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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제 가리지 않는 검열과 그 종사자들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체제 가리지 않는 검열과 그 종사자들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최근 중국이 대만과 홍콩에서 수입되는 책들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과 홍콩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만과 홍콩의 책들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변경’이 가해졌다. 일부 페이지가 잘려 나가기도 했고 몇몇 문장에 흰색이 덧칠해진 책도 있다고 한다.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금서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에둘러 보여 준다. ‘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 왔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미국의 문화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검열관들’은 18세기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 19세기 영국 통치 당시 인도, 20세기 동독에서 검열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면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18세기 부르봉 왕조에서 검열관은 ‘명예직 공무원’과 다름없었다. 체계화된 양식과 절차에 따라 검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직 종사자들, 즉 교수나 학자, 성직자, 변호사 등이 부업으로 검열 일을 했다. 급료가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출세의 줄을 잡는 하나의 방편으로 검열을 선호했다. 일은 많았지만 간혹 검열하는 책의 매력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소르본대 교수인 한 검열관은 허가서에 “즐거운 독서였다. 이 책에는 매혹적인 요소가 가득하다”고 썼다. 한 신학자 검열관은 “책을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19세기 영국은 인도에서 “전 방위적 감시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인도 행정청은 책을 비롯한 인도 사회의 모든 단면을 조사, 기록했다. 초안은 인도인 관리가 작성했고 영국인 관료가 이를 점검해 인도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책보다는 신문에 대한 검열이 주를 이뤘는데, 영국의 검열은 민족주의의 발현을 막고자 한 조치였다. 영국 제국주의 정복욕이 강하게 드러날수록 이를 비판하는 인도 민족주의자들의 “위험한 책”들도 늘어났다. 인도 통치 초기 비교적 자유로웠던 방식은 위험한 책들의 잦은 출간과 함께 “탄압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세기 동독은 출판물의 종수, 분야, 내용까지 사전에 결정했다. 동독 출판총국이 발행한 인쇄 허가서가 없이는 인쇄기 자체를 돌릴 수 없었다. 작가의 자기검열은 당연한 일이었고 편집자와 외부 심사위원, 출판사, 출판총국, 당 중앙위 문화분과까지 올라가며 검열이 이뤄졌다. 정권 최고 권력자들과 협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작가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자신의 소설에서 단락이 삭제되고, 서사를 재구성하고, 등장인물 유형을 바꾸었지만 “원고를 두고 협의를 벌이는” 일을 상호 존중의 한 방편으로 여겼다. 저자는 어떤 방식의 검열이든 권력 남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원고를 수정·삭제·폐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체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검열관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 “자전거로 5세 딸 치고 ‘맘충’ 조롱까지”…경찰 “형사처벌 가능”

    “자전거로 5세 딸 치고 ‘맘충’ 조롱까지”…경찰 “형사처벌 가능”

    한 여성이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자전거로 여야를 다치게 하고 그 어머니를 조롱까지 한 사연이 알려졌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끌지 않고 몰아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2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A씨는 최근 딸과 폭이 좁은 인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신경질적으로 뒤에서 자전거 경적이 울렸고 A씨가 뒤를 돌아보자 자전거를 탄 여성이 있었다. A씨는 “우리가 지나가면 금방 본인도 지나가서 속도를 낼 수 있을 텐데 그걸 못 참고 벨을 울려댔다”며 “급기야 기다리지 않고 무리하게 지나가다가 5세 딸 손을 살짝 치고 지나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놀란 딸은 뒤로 넘어졌고 이 과정에서 손바닥이 살짝 까지는 상처를 입었다. A씨는 이 여성에게 달려가 “왜 아이를 치고 가냐. 여기 인도인 거 모르냐”고 따졌다. 그러자 여성은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로 육아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 등의 단어를 쓰며 A씨를 조롱했다. 참다 못한 A씨가 경찰을 부르자 여성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남성이 등장해 “손 까진 거 가지고 유난 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인도에서 자전거를 끌고 간 게 아니고 타고 갔기 때문에 차와 같은 수준으로 처리될 수 있다.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며 “엄연한 인도라서 자전거 운전자가 배상 보험 없으면 형사·민사 각각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이후 여성은 A씨에게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보험도 없고 돈도 없다”면서 선처를 호소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소액으로 합의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아이 조금 까진 거야 연고 바르면 되고 돈도 안 받아도 되는데 너무 괘씸해서 손목 엑스레이랑 성장판 검사도 했다”며 “합의는 당연히 안 했다. 아이가 가끔 손목 아프다고 하는 거 보면 치료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자전거 도로도 아니고 좁은 인도에서 제발 자전거 끌고 갈 거 아니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며 “길을 안 비켜줬다고 맘충 소리 들을 일이 맞는지 씁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자전거로 크게 처벌할 수 있더라. 정말 조심히 타야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차마(車馬)에 포함돼 원칙적으로 인도를 달릴 수 없다. 자전거 도로가 있으면 차도가 아닌 자전거 도로로 통행해야 하며,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는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 주행해야 한다. 자전거가 인도를 달리다 보행자를 치어 다치게 하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인류는 모두 노마드… 북극이 ‘약속의 땅’ 될 수도

    인류는 모두 노마드… 북극이 ‘약속의 땅’ 될 수도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의 평균)은 0.8명으로 5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했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를 막기 위해 15년간 400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성장률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출산율 제고만이 해법일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국제관계 전문가 파라그 카나는 ‘대이동의 시대’에서 앞으로의 인류 문명은 국가·민족의 배타적 공동체를 넘어서 유목본능을 되살린 ‘이동’이 생존의 필수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뿐 아니라 어느 정도 부를 쌓아 올린 국가들 공통의 문제다. 현재 일본은 해마다 50만명의 인구가 줄어들고, 중국은 향후 10년 내 인구가 정점에 도달한 이후 감소하고 2040년에는 노년층 숫자가 15세 미만 인구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연금과 노인 요양 지출이 증가하며 노동력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대이동의 시대 파라그 카나 지음/박홍경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448쪽/1만 9000원 하지만 저자는 지난 6만년간 인류가 자원과 안정적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조상의 이주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생물학적·문화적·사회적 다양성을 누리고 있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는 위기로 치닫고 경제가 붕괴하면서 이제 더 나은 삶과 정치 체제를 찾으려는 이주민의 수용은 불가피해졌다.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냉전이 막을 내린 이후 30년 안에 태어났다. 대다수가 MZ세대인 이들에게 ‘민족 국가’ 개념은 예전 같지 않고 물리적·디지털 접근성 측면에서 이동성이 강한 집단이다. 이주민이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않을 우려가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럽에 도착하는 무슬림이 이슬람교를 버리고 독일의 모스크에서는 동성애자를 환영하는 등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인도인·베트남인도 독일인이 되는 만큼 독일에선 ‘독일인다움이 어떤 의미인가’를 놓고 진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단일 민족이란 환상을 벗어난 ‘잡종 인류’는 이제 필연이다. 그렇다면, 현재 서른 살 미만의 세계인들은 지금부터 2050년까지 주로 어디로 이동하게 될까. 기후변화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농지가 사막화되고 경제가 파탄 상태에 빠지면서 북반구 국가로 이동하고,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더 많은 인구가 탈출할 것이다. 북미와 아시아 해안 지대가 침수되면서 내륙으로 중심축이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인간은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북위 25~45도에 많이 몰렸지만, 저자는 기후변화로 기온과 인구 밀도가 낮은 북극으로 인류가 대거 이동할 가능성도 제시한다. 수십년에 걸쳐 캐나다의 북쪽과 그린란드,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스텝 지대에 이르기까지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에 신도시 수십개가 조성될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유럽으로 이주하는 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선 현실에 주목한다. 유럽의 공공안전, 저렴한 의료 서비스, 소비자 친화적 규제, 고용 정책의 혜택보다 열위에 있는 미국이 매력을 잃고 있음을 경고한다. 전 세계가 청년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 만큼 안정성과 복지 혜택이 주요 변수가 됐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유목과 농업사회(문명 1.0), 산업화(문명 2.0)를 넘어 이동과 지속 가능성이 필요한 ‘문명 3.0’ 시대를 맞아 인류가 보다 광범위한 지역으로 흩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아시아인은 해안 대도시에서 히말라야산맥,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광활한 동쪽 지역으로 퍼져 나간다. 이주가 증가하면 선진국과 빈국의 간극이 메워지면서 세계가 집단적으로 가난해지거나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현재는 각국이 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논쟁을 벌이지만, 미래에는 새로운 이주민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에 주목할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21세기 한국은 이주민들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나라일까. 정부가 ‘이민청’ 신설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되묻는 듯하다.
  • [여기는 인도] ‘담배 피우는 여신’ 제작한 감독에 “참수할 것” 위협

