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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빈 이나영 결혼, 계속된 임신설 진실은?…소속사 공식 7문7답 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 계속된 임신설 진실은?…소속사 공식 7문7답 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 계속된 임신설 진실은?…소속사 공식 7문7답 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우리 결혼 했어요’ 비밀 결혼식 [전문]

    원빈 이나영 ‘우리 결혼 했어요’ 비밀 결혼식 [전문]

    배우 원빈과 이나영이 30일 결혼했다. 30일 원빈과 이나영의 소속사 이든나인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소속사 측은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 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다”며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다”고 설명했다. ▶이하 소속사가 공개한 일문일답. Q.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요? 이든나인: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Q.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이든나인: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Q.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요 이든나인: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Q.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요? 이든나인: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Q.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요? 이든나인: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Q.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든나인: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Q.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이든나인: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가 밝힌 결혼식 이모저모 ‘7문 7답’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가 밝힌 결혼식 이모저모 ‘7문 7답’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가 밝힌 결혼식 이모저모 ‘7문 7답’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살펴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살펴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2세 계획 살펴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2세 계획 살펴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 극비 결혼식 올려..‘강원도 민박집 들판’ 임신설은? [전문공개]

    원빈 이나영 결혼, 극비 결혼식 올려..‘강원도 민박집 들판’ 임신설은? [전문공개]

    원빈 이나영, 부부됐다..30일 극비 결혼 ‘강원도 민박집 들판에서?’ [전문] ‘원빈 이나영 결혼, 우리결혼했어요’ 배우 원빈 이나영 커플이 극비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원빈 이나영의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 결혼 소식을 알렸다. 소속사 측은 “이나영 씨와 원빈 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 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 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 같이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원빈 이나영은 이날 강원도 정선 덕우리 한 민박집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으며 극비리에 진행돼 소수의 친인척과 지인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가 된 원빈 이나영은 2011년 한 소속사 연예인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2012년 열애를 인정했다. <이하 원빈 이나영 소속사가 공개한 일문일답> Q.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요? 이든나인: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Q.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이든나인: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Q.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요 이든나인: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Q.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요? 이든나인: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Q.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요? 이든나인: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Q.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든나인: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Q.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이든나인: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서울신문DB(원빈 이나영 결혼, 우리결혼했어요)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살펴보니 2세 계획은?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살펴보니 2세 계획은?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 임신설 진실은?…소속사 공식 7문7답 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 임신설 진실은?…소속사 공식 7문7답 보니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원빈 이나영 결혼…소속사 공식 7문7답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결혼과 관련해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이 30일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놨다. 이든나인 측은 “결혼식은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다”며 “이나영, 원빈 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다.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어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쯤 천천히 다녀올 예정이다. 신혼생활은 서울 방배동에서 보낼 예정”이라며 “자녀 계획은 원빈, 이나영 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원빈, 이나영 커플은 지난 2012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 원빈, 이나영 결혼 관련 공식입장 및 공식 질의응답 전문 이나영♥원빈의 결혼을 알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든나인입니다. 배우 이나영씨와 원빈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습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믿음을 나누는 하나로 맺어진 이나영♥원빈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2015년 5월 30일 이든나인 드림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사진, 분위기 어땠나 보니 ‘70년대 시골 스타일’ 비주얼 깜짝

    원빈 이나영 결혼사진, 분위기 어땠나 보니 ‘70년대 시골 스타일’ 비주얼 깜짝

    원빈 이나영 결혼사진, 분위기 어땠나 보니 ‘70년대 시골 스타일’ 비주얼로 올킬 ‘원빈 이나영 결혼사진, 디스패치’ 배우 원빈 이나영 커플이 극비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디스패치는 원빈 이나영 결혼식 현장을 포착해 보도했다. 원빈 이나영의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원빈 이나영 결혼 소식을 알렸다. 소속사 측은 “이나영 씨와 원빈 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다.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 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 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 같이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원빈 이나영은 이날 강원도 정선 덕우리 한 민박집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으며 극비리에 진행돼 소수의 친인척과 지인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가 된 원빈 이나영은 2011년 한 소속사 연예인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2012년 열애를 인정했다. 한편 디스패치는 강원도 정선 덕우리 인근 한 민박집에서 조용히 올린 원빈 이나영 결혼식 현장을 포착해 보도했다. 디스패치에 따르면 원빈 이나영 결혼 장소인 민박집은 덕우리 월통교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뒤로는 절벽산이 있고,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는 곳이다. 원빈 이나영 결혼식은 민박집 입구에 보안 요원을 배치해 낯선 사람의 출입을 철저히 막았으며 양가 친지 50여 명만 초대해 소박하게 식을 진행했다고 디스패치는 전했다. <이하 원빈 이나영 소속사가 공개한 일문일답> Q. 결혼식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되었나요? 이든나인: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 그려왔던 둘 만의 결혼식 풍경이 있었습니다. 둘이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 하나 준비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온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에 대해 다른 이의 입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Q.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이든나인: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강원도의 이름없는 밀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과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5월의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Q. 결혼식엔 누가 참석했나요 이든나인: 두 사람의 시작을 축복받고 싶은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나영, 원빈씨의 가족분들만 함께 했습니다. 이들의 성장과 삶의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간절히 행복을 빌어줄 가족들 앞에서 경건하게 결혼서약을 나눴습니다. Q. 신혼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나요? 이든나인: 이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 할 든든한 길 벗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혼여행은 각자 향후 일정이 마무리 될 때 쯤 천천히 계획해서 다녀 올 예정입니다. Q. 신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하나요? 이든나인: 서울 방배동에서 신혼을 보낼 예정입니다. Q.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든나인: 원빈, 이나영씨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습니다. 결혼 이후엔 되도록이면 빨리 2세 소식을 기다리겠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겠지요. Q. 향후 배우로서의 활동은? 이든나인: 지난 몇 달 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결정하고 조용히 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각자 배우라는 자리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이든나인(원빈 이나영 결혼사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잇따른 공습에도 파죽지세 세력 확장… IS, 궁금증 10문10답

