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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은 총재 “2분기 경기회복 체감 기대”

    한은 총재 “2분기 경기회복 체감 기대”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우리 경제의 회복 속도가 애초보다 빨라질 수 있다.”면서 “경제성장률도 작년에 전망했던 것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기 진단은. -생산·소비·서비스·주가 등 각종 지표들이 개선되고, 각종 경기심리지표도 일제히 오르고 있다. 당초에는 3·4분기쯤에나 경기회복을 체감할 것으로 봤으나,1분기 정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이렇게 되면 당초 전망했던 경제성장률 4.0%보다 높아질 수 있다. 환율이 불안한데. -유로화, 엔화는 2% 이상 절하되고 있는데 원화만 3% 이상 절상되는 등 원화의 절상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유가와 함께 환율이 경기회복에 최대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특별히 환율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없는 한 시장에 맡기겠지만 투기세력이 개입하거나 외생적인 요인이 발생해서 지나치게 떨어질 경우에는 방치하지 않겠다. 콜금리 동결 배경은. -지금까지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회복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저금리정책을 추진해왔다. 앞으로도 경기회복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금리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후진타오 상반기 訪北 가능성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6일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여부와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리자오싱 부장은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제3차 회의 이틀째인 이날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후 주석의 상반기 중 방북설을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후 주석의 해외방문 일정은 외교부 대변인이 관례대로 적절한 시기에 발표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후 주석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며,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방중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리 부장은 북한 핵 6자 회담 재개 노력과 관련,“미국과 북한이 모두 주권 국가”라고 전제하고 “북핵 문제의 주요 당사자인 북·미가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리 부장은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의 합리적인 요구가 고려돼야 한다고 말하고 북핵 문제는 복잡해 회담 재개에 난관이 많지만 중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중재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리 부장은 관련 당사국들이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융통성과 성의, 인내를 갖고 상호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oilman@seoul.co.kr
  • 부자되기 비법 전수하는 2권의 책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류의 부자 관련서가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서 ‘착한 부자’의 개념이 확산됐지만 여전히 부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내놓고 부자를 존경한다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에서 부의 축적은, 정직하고 성실한 방법보다는 각종 편법과 비리에 의해 가능하다는 뿌리깊은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부도덕하고 몰지각한 부자들의 추악한 면모도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키는 요인이다. 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사람이 낸다”는 말이 있다.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의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 개론’(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과 미국 재테크 전문가 데이브 램지의 ‘부자가 되는 비결’(서원희 옮김, 비전과 리더십 펴냄)은 평범한 사람들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책이다.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부자학 강의를 개설해 화제가 된 한 교수의 ‘…부자학개론’은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 부자들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부자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과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가 만난 부자들은 모두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운 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인내심과 용기, 절제력을 발휘한 사람들이다. 또 모든 사고의 중심을 늘 돈에 둔다. 부자들은 현재에 돈이 되거나 장래에 돈이 될 만한 것을 위해 행동하지만 일반인들은 돈 이외의 것에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 교수는 그러나 진정한 부자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겸비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직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 도덕성 등의 정신적 덕목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어렵게 쌓은 부는 하루 아침에 덧없이 허물어지는 신기루 같은 존재임을 일러준다.9800원. ‘부자가 되는 비결’의 저자 데이브 램지는 15년 전 파산 직전에 몰렸던 악몽 같은 경험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케이스. 무일푼으로 시작해 부동산 투자로 서른이 되기 전에 백만장자가 됐던 그는 한번의 부도로 전재산을 날렸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돈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고,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모든 관심을 쏟았고, 부자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돈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돈의 주인이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큰 장애물인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돈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과감히 버리고, 과소비와 가계 부채를 부추기는 헛된 망상과 자본주의 상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자칫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에 빠져들 위험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돈이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책이 아님을 직시할 때만이 진정한 부자의 반열에 들 수 있음을 강조한다.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경제·실용| ●준비하는 미래는 두렵지 않다(김성회 지음, 더난출판 펴냄)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저자가 발로 뛰어 취재한 대한민국 리더 22명의 생생한 성공 비법.1만원. ●아이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이승헌 지음, 한문화 펴냄)뇌호흡 창시자인 이승헌 박사가 들려주는 두뇌개발법. 뇌호흡은 아이들 각자의 두뇌스피드를 존중하는 뇌 기반 교육의 하나로, 집중력 훈련에 따라 뇌의 잠재된 능력을 개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9800원. ●몸의 혁명(김철 지음, 백산서당 펴냄)공해와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은 각종 병을 달고 산다. 저자는 매일 10분씩 가슴을 펴는 간단한 운동만으로도 몸의 자연치유력이 살아나 병의 90%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만 5000원. |유아·아동| ●배고픈 달팽이와 너무 먼 채소밭(모지카 오쇼니크 지음, 김영선 옮김, 토마토하우스 펴냄) 배가 고파 상추밭으로 향하는 달팽이가 주인공. 꼼지락꼼지락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상추밭은 멀기만 하고…. 콜라주 기법의 그림을 감상하며 인내의 가치를 알게 된다.4세 이상.9000원. ●예루살렘으로 간 작은 개미(디안느 바르바라 지음, 곽노경 옮김, 미래M&B 펴냄) 나약하면서도 오만한 인간과 하느님의 위대함을 은유한 프랑스 민담 소재의 그림동화. 잘난 척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개미의 여행은 뜻밖에도 스스로를 구원하는 성지순례로 이어진다.4세 이상.8000원. |초등·청소년| ●우리 역사 첫발(전2권)(김수경 지음, 문공사 펴냄) 아직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는 초등생들을 배려한, 동화처럼 쉬운 역사책.1권은 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2권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우리역사를 각각 담았다. 배경그림은 만화처럼 재미있고, 친근한 이야기체의 해설은 귀에 절로 쏙쏙 들어온다. 초등 저학년. 각권 8800원. ●환경보고서 물(김맹수 지음, 해와나무 펴냄) 생명의 근원으로서 물의 특징, 자연생태계의 기본을 이루는 물의 생태, 필수자원으로서의 물의 가치 등이 웅변된 ‘환경 교과서’. 합성세제, 가축의 똥, 농약 등 실생활에 밀접한 이야깃감들이 동원됐다. 땅, 공기 등을 주제로 시리즈 출간 예정. 초등 고학년.9500원. ●사자왕 부루부루(후나자키 요시히코 지음, 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75년 일본에서 출간돼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늙어서 힘이 빠진데다 틀니를 했다는 사실까지 들켜버린 사자왕 부루부루는 당초 걱정과는 달리 주변의 이해 속에 오히려 더 행복해지는데…. 인간의 허위의식이 유쾌하게 풍자됐다. 초등 2년까지.7000원.
  • [데스크시각] 지하철 본선개통의 신화와 안전/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광복 60년이 됐지만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 철도를 보면 1945년 이후 신설 노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프라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건설됐다. 대륙으로의 물자수송을 위한 병참 목적이었겠지만 최근 복선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역∼문산 구간도 이미 일제 때 계획됐었다. 그러다 보니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많이 전수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어떤 일이 있어도 기차는 달려야 한다는 ‘본선개통의 신화’다. 일본인들은 철도기관사들에게 연료가 떨어지면 천황을 위해 자신의 몸을 화차에 던져서라도 기차를 운행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철도 역무원들은 정시 운행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고 한다. 철도 종사자들이 초기 지하철 운행을 담당함으로써 본선개통의 전통은 자연스레 지하철로 옮겨졌다. 지하철 관계자들은 연초에 광명역에서 발생한 방화에 의한 지하철 화재사고도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시 광명역장은 불 붙은 전동차가 역사로 들어오자 소화기로 진화에 나서 불을 끈 뒤 곧바로 전동차를 운행시켰다. 운행을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역장으로선 새해 벽두부터 지하철 사고가 나 정상운행이 안 됐을 때 돌아올 승객들의 비난도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불씨는 완전히 잡히지 않아 전동차에서 다시 불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안전에 무감각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본선개통의 전통은 일제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승객들이 조장한 측면도 적지 않다. 비행기, 기차 등의 연발착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 우리들이다. 러시아워에 전동차가 늦게 오면 역무실로 달려가 분풀이를 하거나 심하면 유리창을 부수는 등 소란을 피운다. 서울 시티투어 버스는 시내 명소를 순회해 외국인들의 인기가 높다. 시티투어 버스 여승무원은 교통정체 때 외국인과 한국인 승객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버스가 정체돼 미안하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당신 책임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조용히 기다리는 반면 내국인들은 왜 이렇게 길이 막히느냐며 짜증을 낸다. 지하철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경우 지하철이 늦게 오면 줄을 흩트리지 않고 기다린다고 한다. 도시철도 공사 관계자가 프랑스 지하철을 방문, 전동차가 늦어져 승객이 소동을 부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고 묻자 승객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을 고치고 있는데 왜 소란을 부리느냐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본선개통이라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남겨준 일본도 프랑스와 다르지 않다. 최근 한국에 부임한 도쿄신문 서울특파원 나카무라는 지하철이 고장나면 자리에 앉아 기다리다 정상소통이 되면 역무실에서 지각증명서를 발급받아 간다고 했다. 대구지하철사고, 광명역사고 등 각종 사고를 통해 지하철 안전망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가연성이 있는 시트가 불연성인 철제의자로 바뀌고 지하철 경찰, 지하철 소방서의 설치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 구축만으론 한계가 있다. 개인이 부주의하면 언제든 사고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제 본선개통의 신화도 깨져야 한다. 승객들도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에는 불편을 감내하는 인내를 길러야 한다. 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stslim@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애경 장영신 회장 ‘성공 스토리’

