라운딩은 곧 윤리·환경·열정·지속가능·벤치마킹·메니즈멘트 경영이 담겨 있기 때문에 ‘골프마인드’가 곧 ‘경영마인드’라고 비유했다. 주말마다 골프를 즐긴다는 그는 핸디캡8 수준의 실력이며 “그러다보니 ‘골연’(골프로 맺은 인연)도 많다.”고 했다. 그는 강연때마다 ‘시테크’‘인테크’‘운테크’의 3박자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자주 편다. 그의 저서 중 ‘시테크’와 ‘귀인’이 가장 많이 팔린 것만 해도 이를 잘 입증한다. 결국 사람과의 만남에서 인생이 달라지듯 “내 주위 사람들을 귀인으로 만들어야 서로 윈윈하게 된다.”고 했다. 충남 당진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것도 바로 열린 마음의 ‘귀인철학’에 있다. 공군 학사장교 시절, 김동호 장군의 부관으로 있을 때에도 많은 귀인들을 만났다고 귀띔했다. “저는 일복이 터졌습니다. 방송진행, 저술활동, 강의 등 정말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이젠 한 곳으로 집중할 것입니다. 바로 미래의 자산인 매력있는 인재양성에 마지막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지요. 두바이에 사람과 돈이 몰리는 이유를 아십니까. 바로 ‘매력장착’입니다. 권력과 금력은 이제 완전히 갔고 매력이 사회를 이끄는 시대이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다국적기업 CEO들은 대부분 매력지수가 높습니다.” 신문의 매력은 어디에 있느냐고 하자 “외형적 편집기술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만족감을 주는 기사들로 채워질 때”라고 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기획물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직에는 어차피 정년이 있기 마련이라는 그는 “퇴임후에는 전업작가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기업소설, 골프소설, 추리물 등이다. 자신이 만든 조어 ‘심칠뇌삼(心七腦三)’을 예로 들면서 “마음과 열정이 7이라면 뇌는 3에 불과하기에 나이 들어도 얼마든지 매력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당진 출생. ▲70년 충남고 졸업. ▲75년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83년 정보전략연구소 소장. ▲88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 ▲93년 KBS라디오 ‘윤은기의 달리는 샐러리맨’ MC. ▲96∼98년 EBS ‘직업의 세계’MC. ▲97년 산업교육대상 명강사 부문. ▲97∼99년 IBS컨설팅그룹 사장. ▲99년 인하대 경영학 박사. 인하대 겸임교수. ▲2003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MC,MBN TV 쉽게 풀어보는 우리경제 MC ▲05년 SBS골프채널 명클럽 명코스 MC, 골프 칼럼니스트 활동. ▲07년 3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 총장 # 주요 저서 시테크, 귀인, 산업스파이 공격과 방어, 예술가처럼 벌어서 천사처럼 써라, 골프마인드 경영마인드,IMF시대 골드칼라 성공전략 등.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문관인 정사(正使)는 공식적인 국서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역관은 배후에서 절충하는 일을 맡았다. 절충하는 과정에는 유창한 외국어가 기본이었지만, 때로는 금품도 오가고, 여러 해 동안 오가며 맺어둔 인맥도 중요했다. 사신들은 일생에 한 두번 가기 때문에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지만, 역관들은 대여섯 번, 이상적이나 오경석 같은 역관들은 열 번이 넘게 파견되었으므로 각계에 인맥이 형성되었고, 제자들에게 그 인맥을 소개했다. 인맥을 통해 조선과 중국 사이의 외교 현안을 해결한 역관으로는 홍순언(洪純彦)이 가장 유명하다. ●공금 털어 구한 여인이 明 예부시랑의 후처로 홍순언은 젊었을 때에 뜻이 컸고 의기가 있었다. 한번은 북경으로 가는 길에 통주에 이르러, 밤에 청루에서 놀았다. 자태가 특별히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주인할미에게 부탁하여 한번 놀아보자고 청하였다. 순언이 그 여자의 옷이 흰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첩의 부모는 본래 절강 사람인데, 서울에서 벼슬하다 불행히 염병에 걸려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나그네 길이라 관(棺)이 여관집에 있지만 첩 한몸뿐이라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낼 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팔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목메어 울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순언이 불쌍히 여겨 장사지낼 비용을 물으니,“삼백금이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곧 돈자루를 다 털어 주었지만, 끝내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여자가 순언의 이름을 물었는데도 이름을 말해주지 않자,“대인께서 성명을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첩도 또한 주시는 것을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홍씨라는) 성만 말해 주고 나왔다. 동행 가운데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비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자는 나중에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후처가 되었다. 