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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카 수상 이란 여배우 알리두스티 거짓정보 터뜨렸다며 체포돼

    오스카 수상 이란 여배우 알리두스티 거짓정보 터뜨렸다며 체포돼

    이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배우로 손꼽히는 타라네 알리두스티(38)가 당국에 체포됐다고 국영 IRNA 통신 등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무장조직원에게 마체테 흉기를 휘둘렀다는 이유로 모흐센 셰카리(23)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알리두스티가 지난 8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당신의 침묵은 억압과 독재에 대해 지지를 의미한다”는 글을 올려 시위 참여를 호소했던 일을 당국이 문제 삼아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알리두스티는 지난 9월부터 3개월 넘게 이어진 ‘히잡 시위’를 지지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던 유명인 가운데 한 명이다. IRNA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800만명이 넘는 알리두스티가 허위 정보를 게시하고 사회 혼란을 조장한 혐의로 당국에 체포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최근 차단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알리두스티는 셰카리의 처형과 관련 “이란 정부의 이런 잔혹한 사형 집행에 국제단체들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류애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벗은 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자신의 사진을 게시하며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함께 한다는 뜻을 밝혔다. 2017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세일즈맨’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았던 그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사이드 루스타이 감독의 ‘레일라의 형제들’에 출연하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알리두스티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예전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2016년 칸 영화제 수상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에서는 팔꿈치 안쪽에 페미니즘 지지를 상징하는 문신을 새긴 사실이 알려져 이란 보수층의 집단 성토를 당해야 했다. 그는 2019년 유가 인상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이란인이 시민이 아닌 포로와 다름없는 처지라고 비판해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 [포착] 생후 2일 아기의 장례, 엄마의 통곡…인류애 잊은 러軍 로켓

    [포착] 생후 2일 아기의 장례, 엄마의 통곡…인류애 잊은 러軍 로켓

    러시아군 로켓은 인류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냉정했다. 우크라이나 병원에 떨어진 러시아군 로켓은 끝내 생후 이틀 된 신생아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노보솔로네 땅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관’이 묻혔다. 전쟁 포화를 뚫고 태어난 아기는 그렇게 이틀 만에 엄마 품을 떠났다. 산모 마리아 카미아네츠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말 임신을 확인했다. 가족 모두가 기다리던 넷째였다. 7살 큰아들은 남동생에게 줄 장난감을 모았고, 남편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했다.임신 9개월 내내 전쟁에 시달린 산모의 걱정은 오로지 안전이었다. 지난 3월 마리우폴 산부인과 공습 때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실려 가는 임산부를 목격한 터였다. 3월 9일 마리우폴 산부인과에서는 러시아군 폭격으로 어린이 3명 등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구조된 만삭의 임산부도 며칠 후 태아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산모는 병원과 가까운 빌니얀스크 친척 집에 머물며 안전한 출산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21일 아침 8시 20분, 아들 세르히 포드리아노우를 품에 안았다. 키 50㎝, 몸무게 2.7㎏도 되지 않는 작은 아기였다. 산모는 아기의 사진을 찍어 집에 있는 남편에게 “아들 생겼다”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평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3일 새벽 2시, 산모가 막 수유를 마치고 아기를 침대에 눕혔을 때 병원 산부인과 병동에 러시아군 로켓이 내리꽂혔다. 당시 병동에 환자라고는 산모와 아기뿐이었다.2층짜리 병동은 로켓 한 방에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무너진 병원 잔해 속에서 구조대원들은 피투성이가 된 산모를 끌어냈다. 그러나 어디에도 아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은 아기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인형밖에 없다고 했다. 산모는 “(그게) 내 아들이다!”라고 소리쳤다. 엄마 배 속에 있는 내내 조마조마했을 아기는 그렇게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목숨을 잃었다. 다음 날 아기의 장례식에는 부모 형제와 친척,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작은 목숨을 애도했다. 모유 몇 번 먹이지도 못한 채 아기를 떠나보낸 산모는 통곡하며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죽은 아기가 이번 전쟁에서 가장 어린 희생자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 [사일사] 손가락 붙은 채 태어난 몽골 소년, 인천시 도움으로 수술 성공

    [사일사] 손가락 붙은 채 태어난 몽골 소년, 인천시 도움으로 수술 성공

    손가락이 붙은 채 태어난 몽골 어린이가 인천시 도움으로 무사히 분리 수술을 마쳤다. 23일 인천시에 따르면 몽골 국적의 신네빌레그 소드작크할단(4) 군은 손가락이 붙은 선천성 합지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가족이 병원을 찾아갔지만, 합지증 분리술은 난이도가 높고 소아 수술 자체도 어려워 몽골에서는 치료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인천시는 3년 전 이 같은 소식을 접하고 소드작크할단 군을 나눔의료 대상자로 선정했지만, 당시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려 수술을 하기 어렵다는 의료진 소견에 따라 다시 귀국해야 했다. 인천시는 이후 잊지 않고 코로나19 대유행 여파가 잠잠해지자 올해 소드작크할단 군을 다시 초청했다. 지난달 30일 입국한 그는 지난 1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에서 손가락 분리 수술과 피부 이식술을 받았다. 수술비 2530만원은 시와 병원이 나눠 부담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소드작크할단 군은 지난 8일 퇴원한 뒤 아버지와 함께 회복 중에 있으며, 인천지역 힐링 투어와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두루 체험한 뒤 다음날 몽골로 출국할 예정이다. 그의 아버지인 시네(36) 씨는 “인천시의 나눔의료 사업을 통해 아들이 훌륭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기쁘고 고마워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가 인천 내 의료기관과 함께 2018년부터 추진한 나눔의료는 우수한 국내 의료기술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 국가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 산모의 분만 지원(아인여성병원),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뇌출혈 치료(인천시의료원), 몽골 저소득 가정 어린이의 선천성 척추 측만증 수술(관동대 국제성모병원) 등 다양한 사연의 외국인 환자 치료를 통해 인류애를 실현했다. 김석철 시 건강보건국장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저개발국 외국인 환자들에게 우리의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영광”이라면서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 지원에 최선을 다하는 인천시가 되겠다”고 말했다.
  • 샌드위치 건넨 프랑스 소녀와 78년 뒤 재회한 영국 참전용사

