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인간성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문화산업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태평양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北 제재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실수요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53
  • [문화마당] 문화로 꽃피는 녹색성장 꿈꾸며/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문화마당] 문화로 꽃피는 녹색성장 꿈꾸며/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는 그리스 지중해의 외딴섬 앞 아름답고 짙은 바다를 배경으로 감미로운 노래인 ‘난 꿈이 있어요’로 시작한다. 또한 주인공인 도나의 딸 소피가 자유와 꿈을 찾아 이 바다로 낭만적인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그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초 혜성처럼 등장한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 그룹인 아바의 환상적인 음악과 함께 젊은 시절의 자유에 대한 갈망, 상처와 현실, 그리고 식지 않는 사랑으로의 끝없는 추구와 항해를 그려내고 있다. 거의 동시에 가졌던 세 연인과의 자유로운 혼전관계, 누가 아버지인지도 모르는 애를 홀로 키우는 엄마, 결혼식에서의 급작스러운 파혼 선언, 개개의 감성에 충실한 개인주의와 즉흥주의의 파급 등 영화 ‘맘마미아’는 1960년대 말에 유럽에서 탄생한 ‘68세대’의 파격적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68세대는 이처럼 이전의 전통적 생활양식과 사회 철학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특히 당시는 극단적 냉전시대였고 베트남전 등의 전쟁 기운이 세계도처에 감돌고 있었다. 서구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의 반전데모가 극심하였고 기술발전이 가져다 준 대량살상과 전쟁에 대한 회의가 증폭되어 갔다. 68세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만한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는 1970년대 초의 석유파동과 지구환경 파괴에 대한 ‘친환경 녹색운동’을 태동시킨다. 이 운동은 생활전반에 퍼져 나갔고 급기야 독일에서는 1979년에 환경보호와 반핵운동을 그 정치적 중심철학에 둔 ‘녹색당’이 창당된다. 이러한 녹색운동의 포문을 연 것은 무엇보다도 독일의 건축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2년의 독일 뮌헨올림픽 경기장이다. 이곳에는 주경기장, 실내체육관, 실내수영장 등의 스포츠시설, 호수 그리고 동산 등의 공원을 조성하였다. 설계를 맡은 ‘베니슈와 파트너(Behnisch&Partner)’는 자연과 완전히 동화되는 유기적 형태의 스포츠종합공원을 배치하였다. 특히 스포츠시설들의 구릉형 건축선과 가볍고 자연스러운 형태는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구조건축가 ‘프라이 오토’의 경량 막구조는 전 세계의 이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마치 잠자리의 날개나 나뭇잎을 연상시키는 막구조의 지붕형태는 언제 보아도 경이롭기만 하다. 이뿐 아니라 여러 개의 스포츠시설과 외부 공간을 연속적으로 덮고 있는 막구조는 인공적으로 만든 ‘건축적 자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 건축은 68세대가 지향한 다양한 언어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은 인간, 자연, 기술의 반목이 아닌 서로 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는 산업이 죽음과 파괴의 도구가 아닌 삶을 위한 인공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인간의 휴식, 웰빙, 인간성 회복에 기여함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막구조의 생물학적 투명성은 음침한 독재와 전쟁을 극복한 빛나는 민주주의 정신을 찬미하고 있다. 이처럼 녹색운동은 문화와 삶의 철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저탄소녹색성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즉 녹색기술 개발, 신재생에너지 개발, 4대강의 생태적 개발사업 등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를 통해 신성장경제동력과 일자리 창출을 꾀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 흐름을 살펴볼 때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진정한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히 녹색 부처의 설립, 투자, 기술개발, 산업진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서 설명한 대로 녹색운동은 삶과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문화운동이어야 한다. 심지어 녹색문화운동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전반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녹색강국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말 없음의 시’라고 할까. 침묵 너머의 소리를 전하는 ‘깨달음의 시’라고 해야 할까. 한국 여성 시단의 최고 원로인 김남조(82)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묵시(默詩)’라는 화두를 던졌다. “세월 깊어져 지금은 침묵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할 말들이 그치진 아니합니다.” 60년 가까이 시업(詩業)을 이어온 이 노성한 시인에게 아직도 시로써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제 시인은 하고 싶은 말들을 침묵, 아니 그 이상의 언어로 전하려 한다. 서울 효창동 비탈의 하얀 단독. 창밖 백목련 그림자가 우련히 비쳐 드는 2층 응접실에서 만난 시인은 예의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 이후 지금까지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내며 불굴의 시혼(詩魂)을 살라온 천생 시인. 얼마 전에는 한지에 요즘 보기 드문 납활자를 사용한 수제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시는 땀과 눈물의 수제품”이라고 믿는 그이기에 이처럼 공력이 든 활판시집이 더없이 맞춤해 보인다. 시집에는 그동안 써온 1000여편의 시 중에서 가려 뽑은 100편의 작품이 실렸다. “무릇 좋은 시란 영혼성이 깃들어 있는 시, 예언적인 시라고 생각해요. 시의 하늘은 종국에는 그런 데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최근 젊은 시를 호명하는 용어로 굳어진 ‘미래파’ 시에 대해서는 사뭇 마뜩잖은 표정이다. “‘형의 두개골을 파먹고… ’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게 이른바 미래파라는 건데, 요즘 시가 점점 기괴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불온한 서정의 섬뜩한 시가 아닌 순연한 정조(情調)의 따뜻한 시를 지켜 나가자는 것이다. 김 시인에게 시는 영혼 혹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 영혼이란 육체와 따로 노는 영혼이 아니다. 늘 육체와 함께하는 영혼, 육체를 입은 영혼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사변적일지언정 공허하지 않다. 좀처럼 관념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유정함, 종교적인 경건함, 만유에 대한 감사, 세상과의 화해·용서의 마음”이 생생한 시어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참담한 영혼의 고통을 맛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다. ●자신의 시대 업신여기는 건 모순 시인은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한국전쟁의 참화도 몸소 겪었다. 처녀 시집 ‘목숨’은 그 전쟁의 와중에 탄생했다. 표제시 ‘목숨’에는 시인의 고단했던 삶의 한 자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산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중략)반만 년 유구한 세월에/가슴 틀어박고/매아미처럼 목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이 모두 하늘이 낸 선천의 벌족(罰族)이더라도/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그래도 죽지만 않는/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시름겨운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참혹한 상황, 시인은 오죽하면 ‘벌족’이라는 말을 썼을까. “지금 우리 삶이 힘들지만 식민지 시절보다 슬프고 6·25때보다 더 가혹하겠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대를 업신여기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자기부정이에요. 인생의 수틀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색상과 잘못 기워진 자국도 남지만 그것까지 포함해 산다는 건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보니 보수니 좌(左)니 우(右)니 하며 분열을 앓고 있다. 상생의 길은 없을까. “어린 아이들이 빨갛고 파란 예쁜 자동차를 보면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돌을 던지게 만드는 세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문학 쪽도 마찬가지예요. 이수익·신달자 같은 괜찮은 시인도 성향이 어떠어떠하다고 한국 대표시인 목록에서 빼고 그랬지요. 편 가르고 증오하는 마음의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야 합니다.” 시인에게 사랑의 대상은 무궁하다. 사랑의 총량 또한 무한하다. “떫은 사랑일 땐/준 걸 자랑했으나/익은 사랑에선/눈멀어도 못다 갚을/송구함뿐이구나”(‘사랑초서’ 53)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더욱 넉넉한 사랑이 필요한 때다.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사랑 밖엔 길이 없음’을 설파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진리는 지극히 평범한 데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男)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일까. 시인의 시에는 굳이 ‘페미니즘적’이랄 게 없다. 스스로도 페미니즘 운동엔 별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 또한 사랑의 프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가장 여성적인 여성은 인간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남성적인 남성 역시 인간적인 남성이고요. 양쪽 모두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겠어요. 여성이 여성이기에 받는 사랑의 몫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퍽이나 선명한 논리다. ●부권 상실 풍조에 아쉬움 시인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지적해온 부권(父權)상실 풍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TV 드라마에서도 여걸형 가모장(家母長)이 뜨는 시대.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부권의 역조현상이 점점 가속화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아버지의 자리에 앉혀 줘야 합니다. 뒷방에 내앉거나 머슴이나 문지기의 자리에 있어선 안 되지요. ‘기눌림’을 풀어줘야 해요. 남자에게는 큰 틀을 세우는 능력이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요즘 시류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남 탓 하지 말고 각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의 원로의 충고로는 충분한 값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원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지금 헨리 키신저(86) 전 국무장관 등 7080세대 원로그룹이 정부 대외정책의 ‘선봉’에서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우리에게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원로회의가 생겼다. 김 시인은 공동 의장을 맡았다. 어떤 형태의 세속정치와도 절연된 삶을 살아왔기에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말에서는 한층 진정성이 느껴진다. “38년간 대학에 있으면서 어떤 보직도 맡지 않았어요. 내 문학에 상처를 줄까봐서였지요. 지난 독재정권 시절엔 전국구 의원을 하라고 찾아온 이에게 ‘날 빼주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며 통사정해 돌려보낸 적도 있어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심정입니다. 