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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위, 국가기관 처음 국보법 폐지 권고

    인권위, 국가기관 처음 국보법 폐지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국가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권위 권고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법안 개정·폐지 논의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인권위는 24일 오전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보법 폐지를 권고했다고 밝혔다.인권위는 “국보법은 몇개 조문의 개정으로는 근본적 문제점을 치유할 수 없고 법률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권을 침해해 왔다.”고 권고 배경을 밝혔다. 인권위는 “시대환경의 변화에 부응하는 자세로 북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혀 탈냉전과 통일지향적 관점에서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폐지의 근거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인권’ 규정에 따른 헌법상 기본적 자유와 권리 ▲한국이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 국제인권법 ▲유엔자유권 규약위원회 등의 국보법 폐지 권고 등을 제시했다. 인권위는 “국보법은 제정 과정부터 태생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형법 제정 이후 이뤄진 수차례 개정도 국민 합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채 진행돼 규범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인권위는 또 국보법은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근대 형법의 ‘행위 형법의 원칙’에 반하고,죄형 법정주의에 위배될 뿐 아니라 사상과 양심,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소지가 많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특히 ‘국가 안보’ 관련 사안은 형법 등 다른 법규의 적용이 가능해 국보법이 폐지되더라도 처벌 공백이 거의 없으나,미흡한 부분은 형법의 관련 조문을 개정,보완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최종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가 23일 가진 회의에서 재적위원 10명 가운데 8명은 ‘전면 폐지’,2명은 ‘대폭 개정’을 주장해 과반 규정에 따라 폐지 권고를 결정했다.”면서 “권고가 강제성은 없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는 문제인 만큼 인권위의 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좀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시론] 과거 청산과 인권/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시론] 과거 청산과 인권/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이 정계를 시끄럽게 달구고 있다.과거 청산의 본질은 과거의 일을 정확히 조사하여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일각에서는 국가가 나서지 말고 학계가 이 일을 맡으라고 하지만,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과거사’란 지금까지의 보통의 방법으로는 밝힐 수 없었던 일들,우리 역사의 일부를 구성하면서도 역사학적으로는 규명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말한다.규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누구나 알듯이,진실 규명이 방해받았기 때문이다. 진실 규명을 방해한 것은 권력이다.일제시대의 친일반민족행위는 광복 후 그와 관련된 집단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좌우익의 이념대립과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학살이나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 유린은 당시의 집권세력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에 규명할 수 없었다.방해받지 말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과거 청산의 시작이므로,이 일은 정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계만이 과거사 청산을 감당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작업이 학문 영역에 속하는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물론 학계는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과거 청산은 학문적 대상일 뿐 아니라 민족적 대상이고 정치적 대상이다.과거사는 역사의 영역에 속하지만,정계가 이토록 시끄러운 것은 과거 청산이 정치적 행위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그렇다.과거 청산은 현재의 정치권력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정치적으로 청산하려는 의미에서 정치적 행위이다. 그러나 과거 청산을 단지 정치 행위에 머물게 해서는 그 의미가 반감된다.과거 청산은 기본적으로 인권의 차원에 속하는 일이다.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인간의 권리를 짓밟히고 살해당한 자들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도덕적 의무이자 역사적 책무이며,무엇보다도 인권의 존귀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본다면,과거 청산은 당면 과제임이 분명하다.이제 어떻게 조사하고 평가하느냐 하는 방법이 문제로 남아 있다.정치권은 국회 밖에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그러나 국가기구로 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다시 대립하고 있다.기능 수행의 면에서 볼 때,누구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고 중립적 입장에서 실사구시의 태도로 조사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국가기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국회와 정부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행·재정적 지원만 하면 된다. 조사 범위도 논란 대상이지만,그것은 과거 청산의 목적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다.과거 청산의 목적이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반인간적 행위와 반민족적 행위를 가리는 것이므로,그 대상은 스스로 명확해진다.가까운 시기부터 본다면,고문과 치사 등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각종 인권 유린 행위,좌우 대립시기와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집단 학살 등 반인간적 행위,그리고 일제시대의 친일과 반민족행위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친북용공행위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그 행위는 인권과 직접 관련된 사항이 아니다.오히려 친북용공행위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이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그것은 대개 위의 세 범주에 포함된다. 이제 과거사 청산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을 타고 있다.광복 이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이 기회를 살려 과거의 끈을 과감하게 단절하고,진실의 발판 위에 민족 정기와 화해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자. 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 [인권위 ‘국보법 폐지’ 권고] 정치권 ‘국보법 개폐론’ 힘 실릴듯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권리가 어느 가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국가기관이 공식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김창국 인권위원장도 24일 “흔히 국보법이라고 하면 이념 논쟁을 머리에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과 달리 전적으로 인권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국보법 제정 이후 인권·시민단체와 진보적 지식인 등이 끊임없이 폐지를 요구해 왔지만,정부나 국가 기관은 분단상황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묵살해 왔다.오히려 국보법 폐지 주장 자체를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편의적이고 강압적인 잣대를 휘둘러 왔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폐지권고 결정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정 및 폐지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가 실질적 구속력이 없는 말그대로 ‘권고’이기는 하지만,국가기관의 공식 의견표명이므로 법무부 등 관련 기관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인권위가 국보법과 함께 3대 인권현안으로 지정,태스크포스팀을 꾸렸던 사회보호법상 보호감호제와 비정규직 문제의 연구의견도 폐지 법률 검토나 개선 추진 등으로 정책에 반영됐다. 인권위는 국보법을 폐지할 경우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경과규정을 둘 것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법률이 폐지되면 형법상 기소된 사람은 면소 판결을 해야 하고,이미 처벌받은 사람에게는 재심 사유도 된다.”면서 “기술적으로 이미 처벌받은 사람,기소된 사람과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경과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위의 폐지권고가 받아들여질지는 예단키 어렵다.인권위원회법 25조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해 관계기관 등에 대해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권고를 받은 기관은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만 명시했을 뿐 강제규정은 없다. 대상기관인 법무부나 국회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들의 의견을 단순 공포하는 것만이 인권위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절차다. 특히 국보법의 폐지 주장만큼이나 존속 또는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 인권위의 폐지권고가 단시간에 폐지 쪽으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권과 일부 단체의 개폐 논의가 인권 차원에서 벗어나 이념적 성향과 맞물리게 되면 본말이 전도된 대치 상황이 형성될 수도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새뮤얼 헌팅턴 지음