    샌드위치 건넨 프랑스 소녀와 78년 뒤 재회한 영국 참전용사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한 렉 파이(98)는 78년 동안 사진 한 장을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후 잠깐 만났던 프랑스 소녀 유게뜨를 쉬 잊을 수 없었다. 상륙 몇 주 뒤 트럭 짐칸에서 잠깐 마주쳐 유게뜨에게 잼이 발라진 샌드위치를 건넨 것이 전부였다. 보답으로 소녀는 자신의 사진을 트럭 안에 던져준 것이었다. 사진 뒤에는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8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영국 웨일스에서 프랑스 북부의 요양원까지 찾아간 파이는 이제 92세가 된 유게뜨와 감격의 해후를 나눴다고 BBC 방송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파이는 20세, 유게뜨는 14세였다. 그리고 이번 재회는 며칠째 이어졌다. 파이는 유게뜨를 보자마자 “여기 잼 샌드위치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유게뜨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 당신을 다시 만나니 좋군요. 나이는 들었지만 우리, 똑같네요”라고 답했다. 78년 전 그는 병사들에게 보급할 식료품을 나르는 트럭을 몰고 있었다. 끼니를 때울 겸 길가에 트럭을 멈추고 동료와 정어리 넣은 샌드위치를 먹으려 하고 있었다. 마침 프랑스 10대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소녀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배가 고파 빵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깨달은 그는 잼을 발라 빵을 권했다. 그녀가 빵을 먹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재빨리 뒤돌아 마을 광장을 가로질러 달려가 교회 안으로 들어간 모습만은 똑똑히 기억해냈다. 물론 그 뒤로 다시는 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트럭 짐칸을 살폈더니 우유통 사이에 소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죽 지갑 속에 사진을 간직했다. 렉은 “가장 암울했던 때 인류애를 나눈 순간이 제 인생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여지껏 사진을 간직한 이유를 설명했다.렉은 72년을 해후한 부인 메이웬과 2015년 사별한 뒤 외아들의 도움을 받아 유게뜨의 행방을 찾으려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참전용사 자선단체 ‘택시’(Taxi)의 도움으로 이제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된 유게뜨와 다시 잼 샌드위치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 흑백사진은 바래져 있었다. 렉은 “78년 동안 간직했다우”라고 유게뜨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그는 78년처럼 정어리를 빵에 발라 먹으라고 권했는데 유게뜨는 이번에도 사양한다며 미소지었다. 그녀의 자녀들과 손자들까지 빙 둘러 지켜보는 가운데 둘은 통역을 통해 대화했는데 렉이 자신을 찾으려고 애깨나 먹었다는 말에 유게뜨는 “엄청 감명받았다”고 답했다. 렉도 미소지으며 “그리고 그녀도 여전히 살아있다!”라고 말한 뒤 “내 속으로는 우리가 젊었을 적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주 깔끔하고 방정했다. 우리는 환대를 받았다. 우리 생애 가장 나은 45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작별을 고하며 두 사람은 껴안고 뺨에 입을 맞췄다. 그 전에 유게뜨는 둘이 지금 막 결혼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농을 하고 웃었다. 렉이 동의하자 유게뜨는 요양원의 남자친구를 차버리겠다고 다시 농을 건넸다. 렉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통역이 옮겨야 할 말은 ‘그녀가 시집 간대요’입니다. 우리가 갑니다!”
  • ‘이태원 참사’ 와중 도발이라니…여야 “반인륜적” 北 규탄

    ‘이태원 참사’ 와중 도발이라니…여야 “반인륜적” 北 규탄

    여야는 3일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가 애도기간 중 북한이 동해 상으로 장·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이틀 연속 무력도발을 감행한 것에 대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국민의힘은 대북강경론 수위를 끌어올리며 정부에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북한이 우리의 영해와 영토를 침범해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탈한다면 우리 군은 결연하게 응징해야 한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믿고 벌이는 재래식 도발을 묵과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끝없이 북한의 인질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신기루와 같은 종전 선언에 집착했고, 김정은에게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통탄할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국가 애도기간 중에도 멈출 줄 모르는 반인륜적, 패륜적 행위에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히 규탄한다”며 “김정은 정권이 이처럼 그릇된 상황 판단을 이어간다면 그 누구도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미애 원내대변인도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은 우리의 일상이 됐다”며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한 확장 억제의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강경한 입장은 사실상 파기된 9·19 군사합의 등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해 야당에 화살을 돌리고, 전통적 보수층이 중시하는 대북·안보 이슈를 통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포석으로 읽힌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오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긴급 당정협의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회의 직전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로 이를 취소했다. 군 당국의 현장 대응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더불어민주당도 북한이 도발로 얻을 것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인류애를 저버린 퇴행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온 국민이 대형 참사로 슬픔에 빠진 시기, 북한의 반인륜적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벼랑 끝 전술’ 펼치다 국제적 고립이라는 벼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오늘 탄도 미사일 발사도 9·19 군사합의 정신 위배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며 “(이태원 압사 참사로) 남한의 온 국민이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저지른 무력도발은 인류애를 저버린 퇴행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틀 연속 탄도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한의 거듭된 9·19 군사합의 위반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에서는 북한 도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원내대표는 “(전날)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가 내려졌지만 이번에도 국민을 지킬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며 “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일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포토] ‘한국 사위’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주지사, 제1호 명예보훈장관 위촉

    [포토] ‘한국 사위’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주지사, 제1호 명예보훈장관 위촉

    ‘한국의 사위’로 유명한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주(州) 지사를 대한민국 명예보훈장관으로 위촉한다고 국가보훈처가 18일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19일 오전 서울지방보훈청에서 호건 주지사를 제1호 명예보훈장관으로 위촉하고 위촉장과 기념메달을 전달한다. 위촉장에는 호건 주지사가 한국전 참전용사 명예선양에 힘쓴 데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지원을 당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감사와 예우의 증표로 전달하는 기념메달에는 태극 문양 바탕에 한국, 미국 등 22개 유엔참전국의 국기가 그려졌다. 박 처장은 이에 앞서 호건 주지사와 내년 정전협정 70주년 사업 등을 협력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호건 주지사는 한미동맹 발전과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공화당 유력 정치인으로 올해 7월 워싱턴 D.C.에 제막한 ‘한국전전사자 추모의 벽’ 건립에 25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아내 유미 호건 여사는 한국계다. 그는 보훈처의 명예보훈장관 위촉 제안에 “굉장히 멋지다!(Very Wonderful!)”며 흔쾌히 수락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보훈처는 호건 주지사에 이어 앞으로도 유엔 참전국의 유력 인사를 대상으로 명예보훈장관을 위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박 처장은 “보훈처는 명예보훈장관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을 통해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22개 유엔참전국의 뜨거운 인류애와 공동의 희생을 기억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씻고 가세요”, “생필품 드려요”…‘힌남노’ 피해에 포항시민 나섰다

    “씻고 가세요”, “생필품 드려요”…‘힌남노’ 피해에 포항시민 나섰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강타하고 간 경북 포항 지역에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위해 샤워장 개방, 생필품 나눔 등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포항의 한 맘카페에는 태풍으로 인해 단전‧단수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가구들을 돕겠다는 게시글이 쏟아졌다. 카페에는 “생수 필요하시면 나눠드립니다”, “차량 이동 지원해드려요”, “폰 충전 필요하시면 오세요”, “물이나 수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등 각종 생필품 등을 지원해주겠다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특히 아기 기저귀, 젖병, 이유식 등 아기용품을 나눠주겠다는 글도 다수 게재됐다. 해당 카페는 카페 내부에 태풍 재난 관련 ‘도와드려요’ ‘도움이 필요해요’ 게시판을 별도로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지글을 통해 ‘자원봉사활동’ 신청을 받기도 했다. ● 화장실·샤워실 무료 개방한 헬스장 포항 남구 오천읍의 한 헬스장은 단수로 씻을 수 없는 이웃을 위해 샤워실과 화장실을 무료로 개방했다. 헬스장 측은 인스타그램에 단수 복구 소식을 전하며 “우리 센터는 이제 물 나온다. 태풍으로 인한 모든 피해주민분께 센터 화장실과 샤워실을 무료 개방하겠다”고 알렸다. 이어 헬스장 측은 “오셔서 정수기도 사용하고 씻고 화장실도 편하게 이용하고 피해복구가 완전히 될 때까지 오셔도 된다”면서 “오실 때 빈손으로 오셔도 된다. 이 소식 멀리 퍼뜨려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께 알려지게 해달라”고 덧붙였다.청림동에서 목재·도자기 작업실을 운영하는 시민도 이웃을 위해 화장실과 샤워실을 개방했다. 그는 “다행히 깨끗한 물이 일찍 공급되기 시작했다”며 “샴푸와 린스, 비누 등도 새 제품으로 준비해놨고 앉을 자리, 주차 자리 충분하니 편하게 오시라”고 했다. 해당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인류애 충전”, “너무 좋은 사람들이다”, “눈물이 난다”, “아기 젖병에 기저귀라니, 엄마들이라 뭐가 제일 필요한지 잘 아는 거다”, “따뜻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감동했다.
  • “고마운 불법주차?”…제주 태풍 속 히어로 된 덤프트럭 [포착]