    [재계 인사이드] 애경 장영신 회장 ‘성공 스토리’

    “나는 어려운 위기에 처했을 때 운이라든가 여자임을 내세워 도망가지 않고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한국 기업 최초의 여성 대기업 총수인 애경그룹의 장영신(69)회장이 늘 하는 말이다. 경영학자들로 구성된 한국경영사학회가 최근 장 회장에 대한 연구 단행본을 발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단행본에는 장 회장 생애·경영이념, 경영혁신활동과 경영전략, 사회적 책임 등 논문 6개가 수록돼 장 회장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애경의 창업주는 장 회장의 남편 고 채몽인씨다. 하지만 경영학자들은 남편 뒤를 이어 CEO가 된 장 회장이 어떻게 ‘경영의 천애고아’에서 ‘경영의 어머니’가 됐는지를 이 단행본을 통해 설명하며 그를 실질적인 애경의 창업주로 규정하고 있다. 1970년 남편이 갑자기 타계했을 때 그의 나이 35세. 네 아이의 어머니로 평범한 주부에 머물던 그는 경영에 관여하던 친오빠와 경영층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영에 나섰다. 오로지 그의 친정 어머니만이 “너의 결심이 그렇다면 해봐라. 내가 도와주마.”라며 살림을 맡고 아이들을 키워 줬다. 경리학원에서 복식 부기를 수강하며 경영을 배워 나갔던 그는 당시를 “이대로 잠자리에 들어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회고할 정도로 힘든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가 애경 사장 취임 당시인 72년 매출총액이 23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2003년 1조 6000억원으로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비누 제조 기업에서 생활용품, 화학사업, 유통부문을 3대 축으로 하는 18개 계열사를 거느린 굴지의 기업이 된 것이다. 그런 애경의 성장 이면에는 장 회장의 기업가적 도전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이 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그의 이런 도전정신은 경기여고 시절 친구들중 가장 먼저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풀 스콜러십으로 미국 체스넛 힐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학금을 계속 받기 위해 한동안 누워서 잠을 잔 적이 없을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했었다. 대학 3학년때는 합창단에 들어가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프리마돈나 역을 맡아 필라델피아 오페라하우스와 협연하는 예술적 재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경영자가 되려는 여성들에게 ▲건강 ▲근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가정환경 조성 ▲인내와 도전 ▲전문적인 지식 ▲자금조달능력 ▲담력 ▲조화를 이루려는 미덕 ▲사업보국하려는 가치관 등 9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박근혜대표 ‘영남권 다지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3일 “오늘 하루가 하루 같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날을 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10시쯤 서울을 출발해 대전까지 갔다가 도로 KTX로 ‘환승’해 서울로 복귀해 당 의총에 참석했고, 잠시 숨 고를 새도 없이 다시 부산으로 갔다. 행정수도 이전 후속대책을 놓고 의총이 잇따라 열린 데다 애초에 ‘영남권 다지기’ 일과표를 짜둔 탓이었다. 박 대표는 이처럼 곡절을 겪으며 부산대 특강에 참여하고, 해운대 달맞이 축제를 구경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의 부산행은 지난해 6월 이후 8개월 만으로,‘영남권 다지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당 안팎에서 그의 리더십에 부쩍 도전장을 내미는 까닭이다. 닷새 전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식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부산대 경영대학원 특강에서 “최근 지역구에 갔더니 저보고 ‘힘내세요.’라는 말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됐다.”며 ‘러브콜’도 빼놓지 않았다. 이어 “정치적·영토적 통일을 고집할 필요없이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군사적 대결이 사라지는 ‘경제공동체’가 되면 통일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내심을 갖고 북의 변화를 유도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사설] ‘비정규직’ 일정 민노총에 맞추나

    비정규직 보호법안 처리문제가 갈지(之)자 행보를 하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달 초 민주노총의 임시 대의원대회가 폭력사태로 무산되자 이번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22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사회적 교섭 안건을 다시 심의하겠다고 하자 “서두르지 않겠다.”는 식으로 민주노총의 결정을 본 뒤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임시 대의원대회가 다음 달 중순으로 또다시 연기되면서 여권의 방침은 이달내 법안 처리쪽으로 급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양대 축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 처리했을 경우 정부로서도 후유증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이 대화 무대로 복귀하기를 기대하며 인내를 갖고 기다려온 것으로 이해된다. 민주노총은 이번에는 내분 수습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민주노총의 결정을 기다리며 오락가락한 정부의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마저 법안의 조속 처리에 반대하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비정규직 법안이 노사정 합의 절차를 거쳐 국회를 통과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지난 4년간의 논의를 통해 합의안 도출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됐다. 그렇다면 정부는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나 링밖에서 ‘야유’를 보내는 민주노총의 코드에만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노총도 진정 비정규직의 권익을 걱정하고 조직화하기를 원한다면 하루속히 대화의 틀에 합류해야 한다.
  • [뒷골목 맛세상] 탑골의 따뜻한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탑골의 따뜻한 맛집들