식민지 시절을 생각하면 나라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인데, 정치도 국민 노릇도 너무 미숙하기만 하니….” ●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라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시가 그의 후기작에 속하는 ‘좌우명’이다. “잎이 아닌 뿌리에서 더욱 봄답기를,/능금 익히듯 사람들 마음에 공들이고/충직한 농부에서 모범을 취하여라/백지를 능가하는 글을 쓰고/침묵보다 나은 말일 때 말하여라/살고 있는 이와 살다간 이를 동일하게 경애하며/다수의 복지를 섬기는 이에게/앞자리를 대접하고 아울러 그 줄에 서거라/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며/행복에 앞서 가치를 생각해라…” 삶의 잠언, 나아가 우리 사회의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국민교육헌장’ 같은 시다. 김 시인은 그의 애제자인 신달자 시인이 첫 시집을 냈을 때 ‘봉헌문자’라는 제목을 지어 줬다. ‘평생 문자를 받들며 살라.’는 뜻이다. 봉헌문자는 결국 그의 명제가 됐다. “시를 쓰는 건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지만 그 측은한 길동무와 언제까지 함께하리라.”고 지금도 다짐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7년 만해대상 수상 시집 ‘귀중한 오늘’ 출간 이후 80줄이 넘어 새로 쓴 시만 30여편. 60편쯤 모이면 내년에는 열일곱 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다. “문학은 내게 병이면서 치유”라고 말하는 노시인. 그의 바람은 시의 언어가 사회 구석구석 스며들어 미움으로 얼룩진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시인은 오늘도 변함없이 뜨거운 기도의 문을 연다. 글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숙명여대 교수(1955∼93년), 한국시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의 회장 역임 ▲예술원상, 영랑문학상, 만해대상 등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은관문화훈장 받음 ▲저서:‘목숨’ ‘나아드의 향유’ ‘정념의 기’ ‘풍림의 음악’ ‘바람 세례’ ‘마음 안의 마음’ 등 16권의 시집과 ‘잠시 그리고 영원히’ ‘먼 데서 오는 새벽’ 등 12권의 수필집 등 다수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
  •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자연을 빚는 도예가 지헌(知軒) 김기철(金基哲·77) 선생. 전통적인 조선 백자의 맥을 현대적인 조형미로 이어 가고 있는 선생의 작품들이 자연을 닮은 것은 그의 삶이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흙을 좋아하고 꽃과 나무 가꾸기를 즐기는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뒷동산과 산기슭에 온갖 향기나는 식물들을 심어 놓고 계절따라 피고지는 꽃들을 들여다 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젖는다.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농사를 짓고 거둬 들인 수확물로 손님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뿌듯해 한다.그렇게 30년을 살다 보니 그도 어느 덧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의 삶은 작품 속에 오롯이 담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봄을 주제로 오는 13일부터 동숭동 샘터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선생을 만나러 경기도 곤지암의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한 보원요(寶元窯)를 찾았다. 한창 물이 오른 매화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길을 오르니 가득 쌓아 놓은 장작더미가 인상적이다. 가마에 땔 소나무 장작이다. 바람 결에 실려 오는 향긋한 나무 냄새가 기분좋게 코끝을 스친다.대문도 없이 나무 등걸을 가로 세운 마당 입구를 지나 돌너와지붕을 얹은 돌집이 작업실 겸 생활공간이다. 마당 저편으로 산 언덕에 자연스럽게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가마가 눈에 들어 온다. 조선시대의 전통가마를 그대로 재현한 재래식 용가마다. 그는 편리한 가스나 전기가마 대신 재래식 가마에 우리의 소나무인 좋은 육송만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 소나무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요즘이다. 그가 소나무 장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살아 숨쉬는 제대로 된 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잘 만들어진 백자가 빛의 방향과 세기,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백자가 숨을 쉬기 때문이죠. 소나무 장작의 불기운과 그을음, 공기의 조화만이 그런 오묘한 효과를 지닌 살아 숨쉬는 도자기를 구워 낼 수 있습니다. 가스나 전기로 구워 낸 것은 도자기라고 할 수 없지요.” ●가스·전기가마 대신 소나무 땔감만 고집 소나무 장작은 단순히 도자기를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불기운이 도자기 살 속까지 파고 들었다가 다시 내뿜기를 반복하는데 그 힘든 과정을 견딘 도자기만이 맑고 윤기있고 단단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백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청아해지는 것은 이런 조화에서다. 백자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도자기로 꼽힌다. 특히 불때기가 까다롭다. 산소가 들어가면 도자기가 산화돼 누렇게 변색되는데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연기와 그을음을 적당히 만들고 불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때기는 도자기 빚는 것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장작 가마는 전기나 가스가마에 비해 실패율도 높다. 대작의 경우 열개 중에서 두세개 건지면 성공이다. 그럼에도 백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백자는 도자기 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청자도 좋지만 백의민족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기는 역시 백자입니다. ” 백자와 함께 보원요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로 꼽히는 옅은 적갈색 도자기도 소나무 장작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흙빛이 윤기있게 살아나는 독특한 작품들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불의 힘으로 유약의 효과를 얻는 자연유(自然釉) 방법을 사용한 것들이다. 초벌구이를 한 뒤 도자기 안쪽에만 유약을 바르고 바깥은 유약을 생략해 재벌구이를 한다. 1350도 이상의 고온에서 이틀간 굽는데 이때 육송의 송진이 타면서 자연스럽게 유약 역할을 한다. 자연유의 푸근한 번짐과 이리저리 튀면서 만들어 내는 무늬 또한 볼수록 신비롭다. ●흙장난 하듯 해학 넘치는 연잎·청개구리 그저 흙과 자연이 좋아 평생 소박한 농사꾼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작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식물의 잎이나 꽃, 열매, 연잎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새, 물고기, 청개구리, 두꺼비, 사슴 같은 동물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천성이 촌놈이라 화초 가꾸고 농사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들판이나 계곡의 돌틈에 핀 이름모를 꽃들을 보면서 우주가 숨쉬고 있는 것을 느끼지요. 그런 모습들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흙장난으로 하듯이 작품을 빚습니다.” 연잎 위에서 세월 모르고 앉아 있는 청개구리는 그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다. 흙으로 빚은 조그마한 청개구리는 그의 작품에 포인트처럼 놓여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청개구리는 전래동화에서도 있듯이 우리 민족의 눈물나는 감성과 해학의 상징이에요. 해학의 미학이 있는 것이 최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물레를 쓰지 않고 모두 손으로 작품을 빚는다. 번잡스러운 기교가 없음에도 날아갈듯 자유스럽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특유의 분방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살아 숨쉬고 쓸수록 정이 피어 나는 유정의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물레 위에서 뽑아 내는 것은 무정의 정물에 불과합니다. 불균형 속에 균형이 있는 그런 자연의 형태를 물레 작업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손으로 빚어야 불균형 속에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형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흙 고르기부터 굽기까지 전통방법 고수 그는 흙을 고르는 작업부터 고온에서 구워 내는 작업까지 철저하게 조선 백자의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도자기를 빚은 뒤 정성껏 가마에 넣고 그 다음은 불의 몫으로 남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하늘의 도움을 기원하는 옛 도공의 모습 그대로다. “고되고 비능률적이며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패율도 높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어 내는 도자기가 첨단 과학과 기계 문명으로 잃어가고 있는 인간성 회복에 일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의 숨결을 온전히 품은 나의 작품들이 쓰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 도공 김기철의 세계 시골서 만든 ‘장작불 도자기’ 교황청·대영박물관까지 퍼져 충북 괴산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나온 영문학도였던 그는 원래 직업이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동경하며 서울의 변두리에 살면서 텃밭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 낙으로 살던 그는 마흔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도예가이자 농사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허리를 다쳐 쉬던 중 우연히 일민미술관을 지나다 나전칠기 중요인간문화재 김봉룡 선생의 고희 회고전을 보게 됐어요.정성을 기울여 만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이렇게 기막힌 것을 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나는 마흔 중반이 되도록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니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난 것이 도자기였다. 도자를 배우던 아내의 친구가 심심풀이 삼아 흙이나 만지라고 가져다 준 청자 흙덩어리로 꽃병이랑 단지를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재주가 있다고 칭찬을 하던 터였다. 모교에서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도자기에 매달리기로 뜻을 세웠다. 겨울방학에 무작정 가마가 있는 이천의 도요에 가서 사정 사정해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도공이 그의 재능을 알아 보고 내친 김에 같이 재래식 용가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마터를 물색한 지 석달 만에 지금의 보원요 터를 찾아냈다. 도예가로서 그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은 1년 뒤 공간대상 도예상 수상(1979년)으로 입증됐다. 그해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도예 평론가이기도 했던 초정 김상옥 시인은 1979년 4월17일자 서울신문 전시평을 통해 “한때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던 백자가 김기철씨의 집념의 결과로 시대적인 전승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고 평했다. 눈코뜰새 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시골 구석에서 천수답처럼 살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가까이는 국립현대미술관부터 멀리는 로마 교황청과 대영박물관, 스웨덴 에벨링박물관까지. 법정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의 다실에서도 손으로 빚어 장작불에 구운 그의 다기는 아낌을 받는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수필집 ‘꽃은 흙에서 핀다’(1993년)와 ‘고향이 있는 풍경’(2006년)을 냈으며 엘리아수필집과 포 단편집도 번역했다.
  • “숭산 스님,전두환 비판편지 보냈다가 고문당해”