    “고마운 불법주차?”…제주 태풍 속 히어로 된 덤프트럭 [포착]

    초강력 태풍 제11호 ‘힌남노’가 지나간 5일 제주도에서 덤프트럭들이 가게 앞에 밀착 주차하며 바람막이를 자처한 모습이 포착돼 훈훈함을 안겼다. 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제주 화물트럭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덤프트럭이 건물에 바짝 붙은 채 주차된 사진 여러 장을 게시한 뒤 “진정한 바람막이 효과”라고 설명했다. 사진에 따르면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 앞 인도에 1층 높이의 트럭이 건물을 완전히 가로막은 채 주차돼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도 집채만 한 트럭이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와 햄버거 가게 앞을 점령한 모습이다. 트럭에 가로막혀 건물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작성자는 “비상시에는 이렇게 주차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제주 화물기사님들 화이팅”이라고 응원했다.네티즌들은 “히어로 변신”, “좋은 아이디어다”, “사진 보고 울컥했다”, “불법주차를 했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받았다”, “인류애 충전”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순간 최대 풍속 초속 47m로 5일 밤 11시 제주도를 가장 가깝게 지났다. 지난 3일 자정부터 6일 새벽 5시까지 내린 누적 강수량은 제주 윗세오름이 1004mm에 달했다. 6일 오전 7시 10분쯤 태풍이 울산 앞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오전 9시 20분을 기해 대전과 세종, 충남 일부(계룡, 청양, 부여, 금산, 논산, 공주, 천안)에 내려진 태풍특보는 모두 해제됐다.
  • [월드피플+] “천사가 나타났다”…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손 내민 사람들

    [월드피플+] “천사가 나타났다”…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손 내민 사람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벌어진 총격 참사로 미 전역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서도 인류애를 발휘한 시민들의 미담이 속속 전해졌다. 5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사건 당일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집 앞 거리로 나온 케런 브리튼(64)은 갑작스러운 총성과 비명에 듣고 몸을 피하려던 중 두려움에 떠는 주위 사람들을 바라봤다.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숨을 곳을 찾아 허둥지둥하는 여성도 있었다. 그들을 남겨두고 홀로 집으로 피신할 수 없었던 브리튼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있던 가족에게 다가가 “빨리 나를 따라오세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브리튼이 손을 내밀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시민은 무려 30명에 달했다. 누가, 어디에서 총을 쏘는지도 모르는 매우 급한 상황에서 브리튼은 오로지 타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경찰에 의해 현장이 정리되기 전까지, 시민 30명은 4시간 동안 브리튼의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었다. 전직 간호사인 브리튼은 자신의 집에 들어온 낯선 사람들에게 직접 먹을 것을 만들어줬고,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는 먼저 장난감을 건네거나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며 안심하도록 도왔다. 브리튼은 “모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도우며 의지했다”면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가 많았다. 난 그저 그들에게 ‘함께 가자’고 말하며 이끌었다”고 당시를 전했다.브리튼의 이웃이자 현직 교사인 샤론 나로드, 캐롤 밀러 등도 앞다퉈 현장에 있던 시민들을 집으로 들였다. 두 사람이 자신의 집으로 대피하도록 이끈 시민만 30명이다. 퍼레이드 행렬이 있었던 장소 바로 옆에 사는 또 다른 시민도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대피하던 부부에게 손 내밀고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하이랜드파크는 총격 참사가 발생한 사건 현장인 동시에 거대한 대피소가 됐다. 현지 주민의 도움을 받은 사라 샤그(39)는 “수호천사가 나타난 줄 알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시민들을 집으로 대피시킨 한 하이랜드파크 주민은 “우리 모두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헤어질 때는 포옹을 나눴다”고 전했다.CNN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백인 남성 로버트 E. 크리모(21)로, 범행 후 어머니의 차를 타고 달아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용의자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CNN은 용의자가 그동안 올라인에 폭력적인 내용의 영상물을 게시해 온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용의자의 무차별 총격으로 최소 6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했다. 중상자도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 한 해 동안 미국 내에서 4명 이상 사상한 대규모 총기 난사 314건 한편, 미국에서는 4명 이상이 사상하는 대규모 총기난사(mass shooting)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영리 연구단체 총기폭력기록보관소(GVA)에 따르면, 올 한 해 동안 4명 이상이 사상한 총기 난사 사건은 314건에 달했다. 여기에는 지난달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진 참사도 포함돼 있다.올해 들어 이달 4일까지 미국 내 총기 난사에 따른 사망자는 343명, 부상자는 1391명으로 집계됐다. 워싱턴포스트는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격 사건 이후에도 약 한 달간 100건 이상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매일 평균 한 건 이상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기후 위기 심각성 알리려…‘교육계’와 ‘예술계’ 손 잡았다

    기후 위기 심각성 알리려…‘교육계’와 ‘예술계’ 손 잡았다

    오늘 날 기후 위기는 더 이상 국가와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개개인에게도 알리기 위해 교육계와 예술계가 손을 잡았다. 지난 6월 23일 한국환경공단 인재개발원에서 첼리스트 성승한의 ESG 시네마콘서트 ‘환경’ 편: 자연스럽게’가 열렸다. 이날은 한국환경공단 신입직원 100여명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후 위기를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통하여 오감으로 느끼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첼리스트이면서, TV광고, 영화, 뮤직비디오의 프로듀서이자 감독인 성승한씨는 환경을 주제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 (음악연주, 미술작품, 영화등)을 해설해 줌으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눈과 귀를 통하여 감성으로까지 호소했다. 콘서트의 시작으로 ‘나의 첼로는 자연으로 부터 왔다’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승한씨의 첼로로 직접 보여줬다. 이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서는 ‘예술가에게 환경은 영감’이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서는 ‘인간과 환경은 서로의 이름을 찾아줄 때 가장 아름다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전했다.클라이막스에서는 재난영화 TOP 5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도 재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이유를 끝까지 살아남은 자들을 통하여 ‘희망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라며 아직 희망이 있을 때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며 환경운동의 ‘실천’을 강조했다. 이어 성승한씨가 직접 감독한 서울시교육청의 홍보영상 ‘필환경 우리는 교육으로 합니다’를 상영하며 환경용어인 ‘업사이클링’과 ‘탄소발자국 줄이기’를 작품으로 보여줬다. 이 작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민시후씨는 이날 성승한씨와 함께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며 무대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끝으로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의 공통된 마음은 ‘인류애’에 있다며 이미 환경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국환경공단분들을 크게 격려하며 시네마콘서트 ‘환경: 자연스럽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이날 첼리스트 성승한의 ESG 시네마콘서트 ‘환경’ 편: 자연스럽게’ 를 섭외한 한국환경공단의 조현상대리는 “이렇게 예술로 기후 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백마디 말보다 훨씬 더 강렬한 호소의 힘을 갖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성승한씨는 앞으로 ESG 시네마콘서트를 통하여 이번에 선보인 환경(Environment) 뿐만 아니라 사회(Social) 그리고 지배구조(Governance) 또한 제작하고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월요일 오후 1000명 북적이는 쇼핑몰에 미사일 상상이나 했겠나”