    [여기는 인도] ‘담배 피우는 여신’ 제작한 감독에 “참수할 것” 위협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힌두신의 이미지를 이용한 다큐멘터리 포스터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CNN 등 해외 언론의 9일 보도에 따르면, 영화 감독 리나 마니메칼라이는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신작 다큐멘터리 ‘칼리’(Kaali)의 포스터를 공개했다. 해당 포스터는 힌두 여신 ‘칼리’로 분장한 한 여성 배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 칼리는 인도에서 파괴와 시간, 죽음 등을 관장하는 신으로, 검은색 또는 파란색 피부와 길게 늘어뜨린 혀, 해골 목걸이 등으로 묘사된다. 칼과 낫을 무기로 사용하며, 무시무시한 외형 만큼 가공할만한 힘을 자랑하는 파괴와 공포의 신이다. 인구의 약 80%가 힌두교도인 인도에서 칼리시는 많은 인도인의 숭배를 받는다. 이에 따라 해당 포스터가 공개된 직후 SNS에서는 힌두교도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해당 포스터가 힌두교와 칼리신을 모욕함과 동시에, 종교 감정을 훼손했다는 게 그 이유다.일부 힌두교도는 마니메칼라이 감독을 체포해야 한다며 뉴델리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고, 마니메칼라이 감독에게는 살해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한 힌두교 지도자는 자신의 SNS에 마니메칼라이를 참수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인도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의 대변인인 비니트 고엔카는 해당 이미지는 전 세계 인도인의 감정에 상처를 줬다며 “인도 정부는 그 트위터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의 보도에 따르면 마니메칼라이 감독의 고향인 남부 타밀나두주(州) 경찰은 마니메칼라이를 위협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여성 한 명을 체포했지만, 유사한 메시지가 인도 전역에서 쏟아지는 상황이다. 현재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마니메칼라이 감독은 영국 BBC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칼리를 나만의 독립적인 시각으로 구현했다”면서 “나는 어린 시절 칼리와 함께 자랐고, 이를 영화에 구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다큐멘터리의 감독판 버전을 공개할 예정”이라면서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짙어진 힌두교 민족주의  한편, 인도에서는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출범한 후, 사회 전반에서 힌두교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향이 짙어졌다. 이와 동시에 힌두교 상징물과 관련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11월 넷플릭스 드라마 ‘수터블 보이’(A Suitable Boy)에는 여성 주인공이 힌두교 사찰을 배경으로 남성과 키스하는 장면이 등장했는데, 이를 두고 보수 힌두교도들이 교리와 맞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지난해 초에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인도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인 ‘탄다브’(Tandav)가 공개됐는데, 힌두교 시바신이 희화화됐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자 아마존 프라임 측이 힌두교도에게 공식으로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 네팔 추락 여객기 탑승자 22명 시신 모두 수습…녹음장치도 수거

    네팔 추락 여객기 탑승자 22명 시신 모두 수습…녹음장치도 수거

    이틀 전 승객과 승무원 22명을 태우고 네팔 산악지대에서 추락한 소형 여객기 탑승자 전원의 시신이 31일(현지시간) 모두 수습됐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데오 찬드라 랄 카르나 민간 항공국 대변인은 이날 “모든 시신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당국은 여객기 추락 직후 현장에 군경 등을 보내 수색 작업을 펼쳤으며 전날까지 21구의 시신이 발견된 상태였다. 발견된 시신 중 10구는 헬리콥터 편으로 수도 카트만두로 이송됐다. 현장의 시신 수습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구조대가 맨손으로 여객기 잔해를 옮기며 작업을 진행해야 했고, 날씨마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르나 대변인은 현장에서 조종실 음성 녹음장치도 수거됐다고 말했다. 여객기에는 일반적으로 비행기록장치와 조종실 음성 녹음장치 등 2대의 블랙박스가 장착되는데 사고 여객기에는 음성 녹음장치만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 관계자는 추락기가 불길에 휩싸이지는 않았다며, 큰 바위와 충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구체적인 사고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네팔 타라에어 소속 소형 여객기(트윈오터)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오전 9시 55분쯤 관광도시 포카라에서 이륙해 20분 거리에 위치한 좀솜으로 비행하다가, 착륙 5분 전쯤 통신이 두절됐다. 해당 여객기는 이후 해발 4420m 지점에서 하루 만에 잔해로 발견됐다. 사고기에는 조종사 등 승무원 3명과 승객 19명이 탑승했으며 4명은 인도인, 2명은 독일인이고, 나머지 16명은 모두 네팔인이다. 인도 경찰은 사고기에 탑승한 인도인 4명이 이혼한 부부와 딸, 아들 등 일가족이라며 가족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AFP통신에 밝혔다.사고기는 1979년 4월에 첫 비행을 한 항공기로, 43년 된 노후기로 전해졌다. 포카라∼좀솜 노선은 외국인 등산객과 좀솜의 묵티나트 사원에 가려는 인도·네팔인 순례자들이 자주 찾는다. 하지만 이 노선은 항공 사고가 끊이지 않는 ‘마의 구간’으로 꼽힌다. 항공기가 산악지대를 지나 계곡으로 급선회한 뒤 착륙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 구간 자체는 짧지만, 낮에는 강풍과 구름 때문에 오전에만 운행할 수 있다. 이 구간을 운항하는 타라에어 여객기는 2016년 2월에도 추락, 탑승자 23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사고기는 포카라 공항에서 이륙 10분 뒤 연락이 두절됐으며, 미아그디 지역 산악지대에서 완전히 부서진 채 발견됐다. EFE통신에 따르면 1998년에는 좀솜에서 이륙한 여객기가 곧바로 추락해 탑승자 18명 전원 숨졌고, 2002년에도 좀솜에서 포카라로 돌아오던 여객기가 떨어져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2년 5월에는 좀솜 공항에서 항공기 사고로 15명이 사망했다.
  • [포착] 착륙 5분전 사라진 네팔 여객기 추락 맞았다…시신 14구 수습