    IS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 수립을 목표로 출범한 지 1년 만에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무서운 속도로 확장했다. 라마디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IS에 관한 궁금증을 ‘10문 10답’으로 알아봤다. ① 어떻게 탄생했나 - 反시아파 ISIL이 전신 IS는 원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라는 반시아파 세력이 전신이다. 이는 ‘이라크와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자’는 뜻이다. IS는 2003년 알카에다의 이라크 하부조직으로 출발해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의 탈영병과 반군 세력이 합세하면서 세를 키웠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시리아로 근거지를 옮겼다. 지난해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과 인근 유전 지역을 점령한 후 현재 명칭인 IS로 개명했다. ② 국가로 성공 가능성은 - 국민 뒷전… 존속 어려워 IS는 국가로 자립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IS의 지배계층이 전쟁 수행과 엄격한 규율 부과에만 매달리다 보니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IS가 점령한 지역은 공적 서비스가 붕괴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의약품은 부족해졌다. 사람이 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강압적으로 불만을 억누를 수 있겠지만 국가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③ 재원 마련은 - 주요 수입원은 강탈·징세 주요 수입원은 석유 판매가 아닌 강탈 및 징세다. IS는 지난해 이라크 점령지에서 강탈 및 징세로 6억 달러(약 6600억원)를 거뒀다. 이라크의 국영은행을 빼앗아 추가로 5억 달러(약 5500억원)를 빼앗았다. 반면 석유 판매 수입은 1억 달러(약 1100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의 석유시설 공습과 원유 가격 하락으로 수익이 줄었으나 IS는 강탈과 징세로 부족한 재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④ 무기는 어디서 - 이라크·시리아서 탈취 IS는 무기와 군사 장비를 이라크와 시리아의 군사기지에서 탈취해 무장한다. 또 외국 정부가 시리아 반군에 공급한 군수품도 중간에 절취한다. IS가 주로 사용하는 총기인 M16·M4와 로켓인 M79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다른 무장단체에 지원한 것이다. ⑤ 대원 모집은 - 최근 수니파 빈곤층 유입 IS는 현재 약 2만 5000명의 전투대원을 갖추고 있다. 이 가운데 약 1만 5000명은 이라크와 시리아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합류한 대원들이다. 대부분은 인근 이슬람 국가 출신이지만 유럽과 아시아 출신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차별을 겪은 수니파 빈곤층 청년들이 대거 IS로 유입되고 있다. ⑥ 비이슬람권 출신 대원도 있는데 - 유럽·아시아서 SNS 가담 IS는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디지털세대의 취향에 맞는 홍보 영상 및 게임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한다. IS를 모르는 서방 출신의 청년들도 이를 통해 IS를 접하고,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IS에 가담하고 있다. ⑦ 문화유산 파괴는 왜 - 무함마드 따라 우상 파괴 IS는 지난 3월 님루드와 하트라를 점령한 뒤 비이슬람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도 메카를 점령한 뒤 우상을 파괴했기에 자신들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⑧ 세력 확장은 어떻게 - 인프라 대신 인적 투자 집중적인 공습으로 내부 이탈자가 증가하고 있다.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대한 것은 수시로 변하는 전략전술 때문이다. 공격 목표가 되기 쉬운 인프라 투자는 자제하고 인적 투자에 주력한다. 또 정부군에 밀릴 때는 테러에 집중하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영토확장에 몰입한다. 민간인 주거지역을 따라 이동하는 반인륜적 전술도 구사한다. ⑨ 모든 이슬람교도에 우호적? - 이란 등 시아파는 적 IS는 수니파 이슬람교에 기반한 무장단체다. 수니파는 이슬람의 가장 큰 종파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과 관행인 수나를 따르는 사람을 뜻한다.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90%가 수니파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해역의 왕정국가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반면 이란을 맹주로 한 시아파 이슬람은 IS의 ‘적’이다. ⑩ 최종 목표는 - 완전한 칼리프 국가 건설 완전한 칼리프(이슬람 정치·종교 지도자) 국가의 건설이다. 지난해 1971년생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칼리프로 추대한다고 발표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라크 바그다드 점령을 표방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IS를 공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병든 모친 살해 정신 장애 아들 2심 징역 10년

