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권유린
    2025-12-20
    검색기록 지우기
  • 데니스 로드먼
    2025-12-20
    검색기록 지우기
  • 동시다발적
    2025-12-20
    검색기록 지우기
  • 집단대출
    2025-12-20
    검색기록 지우기
  • 국가보훈처
    2025-12-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31
  • 불고지죄 “축소”·“폐지” 첨예대립/개혁입법 협상의 쟁점

    ◎「반국가」 개념·목적범 해석 놓고 맞서/보안법/수사범위·남용방지 장치에 주안점/안기부법/경찰위원 임명절차·권한문제 논란/경찰법 오는 9일의 제154회 임시국회 폐회를 앞두고 여야가 기존입장에서 한발씩 양보함에 따라 합의처리될 가능성이 보였던 개혁입법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민자·신민 양당은 7일 정책위의장회담에서 양측이 새로 마련한 국가보안법 등 개혁법안의 수정안을 놓고 심야까지 막바지 절충을 계속했으나 쟁점현안에 대한 시각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이날 밤 회담 결렬 직후 민자당측이 표결강행 불사방침을 천명한 데 대해 신민당측은 실력저지로 맞설 것임을 밝혀 8일의 본회의에서 여야의 격돌이 예상된다. 이날 여야가 협상테이블에서 절충을 시도한 법안별 쟁점과 함께 전망을 진단한다. ▷국가보안법◁ 이날 협상에서도 절충점을 찾지 못한 핵심부분은 반국가단체의 개념규정 및 불고지죄 축소 또는 폐지여부,목적범 해석 등으로 압축된다. 민자당은 금품수수,잠입·탈출,회합통신,찬양·고무죄의 적용과 관련,「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금품수수 등 각 행위를 할 경우만 처벌토록 명확히 규정한다면 이들 조항의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 소지는 완전히 제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국가의 안전을 침해할 목적으로」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 경우」만으로 목적범의 규정을 보다 엄격화해 수사관의 자의적 법적용의 소지를 봉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불고지죄 조폐시비와 관련,민자당측은 당초 찬양·고무,회합·통신,편의제공죄 조항은 적용대상에 제외시켰던 당초 개정안에서 더 나아가 잠입·탈출에 관한 불고지도 처벌대상에서 제외시키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잠입·탈출에 관한 불고지죄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서경원 사건 등에서 제기됐던 「공안정국」시비 등이 더 이상 돌출할 가능성은 없다는 설명이다. 신민당은 그러나 이날 회담에서도 불고지죄의 존속은 인권유린,반인륜의 조항이라는 공방이 계속될 것인만큼 차제에 완전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국가단체 개념의 축소와 관련,민자당은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로 한정하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으나 신민당은 반국가단체의 개념을 기능에 따라 두 가지로 분리,이를 명문화할 것을 제안했다. 신민당은 우선 대한민국을 적대하는 국가 또는 국가에 준하는 단체로 규정,현재 북한을 영구히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개념에서 탈피,남북 관계진전에 따라 유동성을 갖도록 하자는 지적이다. 또 제3조의 반국가단체구성죄를 반란단체구성죄로 바꿔 내란단체나 반란단체를 구성하는 경우 처벌토록 하자고 주장했다. ▷안기부법◁ 안기부에 대한 국회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국회 정보위를 설치하는 데는 여야가 견해를 같이함에 따라 수사권의 범위문제가 마지막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민자당측은 안기부의 수사권 범위를 북한이나 해외로부터 잠입하는 간첩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야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 국내 고정간첩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할 수 없는 허점이 생긴다는 이유를 들어 극력 반대하고 있다. 즉 해외잠입 간첩과 국내간첩을 구분해 달리 취급할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간첩을 체포해 상당한 수사가 진전돼야만 입국경로 등이 밝혀지는 수사관행을 도외시한 비현실적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신민당측도 여권의 이같은 입장에 일응 수긍,7일 수사권의 범위를 종전보다 대폭 확대하되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 수정안을 제시했다. 신민당측은 이 밖에 보안·정보조정업무에 대해 안기부의 상위기구인 정보조정협의회로 이관하거나 보안감사권만은 행정부가 안기부에 예속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총리실이나 관계부처에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자당측은 현재 안기부의 임무와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주장으로 간주,수용키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민당 내부에서도 강경파들이 수사권 범위를 너무 많이 양보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협상의 마지막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경찰법◁ 오는 7월1일 정부조직법상 경찰청 발족을 앞두고 신민당이 국무총리 소속하에 7인으로 구성된 합의제 경찰위원회를 두자는 종전 주장을 포기하고 내무부 장관 소속하에 경찰위원회와 경찰청을 두는 정부안을 수용함으로써 경찰위원회 위원 임명절차와 권한이 마지막 쟁점이다. 