    [포착] 착륙 5분전 사라진 네팔 여객기 추락 맞았다…시신 14구 수습

    승객과 승무원 22명을 태우고 이륙했다가 실종된 네팔 소형 여객기가 산악지대에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CNN방송은 30일(이하 현지시간) 히말라야 무스탕 지역 사노스웨어 중턱에서 네팔 민간항공 타라항공 여객기 잔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네팔 군 대변인 냐라얀 실왈은 “수색구조대가 해발 4000m 지점에서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며 실종기 잔해 사진을 공개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생존자는 없다고 전했다. 네팔 민간항공청(CAAN) 데오 찬드라 랄 칸 대변인은 “지금까지 시신 14구를 수습했으며, 나머지 시신에 대한 수습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국제공항 대변인 텍 라지 시타울라는 “승객 시신 중 일부는 알아볼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29일 오전 9시 55분 네팔 휴양도시 포카라에서 이륙한 여객기는 산악마을 좀솜으로 가던 중 관제탑과 통신이 두절됐다. 플라이트레이더24닷컴에 따르면 여객기는 오전 10시 7분 3900m 상공에서 마지막 신호를 전송했다. 통상 20분~25분 걸리는 비행시간을 고려하면 착륙 5분을 남겨두고 추락한 셈이다. 네팔 당국은 악천후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객기에는 조종사 등 승무원 3명과 승객 19명 등 22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중 16명은 네팔인이었으며 4명은 인도인, 2명은 독일인이었다.  사고기는 캐나다의 드 하빌랜드 캐나다사가 개발한 쌍발 터보프롭 단거리 이착륙 소형기 'DHC-6 트윈오터'였다. 1979년 4월 첫 비행을 했으니 올해로 43년 된 노후기였다.히말라야 등산으로 유명한 포카라는 코로나 전까지 한국인도 많이 찾았던 곳이다. 포카라-좀솜 비행 노선은 외국인 등산객과 좀솜의 묵티나트 사원으로 향하는 인도·네팔인 순례자들이 자주 이용한다. 다만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항공 사고가 발생한 터라 ‘마의 구간’으로 불린다. 이 노선을 비행하는 항공기는 높은 산악지대를 지나 계곡으로 급선회한 후 착륙해야 한다. 2016년 2월 25일에는 같은 구간에서 같은 타라 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 20명과 승무원 3명 등 탑승자 23명이 전원 사망했다. 2012년 5월에도 해당 구간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로 탑승객 22명 중 15명이 사망한 바 있다. 1997년에는 좀솜에서 포카라로 향하던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19명이 전원 숨졌으며, 2002년에도 같은 구간에서 추락 사고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했다.
  • 네팔 비행기 동체 확인 시신 21구 찾아내 “늘 위험 감수”

    네팔 비행기 동체 확인 시신 21구 찾아내 “늘 위험 감수”

    네팔을 여행하며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는 일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네팔을 세 차례 다녀왔다. 2005년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2009년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다녀왔다. 2016년에는 카트만두와 포카라. 남부 정글지대의 치트완 국립공원 등을 다녀왔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는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에베레스트 트레킹 때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탔다. 한 명씩 앉는 좌석이 두 줄로 죽 놓여 있었고, 16명쯤 탔던 것으로 기억나는 작은 비행기였다. 조종석 왼쪽에 동구권 출신 조종사가, 오른쪽에 네팔리 조종사가 앉아 있었다. 조종석과 승객 좌석을 구분하는 것은 커튼 비스무리한 블라인드 뿐이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올리자 둘이 다투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 독일인 청년은 50분 남짓한 비행시간에 2리터들이 물 한 통을 벌컥벌컥 들이마셔 없앴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비행기는 뚝뚝 떨어져 간담이 서늘케 했다. 두 조종사는 이제 대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어쨌든 루클라 공항이란 곳에 내렸는데 활주로가 오르막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공항이었다. 착륙할 때는 비행기가 낭떠러지로 내려갔다가 언덕 위 활주로에 몸을 올리고, 오르막을 이용해 제동력을 얻는 식이었다. 물론 이륙할 때는 반대로 내리막 활주로를 타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뒤 양력을 얻어 고도를 높여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이곳까지는 하루 꼬박 버스를 타고 지리란 마을까지 간 뒤 나흘이나 닷새 걸어 가야 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산객 입장에서는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시간이 많은 노령 산객일수록 이렇게 올라야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참맛을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쁜 직장인 산객은 시간에 쫓겨 비행기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네팔은 험준한 산악이 국토의 80%를 차지해 우리 식대로면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달릴 거리를 서너 시간씩 잡아먹는다. 해서 어쩔 수 없이 항공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네팔 항공사들은 노후된 기종을 사들여 동구권 출신 조종사들로 하여금 조종간을 잡게 한다. 정비를 제대로 하는지, 소양 교육을 제대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기자가 에베레스트를 갔을 때도 우리가 루클란 공항에 무사히 착륙한 다음날 독일인 산객 등을 태운 비행기가 낭떠러지에 충돌해 전원이 사망하는 참극이 있었다. 기자 일행은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마친 시점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가이드에게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따진 일이 있었다. 그 가이드는 짐짓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되물었다.승객과 승무원 22명을 태우고 서부 관광 거점 포카라를 이륙한 뒤 실종된 소형 여객기가 산악 지대에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히말라얀타임스와 영국 BBC에 따르면 네팔 군 당국은 30일 오전 히말라야 무스탕 지역 사노스웨어의 해발 4000m 이상 지점에서 타라에어 실종기 잔해를 발견했다. 군 대변인은 “수색구조대가 비행기 추락지점을 파악했다”며 상공에서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지금까지 21구의 시신을 찾아냈다. 20구는 회수했고 한 구는 위치만 확인했다. 워낙 지형이 험한 곳이라 곧바로 회수하지 못했다. 나머지 한 명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사고기는 전날 오전 9시 55분쯤 관광도시 포카라를 이륙, 20분 거리의 무스탕 지역 좀솜으로 향하다 착륙 5분 전에 실종됐다. 사고기에는 조종사 등 승무원 3명과 승객 19명이 탑승했으며, 4명은 인도인, 2명은 독일인이고, 나머지 16명은 모두 네팔인이다. 사고기는 1979년 4월에 첫 비행을 해서 43년 된 낡은 비행기라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포카라는 네팔 히말라야 가운데 안나푸르나와 무스탕 계곡을 찾는 등산객들이 반드시 거치는 도시로 유명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한국 등산객도 많이 찾았던 곳이다. 포카라∼좀솜 구간 비행 노선은 외국인 등산객과 좀솜의 묵티나트 사원에 가려는 인도·네팔인 순례자들이 자주 찾는다. 포카라∼좀솜 구간은 잊을만하면 항공 사고가 반복되는 ‘마의 구간’으로 꼽힌다. 이 노선을 비행하는 항공기는 산악지대를 지나 계곡으로 급선회한 뒤 착륙해야 한다. 비행 거리는 짧지만, 낮에는 강풍이 불고 구름이 많아 오전에만 운행하는 일이 많다. 타라에어 소형 여객기는 2016년 2월 25일에도 추락해 승객 20명과 승무원 3명 등 탑승자 23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사고기는 포카라 공항에서 이륙 10분 뒤 연락이 두절됐으며, 미아그디 산악지대에서 완전히 부서진 채 발견됐다. 1997년에는 좀솜에서 포카라로 가던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19명 전원이 숨졌고, 2002년에도 비슷한 사고로 17명이 사망했다. 2012년 5월에도 포카라∼좀솜 구간 항공기 사고로 15명이 사망했다. 2013년에는 좀솜 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승객 20여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없었다고 네팔리 타임스가 보도했다. 2018년 초에도 승객 71명을 태우고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이륙한 US 방글라 항공 여객기가 카트만두에 착륙하다 화재가 일어나 51명이 희생됐다. 다음해 4월에도 루클라 공항에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져 상주하는 헬리콥터를 들이받아 3명이 목숨을 잃었다.  
  • 착륙 5분전 실종됐던 네팔 여객기, 잔해 발견됐다 “추락지점 파악”

    착륙 5분전 실종됐던 네팔 여객기, 잔해 발견됐다 “추락지점 파악”