    어머니를 살해한 40대 정신장애 아들에게 항소심에서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됐다. 심신 미약을 크게 감안했던 1심 재판부와 달리 2심에서는 계획성과 의도성을 더 중하게 봤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김상환)는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모(42)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지난해 6월 어머니(66)가 대상포진과 척추 함몰 등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송씨는 밤에 미리 준비한 흉기로 어머니를 찔러 숨지게 했다. 송씨는 범행 뒤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정신장애 3급으로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1심은 송씨가 반사회적·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지만 정신장애를 앓는 점(심신 미약), 형과 누나가 선처를 호소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송씨가 미리 흉기를 준비하는 등 계획적이고 패륜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며 더 무거운 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그 결과도 이 세상 단 한 분뿐인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라면서 “원심 양형은 지나치게 가벼워 부당하다”고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보상 받으려 꾀병” “101세 노인, 좀비” 네팔 참사에 도 넘은 악플

    지난달 25일 네팔을 강타한 대지진의 사망자가 최대 1만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일부 네티즌의 도를 넘은 악성 게시글과 댓글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5일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서는 네팔 지진 관련 기사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31일 엄마를 잃고 병원에 입원한 7세 여자아이가 애처롭게 울고 있는 사진에는 ‘생계유지하려면 화류계로 들어가겠네’(ID ymj9****), ‘그게 인생이다 어린 것아’(ID hell****),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데 꾀병 부리는 거 아닌가 보상받으려고’(ID coco****) 등 반(反)인륜적인 댓글이 달렸다. ‘일간베스트’ 게시판에서는 지진 8일 만에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101세 노인을 ‘좀비’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얼마나 더 살려고 그러느냐’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트위터에서는 ‘shell****’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네팔 지진은 자연현상이 아닌 하나님이 주관하신 일’, ‘이교도의 끝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맛보는 결말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고 썼다가 쏟아지는 비난에 계정을 폐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는 지난 3일 ‘네팔이 위기에 처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성금을 모아 네팔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는 글이 농협 계좌번호와 함께 올라왔지만, 해당 계좌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부 네티즌이 감정적이고 무절제한 용어를 쏟아 내고 있어 우려된다”며 “최소한의 세계시민 의식과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특사 문제 알면서… 국회는 ‘멀뚱멀뚱’

    2013년 4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장. 여야 의원들이 사면법 개정법률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개별적으로 논의하면 끝이 없으니 법무부나 여당 측에서 수용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오라”고 여당을 압박했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도 “사면권을 제한하자는 국민적 요구가 드높다”고 주장했다. 이에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자는 국민의 요구가 드높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좀 어렵고…”라고 반박했다. 야당 측 박범계 의원은 사면권 제한이 위헌의 소지가 크다며 오히려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당시 법사위는 관련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결국 여야 공방만 벌이다 논의를 중단했다. 사면심사위원회를 신설하고 권한을 강화했던 17, 18대 국회와 달리 19대 국회는 사면법의 문구 하나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성완종 특사’ 논란으로 대통령 특별사면의 문제점을 성토하고 있는 현재 정치권 모습과도 대조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사위 관계자는 “당시 절차적 차원에서 사면권 제한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논의하다 중단됐다”면서 “여야가 각자 단일안을 가져오기로 했지만 여당 측에서 갖고 오지 않아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지시로 정부가 직접 사면법 손질에 나섰지만 당시 법무부는 사면권 제한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도 확인됐다. 당시 제출된 법사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특정 죄명에 대한 사면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라고 적시됐다. 또 입법부의 견제 기능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위헌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반대의견”이라고 검토보고서는 밝혔다. 5일 현재 19대 국회에 계류 중인 사면법 개정법률안은 11건이다. 새정치연합 문병호 의원안은 대통령 특별사면 시 국회 동의를 얻도록 했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안은 특별사면 내용을 국회에 통보해 의견을 듣도록 하는 등 입법부 견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 등은 뇌물죄나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특별사면을 제한하도록 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의원 등은 대통령 친·인척과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특별사면을 제한하도록 하는 등 법안마다 차이가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남아공 86세 수녀, 성폭행 당한 뒤 사망 충격