석성은 순언의 의로움을 높이 여겨, 우리나라 사신을 볼 적마다 반드시 홍역관이 왔는지 물었다. 순언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공금의 빚을 갚지 못한 것 때문에 잡혀서, 여러 해 동안 옥에 갇혀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종계변무(宗系辨誣) 때문에 전후 열댓 명의 사신이 중국에 다녀왔지만, 아무도 허락받지 못했다. 임금이 노하여 교지를 내렸다. “이것은 역관의 죄이다. 이번에 가서도 또 허락받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수석 역관 한 사람을 반드시 목 베겠다.” 역관 가운데 감히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역관들이 서로 의논했다.“홍순언은 살아서 옥문 밖으로 나올 희망이 없다. 그가 빚진 돈을 우리들이 갚아 주고 풀려나오게 하여 그를 중국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 그는 비록 죽는다 해도 한스러울 게 없겠지.” 모두들 가서 그 뜻을 알리자, 순언도 기꺼이 허락했다. 선조 갑신년(1584)에 순언이 황정욱을 따라서 북경에 이르러 바라보니, 조양문 밖에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펼쳐 있었다. 한 기병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홍판사가 누구시냐고 물었다.“예부의 석시랑이 공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마중 나왔습니다.” 조금 뒤에 보니 계집종 열댓 명이 부인을 에워싸고 장막 안에서 나왔다. 순언이 몹시 놀라 물러서려고 하자, 석성이 말했다.“당신이 통주에서 은혜 베푼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 아내의 말을 들으니 당신은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선비입니다.” 부인이 무릎을 꿇고 절하기에 순언이 굳이 사양하자, 석성이 “이것은 보은(報恩)의 절이니, 당신이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 사신이 이번에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하고 석성이 물었다. 순언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당신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했다. 객관에 머문 지 한 달 남짓한 동안에 과연 조선 정부가 청한 대로 허락되었다. 석성이 주선한 것이다. 순언이 돌아올 때에 부인이 자개상자 열 개에 각각 비단 열 필을 담아 주며,“이것을 첩의 손으로 짜 가지고 공께서 오시길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순언이 사양하며 받지 않고 돌아왔지만, 깃대를 든 자가 압록강까지 와서 그 비단을 놓고 갔다. 비단 끝에는 모두 ‘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순언이 돌아오자 나라에서는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기록하고 당릉군(唐陵君)에 봉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리를 보은단동(報恩緞洞)이라 하였다. 그의 손자 효손(孝孫)은 숙천부사가 되었다. ●조선 왕실의 계보를 바로잡다 정명기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홍순언의 이야기는 39가지 책에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그 가운데 서사구조가 분명한 ‘국당배어’‘연려실기술’의 기록을 위에 소개했다. 홍순언의 이야기 가운데 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종계변무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공민왕이 피살되자 이인임이 나이 어린 우왕을 세웠는데, 명나라 사신 채빈이 본국에 돌아가 공민왕 피살사건을 보고하면 재상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염려하여 중도에 살해하였다. 정도전·권근·이첨 등의 친명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누렸지만, 이성계가 최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유배보냈다. 이성계의 정적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망명해 ‘이성계가 친원파 권신 이인임의 후사(後嗣)’라고 모함했다. 명나라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했다. 이성계가 정적 이인임의 후사라고 기록된 것은 조선 왕실의 가장 큰 모욕이었으므로, 태조뿐만 아니라 대대로 사신을 보내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정해 주지 않았으므로 가장 큰 외교 현안으로 남아 있었다.1584년에 황정욱이 ‘대명회전’ 수정판의 조선관계 기록 등본을 가져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종계변무’라는 용어는 ‘왕실의 계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홍순언은 조선 왕실이 종계변무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준비를 하면서 역사에 정면으로 등장했다. 선조실록 5년(1572) 9월11일 기사에 “주상이 중국 사신을 접견할 때에 종계(宗系)의 악명(惡名)을 바로잡는 일에 관해 먼저 대략 말하고, 이어 단자(單子)로써 자세히 기록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통사 홍순언 등을 시켜 한어(漢語)로 번역해 단자를 만들어 예조에 주어 아뢰도록 했다.”고 했다. 