    승객과 승무원 등 22명을 태운 채 지난 29일 네팔 관광도시 포카라에서 이륙한 뒤 실종된 소형 여객기가 산악지대에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히말라얀타임스 등에 따르면, 네팔 군 당국은 이날 오전 히말라야 무스탕 지역 사노스웨어의 해발 4000m 이상 지점에서 타라에어 실종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군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수색구조대가 비행기 추락지점을 파악했다”며 비행기 꼬리 번호가 보이는 잔해 사진을 공개했다. 탑승자 22명 가운데 생존자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앞서 현지 시각으로 지난 29일 오전 9시 55분 포카라에서 이륙한 네팔 민간 항공사 타라에어(Tara Air)의 소형 쌍발기 ‘트윈오터(9N-AET)’는 북서쪽으로 160km 떨어진 좀솜으로 비행하던 중 착륙 5분 전에 실종됐다. 당국은 헬기를 띄워 실종 지점을 수색했지만, 악천후로 실종기를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왔고 이날 이틀째 수색에 나섰다. 사고기에는 조종사 등 승무원 3명과 승객 19명이 탑승했으며, 4명은 인도인, 2명은 독일인이고, 나머지 16명은 모두 네팔인이다. 실종기 운행구간은 20분의 짧은 노선이지만 과거에도 여러차례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날씨가 자주 급변하는 산악지대를 지나 계곡으로 급선회한 뒤 착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2월 25일에는 타라에어 소형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 20명과 승무원 3명 등 탑승자 23명이 전원 사망했다. 1997년에는 좀솜에서 포카라로 가던 또 다른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19명이 전원 숨졌고, 2002년에도 비슷한 사고로 17명이 사망했다. 사고기는 1979년 4월에 첫 비행을 한 항공기다. 이번 사고에 대해 현지 매체들은 실종기가 43년 된 노후기라는 점과 이전에도 해당 지역에서 추락사고가 일어났던 점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 네팔 ‘이곳’에서 또 여객기 사라졌다

    네팔 ‘이곳’에서 또 여객기 사라졌다

    네팔 상공의 흐린 날씨로 22명이 탑승한 비행기가 실종된 가운데, 당국은 밤이 깊어지면서 수색 작업을 중단했다고 29일(현지시간) 밝혔다. 앞서 네팔 매체 카트만두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5분쯤 관광도시인 포카라에서 이륙한 민항 ‘타라에어’의 소형 쌍발기 트윈오터가 북서쪽으로 160km 떨어진 좀솜으로 비행하던 중 실종됐다. 실종기 운행구간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네팔 사고기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125㎞ 떨어진 관광도시 포카라를 출발해 인기 관광 및 순례지인 좀솜으로 향하던 여행기였다. 아침에 이륙해 20분 간 비행했으나 착륙 예정 5분 전 관제탑과 연락이 두절됐다. 네팔 민간항공국(CAAN)에 의하면 여객기에는 인도인 4명, 독일인 2명, 네팔인 16명이 탑승했으며 승무원도 3명 타 있었다.기내 사고 다수 발생한 곳…악천후에 수색 중단 앞서 기상청은 포카라-좀솜 지역에 아침부터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고 발표했다. 관계자들은 수색에 진전이 없던 이유로 악천후와 어려운 산악 지형을 꼽았다. 경찰 대변인은 “어둠 때문에 수색작업이 중단됐다”며 “어떤 진전도 이룰 수 없었고, 수색은 내일 일찍 재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세계 가장 높은 14개 산 중 8개가 위치해 있는 네팔은, 기상 변화에 따른 항공 사고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2018년 초 다카에서 카트만두로 향하던 미국-방글라항공 여객기가 착륙 도중 추락해 화재가 발생했고, 탑승자 71명 중 5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2년에도 파키스탄 국제항공 여객기가 카트만두에 착륙하려다 언덕으로 추락해 탑승자 167명 전원이 사망했다.
  • “BTS, 인도 오면 비틀즈급으로 도약” 인도 현지 한국 스님의 초대

    “BTS, 인도 오면 비틀즈급으로 도약” 인도 현지 한국 스님의 초대

    “BTS가 자신들의 콘텐츠에 명상문화를 결합한다면 비틀즈급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에 분황사 건립을 주도한 붓다팔라 스님이 방탄소년단(BTS)을 인도로 초대했다. 붓다팔라 스님은 20일 분황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문화의 꽃이라는 명상 문화를 한국인이 주도할 수 있다면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며 BTS가 비틀즈처럼 인도의 문화를 만나기를 소망했다. 비틀즈의 음악 세계에서 인도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조지 해리슨이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에서 팝 음악 사상 최초로 인도 악기인 시타르를 연주했고, 이를 계기로 비틀즈는 인도 음악을 파고드는 한편 영적 구도에 관심을 갖고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붓다팔라 스님이 비틀즈를 언급한 이유다. 분황사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곳인 부다가야에 한국 전통식으로 세운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백만원력 결집불사’의 일환으로 추진했고, 2020년 말부터 짓기 시작해 1년 반 정도에 걸쳐 완공했다. 붓다팔라 스님은 인도 현지법인 물라상가의 대표로서 조계종과 협력해 분황사 건립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지 2000년 정도 되는데 우리는 인도로부터 불교를 도입해 소비를 해왔지 인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은혜를 갚은 적이 없다”면서 “그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3년 전에 원행 스님이 이곳에 오셔서 한국 사찰이 없으니까 보리수 아래서 발원을 하신 게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마음을 제대로 먹었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법인을 만들고 인도 정부와 협조하고 허가를 이끌어내기까지 진행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법이 자주 바뀌는 인도의 문화는 특히 어려움이 컸다. 붓다팔라 스님은 “다 허가 난다고 하고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에 보고하고 왔는데 다시 돌아오니 허가가 안 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난감했다”면서 “주지사가 참석한 행사에서 ‘이게 안 되면 너희가 손해이지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다.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보고하겠다’고 했더니 도장을 찍어줬다”고 돌이켰다. 분황사는 부처의 깨달음을 기념해 세운 마하보디 대탑에서 직선거리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분황사 대웅전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대웅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대신 현지에서 교육 사업과 보건 사업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붓다팔라 스님은 “여기는 한국의 순례객이나 수행자들이 여기 와서 머물면서 수행하고 성지순례하는 공간으로 쓰이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며 “두 번째는 인도의 불교 중앙연수원처럼 쓰고, 세 번째는 명상의 오리지널 기술과 이론을 복원하는 곳으로 쓰려고 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불교의 발원지이나 불교의 명맥이 끊겨 명상의 기술과 이론도 끊긴 상황으로, 한국은 미얀마와 더불어 붓다의 명상이 잘 보존된 나라로 꼽힌다. 명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만큼 인도에서도 분황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 붓다팔라 스님의 설명이다.붓다팔라 스님은 “지금은 보건소로 출발하지만 무료 의과대학으로까지 갔으면 한다”는 소망도 밝혔다. 그는 “스님들이 할 일은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이라며 “돈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허공에 떠들다 보면 인연이 맺어지고, 모여서 개량하게 된다”고 웃었다. 내년이면 수교 50주년을 맞는 인도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핵심 장소가 될 수 있는 만큼 붓다팔라 스님의 기대감은 남달랐다. 인도를 포함해 전 세계를 홀린 BTS가 인도에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그가 꿈을 가지고 하는 말이었다. 붓다팔라 스님은 “인도에 BTS팬들이 많다”면서 “인도인들이 가장 자부심 있는 명상을 BTS의 콘텐츠에 결합하면 비틀즈를 능가할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인도 혈통을 끝까지 숨긴 할리우드 여배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인도 혈통을 끝까지 숨긴 할리우드 여배우