    남아공 86세 수녀, 성폭행 당한 뒤 사망 충격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86세 수녀가 강도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 해외 언론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올해 86세인 노수녀는 자신의 집 욕실에서 손이 묶인 채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시신을 수습해 법의학적 검사를 의뢰한 결과, 수녀가 숨지기 전 성폭행을 당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욕실에서 발견됐을 당시 노끈으로 손이 묶여 있었으며 얼굴 위에는 수건이 덮인 상태였다. 사인은 질식으로 밝혀졌지만 얼마나 많은 남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의 방에서 매우 적은 금액의 유로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현지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단의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의 오랜 친구라고 밝힌 한 여성(85)은 그녀가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남아공에서 60년간 선교사로 활동해 왔다면서 “평소 (피해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매우 야만적이고 끔찍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집안에 강제 침입의 흔적은 없었으며 강도단의 정확한 규모도 파악되지 않는다”면서 “가해자들은 수녀를 성폭행한 뒤 질식사하게 할 의도로 얼굴에 수건을 덮은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남아공에서 반인륜적인 성범죄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에는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가 “남아공에서 성폭행을 통해 잘못된 성 정체성을 교정한다는 의미의 성범죄인 ‘교정 강간’이 자행되고 있다”고 보도해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바 있다. ‘교정 강간’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이며, 2000년대 들어 이들을 노린 성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교정 강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지난 1월 괴한 4명은 한 여성을 납치해 차례로 성폭행 한 뒤 “이 과정(성폭행)을 거치고 나면 진정한 여자가 돼 다시는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동의보감’의 인간관/서동철 논설위원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지체가 높고 귀한 존재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안목(眼目)이 있다. 하늘에 밤낮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寒熱)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血脈)이 있다. 땅에 초목(草木)과 금석(石)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다.” 허준(許浚·1539~1615)의 ‘동의보감’은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로 시작한다. 신체의 모양과 장기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인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감각으로는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귀중한 정보였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내보이고자 했던 인간의 정수가 바로 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앞의 설명을 보면 우주와 인간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와 몸은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척추는 천지(天地)의 기운과 인체의 기운을 소통·순환시키고 있다. 우리는 ‘동의보감’을 병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기능적으로 알려주는 의서(醫書)로만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이 땅의 오래된 경험적 향약(鄕藥) 전통에 중국의 새로운 의학 지식을 포괄한 16세기 후반 조선 의학의 결정판이다. 그러면서 ‘동의보감’은 인체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당대의 세계관인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륜(人倫)의 정당성으로 새롭게 정립한 의철학(醫哲學)의 명저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의 전편을 흐르는 가르침은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닮은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하고, 그 원리를 거스른다면 인체의 균형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러운 삶이 인간의 도리인 만큼 인륜을 지키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의술을 통치 수단의 하나로 격상시켰다. 편찬에 정작(鄭?) 같은 유의(儒醫)도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의는 의학 지식에 학식을 겸비한 관료를 뜻한다.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은 조선 의학이 독립성을 가졌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허준은 중국 의학을 북의(北醫)와 남의(南醫)로 나누고 우리 의학을 동의(東醫)라 불렀다. 조선 의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했으며, 중국 의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식을 보여 준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이다. 그 판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윤여준-김상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 1년, 대한민국을 말하다