    미국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미국의 주류 계급인 와스프(WASP,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미국의 주류 백인들이 품고 있는 국가주의적 발상은 때로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미국의 정통보수를 대표하는 새뮤얼 헌팅턴(77·하버드대 앨버트 웨더헤드 석좌교수)의 ‘애국주의적’ 주장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문명충돌론’으로 널리 잘 알려진 그의 새로운 저서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형선호 옮김,김영사 펴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출간되기도 전에 인종적 편견을 부추긴다는 반발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멕시코 이민자들,즉 히스패닉이 미국의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몰고 왔다는 적잖이 ‘식상한’ 주장을 담고 있다.헌팅턴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 정체성은 크게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와 ‘미국의 신조’,그리고 기독교에 의해 규정된다. 미국의 신조(American Creed)라는 말은 1944년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미르달이 그의 저서 ‘미국의 딜레마’에서 사용하면서 대중화된 말.미국인들은 인종이나 종교,민족 등이 다르지만 이들에겐 인간의 존엄,평등,자유,정의 같은 공통된 사회적 에토스가 있다는 것.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미국의 신조다. 미국의 국가 정체성은 과연 위기를 맞고 있는가.헌팅턴은 1970년대 이후 미국내 이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남미계 이민자들은 자신의 모국에 뿌리를 두고 이중적인 충성심과 이중적인 국가성,이중 언어,나아가 이중 국적까지 유지하려 한다고 주장한다.이는 과거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국의 정체성을 점차 상실하고 미국 사회와 신조에 동화됐던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헌팅턴은 라틴계 이민자들의 이런 경향은 결국 ‘앵글로·개신교도’ 단일 문화가 지배하던 미국 사회를 두 개의 언어,두 개의 문화로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극단적 결론을 내린다. 헌팅턴의 이 문제작에 대한 평가는 몇 가지 반응만 정리해도 충분할 듯하다.앨런 울프 보스턴대 교수는 국제정치학 학술지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반론에서 “헌팅턴이 주장하는 미국 국가 정체성의 중심인 앵글로·개신교도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며 “미국에 단일한 개신교 문화는 애초에 없었으며 18세기 후반까지는 오히려 가톨릭이 미국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비판한다. 또 영국의 ‘가디언’지는 “멕시코와 미국의 문화 차이는 터키와 유럽의 차이보다 훨씬 적다.”고 반박한다.헌팅턴의 논문이 소개된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 최근호도 “헌팅턴의 주장은 가톨릭·스페인 문화의 유입을 두려워하는 ‘유럽 본토주의’의 우려”이며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뻔뻔스러운 인종차별”이라고 꼬집는다.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으로 미국을 들여다 본 이 책은 미국의 주류사회,특히 보수 우파의 현실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1만 9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개개비 둥지 속의 새끼 뻐꾸기/이상규 글

    이상규(63)시인은 중국 옌볜(延邊)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현재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 후원회 회장이다.그의 수필집 ‘개개비 둥지 속의 새끼 뻐꾸기’(문예촌 펴냄)에는 소외된 이웃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나눔의 철학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시인은 조선족 여성의 주선으로 1996년 시집 ‘순정의 고백’을 출간하기 위해 옌볜에 갔다가 조선족의 실상을 목격한 뒤 9년째 조선족 문화계를 돕고 있다. 폐간 위기에 처해 있던 계간지 ‘아리랑’이 발간될 수 있도록 도운 것을 시작으로, 헤이룽장(黑龍江)신문의 실화·수필상 공모,문화총서 ‘한마당’ 출간,옌볜작가협회 문학상,20세기 중국조선족문화사료전집(전 50권)출판 등을 후원했다.2000년부터는 조선어를 가르치는 백두산 아래 장바이(長白)현 오지의 소학교 어린이들의 기숙비를 지원하고 있다. 후원금은 대부분 자신이 대표로 있는 고려식품판매(주)에서 충당한다.하지만 시인은 부자가 아니다.조선족들을 돕기 시작한 뒤 회사 운영이 어려워져 아들은 대학을 중퇴하고 사업을 돕고 있으며,시인은 45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그토록 좋아하던 수상 스키마저 팔아버렸다.낡은 집도 8년째 고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인은 농부같은 소탈한 외모에 허름한 차림이다.한 옌볜 아주머니에게는 “도움 주시는 것 조금 줄이시고 옷 좀 해입으시면 안되나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옌볜 동포들에게 “몇푼 안되는 돈을 갖고와서는 인간으로서 지조와 존엄,순결성같은 소중한 정신을 한 짐씩 지고 간다.”고 얘기한다.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이자 광복 후에는 옌볜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故)김학철 선생과의 소중한 인연도 소개한다.이 시인은 지난해 옌지(延吉)시가 주는 ‘제2회 고마운 한국 지성인상’을 수상했다.8000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열린세상] 안중근, 김선일, 유영철/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교수

    장면 1. 2004년 7월13일 중국 하얼빈역.안중근 의사가 폭탄을 던진 현장이다.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통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폭탄을 던졌다.그래서 출구 근처에 혹시나 무슨 표시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다.그러나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다소 섭섭했지만 모두들 역사의 현장에 왔다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숙연한 모습이었다. 장면 2. 2004년 6월21일.텔레비전 뉴스에 이라크에서 납치된 김선일씨가 나온다.“나는 살고 싶다.나는 죽고 싶지 않다.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내지 말라.”고 절규하는 모습이다.다음날인 22일 김선일씨는 끝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가족들의 애통해 하는 모습이 화면을 장식한다.네티즌들의 반응이 요동친다.김선일씨 피살전에는 파병반대 의사를 밝혔던 사람들이 파병찬성으로 돌아선다.전투부대를 파병해서 이라크인을 응징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면 3. 2004년 7월18일.무려 21명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한다.얼굴을 푸른색 마스크로 가린 그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보도방 아가씨들이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합니다.”라고 입을 열었다.범죄 전문가들은 이번 연쇄살인이 ‘반사회적인 증오성 범죄’의 대표적 사례라면서 ‘피해자 규모’와 ‘잔인함’에 경악하는 분위기다.사형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세 장면은 모두 폭력의 다른 측면에 관한 것이다.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폭력을 자제해야 하지만,안중근 의사의 행동처럼 폭력의 사용이 불가피하고 정당한 경우도 있다.그러나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테러리즘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증오살인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이분법적 구별에 대해 생각해보자.