신민당측은 위원장 및 2인의 위원은 내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 2인의 위원은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자당측은 내무부 장관 밑에 설치되는 경찰위원회 위원에 대해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은 정부조직체계상으로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법상 근거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대신에 민자당은 경찰위원회 위원(7인)은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하고 그 중 2인은 반드시 법관자격이 있는 자로 임명토록 해 중립적인 경찰운영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가보안법 여야안 대비표 ●민자당 원안 △제5조(자진지원·금품수수) 2항 △제6조(잠입·탈출) 1항 △제7조(찬양·고무) 1항 △제8조(회합·통신) 1항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제10조(불고지) ·제3조,제4조,제5조 1항 제3항 제4항 또는 제6조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정을 알면서… ▲제19조(구속기간 연장) 2항:형사소송법에 의해 구속기간의 연장을 2차에 한해 허가할 수 있으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때 다시 1차에 한해 구속기간을 연장 ●민자당 수정안 △제5조(자진지원·금품수수) 2항 △제6조(잠입·탈출) 1항 △제7조(찬양·고무) 1항 △제8조(회합·통신) 1항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제10조(불고지) ·제3조,제4조,제5조 1항 제3항(제1항의 미수범에 한한다),제4항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정을 알면서… ▲제19조(구속기간 연장) 2항:형사소송법에 의해 구속기간의 연장은 2차에 한해 연장할 수 있다(단서조항 삭제) ●신민당안 △제5조(자진지원·금품수수) 2항 △제6조(잠입·탈출) 1항 △제7조(찬양·고무) 1항 △제8조(회합·통신) 1항 「국가와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불고지죄 삭제▲제19조(구속기간 연장) 2항:형사소송법의 규정대로 구속기간의 연장은 1차에 한하도록 한다.
  • 일 자위대 해외파병 반대/자위관 3명,방위청 난입

    【도쿄=강수웅 특파원】 일본 자위대 소속 소해정의 걸프해역 파견에 반대하는 현직 자위관 3명이 25일 상오 11시 방위청본부의 장관실에 난입,소해정 파견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이케다(지전) 방위청 장관에게 제출하려다 경비직원들에게 쫓겨나 무단침입과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됐다. 반전운동을 펼치는 과격파 소속으로 알려진 이들 3인은 체포될 때에도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중단하라』 『소해정 파견은 위헌』 『자위관의 인권유린행위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 「개혁입법 합의통과」에 청신호/신민의 「일보후퇴」와 타결 전망

    ◎청와대 단독요담서 「교감」 있은듯/반국가단체 규정이 최대 걸림돌 신민당이 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핵심 개혁입법에 대해 기존 당론에서 한발후퇴,차선안을 마련해 여야협상에 나서기로 함으로써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혁입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실 제주 한소정상회담 직후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청와대 단독면담에서 여야가 각각 새 협상안을 성안해 회기중 개혁입법을 합의처리키로 「교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13대 국회 출범 이래 3년여 동안 끌어온 개혁입법협상이 합의타결될 가능성은 외견상 어느 때보다 높은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신민당은 김 총재가 국가보안법 폐지 후 대체입법 제정이라는 종전의 강경방침 포기를 시사한 이후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존 당론포기 및 차선안 마련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이어 25일 홍영기 전당대회 의장,조세형 정책위의장,박상천 대변인 등 실무협상 대표와 당내 율사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수정안 성안을 위한 내부조율 작업에 들어감으로써 이 같은 낙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일각에서는 신민당의 수정안이 겉포장만 고친 채 알맹이는 기존 당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측면이 없지 않은 데다 아직도 여권 내부에서도 당정간 이견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회기내 처리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다시 말해 국가보안법만 보더라도 여권 특히 정부측의 『북한의 형법·노동당강령 등이 그대로 있는데 우리만 무장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과 『북한과 공산권의 폐쇄를 전제로 하는 현행법의 골격을 그대로 둘 경우 수사당국이 안보사건과 무관한 사람을 자의적으로 처벌하는 인권유린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신민당 논리가 양당의 수정안에서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릴 경우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신민당 지도부가 이번 개혁입법협상을 앞두고 차선안을 통해서라도 협상안을 타결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는 수면 아래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신민당측은 『현행법을 다소나마고쳐도 구속인사를 상당수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차선론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과거 4당시절부터 주장해온 기존 당론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3당합당 이후에도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차선안을 택해 구속자의 일부를 석방시키는 과실을 얻은 뒤 차기를 노리는 단계적 접근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재야영입 후 과거 평민당시절과는 다른 유연한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도 게재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김대중 총재의 입장에서 보면 내각제로 선회하지 않는 한 자신의 정치생명의 마지막 승부처가 될지도 모를 대권레이스를 앞두고 부분개정을 통해서라도 재야와 신민당의 