    지난 해 11월에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 30주년 기념식에서는 약간 색다른 공로상이 발표되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 술집 주인에게 공로상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이 공로상은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끝내 시상을 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기념식에 참석한 문인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운 빛이 역력했다. 공로상의 주인공은 한복희라는 이로 탑골이라는 카페의 주인이었다. 카페 탑골은 이름 그대로 탑골공원 뒤편 골목에 자리해 있었는데,1980년대부터 주로 문인들을 위시한 예술인들이 마치 제집 안방처럼 무람없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탑골을 드나들던 문인들로는 위로는 시인 신경림·민영·김지하, 작가 황석영을 비롯해서 시인 이시영, 작가 박범신·김성동이며 나를 거쳐 아래로는 시인 강형철·이영진·박철·김사인, 작가 김영현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작가회의에 적을 둔 문인들로서는 한두 번 이곳을 드나들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술집 주인에 공로상… 한가닥 미안한 마음 달래 미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해서, 작가회의가 굳이 탑골 주인에게 공로상까지 마련한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에 와서도 1980년대의 탑골시절을 돌이키면, 저 암흑 같은 시절을 과연 탑골이 없이 제대로 견딜 수 있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 이를테면 탑골이야말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문인들에게는 참으로 제집 안방처럼 아무 때나 무람없이 찾아들어 술이며 안주로 배를 채우고, 더 나아가 지친 몸을 기대고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1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문인들이 한낱 술집 주인에 불과한 한복희씨에게 기꺼이 공로상을 주기로 한 데에는, 너나없이 그이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한 가닥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문인들이 얼마든지 외상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고, 게다가 술청의 아무데나 쓰러지는 식으로 잠자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곳은 탑골 말고는 달리 없었으리라. 탑골이 문을 닫은 후에, 오죽하면 문인들 때문에 결국 탑골이 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1980년대의 탑골 풍경에 대해서는 시인 이시영이 ‘김사인의 흰고무신’이라는 산문시에서 다분히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날 밤은 모든 것이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폭우 속을 뚫고 김사인이가 왔었고 흰고무신을 신고 있었고, 새로 막 시작된 술자리가 새벽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천둥소리 속에 밖에서 누가 희미하게 나무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설연이가 귀를 쭝긋 세우고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송기원과 나의 처가 거센 빗줄기 속에서 기세등등 들이닥치고 있었다.“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바로 그때였다.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1980년대라면 개인적으로는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든 언저리의 나이이다. 그리고 이미 살아낸 삶은 물론이려니와 또한 앞으로 살아내야 할 적잖은 부피의 삶이 너무 무거워서 비단 술에 취하지 않아도 거의 날마다 어쩐지 걸음이 비틀거리던 나이이다. 그렇듯 비틀거리는 걸음은 때로는 지극히 퇴폐적인 행태로, 때로는 황폐한 스캔들로 나타나 탑골 주변에 숱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보면 그렇듯 퇴폐적이고 황폐한 나이에 내가 그나마 사람냄새를 풍길 수 있었다면 그것은 순전히 탑골 덕분이었다. 나의 사람냄새 속에는 분명히 탑골의 따뜻하고 넉넉한 분위기와 주인되는 이의 너그러운 품성이 깃들어 있을 터이다. ●골목 어느집이든 2000~3000원이면 한끼 해결 기이하게도 탑골공원 주변에는 카페 탑골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돈을 버는 장사라고 여기기에 앞서, 우선 배고픈 손님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베푸는 즐거움이 앞서는 식당들이다. 탑골공원 담벼락을 끼고 돌아 낙원상가가 시작되는 어름에서 카페 탑골로 들어가는 바로 입구에 있는 유천식당(02-764-2835)은 아예 간판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영업합니다’ 하고 무슨 구호처럼 써놓았다. 식당에 들어가서 한 그릇에 2500원짜리 설렁탕이나 돼지머리국밥을 시켜보면 그 구호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설렁탕이며 돼지머리국밥은 양도 양이지만 맛 또한 여느 5000원이나 6000원짜리 식당보다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한 그릇으로 양이 부족한 이라면 시쳇말로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하다. 밥보다 술이 우선인 손님이라면 한 접시 수북이 쌓아올린 3000원짜리 돼지고기에 소주 한 병이나 막걸리 한 주전자면 충분하다. 이 유천식당이 탑골공원 뒷골목에 한 그릇에 1500원짜리 추어탕의 소문난추어탕집이나 2000원짜리 황태해장국의 황태식당이나 2000원짜리 선지해장국의 고향집 등을 있게 한 원조격이다. 유천식당의 주인되는 문용춘씨는 80이 가까운 나이인데, 여전히 정정한 몸으로 주방을 맡고 있다. 벌써 40년이 넘게 한 자리에서 설렁탕과 돼지머리국밥만으로 식당을 해온 그이는 평안남도 덕천에서 1·4후퇴때 월남한 피란민 출신인데, 어릴 적부터 하도 배고프게 자라서 자신만이 아닌 남들까지 실컷 배불리 먹이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 소원이 자연스럽게 식당을 하게 했다. 일찍이 할아버지로부터 비롯하여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 벌써 4대째 독실한 천도교 집안인 그이는 자신이 만드는 음식 속에는 ‘사람이 하늘이다’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이 들어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이로서는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 한 그릇에 500원이었던 설렁탕 값이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2500원으로 오른 것이 못내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이는 평생토록 집 한 채 마련해본 적이 없이 지금도 일산의 백석동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10년동안 가정식 백반 한상에 2500원 고수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려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오피스텔 쪽으로 20m쯤 걸어오면 길 건너편에 낙원장모텔과 세느장모텔 골목이 있다. 이 낙원장모텔 골목을 굽어돌면 수련집이니 찬미식당이니 남양식당이니 하는 난데없는 25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끝에 바로 이 골목에 25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이 있게 한 원조격인 부산집(02-744-2331)이 숨어 있다. 부산집 또한 돈 버는 장사에 앞서 배고픈 손님에게 자신의 음식을 베푸는 즐거움이 우선인 집인 것은 마찬가지다. 가정식백반에는 병어조림이며 조기조림에서부터 미역무침, 김, 콩나물, 갓김치, 배추김치 같은 반찬들이 수북수북 나오고 미역국에 고봉밥까지 곁들여 한 상을 이루는데, 이 푸짐한 한 상에 2500원이라는 사실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집 또한 밥이며 반찬이 손님의 양에 따라 얼마든지 리필이 된다. 부산집에는 가정식백반 이외에도 3000원짜리 돼지갈비탕이 있는데, 만일 몸은 물론 마음까지 함께 허한 이라면 마땅히 돼지갈비탕을 권하고 싶다. 돼지갈비탕도 반찬은 가정식백반으로 나오는데, 주인의 인정이 함께 전해 와서 허한 마음이 저절로 채워질 터이다. ●국수보다 해물이 더 많이 들어간 칼국수 얼핏 주방을 올려다보면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에 떠억 하니 자리잡은 주방 한 가운데에서 주인되는 이영자씨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온다.“뭐 좀 더 드려?” 환갑 언저리에 이른 그이의 넉넉한 자태와 반말 비슷한 말투가 어쩐지 마음 한 쪽에 따뜻하게 스며오는 것을 느끼며 수저를 들면, 자칫 목이라도 멜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그이는 10년 전에 이 골목에 25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을 차린 후에 단 한번도 값을 올린 적이 없이 그대로 지켜내고 있는 고집불통이기도 하다. 모르기는 해도 단골손님들의 이제 그만 밥값을 올리라는 주문은 한마디로 내칠 것이다.“올려서 뭐하게?” 역시 지하철 5호선의 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오피스텔 앞으로 오면 건너편에 희망상회가 있는데, 바로 그 골목에 찬양집(02-743-1384)이라는 칼국수집이 있다. 찬양집 또한 돈 버는 장사에 앞서 배고픈 손님에게 자신의 음식을 베푸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은 당연하다. 주인되는 김옥분씨는 환갑 언저리에 이른 고운 자태인데, 어쩌다 반가운 단골손님이라도 오면 처녀같은 수줍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진한 표정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카페 탑골 시절부터 비롯하였으니 20년 가까운 단골이기도 한데, 나보다 오랜 단골손님들 중에는 800원부터 시작한 칼국수값이 지금 3500원으로 올랐다는 것에 대해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이가 없다. 오히려 칼국수 한 그릇에 국수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듯한 갖은 해물들을 대하다 보면, 이것을 정말로 3500원만 받아도 장사가 될까 하는 걱정을 앞세울 뿐이다. ■사랑의 칼국수 ‘찬양집’ 찬양집에 가면 1990년대 초에 내가 어느 일간지 칼럼에 썼던 이 집에 대한 기사가 그대로 스크랩되어 벽에 걸려있다. 이제 노랗게 빛이 바래 글씨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기사를 힐끔거리다 보면, 비틀거리던 40대 언저리의 내가 그대로 되살아오는 기분이기도 하다. ‘종로3가에서 낙원상가로 빠지는 한옥 뒷골목에 내가 잘 가는 칼국수집이 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살리느라고 벽을 빙 둘러가며 송판을 붙여 탁자를 대신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에까지 탁자를 마련하였다. 내가 이 칼국수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도 5년 남짓 되었다. 주로 몇 십년을 다니는 이 집의 단골들의 경력에 비하면 나는 어쩌면 단골이랄 수도 없을지 모른다. 내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병적인 감정 중의 하나로, 이따금씩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싫어서 못 견디는 순간이 있다. 한편으로는 어디 발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라도 정을 쏟고 싶은 마음 여린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칼국수집을 찾는다. 그리하여 칼국수가 마련되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밀가루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만드는 것을 구경하다가 마침내 칼국수를 먹는다. 그렇게 칼국수를 먹으면서 이따금씩 한두 방울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언제 그렇듯 못견뎌 했냐 싶게 기분이 좋아져 있다. 스스로는 역시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물론 칼국수 만들기에 바쁜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터럭만큼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나 혼자서 칼국수 한 그릇에 그렇듯 감동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집이 지니고 있는 선의(善意)이다. 자, 우선 칼국수 한 그릇에 들어가는 재료 좀 보아라. 화학 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은 채 멸치를 끓여 우려낸 국물에는 커다란 대합 한 마리에, 맛살조개에, 미더덕에, 미역에, 호박에, 감자에, 깻잎에, 김가루에… 이런 건더기들이 오히려 수제비보다 많을 지경이다. 그리고 2000원만 내면 양은 먹을 수 있는 한두 그릇도 좋고 세 그릇도 좋다. 독실한 신앙인인 주인아주머니는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을까 하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 바로 칼국수집을 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일렀다는 것이다. 나 같은 무신론자 비슷한 사람에게도 이런 경우 예수는 참 재미있는 분이다.’
  • 美 ‘북핵 레드라인’ 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인내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레드 라인(금지선)’은 정말 없는 것일까? 지난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이 노출되면서 북한 핵 문제가 다시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뒤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설정했거나 설정할 레드 라인에 대해 갖가지 분석을 제시해 왔다. 대체로 북한이 ▲핵 실험을 하거나 ▲핵 물질을 유출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미국이 즉각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지난해 10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레드 라인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최근 정보 및 과학기관에서 북한이 리비아에 6불화우라늄을 수출했다는 확정적인 증거를 잡았다면서도 아직 북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내부적으로는 레드 라인을 갖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두가지 이유 때문에 이를 공식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는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 시간이든 조건이든 레드 라인을 설정해 둘 경우 거기에 얽매어 북한의 돌발적 행동에 따른 신축적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는 신뢰성의 문제다.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어설 경우 즉각적으로 보복하지 않으면 북한과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설정한 레드 라인을 침범하는 방식으로 협상력을 강화해 왔다고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분석했다.2003년 봄 노무현 정부의 대북 창구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 핵 연료봉 재처리와 플루토늄 수출을 ‘결코 넘어서는 안될 금지선’이라고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로부터 한달도 되지 않아 핵 연료봉 재처리 사실을 공표했다고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강조했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외교라인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대북 정책이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보 당국이 북한의 핵 보유 상황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고, 대북 정책 라인이 완전하게 진용을 갖추면 가시적인 대북정책과 레드 라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내다봤다. dawn@seoul.co.kr
  • [안동환기자의 현장+] 오빠부대와 함께 한 3일