    윤여준-김상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 1년, 대한민국을 말하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주변의 말은 거짓이다. 250명의 열일곱 살 아들딸을 찬 바다에 묻은 부모의 삶은 지난 1년 내내 온통 짠 내음이었다. 숨이 막혀 가슴에 묻을 수조차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침통하고 황망한 슬픔을 공유했던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일상으로 돌아왔고, 문득문득 잊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았던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만났다. 각각 보수와 진보 성향의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를 통한 대한민국 성찰과 반성의 지점, 그리고 남겨진 과제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노란 리본을 옷깃에 매단 두 사람은 바삐 오가는 시민들 곁에 서서 어제 일처럼 생생한 ‘1년 전 오늘’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전 교육감(이하 김) 1년 전 그날 저는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후보 신분이었어요. 안양에서 유세하던 중 사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단원고에 들렀다가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곧바로 팽목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열하루 동안 참사 현장에 머물렀습니다. 선거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참사로 비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유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었습니다. 윤 전 장관(이하 윤) 처음 텔레비전에서 소식을 접한 뒤 깜짝 놀랐지만 당연히 대부분 구조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가 막혔죠. 그 아이들이 바닷물에 잠기면서 느꼈을 공포와 고립감을 생각하고, 자식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망연자실했죠. 그 또래의 손녀가 있어서 더욱 가슴에 맺혔습니다. 뒤늦게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고, 두 달쯤 지난 뒤 팽목항으로 갔어요. 가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공직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사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김 저는 그 직전까지 경기도교육감이었잖아요. 팽목항에서 올라온 뒤 100일째 되던 7월 24일까지 매일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이 사회를 만들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한없는 슬픔과 안타까움,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과연 국가가 무엇인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습니다.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의지도 생겼습니다. 윤 단지 배가 가라앉은 게 아니에요. 국가와 사회의 동반 침몰입니다. 선박을 불법 개조하고, 컨테이너를 과적하고, 평형수를 빼고도 허가를 받아 버젓이 출항했다는 것 아닙니까.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수습 과정도 국가와 사회가 무능, 무책임, 부도덕, 부패의 사슬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직후에 ‘국가개조’를 공언했어요. 정말 정확한 문제 제기라고 봤어요.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바뀐 게 없습니다. 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덧붙여서 노골적인 헌법 파괴 행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파렴치한 정부와 국가라도 이렇게까지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지는 않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노력해야 한다는 역할을 요구하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헌법 원칙이 모두 무시됐어요. 국가의 근본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대한민국이 놓여 있습니다. 윤 네. 흔히 헌법적 가치를 얘기할 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원칙과 정신은 인간 존엄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김 게다가 최근 세월호특별법과 시행령, 그리고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벌어지는 논란은 더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정부의 의지는 어느 만큼이었을까요. 윤 저는 이제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냥 안 해 버립니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유족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하셨죠. “여한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언제든 만나겠다”고요. 그래 놓고 나중에 국회에서 특별법 논란이 이어져 유족들이 간절히 면담을 요청하는데도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김 참사 직후 대통령께서 팽목항으로 내려와서 유족들을 만나실 때 그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유족들의 바람대로 조치하겠다, 걱정 말고 맡겨 달라는 말씀을 하시길래 ‘아, 역시 우리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 실망이라는 것은 뭐…. 정부가 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자기 권력을 보존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고요. 헌법의 원칙과 정신에 대한 사유를 새삼스럽지만 깊이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윤 세월호 참사는 인간보다 물질의 가치를 중시하는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는 딜레마 요소가 있습니다. 예컨대 추모의 분위기가 길어지면서 경기가 침체된다는 비판이 그런 것입니다. 물론 정부는 그런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제가 국가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한국 경제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어려워진 것인가요. 국가가 솔직해져야 합니다. 김 전 교육감께서는 경제·경영 전문가이시니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시겠지만요. 김 그렇지요. 경기 침체의 책임을 세월호에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욱 합리적이면서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안팎에 보여 줬다면 오히려 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안정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입니다. 윤 그런데 참사 1주년을 맞은 날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떠나네요. 소탐대실입니다. 국민의 마음이 대통령한테서 떠나게 하고, 더 심하게 말하면 국가와 국민을 분리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김 국민이 가장 아프고 서러운 때잖습니까. 국민을 무시하고 아픔을 덧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대통령께서는 짐작하지 못하셨을까요. 화가 이어질수록 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은 날이 섰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가능한 한 말을 아끼려 했고, 그 빈자리를 씁쓸한 웃음으로 채웠다. 어떠한 비판조차 무망함을 체감해 온 탓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야, 좌우의 사회적 대립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불편함을 드러내며 그만 좀 하라고 넌지시 혹은 노골적으로 말했고, 또 어떤 이들은 큰 희생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며 새삼스럽게 분통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보수의 이름을 빌려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독하고 조롱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서 지루하게 전개됐고, 최근 제정된 시행령이 특별법을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김 진보와 보수의 가치와 지향점이 때로는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일부 보수라고 하는 분들이 저지른 행태는 보수의 가치를 모독하는 일일 따름입니다. 윤 세월호를 어디 진보가 가라앉혔나요.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은 전부 진보라서 그런 건가요.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소홀히 생각하는 게 보수입니까. 아니에요. 그런 반인륜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보수도 아닙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가치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투쟁을 벌였을 뿐이에요. 자기편 결속하고, 상대방 공격하기 좋으니까 보수와 진보를 이용했던 거지요. 김 진보와 보수는 그간 가치를 놓고 경쟁하거나 논쟁하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왔죠.