    “숭산 스님,전두환 비판편지 보냈다가 고문당해”

    한국 선(禪) 불교를 세계에 전파했던 숭산스님(1927~2004)이 미국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비판한 편지가 공개됐다. 출판사 김영사는 25일 숭산스님의 편지들을 묶어 펴낸 책 ‘부처를 쏴라’ 출간에 앞서 숭산 스님이 생전에 전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고 숭산스님이 이 편지를 보낸 일로 귀국 직후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숭산스님은 1982년 8월25일 전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서 “대통령께서 칼 끝과 총 끝으로 혁명을 하였지요. 그 다음은 그것을 잘 써야 합니다.”라고 충고했다.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 내 민족이 고난을 겪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글을 쓰게 됐다.”고 동기를 밝힌 숭산스님은 “대통령이 되신 것도 대통령님의 운이요, 우리 한국 운이올시다. 엿장수 마음대로 되는 법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숭산스님은 또 “대통령께서도, 통찰하시어 과거는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이므로 우리 민족에게 인간성 회복 운동을 전개하여 우리 각자가 본마음을 찾아 시비를 없애고 선악을 초월하여 절대적인 세계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대통령께서도 무거운 짐이 벗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유(我有)하니 피유(彼有)하고, 아멸(我滅)하니 피멸(彼滅)이라.‘나’가 있을 때 저것이 있고, ‘나’가 없으면 저것도 없네. 이것이 불교 소학교 과정입니다.”라며 “대통령이시여,당신은 ‘나’를 아시오? 무엇이오? 말해 보세요.모르지요? 자기도 모르면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말입니다.”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제자들은 숭산스님이 편지를 보낸 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귀국 공항에서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남산청사로 연행돼 몇 시간 동안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고 전했다.   제자들은 또 숭산스님은 지난 1994년 백담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조우했다고 밝혔다.그 자리에서 숭산스님은 전 전 대통령에게 편지 사본을 꺼내 전달했고,이를 읽은 전 전 대통령의 안색이 크게 변하면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고 제자들은 전했다.  이 편지가 실린 ‘부처를 쏴라’는 현각스님과 대봉스님 등이 숭산스님의 외국인 제자들이 숭산 스님의 생전 법문 등을 모아 펴낸 책이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한국 천주교의 최고 성직자라는 명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살며 우리의 곁을 지켰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용기있는 발언으로, 때로는 ‘무거운 침묵’을 지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 온 시대의 양심이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품고 시대의 메신저로서 사회적 지침을 제시해온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정의와 진리에 바탕을 둔 인간성 회복에 앞장선 휴머니스트였다.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아버지 김영석과 어머니 서중하 슬하의 5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옹기점과 농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부모 아래서 유아세례를 받아 자랐지만 원래 사제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달리 자식에게 열정을 가진 모친은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사제가 되기를 권했지만 정작 소년 김수환은 썩 내켜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들처럼 처자를 거느리며 평범한 세상을 살아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친의 권유를 따라 결국 형(동한)과 함께 성직의 길을 택했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하고 1933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한 게 성직자 인생의 첫걸음. 서울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입학했으며 1941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해 4월 일본 유학을 떠났다. 조지(上智)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사제의 길을 놓고 망설임이 적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나라 잃은 민족적 현실에의 고민이었다. 조지대학의 게페르트 신부가 “정치가가 될 것이냐, 신부가 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민족이 저를 부른다면 정치가라도 되겠다.”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당시 갈등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성직보다 항일 독립투쟁에 더 마음을 두던 중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44년 학병에 징집되어 섬에 끌려갔다. 강제로 일본 국가를 부를 때마다 서러움이 사무쳐 미군에 투항할 생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 조지대에 복학, 1946년 12월 부산항에 도착했고 곧바로 서울의 성신대학에 편입해 4년 뒤인 1951년 9월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남의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학병 시절 체험한 전쟁속 인간의 잔학상은 사제로서 “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경북 안동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해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비서, 해성병원 원장을 거쳐 1955년 6월 경북 김천본당 주임 겸 성의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됐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신학·사회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1년 8개월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1966년 44세의 김 신부가 마산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에 임명돼 주교 성성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을 때 택한 사목표어가 바로 그 유명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이다. 이 표어는 평생 소외받고 어두운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몸과 마음을 둔 채 어길 수 없었던 큰 나침반이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을 때의 취임인사도 바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짐대로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에 초점을 맞춰 살면서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부조리한 정치사회 현실을 향한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인권 옹호자’의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상계동과 목동의 철거민 주거지를 직접 방문했고 성탄 전야 미사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집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 기구로 설립해 놓았다. 그 때문에 서울대교구의 복지 시설은 200여 개로 크게 늘었다.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사임한 다음해인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 이후 30년 재임기간 중 서울대교구에서 6명의 주교를 탄생케 했고 48개이던 본당이 200여개로 늘어나는 교세확장도 일궜다. 한국 천주교사상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것은 서울대교구장 착좌 이듬해. 나이 47세로,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이 됐던 그는 2차례에 걸쳐 총 12년동안 한국 주교회의 의장을 맡은 것을 비롯,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FABC)를 출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실에의 냉정한 처신을 비켜나지 않으면서도 늘상 이웃집 아저씨, 할아버지 같은 살가운 정과 웃음을 달고 살았던 김 추기경. 그는 떠날 때도 정확히 알고 지킨 인물이었다. 75세가 되던 1997년 교회법 제401조에 따라 로마 교황청에 서울대교구장 사임 의사를 단호히 밝혔다. 교황청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거듭 사임의사를 밝힌 끝에 마침내 이듬해인 1998년 5월29일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에서 물러났다. 목자 생활 47년 만이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메달뺏긴 사격선수 먹은 약이 나쁜 기억 없애줘

    네덜란드 연구진이 국내 시중 약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고혈압 치료제 ‘프로프라노롤’이 나쁜 기억을 지워주는 효능이 있음을 밝혀냈다고 영국 BBC가 17일 전했다.  심근경색증 환자를 위한 베타 차단제의 일종인 프로프라노롤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때 북한 사격선수 김정수가 약물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와 은메달과 동메달을 박탈당했을 때 검출됐던 물질.  암스테르담 대학의 메렐 킨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전문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실릴 연구 보고서에서 이 약이 두렵거나 걱정스러운 기억을 감퇴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주장했다.연구진은 남녀 60명을 대상으로 거미에게 전기자극을 가하는 사진을 보여주고 하루 뒤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쪽에는 이 약을 복용하게 하고 다른 쪽엔 플라시보약을 먹게 했다.그리고는 다시 거미 사진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약을 복용한 집단에서 두려움의 기억이 덜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연구진은 그 뒤 하루는 일절 실험을 하지 않은 뒤 다음날부터 다시 같은 방법으로 실험한 결과 역시 약을 복용한 집단에게서 나쁜 기억이 훨씬 덜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외상 후스트레스성 질환과 불안장애,공포증 등 나쁜 기억과 관련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나쁜 기억에 연관된 새로운 기억을 형성시켜 기억을 좋은 쪽으로 유도했던 치료 방식에 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나아가 약의 효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연구 중이라고 밝힌 뒤 “스트레스성 장애와 공포증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신건강을 위한 자선기관 ‘마인드’의 폴 파머 사무국장은 두려움과 공포증 같은 정신병리적 질환을 ‘약리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런던에 있는 세인트조지 대학의 의료윤리학 강사인 대니얼 소콜은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은 것과 다르다.우리 자신이 기억에 연결됨으로써 자아의 정체성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몇몇 사례에선 이런 식으로 기억을 지우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기억을 지우기 전에 이 일이 개인과 사회,인간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가져올 장기적인 영향을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맨체스터 대학의 존 해리스 교수는 “폭력 사건을 말하자면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겠지만 가해자를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할 능력마저 앗아갈 수 있다.”고 마찬가지 우려를 표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터미네이터 감독, 라디오헤드에 “곡 좀…”

    터미네이터 감독, 라디오헤드에 “곡 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 4-미래전쟁의 시작’의 개봉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감독을 맡은 맥지(McG)가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리더 톰 요크에게 음악 작업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성사 여부를 놓고 관심이 뜨겁다. 맥지 감독은 지난 주말 미국의 주요 대중문화 행사인 ‘뉴욕 코믹 컨벤션’에 참석해 라디오 헤드의 리더 톰 요크와 작곡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를 만나 음악 작업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영화음악 전문 매체 ‘플레이리스트’에 따르면 맥지 감독은 이날 연설을 통해 “톰 요크와 구스타보가 힘을 보탠다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이같이 말했다. 감독은 또 “둘이서 이미 몇가지 작업을 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희망 섞인 전망도 덧붙였다. 그러나 감독의 이같은 바람이 쉽게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우선 보도가 나가자 영화 제작사 측에서는 “루머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미 기용된 작곡가의 존재도 암초다. ‘터미네이터 4-미래전쟁의 시작’의 음악은 팀 버튼 감독의 여러 영화와 ‘심슨즈’ 테마곡을 탄생시킨 대니 엘프만이 소매를 걷어 부쳐 이미 작업에 돌입한 상태. 특히 엘프만은 주요 스코어 곡 몇을 벌써 완성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맥지 감독은 대니 엘프만을 기용하면서 “인간성의 섬세한 본질과 기계문명의 잔인성을 꿰뚫을 영화 자체를 총괄적으로 이해하는 뮤지션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한편 음악 작업이 실타래처럼 꼬일 부담을 안고도 맥지 감독이 이같은 ‘러브콜’을 퍼붓는 데는 최근 ‘007 시리즈’가 거물급 록 뮤지션에게 테마 곡을 맡기면서 영화의 화제성도 잇따라 탄력을 받은 점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지난 2006년 ‘007 카지노 로얄’의 메인 테마 곡은 사운드가든, 오디오슬레이브의 프론트맨을 거친 크리스 코넬이 맡아 짭짤한 재미를 안겼고 작년 ‘퀸텀 오브 솔러스’의 타이틀 곡은 록 밴드 화이트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가 작곡해 큰 화제를 낳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음악통신원 고달근 kodal69@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新 귀거래사] 전남 무안에 요양원 건립 정시채 전 농림장관

    [新 귀거래사] 전남 무안에 요양원 건립 정시채 전 농림장관

    퇴직후 고향이나 농어촌에서 제2의 삶을 역동적으로 열어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이들의 귀향은 도시문명의 비인간성과 번잡함을 피해 낙향하는 것과 다르다. 이들은 노후를 개척하면서 후진 양성과 지역 발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현직에서 누렸던 명예와 과분한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며 그늘진 이웃과 함께하는 삶은 더욱 빛난다. 퇴직 후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잔잔한 일상을 조명해 본다. 누구나 황혼 인생은 외롭다고들 한다. 병들고 지친 몸이라면 오죽할까. 그러나 사그라드는 불꽃 같은 생의 길목에서 ‘아름다운 동행자’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4일 전남 무안군 청계면 상마리 언덕배기에 자리한 에덴원을 찾았다. 중풍·치매 등에 걸린 노인 70명이 생활하는 사회복지법인 요양원이다. 결코 오랜시간 머물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운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굽은 허리와 손마디, 못 듣는 귀…. 살아온 날이 순탄치 않았음이 단박에 묻어난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지낼 수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동행자가 있었다. 42년 공직을 마치고 사회봉사로 눈을 돌린 정시채(75) 전 농림부장관이다. 그는 2004년 9월 사재(12억원)를 털어 에덴원을 열었다. 일흔살로 접어들 때였다. ●요양 받을 사람이 요양원을 세우다 그가 요양원을 세운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과 가족은 모두 말렸다. “요양 받을 사람이 요양원을 세우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밀어붙였다. “그동안 지역민들에게 받은 분에 넘친 사랑을 갚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진도가 고향인 그는 무안군과 각별한 인연으로 이곳에 에덴원을 세웠다. 그는 고등고시 합격 이후 1969년 1월1일 35세 때 무안군수로 부임했다. “아침에 현장에서 간부회의 하고 직원들에게 줄자를 사주면서 농로 확장에 나섰습니다. 길을 닦을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일했던 시절로 보입니다.” 군수 1년 동안 주민숙원사업인 농로길 확포장을 마쳤다. 지금 무안군 청사도 그때 지은 것이다. 말하자면 1971년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서막을 연 셈이다. 당시 내무부에서 새마을운동을 주도했던 고건 전 국무총리는 고시동기로 지금도 친하다. 그는 그때를 잊지 말자며 책상 맞은 편에 주먹만 한 지게를 세워 두고 바라본다. 그는 “고향을 지키며 산다는 게 낙오자처럼 들리는 ‘낙향’이 아니다. 퇴직자들은 고향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자는 지역민들로부터 받았던 명예를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것으로 요약했다. ‘고향 사랑이 애국’이라는 것이다. 그는 “퇴직 후 20~30년을 더 살게 되는데 공직에서 쌓은 경륜으로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열어야 한다.”고 유난히 강조했다. 바람직한 공직자상으로는 “훌륭한 공직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과 일로 승부하되 창조적으로 해야 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발하는 아이디어 맨이어야 한다.”고 했다. ●“에덴원은 나의 삶” 에덴원의 원훈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은 그가 직접 써서 붙였다. 이곳에서 지내는 노인 70명 가운데 60명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공짜로 지내고 10명은 월 48만원을 낸다. 부대사업으로 홀로 사는 재가노인(984명)들을 국비를 받아 직원 86명이 보살핀다. 그는 어김없이 아침 8시 에덴원에서 기도를 한다. “노인들이 한 시간씩 박수치면서 웃고 말하는 게 사실상 이들이 유일하게 웃는 시간입니다.” 이곳 최고령인 김나여(98) 할머니는 침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그의 손을 잡고는 손을 흔들며 “왔구나, 왔어.”를 연발하고는 식사에 몰두한다. 그는 1975년 교회 장로가 된 이후 술, 담배를 끊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진도 촌놈’이 포부대로 높은 관직을 꿰찼으니 관운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웃었다. “비결이 뭐냐.”는 우문에 대답은 간단했다. “일이 잘 풀린 것은 나의 능력 밖이고 나만큼만 노력해 보라.”고 했다. 새벽 4시 기상, 10시 이전 취침이 원칙이다. 잘 나가던 그도 두 번이나 큰 시련을 겪었다. 1972년 부인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전남도 부지사이던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라며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식농사(4남2녀)도 잘 지은 그는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이고 남을 도와야 보람 있는 인생이 아니겠느냐.”면서 일어섰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연극 올림픽 내년 서울서 열린다