    [안동환기자의 현장+] 오빠부대와 함께 한 3일

    “댁 같으면 이 추위에 저러고 있는 애들이 이해가 되슈? 내 딸 같으면 당장이라도….” 서울 청담동의 주택가. 소녀팬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록그룹 ‘더 트랙스’의 숙소 앞에는 10대들이 진을 치고 있다. 길건너 슈퍼의 50대 주인은 “애들 덕분에 매상은 많이 오른다.”면서도 머리를 흔들었다. 이른바 ‘빠순이’로 불리는 아이들이다. 스타의 공연장에서 열광하던 1980년대 ‘오빠부대’도 어른들에게는 철없는 아이들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국과 연예기획사, 숙소를 전전하며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하면 오빠부대의 ‘충성심’은 턱없이 뒤진다. 하기는 오빠의 ‘빠’에 젊은 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어미 ‘순이’가 합쳐진 이름부터가 오빠부대보다는 점잖지 못하다. 이처럼 문제아나 불량소녀 같은 이미지를 지닌 이들은 누구인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기자는 아이들이 ‘출몰’하는 장소를 사흘 동안 쫓아 다녔다. ■ 양말 4켤레 껴신고 밤샘도 즐거워 지난 3일 오전 1시 청담동에서 만난 트랙스의 팬 효선(18·가명)이는 숙소 현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골목길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 낮에는 기획사 사무실과 미용실, 저녁에는 방송국을 찾아 나선다. 효선이의 일상은 트랙스의 동선과 일치한다. 트랙스의 모든 스케줄은 인터넷으로 공유된다. ●효선이의 일상은 스타의 동선과 일치 효선이는 가수의 사생활을 좇는 ‘사생파’와 공개방송만 따라다니는 ‘공방파’의 종합판이다. 그는 사흘째 영하의 밤공기에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담요 한 장으로 막아내고 있다.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지만 별 것 아니라는 반응이다. 현관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효선이는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한다. 금방이라도 ‘오빠들’이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녀석의 얼굴은 빨갛게 텄고 입술도 갈라졌다. 이 골목에서 어른들은 반갑지 않은 존재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훈계만 하려 드는 존재로 인식된다. 처음엔 기자를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던 효선이는 슈퍼에서 구해온 라면 박스와 뜨거운 녹차를 건네자 경계심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친구집에 있다고 말했어요.TV에서 오빠들을 보는 것으론 부족해요. 오빠들 얼굴을 보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에요.”효선이는 작정한 듯 말을 이어 갔다.“어른들 시선이 불편하지만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른들이 축구나 야구를 보며 열광하는 것과 뭐가 다르죠?” 효선이는 지난 1일 포항 집에서 가출 아닌 가출을 감행했다. 오빠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3이 되는 효선은 부쩍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눈치다.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라지만 대학으로 가는 길은 트랙스 오빠들을 만나는 길보다 더 험난하게 느끼는 듯했다. 이날 함께 밤을 새운 아이들은 5명. 담요를 두른 채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화제는 당연히 멤버들. 가족 관계부터 키, 몸무게, 성격, 말투, 좋아하는 음식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아이들은 밤샘 경험을 ‘숙소 후기’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또래집단에서는 남이 모르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있거나, 스타와 말 한 마디라도 나눠본 경험이 있는 것 만으로도 ‘권력’이 된다. ●“어른들 축구 좋아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이들도 스타를 영원한 존재로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지금 이 순간 만족해. 하지만 꿈은 엄연히 있어. 좀 더 나이를 먹거나 남자친구가 생기면 오빠들을 잊게 될지도 모르지.”효선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은 “난 아니야.”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감하는 표정이다. 보통 40∼50명이 몰려들지만 추운 날에는 ‘출석률’이 낮다. 개학을 하면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30분 간격으로 경찰차가 무심한 듯 골목을 순찰한다. 오히려 소녀들 틈에 끼어 앉은 기자를 의심쩍게 살펴보곤 했다. 밤샘에도 노하우가 있다.20일 연속 밤을 새운 적이 있다는 윤아(15·가명)의 비법.“다 쓴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 안고 있으면 춥지 않아요. 편의점에 가면 뜨거운 물은 공짜로 얻을 수 있거든요. 많이 껴입어야 해요. 양말과 스타킹까지 보통 4켤레는 신지요. 담요는 필수죠.” 윤아의 말대로 더운 물을 담은 페트병을 안고 있었더니 몸이 따뜻해진다. 새벽이 되자 아이들은 골목길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효선이는 “우리 때문에 오빠들이 욕을 먹을까봐 정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6시20분 가까운 PC방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 아이들은 총총히 오빠들이 머리를 단장하는 인근 미용실로 향한다. 이날 서울 강서구 88체육관의 공개방송 현장. 전날 일산의 야외 공개방송에서 만난 민지(15·가명)와 이슬(15·가명)이는 5시간이나 남았지만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가수 휘성의 팬클럽 회원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두 사람은 휘성의 데뷔 998일째인 지난달 19일 처음 만났다. 스타의 데뷔일이 이들에게는 기념일이다. 가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린 그런 꿈 안꿔요. 음악이 좋은 것뿐 얼굴도 안되고, 목소리도 안되잖아요.”요리를 좋아하는 민지의 장래 희망은 푸드스타일리스트, 슬이는 코디네이터이다. 슬이는 휘성과 친구처럼 통화하는 코디의 모습을 본 뒤 유치원 교사에서 꿈을 바꾸었다. ●스타만 좇는 게 아니라 미래도 준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미(13·가명)는 테마파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거든다. 디즈니랜드가 있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경미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가수만 쫓아다니는 줄 알았더니 아이들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교 때부터 기획사의 공식 팬클럽 임원으로 활동해 온 대학생 박모(23·여)씨도 기성세대의 시선에 불만이다. 박씨는 “대책없는 아이들로 보는 건 억울하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팬클럽은 더 이상 무대 밑에서 스타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팬클럽은 직접 콘서트를 기획하고 헌정 앨범을 제작하는 등 대중문화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스타의 팬클럽이란 아이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체감케 하는 인생의 한 무대 장치는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를 졸업하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痛)이라면 더욱 다행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스타를 따르는 순수한 아이들을 상업적 측면에서 조직화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심화된다면 성장통은 고질병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여전히 남았다. sunstory@seoul.co.kr ■ 국내 팬클럽 어떻게 변했나 국내 팬클럽은 1980년대 초반 가수 조용필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용필 오빠”를 외치며 따라다니던 소녀팬들은 이제 40대 어머니가 됐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1960년대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 공연에 열광했던 세대의 딸이 1980년대 조용필의 팬이 됐고, 그들의 딸이 다시 요즘의 10대가 된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에서 팬클럽이 용인되고 있는 데는 역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용필에 앞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남진과 나훈아가 있었다. 하지만 팬들의 열광은 가요계의 스타 등장에 따른 자연발생적인 현상에 머물렀다. 클리프 리처드 공연때 오빠부대가 장안의 화제를 모은 것은 폭발력있는 슈퍼스타를 가지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서태지의 팬클럽은 소수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컬트화’라는 현상에서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하이텔 등 컴퓨터 통신이 활발해지면서 통신을 통한 팬의 결집 현상도 처음 나타났다. 서태지 팬클럽은 스타가 사라져도 지속되는 특징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연예기획사가 주도하는 이른바 스타 시스템이 본격화하면서 조직화된 팬클럽이 등장한다. 기획사가 스타와 팬을 동시에 띄우면서 10대팬들을 가리키는 ‘빠순이’이라는 부정적 용어도 나타났다.H.O.T,SES, 젝스키스 등 아이돌 가수의 팬클럽은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또래집단으로 체계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의 팬클럽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층 더 능동적이다. 기획사와 대립하기도 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하지만 팬클럽과 기획사의 대립조차 내부적으로는 ‘기획사의 기획’일 때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팬클럽의 구성원은 순수하다고해도 팬클럽 자체는 고도의 상업주의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sunstory@seoul.co.kr
  • 감금·폭행… 노인학대의 현주소

    감금·폭행… 노인학대의 현주소

    노인 인구 430만명에 한 해 노인 자살건수 3000여건. 뚜렷한 노인 복지정책도 없이 자식들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노인이 늘고 있는 게, 유례없이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KBS1 ‘현장르포 제3지대’(밤 12시)는 지난해 말 개소한 노인학대예방센터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노인 학대 실상을 밀착 취재해 15일 내보낸다. 2002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노인 3명 중 1명이 학대를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노인학대 문제는 심각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전국 19개 시·도에 노인학대예방센터가 개설됐고, 전국 어디서든 ‘1389’번을 누르면 위급한 상황에서 노인들을 구해줄 창구가 열렸다. 경남 창원의 노인학대예방센터.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135건의 전화신고가 들어왔다.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센터 직원들은 24시간 학대신고 전화를 상담한다. 신고 사례 가운데는 노부모에게 ‘빨리 죽으라.’는 폭언을 퍼붓거나, 자신들은 따뜻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부모는 불도 들지 않는 골방에 가둬두고 끼니조차 챙겨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몇 년째 부모와 연락을 두절한 채 부모가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기막힌 사례도 접수됐다. 신고가 들어온 이후에도 상담과 중재 절차가 결코 쉽지 않다.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지 말라고 행패를 부리는 가해 자식들을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면서 중재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은 노인학대예방센터의 창을 통해 SOS를 보내는 노인들의 실상과, 학대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예방센터 사람들의 바쁜 일상을 포착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사설] 北, 6자회담 복귀외 다른 길 없다