국서는 한문으로 된 문어체라서 친근감이 없었지만, 단자는 구어체였으므로 간절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계변무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12년 뒤인 선조 17년 11월1일 실록에서야 “종계 및 악명 변무주청사 황정욱과 서장관 한응인 등이 칙서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고 했다. 선조는 그 사실을 종묘에 고한 뒤 죄수들을 사면했으며,“정욱과 응인 및 상통사 홍순언 등에게 가자(加資)하고, 노비와 전택(田宅), 잡물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 종계변무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봉했는데, 홍순언에게 2등 당릉부원군을 봉했다.19명 가운데 실무자급인 역관은 홍순언 한 사람만 포함되었다. ●39가지 야담과 소설로 전하는 홍순언 이야기 당릉군에 봉군된 홍순언은 왕궁을 지키는 종2품 우림위장(羽林衛將)까지 승진했는데, 사간원에서 두어 차례 탄핵하였다.“출신이 한미한 서얼이라서 남에게 천대받는다.”는게 이유였는데, 선조는 그가 공신으로 가선대부까지 받았으니 결격사유가 없다고 옹호했다. 역관 홍순언의 능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발휘되었다.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사신이 가며 그도 따라갔고, 선조와 고관들은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조선 정세를 파악했으며,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 석성이 과연 홍순언이 구해준 여자와 혼인한 덕분에 조선에 원군을 보냈는지, 역사 자료만 가지고 확인할 수는 없다. 야담이나 야사에서는 여인이 몸을 팔게 된 이유도 달리 나오고, 석성의 벼슬도 달라지며, 그가 해결해 준 현안도 달라진다. ‘청구야담’에는 홍순언이 병술·정해년(1586∼1587) 사이에 북경에 갔다가 청루 문 위에 “은 천 냥이 없으면 들어오지 못한다.”고 쓴 것을 보고는 중국 탕아들도 값이 비싸서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데, 그는 “부르는 값이 그만큼 비싸다면 반드시 뛰어난 미인인 것”이라 생각하고 수천냥을 털어 그 여자를 샀다고 한다. 이미 종계변무가 해결된 뒤이니,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 원군 요청의 임무를 띠고 홍순언이 파견되었으며, 병부상서 석성이 해결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종계변무는 외교적 사안이니 예부에서 담당하고, 원군 파견은 군사적 사안이나 병부에서 담당한다. 석성의 벼슬은 그에 따라 달라진다. 홍순언은 공금을 횡령해 청루의 여자를 산 협객인데, 결과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 살이 덧붙어 야담과 소설이 39종이나 되고, 박치복이라는 시인은 5언 264구의 장편서사시 ‘보은금(報恩錦)’을 지었다. ●곤담골에 천인 백정교회가 들어서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지금 롯데호텔이 서 있고, 그 앞에 ‘고운담골’ 표지석이 있다.‘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인 비단을 기념해 동네 이름이 보은단골인데, 고운담골, 곤담골로 바뀌었다. 고운담골을 한자로 쓰면 미장동(美牆洞)이다. 임진왜란이 300년 지난 1892년에 무어 선교사가 조선에 왔다가 조선어를 익히기도 전에 곤담골에 이사하여 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조선인을 야만시하던 권위적 선교사와 달라 인목(仁牧)으로 불렸는데, 백정까지도 교회에 나오게 하여 곤담골 ‘백정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얼 출신 역관이라 천대받던 홍순언의 동네에 백정교회가 세워진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오후 9시 광주 무등극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말이 없다. 체구가 작은 그는 숫제 의자에 파묻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충격적인 장면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전 총리는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아본다. 남편 박성준 교수도 문득 부인의 존재를 깨닫는다. 서로 잠시 눈을 맞춘다. 둘 다 영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둘은 지난달 27일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5·18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다.‘5월 어머니회’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모임이다. 이날은 이 영화의 광주 개봉일이었다. “꼭 5·18 현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가졌나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한 전 총리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광주 금남로에 왔다고 했다. 영화가 끝난 뒤 그는 목놓아 우는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손을 맞잡았다.“이런 좋은 날이 와서 영화까지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아직은 억울하고 원통해서….”반백이 다된 여성들이 말을 잇질 못한다. 한 전 총리도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 선언 후 벌써 세 번째 호남을 찾았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에게 호남은 특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다. 호남 지지가 없으면 대권도 없다. 이번 방문에서 그는 광주와의 특별한 인연을 새삼 강조했다. “저는 광주교도소에서 5·18을 맞았습니다. 