    연극계의 세계적인 거장들이 참여하는 ‘연극 올림픽(시어터올림픽스)’이 내년 9월 서울에서 열린다. 시어터올림픽스는 테오도로스 텔조폴로스(그리스), 스즈키 다다시(일본), 로버트 윌슨(미국) 등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극작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연극 축제다. 1995년 그리스의 아테네와 델포이 등에서 첫 행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네 차례 행사를 치렀다.시어터올림픽스 한국위원회는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9월 중순 2주에 걸쳐 국립극장과 명동예술극장, 아르코시티 등에서 제5회 시어터올림픽스를 연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시어터올림픽스 공동창설자인 테오도로스 텔조폴로스와 스즈키 다다시, 한국측 준비위원장인 임영웅 연출가와 예술감독을 맡은 최치림 중앙대 교수가 참석했다.그리스 테살로니키극장 예술감독인 테오도로스 텔조폴로스는 “1990년대초 세계 질서가 와해되는 시기에 예술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젊은 예술가에 대한 교육과 예술적 지원을 모색하는 논의와 토론 끝에 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시어터올림픽스는 연극 공연과 함께 심포지엄, 개최국 배우와의 워크숍, 관객과의 대화 등 교육적 효과에 중점을 둔다.시어터올림픽스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위원 중심으로 운영된다. 나이지리아 극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 영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 토니 해리슨, 러시아 타강카극장 연출가 유리 류비모프 등 11명으로 운영돼 오다 5회부터 한국의 최치림 연출가 등 3명이 합류했다. 행사는 이들 국제위원의 신작과 개최국 신진 예술가의 작품 위주로 진행된다.시어터올림픽스의 또 다른 특징은 매번 주제가 달라진다는 것. 5회 행사의 테마는 ‘사랑’이다. 최치림 예술감독은 “전쟁과 경제 불황으로 인간성이 심각하게 파괴되는 현 시기에 세상을 치유하는 힘은 오직 사랑이란 것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임영웅 연출가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런 의미있는 문화행사가 힘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참가국과 참가자 규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올림픽을 표방하고 있지만 각국의 대표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스포츠 올림픽과 닮은 점은 거의 없다. 기량을 겨뤄 순위를 매기지도 않고, 꼭 4년마다 열리지도 않는다. 2회는 1999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렸고, 3회는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 4회는 200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진행됐다. 6회는 2012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세계 금융위기 불러 온 ‘사악한 화폐’ 달러의 실체

    세계 금융위기 불러 온 ‘사악한 화폐’ 달러의 실체

    미국의 저널리스트 프랭크 바움은 1900년 판타지 동화책 ‘오즈의 마법사’로 ‘진짜 미국적인 첫번째 동화’를 쓴 소설가로 대접받았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로 퍼져 현재까지도 읽히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토네이도에 휘말려 마법의 나라에 떨어진 도로시가 지혜가 없는 허수아비와 인간성을 잃어가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와 함께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면서 겪는 모험을 다뤘다. ‘더 달러’(이재황 옮김, AK 펴냄)의 저자 엘렌 H 브라운은 사실 바움이 신문 사설에 쓰지 못했던 당시 ‘통화와 재정’의 문제점을 ‘오즈의 마법사’ 안에 숨겨 놓았다고 말한다. 바움이 1890년대 초 20%를 웃도는 실업률로 고통받는 미국 국민을 구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농부, 양철 나무꾼은 공장노동자, 사자는 당시 화폐개혁을 주장하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는 불운한 정치인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도로시와 일행은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러운 은행가와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상징하는 동부의 나쁜 마녀를 죽이고, 노란 벽돌(금본위제)을 따라 녹색 안경을 쓰는 에메랄드 시티(금본위에 갇힌 녹색의 달러)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커튼 뒤에서 위대한 마법사 행사를 한 오즈(JP모건 등 세계적인 은행 금융집단)의 음모를 폭로한다. 마법처럼 보이는 은행가들의 금융기법이 사실상 사기행위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럼 오즈(OZ)는 무엇일까? 그것은 은화운동가들이 은 16온스(OZ)를 금 1온스(OZ)로 바꾸자고 주장했는데, 온스의 약자가 ‘OZ’라는 것이다. 장황하게 오즈의 마법사를 거론한 것은 저자가 오즈의 마법사의 코드를 중심으로 47장을 구성해 709쪽을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109년전 바움의 주장이 현재 금융위기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은 한마디로 민간독립기구인 연방준비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이 통화 발행권을 갖게 하지 말고, 미국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라는 것이다. 연방준비은행은 원가 40센트로 100달러를 찍어서 정부에 빌려주고 이자까지 쳐서 110달러를 돌려받으려고 하는데,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도 힘든 미국 정부는 2007년 현재 누적 부채가 7조달러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직접 발권을 하면 이자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원금을 갚아 나갈 여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현재의 중앙은행 시스템이 은행의 배만 불린다고 지적한다. 금본위제가 무너진 후 중앙은행 시스템이 도입되자 중앙은행들은 지불준비금 제도를 만들었다. 예컨대 갑돌이가 100달러를 요구불 예금 등에 넣어두면 은행은 이중 10달러만 은행이나 중앙은행에 맡겨 놓고 90달러는 다시 대출할 수 있다. 지불준비금 제도 아래서 갑돌이의 100달러는 이런 과정을 거쳐 1000달러의 통화로 불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난 통화로 이윤을 챙기는 것은 원래 100달러를 가지고 있던 갑돌이가 아니라 은행이다. 은행들의 이윤창출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커튼 뒤에 숨어서 위대한 마술사처럼 굴었던 오즈의 사기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은행들은 자본주의의 정점에 놓여있는 전세계 은행의 역할을 하면서, 특히 가난한 제3세계에 엄청난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데 있다. 중앙은행이 발권하는 시스템에서 정부와 국민은 빚에 허덕이고, 세계적인 은행들만 돈을 버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보통 정부가 발권력을 가지면, 제멋대로 통화를 찍어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정설을 감안하면 헷갈린다. 그러나 저자는 통화량 증발의 책임은 본원통화(갑돌이의 100달러)를 예금인출사태(뱅크런)에 대처할 수 없도록 대출을 1000달러까지 늘리는 탐욕스러운 은행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고 있다. 브라운은 최근 미국발 위기를 미국 소비자들의 탐욕스러운 소비와 집 소유 욕심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에도 따끔하게 한마디한다. 미국 정부가 1971년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주는 금태환 시스템(브레턴우즈 선언)을 포기하고 전세계에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업보라는 것이다. 즉 미국 정부는 전세계에 대한 경제적 지배가 달러의 환류 과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전세계 상품의 최후의 수입자로서, 자국민을 최종 소비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적자의 실체이고 미국인의 불운이라고 주장한다. 2007년에 발간됐고, 2008년 3개정판을 번역했다. 처음 20쪽은 이해가 쉽지 않지만 이후엔 쭉쭉 재밌게 읽힌다. 2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나치통치에 맞선 영웅들의 실화

    나치통치에 맞선 영웅들의 실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이 국제사회에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때 우연찮게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속속 찾아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에드워드 즈위크 감독의 ‘디파이언스’(15일 개봉)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작전명 발키리’(22일 개봉)다.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디파이언스(Defiance)’는 비엘스키 형제의 일화를 다룬 영화다. 독일군과 밀고자의 손에 부모를 잃은 투비아(대니얼 크레이그)는 그들을 죽이고 형제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간다. 같은 처지의 피란민들을 외면하지 못한 투비아는 독일군에 맞서는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투비아의 동생 주스(리브 슈라이버)는 적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채 러시아군에 합류한다. 숲으로 모여드는 사람은 점점 늘어가지만, 추위와 굶주림으로 공동체의 겨울은 혹독하기만 하다. ‘디파이언스’는 나치 점령하의 유럽을 그리지만, ‘살아남은 자’의 저항과 투쟁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와 차이 난다. 형제간의 애증, 처절한 사투, 숲속 생활의 어려움 등은 유대인들이 겪었던 고초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로 친숙한 대니얼 크레이그의 고뇌에 찬 연기도 뛰어나다. 하지만 최근 가자 사태를 지켜본 관객들이 ‘유대인의 희생’을 강조하는 이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전명 발키리(Valkyrie)’는 나치 정권을 전복하려는 독일군 내부의 쿠데타라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키리’는 용감한 전사자들의 영혼을 천계로 이끄는 북유럽 신화 속 여신 집단의 이름. 독일 장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톰 크루즈)은 세계를 참혹한 공포로 몰아가는 상황을 보며 히틀러 제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권력층 내부의 반히틀러 세력에 가담한 그는 히틀러 암살계획 실행에 직접 나선다. ‘작전명 발키리’는 히틀러 사망을 대비한 비상대책 ‘발키리 작전’을 역이용해 히틀러를 암살하려 한 실화가 소재다. 이같은 점은 히틀러의 최후가 자살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겐 다소 김빠지는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치밀하고 세련된 극의 만듦새는 손에 땀이 넘치도록 하는 긴박감을 안겨준다.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톰 크루즈는 저돌적인 주인공 캐릭터를 화면에 잘 살린다. 다만 시종일관된 카리스마 연기는 반란 주모자로서의 다층적인 면모를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한편 진작부터 극장에 걸린 두 편의 영화도 되새겨볼 만하다. 프랑스 감독 루이 말의 자전적 영화 ‘굿바이 칠드런’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전쟁의 몰인간성을 기록한다. 1944년 나치 점령 하의 파리 기숙학교에 유대인 학생이 전학오지만, 곧 발각돼 잡혀가고 만다. “40여년이 흘렀지만 난 그 1월의 아침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는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배경이 2차 대전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도 함께 돌아보면 좋을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생소한 장르로 빚어진 이 작품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이스라엘인이 자성과 각성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 깊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목격의 기억을 되찾으면서 자신이 관통해온 1982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의 진실을 깨달아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정신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유하고 반전평화 메시지를 퍼뜨리는 여정을 보여 준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헐값 ‘짝퉁그림’ 알고보니 수백억대 진품