정치적 활동공간을 넓혀 두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신민당으로선 차선안을 제시했음에도 협상이 결렬될 경우 6월 광역의회선거에서 대여공세의 호재로 삼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신민당이 27일경까지 성안할 예정인 수정안은 국가보안법의 경우여권과의 막후접촉을 거쳐 ▲반국가단체 개념 ▲금품수수·잠입·탈출·통신·회합죄 ▲찬양·고무죄 ▲불고지죄 ▲구속기간 등의 조항에 걸쳐 구체적인 양보마지노선이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민당의 처선안시안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찬양고무 동조행위가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신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유권해석이 금품수수·잠입·탈출·회합·통신죄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신민당 주장대로 민자당측에 의해 수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협상의 성패는 반국가단체 및 불고지죄 규정에 신민당이 어떤 카드를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신민당은 민자당측이 찬양·고무죄 등을 목적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현재 입장에서 보다 엄격히 처벌제한 규정을 적용하는 협상안을 제시할 경우 『불고지죄는 반인륜적 규정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당론에서 후퇴,불고지죄의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민자당안에 근접한 양보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구속기한 문제는 민자당안이 반국가단체구성죄등의 경우 현행법보다 오히려 긴 최장 70일간 구속수사를 가능토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신민당측은 30일간 구속수사 가능이라는 당론 대신 현행법과 같은 최고 50일간 구속기간연장으로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안기부법의 경우 신민당은 해외에서 잠입해 국내에 잠입한 간첩에 대한 수사권만을 인정해야 한다는 종전 입장을 포기하고 국내잠입한 간첩과 공범관계에 있는 국내혐의자에 대한 수사권도 인정하는 타협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세부적인 내용에 앞서 반국가단체에 대한 이적죄를 「이롭게 한」 결과범 처벌주의에서 「이롭게 할 목적」을 가진 경우에 국한시키는 목적범 처벌주의로 전환하자는 민자당안을 수용하느냐 여부가 이번 협상의 성패의 열쇠라고 볼 수 있다.
  • 소 KGB/“공포의 권부”로 재부상

    ◎해외공작보다 국내문제에 더 간여/사회 각분야에 침투… 막강한 영향력 행사 KGB(소련국가보안위원회)가 더욱 막강해지고 있다. 소련 사회가 혼란의 와중에 빠지면서 KGB가 권력의 중심무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KGB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권한을 가지고 정치·경제 뿐만아니라 소련사회 각부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내무부 소관이었던 경제사범이나 조직범죄분야까지 KGB가 담당하도록 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보수적인 KGB가 소련의 개혁정책을 저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실은 KGB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KGB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없이는 소련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정보·검찰을 비롯,서로 다른 25개 정부조직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는 KGB는 40만∼70만명 정도의 요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GB는 22만명의 국경수비대와 소련 정규군 수개 전투사단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전 KGB장성이었던 올레그 칼루긴은 KGB는 모스크바에만 미국의 FBI와 CIA의 해외공작원 보다도 더 많은 수의 요원들을 배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GB 요원들은 높은 임금과 윤택한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에 소련사회에서 인기가 높다. KGB는 소련공산당 및 군부와 함께 소련사회를 지탱하는 3각축중의 하나이다. 많은 서방인들은 KGB를 대외정보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치가 않다. 경제적 혼란과 인종분규가 악화되면서 KGB는 오히려 국내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국가안보를 책임진다는 명분으로 더많은 권한을 부여받은 KGB는 조직범죄,마약밀매자,밀수꾼 검거 및 테러방지,인종분규지역에서의 치안유지,외국 스파이활동 억제 등 다양한 일을 맡고 있다. KGB는 또 서방국가들과 무역이나 기업활동을 하는 소련기업가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하며 식료품의 안전한 유통을 위해 유통부문에 간여하기도 한다. KGB는 공해문제도 다루고 있다. KGB는 최근 우랄지역에 있는 공업지대 바슈크리아의 일부가 공해로 사람이 살수 없는 죽음의 지역으로 바뀌고있다고 경고했다. KGB는 이같이 사회 각부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탈린시대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쳤던 과거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GB는 공포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씻고 보다 시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과거 어느때보다도 공개적이며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KGB는 인권유린으로 악명을 떨쳤던 제5부도 해체했다. KGB 지도자들은 TV 토크쇼에 나가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도 성실히 대답하려고 노력하고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최초로 「미스 KGB」가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KGB가 외형적으로는 바뀌고 있으나 본질은 하나도 변한것이 없다고 비난한다. 