    “월요일 오후 1000명 북적이는 쇼핑몰에 미사일 상상이나 했겠나”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돈바스 등 동부 격전지에서 130㎞쯤 떨어진 중부 폴타바주의 크레멘추크 시에 있는 쇼핑몰에 미사일이 떨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27일(이하 현지시간) 중부 폴타바주 크레멘추크 시의 이 쇼핑센터에 떨어져 적어도 18명이 목숨을 잃었고, 59명 이상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이 떨어진 것은 월요일 오후 3시 50분쯤이라 쇼핑센터 안에는 1000명가량 있었던 것으로 미뤄 사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피격 순간 실제로 이만한 인원이 쇼핑센터 안에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420명의 구조요원들이 생존자 위치를 확인하고 있으며 13명의 심리치료사가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배치됐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이날 독일 바이에른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해 민간인들이 북적이는 쇼핑몰을 공격한 것은 “참담한 일”이라며 “무고한 주민들을 무차별 공격한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규탄했다. 드미트로 루닌 폴타바주 지사는 텔레그램에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다. 이번 공격은 민간인에 대한 명확하고도 냉소적인 테러 행위”라면서 “전쟁범죄”라고 했다. 영국 BBC 기자로 아비규환의 현장을 찾은 소피 윌리엄스는 미사일 공격 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매캐한 화약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며 건물 잔해가 뒤엉켜 나딩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이 기괴할 정도로 적막하며, 들리는 것은 잔해 아래 깔린 생존자를 찾는 구조대원들의 외침뿐이라고 했다. 또 당국은 화재를 완전 진압했다고 취재진에게 알렸는데 여전히 연기가 건물에서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G7 정상들은 러시아가 물러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경제·군사적으로 끝까지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또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인 금을 추가로 제재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어어 러시아에 조건 없이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에서 병력과 군사장비를 철수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강제로 데려간 우크라이나 국민을 풀어주고 우크라이나가 흑해를 통해 곡물을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도 주문했다. 미국이 조금 더 실질적인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수행하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기자회견 도중 “이번 주 바이든 대통령이 G7 정상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말했다시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첨단 중·장거리 대공 방어 무기 지원을 포함하는 패키지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포탄과 포대를 방어할 수 있는 레이더 등 긴급 필요 물품도 추가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한 구체적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CNN 방송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에 따라 사거리가 160㎞ 이상인 첨단지대공미사일시스템(NASAMS)를 보낸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NASAMS는 노르웨이의 콩스베르그, 미국의 레이시언 등 방산업체 두 곳이 공동으로 개발했으며 미사일과 항공기를 모두 방어할 수 있다. 소식통은 우크라이나군이 이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별도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날 비공개 화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발생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언급하며 방공체계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쇼핑몰 공격 뿐만아니라 동부 격전지에서 떨어진 수도 키이우와 서·북부 지역에 잇따라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서 방공시스템의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G7 정상회의를 앞둔 25~26일에는 키이우를 비롯한 체르니히우, 수미 등 북부 도시와 르비우 등 서부 지역이 잇따라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군이 3주 만에 키이우 도심에 미사일 공격을 가하면서 중심가 세브첸코 지구 등에 있는 9층짜리 아파트와 유치원 건물 등이 파손됐다.
  • 어라 미국 증시가 왜 쉬지? 흑인 노예해방의 숭고한 뜻 기리라

    어라 미국 증시가 왜 쉬지? 흑인 노예해방의 숭고한 뜻 기리라

    아침에 눈 뜨면 미국 증시 바라보는 사람들은 21일 아침에 조금 당황했으리라. 현지시간으로 20일은 월요일인데 연휴로 휴장했기 때문이다. 해서 웹서핑을 한 이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1865년 5월 남북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났지만 다음달 19일 텍사스주를 마지막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됐다고 해서 흑인 노예해방의 날이 됐다. 북부군의 장군이 이 주에 군대를 끌고 들어와 2년 전에 노예해방 선언이 있었으니 이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 날이 이날이었다. 흑인들은 준틴스(Juneteenth)란 이름으로 축하해 왔다. 하지만 연방의 공식 공휴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의회의 만장일치 통과 이후 6월 17일 미국의 열두 번째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올해 처음 연방 공휴일이 됐다. 마침 19일이 일요일이라 다음날 대체휴일이 됐다. 미국 증시가 멈추니 잠깐이라도 쉬어갈까 기대할 수도 있는데 국내 증시의 오전 장은 조금 오르는 데 그쳤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노예해방 얘기를 해볼까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당시 대통령은 1862년 예비 노예해방선언을 한 뒤 이듬해 1월 1일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참모들이나 상원의원들 중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황이 절대 불리해 안간힘을 쓴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점을 들어 신중하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북부에서도 코웃음을 치는 사람이 많았다. 남부의 독립 움직임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상태에서 반란군이 장악한 주에서만 노예를 해방한다는 선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비웃고 조롱했다. 하지만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각있는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왜 저 먼 땅에 가서 소중한 인명을 희생하며 전쟁을 치러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확히 견줄 내용은 아니지만 십자군전쟁처럼 남북전쟁의 의미를 성스러운 것으로 인식시켰다. 사람들은 노예해방 선언으로 해방이 완성됐다고 오해하지만 실은 반란군이 장악한 주에서노예들이 주인들의 품을 벗어나라고 선동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 선언의 효력은 반란군이 장악한 주에만 해당되는 것이어서 애초에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었다. 실제로 해방된 노예는 한 명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내전과 분열의 전쟁을 인류애에 충만한 전쟁으로 탈바꿈시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동력이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1776년 미국이 식민지전쟁에서 승리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지만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합법이었던 당시로선 흑인들은 진정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7월 4일보다 6월 19일을 진정한 해방을 맞은 날이란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벨기에가 암살 조종하고 금니까지 가져간 콩고 영웅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벨기에가 암살 조종하고 금니까지 가져간 콩고 영웅