    헐값 ‘짝퉁그림’ 알고보니 수백억대 진품

    모방작으로 알고 헐값에 사들인 그림이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명작인 것으로 판명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대중지 텔레그래프는 최근 “익명을 요구한 한 스위스 고미술 수집가가 모방작이라고 여기고 몇 년 전 350만원이란 헐값에 사들인 그림이 최근 독일 르네상스 대표적인 화가 한스 홀바인 2세((1497~1543)의 진품으로 판명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 그림의 주인이 된 수집가는 지난 20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한 경매장에서 라무아뇽 가문이 내놓은 수십 점의 그림 중 홀바인의 제자 중 한명이 그린 모방작으로 알려진 이 초상화를 350만원에 샀다. 수집가와 함께 경매에 참석했던 뉴욕 경매장의 담당자 말코 그라시는 “모방작인만큼 소장가치가 떨어져 구매를 두고 망설이는 것을 사라고 부추겼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몇 년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그림이 모방작이 아닌 홀바인이 16세기에 그린 작품이란 사실이 판명됐기 때문. 전문가들은 세밀한 묘사와 특징 등 홀바인의 기법과 일치한다는 의견을 냈고 적외선 실험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고미술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이 그림의 정확한 가격은 나와 있지 않은 상태. 하지만 최근 홀바인의 토마스 와이어트 초상화가 무려 130억원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이 그림은 최소 100억원은 호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홀바인 2세는 독일 르네상스기 대표적 화가로 영국 헨리 8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초상화에 특히 뛰어났으며 특출한 성격 묘사와 정교한 필치에 의한 세부 마무리와 풍부한 빛깔로 인간성과 의상의 재질감까지 교묘히 나타냈다. 사진=한스 홀바인이 그린 토마스 와이어트 초상화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종말 vs 희망’ 갈림길에 선 서구문명

    “서구 문명의 가치관은 파괴되었다.자유와 인권,인간성을 상징하던 위엄 있는 두개의 탑이 무너져 내렸다.연기처럼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9·11테러 직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서구 문명의 소멸’을 선언했다.문제는 테러리스트의 헛된 몽상이나 희망사항으로 치부하기엔 서구 문명 자체의 내부 균열이 심각하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자멸’(리처드 코치·크리스 스미스 지음,채은진 옮김,말글빛냄 펴냄)은 지난 2000년간 전 세계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는 서구 문명의 가치관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대부분의 서구인들이 그 문명을 번영케 했던 사상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으며,이같은 자신감 붕괴는 외부의 적들과 무관하게 전적으로 내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우선 서구 문명을 만든 6가지 중심 사상으로 기독교,낙관주의,과학,성장,자유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를 꼽는다.기독교는 개인의 책임과 그리스도의 힘을 통한 변화,약자에 대한 원조,저주받은 이들의 구원 등 서구인의 생활양식과 인격을 형성하는 토대이다.그러나 20세기 들어 기독교는 서구를 분열시키고 세계를 분열시켰다.낙관주의는 비관주의로 변했고,과학은 생태계 파괴와 핵무기 확산 등 부정적 영향을 안겨주고 있다.경제성장은 수명 연장,부의 증가를 이끌어 냈으나 인간의 정신을 고갈시키고,전례없는 권력 집중화에 일조했다.자유주의의 퇴보와 개인주의의 강화에 따른 중압감 가중도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 문명은 스스로 만든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 것인가.저자들은 서구문명이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지적한다.한쪽 길은 냉소주의와 지독한 이기주의,무관심,권력의 재집중,공격성 등이 놓인 종말의 길이다.다른 한쪽 길은 용기의 회복,서구 문화에 대한 확신,미국과 유럽간 감정적 단결 등 희망의 길이다.모든 서구인들이 잠재력과 도덕성을 발휘함으로써 인류를 매혹시킬 만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리처드 코치는 옥스퍼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출신의 기업인이자 ‘80/20법칙’‘스마트 전략’ 등의 저서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크리스 스미스는 최근까지 영국 하원의원과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을 지냈다.1만 5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네그로폰테·허운나 이메일 대담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네그로폰테·허운나 이메일 대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가.과학의 발달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까?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작 ‘멋진 신세계’에서 과학에 대한 무분별한 맹신으로 가득한 당시 사회에 경고를 던졌다.어머니의 자궁이 아닌 병 속에서 배양된 수정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과도하게 격한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소마’라는 약을 먹는다.당시만 해도 공상으로 여겨졌던 소마는 1988년 ‘프로작’이라는 우울증 치료제로 현실에 등장했다.서울신문은 허운나 문화예술협회장(전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의 주선으로 MIT미디어랩의 창립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MIT 교수와 이메일·전화 인터뷰를 갖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허 회장이 사회자 겸 대담자로 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네그로폰테 교수는 “인간이 잘못 쓴 과학기술의 문제를 과학기술 자체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면서 “과학기술그 자체는 언제나 무죄”라고 강조했다. ●허운나 회장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성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수백년에 걸쳐 계속돼왔다.특히 지난 100년간 인간이 이뤄낸 과학기술의 진전은 이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진행된 것보다 더 빠른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그 때문에 인간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이 점차 거세지고 있고,비윤리적인 기술이 개발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어떻게 생각하나? ●네그로폰테 교수 70년에 쓴 첫 번째 책의 이름이 ‘기계에까지 스며든 휴머니즘(Humanism Through Machines)’이었다.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항상 인간성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 최고로 구현된다고 주장해 왔고 실제로도 그렇다.전세계 기업들이 동참하고 있는 ‘어린이 한 명당 한 개의 휴대용 노트북’ 운동을 예로 들어 보자.이 운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전보다 더 글자를 잘 읽게 되고 컴퓨터의 혜택을 얻게 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허운나 ‘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이 말을 과학기술에 적용한다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얻어지는 혜택의 방향은 결국 인간이 결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오늘날 우리는 오래 전 왕이나 황제들이 살았던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특히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많은 것을 얻게 된 것 같다. ●네그로폰테 큰 틀에서 본다면 사람들이 지혜롭게 되고 무지로부터 해방되면서 인간은 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의학과 약학의 발달은 인간을 더 오래도록 아프지 않게 살게했다.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과학과 엔지니어링,디자인,인간의 상상력’에서 찾을 수 있다.지금껏 과학기술의 발전이 논란을 낳은 이유는 형편없는 디자인과 잘못 만들어진 기술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이 같은 문제는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기술은 곧바로 나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분명한 원인은 인간에게 있는데 말이다. ●허운나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등 인류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일부 환경주의자들은 과학기술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이는 결국 ‘무지’라는 말로 귀결될 수 있다.무한정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환경을 오염시켜 오늘날과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일찍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을 것이다.과학기술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네그로폰테 최근 각광받고 있는 대체에너지가 중요하다고 가정해 보자.그럼 대체에너지는 어떻게 개발되나.몇 사람이 모여서 은밀히 얘기해서 인류를 오늘날의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현재 쓰고 있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것 역시 과학이 해야 할 일이다. ●허운나 로봇,줄기세포를 통한 복제인간,냉동인간 등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하던 많은 일들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이들은 수많은 윤리적 논쟁을 낳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이같은 일을 막기 위해 강력한 규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나 역시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혹에 빠지기 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불교에서는 번뇌가 없는 해탈의 경지를 얘기하지만 이는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초등학교에서의 인성교육과 고등교육에서의 기술교육을 병행해 개인의 현명함을 키우고 극단적인 상황을 대비한 규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특히 인간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돈을 먼저 생각하는 요즘의 시대적 조류가 과학기술과 단순히 결합할 때 부적절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네그로폰테 미래를 예측하는 모든 예상과 이를 둘러싼 논란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또 다양한 관점 자체가 논란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브루클린 대교의 길이’와 같이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질문은 극히 드물다.같은 비전을 갖고 하나의 기술을 개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용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특히 사용에 대한 규제는 현재의 과학기술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나중에 사용만 하는 사람들까지 감안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부분이다.규제는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불평처럼 너무 많은 규제는 사용자들을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느낄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사용자와 발명자 입장에서는 기술을 언제,어떻게,왜,누구를 위해 쓰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허운나 당신이 창립한 미디어랩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다.‘인간을 위한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 미디어랩은 모든 연구자들이 꿈꾸는 상상력의 자유와 도전해볼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특히 미디어랩에서 만들어진 100달러 노트북을 보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과학기술과 인간성의 조화가 연상된다. ●네그로폰테 내가 처음 미디어랩을 설립할 때 추구했던 것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이를 사용하는 것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철학으로 묶는 것이었다.실제로 미디어랩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과 발명품하는 것 자체를 구분하지 않는다.발명품 자체에 발명자의 철학이 녹아있도록 유도한 것이다.무엇보다 100달러 노트북처럼 결과물을 이타적으로 쓰도록 한 원칙은 기술이 인간적 속성을 갖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허운나 저서 ‘디지털이다’를 통해 정보통신(IT)이라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미래를 주장했고 실제로 현실화됐다.IT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나.또 IT 이외에 어떤 과학분야가 등장할 것으로 생각하나. ●네그로폰테 우선 개인적으로 IT라는 용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IT라는 단어를 쓰면 마치 1970년대의 사무자동화(OA)를 표현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느껴진다.특히 대문자로 IT를 쓰면 일반인들은 컴퓨터만을 국한해서 생각한다.그러나 현실속의 어린이들은 자신을 IT유저라고 생각하는 대신 ‘디지털 삶(Digital living)’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디지털의 진정한 힘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지 IT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현재로서 가장 유망하게 느껴지는 미래 분야는 바이오와 반도체의 결합이다.지금은 장애인들을 위한 보철장치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몸과 마음을 강화시키는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는 더 튼튼하고,더 민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네그로폰테 MIT 교수는 니컬러스 네그로폰테(65) MIT 교수는 ‘멀티미디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비트 혁명가’다.그리스계 미국인으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의 동생으로도 유명하다. MIT 건축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 시절 접한 컴퓨터지원설계(CAD)의 힘에 매료돼 디지털 전도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예일대,미시간대,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를 거쳤고 1985년 ‘상상력 발전소’로 불리는 MIT 미디어랩을 설립해 디렉터를 맡았다.한때 500여명에 이르는 연구원을 보유했던 미디어랩은 ‘인간을 위한 기술’을 주창하며 학문간 경계와 상상력의 한계를 무너뜨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네그로폰테 교수는 현재 미디어랩 이사장을 맡고 있다. 92년에는 클린턴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정보 고속도로’의 개념을 만들었고 최고의 IT잡지로 꼽히는 ‘와이어드’의 창간에 참여해 98년까지 칼럼을 연재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美 카네기멜론大 로봇 공학 연구소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美 카네기멜론大 로봇 공학 연구소