    멀 오베론이 누군가 싶을지 모르겠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호흡을 맞춘 ‘폭풍의 언덕’이 대표작이라고 하면 무릎을 탁 칠 올드 영화팬이 있을지 모르겠다. 할리우드 흑백 시절의 여자 스타였다. 본명이 에스텔 멀 오브라이언 톰프슨인 그녀는 1928년부터 1973년까지 은막을 누비다 1979년 11월 23일(이하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서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런데 아름다운 그녀가 평생 간직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1911년 2월 19일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앵글로 인도인이었다는 사실을 꽁꽁 숨긴 채 일생을 보냈다. 이른바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여배우로서 평생을 백인인 척 살았다고 영국 BBC가 16일 전했다. 오베론이 오스카 후보로 지명된 최초의 남아시아 출신 배우란 사실을 2009년 처음 밝혀낸 인물이 미국 작가 겸 연구자 마유크 센이었다. 어릴 적 그녀의 영화를 보고 빠져든 그는 그녀의 과거 얘기를 파헤치는 데 몰두했다. “퀴어(성적 소수자)로서 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적대적인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정체성 일부를 숨겨야만 하는 이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오베론의 어머니 샬럿 셀비는 몰디브 신할라 피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의 피가 섞여 있었고, 아버지는 영국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녀로 남편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1914년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자 3년 뒤 가족이 콜카타로 이주했다. 1920년에 아마추어 연극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 1925년 무성영화 ‘The Dark Angel’에서 주인공 빌마 뱅키를 연기했다. 3년 뒤 프랑스로 떠났는데 한 육군 대령이 자신을 영화감독 렉스 잉그램에게 소개해 준 덕분이었다. 그녀는 잉그램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그런데 2014년 다큐멘터리 ‘멀의 곤란한 일(The Trouble with Merle)’을 통해 실은 셀비가 오베론의 할머니였으며, 셀비의 딸 콘스탄스가 오베론을 낳은 뒤 한동안 둘을 자매처럼 길렀다는 가족사가 밝혀졌다. 이것만 아니었다. 나중에 오베론과 결혼한 영화감독 알렉산더 코다는 그녀를 1933년 작품 ‘헨리 8세의 사생활’에 앤 볼린으로 캐스팅하면서 하얗지 않은 피부색을 설명하기 위해 태즈메니아 출신이라고 꾸몄다. ‘멀의 곤란한 일’을 감독한 마리 델로프스키는 “태즈메니아가 새로운 그녀의 출신지로 선택됐는데 미국과 유럽에서 아주 먼 곳이면서도 일반적으로 영국인들이 핵심을 이루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베론은 호바트 출신의 상류층 소녀였는데 아버지가 사냥 사고로 죽자 인도로 이주한 것으로 포장됐다. 그런데 오베론은 말년에 태즈메니아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호주 언론들이 자부심과 호기심을 품은 채 그녀를 취재하기도 했다. 사실 어머니가 마오리 피가 섞여 있어 아주 터무니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해서 그녀는 태즈메니아가 고향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으며 콜카타 얘기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콜카타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기억한다. 수난다 K 다타 레이 기자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수많은 영국인들의 회고록에 그녀에 대한 언급이 있다”면서 “사람들은 그녀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전화 교환수로 일했으며 유명 식당에서 열린 미인대회 우승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할리우드의 출연 제의가 쏟아져 미국으로 다시 옮겼고, 1935년 ‘The Dark Angel’로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됐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확고한 지위를 부여한 것은 역시 ‘폭풍의 언덕’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캐스팅을 놓고 경합했던 비비앤 리도 인도 출신 여배우였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오베론이 더 유명해서 선택했다고 했다. 당시 일간 뉴욕 타임스(NYT) 리뷰를 보면 그녀가 “브론테가 그린 여주인공의 혼을 완벽하게 포착했다”고 높이 샀다. 1930년대 후반 오베론은 할리우드에서도 소위 빅리그에 들어섰다. 음악 제작자 콜 포터,극작가 노엘 코워드 같은 이들과 스스럼없이 이너서클을 형성했다. 첫 남편 코다와 베테랑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이 남아시아인 특유의 억양을 지우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밝은 얼굴 빛이 백인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지만 오베론의 비밀은 스스로를 짓눌렀다. 센은 “그녀는 여전히 가끔 혼혈이란 점을 침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지만 동시대 기자들은 그을린 얼굴을 지적하곤 했다”고 말했다. 몇몇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거나 변색 치료를 받다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7년 자동차 사고로 다치고 얼굴에 생채기가 생겼는데 촬영감독 루시앵 발라드가 절묘하게 화면에 잡히지 않게 해줬다. 덕분에 코다와 이혼한 그녀는 1945년 발라드와 재혼할 수 있었다. 센은 “몇몇 소식통들은 그 기술이 카메라 앞에 선 멀의 얼굴을 하얗게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기도 했다고 짐작했다”고 말했다. 오베론의 조카 마이클은 1979년 가족들의 회고록 ‘매력적인 삶들(Charmed Lives)’을 출간했는데 이모가 본명이나 태어난 곳을 발설하면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오베론을 돕는 이들은 똘똘 뭉쳐 그녀의 숨겨진 과거를 감추려 애썼다. “난 다리 아래 충분한 물이 흘러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늘 마음 속에 자신의 과거를 숨겨두고 있었다”고 말했다.수수께끼를 간직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1965년 호주를 방문했던 그녀는 현지 기자들이 그녀의 배경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내자 공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일정을 단축해 귀국했다. 1978년 태즈메니아를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일자 그녀가 갈팡질팡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하지만 오베론은 한 번도 대중 앞에서 진실을 얘기하지 않다가 1979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1983년에 전기 ‘멀 공주- 멀 오베론의 로맨틱 인생’에서야 베일이 벗겨졌다. 저자들은 뭄바이에서 출생 기록을 찾아냈고, 세례 증명서, 인도 친척들이 갖고 있던 편지들과 사진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책을 통해 센은 남아시아 여성이 “그녀를 수용할 수 있도록 기획되지 않은 업계를 탐지하고 이런 사람들과 싸우며 영화 작업을 하는 과정에” 직면했던 수많은 압력들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런 투쟁들을 해결하는 일은 쉬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판단하는 것보다 동감하고 더 많은 배려를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옹진 영흥도 목섬 관광 명소화 추진

    옹진 영흥도 목섬 관광 명소화 추진

    인천시 옹진군은 영흥면 선재리 목섬 일대 관광명소화 사업을 추진중이라고 1일 밝혔다. ‘2020~2030 옹진군 관광진흥종합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명소화 사업은 목섬에 전망대 등을 만드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무인도인 목섬은 2013년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1위에 올랐던 곳이다. 썰물 때 목섬까지 500m의 모랫길이 드러나 인기를 끌고 있다. 옹진군은 목섬과 주변 지역에 관광객 방문이 크게 늘어 200m에 이르는 기존 탐방로를 보수하고 180m의 새로운 탐방로를 만들고 있다. 곳곳에 전망대와 휴게공간이 설치되고 있다.
  • ‘코로나 생이별’ 아내 만나려 2000㎞ 바다 건너다 구조된 베트남 男