‘안중근은 훌륭하고 이토는 나쁘다,김선일은 죄없고 테러단은 나쁘다.유영철은 악독하고 피해자는 불쌍하다.’이다.우리와 그들,친구와 적과 같은 이분법이 작용한다. 테러단,유영철은 극단적이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다.그러나 똑같은 불행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틀림없이 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테러단은 아마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또 그들은 이라크에서 일종의 의병 같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평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처럼 이분법을 넘어 글로벌 시민권의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보복적 민족주의,국가안보의 관점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삶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선일씨의 유족들이 추모식에서 “이라크를 용서합니다.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고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싶다.이번 연쇄살인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매도가 아니라 애도를 해야 한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실천하려는 마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지난 1월18일 미국전역에서는 마틴 루터 킹 날을 기념하여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시위가 있었다.“전쟁이 답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은 두고 두고 깊이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여러분이 폭력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면,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는 길고 어두운 고통의 밤을 맞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당신이 미래에 물려줄 주요 유산은 무의미한 혼란의 세상일 것입니다.” 마음속의 이분법과 폭력에의 유혹을 버리는 것,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일 것이다.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교수
  • [기고] 서울신문과 민족혼의 부활/오의교 3.1민족정신 선양회장

    망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한시바삐 깨어나야 한다.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현재 우리의 삶에 절실한 교훈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개국이념으로 인류사회에서 평화를 선도해 왔고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쳐 주었다.숭고한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민족은 너무도 선량했기에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많은 침해·약탈의 고통을 겪어왔고,아직도 지구상에 단 하나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숭고한 선열들의 인류평화 선도정신은 아예 포기하고 망각 속에서 갖가지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음은 선열들의 영령 앞에 너무도 죄스럽다.시급히 좌절과 포기·망각에서 깨어나 숭고한 선대의 큰 뜻을 이어받은 후예들로서 인류사회에 공헌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 이에 우리의 민족 정통언론인 서울신문은 새로운 언론문화의 선도자로서 헌신적인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일찍이(100년전) 숭고한 우리 민족혼을 담아 창립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강압으로 약탈당했고 그 뒤를 이은 서울신문은 광복 후 독재정권의 집권체제 유지에 악용되었기에 한때 국민에게 버림받은 신문이 되었다.이제 서울신문은 정통 민족신문으로서 부활하고자 발 벗고,팔 걷어올렸다.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문화는 한마디로 어지럽다.일부 언론사는 사명을 망각한 채 국리민복과 인류사회에 누가 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다.언론은 모름지기 국익과 민생복리 그리고 인류평화에 해가 되는 일들(편견·편파·선동성 보도)은 자제할 줄 알 만큼 성숙해야 한다.정도를 벗어난 보도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언론이 죄책감을 갖기는커녕 무책임한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이에 우리 민족의 정통신문인 서울신문은 민족혼을 담아 부활해야 한다.민족혼을 담아 언론의 정도(正道)로 나아갈 때 국민의 사랑을 받고 힘차게 날갯짓할 것이다.정통 민족신문으로서 국리민복,그리고 통일과 인류평화에 공헌하는 정겨운 신문으로 약진하기를 기대한다. 오의교 3.1민족정신 선양회장
  • [사설] 사형제 폐지 검토할 때 됐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또다시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15대,16대 국회에 이어 세번째 발의다.16대 국회에서는 재적의원의 반수가 넘는 155명이 발의에 서명을 했는 데도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해보고 말았다.보수적인 법사위의 문턱에 걸렸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 사형제도에 관한 국민의 인식은 크게 바뀌고 있다.본격적으로 폐지에 관한 검토를 시작할 때라고 본다. 사형제도는 국가라는 기구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제도살인’이다.사형폐지론자들은 이를 인간의 절대적 가치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으로 야만적이며 위헌이라고 주장한다.반면 사형존치론자들은 생명권이라 하더라도 필요한 경우 국가가 이를 제약할 수 있으며 범죄방지효과와 응보정의 차원에서 사형제도는 ‘필요악’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죽음이라는 공포에 의한 범죄방지 효과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응보론은 전근대적 형벌로서 교정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게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사형제도는 비록 미국과 일본이 존치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폐지 쪽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2003년 현재 전세계 112개국에서 사형제가 폐지됐으며 특히 유럽연합(EU) 45개국은 전시(戰時)라 할지라도 사형을 할 수 없도록 결정했다. 외국의 사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법감정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사형폐지 찬성 의견이 점점 늘어 50%에 육박해가고 있고 특히 사형제를 대체하는 절대적 종신형제가 도입될 경우 약 70%가 사형제폐지에 찬성한다는 국민의식조사(2001년) 결과는 참조할 만하다.전향적인 검토를 기대한다.˝
  •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유죄 확정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15일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최명진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그러나 대법관 13명 가운데 6명이 보충·반대의견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1·2심이 진행중인 유사한 사건들도 대법원 판결대로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지난 5월 서울남부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양심적 병역거부’사건은 법적으로는 일단락됐지만,시민사회단체 등은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대체복무제 입법청원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해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상 기본권은 공동생활을 영유하면서 모든 다른 법질서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면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이어 “남북분단이란 특수상황을 고려할 때 국방의 의무는 더욱 중요하다.”면서 “이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문제에도 재판부는 “입법자의 재량권”이라면서 “병역거부자에게 대체특례를 주지 않고 형벌만 부과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강국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내놓았다.그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할 때는 양심의 자유가 좀 더 존중되고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유지담 대법관 등 5명은 다수 의견에 동의하면서 별도 ‘보충의견’을 통해 “양심상 갈등을 덜어주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국방의 의무에 비견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최씨는 2001년 11월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영하라는 서울지방병무청의 현역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하지 않아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지난 4월 대법원에 상고했다.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조만간 재수감되게 된 최씨는 선고 직후 “대법원의 판결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면서 “병역 대신에 사회에 기여할 대체방법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충식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장애인 인권 귀막은 학교