    그는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연이 물을 타고, 기계를 과신해 온 인간에게 복수를 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문명이 자연과 공존하고, 인간성을 찾지 않는다면 결국 의미없이 발전하다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이 인간의 윤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은 인류 역사 이래 지속돼 왔다. 특히 근대에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기술과 문명은 ‘인간복제’,‘냉동인간’,‘로봇’ 등 상상속에서나 존재하던 일들을 현실의 영역으로 가시화시키고 있다.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와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가? 환경주의자들의 말처럼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한국과 미국, 유럽 등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과 이에 따른 인간 윤리의 위기를 살펴봤다. |피츠버그·보스턴 박건형특파원|문을 열고 복도에 들어서자 카메라가 달린 네모난 모니터 속에서 장난스럽게 생긴 캐릭터가 인사를 건넨다.‘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캐릭터는 자신을 ‘탱크’라고 소개했다. 탱크는 미국 피츠버그에 자리잡은 카네기멜론대학(CMU) 로봇공학 연구소의 마스코트다. 건물 안내는 물론 센터 소개, 사람들을 찾는 일까지 탱크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 준다. 탱크를 만들어낸 기술은 그래픽 기술과 시각인식 등 두 가지뿐이지만 탱크와 만나는 방문객은 첨단 기계를 접했을 때와는 다른 훈훈한 감동을 받는다. ●현재 로봇공학은 1980년 컴퓨터공학 수준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전투를 하거나 완벽한 인간의 모양을 갖춘 로봇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그런 로봇이 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일하고 있습니다. 탱크 역시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인간적인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연구소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공동연구를 위해 CMU에 머물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동환 박사는 로봇 연구가 조금씩이지만 꾸준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로봇은 어느 한 사람의 천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각자 맡은 분야를 발전시켜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라며 “한 분야가 빨리 발전한다고 해도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단순한 기계 이상의 것을 이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CMU는 세계 최고의 로봇연구소로 꼽힌다. 전 세계 100여개 대학과 연구소들이 CMU에 직원을 파견해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애쓸 정도로 다양한 연구 분야를 갖고 있다. 지난 몇년간 CMU가 발표한 로봇만 해도 짐 나르는 로봇 수송병 ‘빅독’, 삼키는 의학용 로봇, 휴머노이드(인간을 닮은 로봇) ‘덱스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연구팀을 수시로 바꾸며 원하는 분야를 보강해 나간다.‘벽 없는 연구’야말로 중소대학인 CMU가 전 세계 최고의 로봇공학연구소로 발돋움한 이유다. 김 박사는 “인간을 닮은 로봇은 아직까지 기초 단계에 불과하지만, 기능 위주로 만들어진 상업용 로봇은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는 것이 로봇개발자들의 생각”이라며 “현재의 로봇공학의 위치가 1980년대 컴퓨터공학이 가졌던 위치쯤이고, 조만간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고 밝혔다.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며 인간이 다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로봇은 1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1,2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A.I.’,‘아이, 로봇’ 등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로봇 3원칙’은 1942년 미국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실제 공학도들의 도전을 이끌어냈던 아시모프는 로봇이 언젠가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나중에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로봇 3원칙’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작품 ‘아이, 로봇’은 로봇 3원칙이 무너질 경우 어떤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아직까지 아시모프의 3원칙이 무너질 만큼 로봇기술은 발전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를 절대적인 수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표준원 역시 2006년 로봇의 KS표준을 만들면서 이 원칙을 사용했다. 로봇 3원칙은 언젠가는 다가올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로봇에 대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로봇의 인간 대체 가능성은 아직 없어 그렇다면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전쟁용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을 위협할 가능성은 있지만, 로봇이 지구를 지배할 위험은 극히 낮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진화의 다음 단계로서 인간을 대신할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휴머노이드 조직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민첩한 동작과 동력, 두뇌, 감성, 자율성 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력이 발달해 이를 모두 갖추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특히 로봇이 스스로 번식을 하거나 진화를 하는 일은 이 모든 것을 갖추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다만 로봇을 이용한 위협은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MIT미디어랩에서 로봇공학을 연구하는 휴 헤르 교수의 목표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인 ‘사이보그’다. 지체장애자인 그는 인간의 부족한 신체부분을 보조하는 장치를 만들어 현실속에서 ‘600만달러 사나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디어랩 관계자는 “헤르 교수의 연구에 대해 강력한 힘을 가진 군인이나 무기로서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로봇 자체의 발전속도에 대한 낙관도 여전히 존재한다.CMU 로봇공학연구소의 한스 모라벡 박사는 “반도체의 집적도가 18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나는 만큼 2040년이 되면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도 나올 수 있다.”며 “이 같은 일이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로봇을 만드는 사람의 철저한 윤리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itsch@seoul.co.kr ■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감정 가질 수 없을 것” ‘로봇 뇌’ 전문가 세바스찬 승 MIT 교수 |보스턴 박건형특파원|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로봇은 ‘휴보’처럼 걷거나 ‘마루’처럼 춤을 추는 일이 고작이다. 체코어의 ‘일한다(robota)’는 뜻으로, 차페크의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로봇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후 100여년이 지났지만 로봇의 발전 속도는 왜 이렇게 더딘 것일까? 로봇 연구자들은 로봇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모든 학문의 집합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로봇 연구를 위해서는 기계공학자뿐 아니라 물리학, 화학 등 기초 학문부터 뇌과학, 전자·전기·재료공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학분야의 지식과 기술개발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사고 연구를 위해 심리학과, 사회학 등 인문학도 동원돼야 한다. 국내외 로봇 연구자들은 이중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로 ‘로봇의 뇌’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는 뇌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뇌의 외곽만을 맴돌고 있다.MIT 뇌 및 인지과학자 세바스찬 승(41) 교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최전선에 있다. 그가 개발한 ‘신경컴퓨터’는 사람의 뇌 속 뉴런의 연결을 모방한 형태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승 교수는 “스파게티처럼 얽혀 있는 신경세포들의 연결선을 밝혀내는 것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과제”라며 “각각의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컨넥톰’이라는 뇌신경 연결지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로봇의 뇌를 연구하는 수단으로는 크게 컴퓨터를 고도화해 뇌의 복잡성에 접근해 나가는 전통적인 방식과 승 교수가 주도하는 뇌를 먼저 이해해 컴퓨터의 설계에 적용하는 계산신경과학 등 두가지가 있다. 승 교수는 “컨넥톰이 먼저 뇌를 구현할지 아니면 컴퓨터가 발전해 뇌의 기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두 가지 방법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후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로봇을 만드는 기계공학과, 컴퓨터를 연구하는 전기공학과, 뇌 자체를 연구하는 기초의학 등 다양한 분야와 협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승 교수는 컨넥톰이 완성되더라도, 로봇이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 감정 등을 가질 우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컨넥톰은 신경해부학자들이 100년 이상 연구했지만 밝혀내지 못했던 뇌의 문제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일에 불과하다.”며 “정해진 사고방식에 따라 논리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감정을 가진 로봇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밝혔다. kitsch@seoul.co.kr <특별취재팀> 미래기획부 손성진부장(팀장)·이도운차장·류지영·박건형·정현용기자, 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특파원, 국제부 박홍환차장, 사회부 안동환·이재연기자 문화부 박상숙기자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美 알코르생명연장재단의 냉동인간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美 알코르생명연장재단의 냉동인간