    ‘코로나 생이별’ 아내 만나려 2000㎞ 바다 건너다 구조된 베트남 男

    30대 베트남 남성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내를 보려고 무모한 선택을 했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구조됐다. 영국 가디언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 국적의 호 후앙 흥(37)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행이 제한된 뒤 아내와 2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다. 이 남성은 인도 뭄바이에서 일하는 인도 국적의 아내를 만나려고 항공편을 예약했다. 태국 방콕을 거쳐 인도 뭄바이로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방콕에 도착해서야 비자 없이는 인도 입국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그는 태국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 푸껫으로 이동했고, 현지에서 작은 배를 빌린 뒤 직접 바다를 건너 인도까지는 무모한 계획을 실행했다. 태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5일, 이 남성은 아내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출발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조차 없는 2.5m 길이의 고무보트에는 라면과 물만 실려 있었다. 2000㎞에 달하는 바닷길을 건너려던 그의 무모한 도전은 18일 만에 끝이 났다. 지난 23일 오전 11시 50분경, 현지 어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태국 해군3함대는 팡가 해안에서 약 80㎞ 떨어진 바다에서 표류하던 이 남성을 구조했다. 이 남성은 구조 직후 “코로나19로 인도인 아내와 헤어진 후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아내를 만나려고 뭄바이로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태국 해군 관계자는 “베트남 남성이 지도와 나침반, GPS도 없이 작은 고무보트에 탄 채 표류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갈아입을 옷도 없는 상태였으며, 배에는 적은 양의 물과 라면 등만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태국 당국은 이 남성이 바다에서 역풍을 만나 예상보다 더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히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현재 푸껫에서 추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 “中 우크라 탈출? 일부러 요청 안 해…대국 행동엔 이유 있다”

    “中 우크라 탈출? 일부러 요청 안 해…대국 행동엔 이유 있다”

    “우린 인도와 다르다”“국제사회에 전쟁 책임 진 것처럼 보여선 안 돼”“러시아 좋은 동맹이지만 세밀하게 생각해야”중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이던 중국 국민 대부분이 철수했다고 밝힌 가운데 자력 탈출 이유가 있었다는 분석이 중국에서 제기됐다. 중국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주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7일 “현재 우크라이나 내 중국 동포 거의 대부분이 이미 철수했다”고 밝혔다. 대사관은 이어 “현재 우크라이나의 긴장 상황은 여전히 악화하고 있다”며 “대사관은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중국 동포에게 최대한 빨리 출국할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우크라이나에는 중국인 약 6000명이 체류 중이었다. ● “중국, 왜 러시아에 탈출 요청 안 했을까” 이날 바이두에는 ‘중국이 인도와 달리 러시아에 자국민 인도를 요청하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대국의 모든 판단은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수많은 우크라이나 내 인도 유학생들이 인질이 돼 강제 구금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군에게 우크라이나 내 분쟁지역에서 인도인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푸틴이 인도 학생들의 안전 귀환을 보장한다고 약속했지만 현지엔 중국인도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며 “푸틴은 왜 발이 묶인 중국인을 돕지 않았던 걸까 의문이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인도와 달리 자국민을 자력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러시아에 먼저 중국인 탈출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았다”며 “푸틴과 직접 접촉한 인도와 중국의 다른 지점은 무엇인지 봐야 한다. 이유는 서방 국가들이다. 이들이 러시아와 중국을 하나로 묶으려 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작성자는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가 중국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도 모른 체했다고 주장한다”며 “이를 통해 사실상 중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지원했다고까지 했는데 이런 이들에게 작은 빌미도 줘서는 안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인도인들이 러시아 편에 선 것으로 안다”며 “중국인 대다수도 러시아 편이라고 할 수는 있다. 다만 우리는 전쟁에 대해 러시아와 공동 책임을 갖고 있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도 학생, 우크라서 인질” 러시아 주장에인도 “사실 아냐” 일축 앞서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2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인도 학생들이 이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전하며 인도 국민의 안전한 대피를 논의했다. 이날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필요한 모든 지시를 내렸다”도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군인에게 인도 국민의 안전한 탈출을 보장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주러시아 인도대사관은 이날 자국 학생들에게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하르키우를 즉시 떠나라고 당부했다. 인도 정부는 특별기를 동원해 3300여명의 자국민을 본국으로 대피시켰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인도인은 현지에 약 2만명이 체류했기 때문에 아직 많은 이들이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우크라이나에는 인도 유학생이 많은데 이들도 수천명가량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상당수는 하르키우에 발이 묶였다. 이후 4일에 이르러 대다수는 탈출했으나 아직 1000명가량이 현지에 남아 있다. 아린담 바그치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2만명이 우크라이나를 탈출했고 이중 1만300명은 우크라이나 인근국에서 특별기를 타고 귀국했다고 설명했다. 발이 묶인 이들 중 대부분은 현지 유학 중인 의대생으로 파악됐다. 바그치 대변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당국에 자국민을 대피할 수 있게 휴전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러시아 교민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고르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공식 대표는 2일 우크라이나 당국이 대규모 인도 학생을 하르키우아 강제로 억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해 “학생들이 인질로 잡혀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영국 BBC가 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유학생들이 우크라이나 인질로 잡혀있다는 러시아 주장에 반박했다. BBC는 “인도 학생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인간 방패’로 이용되고 있다”며 “학생들이 러시아 영토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바그치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어떤 학생에 대해서도 인질로 잡혀 있다는 상황을 보고 받지 못했다”고 했다.
  • [STOP PUTIN] 우크라 동부 유일한 인도인 “블랙팬서와 재규어 놔두고 못 떠나”

    [STOP PUTIN] 우크라 동부 유일한 인도인 “블랙팬서와 재규어 놔두고 못 떠나”

    인도 출신 의사 기리쿠마르 파틸(40)이 전쟁의 악령이 드리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자택 지하실에서 블랙팬서와 재규어 두 마리와 갇혀 지낸 지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6년 전 세베로도네츠크란 작은 마을에 이주해 살고 있었던 파틸이 20개월 전에 키이우(키예프) 동물원으로부터 두 마리 고양잇과를 사들인 것이 전쟁 발발 후에도 그를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고 영국 BBC가 8일 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반려동물로 키우라 하면 기겁할 두 마리와 흠뻑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혼인 그는 지금 태어난 지 20개월 된 숫놈 재규어와 6개월 된 암컷 블랙팬서를 집에 데려와 지하실에서 길러왔는데 전쟁 후에는 두 동물의 먹이를 살 때만 집 밖으로 나온다. 주로 통금령이 해제된 이른 아침을 틈 탄다. 재규어는 숫놈 표범과 암놈 재규어 사이에 태어난 보기 드문 잡종이다. 지금까지 파틸이 이웃마을에 가 평상시보다 네 배나 뛰어오른 양, 칠면조, 닭고기를 사들인 것만 23㎏어치다. “난 큰 고양이들과 지하실에서 여러 밤을 보냈다. 폭격 소리가 많이 들린다. 고양이들이 무서워한다. 덜 먹는데 난 애들을 놔두고 갈 수가 없다. 내가 겪는 두 번째 전쟁인데 이번이 더 무섭다.” 그에게 첫 번째 전쟁은 2014년 휴전 합의에도 친러시아 반군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맞선 동부 루한스크에서였다. 그의 집과 인도 음식점이 파괴됐다. 그 뒤 100㎞ 떨어진 세베로도네츠크로 옮겨와 의학을 공부하면서 새 반려동물을 구입한 것이었다. “지금은 전쟁 지역에 붙들려 있다. 이번에는 정말 걱정된다. 부모님들은 전화해 집에 오라고 하는데 난 이 동물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다.”인도 남부 안드라 프라데슈주 출신인 그는 동물원에 3만 5000달러(약 4296만원)를 주고 두 마리를 샀다. 동물원은 충분한 공간을 거느린 사람에게 동물들을 판매했는데 파틸은 동물원이 제공한 출생증명서를 BBC 기자에게 보여줬다. 파틸은 2007년 의학을 공부하려고 우크라이나에 와 2014년부터 정형외과 수련을 해왔다. 지금은 전쟁 발발 후 문을 닫은 세베로도네츠크의 정부 병원에서 일하며 틈틈이 민간병원 수련의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집은 방이 여섯 딸린 2층 가옥인데 마당에 동물 우리가 마련돼 있었다. 견공 셋도 키우고 있어 수입의 대부분을 동물들에게 쓴다고 했다. 8만 5000명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채널에 두 고양잇과 동물을 올려 도움을 얻는다. 표범에 꽂힌 것은 좋아하는 인도 영화배우 치란지비가 표범과 함께 출연한 영화를 보고 난 뒤였다. 은행 매니저 부친과 학교 교사 모친 사이의 아들인 그는 동물 애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집에서 견공, 반려묘, 반려조 등을 기르고 있다.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인도 텔루구 미니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섯 편정도의 영화와 미니시리즈 등에 외국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러시아와의 국경이 80㎞도 되지 않지만 러시아군이 근처에 있어 국경에 이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웃들은 전기와 인터넷이 간헐적으로 끊기지만 자신은 정기적으로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올려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난 이 일대에서 유일한 인도인이다. 해서 밤에는 온전히 나 혼자다. 이웃들 대부분은 근처 마을로 피신해버렸다. 난 버텨낼 것이다.”
  • 우크라 사태 속 보란 듯 北 탄도미사일 발사, ‘대선 열흘’ 아랑곳 않는 듯