    “정말 배우고 싶습니다.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나요.” 1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7층 인권상담센터.장애인교육권연대 윤종술(40) 공동대표와 도경만(35) 집행위원장이 장애인의 교육권 확보를 요구하며 열흘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교육받을 권리’라고 적힌 벽보가 붙어 있고,휠체어를 탄 노금호(22)씨 등 지체장애인 3명이 농성에 동참하고 있었다.노씨는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장애인의 교육권과 인권 침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교사 인식부족·시스템 부재 지난 5월 서울 강동구 A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B(12)군은 수련회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출발 당일 운동장에서 버스에 타려는 B군을 학년부장교사가 “데려갈 수 없다.”고 막았기 때문이다.당초 학교에서 반대하던 것을 특수교사가 나서 설득,간신히 허락을 받은 터라 B군 부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학교측에서는 출발하는 날 아침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시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요구했다.부모는 부장교사에게 거세게 항의했다.B군은 운동장에 나와 있던 전교생과 학부모들 앞에서 순식간에 구경거리가 돼버렸다.뒤늦게 교장의 지시로 부장교사가 사과를 했지만,B군 어머니는 “상처받을 대로 받은 아이에게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3월 경북 포항 C초등학교에 다니는 D(8)군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다.담임교사가 체육시간에 수업을 하러 나가면서 교실 문을 잠가 버린 것이다.장애인 이동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는 이 학교에서 교실 밖 수업을 할 때 종종 있는 일이었다.지체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D군은 갑자기 용변이 급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 교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결국 비명을 듣고 옆반 교사가 달려와 D군을 도왔다.장애 학생에 대한 전학 강요,비특수교사에 의한 특수학급 파행 운영 등 교육권 침해 사례로 셀 수 없이 많다.김주영 한국재활복지대학 교육연구사는 “이는 교사의 인식 부족과 시스템 부재 탓”이라면서 “교사 재교육을 강화하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강제하는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교육 제도 유명무실 지난 94년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인에 대해 초등·중학교는 ‘의무교육’,유치원과 고교 교육은 ‘무상교육’으로 명시하고 있다.그러나 보건사회연구원이 5년마다 발표하는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53.3%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교육을 받고 있다.장애인교육권연대에 따르면 전체 학령기 장애인 24만명 중 75%가 가정이나 보호시설 등에 방치돼 있다. 도 집행위원장은 “예산 부족과 의지 결여가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지난해 교육부는 장애아동 교육지원비로 책정한 273억원을 기획예산처로부터 전액 삭감당했다.이후 64억원을 재배정받았다.장애인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500만∼1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지난해 9월 이미경 국회의원과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조사에서는 전·입학할 때 학교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장애 학생이 30%에 달했다.거절당한 횟수는 57.8%가 1∼2차례였으나 23.3%는 3∼4차례,18.9%는 5차례 이상이나 됐다. 때문에 장애 학생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학부모들은 하소연했다.지난달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장애 학생의 학부모 2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4.8%가 매달 30만∼90만원,37.9%가 30만원 미만,7.3%가 9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부는 “2007년 완성되는 특수교육발전 종합계획에 따라 중단기 정책을 추진중”이라면서 “재원과 인력이 뒤따라야 하는 만큼 관련 부처와 협력해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강창욱 강남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장애인 교육만큼은 경제논리보다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日 “중국인 강제 징용자에 배상” 첫 판결

    |도쿄 이춘규특파원|태평양전쟁 중 강제연행돼 중노동을 강요당했던 중국인들에게 일본 고등법원이 원심을 뒤집고 배상판결을 내렸다.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9일 태평양전쟁 기간 히로시마현 가케초의 발전소 건설을 위해 강제 연행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다며 중국인 2명과 유족 3명이 니시마쓰 건설을 상대로 한 2750만엔(약 2억 7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판결을 취소,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스즈키 사토시 재판장은 “중대한 인권침해이고,10년의 시효를 원용하는 것은 권리의 남용”이라며 청구를 기각한 1심 결정을 취소하고 니시마쓰 건설에 2750만엔의 지불을 명령했다.중국인 강제 연행 소송은 전국에서 10건이 계류 중이지만,고등법원이 2차대전 중 강제징용 관련 재판에서 배상 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이번 판결은 일본 전국에서 진행 중인 비슷한 사건의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시효와 제척기간 등을 내세워 전후 보상책임을 회피해온 일본정부와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장에 따르면 송모(75)씨 등 중국인 5명은 1944년,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강제연행된 뒤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충분한 식사도 주어지지 않은 채 터널 굴착 공사에 종사했다. 1심인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2002년 7월,“열악한 환경으로 장시간의 노동을 강제하는 등 인간의 존엄과 명예를 돌아보지 않았다.”라고 니시마쓰건설의 불법 행위(강제 연행,강제 노동)와 안전 배려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그러나,불법 행위에 대해서,손해배상 청구권이 존속하는 ‘제척 기간’(20년)이 지났다고 해,안전 배려 의무 위반에 관해 ‘소멸 시효’(10년)가 성립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taein@seoul.co.kr˝
  • 의문사위·퇴역장성 날 세운 설전

    남파간첩과 빨치산의 민주화운동 인정 여부를 놓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퇴역장성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의문사위 회의실에서 1시간10분 남짓 진행된 면담에서는 시종 항의와 반박,설전이 이어졌다. 이 자리는 남파간첩 등에 대한 의문사위의 ‘민주화운동 인정’ 결정 직후 퇴역장성 모임인 ‘성우회’가 결정 철회를 요구하며 의문사위에 면담을 요청해 마련됐다. ●남파간첩이 민주화 인사인가 이들은 한상범 위원장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의 건강에 대해 덕담을 나눴지만,면담장에 마주 앉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오자복 성우회 회장은 공개질의서를 읽으며 “비전향 장기수들이 죽는 순간까지 신봉했던 지상의 가치는 공산주의 1당 독재였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죽음이 민주화운동이냐.”고 따졌다. 그는 “1기 의문사위에서 기각된 것을 2기에서 인정한 것은 국가의 기초를 부인하는 논리적 모순”이라며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한때 공산주의에 빠졌다고해서 영원히 법 밖에 두고 고문할 수 있다는 논리는 법치주의가 아니다.이런 사람들도 법의 보호 규정 안에서 다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세계관에 대한 심사는 국가의 권리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결정을 공산주의를 찬성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의문사위 해체 등을 주장하면서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정문과 사건내용,법률 등을 꼼꼼히 참고해 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희수 의문사위 제1상임위원도 “헌법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의 최고의 가치는 인간답게 살 권리”라면서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그들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남파된 사람들”이라면서 “그들이 민주화 인사면 김일성·김정일은 민주화운동의 대부고 호국용사들은 반민주 인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위원장은 “단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생산성도 없다.”