    패트리스 루뭄바는 벨기에의 식민 지배에 맞서다 암살된 콩고의 독립투사다. 1961년 벨기에 식민세력이 암묵적으로 방조한 가운데 총살형으로 그를 쓰러뜨렸고 허름한 묘지에 묻었다가 다시 파헤쳐 200㎞ 떨어진 곳으로 이장했다. 얼마 안돼 또다시 파헤쳐 이번에는 시신을 해체한 뒤 황산을 이용해 녹여 버렸다. 끔찍한 작업을 지휘한 인물이 벨기에 경찰청장 제라르 소이테였는데 그는 왠일인지 귀국할 때 유해의 금니를 가져갔다. 나중에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치아와 시신의 손가락 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들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금니를 브뤼셀에서 유족들에게 돌려줄 예정이라고 영국 BBC가 2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소이테가 시신 일부를 훔친 것은 유럽의 식민지 관리들이 소름끼치는 추억거리를 고국에 가져오곤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벨기에를 적으로 간주한 사람에게 끝까지 굴욕을 안긴다는 의도도 있었다. 그는 1999년 다큐멘터리를 통해 치아와 손가락들이 “일종의 사냥 트로피”였다고 털어놓았다. 루뭄바를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한 셈이다. 루뭄바의 딸 줄리아나는 “미움이 얼마나 쌓여 당신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냐”고 물은 뒤 “나치가 벌였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을 토막내고, 인류애에 반한 범죄”라고 털어놓았다. 루뭄바는 서른넷 나이에 총리가 됐다. 총리에 선출된 날은 식민 지배에 마침표를 찍은 날이었다. 신생 독립국 내각을 이끌게 됐다. 1960년 6월 권력을 이양하면서 보두앵 당시 벨기에 국왕은 식민지 정부를 치하하고 조상인 레오폴드 2세를 콩고를 “문명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러나 레오폴드 2세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는 여러 차례 소개했다. 루뭄바는 공식 프로그램에 없던 연설을 통해 콩고인들이 폭력과 2등국민 취급에 고통받았다고 밝혔다. 중간에 갈채와 기립박수가 이어져 연설을 중단하곤 했다. 그는 “노예를 모욕하는 일이 완력으로 우리에게 강요됐다”고 결론내렸다. 벨기에인들은 얼어붙었다. 학자인 루도 드 휘트는 이 연설이 암살의 이유가 됐다고 적었다. 검둥이 아프리카인이 유럽인들 앞에서 이렇게 공언한 것을 본 적이 없기에 벨기에 언론은 루뭄바를 “글도 못 깨친 도둑”으로 깎아내렸다. 아울러 국왕과 벨기에 관리들에 모욕을 준 것이라고 여겼다. 그의 연설이 사형 집행장에 서명한 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해 암살되는 과정은 냉전 시대 조작질과 벨기에의 권력 유지 열망이 겹쳐졌다. 미국인들도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 소련과 반식민주의에 대한 반격으로 삼으려는 계산이었다. 영국의 한 관리 역시 죽이는 것도 한 방법이란 메모를 남겼다.시신을 철저히 훼손한 것은 증거를 없애려는 것이었으며, 고인을 기억에서 지워내려는 시도였던 것처럼 보인다. 장례도 치르지 않았으며 존재했음을 부인하는 일조차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냥 안장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기억되고 있다. 금니를 돌려 받는 줄리아나는 식구 중 유일한 딸로 어린 시절 아빠와의 사이가 아주 가까웠다고 했다. 아버지가 총리가 됐을 때 다섯 살도 안 됐다. 집무실도 들락거렸는데 “그냥 앉아 아빠의 일하는 모습을 봤다. 내겐 그 모습이 아버지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부친이 “콩고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이 나라 소속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고 아프리카 사람의 존엄성을 굳게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벨기에에서 부친의 치아를 돌려받고 콩고민주공화국(DRC)에 갖고 돌아가는 것은 “남은 것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상징적이라며 “자신의 피가 뿌려진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니는 전국을 돌며 국민들에게 보인 뒤 그의 연설 61주년 날에 수도 킨샤샤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의 총리 취임부터 암살까지 7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독립 이후 나라는 두 세력으로 찢겨졌다. 광물이 풍부한 남동부 카탕가 지방이 떨어져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정국 혼란이 이어지자 벨기에 군대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주둔했다. 벨기에는 카탕가 정부 편을 노골적으로 들었다. 루뭄바는 대통령에 의해 실각됐고, 일주일도 안돼 합참의장 조지프 모부투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루뭄바는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탈출했다가 1960년 12월 다시 붙잡혀 서부 지방에 감금됐다.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 요인이 된다고 판단한 벨기에 정부는 카탕가로 이송하라고 압박했다. 이듬해 1월 16일 비행기로 이송되는 과정에도 폭행이 있었고, 도착해서도 두들겨맞았다. 총살형이 결정돼 다음날 두 동료와 함께 처형됐다. 이 때 소이테가 끼어들어 시신이 나중에라도 공개되면 안된다며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톱들과 황산, 마스크, 위스키 등을 챙긴 다음 그는 시신 해체를 지휘했다. 그는 뒤에 “지옥의 밑바닥에 다녀온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그가 소행을 인정하고 치아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40년 가까이 흐른 1999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다른 신체 부위는 없애야 했다고 덧붙였다. 루뭄바는 아버지의 일부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소이테가 이 치아를 갖고 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시를 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이 물건이 세간의 이목을 다시 끈 것은 2016년 소이테의 딸 고들리브가 루뭄바 암살 55주년 직전에 공개된 벨기에 잡지 Humo 인터뷰 도중 언급하면서였다. “불쌍한 아빠”도 자신의 소행 때문에 괴로워했으며 벨기에 당국이 아버지에게 내린 명령에 대해 가족들에게 대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개인적으로 금니 등을 소장한 것이며 2000년 세상을 떠난 뒤 많은 것들이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재미있는 것들은 간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한 기자와 사진기자에게 치아를 보여줬다. 벨기에 경찰이 압수했고, 나흘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루뭄바 가족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줄리아나는 필리페 국왕에게 돌려달라고 편지를 썼다. 시적이고 감동적인 편지였다. “왜, 끔찍한 죽임을 당한 뒤에도, 루뭄바의 유해는 영원히 방황하는 영혼으로 남는 저주를 받는다 말인가, 영원한 안식에 깃들 묘지도 없이?”
  • 결혼 3일 만에…우크라軍 남편 호일반지 남기고 전사

    결혼 3일 만에…우크라軍 남편 호일반지 남기고 전사

    “당신은 사흘 동안 나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당신은 내 사랑입니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결혼한 발레리아와 안드리 부부가 결혼 3일 만에 사별을 한 소식이 전해졌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이 장악한 곳으로 아조우스탈 제철소에는 최후 항전 중인 아조우 연대 등 우크라이나군 2000여명과 100여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남아있다. 12일(한국시간) ABC 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방위군은 페이스북을 통해 “마리우폴의 수비수 발레리아가 아조우스탈의 신부이자 아내이자, 미망인이 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 5일 군복을 입고 호일 반지로 평생의 사랑을 약속했다. 방위군은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진 우크라이나 국경 경비대 안드리와 아조우 출신의 소녀가 결혼했고, 그는 3일 후 사망했다”라며 두 사람의 사진을 공개했다. 미망인이 된 발레리아는 제철소 안에서 남편과 다정하게 웃는 모습과 결혼반지 사진을 올린 뒤 “내 사랑, 내 보살핌, 용감한 당신은 최고였다. 내게 남겨진 것은 당신의 성과 애정이 가득한 당신의 가족, 그리고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뿐”이라며 먼저 떠난 남편을 추억했다. 발레리아는 러시아군의 공격을 이겨내고 제철소에서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이들 군인의 가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병사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우크라군, 중상자 공개하며 ‘SOS’ 마리우폴을 완전히 점령하려는 러시아군의 맹공에 맞서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지키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아조우 연대는 전날 부상이 심한 부대원들의 사진을 텔레그램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사진에는 전투 과정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부대원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아조우 연대 측은 마리우폴을 방어하는 부대원들이 다치고, 불구가 된 상황을 전 세계의 문명국들은 눈으로 보고 행동해야 한다며, 부상자들은 매우 비위생적인 조건에서 약과 음식도 없이 멸균이 안 된 자투리 붕대로 다친 부위를 감싼 채 버티고 있다고도 호소했다. 유엔과 적십자가 전투능력을 잃은 부상자를 구조함으로써 창설 이념을 재확인하고 인류애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아조우 연대는 부상 대원들이 적절한 의료 조치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지역으로 즉각 후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아조우해와 맞닿은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최후의 저항을 펼치고 있지만, 러시아군이 동남부 지역 대부분을 장악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관계자도 러시아군이 현재 돈바스 지역의 80%를 점령했으며 크라마토르스카를 중심으로 아직 우크라이나군이 우세한 지역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NYT에 전했다.
  • 꽃병? 두 얼굴?… 느낌 정해 주는 ‘뇌 속 민주주의’