    우크라 사태 속 보란 듯 北 탄도미사일 발사, ‘대선 열흘’ 아랑곳 않는 듯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 눈치를 보느라 자제했던 북한이 결국 28일 만에 무력 시위를 재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가 극도로 예민해진 가운데 마치 ‘우리도 있으니 알아봐 달라는 듯’ 하다. 합참은 27일 “오전 7시 52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한 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의 사거리, 정점 고도, 속도 등 제원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가 2시간 30분쯤 뒤 최고 고도 620㎞에 300㎞를 날아갔다고 밝혔다. 앞서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기시 노부오(岸信夫) 일본 방위상은 기자들과 만나 “지금 분석 중이지만 최고 고도가 약 600㎞이며 300㎞ 정도 날아갔고, 낙하한 곳은 북한의 동쪽 해안 부근이며, 우리나라(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순안은 평양의 외곽 지역으로, 북한이 지난달에도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두 발을 발사한 비행장이 있는 곳이다.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북한이 동해상의 표적으로 종종 설정하는 함경도 길주군 무수단리 앞바다의 무인도인 ‘알섬’ 일대까지는 직선거리로 370∼400㎞ 정도이기 때문에 아마도 알섬 일대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겠다. 청와대는 이날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긴급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시험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엄중한 유감”을 표명했다. 다만 NSC는 결과 발표 보도자료에 북한의 행위를 ‘도발’로 규정해 규탄하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으며 대신 국제사회의 대화 제의에 응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다. NSC는 지난해 9월 15일 북한의 발사 때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했지만, 이후 발사부터는 ‘도발’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있다. NSC 전체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발사는 지난달 30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한 지 28일만이자, 새해 여덟 번째 무력시위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정세가 요동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가 촉각을 세우고 대러 제재 등의 조처를 하는 와중에 도발을 감행한 것이어서 대미 압박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집중하는 미국을 더욱 압박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협상력을 키우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폐막 일주일 뒤 무력 시위를 재개한 것도 주목된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둔 상황인데 앞으로도 남한 정치상황 등을 의식하지 않고 무력시위를 이어갈 것이란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은 지난 22일 시진핑 주석에게 보낸 구두 친서를 통해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로골적인 적대시정책과 군사적위협을 짓부시자’고 주장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자제했던 도발을 다시금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또 외무성이 전날 게시한 우크라이나 사태 입장 글에 대해 “베이징올림픽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입장 정리를 끝냈으므로 북한은 ‘도발의 일상화’를 지속할 것”이라며 “자신들의 국방발전계획에 따라 중단거리 미사일 시험을 하는 것이므로 통상적 자위 조치라는 강변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 외무성은 리지성 국제정치연구학회 연구사 명의로 게시한 ‘미국은 국제평화와 안정의 근간을 허물지 말아야 한다’ 제목의 글에서 “러시아의 합법적인 안전상 요구를 무시하고 세계 패권과 군사적 우위만을 추구하면서 일방적인 제재 압박에만 매달려온 미국의 강권과 전횡에 그 근원이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난 24일 발발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뒤늦은 반응이어서 북한 지도부도 적잖이 당황한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핵미사일이 포기한 정권이나 국가가 어떤 운명을 맞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무장 집착이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에 따라 남북대화 재개가 더욱 요원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는 트위터에 “푸틴의 전쟁이 당장의 모든 지정학 판도를 규정하고 있어서 김(정은)의 계산법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주의를 끌려는 노력은 이미 전쟁 전부터 공격적으로 발사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별반 이득 볼 것이 없어 보인다”고 적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레이프에릭 이슬리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의 국방 현대화 계획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위력 시위가 있을 것이라며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하는 와중에도 북한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인도인 일가족 넷, 캐나다-미국 국경 12m 남기고 얼어 죽다

    인도인 일가족 넷, 캐나다-미국 국경 12m 남기고 얼어 죽다

    캐나다와 미국 국경을 넘으려다 불과 12m를 남기고 얼어 죽은 인도인 일가족 넷의 얘기는 먹먹하기만 하다. 영국 BBC가 1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한 데 따르면 바이샬리벤 파텔(37)과 남편 재기시(39), 딸 비항기(11), 아들 데하믹(3)이 지난달 19일 캐나다 매니토바주 에머슨이란 마을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막 구입한 듯한 겨울 코트를 걸치고 스노 부츠를 신었지만 이곳에 몰아친 영하 35도의 강추위에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 있는 파텔의 고향 마을은 아무리 추워봐야 영하 10도 밖에 안 떨어진다. 이들 가족은 걸어서 국경을 넘으려 했는데 이들의 주검이 발견된 곳은 국경으로부터 12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두 나라 사법당국은 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미국 밀입국을 시도해 엄청 추운 날씨에 야음을 틈타 국경을 넘으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밀입국 알선 조직이 개입된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이들 가족이 지구 반대편의 에머슨 마을에 어떻게 이르렀는지, 누가 이런 날씨에 걸어서 국경을 넘으라고 부추겼는지 당국은 찾아내겠다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가족이 살던 고향은 에머슨에서 1만 2000㎞ 떨어진 인도 구자라트주 딩구차 마을이었다. 35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파텔 가족은 옥상 발코니도 있고 문 위에 커다란 환영 표지판이 있는 깔끔한 2층 짜리 건물에 살고 있었다. 교사로 일한 경험도 있고, 근처 마을에 두 번째 집이 있을 정도로 중산층은 되는 가족이었다.이웃 일부는 파텔 가족의 여행 계획을 알고 있었고, 방문자 비자를 얻어 캐나다로 갔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가족이 떠난 지 일주일 뒤에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걱정했다고 했다. 파텔 가족은 지난달 12일 토론토 공항에 내린 뒤 서쪽으로 2000㎞ 떨어진 매니토바주로 향했다. 국내선 항공을 이용한 흔적은 없었다. 캐나다를 횡단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22시간쯤 걸렸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달 18일에 700명이 거주하는 에머슨에 도착했다. 아마도 모텔에 묵으면서 미국 노스다코타주나 미네소타주 쪽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을 꿈꿨을지 모른다. 하지만 몹시 추운 곳이었다. 이 마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조지 안드라웨스는 추위가 “개가 손을 물고 놓지 않는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면서 “눈물마저 얼어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다는 유혹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한 시의원은 “이곳의 모든 아이들은 외국으로 이주하는 꿈을 가지고 성장한다”고 말했다. 가진 것을 정리해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구자라트주 출신으로 캐나다에 살고 있는 미테시 트리베디(59)는 “(인도) 사람들은 이곳에 달러 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오는 이들보다 반대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지난해 4000명이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들어온 반면,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에 입국한 이는 90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민 정책을 전공하는 웨스턴 대학의 빅토리아 에세스 교수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두 숫자 모두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가나에서 온 두 명의 이민자가 미국에서 캐나다로 몰래 입국하려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들을 잃은 일이 있었다. 그때도 에머슨 주민들은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이 목숨을 잃을까봐 늘 두렵다고 말했다.사 당국은 미국 플로리다주 출신 스티브 샨드(47)를 이들 가족의 주검이 발견된 날 에머슨에서 8㎞ 떨어진 노스다코타주 펨비나에서 붙들었다. 그는 15인승 밴승합차에 다른 두 인도인을 태우고 있었다. 같은 날 캐나다 국경에서 남쪽으로 400m 떨어진 곳을 걷는 인도인 5명도 추가로 적발됐다. 그들은 11시간 이상 걷고 있었다고 당국에 털어놓았다. 이들 모두 구자라트어를 했다. 한 남성은 자녀가 없었는데도 배낭 안에 아이들의 옷과 기저귀,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복장이 파텔 가족의 것과 비슷해 당국은 이들이 같은 알선조직에 의해 국경을 넘으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미국 국경을 넘는 여행은 간단해 보였을지 모른다. 툭 트인 평원을 걸어만 가면 될 것 같으니까. 자신들을 가로막을 것은 없어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밤에 맞은편에서 칼날처럼 날아와 꽂히는 눈발은 그들의 시야를 흐릿하게 막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국경에 닿지도 못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하는지, 파텔 가족의 죽음은 잔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 북한 김정은, ‘중요 무기체계 생산’ 군수공장 시찰