    북한은 핵문제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양치기 소년의 ‘늑대 경보’로 들어선 안 된다. 한반도 수천만의 목숨을 담보로 마냥 지연전술을 쓰기엔 상황이 엄혹하다. 이달 안에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결정되어야 한다. 아니면 “이제 외교 노력은 끝장”이라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설연휴 직후 중국 고위관리가 북한을 방문하고, 이달 말에는 북한 박봉주 내각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는 등의 일정을 통해 6자회담 재개가 결정되길 기대한다. 2·3월이 북핵 분수령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은 2기 부시 행정부가 출발했지만 당초 우려처럼 대북 강경일변도는 아니다. 미국이 강경·온건을 오락가락하는 것은 한국·중국 등 중재국의 노력이 깔려 있다. 이라크전 수행으로 아시아 대륙의 양쪽에서 무력을 동원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총선 후 이라크가 안정되면 미국의 대북 압박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중국의 인내도 무한정일 수는 없다. 게다가 가짜 유골 논란으로 일본내에 대북제재 여론이 거세다. 한국·미국의 만류에도 불구, 일본 정부는 가벼운 수준부터 2단계 대북제재에 이미 착수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하고 있다. 북한이 회담복귀를 더 지연시킨다면 미국내 강경론 재득세, 일본의 경제제재, 한·중의 중재론 약화가 한꺼번에 빚어지면서 한반도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된다. 지금 미국내에서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프로그램을 발전용으로 이해하자는 타협안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6자회담 조기추진 원칙을 재다짐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곧 워싱턴을 방문,6자회담 재개시 북한에 줄 ‘선물’을 조율한다. 북한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 [사설] 부시 對北 메시지, 기대와 우려

    부시 미국 대통령이 2기 첫 국정연설에 담은 대북 메시지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한다.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기지’ 등 북한을 자극할 용어를 쓰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한국 등 회담 참가국들과, 미국 조야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북한의 핵포기 설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으니, 당분간 무력행사 등 강경대응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밝힌 셈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는 북한이 흘려들어서는 안 될 분명한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다. 핵·미사일의 국제거래를 막기 위해 60개국과 공조를 강조한 것도 실상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해외반출을 겨냥한 말이다. 핵을 만들더라도, 그것을 팔아먹을 길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 우라늄이 리비아에 수출됐다는 미국언론 보도와 맞물려, 미국의 숨은 결의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 설득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 무한정의 인내와 시간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란에 대한 강경한 경고가 이를 우회적으로 뒷받침한다. 북한핵보다 상대적으로 덜 긴박하다는 이란핵에 대해 극한적인 용어로 비난한 의도가 달리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는 북한에 대한 일종의 간접 최후통첩이다. 그것은 바로 6자회담 참석 외에 다른 대안은 북한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체제의 미래와 관련된 우회적 경고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온갖 수사를 동원해 ‘자유의 확장’의지를 천명했다. 전세계의 압제정권과 맞설 자유전파의 선봉역을 거듭 자임한 것이다. 자유의 동맹에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동맹국을 포함시키겠다고도 했다. 핵문제건 체제문제건 어느 모로 봐도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 [신통방통 운세볼까] 재미로 보세요 닭해 운세 “꼭이요”