감옥 안에선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질 않았어요.”한 전 총리는 광주 지역 원로 윤공희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옛 일을 회상했다.27년 전, 두려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총소리가 들리고 헬리콥터가 드나들어 전쟁이 난 줄 알았다.“전쟁이 나면 정치범부터 죽이잖아요. 그 현장에서 저는 하루 24시간 감시받으며 목숨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그 열흘을 버텼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 측근은 “5·18 광주를 생각하면 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후보가 될 수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삶의 궤적은 역사 앞에서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고 덧붙였다. “손 전 지사는 80년 5·18 당시 어디에 있었나요. 그리고 93년 정치 입문은 어떤 당 간판을 달고 했나요.”범여권 주자들이 두고두고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대목이다.“최근까지의 행적·발언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우리 범여권이 반성해야 합니다.” 한 전 총리는 ‘여성 리더십’과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국정운영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여성적 가치, 부드러운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씨나 남편의 후광을 입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자기 손으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다. 자신만만 했다. “세계가 여성지도자를 원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과 독일 메르켈 총리, 그리고 이제는 인도에서도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도 여성대통령, 나올 때 되지 않았을까요.”외유내강형인 한 전 총리의 권력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 쉽사리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지율은 낮고 역전의 기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전 총리측 반응은 간단했다.“흔들림 없이 우리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처음 출마 선언 때 누구나 우리가 곧 포기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명숙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까.”아직 시간은 남아있고 변수는 많다는 이야기다. 그는 “안정된 모습을 강조하다보면 경선판이 흔들릴 때 유력한 제 3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로 뚜벅뚜벅 가는 게 필승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그 의도가 적중할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광주에서의 밤.‘한명숙 팬클럽 회원’들이 금남로 근처 한 호프집에 모였다. 한 전 총리와의 팬 미팅이다. “바깥양반이 저를 위해 13년 반을 고생했습니다. 이제 바깥양반을 위해 안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한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 교수가 인사말을 한다. 남편이 아내를 ‘바깥양반´이라 부른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웃음을 머금었다. 한 전 총리는 혼인신고도 못한 채 끌려간 남편을 13년 반 동안 옥바라지했다. 결혼 6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박 교수 표정이 진지하다. 허튼 소리가 아니다.“부정한 힘으로 쓴 역사는 정의로 지켜온 역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저희 바깥양반은 꼭 승리할 겁니다.”박수가 쏟아진다. 광주 일정 마지막 날. 통합신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서 한 전 총리는 외로워 보였다. 행사 초반 대선주자 소개 때 다른 이들에게 쏟아지던 연호·함성은 그에게 없었다. 인지도가 아직 낮다.‘가나다’ 연설순서에 따라 한 전 총리의 연설은 항상 마지막이다. 그가 연설할 때쯤 청중의 3분의1은 이미 행사장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대중연설은 의외로 설득력 있었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연설 말미 “본선 경쟁력에 한사람 한사람 대입해 보십시오. 한명숙 괜찮지 않겠습니까?”란 마무리에 생각지 못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광주 시민은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연단을 내려오는 한 전 총리가 살짝 웃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한총리의 약점은 ‘단점 없는 게 장점, 장점 없는 게 단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특별히 흠 잡을 데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다는 얘기다. ‘여성 후보 무임승차론’은 여기서 나온다. 