    “사라진 도시의 온기는 핵폭발을 견딜 수 있는 바퀴벌레를 3년 후 멸종시킨다.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은 500년을 더 산다.100년 후 상아를 노리는 인간의 탐욕에서 자유로워진 코끼리들은 20배로 늘어나고,500년 후 온대지역의 교외는 숲이 되어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3만 5000년 후에는 토양에 침전된 납이 전부 씻겨나가 인류의 흔적이 사라지고, 고압전선에 희생되지 않는 새들과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을 갖게 된 동물들은 태고 그대로의 지구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반면 수천년에 걸쳐 인류가 만들고 개발한 교통수단과 편의시설이 사라지는 데는 고작 이틀에서 1년이면 충분하다.” 세계적인 과학저술가 앨런 와이즈먼은 저서 ‘인간없는 세상’에서 “지구상에서 인류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생히 그려냈다. |스코츠데일(애리조나) 박건형특파원| 머리 또는 전신을 보존할 수 있다. 머리만 보존하는 데는 8만달러, 몸 전체를 보존하는 데는 15만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분명히 이들은 ‘사망한 상태’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고 이들을 보관시킨 가족들은 ‘단순히 활동이 정지된 상태’라고 부른다. 가족들은 불치병에 걸리거나 늙어서 생명이 정지된 이들이 언젠가 다시 깨어나 세상을 살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다. 공상과학(SF) 속 장면이 아니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른 채로 차가운 냉동고 속에 보관돼 있는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냉동인간’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냉동인간 1972년 설립돼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알코르생명연장재단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파는 회사다. 이들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냉동고에 사람을 보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2008년 6월 현재, 알코르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회원은 866명이다. 회원들은 40세 전후에 미리 정밀 검사를 받고 자신의 보존과 관련된 준비를 마친다. 이들은 사망하면 곧바로 스코츠데일의 수술실에서 냉각된 뒤 환자 보호실의 ‘듀어’라 불리는 냉동 보존 탱크 속에 거꾸로 세워 보관된다. 최대한 손상을 막기 위해 환자가 죽음에 임박하면 각종 교통수단을 동원해 신속하게 재단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현재 스코츠데일에는 불치병에 걸려 죽기 직전에 냉동을 택한 월트 디즈니와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엄스 등 92명의 환자가 냉동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갑다’는 뜻의 그리스어 ‘kryos’에서 유래한 냉동보존술(cryonics)은 가장 빠른 시기에 현실화된 과학적 아이디어로 꼽힌다.1964년 미국의 물리학 교수인 로버트 에팅거가 저서 ‘영생의 가능성’에서 액화가스를 이용한 냉동인간의 가능성을 제기한 후 불과 3년 뒤에 지금과 비슷한 방식의 냉동인간이 시도됐다. 알코르 재단에 보관된 환자 중 상당수는 1970년대 말부터 20~30여년간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냉동인간과 관련된 현실적, 윤리적 논란이 이어지면서 재단은 고객이 될 가능성이 없는 외부인의 접근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냉동인간으로 보존되는 것은 나중에 다시 재생될 수 있는 기회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서 “줄기세포 연구와 나노의학 같은 미래의학 기술은 이같은 일을 현실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냉동 보존된 사람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사람이 죽는 순간 세포는 바로 부패하고 인체를 초저온의 액화질소에 보관하는 과거의 방식과 저온 응결시키는 새 제조법 모두 인체 조직에 치명적이다. 이는 알코르 재단 이외에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냉동 보존 회사들이 극복하지 못한 과제이다. 과학을 내세워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거나 개발되지 않은 기술을 담보로 막연한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윤리적 논쟁도 뜨겁다. 죽기 전에 냉동 보존된 월트 디즈니를 두고 냉동 보존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보존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의학적, 윤리적 입장에서 보기에는 “죽기 직전의 사람을 강제로 죽인 것”에 불과하다. 과학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영면하지 못하고 냉동고 속의 생선이나 고기 덩어리로 남아있게 될 뿐이라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 대해 알코르 재단측은 “100년전에 심장이식을 예측한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소생도 분명히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과학기술은 마치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또 다른 신앙이 돼 있다. ●종교의 과학화·인간성 배제로 이어져 지구 생명체를 우주인들인 ‘엘로힘’이 과학적으로 설계해 탄생시켰다는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주장이 큰 힘을 받고 있는 것도 ‘종교의 과학화’ 사례로 거론된다. 현재 라엘리안 무브먼트를 믿는 신도는 전세계 90개국에서 6만 5000명을 넘는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주장 중 상당수는 20세기 이후 밝혀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이 지구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주장하는 외계인 엘로힘은 ‘DNA 합성술’을 이용한다. 라엘리안 무브먼트 코리아 관계자는 “생명체는 DNA라는 복잡하고 정교한 설계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면서 “생명체의 모든 종은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우연히 합성될 수도 없는 만큼 종별로 설계도가 처음부터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은 DNA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낸 프란시스 크릭의 가설과도 맞닿아 있다. 노벨상 수상 이후 기이한 주장을 일삼았던 크릭은 먼 옛날 외계인들이 고도의 과학기술로 생명을 창조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측은 배아복제를 통한 복제인간, 냉동인간 등 과학의 힘으로 가능한 모든 일을 시도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문제들이 하나, 둘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이는 자칫 오랜 기간 지속돼 온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에 대한 고도의 믿음은 인간적 윤리를 뛰어넘어 인간성 말살은 물론 인간사회의 유지 자체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과학기술이 인간사회와 슬기롭게 조화를 이루어 발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itsch@seoul.co.kr ■ “영장류 복제 언젠가 가능할 것 연구자 스스로 윤리성 강화를” 美 줄기세포 권위자 정영기박사 |보스턴 박건형특파원|과학계에서는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분야는 줄기세포와 광우병이라는 얘기가 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태를 겪으며 우리 국민들은 생명공학에서도 가장 첨단을 달리는 줄기세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또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줄기세포 연구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척추장애인이 일어서거나 돼지 몸속에서 키운 장기를 이식받는 일, 나아가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모든 신체 부위를 마음대로 갈아 끼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줄기세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바이오 분야다. 줄기세포를 통한 각종 연구가 현실화되면 기초과학은 물론 의학과 생명공학 시장에까지 막대한 부가가치를 얻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년 새롭게 들어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만들어낼 과학분야의 가장 큰 정책 역시 ‘줄기세포 연구 규제 완화’로 평가된다. 현재 영국과 일본, 호주 등지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분야에 미국이 뛰어든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날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줄기세포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일부의 주장처럼 배아복제나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인간을 복제하는 ‘신의 영역’까지 침범할 수 있을 것인가?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미국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의 정영기(46) 박사는 “현 단계의 줄기세포 연구는 기존 의학기술의 가능성을 좀 더 넓히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ACT에서 줄기세포 연구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인간 배아를 손상하지 않고 배아 줄기세포를 복제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혈액형에 상관없이 수혈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정 박사는 “현재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개발한 역분화만능줄기세포(iPS)나 우리의 배양 방식 모두 기존 줄기세포 연구가 갖고 있던 생명윤리 논란에서 자유롭고, 또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복제 배아줄기세포 역시 치료용으로 연구할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줄기세포를 통해 일부분이 손상된 장기를 복구하거나 시각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줄기세포 등은 기술력으로 현실화된 상태”라며 “줄기세포 연구 자체가 한 단계씩 밟아가야 할 장벽이 많지만 언젠가는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복제도 기술력으로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동물복제에 있어 세계 정상급인데, 이는 많은 노하우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강력한 장점”이라며 “맞춤형 줄기세포가 본격적으로 수립되기 시작하면 또다시 윤리논란이 벌어지겠지만 이는 연구자 스스로의 윤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kitsch@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올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송기정 교수 대담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올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송기정 교수 대담

    ‘욘사마’,‘대장금’으로 아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한류. 한류는 배용준이나 이영애 등 특정 배우와 잘 짜여진 한두 편의 드라마로 이뤄진 ‘찻잔 속의 태풍’에 만족해야 하는가. 수많은 문화학자들의 우려처럼 고작 200년에 불과한 역사를 가진 미국 문화의 침투에 반만년 동안 쌓아온 우리 문화가 속절없이 종속되어야 했던 그 불행을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가. 서울신문은 이화여대 인문학부 송기정(51) 교수의 주선으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지성’으로 꼽히는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와 이메일·전화 인터뷰를 갖고 한국 문화의 현주소와 장단점,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 문화가 종속을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갖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봤다. 송기정 교수가 사회자 겸 대담자로 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르 클레지오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이후 최초다. 르 클레지오는 “어느 특정 문화의 우수성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게 될지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면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는 어떤 종류의 문화에도 굴종되지 않을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은 어떤가 송기정 교수(이하 송기정) 세계 10위권의 경제력만큼이나 한국의 위상은 급변해 왔다.1980년대 초반 프랑스에 처음 유학갔을 때만 해도 아무도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남미의 오지를 가도 모두가 한국을 알고 있다. 특히 삼성,LG, 현대로 대표되는 하드파워 이외에 소프트파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신장된 느낌이다. 대표적으로 한류(韓流)를 꼽을 수 있다. 한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르 클레지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가끔 활동하는 미국에서도 영화 등을 통해 한국 문화는 여러 경로로 접할 수 있으며, 일부 계층에서는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한국문화가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가 각국 문화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치려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전 세계를 군사는 물론 경제·문화적으로 획일화하려고 했던 제국주의적인 움직임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류는 두 가지 이상의 이문화간 상호관계성(interculturality)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송기정 역사적으로 보면 아시아 문화는 유럽에서 시대별로 큰 조류를 형성할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18세기에는 중국의 사상들이 유럽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19세기에 유럽은 일본에 사실상 미쳤다고 할 정도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흐나 모네 같은 화가들은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을 확립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은 지금도 일본을 굉장히 문화적 수준이 높고 잘사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가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르 클레지오 한국문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과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음식문화에 있어서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전통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반면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와 건축물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 못지않은 현대적 개념이 퍼져 있다. 두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문학이다. 실제로 한국의 문학작품 중에는 일본의 한국점령과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은데 이는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가르는 기준에서 이 두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가능한가 송기정 문화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문학에 대해 얘기해 보자. 문학의 세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어다. 영어권이나 프랑스어권의 경우에는 이같은 문제를 못 느낄 수 있지만 작가가 쓰는 대로 읽히는 것과 번역을 통해 다시 가공돼야 하는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같은 문제는 요즘의 젊은 번역가들이 체계적으로 공부해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한국의 번역가가 아무리 잘 하더라도 프랑스나 영어권에서 그 문화를 정확히 이해해 ‘번역의 묘’를 조절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철저한 공동작업이 돼야 한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어떤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르 클레지오 한국문학을 많이 접해 본 사람으로서 한국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작가들이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외국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한 접근 방법도 찾아야 한다. 내가 구상했던 방향은 한국 문학의 확산과 번역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정립하도록 도운 다음 정기적이고 친밀한 한·프랑스 문학교류를 이루는 것이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한국시인과 소설가를 지속적으로 초빙해 대학에서 여러 강의를 맡겨야 한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프랑스에 분명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송기정 평소 한국 문학을 많이 읽고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읽어본 작품 중에 특히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가. 르 클레지오 세대 차이의 영향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이승우 같은 작가의 작품에 친숙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국 문학계의 젊은 조류, 예컨대 현실주의나 유머감, 과거 전쟁세대들과의 일정한 거리감 유지 등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송기정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 보자. 프랑스 등 문화가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나라들은 예외없이 읽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분야의 책을 읽도록 유도하다 보니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사고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 같다. 대중문화의 확산에서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망라해 가장 많은 신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유럽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은 한글을 읽고 쓰는 데 대해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르 클레지오 한글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쓰기도 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 본 사람으로서 한글은 정말 대단히 과학적인 언어이자 한국만의 문화를 담고 있다. 한국어의 ‘정’ 같은 표현은 어떤 프랑스어로도 100% 완벽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영어 공용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어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가치다. 또 그 나라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나 영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가 지켜야 할 가치는 어떤 것인가 송기정 프랑스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프랑스 문화에서 배울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르 클레지오 프랑스와 한국은 국제관계나 경제적 힘, 그 규모에 있어 동등한 수준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공통적으로 크기에 비해 강력한 문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의 침투는 두 나라 모두 겪고 있는 현상인데,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이웃의 거대 문화권인 중국, 일본의 영향력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 송기정 전 세계적인 문화의 융합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자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타문화를 수용하는 것도 중요하고, 문화를 수출하는 것 또한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이 세 가지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르 클레지오 세 가지는 결코 각기 다른 부분이 아니다. 이종간 문화의 융합은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다른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고립되거나 외국의 문화를 순화시켜 받아들이기 위한 장벽을 설치하는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늘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를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새로 들어온 문화에 정복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 한국은 당연히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한국 문화가 외국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펼칠지 기대된다. 정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르 클레지오는 누구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8)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가장 위대한 작가’로 불린다.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나 니스 대학을 졸업했다. 유년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냈고 멕시코, 미국 등지를 끊임없이 돌며 경험을 쌓아 세계 각국의 문화에 대해 폭넓은 조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 대해 “인간성 탐구, 관능적 환희, 시적 모험, 새로운 출발의 작가”라는 평가를 내렸다. 대표작으로 ‘사랑하는 대지´,‘도피의 서´,‘전쟁´,‘거인들´,‘사막´,‘조서´ 등이 유명하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이화여대 통역대학원 초빙교수를 맡아 강의를 진행했다. ●주요연보 ▲1940년 4월13일 프랑스 니스 출생 ▲1960년 니스 대학 졸업 ▲1963년 첫 소설 ‘조서(調書·Le Proces-verbal)´로 르노도 상 수상 ▲1964년 앙리 미쇼 연구로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대 석사 학위 취득 ▲1980년 ‘사막´ 발표.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상 수상 ▲1994년 ‘리르’誌 선정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선정 ▲2001년 한불 작가 교류 행사로 한국 방문 ▲2002년 미국 뉴멕시코대 불문학과 미술사 교수 ▲2007~2008년 한국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초빙교수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獨망명 작가 이미륵의 삶 재조명