칼루긴은 『소련인들이 KGB에 대해 과거 보다는 훨씬 적은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KGB는 여전히 사회각부문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가 급진개혁파들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KGB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그들은 또 KGB가 일부 인종분규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보리스 옐친은 자신의 사무실에 KGB 도청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KGB를 비난했다. KGB는 그러나 옐친 사무실에 있는 통신장비는 지난 81년 설치된 통신보안용이라며 옐친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발레리 사비츠키 법학교수는 새로 입안된 KGB법은 『위험스러울 정도로 애매하며 사실상 무한정의 권한을 KGB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KGB는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입법기능까지 가지고 있다고 사비츠키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KGB는 아직도 베일에 가린채 「국가중의 국가」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 경찰 폭력 LA 발칵(세계의 사회면)

    ◎흑인 뭇매현장 시민이 비디오로 찍어 TV에… “인권유린” 여론 비등 지난 3일 0시30분쯤 로스앤젤레스 근교 210번 고속도로선상. 5∼6대의 고속도로 경찰순찰차가 헬리콥터의 지원아래 한대의 흰색 현대엑셀승용차를 뒤쫓고 있었다. 8마일 가량의 질주끝에 순찰차에 진로가 차단된 엑셀승용차는 멈춰졌다. 차를 몰던 흑인 청년 로드니 킹(25·실업자)이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지자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경찰봉과 주먹·발길질로 그를 짓이겼다. 흑인청년은 유혈이 낭자한 채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연행됐다. 당시 이 흑인청년은 왼쪽다리가 부러졌으며 얼굴에도 20바늘을 꿰매야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구타장면이 사건현장 가까이 거주하는 한 아마추어 비디오카메라맨의 필름에 잡혀 TV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전역에 방영돼 사회문제화됐다는 점이다. 이 필름은 동료 고속도로 순찰대원 1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3명의 경찰관들이 3분여에 걸쳐 경찰봉과 주먹·발길지로 흑인청년을 무자비하고 잔인할만큼 난타하는 장면을담고 있어 시청자들을 전율케했다. 사건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조지 헐리데이씨(31)가 찍은 이 필름은 제보를 받은 LA지역 TV 채널의 하나인 KTLA가 5백달러에 사들여 방영,대특종을 했고 곧이어 모든 TV 네트워크들이 이를 복사,방영했다. 만일 이 아마추어 카메라맨이 이 장면을 잡지 못했더라면 이 사건은 억울한 인권유린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의외로 파문이 커지자 경찰측은 한때 언론들에 대해 사건의 진상접근을 봉쇄하면서 사건을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 매듭지으려 들었다. 그 한 예가 피의자 킹이 현대 엑셀로 1백15마일 속도로 질주했다는 경찰 주장이다. 그러나 LA 현대자동차측은 엑셀의 최대시속은 91마일이라고 밝혀 속도위반이라는 경찰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했다. 드디어 검찰측과 FBI가 본격수사에 나섰으며 톰 브래들리 LA시장은 LA시 산하 전 경찰관들의 복무자세를 다시 정립하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당국은 관련 경찰관 13명 전원해직과 직접관련 경찰관 3명을 기소하는 선에서사건을 매듭지으려 하고있으나 여론은 데릴 게이츠 LA시경국장의 문책까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미국에서 다반사로 자행되고 있는 소수민족과 흑인에 대한 공안기관의 차별대우를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공론이 수렴될지에 현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북한,최악의 인권유린국/보안등급 매겨 주민 차별

    ◎미 국무부 보고서 【워싱턴 AP AFP연합】 북한은 공산당이 주민들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실시하는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보장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탄압적인 정권중 하나로 여전히 남아있다고 1일 공개된 미 국무부의 90년도 세계인권실태 연례 조사보고서가 밝혔다. 국무부의 이 보고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 북한 정권은 개개 주민에 대한 보안등급 평가를 매겨놓고 이 등급에 따라 주민들의 공산당 입당여부를 비롯,취업과 취학 및 심지어 병원 등 의료시설과 상점이용에까지 차별대우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이어 한국의 민주화추세는 계속되고 있으나 정부가 「위험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는 일부 국민들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없이 구금하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 방글라데시 대통령 사임 배경과 정국 전망