콘텐츠가 부족하고 특별한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단지 여성후보라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무총리 재임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부분도 한계다. 캠프쪽에서는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를 장점으로 꼽고 있지만 지지율을 높이는 것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비호감’은 아니지만 확실한 호감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안티는 별로 없지만 팬도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 전 총리는 “나는 돈도 조직도 계파도 없는 ‘3무(無)’ 후보다. 오직 국민의 바다에 뛰어들어 당당히 승부하겠다.”고 말한다. 선거전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호남이나 충청, 수도권 그 어느 지역에서도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등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것도 한 전 총리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친노와 비노 후보 이미지가 겹치는 것도 한 전 총리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친노 대선 주자들에 밀려 친노 지지층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비노 지지층에서 한 전 총리를 친노로 분류할 경우 그쪽에서도 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누가 돕나 한명숙 전 총리의 캠프는 현직 국회의원과 여성계 인사, 총리 시절 참모그룹 등 40여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 출신 인사들과 신인령 전 이대 총장 등 모교 이화여대 출신 인맥, 후원회장인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주요 지원그룹이다. 현역 의원으로 김형주(대변인)의원을 비롯, 백원우(조직)·이미경(여성 총괄)·이경숙(서울지역)·장향숙(장애인 담당)·신명(직능)의원이 결합했다. 실무진에는 청와대와 총리실 출신 참모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황창화 전 총리실 정무수석(총괄기획)과 김형욱 전 민정수석(조직), 김승호 전 정무비서관과 양상현 전 청와대 행정관(정책)이 힘을 보태고 있다. 신상엽 총리실 전 정무비서관이 공보를, 조한기 전 의전비서관은 의전과 일정을 맡았다. 지원그룹 면면에는 한 전 총리가 재야활동 시절부터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이 많다. 후원회장인 한 변호사를 비롯해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박영숙 전 의원 등이 한 전 총리를 돕고 있다. 이 밖에도 홍보 및 연설기획, 메시지를 담당하는 선거 전문가와 방송작가 등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팬클럽 ‘행복한(韓) 사람들’ 회원 3000여명도 한 전 총리의 든든한 후원자다. 신상엽 공보팀장은 “캠프는 한 전 총리가 내세우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분위기”라면서 “후보가 수시로 참모들과 대화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열린 캠프”라고 자랑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아프간 협상 중대국면] 피랍보도 돋보이는 NHK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NHK가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인 탈레반의 한국인 피랍사건과 관련, 다른 매체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속보를 내보내고 있다.NHK는 지난 26일 새벽 피랍된 23명 가운데 8명을 석방하기 위해 이동하던 탈레반이 주변에 배치된 아프간 정부의 전차 등 무장 병력을 본 뒤 스스로 안전을 우려, 되돌아갔다며 현장감을 실어 보도하는 등 최근 잇따라 속보에서 앞서 나갔다. NHK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지국을 두고 특파원 1명을 파견하고 있다. 지국에는 현지인을 포함,3∼4명의 직원이 있다. 아프간 카불의 지사는 지난해 구조조정차원에서 폐쇄했다. 그러나 그동안 친분을 쌓아온 아프간내 고위 인사들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NHK는 29개국에 70명의 특파원을 두고 있다. NHK 국제부 측은 “큰 사건인 만큼 나름대로 현지의 인적네트워크 등을 동원,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NHK는 파키스탄에서 현지의 고위층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며 인맥을 쌓았던 파키스탄 특파원 출신 일본인 기자를 통해 피랍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아프간의 고위층을 비롯, 탈레반 측과 전화 등을 통해 직접 접촉, 취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프간 정부 당국자 등의 육성을 녹취할 수 있다고 NHK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hkpark@seoul.co.kr
  • 김용덕 금감위원장 내정자의 과제