    쥐띠주변사람과 대인관계 원만하게 유지하면 어려울 때 도움 받아서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겠다. 사업의 무리한 확장이나 개업은 자제하는 게 좋을 듯. 전체적인 건강운은 양호한 편. 신경질환에 주의만 한다면 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36년생:남의 재테크 성공에 영향 받아 무작정 따라하다가는 낭패 볼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안정된 투자처를 찾는 것이 현명. 48년생: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해야만 좋은 성과 기대할 수 있다. 순간적인 감정 참지 못하면 일을 망칠 수 있으니 유의. 60년생:굳은 의지와 끈질긴 승부욕으로 정진한다면 새 사업도 추진할 만하다. 가까운 사람과의 금전거래는 삼가는 게 좋다. 72년생:숨은 실력을 윗사람에게서 인정 받게 된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는 다 지나가게 되고 활기찬 미래가 펼쳐지겠다.84년생:줏대를 갖지 못하면 갈등 많이 생기겠다. 타인에 대한 배려 태만히 하지 않도록 신경 써라. 맡은 일에는 최선 다하도록. 소띠 근심이 사라지고 땀 흘린 노력에는 반드시 알찬 결실이 있겠다. 매사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매매는 때를 잘 맞춰야 이루어지나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 나오겠다. 순간적인 감정 참지 못하여 일을 망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라. 25년생 뚜렷한 목적 없이 새 사업에 손대거나 변동 꿈꾸다가는 손실 따르겠으니 주의하라. 아랫사람 실수에는 관대하라. 37년생 : 심신을 편하게 하고 매사 흔들리지 않는 계획을 세워야 일의 해결이 쉽다. 급한 성미로 인한 실수 없도록 항상 조심.49년생 : 인정에 끌려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우려 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뒤탈 없겠다. 건강 관리도 게을리 하지마라. 61년생 :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사물을 보아야 하겠다. 독선적이 되지 말고 가까운 사람과 마음을 열고 협력하면 성과가 크겠다. 73년생 : 작은 것이 쌓여 큰 결실을 얻겠다.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게 돼 가까운 친구와 멀어질 수 있으니 주의. 호랑이띠 대체로 금전운이 열려 있어 주머니 사정 좋아지겠다. 신중하지 못하면 새 사업 추진하는데 어려움에 부닥치겠다. 신경성이 속병으로 전이되어 고생할 우려 있으니 건강에 주의. 항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에 대처한다면 큰 염려는 없겠다. 26년생: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밀어붙이다 타인과 의견 충돌로 일을 망치게 될 수 있으니 자기절제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겠구나. 38년생:마음을 활짝 열고 가까운 사람과 협력하면 성과가 크겠다. 실리보다 체면치레에 지나치게 치중하면 곤란해진다. 50년생: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예의 지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사사로운 일이나 대인관계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62년생:돈과 명예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건강부터 추스르는 것이 좋겠다. 믿을 만한 사람과 협력하고 원리원칙을 추구하라. 74년생:패기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니 윗사람의 조언 구하라. 재테크 정보를 얻게 되고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결정은 신중히 하라. 토끼띠 금전운과 사업운이 대체로 양호하다. 간혹 불쑥 튀어나오는 경솔한 언행으로 공든 탑을 허물어 뜨리지 않을까 우려 된다. 언제든 맡은 분야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춰놔야겠다. 특히 건축업과 경영학 분야는 뛰어난 활약이 기대된다. 27년생: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도 아끼지 마라. 건강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도록. 39년생:금전운과 명예운이 모두 왕성.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큰 복을 쌓는 일임을 명심하라. 51년생:사업은 순조롭고 승진의 행운도 따르겠다. 자존심을 너무 내세우면 대인관계에 어려움 생기고 고립 부르니 주의. 63년생:계획했던 일마다 어렵지 않게 성취하겠다. 횡재운이 넘쳐나고 가정 또한 화목하다. 자녀에게도 좋은 일이 있겠다. 75년생:한 눈 팔지 말고 정진해야 만족할 만한 성과 얻을 수 있다. 허영에 취해 연초의 각오가 흐지부지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 용띠 대길한 운세가 찾아드니 승진, 합격 등으로 희망 찬 일년을 보낼 수 있겠다. 윗사람에게는 칭찬을, 아랫사람에게는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눈앞의 즐거움에만 빠져 더 큰 행운을 보지 못한다면 뒤늦게 후회할 일 생긴다. 새로운 분야에는 함부로 뛰어들지 마라. 28년생:집안이 화기애애하고 자녀에게 뜻밖의 경사가 생기겠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온정이 크나큰 기쁨이 되어 돌아오겠다. 40년생:자기중심적인 생활방식은 마이너스가 된다. 심신이 허약해지기 쉬우니 철에 맞는 보신 필요. 고혈압 환자는 특히 주의. 52년생:주위 사람들이 부당한 비난을 하여도 개의치 말고 올바르게 행동하라.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커다란 낭패가 있겠다. 64년생:하는 일마다 결실 크다. 작은 투자로 짭짤한 수익 볼 수도 있을 듯.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시야를 넓혀 행동하라 .76년생: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내 몫 확실히 지키는 한해가 된다. 매사 지나친 욕심 버리고 언행을 조심하라. 뱀띠 혼자만 안고 있는 남모르는 번민이 생길 수 있겠으나 상반기가 지나고 중반기에는 근심거리를 말끔하게 덜어 버리게 된다. 동업을 추진하는 경우는 주위 사람들과 화합해야 유익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겠다. 부동산 매각은 이익이나 매입은 불리할 듯. 29년생:변화보다 안정을 취하는 게 좋고 대인관계에 신경 써라. 매사 정면 승부보다 우회적인 대응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41년생:지나치게 소심하면 오히려 심신만 피곤해진다. 상황에 따라 자신감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삶에 활력이 넘치겠다. 53년생:가까운 사람의 도움으로 정신적인 압박과 금전적인 어려움도 풀리겠다. 중간에 서서 선후배간의 화합에 힘써라. 65년생:지난 일은 잊고 재충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출발하라. 대립은 피하는 것이 무난. 계약은 신중히 해야 실수 없겠다. 77년생:맺고 끊는 게 분명하지 않으면 주위사람에게 불신 받고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건강진단은 미루지 말고 받아보도록. 말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해. 하지만 의욕이 너무 넘치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도 있으니 주의. 매사에 경솔하기 쉽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점검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 중반기에 여행운도 있으니 심신의 피로를 풀 기회로 삼도록 하라. 30년생:신변에 변화가 생겨 인생의 전환점 맞는다. 원칙 고수가 난관 극복하는 길. 신중한 판단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 42년생:무리하다 금전적인 어려움 발생할 수 있으니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 친구를 함부로 대하다가는 낭패 있으니 주의하라. 54년생:항상 공정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할 때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아라. 동료와 승진 놓고 선의의 경쟁 예상된다. 66년생:사업운이 상승하고 가정에는 화목이 가득. 돈을 충동적으로 쓰게 되면 후일 후회하게 된다. 또한 오기로 투자하면 손해 보기 십상.78년생:계획했던 일들 순조롭게 진행돼 결과도 만족할 만한 수준 되겠다.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고 공직자는 금전 유혹 조심. 양띠신변에 변화가 끊이지 않고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호재가 만발하니 유익하기만 하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의욕도 넘쳐난다. 일과 교제가 활발해지며 그에 따른 이익도 커지겠다. 단 생활이 사치스러워질 수 있으니 수입과 지출에 균형을 맞춰라. 31년생:결정한 일은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겨야 효과 보겠다. 무심코 지나친 작은 일 때문에 오해 있겠으니 세심한 주의 필요. 43년생:독불장군에게 미래는 없다. 주위 사람 의견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중요. 겉치레보다 내실 다지기에 신경 많이 쓰도록. 55년생:신상의 변화가 오더라도 오히려 득이 될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순리에 따르는 것이 상책. 하반기에 길운이 오겠다. 67년생:허황한 일에 열성 쏟는 모험은 피하라. 과욕 부리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뺏길 수 있다. 명분에 벗어나는 일은 삼가도록. 79년생: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꾀하면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 실력 배양에 힘쓰도록 하라. 원숭이띠 금전운이 들어오니 부동산에 투자하면 이익 많이 볼 듯. 불우이웃에게 선심 베풀도록 하라. 간혹 신경성 두통이나 위장질환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 중반기에 사업에 굴곡은 있겠지만 전체적인 운과는 거리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32년생:열심히 노력해도 헛수고인 때도 있겠으나 인내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겠다. 가급적 해외여행은 삼가는 편이 좋다. 44년생:공덕 쌓으면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된다 . 자신의 부귀영달에만 급급하다가는 마지막 남는 것은 껍데기뿐임을 깨달아라. 56년생:섣불리 성과 내려다가는 낭패보기 쉽다. 대외 활동에 주력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라. 68년생:장애물과 부닥치게 되면 조금은 손해본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물러 서도록. 사고나 질병 등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80년생:지나친 겸손은 자만으로 비춰질 수도 있음을 명심. 매사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닭띠 의욕이 넘쳐 목표 이상의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운기가 왕성한 한해.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말고 큰 일을 계획하여 추진해도 좋다. 손해를 보게 되고 친구도 잃게 되는 아픔이 생길 수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주위 사람을 너무 믿지 않도록 하라. 33년생:자신의 몫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철저하게 챙기도록 하라. 사소한 실수로 인해 구설수가 우려되니 주의. 45년생:자신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하게 처신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라. 과거에 얽매이면 얻을 것도 잃게 되겠으니 조심. 57년생:본업과 부업을 겸하면 수입이 좋아지겠지만 대신 건강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 책임질 일 생기면 회피하지 마라. 69년생: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 뒤 추진하라. 이상과 현실 분별 못하면 후회하게 된다 .81년생:작은 이익에 만족하고 주저앉는다면 더 이상 발전은 없다. 능력의 한계에 도전해 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개띠 자기분야에 정열을 가지고 임하면 명예와 더불어 금전운도 높아진다. 토지 매매는 가능하나 주택 매매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므로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겠다. 직장인은 승진의 기회가, 미혼자들에게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겠다. 34년생: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탓하기 전에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이 우선. 속전 속결하려는 급한 성격은 될 수 있으면 고치도록 노력하라. 46년생: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세도 생활의 지혜. 상대방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삼가라. 친인척들과 유대관계 다지도록. 58년생:현실을 직시하고 분수를 지키도록. 남의 사정 봐주다 난처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매사 잘 살펴야 손해 보는 일 적겠다. 70년생:대인관계는 대립이나 경쟁을 지양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토록 하라. 능력외 일은 무리하게 맡지 말고 과감하게 거절하라. 82년생: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마라. 젊은 패기로 무슨 일이든 의욕적으로 나서서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면 소기의 성과 거두겠다. 돼지띠 운영하는 사업에 활기가 있겠고 직장인은 동료와 상사에게 실력을 인정 받겠다. 주변사람 말만 따르지 말고 나름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실수 적다.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람은 드문 법. 과도한 친절을 보이는 사람은 조심하고 불로소득은 꿈꾸지 않는 게 좋다. 35년생:여러 가지 일 벌여만 놓고 뒷짐지고 물러나 있으면 주위 사람에게 원망 듣기 쉽다. 무책임한 약속 남발하지 않도록 절제. 47년생:내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탐내지 마라. 자신의 일은 힘들더라도 스스로 처리하는 습관 기르도록. 59년생:선배나 주변 사람 조언 귀담아 듣지 않으면 좋은 기회 흘려 버릴 수 있겠다. 수동적이기보다 능동적 자세가 필요. 71년생:젊다고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체력 증진에 힘써라.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 내려야 실수 적다. 83년생:뚜렷한 소신 없이 주위 사람의 말에 솔깃해 부화뇌동한다면 낭패 볼 수도. 이성 문제로 오랜 우정에 금이 가지않도록 주의하라.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넥슨 서원일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넥슨 서원일 사장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30년 정도 회사를 다닌 5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열정·도전·인내로 요약되는 세월을 살아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서원일(28)넥슨 사장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중년 CEO에 비해 경험은 짧지만 젊은 패기로 게임산업을 개척하는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2004년 2월 CEO가 된 뒤 수년째 500억원대에 정체돼 있던 매출을 그 해에 1112억원으로 끌어 올려 주변의 ‘염려’를 깨끗하게 씻어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는 ‘99%를 먹여살릴 1% 인재’로 시장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 사장은 176㎝ 훤칠한 키에 반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호남형이다.1남2녀 중 막내로 수산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남미 수리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1996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서울 잠원동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대학 4학년때인 1999년, 친구들과 대학 동아리 사이트 ‘클럽클럽’을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한 동아리에서 다른 대학의 동아리들에게 행사 참석을 요청하려면 회원들이 몇개의 팀으로 나누어 대자보를 들고 강남북으로 뛰어 다녀야 했다. 이를 온라인으로 옮겨 전국 대학 동아리 홈페이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위해 당시 서울·경기 지역 30여개 대학교 동아리연합회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첫 ‘창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3개월 뒤 ‘프리첼’에 같은 기능이 생겨나면서 첫 사업은 정리했다. ●“젊은이는 도전을 사랑한다.”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나 대기업을 선택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벤처를 희망했다. 그는 “넥슨, 엔씨소프트, 네이버 등 벤처 창업자들은 모두 이른바 대한민국 최고 학벌 출신들이지만 대기업에서 출발하는 편안한 삶 대신에 도전하는 인생을 택한 이들”이라면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성취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콘텐츠를 보유한 정보기술(IT) 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졸업반 시절. 벤처 회사인 정보보안업체에 합격한 그는 넥슨 창업주 김정주씨에게 인사차 찾아갔다.1996년 여름에 인턴사원으로 2개월간 일한 인연이 있어서였다. 김씨는 “게임은 일본이 강국이지만 온라인 게임 콘텐츠는 대한민국이 앞선다. 좋은 후배들이 계속 맥을 이어준다면 대한민국 게임이 세계 게임 산업을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서 사장은 2000년 8월 넥슨 해외사업팀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이후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3개월차이던 2000년 11월.‘경영회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회사가 경영보다는 개발에 주력해온 벤처 태생이다 보니 정보 공유 등 경영체계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접촉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게임온디맨드 서비스’를 시도했다.MS가 유통시키는 패키지게임(CD를 컴퓨터에 넣어 혼자 즐기는 게임)을 한국 소비자에게는 인터넷에 접속해 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영화가 개봉되면 인터넷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게임 부문에도 도입한 것이다.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좋은 게임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계기가 됐다. 2004년 2월 CEO가 된 뒤에는 사내외 정비를 본격화했다. 우선 안으로는 경영마인드를 도입했다. ●아시아의 넥슨으로 사내 복지를 위해 외국어 강좌도 만들었다. 지난해 9월에는 직원들 연봉도 15∼25% 올렸다. 인재가 곧 전략이라는 취지에서다. 넥슨의 종합 게임 포털 ‘넥슨 닷컴’도 만들었다. 기존 넥슨은 게임마다 사이트가 달랐다.ID와 비밀번호도 모두 다르다. 넥슨 포털은 넥슨의 모든 게임을 한 사이트에서 접근토록 했다.2004년 3월 출범 이후 1·2위를 다툴 정도로 아성을 쌓았다. 무선게임 개발 등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은 ‘선상 투하 경영’ 원칙을 내세워 정리했다. 역량을 집중해 회사를 키워야 하는 만큼 다이아몬드도 배를 가라앉히면 밖으로 던져야 한다는 논리다. 애써 개발한 게임이 사장되지 않도록 홍보도 강화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한 게임에 대한 홍보비가 40억원까지 책정됐다. 이처럼 경영과 벤처가 접목되면서 그는 넥슨을 히트작 제조사로 만들었다. 자동차 경주 게임 ‘카트라이더’는 지난해 12월초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최고 인기게임 반열에 올랐다.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인 ‘마비노기’는 2004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최우수상과 기술창작상을 거머쥐었다. 또 중국에서 서비스 중인 물방울 터뜨리기 게임인 ‘비엔비’는 지난해 9월에 동시접속자 수 70만명을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월 2억∼3억원이던 중국지역 매출도 지난해 4월부터 300% 이상 성장세를 보였다. 게임부문에서는 1등인 엔씨소프트와 유일하게 매출 1000억원을 넘겼지만 연간 성장률만 보면 70%로 엔씨소프트를 오히려 앞선다. 올해도 질주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2000억원 매출을 달성하고 아시아 시장 석권을 넘어 유럽시장 진출도 계획 중이다. ●시장은 넓다, 큰 꿈은 계속 젊은 나이에 CEO가 됐지만 CEO는 그의 꿈이 아니다. 그는 “유학을 갈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현재 직장을 평생 일터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넥슨의 게임 장르를 다각화할 생각이다. 넥슨은 각종 어린이 대상 설문조사에서 삼성 다음으로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게임을 만드는 회사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폭력적이고 섹스 어필한 게임들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넥슨의 색깔을 어떻게 성인 게임에도 접목시킬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유럽지역 진출 가능성도 적극 타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말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한·영 산업기술 협력 포럼’에 참석해 발제자로 연설한 것은 물론 팀스 영국 정보통신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게임 콘텐츠 시장과 영국 게임시장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그는 “이력서에 한줄 넣기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도전하는 젊은 삶이 소중하다.”면서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열정과 확신만 있으면 어떤 도전도 아름답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진로를 고민하며 찾아오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 꿈은 자신만이 만들 수 있다. 꿈을 스스로 찾는 젊은이가 되자.” ■ 서원일 대표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1995 American Cooperative High School(수리남 소재) 졸업 ▲1996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입학 ▲1996 넥슨 인턴사원 ▲1998 국제경상학생협회(AIESEC) 서울대지부 회장 ▲2000 넥슨 해외사업부 입사 ▲2001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졸업 ▲2001 넥슨 CI 리뉴얼 프로젝트진행 ▲2004 넥슨 대표이사 취임 ■ 넥슨은 어떤 회사 넥슨은 1996년 4월 세계 최초로 온라인 그래픽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어 PC통신에 상용화시킨 회사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김정주(37)씨가 카이스트 전산과 석사 과정 시절 창업한 게임벤처 업체다. 김씨는 대주주이자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넥슨은 이에 앞서 1994년 웹 기업체에 홈페이지를 구축해주는 웹 에이전시로 출발해 현대차 등 기업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면서 게임벤처 창업을 준비했다. 현재 웹 에이전시 이외에도 게임 개발사인 엠플레이와 위젯, 모바일 게임 제작업체 모바일 핸즈, 고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와이즈키즈 등 5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넥슨의 게임은 바람의 나라, 테일즈위버, 어둠의 나라, 일랜시아, 아스가르드, 크로노스, 뎁스판타지아, 택티컬커맨더스,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큐플레이, 카트라이더 등 온라인 게임과 깨미오BnB,BnB서바이벌 등 모바일 게임이 있다. 넥슨의 지난해 매출은 1112억원, 경상이익은 270억원이다. 올해 목표는 해외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등 세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매출 목표는 2000억원 달성이다.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28∼30세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아시아 6개국 ‘어린이 드라마’