    꽃병? 두 얼굴?… 느낌 정해 주는 ‘뇌 속 민주주의’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국에서 4승 1패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승리하면서 인공지능(AI)이 언젠가는 인류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본격 제기됐다.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 지능이 인류를 파멸시키거나, 우리 뇌가 컴퓨터와 결합하는 ‘초지능’을 갖게 되는 것 아니냐는 SF적 상상력도 봇물처럼 나왔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인 제프 호킨스는 저서 ‘천 개의 뇌’에서 ‘지능은 무엇이고 뇌는 지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이 같은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풀어낸다. 인류는 불과 1.5㎏의 세포 덩어리인 뇌로 살아간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본능을 담당하는 ‘오래된 뇌’와 진화의 산물인 ‘새로운 뇌’로 나뉜다. ‘새로운 뇌’는 ‘오래된 뇌’를 통제하는데, 뜨거운 숯을 만지고 통증을 느껴 이를 멀리하는 것은 ‘오래된 뇌’지만, 끔찍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참는 것은 ‘새로운 뇌’에 해당한다. 이 ‘새로운 뇌’가 지능을 만드는데, 시각이나 촉각 같은 감각으로 입력되는 정보의 변화(움직임)를 인식하는 것이 뇌가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기존 과학자들이 감각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가 ‘신피질’로 구성된 뇌의 특정 장소에 수렴된다고 보았지만, 저자는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수천 개의 ‘피질 기둥’이 투표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모형들이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돼 있으며, 이들은 무수히 쏟아져 입력되는 정보에 대해 투표를 하고 하나의 답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뇌는 하나가 아닌 독립적인 수천 개의 뇌로 이뤄졌다는 ‘천 개의 뇌’ 이론이다. 뇌가 하나의 피질 기둥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뇌졸중이나 외상으로 일부가 손상돼도 큰 문제없이 작동한다. 이 책의 서문(추천사)을 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의 뇌 속에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복잡다단한 인간의 뇌에 비해 AI 시스템은 지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지금까지의 AI는 인간의 지능을 조금 더 훌륭하게 흉내 낸 기술적 진전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는다. 바둑을 두는 컴퓨터는 바둑의 역사나 바둑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아는 ‘나’가 없다. 기계가 ‘지능’이 있다고 말하려면 인간 신경세포처럼 끊임없이 학습하는 능력과 신체를 움직이면서 배우는 능력이 필수다. 감지하는 대상을 투표로 결정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저자는 미래에는 몰라도 현재 AI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 지능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지능 기계가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뇌를 컴퓨터와 완전히 결합할 수 있다는 전망에는 부정적이지만, 제한된 목적으로 새 능력을 얻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 신피질에 있는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활성화해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회복시키거나 자외선을 사용해 앞을 보게 하는 것처럼 새로운 센서를 만들 수 있다. 책 속에는 핵전쟁 위험이나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키고자 왜 인류의 지능을 발휘하지 못할까라는 근원적 성찰도 담겼다. 인류가 언젠가는 멸종할 것을 대비해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 지능을 갖춘 외계 문명을 위해 우리가 태양계에 살았다는 신호와 인공위성 기록 보관소를 남기자는 주장도 흥미롭다. 우리의 지식과 지능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인류가 생존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원하는 인류애가 전반적으로 묻어난다. 빌 게이츠가 ‘202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듯이 뇌의 구조에 대한 매혹적 분석에서 시작해 AI와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지는 과학적 과정이 흥미롭다.
  • 운명으로 여긴 조선… 베델, 기꺼이 항일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운명으로 여긴 조선… 베델, 기꺼이 항일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15개국 417명 안장 양화진 묘원 봄의 묘지는 아름다워서 슬프다. 물오른 푸나무들을 스치고 윤택하게 부풀어 오르는 대기를 헤치며 묘지를 산책한다. 만개한 꽃과 묘비의 빛깔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제아무리 화려한 비석도 정교한 조화도 풀꽃 한 송이의 생기를 이기지 못한다. 죽음은 어떻게든 아름다울 수 없다. 살아 있는 자들이 기억하는 만큼만 죽은 자의 삶이 아름다워질 뿐이다. 운명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그저 인연이라고 하자. 어떤 필연적인 우연, 우연적인 필연이 인연이 돼 이방인들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모른다. 서울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를 나오면 절두산 성지와 양화진 묘원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보인다. 당산철교를 사이에 두고 왼편이 신유박해로 순교한 가톨릭 성인들을 기념하는 절두산순교성지, 오른편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다. 1890년 양화진에 처음 묻힌 외국인은 J W 헤론이었는데, 그는 호러스 알렌을 이은 광혜원 원장으로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복 중의 죽음이라 외국인 묘지가 있는 인천 제물포까지 시신을 옮길 수 없어 양화진에 매장한 것이 외인묘지의 유래가 됐다. 현재 15개 국적 417명이 안장돼 있는데 그중 선교사는 6개국 145명이다. 선교사들 외에는 한국에 살던 외국인과 가족들, 해방 후에는 주로 미군들이 묻혔다. ●베델 묘비엔 치열했던 항일과정 빼곡 여기 누운 이들은 시쳇말로 객사를 한 셈이다. 하나 어디에서 살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진폭은 달라질지니, 이곳의 주인들은 먼눈과 너른 보폭으로 낯선 세계에 다다른 모험가들인 게다. 쫄보인 나는 그저 묘비에 새겨진 이방인들의 이름들을 읊조리며 발소리를 눅여 걷는다. 봄의 묘지는 그들이 떠나간 세상의 평화를 모사한 듯 적막하다.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서울신문에서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던 중 베델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가 쓴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와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는 현재까지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단 두 편의 해외 소설이다.“그래도 지금 서울 어딘가에 있을 이 친구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을 것 같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조선인을 위해 싸웠다’.”(‘황제 납치 프로젝트’ 중에서) 과연 묘비명은 작가의 상상대로일까? 베델의 묘소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A구역 두 번째 자리에 있다. ‘대한매일신보사장대영국인배설지묘’가 새겨진 묘비와 함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표지가 있다. 묘비는 1910년 일제가 칼과 망치로 비문을 훼손하는 바람에 1964년에야 언론인들이 성금을 모아 새로 세웠다. 비문은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썼던 것을 복원했는데, 언론인의 붓은 작가의 펜과 달리 선명하고 건조하다. 베델이, 1904년부터 1909년까지,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와서, 신문을 만들어 일제 침략 정책에 저항하다가, 옥고를 치른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일목요연하다. 여전히 ‘왜’는 알 수가 없다.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종군기자들이 조선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체험과 모험과 커리어 확보 등 갖가지 목적을 가진 그들의 취재 포인트는 백인종과 황인종, 서양과 동양의 대결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것이었다. 삶터를 전쟁터로 내어 준 한국인들은 주인공은커녕 조연조차 못 되는 엑스트라였다.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라는 여행기를 남긴 저널리스트 루돌프 차벨의 눈에 한국인들은 이렇게 보였다. “생활신조는 ‘되도록 돈은 많이, 일은 적게, 말은 많게, 담배도 많이, 잠은 오래오래’였다. 때로는 거기에 주벽과 바람기가 추가되었다.” 구제불능의 게으름뱅이! 무능한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은 그토록 한심해 보였다. 이보다 더 날카롭고 사나운 시선도 있다. “백인 여행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체류할 경우 처음 몇 주 동안은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력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며,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 선택을 했을 것이다.” 28세에 종군기자로서 북상하는 일본군 대열에 합류했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급진적인 사회주의자 잭 런던의 눈에 한국인은 살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소설 자본론’이라고 평가되는 ‘강철군화’를 읽은 독자에게 런던의 글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럽다. 물론 작가라는 작자들이 모두 인류애의 화신일 리 없고 반드시 인간적으로 훌륭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런던은 노동계급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큰돈을 벌어 자신이 증오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성공을 거둔 모순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4개월의 체험으로, 형편없는 도로와 불결한 환경이 아무리 지긋지긋했대도,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일부 한국인만을 만난 상태에서 한국인들의 유일한 장점이 ‘짐을 지는 것’이라고 단정 지은 부주의와 편견은 좀처럼 이해해 주고 싶지 않다. 한층 더 나쁜 것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다운 수려한 문장과 생생한 묘사다. 나쁠 때도, 혹은 나쁠수록 더욱 강렬한 ‘잘 쓴’ 글의 해악이라니!●수송공원에 대한매일신보 사옥 터 당산철교 아래로 이어진 절두산순교성지에 이르러 다리쉼을 한다. 믿음을 위해 목이 잘린 사람들과 수백 년 후까지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왜’라는 물음표가 떠 있다.전날 조계사 뒤편 수송공원에서 베델의 일터였던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터 표석을 보고, 일민미술관 5층에 있는 신문박물관에서 대한매일신보 보관물을 관람했다. 무심한 돌로 기념하는 자리, 아무리 ‘역사의 그릇’이라지만 빛바랜 종잇장으로 남은 신문 조각을 위해 베델이 목숨을 바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한심하다 못해 살인 충동까지 불러일으켰던 사람들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마음눈이 필요하다. 베델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서울 용산에서 한 조선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부인을 데리고 일본군 병영을 지나갔다. 이때 한 일본 군인이 장난삼아 이들에게 총을 쐈다. 탄환이 여인의 옆구리를 관통해 아이 엄마가 즉사했다. 아이의 한쪽 손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일본군 병영에 뛰어들어가 장교에게 항의했지만 되레 길거리로 쫓겨났다.”(코리아데일리뉴스 1907년 9월 3일자 기사) 우리의 일상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 하대와 멸시를 넘어서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하는 열외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연민과 동정을 기반으로 한 박애와 인류애, 그러니까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추썩임이 보상 없는 일에 기꺼이 뛰어드는 도화선이 된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서양 작가의 대답은 이러하다.“우리(베델과 가상의 소설 주인공)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부터 ‘조선의 형제’를 자처한 일본이 대한제국에 지른 불에 심하게 데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불속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또 한 번 크게 다칠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우둔하지만 행복하고 유쾌한 개니까. 그 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소설 ‘황제의 옥새’ 중에서) 소설가
  •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슬레예프 “무대는 인류애 나누는 곳”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슬레예프 “무대는 인류애 나누는 곳”