    ◎9년 독재속 경제난… 민심 급속 이탈/공무원도 가세… 무정부상태 연출/“경원제공” 미·일·영의 퇴진압력도 작용한 듯/야반목·군개입소지 등 불안 여전 피플스 파워(민중의 힘)는 방글라데시에서도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수많은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4일 에르샤드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하자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쏟아져나와 춤을 추고 폭죽을 터트리며 독재정권의 종말을 환희로 맞이했다. 방글라데시를 9년째 통치해오고 있는 에르샤드 대통령은 범국민적 반정부시위와 파업에 파침내 굴복,야당에 자신의 후임으로 선거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끌 부통령을 지명해주도록 요청했다. 에르샤드 대통령의 사임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독재정권의 비극적 종말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독재정권은 방글라데시에서도 국민의 피를 보고서야 물러나는 정치적 악순환을 재연했다. 방글라데시의 유혈사태는 지난 10월10일 에르샤드 대통령이 내년 6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촉발됐었다.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에르샤드 대통령이 장기집권 야욕을 공식화하자 「군정종식」을 요구하며 반정부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에르샤드는 지난 82년 군참모총장일때 무혈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86년에는 비상사태하에서 주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선거를 치러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카대학을 진원지로 한 반정부시위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으며 날로 격렬해졌다. 특히 반목과 대립관계를 유지해 오던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이 이끄는 7개 정당연합과 8개 정당이 연합한 아와미연맹(AL) 등 주요 야당이 정권타도에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에르샤드정부는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반정부시위가 격화되자 지난 11월27일 집권이후 두번째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부 보안군과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는등 강경대응을 보였다. 야당은 군과 경찰의 발포로 1백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사망자는 6명이라고 발표했다. 정부의 강경대응에도 불구하고 반정부시위는 계속됐다. 국민들은 에르샤드 대통령의 퇴진때까지 총파업을 하자는 야당의 호소에 적극 호응,대부분의 은행등 금융기관과 상가는 문을 닫고 교통은 마비됐다. 대학교수 의사 등 지식인들도 반정부시위에 합류했다. 집권 자티야당 소속 19명의 의원이 사임하는가 하면 공무원들까지 총파업에 합류,국가전역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공무원 조정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에르샤드의 퇴진을 요구했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집권이후 관료들과 군부가 균형을 유지하도록 조정하고 잦은 군인사를 통해 잠재적인 반대세력을 제거하며 정권을 유지해왔다. 야당의 분열도 그의 장기집권을 도왔다. 에르샤드정권은 어느정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해 왔으나 장기집권에 따른 강압통치에 의한 불법과 부정부패가 자행되고 고질적인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며 집권 후반기부터 민심을 잃기 시작했다. 정치분석가들은 국민들로부터 민심을 잃은 것이 에르샤드정권 퇴진의 직접적인 동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또 반정부시위가 범국민적 지지를 얻자 에르샤드 대통령에 대한 군부의 지지가 약화된 것도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에르샤드의 퇴진에는 방글라데시에 많은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영국 일본 미국 등의 사임압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은 반정부시위가 계속될 경우 원조계획을 수정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미국과 일본 등은 방글라데시의 인권유린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93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내년 6월 대통령선거 이전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방글라데시는 내년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일정이 예정대로 지켜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군부다. 군은 시민들이 다카시내 중심가에 있는 집권 자티야당사를 습격하는등 과격한 시위를 벌였으나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야당 지도자들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정부상태로 확대될 경우 군의 개입가능성이 있다며 국민들에게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20여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는 야당에게도 있다. 최대 야당인 BNP와 AL은 에르샤드정권 퇴진을 위해 공동투쟁을 벌였지만 이들은 뿌리깊은 반목으로 언제라도 분열될 소지를 안고 있다.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심각한 경제난과 지난 71년 독립 이래 한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도 없이 9차례의 암살과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정치풍토는 앞으로의 정국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최대 야당인 아와미연맹을 이끄는 하시나여사는 『우리는 마지막 게임이 끝날때까지 정국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정치게임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피플스 파워의 신화를 창조했던 파키스탄의 부토는 실각했고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여전히 심각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화에의 노정은 그만큼 험난한 것이다.