    아시아권 어린이들이 함께 보며 ‘또래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성장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선보인다. EBS는 8일부터 3일 동안 오후 7시15분에 아시아 6개 나라가 모여 함께 만든 ‘ABU 어린이 드라마 시리즈 6부작’을 연속 방영한다. 이 시리즈는 지난 200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 어린이 TV 프로그램 아이템 교환회의에서 “어린이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공감해 본격적으로 구상된 것. 아시아권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어린이 프로그램 공유 프로젝트다. 이번에 참여한 국가와 방송사는 한국의 EBS를 비롯해 중국 CCTV//RTPRC, 홍콩 RTHK, 일본 NHK,, 말레이시아 RTM, 몽골 MRTV 등이다. 이들 6개국가들은 ‘어린이의 정신적인 성장’을 주제로 지난해 초부터 의기투합, 드라마의 내용과 이야기 구조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7∼9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15분짜리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화 속 어린이들이 화면과 표정을 통해 드라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대사는 가능한 한 줄였고, 더빙과 자막은 넣지 않았다. 필요한 이야기 전개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된다. 1부에서 소개될 드라마는 한국 작품인 ‘겁쟁이 내 이’. 축구를 좋아하는 8살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이빨 빠진 동네 꼬마들이 만든 일명 ‘빠진 이 축구팀’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이가 빠지지 않아 들어가지 못한다. 소년은 겁이 나지만 축구팀에 들어가려고 이를 빼기로 결심한다. 2부는 홍콩 작품 ‘나무의 숨소리’. 시끄러운 홍콩의 소음 속에서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3부는 중국의 ‘메이찌앙의 약속’으로 한 시골소녀가 여배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고군분투한다는 내용.4부 몽골 작품 ‘망아지와 나’는 늪에 빠진 망아지를 구출하려는 한 몽골인의 이야기를 다뤘다.5부 일본 작품 ‘오믈렛’은 아빠를 감동시키기 위해 오믈렛을 만드는 두 소년의 모습을 그렸으며,6부 말레이시아 작품 ‘나무타기’는 또래그룹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무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소년의 용기와 인내심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EBS측은 “해외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게 대부분인 아시아권 국가에는 아시아 어린이를 그린 드라마들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올해 부터는 이란·이집트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20여개 국이 18년째 비슷한 제도를 운영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도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건뇌탕’ 초기치매 효과

    한약재를 주원료로 개발한 탕제가 초기 치매환자의 기억력 감퇴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신경정신과 황의완 교수팀은 원지, 석창포, 신곡 등의 한약재를 이용해 개발한 ‘건뇌탕’을 2003년 중 이 병원 한방병원에 입원한 60세 이상의 초기 알츠하이머환자 22명에게 6개월간 투약한 결과 기억력 척도가 12.47점에서 15.65점으로 3.18점이 높아졌다고 최근 밝혔다.60세 이상인 정상인의 기억력 척도는 21.10점 정도이다. 또 이 약제를 투여받은 환자들은 기억력 외에 주의력과 관리기능, 구성, 개념화 등 치매평가검사(K-DRS)의 다른 항목에서도 인지능력 감퇴의 진행이 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보건복지부의 한방치료기술 연구개발사업에 따른 지원으로 이뤄졌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자발성 결여와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 감소▲몇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함▲완고하고 자기중심적, 독선적인 성향▲인내력과 집중력 저하▲이성에 대한 관심 저조 등의 초기증상을 보이며 방치하면 증상이 급속히 악화되는 노인성 질환이다. 황 교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경우 완치를 기대하는 약제가 개발되지 않았으며, 단지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데에 치료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구 결과는 한의학을 통한 치매 치료에 있어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인간시대]7번째 詩集 펴낸 방우달 강동구 과장