    獨망명 작가 이미륵의 삶 재조명

    SBS는 소설가 이미륵(1899~1950)의 생애를 조명한 창사특집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극본 이혜선·연출 이종한)를 14일 오후 8시50분에 방송한다. 한·독 수교 125주년을 맞아 SBS와 독일 방송사 BR(Bayerischer Rundtunk)이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1946년 발표된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와 후속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를 토대로 했다. 이 작품에는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한 이미륵이 경성의전 재학시절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 상하이를 거쳐 독일까지 건너가게 된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담겨 있다.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은 소설가로 변신해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문제와 동양의 문화, 사상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당시 독일 평론가들은 그의 문장을 카프카나 베른하르트에 견줄 만큼 간결하면서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총 12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드라마는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는 이미륵의 가족사와 성장기,2부에서는 그의 독일 탈출기와 정착기,3부는 독일에서 한국의 정서와 동양철학을 전파하는 원숙기를 그린다. 특히 주인공 이미륵 역을 위해 무려 4명의 배우가 출연해 눈길을 끈다.5살 미륵과 11살의 소년 미륵 역에는 SBS드라마 ‘왕과 나’에서 어린 연산군으로 출연했던 정윤석 군과 어린이드라마 ‘고스트팡팡’에서 열연한 노민우군이 각각 맡았다. 청년 미륵에는 SBS 7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성녀와 마녀’,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그놈 목소리’등에 출연한 연기자 최성호가 캐스팅됐다. 그리고 중년 미륵에는 현재 10여년 가까이 독일에서 활동 중인 오페라가수이자 배우인 우벽송이 맡아 열연을 펼친다. 이밖에도 신구, 나문희 등 중견 연기자와 귀화 독일인 이참 등 독일 배우들이 참여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지난 7월 초 독일과 미국에 있는 배우들을 화상 오디션으로 선발한 뒤 서울과 인천, 경남 하동, 전남 구례, 전북 고창 등과 독일 현지 촬영 등 총 4개월간 촬영했다. 독일에서는 2009년 BR방송에서 전파를 탈 예정이다. 연출은 ‘관촌수필’,‘화려한 시절’,‘토지’ 등을 지휘한 이종한 PD가 맡았다. 이PD는 “이미륵이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킨 핵심을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전쟁 속에 숨은 휴머니즘 등을 조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Best CEO 열전] (12)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

    [Best CEO 열전] (12)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

    “구원 투수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LG생활건강 차석용 사장을 두고 부러움 가득찬 업계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2005년 1월 취임한 뒤 마이너스 성장으로 고전하던 LG생활건강의 영업이익을 해마다 30% 이상 신장시켰다. 지난 2007년 매출 1조 1725억원, 영업이익 1264억원이란 성적을 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올해 영업이익은 취임 직전인 2004년(544억원)의 3배인 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도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코카콜라음료(당시 코카콜라보틀링)의 경우 지난해 10월 인수하면서 4년 연속 마이너스이던 영업이익을 지난 3분기 기준 315억원의 흑자로 돌려 놓아 또 한번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변해야 산다” LG생활건강이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다름 아닌 ‘선택과 집중’이다. 사업과 브랜드를 재정비하고 브랜드와 제품의 프리미엄화를 일관되게 추진해 온 때문이다. 특히 화장품 브랜드를 고급화하는 데 공을 들인 게 주효했다. 2005년 1월 이후 수익성이 떨어지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의 화장품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화장품 유통 재고도 모두 정리했다. 당시 이름도 생경한 레뗌, 뜨레아, 헤르시나 등 LG생활건강의 주요 화장품 브랜드를 모두 단종시키는 대신 ‘후’,‘오휘’ 등 고급 브랜드는 리뉴얼하면서 제품군을 확대해나갔다. 예컨대 인간성장호르몬을 도입한 90만원짜리 고가 제품을 출시하고, 국내 최고 톱모델을 기용하는 등 고가 마케팅 활동에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후’ 매출은 2004년 200억원대에서 올해 11월 현재 1000억원을 돌파했다.‘오휘’도 같은 기간 260% 신장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의 발효 화장품 브랜드인 ‘숨37’은 1년 만에 매출 400억원을 돌파했고, 외국 인기 브랜드인 바이테리도 들여와 판매하는 등 브랜드 고급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회사 총 매출에서 화장품 비중도 2004년 29%,2005년 32%,2006년 33%,2007년 37%,2008년 40%로 높아졌다. ●회사에선 불편한 게 바로 편한 것 궁(窮)할 수록 더욱 집착한다는 말이 있다. 그의 경쟁력도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는 마음 가짐에서 비롯됐다. 차 사장의 첫 직장은 미국 P&G본사였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 원어민 출신이 아니어서 미국인 동기보다 항상 모자란다는 마음 가짐을 가졌다. 그래서 매일 아침 5시30분에 출근해 저녁 10시 이후에 퇴근했다. 같은 일도 두번, 세번 더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는 고대 법대 1학년 때 입대해 제대 후 바로 학부 과정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었다. 코넬대 경영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뒤 1985년 한국인 최초로 미 P&G 본사에 입사했다. 입사 10년 만에 본사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P&G-쌍용제지, 한국P&G, 해태제과 등의 CEO로도 활약하면서 업계에 ‘브랜드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회사에서는 편안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는 게 곧 편안해지는 길이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리고 늘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한다. 편안한 날이 쌓이면 뒤처질 수 밖에 없고 자신을 계속 채찍질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감성경영을 통해 선두로 가자 그가 강조하는 주요 가치 중 하나가 바로 감성경영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남성들의 실질 수입은 크게 늘지 않은 반면 여성들의 수입은 63%나 증가했고, 소비자 구매의 80%가 여성들에 의해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등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급증했다.”면서 “기존의 논리와 이성 중심에서 감성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된 만큼 브랜드와 제품도 감성적 차별화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에도 이같은 감성적 차별화를 통해 2위군에 머물러 있는 제품을 1위로 끌어 올리는 한편 한국인에게 친숙하면서도 기능성이 뛰어난 한방과 발효기술을 적극 활용한 샴푸, 비누, 세제 등 신제품들을 출시한다는 구상이다. 인구 구성 변화에 따라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를 50대 이상을 겨냥한 실버 전용 제품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기존 보유 업종간 시너지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인수한 코카콜라음료인 음료부문을 뷰티 사업에 접목해 음료수를 개발하고 있다. 미용에 도움이 되는 음료, 이른바 ‘먹는 화장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는 올해 역시 사상 최대 실적 갱신을 앞두고 있지만 ‘블랙스완(검은백조)’ 이야기를 통해 직원들의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는 “최근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보면 블랙스완이 생각난다.”면서 “블랜스완이 나타나면 충격이 매우 큰데 이는 검은 백조가 나올 확률이 아주 낮아 아무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만큼 우리의 사업이 잘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잘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면서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난 신선한 시각으로 아주 낮은 확률의 재앙이 닥치더라도 회사의 미래를 지켜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고문기술자’ 이근안 목사로 회개의 삶 시작

    “이근안 목사님 성경 말씀처럼 거듭나셨으니 대한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성직자가 되십시오.“ 30일 서울 동숭동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39명의 목사 안수식에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70)씨가 목사가 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 충청북도 경제부지사 노화욱씨는 블로그(blog.naver.com/shghkdnr)를 통해 “목사가 된 날 그의 모습은 너무 행복하고 밝아 보였다. 파란만장한 인생유전 뒤에 이제 편안한 그의 모습에서 노년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이 시대 이념과 정치의 희생자 대공수사관 이근안은 다시 태어나 목사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노화욱씨는 1979년 고정간첩을 수사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에 위장취업한 이근안씨를 울산에서 처음 만났다고 개인적인 인연을 밝혔다.석달간 룸메이트로 한방에서 지내면서 인간성이 풍부하고, 외모와는 달리 인정이 많고 자상했으며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비상했던 이씨를 형님처럼 따랐다고 회고했다.  이씨가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아 집은 가난했고 아들은 불행하게 죽었다고 노씨는 전했다. 가끔 교도소로 면회를 갔다는 노씨는 “그는 나에게 고마워하며 몇가지 중요한 진실을 얘기했다. 정치권에 의해 순수 대공이 공안에 끌려드는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그는 재소 중 종교에 귀의해 석방 이후 신학대학원을 다녔다. 생계가 어려워 아내와 새벽마다 아파트 공병과 폐지를 수거하며 살았다.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며 열심히 신앙간증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장애인과 노인들의 재활치료를 위한 자격증도 땄다.”고 그간 이씨의 인생 역정을 설명했다.  이근안씨는 1985년 당시 민청학련 의장이던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많은 인사들을 고문해 89년 공개수배가 됐다. 지난 99년 10월 다락방에서 내려와 자수해 징역 7년형을 확정받고 여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06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국제중 가결 사전논의 의혹…공정택 퇴진 나설 것” 기획재정부의 아고라 활동에 네티즌 ‘냉소’ “SBS 저작권 행사는 김연아 해외홍보의 걸림돌?” [주말탐방] ATP투어 이형택이 사는 법 지하철 노선도 속에 “어! 동물들이 숨어있네”
위로