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건강한 진보와 보수가 가진 건강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여야의 정쟁쯤으로 치부했습니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 생명, 안전입니다. 윤 물론 때로는 유족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에게 이성적 판단을 요구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휴머니즘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휴머니즘을 더욱 존중하는 것이 보수였잖아요. 전통, 가족, 인륜 등을 중시하는 게 보수인데, 보수의 이름으로 폭식투쟁 같은 그런 행동을 하다니요. 김 국가와 사회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가 있습니다. 변화와 안정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각각 중시하는 가치이기도 하고요. 실은 이 양자는 함께 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입니다. 국민들은 이 두 가치가 공존하며 상호 침투해 세상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포용적 진보, 합리적 보수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윤 지금은 융합의 시대입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보수의 가치면 어떻고, 진보의 가치면 어떻습니까. 정책에 따라 진보의 가치, 혹은 보수의 가치가 더 많이 반영된 정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요즘 한창 복지 논쟁을 패싸움 벌이듯 하고 있는데, 진실로 국민의 복지를 위한 싸움이라고 저는 보지 않아요. 어디 국가의 경제 규모를 뛰어넘는 복지가 가능하겠습니까. 정치인이 바뀌어야 하는데 안 바뀌고 있어요. 그런 정치인을 누가 뽑았나요. 국민들이 뽑았단 말이죠. 제 평소 주장입니다만, 정치는 특히 압축 성장이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고작 30년입니다. 길게 보면 거쳐야 할 과정이죠. 가능하면 시간을 줄이고, 국민과 국가가 치러야 할 대가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요. 김 네. 우리 사회 역시 포용적 번영이라는 새로운 성장의 패러다임이 필요하죠. 이것은 단순한 경제 발전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정의로운 분배,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의 개선, 각 가정의 가계부로 상징되는 삶과 민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국민은 성장이 공정한 분배로 이어지지 않음을 이미 체득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 상태로 갈 수 있겠어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 일각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얘기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극도의 양극화입니다. 비대해진 경제권력이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고요. 이렇게 하면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보수 세력이 늘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근본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진보인가요. ‘좌빨’인가요. 김 격렬한 보수시네요.(웃음) 윤 저는 최근에 개량주의자라는 비판을 하도 많이 받아서요. 그나저나 요즘에는 진보에서 ‘애국적 진보’라는 말도 나오던데, 반가운 얘기더라고요. 김 아무튼 포용적 진보, 합리적 보수의 입장이 명확하다면 진보, 보수가 각자의 가치를 갖고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할지언정 이해 다툼과 같은 투쟁은 없을 것입니다. 사건건 빚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갈등에 대한 대화를 듣다 보니 조금씩 입장이 바뀐 듯했다. 진보는 보수에 애정을 보내고, 보수는 더욱 혹독하게 일부 진보 및 보수를 몰아쳤다. 대화의 소재는 최근 한국 사회 전반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이어졌다. 윤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지만 부패가 여전함을 보여 줍니다. 이번 일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죠. 김 권력의 핵심까지도 부패와 비리의 고리에 걸려 있다는 점, 부패 시스템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의 국제 부패지수 순위가 최근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성완종 리스트로 다시 한번 증명된 셈입니다. 문제는 과연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될 것인지 많은 국민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리스트는 닮은꼴입니다. 권력의 부정과 부패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거지요. 윤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흐지부지하게 끝내고, 이번 부정부패 사건도 몇몇 개인의 비리 정도로 축소시켜서 끝내면 결국 국민은 정부가 의지가 없다고 볼 것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이 훼손되겠지요. 박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부패할 사람은 아니라고 보지만 이 문제를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저 역시 물음표입니다. 김 한국 사회, 한국 정치에 공공성 강화가 절실한 이유이지요.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건강한 가계부를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헌법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건강한 가계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조세 공정성을 통한 복지사회 준비, 공공교육의 강화를 통한 국가 미래 경쟁력 확보, 더 강력한 경제민주화를 통한 사회 양극화 개선 등은 당장의 문제이면서 20~30년 뒤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합니다. 윤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건가요. 이보다 더 끔찍한 사고가 필요한 건가요. 지금껏 해 온 국가 운영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늘 말씀 듣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윤 저도 그동안 두세 차례 스치듯 뵈었던 김 전 교육감님과 짧게나마 말씀 나눌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윤여준(76)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대선 때 야당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통 보수 인사다.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해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여당 진영에 오랜 시간 몸담으며 국회의원, 장관 등으로 당과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보수의 정책통이자 전략가’로 통한다. ■ 김상곤(66) 전 경기도교육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이후 한신대 교수로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전국교수노조 위원장 등을 지내며 민주주의를 삶으로 실천해 왔다. 교육감이 된 뒤에는 경기도발(發) 무상급식 태풍을 전국에 휘몰아치게 한 ‘무상급식의 아이콘’이 됐다. 혁신학교를 안착시키는 등 진보적 교육정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범죄행위”… 반기문 총장, 아르메니아 논쟁 가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15~1917년 발생한 아르메니아 학살을 ‘잔혹 행위’(atrocity)라고 표현, 이를 ‘제노사이드’(genocide·인종 청소)로 규정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견을 보였다. 제노사이드란 말에는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처럼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란 뜻이 내포돼 있다. 반 사무총장의 대변인인 스테판 두자릭은 13일(현지시간) “반 총장은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사건 발생 100주년을 함께 기리고 공동 조사로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런 잔혹한 범죄행위(atrocity crimes)의 재발을 막겠다는 집단적 의지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반 총장이 교황의 언급에 주목했다”며 “반 총장은 1915년에 일어난 일을 정의하는 게 민감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1차대전 중 저지른 만행이다. 150만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당하거나 추방됐다. 외교기록이나 생존자 증언뿐 아니라 오스만 제국 역시 관련 내용을 기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터키는 상황을 부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인 터키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자 서방 국가 대부분도 망각에 동참했다.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폴란드, 스위스 등 22개국만 아르메니아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했다. 우리 정부도 터키가 한국전쟁 참전국이란 점을 감안,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한 터키의 책임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7년 터키 전차(XK2·흑표) 수주전 당시 학살을 인정한 프랑스 대신 한국이 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경제적 실리를 얻기도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씨줄날줄] 대부업체/문소영 논설위원