면서 “남파 간첩이었던 김창순씨는 북한문제연구소장이 됐고,빨치산 출신 이우태씨는 민주산악회 활동도 하고 국회의원도 했다.”고 예를 들었다. 이 회장이 지지 않고 “그들은 전향을 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자, 한 위원장이 “전향제도는 이미 폐지됐고 UN인권위,미 국무부,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 등에서도 부당함을 지적했다.개인의 사상이나 양심을 심사하는 것은 국가의 권한이 아니다.”라고 재반론을 펼쳤다. 이기욱 의문사위 위원도 “역지사지의 자세도 필요하다.”면서 “북파 간첩이 붙잡혔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그러나 그 사람이 전향을 강요당하며 고문당했고 이에 저항했다면 북한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식·감정에서 납득할 수 없어 김인기 공군전우회장은 “법리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선에서 논하는 것”이라면서 “장기수들의 억울한 죽음에는 동의하지만 이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법보다 상식이 편리하지만 상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지 않으냐.”면서 “우리의 결정도 빨갱이나 좌익을 존중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 회장은 “하지만 해를 끼친 게 더 크지 않으냐.”면서 “작은 공로가 있다고 해서 민주화 인사로 인정하는 건 납득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이 위원은 “이번에(위원회 결정이) 4대3으로 나온 점을 주목해 달라.”면서 “여러분과 논리나 논거가 다를지는 몰라도 반대 견해도 있었고,어찌 보면 죄가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지만,죽음으로 항거했다는 것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정인균 성우회 사무총장은 그러나 “법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있다.그들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를 전복하러 온 적이고 그들과 북한의 다른 동포,민족은 구별해야 할 것이며 국민에겐 법 이전에 감정이 있다.”면서 “이런 것을 모르니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호통을 치자 의문사위측에서도 “표현을 삼가라.”라고 맞받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편 대한상이군경회 등 보수인사들은 의문사위 앞에서 항의농성을 벌였다.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의문사위 위원장 체포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일간지에 내겠다.”고 주장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의문사위·퇴역장성 날 세운 설전

    의문사위·퇴역장성 날 세운 설전

    남파간첩과 빨치산의 민주화운동 인정 여부를 놓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퇴역장성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의문사위 회의실에서 1시간10분 남짓 진행된 면담에서는 시종 항의와 반박,설전이 이어졌다. 이 자리는 남파간첩 등에 대한 의문사위의 ‘민주화운동 인정’ 결정 직후 퇴역장성 모임인 ‘성우회’가 결정 철회를 요구하며 의문사위에 면담을 요청해 마련됐다. ●남파간첩이 민주화 인사인가 이들은 한상범 위원장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의 건강에 대해 덕담을 나눴지만,면담장에 마주 앉자 분위기는 돌변했다. 오자복 성우회 회장은 공개질의서를 읽으며 “비전향 장기수들이 죽는 순간까지 신봉했던 지상의 가치는 공산주의 1당 독재였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죽음이 민주화운동이냐.”고 따졌다. 그는 “1기 의문사위에서 기각된 것을 2기에서 인정한 것은 국가의 기초를 부인하는 논리적 모순”이라며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한때 공산주의에 빠졌다고해서 영원히 법 밖에 두고 고문할 수 있다는 논리는 법치주의가 아니다.이런 사람들도 법의 보호 규정 안에서 다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세계관에 대한 심사는 국가의 권리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결정을 공산주의를 찬성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의문사위 해체 등을 주장하면서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정문과 사건내용,법률 등을 꼼꼼히 참고해 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희수 의문사위 제1상임위원도 “헌법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의 최고의 가치는 인간답게 살 권리”라면서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그들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남파된 사람들”이라면서 “그들이 민주화 인사면 김일성·김정일은 민주화운동의 대부고 호국용사들은 반민주 인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위원장은 “단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생산성도 없다.”면서 “남파 간첩이었던 김창순씨는 북한문제연구소장이 됐고,빨치산 출신 이우태씨는 민주산악회 활동도 하고 국회의원도 했다.”고 예를 들었다. 이 회장이 지지 않고 “그들은 전향을 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자, 한 위원장이 “전향제도는 이미 폐지됐고 UN인권위,미 국무부,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 등에서도 부당함을 지적했다.개인의 사상이나 양심을 심사하는 것은 국가의 권한이 아니다.”라고 재반론을 펼쳤다. 이기욱 의문사위 위원도 “역지사지의 자세도 필요하다.”면서 “북파 간첩이 붙잡혔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그러나 그 사람이 전향을 강요당하며 고문당했고 이에 저항했다면 북한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식·감정에서 납득할 수 없어 김인기 공군전우회장은 “법리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선에서 논하는 것”이라면서 “장기수들의 억울한 죽음에는 동의하지만 이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법보다 상식이 편리하지만 상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지 않으냐.”면서 “우리의 결정도 빨갱이나 좌익을 존중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 회장은 “하지만 해를 끼친 게 더 크지 않으냐.”면서 “작은 공로가 있다고 해서 민주화 인사로 인정하는 건 납득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이 위원은 “이번에(위원회 결정이) 4대3으로 나온 점을 주목해 달라.”면서 “여러분과 논리나 논거가 다를지는 몰라도 반대 견해도 있었고,어찌 보면 죄가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지만,죽음으로 항거했다는 것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정인균 성우회 사무총장은 그러나 “법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있다.그들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를 전복하러 온 적이고 그들과 북한의 다른 동포,민족은 구별해야 할 것이며 국민에겐 법 이전에 감정이 있다.”면서 “이런 것을 모르니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호통을 치자 의문사위측에서도 “표현을 삼가라.”라고 맞받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편 대한상이군경회 등 보수인사들은 의문사위 앞에서 항의농성을 벌였다.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의문사위 위원장 체포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일간지에 내겠다.”고 주장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EU 대통령·외무장관직 신설