    “현 시국에 활동 중인 러시아 음악가로서 ‘무대’라는 공간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제게 무대는 음악을 통해 관객들과 인류애, 인간의 존엄과 삶, 친절함과 연민의 감정을 나누는 곳이죠.”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러시아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34)는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러시아 예술가로서 활동이 여의치 않아진 상황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압도적 연주로 만장일치 우승을 차지한 그는 다음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3년 만에 내한 리사이틀을 펼친다. 2016년, 2019년에 이은 세 번째 내한이다. 마슬레예프는 “관객과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며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인근 울란우데에서 태어난 그는 정치적 색깔이 있는 연주자는 아니다. 고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직답은 피했지만 러시아 예술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감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그는 “어려운 시국에 발걸음해 주시는 모든 한국 관객분께 미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술을 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제게는 다른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서정성과 깊이 있는 해석을 요구하는 차이콥스키의 ‘사계’,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모리스 라벨의 ‘보로딘 풍으로’, 까다로운 테크닉을 요구하는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에튀드’ 2곡을 연주하고, 구슬픈 감성의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으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마슬레예프는 “무대에서 진심으로 연주할 수 없다면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걸 넘어 관객과 사랑에 빠질 법한 곡을 고른다”고 설명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이후 가장 큰 개인적 변화로 성숙한 자세로 연주하게 된 것을 꼽은 그는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으니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의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슬레예프 “현 시국에 무대는 인류애 나누는 곳”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슬레예프 “현 시국에 무대는 인류애 나누는 곳”

    “현 시국에 활동 중인 러시아 음악가로서 ‘무대’라는 공간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제게 무대는 음악을 통해 관객들과 인류애, 인간의 존엄과 삶, 친절함과 연민의 감정을 나누는 곳이죠.”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러시아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34)는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러시아 예술가로서 활동이 여의치 않아진 상황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압도적 연주로 만장일치 우승을 차지한 그는 다음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3년 만에 내한 리사이틀을 펼친다. 2016년, 2019년에 이은 세 번째 내한이다. 마슬레예프는 “관객과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며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인근 울란우데에서 태어난 그는 정치적 색깔이 있는 연주자는 아니다. 고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직답은 피했지만 러시아 예술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감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는 전쟁 이전인 1년 전부터 예정했던 공연이며, 예술과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판단해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그는 “어려운 시국에 발걸음해 주시는 모든 한국 관객분께 미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술을 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제게는 다른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서정성과 깊이 있는 해석을 요구하는 차이콥스키의 ‘사계’,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모리스 라벨의 ‘보로딘 풍으로’, 까다로운 테크닉을 요구하는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에튀드’ 2곡을 연주하고, 구슬픈 감성의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으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마슬레예프는 “무대에서 진심으로 연주할 수 없다면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걸 넘어 관객과 사랑에 빠질 법한 곡을 고른다”며 “진심을 다해 연주하는 곡”들이라고 설명했다.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이후 가장 큰 개인적 변화로 성숙해진 삶과 성숙한 자세로 연주하게 된 것을 꼽은 그는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으니 세상이 얼마나 유익한지,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의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는 원동력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제노사이드’ 이견 분분, 법정 세워 단죄하려면 엄청난 노력 필요