    대부업자는 쉽게 말해 사채업자들이었다. 대부업 관련 법이 2002년 8월 제정되기 전까지 말이다. 대부업은 제도권 금융이 아니므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금융을 모르는’ 지방정부에 등록한 뒤 영업한다. 대부업법은 서민들의 사채시장 이용이 급증하고 대부업자들의 불법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자 서민 보호 차원에서 제정했다. 연 1000%대의 천문학적 수준의 이자율뿐만 아니라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인신매매도 했다. ‘신체포기 각서’가 근거였다. 불법 추심으로 자살자도 나왔다. 사채시장 양성화 시도에도 비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 사채업자들을 한꺼번에 정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07년 6월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애초 이자제한법은 1962년 이자가 연 4할(40.0%)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대통령령이었다. 1960년대 자금 사정이나 사채시장을 고려하면 유명무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정부가 약탈적 금융을 제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0%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1983년 12월 시행령 개정으로 연간 25%로 낮아졌다. 외환위기로 1997년 말에 다시 40%로 올라갔다. 외환위기를 틈타 국내 금융시장을 간섭하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자율 상한이 자금의 흐름을 왜곡한다”고 권고하자 정부는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을 폐기했다. 법정 최고이자율은 9년여 뒤에 부활해 대부업체를 포함해 모든 이자를 40% 미만으로 받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사례금, 할인금 등 명칭과 관계없이 대부와 관련해 대부업자가 받은 것을 모두 이자로 간주하기로 한 것이다. 더 나아가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는 이자제한법의 적용을 받아 1년에 30% 이상의 이자율을 받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이 부활한 이자제한법으로 ‘등록’ 대부업자가 받는 최고 이자율은 종전의 연 66%에서 연 49%로 낮아졌고, 현재는 40% 미만이다. 이런 이자율 제한에도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고수익을 내고 잘나가고 있다. ‘러시앤캐시’로 잘 알려진 아프로금융그룹는 자산 2조원의 ‘공룡’으로 산와머니, KJI 등 3개사 등과 함께 한국 대부업 시장의 42.2%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계 대부업체는 SBI저축은행, OSB저축은행, 친애저축은행, OK저축은행, JT저축은행도 소유했다. 제도권 금융으로도 진입한 것이다. 한국계 대부업체인 웰컴론은 업계 3위지만 시장 점유율 7% 미만으로 왜소하다. 과거 은행들은 일본계 대부업체는 금리가 0%대인 자금을 조달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명 겸 변명을 했는데, 한국의 기준금리도 1.75%이다. 대부업도 전주가 튼튼해야 경쟁할 수 있다. 말로만 서민경제 안정이 아니라 주택담보대출로 ‘거대한 전당포’로 전락한 시중은행들이 고수익의 서민금융시장을 위해 제대로 투자해 볼 만하지 않겠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美국방 방한으로 본 ‘사드 논란’ 파헤치기(上)- 핵심은 ‘레이더 탐지거리’