  • 「군정향수」가 부른 “해프닝”/하룻만에 끝난 아르헨 반란

    ◎군개편·예산삭감에 불만/경제난 갈수록 심화… 민주화 험난 아르헨티나 일부 군인들의 무장반란은 하룻만에 막을 내렸다. 지난 83년 민주화 이후 4번째인 이번 군반란은 정부 전복기도라기 보다는 군 일부의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란군 대변인이었던 우고아테베 소령은 『우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르헨티나의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명예를 당한 군장성들의 사면과 일부 군인들에 대한 불이익처분 때문』이라고 밝혔다. 메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한 후 강력한 경제개혁정책을 시행하면서 군예산을 삭감하고 군부의 개편을 진행시켜왔다. 과거 군정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군개편은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더욱이 메넴 대통령은 알폰신 전 대통령 정부로부터 골치아픈 군장교들의 처벌문제를 떠맡았다. 메넴은 지난 76년부터 83년까지 군부통치기간 동안 1만여명을 살해한 이른바 「추악한 전쟁」의 책임자를 인권유린과 관련,처벌하는 문제를 인계받은 것이다. 메넴 대통령은부정적인 국민감정에도 불구하고 「추악한 전쟁」과 관련된 사람중 호르헤 비델라,로베르토 비올라 전임 대통령을 비롯,5명의 장성들을 제외하고 전원 사면했다. 그는 또 지난해 10월 대사면을 통해 과거 군부반란과 관련,구속된 모든 장교들을 석방했다. 메넴 대통령의 이같은 군부에 대한 유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군예산 삭감과 군개편 작업과정에서 일부 군인들의 불만이 누적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무장반란은 군부 전체의 불만 때문이라기 보다는 모하메드 알리 세이넬딘 퇴역대령을 추종하는 일부 군인들의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유력하다. 세이넬딘은 지난 10월20일 메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과 추종세력이 계속 불이익을 당할 경우 군부내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메넴 대통령은 반란이 진압된 후 3군 수뇌부와 만나 군의 개편방안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고 부시 미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일정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남미 순방 목적중의 하나는 우루과이,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의 민주화 복귀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와 외채 등 심각한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군정에 향수를 느끼는 강력한 군부가 존재하는한 부시와 메넴이 아르헨티나의 민주화 정착을 축하하는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 칠레 「피노체트 학정」청산 진통(세계의 사회면)

    ◎아일윈 신정부,군 반발속 「조사」나서/가매장된 정치범 유골 잇따라 발견/인권단체들,“전정권서 3만여명 「인간사냥」”주장/군부방해로 진실 밝혀질지는 의문 지난 12일로 출범 4개월째를 맞은 칠레의 아일윈대통령정부가 전임 피노체트정권 아래서 저질러진 정치범들에 대한 고문 학살 그리고 암매장등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을 놓고 어려운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칠레 곳곳에서는 피노체트 치하에서 사라졌던 데사파레시오스(실종자)들의 유해가 발견되고 있고 희생자 가족과 인권단체 카톨릭교회의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요구가 드높게 일고 있다. 아일윈정부도 「진상규명후 용서」를 전제,인권유린문제를 다룰 위원회를 출범시켜 놓고 있다. 이에 대해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하는 칠레군부는 책임자 규명은 물론 진상조사에 대해서조차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지난해 국민투표로 대통령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이미 그 전에 헌법을 수정,98년까지 참모총장직을 계속 맡을 수 있게 손을 써 놓은터. 칠레의 인권단체들은 16년반동안의 피노체트통치기간중 3만명이 처형되고 2천3백명이 재판없이 살해됐으며 7백여명이 실종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같은 주장은 과거 피노체트정권하에선 전혀 규명될 수 없었다. 그러나 칠레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로부터 지탄을 받던 이같은 끔찍한 일들이 영원히 역사속에 묻혀 있을 수는 없었다. 올 3월 산티아고 부근의 군기지 돌담밑에서 낙하산줄에 묶인 3명의 유골이 발견된데 이어 고문과 학살에 대한 증언이 줄을 잇자 아일윈대통령은 인권유린사태를 조사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지난 4월에 구성했다. 이때부터 아일윈정부와 군부의 갈등은 깊어졌다. 아일윈대통령은 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는 한편 피노체트계열의 인물 2명을 위원으로 임명하고 조사뒤에는 관계자를 용서하겠노라며 군부를 다독거렸다. 하지만 군부는 조사가 『군과 피노체트의 권위를 잃게 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인권관련 서류를 파기하고 문민정부를 겁줄 셈으로 비밀경찰을 해산ㆍ흡수,군부의세를 강화했다. 여기에 지난달 6일 수도 산티아고 북방 1천5백㎞의 항구 피사구아에서의 유골21구발견,산티아고 북쪽 1백25㎞지점 라 리구아에서의 다수의 유해 발견으로 군부의 과거 만행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굳혀지자 군부의 반발은 더욱 격렬해졌다. 지난달 13일 피노체트와 60여명의 최고위 군장교들은 『처형은 좌익과의 내전중 필요한 일이었으며 군의 위신을 추락시키기 위해 과거의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국민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칠레를 과거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피사구아지방법원이 주민들의 증언을 받아들여 인근 사막과 바다밑바닥까지의 추가수색을 명령함으로써 이제 아일윈대통령정부와 피노체트간의 명운을 건 일전은 불가피해졌다. 한꺼번에 21구의 유해가 발견된 피사구아는 피노체트정권하에서 정치범을 수용하는 교도소가 있었던 곳. 6개월 이내에 조사활동을 마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진실의 공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군부의 온갖 위협과훼방속에서 이 모든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가려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의없이 평화없다」고 주장하는 인권세력과 「새 출발」을 고집하는 군부사이에서 아일윈정부가 어떻게 과거를 정리하고 문민통치의 터전을 닦아 나갈지 세계인의 관심이 칠레에 쏠리고 있다.