    북한 김정은, ‘중요 무기체계 생산’ 군수공장 시찰

    북한은 전날 지대지 전술유도탄 시험발사와 지난 25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각각 성공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특히 발사일이 다른 두 기종의 발사 및 타격 장면을 동시에 공개하면서 대남 타격 능력 과시를 극대화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수공장을 시찰한 사실도 함께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국방과학원은 1월 25일과 27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체계 갱신을 위한 시험발사와 지상 대 지상(지대지) 전술유도탄 상용전투부위력 확증을 위한 시험발사를 각각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날 공개한 사진을 보면 지대지 전술유도탄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해상 표적인 함경북도 길주군 앞바다 무인도인 ‘알섬’을 타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기종의 발사 현장을 참관하지 않았고 시험발사 결과만 보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수공장을 시찰했다고 밝혔으나 날짜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군수공장 시찰은 2019년 6월 자강도 일대 군수공장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 맞서 국방력 강화 등 ‘마이웨이’ 행보를 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신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중요 무기체계를 생산하고 있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라면서 조용원 조직비서와 김정식 당 부부장, 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 국방과학원 지도 간부들이 동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 매체가 이날 공개한 사진에서 군수공장 핵심 관계자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것을 보면 이 공장이 북한의 군수 공업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신은 또 김 위원장이 대규모 채소 재배용 온실이 건설될 예정인 함경남도 연포지구를 현지 시찰했다고 전하며 마찬가지로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
  • 리처드 기어에 ‘볼키스’ 봉변 15년 만에 외설 혐의 벗은 인도 여배우

    리처드 기어에 ‘볼키스’ 봉변 15년 만에 외설 혐의 벗은 인도 여배우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73)는 2007년 4월 15일 인도 뉴델리의 에이즈 예방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인도 발리우드 여배우 실파 셰티(47)의 상반신을 뒤로 젖히며 와락 끌어 안은 채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키스가 금기시 됐다. 인도 각지에서 거센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특히 과격한 힌두교 단체들은 기어가 인도 문화와 가치관을 모욕했다고 비난했다. 일부는 두 사람의 인형과 사진을 태우는 화형식을 벌이기도 했다. 라자스탄주 지방법원은 외설 혐의로 기어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했다. 당시 기어는 “내가 출연한 영화 ‘셸 위 댄스’의 한 장면을 재연한 것일 뿐”이라면서 “그 행동은 내가 인도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키스만으로는 에이즈의 발병원인 HIV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그 뒤 기어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은 대법원에 의해 보류됐지만 셰티에 대한 기소 건은 법원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유지돼 왔다. 그런데 15년이 흘러서야 최근 뭄바이 법원은 “셰티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기소를 기각했다. 법원은 또 셰티는 기어의 봉변에 희생 당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 등이 전했다. 그녀의 변호팀은 당시로선 그녀가 키스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셰티는 기어로부터 키스 봉변을 당하기 전에 이미 영국에서 얼굴을 알리고 있었다. 발리우드에서 꽤 잘 나가던 여배우인데도 같은 해 1월 리얼리티쇼 ‘셀레브리티 빅브러더’에 출연했다. 그런데 함께 출연한 이들이 인도인 가정부 취급을 하거나 대놓고 왕따를 해 적지 않은 이들의 동정을 샀다. 인도에서는 반영(反英) 시위가 이어져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인도인들에게 공개 사죄할 정도였다. 그녀는 동정표를 등에 업고 우승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정말 기어처럼 행동하면 안되겠다. 큰일 난다.
  • ‘통가의 아쿠아맨’ 28시간 헤엄쳐 살아남았다

    ‘통가의 아쿠아맨’ 28시간 헤엄쳐 살아남았다

    해저화산 폭발과 쓰나미로 국가 재난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통가에서 한 장애인 남성이 꼬박 하루 이상 바다를 표류하다 목숨을 건진 이야기가 전해졌다. 아타타 섬에 살고 있던 이 남성은 2개의 무인도를 거쳐 본섬인 통가타푸 섬까지 약 13km를 헤엄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생존자의 인터뷰가 회자되면서 ‘현실의 아쿠아맨’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일 뉴질랜드 헤럴드와 영국 가디언지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은퇴한 장애인 목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리살라 폴라우(57)는 통가 현지 라디오 방송국 ‘브로드컴FM’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5일 화산 폭발로 큰 파도가 집으로 들이닥쳤다”라며 “가족들과 나무를 타고 올라가 파도를 피하려 했지만 물의 힘에 떠밀려 휩쓸렸다”고 말했다. 폴라우는 쓰나미가 밀려왔을 당시 아들과 조카 딸과 함께 있었고 파도가 6m는 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당일 오후 6시쯤 파도에 휩쓸린 폴라우는 아들이 거동 불편한 자신을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쓸까 봐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그는 “가족들이 나중에 내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게 헤엄쳐서 토케토케 섬의 동쪽에 닿았다”라며 “화산 폭발 다음날 아침 경찰 경비정이 아타타섬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헝겊을 움켜쥔 손을 흔들었지만 배가 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때가 16일 오전 6시쯤이었다고 폴라우는 기억했다. 폴라우는 4시간 후인 오전 10시쯤 또다른 무인도인 폴로아섬까지 8시간을 헤엄쳤다.극한의 상황에서 폴라우를 버티게 한 건 가족이었다. 그는 “당뇨병 환자인 여동생과 심장병이 있는 막내딸을 생각했다”며 “소푸(통가타푸 섬의 북쪽 지명)까지 갈 수 있을 만큼 굳게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10시쯤 소푸 섬에 도착한 폴라우는 도로변에서 지나가던 차에 구조돼 운전자의 집으로 옮겨졌다. 파도에 휩쓸릴 당시 함께 있던 폴라우의 아들과 조카딸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폴라우의 또다른 아들인 탈리바카올라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생 잊지 못할 이야기다. 쓰나미가 덮친 후 바다에서 헤엄치는 아빠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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