    |파리 함혜리특파원|유럽연합(EU) 최초의 헌법안이 확정됐다.EU 25개국 정상들은 지난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담 마지막날 EU 헌법안에 합의함으로써 유럽 통합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는 EU 헌법안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년여만이다.최대의 쟁점이었던 이중다수결제도가 의장국 아일랜드의 중재안으로 타결되면서 나머지 주요 쟁점 사안들도 합의됐다.EU 정상들은 그러나 이번 회담의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차기 EU 집행위원장 선출에는 실패했다. 전문과 4개의 본문 등 모두 6개 부분으로 구성된 이 헌법은 25개 회원국 모두가 자국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발효된다.영국 등 일부 국가는 EU 헌법 채택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회원국 의회 비준 거쳐야 발효 이번에 구속력있는 행정부를 구성하는 EU 헌법안을 채택함으로써 EU는 앞으로 독자적인 조약을 체결하거나 국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특히 EU 대통령직과 외무장관직이 신설되면서 국제무대에서 EU의 대표성과 외교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EU의 순번의장국인 아일랜드의 버티 아헌 총리는 헌법안이 채택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합된 유럽을 위한 토대의 진전을 이루었다.이는 유럽과 모든 유럽인을 위한 위대한 성취”라고 평가했다. 중요 정책과 규정의 채택은 전체 4억 5000만 인구의 65%와 25개 회원국 중 15개국(60%) 이상이 지지해야 한다.또 전체 인구의 35%,4개국 이상의 동의로 의제 채택을 반대할 수 있다. 25개 회원국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도 표현되는 대통령직 신설로 순번의장국은 없어지며 집행위원장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EU대통령은 25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2년 6개월로 1회 연임이 가능하다.5년 임기의 외무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한편 집행위 부위원장으로서 대외적으로 EU의 외교·안보를 대표하며 협상한다. ●상호방위원칙도 명시 이탈리아와 폴란드 등이 요구했던 ‘기독교적 전통’ 명시는 기각됐다.대신 헌법은 유럽의 문화적,종교적,인도주의적 유산의 정신으로부터 EU가 비롯된다고 언급했다. 재정적자가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길 경우 집행위가 벌금 부과 등 제재할 수 있는 안정·성장협약 상의 권한을 유지한다. 현재 732명인 유럽의회 의원 수를 추후 가입국 확대시 750명까지 증원할 수 있다.인구가 작은 나라들에도 최소한 6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보장한다.회원국 가운데 하나가 공격받을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개입하는 상호 방위원칙도 명시했다. 이와 함께 EU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민주주의,평등,법의 지배와 인권 존중에 기반해 건설됐음을 명시하고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생명과 보호,교육,노사 단체교섭 등에 이르기까지 50개항의 기본권을 천명했다.회원국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파란색 바탕에 12개의 노란 별이 그려진 기존 EU기(旗)는 유지한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EU의 노래로,유로화를 공용화폐로 유지하며 매년 5월9일을 유럽의 날로 정하고 ‘다양성 속의 통합’을 추구한다. lotus@seoul.co.kr˝
  • [자문위원 칼럼] ‘인격권’ 강화에 대비해야/이재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법무부는 민법 개정안 총칙에 인격권 조항을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서울신문 6월 5일자 7면 보도〉.인격권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법체제에서 널리 이용되기는 했지만 법규정에 명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법 개정안 제1조2(인간의 존엄과 자율)는 제1항에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를 좇아 법률관계를 형성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 ‘사람의 인격권은 보호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그동안은 판례를 통해 인격권이 인정되어 온 반면 민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로 프라이버시권,명예권,초상권이 인정을 받게 된다.즉,이는 인격권이 민법상 신체,생명,재산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법무부의 조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요구에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앞으로 남은 것은 인격권 보호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어떠한 판례들을 내놓는가 하는 것이다.즉,추상적인 권리를 법률로서의 개념으로 명확히 함으로써 인격권 보호를 둘러싼 기본권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게 되었다.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민법 개정으로 인하여 프라이버시권이나 초상권 등의 침해에 따르는 소송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소송의 증가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역시 언론이 될 것이다.즉,언론은 현재 명예훼손 소송과 아울러 여타 인격권 관련 소송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소송이 증가하게 되면 소송을 치르기 위한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며 비록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언론에 주어지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 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주 서울신문의 지면에서는 이와 관련된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굳이 예를 들자면 6월4일자 11면의 ‘노출의 계절’이라는 제목과 함께 3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의 경우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법적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언론의 보도를 정확하게 하고 공익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다.현행 명예훼손죄의 경우에는 위법성조각 사유로 진실과 공익성을 규정하고 있다.즉,내용이 진실하고 공익적인 것이라면 명예훼손의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프라이버시권이나 초상권의 경우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침해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송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즉,내용이 진실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사가 개인의 사생활을 함부로 들추어낸다든지 초상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기사의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문제된다.또 언론의 성격상 모든 취재원이나 보도대상의 동의를 얻기도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사생활이나 이미지가 대중의 관심이 되는 연예인들과 관련한 기사의 경우에는 이와 관련된 다툼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격권 보호를 강화하고 그 보호의 범주를 넓혀가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지속적인 목표이며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는 인권보호라는 입장에서 볼 때도 합목적적이라고 하겠다.여기에는 언론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도에 있어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인격권 보호를 위하여 다른 기본권,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절한 비교형량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오히려 이들 기본권들이 서로 제고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를 더 많이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재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 ‘인격권’ 민법에 명문화

    법무부는 이달 중 입법예고할 민법 개정안 총칙에 ‘인격권 조항’을 신설했다고 4일 밝혔다. 그동안 인격권 관련 조항은 최상위법인 헌법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고 추상적으로 담겨 있었지만 실정법에 명문화된 것은 처음이다. 민법 개정안 제1조 2(인간의 존엄과 자율)는 1항에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좇아 법률관계를 형성한다.’고 규정하고 2항에 ‘사람의 인격권은 보호된다.’고 명시했다. 인격권은 생명,신체,자유,성명에 관한 권리처럼 권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권리로 사생활(프라이버시)보호권,초상권,명예권 등이 여기에 속한다.인격권 보호가 민법에 명시되는 것은 재산권 못지않게 인격권도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사회적 인식의 발전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개정 과정에서 인격권 보호를 구체적으로 실효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지만,상세한 것은 판례로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선언적 조항만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인격권 보호가 명문화되면 앞으로 초상권 등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인격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판결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밖에 전·월세 계약이 끝나면 집주인은 세입자가 미리 낸 보증금 가운데 밀린 월세와 관리비 등을 정산한 나머지 전액을 돌려줘야 하는 규정과 집을 사기로 계약한 뒤 하자를 발견하면 곧바로 매매대금을 줄여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감액청구권’ 등도 담고 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獸刑’생활 국가 배상