  • 소련 반체제 사진작가 세르게이 멜리코프

    소련 반체제 사진작가 세르게이 멜리코프씨(34)가 소련내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과 인권유린의 현장을 폭로하기 위해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 초청으로 15일 한국에 왔다. 반정부 발언으로 지난 82년부터 86년까지 3년6개월동안 타시켄트등 여러곳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멜리코프씨는 『그동안 수십년에 걸쳐 소련에서 행해졌던 「인민의 이름으로 인민을 위해서」라는 서두로 시작된 인민체제하의 수많은 정책들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한국인들에게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왔다』고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혔다. ◎“소 「수용소군도」 참상 알리겠다”/수용소 수감중 몰래 찍은 사진 1백여점을 휴대/「관련문서」 한국서 책으로 출판,전시회도 계획 수용소생활 동안 비밀리에 찍은 사진 1백여점을 가져온 멜리코프씨는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는 1918년 레닌의 명령으로 북극의 백해연안 솔로베츠키섬에 처음으로 건설된 이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지난 86년초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며 『현재는 불로 태우고 불도저로 밀고산을 새로 만드는 등 지형을 아예 바꿔 그 흔적을 거의다 없앴는데 그같이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죽음을 무릅쓰고 처참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수용소에서의 학살행위가 가장 심했던 것은 스탈린시대로 이 시대에만 4천만명이 수용됐으며 그 가운데 70∼80%는 죽었다고 밝히는 멜리코프씨는 『인종학살을 감행한 스탈린은 소련내에서도 공식적으로 범죄자로 인정되고 있다』며 『이를 방조한 국제법도 책임이 있고 이같은 행위는 법적 시효에 관계없이 단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소련에서는 최근까지 스탈린시대의 여러가지 방법들이 그대로 익숙하게 행해져 왔으며 지금 민주적 변화가 일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자들과 스탈린식 사회주의자들간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신이 돌아본 수용소중 1947년부터 53년까지 정치범을 수용했던 마가단 수용소에는 어린이 수용소가 별도로 있었으며 그곳에서 죽은 수백명에 달하는 어린이의 신발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타시켄트의 현대식 형사범수용소에서는 18∼19세의 소년범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아프간전선으로 보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오래된 수용소에는 죽은 사람들의 해골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으며 대부분 두개골이 톱으로 잘려져 있는 것이 일종의 생체실험에 이용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민간단체인 「소련 어린이기금」부설 아무르발행국의 대외관계 부장직과 소련문화기금 하바로프스크지국의 지도위원직을 맡아 소련 극동지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멜리코프씨는 소련거주 한국인들에 대해 『매우 어려운 환경속에서 끝까지 인내로 버텨 지금은 땅도 많고 잘살고 있다』고 전하면서 『한국과 소련의 극동지방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더 활발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관계강화를 위해 하바로프스크시에 한국문화센터 창설을 제의했으며 이것인 성사된다면 센터부지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은행설립,한국학교 설립,한국출판사의 설립 등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소련의 새 헌법에 따라 한국인들의 문화기금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이같은 분야에의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산악관련 사진을 찍고 있으며 중국의 텐산산맥을 주제로한 사진집과 동북아시아 지방을 주제로한 사진집을 일본에서 출판할 예정이라는 멜리코프씨는 『그동안 찍은 사진들과 입수해온 수용소 관련 비밀문서들을 「러시아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판하고 또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련의 정세를 묻자 그는 『이렇게 자유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소련정치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부인 멜리코마야 볼리나씨(29)와 딸 나스차양(2)과 함께 16일 마산으로 내려가 그곳 경남대에서 학생들에게 1917년 소련 공산혁명 이후 후르시초프시대까지의 소련 정치의 잔학성에 대해 강연을 한 뒤 오는 18일 출국할 예정이다.〈나윤도기자〉
  • “15년 옥살이 죄수” 무죄로 판명(세계의 사회면)