    새로운 금융감독 수장으로 내정된 김용덕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국제금융 전문가로 ‘미스터 원’으로 불린다. 금융감독원과 시장에서는 금융시장의 생리를 잘 알고 국제 금융인맥이 탄탄한 시장친화적인 인물이 후임을 맡게 된 것에 환영하고 있다. 다만 국내 금융정책 경험이 다소 부족하고 업무 스타일이 깐깐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김 금융감독위원장 내정자는 용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행시 15회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 국제금융국 과장, 재경부 국제금융심의관과 국제금융국장, 초대 국제업무정책관을 차례로 맡으며 주로 국제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다졌다. 재경부 시절 별명은 ‘사무라이’. 의사결정이 빠르고 한번 칼을 빼들면 끝장을 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2005년 건교부 차관 시절에는 재경부 직원들을 불러 금융감독 분야에 대한 정책문의를 한 적도 있다. 한·중·일 국제금융국장 회의를 출범시켰고, 아시아 국가에서 외환위기가 재연될 경우 각국의 외환보유고를 서로 활용하자는 소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의 협상 주역으로 참여했다. 2003년 관세청장일 때 재경부가 역외선물환(NDF) 시장을 통해 무리하게 환율방어에 나서자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2004년 한해만 NDF거래로 1조 8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김 내정자는 지난해 11월부터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주요 금융정책들을 총괄적으로 조율해 왔다. 때문에 금융감독 수장이 바뀐다고 해서 주요 금융정책이 변화할 것으로 시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 등 현안에 대해 김 내정자는 지난해 부동산값 급등의 원인을 과잉 유동성 때문으로 진단하고,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주도해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경쟁력 강화, 과열 우려를 낳고 있는 주식시장의 안정적 성장, 서민금융시장의 활성화, 급증하는 중소기업 대출 등 금융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인 해소 등이 김 내정자의 과제다. 또한 올 하반기에 있을 생명보험사 상장을 독려할 책임도 있다. 다만 김 내정자는 연말 대선과 함께 정권이 교체될 경우 3년 임기를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노무현 정부의 마무리 투수’로서 시장의 정서에 반하는 무리한 정책을 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광림 전 재경부 차관의 손위 동서로, 부인 김희준씨 사이에 1남2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Local] 전북 정무부지사 한명규씨 내정

    한명규(52) 매일경제신문 논설실장이 전북도 정무부지사로 내정됐다. 전북 정읍 출신인 한 실장은 83년 매일경제 기자로 입사해 23년 동안 재직했다.2004년부터 2006년까지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전북도는 한 실장이 도의 현안인 경제정책에 밝고 중앙부처와 인맥이 두터워 정무부지사로 내정했다고 임용 배경을 밝혔다.
  • 신진작가 10명의 ‘열’전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실질적이어서 좋았어요.(권경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인사미술공간이 올해로 3회째 신진작가 10명을 배출했다. 서울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열’전(8월26일까지)에는 1977년생부터 1983년생까지 그야말로 풋풋한 ‘새내기’ 작가 10명이 수줍게 열정을 드러낸다. 인사미술공간은 워크숍을 통해 2005년부터 ‘미술계에서 전업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미술대학과 큐레이터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작가 25명 가운데 10명을 뽑아 넉 달간 ‘신진작가수첩’ 워크숍을 진행했다. 포트폴리오 작성법, 글쓰기의 실제, 국내외 레지던시(작가 입주 창작 프로그램) 활용, 지원금 신청서 작성요령 등 학교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살아 있는 교육이다. 인사미술공간의 강성은 큐레이터는 “인맥에서 벗어나 공공기관에서 제도적으로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취지”라고 프로그램의 의의를 설명했다.지난 2005년 신진작가수첩에 참여했던 김보민은 이제 홍콩 크리스티경매,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 등에서 활약하는 국제적인 작가가 됐다. 또 2006년 참가한 진기종은 아라리오 갤러리 전속작가가 됐고, 안정주는 핀란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제 막 미술계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작품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가늠해 보게 한다. 올해 신진작가수첩에 참여한 권경환(30)은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검은 화면에 흰색 연필로 미사일의 불빛과 하얀 연기를 그려넣은 사뭇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빛을 발한다. 이소정(28)은 한지 바탕에 수묵으로 그린 ‘나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라는 작품을 냈다. 스스로 ‘마마걸’이라고 고백하는 작가는 이를 통해 한국 성인 여성이 겪는 억압을 표현한다. 이밖에 관광엽서나 관광객의 비디오를 편집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함혜경), 아바타 그림 위에 불투명 유리를 씌운(손서현) 작품도 눈길을 줄 만하다.(02)760-4722.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