    466일 동안 금속·가죽 수갑에 묶인 채 생활한 교도소 수감자에게 국가가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도 비슷한 소송을 낸 상황이라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단독 정재우 판사는 3일 특수강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탈주를 시도한 정모(41)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의 신체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침해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씨는 지난 99년 11월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된 뒤 특수강도 혐의가 추가됐다.그는 2000년 2월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던 중 공범 2명과 미리 준비한 흉기로 교도관을 찌르고 탈주했다가 2주일만에 검거됐다. 광주교도소에 재수감된 이후 정씨는 금속 수갑 2개와 가죽 수갑 1개에 묶인 채 0.8평 징벌방에서 수감생활을 했다.당시 그는 발가락 골절과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었다.이듬해 4월 목포교도소로 이감된 그는 466일만인 그해 6월18일 비로소 수갑에서 풀려났다. 정씨는 처음 26일 동안 단 한차례도 수갑을 벗지 못했고,이후 1주일에 30분∼2시간 정도 탄원서나 소송서류 작성,목욕·세탁 등을 위해 수갑에서 풀려났을 뿐이다.그 외에는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가죽띠로 감아 허리에 고정시키고,양 손목에 다시 쇠고랑을 묶는 상태로 생활했다. 2001년 정씨는 헌법재판소에 ‘금속·가죽 수갑의 무리한 사용은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지난해 12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금속·가죽 수갑은 필요에 따라 최소한도로 사용돼야 한다.”면서 “광주·목포교도소장 등이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에 국가는 원고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전국 교정시설이 규정 밖의 가죽 수갑 사용을 금지토록 법무부에 권고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씨줄날줄] 노동의 종말과 미래/우득정 논설위원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첫해,청와대 비서실은 개혁의 당위성을 확산시키기 위해 ‘불씨 나누기’ 운동을 펼쳤다.일본 에도시대 봉건 번주 우에스기 요잔의 일대기를 담은 ‘불씨’라는 책 돌려 읽기가 그것이었다.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을 헤치고 한걸음씩 내딛는 김영삼 대통령의 상황이 우에스기 요잔과 흡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그래서 당시 개혁주도세력들은 ‘불씨’의 저자 도몬 후유지가 쓴 또 다른 개혁 소설 ‘51대 49’를 인용하면서 명분과 역사의식에서 ‘51’을 점유한 개혁파가 ‘49’의 반발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환위기의 파고를 타고 닻을 올린 국민의 정부는 사상 유례없는 대량 실업사태,고용 불안 등을 뛰어넘는 희망의 메시지를 로마클럽 보고서인 ‘노동의 미래’(오리오 기아리니·파트릭 리트케 지음)에서 찾으려고 했다.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15 경축사에서 재임기간 동안 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사실상 완전 고용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복음’의 핵심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로 인해 완전 고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마클럽 보고서는 1995년 발간 이후 전 세계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에 대한 반박문 성격이 짙었다.리프킨은 185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기계화,자동화,정보화가 블루칼라,화이트칼라,중간 관리층의 일자리를 급속히 없앤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대량 실업과 전 세계적인 빈궁,사회적 불안이 미래의 암울한 모습임을 예고했다.‘노동의 종말’은 당시 외환위기 국면과 맞물려 한국의 식자층 사이에 불길한 전조처럼 확산됐다.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고용없는 성장’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리프킨의 예언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가진 뒤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정권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제3의 길’의 작가 앤서니 기든스가 쓴 ‘노동의 미래’을 선물하면서 일독을 권했다고 한다.이번에야말로 리프킨이 드리웠던 종말론에 마침표를 찍을 해답을 기대해 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임영숙 칼럼] 탄핵, 그리고 5·18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이후 첫외부행사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와 탄핵을 이렇게 연결했다.“지난 3월 촛불시위를 TV로 보면서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평화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그것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되 민주적인 행동도 포기하지 않았던 5·18 광주의 전통이 국민 가슴속에 살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5월’ 또는 ‘광주’로 그냥 표현되기도 하는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대장정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다.80년대 운동권을 지배하는 화두였던 ‘광주’는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다시 지난해와 올해의 시청앞·광화문 촛불시위에 보통 사람들을 참여시킨 숨은 동력이었다.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이를 “너 지금 그 자리에 있는가”란 물음으로 압축한다.민주화 투쟁이전에,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의 자리에 지금 참여하고 있느냐는 준엄한 질문이다. 2004년 3월12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역시 1980년 5월 광주처럼 일어나서는 안 될 국가적 불행이었지만 한국 민주주의 성숙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국회의 탄핵안 가결에서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에 이르기까지 63일간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어둡고 긴 터널이었으나 전화위복의 결과를 안겨 주었다.무리한 대통령 탄핵은 우선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다.평화적인 촛불시위와 별다른 혼란없이 국회 판갈이를 이뤄낸 총선은 시민사회의 성숙과 함께 민주주의 주체는 국민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무엇보다 헌법적 질서와 체계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법치주의를 되새기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고 법의 결정에 승복하는 훈련을 온 국민이 제대로 받으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단계 성숙한 셈이다.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문은 특히 헌법의 존재와 헌재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주었다.교과서에 실린 추상적 개념으로만 기억돼 온 헌법과 삼권분립의 정신이 일상속의 구체적 사실로 가슴에 와닿게 했다.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은연중 무시되기도 했던 헌법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만들었다.대법원과 비교돼 한때 헌재 무용론이 제기된 적도 있지만 탄핵기각 결정문은 딱딱하고 난해한 판결문에 익숙한 이들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만큼 명문장이었다.결정문을 낭독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얼굴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대통령이 헌법을 경시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임을 서릿발 같이 지적했다. 그러나 쉽게 망각하는 우리 국민이 탄핵을 통해 얻은 법치주의의 교훈을 얼마동안이나 기억할까.5·18기념식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비표없이 검색대를 통과하려다가 제지 당하자 거칠게 항의했다는 것은 사소하고 경미한 일이지만 그 교훈이 아직 행동을 바꿀 만큼 체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광주’와 탄핵은 민주화와 법치주의의 길을 열었다.민주화의 대장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법치주의 또한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이제 우리가 할 일은 탄핵의 교훈을 쉽게 잊지 말고 법치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다.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일반국민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부터 헌법을 다시 읽고 법치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면서 습관적인 위법행위들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법정기일내에 처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예산안이나 지구당 폐지 문제 등만 해도 국회의원들의 법의식수준을 보여준다.소수의견 공개 여부로 논란이 된 헌재법 36조 3항을 비롯,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법률적 미비점 등을 정비하는 기술적 보완도 시급한 일이다. 주필ysi@˝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0)왕은이골의 노래