    ◎영국경찰도 “고문수사”… 이미지 먹칠/폭탄테러 증거 조작,4명 범인으로 몰아/진범 잡고도 “쉬쉬”… 인권유린 거센 비판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크게 믿음을 얻고 있는 나라,일찍이 인신보호장정 등을 마련해 인권보호에 앞장서 온 나라 영국에서 15년전의 한 오심때문에 검ㆍ경은 물론 불문헌법구조에 이르기까지 인권보호를 위해 사법체제가 대폭 개정돼야 한다는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1974년 10월 런던에서 일어난 아일랜드공화군(IRA)폭탄테러사건의 범인으로 수감된 4명이 경찰의 거짓말과 증거조작 그리고 검찰의 조작지시로 15년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사건과 관련돼 수감중인 또 다른 7명 가운데 1명은 이미 옥사했고 아직도 6명은 항소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974년 10월5일. 런던 남서부의 길포드의 한 술집에서 폭탄이 폭발,5명이 즉사하고 50여명이 중화상을 입는 참극이 벌어졌다. 뒤에 밝혀졌지만 이 사건은 IRA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북아일랜드 「행동조직(ASU)」이 영국본토에서일으키기로 작정한 폭탄테러의 시작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에 여론은 비등했고 테러수사경험이 거의 없는 관할 서레이경찰서는 허둥지둥 수사에 나섰다. 4천여회의 진술,6천명 면접수사의 기록을 세웠으나 당시 술집내에서 데이트중인 남녀 2명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11월 다시 버밍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21명이 죽고 1백62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경찰에 대한 여론의 압력은 가중됐다. 서레이경찰은 용의자 가운데 하나인 폴 힐을 11월28일 런던시내 아일랜드인 거주지역에서 체포했다. 그의 집을 수색했으나 폭탄등 증거물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1주일 사이에 그는 차례로 「공범」 3명이 있다는 것을 「자백」했다. 3명은 그의 친구 제라드 콘론과 패트릭 암스트롱 그리고 암스트롱(24)의 여자 친구 캐롤 리처드슨(17)이었다. 콘론은 30일 북아일랜드에서 체포돼 런던으로 압송됐고 암스트롱과 캐롤은 런던에서 검거됐다. 암스트롱과 캐롤은 길포드사건 당시 데이트중인 남녀로 점찍혔다. 힐은 이미 「폭탄제조자」를 불었다. 그들은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와 미성년자인 조카 2명을 포함한 7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힐과 콘론 그리고 암스트롱은 경찰로부터 구타ㆍ살해위협ㆍ기합ㆍ오물먹이기ㆍ가족살해협박을 차례로 받아 경찰의 각본대로 「자백」했다. 경찰은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만큼 고문사실을 즉각 부인했다. 그들 4명과 7명은 75년 차례로 재판에 회부돼 무기징역 등의 중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폭탄테러는 계속 일어났다. 그리고 증거가 누적되면서 마침내 75년말에는 ASU멤버가 거의 체포됐다. 이들은 법정에서 길포드사건 등의 진범임을 주장하면서 재판을 거부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길포드 4명을 구하려는 「교묘한 술책」으로 간주,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일련의 폭탄테러가 동일범소행이라는 폭탄전문가의 진술은 검찰지시에 의해 경찰기록에서 누락됐고 진범들의 진술은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묵살됐다. 77년 길포드사건 관련자들은 뒤늦게 ASU멤버들의 진술을 증거로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세월은 흘렀다. 1980년 1월. 폭탄테러로 인해감정적 반응을 보이던 여론도 잠잠해 졌다. 이때 오래전부터 결핵으로 거의 활동을 못하던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가 병사했다. 그는 임종시 아들 콘론을 보자 산소호흡기를 떼내고는 『나는 무죄』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당시 병상을 둘러싼 경찰ㆍ교도관 등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주세페가 결핵으로 도저히 테러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확신하고 무죄증명작업을 벌이던 아일랜드카톨릭교회의 사라수녀는 무죄확신을 더욱 굳혔다. 사라수녀의 활동으로 영국의원들이 재조사를 촉구했다. 85년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도 대처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87년 영국 내무성은 마침내 재조사를 시작했고 89년 그들의 자백기록이 경찰각본의 사본으로서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 자백이 위조됐음이 드러났다. 이어서 폭탄전문가의견 조작,피고인측 반증의 일방적 묵살 사실도 드러났다. 89년 10월19일 비상항소심에서 「길포드의 4인」의 석방이 결정됐다. 영국정부는 힐에게 1만5천달러,나머지 3명에게는 7만5천달러를 배상했다. 아직도 「폭탄제조자」 6명은 석방을 고대하고 있지만 항소심은 열리지 않고 있다. 「여론재판」「무리한 수사」「엉터리 재판」이 남긴 충격은 크다. 크리스 물린 노동당의원은 『경찰은 75년 진범을 체포했을 때 이미 그들이 무죄임을 알았다』며 『잘못을 끝까지 덮기 위해 영국 사법절차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조리 왜곡됐다』고 개탄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묵비권 보장등 개인인권의 명시적 보장을 위해 불문헌법체계의 수정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독립된 항소재판소 설치등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조용히 제기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