    [인간시대]7번째 詩集 펴낸 방우달 강동구 과장

    ‘나는 아내를 ‘가시나야’라고 부른다/때 묻지 않은 계곡의 콸콸 물소리 같은 순결한 여자에게 어울리는 말/아내도 싫잖은 내색이다.’(시 ‘일라그라’중에서) 공무원 시인인 방우달(53·서울 강동구청 기획예산과장)씨가 7권째 시집(詩集) ‘작은 숲 큰 행복’을 펴냈다. ●일곱번째 ‘마음의 자식’ 탄생 이번에 출간한 시집에 대해 저자는 “이 세상은 하나의 숲이다.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친구들이다. 각박해진 세상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한데 나의 숲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도, 시(詩)도 잘 익혀두고 기다려야겠다.”고 심경을 적었다. 앞서 ‘보리꽃’‘전하, 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아니되옵니다’‘테헤란로의 이슬’‘알을 낳는 나그네’‘나는 아침마다 다림질된다’란 시집과 시집 겸 산문집 ‘지갑을 던지는 나무’를 냈다. ‘…/비아그라를 먹고 기다린다, 일어서기를/누에그라를 먹고 기다린다, 일어서기를./일라그라 제발!’ 1994년 ‘예술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일라그라, 제발’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일라그라는 ‘일어나라’의 경상도 사투리다. 비아그라라는 단어와 방언을 절묘하게 엮어 갈수록 어두워져만 가는 사회 분위기를 돌이키고, 가정의 화목 등 자신의 바람도 그득히 담아냈다. 방씨는 “고교 때부터 작품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품었다.”면서도 “그러나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아 실천을 못하다 10년 전에야 데뷔하게 됐다.”고 지난 시절을 되돌아봤다. 이 무렵 대학원에도 들어가 행정학 석사학위를 따냈다. 강남구 교통행정과장으로 있을 때였다. 논문은 교통체계 개선에 대한 것이다. 강남구 전역을 46개 구역으로 나눠 보도와 일방통행로, 공원, 뒷골목 등을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하고 대안을 체계화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많은 서정시나 자연시 보다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이나 에피소드를 옆사람과 얘기하듯 쉽게 풀어쓰는 담시(譚詩)를 즐긴다. 2003년 6월에 펴낸 5번째 시집 ‘나는 아침마다 다림질된다’에서 시인은 날마다 다림질하듯 자신을 채찍질하고 가족들도 그처럼 어깨가 처진 가장의 마음을 이해해주며 서로 다독거려야 한다는 정신자세를 일러준다. ‘…/모든 사람들이 앉았다가 다 떠나도/나만은 그 옆에 목적지까지 앉아주리라/물론 사랑에도 인내가 필요하다/‘(노숙자와 함께한 시간) ●“화장실 문화를 가꿔주세요” 방씨는 옷만 아니라 마음도 구겨질 때마다 다림질하듯 스스로를 갈고닦는 데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가 처져 집에 들어오는 등 기(氣) 죽어지내는 세태를 떠올려 펜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방 시인은 시민단체로 잘 알려진 ‘화장실문화시민연대’에 운영위원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화장실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 ‘그 집을 알려면 화장실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화장실을 ‘생각하는 문화공간’으로 아름답게 가꿔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운동이 정착돼가는 분위기여서 한층 마음이 가볍다.”고 그는 웃었다.95년에는 강남문인협회 설립에도 앞장서 알찬 동아리로 꾸려나가고 있다. “오랜 문학활동으로 글 써달라는 청탁이 많이 들어오겠군요?”라고 묻자 그는 ‘왜 사냐고 물으면 웃지요’라는 시구처럼 그저 웃기만 했다. 방 시인은 “마른 걸레에서 물을 짜내려는 듯 억지로 글을 쓰지 않는다.”면서 “그래서는 안될 뿐 아니라, 그럴 수도, 그렇게 되지도 않는 게 바로 글 쓰는 작업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상(詩想)이 ‘짠’하고 떠오르고 나서야 펜을 잡는다는 프로 의식이 그에게는 엿보인다. 해서 아호도 동네 뒷산의 잡풀 위에 홀로 서 있는 탑 같다며 주위에서 ‘야탑(野塔)’이라고 붙였다. “드러난 듯 아닌 듯 수수하고 꾸밈이 없는 인간사 본연의, 온갖 풍상(風霜)을 간직한 삶을 노래한다는 거창한 이유로 붙여준 것 같습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어진다고 했던가. 한 청년, 독문학도였다. 어느 여름날 시골의 느티나무 아래였다. 청년은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또 아니 들었던 것을 듣고야 말았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속세의 풍진을 훌훌 털어냈다. 번뇌도, 욕심도 없다. 끊어질 듯하면 이어진다. 점점 눈이 부신다. 귀가 떨린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친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늪이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인간사 삼세번,3일 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은 고독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김명곤(53) 국립극장장.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소리꾼으로 열연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오정해)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는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김명곤’ 하면 평소 1980년대 민중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연출가·판소리 이수자 등으로 꼽힌다. 지금은 문화CEO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사상 처음으로 공채(2000년)로 극장장에 임명된데다 연임의 기록까지 세운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이밖에 ‘광복60돌60인위원회’ 위원을 비롯, 올 11월에 열릴 APEC행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춥고 배고픈 재야 연극인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오는 4월이면 국립극장이 개관 55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맞춰 국립극장은 지난해 10월 해오름극장에 이어 나머지 극장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히 끝납니다. 모두 17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지요. 예쁜 새옷을 입고 좀더 편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호흡하겠습니다.” 그의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잃어버린 나, 그리고 잊었던 우리와 다시 만나는 그런 무대를’ ‘무대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더욱 뜨겁게’ 어떤 철학으로 극장을 운영하는지 짐작이 갔다. 글의 주인공은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극장의 단골고객이며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국립극장장에 처음 취임할 때 모든 것을 (기존과)반대로만 하자고 다짐했단다. 즉 권위와 폐쇄, 관료적인 국립극장에서 탈권위적인 국민 속의 극장으로 개혁시키고자 했던 것. 스스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우선 공연장 명칭만 하더라도 대극장을 ‘해오름’, 소극장을 ‘달오름’, 실험극장 ‘별오름’ 등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또 무지개 길과 은하수 쉼터 등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연평균 관객 30만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입도 3배 가까이 증가해 재정자립도를 7%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유명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15∼25%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국립극장은 6·25 발발 두달 전에 처음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굴곡의 현대사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올 한해는 우리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할 생각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진보성향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약간 웃으며 “대학시절, 순수지향적 사회운동이 시작될 때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예술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당시 임진택·채희완·김석만씨 등과 함께 민족극 운동1세대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진보적 행보는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넓힌다. 연극 ‘갑오세 가보세’ ‘점아점아 콩점아’ ‘인동초’ 등 민족민중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주로 인권과 평등, 분단의 아픔을 고민했다. 예술에의 집착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칠 때 다섯가지 마귀, 즉 주마(酒魔), 병마(病魔), 수마(垂魔), 궁귀(窮鬼), 색마(色魔)에 시달리느라 좌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2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은 아예 먹고 자는 곳이었다. 첫 역할은 데모하는 학생을 데려다가 두들겨패는 정보과 형사였다. 교수의 첫째딸 역을 맡은 여학생이 예뻐서 더욱 신났다. 특히 연극이 끝나면 라면과 소주가 나왔다. 밤새 친구들과 소주마시며 얘기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아침에 선배가 머리맡에 갖다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세수는 늘 학교 우물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주마의 결과는 곧 병마로 돌아섰다.2학년 말 폐결핵이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매일 잠만 잤다. 이제는 수마가 시작된 것.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던 처지였다. 하지만 꼼짝조차 하기 싫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방안퉁소’(방안에서 하루종일 퉁소만 부른다는 뜻)로 불렸을까. 결국 약도 못 사먹는 궁귀의 상태로 빠졌다. 색마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여성과 어울리게 된다.”며 웃는다. ●명창 박초월선생에 판소리 배워 대학 3학년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몸이 안 좋아 휴학 중이던 여름날. 전북 김제에서 친구를 만났다. 전북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그는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시골의 큰 느티나무아 래의 정자. 한 여인이 아이들 4∼5명을 앞에 앉혀놓고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인의 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사흘동안 그렇게 정자에 있었다. 그의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란 오페라나 가곡이 전부인 줄 알았죠. 난생처음 판소리를 듣고 왜 학교에서 한번도 안 배웠는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종로3가의 단성사 건너편에 위치한 명창 박초월 선생의 학원을 찾았다. 학원비를 겨우 마련한 뒤 등록했다. 두어달 후 학원비가 바닥났다. 사정을 안 박 선생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 대신 전화도 받고 학생들의 가사를 받아쓰는 일 등을 했다. 나중에 박 선생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이렇게 광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또한 마당극과 민요 등을 어떻게 하면 창작극에 잘 접목시키고 삽입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자·교직 거쳐 연극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과 판소리의 끼는 버리지 못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방학 때면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어과목 첫 수업 때 김 극장장은 “너희들이 독일어를 왜 배우냐, 먼저 우리것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 여제자가 이에 쏙 반해버렸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다행히 15년 앓아오던 폐결핵은 아내의 헌신적 간병 덕분에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이는 기적이라고 여긴다.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아내는 이제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좋아했지요.” 어릴 적 그의 집은 전주시 중앙동. 하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이 기울어지면서 큰 집에서 작은 집, 중앙에서 변두리쪽으로 자꾸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낚시광이었다. 김 극장장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어머니와 인내심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좋아 독일어를 택했다. 가난한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파우스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 올해가 극장장 연임의 마지막해. 내년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그는 “자유로워지면 꼭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졸업 ▲77년 뿌리깊은나무 기자 ▲78∼79년 배화여고 교사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98∼99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회장 ▲99년 9∼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2000년1월∼현재 국립극장장 ▲2000년11월∼현재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추진위원회 위원 ▲저서=광대열전, 점아점아콩점아, 꿈꾸는 퉁소쟁이 등 ▲연극=장산곶매, 나의살던 고향은, 장사의 꿈 등 ▲영화=일송정 푸른솔,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등 ▲상훈=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서편제),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 제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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