    “이웃끼리 서로 돕는 형세는 생각하지 않고 창칼 휘둘러 날마다 전쟁만 일삼는구나 그 굳세던 성벽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성 위엔 당나라와 신라군 깃발뿐이네. 노래와 춤 가락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름다운 구슬 다시는 아름다움 못 다투네 가련타,물고기 창자 속에 서린 꽃다운 넋들이 봄바람 강물 위에 꽃으로 지고 있네.” -시인 이삼탄 조선 성종 때 시인 이삼탄은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낙화암에 올라,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킨 역사를 아파하면서 이 시를 남겼다.오늘은 이 시의 배경이 된 역사 유적 중 하나인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로 여행을 떠난다. 백제 유적 답사 여행자들에게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거니와 술 마시고 떠드는 관광객 부대들에는 전혀 재미없는 곳이기도 하다.하지만 부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서는 안된다. ●부여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토박이말 지금의 부여가 백제 시대에는 ‘소부리’ 또는 ‘사비’로 불렸는데,사비는 본디 새벽이라는 토박이말이고,지금의 이름 부여도 본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토박이말이었다고 한다.이 토박이말에 나중에 한자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하는데,부여를 제대로 부르자면 새벽의 땅,아침의 땅이라 해야 옳다.그런 부여에 가서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눈에 보이고,손끝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느끼려는 조급함,옹졸함,속좁음을 지긋이 누르고 눈을 감은 채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세상의 절반 혹은 좀 더 많은 부분이 눈에 안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부여땅 역사와 문화도 그러하다.그래서 부여 여행은 단순한 지도 위의 한 지점을 둘러보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으로의 고요하고 깊은 명상과 아름다움을 향한 구도여행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나 신라 역사 문화 유적들은 대부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보고 느끼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백제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망해도 깡그리 망해버린 탓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박살나버린 백제가 조각조각 흩어져 흙 속에 매몰되었거나 강물에 휩쓸려 가버리고,남아 있는 몇몇 흔적에는 망한 나라의 백성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수모와 굴욕의 날들이 숨어 있다. 오늘 여행지 왕은이골은 규암면에 있다.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와 마주보고 있는 규암면에는 규암나루가 있는데,부여를 드나드는 사람이나 생활물자가 모두 이 나루를 건넜었지만 오늘날 규암나루는 민물고기 낚시터로 변해 있다.백마강에서 낚은 장어 잉어로 매운탕을 만들어 빼어난 강의 경치를 즐기며 소주잔을 기울이게 하는 매운탕집도 몇 군데 보인다.매운탕 그릇에 담긴 물고기 창자 속에는 백제 멸망 때 떼죽음 당한 백제인들의 꽃다운 넋들이 서려 있을까? 시인이 절규했던 그 노래를 되뇌며 백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시내를 따라 오르면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에 닿는다.지금은 민가가 몇 채 서 있고 논과 밭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 소박한 모습인데,그 유명한 왕흥사(王興寺)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나당연합군의 공격이 얼마나 잔인했던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폐사지 중 하나다. ●2대 30년에 걸쳐 세워진 호국사찰 왕흥사 법왕(法王)은 그가 죽던 해인 600년 정월 이곳에다 절터를 정하고 왕흥사라 부르게 했다.그 해에 법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되었으니,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아버지다. 무왕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그동안 약화된 왕권을 안정시키고 신라에 계속 밀리기만 하던 전선을 정복전쟁으로 전환시키면서 승리를 구가한 영웅적인 군주였다.국내 정치의 안정을 발판 삼아 강화된 왕권의 표징이자 존엄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역사를 단행했는데,630년 백제의 중심적 사찰로 평가받은 웅장하고 화려한 왕흥사를 완성시킨 것도 대역사 중 하나였다.아버지 법왕이 착공해 놓고 죽자 아들 무왕이 이를 이어받아 30여년 만에 완성시킨 왕흥사는 이름에서 암시되듯 왕이 공사를 직접 챙겼고,몸소 불공을 드리는 곳이어서 왕실의 원찰이자 왕과 특별한 관계를 지녔던 사원이었다. 왕흥사는 작은 강물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지어졌다.단청은 화려하고 장식은 장엄하였다.무왕은 자주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했다.백제가 고구려와 신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정복하게 되기를 빌었다. 하늘 고요하고 맑은날 왕흥사는 언덕 아래의 호수에 비쳐 신비감을 자아냈다.물에 비친 왕흥사의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장엄은 땅 위의 것이 아니라 물 속 깊은 어느 다른 세계의 것인 듯 환상적이었다.무왕은 때때로 작은 배를 타고 천천히 노를 저어 물에 비친 왕흥사로 다가섰는데,노젓는 흔적으로 호수에 잔물결이 일면 왕흥사도 따라서 잔물결졌다.무왕은 배를 멈춰 세웠다.다시 고요해진 수면 위엔 왕흥사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고 왕은 배 위에서 향을 사르고 예배하기도 했다. 절과 호수를 사이에 둔 맞은편 언덕에는 널따란 바위가 놓여 있었다.무왕은 절에 가기 전 먼저 이 바위에 올라서서 물에 비친 왕흥사를 바라보며 예배를 올렸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자온대(自溫臺)라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엔가 기대고 싶어하듯이 무왕도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비록 신라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승리를 계속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왕흥사 부처님께 간곡한 기도를 하는 이유였다. 멈춰서는 안된다고 느낀 무왕은 새로운 백제의 웅비를 꿈꾸면서 사비성(泗泌城) 시대를 지나 새로운 익산(益山) 시대를 열기 위해 익산 천도를 계획했다.엄청난 경비와 시간을 쏟아 부어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익산 천도를 통하여 귀족세력을 재편성함으로써 새로운 인물 중심으로 집권체제를 갖출 계획이었다.국보 제11호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미륵사 7층 석탑을 동서 상탑으로 세우면서 불교의 원력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제압하고 백제 중심 통일국가를 꿈꾸었다.미륵사지 석탑에는 백제 후반 백제인들의 소망이 녹아 있는 셈이다.그러나 무왕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아들이 뒤를 이어 의자왕이 되었다. 의자왕은 옳은 충고를 하는 어진 신하를 박해함으로써 나라를 잃게 되었다.신라의 무열왕과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술을 따르는 수모를 겪으며 당나라로 끌려가서 죽었다.백제인들은 왕흥사를 거점으로 하여 침략군에 항거했다. 그러나 항전 7일 만에 무열왕에 의하여 절은 부숴지고,불타고 깨어져 폐허로 변했다.그 때 수많은 여염집 여자들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능욕당한 뒤 죽었거나 죽지도 못한 여인들은 당나라 군인들의 씨를 받아야 했다. ●백제 부흥세력, 왕흥사 거점으로 항거 당나라 군사왈패들은 국보 9호 정림사 오층석탑 기단부에다 ‘대당평제탑(大唐平濟塔)’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뒷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탑을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세운 전승기념탑이라 왜곡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는 부여에다 유달리 눈독을 들여 신궁을 세우려 했다.왜냐하면 일본 아스카문화의 고향이 바로 백제시대 부여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침략군에게 짓밟혀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백제땅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드물지만,상처를 지닌 채 남아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왕흥사 옛터에 뒹구는 깨어진 기왓장 조각들,민가가 들어선 여기저기 슬프게 드러나 있는 주춧돌들,논밭으로 변해버린 ‘쇠대박이’란 이름에서 그 아름답던 왕흥사의 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소리를 깨달아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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