    美국방 방한으로 본 ‘사드 논란’ 파헤치기(上)- 핵심은 ‘레이더 탐지거리’

    -내일 한미 국방 회담 논의 주목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2박 3일의 일정으로 9일 오후 방한했다. 10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가질 예정인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배치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어떤 논의가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국방부와 국무부는 물론 사드 제작업체인 록히드마틴까지 나서서 “한국정부와 사드 배치는 물론 판매에 대한 논의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뉘앙스의 정보를 흘리며 한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과 그 어떤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하면서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제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어떤 협상 전략을 가지고 논의를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우리 정부와 군 당국자들이 사드가 어떤 무기체계이고 한반도에 배치되었을 경우 전술적·전략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드 레이더는 두 종류다? 사드 체계의 ‘눈’ 역할을 하는 것은 AN/TPY-2 레이더다. X밴드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이 레이더는 먼 거리에서도 정밀한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최대 1800km 이상의 탐지거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미사일 그 자체보다 더 주목 받았던 물건이다. 문제는 학계와 언론,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레이더임에도 불구하고 이 레이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레이더의 카탈로그 데이터에 나오는 최대 탐지 거리를 인용하며 탐지거리가 대단히 길기 때문에 중국 내륙의 민감한 군사 시설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 이 레이더가 배치되면 유사시 중국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모 언론에서 “AN/TPY-2 레이더는 2종류이며, 한반도에 배치가 추진되고 있는 레이더는 탐지거리 600km짜리”라는 보도를 내면서 논란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관련 내용을 공군 고위 관계자들에게 확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해당 기사와 같았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주한미군의 AN/TPY-2 레이더는 중국 영공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반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중국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이다. 왜 그럴까? 사드 체계를 운용하고 있는 미 육군이 발간한 기술자료(Army Techniques Publication) No. 3-27.5 "AN/TPY-2 전방배치모드 레이더 운용(AN/TPY-2 Forward Based Mode(FBM) Radar Operations)를 확인한 결과 해당 언론 기사와 공군 고위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 육군 자료에 따르면 전방배치모드(FBM) 레이더와 종말단계모드(TM : Terminal Mode)의 하드웨어는 동일하며, 다만 통제 소프트웨어와 통신체계만 다르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AN/TPY-2 레이더는 레이더의 고각, 즉 하늘을 향해 바라보는 각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와 통제 소프트웨어와 통신 케이블을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탐지거리 1800km, 탐지각도 120도를 갖는 전방배치모드와 탐지거리 600km, 탐지각도 60도를 갖는 종말 단계 모드로 세팅된다. 전방배치모드일 경우 설치되는 소프트웨어는 미군의 통합탄도탄방어체계의 지휘통신체계인 C2BMC(Command Control, Battle Management & Communications)와 연결되고, 종말단계모드일 경우 THAAD 미사일 포대의 지휘소 역할을 하는 TOC(Tactical Operations Center)와 연결된다. 다만 레이더의 고각을 변경하고 설치된 통제 소프트웨어와 수백 가닥의 케이블 연결 설정을 다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레이더 운용 모드를 바꾸는 데는 최대 8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즉, 우리가 600km 가량만 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주한미군 배치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1800km 거리까지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미국 미사일방어국(MDA : Missile Defense Agency)은 이미 2015회계연도 예산에 일명 ‘Stacked TPY-2'라고 불리는 GBX 레이더 도입 예산을 반영해 전력화를 준비 중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총 7개 포대 분이 발주된 사드 포대 가운데 이미 전력화되었거나 전력화 단계에 있는 5개 포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2개 포대를 지원하는 형태로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레이더가 별도의 모드 변경 작업 없이 전방배치모드와 종말단계모드 모두를 수행할 수 있고, 탐지거리 역시 기존형에 비해 크게 늘어난 개량형이라는 점이다. 미군이 배치하겠다는 레이더가 어떤 성능을 가졌고 전술적·전략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무자들조차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AN/TPY-2를 배치하겠다고 통보하고 실제로는 개량형을 반입해 설치할 경우 미국과는 어떻게 협상하고 중국은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한 복안은 가지고 있을까? 정부의 대답은 오로지 ‘전략적 모호성’뿐이다. -어디에 배치될까? THAAD의 한반도 배치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에게 있어 핵무기와 미사일은 생존을 위한 산소마스크 그 자체이다. 보수 정권이 집권해 대북 강경책을 쓸 때에도, 진보 정권이 집권해 대북 포용정책을 쓸 때에도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의지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고, 결국 그들은 절대 무기를 손에 쥐는데 성공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반인륜적이고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 절대무기를 손에 쥐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는 같은 무기를 보유하거나 그 무기를 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방패를 갖춰야 한다. 문제는 과연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평택과 원주, 대구, 부산기장, 김해공항 등 5개 지역에 대한 부지 조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이 가장 유력할까?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사드 체계 배치 조건을 살펴보면 단순히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기를 가져다 놓는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넓은 부지와 안전시설 등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 육군 교범에 따르면 THAAD용 레이더인 AN/TPY-2 레이더는 필수 장비 설치를 위해 가로 약 281m, 세로 약 94.5m 크기의 면적, 즉 축구장 4개 가량의 공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안전을 위해 외곽에 철조망을 설치해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토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면적이 약 27.7에이커, 즉 3만4,000평으로 광화문 광장 면적의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면적만 확보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안전통제거리가 별도로 있기 때문이다. 교범에는 레이더 정면을 기준으로 좌우 각 65도씩 도합 130도 범위 안에서 거리 100m까지는 인원 출입을 절대 금지하고, 2,400m까지는 항공기나 전자장비를 사용하는 장비의 진입을 금지하며, 3,600m까지는 통제되지 않은 인원과 장비의 출입을 금지하고, 5,500m까지는 항공기나 전자식 신관을 이용하는 폭발물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즉, 레이더 전방 5,500m 거리까지는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미군은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에 AN/TPY-2 레이더를 배치할 때 항공자위대 기지 외곽의 해안에 설치하고 이 앞바다를 통제구역으로 설정해 민간인과 차량, 선박 및 항공기의 출입을 제한한 바 있다. 일본은 동해를 끼고 북한을 마주보고 있으니 바다 쪽으로 레이더를 설치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북한이 북쪽에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 배치될 AN/TPY-2 레이더는 내륙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 2배 가량의 부지와 레이더 전방 5,500m의 하늘과 육지를 비워두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미군이 조사했다는 5개의 배치 후보 지역을 살펴보면 그 어느 지역도 이 같은 안전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없다. 평택 안정리 미군기지는 부지 확보는 가능하지만 레이더 전방 안전구역 내에 소규모 공단과 민가가 있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 조성된 고덕산업단지에 삼성전자가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있어 개발 붐이 일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레이더를 설치하고 건축 고도 제한을 두면 심각한 재산권 침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원주는 설치 조건은 양호하나, 이곳에 설치했을 경우 평택 방어가 제한되기 때문에 미군이 선호하지 않을 것이고, 김해공항은 레이더 전방에 시가지가 있고, 부산기장과 대구(왜관미군기지)는 너무 남동쪽에 치우쳐 있어 레이더를 설치하더라도 평택미군기지에 대한 방어효과가 떨어진다. 그러나 미군이 한반도에 배치할 레이더가 기존 TPY-2 레이더가 아닌 개량형 GBX거나 한국에 C2BMC를 설치할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GBX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더 길기 때문에 영남 지역에 배치하더라도 북한 전역을 감시할 수 있고, GBX 레이더가 아닌 구형 TPY-2 레이더를 배치하더라도 주한미군이 C2BMC를 국내에 설치하면 굳이 레이더 바로 옆에 미사일 발사대를 갖다 놓지 않더라도 평택 지역에 대한 미사일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군이 GBX나 C2BMC를 고려하고 있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대구, 보다 정확히는 칠곡군 왜관에 있는 캠프 캐롤(Camp Carol)이다. 주한미육군 물자지원센터가 위치한 이 기지 북쪽에 있는 야산은 해발이 낮고 비교적 지대가 평탄하기 때문에 레이더 기지 설치를 위한 개간 작업이 용이하고, 무엇보다 레이더 전방에 안전상 문제 소지가 있는 시설이 없다. 또한 평택과 달리 북한의 신형 방사포나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 밖에 있기 때문에 생존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이곳에 레이더를 배치하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의 TPY-2 레이더가 아닌 개량형 GBX 레이더를 들여오거나 주한미군에 C2BMC를 설치해야한다. 한반도에 GBX 또는 C2BMC가 반입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드라는 요격체계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주한미군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협상전략과 사후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차후 대한민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下편에 계속>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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