    ‘제노사이드’ 이견 분분, 법정 세워 단죄하려면 엄청난 노력 필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규정한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단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한 발 물러섰다. 물론 바이든도 국제법 학자들과 변호사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슬쩍 발을 빼긴 했다. 그만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단죄하려면 험난한 과정과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 지난 4일 영국 BBC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나치 독일이 1940년대 유대인을 상대로 저질렀던 것처럼 특정 집단을 없애버릴 목적으로 저질러진 대량 살육을 이 개념으로 지칭하곤 한다. 하지만 속내로 들어가면 제노사이드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지, 언제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을 둘러싸고 법적 논의가 아주 복잡해진다. 개념 정의와 논쟁 이 개념은 1943년 폴란드계 유대인 변호사 라파엘 렘킨이 만들었다. 그리스 단어 “genos(인종이나 종족)”과 라틴 단어 “cide(죽이다)”를 합쳤다.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형제만 남기고 온 가족이 홀로코스트에 스러지는 것을 목격한 렘킨 박사는 국제법의 범죄 개념으로 정립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 1948년 12월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으로 채택돼 1951년 1월에 발효됐다. 협약 2조에 제노사이드를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 같은 것을 파괴할 의도로 수행되는 일체의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약간 구체적으로는 한 집단의 일원들을 살해하거나, 집단의 일원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위해를 끼치거나,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물리적인 파괴를 가져오도록 의도적으로 한 그룹의 생존 조건을 영향을 미치거나, 집단 내 생명의 탄생을 막도록 의도된 조치들을 시행하거나, 한 집단의 어린이들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행동 등을 들고 있다. 협약은 또 여러 국가들이 제노사이드를 예방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유엔 협약은 여러 면에서 비판 받았다. 대부분은 특정 사례에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것에 좌절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됐다. 일부는 그 규정이 너무 협애해 협약 채택 후 누구도 대량학살로 단죄받지 않았다고, 다른 일부는 과잉의 여지가 있다고 깎아내렸다.아울러 비판 받은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정치적, 사회적 집단을 겨냥한 사례는 제외됐다, 사람들에게 직접 가해지는 행동만 국한돼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나 문화적 고유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빠졌다,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의도를 증명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르완다 사례처럼 유엔 회원국들이 다른 회원국을 배제하거나 개입하는 데 주저한다, 협약의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국제법 기구가 없다(유엔 전범재판소가 기소하는 등 달라지긴 했음), “부분적으로”가 정확히 얼마쯤인지 계량하거나 얼마나 죽여야 제노사이드라고 할 수 있을지 어렵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제노사이드가 인정할 만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국경없는 의사회(MSF) 사무총장을 지낸 알랭 데스테제는 르완다를 다룬 책에 “제노사이드는 숨겨진 동기 때문에 여타 다른 범죄와 구분되는 범죄”라며 선택된 집단을 완전히 끝장낼 의도로 자행돼 인류애에 반하는 여느 다른 범죄들과 다른 규모의 범죄로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 가운데 가장 극악하고 커다란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도 이 개념이 “파시스트란 말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흔해빠진 것과 너무도 닮은 방식으로 일종의 말의 인플레이션에 희생됐다”고 우려했다.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하버드대 카(Carr) 인권정책센터 전 소장도 공감하며 이 개념이 “모든 종류의 희생자들을 검증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의 도중 ”예를 들어 노예제도 생명을 박멸한다기보다 착취의 시스템이었을 때 제노사이드로 불렸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제노사이드가 있었나? 제노사이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느냐를 둘러싼 차이 때문에 20세기에 얼마나 많은 제노사이드가 벌어졌는지에 대해 이견이 생기게 됐다. 일부는 지난 세기 홀로코스트 단 하나였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1948년 협약에 따라 적어도 세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1915~20년 오스만투르크가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인데 터키는 완강히 부정한다. 유대인 600만명이 희생된 홀로코스트. 대략 80만명의 투치와 후투족이 숨진 1994년 르완다다. 최근 들어 옛 유고연방에 대한 국제형사법정(ICTY)은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7000명이 학살된 일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한 것을 추가하는 이들이 있다. 또 옛소련이 1932~33년 우크라이나의 인공 기근으로 몰아넣은 일,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 1970년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의 170만명 살륙 등을 꼽는 이들도 있다. 크메르 루주 희생자 가운데 많은 수가 유엔 협약에 제외된 정치적, 사회적 지위 때문에 희생됐다는 점 때문에 이견이 분분하다. 국제형사법정(ICC)은 2010년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는데 7년 동안 교전하면서 다르푸르 주민 30만명을 죽이고 수백만명을 피란 가게 한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좀더 최근에는 2016년 3월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기독교도와 야지디족, 시아파 무슬림을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고 이슬람 국가(IS)를 비난했다. 이듬해에는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미얀마가 로힝야 부족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청소했다며 제노사이드 혐의를 제기했다.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 정부가 신장에서 위구르족에 제노사이드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은 의회 결의안을 내놓았다.역사 속의 제노사이드 처벌 협약에 의거해 제노사이드로 기소된 첫 사례는 르완다의 타바란 마을에 후투족 시장이었던 잔 폴 아카예수였다. 특별국제재판소는 1998년 9월 2일 그에게 제노사이드와 반 인류애 범죄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29건의 제도사이드 사건에 8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 8월에 유엔 보고서가 유출됐는데 16년 전 가해자였던 후투족이 이번에는 피해자로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두 번째 사례는 2001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장군이었던 라디슬라프 크르스티치였다. ICTY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첫 인물이었다. 그는 항소했는데 이유가 기막혔다. 자신이 학살 명령을 내렸다고 판결받은 숫자 8000명이 제노사이드란 개념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하찮은” 숫자라는 것이었다. 2004년 ICTY는 항소를 기각했다. 2007년 ‘보스니아의 학살자’로 불린 세르비아계 지휘관 라트코 믈라디치는 제노사이드, 전쟁범죄,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2018년 누온 체아(92)와 키이우 삼판(87)이 크메르 루주에서 제노사이드와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에 유죄 판결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 한국전 영웅 웨버 美 예비역 대령 별세

    한국전 참전 영웅인 윌리엄 웨버 예비역 대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7세. 웨버 대령은 6·25전쟁 당시 공수 낙하산부대 작전 장교(대위)로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작전 등에 참전했다. 951년 2월 원주 전투에서 중대장으로 싸우다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고도 후송을 거부하며 끝까지 고지 점령 임무를 완수한 군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심각한 장애에도 예편하지 않고 1년간 수술·재활 과정을 거쳐 현역으로 복귀했다가 1980년 전역했다. 1993년부터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회장을 맡아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비 ‘19인 용사상’ 건립을 주도했고, 그 역시 19인상 모델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전 전사자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 운동을 시작해 미 의회에서 건립 법안이 통과되도록 했다. 지난해 5월 착공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11일 웨버 대령의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었지만 하늘로 먼저 간 동료들을 위해 한국전쟁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힘써 주신 고인의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한미동맹은 자유를 위해 싸웠던 영웅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들의 애국심과 인류애를 꼭 기억하겠다”고 웨버 대령을 추모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이날 유가족에게 조전과 추모패를 보냈다. 한미동맹재단도 웨버 대령의 자서전을 발간하고 ‘웨버대령상’을 제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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